[외언내언] 전쟁과 평화의 카오스

[외언내언] 전쟁과 평화의 카오스

임영숙 기자
입력 1999-06-18 00:00
업데이트 1999-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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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2000년대의 적응전략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보면 된다”고 미국의 문화비평가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말한다.우리는 매일 새로운 단어와 관념과 사건들로 폭격을 당하다시피 하는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우리에게 익숙하고 우리가 사랑했던 문화는몰락하고 있으며 기존의 선형적(線形的) 사고로는 변화가 상수(常數)인 오늘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어렵다.그러나 급격한 변화에 당황해 하는 어른들과달리 아이들은 카오스(혼돈)의 불연속성을 파도타기하거나 스노보딩하듯 넘나든다.TV와 컴퓨터로 매개되는 문화속에서 태어난 스크린세대(보기세대)는읽기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이 세계와 상호작용한다.읽기세대가 집중력을 중요시한다면 보기세대는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한다.21세기에 중요한 것은집중시간의 장단이 아니라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잘 할 수 있는 멀티 태스킹(multi-tasking) 능력이고 그 능력은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뛰어나다는 것이 러시코프의 주장이다.

바로 그 멀티 태스킹 능력을 지금우리는 시험받고 있는 듯싶다.서해에서는 남북 해군간에 총격이 오가고 동해에선 금강산 관광선이 오가는 상황은 기존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카오스다.서해 교전(交戰)에서 부상당한 용감한 군인 이야기와 북한에 비료를 건네주고 북측 인사와 술자리를 같이했다는 적십자사 대북비료인도단장의 이야기가 신문 사회면에 함께 실리는상황을 예전에는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는가.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평양 발언만으로도 당장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공포속에 생필품 사재기 바람이 불었던 것이 사실 우리에겐 더 익숙한 모습이다.

서해에서의 총격전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선의 승선율이 평소와 다름없고 주식시장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것을 위기불감증이라고만 보는 것은 너무 선형적인 사고방식이 아닐까.오랜 남북 대치상태에서 온 긴장해이요소가 없지 않겠지만 예측불가능한 북한에 대한 예측가능성,즉 불연속성에대한 파도타기를 우리 국민들이 어느 사이엔가 터득한 측면도 있다고 보면어떨까.북한의 선제공격에 대한 우리 해군의단호한 반격도 러시코프가 말하는 멀티 태스킹 능력인 셈이다.전면전도 마다 않겠다는 냉전구도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면 햇볕정책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고 카오스 그 자체인북한을 껴안으려면 우리는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은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좋든 싫든 그것이 바로 변화된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변화된 현실을수용하기 어려운 국민들과 도발·대화의 양동작전을 구사하는 북한을 감안해 햇볕정책에도 강약 조절이라는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임영숙 논설위원

1999-06-18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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