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언내언-立春

외언내언-立春

이세기 기자
입력 1999-02-03 00:00
업데이트 1999-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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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을 열흘 앞두고 내일(2월4일)은 입춘(立春). 사방에서 겨울이 걷히는소리가 싱싱하게 들려오고 있다. 동풍이 불어서 언 땅을 녹이고 물고기가 얼음 밑을 헤엄친다는 입춘은 새해의 상징이자 계절의 시작이다. 지난 겨울은10년만의 강추위가 들이닥치리라는 예보였으나 우리의 겨울은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로 몸보다 마음이 더 얼어붙어야 했다. 실직자들은 새로운 인생을설계하고 각 기업은 구조조정으로 새출발을 다짐하면서 입춘추위 속에서도따뜻한 봄기운이 깃들여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국립민속박물관은 설날과 입춘을 앞두고 ‘신명나는 정월풍속 꾸러미 행사’를 마련,입춘날 박물관에 오는 방문객들에게 궁궐의 기둥에 붙였던 입춘첩을 나눠주고 제주에서는 올해입춘 굿놀이를 74년만에 재현하게 된다고 한다. 탐라시대부터 이어져오다 일제 강점기인 1925년에 중단된 이 ‘걸궁’은 액맥이와 풍년을 기원하는 무속행사로 입춘 전날부터 다음날까지 전 과정이 극적으로 펼쳐지는 것이 특징이다. 쟁기를 메운 목우(木牛)와 무악기(巫樂器) 소리를 앞세우고 탈을 쓴 기장대와 엇광대,빗광대 초란광대 갈채광대가 동네를 한바퀴 휘돌거나 보리밭에 나가 보리뿌리로 새해농사의 흉풍을 점치기도 한다. 풍년과 함께 국태민안을 기원한다고 해서 일제가 금지시켰던 것을 이번에 관광자원화한 것이다. 우리는 한 해를 보내고 한 해를 맞으면서 새로운 다짐과 기운을 얻기 위해의식을 존중하는 민족이다. 그러나 시(詩)나 사(詞)를 써서 대문이나 기둥에 써붙이고 행복을 기원하던 입춘축 풍조는 사라져버렸다. ‘복’을 기원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오만 때문이며 덕분에 우리는 전쟁에 비유되는 숨가쁜 파도를 경험해야 했다. 토마스 만은 경험을 위한 ‘파도는 거칠수록 아름답다’고 했지만 다시는 이런 국난이 닥치지 않도록 지혜와 힘을 모아 IMF한파가 지나가기를 한결같이 기원해볼 때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의 시작앞에서 봄은 서울에서나 제주에서나 어디에서나 아름답다. 실직과 가난과 빚더미에서 벗어나 화창하고 따뜻한 21세기의 봄을 맞기 위해 우리 모두 기지개를 활짝 켜고 봄이 오는 길목으로 달려가보자.

1999-02-03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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