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 정년단축 이후의 교단

교원 정년단축 이후의 교단

박정현, 서정아 기자
입력 1998-11-21 00:00
업데이트 1998-11-21 00: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세대교체로 활력·혼란 혼재 예고

99년 8월31일 학교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2만7,407명의 나이든 교장·교감·교사들이 물러나는 교단은 더 젊은사람들로 채워지게 된다.교단의 세대교체는 학교문화를 혁명적으로 바꿔놓을 것으로 예상된다.학교에는 활력이 넘치는가 하면 젊은 교사들의 미숙한 경험은 혼란도 야기할 것이다.퇴직을 앞둔 교사들은 빈 교단 채우기식의 무더기 충원으로 교육의 질이 낮아질 것을 걱정한다.

◎교사 수급 전망/초등교사 내년 크게 부족/마구잡이 충원땐 교육 질저하 우려

5년 전 건강이 좋지 않아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뒀던 40대 초반의 주부 A씨.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실직하고 생계가 막막하던 A씨에게 99년 9월 ‘행운’이 다가온다.교사생활을 다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교원 부족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젊은 퇴직 교사와 교대 졸업생을 총동원할 계획이다.

교원 정년감축으로 가장 심한 타격을 받는 곳은 초등학교이다.사범대 출신과 교직 이수자 등은 한해 2만5,000여명이지만 10분의 1인 2,500여명 정도만 선발해왔기때문에 중등학교의 교사 공급은 넉넉한 편이다.그러나 초등학교 교사는 교육대 출신이어야 한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내년에 퇴직하는 초등학교 교사는 5,356명.하지만 전국의 교대 출신은 모두 합해서 5,190명.매년 2대 1에 가까운 경쟁률을 뚫어야만 했던 임용고사를 면제하고 무조건 채용해도 턱없이 모자라는 숫자이다.

여기다 매년 4,000여명씩 충원했던 기본수요를 감안하면 교사부족현상은 극에 달할 전망이다.하지만 마구잡이식의 교사 충원은 결국 교육의 질을 떨어트리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서울시 교육청 초등인사과의 관계자는 “임용고사에서 탈락해야할 교대 졸업자가 교사가 된다면 수업 능력이나 성취동기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교육의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교사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중등교원 자격소지자를 초등학교의 교과전담교사로 대폭 전환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지만 이 역시 질 저하를 가져온다는 지적이다.<朴政賢 徐晶娥 jhpark@daehanmaeil.com>

◎공백메우기 승진 러시/40대 교장·교감시대 열린다/초등교 4,000여명 새로 교감 자격증

‘60대 교장,50대 교감’의 등식이 깨지고 빠르면 ‘40대 교장,교감 시대’도 예상된다.초등학교는 교장부족현상이 불보듯 뻔한 탓이다.

교단을 떠나는 초등학교 교장은 4,000명이고 교감은 2,400명 정도가 된다.따라서 평교사가 교감이 될 수 있는 숫자는 모두 6,400여명이다.이미 교감 자격증을 갖고 있는 평교사 2,153명을 제외하면 4,000여명이 새로 교감 자격증을 갖게 된다.중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승진 러시’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중등학교의 퇴직 교장·교감은 모두 4,000여명.중등 교감 자격증을 갖고 있는 평교사 1,859명을 제외하면 2,000여명이 새로 자격증을 얻어 승진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고령 퇴직 평교사 7,000여명을 포함하면 승진 순위는 1만명 가깝게 올라간다.중등에서 교감 연수 후보가 되는 1급 정교사 자격증을 가진 교사는 8만5,000여명.따라서 후보 가운데 10% 이상이 승진할 수 있게 된다.

서울의 중등학교 교사 2만6,000여명 가운데 20명만 교감이 됐던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승진 러시이다.교육부의 관계자는 “시·도별로 편차가 있어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우나 서울 중등학교의 경우 교감은 25∼28년차 경력(군경력 포함)의 교사면 승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40대 후반이면 교감이라는 얘기다.

◎교장·교감 승진 어떻게/1급정 교사 3년→교감 3년→교장 후보

평교사가 1급 정교사 자격증을 가진 지 3년이 지났으면 교감 승진 후보가 된다.교감 자격증을 가진 지 3년이 되면 교장 승진 후보가 된다.

이렇게 해서 교감 후보는 초등이 9만5,782명,중등이 8만5,000명이다.교장 후보는 중등이 3,182명,초등이 5,300여명이 된다.후보가 된다고 승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공무원 승진규정은 경력 90점,근무평정 80점,연구·연수 30점씩으로 구성된 200점 만점의 평가를 받는다.교사들은 점수별로 서열이 매겨진다.여기서 서열대로 끊을지와 3배수 추천으로 승진자를 결정하는 지는 시·도 교육청 인사위원회에서 결정된다.

◎교육부 후속대책 점검/중등교사 초등교 배치 부작용 우려/초빙교장제 도입에 교사들 “교육현실 모르는 소리”

교사 정년단축이 발표된 이후 학교마다 몸살을 앓고 있다. 기획예산위원회와 교육부의 정년단축 발표도 발표지만 앞으로 나올 후속조치에도 교사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또 교사로서의 보람을 잃어 전직을 준비중인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교사들은 먼저 교육부가 정년단축으로 인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초·중등학교에 초빙교장제를 도입하고,특히 초등학교에는 중등교사자격자를 일선교사로 배치한다는 계획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초등학교 한 교사는 “70년대 초등교사가 모자라 중등교사 자격자 또는 6개월짜리 초등교사 양성소를 설립해 교사를 배치한 적이 있는데 이때문에 교육이 질적으로 떨어졌다는 평가가 있다”면서 “초등교육만의 전문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멀리 갈 것도 없다.서울시내 초등학교는 올해 1,200여명의 교사가 퇴직하자 학교별로 5명 안팎의 교과전담교사를 담임교사로 전환한 전례가 있다.이미 교과전담제는 무너졌고 중학교 교사는 초등학교 담임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60년대에도 중·고등학교 교사가 초등학교 교사를 맡았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서울시 한 장학사는 “초등학교로 온 중학교 교사는 한달만에 교과서 한권을 마치고 의기양양해했다”고 전했다.교사는 교과서에 나온 모든 것을 가르쳤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N중학교의 모 교사는 “정년단축으로 공백이 생기는 교장자리에 교육현실을 모르는 외부 관료들을 교장으로 초빙한다는 계획에는 전적으로 반대”라면서 “차라리 평교사를 승진시키거나 장학사가 교장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각 학교 교무실에서는 정년 대상자,교감승진 예정자,젊은 교사들 등 세대별로 나뉘어져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고,교실에서는 학생들이 선생을 예사로 무시한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하소연이다. S중학교 趙모 교사(30)는 “의견수렴이 없는 교육부의 정년단축발표에는 반대하지만,내심 정년단축 자체는 찬성하는 편이다.그러나 교무실에서는 원로교사들의 눈치가 보여 젊은 교사끼리 모여 얘기를 나누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교단 부작용 없나/혼내면 “법대로 해라…” 학생통제 안돼

H고등학교 蔡모 교사는 “여기저기서 교사를 몰아세우는 바람에 학생들에 대한 통제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서 “과제물을 안 챙겨와 혼이라도 낼라치면 ‘법대로 하세요’라고 대꾸하는 분위기”라고 한탄했다.

H고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는 “경기가 나쁠 때 좋은 인력들이 교직에 몰려든 사례로 볼 때 지금이야말로 사범대에 엘리트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요즘 고3을 상담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교사에 대한 평가절하로 결국 교육의 질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교사들 사이에서는 4판(학생은 개판,교실은 난장판,교사는 죽을 판,교장은 이판사판)에서부터 출발해 8판,9판 등 이른바 ‘판시리즈’를 확대해가며 교사들의 자조(自嘲)를 표현하고 있다.

◎중견 교사들 반응/“교직에 회의” 40대 여교사 퇴직희망 늘어

이러다 보니 ‘나도 퇴직이나 해버릴까’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서울 숙명여고의 한 교사는 “명예퇴직 대상이 되는 53세 이상의 여교사들은 대부분 명퇴할 것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몰아내는 듯한 교육부의 정년단축 방침에 교사로서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탓이다.게다가 교직경력이 20년이 넘으면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생활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까닭에 20년 넘은 교사,특히 여교사들은 명예퇴직이 아닌 일반 퇴직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중학교 金모 교사는 “더이상 교사생활에서 보람을 느낄 수 없어 전직을 위해 퇴근 후 컴퓨터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만 20년 근무한 교사는 연금 일시금 8,200만원과 퇴직수당 2,200만원을 합해 1억400만원을 받는다.연금수령을 하면 퇴직수당 2,200만원을 받고 한달에 91만여원씩의 연금을 받게 된다.연금액수는 초중등학교 모두 비슷하다.

교사들은 또 새정부 들어 정부가 교사를 개혁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개혁대상으로 몰아세움으로써 교직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고 토로한다.전직이 아니더라도 담임을 기피하는 현상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 난곡중학교 S모 교사도 “1주일에 수업을 5시간 더 맡더라도담임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면서 “요즘의 담임교사는 교육부의 메신저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朴政賢 徐晶娥 seoa@daehanmaeil.com>
1998-11-21 23면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4%’를 담은 ‘모수개혁’부터 처리하자는 입장을, 국민의힘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각종 특수직역연금을 통합하는 등 연금 구조를 바꾸는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모수개혁이 우선이다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