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득 곳간 열자/김영만 경제부장(테스크 시각)

금융소득 곳간 열자/김영만 경제부장(테스크 시각)

입력 1998-03-18 00:00
업데이트 1998-03-18 00: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부에 대한 한국식 선입관

서울시내 중심부는 비행금지구역이다.대통령행사에 사용하는 헬기만 예외다.대통령을 수행하느라 덩달아 헬기로 ‘금지된 비행’의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중에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있다.

청와대출입기자로 헬기서 내려다 본 서울에는 개인 주택에 딸린 수영장이 하나도 없었다.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도 개인수영장은 많다.교역순위가 11위나 되고 세계 10대안에 드는 도시,서울의 이런 모습은 외국인의 눈에는 ‘이 나라가 자본주의를 하는 나라인가’할 만큼 기이하게 비칠 것이다.개인수영장의 부재만큼 부에 대한 한국적 인식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있어도 있는 티를 내지 말아야하고,없는 사람들이 있는 사람의 부를 존경하지 않는 한국적 자본주의가 세계적 재벌도 옥외수영장을 만들지 못하는 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이런 서울에서 외제승용차에 대한 집단린치,‘이지메’가 문제되고 있다.수입차업체들은 우리사회의 외제차 배격 분위기를 공개리에 문제삼으면서 통상쟁점화할 태세다.그러나 세계 유수의 재벌도 옥외수영장을 가질 수 없는 서울의 분위기에 비춰보면 실업자가 1백50만명을 넘어선 IMF체제하에서는 당연히 예상됐던 일인지도 모른다.오늘처럼 열린 세계에서 외제차에 대한 배격이 옳지않다는 것과는 별개 이야기다.

문제는 외제차에 대한 이지메 그 자체보다 부에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이 IMF를 맞으면서 옥외수영장의 불용수준보다 더 악화되고 있음을 상징하는데 있다.불행히도 서민,실업자들의 부에대한 감정은 당분간 더 악화되었으면 되었지 개선될 가망은 없어 보인다.이는 사회불안,체제불안으로 옮겨가게 마련이고 결국은 IMF 극복을 어렵게 만들 것이란 점도 예상케한다.아기 분유를 사지 못해 공중전화를 터는 가장이 늘어나고,강도와 부랑아가 늘어나고 있다.최소한의 생계비마저 국가가 보조할 제도를 갖추지 못한 우리현실에서는 실업자가 생계유지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일부에서는 실업자들을 조직화하는 운동도 시작되고 있다.

○금융종합과세 재고해볼때

이쯤에서 우리는 시행이 유보된 금융종합과세의 실시를 고려해봄직 하다.부부의 금융소득을 합쳐서 연간 4천만원이 넘을 경우 다른 소득과 합산해 최고세율이 40%인 소득세를 부과하자는게 금융종합과세제다.금융소득이 많은 사람의 경우 지난해 금융소득의 원천징수세율 15%보다 최고 25%를 더 무는 제도로 설명하면 쉽다. 이제도는 그러나 장롱속 돈을 끄집어 내는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제대로 시행도하기 전에 여야합의로 유보되고 있다.

올해의 경우로 예를 들어보자.부과예정인 금융소득종합과세 인원은 2만9천명쯤된다. 이들의 평균이자소득을 6천만원,이들 대부분이 이자소득에 대해 40%의 최고세율을 적용받는다고 가정하면 금융종합과세의 실시로 금융소득부문에서만 4천억원 안팎의 세수가 추가로 발생하게 된다.1백만명의 실직자에게 1인당 40만원을 배분할 수 있는 규모의 돈이다.

○실직자 1인 40만원 배분 가능

누구에게 물어봐도 우리에게 실업자 대책만큼 시급한 것은 없다.정부가 금융소득에 실업세 도입을 검토하고,공공기관의 공사 발주를 늘리려는 것도 실업문제를 고심하는 증거다.그러나 실업세 부가는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는 점에서,공공사업의 확대는 예산 확보문제로 모두 벽에 부닥쳐 있다.정치가 대타협을 해야하는 것처럼 많이 가진 사람들이 이제는 스스로 금융종합과세제의 도입을 고려해 봐야하는 여러 이유중의 하나다.

○계층 갈등 줄여가는 길

옛날에도 부자들은 흉년이 들면 곳간을 열어 이웃에 곡식을 나눠주었다.흉년에는 지주들도 소득이 줄어들기는 마찬가지 였다.그럼에도 곳간을 열었던 것은 이웃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배려뿐 아니라 체제유지도 고려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금리로 예전 흉년보다 빈부격차가 더 커지고 있다.금융자산이 많은 사람들은 금융소득만 60% 가까이 늘어났다.가진 쪽과 못가진 쪽의 갈등이 흉년때보다 훨씬 커질 것임이 분명하다.

국난을 맞아 고통을 분담해야 할 때에 금융소득자들만 소득이 60%나 늘어난다는 것은 서민들을 참기 어렵게 만든다.이자소득만큼 제로섬 원칙이 적용되는 이익이 있던가.

금융종합과세의 실시로 생기는 추가세수만큼을 실업자대책비로 써 보자.사회계층간의 긴장을 크게 낮추게 될 것이다.그것이 우리사회 모두가 사는 일일지 모른다.그자신들이 대부분 금융과세대상자여서 유보에 앞장섰던 국회의원들이 먼저 생각을 바꿔야 한다.
1998-03-18 10면
많이 본 뉴스
공무원 인기 시들해진 까닭은? 
한때 ‘신의 직장’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공무원의 인기가 식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9급 공채 경쟁률은 21.8대1로 3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공무원 인기가 하락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낮은 임금
경직된 조직 문화
민원인 횡포
높은 업무 강도
미흡한 성과 보상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