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 물리학자 이경수 박사(세계 최고에 도전한다:1)

소장 물리학자 이경수 박사(세계 최고에 도전한다:1)

이경수 기자
입력 1998-01-01 00:00
업데이트 1998-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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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플라즈마 장치 ‘한빛’ 성공적 가동/2002년까지 최첨단 ‘토카막’ 개발 야심찬 계획/40년 먼저 시작한 미·일 등 따돌리고 연구 주도

국제무역기구(WTO)체제를 맞아 세계는 지금 치열한 적자생존의 전장이 되고 있다.과학기술이든 문화든 그 어느 한 분야에서 세계 으뜸이 되지 않고서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일에 오로지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으로,그리고 ‘세계 최고’라는 자존심으로 매진하고 있는 사람들.이들이 있기에 우리 앞날은 어둡지 않다.21세기 한국을 이끌어 나갈 각 분야 최고 수준의 인사를 연중 기획물로 소개한다.<편집자>

95년 7월23일 미국을 방문중인 김영삼 대통령은 재미 한국인과학자들 앞에서 엄청난 과학기술 도전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이 2001년까지 핵융합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꿈같은’ 얘기를 한 것이다.

핵융합은 태양열의 원리처럼 수소와 중수소의 원자핵이 하나로 융합할 때 나오는 에너지를 전기로 쓴다는 점에서 ‘인공태양’으로 불린다.핵분열을 이용한 원자력발전이나 화력발전과는 달리 방사능 누출 및 지구온난화의 위험이 전혀 없다.또 핵융합의 연료인 중수소는 바닷물에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바닷물 1㎥에는 30g 가량의 중수소가 들어 있는데 중수소 1g으로는 석유 50드럼의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기반 조성에 온힘

선진국은 이같은 ‘꿈의 에너지’ 핵융합을 개발하기 위해 지난 40년간 수십억달러를 쏟아부었으나 기술적인 문제에 부딪혀 아직도 결실을 내지 못하고 있다.국제원자력기구(IAEA)주관 아래 미국·일본·러시아·유럽연합이 공동으로 2010년 1백50만㎾급의 ‘국제 열 핵융합 실험로’(ITER)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을 따름이다.

당시의 상황이 이러했음에도 김대통령이 선진국에 10여년 앞서 핵융합기술을 개발하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나름대로 ‘믿는 대목’이 있었다.

다름 아닌 소장 물리학자 이경수 박사(42) 때문이다.

이박사는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에 핵융합기술 개발의 가능성을 처음 열어준 인물이자,96년 6월 대형 플라즈마 발생장치인 ‘한빛’을 성공적으로 가동,미국 방문길의 대통령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장본인이다.

‘한빛’의 성공적인 가동은 우리가 세계 규모의 핵융합연구에 나서는 신호탄으로,세계 핵융합전문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91년 MIT 교수 시절에 한국에서 핵융합 연구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귀가 번쩍 띄었습니다.대학도 아닌 건물부지 뿐인 연구소에 뭣하러 가느냐고 만류도 심했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한국은 영영 핵융합분야에서 낙오될 것이란 생각에서 짐을 챙겼지요” 이박사는 귀국하자마자 MIT핵융합센터의 론 파크 소장과 몽고메리 부소장에게 편지를 보내 86년에 3천만달러를 들여 완공한 플라즈마 발생장치인 ‘타라’를 달라고 졸랐다.당시 MIT핵융합센터는 예산문제로 핵융합장치인 토카막과 플라즈마 발생장치인 타라 가운데 토카막만 운영해야 하는 처지였다.이박사는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곧바로 핵융합장치인토카막을 운영하기보다는 핵융합의 기반 운용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플라즈마 발생장치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해 집요한 설득공세를 폈다.○빌려온 타라 개조

결국 MIT는 장기임대 형식으로 ‘타라’를 보내줬고,‘타라’는 3년간의 개조작업을 거쳐 완전히 새로운 기능을 지닌 ‘한빛’으로 탈바꿈했다.지금은 섭씨 2천만도의 플라즈마를 생산해 내고 있다.

‘한빛’은 95년 6월이후 2년6개월동안 3천차례나 가동됐지만 아직까지 단 한번도 바람이 샌 적이 없을 만큼 대성공작이란 평가를 얻고 있다.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다는 MIT나 프린스턴대학의 플라즈마 장치에서도 바람이 새는 것은 흔히 있는 일.

이박사는 96년부터 2단계 프로젝트인 ‘KSTAR’ 개발에 인생을 걸고 있다.‘KSTAR’는 토카막(핵융합환경인 초고온 플라즈마를 가둬두는 진공용기)에 100% 초전도 자석을 채용,섭씨 3억도에 이르는 플라즈마를 5분까지 가둬두는 세계 첫 차세대 핵융합장치.2002년까지 무려 1천5백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구리자석을 채용해 플라즈마 지속시간이 5∼10초에 불과한 미국·일본의 핵융합장치보다 성능이 30배 이상 뛰어나도록 설계됐다.

이박사는 96년 한해동안 이 기술과 관련한 논문 91편을 국내외학술지에 발표했다.

○학계서 논문 극찬

대표적인 논문은 토카막형 핵융합장치 안에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자기장하에서 밀폐할 때 갖혀진 이온들의 온도분포의 기울기에 따라 발생하는 난류현상에 대한 이론을 체계화한 것으로 핵융합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다.지난 6,12월 두차례에 걸쳐 ‘국제 열 핵융합 실험로’(ITER)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KSTAR 중간평가회’에서 ITER 부소장인 일본 시모무라 박사는 “KSTAR는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차세대 핵융합로로, ITER가 2002년 선보일 핵실험로의 모델로 손색이 없다”고 극찬했다.

◎핵융합 어떤 기술인가/섭씨 1억도 이상 초고온·초고압 상태 인공 조성/중수소·3중수소 강제융합 강력한 에너지 얻어/바닷물 1㎥서 석유 1,500드럼분 열량 방출

핵융합은 태양과 같은 초고온·초고압 상태에서 2개의 원자핵이 합쳐져 막대한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는 현상.서로 붙기를 꺼리는 중수소와 3중수소의 핵이 강제로 융합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질량결손분만큼 운동에너지가방출된다.이같은 핵반응 에너지를 이용한 것이 수소폭탄이고,이를 적절히 제어하면 핵융합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우선 핵융합을 하려면 최소한 지구 대기밀도의 1백만배 이상의 초고압과 섭씨 1억도 이상의 초고압 상태인 플라즈마를 발생시켜야 한다.플라즈마는 초고온 상황에서 원자가 양전기를 띤 핵과 음전기를 띤 전자로 나뉘어 기체·액체·고체도 아닌 제4의 물질상태로 되는 것을 말한다.이 때 원자핵과 전자는 제각기 흩어져 초속 수십㎞의 속도로 마구 날아 다니다가 원자핵끼리 고속으로 충돌하면 같은 전기적 성질 사이의 밀치는 힘을 이기고 핵들이 결합,막대한 에너지를 쏟아낸다.우리나라가 지난 95년 가동을 시작한 ‘한빛’도 바로 플라즈마 발생장치 가운데 하나다.

핵융합을 위해서는 또 초고온·초고압의 플라즈마를 한 곳에 오랫동안 가두어 두는 용기를 개발해야 한다.지금까지 가장 이상적인 핵융합 용기로 꼽히는 것은 ‘토카막’.‘토카막’은 ‘도넛 모양의 자기그릇’이란 러시아 말로 60년대 사하로프 박사가 처음 고안했다.토카막은자기장을 이용해 플라즈마의 전기적 성질을 감금한다.이 장치는 섭씨 1억도 이상의 온도에서 플라즈마를 1초이상만 유지해도 핵융합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박건승 기자>
1998-01-0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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