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오기전 15일간 나물밥 연명…”/귀순 박철호씨 일문일답

“넘어오기전 15일간 나물밥 연명…”/귀순 박철호씨 일문일답

황성기 기자
입력 1996-07-25 00:00
업데이트 1996-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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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은 사람 못사는 땅… 6개월전 탈출 결심/식료품점 수매원으로 농사일 하며 살아

24일 새벽 한탄강 상류를 통해 귀순한 북한주민 박철호씨(41)는 『배가 고파 죽을 바에는 차라리 남쪽에 가서 죽겠다는 심정으로 귀순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날 하오 2시 30분 철원군 김화읍 백골부대 철책 경계부대에서 20여분 동안 기자회견을 갖고 귀순 동기 등을 밝혔다.기자회견장에는 귀순 당시 입었던 연한 쑥색 점퍼와 회색 작업복 바지를 그대로 입고 나왔다.

­언제 탈출을 결심했나.

▲6개월 전부터이다.

­탈출동기는.

▲너무 배가 고파 내려 왔다.식량 문제 뿐만 아니라 북한은 사람 취급하는 곳이 아니라 개나 돼지가 사는 곳과 같다.이래 저래 죽을 바에는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왔다.

­남한이 잘 산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

▲평소 남한과 가까운 곳에 살다보니 대북방송을 통해 익히 들었다.까맣게 속아 살아 가고 있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북한 주민이 2∼3일에 한 사람씩 굶어 죽어간다는 데 사실인가.

▲나도 15일 간이나 나물밥만 먹고 살았다.내려 오기 이틀 전에도 동네 아낙네 1명이 죽어 치워졌다.

­북한에서의 직업은.

▲식료품점 수매원으로도 일하고 주로 농사일을 많이 해왔다.

­오면서 아무 것도 먹지 않았나.

▲지난 22일 저녁 나물죽을 먹고 그 이후로는 한 끼도 못 먹었다.

­북에 있는 가족은.

▲처 김정숙(39)과 딸 용옥(15·중5년) 아들 영남(14·중3년) 딸 정실(12·중2년) 아들 정훈(9·인민학교 2년) 등 5명이다.이중 용옥과 영남은 전처 손금순(38) 사이에 난 소생이다.〈철원=박홍기·박성수 기자〉

◎박씨 귀순 경로/22일밤 집 출발·한탄강 6시간만에 건너/남한쪽 강변 도착한뒤 남으로 계속 뛰어

□비무장지대 민간인 귀순일지

▲74년 6월14일=공탁호(당시 34세·토목설계사)

▲82년 1월7일=김용준(당시 30세)

▲83년 6월1일=정범호(당시 44세)

▲90년 7월8일=채정(중국인·26세)

▲96년 7월24일=박철호(41세·노동자)

박씨가 집을 나선 것은 22일 밤 10시 30분쯤.한탄강을 건너기 위해 고무물주머니와 물통 1개씩을 갖고 3㎞를 걸어서 한탄강 상류에 도착했다.

그러나 건천리 남쪽은 군사분계선과 가까워서 평소 북한군의 경계가 삼엄한 지역.마침 30m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가 짙게 끼어 있어 그의 「남행」에 도움이 됐다.고무 주머니와 빈 물통에 몸을 실은 뒤 강으로 걸어들어갔다.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거의 손과 발을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강물의 흐름에 몸을 맡긴지 6시간만인 23일 상오 7시30분 남한쪽 강가에 닿았다.

이미 날이 밝은 뒤여서 박씨는 수풀에 몸을 숨기고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렸다.

23일 밤.비상식량이 없는 상태에서 고무물주머니에 담은 물만을 마시며 버틴 그는 북한군 경계병에 들키지 않으려고 1시간에 불과 5백m 남짓 남쪽으로 나아갔다.

북한군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곳곳에 설치된 지뢰.자신도 모르는 사이 밟은 지뢰에 개죽음을 당할 수 있었기 때문.그러나 북한군이 수시로 놓는 불에 지뢰가 많이 폭발해서인지 무사히 북방한계선을 거쳐 군사분계선을 지난 듯 했다.

24일 아침.혼신의 힘을 다해 남쪽으로 계속 뛰었다.멀리서 국군으로 보이는 초병 2명이 보였다.손을 흔들어 귀순의사를 표시했다.필사의 탈출을 시도한지 33시간만에 꿈에 그리던 남한의 품에 안긴 것이다.〈황성기 기자〉
1996-07-2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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