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반란자들의 궤변(오늘의 눈)

「12·12」 반란자들의 궤변(오늘의 눈)

박용현 기자
입력 1995-12-12 00:00
업데이트 1995-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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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가 일어난지 만 16년이 지났다.입밖에 낼 수조차 없던 군사반란의 내막이 이제 안방극장에서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다.사건의 성격규정도 대통령시해 공범을 처벌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에서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으로 뒤바뀌었다.

그러나 반란의 장본인들이 보여주는 역사인식은 16년의 세월을 무색케하리만치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다.특히 「보안사 4인방」으로 불리는 핵심가담자들이 검찰에 출두하면서 보여주는 태도는 가관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먼저 소환된 허삼수 당시 보안사 인사처장은 지난 9일 출두하면서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한 것이 정당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서너차례나 고개를 끄덕이며 강한 긍정을 표시했다.10일 상오 출두한 권정달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은 『최근 TV드라마에 나오는 이야기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최소한의 진실마저 외면했다.

5공정권의 정통성을 내건 「수괴」의 항의 단식에 힘을 얻은 걸까.허화평 당시 보안사령관 비서실장과 이학봉 당시 보안사 대공과장의 출두장면은 점입가경이다.

『정전총장이 박정희전대통령 시해범인 김재규와 행동을 같이 하는 등 연행이 불가피했다』『정전총장이 무죄를 입증하려면 무덤에 있는 김재규를 불러내야 한다』(10일·허씨)

『박전대통령이 살아났다면 정전총장이 하는 행동을 보고 상을 주었을지 체포해서 처벌했을지 여러분이 더 잘 알 것』(11일·이씨)

이씨는 이날 『10·26사건 이튿날부터 정전총장을 잡아야겠다고 판단,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건의했다』고 「모의시점」을 드러내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그처럼 명백한 혐의가 있다면 왜 사전에 재가를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르러서는 『(사후재가 일지라도) 재가를 받는 쿠데타가 어디 있느냐』고 강변했다.

그는 입가에 엷은 미소까지 띤 채 답변자료로 준비한 두툼한 서류봉투를 흔들어 보이며 조사실로 향했다.마치 검사와 대담이라도 하러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기변명의 궤변만 늘어놓는 이들에게서 사죄의 말이나 유감표시는 단 한마디도 기대할 수 없었다.이들은 비현실적인 가정법 표현을 유난히 자주 쓰면서도 왜 이런 가정은 못해보는 걸까.『12·12와 5·18로 무고하게 살상된 한서린 장병들과 시민들이 살아난다면…』<박용현 사회부 기자>
1995-12-1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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