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대통령 6인의 종말

전직대통령 6인의 종말

박대출 기자
입력 1995-11-17 00:00
업데이트 1995-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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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부정선거·하야·망명/최규하­신군부 강압에 밀려/박정희­군쿠데타·독재·피살/전두환­친척비리·유배 수난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영의 자리를 욕으로 마감했다.부패와 과욕과 무능의 결과였고,정치를 뒷걸음치게 했다.

광복 이후 50년동안 이 나라를 통치한 전직대통령은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씨 등 6명.모두가 일그러진 헌정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이승만 전대통령은 장기집권의 노욕에 사로잡혀 조국을 떠나야 했다.3·15부정선거,발췌개헌,사사오입 개헌 등 헌정을 유린한데 따른 인과응보였다.

지난 48년 간선제에 의해 대통령에 선출됐지만 국민들은 일제 36년에 항거한 독립운동가로 우러러 「이박사」라고 더많이 불렀다.그러나 3·15부정선거로 야기된 60년 4·19혁명에 의해 하야,12년동안의 장기집권을 마감했다.하야 뒤 이화장에서 칩거를 했지만 이미 등을 돌린 민심때문에 쓸쓸히 하와이로 망명,65년 호놀룰루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했다.

4·19혁명으로 민주정부를 맡은윤보선 전대통령은 5·16군사쿠테타로 권력을 강탈당했다.이후 박정희전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맞서 민주투사의 길을 걸었지만 평생 민주정부를 수호하지 못한 멍에를 안고서 숨을 거두었다.

총으로 정권을 찬탈한 박정희 전대통령은 총에 의해 생을 마감했다.지난 79년 핵심측근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18년 군사독재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부인 육영수 여사는 북한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고,그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진채 살고 있다.

그는 「개발독재」로 상징되듯 우리 경제의 발판을 마련해 최근 업적이 새롭게 조명되고는 있다.하지만 민심수습을 이유로 쿠데타를 단행한 뒤 민정이양의 약속을 저버리고 권좌에 올랐다.이후 유신으로 종신 집권체제를 구축하면서 긴급조치의 남발 등 국민의 자유를 짓눌렀다.집권 말기에는 부인을 잃은 허탈감과 독재자의 외로움에 시달리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최규하 전대통령 역시 군부독재의 종식을 기대하던 국민들의 뜻을 외면했다.신군부의 강압에 밀려 「서울의 봄」을 지키지 못한 굴레를 안고 지금까지 외부노출을 꺼리며 살고 있다.

79년 12·12 쿠데타로 군을 배신하고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전대통령은 자신의 후계자에 의해 배신을 당했다.강제로 최전대통령을 하야시키고 「5공」대통령직을 강탈한 그는 정의사회 구현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88년 헌정사상 첫 평화적 정권교체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퇴임한 뒤 한달만에 동생 경환씨의 구속 등 친인척 비리가 줄줄이 터져나오면서 수모의 길에 들어서 이듬 해 재산을 헌납하고 백담사 유배길에 올랐다.평화의 댐 건설의혹,12·12,5·18등으로 국회청문회 증언대에서 서기도 했지만 5·18 때문에 시달림의 길은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다.

육사11기 동기인 전씨와 함께 쿠데타를 감행,2인자의 길을 걷다가 정권을 인수받은 노전대통령은 일단 민선대통령으로 출발했다.「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를 천명하면서 5공청산을 통해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하려 했다.「물태우」란 비아냥도 감수하며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중국과의 수교 등 북방외교,88올림픽 유치 등도 해냈다.

그러나 「보통사람」의 위선과 기만은 이번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12·12와 5·18과 관련해 2차례의 서면조사를 받으며 서서히 전임자의 전철을 밟기 시작한 그는 천문학적 액수에 이르는 부정축재로 영어의 몸이 된 것이다.<박대출 기자>
1995-11-17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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