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성역」 인가/김원홍 문화부기자(오늘의 눈)

누구를 위한 「성역」 인가/김원홍 문화부기자(오늘의 눈)

김원홍 기자
입력 1995-06-06 00:00
업데이트 1995-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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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신 노조간부들이 농성중인 명동성당과 견지동 조계사가 국가 공권력 집행을 놓고 10여일간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가톨릭과 불교는 이들 농성장이 종교적인 「성역」이라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가지고 방문하는 경찰관들의 법 집행을 사실상 가로막고 6차례나 되돌려보냈다.

수사당국은 성당과 사찰은 신앙인들의 종교를 위한 성역이지 실정법을 위반한 혐의의 사람들에게 도피처로 제공되는 면책의 성역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그래서 법집행은 당연한 것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조계사는 『성스러운 도량에 쫓겨들어온 중생을 나가라고 하는 것은 불법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자비를 앞세운다.또 명동성당은 『억울하게 억압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그 울분을 토로해온 장소』라며 지난 시대의 관행을 강조하고 있다.

교회나 사찰을 19세기 중반 열강의 개항지에 존재했던 치외법권적인 조계(조계)로 여겨서는 안된다.국가의 통치권역안에 들어있는 특수한 장(장)일 뿐이다.더구나 종교가 추구하는 이상의 하나가 질서속에 깃들인 세속의 평화라고 한다면 법질서 또한 준수되어야한다.그것은 종교의 사회적 역할일 수도 있다.

종교계는 공권력이 개입할 경우 연대투쟁을 공언하는등 위기감마저 안겨주고 있다.종교계의 이같은 입장에 대해 시민들이 긍정적인 눈길만을 보내는 것은 물론 아니다.구속 영장이 발부된 노조원들은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민주화 투쟁이나 인권투쟁을 하기 위한 투사가 아니다.엄밀하게 말하면 불법적인 노조활동으로 사전 구속영장이 떨어졌기 때문에 범법혐의가 있는 사람들이다.

유럽과 남북 아메리카의 기독교 국가들의 교회에서도 실정법을 어기고 피신한 범법자들을 설득해서 내보내거나 영장집행에 협력한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종교가 범법자들을 공개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을 것이다.종교계에서도 실정법과 종교의 관용 사이에 갈등을 느낄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과거 유신헌법 당시 반정부 인권투쟁을 할때나 군사 독재시대의 민주화 투쟁을 하던 암울한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1995-06-0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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