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식(백제를 다시본다:24)

제천의식(백제를 다시본다:24)

최몽룡, 서동철 기자
입력 1994-08-19 00:00
업데이트 1994-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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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산리 금동향로 출토지는 제사터/건물규모 크고 고분 이웃… 사직 추정/송산리 개로왕 가묘도 제사터인듯

우리 민족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하늘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제천의식을 베풀었다.옛 기록에 나오는 부여의 영고.고구려의 동맹,예의 무천 등이 모두 제천의식이다.특히 국가형태가 완전히 갖추어지면서 국가경영과 관련이 있는 제례가 제도화하는 가운데 사직이나 종묘와 같은 제사유적이 생겨났다.이와 더불어 여느 민간사회에는 마을 주민들의 무병안령,다산과 풍요,풍어 등을 기원하는 제사터가 마련되었을 것이다.

○흔적 찾기 어려워

그러나 오늘날 백제강역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제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유적을 대하기는 쉽지가 않다.이런 상황에서 최근 김동용봉봉래산향로가 출토된 바 있는 충남 부여 능산리 유적이 제사터였다는 국립부여 박물관의 발굴조사결과가 나왔다.이 능산리 유적은 충남 공주 송산리 개로왕의 가묘(1988년 문화재연구소 발굴),전북 부안 변산반도의 죽막동유적(1994년 국립 전주박물관 발굴)과 함께 몇 안되는 백제제사유적으로 떠올랐다.

금동용봉봉래산향로는 출토상황으로 보아 분명히 백제멸망과 관련이 있거니와,제사유적으로 본건물터는 바로 앞에 자리한 능산리고분군(사적14호)과도 결코 무관치 않을 것이다.다시 말하면 이 자리에 세웠던 당초의 건물은 능들을 수호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던 곳이나,나라의 태평을 기원한 사직자리일 가능성이 많다.능이 아주 가까운 지역에 건물을 세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한다.여기서 거두어들인 기와조각이 엄청난 분량이고 보면 건물규모도 대단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금동향로가 나온 능산리유적 건물배치상황을 통해 유사한 다른 유적 하나를 연상하게 된다.그것은 바로 고구려 고토인 중국(만주)길림성 집안현 국내성 밖의 동대자 제사유적(사직)이다.고국양왕 때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제사유적에서는 능산리유적과의 유사성이 찾아진다.백제의 출자가 고구려에서부터인 것은 이미 건국신화나 역사사실을 통해 알려졌고,고고학적 유물들도 이를 입증한다.

○고구려 유적과 흡사

그러나이 능산리유적 건물터가 고구려 동대자 제사유적과 유사하다는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다만 금동향로와 건물터의 관계와 중요성한 것이다.

충남 공주 송산리에서 발굴된 방단계단형무덤도 일종의 제사터로 볼 수 있는 유적이다.서울 송파구 석촌동 계단식돌무지무덤과 흡사하여 한성시대 백제계 무덤으로 추정되기는 하나 제사유적을 겸한 가묘로 보인다.백제 개로왕은 AD475년 고구려 장수왕에게 한성백제(BC18년∼AD475년)를 빼앗기고 죽음을 당한다.그 아들 문주왕은 부왕의 시신을 얻지못한채 웅진(공주)으로 천도하면서 일단 가묘로 만든 것이 송산리의 방단계단형무덤이 아닌가 한다.그러나 이 가묘는 개로왕을 위한 제사터 구실을 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백제의 제사유적을 말하면서 마지막으로 다룰 전북 부안군 죽막동 제사유적은 변산반도 해안절벽에 자리잡고 있다.국립전주박물관이 발굴한 이 유적에서는 구멍이 뚫린 원판(유공원판)과 구리거울(동경),활석으로 모방한 갑옷,굽은옥(곡옥),쇠칼,동물을 형상화한 토제품이 출토되었다.이 유적을 발굴한 국립전주박물관은 죽막동 제사유적은 AD 5세기를 전후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 죽막동 제사유적은 일본 오키노시마(충도)노천유적과 거의 비슷한 조건을 갖추어 주목을 끈다.부안 죽막동은 섬은 아니지만,해안가 절벽에 위치했다는 입지가 우선 비슷한 것이다.유적 형성시기는 부안 죽막동 유적에 비해 훨씬 늦은 AD 7∼8세기경으로 밝혀졌다.그럼에도 출토유물 성격도 비슷한 내용을 보여 백제의 영향을 받은 유적으로 보고 있다.

오키노시마는 일본 규슈(구주)와 한반도 사이의 현해탄 망망대해 속의 섬이다.둘레는 약4㎞이고 해발 2백43m의 산이 우뚝 서있다.절해고도인데다 지형마저 험준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상주하지는 않지만,여러 시대의 제사유적이 분포되었다.야요이(미생)시대로 부터 고훈(고분)시대를 거쳐 나라(나양)시대에 이르는 제사유적이 밀집되었다.그래서 사람들은 이 오키노시마를 「바다의 정창원」이니,「섬으로 된 정창원」따위의 호칭을 붙였다.

이 섬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근대화 이전의 에도(강호)시대부터다.그러나 본격적인 고고학 조사는 지난 1953년부터 이루어졌다.현재까지 23개소의 유적이 조사되었다.오키노시마 출토유물로는 굽은옥,철제무기류,토기,활석제 사용품 등이 있다.이들 유물은 거의가 바위 끝자락에 만들어 놓은 제사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오키노시마 제사유적을 좀 장황하게 설명한 감이 없지 않다.그럴만한 이유가 있는데,그것은 오키노시마 제사유적은 일본에서 가장 일찍 나타나는 제사유적인 동시에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데 자리잡았다는 점이다.더 설명을 곁들이자면 오키노시마 유적은 우리 부안의 죽막동유적을 원형으로 삼아 백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유물을 수용했다는 사실도 포함될 것이다.

어떻든 한반도계의 유물이 오키노시마에서 나오는 것은 이른바 도래인과도 결부시켜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이고,더 흥미로운 것은 고대인의 정신세계 마저도 정확하게 반영시켰다는 점이다.갑옷을 모방한 활석제 제사용품이 부안 죽막동유적 출토품과 같다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바 있지만,오키노시마 출토의 김동제용두도 경북 풍기와 강원도 양양 출토품과 거의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가야유물도 나와

그리고 우리 가야고토의 여러 고분에서 흔히 출토되는 말띠드리개가 오키노시마에서도 나오고 있다.오키노시마가 극히 좁은 섬이라는 현실을 고려하면,실제 말을 타는 기마용 말갖춤(마구)의 일부라기 보다는 제의용으로 쓰였을 것이다.말갖춤 장식에 불과한 말갖춤까지도 신성시한 당시 오키노시마의 풍속을 엿보는 듯 하다.이렇듯 한반도의 문화는 현해탄 가운데 섬들을 징검다리로 삼아 일본열도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몇몇 백제의 제사유적을 살펴보았다.현재 뚜렷하게 나타난 유적이 3개소에 불과하지만,더 발견 될 수도 있다.이와 더불어 유적연구가 진전된다면 유적의 성격은 물론 백제인들의 기층심성에 깔린 제례의식이 어떠했는가를 어느 정도 규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특히 국가의 사직이나 종묘와 같은 제사유적이 민족의 정신적 구심력을 형성하는데 공헌한 역할론도 제기될 것으로 기대해본다.<최몽용 서울대 교수·고고학>

◎제사의식/나라의 평안·풍년 등 기원/하늘·땅 등 자연물이나 조상숭배

고대인들은 우주 자연의 모든 현상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꼈다.그래서 이들 현상을 초월자 또는 절대적 존재로 상정하고 평안을 기원하거나 혹은 감사하는 천제나 제사 의식을 행했던 것으로 믿어진다.이 외경의 대상은 때로는 하늘 땅 해 달 혹은 자연물이 되기도 했다.우리 민족은 아주 먼 옛날부터 하늘을 공경하여 제천의식을 올리고 농경이 시작된 뒤로는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옛 기록에 나타나 있는 부여의 영고,고구려의 동맹,예의 무천 등이 그것이다.이 의식는 뒷날 조상 숭배사상과 합치되어 조상을 추모하고 자손의 번영,친족 사이의 화목을 도모하는 행사로 발전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막상 제사유적이라고 부를 만한 유적은 오늘날에도 지방 곳곳에 남아있는 서낭당이나 장승,당산을 제외하면 현존하는 숫자는 적은 편이다.선사시대의 제사 유적으로는 울주 반구대와 천전리(국보 147호),고령 양전동(보물 605호),흥해 칠포리,포항 인비동,영천 봉수리,영주 가흥리,여수 오림동,남원 대곡리 등의 암각화가 남아 있다.

역사시대는 백제 유적을 제외하면 통일신라 시대로 추정되는 제주 용담동 유적(1992년 제주대박물관 발굴)과 수신동굴,그리고 동대자유적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고구려의 옛 수도인 국내성(지금의 집안)동쪽에 위치한 수신 유적은 「후한서」와 「삼국지」에 고구려 왕이 10월에 동맹을 올리던 동국대혈로 불리고 있다.

동대자 유적은 1958년 중국 길림성박물관에 의해 국내성 밖 5백m 지점에서 발견됐다.발굴 결과 이곳은 고구려 중기(18대 고국양왕 9년 또는 광개토왕 2년,392년)에 속하는 「국사」라는 사직과 종묘의 제사유적으로 밝혀진 바 있다.<서동철기자>
1994-08-1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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