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조행씨의 북송가족 찾기

재일교포 조행씨의 북송가족 찾기

이창순 기자
입력 1994-08-06 00:00
업데이트 1994-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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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족 62년 북한행… 67년 소식끊겨/“가족불익” 협박도 뿌리치고 행방 수소문

학문에의 열정으로 북송선을 탔던 조호평씨(당시 26세).그러나 그의 순수했던 젊은 날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지금은 행방조차 알 길이 없다.일본의 여동생 조행씨는 오늘도 오빠의 행방을 찾기 위해 조총련의 위협을 무릅쓰고 메아리 없는 인권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조호평씨는 62년 일본인처와 북송선을 탔다.일본의 동북대학원에서 생리학을 공부하던 그는 북한에 가면 모스크바대학 유학과 학문을 보장해준다는 조총련의 제의를 받고 북한행을 결심했다.그러나 북한의 제의가 「달콤한 악마의 유혹」임을 알고 있던 아버지는 결사반대했다고 조행씨는 회고한다.

그는 함흥의과대학 생리학강좌의 교원이 돼 학문의 꿈이 실현되는 듯 했으나 얼마후 함흥시 북방에 있는 과수원으로 이주됐다.그리고 67년이후 소식이 끊겼다.부인과 자녀들(아들 1명·딸2명)도 73년이후 행방불명됐다.

조씨부모는 아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조총련에 북한방문신청을 여러번 냈으나 그때마다 거부됐다.부모는 결국 아들을 만나보지 못한채 타계했다.조행씨는 그후에도 오빠의 행방을 찾기 위해 조총련과 일본적십자사 등에 문의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다.그러나 위협만 있었을 뿐 아무 대답도 없었다.

조행씨는 지난해 11월 도쿄에서 열린 증언집회에서 공개적으로 북송교포의 생명과 인권유린을 비판한후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가족의 행방찾기 운동을 시작했다.그것은 매우 어려운 결단이었다.북한에 있는 가족·친척의 불이익및 조총련의 위협과 직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이름을 밝히고 활동하는 사람들은 10만명의 북송교포 가족·친척중 조행씨와 김민주·박춘선씨 등 3명에 불과하다.

조행씨의 증언에 감동되어 도쿄대의 오가와 하루히사 교수를 중심으로 「북한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회」가 발족됐다.그럼에도 불구,조여사는 재일동포들을 서둘러 북한에 보낸후 그들의 비참한 인권상황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는 일본 적십자사에 대해 크게 분개하고 있다.

그런 조여사에게 하나의 위안과 힘이 생겼다.김영삼대통령이 북한의 인권문제를거론하고 나선 것이다.『아시아에서 북한인권상황을 문제시한 정치지도자는 김대통령이 처음이다.그의 높은 도덕성에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조여사는 강조한다.조여사는 그러나 일부 한국대학생들의 「북한환상」은 세계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그들이 북한을 찬양하는 순간에도 북한수용소에서는 생명이 죽어가고 인권이 유린되고 있다』고 안타까워 한다.<도쿄=이창순특파원>
1994-08-06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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