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장승들이 모였다는데(박갑천칼럼)

전국의 장승들이 모였다는데(박갑천칼럼)

박갑천 기자
입력 1993-10-06 00:00
업데이트 1993-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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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지기타령」이라고도 하는 「변강쇠전」(변강쇠타령)은 징음성을 띤다.서시같이 아름다운 천하음녀 옹녀와 천하색골 변강쇠의 어울림으로부터 시작된 이 작품은 나중에 초라니 풍각쟁이들의 음심까지 징계받는 것으로 되어있지 않던가.

게으르면서 여색만 밝히는 변강쇠가 죽는 까닭은 지리산속 장승을 빼다가 장작 같이 패서 불을 땐데에 있다.죄없이 「도끼아래 조각나고 부엌속에 재가된」 목신이 경기도 노강선창목 대방에게 원정한다.그결과 전국의 장승이 모여 변강쇠 응징할 일을 의논하는데 여러의견 가운데 해남관머리 장승의 것이 채택된다.그내용은 『…그런 흉한놈을 쉽사리 죽여서는 설치가 못될테니 칠칠이 사십구 한달 열아흐레 밤낮으로 볶아대다가 험사·악사하게 되면…우리식구대로 병하나씩을 가지고서 변강쇠를 찾아가 정수리에서 발톱까지…겹겹이 발랐으면 그수가 좋을 듯 하오』.무서운 복수심이다.변강쇠는 장승같은 모양을 하고 죽는다.

장승은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그러나 크게는 장승계(계)와 벅수계로 갈린다.그래서 땅이름에도 장승배기·장승개·장성이터·장생말…이 있는가 하면 벅수거리·법수터·벅수재·법숫골…따위 이름들도 숱하게 깔려있다.돌로도 되어있고 나무로도 되어 있는 장승은 그 기원설도 가지가지이다.그중에서도 「실존인물 장승상」에 관한 것은 사뭇 패륜적이다.제가 낳은딸을 「여자」로 생각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는 「장승」을 「장승상」에다 부회한 「얘기」일 뿐이다.

장승의 생겨남은 역시 벽사진경에 있었고 시대가 흐름에 따라 이정표 구실까지 곁들이게 되었다고 봄이 옳을 듯 하다(김두하지음 「벅수와 장승」).지금은 거의 볼수 없게 되었지만 동네어귀 같은데 세워진 「천하대장군」「지하녀장군」은 역신에게 겁을 주는 듯한 무서운 표정속에서도 오히려 익살을 안은 다정한 모습 아니었던가.그 얼굴에는 우리겨레의 심상이 어린다.사람들 마음에 안식을 심어주는 표정이기도 하다.

장승사랑회가 「93장승한마당전」을 열고 있다(4일∼11일:서울종로 영풍문고 이벤트홀).전국의 장승들이 사진으로 조각으로 그 희한한 모습을 선보이는,말하자면 전국 장승잔치의 자리이다.일찍이 변강쇠를 응징했던 장승의 후손들은 지금 한자리에 모여서 과연 무슨 얘기를 주고받고 있는 것일까.어쩌면 문명화사회에 대한 응징책이 화제의 중심으로 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서울신문 논설위원>

1993-10-06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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