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금융경제연소장 특별기고/박재준(물가를 잡읍시다:7)

한은금융경제연소장 특별기고/박재준(물가를 잡읍시다:7)

박재준 기자
입력 1992-04-11 00:00
업데이트 1992-04-11 00: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통화공급 확대는 물가를 흔든다/5% 늘리면 5년뒤 물가 4% 올라/자금난·고금리 완화는 단기적 효과에 그칠뿐

통화는 흔히 인체의 혈액에 비유된다.그만큼 통화는 경제활동에 큰 영향을 준다.통화공급이 적정수준에 못미쳐 부족하게 되면 생산과 고용이 위축되고 반면에 적정수준 이상으로 과다하게 되면 물가가 상승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익히 경험하는 바다.

그러나 통화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는 학자들간에 견해차이가 있다.물가상승은 기본적으로 원유·원자재·농수산물 등의 가격 상승 또는 임금·공공요금의 상승과 같은 비용요인이나 부동산투기 등 비통화적 요인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이러한 비통화적 요인들은 단 한번의 물가상승만 가져올 뿐 통화공급이 계속해서 증가하지 않는 한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인플레로까지 발전하지는 않는 것이므로 인플레는 근본적으로 통화적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통화가 물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경우에는 그 영향의 크기와 속도에 관하여는 학자에 따라 견해가 엇갈린다.통화론자를 대표하는 프리드만 같은 이는 통화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강력하기는 하지만 그 경로가 길고도 변동적이라면서 통화증가는 대체로 1년 내지 1년반이 지나고 나면 물가를 통화증가율만큼 상승시킨다고 주장한다.이에비해 합리적 기대론자들은 오늘날과 같이 통화증가율목표를 설정·공표하는 경우에는 통화증가율의 예측이 그만큼 용이하기 때문에 통화공급은 훨씬 강하고 훨씬 빨리 인플레로 반영된다고 주장한다.말하자면 통화공급의 지속성과 예측성이 커질수록 인플레의 지속성과 예측성도 커진다는 것이다.이러한 주장이 옳다면 인플레가 이미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물가가 안정되어 있을 때 보다 통화증가는 인플레기대심리에 더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왜냐하면 높은 인플레가 지속될수록 경제주체들이 장래의 인플레 수준을 예측함에 있어 통화증가율에 보다 많은 주의를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통화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그 나라의 경제활동 수준이 현재 어떠한 상황에 있느냐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진다.한 나라 경제가 완전고용이나 잠재성장률 수준보다 낮은 상태에 있어 아직 성장여력이 있는 경우에는 통화증가는 물가상승보다는 경제성장을 부추기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크다.그러나 그 나라 경제가 완전고용수준 또는 잠재성장수준에 가깝게 있을 때는 통화증가는 경제성장 보다는 물가상승을 가져올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경우 통화와 물가간의 관계는 어떤가? 실증분석결과는 통화증가가 단기적으로는 경제성장에 기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성장보다는 물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실제로 우리나라에서 통화가 5% 증가할 때 물가는 1차연도에 0.65%,2차연도에 1.65%,3차연도에 2.85%,4차연도에 3.50%,5차연도에 3.85%,그리고 6차연도에는 4.00%까지 상승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와있다.이는 통화증가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지속적·장기적으로 심대하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최근과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왜냐하면 지난 86년부터 우리경제는 89년을 제외하고는 계속하여 7∼7.5% 정도로 관측되는 잠재성장률보다 훨씬 높은 성장세를 지속함으로써 완전고용상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할 때 통화공급을 늘려서 당면한 자금난과 고금리문제를 해결하고 기술개발과 경쟁력강화도 도모하자는 일부의 주장은 정당화되기 어렵다.통화공급 확대는 시중의 유동성을 증가시켜 일시적으로 자금난 완화와 시중금리 하락을 가져올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물가상승을 가속화하고 인플레기대심리를 확산시켜 종국에 가서는 통화공급확대 이전보다 시중금리가 오히려 더 높아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또 물가상승이 가속화하면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져 기업인들이 멀리 앞을 내다보고 기술개발과 생산성 향상 등을 위한 장기투자를 하기보다는 단기수익을 올릴 수 있는 부동산이나 서비스업 등의 분야에 더욱 치중하게 될 것이다.

최근 많은 나라에서 통화공급확대가 바로 인플레의 주인이라는 경각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우리나라에서도 국민들이 장래 인플레에 대한 기대형성에 있어서 통화공급 변화율에 보다 적극적 관심과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다.따라서 실제인플레와 인플레기대심리를 낮은 수준으로 낮추기 위하여는 통화공급에 절도를 지켜 통화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굳혀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일찍이 레닌은 자본주의경제체제를 무너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통화의 품위 곧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이는 우리에게 통화가치안정의 중요성,다시 말해 적정통화공급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는 더없는 경구가 아닐까 한다.
1992-04-11 3면
많이 본 뉴스
공무원 인기 시들해진 까닭은? 
한때 ‘신의 직장’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공무원의 인기가 식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9급 공채 경쟁률은 21.8대1로 3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공무원 인기가 하락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낮은 임금
경직된 조직 문화
민원인 횡포
높은 업무 강도
미흡한 성과 보상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