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걸프전 부역」 재판 공포(세계의 사회면)

쿠웨이트/「걸프전 부역」 재판 공포(세계의 사회면)

강석진 기자
입력 1991-06-03 00:00
업데이트 1991-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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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 초상 셔츠 입었던 죄” 고문 뒤 15년 징역/대상자 5백여명… 계엄 속에 단심 처벌 강행

걸프전 이후 민주화의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아 국제사회의 실망을 자아내던 쿠웨이트가 이번에는 전시부역자 재판으로 눈총을 사고 있다.

쿠웨이트는 5월19일부터 부역자에 대한 재판을 시작했다. 이날은 4명의 이라크인을 포함,12명의 외국인이 재판을 받았다. 이들은 군인 2명과 민간인 3명으로 구성된 재판부로부터 3∼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첫 재판인 만큼 국제적인 시선이 집중된 이날 재판은 놀라운 형태로 진행됐다. 변호인으로 나선 알 사이프씨에 따르면 상당수 피고인들이 재판 전에 변호인과의 접견이 금지되거나 심지어는 고발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며 증인신문도 없는 상태에서 재판정에 섰으며 자신의 혐의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피고인 대부분은 고문에 의한 자백을 호소했지만 재판부는 피고 1인당 평균 15분 정도만 신문한 뒤 이러한 자백을 증거로 받아들여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은 한 이라크인 피고가 이라크 점령기간 동안 후세인대통령의 초상이 그려진 T셔츠를 입고 있었다는 혐의만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한 팔레스타인인은 쿠웨이트가 해방될 때 총알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다는 것 때문에 유죄가 선고되면서 공정성에 대해 더욱 의문이 제기됐다.

중형을 얻어맞은 이들은 아무리 억울해도 구제의 길마저 봉쇄돼 있다. 지금 쿠웨이트가 계엄하에 있기 때문에 재판이 단심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재판은 21일 피점령하에서 이라크가 찍어내던 신문 니다지에서 일하던 24명의 언론인에 대한 재판으로 연결됐다. 25일에는 35명의 피고에 대한 재판이 벌어졌다. 10명은 궐석재판이고 25명이 출정한 이날 재판에서 한 피고는 자신이 쿠웨이트 당국에 의해 구금된 상태에서 머리에 상처가 나도록 두들겨 맞고 그 상처에서 나온 피를 컵에 받아 마시도록 강요되는 고문 끝에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고 폭로했다

연일 계속되는 재판이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고 피고들로부터 고문사실이 폭로되자 쿠웨이트 당국은 25일 재판부터는 피고인에 대한 신문을 1시간으로 늘리고 고소사실을 변호인들이검토할 시간을 주기 위해 재판일정을 늦췄으나 계엄령이 한달 연장되면서 항소는 여전히 불가능한 상태다.

해방의 은인인 미국은 부역자재판에 제네바협정이 적용되기를 기대한다고 우회적 압력을 가했지만 쿠웨이트는 국내법에 따라 재판을 진행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알 사바 국왕은 망명지인 사우디의 타이프에서 걸프전이 끝나면 민주주의를 가져오겠다고 약속했었지만 지금까지는 내년에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시화된 것이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쿠웨이트의 일부 인사들은 「전쟁이 나자 도망갔던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라크군과 접촉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심판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앞으로 계속될 약 2백여 건 5백여 명의 부역자 재판은 쿠웨이트 민주화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강석진 기자>
1991-06-0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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