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질성 극복의 몸부림… 이기백특파원 현지보고/통일이후의 독일:1

이질성 극복의 몸부림… 이기백특파원 현지보고/통일이후의 독일:1

이기백 기자
입력 1991-05-04 00:00
업데이트 1991-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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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독 경제모순의 사생아 “실업 300만”/국영기업 민영화 과정서 대량 감원/서쪽까지 확산… 연내 5백만 넘을듯/“직장 달라” 연일 시위… 정부선 자영업지원금 증액키로

「세기사적 위업」이라는 찬사 속에 통일을 이룩한 독일이 심한 「통일후유증」을 앓고 있다. 동서간에 깊게 파였던 이데올로기의 골과 40년 분단으로 생긴 정치·경제·사회적 격차에서 오는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이다. 통일된 지 6개월이 지난 현재 3백만명에 육박하고 있는 실업자들은 『우리들에게 일자리를 달라』며 헬무트 콜 총리에게 달걀세례를 퍼붓고 구동독 지역의 주민들은 『통일 후 나아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도로 건설·통신망 확충·공해퇴치 비용 등 소위 「통일비용」이 늘어나는 바람에 구서독 쪽에서 고조되고 있는 불만도 만만치 않다. 독일통일과 함께 절정에 올랐던 집권 기민당의 인기도 급락하고 있으며 라이벌 사민당은 이때다 싶어 재선거 실시를 요구하고 있는 등 어수선하다. 통일 후의 독일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이기백 특파원이 현장취재를 통해 진단한다.

통일의 기쁨 뒤에 들이닥친 대량실업사태가 지금 독일인들을 괴롭히고 있다.

통일 당시만 해도 서독의 실업률은 2% 안팎이었고 동독은 형식적이나마 완전고용상태였으나 통일 반년 만에 실업률이 30%로 치솟아 현재 3백여 만 명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더욱이 실업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악화될 전망이어서 통일독일이 심혈을 기울여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1일 독일노동연맹(DGB)이 주최한 노동절 행사는 히틀러가 1933년부터 행사를 금지한 이래 59년 만에 전 독일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갖는 합동집회였으나 실업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가 격렬시위로 이어져 투석과 화염병,그리고 최루탄이 난무하는 전투장으로 돌변했다.

60여 만 명이 참석한 가운데 베를린시내 프리드리히스하인 광장에서 진행된 집회에서 연사들은 한결같이 날로 악화돼가고 있는 실업문제의 해결과 동서독간 사회적·경제적 괴리현상에 대한 정부의 조치를 촉구했다.

DGB보고에따르면 현재의 실업자 수는 완전실업자 90여 만 명,반실업자 2백10여 만 명 등 3백여 만 명에 이르고 있으며 올 연말까지는 그 숫자가 5백여 만 명을 넘어서 지난 32년 나치의 출현을 초래했던 경제상황 때의 실업률 50%를 넘어설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디프겐 베를린시장은 집회에서 『새로운 사회적·경제적 분단상태에 대해 모두가 비상한 관심을 가질 때이다. 현재 실업문제는 독일인 모두가 합심해서 풀어야 할 심각한 과제』라고 지적하고 『베를린시는 실업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94년까지 4개년 고용증대계획을 세워 추진하겠으며 올해에만 3만여 명이 취업할 수 있도록 서비스업·개인 자영업지원금 등으로 11억마르크(4천5백억원)를 지원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청중들의 노기를 가라 앉히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당면한 대량실업사태에 분노한 군중들은 집회가 끝난 뒤 시가행진을 벌이려다 경찰과 충돌,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으며 경찰은 이에 맞서 최루탄과 물대포로 진압에 나서는 등 통일 후 가장 치열한 「전투」를기록했다.

이날 시위로 경찰차 2대가 불타고 경찰관 10여 명이 부상하는 등 평상시의 시위와는 다른 피해를 남겼으며 노동자 79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이처럼 통일 이후 대량실업 문제가 현안이 되고 있는 것은 독일 통일을 가져온 동인이 구동독의 경제였다는 점에서 예견되어왔던 일이다.

동구권에서는 나름대로 가장 탄탄했던 동독이었지만 국가통제경제에서 자유시장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비능률적인 경제적 모순점들이 일시에 표출,대량실업이라는 사태를 몰고온 것이다.

공산정권 아래에서는 국민들이 국가에 의존,실업의 걱정없이 살아왔으나 이제는 시민 각자가 홀로서기를 해야 살아갈 수 있는 체제로 바뀌었기 때문에 구동독인들이 실업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은 자유경쟁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절박하다.

특히 8천여 개의 구동독 국영기업이 사유화된 후 새로운 기업주들이 자본주의적 경제운영방식대로 군살빼기에 착수하면서 실업자 수는 날로 증가하고 있어 실업자들의 대열에 끼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통일이 원망스럽게느껴질 정도이다.

동독지역 기업들의 생산성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0여 %나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바 이같은 생산성 하락이 실업을 더욱 부채질해 그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베를린의 독일경제연구소(DIW)는 통일 당시 동독지역 9백여 만 명의 일자리가 자유경제체제로 바뀌는 가운데 4백여 만 명이 떨어져나갈 것으로 추산,올 연말에는 실업자 수가 5백여 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대량실업사태로 구동독 지역 주민의 서독지역으로의 이주가 한 달 1만5천여 명에 이르러 서독지역의 실업률마저 밀어올리고 있는 가운데 40∼50대의 실업자들이 자살하는 사례도 점차 늘고 있다.

실업사태가 악화되면서 구동독의 호네커 정권을 붕괴시킨 민주화 시위의 발생지인 라이프치히시에서는 과거 월요일마다 벌였던 「월요시위」가 지난 3월부터 재연되기 시작해 직업보장과 콜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실업문제는 통일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치러야 할 과도적인 현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베를린시내에서 노동절 시위를지켜본 바바라 여인(39)은 『사람들이 통일만 되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며 『통일의 후유증을 청산하려면 앞으로 10년,심하면 분단의 세월 만큼 긴 반세기가 더 걸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통일의 대가는 그만큼 비싸다는 얘기다.
1991-05-04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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