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What] 천재 소년 송유근, 우주 비행 성공 50년 맞아 유리 가가린 만나다

입력 : ㅣ 수정 : 2011-04-05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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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별이 된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최초’라는 불멸의 영예가 따라다닌다. 오는 12일은 인류 최초로 지구의 모습을 한눈에 본 사람이자 ‘우주비행사’의 원조인 유리 알렉세예비치 가가린이 여행을 다녀온 지 딱 50주년 되는 날이다. 태양을 향해 날았다는 신화 속 이카로스 이후 인류는 끊임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꿈을 키웠다. 이젠 매일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지만, 대기권 밖 우주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진짜 우주를 체험하고 생환한 사람은 5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가가린이 모든 우주인의 선배라는 사실은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가상 인터뷰 ‘WHO&WHAT’에서는 단순히 역사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가가린이 아닌 ‘인간 가가린’의 속내를 물어보기로 했다. 미지의 우주공간으로 나아갈 때 그가 겪었을 두려움과 갈등, 지구를 바라봤을 때의 벅찬 감동, 하루아침에 영웅이 되면서 생긴 변화…. 무엇보다 그가 내다봤던 미래에 우리가 지금 얼마나 다가서 있는지 궁금했다. 가가린의 내면 소리를 듣기 위해 누구보다 우주를 간절히 꿈꾸는 사람이 질문자로 나섰다. 여섯살에 수학영재로 이름을 날렸던 송유근(15)군이다. 현재 대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에서 천문우주과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송군은 주변의 관심이 부담스러워 공개 석상에 나서는 것을 꺼리는 편이다. 그러나 상대가 가가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평소의 궁금증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가가린이 직접 바라본 지구와 하늘은 50년 후 한국의 15세 과학도가 꿈꾸는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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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근 가가린 할아버지.(1934생인 가가린이 생존해 있다면 올해 77세다.) 세계 최초의 우주인을 만나게 돼 너무 기뻐요.

→가가린 네가 그 유명한 천재 소년 송유근이구나. 우주를 공부한다니 정말 반가워.

→송유근 전 수학으로 우주를 알아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할아버지는 실제로 지구를 벗어나 우주에 가 보신 분이잖아요. 하늘에서 바라본 지구는 어떻던가요.

→가가린 (눈을 감고 50년 전 그날을 떠올리며) 내 평생 1분 1초가 그렇게 길게 느껴진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 108분(전체 비행 시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간 것도 그렇고. 누가 물어도 ‘지구는 푸른빛이었다’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지.

→송유근 원래 어릴 적 꿈이 우주비행사였나요?

→가가린 사실 내가 어릴 때는 우주를 간다는 건 상상도 못했지. 모스크바의 직업학교에서 주물공 교육을 받았는데 거길 졸업했을 때가 딱 네 나이였어. 그러다 공업학교에 들어갔는데, 거기에서 물리학이라는 재미있는 분야를 접하게 됐어. 이 학교 항공 클럽에 들어간 것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꾼 결정적 계기가 됐지. 하늘을 나는 것을 동경하기 시작했고 결국 항공사관학교로 진로를 정했어. 내가 군인이 된 1950년대는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올렸고, 미국과 소련이 치열하게 우주 개척 경쟁을 벌였지. 난 더 이상 현실에 만족하기 힘들었고 우주비행사 후보 지원서를 부대에 제출했어.

→송유근 몇 년 전 한국에서 우주인을 뽑을 때 정말 복잡하고 다양한 검사들이 이뤄졌잖아요. 예전엔 어땠나요?

→가가린 아유, 말도 마. 아무도 우주를 가 본 적이 없었으니 그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했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내과, 신경과, 외과, 이비인후과 의사들이 동원됐어. 후보가 많았으니까 의사가 ‘불합격’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었지. 그런데 나만 키가 작고 말랐지, 다른 사람들은 체격이 좋고 정말 건강해 보이더라고. 설마설마 하면서 끊임없이 검사와 시험을 받았고, 결국 난 “자네는 더 이상 성층권(지구 상공)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라는 합격 통보를 들었지.

→송유근 소련과 미국이 벌였던 우주 경쟁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당시 소련이 성공한 것만 공개했다고 들었어요. 실제로는 실패가 더 많았나요.

→가가린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인류의 발전은 끊임없는 도전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어. 내가 우주비행을 다녀왔을 때 “가가린은 ‘살아서 돌아온 최초의 우주비행사’일 뿐 ‘최초의 우주비행사’는 아니다.”라는 얘기가 돌기도 했지. 실제로 로켓의 성능을 개발하고 비행기의 속도를 높이면서 나와 함께 훈련을 받았던 우주비행사 후보 여럿이 목숨을 잃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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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근 우주 개발사를 공부하다 보면 사람 말고 우주를 다녀온 동물에 대한 얘기가 나오잖아요. 특히 ‘라이카’라는 개가 유명하던데요.

→가가린 라이카는 모스크바 시내에서 길을 잃고 돌아다니던 개였는데, 한 과학자가 우주센터로 데려왔지. 스푸트니크 2호에 실려서 우주여행을 떠났는데 몇 시간 만에 우주선이 과열돼 죽고 말았어. 당시 라이카에 대한 실험은 높은 가속도와 무중력 상태에서 생리 반응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결과물들을 내놓았어. 그 때문에 나를 비롯한 우주비행사들이 무사히 우주를 다녀올 수 있었던 거지.

→송유근 막상 우주인이 되고 우주선을 타게 됐을 때 두렵지는 않으셨나요.

→가가린 두렵거나 기쁘다는 기분은 없었어. 다만 최초로 우주로 날아가 자연을 상대로 이제까지 누구도 경험하지 않은 자연과 일대일 결투를 한다는 사실에 행복감을 느꼈지. 인간으로서 새로운 발견을 해내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아마 없을 거야.

→송유근 실제 우주선이 발사될 때는 어떤 기분이었나요.

→가가린 오전 9시 7분. ‘삐’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울림이 점점 강해졌는데 소리 자체는 제트기보다 크지 않았던 것 같아. 그런데 우주선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그 소음 가운데 처음 듣는 새로운 선율이 느껴지더라고. 난 나중에 그 소리를 “로켓의 강력한 엔진은 미래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고 적었지. 과거의 어떤 작품이라도 빛바랠 수밖에 없는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음악이었어.

→송유근 우주에서 지상과 교신할 때는 어떤 말들을 하셨나요. 하실 말씀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가가린 당시 내가 지구에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우주선 상태와 계기판 수치 정도밖에 없었어. 내 임무는 관광이 아니라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로서 과학적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내가 본 것들은 마음속에만 담아두기엔 너무 벅찬 것들이었지.

→송유근 지구로 돌아온 후 하루아침에 영웅이 되셨잖아요. 전 유명해진다는 게 결코 좋지만은 않다는 점을 계속 고민해 왔는데요.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스럽고요. 어떻게 대처하셨어요.

→가가린 (들뜬 목소리로) 매년 수십개 국가를 찾아다니면서 하루에도 수십 차례 연설을 하는 일이 몇 년 동안 계속됐지. 특히 경쟁 관계에 있는 미국을 보기 좋게 눌러 버렸다는 점 때문에 공산권에서 나를 많이 찾았지. 난 기본적으로 내가 경험한 것과 얻게 된 영광이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라고 계속 되뇌었어. 수많은 과학자들과 정치인들, 국민들이 만들어 준 것이지. 그걸 아낌 없이 나누는 것이 내 임무라고 생각했고. 몇 년이 지나면서 난 다시 우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어. 우주에서 “다음 번에는 꼭 달도 보겠다.”고 결심했던 게 떠올랐거든. 하지만 훈련을 하다가 전투기가 추락(1968년 34세 나이로 사망)하는 바람에 결국 이루지 못한 꿈이 됐지.

→송유근 1950~60년대에는 로켓을 발사하고 고작 몇 년 만에 사람이 우주를 다녀오는 등 정말 빠른 속도로 우주과학이 발전했잖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지지부진한 느낌이에요. 할아버지가 꿈꾸시던 미래에 우리는 얼마나 가까이 와 있나요.

→가가린 내가 살았던 때는 서방 자본주의와 동구 사회주의 간 체제 경쟁이 극심했지. 모든 것이 확실치 않았어. 국가의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경제적 손익보다 중요하다는 생각도 강했고. 지금은 우주 개발이라는 것이 단시일 내에 돈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 그게 더딘 발전 속도로 나타난 것 같아. 무엇보다 과학은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할 때마다 더욱더 많은 과제가 발생하지. 특히 우주처럼 인류가 아직까지 알아야 할 것이 더 많은 동네에서는 말야.

→송유근 마지막으로 ‘가가린’이라는 사람을 스스로 평가하신다면요.

→가가린 인류가 우주를 꿈꾸는 한 새로운 기록들은 끊임없이 만들어지겠지. 하지만 미지의 장막을 걷고 가장 처음 대기권 밖으로 발을 내디딘 공적만큼은 온전히 나의 몫이라고 봐. 우주공간을 비행한 인간으로서 나는 아마도 영원히 기억되리라 자부해. 유근이도 세상에 영원히 기억될 자기만의 업적을 성취하길 바라.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도움말 주신 분들

●최기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국제협력팀장(전 한국우주인사업단장)

●이주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과학팀장

●이서구 한국천문연구원 대국민사업실장

■참고 문헌

●‘지구는 푸른빛이었다’(유리 가가린·김장호 옮김·갈라파고스)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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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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