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도 일임형 허용…금융시장 불안 속 예금 쏠리면 은행 유리

‘만능 통장’으로 주목받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출시일이 14일로 꼭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첫 해에만 ISA에 수십조원이 몰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 가운데 거대한 ‘머니 무브’의 주도권을 놓고 지키려는 은행권과 빼앗으려는 증권업계 간 대격돌이 예상된다.

당초 증권업계는 실질 금리 0% 시대를 맞아 ISA 제도가 시행되는 만큼 오랜 자산 배분 노하우를 가진 증권사들이 은행권에 묶인 자금을 대거 빼앗아올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특히 신탁업과 투자일임업 자격을 모두 갖춘 증권사는 신탁형 ISA만 팔 수 있는 은행과 달리 신탁형과 일임형 ISA를 동시에 팔 수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고 자평하던 터였다.

일임형 ISA는 고객으로부터 투자 의사 결정권을 위임받아 시장 상황에 맞게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펀드, 파생결합증권 등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상품을 운용하기에 적합한 것으로 평가된다.

은행권이 ISA 출시를 한참 앞두고 자동차 같은 대형 경품을 내건 ISA 유치 이벤트를 벌이면서까지 고객 지키기에 사활을 건 가운데 증권업계는 상대적으로 느긋하게 대응한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제도 시행을 한 달 앞둔 이날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일임형 ISA 판매를 허용한다고 발표하자 증권업계에서는 ‘허를 찔렸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일임형 ISA를 증권사만의 강점으로 앞세우는 마케팅 전략을 짜 뒀는데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투자일임업 진출은 수익 구조 다변화를 추구하는 은행의 숙원이었지만 과거 금융투자업계의 거센 반발에 막혀 번번이 좌절됐다.

반면 ISA 출시를 앞두고 투자일임업 진출이라는 의미 있는 교두보를 확보한 은행권은 고무된 분위기다.

이기수 우리은행 신탁부장은 “고객 관리를 다양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며 “고객 각자가 가진 수요에 따라 목표 수익률 등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관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과 증권사의 전국 지점은 각각 7천318개, 1천217개로 은행이 압도적으로 많다.

일임형 ISA 판매권 획득이라는 날개를 얻은 은행이 촘촘한 지점망과 방대한 판매 인력을 바탕으로 ISA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증권업계는 ISA 판매가 시작되는 3월14일부터 말까지 보름가량의 ‘우세 기간’을 집중적으로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제도 시행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은행권에 일임형 ISA 판매가 허용됨에 따라 3월 말이 되어야 은행이 행정 절차를 거쳐 새로 투자일임업 자격을 얻게 된다.

이에 따라 ISA 출시 직후 보름가량 증권사는 신탁형과 일임형 ISA를 다 팔 수 있지만 은행은 신탁형만을 팔 수 있게 된다.

또 증권사들은 올해 6월 무렵부터 인터넷을 통해 일임형 ISA 판매가 허용됨에 따라 지점망이 적은 증권사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비대면 일임 계약 시행을 통해 증권업계의 판매망의 열세가 어느 정도 상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들어 세계 증시가 일제히 급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극도의 혼돈 속에 빠져들고 있는 점도 ISA 고객 쟁탈전에서 은행권에 유리한 쪽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ISA에는 예·적금뿐만 아니라 펀드, 주가연계증권(ELS) 등 다양한 자산을 담을 수 있다.

당초 업계에서는 ISA가 적어도 5년을 투자해야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인 만큼 저금리에 지친 투자자들이 다양한 금융투자 상품에 장기 투자할 여건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렇지만 최근 금융시장의 혼란 국면에서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화돼 투자 대상이 예·적금 위주로 쏠리게 된다면 전통적인 예·적금 판매 채널인 은행권이 반사 이익을 보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