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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사회, 렛츠런파크 서울 벚꽃축제 ‘馬시멜로’ 개최

    마사회, 렛츠런파크 서울 벚꽃축제 ‘馬시멜로’ 개최

    말·벚꽃 어우러진 야간 벚꽃축제오는 12일까지 렛츠런파크 서울서 진행 한국마사회가 봄철 대표 축제로 자리 잡은 벚꽃 행사를 한층 강화된 콘텐츠로 선보인다. 한국마사회는 3일부터 오는 12일까지 열흘간 경기 과천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2026 벚꽃축제’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올해 축제 테마는 ‘마(馬)시멜로’로, 달콤하고 감성적인 봄 분위기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렛츠런파크 서울 벚꽃축제는 말과 벚꽃을 결합한 국내 유일의 이색 축제로, 매년 25만명 이상이 찾는 수도권 대표 벚꽃 명소로 꼽힌다. 방문객 수 기준으로 경주 대릉원, 서울대공원 등에 이어 전국 7위 수준이다. 올해는 ‘마시멜로 감성’을 앞세워 콘텐츠를 대폭 확충했다. 벚꽃길 야간 경관을 중심으로 야외 웨딩 콘셉트의 쉼터와 포토존이 마련되며, 회전목마와 말 캐릭터를 활용한 먹거리 등 체험형 콘텐츠를 강화했다. 붉은 말의 해를 맞아 승마 체험과 미디어퍼사드, 국립과천과학관과 연계한 과학 전시 등 프리미엄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또한 스포츠카부터 패밀리카까지 다양한 차종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등 ‘달리는 말’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자동차 전시회도 열린다.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드론쇼는 오는 4일과 11일 두 차례 진행된다. 약 400대의 드론이 밤하늘을 수놓으며 가족과 성장의 의미를 형상화한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아울러 오는 10일에는 방송인 정선희와 문천식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지금은 라디오시대’의 야외 공개방송이 열려 축제 현장의 생동감을 전국에 전달한다. 1989년 뚝섬에서 과천으로 이전한 이후 지역과 함께 성장해 온 렛츠런파크 서울은 올해를 기점으로 벚꽃축제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과천시를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랜드, 국립과천과학관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공동 마케팅에 나섰다. 특히 과천시 승격 40주년을 맞아 각 기관의 문화·관광 콘텐츠를 축제 현장에 결합, 방문객들에게 한층 풍성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김종철 한국마사회 고객서비스본부장은 “도심 속 열린 공원으로 사랑받아 온 렛츠런파크 서울이 시민들과 더욱 가까이 소통하는 장이 바로 벚꽃축제”라며 “콘텐츠는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물가 부담 등으로 인한 접근 장벽은 낮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축제로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자세한 내용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삼전도 굴욕의 역사 메워낸 자리…시민이 심은 벚나무엔 봄이 핀다[서울 로드]

    삼전도 굴욕의 역사 메워낸 자리…시민이 심은 벚나무엔 봄이 핀다[서울 로드]

    인조가 청에 머리 조아린 나루터한강 물길 메워 잠실섬 강남 편입남은 흔적이 오늘날의 석촌호수롯데월드 들어서고 벚나무 식재주민 기증분 더해 ‘벚꽃터널’ 완성봄이면 800만여명 찾는 명소길로인근 송리단길·방이맛골 미식 유명‘길에는 주인이 없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조선 영조 때 실학자 신경준은 ‘도로고(道路考)’에 이렇게 썼다. 소설가 김훈은 ‘허송세월’에서 ’“길은 소통의 통로란 의미”라고 풀었다. 오래 전부터 길을 중심으로 사람과 재화, 서비스가 움직이고 건물이 들어섰다. 이처럼 길은 도시의 경쟁력이자 풍경이며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600여년 역사의 서울에는 많은 길이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단종이 쫓겨갔던 유배길부터 3·1 운동과 4·19 혁명, 6월 민주항쟁, 2002년 월드컵, 두 번의 탄핵 촛불까지, 역사의 변곡점마다 길이 있었다. ‘서울 로드’에서 길에 스며든 과거와 현재, 미래를 풀어보려 한다. 박정희 정부는 1970년 11월 훗날 ‘강남’으로 불리게 된 영동(永東) 지구 개발을 공식 발표했다. 과밀화하는 인구를 한강 이남으로 분산하고 서울의 균형 발전을 추진한다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땅 투기로 수백억원의 매매 차익을 남겨 대선 자금으로 썼다는 얘기도 나온다. 영동과 함께 잠실도 개발됐다. 잠실(蠶室)은 조선 시대에 왕실에서 지정한 누에치는 장소라는 의미다. 1520년 조선 중종 때 대홍수가 나면서 잠실 위쪽에 샛강이 생겼는데 지금의 신천(新川)이다. 이후 잠실은 한강 본류인 송파강과 지천인 신천 사이 섬이 됐다. 뽕나무가 사라진 지 오래인 척박한 섬인 잠실도 주민들은 밀이나 수수를 경작했고, 일부는 나룻배로 강을 건너 뚝섬 공장 지대로 출근했다. 서울시는 1971년 송파강 물막이 공사를 시작해 1978년 6월 매립을 끝냈다. 그렇게 남은 송파강의 일부가 석촌호수가 됐다. 잠실대교에서 석촌호수를 가로질러 성남시로 이어지는 왕복 8차선 송파대로도 이즈음 만들어졌다. 송파대로를 중심으로 강동구 쪽의 동호와 강남구 방면의 서호로 나뉘었다. 동호와 서호 사이 북쪽에는 김훈의 소설과 황동혁 감독의 영화 ‘남한산성’으로 변주된 병자호란(1636~1637), 오욕의 역사가 담긴 삼전도비가 있다. 원래 이름은 ‘대청황제공덕비’다. 삼전도는 조선 세종 때 만들어진 한강 나루 중 하나로, 도성과 남한산성을 잇는 요충지였다. 조선 인조는 이곳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절을 하고 군신 관계를 맺는다. 이후 청의 요구로 세워진 비석이 삼전도비다. 이 비석은 청일 전쟁 이후 강물에 버려졌다가 다시 세워졌고, 해방 이후 주민들이 땅에 묻었다가 홍수로 드러나기도 했다. 1983년 석촌동 아름어린이공원에 세워졌다가 2010년 원 위치와 가까운 곳에 둬야 한다는 중론에 따라 현재 자리로 옮겨졌다. 석촌호수는 1978년 완공 이후에도 오랫동안 난간을 두고 멀리서 봐야 하는 호수였다. 밤이면 석촌호수 북측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포장마차 행렬이 늘어섰다. 1989년 서호 북측에 롯데월드 어드벤처, 이듬해 서호 가운데에 매직아일랜드가 문을 열면서 이 일대는 전환점을 맞았다. 방문객과 유동 인구가 급증하자 송파구도 석촌호수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벚꽃이 심어진 것도 이때다. 송파구는 석촌호수 공원을 조성하면서 2007년까지 왕벚나무 592그루, 수양벚나무와 산벚나무 320그루를 심었다. 지금처럼 빽빽한 벚꽃 터널을 이루게 된 것은 2007년 주민들로부터 벚꽃나무를 기증받으면서다. 당시 구는 수목 기증자를 모집해 한 그루당 11만~30만원을 모금 받아 총 300그루의 벚꽃나무를 더 심었다. 벚꽃이 석촌호수의 정체성을 바꿔놓았다. 지난해 석촌호수 벚꽃축제(2025년 4월 2~13일)를 다녀간 인원은 862만여명에 이른다. ‘전통의 강자’인 여의도 윤중로 봄꽃축제 방문객이 지난해 303만여명(4월 8~12일)이었다. 여의도 축제 기간이 7일 더 짧았던 점을 고려하더라도 석촌호수 벚꽃의 위상을 짐작할 만하다. 석촌호수에는 2.5㎞ ‘벚꽃로드’ 외에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공간과 시설, 소셜미디어(SNS)에서 인기 있는 포토 스폿들이 있다. 지난해 4월 잠실 호수교 남측에 설치된 지름 7m 규모의 특수 곡면형 LED 디스플레이 ‘더 스피어’가 대표적이다. 2014년 10월부터 500만명의 관람객을 모았던 공공미술 프로젝트 ‘러버덕’의 인기를 이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달에는 잠실 호수교 아래 길이 33m의 대형 미디어파사드 ‘호수교 갤러리’도 문을 열었다. 롯데월드몰 뒤편 서호에는 문화실험 공간 호수, 동호 동쪽에는 더 갤러리 호수가 있다. 서호 남측의 서쪽 끝에는 음악과 연극 공연이 열리는 석촌호수 아틀리에도 있다. 벚꽃을 실컷 즐겼다면 배를 채울 차례다. 동호 남측에 줄지어 있는 카페거리의 카페 사이로 백제고분로까지 이어지는 ‘송리단길(송파+경리단길)’이 유명하다. 주택가에 드문드문 식당이 있던 송리단길은 2014년 동호 북측에 롯데월드타워와 롯데월드몰이 문을 열면서 상권이 팽창했다. 본격적으로 배를 채우고 싶다면 구청 건너편 먹자골목 ‘방이맛골’을 찾아도 된다. 방이동 먹자골목으로도 불리는 방이맛골은 구청이 문을 연 1990년대 초에 형성됐다. 구청 직원이나 근처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 길인 만큼 MZ들이 몰리는 송리단길과는 느낌이 또 다르다.
  • 후지산 북쪽엔 한일 경계인의 서사가 흐른다

    후지산 북쪽엔 한일 경계인의 서사가 흐른다

    후지산 절경에 숨어 있는재일교포 이양지 문학비경계인의 흔적 되짚어 봐‘인증샷 핫플’ 혼마치 거리 낮은 건물 늘어선 골목 끝후지산은 마치 액자 같아‘후지고코’ 5개 호수 명소주변에 관광 인프라 가득후지큐 하이랜드도 아찔후지산을 처음 본 건 오래전 신칸센 차창 너머였다. 일본 도쿄에서 서쪽 방향으로 달리던 열차가 도심을 벗어날 무렵, 느닷없이 차창 밖으로 거대한 흰 봉우리가 들이닥쳤다. 정상에 눈을 이고 있는 후지산이었다. 그 박력 넘치는 등장에 일본인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탄성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야마나시는 바로 그 후지산 북쪽 기슭에 자리잡은 현이다. 야마나시현은 한국인에게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한국 근현대사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이다. 이제부터 전하려는 건 조선과 한국을 사랑했던, 후지산 북쪽 기슭에서 온 사람들과 그들이 거닐었던 풍경에 관한 이야기다. 야마나시현은 도쿄에서 특급열차로 한 시간 반이면 닿는다. 주말이면 어지간한 관광지 주차장은 도쿄 지역 번호판을 단 차들로 북새통이다. 그만큼 도쿄 사람들에게 야마나시는 근교 여행지로 인식되고 있다. 야마나시현은 내륙의 분지다. 전체적으로 고도가 높다.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강원 평창군의 700m 보다 높은 800~900m 정도의 고지대에 대부분의 도시가 형성돼 있다. 한국인에겐 마음 불편한 벚꽃길 먼저 후지요시다시의 아라쿠라야마 센겐 공원부터 간다. 야마나시현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관광지다. 특히 벚꽃이 피는 봄철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인산인해다. 과장 좀 보태 100개 나라 언어를 한꺼번에 듣는 느낌이다. 해마다 벚꽃 필 무렵에 주민 축제가 열렸지만 올해는 취소됐다. ‘오버 투어리즘’ 때문이다. 공원뿐 아니라 도시에 산재한 명소들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의 일본 문화에 대한 몰이해로 곳곳에서 주민 불만이 터져 나오는 형국이다. 아라쿠라야마 센겐 공원을 먼저 소개하는 건 야마나시를 대표하는 곳이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인에게 불편할 수 있는 여행지라는 걸 무엇보다 앞서 말하고 싶어서다. 아라쿠라야마 센겐 공원은 가장 일본적인 풍경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후지산과 벚꽃, 붉은색 오층 건물이 완벽한 구도로 어우러져 있다. 일본을 소개하는 관광 포스터에서 수없이 봤던 바로 그 풍경이다. 문제는 추레이토(충령탑)라 불리는 붉은 오층탑이다. 야마나시 출신 전사자의 위패가 이 탑에 합사돼 있다. 한데 이들이 어느 지역 전투에서 사망했는지가 불분명하다. 한반도에서 빚어진 양국 간 전쟁에 투입됐다가 전사한 군인의 위패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딘가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 건 그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 유명한 공원에서 기필코 마주해야 할 건 재일교포 이양지 문학비일런지도 모른다. 그의 문학비는 찾기가 쉽지 않다. 야마나시 최고의 풍경을 굽어보는 ‘명당’ 인근에 옹색하게 숨어 있어서다. 이양지(1955~1992)는 재일교포 소설가다. 일본 이름은 다나카 요시에. 한국계로는 두 번째로 1989년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제주도 출신 부모를 둔 이양지가 나고 성장한 곳이 바로 후지요시다이다. 도쿄의 명문 와세다대학을 다니던 그는 어느 날 지하철에서 한국말로 떠드는 관광객을 만났다. 당시 재일교포 사이에서 신분을 노출할 수 있는 한국어는 일종의 금기였다. 그런데도 ‘2류 국가’에서 온 한국인은 거리낌이 없었다. 이때의 충격으로 정체성에 의문을 갖게 된 그는 와세다대를 중퇴하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1982년 서울대 국문학과에 입학한 그는 조국과 자신의 정체성을 치열하게 탐색했다. 그 경험이 소설 속 인물들의 언어가 됐다. 그는 재일 한국인 유학생의 좌절과 환멸을 다룬 소설 ‘유희’(由熙)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일본 문단을 놀라게 했다. 그가 정한 제목 ‘유희’는 ‘밝음에 이르지 못한 존재’를 뜻한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경계인의 정체성을 표현한 것이다.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한국무용을 공부하던 그는 1992년 일본으로 돌아가 장편소설 ‘돌의 소리’를 집필하던 중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서른일곱 안타까운 나이에 숨을 거뒀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했던 작가가 어린 시절 매일 올려다보던 하늘, 후지산이 보이는 이 공간에 문학비가 세워진 건 그런 까닭일 것이다. 센겐 공원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시모요시다 혼마치도리가 있다. 편의점인 로손 가와구치코마에점에 견줄 만큼 소셜미디어 핫플로 떠오른 곳이다. 에도 시대부터 이어져 온 옛 상점가로, 낮게 깔린 건물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그 골목 끝에 후지산이 액자처럼 걸렸다. 맑은 날이면 거리를 걷는 내내 후지산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골목을 천천히 걸으면 오래된 시계점, 된장 가게, 작은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전통 양식의 건물들도 곳곳에 남아 있다. 관광지인데도 지나치게 꾸미지 않아 일상의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고소한 튀김 냄새를 따라가면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소박한 식당이 나온다. 후지요시다 명물인 요시다 우동을 파는 곳이다. 얼요기 정도로 먹는 건 나쁘지 않지만, 한 끼 식사로 생각하지는 마시길. 아직 야마나시 현민들의 소울 푸드, 호토 국수가 남아 있다. 복사꽃 산골서 만난 가네코의 삶야마나시를 대표하는 건 물론 벚꽃이다. 하지만 복사꽃의 위세도 만만하지 않다. 4월이면 야마나시 분지 전체가 복사꽃 연분홍으로 물든다. 복사꽃 향기를 따라 야마나시시 마키오카초의 산골 마을로 들어서면 ‘문제적 여자’ 가네코 후미코(1903~1926)의 시비와 만난다. 가네코의 동지였던 구리하라 가즈오 등이 1974년 그의 삶과 행적을 기려 세운 시비다. 가네코는 ‘불량스러운 조선의 아나키스트’ 독립지사 박열(1902~1974)의 아내였다.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추서한 일본인 독립유공자다. 그가 태어난 곳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지만 성장한 곳은 야마나시다. 시비가 건립된 곳은 가네코의 외가가 있던 곳이다. 유년 시절을 야마나시에서 보낸 그는 아홉 살 때 충북 청주시 부강면(현 세종시)의 고모 집으로 건너가 7년을 살았다. 후지산을 빼닮은 부강면의 부용산이 그가 절망 속에서 찾아가던 위안의 산이었다. 부강에서 3·1 만세운동을 목격한 뒤 야마나시로 돌아와 혁명의 길로 들어선 그는, 도쿄에서 만난 박열과 함께 일왕 폭살을 계획하다 체포돼 스물세 살에 교도소에서 숨을 거뒀다. 현재 야마나시에 남은 그의 흔적은 거의 없다. 마키오카초의 시비, 그의 가장 가까운 혈육인 가네코 타카시 가족이 2017년까지 살았던 집 정도가 고작이다. 다행히 2003년부터 짝수 해마다 경북 문경시 박열의사기념관과 일본 가네코 후미코 연구회가 공동으로 시비 앞에서 추도식을 연다. 조선의 美 사랑한 아사카와 형제 야마나시현 동북쪽에 가네코가 있다면 서북쪽 호쿠토시엔 아사카와 형제가 있다. 형인 노리타카는 ‘조선 도자기의 신’이라 불린다. 1913년 경성(현 서울)의 소학교에 미술교사로 온 그는 1946년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33년 동안 조선 도자 연구에 몰두했다. 1914년엔 그의 권유로 동생 다쿠미도 조선에 온다. 다쿠미는 황무지 같았던 한반도의 녹화운동에 헌신했다. 현 한국 인공림의 37% 정도가 그의 공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쿠미는 급성 폐렴으로 40세에 요절하면서 “조선의 옷을 입혀 조선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조선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당시 그의 관을 매겠다며 나선 조선인들이 장사진을 이뤘다고 한다. 동생을 먼저 보낸 노리타카는 이후 반평생 모았던 공예품과 도자기 등을 신생 한국에 기증하고 일본으로 돌아가 1964년에 세상을 떴다. 아사카와 형제의 고향인 호쿠토시에 일본 내 3대 ‘장수 벚꽃’으로 꼽히는 ‘야마타카진다이 자쿠라’가 있다. 믿기 어렵긴 한데, 공식적으로 수령이 2000년에 이른다고 한다. 이웃한 니라사키시엔 와니쓰카 벚꽃이 있다. 들녘에 핀 ‘홀로 벚꽃’으로, 후지산 등 주변 풍경과 기막히게 어울린다. 벚꽃이 피는 시기엔 경관 조명을 한다. 이 장면 하나 보기 위해 수많은 여행객과 사진작가들이 몰린다. 야마나시현과 시즈오카현 사이에 솟은 후지산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한데 자연유산이 아니라 문화유산이다. ‘신앙의 대상’과 ‘예술의 원천’이 등재 이유다. 후지산과 주변 신사, 호수 등 25곳의 구성 자산이 포함됐다. 후지산 관찰에는 새벽부터 이른 오전 시간대가 좋다. 말간 공기 덕에 선명한 후지산을 보기에 유리하다. 치맛자락처럼 뻗은 후지산 아래로 여행 명소들이 별처럼 박혔다. 다섯 개 호수를 이르는 이른바 ‘후지고코’(富士五湖)가 대표적이다. 모토스코, 쇼지코, 사이코, 가와구치코, 야마나카코 등이 후지고코다. 1707년 후지산 대분화로 형성됐다. 오감이 만족하는 후지산 기슭가장 유명한 건 가와구치코다. 후지산이 물 위에 거꾸로 비친 모습, 이른바 사카사후지(逆富士)로 이름났다. 그러니까 데칼코마니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는 건데, 사실 맑고 바람 없는 날엔 다섯 호수 모두 이 같은 풍경을 펼쳐낸다. 다만 일본인 시각에서 그 장면이 가장 빼어난 곳이 가와구치코인 거다. 명성에 걸맞게 주요 명소를 도는 ‘레드 라인’ 버스, 텐조산 정상까지 오르는 케이블카, 호수 북쪽의 오이시 공원 등 다양한 관광시설이 조성돼 있다. 호수 북쪽의 가와구치 아사마 신사는 인증샷 성지다. 특히 신사 뒤 요배소(遥拝所)가 인기다. 붉은 도리이 사이로 후지산이 담기는 사진 한 장을 위해 일본인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다. 다른 호수들도 저마다 한 가지 ‘캐릭터’는 갖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공간에 붙어 있으니, 렌터카를 가져갔다면 천천히 다섯 호수 전체를 돌아보길 권한다. 가와구치코와 후지요시다 사이에 후지큐 하이랜드가 있다. 이른바 일본 내 ‘4대 절규 머신 성지’ 중 하나다. 하늘 위로 사람들을 ‘내던지는’ 놀이기구들이 득시글댄다. 후지산을 보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재미가 각별해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다. 향토 음식 먹고 온천으로 마무리 속이 출출할 때는 호토가 딱이다. ‘며느리라면 호토를 잘 끓여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야마나시현민들의 일상에 깊이 뿌리내린 음식이다. 먹고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 이튿날 아침으로 먹는 것이 현지 가정집의 오랜 방식이라고도 한다. 우리 수제비와 비슷한데, 꽤 맛있다. 과자 ‘쫀디기’를 닮은 길고 끈적한 면과 단호박, 감자, 표고버섯 등의 채소가 걸쭉한 국물과 어우러진다. 가와구치코 인근에 호토만 내는 집들이 몇 곳 있다. ‘오픈런’을 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식당에서 한 시간 남짓 대기해야 한다. 이 지역 별미인 말고기 육회를 곁들여 먹길 권한다. 값이 비싸 지갑은 홀쭉해지겠지만. 후지큐 하이랜드 바로 앞에 후지야마 온천이 있다. 이 온천의 자랑은 일본 최대 규모의 순수 목조 욕탕이다. 천장 높이가 12m를 넘고 100평(약 330㎡)이 넘는 대욕장은 전통 건축 방식인 못을 사용하지 않는 이음새 공법으로 지었다. 온천수엔 혈당 수치를 조절하는 효과가 있다는 바나듐이 풍부하게 함유됐다고 한다. 3층에 다다미 전망 라운지가 있다. 누워서 후지산을 볼 수 있다.
  • 민간 차량 5부제, 강제·전면 시행 땐 효과… 지속성은 ‘한계’

    민간 차량 5부제, 강제·전면 시행 땐 효과… 지속성은 ‘한계’

    걸프전 당시 한 달 150억 절감 효과2002년 월드컵땐 차량2부제 시행교통량 19%↓, 대중교통 이용 6%↑자율 요일제 땐 교통량 1%만 줄어“근처 주차장에 차 놓고 걸어서 출근”인프라 부족한 지역 형평성 문제도 1991년 걸프전 이후 35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 대상 ‘차량 5부제’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실효성을 둘러싼 논의가 확산하고 있다. 치솟는 국제유가 속에 정부가 꺼낼 수 있는 ‘최후의 카드’로 평가되지만 참여율과 시행 방식에 따라 실제 에너지 절감 효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 유가 기준인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30일 오전 11시 30분 기준 전장 대비 약 3.7% 뛴 배럴당 116.68달러를 기록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전날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국제유가가 120~130달러까지 오르면 민간 부문에도 차량 5부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도 ‘민간 차량 부제 의무화’ 방안 검토를 시사했다. 정부가 ‘민간 확대’ 카드를 검토하는 건 공공부문만으로는 에너지 절감 효과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공공부문 차량 5부제로 줄일 수 있는 석유는 하루 약 3000배럴로 전체 소비량(약 280만배럴)의 0.1%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약 2400만대에 이르는 민간 차량까지 포함할 경우 단순 계산으로 에너지 절감 효과는 최대 16배까지 확대될 수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차량 부제의 에너지 절감 효과는 분명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국제유가 상승으로 약 두 달간 시행된 차량 10부제는 하루 5억원, 한 달 150억원 규모의 절감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가 있다. 1995년 성수대교 붕괴 이후 서울시가 시행한 승용차 10부제 역시 약 1956억원의 연료비 절감 효과가 추정됐다. 코로나19 기간 2020~2022년 부산의 승용차 부제도 연간 약 900억원 규모의 차량운행비 절감 효과를 낸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강제·전면 시행일수록 효과는 컸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서울 등에서 강제 또는 자율제로 차량 2부제를 시행한 결과 교통량은 19.2% 감소하고 대중교통 이용은 6% 증가했다. 반면 2003년 도입된 자율 승용차 요일제의 교통량 감소 효과는 1.1%에 그쳤다. 승용차 요일제가 강제가 아니었던 탓에 가입만 하고 운휴일은 준수하지 않는 운전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책 효과가 떨어지는 경향도 확인됐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홀짝제를 시행하다 주1일 운행 제한을 도입했지만 미세먼지 감소 효과가 1년 안에 사라졌다. 멕시코시티 역시 1989~2008년 차량 5부제를 확대 시행하는 과정에서 차량 추가 구매 등 규제 회피가 늘어나며 대기오염 개선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지방의 한 공공기관 직원 A씨는 “차로 10분 거리를 대중교통으로는 1시간이 걸린다”며 “차를 멀리 세워두고 걸어 출근하고 있는데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공공기관 직원 B씨도 “택시도 안 잡히고 공유 자전거도 없는 지역인데 5부제가 필수인 게 말이 안된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민간 확대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대중교통 인프라가 갖춰진 7대 광역시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생계형 운전자는 제외하고 대형 SUV 등을 타는 ‘나홀로 운전자’를 중심으로 자율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 수서IC~양재IC 5.4㎞에 오토바이 다닌다

    서울 강남구 수서IC에서 서초구 양재IC로 이어지는 양재대로가 37년 만에 자동차전용도로에서 해제된다. 25일 서울시에 따르면 이날 밤 12시를 기점으로 수서IC~양재IC 5.4㎞ 구간이 자동차전용도로가 아닌 일반도로로 운영된다. 이 구간은 1989년 2월부터 자동차전용도로로 지정됐지만 이후 주변이 개발되면서 자동차전용도로에 설치할 수 없는 보도나 횡단보도가 설치되는 등 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발생했다. 특히 자동차전용도로에서는 오토바이 통행이 금지돼 양재대로를 이용하는 이륜차 운전자는 해당 구간에서 도로를 우회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또 자동차전용도로에서 입석 승객을 태울 수 없지만, 시내버스가 이 구간을 지나가 사실상 위법 상태로 운행되는 문제도 있었다. 이번 조치로 양재대로 수서IC~양재IC 구간은 이륜차가 우회 없이 이동할 수 있고, 건널목도 더 늘릴 수 있게 됐다. 시는 보행권이 개선되면서 그동안 단절됐던 주변 상업·주거지역의 연결성이 높아져 상권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시는 향후 이 구간을 보행 및 대중교통 중심의 교통 환경으로 개선하고 기존 이륜차 통행금지 표지판 정비 및 대모지하차도 구조개선 공사를 6월까지 완료할 방침이다. 한병용 시 재난안전실장은 “양재대로 자동차전용도로 해제는 일상을 제약하던 낡은 규제를 철폐하고, 서울의 끊어진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전환점”이라며 “앞으로도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를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 아직도 ‘핵 어뢰’가 바다에…1989년 침몰한 소련 핵잠수함 여전히 방사능 유출 [핵잼 사이언스]

    아직도 ‘핵 어뢰’가 바다에…1989년 침몰한 소련 핵잠수함 여전히 방사능 유출 [핵잼 사이언스]

    1989년 침몰한 소련의 핵 추진 공격 잠수함 콤소몰레츠(Komsomolets)에서 여전히 방사성 물질이 방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노르웨이 방사능·원자력안전청 등 연구팀은 콤소몰레츠의 부식된 원자로에서 방사성 물질이 방출되고 있으나 놀라울 정도로 잘 통제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최신 호에 발표했다. 1983년 진수된 콤소몰레츠는 길이 117m, 최대 속도 수중 30노트(약 56km/h), 최대 1020m 이상 잠항해 당대 잠수함 중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했다. 내외부 선체가 티타늄으로 제작돼 냉전 시기 소련 해군 기술의 결정체로 불렸던 콤소몰레츠는 그러나 1989년 4월 화재 사고로 침몰했다. 당시 이 잠수함은 노르웨이 인근 바렌츠해(海)에서 화재로 침몰했으며 총 69명의 승조원 중 42명이 사망했다. 이후 선체는 수심 1680m 아래에 수장됐으나 문제는 핵연료가 든 원자로 1기와 핵탄두가 장착된 어뢰 2발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보도에 따르면 사고 직후 소련은 잠수함의 핵무기 탑재 사실과 방사능 오염 가능성을 함구해 오다 두 달 후 처음으로 심해 잠수정을 투입해 선체를 찾아냈다. 이어 정기적으로 이를 모니터하다 핵무기가 바다에 노출되자 1994~1996년 어뢰실의 균열을 막고 이를 격리하기 위해 티타늄으로 밀봉하는 대규모 차폐 작업을 했다. 특히 러시아는 이후 콤소몰레츠 인양을 포기했는데, 이는 작업 중 방사성 물질이 해수면과 대기 중으로 방출될 위험과 막대한 비용 때문이었다. 이렇게 3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콤소몰레츠는 부식된 원자로와 두 개의 핵무기를 안고 바렌츠해에 잠들어 있다. 노르웨이 연구팀이 이번에 발표한 연구 결과는 2019년 콤소몰레츠 인근에 잠수정을 보내 수집한 선체 조사, 해수, 퇴적물, 생물 샘플 등을 통합 분석해 얻어진 것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지금도 콤소몰레츠의 환기 파이프 등에서 방사성 물질이 비디오에 포착될 정도로 활발하게 누출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다행히도 방사성 물질이 해수에 빠르게 희석되면서 해양 생물이나 지역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어뢰실 근처에서 채취한 퇴적물 및 해수 샘플에서 플루토늄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는 1990년대 실시한 티타늄 밀봉이 여전히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논문의 공동 저자인 해양 방사능 생태학자 저스틴 그윈은 “잠수함의 앞부분 특히 어뢰실에 심각한 손상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잠수함은 최근에 침몰한 것처럼 보였다”면서 “과거 러시아의 판단처럼 잠수함을 인양해 육지 어딘가에 안전하게 폐기하는 것은 비용과 위험이 너무 크다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 3월 17일을 기념일로 지정해야 하는 이유!

    3월 17일을 기념일로 지정해야 하는 이유!

    2023년 3월 17일(현지시간) 미국에서 테일러 스위프트의 ‘디 에라스 투어’가 막을 올렸습니다. 테일러의 모든 앨범 일부를 테마로, 장장 3시간 동안 펼쳐지는 공연이었는데요. 테일러는 이 투어로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총매출 20억 달러(약 2조 7천억 원) 이상,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사상 가장 높은 수익을 올렸죠. 디 에라스 투어가 열리는 도시마다가 경제가 활성화 돼 ‘스위프트노믹스’라는 신조어가 생기기까지. 테일러는 2023년 3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21개월 동안 5개 대륙에서 총 149회 공연을 펼쳤습니다. 기록도 기록이지만, 테일러는 창작욕도 불태웠는데요. 재녹음 앨범(Taylor’s Version) 시리즈 ‘Speak Now’, ‘1989’ 발매는 물론 정규 11집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을 발표하며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했습니다. 심지어 투어 후반부에서는 새 앨범을 위한 무대를 준비해 전반부와 완전히 다른 구성을 선보였습니다. 직접 보지 못해서 아쉬운 팬들을 위해, 디 에라스 투어의 실황 영상 및 콘서트 비하인드 영상까지 넉넉하게 준비한 테일러... 관련 시리즈는 디즈니+에서 보실 수 있어요. 비록 한국에서 만나지 못했지만, 다음 투어 때는 꼭 한국을 찾아주길 바래요. 한국 스위프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이슈&트렌드 | 케찹(@ccatch_upp)님의 공유 게시물
  • 미성년자 성폭행한 50대 배우, 교도소서 숨진 채 발견…범죄 이력 보니 [핫이슈]

    미성년자 성폭행한 50대 배우, 교도소서 숨진 채 발견…범죄 이력 보니 [핫이슈]

    영국 드라마 ‘그레인지 힐’ 등에 출연했던 배우 존 알포드(본명 존 섀넌·54)가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복역 중 교도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BBC 등 현지 언론은 15일 “노퍽주의 한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알포드가 지난 13일 숨진 채 발견됐다”면서 “당국은 교도소·보호관찰 옴부즈맨(PPO)이 관련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알포드는 2022년 4월 하트퍼드셔주의 주택에서 각각 14세, 15세인 미성년자 소녀 두 명을 성폭행을 한 혐의로 징역 8년 6개월 형을 받고 지난 1월부터 복역 중이었다. 사건 당시 그는 피해자들에게 술을 사주고 취하게 한 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 과정에서 알포드는 “나는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 DNA 증거도 없다”며 완강히 혐의를 부인해 왔다. 1985년부터 1989년까지 BBC의 인기 어린이 프로그램 ‘그레인지 힐’에 로비 라이트 역할로 출연하며 이름을 알린 알포드는 이후 런던 소방대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런던스 버닝’에서 소방관 빌리 레이 역으로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1997년 잠입 취재를 하던 기자에게 코카인과 대마초를 제공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드라마에서 강제 하차했고 이 일로 징역 9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2005년에는 음주운전 사고를 내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후에도 몇몇 작품에서 활동을 이어갔으나 2018년 또다시 약물에 취한 채 자신을 체포하려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적발됐다. 당시 그는 사회봉사 12개월과 25일간 재활 프로그램 이수 및 전자 발찌 착용 등의 명령을 받았다.
  • ‘사노맹’ 출신 백태웅 교수, 주OECD대사 됐다

    ‘사노맹’ 출신 백태웅 교수, 주OECD대사 됐다

    1989년 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결성을 주도한 백태웅(·63)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가 주OECD(경제협력개발기구)대사에 임명됐다. 주OECD대사는 경제 전문 외교관으로, 주로 경제 부처 고위 관료 출신 등이 기용돼왔다. 경제 분야 전문가가 아닌 백 교수가 임명된 것은 이례적이다. 백 교수는 서울대 학도호국단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시인 박노해 씨 등과 사노맹을 결성한 인물이다. 백 교수는 1992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돼 이듬해 징역 15년이 확정된 뒤 수감생활을 해오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외교부는 12일 주니카라과대사에 조영준 강원도 국제관계대사, 주파라과이대사에는 손혁상 경희대 공공대학원장, 주투르크메니스탄대사는 이원재 국립외교원 경력교수, 주튀르키예대사에는 부석종 전 해군참모총장, 주헝가리대사에는 박철민 전 주헝가리대사 등 공관장 인사를 발표했다.
  • 父 후광 속 ‘그림자 실세’… 6900억원 규모 유럽 부동산 소유 의혹

    오래전부터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왕정 몰아내 놓고 ‘권력 세습’ 논란이란의 3대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모즈타바 하메네이(57)는 공식 직책이 없고, 공개 활동도 거의 없었지만,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그림자 실세’로 평가받는다. 9일(현지시간) BBC 등에 따르면 모즈타바는 1969년 이슬람 시아파의 대표적 성지인 마슈하드에서 태어났다. 여섯 남매 가운데 둘째 아들인 그는 부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팔레비 왕조에 맞선 혁명 운동가에서 대통령을 거쳐 최고지도자로 올라서는 과정을 도왔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1987년 이란 혁명수비대(IRGC)에 입대해 이란-이라크 전쟁 말기에 복무했다. 당시 혁명수비대 정보 책임자였던 호세인 타에브 등과 인연을 맺으며 인맥을 쌓았고 이후 수십 년 동안 이란 보안기관 핵심 인물들과 긴밀하게 교류했다. 1989년 부친이 최고지도자에 오른 뒤에는 종교 도시 쿰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성직자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모즈타바는 신학교 강의에도 나서며 종교 지도층과 관계를 넓혔고 아버지의 후광 속에 지도부 내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공식 직책이나 대외 활동은 거의 없었지만, 정치권에서는 오래전부터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됐다. 2019년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른 그는 해외에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차명으로 유럽에서 소유한 모즈타바의 부동산 규모는 약 4억 유로(약 6900억원)에 이른다. 부자가 권력을 승계한 이번 최고지도자 선출을 두고는 ‘권력 세습’ 논란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1979년 이란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의 세습 통치를 무너뜨리며 출범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 너도 그래? 나도!…무한 공감 밈으로 재탄생한 테일러X찰리 [트렌드 케찹]

    너도 그래? 나도!…무한 공감 밈으로 재탄생한 테일러X찰리 [트렌드 케찹]

    최근 틱톡에서는 테일러 스위프트와 찰리XCX의 10년 전 공연 영상이 다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2015년 테일러의 ‘1989 월드 투어’ 무대에서 함께 부른 ‘Boom Clap’ 영상인데요. 찰리가 먼저 노래를 시작해 테일러가 뒤이어 받아 부르는 방식으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번갈아 이어집니다. 이 대화처럼 이어지는 구조 덕분인지, 틱톡에서는 이 장면을 친구가 내 말에 맞장구치는 상황에 붙이는 ‘티키타카 밈’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영상을 저장하고 활용해보세요. ❛‿˂̵✧ 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이슈&트렌드 | 케찹(@ccatch_upp)님의 공유 게시물
  • “AI시대 맞춤형 인재 키우려면 능력주의 채용 뿌리내려야” [이순녀의 이사람]

    “AI시대 맞춤형 인재 키우려면 능력주의 채용 뿌리내려야” [이순녀의 이사람]

    AI시대 암기 능력 필요 있겠나글로벌 빅테크 이미 학력 파괴졸업장 대신 다단계 면접 채용이력서에 출신학교 표기 불법출신학교 채용차별 금지법 추진과태료 500만원 강제력 없다고?반복 위반 땐 사회적 압박 효과지난 1월 20일 출신학교 채용차별 방지법 도입을 촉구하는 국민대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채용 단계에서 학벌을 이유로 구직자를 차별한 기업을 채용절차 공정화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행사에는 정치인과 시민단체, 학부모 등과 함께 최교진 교육부 장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차정인 국가교육위원장도 참석했다. 이어 2월 5일에는 국회의원 15명이 참여하는 추진단과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를 단장으로 한 시민사회 자문단이 결성됐다. 3월 안에 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는 것이 목표다. 송인수(62) 재단법인 교육의봄 공동대표는 출신학교 채용차별 방지법 국민운동을 최전선에서 이끌고 있다. 교육의봄은 학벌 중심 채용 관행을 직무 능력 위주 채용 문화로 바꾸고자 2020년 출범한 비영리기관이다.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구 재단 사무실에서 송 대표를 만나 법안 추진 배경과 기대 효과, 그리고 인공지능(AI) 시대에 걸맞은 채용 제도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법이 왜 필요한가. “출신학교와 학력을 이유로 채용을 차별하는 것은 불법이다. 고용정책기본법 7조 1항에는 성별, 나이, 사회적 신분 등과 함께 출신학교와 학력을 차별 금지 조항으로 명시하고 있다. 출신학교는 1994년, 학력은 2014년 법 개정을 통해 추가됐다. 문제는 처벌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30년 넘게 법이 있어도 기업들이 지키지 않는 이유다. 우리의 요구는 현행 채용 절차 공정화법 4조 3항에 규정된 입사지원서 수집 금지 정보에 출신학교와 학력을 포함하도록 법을 개정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제재를 적용받을 수 있다. 이력서에 출신학교와 학력을 쓰지 못하게 하고, 위반하면 처벌하는 근거를 마련해 최소한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는 취지다.” -이전에도 비슷한 법안이 여러 차례 추진됐다. “이번엔 세 가지가 달라졌다. 과거에는 법안 발의 자체에만 의미를 두는 국회의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의원들이 나타났다. 정부의 관심도 높다. 무엇보다 국민 인식이 변했다. 시민단체 300여곳이 연대했다. 법 만들려고 이렇게 많은 단체가 결집한 건 이례적이다.” -이런 변화의 이유는. “학벌 사회에 대한 국민 피로와 사회적 고통이 극심하다. 사교육비는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면 꺾인 적이 없다. 입시 경쟁은 출산율 저하의 구조적 요인이기도 하다. 채용 절차를 바로잡지 않으면 교육이 변할 수 없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아이들의 미래가 없다는 절박함이 반영됐다고 본다.” -과태료 수준의 제재로 채용 관행이 바뀔까. “기업이 ‘500만원 내고 그냥 하던 대로 할 거야’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법을 위반하기는 어렵다. 기업 채용 공고와 이력서 양식은 공개돼 있어 위법 여부 확인이 쉽다. 사회적 압박 효과가 크기 때문에 처벌 정도가 심하지 않더라도 경각심을 줄 수 있다. 교통 법규 위반 범칙금이 크지 않아도 신호를 지키는 것과 같다.” -외국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나. “출신학교 정보 수집을 법으로 금지한 국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라마다 그 사회에 가장 고통을 주고 통합을 저해하는 요소에 따라 특정 항목의 수집을 금지한다. 학벌로 인한 국가적 스트레스가 한국처럼 심각한 나라는 없다. 선행교육 규제법도 우리나라에만 있다.” -이력서에 안 써도 면접 등으로 사실상 학벌을 유추할 수 있지 않나.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과 아예 이력서에 특정 대학 이름을 명기하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 처음부터 학벌을 요구하느냐 아니냐는 채용 담당자 입장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출신학교에 따라 가점을 줄 필요도, 감점을 줄 필요도 없고 능력으로 평가해 채용하라는 것이다.” -기업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에 대한 의견은. “출신학교 차별 금지는 이미 법의 영역에 있다. 성별·나이 차별을 금지한다고 기업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하지 않듯이 학벌도 마찬가지다. 전공·학점 등 직무 관련 정보는 요구할 수 있다. 다만 특정 대학 이름으로 혜택이나 불이익을 주는 관행을 끊자는 것이다.” -명문대생들은 불공정과 역차별을 우려할 수도 있는데. “그들이 쌓은 능력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학벌이 좋다고 해서 가점을 주고, 좋지 않다고 해서 감점을 주는 게 부당하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명문대 나온 능력으로 기업 채용 과정에서 직무에 적합한지 정당하게 평가받아서 뽑히면 된다. 학벌은 능력의 증거가 아니라 배경일 뿐이다.” -대학 서열 구조가 그대로인데 채용만 규제한다고 바뀔까. 학벌 대신 다른 스펙 경쟁이 심화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 대학 서열은 수능 점수에 고착돼 있다. 기업이 학벌을 보지 않으면 굳이 특정 대학에 집착할 이유가 약해진다. 위에서 매듭을 풀어 줘야 아래가 변한다. 서류 전형만 바뀌어도 기업이 달라지고, 대학이 달라진다. 부모를 설득하고 학교를 설득하는 지렛대가 생기는 것이다. 이력서에서 출신학교를 수집하지 않는다는 선언, 그 신호가 정확하게 가면 불필요한 경쟁은 줄어든다. 채용의 변화를 법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지금은 학벌이라는 단일 지표가 과도하게 왜곡돼 있다. 직무와 무관한 스펙은 자연히 걸러질 것으로 본다.” -그러면 기업은 구직자의 능력을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나. “자기주도성, 문제 해결력, 협업 능력을 측정하는 대안적인 채용 도구들이 많이 보급돼 있어 직무 중심 채용이 충분히 가능하다. 연구직 같은 특수직의 경우에는 학력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동의한다. 그래도 출신학교까지 정보를 제공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공공부문에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된 지 10년이 돼 간다. “직무 중심 채용으로 바뀌면서 학벌이 아니어도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들이 경험 자산으로 축적됐다. 블라인드 채용 효과는 연구 결과로 입증됐다. 2018년 한양대 연구팀 조사를 보면 출신학교 다양성이 증가했고, 사내 정치가 사라졌다. 직무능력은 이전과 비교해 떨어지지 않았다. 기업에도 이익이다. 신입사원 조기 퇴사 사유 1위가 ‘직무 부적합’이다. 학벌로 능력을 ‘추정’하는 게 아니라 과학적으로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보여 준다.” -AI 시대가 빨라지면서 채용 관행도 변하고 있는데. “글로벌 빅테크들의 채용 방식은 이미 학력 파괴로 접어든 지 오래다. 구글은 학벌, 전공, 학점, 코딩 실력이 인재를 판정하는 데 있어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대학 졸업장을 보는 대신 4~5단계 면접을 통해 정확하게 직무 능력을 측정해서 인재를 채용한다. 우리나라만 퇴행적인 관행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 지금의 학벌은 정답 찾기, 암기 능력 자격증일 뿐이다. AI 시대에는 더이상 필요 없는 것들이다. AI 시대 맞춤형 인재를 키우려면 능력주의 채용 관행이 정착돼야 한다.” -‘K채용’을 강조하고 있다. 어떤 의미인가. “출신학교에 의존하지 않고 직무 능력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채용의 시대를 우리나라가 선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외국은 기업이 개별적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는 제도적으로 800만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이를 발판으로 선진 채용 기술을 개발해 해외로 진출할 수도 있다. 국가 차원에서 대규모로 확산하는 게 중요하다.” -좋은 채용 기업 발굴과 소개에도 매진하고 있다. “지난 4년간 좋은 채용을 위해 애쓰고 있는 기업 60여곳을 발굴해서 소개했다. 인사 책임자와 최고경영자(CEO)를 직접 인터뷰해 능력 중심 채용 방식을 공개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학벌보다 자율적이고 경험이 풍부한 인재를 원하고 있다. 현장에서 채용 관행이 바뀌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이런 정보가 국민들에게 널리 전달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학부모,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사교육 과열, 입시 경쟁으로 온 국민이 고통받고 신음하는 현실을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출신학교 채용차별 방지법을 불편해하고, 득실을 따지겠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고민한다면 이번에는 마음을 모아야 한다.” -앞으로 추진 과정은. “법안에 대해 연령별로 여론을 분석하고, 기업과 구직 청년들 얘기도 많이 들을 것이다. 선의로 출발했지만 잘못된 결과가 나오지 않게 부작용도 충실히 연구해 법을 추진하겠다.” ●송인수 대표는 1989년 공립고교 영어 교사로 교직에 발을 디뎠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행복했지만 입시 경쟁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보는 일은 괴로웠다. 부모와 학생들로부터 환영받는 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 ‘좋은교사운동’을 조직했다. 2003년 교직을 그만두고 모임 활동에 전력했다. 5년 대표 임기를 마친 2008년에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창립해 공동대표로 취임했다. 선행교육규제법 등 성과에도 불구하고 사교육비 축소와 입시경쟁 완화에는 현실적인 한계를 절감했다. 교육을 바꾸려면 학벌 중심 채용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판단으로 2020년 교육의봄을 설립해 6년째 이끌고 있다. 이순녀 수석논설위원
  • ‘신의 이름’ 빌려 37년 독재… 후계자는 ‘라리자니’ 유력

    ‘신의 이름’ 빌려 37년 독재… 후계자는 ‘라리자니’ 유력

    이슬람 신권 상징 ‘검은 터번’ 착용반미 노선 속 반대파 숙청·여성 탄압반정부 시위 유혈 진압 끝 최후 맞아이란 전문가회의, 차기 지도자 선출공습 전 ‘강경파’ 라리자니에 위임설‘차남’ 모즈타바, ‘측근’ 아라피도 거론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공격으로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폭사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지난 37년간 신정 체제의 정점에서 이란을 철권통치한 독재자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성직자 출신으로는 최초로 대통령직에 올라 연임한 뒤 1989년 전임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에 이어 2대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종신직인 이란 최고지도자는 권력의 정점으로 대내 정책의 최종 결정권자다. ‘신의 대리인’인 하메네이의 검은 터번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직계 후손임을 주장하는 상징이기도 했다. 집권 후 헌법을 개정해 최고지도자 권한을 강화한 하메네이는 반대파를 숙청하고 반미·반서방 노선을 더욱 노골화하며 미국과 갈등을 빚었다. 아울러 신정 체제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여성과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는 정책을 펼치며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가까운 예로는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이 체포됐다 의문사하면서 발생한 2022년 히잡 시위, 지난해 말 경제난에 지친 상인들이 거리로 나선 반정부 시위 사태 등이 꼽힌다. 하메네이는 이번 반정부 시위에서 거리로 나온 시민들을 유혈로 잔인하게 진압했고, 이에 군사적 대응을 수차례 경고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최후를 맞이했다. 하메네이 생전에 후임으로 공식 지명한 후계자가 없어 누가 후계자가 될지는 알기 어려운 상태다. 우선은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골람호세인 모흐세니 에제이 사법부 수장, 헌법수호위원 아야톨라 알리레자 아라피 등 3명이 지도자위원회를 구성해 최고지도자 권한을 대행한다. 아라피는 공직 경험이 있는 유력한 성직자이자 하메네이의 측근으로 분류된 인물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공습 전 하메네이가 국가 운영 업무를 알리 라리자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에게 위임했다고 보도했다. 라리자니는 하메네이 사망 이후 “시온주의자(이스라엘) 범죄자들과 파렴치한 미국인들이 그들의 행동을 후회하도록 만들어 주겠다”고 경고하는 등 대미 강경 메시지를 주도하고 있다. 그는 88명의 고위 성직자로 구성돼 차기 지도자를 선출하는 전문가회의도 이날 소집된다고 밝혔다. 라리자니는 혁명수비대 지휘관을 거쳐 국회의장과 4개 부처 장관을 지낸 정권 핵심으로, 지난 이란 반정부 시위 국면에서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하메네이의 차남으로 혁명수비대 및 산하 민병대인 바시즈와 긴밀히 연결된 모즈타바 하메네이도 차기 지도자 후보다. NYT는 “이란 최고 군사 기관인 혁명수비대 출신 등 강경파 인사가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은 “하메네이 순교를 포함한 모든 시나리오에 대해 계획을 세워뒀다”고 주장했다.
  • 李대통령 “중동상황·경제영향 수시 보고하라…국민안전에 만전”

    李대통령 “중동상황·경제영향 수시 보고하라…국민안전에 만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사망 소식으로 중동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1일 싱가포르·필리핀 순방길에 오르면서 관계부처에 비상대응 체제 유지를 당부했다. 강유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취재진에게 “이 대통령이 중동 상황과 경제적 영향에 대한 정부 대처 현황을 수시로 보고하고 특히 우리 재외국민의 안전에 만전을 기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이 “순방 기간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관계부처가 비상대응 체제를 유지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앞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합동 공습으로 하메네이를 사망케 했다고 발표했으며, 이란 국영방송도 이날 그의 사망을 공식 확인했다. 이란 정부는 40일간의 전 국민 추도 기간과 일주일간의 공휴일을 선포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1989년부터 35년 넘게 이란을 철권 통치해 온 하메네이의 죽음으로 이란 내부는 물론 중동 전역의 정세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공식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하메네이가 갑작스럽게 사망함에 따라 내부 반정부 세력의 봉기와 이를 막으려는 정권의 무력 진압이 충돌하며 극심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또한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 이란의 정세 불안은 강대국들의 개입을 불러일으켜 전 세계적인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싱가포르와 필리핀을 순차적으로 방문한다. 먼저 싱가포르에서는 로렌스 웡 총리와 정상회담 및 친교 오찬을 가질 예정이다.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싱가포르 대통령과의 면담과 국빈만찬 일정도 소화한다. 싱가포르 일정을 마친 이 대통령은 3일부터 필리핀 마닐라를 찾아 페르디난드 로무알데즈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과 정상회담 및 국빈만찬을 가질 계획이다.
  •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 사망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 사망

    이란 이슬람 혁명의 배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시아파 이슬람 성직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합동 공격으로 숨졌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28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는 1980년대 두 차례 대통령을 지냈고, 1989년부터 이란의 최고 지도자로서 37년간 이란을 장악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하메네이에 대해 “역사상 가장 사악한 인물 중 한 명”이라 칭하며 그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추가 세부 사항을 공유하지 않았으나, 이스라엘 보안 관계자 4명은 하메네이가 테헤란 소재 자신의 관저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하메네이 사망 보도가 나오자 테헤란에서는 환호와 축하 소리가 들렸다고 CNN은 보도했다. 이란 당국이 테헤란 관저에서 확보한 하메네이의 시신 사진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되었다고 이스라엘 공영방송 채널12는 전했다. 이스라엘의 미국 주재 대사 예히엘 레이터가 미국 관리들에게 이스라엘이 하메네이를 암살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고했다고 미 정치전문매체 액시오스도 보도했다.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초기 추종자였던 하메네이는 미국이 지지하던 이란 군주제에 맞선 혁명을 주도한 엄격한 성직자로, 미국과 이스라엘을 강력히 반대했으며 서구의 ‘자유주의’를 거부하고 근본주의적 사회 정책을 고수했던 인물이다. 1989년 호메이니의 뒤를 이어 이란의 최고 지도자로 취임한 뒤 그는 이슬람 공화국에서 선출된 대통령보다 우위에 서며 군대, 내부 보안 기관, 사법부, 국영 언론 및 외교 정책을 총괄하는 궁극적인 정치적·종교적 권위를 행사해왔다. 그는 미국을 포함한 6개 강대국과의 핵합의인 2015년 7월 포괄적 공동계획(JCPOA) 최종 결정권을 행사했고, 이 합의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대가로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미국 측의 의도를 깊이 불신하고 동료 강경파들의 우려에도 그는 결국 이 합의를 지지했으며, 이는 2016년 1월에 공식적으로 시행되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첫 임기 중 미국을 협정에서 탈퇴시키고 가혹한 제재를 재개하자 그는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은 핵 협정의 일부 조항, 특히 농축 우라늄 생산의 양과 질에 대한 제한을 무시하기 시작했지만, 핵무기를 획득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지켰다. 하메네이는 특히 2020년 1월 이라크에서 미국 드론 공격으로 이란 최고 사령관 카셈 솔레이마니가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으로 살해된 사건에 격노했다. 그는 이 살해를 “비겁한 행위”라고 규정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광대”라고 비난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운동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협상 요구를 일축했다. 그는 1979년 11월 테헤란에서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52명의 미국인을 14개월 이상 인질로 붙잡은 무장 세력의 강력한 지지자로서 처음 정치적인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1981년 암살 시도에서 중상을 입었으나 불과 4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이란 대통령으로 두 차례 임기 중 첫 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이 직책을 맡은 최초의 성직자가 되었다. 하메네이는 1939년 7월 17일 이란 북동부 도시 마슈하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시아파 무슬림 성직자였다. 그는 여덟 자녀 중 둘째였으며, 자신과 가족은 “힘든 삶을 살았다”고 회고했다. 때로는 빵과 건포도밖에 먹을 것이 없기도 했다고 그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게재된 전기에서 밝혔다. 그는 어릴 때 이슬람 학교에 다녔고, 십대 후반에는 이웃 나라 이라크의 시아파 성지이자 학문의 중심지인 나자프에서 잠시 공부했다. 이후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약 14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시아파 성지 ‘곰’으로 가서 호메이니 밑에서 6년간 수학했다. 그러나 1964년 병든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마슈하드로 돌아가야 했기에 곰의 유명한 이슬람 신학교에서의 수업을 중단해야 했다. 그는 나중에 이 결정이 이슬람 학문의 최고 자격을 얻지 못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아랍어를 배워 수년에 걸쳐 여러 아랍어 서적을 페르시아어로 번역할 만큼 능숙해졌다. 그중에는 이집트 이슬람주의자 사이드 쿠트브의 저작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극렬한 반미주의자이자 이슬람 성전의 이론가로, 그의 저술은 알카에다 지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1963년 봄, 호메이니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샤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에 대한 반정부 시위를 이끌었으나, 이 시위는 보안군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됐다. 하메네이는 샤의 비밀경찰인 사박(SAVAK)에 체포된 뒤 “10일간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고 그의 공식 전기에서 밝혔다. 1964년 말 그의 스승인 호메이니와 함께 이란에서 추방되어 14년 이상 망명 생활을 했고, 그 대부분을 이라크 나자프에서 보냈다. 1963년부터 1976년 사이에 그는 총 일곱 차례 체포되어 3년간 수감 생활을 했으며, 이후 이란 남동부 끝자락에 위치한 이란샤르로 일종의 국내 유배형을 선고받았다. 이슬람 혁명이 진행 중이던 그는 마슈하드로 돌아와 1979년 1월 16일 샤가 망명길에 오르기 전 벌어진 거리 전투에 참여했고, 2월 1일 호메이니가 테헤란으로 승리해 귀환하는 과정에도 가담했다. 호메이니는 새로 구성된 이슬람 혁명 평의회에 하메네이를 임명했다. 이 비밀스러운 단체는 1979년 2월 11일 샤 정권의 마지막 잔재가 무너진 후 국가 운영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흰 수염이 무성하고 미소가 상냥한 하메네이는 늘 찌푸린 얼굴이었지만 훨씬 더 존경받던 스승보다 공개적으로 더 친근한 모습을 보였다. 페르시아 시와 서양 고전 소설, 특히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좋아하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타협을 모르는 호메이니와 마찬가지로 그는 국내 정치·사회 개혁을 추진하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온건파의 노력을 반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하메네이가 비판자와 언론인을 투옥하고 여성에게 가혹한 제한을 가한 국가를 통치했다”고 평가했다. 하메네이는 생애 말기에는 수많은 이란인들이 그를 부패하고 억압적인 정권의 독재자로 여겼으며, 그의 정책으로 수천 명의 이란인이 목숨을 잃고 무수한 이들이 망명길에 오르게 되었다고 NYT는 짚었다. 지난 10년간 반정부 시위가 빈번해지자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점점 더 잔혹한 수단을 동원했다. 하메네이 통치에 대한 불만은 2022년에도 폭발했는데, 여성에게 머리 스카프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구치 중 사망 사건을 계기로 시위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전국적으로 행진하며 “여성, 생명, 자유”를 외쳤고, 공공장소에서 스카프를 벗어 던졌다. 지난해 말 테헤란 상점가를 중심으로 시작된 시위가 전국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올해 1월 그는 경제 문제를 두고 평화적으로 거리로 나선 시위대에 대해 보안군에게 발포하라고 명령했다. 이란 정부는 31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밝혔으나, 인권 단체들은 사망자 수가 6000명을 넘었다고 추산했다.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유혈 사태를 유발한 책임을 미국과 이스라엘 등 해외의 ‘적들’에게 돌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자 살해를 중단시키기 위해 이란을 폭격하겠다고 위협했으며 해군 ‘함대’를 파견했다. 이로 인해 이란은 시위 혐의로 구금된 자들의 처형을 보류한 것으로 보인다. 하메네이는 미국이 공격할 경우 지역 전쟁을 시작하겠다고 경고했고, 이로 인해 국제적 외교 활동이 활발해졌으며 미국과 이란 고위 관리들 간의 직접 대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전국 각지의 수십 개 시설을 공격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 공격이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제거하고 그 정부를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 40여년 철권통치의 끝…이란 국영방송 “하메네이 순교” 공식 확인

    40여년 철권통치의 끝…이란 국영방송 “하메네이 순교” 공식 확인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사망을 현지 국영방송이 1일(현지시간) 공식 확인했다. 이란 정부는 40일간의 전국민 추도 기간과 일주일간의 공휴일을 선포했다. 이란에서 40여년 동안 이어진 하메네이의 철권통치는 이로써 막을 내렸다. 이란 국영방송 프레스TV는 이날 “이슬람혁명의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순교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합동 공습으로 하메네이를 사망케 했다고 먼저 발표한 데 이어 이란 국영방송이 뒤따라 이를 공식화한 것이다. 앞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날 저녁 TV 연설에서 하메네이가 사망했다는 “점점 더 많은 징후”가 있다고 전했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미 동부시간 2월 28일 오후 4시 40분 트루스소셜에 “역사상 가장 사악한 인물 중 하나인 하메네이가 사망했다”며 “이란 국민과 미국인, 전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을 위한 정의”라고 밝혔다. 이란 현지 언론은 하메네이가 테헤란 집무실에서 숨졌다고 전했다. 메흐르통신은 “순교하는 순간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집무실을 지키며 자신의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며 “그 비겁한 공격은 2월 28일 오전에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하메네이의 딸과 손녀, 며느리, 사위도 이번 공습으로 함께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정부 야권의 상징적인 인물인 레자 팔라비도 엑스(X)에 하메네이의 사망을 환영하는 글을 올렸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축출된 이란 왕정 시대의 마지막 왕세자인 레자 팔라비는 최근 이란의 민주적 전환을 이끌 과도기적 리더로 급부상한 인물이다. 그는 “우리 시대의 폭군 하메네이, 수만 명의 용감한 이란인을 죽인 학살자가 역사의 페이지에서 지워졌다”며 “그의 죽음으로 이슬람공화국은 사실상 종말을 맞았고, 머지않아 역사의 쓰레기통에 던져질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이슬람 혁명 성공 이후 권력의 정점에 올랐던 하메네이는 86세로 생을 마감했다. 하메네이는 1939년 이란 북동부 마슈하드에서 태어났다. 1958년 이슬람 혁명의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가 있는 쿰으로 옮겨 그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이슬람 혁명 성공 후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해 1981년 대통령에 취임한 뒤 1989년 호메이니 사후 최고지도자 자리에 올라 35년 넘게 이란을 통치했다. 슬하에 6남매를 뒀으며, 차남 모즈타바가 후계자로 거론돼 왔다.
  • 트럼프 “하메네이 사망” 발표…“이란 국민 조국 되찾을 기회”

    트럼프 “하메네이 사망” 발표…“이란 국민 조국 되찾을 기회”

    트루스소셜 통해 “역사장 가장 사악한 인물 사망” ‘철권 통치’ 하메네이, 반정부시위 대규모 유혈 진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함께 단행한 이란 공습으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가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서 “하메네이, 역사상 가장 사악한 인물 중 하나가 사망했다”며 “이는 이란 국민뿐 아니라 하메네이와 그의 ‘피에 굶주린 폭력배 패거리’에게 살해되거나 불구가 된 위대한 미국인과 전 세계 사람들에게도 정의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하메네이)는 우리의 정보력과 고도로 정교한 추적 시스템을 피할 수 없었으며, 이스라엘과 긴밀히 협력한 결과 그와 함께 사망한 다른 지도자들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국민이 조국을 되찾을 수 있는 단 한 번의 가장 위대한 기회”라며 봉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는 “이란혁명수비대와 군 및 기타 보안·경찰 세력 다수가 더 이상 싸우기를 원하지 않으며, 우리로부터 면책을 원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내가 어젯밤 말했듯이 ‘지금은 면책을 받을 수 있지만, 나중에는 죽음뿐이다’”라며 이란 정부를 압박했다. 올해 86세인 하메네이는 1989년부터 이란을 통치해 왔다. 최고 지도자로서 그는 시아파 이슬람 공화국인 이란의 모든 정부 기관, 군대, 사법부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하메네이는 40여년에 걸쳐 걸프 지역의 수니파 무슬림 국가들과 경쟁할 수 있는 지역 강국을 건설하는 동시에 주변 지역을 불안하게 만드는 핵 기술을 육성했다. 하메네이는 최근 수년간 대규모 처형 집행을 집행하는 등 자국민 인권을 탄압했다. 특히 지난해 말 수도 테헤란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번진 반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해 대규모 유혈 사태를 일으켰다. 폭스뉴스 등은 하메네이뿐만 아니라 이란 수뇌부 5~10명이 사망했다고 미국 관계자들을 인용해 전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날 이란 내 군사 목표물 수십 곳을 타격했다. 테헤란과 곰, 카라지, 게슘 등 전국 주요 도시가 동시다발로 공습받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직접 군사공격에 나선 것은 지난해 6월 이란 핵시설 3곳을 타격한 이후 약 8개월 만이다. 이번 공격은 지난 2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이 ‘노딜’로 끝난 직후 전격 단행됐다.
  • [속보] 이스라엘 “하메네이 사망 확인”

    [속보] 이스라엘 “하메네이 사망 확인”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28일(현지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고 이스라엘 고위관계자가 로이터통신에 밝혔다. 이스라엘 N12 방송도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하메네이가 제거됐다”고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다만 이란 당국은 하메네이 사망설 보도에 ‘적의 심리전’이라고 주장했다. 올해 86세인 하메네이는 1989년부터 이란을 통치해 왔다. 최고 지도자로서 그는 시아파 이슬람 공화국인 이란의 모든 정부 기관, 군대, 사법부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하메네이는 40여년에 걸쳐 걸프 지역의 수니파 무슬림 국가들과 경쟁할 수 있는 지역 강국을 건설하는 동시에 주변 지역을 불안하게 만드는 핵 기술을 육성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날 이란 내 군사 목표물 수십 곳을 타격했다. 이란 수도 테헤란과 곰, 카라지, 게슘 등 전국 주요 도시가 동시다발로 공습받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직접 군사공격에 나선 것은 지난해 6월 이란 핵시설 3곳을 타격한 이후 약 8개월 만이다. 이번 공격은 지난 2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노딜’로 끝난 직후 전격 단행됐다.
  • 말하는 대로… ‘6000P 시대’

    말하는 대로… ‘6000P 시대’

    5000P 달성 한 달 만에 신고가美 관세 압박에도 가속도 붙어李 “돈 흐름 부동산서 주식으로”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6000선을 넘어섰다. ‘오천피’(코스피 5000) 달성 후 약 한 달 만에 세운 대기록이다. 25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114.22포인트(1.91%) 오른 6083.86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지수는 개장과 동시에 6000선을 돌파하며 상승폭을 빠르게 확대했다. 한때 2.93% 오른 6144.71까지 급등하며 하루 만에 6000선과 6100선을 차례로 돌파했다. 1980년 1월 4일 100으로 시작한 코스피는 1989년 1000선, 2021년 3000선을 넘어선 뒤 한동안 박스권에서 등락했다. 그러다 지난해 하반기 이재명 정부가 ‘오천피’를 정부 추진 과제로 내세우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해 10월 27일 종가 4000선을 돌파하고 3개월 만인 지난 1월 27일 5000선에 올랐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발 관세 불확실성에도 상승 속도가 오히려 빨라졌다. 이런 상승세는세계 주요 증시 지수와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연합인포맥스가 집계하는 국가대표지수 40개 가운데 코스피와 코스닥 연초 대비 상승률이 각각44.4%, 25.9%로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다. 이어 튀르키예(24.8%), 대만(22.3%), 브라질(18.9%) 등 순이었다.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한 기관 순매수세가 상승세를 주도했다. 올 들어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과 개인이 각각 11조 7465억원, 3266억원어치를 순매도하는 동안 기관이 10조원 넘게 사들이며 대부분을 회수했다. 이 기간 기관 순매수 1·2위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최근 생산적 금융으로 부동산에서 돈이 흘러서 주식시장으로 가는 현상은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말했다고 이규연 홍보소통수석이 전했다.
  • 加 시골 학교에 무슨 일이… 총기 난사에 10여명 사망

    캐나다 서부의 외딴 산악 마을 학교에서 최소 10명의 사망자를 낸 총격 사건이 발생해 현지 사회가 충격에 휩싸였다. 10일(현지시간) AP통신,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캐나다 연방 경찰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소도시 텀블러 리지에 있는 한 중고등학교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해 용의자를 포함해 최소 1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부상자는 27명 이상으로, 이 중 2명은 생명이 위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날 성명을 통해 용의자가 사건 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용의자 신원을 밝히지 않은 경찰은 “범행 동기는 아직 불분명하다”고 부연했다. 이날까지 공범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로이터통신은 현지 경찰이 사건 발생 경보를 발령하면서 용의자를 “갈색 머리의 드레스 차림 여성”으로 묘사했다고 보도했다. 텀블러 리지는 인구 2400여명의 작은 마을로, 밴쿠버에서 북쪽으로 1100㎞ 이상 떨어져 있다. 해당 중고등학교에는 175명이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는 미국과 달리 학교 총격 사건이 드물어 이번 총격은 현지에 큰 충격을 안겼다. 캐나다 매체 CBC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1989년 12월 총격범이 몬트리올의 이공학교(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여성 14명을 살해한 사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인명 피해를 낸 학교 총격 사건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엑스(X)에 발표한 성명에서 “이 끔찍한 폭력 행위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가족에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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