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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질환·마약사범 한데 모인 ‘교정 험지’… 긴장 내려놓을 수 없는 청주여자교도소[르포]

    정신질환·마약사범 한데 모인 ‘교정 험지’… 긴장 내려놓을 수 없는 청주여자교도소[르포]

    “야 이 XXX아, 죽고싶어? 나 그냥 조사방 간다고!” 지난 17일 충북 청주여자교도소 3층 출력수용동 복도에서 시행된 소란난동훈련의 일환으로 ‘27번 수용자’가 빗자루를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자 같은 복도 수용실들은 일제히 얼어붙었다. 접견에 지각했단 이유로 지적당한 수용자가 불만을 품고 기물을 파손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용자를 달래는 교도관들 뒤로 보호장구로 무장한 기동순찰팀(CRPT) 5명이 출동하자 그는 “직원이 사람 팬다! 인권위에 진정할 거야”라고 외치며 거세게 반항하다 진압됐다. 이날 모의 훈련은 최근에 이곳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사건과 동일하게 진행됐다. 이날 수용자 체험을 위해 교도소를 찾은 취재진에게 일선 교도관들은 “이 정도 사건은 일상”이라고 털어놨다. 집기를 부수고 자해를 하거나 심할 경우 교도관들에게 폭행을 행사하는 일들도 빈번하다는 전언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전국의 교정시설에서 발생한 폭행·자살 시도·금지 물품 반입 등 사건 사고 건수는 지난 2016년 894건에서 지난해 1629건으로 두배 가까이 늘었다. 1989년 10월 문연 청주여자교도소는 전국 최대 규모의 여성 전담 수용시설이다. ‘계곡 살인사건’ 이은해, ‘제주 전 남편 살인사건’ 고유정 등 여성 강력사범들이 대거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다. 1급 모범수부터 정신질환자 200여명, 마약사범 170여명 등 고난도 수용자들까지 한곳에 몰려 있어 교정공무원들 사이에서도 근무 강도가 특히 높은 ‘험지’로 꼽힌다. 교도소 내 사건 사고가 늘어나는 원인으로 지적되는 과밀수용 문제는 이곳도 마찬가지다. 청주여자교도소의 정원은 610명이지만 이날 기준 현원은 742명으로 수용 비율이 약 120%에 달했다. 직원 243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사무직원을 제외하고 교대근무체계로 돌아가다보니 야간에는 교도관 18명이 전체 수용자를 관리하는 실정이다. 이날 청주의 낮최고기온은 33도에 달했지만, 취재진이 체험한 약 16.4㎡(약 5평) 넓이의 혼거실 벽면에 설치된 선풍기 두대 만으로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수용자들의 열기를 낮추기 역부족이었다. 정원 5인실인 방이지만 통상 8~10명이 함께 생활한다고 한다. 혹서기엔 온열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하루 한번 얼린 500㎖ 페트병 물이나 보리차 등을 제공하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단 설명이다. 청주여자교도소 관계자는 “본격적인 여름철이 되면 수용자들의 난동과 민원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이처럼 각종 사건·사고에 노출되는 교도관의 직무 스트레스도 위험 수위에 다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의 2024년 ‘교정공무원 정신건강 실태분석’ 결과에 따르면 조사 참여자의 약 20%가 ‘정신건강 위험군’으로 파악됐다. 일반 성인보다 자살 계획 경험률은 약 2.7배, 자살 시도 경험률은 약 1.6배 수준으로 각각 집계됐다. 교도관이 겪는 직무 스트레스의 가장 큰 요인으로는 ‘과밀 수용으로 인한 과중한 업무량 및 인력 부족’이 꼽혔다. 열악한 수용환경이 결국 교화·교정 기능을 약화해 재범 가능성을 키우고 죄질을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게 교정당국의 시각이다. 이날 시설 점검에 나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교정행정은 단순 형벌이 아니라 수용자를 교화시켜 재범을 막는 사회안전자산”이라면서 “과밀화 해소 등 교정 환경을 재정비하는 한편, 24시간 범죄자를 관리하고 각종 위험에 노출되는 교정공무원의 처우를 개선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주유소 기름값 5주 연속 하락… 휘발유 ℓ당 2009.2원

    주유소 기름값 5주 연속 하락… 휘발유 ℓ당 2009.2원

    서울 2051원 최고·대구 1989원 최저경유도 하락… 전국 평균 2004.1원 국내 주유소 휘발유와 경유의 주간 평균 가격이 5주 연속 하락했다. 20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6월 셋째주(14~18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지난주보다 ℓ당 0.7원 내린 2009.2원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가격이 가장 높은 서울은 한 주 전보다 0.3원 내린 2051.2원, 가격이 가장 낮은 대구는 같은 기간 1.0원 하락한 1989.6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경유 평균 판매 가격은 전주 대비 0.7원 하락한 2004.1원을 기록했다. 이번주 국제유가는 미국과 이란의 종전 양해각서(MOU) 이행이 본격화하며 하락했으나,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이 지속되며 하락 폭은 제한됐다. 수입 원유 가격 기준인 두바이유는 지난주보다 13.6달러 내린 74.8달러였다. 국제유가 변동은 통상 2~3주가량 차이를 두고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된다. 한편 정부는 지난 18일 6차 석유 최고가격을 연장했다. 이에 따라 휘발유는 ℓ당 1934원, 경유 1923원, 등유 1530원으로 유지된다.
  • 국가가 만든 감시 장벽… 괴물이 된 인간들

    국가가 만든 감시 장벽… 괴물이 된 인간들

    시민 6.5명마다 정보원 한 명 배치동독시절 비밀경찰을 추적한 작가전직요원부터 피해자까지 인터뷰감시가 파괴하는 영혼의 비극 고발현대 국가·자본의 감시에도 경고장 ‘시민 6.5명마다 한 명.’ 통일이 되면서 세상에서 사라진 옛 동독(독일민주공화국)은 냉전시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치밀한 감시 국가였다. 비밀경찰 슈타지 관계자와 그들이 운용하는 정보원 규모는 히틀러 치하 나치 독일(2000명마다 한 명), 스탈린 치하 소련(5830명마다 한 명)보다도 훨씬 많았다. ‘역사상 가장 완성된 감시 국가’라고 불렸던 동독의 폭력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은폐됐다. 호주 출신의 변호사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이기도 한 작가 애나 펀더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은폐된 진실의 퍼즐을 맞춘다. 동독에 대한 언급을 꺼리는 독일을 대신해 그는 슈타지에게 감시와 박해를 받았던 피해자와 과거 슈타지에서 일했던 가해자를 만나 인터뷰하고 잊힌 기억을 복원한다. “슈타지는 정부가 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둔 내부 군대였다. 그 기관의 임무는 스스로 선택한 어떤 수단이든 가리지 않고 사용해 모든 사람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슈타지는 당신을 찾아오는 손님이 누구인지, 당신이 어디에 전화를 거는지, 심지어는 당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지 아닌지까지 알았다. 그것은 동독 사회 전체에 퍼져나가는 하나의 관료 체제였다.” 1968년 열여섯 나이의 미리암은 경찰이 소방 호스로 사람들에게 물을 뿌리고 체포하는 과정을 보고 부당함을 느낀다. 이에 전단지를 만들어 붙였다는 이유로 그는 ‘국가의 적’이 된다. 그는 두려움 끝에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남편 찰리 역시 의문스런 죽음을 맞이한다. 줄리아는 이탈리아인 남자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슈타지의 표적이 된다. 슈타지는 그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직장을 얻지 못하게 하는 등 모든 인간관계를 고립시킨다. 비극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이 빛을 내기도 한다. 중병에 걸려 장벽 너머 서독 병원에 있는 아이를 둔 파울 부인은 모성애를 시험당한다. 그는 아들을 보게 해줄 테니 동독 탈출을 돕는 조력자를 밀고하라는 제안을 거절한다. 작가는 악이 얼마나 평범하고 관료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지, 과거 슈타지 요원들을 인터뷰하며 ‘악의 평범성’을 폭로한다. 그들은 반성하기보다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에 바쁘다. 동독 시절 정치 선전 방송인 ‘검은 채널’의 진행자였던 폰 슈니츨러는 여전히 자본주의를 맹렬히 비난하며 베를린 장벽과 국경에서 벌어진 살해 행위를 정당한 조치였다고 주장한다. 형편없는 보수에도 이웃을 밀고했던 정보원들, 체제가 붕괴한 후에도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전직 요원들의 모습도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편물을 검열하고 이웃을 감시하게 했던 일들을 마치 우체국에서 서류 작업을 한 것처럼 덤덤하게 회상하는 모습은 섬뜩하게 다가온다. 장벽과 슈타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거대한 국가 권력의 상흔은 ‘머릿속의 장벽’을 남겼다. “나는 이 말을 그저 독일인들이 자신을 여전히 동독인과 서독인으로 규정하는 간단한 방식이라고만 여겼다. (중략) 장벽은 슈타지 출신 남자들의 머릿속에서는 언젠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무언가로, 그리고 피해자들의 머릿속에서는 무시무시한 가능성으로 계속 존재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수십년이 흘렀다. 냉전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일까. 저자가 맞춰낸 퍼즐은 스마트폰 위치 추적, 인터넷 검색 기록 데이터, 빅데이터 등 모든 것이 기록되고 추적되는 21세기에도 국가와 거대 자본의 감시는 여전하다는 것을 경고한다.
  • 내년에도 최저임금 차등 적용 안 한다

    내년에도 최저임금 차등 적용 안 한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최저임금이 업종별 구분 없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7차 전원회의를 열고 2027년도 적용 최저임금의 ‘업종별 구분 여부’를 표결에 부쳤다. 그 결과 반대 14표, 찬성 11표, 무효 1표로 출석위원 과반에 미치지 못해 안건은 부결됐다. 이번 표결에는 근로자위원 9명 중 8명과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등 총 26명이 참여했다. 업종별 구분 적용은 지난해에도 총 27명이 투표한 결과 반대 15표, 찬성 11표, 무효 1표로 부결된 바 있다. 사용자 측은 경기 침체로 인건비 부담이 커진 만큼 숙박·음식업 등 일부 업종에는 다른 업종보다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근로자 측은 특정 업종에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것은 노동자 차별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은 해마다 노사가 첨예하게 맞서는 쟁점이다. 최저임금법 4조는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적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제도 시행 첫해인 1988년에는 한시적으로 차등 적용된 바 있다. 그러나 저임금 업종에 대한 차별 우려가 제기되면서 1989년부터 현재까지 단일 최저임금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앞선 회의에서 부결된 도급제 노동자 최저임금 적용 문제와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 적용 논의는 내년 최임위에서 다시 다뤄질 전망이다. 오는 23일 열리는 최임위 8차 전원회의부터는 2027년에 적용될 최저임금 수준을 두고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다.
  • “정부가 하늘에서 살인 진드기 살포 중”…환자 50배 폭증, 음모론까지 나온 캐나다 [지금, 지구]

    “정부가 하늘에서 살인 진드기 살포 중”…환자 50배 폭증, 음모론까지 나온 캐나다 [지금, 지구]

    “이게 뭐야!” “꺄악!” 여기저기서 들리는 비명. 더운 날씨에도 거리에 우뚝 서 입고 있던 옷을 확인하는 사람들. 그들의 시선 끝에는 시커먼 벌레들이 바글댄다. 스치기만 해도 살점을 파고들어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핏빛 습격. 한 해 수천명을 위협하는 ‘살인 진드기’의 공포가 퍼지고 있다. 소리 없이 다가와 인간의 일상을 잠식하는 생태계의 역습, 기후 위기가 보낸 가장 잔인한 자객이다. 기후 위기로 인한 기온 상승으로 그동안 추운 날씨 덕에 ‘진드기 청정지역’으로 통했던 캐나다 전역이 진드기 공습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과거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치명적인 매개 감염병 환자가 급증하는가 하면, 온라인상에서는 “정부가 하늘에서 진드기를 살포하고 있다”는 음모론까지 퍼지고 있다. 서식지 확장에 감염병 폭증…16년 만에 환자 ‘50배’ 급증최근 캐나다 공영방송 CBC 등에 따르면 질병을 매개하는 외래종 진드기들이 미국 국경을 넘어 매년 35~55㎞의 속도로 캐나다 북부를 향해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캐나다 구엘프 대학교의 케이티 클로우 교수는 “현재 캐나다 인구의 대다수가 거주하는 미국 국경 인근 지역은 이미 진드기가 서식하기에 완벽한 기후 조건을 갖췄다”며 “아직 진드기가 발견되지 않은 남부 일부 지역도 향후 10년 안에 진드기 서식지로 바뀔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장 비상인 것은 라임병 매개체인 ‘사슴진드기’(검은다리진드기)의 확산이다. 1989년 온타리오주 남부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현재는 캐나다 전역으로 퍼졌다. 이에 캐나다 내 라임병 환자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보건당국 통계에 따르면 2009년 불과 144건이었던 캐나다 내 라임병 확진 사례는 2025년 잠정 7105건으로 50배가량 폭증했다. 전문가들은 실제 감염자 수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美 북동부 풍토병 ‘라임병’…합병증 발생 가능성도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미국 북동부 지역의 풍토병인 라임병은 곤충인 진드기가 사람을 무는 과정에서 나선균의 일종인 보렐리아균이 신체에 침범해 여러 기관에 병을 일으키는 감염성 질환을 의미한다. 진드기는 주로 동물, 특히 사슴이나 작은 설치류의 몸에 붙어 다닌다. 사람이 보렐리아균에 감염된 진드기에 물리면 라임병에 걸리게 된다. 라임병은 초기에 치료하면 보통 완치되지만 진단이 늦어지거나 항생제 치료가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다른 질환과 함께 라임병이 발병한 경우, 라임병 환자에게 면역 저하가 있는 경우에는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항생제 치료를 진행하더라도 피로감, 근골격계 통증, 신경계 증상이 수년 동안 지속될 수 있으며, 드물게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진드기가 좋아하는 ‘여름’ 길어져…숲 개발도 한몫과학계는 이 같은 진드기의 급증이 수십 년간 지속된 기후 위기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기존 캐나다의 겨울과 봄은 진드기가 활동하기에 너무 추워 자연 도태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기후 위기로 봄이 앞당겨지고 여름이 길어지면서 진드기가 먹이를 먹고 번식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확보됐다. 클로우 교수는 “매년 수백만 마리의 진드기가 철새나 사슴, 설치류 등에 붙어 캐나다로 유입된다”며 “진드기는 낙엽 밑에 숨으면 혹독한 겨울 한파도 버텨낼 만큼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에, 겨울이 춥다고 해서 죽지 않는다. 오히려 여름이 길어져 번식 속도가 빨라진 것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도심 근교의 무분별한 주택 개발로 인한 ‘산림 파편화’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녹지가 쪼개지면서 진드기의 주 숙주가 되는 사슴과 쥐 등의 설치류가 교외 주거지역으로 몰려들었고, 자연스럽게 인간과의 접촉 면적이 넓어졌다는 분석이다. “하늘에서 살포?” 음모론 진화 나선 당국…예방수칙은진드기 개체 수가 체감될 정도로 급증하자 최근 소셜미디어(SNS) 틱톡 등 온라인상에서는 “정부가 비행기에서 진드기를 살포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음모론 영상이 조회수 20만회 이상을 기록하며 확산하기도 했다. 보건당국과 전문가들은 기후 데이터가 증명하는 과학적 현상이라며 음모론 진화에 나서는 한편, 진드기 확산이 ‘뉴 노멀’(새로운 기준)이 된 만큼 일상 속 예방수칙을 철저히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 질병통제센터의 네가 엘미에 박사는 야외 활동 시 다음과 같은 수칙을 권고했다. 먼저 야외 활동 시에는 밝은색 긴소매 옷을 입고, 바지 끝단을 양말 안에 집어넣어 피부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또한 진드기 등 곤충 기피제를 자주 뿌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 외출 후에는 즉시 샤워해 몸에 붙은 진드기를 씻어내고, 입었던 옷은 진드기가 박멸되도록 건조기에 넣고 고온으로 돌려야 한다. 인간이 저지른 환경 오염은 지구 온난화를 불렀고 이는 결국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더 이상 기후 위기는 남 일이 아닌, 현재 우리가 직면한 뼈 아픈 현실입니다. [지금, 지구]는 지금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후 위기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 허락 없이는 국경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나라 [한ZOOM]

    허락 없이는 국경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나라 [한ZOOM]

    그때는 공항에 가는 것 자체가 ‘설레는 여행’이었다. 비행기를 타는 사람을 배웅하러 가는 이에게도, 공항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하러 가는 이에게도 공항은 동경의 공간이었다. ‘공항에 다녀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랑거리가 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당시 여권을 들고 있던 사람은 영웅과 다름없었다. 다만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자유총연맹’이 주관하는 반공 소양 교육을 반드시 이수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험난한 여정을 마친 이에게는 ‘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제목의 소책자가 마치 전리품처럼 쥐어졌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 심지어 민주화 운동과 같은 반정부 활동 이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여권 발급 자체가 거부되기도 했다. 그때 그 시절, 여권은 사회적 엘리트 계층에 속해 있음을 보여주는 증명서와 다름없었다. 약 40년이 흐른 오늘날, 그때의 이야기는 마치 전설처럼 들린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누구나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다. 여권은 더 이상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신분증과 같은 평범한 일상이 됐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누구나 가질 수 있게 된 이 작은 신분증이 전 세계 대부분 국가의 국경을 넘어설 수 있는 강력한 ‘열쇠’가 됐다. 한 세대 전에는 ‘국가의 통제’를 의미하던 문서가, 이제는 세계가 탐내는 ‘자유의 증거’가 된 것이다. ●범죄조직이 군침을 흘리는 여권 영국의 ‘헨리앤드파트너스’(Henley & Partners)가 발표한 ‘헨리 여권 지수’(The Henley Passport Index)에 따르면, 대한민국 여권은 무비자 입국 가능 국가 수 188개국으로 일본과 함께 공동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싱가포르 여권이 192개국으로 1위이며, 미국 여권은 179개국으로 10위인 것을 고려하면 대한민국 여권의 위상이 가히 독보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 여권의 위상이 올라갈수록, 이를 가지고자 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 여권은 범죄 조직의 주요 표적이 됐고, 도난당한 여권은 암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신세가 됐다. 특히 과거의 사진 부착식 여권은 위조하기가 쉬워 암시장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되고 있으며, 보안기술이 강화된 전자여권은 위조 난이도가 높아 오히려 저렴하게 거래된다고 한다. 대한민국 여권이 범죄조직의 표적이 된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국경이 없던 세상 사람들이 처음부터 여권을 들고 다닌 것은 아니었다. 고대 로마에는 ‘디플로마’(Diploma), 중세시대에는 ‘통행보장서’(Safe Conduct Document)와 같이 여권의 기능을 하는 문서가 있었다. 이와 같이 국가가 이동을 통제하려는 제도는 문명의 탄생과 함께 존재했다. 과거 사회에서 사람은 곧 노동의 공급자이자 조세와 징집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이동은 곧 그 사회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했다. 사회는 그 이탈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고, 통행을 허용하는 공식 문서인 여권은 ‘보호’라기보다 ‘통제’의 수단이었다. 그런데 19세기에 이르러 흥미로운 역전이 일어났다. 철도 인프라가 폭발적으로 확장되고 국가 간 여행 인구가 폭증하자, 현실적으로 여권법을 집행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결국 각국 정부는 여권 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대응했고, 19세기 후반부터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유럽 안에서의 이동에는 여권이 거의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자유이동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자유이동 시대의 종지부 서서히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유럽 전역에 새로운 동맹 구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각국 정부는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전쟁은 자유이동 시대의 종지부를 찍었다. 엄격한 국경 통제가 강화됐고, 여권의 목적은 단순한 통행 허가에서 국가 신분 확인과 통제의 수단으로 바뀌었다. 인류가 스스로 만든 철도가 자유를 확장했고, 스스로 시작한 전쟁이 그 자유를 다시 닫아버린 것이다. ●모젤강의 유람선 위에서 룩셈부르크 남쪽 끝, 독일과 프랑스 국경이 맞닿은 인구 2000명 남짓의 작은 마을 ‘솅겐(Schengen)’. 그리고 이 마을을 끼고 흐르는 모젤강. 1985년 6월 14일 모젤강 위 유람선 ‘프린세스 마리 아스트리드호’에 서독,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의 대표들이 올라탔다. 1980년대 유럽경제공동체(EEC) 10개국 중 유럽 통합을 위해 모든 회원국이 국경을 개방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을 때, 가장 호의적이었던 5개국이 먼저 나선 것이다. 이들은 국경 철폐와 검문 폐지를 통해 주민들이 자유롭게 국경을 통과하고 관세 통제를 없애자는 내용의 ‘솅겐협정’에 서명했다. 유람선 위에서 서명이 이루어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솅겐은 룩셈부르크, 독일, 프랑스 세 나라의 국경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강 위에 배를 띄우면 어느 한 나라의 영토도 아닌 공간이 된다. 다섯 나라의 대표들이 어느 나라 땅도 아닌 물 위에서 만나 ‘이제 우리 사이의 경계를 지우자’고 합의한 것이다. 이보다 더 상징적인 서명 장소는 없었을 것이다. 1990년 제2차 협정을 통해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된 후 협정은 1995년 정식 발효됐다. 그리고 2026년 현재 솅겐협정 가입국은 처음 5개국에서 29개국으로 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국경을 탄생시킨 공포였다면, 솅겐협정은 유럽이 그 공포를 스스로 걷어낸 용기였다. ●1985년,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 솅겐협정이 체결된 그해, 대한민국에서 여행 목적으로 여권을 발급받으려면 만 50세 이상이어야 했고, 200만원을 1년 동안 은행에 예치해야 했다. 나이와 재산이 모두 갖춰진 사람만이 해외에 나갈 수 있었다. 1980년대까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고도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도,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들의 해외 관광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았다. 이는 경제적·사회적 여건의 문제가 아니었다. 외화 유출을 방지해 경제개발 자금을 확보하고, 권위주의 체제의 국민 통제와 안보 논리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전환점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1987년부터 여권 발급을 위한 연령 제한이 계속해서 낮아졌고,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자신감과 국제화의 물결 속에서 1989년 마침내 누구나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전면 자유화의 시대가 열렸다.
  • “꿈이 있어 삼성 퇴사, 더 늦기 전에”… ‘참교육’ 배우 진기주의 12년 전 이메일 화제

    “꿈이 있어 삼성 퇴사, 더 늦기 전에”… ‘참교육’ 배우 진기주의 12년 전 이메일 화제

    넷플릭스 ‘참교육’ 45개국 1위 돌풍주연배우 진기주 이색 이력도 화제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이 전 세계 45개국에서 시청 순위 1위에 오르며 또 한 번 K드라마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주연 배우 진기주(37)가 과거 삼성SDS를 퇴사하며 동료들에게 보낸 이메일이 화제다. ‘참교육’ 흥행 이후 최근 여러 소셜미디어(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진기주가 첫 직장이었던 삼성SDS를 떠나면서 남긴 이메일이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진기주는 이메일에서 “첫 직장에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기에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며 “좋은 곳이었기에 퇴사를 결정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지금 도전해 보지 않으면 10년, 20년 뒤에 후회할 것 같은 꿈이 있어 용기 내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어 “적응은 무서운 체념을 부른다고 하더라.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칼을 뽑아 들었다”면서 “더 큰 세상에서 더 많이 경험하고, 다시 만나 뵐 수 있으면 좋겠다. 삼성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이 됐지만 종종 안부 연락드리겠다”고 적었다. 이메일을 접한 네티즌들은 “입사 동기들이 아직까지 커피 차 보내주는 거 보면 주변에 진짜 잘하는 듯”, “뭘 해도 성공했을 도전정신과 사회성”, “2011년 입사면 지금 파트장급” 등 반응을 보였다. 진기주의 남다른 이력도 화제다. 1989년생인 진기주는 중앙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SDS에 입사했다. 삼성SDS 퇴사 후에는 G1강원민방에서 수습기자로 근무하기도 했다. 이후 슈퍼모델 선발대회에 도전했고, 2015년 드라마 ‘두 번째 스무살’(tvN)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진기주는 2021년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대기업 사원, 기자, 슈퍼모델을 거쳐 배우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바 있다. 당시 그는 삼성SDS 재직 시절에 대해 “출퇴근할 때 표정이 점점 안 좋아졌나 보다. 엄마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보라’고 말씀해 주셨다”며 “취업이 너무 어려웠던 시기였기에 쉽게 용기를 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퇴사 당시 선배와 동기들에게 보낸 메일에 ‘더 이상 고민만 하다가는 늦을 것 같아 칼을 뺐다’고 썼더라”며 “사실은 연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주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비웃을까 봐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한편 진기주는 ‘참교육’에서 교권보호국 조사관 임한림 역을 맡아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 [서울데이터랩]코스피 거래상위 종목 혼조세…대원전선 급등, 삼성전자는 거래대금 1위

    [서울데이터랩]코스피 거래상위 종목 혼조세…대원전선 급등, 삼성전자는 거래대금 1위

    17일 오후 12시 30분 기준 코스피 거래상위 종목은 종목별로 등락이 엇갈리는 가운데 전선, 철강, 건설, 조선 관련주 중심의 강세가 눈에 띄었다. 거래량 상위권에서는 대원전선(006340)이 3427만 3763주로 가장 많은 손바뀜을 기록했고, 한화생명(088350)과 KBI동양철관(008970)도 각각 2591만 5865주, 1989만 4198주가 거래되며 투자자 관심이 집중됐다. 개별 종목별로 보면 대원전선은 1만 2740원으로 전일 대비 14.26% 상승했고, 대한전선(001440)도 4만 1600원으로 2.21% 올랐다. KBI동양철관은 11.12%, 하이스틸(071090)은 11.85% 상승해 소재·인프라 관련 종목 전반의 강세가 확인됐다. 건설주 가운데서는 일성건설(013360)이 17.89% 급등한 반면 대우건설(047040)은 6.92% 하락해 종목별 차별화가 뚜렷했다. 금융주와 일부 대형주 흐름도 엇갈렸다. 한화생명은 5890원으로 6.13% 상승했고 케이뱅크(279570)도 4.51% 올랐다. 반면 삼성전자(005930)는 33만 6500원으로 1.90% 내렸고, 한온시스템(018880)은 5.88%, 후성(093370)은 7.45% 하락했다. SK이터닉스(475150)도 0.36% 약세를 보였다. 조선과 방산·중공업 관련 종목은 상대적으로 견조했다. 한화오션(042660)은 13만 8200원으로 6.97% 상승했고 삼성중공업(010140)도 4.80% 올랐다. 포스코스틸리온(058430)은 7.49% 상승하며 강세 흐름에 동참했다. 반면 화신(010690)은 2.14% 하락했고 SK네트웍스(001740)는 0.25% 오르는 데 그쳤다. 거래대금 기준으로는 삼성전자가 298만 7009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고, 한화오션 61만 1180, 대원전선 43만 9873, 대우건설 36만 9681, 대한전선 32만 7172 등이 뒤를 이었다. 시가총액 상위 대형주인 삼성전자와 한화오션에 대규모 자금이 몰리는 가운데, 중소형 테마주로는 대원전선과 일성건설, 티웨이홀딩스(004870) 등에 매수세가 유입되는 양상이다. 전체적으로 이날 코스피 거래상위 종목군은 대형 기술주와 일부 실적주가 조정을 받는 사이 전선·건설·조선 테마로 순환매가 확산되는 모습이다. 장중 변동성이 큰 만큼 수급 지속 여부가 오후장 주가 향방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서울신문과 MetaVX의 생성형 AI가 함께 작성한 기사입니다]
  • [마감시황] 코스피, 외국인 매도에도 7763.95 마감…SK하이닉스 강세에 반등

    [마감시황] 코스피, 외국인 매도에도 7763.95 마감…SK하이닉스 강세에 반등

    11일 오후 3시 30분 기준,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33.13포인트(0.43%) 오른 7763.95에 거래를 마쳤다. 지수는 7509.62에 출발한 뒤 장중 7394.46까지 밀렸지만 7800.62까지 오르며 반등에 성공했다. 거래량은 4억 7264만 5000주, 거래대금은 45조 1989억 1900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날 시장은 최근 급락에 따른 되돌림 속에서도 장중 변동성이 크게 나타났다. 최근 5거래일 흐름을 보면 코스피는 6월 5일 8160.59, 8일 7484.41, 9일 8096.93, 10일 7730.82를 기록한 데 이어 이날 7763.95로 소폭 반등했다. 장 초반 약세를 보였지만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며 상승 전환했다. 수급별로는 개인이 2조 662억 원을 순매수했고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1조 4649억 원, 7432억 원을 순매도했다. 프로그램 매매는 차익거래 4223억 원 순매도, 비차익거래 1조 9555억 원 순매도로 전체 2조 3778억 원 매도 우위를 나타냈다. 개인 매수에도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 물량이 지수 상단을 눌렀다. 종목별로는 시가총액 상위주 흐름이 엇갈렸다. SK하이닉스(000660)는 5만 3000원(2.59%) 오른 210만 1000원에 마감하며 강세를 보였고 SK스퀘어(402340)는 3.80% 상승했다. 삼성전자우(005935)는 1.04%, HD현대중공업(329180)은 0.78%, 삼성물산(028260)은 0.61% 올랐다. 반면 삼성전자(005930)는 3500원(1.16%) 내린 29만 9000원으로 마감해 30만 원을 회복하지 못했고, 현대차(005380)는 0.83%,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0.26%, 삼성생명(032830)은 0.82% 하락했다. 삼성전기(009150)는 보합이었다. 시장 전반에서는 상승 종목이 576개로 하락 종목 320개를 웃돌았다. 상한가 3개 종목이 나왔고 보합은 25개였다. 상승률 상위에는 STX그린로지스가 30.00% 오른 3380원으로 이름을 올렸고, 마니커는 29.97%, 미래에셋생명은 29.87% 급등했다. 이수화학은 23.64%, 삼화콘덴서는 21.62% 상승했다. 반대로 일정실업은 17.99% 내렸고 SK오션플랜트 9.89%, SK네트웍스 9.88%, 만호제강 8.60%, SK이터닉스 8.57% 하락했다. 이날 증시는 반도체 강세와 환율 상승, 대외 불안 요인이 뒤섞인 흐름을 보였다. 반도체와 바이오 관련 종목 강세에 힘입어 코스닥도 큰 폭으로 올랐지만, 유가 상승과 중동 긴장 고조는 투자 심리를 제약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520원대로 다시 올라서며 높은 수준의 등락을 이어갔다. 국제유가 상승과 달러 강세가 겹치면서 외국인 매도 압력도 지속됐다. 당분간 국내 증시는 반도체 중심의 순환매와 외국인 수급, 환율 흐름이 지수 방향을 좌우할 전망이다. [서울신문과 MetaVX의 생성형 AI가 함께 작성한 기사입니다]
  • ‘만년 적자’ 대일본 수출, 올해는 판 뒤집히나 [강기자의 세종실록]

    ‘만년 적자’ 대일본 수출, 올해는 판 뒤집히나 [강기자의 세종실록]

    대일본 수출 비중 53년 만에 39%→3% 반도체 소재 국산화·수입국 다변화 영향 韓 반도체 수출 늘면 日도 덩달아 성장 “한일 반도체 밸류체인 연결돼 있어” 日 반도체 소부장 강해…비메모리 우세 ‘한류 열풍’ 화장품 K뷰티…日수입 4위 세계 러브콜을 받고 있는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한국 수출이 월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거듭 경신하고 있습니다. 대일본 수출 역시 4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일본과의 교역에서 ‘만년 적자’였던 한국이 처음으로 연간 수출액 기준 일본을 앞지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때 한국 수출 전체 비중의 40%에 육박했던 대일본 수출 비중은 이제 3%대로 매우 작아졌습니다. 어느덧 일본에 의존하지 않고도 한국 경제의 주축인 수출에 큰 지장이 없을 만큼 대등하게 성장했다는 의미입니다. 과연 올해 한국은 대일본 수출에서 흑자를 내는 첫 ‘뒤집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3일 산업통상부와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달 대일본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1.8% 증가한 26억 5000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대일본 수출은 지난해 4.4% 감소했지만 올 들어 2월 5.3%로 상승 전환한 뒤 3월 33.9%, 4월 28.4%로 4개월째 상승세를 탔습니다. 이는 일본의 인공지능(AI)·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수요가 크게 늘면서 반도체 수출이 94.5% 급증한 것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석유화학과 석유제품도 수출 단가 상승 영향으로 각각 58.8%, 22.4% 증가했습니다. 장상식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통화에서 “최근 한국의 대일 수출은 석유제품, 반도체, 화장품 등의 호조로 무역적자가 완화되고 있다”며 “특히 일본이 AI·클라우드 데이터센터 투자처로 부상하면서 아마존웹서비스(AWS)·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의 투자가 잇따라 한국 서버용 반도체 수출이 크게 늘었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의 세계 수출에서 일본의 비중은 반도체 소재의 국산화와 수출국 다변화 정책 속에 점차 줄어 지난 4월에는 3.4%로 6위에 머물렀습니다. 한국의 4대 교역국(중국·미국·베트남·홍콩)에도 못 든 셈이죠. 국가데이터처 통계에 따르면 일본은 1973년 한국 수출의 38.5%를 차지하며 정점을 찍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 경제는 매우 미약해 수출 규모도 적었고 대부분을 미국과 일본에 의존했습니다. 그로부터 15년 지난 1989년만 해도 일본은 한국 수출의 21.6%를 차지하며 미국에 이어 2위로 비중이 컸습니다. 그러나 1992년 한·중 수교에 이어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중국에 주요 교역국 자리를 내어줬습니다. 대일본 수출 비중은 1996년 12.2%, 2006년 8.2%, 2016년 4.9%로 경제 성장에 따라 양국 간 교역 규모가 늘어난 것과는 별개로 수출 비중은 올해 3%대까지 53년 만에 11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사실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 된 건 일본의 자충수도 있었습니다. 당초 반도체를 선도하는 일본이었지만 한국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고 2019년 7월 반도체 핵심 소재 3종(불화수소·포토레지스트·플루오린 폴리이미드)에 대한 수출 규제를 발표했습니다.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생산을 못 하게 막아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주기 위해서였죠. 그해 8월에는 한국을 수출심사우대국 명단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습니다. 당시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상차 일본을 방문한 한국 산업부 공무원들을 국가 간 회의 장소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짐짝 쌓인 창고 같은 곳으로 안내하며 굴욕감을 주기도 했죠.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한국 정부 역시 ‘화이트리스트’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등 맞불을 놓았습니다. 이후 절치부심하며 기업과 함께 반도체 소재 국산화로 맞섰습니다. 대형마트 등 기업들과 시민들도 ‘안 사고 안 먹기’ 등 일본산 불매 운동에 대거 참여했죠. 당시 관련 부서에서 대응했던 산업부 관계자는 “한국에도 일본이 수출 규제했던 불화수소 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이 있었다”며 “다만 당시 대기업들은 가격경쟁력과 노하우를 앞세운 일본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들의 로비에 중소기업이 생산한 한국산 제품을 일본 기업을 상대하는 협상용으로만 활용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후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일본산 제품을 수입할 수 없게 되자 일본에 크게 의존했던 것에 위험성을 깨닫고 국내 기업 제품으로 구매선을 바꾸며 품질 향상을 위해 같이 노력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제품이든 계속 써봐야 문제점을 개선하고 품질도 더 좋아지게 마련이죠. 한국은 반도체 소부장의 국산 기술 개발과 함께 일본 외 수입국 다변화에도 나섰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일본 반도체 장비 의존도를 크게 낮추는 데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더 이상 일본이 반도체를 약점 삼아 ‘강짜’를 부려도 한국 기업이 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할 일은 없게 된 것이죠. 일본은 이후 4년 만인 2023년 4월 한국이 먼저 일본을 화이트리스트 대상국으로 복원하자 이에 화답해 두 달 만인 6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대상국으로 복원하며 지난했던 한일 간 수출 규제 갈등을 끝냈습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국산 반도체 소부장 애용은 이전보다 나아졌지만 사실 일본산 반도체 소부장은 대체 불가한 품질을 갖춘 것으로 유명합니다. AI 데이터센터 등 반도체 수요 증가로 삼성전자 등 기업들은 제품 생산을 늘리기 위해 일본산 반도체 장비 수입을 늘렸습니다. 이에 따라 대일본 수입액은 지난달 일본산 반도체 제조용 장비 수입 등이 20.6% 증가하면서 대일 무역수지가 16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이 일본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는 제품이 바로 반도체입니다. 지난해 대일본 제품 수입액은 489억 달러(약 74조원) 규모로 전년보다 2.8% 늘었습니다. 수입품 1위, 2위가 각각 반도체, 반도체 제조용 장비입니다. 지난해 일본산 반도체 수입액은 83억 4600만 달러(12조 7000억원), 반도체 제조용 장비는 63억 4300만 달러(9조 67000억원)으로 이 2개 품목이 전체 일본산 수입액의 3분의 1를 차지합니다. 이것은 한국과 일본의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반도체 수출이 늘수록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일본 반도체와 반도체 소부장 수입을 늘리니 같이 커가는 형국인 것이죠. 반도체를 포함해 전반적으로 대일본 수출이 늘었는데도 대일본 무역수지가 왜 적자인지 이해가 되시죠? 산업부 관계자는 “한국과 일본은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 산업의 밸류체인이 연결돼 있다”며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가 강하지만 일본은 도쿄 일렉트론(TEL), 히타치 하이테크 등 반도체 장비 기업이 강해 반도체 수출이 늘면 일본 반도체 장비 수입도 같이 느는 구조”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한국의 대일본 적자는 206억 달러입니다. 다만 올해는 이보다 수출이 늘면서 적자가 개선될 여지가 크다고 정부는 보고 있습니다. 이미 산업부와 산업연구원은 세계무역기구(WTO)가 확인해줬듯이 1분기(1~3월) 세계 수출 5위로 일본(6위)을 누른 데다 현 추세대로라면 사상 최대인 9200억 달러(1401조원) 이상(산업연구원 전망) 수출 실적을 내며 올해 수출 5강을 확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9500억 달러를 전망해서 1조 달러 무역 신기록 가능성도 나왔습니다. 한국의 지난해 수출액은 7097억 달러(1080조원)로 역대 최대였는데 반도체 슈퍼 사이클 속에 8000억 달러를 패스하고 바로 9000억 달러를 넘어 1조 달러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특히 지금 일본에서는 한류 열풍 속에 한국산 화장품 등 K뷰티와 비누·치약 등 소비재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대일본 수출 4위가 바로 화장품·비누·치약으로 10억 9300억 달러(1조 6600억원)에 달합니다. 올해는 1~4월 누적 전년 대비 14.2%가 증가했습니다. 정부와 업계는 일본 내 한국 화장품과 소비재 선호가 매우 높아 이 분야의 수출을 더욱 강화할 예정입니다. 반도체 분야 아닌 다른 품목에서 수출이 더욱 크게 늘면 대일본 무역수지도 당연히 개선될 여지가 있습니다. 대일본과의 교역에서 무역수지를 완전히 흑자로 돌리기는 어려워도 적자 폭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강감찬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대일본 무역수지는 1~5월까지 86억 달러 적자지만 지난해 89억 달러보다는 개선됐다”며 “한국이 상대적으로 약한 반도체 장비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한편 식품, 바이오, 화장품 등 일본의 선호와 수입이 늘고 있는 품목의 수출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장상식 원장은 “한국의 대일본 최대 수입 품목이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인데 주로 비메모리, 시스템 반도체로 일본이 강점을 가진 전력 반도체, 차량용 초소형 컴퓨터 칩(MCU) 등 레거시·특화형 반도체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장 원장은 “반도체 장비, 비메모리 수입이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향후 대일본 무역은 무역적자가 점차 축소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습니다. 한국은 이제 일본과 대등하거나 K콘텐츠 등 일부 분야에서는 훨씬 더 우위를 점할 정도로 세계 속에서 수출대국으로서의 지위가 높아졌습니다. 역사를 따져보면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지만 양국 모두 제조강국으로서 반도체 등 주요 산업이 오랜 기간 얽혀 있는 만큼 이젠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 관계가 된 셈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중동 전쟁으로 불안한 에너지 수급 위기와 미국·유럽연합(EU) 등 주요 우방국의 관세 압박 등 불확실한 대외 여건이 이어지고 있지만, 한국 수출은 그 와중에도 초격차 기술 확보와 끊임없는 투자로 성장세를 이어가는 탄탄해진 경제 펀더멘털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대일본 교역에서도 ‘만년 적자’ 꼬리표를 떼고 무역 흑자를 달성하는 날이 머지 않아 보입니다. ‘강 기자의 세종실록’은 대한민국 행정의 수도 세종시에서 생산되는 정부 정책과 관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생생하게 보도하는 코너입니다. 세종시에 포진한 각 정부부처가 내놓는 모든 정책이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고, 오늘의 행정이 내일의 역사가 된다는 관점으로 ‘세종 현대사(現代史)’를 기록하겠습니다.
  • 해경, 고무보트로 태안 밀입국… 中 반체제인사 검찰 송치

    해경, 고무보트로 태안 밀입국… 中 반체제인사 검찰 송치

    고무보트를 타고 대한민국 영해에 들어왔다가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체포된 중국 반체제 인사 둥광핑(68)이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됐다. 10일 태안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를 받는 둥광핑을 불구속 송치했다. 앞서 법원은 지난달 28일 해경이 둥광핑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도망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그는 실질심사에서 “한국이나 일본을 거쳐 캐나다에 있는 아내와 딸에게 가려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불법 밀입국 의도도 없었고 난민 지위 획득 과정을 진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에 나오면서 취재진에게도 중국말로 “캐나다로 망명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캐나다에는 그의 가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둥광핑은 지난 25일 오후 9시 36분쯤 길이 3.3m 고무보트를 타고 대한민국 영해로 들어왔다가 격비도 북서방 10해리(약 18㎞) 부근에서 해경에 의해 체포됐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둥광핑은 1989년 발생한 톈안먼 사태 관련 서한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1999년 중국 경찰에서 파면됐다. 2014년 톈안먼 추모 행사에 참여한 뒤로는 중국 당국에 구금됐다 여러 차례 탈출, 송환되는 과정을 겪어왔다.
  • “촉법소년 재범률 성인 3배, 분리 시스템 구축”…37년만 첫 ‘소년범 전담’ 안산청소년꿈키움센터

    “촉법소년 재범률 성인 3배, 분리 시스템 구축”…37년만 첫 ‘소년범 전담’ 안산청소년꿈키움센터

    교복 상의와 체육복 하의를 입은 더벅머리 중학생은 경기 안산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30분간 면담을 받고 나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보호관찰 소년범으로 자신의 일상을 털어놔야 하는 상황이지만, 성인범과 섞이지 않는 환경 덕분에 그의 어머니는 비교적 평안한 얼굴로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법무부는 9일 안산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소년재범률 감소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1989년 보호관찰법이 시행된 뒤 소년을 성인과 분리해 관리하는 건 올해가 처음이다. 영국의 소년비행 예방 제도 등을 참고해 성인으로부터 범죄 학습 등 악영향을 받지 않을 소년 전담 시설이 처음으로 마련됐다. 법무부는 촉법소년 범죄 증가로 연령(만 10~13세) 하향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소년범의 재범률을 낮출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년 보호관찰 대상자의 재범률은 지난해 기준 12.3%로, 성인(3.9%)의 3배 이상이다. 보호관찰 촉법소년은 2020년 703명에서 2024년 1535명으로 2배 넘게 늘었다. 지난 3월 30일부터 안산을 포함해 서울과 광주에서도 ‘소년 사법 통합기관’이 시범 운영되고 있다. 청소년비행예방센터에 소년 보호관찰 기능을 합친 것이다. 안산청소년꿈키움센터는 안산보호관찰소에서 성인범과 함께 하던 500여명의 소년범을 따로 관리하고 있다. 센터는 면담·주거지 방문, 직업 훈련, 취업 알선, 복학 주선, 법원의 사회봉사명령·수강명령 시행 등 소년범 관련 업무를 수행한다. 간이 구조물로 칸막이가 세워진 보호관찰소의 면담실과 달리 청소년꿈키움센터는 원목을 활용해 청소년 친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대기실에서 소년들이 성인과 마주칠 가능성이 사라지면서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도 사라졌다. 법무부는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스마트워치형 감독 장치를 부착하는 소년범의 범위를 확대하고, 재범률이 53%에 달하는 야간 시간(오후 9시~오전 6시)에는 외출을 제한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AI 데이터 분석을 활용한 ‘소년범죄 종합분석시스템’을 개발한다. 김동하 법무부 소년범죄예방팀장은 “AI를 활용하면 재범 위험성 평가 때 학교생활, 가족 관계 등 소년범의 환경 변화까지 실시간으로 반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발길은 흐른다, 역사적 원형이 있는 도시로[모종린의 문화로 읽는 AI시대]

    발길은 흐른다, 역사적 원형이 있는 도시로[모종린의 문화로 읽는 AI시대]

    조선시대 25개 거점 도시들 면면 물자·문화 모이고 축적되면서도향교·시장 등 원도심 공간의 기초로골목망·보행중심의 도시로 재탄생5차례 국토 개발의 광풍 속에서도살아남아 새 브랜드의 기초로 활용AI시대가 원하는 경험의 보물창고역사의 공간이 미래 경제 무대로인구 소멸의 시대 ‘부활 디딤돌’ 기대 지역소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러나 모든 비수도권 소도시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도시는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모이고, 새로운 브랜드가 탄생하며, 주말이면 관광객으로 골목이 붐빈다. 전주·경주·강릉·진주·제주가 대표적이다. 사람과 브랜드를 끌어들이는 이들 소도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상식적으로는 국가의 투자와 개발이 집중된 도시일수록 원도심도 활력을 유지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정반대다. 산업단지·혁신도시·신도시가 들어선 곳일수록 원도심은 쇠퇴했고 오히려 개발에서 비켜난 도시들이 원도심의 매력을 지켜냈다. 이 역설을 이해하는 열쇠는 뜻밖에도 240년 전 정조가 반포한 ‘대전통편’에 있다. ●조선시대 25개 핵심 거점 ‘대전통편’(1785) 기준으로 남한 지역의 목(牧) 이상 행정 거점은 24곳이었다. 한성부(서울) 1곳, 유수부의 강화·광주(경기)·수원 등 3곳, 부(府)의 경주·전주 등 2곳, 대도호부의 안동·강릉·창원 등 3곳 그리고 목(牧)의 충주·청주·공주·홍주(홍성)·원주·나주·광주(전남)·제주·능주(화순)·상주·진주·성주·양주·파주·여주 등 15곳이다. 여기에 공식 등급은 도호부였지만 1601년부터 200년 이상 경상감영이 설치되어 경상도 전체를 관할한 대구를 더해 25개를 핵심 거점으로 삼는다. 이 25개 거점은 수백 년간 지역의 인재·물자·문화가 모이고 축적되는 뇌(腦)였다. 관아·향교·객사·시장이 읍치를 중심으로 배치되었고 그 집적이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원도심 공간의 기초가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원도심의 ‘구조’란 작은 필지, 촘촘한 골목망, 보행 중심의 공간 구성처럼 사람과 상업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도시의 물리적 조건을 의미한다. 문제는 개항 후 150년이다. ●국토 개발의 다섯 번의 충격 1876년 개항 이후 한국의 근대화는 다섯 번의 대형 국토 충격을 거쳤다. 그리고 그 어느 충격도 조선시대 거점 체계를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더 나아가 기존 원도심 구조를 보존하거나 활용하려는 시도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첫 번째 충격은 개항(1876~1899)이다. 강화도조약이 열어젖힌 개항장-부산·인천·원산·목포·군산-은 예외 없이 조선시대 도호부 급 이하의 포구이거나 어촌이었다. 500년 내륙 거점 체계가 하룻밤 사이에 해안선으로 이동했다. 전주·경주·공주·충주·상주는 졸지에 변방이 되었다. 두 번째 충격은 철도(1899~1906)다. 경부선 초기 노선안에는 청주·상주·공주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단거리와 군사 논리가 역사를 우회했다. 완성된 경부선은 이 도시들을 모두 비껴갔다. 결과는 극적이었다. 조선시대 3대 내륙 거점이었던 충주와 상주는 급격히 쇠퇴했고, 소읍에 불과했던 대전은 경부선·호남선 분기점이 되어 충청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반면 경부선이 통과한 대구는 200년 감영 도시의 상업·문화 집적 위에 철도 교통망까지 더하며 경상도 최대 도시로서의 위상을 굳혔다. 세 번째 충격은 산업화(1962~1981)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산업단지 입지는 항구·평지·노동력 접근성 논리로만 결정되었다. 울산·포항·구미·여수·창원이 산업도시로 급부상했다. 이 도시들은 창원을 제외하면 모두 조선시대 도호부 이하였다. 창원대도호부·진주목 같은 경남의 역사 거점들은 산업단지의 배후지로 흡수되거나 기능을 잃었다. 대구는 섬유산업 중심지로 산업화의 수혜를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원도심 상업 구조가 서서히 희석되기 시작했다. 네 번째 충격은 광역화(1963~1997)다.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으로의 인구와 자본 집중이 가속화되면서 주변 소도시들은 광역 대도시권으로 편입되거나 배후지로 전락했다. 수도권에서는 조선시대 유수부였던 강화·광주(경기)·수원마저 서울 팽창의 그늘 속에서 독자적 도시 정체성을 잃어갔다. 영남에서는 부산·대구 집중이 진주·경주 등 역사 거점의 상대적 위상을 약화시켰고 호남에서는 광주 집중이 나주의 배후지화를 촉진했다. 다섯 번째 충격은 신도시(1989~2010)다. 수도권 1기 신도시는 역사 거점과 무관한 신흥지에 세워졌다. 더 치명적인 것은 혁신도시였다. 나주 혁신도시는 나주 원도심에서 7㎞ 떨어진 곳에, 내포신도시는 홍주(홍성) 원도심과 분리되어 건설되었다.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한 정책이 역사 거점의 원도심을 행정·인구·자본이 떠난 문화재 섬으로 만들어 버린 역설이었다. 대구도 수성구·달서구 등 외곽 신시가지의 팽창으로 원도심 공동화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뜻밖의 패턴 그런데 뜻밖의 패턴이 나타났다. 전주를 보자. 경부선도 호남선도 비껴갔고, 전라선이 뒤늦게 연결되었지만 간선 철도의 혜택은 제한적이었다. 광역시도 아니고 국가산단 중심지도 아니다. 대체로 정책의 무관심 속에 놓인 덕에 조선시대 읍치 구조를 기반으로 형성된 필지 구조와 골목망이 유지될 수 있었다. 2000년대 이후 한옥마을이 전국적 명소가 된 것은 기획의 산물이 아니라 구조의 생존 덕분이었다. 구조가 남아 있는 도시는 언제든지 콘텐츠를 얹을 수 있지만, 구조가 사라진 도시는 콘텐츠를 만들어도 정착하지 못한다. 강릉도 같다. 영동선이 연결된 것은 1962년으로 경부선보다 57년 늦었다. 국가산단도 없고 광역시도 아니다. 조선시대 읍치 구조를 기반으로 형성된 명주동 원도심의 필지와 골목망이 유지되었고, 2010년대 이후 강릉은 커피·아웃도어·로컬 브랜드의 거점이 되었다. 경주는 산업화의 충격을 비켜 가면서 역사 공간과 근대 원도심이 공존하는 구조를 유지했고, 그 위에 황리단길이 자라났다. 창원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산업화와 광역화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받아 인구 100만의 대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창원대도호부의 원도심은 산업단지에 완전히 흡수되어 원형이 소멸했다. 도시가 커지는 동안 도시의 뿌리가 잘렸다. 수원은 화성(華城)이라는 강력한 문화 자산을 보유하고도 삼성전자·광교신도시의 팽창 속에서 원도심의 정체성을 잃어 가고 있다. 이 대비에서 패턴이 보인다. 정책 수혜가 원도심 활력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책의 소외가 원도심 구조를 보존했고, 그 구조가 2000년대 이후 활력의 토대가 되었다. 핵심은 조선시대 기원 자체가 아니라 원도심 공간 구조의 유지 여부다. 현재 활력을 유지하는 원도심의 필지 구조와 골목망은 조선시대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함께 형성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구조가 5대 충격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고 유지되었느냐다. ●소도시의 미래 이 원리는 조선시대 거점 도시에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조선시대 도호부 이하 소읍이었어도 원도심 구조를 유지한 소도시들이 2000년대 이후 새로운 활력을 회복하고 있다. 고창·담양·강진·영월이 대표적이다. 이 도시들은 조선시대 거점 도시가 아니었고 근대 국토정책의 혜택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로 원도심 구조가 파괴되지 않았다. 고창의 읍성과 골목, 담양의 죽녹원과 원도심, 강진의 강진향교 인근 시가지, 영월의 동강 변 원도심이 로컬 브랜드와 이주민의 거점이 되고 있다. 근대 개항 도시들도 같은 흐름을 보인다. 군산과 목포는 일제강점기 수탈의 거점으로 성장했고, 그 흔적인 근대건축과 골목 구조가 역설적으로 현재의 문화자산이 되었다. 군산 근대역사거리와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이 전국적 관광지로 부상한 것은 원도심 구조가 유지된 덕분이다. 구조의 기원이 조선시대든 근대 개항기든 상관없이, 구조가 살아 있는 곳에 사람과 콘텐츠가 모인다. AI가 표준화하는 것은 기능이지만, 원도심 구조가 만들어내는 것은 경험이다. 인공지능(AI) 시대 개인 창업자와 로컬 브랜드는 대형 자본이 들어오기 어려운 작은 필지와 좁은 골목을 찾는다. 역사가 만든 공간 구조가 미래 경제의 무대가 되고 있다. ●미래 국토정책에 대한 교훈 미국의 도시설계 학자 조너선 바넷은 ‘도시설계’(City Design)에서 도시를 개별 건물의 집합이 아니라 거리와 공공공간이 만드는 조직체로 이해한다. 실제로 유럽과 북미의 많은 도시는 역사적 중심지의 거리망과 필지 구조를 유지한 채 새로운 주거지와 업무지구, 산업지구를 바깥으로 확장하며 성장해 왔다. 전주·경주·강릉 역시 원도심 구조를 유지한 채 새로운 경제와 문화를 축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도시 발전의 보편적 경로에 가깝다. 원도심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디지털이 공간의 제약을 허물수록 역설적으로 장소의 고유성이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AI가 복제할 수 없는 것은 수백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원도심 구조다. 조선시대 거점 도시는 단순한 행정 중심지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도시의 작동 방식, 즉 도시 DNA다. 이 DNA는 세 가지로 구성된다. 사람과 상업이 만나는 공간 구조, 생활과 교류가 축적된 문화 자원 그리고 인재와 물자가 순환되던 문화 경영의 전통이다. 문제는 지난 150년의 국토정책이 조선시대 거점 도시 구조와 축적의 방식, 즉 도시 DNA를 계승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기존 구조를 활용하기보다 새로운 입지에 기능을 분산시키는 방식이 반복되면서, 도시의 외형은 성장했지만 내부의 축적은 단절되었다. 이제 방향은 분명하다. 새로운 국토정책은 원도심 구조를 중심으로 수립해야 한다. 원도심이 살아 있는 도시는 그 구조를 보존하고 활용해야 한다. 반대로 원도심이 공동화된 도시나 애초에 원도심이 부재한 신도시에서는 건축마을을 공급해 로컬 크리에이터와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수백 년의 역사가 만든 공간을 보존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축적된 도시 DNA를 현대의 콘텐츠와 산업으로 번역해야 한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 유승준, 24년째 입국 금지에 지쳤나…“한국 가는 것, 이제 큰 의미 없다” 심경

    유승준, 24년째 입국 금지에 지쳤나…“한국 가는 것, 이제 큰 의미 없다” 심경

    가수 유승준(49·미국 이름 스티브 승준 유)씨의 한국 입국 비자 발급과 관련한 세 번째 소송의 항소심이 오는 7월 시작되는 가운데 유씨가 “지금은 한국에 들어가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며 오랜 입국 거부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4일 유튜브 채널 ‘유승준’에는 ‘할 만큼 했습니다. 이제는 그만하려고 합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에서 유씨는 “한국은 제가 태어난 곳이자 마음의 고향이다. 어머니 같은 나라”라며 “해외에서 살다 보면 오히려 한국이 더 그리워진다”고 밝혔다. 이어 “저는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 간 사람이 아니라 1989년 13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이민자”라며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왔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민권을 따는 것이 자격증을 따는 것처럼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상당히 힘들다. 따고 싶다고 딸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어린 나이에 와서 인종 차별도 많이 당했다. 내 의사로 미국에 온 건 아니지 않나”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가수 데뷔 전 팔에 처음 새긴 문신이 ‘코리안 프라이드(Korean Pride)’였다”며 “그만큼 한국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이 컸다”고 강조했다. 유씨는 “제가 한국에서 성공하고 싶었던 이유도 제 뿌리가 한국에 있었기 때문”이라며 “아무리 미국 문화에 익숙해졌어도 감성은 한국과 가장 잘 맞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유씨는 “지금은 한국에 들어가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진실에 대해 이야기했고 사과도 했으며 왜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했지만 제 진정성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유씨는 “제가 아무리 설명하고 고백해도 결국 병역 문제나 욕설 논란 같은 이야기만 남았다”며 “제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과정과 배경은 관심을 받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비난만 남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그런 부분들에 대해 많이 내려놓은 상태”라고 털어놨다. 한편 유씨는 오는 7월 주 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를 상대로 낸 사증(비자) 발급 거부 처분 취소 소송 2심 첫 변론 기일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8월 28일 유씨가 1심에서 승소하자 LA 총영사관 측이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1997년 가수로 데뷔해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유씨는 방송에서 군 입대를 약속했지만, 2002년 1월 공연 목적으로 출국한 뒤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서 병역 의무를 면했다. 대중의 비난이 쏟아졌고, 법무부는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이유가 있는 자’에 해당한다며 유씨의 입국을 제한했다. 입국을 금지당한 유씨는 2015년 8월 만 38세가 되자 LA 총영사관에 재외동포(F-4) 체류 자격으로 비자 발급을 신청했다. 옛 재외동포법은 병역 기피 목적으로 국적을 상실했더라도 38세가 되면 재외동포 체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LA 총영사관은 같은 해 9월 비자 발급을 거부했고, 유씨는 이를 취소해달라며 첫 소송을 제기했다. 유씨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아냈지만, LA 총영사관은 “유씨의 병역의무 면탈은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발급을 재차 거부했다. 이에 유씨는 2020년 10월 두 번째 소송을 냈고, 2023년 11월 대법원에서 마찬가지로 최종 승소했다. 하지만 LA 총영사관은 2024년 6월 또다시 비자 발급을 거부했고, 유씨는 그해 9월 세 번째 소송을 냈다. 지난해 8월 세 번째 소송의 1심은 “비자 발급 거부 처분으로 얻게 되는 공익에 비해 그로 인해 침해되는 원고의 불이익이 지나치게 커 비례의 원칙을 위반한 재량권 일탈·남용의 위법이 있다”며 다시 한번 유씨의 손을 들어줬다.
  • ‘소부장’ 국산화에… 대일 수출 비중 3%대까지 추락

    과거 한때 전체 수출액의 40%를 차지했던 대일 수출액 비중이 3%대까지 추락했다. 일본은 한국의 주요 4대 교역국에서 이탈해 수출액 6위로 내려앉았다. 어느새 한국은 경제대국 일본의 연간 수출액을 앞지를 정도로 성장했다. 그 배경에 반도체가 있다. 산업통상부와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한국의 월간 전체 수출액에서 대일 수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4월 3.4%로 집계됐다. 일본은 1989년만 해도 21.6%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 무역의 최대 파트너였다. 하지만 1992년 한중 수교를 계기로 수출 지도가 본격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한국의 최대 교역국으로 자리 잡았고, 대일 수출액 비중은 1996년 12.2%, 2006년 8.2%, 2016년 4.9%로 축소됐다. 최근에는 중국과 미국이라는 거대한 두 축이 국내총생산(GDP) 성장을 지탱하면서 대일본 수출 비중은 이렇게 37년 만에 약 6분의 1 수준이 됐다. 한국의 대일 수출 비중이 떨어진 배경은 다양하다. 먼저 한국이 기술 자립으로 ‘소재·부품·장비’(소부장)의 국산화에 성공한 것이 결정타로 꼽힌다. 일본산 부품과 소재가 없어도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일본과의 무역 의존도가 낮아졌다. 특히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조치는 역설적으로 한국의 소부장 독립에 방점을 찍는 계기가 됐다. 한국 기업의 기술 자립을 바탕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하면서 한국의 수출 영토는 더욱 확대됐다. 여기에 일본 경제의 성장 정체가 맞물리면서 일본 기업이 필요로 하는 반도체나 석유화학 제품의 수요마저 둔화했다. 최근 한국은 올해 수출액 규모에서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제칠 가능성이 커졌다.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건 반도체 ‘슈퍼사이클’(장기 호황)이다. 한국은 반도체 강국으로 부상하며 수출액이 역대 최대로 늘어났지만, 일본은 반도체 세계 최강의 자리에서 일찌감치 물러난 까닭에 인공지능(AI) 수요가 급증한 상황에서도 수출 동력이 살아나지 않고 있다. 한국의 1분기 수출액은 이미 일본의 수출액을 뛰어넘어 세계 5위에 올랐다. 현 추세가 이어지면 연 수출액은 지난해 7000억 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올해 9000억 달러마저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액 1조 달러 시대가 머지않은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올해 한국의 수출액이 일본을 제치는 원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24번째 국립공원, 부산의 진산 금정산 [두시기행문]

    24번째 국립공원, 부산의 진산 금정산 [두시기행문]

    부산의 진산이자 시민들의 든든한 안식처인 금정산(金井山, 801.5m)은 거대한 바위 능선이 화려하게 펼쳐진 명산이다. 해발 801.5m의 주봉인 고당봉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장군봉, 남쪽으로는 상계봉과 파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부산 시내를 굽어보듯 우뚝 솟아 있다. 산 정상부에는 금빛 물이 솟아나 금색 물고기가 노닐었다는 전설을 품은 ‘금샘’이 있어 산 이름이 유래했다. 1989년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된 금정산은 단순한 휴식처를 넘어, 유구한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생태와 문화의 보고이며 2026년 24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금정산의 백미는 단연 산 전체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금정산성(金井山城)이다. 사적 제215호로 지정된 금정산성은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성으로, 동문·서문·남문·북문 등 4대 문을 따라 이어지는 성곽길은 금정산 산행의 필수 코스다. 특히 북문에서 고당봉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금정산 특유의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풍광을 자랑한다. 발아래로는 푸른 바다를 품은 부산 시가지가 한눈에 펼쳐지고, 고개를 돌리면 첩첩이 쌓인 산맥이 산객을 맞이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능선길을 따라 성곽을 걷다 보면, 과거 수많은 외침을 막아냈던 역사의 숨결과 오늘날의 평화가 묘하게 교차하는 깊은 울림을 마주하게 된다. 산행은 여러 갈래로 즐길 수 있지만, 범어사에서 출발해 북문을 거쳐 고당봉에 오르는 코스가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운치 있다. 천년 고찰 범어사의 고즈넉한 풍경을 뒤로하고 숲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덧 웅장한 바위 절벽이 나타나고 시야가 탁 트인 정상부에 다다른다. 정상인 고당봉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가히 압권이다. 동쪽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동해 바다가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서쪽으로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며 도시와 자연의 경계를 부드럽게 잇는다. 정상석 앞에서 바라보는 이 탁 트인 조망은, 도심 한복판에 이런 명산이 있다는 사실에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금정산 산행 후에는 산성 마을의 풍미를 반드시 경험해야 한다. 금정산성 일대는 오래전부터 산성 막걸리로 이름을 떨쳐왔는데, 쌉싸름하면서도 구수한 산성 막걸리에 갓 구운 파전, 혹은 매콤하게 볶아낸 오리 불고기를 곁들이는 것은 부산 산객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미식의 즐거움이다. 온천장 근처에 자리한 허심청 등에서 산행의 피로를 씻어내는 것 또한 금정산 산행을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방법이다.
  • “우지라면 시부모님 끓여드리고파”…김정수 삼양식품 회장 눈물 영상 인기

    “우지라면 시부모님 끓여드리고파”…김정수 삼양식품 회장 눈물 영상 인기

    삼양식품은 김정수 신임 회장의 진솔한 소회가 담긴 영상 두 편이 공개 5일 만에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에서 누적 조회수 100만회를 돌파했다고 2일 밝혔다. 지난 1일 회장으로 공식 취임한 김 회장은 부회장 시절이던 지난달 28일 자사 공식 소셜미디어 채널에 공개된 숏폼 영상에 출연했다. 이 영상에서 그는 창업주이자 시아버지인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에 대한 애틋함과 더불어 삼양식품이 걸어온 길에 대한 감회를 허심탄회하게 풀어냈다. 해당 영상은 김 회장이 서울 강남역 인근 길거리에서 지난해 11월 선보인 ‘삼양 1963’ 라면을 시식하며 직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연출됐다. 영상 속에서 김 회장은 “우지라면을 어머님·아버님에게 가장 끓여드리고 싶다”며 “우지라면에 대해 항상 가슴 아파하셨고 아쉬워하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제는 너무나도 우지라면이란 것을 세상에 밝히면서 먹고 있다. 제가 끓인, 우리 임직원들이 만든 라면이니까 편안하게 드시라고 하고 싶다”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삼양식품은 1989년 라면 제조에 공업용 우지(소기름)를 사용했다는 이른바 ‘우지 파동’에 휘말리며 시장 점유율이 크게 하락하는 위기를 겪었다. 당시 보건사회부의 무해 판정 및 법원의 무죄 선고에도 불구하고 기업 이미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후 팜유만 사용해오던 삼양식품은 지난해 출시한 삼양1963을 통해 우지 라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롭게 선보였다. 두 번째 영상에서는 경영인이자 워킹맘으로서 자녀들을 향한 김 회장의 애틋한 마음도 함께 조명됐다. 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댓글을 통해 “부회장님의 말과 진심이 보이는 눈물에 보고 있는 저도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K푸드를 전세계에 알리는 데 정말 큰 공헌을 해서 존경스럽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김 회장이 삼양1963을 앞에 두고 며느리이자 어머니, 경영자로서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주고받은 콘셉트로 제작한 영상”이라며 “회장 취임 당일 유튜브·인스타 조회 수가 100만회를 돌파했다”고 덧붙였다.
  • 전남대총동창회 ‘용봉인 대상’ 이개호·조성희

    전남대총동창회 ‘용봉인 대상’ 이개호·조성희

    전남대학교 총동창회는 ‘2026 용봉인 영예대상’ 수상자로 이개호 국회의원과 조성희 싸이버테크(주) 대표이사를 선정했다고 28일 발표했다. 이번 시상은 국가 사회 발전의 기틀을 닦고 모교의 위상을 높인 동문을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먼저 이개호 의원은 1981년 전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했다. 전남도 행정부지사 등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제19대부터 제22대까지 내리 당선된 4선 중진 의원으로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농정 발전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공동 수상자인 조성희 대표는 1989년 전남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95년 IT 전문 기업인 싸이버테크(주)를 설립해 지역 정보통신 기술산업의 개척자 역할을 해왔다. 호남ICT협의회장과 한국S/W산업협회 광주전남회장직을 수행하며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 것은 물론, 제35·36대 전남대학교 총동창회장을 지내며 동문 화합과 모교 발전을 위해 헌신해 왔다. 한편, 이번 ‘2026 용봉인 영예대상’ 시상식은 오는 6월 8일 전남대학교 용봉홀에서 거행되는 개교 74주년 기념식 행사와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 ‘며느리 회장’ 김정수 “불닭 못 보신 시아버님…” 10년만 영상서 눈물

    ‘며느리 회장’ 김정수 “불닭 못 보신 시아버님…” 10년만 영상서 눈물

    ‘불닭볶음면 신화’의 주역인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이 다음 달 회장 취임을 앞두고 10여년 만에 영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김 부회장은 경영자이자 며느리, 워킹맘으로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을 향한 그리움과 자녀들에 대한 미안함을 털어놨다. 삼양식품은 28일 공식 유튜브 채널에 김 부회장이 직접 출연한 쇼츠 영상 2편을 공개했다. 영상은 지난해 11월 출시된 ‘삼양 1963’을 중심으로 삼양식품의 과거와 현재를 문답 형식으로 담았다. “전 세계 열광 못 보신 게 안타까워” 눈물영상에서 김 부회장은 불닭볶음면에 대해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며 “아무도 이 정도로 매운 걸 만들지 않으니까 우리가 한번 만들어보자고 했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대박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삼양식품 창업주이자 시아버지인 전 명예회장 부부를 떠올리며 눈물을 보였다. 그는 “명예회장님이 2014년에 돌아가셨는데 그때부터 불닭이 잘되면서 삼양이 승승장구했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걸 못 보시고 돌아가신 게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라면을 즐겨 먹는다는 김 부회장은 ‘삼양 1963’에도 각별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우지로 만든 제품이라 소비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도 됐지만 맛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다”며 면발을 들이켰다. 이어 가장 라면을 끓여드리고 싶은 사람으로 전 명예회장 부부를 꼽으며 “우지라면에 대해 항상 가슴 아파하시고 아쉬워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끓인, 우리 임직원들이 만든 라면이니까 편안하게 드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삼양 1963’은 삼양식품이 과거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내놓은 제품이다. 삼양식품은 1989년 공업용 우지 사용 의혹에 휘말려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소비자 신뢰를 잃으며 장기간 침체를 겪었다. “아이들도 하나의 과제였다” 김 부회장은 워킹맘으로 살아온 시간에 대한 회한도 털어놨다. 1998년 삼양식품에 입사한 그는 “2028년이면 일을 한 지 30년이 된다”며 “‘아줌마’라는 말보다 부회장이라는 직책이 더 익숙해진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은 정말 정성을 다해 키워야 하는데 제게는 아이들도 하나의 과제였다”며 “회사 일처럼 사명감으로 키웠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다 크고 나니 순간순간을 놓쳐버렸다는 생각에 후회된다”며 “아빠와 자전거를 타던 소소한 시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아들, 딸 고맙고 미안하다”고 전했다. 김 부회장의 장남은 1994년생으로 2019년 삼양식품에 입사한 전병우 전무다.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기획본부장(SCO) 겸 삼양식품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신사업과 미래전략 수립을 맡고 있다. 삼양 1963 용기면 직접 홍보삼양식품의 해외 매출 비중은 지난해 처음 80%를 넘어섰다. 김 부회장은 불닭 브랜드의 글로벌 성공을 이끌며 삼양식품의 해외 성장을 견인해왔다. 회사는 미국·중국·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글로벌 사업을 확대하는 한편 소스·스낵·가정간편식(HMR)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히고 있다. 김 부회장은 영상 말미에 ‘삼양 1963’ 용기면 출시를 언급하며 “기대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삼양 1963을 매개로 회사가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함께 담기 위해 영상을 제작했다”며 “김 부회장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소비자들과 더 깊이 소통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 고무보트로 태안 밀입국… 中 반체제인사 구속 면해

    고무보트로 태안 밀입국… 中 반체제인사 구속 면해

    고무보트를 타고 대한민국 영해에 들어왔다가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체포된 중국 반체제 인사 둥광핑(68)이 구속을 면했다. 대전지법 서산지원 석지성 영장전담 판사는 28일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둥광핑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뒤 영장을 기각했다. 석 판사는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도망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다. 둥광핑은 실질심사에서 “한국이나 일본을 거쳐 캐나다에 있는 아내와 딸에게 가려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불법 밀입국 의도도 없었고 난민 지위 획득 과정을 진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그는 법원에 나오면서 취재진에게도 중국말로 “캐나다로 망명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태안해경은 둥광핑을 대전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인계하고 수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그는 이후 외국인보호소로 인계된다. 둥광핑이 난민 신청을 하면 당분간 출국은 보류된다. 둥광핑은 지난 25일 오후 9시 36분쯤 길이 3.3m 고무보트를 타고 대한민국 영해로 들어왔다가 격비도 북서방 10해리(약 18㎞) 부근에서 한 어선에 의해 발견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경은 그를 긴급체포한 후 신진항으로 압송해 입국 경위 등을 조사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둥광핑은 1989년 발생한 톈안먼 사태 관련 서한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1999년 중국 경찰에서 파면됐다. 2014년 톈안먼 추모 행사에 참여한 뒤로는 중국 당국에 구금됐다 여러 차례 탈출, 송환되는 과정을 겪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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