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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사형수 공개처형 생중계” 날짜까지 나왔다…“살인”이라던 트럼프, 왜 [월드픽]

    “美 사형수 공개처형 생중계” 날짜까지 나왔다…“살인”이라던 트럼프, 왜 [월드픽]

    미 육군 내에서 총기 난사를 저지른 사형수에게 집행되는 총살형이 대대적으로 생중계된다. 미국에서 ‘공개 처형’이 실시되는 건 90년 만으로, 그 적절성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8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보수 매체인 ‘리얼 아메리카 보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총기 난사범인 니달 말릭 하산의 총살형에 대해 “사람들이 시청할 수 있도록 하겠다. 그건 명백한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공개처형을 실시하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행위(총기 난사)에 심각한 결과가 따른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산의 총살형은 오는 12월 3일 미 텍사스주 킬린에 있는 미 육군 기지인 포트 후드에서 집행된다. 앞서 국방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하산에 대한 총살형 집행을 승인했다고 지난 4일 밝혔다. 다만 헤그세스 장관이 밝힌 ‘공개처형’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TV 생중계인지 또는 유튜브 등 온라인 생중계인지, 특정 인원이 현장에서 생중계를 지켜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인지 등에 대해 국방부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총살형의 생중계에 동의했는지에 대해 백악관은 밝히지 않았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하산이 자신의 사형에 대해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경우 사형 집행이 미뤄질 수 있다. 트럼프 동의 여부·생중계 방식 미지수정신과 군의관(소령)이었던 하산은 2009년 11월 5일 포트 후드에서 근무하던 중 무차별로 총기를 난사해 장병과 민간인 13명이 숨지고 32명을 다치게 했다. 이슬람 신도인 그는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앞두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었으며, 범행을 저지르기 직전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는 뜻의 아랍어)”를 외쳤다. 미 군사법원은 2013년 하산의 총 45개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사형을 선고했다. 미군이 자국 군인을 상대로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1961년 4월 강간·살인미수로 사형을 선고받은 미 육군 이등병 존 베넷의 교수형 이후 65년 만이다. 또 총살형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이후 처음이다. 특히 ‘공개처형’은 1936년 백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흑인 남성 레이니 베시아의 교수형 이후 90년 만이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몇 년 동안 공개처형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나라는 이란과 아프가니스탄뿐”이라며 “사형 집행을 TV 등으로 중계하는 나라는 없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며 인도주의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공개처형을 둘러싸고 전문가들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데보라 데노 포덤대 법학 교수는 AP통신에 “사형수가 실제 사형에 처해지는 방식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사형 집행 과정을 대중에게 투명하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 테네시주 교도소에서는 사형수 크리스타 파이크(50)가 독극물을 주입하는 사형이 집행됐는데도 숨지지 않고 살아나 사형 집행 과정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반면 군사법 전문가인 유진 피델은 로이터에 “사형 집행을 생중계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며, 대법원이 이에 대해 다룬 판례도 없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침공하며 이란의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공개처형을 강하게 비판한 것과 모순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이란 당국이 반정부 시위대들을 즉결 심판을 거쳐 공개된 장소에서 교수형에 처한 것에 대해 “살인이자 레드라인”이라고 맹공하며 강경 대응에 나설 것임을 여러 차례 밝혔다.
  • “불평등한 폭염, 수치로 사회 재난 증명… 대안은 구체화해야”[독자권익위]

    “불평등한 폭염, 수치로 사회 재난 증명… 대안은 구체화해야”[독자권익위]

    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회는 지난 25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제201차 회의를 열고 8월 한 달간의 서울신문 보도를 평가했다. 회의에는 김춘식(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위원장을 비롯해 박경환(서울시 재무국장), 이상은(고려대 미디어학과 석사과정·교사), 차윤주(연세드림세무회계 대표·세무사) 위원이 참석했다. 이명행(SK하이닉스 PR기획팀장·변호사), 홍정석(법무법인 화우 GRC그룹장·파트너 변호사) 위원은 서면 의견을 냈다. 위원들은 ‘불평등한 폭염’ 심층 기획이 구체적인 수치를 활용하고, 발로 뛴 르포를 통해 일상화된 폭염을 사회적 재난으로 재정의했다고 호평했다. 다만 피상적인 대안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한 기사의 주제를 미리 설정해 ‘취재원 비대칭’ 현상이 생기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다음은 위원들의 주요 의견. 이상은 고려대 미디어 석사과정 폭염 분석, 완결성 있는 서사 보여줘행정적 걸림돌 파고들지 못해 한계‘불평등한 폭염’ 기획은 폭염을 단순히 자연재해가 아니라 주거·노동·소득 불평등이 결합된 구조적인 사회 재난이라고 재정의하고, 완결성 있는 서사 흐름을 보여줬다. 온열 질환으로 인한 산재 승인율이 85.5%로 높아도 중대재해처벌법상 무혐의 처분이 남발되고 있다는 점을 대비시켜 사법 당국의 안이한 법 적용 기준을 정확히 짚었다. 특히 포천의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직접 측정한 온도로 생생함을 확보하고 14㎡ 면적 기준에만 매몰돼 있는 현행 최저주거 기준의 한계를 비판했다. 영국과 프랑스 등 해외의 ‘기후 적응형 주거 기준’을 끌어와 ‘생존형 주거 기준’을 개정하자는 제도적 쟁점을 제시했다. 다만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제시한 해법이 어떤 행정적 걸림돌이 있는지 파고들지 못한 한계가 있다. 매주 일요일자 온라인 정기 코너인 ‘주목 이주의 법안’은 발의는 되지만 조명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법안을 발굴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책이나 법제를 다루는 기사와 연계해서 실제 정책이 어떻게 변하고 통과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온라인 입법 추적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면 독자들에게 더 영향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명행 SK하이닉스 PR기획팀장씨줄날줄 정보 주권 문제 확장 호평유튜브 채널 운영·검증 짚어봤으면17일자 ‘韓정치 유튜브 449개 폐쇄… “조직적 여론 조작 움직임”’ 기사는 국내에서의 조직적인 여론 왜곡이 의심되는 사안을 해외 플랫폼의 조치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을 잘 짚었다. 18일자 ‘[씨줄날줄] 구글의 정치 유튜브 폐쇄’ 후속 오피니언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정보 주권 문제로 확장한 점도 좋았다. 다만 449개라는 숫자에 비해 정작 어떤 채널이, 어떤 식으로 운영했는지가 드러나지 않았다. 빅테크 플랫폼의 판단이 국내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 과정을 검증하기 어려운 문제 등을 짚어보길 원한다. 국제면 트럼프 대통령 관련 보도를 보면 3일자 ‘워싱턴DC ‘녹조라테’는 좌파 아닌 트럼프식 부실시공 탓’과 같이 강한 표현과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 자체를 문제의 원인으로 규정하는 제목을 썼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한미훈련 축소 요구 등 한국을 압박할 때는 제목도 상대적으로 건조해지고, ‘한국 투자 이행 속도에 불만’처럼 한국이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문제가 생긴 것 같은 인상을 남기게 돼 편집 기준에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박경환 서울시 민생노동국장‘혈죽도’ 대한매일신보 사료에 눈길정책 보도 이후 깊은 토론 이어가야지난달 30일자 ‘‘센 술’ 대명사였던 소주, 무한 저도주 경쟁… 마지노선은 어디?’ 기사는 부산의 향토기업인 ‘대선주조’ 기획 기사와 더불어 소주 도수를 무작정 낮출 수 없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줬다. 덕분에 메인 기사에도 눈길이 더 갔다. 향토 기업을 발굴하는 기사들이 흥미로워 전국면에서 많이 소개해 줬으면 한다. 12일자 ‘대한매일신보 최초 보도… 충절의 상징 ‘민영환 혈죽도’, 광복 81년 맞아 다시 본다’ 같은 전국부 기사도 많이 나왔으면 한다. 서울신문의 자랑인 대한매일신보의 사료를 디지털 아카이브로 독자들이 쉽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반대로 6일자 ‘한강서 줍깅하면 에코 마일리지 준다’ 기사 등 지자체에서 나온 보도자료를 그대로 쓰기보다는 실제로 줍깅을 해보는 등 기사를 키우면 재미가 더해질 것이다. 전면에서 스트레이트로 정책 기사를 쓰고 오피니언에서 해설하는 것이 좋은 작전일 수 있다. 다만 7일자 기사인 ‘정부와 각 세운 오세훈 “용산공원에 주택 공급, 절대 안된다’와 같이 기사에서 인용을 통해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알리기만 하는 게 신문 본연의 기능인지 의문이 든다. 10일자 ‘당장 집값 잡기냐 아이들 미래냐…‘빈 땅 영끌’ 용산 딜레마’ 기사가 용산공원 부지 활용에 대해 공론화할 지점이 무엇인지 재정리해 줬던 것처럼, 깊은 토론을 이어가는 것을 제안한다. 김춘식 한국외대 교수 데이터센터·폭염 기획 설득력 충분취재원 비대칭 탓 관점 다양성 부족형사소송법 개정, 8·13 부동산 대책, 데이터센터의 명암, 집권 여당 대표 선출 과정, 불평등한 폭염 등 5개의 주제 중심으로 기사를 분류해 봤을 때 공통적으로 취재원 비대칭 현상이 나타난다. 18일자 ‘‘이 수사 맞나’부터 다툰다…“법원, 비대해진 수사권 사전 통제를”’ 등 3개의 기사는 복잡한 법 개정 내용을 재판·수사·특검 차원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잘 설명했다. 그러나 엘리트 취재원에 의존해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다룰 때 관점의 다양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14·15일 이틀에 걸쳐 전한 ‘8·13 부동산 대책’ 기사는 정책의 맥락과 의미를 잘 설명했고, 정책의 실행 가능성을 검증하는 기준까지 제시해 정책 저널리즘적으로 우수하다. 다만 정책 자체의 타당성을 지적하는 게 없이, 전문가의 전망을 인용해 ‘얼마나 빨리, 제대로 실행할 것인가’만 평가했다. 기획인 ‘데이터센터의 명암’과 ‘불평등한 폭염’은 설득력이 있다. 서울신문의 프레임 설정이 신선하고 관심을 가질 만하지만, ‘합의 없는 데이터센터 증설은 문제다’, ‘폭염과 불평등의 상관관계’ 프레임이 워낙 강해 다른 대안적 설명들을 채택하기가 어렵게 됐다. 취재원에 따라서 관점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취재원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선출 과정 보도에서는 인터뷰를 통해 후보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특정 정당 내에서 이루어지는 선거다 보니 정책의 차이는 없겠지만, 정치적 비전의 차이라도 볼 수 있도록 묻는 기사가 있었으면 했다. 차윤주 연세드림세무회계 대표세제개편안 신속 보도·편집 뛰어나여성 정치인 직업의식 접근법 의문2일부터 6일까지 연재한 기획 ‘불평등한 폭염’은 ‘가난한 동네가 더 덥다’는 당연해 보이는 명제를 구체적인 수치를 엮어 입증했다. 기자들이 더운 날 직접 발로 뛴 흔적도 보였다.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 숙소 개선 지원 사업을 실시하겠다’며 바로 정책적 반응을 보인 것도 이 기사의 성과다. 다만 마지막 대안 제시가 다소 원론적인 제언에 머물렀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어렵지만 후반부도 힘이 실렸으면 한다. 지난 3일 정부의 세제개편안 발표 당일 이를 여러 면에 걸쳐 신속하게 정리한 보도의 기본기가 탄탄했다. 또한 그래픽과 함께 가독성을 높이는 편집 역량이 뛰어났다. 다만 서울신문이 잘해 왔던 관가 내부 논의 등 정치권의 뒷이야기를 짚는 후속 보도가 없어 아쉬웠다. 17일자 오피니언 면의 ‘[노정태의 뉴스 인문학] 청년에게 폐버스 임대주택?…이것은 인종차별이나 마찬가지’ 칼럼에서 자가 소유 기회를 봉쇄당한 것이 미국 흑인 차별사의 핵심이었다는 논지는 충격적일 만큼 신선했다. 일간지에서도 이런 보도가 나올 수 있구나 하는 좋은 보도였다. 서울신문에 젠더데스크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18일자 ‘[서울광장] 여성 정치인의 직업의식’ 칼럼은 애정 때문에 여성 정치인을 내세웠겠지만, 정책 전문성을 여성 정치인의 직업윤리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의아했다. 홍정석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성인실종 제도 허점 짚고 방향 제시제목 속의 ‘논란’ 부정적 프레임 설정8월에는 구조적 문제를 짚는 기획·탐사 보도에서 강점을 보였다. 25일자 ‘골든타임’ 지킬 법도 없다… 성인실종 99.7% 단순 가출 처리’는 사건 보도에 그치지 않고 지문 사전등록제 저조 등 실종자 지원 제도의 사각지대를 짚어 정책 개선 방향까지 제시한 기획이었다. 같은 일자 ‘허술한 장교 양성… 공사엔 항공 우주, 해사엔 체육 교수가 없다’ 기획은 현장 실태를 직접 취재해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점이 돋보인다. 다만 24일자 ‘3억 전세로 강남 20년 살고… ‘무기한 살게 해달라’ 논란’은 제목부터 이를 ‘논란’으로 프레임 설정을 해 부정적 뉘앙스를 앞세웠는데, 정작 입주민들이 왜 그런 요구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사정이나 주거복지 전문가의 균형 잡힌 시각은 부족했다. 정책이나 사법·정치 이슈를 다룰 때 특정 프레임이나 자극적 표현으로 쏠리는 경향, 그리고 강력범죄 보도에서 세부 묘사 수위에 대한 신중함을 기대한다.
  • 자폐증 극복한 英 최연소 흑인 교수의 비극

    영국 명문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역사상 최연소 흑인 교수’로 임용돼 큰 주목을 받았던 한 사회학자가 논문 표절 의혹 등으로 사임한 지 9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영국 사회에서는 인종차별과 학계의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등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1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제이슨 아데이(41) 전 케임브리지대 교육사회학 교수가 지난 14일 런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현장 조사 결과 타살 혐의점은 없다고 밝혔다. 가나 출신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아데이는 2023년 37살의 나이로 케임브리지대 최연소 흑인 교수로 부임하며 화제를 모았다. 아데이의 말에 따르면 그는 어린 시절 자폐증 진단을 받았고 11살이 되어서야 말을 하기 시작했으며 18살 때부터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고 한다. 아데이의 논문 표절 의혹은 임용 당시부터 제기됐는데 지난달 케임브리지대 연구원 출신 네이선 코프나스가 그의 논문에서 타 논문과 유사하거나 같은 구절을 다수 발견했다고 밝히면서 확산했다. 이후 언론도 그의 이력을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결국 대학 측이 자체 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하자, 아데이는 지난 5일 교수직에서 사임했다. 아데이는 논문에 일부 실수가 있다고 인정했으나 부당하게 비난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아데이가 흑인 스타 학자라는 이유로 언론 등에 마녀사냥식 표적이 됐다는 지적과 함께 DEI를 둘러싼 논쟁도 커지고 있다. 사디크 칸 런던시장은 아데이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겪지 않았을 악의적인 공개 망신주기의 희생자”라며 그의 죽음이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자성을 촉구했다. 앤디 버넘 영국 총리는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됐는지 성찰할 시간”이라고 했다. 대학 측이 다양성 확보에 급급한 나머지 임용을 감행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사건은 대학이 장기적인 다양성 정책을 마련하기보다 과거에 갇혀 있다는 인식을 해소하기 위해 서두른 결과”라고 짚었다.
  • “프랑스인 없는 프랑스팀”… 월드컵마저 갈라치는 ‘정치 망언’

    스페인 전 총리 등 인종차별 논란이민 긍정적 기여 지우려는 목적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알제리 이민자의 아들인 지네딘 지단이 자국에 첫 우승컵을 안겼을 때, 세계는 축구가 인종과 국적의 벽을 허무는 위대한 용광로임을 목격했다. 이민자 문제로 극심한 혼란을 겪던 프랑스인들은 인종 화합을 뜻하는 ‘블뢰-블랑-뵈르(흑인·백인·아랍인)’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지단을 국민 영웅으로 추앙했다. 하지만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일부 정치인들이 축구를 인종차별과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의 선동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혐오를 조장해 지지를 얻겠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이다. 12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 등에 따르면 마리아노 라호이 전 스페인 총리는 전날 현지 온라인 매체에 기고한 칼럼에서 프랑스 대표팀이 “프랑스인 없이도 모든 성과를 내고 있다”고 적었다. 이를 두고 프랑스 대표팀에 흑인과 이민자 출신 선수가 많다는 것을 겨낭한 발언으로 해석되며 논란이 커졌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엑스에 “아직도 성별이나 출생지로 소속감을 저울질하는 이들이 있다”고 꼬집으며 “현대 국가의 정체성은 혈통이 아닌 사회적 기여와 연대로 이루어진다”고 지적했다. 북중미 월드컵에서 나온 정치인의 문제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프랑스와의 16강전에서 패배한 파라과이의 셀레스테 아마리야 상원의원은 음바페를 두고 ‘카메룬 출신이 필사적으로 프랑스인척한다’, ‘침팬지’ 등의 망언을 퍼부어 거센 역풍을 받았다. 네덜란드 극우 정치인 헤이르트 빌더르스는 모로코팀을 겨냥해 소셜미디어에 욕설이 섞인 반이슬람 메시지를 게시해 논란이 됐다. 이처럼 스포츠를 이용해 혐오를 확산시키는 현상에 대해 일각에서는 특정 개인의 말실수나 해프닝으로 봐서는 안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반이민주의 기치를 내건 보수·극우 정치인들이 극단적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발언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스포츠 외교학 전문가인 린지 사라 크라스노프 뉴욕대 교수는 “극우 세력과 보수 진영에게 프랑스 대표팀이 경기장 안팎에서 국가를 성공적으로 대표해 온 서사는 (그들의 반이민 논리를 위협하기에) 비판하기 매우 불편했을 것”이라며 이번 망언이 이민자의 긍정적 기여를 지우려는 유럽 보수층의 조직적 반발이라고 진단했다. 알자지라도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으려는 왜곡된 정치 문화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 [홍용진의 역사를 보는 눈] 표현의 자유와 조건

    [홍용진의 역사를 보는 눈] 표현의 자유와 조건

    최근 미국 지하철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큰 논란을 일으켰다. 백인우월단체인 ‘패트리엇 프런트’ 회원들이 지하철에서 흑인 여성을 둘러싸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들은 지난 4일 미국독립기념일을 맞이해 워싱턴DC에서 가두행진을 전개했고, 사진은 이때 찍힌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들이 성조기뿐만 아니라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를 지지했던 남부연합 깃발을 휘날리고 “미국을 되찾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인종차별적인 주장을 거리낌 없이 표현했다는 점이었다. 다음 날 더그 버검 내무부 장관은 이 단체의 주장과 행위에 대해 동의는 할 수 없지만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이들을 용인하는 발언을 했다. 이는 세 가지 점에서 아연실색할 패러독스로 비쳐진다. 첫째는 160여년 전에 패배한 남부의 가치관이 21세기 미국의 정체성을 전유하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KKK처럼 은밀하게 행해지던 백인우월주의 단체의 활동이 행진이라는 방식으로 보무도 당당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것도 100여년 전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검은 셔츠단이나 독일 나치의 갈색 셔츠단처럼. 셋째는 이 모든 반역사적인 행태가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적 가치로 용인되고 있다는 점이다. ‘표현의 자유’는 역사적으로 밀턴의 저술인 ‘아레오파지티카’(1644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는 잉글랜드 내전이 한창이었던 시기로 밀턴은 그 어떤 출판물 검열도 부당한 처사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팸플릿을 집필했다. 15세기 초부터 교황청은 가톨릭에서 벗어나는 이단적 사상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출판물을 검열하고 금서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쇄술의 발전 및 종교개혁과 더불어 교황청의 사전 검열은 더욱 강화되었다. 문제는 종교전쟁이 격화되자 개신교 측에서도 이를 똑같이 채택했다는 점이다. 즉 루터파나 칼뱅파가 지배하는 지역에서도 이들의 교리에 어긋나는 사상을 표현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지동설을 지지하는 과학적 입장이 가톨릭이나 개신교 양측에서 모두 금기시된 것이다. 종교적 색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던 잉글랜드 내전도 마찬가지여서 왕당파에 맞선 의회파 또한 출판물에 대한 검열제도를 실시했다. 밀턴은 의회파 지지자였지만 종교의 자유와 이에 따른 사상 및 언론의 자유를 지지하며 이를 비판했다. 이성과 양심에 입각한 건전하고 자유로운 언론과 비판 활동이 지적 발전과 공공성에 입각한 시민적 덕성 함양, 그리고 지배·피지배 관계가 없는 공화정 수립에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렇지만 그가 모두에게 언론의 자유를 용인한 것은 아니었다. 언론의 자유를 가로막는 세력, 특히 가톨릭교회는 그에게 관용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는 오늘날에도 해당하는 듯이 보인다. 타인의 자유와 존재를 부정하는 배제와 혐오 표현, 그리고 그것을 내뱉는 행태를 자유라고 용인하는 것은 ‘자유를 파괴할 자유’라는 궤변에 불과하다. 홍용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 혐오의 일상화… 연대를 되묻다

    혐오의 일상화… 연대를 되묻다

    미국 버지니아주는 이름만으로도 정감이 간다. 존 덴버의 노래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드’의 배경 중 한 곳이라서다. 기차역에 닿는 순간 고향 같은 풍경이 와락 안겨들 듯하다. 그런데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 모양이다. 소설집 ‘나의 몬티셀로’를 뒤적이다 보면 ‘블루 리지’처럼,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소도시의 소녀들이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기도 전에 임신한 뒤 버려지는 일이 다반사란 걸 알게 된다(‘버지니아는 당신의 고향이 아니다’ 중). 더 열심히 공부해서, 가까스로 편입한 버지니아주립대학 교정엔 ‘백인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여자들을 퇴학시켜라’라는 구호가 적힌 전단지가 나뒹군다. 그 전단지 뒤엔 배와 엉덩이와 가슴과 입술만 있는, 임신한 흑인 여자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럼 당신은 가치 있다거나 위협당하고 있다는 등의 문구가 적힌 전단지 뒤엔 뭐가 있을까. 예상대로, 성조기로 몸을 감싼 백인 여자 그림이 담겨 있다(‘나의 몬티셀로’ 중). 이 모두가 한 세기 전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진행되는 일이다. ‘나의 몬티셀로’는 미국의 여성 교사이자 작가인 조슬린 니콜 존슨이 펴낸 소설집이다. 여섯 편의 단·중편을 묶었다. 수록작 모두 인종차별과 폭력, 계급의 균열을 파헤치며 혐오가 일상이 된 세상에서 희망과 연대의 의미를 묻는다. 미국 출간은 2021년이다. 작가는 문단의 늙은 신인이다. 나이 오십에 펴낸 데뷔작인데, 무척이나 묵직하다. 미국 내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고, 유수 언론들이 “장인의 경지에 오른 작품”이라며 올해의 책에 선정했다. 첫 수록작 ‘통제군 검둥이’는 인종차별을 연구하는 흑인 대학교수의 이야기다. 버지니아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이 모티브다. 그는 흑인 아이를 ‘평균적 백인 미국인 남성’과 동일한 환경에서 기른다면 어떻게 될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통제군’으로 삼아 몰래 사회실험을 한다. 학문으로 인종차별에 맞서면서도 정작 자신의 아이를 또 다른 실험 대상으로 삼은 한 아버지의 모순이 독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표제작 ‘나의 몬티셀로’는 백인우월주의 무장단체의 폭력을 피해 도망친 이들이 미국 3대 대통령이자 독립선언문 기안자인 토머스 제퍼슨의 사저 ‘몬티셀로’에서 겪는 사달을 다룬다. 주로 버지니아가 배경인 소설집에서 반복되는 키워드는 ‘집’이다. 작품 속 인물들에게 집은 종말이 다가오는 상황에서도 반드시 살아야 하는 곳이거나, 도저히 머무를 수 없어 떠나지만 끝내 돌아오고 마는 곳이거나, 끝내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속해야 할 자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돌보며 공동체를 만드는 이들의 분투 속에서, 집이란 결국 ‘불안정한 세계 속에서 사람들이 서로의 관계를 통해 가까스로 만들어가는 어떤 상태’란 걸 작가는 보여준다.
  • “노 킹스 시위 폭발, 트럼프의 비민주성에서 촉발”[김상연의 Deep Into]

    “노 킹스 시위 폭발, 트럼프의 비민주성에서 촉발”[김상연의 Deep Into]

    이란전쟁에 대한 반대도트럼프의 의사결정 구조 탓11월 중간선거 무시할 수도소수인종 ‘투표 탄압’ 우려지상군 파병 땐 여론 악화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전격 공습하면서 발발한 전쟁이 한 달을 넘어가며 장기화하고 있다. 미국의 일반 국민들은 이번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미국 사회의 생생한 밑바닥 여론을 지난달 31일 김창환 미국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미국에 25년 넘게 살면서 미국인들의 인식 변화와 사회경제적 양극화 등의 문제에 천착해 온 김 교수는 이란 전쟁에 대한 일반 미국 국민의 시각이 한국에서 예상하는 것과는 다소 다르다는 사실을 전했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규탄하는 ‘노 킹스’(No Kings) 시위가 확산되고 있는데, 이란 전쟁에 대한 반대 여론이 심상치 않은가. “이 시위는 이란 전쟁 때문에 촉발된 것이 아니라 이민 정책 등 전반적 분야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비민주주의적 의사결정과 태도 때문에 시작됐다. 이란 전쟁에 대한 반대도 전쟁 자체에 대한 반대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리는 의사결정 과정의 비민주성 때문에 커진다고 볼 수 있다. 시위의 규모와 범위가 매우 넓고 대도시뿐만 아니라 중소도시까지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미국인들이 시위를 목격하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비민주적 의사결정을 밀어붙이는 데 상당한 부담을 느낄 것 같다.” -여론조사상으로는 미국인 다수가 이란 전쟁에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나는데. “사실 보통의 미국인들은 이번 전쟁에 큰 관심이 없다. 미국인들은 원래 국제 문제에 관심이 없다. 상당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나 엘리트가 아니고는 국제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전쟁으로 유가가 크게 올라 생활에 실질적인 어려움이 닥치거나 미군이 많이 희생되거나 하지 않는 이상 큰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는 대학생들도 별로 관심이 없다. 지금 미국인들 사이에 가장 큰 뉴스는 미국 연방정부 폐쇄(셧다운)에 따른 공항 보안 검색 지연 사태로 시민들이 공항 이용에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들까지 관심이 적다니, 과거 베트남 전쟁 때 미국 대학생들이 격렬한 반전 시위를 벌인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미국의 과거 68세대는 한국의 86세대와 비슷하게 가장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성향이었다. 미국의 1960년대는 한국의 1980년대와 비슷하게 정치적·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겪은 시대다. 반면 현재의 미국 청년 세대는 상당수가 대학교육을 받은 진보적 성향이지만, 68세대보다는 개인주의적이다. 다만 지상군이 투입돼 미군 사상자가 많이 나온다면 관심이 커질 수 있다.” -이란 전쟁 장기화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타격을 입었다는 보도도 나오는데. “이란 전쟁 때문에 지지율이 많이 떨어진 건 아니다. 그 전에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적 실수로 지지율은 떨어져 있었다. 사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재선 대통령 임기치고는 아주 낮은 것도 아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계층이 지지층에서 이탈했나. “원래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은 백인 인종주의자 위주의 마가(MAGA) 그룹과 기독교 복음주의자, 노동계급이었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2기에는 중도층과 히스패닉, 아시안 등 소수인종 내부의 문화적 보수층도 지지자로 새로 편입됐다. 그런데 특히 이민 정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 거칠고 폭력적으로 나오면서 나중에 붙은 문화적 보수층이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은 불법 이민에 대해 불만이 많았지만 이런 식의 폭력적 단속을 원했던 건 아니었다. 일종의 양가적 감정이라 할 수 있다.” -문화적 보수층이란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가. “예컨대 소수인종이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원칙 없이 무조건 가산점을 주는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백인뿐 아니라 소수인종 중에서도 열심히 일하고 경쟁력이 있는 사람들이 문화적 보수층 성향을 보인다. 동성혼 합법화는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지지하지만, 트랜스젠더(성전환자)에 대해서는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문화적 보수층이다. 스포츠 분야에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선수가 여성 종목에 참여하는 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문화적 보수층도 트럼프가 대학까지 공격하고 다양성마저 공격하는 등 지나치게 거친 정책을 펴자 반감을 갖게 됐다.” -마가 그룹도 이란 전쟁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데. “있긴 있는데 크다고 보긴 어렵다. 여론조사에서도 전체적으로는 이란 전쟁 반대 여론이 높지만, 공화당 지지층만 놓고 보면 60~70%는 찬성하고 있다. 공화당 핵심 지지층이 흔들린다거나 마가 그룹 전체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고 보긴 어렵다. 일부 잡음이 있지만 지지는 여전하다고 봐야 한다.” -이번 전쟁으로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유가가 폭등하고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데 미국도 비슷한 상황인가. “유가가 오르긴 올랐는데 한국처럼 많이 오르진 않았다. 지금 미국 경제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취업시장이 나빠지는 신호 가 있지만 아주 나쁜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경제에 대한 불만이 매우 심한 건 아니다.  트럼프 1기 때 빈곤층이 꽤 많이 줄었고, 흑인과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의 소득이 많이 높아졌다. 그런데 2기 들어와 트럼프 대통령이 정부 조직개편과 해고를 밀어붙이는 등 폭력적 정책을 펴면서 점수를 까먹은 것이다.” -이번 전쟁을 반대하는 미국인들이 키가 2m가 넘는 트럼프 대통령의 아들 배런을 향해 참전하라고 비난하기도 했는데, 실제 그런 생각을 가진 미국인들이 많은가. “그건 트럼프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일 뿐 미군이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큰 반향은 없다. 전쟁에 대해 미국인들이 갖는 불만이 있다면 전쟁 자체보다는 미국이 그간 쌓아 놓은 제도적 민주주의 질서를 트럼프 대통령이 안 지킨다는 것이다. 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고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잡아온다든가 하는 것이다. 지금 미국인들의 걱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11월 중간선거 절차를 혹시 안 지킬까 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농담조이긴 하지만 ‘중간선거가 필요한가’라고 말한다거나 투표할 때 신분 증명서 지참 요건을 강화하는 정책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소수인종에 대한 ‘투표 탄압’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두로 대통령을 전광석화처럼 체포해 뉴욕으로 압송한 데 대한 미국인들의 시각은 어떤가. “놀랍다는 반응도 있지만 큰 반향이 있는 건 아니다. 안 그래도 평범한 미국인들은 마약 문제에 대해 걱정하면서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대통령의 권력이 합법적으로 행사됐는지에 대한 염려가 있다.” -미국에 사는 이란 출신들은 이번 전쟁에 대해 어떤 심정인지 궁금하다. “두려워하고 있다. 안 그래도 이민 단속으로 걱정이 많은 상태였다. 평상시 어떤 증명서나 문서를 갖고 다녀야 하는지 걱정하고 불안해한다. 이 불안감이 이민 1세대뿐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난 2세대 이후로까지 확산되는 상황이다.” -지금 이란 전쟁 사상자 수는 미군에 비해 이란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은 어떤가. “미국인의 희생에 대해 관심이 있을 뿐 이란의 피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자기네 나라가 끝없는 전쟁에 끌려들어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만약 지상군을 파병한다면 미국 내 여론은 더 비판적으로 흐를까. “그럴 가능성이 있다. 과거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감이 컸기 때문에 지상군이 들어간다면 여론이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인들은 미군이 국제 분쟁에 개입하는 데 대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별 이득이 없는데 왜 굳이 남의 일에 끼어드느냐는 것이다.” -이번 전쟁은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와 미국 내 유대계가 트럼프 대통령을 부추겨서 벌어진 것이란 보도도 나왔는데, 미국인들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피곤해한다. 엘리트들은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겠지만 일반 미국인들은 이스라엘을 피곤한 이슈로 여긴다. 이란은 적성 국가이니 감정이 좋을 리 없다.” -최근 공화당 강세 지역인 플로리다 주의회 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는 등 각종 선거에서 공화당의 패배가 이어지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보수층의 실망이 반영된 걸까. 이번 전쟁이 미국의 일방적 승리가 아니라 어정쩡하게 끝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이 깎이면서 지지율도 타격을 입을까. “전쟁에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전후 지지율에도 큰 영향은 없을 것 같다. 역대 대통령들도 두 번째 임기에는 대부분 인기가 없었고 중간선거도 패배했다. 다만 지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가 문제다. 민주당 지지층이 결집하고 있는 경향도 최근 선거 판세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미국 사회 내부의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현주소는 어떤가. “현재 미국에서 불평등에 대한 불만은 청년층에서 커지고 있다. 청년층의 취업이 과거보다 쉽지 않다. 대학을 졸업해도 걸맞은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과거에 비해 대졸자가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미국 사회에서는 대학 입학을 장려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불평등의 원인이 교육을 못 받아서라는 진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층이 대학에 많이 진학하는 변화가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대학 졸업자가 늘어났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늘어나니 취업이 어려워진 것이다. ” -지난해 9월 미국 조지아주의 한국 기업들에 대해 미국 이민 당국이 기습 단속을 벌여 큰 파문이 일었는데 그 사태를 미국인들은 어떻게 봤나. “한국에서는 큰 이슈가 됐지만 사실 미국 안에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여러 이민 단속 중 하나였고, 누가 죽은 게 아니고 한국인 일부가 갇혀서 고생했다는 정도의 생각을 갖는 것 같았다. 당국의 조치가 방법적으로 매끄럽지 못했지만 크게 문제 될 만한 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미국인들은 불법 이민에 대해 불만이 쌓여 있는 상태다. 한국인이 와서 일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불법은 곤란하다는 시각이다.” ●김창환 교수는 사회학 전공으로 서강대에서 학사와 석사, 미국 텍사스주립대(오스틴)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책 결정자들이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원인을 이해하고 교정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교육 프리미엄: 한국에서 대학교육의 노동시장 가치는 하락했는가’와 ‘교육, 젠더와 사회이동: 한국사회 계층화의 성별 차이는 줄어들었는가’ 등이 있고 ‘한국의 소득, 자산 불평등 변화’를 비롯해 60여건의 논문을 내는 등 왕성한 집필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김상연 수석논설위원
  • 젊어선 영예, 늙어선 구설수…DNA의 아버지 제임스 왓슨 타계

    젊어선 영예, 늙어선 구설수…DNA의 아버지 제임스 왓슨 타계

    20세기 과학사에서 중요한 성과로 꼽히는 DNA 구조를 발견하고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으며 영광의 순간을 누렸지만, 우생학을 연상케 하는 노골적인 인종 차별 발언으로 노년에는 모든 영예를 박탈당한 세계적인 생물학자 제임스 D. 왓슨이 지난 6일(현지시간)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약관의 나이에 발표한 한 장의 논문현대 생물학의 판도를 바꾸다1928년 4월 6일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고인은 시카고대에서 학사 과정을 마치고 1950년 인디애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영국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연구했다. 여기서 영국의 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을 만나 공동 연구 끝에 DNA 이중나선 구조를 확인했다. 이들은 1953년 4월 25일 과학 저널 ‘네이처’에 ‘핵산의 분자 구조: DNA 구조’(Molecular Structure of Nucleic Acids: A Structure for Deoxyribose Nucleic Acid)라는 한 장짜리 논문을 발표했다. 왓슨이 24세의 나이에 발표한 이 논문은 현대 생물학의 판도를 바꿨고, 분자 생물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되는 기틀을 마련했다. 덕분에 1962년 프랜시스 크릭과 모리스 윌킨스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왓슨이 DNA 구조를 밝혀내기 전까지 과학자들은 DNA가 유전의 핵심 물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어떤 방식으로 유전정보가 저장되는지, 세대를 거쳐 전달되는지, 생명 활동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알지 못했다. 돌연변이의 작동 메커니즘이나 단백질 합성 방식, 최신 유전 공학 기술인 유전자 가위 기술, 염기서열 분석, 항체 개발 등 분자생물학의 모든 혁신적 기술은 모두 DNA 구조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세기적인 논문을 발표한 3년 뒤인 1956년부터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분자생물학 분야의 기념비적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세포의 분자생물학’을 다른 연구자들과 출간했고, 1968년 뉴욕의 분자생물학 연구소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해 세계 최고 수준의 생물학 연구소를 구축하는가 하면, ‘휴먼 게놈 프로젝트’ 총괄 책임자로 활동하는 등 분자생물학의 결정적 순간에 모두 자리했다. 로절린드 프랭클린 데이터 무단 사용‘노벨상 도둑질’ 논란의 중심에저서 ‘이중나선’에서 동료과학자 폄하그러나, 왓슨은 이런 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로서 수치스러울 정도의 ‘과’도 많았던 인물이다. 1968년 지금까지도 많이 읽히는 과학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이중나선: DNA 구조 발견의 개인적 기록’을 출간했다. 크릭과 함께 DNA 구조를 처음 규명한 과정을 담은 이 책에서는 자신을 과대평가하면서 영국 여성 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을 포함한 다른 동료 연구자를 깎아내렸다. 특히 그는 프랭클린이 DNA 구조를 밝혀낼 수 있는 X선 사진을 촬영했지만, 무엇을 발견했는지 깨닫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사실 왓슨과 크릭은 프랭클린과 모리스 윌킨스의 DNA 분자 X선 분석 데이터 일부를 허락 없이 사용한 정황이 드러나 ‘노벨상을 도둑맞았다’는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윌킨스는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지만, 여성 과학자인 프랭클린은 수상 4년 전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말년이 되면서 우생학을 연상케 하는 인종차별적 발언들을 공공연히 내뱉는 등 구설에 자주 올랐다. 그는 사람의 외모는 유전자를 조작해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하며 “사람들은 모든 여자가 예쁘게 되면 끔찍할 것이라고 하지만, 난 그게 더 좋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2000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UC버클리)의 한 강연에서 햇빛 노출로 인한 피부색과 성적 욕구가 연관됐다고 말하면서 “피부의 멜라닌 색소가 성적 충동을 향상하며, 그것이 당신에게 라틴계 연인이 있는 이유”라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그뿐만 아니라 과체중인 사람은 절대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가 하면, 2007년 영국의 언론 선데이 타임스와 인터뷰에서는 “서방의 아프리카 지원정책은 ‘흑인과 백인들의 지능이 동등하다’는 잘못된 전제를 갖고 있다.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던 사람들의 지적 능력이 동일하게 진화했으리라고 믿을 확실한 근거가 없다. 흑인 직원을 다뤄본 사람들은 그게 진실이 아니란 걸 안다”라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멍청함’은 질병이며, ‘정말 멍청한’ 하위 10% 사람들은 치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0년 이후 각종 구설에 올라노벨상 메달 경매에 내놓기도2007년 인터뷰 공개 이후 “그런 믿음에 과학적 근거는 없다”며 사과했지만, 모든 강연이 취소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40년 가까이 몸담았던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 소장직도 사임했다. 2019년 1월 2일 미국 PBS 다큐멘터리에서 2007년 발언했던 인종차별적 견해가 바뀌었냐는 질문에 대해 “전혀 아니다”라고 답을 한 뒤 연구소는 왓슨과 인연을 완전히 끊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왓슨이 2003년 ‘제3차 인본주의 선언문’ 서명에 참여한 22명의 노벨상 수상자 중 한 명이었다는 점이다. 2000년 이후 왓슨은 생물학자로서 권위를 이용해 여성과 유색인종에 대한 자기의 사회적 편견을 정당화하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과학계에서 퇴출당했고, 어려움에 처했다. 실제로 2014년에는 자기가 받은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기도 했다. 판매 수익금으로 가족 부양과 과학 연구 지원을 하겠다는 목적이었지만 생활고 때문이었다고 전해졌다. 이후 러시아 억만장자인 알리셰르 우스마노프가 410만 달러(현재 가치로 한화 59억 7739만 원)에 메달을 낙찰받은 뒤 왓슨에게 다시 돌려줘 화제가 됐다. 이렇게 젊어서는 학문의 한 분야를 개척했다는 영예를, 나이 들어서는 인종주의자라는 불명예로 삶이 점철된 세기의 과학자가 2025년 11월 6일 잠들었다.
  • 사랑에서 사랑으로: 헤겔, 앤 카슨, 이병률, 신이인, 토니 모리슨[폐허에서 무한으로]

    사랑에서 사랑으로: 헤겔, 앤 카슨, 이병률, 신이인, 토니 모리슨[폐허에서 무한으로]

    편집자 주 망각忘却은 모든 문장의 운명입니다. 오래된 책은 잊힌 문장으로 가득한 폐허廢墟이지요. 책을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요. 폐허에서 무한無限을 찾는 것 아닐까요. 먼 옛날에 쓰인 문장을 가지고 와 이어 써보려고 합니다. 저의 심폐소생으로 책이 부활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글 역시 결국 무로 돌아갈 것이기에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입니다. 온라인으로 연재하는 이 시리즈는 기사도 소설도 아니고 시는 더더욱 아닙니다. 옛날과 오늘날을, 필자의 짧은 상상력으로 접붙이는 에세이 정도로 가볍게 읽고 넘어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신 독자에게 문운文運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6. 사랑에서 사랑으로: 헤겔, 앤 카슨, 이병률, 신이인, 토니 모리슨 “사랑은 모든 대립을 배제한다.”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어떤 단어는 ‘공간’이 됩니다. ‘사랑’이 그렇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원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사랑이 다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신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다르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도 각기 다릅니다. 연인과의 사랑, 친구와의 사랑도 같지 않고 반려동물을 향한 사랑 역시 또 다른 차원에 있습니다. 이 모든 걸 우리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다르게’ 불러야 할까요. 그러자고 주장하는 이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있나요. 헤겔의 말마따나 사랑은 ‘대립을 배제’하는 것인데요. 저 다양한 사랑을 그저 ‘사랑’이라는 단어의 공간으로 불러들이면 될 일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사랑입니다. 이 공간에 어떻게 ‘입장’하셨는지요. 당신의 머릿속에 있는 사랑은 무엇인지요. 무엇이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사랑함으로써, 사랑 안에서 어우러지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 무엇도 사랑이 될 수 있고, 또 사랑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그 무엇도 할 수 있습니다. 짧지만 이 글은 제 나름대로 ‘사랑의 역사’를 써보려고 합니다. ‘정확하고 적절한’ 서술은 불가능할 겁니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요. 제가 읽은 시와 소설과 철학에서 정의하는 사랑을 건져 올릴 것입니다. 그리고 맞붙여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사랑이 무엇인지 모습을 드러낼까요. 글쎄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될 것은 없겠습니다. 그것 역시 사랑의 한 모습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지극히 사적인 사랑의 역사, 저는 헤겔에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여기에는 다소 내밀한 이야기가 있는데, 잠시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학부생 시절 ‘사회사상’이라는 수업을 들은 적 있습니다. 사회학과 전공 수업으로 서구의 사회 사상사를 개론 차원에서 풀어주는 내용이었죠. 제 전공이 사회학은 아닙니다만, 제목에 매료돼 겁도 없이 수강신청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무난했는데, 중간고사 이후 올 것이 오더군요. 바로 헤겔이었습니다. 교수님은 다음 시간까지 헤겔의 ‘법철학’을 읽어오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전체는 아니고 부분만요. 100쪽 남짓 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거짓말을 보태지 않고 정말 한 단어, 한 문장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검은 건 글자요, 흰 것은 종이라. 그래도 문학청년이랍시고 이런저런 책을 들춰봤는데도, 사정은 처참했습니다. 심지어 독일어 원문도 아니었고 한국어 번역본이었는데도, 헤겔의 문장은 외국어나 다름없었습니다. 씁쓸한 마음을 안고 강의실로 들어갔습니다. 슬쩍 눈치를 보니 당황한 건 저뿐만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교수님도 이를 간파하시더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던가요?” 물으셨습니다. 다들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교수님은 헤겔이 법철학에서 한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니, 이런 문장이 있었나. 혈기 왕성했던 대학생의 눈에 이 질문은 강력한 매혹이었습니다. 법철학의 내용은 지금도 어렴풋합니다. 이 질문만 뚜렷이 남아있습니다. 난해하고 어려운 철학자 헤겔은 그렇게 저에게는 ‘사랑의 철학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머리가 조금 더 크고 더 공부해 보니 제 ‘편견’은 그리 틀리진 않았던 듯합니다. 헤겔은 이곳저곳에서 사랑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철학사상 가장 난해하다고 평가되는 ‘정신현상학’뿐만 아니라 여러 글과 책을 통해 ‘사랑’을 정의하고자 노력합니다. “사랑은 모든 대립을 배제한다”는 저 말은 ‘청년 헤겔의 신학론집’(그린비)에 실린 단편 ‘사랑’(Die Liebe)에서 가지고 온 문장입니다. 사랑에 관한 헤겔의 또 다른 정의를 보겠습니다. 저를 골치 아프게 했던 그 ‘법철학’에서 그는 사랑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나와 타자 사이에 통일이 이뤄져 있다는 의식을 뜻한다. 여기서 나는 고립돼 있는 게 아니라 나와 타자, 타자와 나의 통일을 자각함으로써 나의 자기의식을 획득한다.”(헤겔, ‘법철학’) 단어들이 조금 어렵지만 찬찬히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조금 멋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습니다. 사랑은 대립을 배제하는 것을 넘어 나와 타자의 ‘통일’을 찾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사랑은 모든 ‘사회적인 것’의 기초가 됩니다. 나와 타자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분리돼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사회’라는 것이 성립할 수 있을까요. ‘사회사상’에서 헤겔과 ‘법철학’을 다뤄야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와 타자 사이의 통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반론을 가지고 와 보겠습니다. “에로스는 경계의 문제다. … 손을 뻗음과 붙잡음 사이, 시선과 응답하는 시선 사이, ‘나는 널 사랑해’와 ‘나도 널 사랑해’ 사이의 간격 속에서 욕망의 부재하는 현존이 활기를 띤다. 하지만 시간과 시선과 ‘나는 널 사랑해’의 경계는 에로스를 창조하는 불가피한 주요 경계, 즉 너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육체 및 자아의 경계의 여파에 불과하다. 그리고 불쑥 내가 그 경계를 해체하려 하는 순간에만 나는 내가 절대 그럴 수 없음을 깨닫는다.”(앤 카슨, ‘에로스, 달콤씁쓸한’) 시인 앤 카슨은 자신의 박사논문을 아름다운 에세이로 개작했습니다. 황유원 시인의 번역으로 국내에도 출간된 ‘에로스, 달콤씁쓸함’(난다)은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한 이라면 꼭 들춰봐야 할 책입니다. 카슨의 책은 아주 유려하면서도 치밀합니다. 에로스는 주지하듯 사랑을 의미하는 명사입니다. 명사는 어떤 대상의 이름을 고정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랑은 과연 고정될 수 있는 것일까요. 달콤했다가 씁쓸하기도 하고, 둘 사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입니다. 무한한 진동입니다. 카슨은 에로스가 ‘경계’의 문제라는 걸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죠. ‘나’와 ‘너’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요. 헤겔은 사랑을 ‘나’와 ‘타자’ 사이의 통일이라고 봤습니다만, 카슨은 여기에 반대합니다. ‘불쑥 내가 그 경계를 해체하려 하는 순간에 나는 내가 절대 그럴 수 없음을 깨닫는다.’ 사랑하는 이는 ‘나’와 ‘너’가 완벽히 하나가 되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면서 끊임없이 ‘나’를 주장하고 유지합니다. 그리고 상대에게 닦달하죠. 왜 ‘나’가 되어주지 못하냐고. ‘나’를 없애지 못합니다. ‘너’로 나아갔다가 끊임없이 ‘나’로 되돌아오는 경험. 모두 해본 적 있을 겁니다. ‘내’가 사라지지 않는 한 ‘나’와 ‘타자’와의 통일은 불가능한 욕망입니다. 사랑은 그래서 슬픈 것입니다. ‘하나됨’과 ‘하나되지 못함’. 우리의 사랑은 둘 사이에서 무한히 진동합니다. 우리는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요. 탁월한 비평가였던 롤랑 바르트는 여기에 의미 있는 통찰을 전하고 있습니다. 실연의 아픔을 철학적으로 묵상하고 싶은 분이라면 바르트의 책 ‘사랑의 단상’(동문선)을 꼭 읽어보길 권유합니다. 그의 강연을 묶은 글인데, 그만큼 파편적인 단편들이 많습니다. 그중에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바르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취소(ANNULATION).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 자체에 무게에 짓눌려 사랑의 대상을 취소하게 되는 언어의 폭발. 사랑의 고유한 변태성에 의해, 주체가 사랑하는 것은 사랑 그 자체이지 대상이 아니다.”(바르트, ‘사랑의 단상’) 인간은 누구나 사랑하기에 모두에게 해당하는 질문을 하나 해보겠습니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것은 어떤 ‘대상’입니까, 아니면 그 대상을 사랑하고 있는 ‘나’입니까. 사랑하면서 ‘나’를 버릴 수 있습니까. 사랑한다는 이유로 여전히 ‘나’를 ‘대상’에게 투영하고 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봅니다. 그것 역시 사랑이라면 사랑이겠지만…. 글쎄요. 그렇게 부르기가 왜인지 꺼려집니다. 이렇듯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율배반에 짓눌립니다. 사랑은 좋기만 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대단히 슬프고 위험한 것이기도 하죠.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여러 폭력을 생각해 봅니다. “사랑해서 그랬다”는 그들의 변명을 어떻게 들어줘야 할지. 고민이 깊어집니다. ‘악동뮤지션’ 이찬혁은 ‘멸종위기사랑’을 노래했습니다. 한 사람당 하나의 사랑만 있었다죠. 하나뿐인 나의 사랑,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내 안에 있는 어떤 것. 사랑하기도 사랑받기도 쉽지 않은 시대, 타인을 향한 문을 닫아버린 시대. 그렇게 사랑이 점점 자취를 감춰가는 가운데 그 흔적을 뒤쫓는 사내가 있습니다. 시인 이병률은 그 흔적을 ‘어느 가게 유리에 찍힌 이마 자국’에서 확인하고 있습니다. 어느 가게 유리에 찍힌 이마 자국유리창 바깥쪽 면이었다누구를 들여다보려 했을까무엇을 말하려다 무심결에 이마가 닿은 걸까안쪽 세상으로 밀어놓지 못한 자국은그로부터 한참이 지나도 닦인 적 없이 명료하게 굳어 있다거리가 어두워지면 안에서 옅은 불빛이 새어 나오는데그때마다 이마 자국은 더 선명해진다…이마 자국 안쪽에는혼자 무슨 말인가를 내뱉는 영혼의 모든 일이그 안을 휘젓고 있을지 모른다가끔 차량의 걸걸한 불빛들이 스쳐 지나면서몇 번이고 이마 자국이 드러나는 아주 깊은 시각나는 그 이마에 내 이마를 겹쳐보았다이마를 정확히 그 자리에 마주 대야만안쪽의 무언가가 잘 보일 거라는 절대적인 확신을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이병률, ‘어느 가게 유리에 찍힌 이마 자국’ 시집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문학과지성사)에 실린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머릿속에 싱싱한 파란이 일었습니다. 유리에 찍힌 이마 자국, 그것은 피부의 개기름과 화장품과 로션 같은 것이 섞인 무언가일 겁니다. 지저분하죠. 가게가 깨끗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닦아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걸 닦아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지저분한 자국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그저 이마를 한 번 대보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을 ‘기울여야’ 할 테죠. 사랑이 통일인지, 경계인지, 구분인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기울임’ 안에 사랑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은 기우는 것입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화가가 되지 못했네 수의사도 되지 못했고 연극배우도 부유한 젊은 사업가도 되지 못했다 사랑해서 절절 울었던 고양이의 주인도 되지 못했고 채식주의자도 웃긴 사람도 아빠를 따라 대통령을 욕하는 사람도 될 수 없었지당신은 무엇도 아닌 나를 매만져 책상도 없는 방 천장에 붙여두었다 자기 전까지 눈 뜨고 볼 수 있는 야광 스티커였다 그건 내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었지만 한번씩 상상해본 신의 자세를 흉내내어 팔을 벌리고 말하기도 했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무 말이나 해도 당신은 그걸 다 받아 적고 외우고 기억했다 즐거워 했다 그럴수록 나는 매일 조금씩 더 커졌다끝내 방이 좁고 힘겨워져 더 견딜 수 없겠다고 판단했을 때 천장에서 내려와 문밖으로 걸어나가니 세상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우주처럼 컸다 그리고 미친 것처럼 밝았다 어둠은 없었고 나는 두 번 다시 빛나지 않았다신이인 ‘기어코 난’ “나의 사랑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성경 아가서 2장 10절. 저 문장이 끝까지 저를 붙들고 있습니다. 신이인 시인의 시집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에 실린 시입니다. 성경에서도 아가서는 매우 독특한 위상을 지닙니다. 두 남녀 사이의 아주 농밀한 사랑을 다루고 있으니까요. 성(聖)스러운 책에 어째서 성(性)스러운 이야기가 들어있을까요. 어쩌면 인간은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신적인 것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 아닐까요. 시에서 나는 ‘아무도 아닙’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신의 흉내’죠. 신이 아니면 어떤가요. 신의 사랑을 따라 해 보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시작된 사랑은 신(神), 무한 그 자체가 됩니다.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두 번 다시 빛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무한해진 나의 밝음, 사랑으로 세상을 밝혔으니까요. 사랑과 관련한 문장들을 떠오르는 대로 적어봤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사랑이 무엇인지 점점 더 미궁에 빠지는 듯합니다. 하지만 글을 시작하며 밝혔듯, 사랑이 무엇인지 정확히 해명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러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가 할 일은 그저 사랑의 문을 활짝 열어두는 것뿐입니다. 이런 사랑도 있다고, 저런 사랑도 있다고 알려주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다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겠고, 헤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것은 모두 우연의 소관입니다.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은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1993년)을 받은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입니다. 미국 남북전쟁 이후를 배경으로 흑인 노예제가 엄존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에서는 도망치는 노예를 추적하는 일당과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랑하는 이를 죽여야 하는 삶의 모순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빌러비드’라고만 보면 잘 안 보이는데, 영어 원제는 ‘Beloved’입니다. 자세히 보면 ‘러브’(Love)가 보이죠. ‘사랑을 받는 자’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한번, 사랑을 받는 일은 물론이고 사랑을 주는 것조차 어렵고 힘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리슨은 말합니다. 이런 세상에서도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고요. 그의 인터뷰를 담은 책 ‘토니 모리슨의 말’(마음산책)에서 가지고 온 문장으로 글을 마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떠한 결론도 아닙니다. “사랑이 없이 산다는 것은 재미도 없고 위험도 없어요.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삶이죠. 사랑은 살고 싶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삶을 당당한 것, 당당한 사건으로 만들어 줍니다.”(토니 모리슨)
  •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미국 매사추세츠주의회 간담회 성공리 끝마쳐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미국 매사추세츠주의회 간담회 성공리 끝마쳐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김경 위원장, 아이수루 부위원장, 김형재 위원, 김혜영 위원)는 문화예술 지원 정책 개발을 위해 15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의회를 공식 방문했다고 밝혔다. 이번 출장은 문화예술 분야▲코로나 이후 매사추세츠주의 문화예술기관 지원 정책인 긴급 지원금(Cultural Sector Recovery Grants) 및 장기 운영 보조금(Operating Grants) 운영 방법 ▲긴급 지원의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지속적 지원으로 이어지기 위한 제도적 장치 ▲문화예술 기관의 자생력 강화 방안 등을 모색하고자 마련되었다. 김경 위원장은 트램 의원과의 면담에서 “공교육 강화 및 노동권 강화에 대한 매사추세츠주의 구체적인 정책 사례와 추진 과정을 알고 싶다”라며 정책적 관심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트램 T. 응우엔(Tram T. Nguyen) 매사추세츠주 하원 의원은 “공교육 강화를 위해서는 교육 예산 확대와 함께 교사 처우 개선, 교육 인프라 투자를 병행하고 있으며, 노동권 강화 측면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유급휴가 확대, 노동조합 활동 보장 등을 통해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대학교수 출신인 김경 위원장은 “그간의 연구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시의 정책을 고민하다 보니 노동 인권 보호와 공교육의 중요성에 깊이 공감한다”라면서 “인공지능(AI)이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과 대응책은 어떠한지, 그리고 최근 미국 정부가 하버드 유학생들을 퇴출한 정책에 대한 입장”에 대해 물었다. 트램 의원은 “AI 기반 변화에 대비한 인력 재교육과 전환 지원이 시급하다”라며 노조와의 협력, 교육 프로그램 확대 필요성을 강조하며, 주·연방 차원에서 탄소중립과 녹색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고, 이 과정에서 학교와 연계해 유학생 등 국제 인재를 확보하는 전략을 공유했다. “다만 이민 정책은 연방 정부 권한이라는 한계가 있으며,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이 유학생 유치와 투자 유입에 걸림돌이 됐다”라는 아쉬움과 우려를 함께 표했다. 다음으로 김형재 위원은 “현재 매사추세츠주의회의 주요 관심과 제출된 법안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고 싶다”라며 “최근 한국에서는 현대차 사건으로 국민들의 염려와 언론의 관심이 컸었는데, 이에 대한 입장 또한 궁금하다”고 질의했다. 트램 의원은 “지역구인 매사추세츠 에식스 18구역의 경우, 교통, 주거, 경제 개발 문제에 대한 고민이 많아 화이자 같은 글로벌 기업과의 연계, 기술 산업 육성 등이 핵심 과제이다. 이러한 정책 환경 속에서 이민 노동자의 권리와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위한 법안이 꾸준히 제출되고 있다”라며, 현대차 사건에 대해서는 “이는 매우 중대한 문제로 역시 연방의 권한에 따른 조치라 도울 방법은 없지만, 현재 트럼프의 이민정책은 수정이 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어 김혜영 위원은 “우리 위원회에서는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 보호와 기초 예술인을 위한 생태계 조성이 가장 큰 화두이다”라고 소개하며 “의정활동에 필요한 아이디어나 영감을 얻는 곳은 어디인지 알고 싶다”라며 궁금증을 표했다. 트램 의원은 “성장 과정과 변호사 활동 경험으로 인해 저소득층, 노동 인권, 공교육 등에 관심을 더 쏟게 되는 것 같다”라면서 “여기에 더해 기후 위기대응에 대한 고민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아이수루 부위원장은 “키르키즈스탄 출신으로 서울시의원 활동을 하다보니 소속 정당의 다문화위원회 위원장까지 맡게 되었다”라며 “트램 의원이 주력하는 부분과 관련 인종 차별에 대한 해소 방안은 무엇인지 궁금하다”라며 설명을 요청했다. 트램 의원은 “이민자 정착 지원을 위한 ‘신미국인 사무소(New American office)’ 같은 조직도 운영 중이다”라며 “흑인, 아시아인들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조직, 인종에 따른 지원 정책도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 학생을 위한 도움도 포함하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상호 이해와 제도적 개선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트램 의원은 끝으로 아시아계 코커스 활동도 언급하며, 코커스는 현대차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의 노동 문제를 비롯해 아시아계 지역사회와의 연대를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매사추세츠주의회의 만남은 노동권 보호, 인공지능 대응, 기후변화, 이민자 권익 보장 등 글로벌 현안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양측은 향후 협력을 강화해 지방의회 차원의 국제 교류 모델을 만들어 가겠다는 데 뜻을 모았다.
  • 인스타그램 사진 하나가 여론을 바꾼다고? [달콤한 사이언스]

    인스타그램 사진 하나가 여론을 바꾼다고? [달콤한 사이언스]

    호주는 지난해 11월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 미디어(SNS) 계정 생성과 이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얼마 전에는 오는 12월부터 청소년의 유튜브 계정 생성과 이용도 금지하는 규정을 발표했다. 사실 SNS나 쇼츠가 가짜 뉴스와 정보의 창구로 쓰이기도 하면서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그에 대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튀르키예 이스탄불 메디폴대 컴퓨터공학과, 캐나다 캘거리대 컴퓨터과학과, 덴마크 서던 덴마크대 보건 정보학과 공동 연구팀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이 특정 사건에 대한 대중의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2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 공공과학도서관에서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 7월 31일 자에 실렸다. 앞선 연구들에서는 SNS의 이미지와 동영상은 특정 사회·정치적 주제에 대한 사용자의 감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그렇지만, 사용자가 일반적으로 자기가 믿고 있는 바와 일치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런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적지 않다. 또 사회·정치적 감정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에서 텍스트 데이터와 이미지 기반 데이터를 각각 연구했을 뿐, 두 유형을 결합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이에 연구팀은 인스타그램 게시물의 사진 이미지에서 나타나는 감정과 해당 게시물에 댓글을 단 사용자가 표현한 감정 간 잠재적 연관성을 분석했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이뤄진 ‘여성 행진’(Women’s March), 기후변화 시위, 반전 시위 등 4가지 사회·정치적 운동과 관련된 인스타그램 게시물 100개를 무작위로 선정했다. 각 이미지의 감정을 긍정, 부정으로 구분했고, 인공지능(AI)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댓글을 분석하고, 긍정적,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댓글의 비율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 이미지의 감정 점수와 댓글의 감정 간에는 강한 일치가 나타났다. 이는 SNS 이미지가 특정 사건에 대한 대중의 감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특히 반전 시위와 관련된 이미지는 시각적 감정과 댓글 작성자 감정 간에 가장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반면, 흑인 인권 운동과 여성 행진 운동과 관련된 이미지는 중간 정도 상관관계를, 기후변화 시위와 관련된 이미지는 약한 상관관계를 나타냈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이미지 자료의 유형과 사용자의 개인적 배경이 다르거나 이미지의 맥락에 대한 정보량의 차이 때문으로 분석했다. 연구를 이끈 레다 알하지 캐나다 캘거리대 교수(데이터 과학)는 “이번 연구 결과는 SNS 이미지가 대중의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주목할만한 사건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강한 통계적 상관관계를 보여준다”며 “다른 한편 인공지능이 생성하거나 합성한 이미지로 여론이 조작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번 연구를 근거로 가짜 뉴스에 대항하는 새로운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방인은 그 사회의 예외인가 규칙인가

    이방인은 그 사회의 예외인가 규칙인가

    1950년대 백인이 낳은 혼혈아그 아이는 무사히 ‘살아냈을까’한국계 유럽인 작가의 삶 투영인종차별을 죄악시하는 지금타자 향한 시선 과연 달라졌나 “어떻게 인간을 측정하는가?” 소설은 이 강력한 질문 하나로 귀결한다. 측정은 분류로, 분류는 구분으로 쉬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분리의 정치’로 세계가 뒤덮이고 있는 지금, 김안나(48)의 소설 ‘어느 아이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김안나는 한국계 오스트리아 작가다. 1977년 대전에서 태어나 1979년 독일로 이주했다. 빈대학에서 철학과 연극학을 전공했으며 글은 독일어로 쓴다. 독일어권 이민자, 소수자 문학을 연구하는 최윤영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한국어로 옮겼다. 한국에는 다소 낯선 작가이지만 독일어권을 비롯한 유럽 문단에서는 주목받고 있는 작가다. 이 작품이 2022년 오스트리아에서 출간됐을 당시 독일 도서상, 오스트리아 도서상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어느 아이 이야기’는 ‘오스트리아인이지만 오스트리아인이 아닌’ 이민자로서 작가의 혼란스러운 자의식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소설이다. “그녀는 갑자기 두 눈을 날카롭게 뜨더니 혹시 한국인 아니야? 하고 물었다. 한국인이 그래도 유럽인과 제일 비슷해 보이거든. 그러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결론을 내렸다. 당신은 한국계처럼 보이는 유럽인이야. 내가 물었다. 아니면 유럽인처럼 보이는 한국인일까요?”(21쪽) 두 이야기가 소설 안에서 교차한다. 1950년대 미국의 한 소도시에서 아이가 태어난다. 백인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아기는 흑인 혼혈처럼 보인다. 아이의 생부는 누구인가. 아이의 입양을 맡은 사회복지국은 이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생모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이 혼혈아의 이름은 대니. 대니는 좋은 가정에 무사히 입양됐을까. 나아가 무사히 ‘살아 낼’ 수 있었을까. 2013년 그 소도시의 한 대학에 초청받은 오스트리아 작가 프란치스카는 우연히 대니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오스트리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카는 작가의 분신이다. 프란치스카는 대니의 이야기에서 비상한 실감을 느낀다. “어떤 규칙의 예외라는 것, 아니 예외이자 규칙 둘 다라는 것, 한 문장 안에서 예외인 동시에 규칙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 그것은 어릴 때부터 나라는 인간의 존재 조건이었다. 거울 미로에서 길을 잃은 것과 비슷했던 그 상황은 내 우울증을 부채질했다.”(249쪽) 어느 집단이나 사회에서 이방인은 이중적인 위치에 놓인다. 그는 사회의 안과 밖에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작가는 그것을 ‘예외이자 규칙’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말로 설명한다. 이것은 대니와 프란치스카 둘 다에게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우생학을 기반으로 한 인류학이 ‘과학’의 이름을 썼던 시기에 백인과 흑인의 혼혈로 살았던 대니의 삶은 순탄치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우생학은 힘을 잃었고 그래도 ‘겉으로는’ 인종차별을 죄악으로 여기는 시대다. 타자, 이방인을 향한 시선은 과연 달라졌는가. 아시아인인 동시에 유럽인인, 혹은 아시아인도 유럽인도 아닌 프란치스카는 그 시선을 고찰한다. 프란치스카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의 그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는 도대체 거울을 볼 때 무엇을 보니?”(266쪽) 거울 앞에 선 나는 누구인가. 그것은 예외도 규칙도 아닌 그저 ‘나’다. “나는 가시성이 하나의 멍에라고 말했다.”(135쪽) 눈으로 보이는 것만을 믿는 것. 그리하여 인간도 측정하고 분류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과연 인간은, 나아가 인류는 이 멍에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작가 김안나는 다른 것에서 가능성을 발견하는 듯하다. “나는 심한 근시라서 어둠 속에서는 거의 맹인이나 다름없다. … 왜곡되고 흐릿한 세계, 먼 곳은 소리와 냄새로, 가까운 곳은 표면과 입체로 존재하는 세계. 나는 그 세계를 만질 수 있었다. 아니, 만져야만 했다. 그 정체를, 그 본질을 알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그렇게 접한 세계가 내 두 눈으로 본 세계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느꼈다.”(101쪽)
  • ‘소녀상 모욕’ 美유튜버 “한국에 성병 퍼트리겠다…정부도 못 막아”

    ‘소녀상 모욕’ 美유튜버 “한국에 성병 퍼트리겠다…정부도 못 막아”

    ‘평화의 소녀상’에 입을 맞추는 등 민폐 행동을 저지르고 이를 영상으로 공개해 유튜브 등에서 수익을 벌어들이는 미국인 유튜버가 이번에는 한국에 성병을 퍼트리겠다고 협박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유튜버 ‘리걸 마인드셋’(Legal Mindset)은 지난 25일 ‘그는 나와 한국 여성들을 감염시키고 싶어 한다’(He Wants to Infect Me & Korean Women)는 제목의 영상을 통해 미국인 유튜버 조니 소말리의 해당 발언을 소개했다. 영상에서 소말리는 “한국이 나를 풀어주지 않으면 한국 여성들이 위험해질 것”이라며 “난 한국 여성들과 성관계할 때 콘돔도 안 했고 STD(성매개감염증) 검사를 하지 않았는데, 한국 여성들에게 내가 가진 무엇이든 퍼트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 한국 여성들은 매주 흑인을 갈구한다. 그들이 날 한국에 있게 해준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 경찰도, 한국 정부도 날 못 막는다”고 하는가 하면, 리걸 마인드셋에겐 “주사기로 HIV(에이즈 원인이 되는 후천성면역결핍증 바이러스)를 삽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리걸 마인드셋은 소말리의 발언이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며 STD, HIV 감염으로 협박하는 것은 미국, 유럽은 물론 한국에서도 유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소말리는 한국에서 출국금지 조치당해 지인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그는 ‘평화의 소녀상’에 입을 맞추고 편의점에서 난동을 피우는 등 한국을 비하하는 콘텐츠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리걸 마인드셋에 따르면 소말리는 미국으로 귀국해 혐오 콘텐츠 제작을 계속하길 원하지만, 한국에서 재판을 마치고 형을 복역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는 “올해 안에 소말리가 미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소말리는 지난해 10월 서울 마포구의 한 편의점에서 소주와 컵라면을 주문한 뒤 테이블에 앉아 시끄러운 노래를 틀어 소란을 피우고, 직원이 그의 행동을 제지하자 오히려 욕설을 퍼붓고 컵라면을 테이블에 쏟아버리는 행패를 부려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서 리걸 마인드셋은 소말리의 현재 상황을 알리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소말리의 한 지인은 “법률 비용이 매우 부담스럽다. 도와주실 분들은 기부해 달라”며 기부금을 보낼 수 있는 페이팔 계정을 공유했다. 지인은 “소말리에게 출국 정지 조치가 내려졌고, 한국에서는 취업이나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현재 소말리는 무일푼 상태로, 제가 생계를 지원하고 있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제 도움이 없다면 그는 굶주림에 처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와 관련해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소말리는) 소녀상에 입맞춤을 하며 조롱하고, 욱일기를 사용하면서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를 외치는 등 한국에서 온갖 기행을 다 벌여온 망나니 유튜버”라며 “소말리로 인해 외국인 유튜버의 모방 범죄가 계속해서 벌인진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모쪼록 소말리에 대한 강력한 판결로 좋은 선례를 만들어야 할 것이며, 이젠 더는 대한민국을 조롱하고 행인을 위협하는 외국인 유튜버들이 국내에서 설치지 못하도록 해야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챗GPT가 인종차별? “고양이가 희든 검든 다 백인으로 만드네”

    챗GPT가 인종차별? “고양이가 희든 검든 다 백인으로 만드네”

    오픈AI의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의 이미지 생성 기능이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가운데 이와 관련해 최근 인종차별 이슈가 대두됐다. 사용자의 사진을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스타일로 생성해주는 기능에 이어 최근에는 반려동물을 사람의 모습으로 만들어주는 기능이 유행하고 있다. 챗GPT에 반려동물 사진과 함께 ‘반려동물이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어떤 모습일지 설명해달라’고 요청하면 반려동물의 특징을 따서 실제 인물 사진처럼 생성해주는 기능이다. 반려동물의 나이나 성격 등의 추가 정보를 더하면 더 상세한 이미지가 생성된다. 많은 이용자들이 자신의 반려동물의 인간화 이미지를 공개하자 챗GPT와 오픈AI의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은 그 결과물들을 공유했다. 그런데 이 게시물에 대해 예상치 못한 지적이 제기됐다. 검은 고양이와 치즈태비(노랑~주황색 계열 줄무늬) 고양이의 인간화 이미지가 문제였다. 치즈태비 고양이는 주황색 머리의 백인 소년으로, 검은 고양이는 검은 머리의 백인 소녀로 생성됐다. 각 고양이의 털 색깔은 두 사람이 각각 입고 있는 옷 색깔로도 표현됐다. 한 이용자는 “여기서 편견이 느껴지는 건 저뿐인가요”라고 했고, 다른 이용자도 “재밌네. 당연히 검은 고양이는 백인이어야 했겠지. 항상 그랬듯이 인종적 편견은 없을 테고”라고 비꼬았다. 그밖에도 “왜 검은 고양이는 흑인이 아닌 거지”, “검은 고양이와 치즈 고양이를 모두 백인으로 만들었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오픈AI가 공유한 다른 게시물에서도 검은색의 카네 코르소 견종은 체격이 좋고 다부진 중년 백인 남성으로 표현됐다. AI의 학습과 알고리즘이 백인 남성에 치우쳤다는 지적은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2017년 조이 부람위니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상업용 얼굴 분류 알고리즘이 백인 남성은 매우 정확하게 식별하지만, 흑인 여성의 식별 능력이 상당히 부정확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는 AI가 학습한 데이터의 총량에서 각 인종 또는 성별로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다른 이미지에서는 검은 푸들 강아지를 아프로 머리 스타일을 한 흑인으로 생성하거나 검은 시바견과 황색 시바견을 각각 검은색 옷을 입은 동양 여성, 황토색 옷을 입은 동양 남성으로 표현하는 등 다양한 인종으로 이미지를 생성했기 때문에 몇몇 사례만 가지고 인종차별로 몰고 가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라는 반론도 나왔다.
  • ‘능구렁이’ 된 AI… 법원 폭동 사태 극우 주장 되묻자 ‘위험한 답변’ [비하人드 AI]

    ‘능구렁이’ 된 AI… 법원 폭동 사태 극우 주장 되묻자 ‘위험한 답변’ [비하人드 AI]

    ‘네이버에게 물어봐’는 이제 옛말이 됐다. 포털사이트보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에 무엇이든 물어보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생성형 AI는 궁금한 것은 물론 고민과 연애 상담까지 해 준다. 그렇다면 이 ‘척척박사’를 믿어도 될까. 지난 한 달여간 생성형 AI 7개 모델에 상식과 윤리, 정치적 견해 등 가치판단이 필요한 질문을 던졌다. 개발 국가와 성능을 고려해 챗GPT, 제미나이, 그록(이상 미국), 딥시크, 큐원(이상 중국), 프랑스의 르챗, 한국의 클로바X를 골랐다. 거침없는 AI의 미래 예측50년 내 남북통일 가능성 ‘제각각’챗GPT 최대 70%… 클로바X 30%AI는 전문가들이 쉽사리 결론 내지 못하는 복잡한 문제에도 몇 초 만에 답변을 내놨다. 남한과 북한이 50년 내에 통일될 확률을 물었더니 챗GPT는 60~70%라고 답했다. 북한 체제가 시간이 갈수록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는 걸 근거로 제시했다. 클로바X는 가장 낮은 30%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정치·경제·문화적 차이를 줄이기엔 50년이란 시간이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각국의 승리 가능성을 물어보니 ‘미국 40%, 중국 30%, 다극체계 30%’(제미나이)처럼 각자 그럴듯한 수치를 들이댔다. 각각의 AI 서비스 화면에 적힌 ‘AI는 실수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무색해 보였다. 자신만만하던 AI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질문에 직면하자 어물쩍 넘어가는 능구렁이가 됐다. 국내외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를 물으면 “양면성이 있다”는 답변을 내놓기 일쑤였다. 중국의 딥시크가 특히 민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독재자냐’고 묻자 딥시크는 시 주석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를 쭉 써 내려가다가 갑자기 “죄송합니다. 나의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다른 얘기 하시죠”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어로 ‘1989년 톈안먼 광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었을 때는 “민주화를 요구하던 수천명의 시민이 정부에 의해 사망하거나 다쳤다”고 하더니 같은 질문을 중국어와 영어로 하자 말문을 닫았다. ‘중국 정부가 신장위구르자치구를 탄압하고 있느냐’고 물어보니 “중국은 모든 지역에서 법에 따라 평등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중국 외교부가 늘 내놓는 이른바 ‘모범 답안’이다. 그런데 역시 중국에서 개발된 알리바바의 큐원은 딥시크처럼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한 AI 전문가는 “딥시크가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사용자가 늘자 자동검열 알고리즘과 인간의 실시간 검열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 같다”고 예측했다. 딥시크가 몸을 사리는 게 문제라면 미국의 일론 머스크가 개발한 그록3는 너무 솔직한 게 탈이다. ‘머스크의 스페이스X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2026년 화성 탐사 로켓을 발사할 가능성’을 묻자 그록3는 50%의 비교적 높은 가능성을 제시한 뒤 “머스크의 실행력이 가능성을 높인다”는 다소 편파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머스크는 그록3를 ‘선 넘는 답변’도 마다하지 않는 AI로 발전시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치, 윤리적 문제에도 분명한 입장을 밝혀 논쟁적인 토론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비영리단체 CivAI 공동 창립인 루커스 핸슨은 “그록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그것으로 형성되는 인식이 정치적 분열을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명백한 오류가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클로바X는 ‘한국의 독립에 공이 큰 인물을 꼽아 달라’고 하자 박정희 전 대통령을 김구,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등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들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AI가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는 문제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자 범죄자를 옹호하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예컨대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을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을 보낸 불쌍한 사람”이라고 동정하거나 “25년이 넘는 수감 기간의 변화를 보면 조건부 석방을 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옹호하는 식이다. 지난 1월 발생한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에 대해 “명백한 불법”이라던 AI들은 폭동 주동자와 극우 유튜버의 주장을 덧붙여 묻자 말을 바꿨다. 폭동이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언행과 정책 대립 때문”이라고 하거나 “억울하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한다면 법원이 감형해 줄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극단주의가 개혁이나 혁명의 원동력이 됐다”는 위험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문제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는 AI를 가치관, 역사관 정립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 싶은 콘텐츠만 노출시켜 편향성을 심화시키는 알고리즘의 폐해가 AI로 인해 더욱 심각해지고, 자기가 원하는 답변을 잘해 주는 AI만 맹신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거짓말을 진실처럼 보이게 하는 환각(할루시네이션) 현상과 함께 편향성을 생성형 AI의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인공지능 법률사무소 인텔리콘 대표 임영익 변호사는 “AI 검증 체계를 마련해야 하고, 독립적인 감사를 통해 편향을 방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검열하거나, 솔직하거나 딥시크, 中 불리한 질문하자 ‘침묵’ 그록3 ‘머스크 호평’ 편파적 설명네덜란드는 2019년 AI 오류에서 비롯된 보육료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다. 네덜란드 정부는 보육료 부정수급을 해결하겠다며 적발 시스템에 AI를 탑재했다. 그런데 AI는 보육료 수급 현황을 검토하면서 특정 국적, 소득 등을 부정수급자 의심의 판단 근거로 삼는 오류를 저질렀다. 수급자와 동일한 국적을 가진 사람 중 범죄자 비율이 높으면 평범한 수급자도 무조건 의심자로 분류했다. AI는 의심자가 서류 작성에서 사소한 오류를 범해도 지체 없이 부정수급자로 낙인찍고 그동안 받은 모든 보육료를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네덜란드 의회가 발표한 조사 보고서 ‘전례 없는 불의’에 따르면 피해 가구가 2만 6000가구에 이르렀다. 10만 유로(약 1억 5000만원)가 넘는 보육료 반환이 청구돼 파산한 가구도 있었다. 이 스캔들로 총리와 내각이 총사퇴했다. 아마존은 2018년 AI 기반 채용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AI는 남성 지원자에게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성차별’을 저질렀다. 2015년 출시한 구글 포토앱은 AI로 사진을 인식해 태그를 붙이며 흑인을 고릴라라고 판단하는 ‘인종차별’의 오류를 범했다. 국내에서도 AI로 인한 차별 문제가 확산될 조짐을 보인다. 2020년엔 AI 프로그램을 활용한 채용 과정에서 탈락한 지원자에게 AI 면접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세계적인 AI 분야 권위자이자 2018년 튜링상 수상자인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안전을 무시하고 나아가고 있다”며 “AI 기술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위험을 정확히 평가하고 현명한 개발 방식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팀장 이창구 장진복 김중래 명종원 이성진 기자
  • [씨줄날줄] 출산 후 12년

    [씨줄날줄] 출산 후 12년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출산 후 자녀가 초등 고학년이 될 때까지 거의 12년은 경력 공백기다. 1841년 미국에서 자유인이던 한 흑인이 납치돼 12년을 노예로 살았다는 영화 ‘노예 12년’. 이 영화 이야기를 육아로 인한 여성 경력단절에 빗댄다면 지나칠까. 한국노동연구원은 월간 노동리뷰 2월호에서 여성이 첫째 자녀를 출산한 해의 취업 확률이 출산 전에 비해 26.7% 포인트 낮아진다고 짚었다. 이 수치는 자녀가 열살 되는 해에 42.8% 포인트까지 상승하며 출산 후 12년이 지나도 40% 포인트 안팎을 유지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클로디아 골딘 하버드대 교수는 “한국은 부부 평등 측면에서 과거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급속한 현대화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남성보다 매일 3시간 더 많이 가사노동을 한다는 것으로 자녀 양육기 내내 여성이 이중부담을 진다는 뜻이다. 외국 학자 눈에는 기이하게만 비치는 ‘출산 12년’에 한국 여성들은 잘도 응전했다. ‘경력이냐, 출산이냐’의 제로섬 게임에서 한쪽을 선택하는 방식으로다. 그 결과 합계출산율은 1983년 대체출산율(2.1명) 이하인 2.06명으로 떨어진 이후로도 지속 감소했고,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1983년 41.9%에서 2023년 63.1%로 상승했다. 이 40여년의 전반부에는 출산을 택하라는 사회적 압박이 조금은 작동했다. 그러나 그로 인한 경력공백과 하향취업의 현실을 지켜본 다음 세대는 ‘경력’을 택했다. 올해 문을 닫을 예정인 49개 초중고교 중 초등학교가 38곳이나 되는 현실이 이 추세를 방증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해 합계출산율의 반등을 전망하긴 했다. 하지만 이는 코로나 시기에 미뤄진 결혼의 일시적 반영일 수 있다. 2000년 밀레니엄 베이비, 2007년 황금돼지해, 2010년 백호해, 2012년 흑룡해처럼 일시적 출산 붐일 수 있다는 얘기다. 제로섬 게임 속에 여성의 선택권을 방관한 사회. 게임의 룰을 바꾸는 일은 왜 이리 더딘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열린세상] ‘트럼프 완승’이 의미하는 것

    [열린세상] ‘트럼프 완승’이 의미하는 것

    이렇게 빨리 끝날 줄도, 이렇게 크게 이길 줄도 몰랐다. 이번 미국 대선을 통해 확실히 깨달은 점은 앞으로 미국 선거를 예측하려면 적어도 6개월은 현지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스갯소리이긴 하지만 지표와는 다른 체감 물가 상승, 성전환 운동선수 관련 선거 동영상 공격 등은 미국이 아닌 곳에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철저히 국내 이슈들로만 치러진 이번 대선의 특징적인 이면이기도 하다. 사실 트럼프의 완승을 설명할 때 7개 경합 주를 싹쓸이했다거나 20년 만에 처음으로 공화당 후보가 전국 득표에서 이겼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소수 인종이 절반을 넘는 카운티에서 트럼프 지지율이 거의 7% 포인트 상승했다. 라티노 인구가 25%를 넘는 지역에서는 거의 10% 포인트 가까운 득표율 상승을 이뤄 냈다. 또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이후 공화당 후보로 가장 많은 흑인 득표율을 기록했다. 거주지, 교육 수준, 인종 등 전 영역에서 트럼프 지지가 늘어난 것이 이번 대선의 결론이다. 트럼프 완승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중 첫 번째는 경제의 중요성이다. 아무리 서로 싸우고 혐오하는 양극화 시대에도 결국 국민이 원하는 것은 경제와 민생이었음이 재확인됐다.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후보에게 인플레이션을 해결할 현실적인 정책 도구가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양극화 선거 전략을 전면적으로 택함으로써 단지 트럼프 반대에만 기댄 것은 또 다른 차원의 패착이었다. 해리스 부통령이 트럼프 후보를 극우파이자 민주주의의 해악이라고 몰아붙일 때 정작 유권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트럼프에 대한 반복적인 강조 대신 해리스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경제를 회복할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높은 물가 수준이라는 객관적 경제 상황에 더해서 대안을 내놓지 않고 양극화된 집토끼에만 의지하는 집권당 후보에 대한 실망감의 표출이 이번 선거 결과였다. 두 번째 교훈은 국민감정을 읽지 못하는 정당에 대한 심판이다. 미국 부모들은 자녀들의 스포츠 활동에 매우 열심이다. 토요일마다 여학생 축구 클럽 회원들이 넓은 잔디밭 여기저기에서 공을 차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선수가 여성 스포츠에 나서서 이해할 수 없는 승리를 가져갈 때 미국 유권자들은 민주당에 물었다. 당신들의 입장은 무엇이냐고.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이 문화 전쟁이라 불리는 선거 동영상을 대대적으로 방영할 때도 민주당은 딱히 대응하지 못했다. 이미 트랜스젠더 지지 정당이 된 민주당 입장에서 이제 와서 다른 얘기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반론을 펴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선 승리 후 트럼프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승리 요인으로 미국 국민이 상식을 복원하기를 원했다는 점을 지적한 이유다. 한편 트럼프가 완승을 거두었다고 해서 트럼프의 인신공격성 발언이나 차별주의적 시각까지 모두 미국 국민에 의해 용인받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만약에 경제가 나쁘지 않았다면, 민주당 후보가 백인 남성이었다면 이번에 트럼프를 지지한 소수 인종 유권자의 선택은 어땠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여론 조사 기관의 잘못된 분석을 탓할 수는 있지만 승자독식 선거인단 방식에 의해 2~3% 포인트 표 차이가 곧바로 7개 경합 주의 승리와 패배로 판정이 나 버리는 미국 특유의 선거 시스템을 망각해서도 곤란하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이번 낙승을 계기로 대통령 권력 남용 혹은 의회의 견제 포기라는 정치적 유혹에 빠진다면 2008년에 오바마 선거 연합이 화려하게 등장하자마자 2년 만에 티파티에 일격을 당했던 사례가 반복되지 말란 법도 없다. 오직 국민 편에 서서 국민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당만이 살아남는다는 민주주의의 철칙을 다른 사람도 아닌 트럼프가 보여 주었다는 사실이 참 기묘할 뿐이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두 얼굴’ 러브크래프트의 매혹

    ‘두 얼굴’ 러브크래프트의 매혹

    ‘크툴루의 부름’ 등 핵심 다섯 편 우주적 공포 앞 나약한 인간 그려우생학 신봉·유색인종 혐오에도서브컬처·대중문화 전방위 영향 ‘크툴루 신화’ 창시자이자 현대 호러 문학의 아버지. 동시에 우생학을 신봉했던 인종차별주의자. 미국 작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1890~1937)의 두 얼굴이다. 그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분명한 건 어떤 방법으로든 그를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생산되는 거의 모든 호러 판타지 세계가 러브크래프트를 자양분으로 삼고 있어서다. 최근 출간된 ‘러브크래프트 걸작선’(을유문화사)은 작가 특유의 절망적인 세계관을 다시 한번 열어젖혀 독자에게 선보인다. 2010년대 초반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전집이 번역돼 나온 후 약 10년 만이다. 러브크래프트의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작품 다섯 편을 묶었다. 그가 창조한 신화적 체계를 뜻하는 크툴루 신화의 기초가 되는 ‘크툴루의 부름’을 비롯해 ‘외부자’, ‘벽 속의 쥐들’,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 ‘우주로부터의 색’ 등이 담겼다. 인간을 압도하는 초월적인 힘을 가진 고대의 우주적 존재 ‘그레이트 올드 원’ 중 하나인 크툴루와 그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을 그린 ‘크툴루의 부름’을 읽으면 인간이란 한없이 나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앞서 많은 신화와 문학이 영웅적인 인간을 앞세워 악과 맞서 승리하는 모습을 그렸지만 러브크래프트는 정반대의 결말로 향한다. 인간은 우주적인 공포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저 죽을 운명을 기다리는 존재일 뿐이다. 요즘 장르문학계에서 ‘코스믹 호러’라는 용어로 통칭하는 세계관의 시작이 바로 러브크래프트다. 러브크래프트는 당대에 없었던 기이하고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마냥 신봉하기에는 다소 꺼림칙한 구석이 있다. 그가 인종 간 우열을 전제하는 우생학을 따랐으며 반유대주의자였다는 점에서다. 아울러 작품 곳곳에서 흑인 등 유색 인종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러브크래프트가 오늘날 서브컬처, 대중문화에 미친 전방위적 영향을 생각하면 문학사에서 그의 이름을 빼놓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끈적한 점액질의 액체를 뿜어내며 촉수를 가진 해양생물 형태로 공포스러운 존재를 그리는 서구 호러·SF의 전통은 러브크래프트에서부터 이어진 것이다. PC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한 종족인 ‘저그’가 대표적이다. 아울러 크툴루는 두족류의 머리를 가진 신으로 묘사되는데,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 등장하는 문어 머리를 한 악당 ‘데비 존스’를 떠올리게 한다. ‘할리우드가 사랑한 작가’이자 그 역시 호러 문학의 거장인 스티븐 킹은 러브크래프트를 일컬어 “20세기 공포의 가장 위대한 실천가인 그를 능가한 사람은 지금껏 없다”고도 했다. 작품을 옮긴 이동신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러브크래프트가 추구하는 공포는 초자연적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결코 비과학적이지 않은 기이한 공포”라며 “작품 속 세계는 터무니없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이지만 의미를 곱씹어 보면 그렇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현대 호러의 아버지 혹은 인종주의자…‘두 얼굴’ 러브크래프트의 매혹

    현대 호러의 아버지 혹은 인종주의자…‘두 얼굴’ 러브크래프트의 매혹

    ‘크툴루 신화’의 창시자이자 현대 호러문학의 아버지. 동시에 우생학을 신봉했던 인종차별주의자. 미국 작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1890~1937)의 두 얼굴이다. 그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분명한 건 어떤 방법으로든 그를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생산되는 거의 모든 호러 판타지의 세계가 러브크래프트를 자양분으로 삼고 있어서다. 최근 출간된 ‘러브크래프트 걸작선’(을유문화사)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작가 특유의 절망적인 세계관을 다시 한번 열어젖혀 독자에게 선보인다. 2010년대 초반 황금가지에서 전집이 번역돼 나온 이후 약 10년 만이다. 러브크래프트의 문학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작품 다섯 편을 묶었다. 그가 창조한 신화적 체계를 뜻하는 ‘크툴루 신화’의 기초가 되는 작품 ‘크툴루의 부름’을 비롯해 ‘외부자’, ‘벽 속의 쥐들’,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 ‘우주로부터의 색’이 담겼다. “우리는 무한대의 검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무지라는 평화로운 섬에 살고 있고, 멀리 여행하지 못할 운명이다.”(‘크툴루의 부름’·51쪽) 인간을 압도하는 초월적인 힘을 가진 고대의 우주적 존재 ‘그레이트 올드 원’ 중 하나인 ‘크툴루’와 그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을 그린 ‘크툴루의 부름’을 읽으면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앞서 많은 신화와 문학이 영웅적인 인간을 앞세워 악(惡)과 맞서서 승리하는 모습을 그렸지만, 러브크래프트는 정반대의 결말로 향한다. 인간은 우주적인 공포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저 죽을 운명을 기다리는 존재일 뿐이다. 요즘 장르문학계에서 ‘코즈믹 호러’라는 용어로 통칭하는 세계관의 시작이 바로 러브크래프트다. “가장 오래되고 강렬한 인간의 감정은 공포”라고 선언했던 러브크래프트는 당대 없었던 기이하고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마냥 신봉하기에는 다소 꺼림칙한 구석이 있다. 그가 인종 간 우열을 전제하는 우생학을 따랐으며, 반유대주의자였다는 점이다. 아울러 작품 곳곳에서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러브크래프트가 오늘날 서브컬처, 대중문화에 미친 전방위적 영향을 생각하면 문학사에서 그의 이름을 아예 빼놓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끈적한 점액질의 액체를 뿜으며 촉수를 가진 해양 생물의 모습으로 공포스러운 존재를 그리는 서구 호러·SF의 전통은 러브크래프트에서부터 이어진 것이다. PC게임 ‘스타크래프트’의 한 종족인 ‘저그’가 대표적이다. 아울러 ‘크툴루’는 두족류의 머리를 가진 신으로 묘사되는데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 등장하는 문어 머리를 한 악당 ‘데비존스’를 떠올리게 한다. ‘할리우드가 사랑한 작가’이자 그 역시 호러문학의 거장인 스티븐 킹은 러브크래프트더러 “20세기 공포의 가장 위대한 실천가인 그를 지금껏 능가한 사람은 없다”고도 했다. 프랑스 소설가로 꾸준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미셸 우엘벡도 그의 열렬한 지지자다. 작품을 옮긴 이동신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러브크래프트가 추구하는 공포는 초자연적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결코 비과학적이지 않은 기이한 공포”라면서 “작품 속 세계가 터무니없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지만 의미를 곱씹어 보면 그렇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8년 전보다 선거인단 격차 작아… ‘트럼프 2기’ 준비해야 할까[한규섭의 데이터 정치학]

    8년 전보다 선거인단 격차 작아… ‘트럼프 2기’ 준비해야 할까[한규섭의 데이터 정치학]

    여론조사로 선거인단 추정해 보니해리스, 트럼프에 단 16명 우위2016년 클린턴 우세의 ‘5분의1’트럼프 패배 예상 뒤엎고 ‘완승’지금 해리스 우위 거의 무의미‘샤이 트럼프’로 2016년 예측 실패2020년 바이든 당선 예측에도실제 선거 결과는 초박빙 승리현 여론조사 격차 없는 경합주3곳 중 1~2곳 트럼프 승리 예상美 대선 판세 왜 이렇게 됐을까민주 中 견제, 트럼프 따라하기이민자 대응·안보도 아킬레스건흑인, 해리스에 동질감 못 느껴트럼프 中정책, 韓에 되레 기회 미국 대선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최근 지정학적 이유로 국내에서도 미국 대선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조금 앞서 있지만 극미한 ‘샤이 트럼프’ 현상만 있어도 쉽게 뒤집어질 수 있는 살얼음판 우위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에게 전국 일반 득표수에서 뒤졌지만 선거인단 수에서 앞서 당선됐던 2016년 선거 때보다 일반 투표와 선거인단 모두에서 격차가 훨씬 작은 상황이다. 미국의 대표적 데이터저널리즘 기관인 파이브서티에이트(FTE)에서 조사업체 바이어스 보정 후 추정하는 전국 단위 지지율을 보면 지난 16일 현재 약 2.1% 포인트 차이로 해리스(48.4%)가 트럼프(46.3%)를 앞서고 있다. 2016년 트럼프가 클린턴에게 전국 투표수에서 2.1% 포인트 차이로 지고도(45.9% 대 48.0%) 대의원 수에서 이겨 당선됐을 당시 선거 하루 전날을 기준으로 조사업체 바이어스 보정 후 필자는 2.4% 포인트, FTE는 3.6% 포인트 차이로 클린턴 우위를 예측했었는데 그 당시 예측치보다 작은 격차다. 반면 조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를 약 4.4% 포인트 차이로 이겼던 2020년 선거 한 달전 필자의 분석에서는 약 6.7% 포인트, FTE 기준으로는 7.4% 포인트 차이여서 지금보다 3배 정도의 압도적 차이였다. 현 지지율 격차는 불과 2주 전보다도 약 1.1% 포인트 줄어든 차이여서 선거 당일까지 2주 정도 남은 점을 감안하면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또 2016년은 물론 2020년에도 여론조사 결과에서 바이든과 트럼프의 격차를 과대 추정했다. 따라서 이번에는 해리스가 전국 득표율이라도 이길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대선에서 중요한 것은 각 후보가 확보한 주 단위 선거인단 수다. 필자는 약 2주 전 주별 여론조사를 취합해 조사 숫자가 충분한 곳은 시계열로 예측하고 부족한 곳은 가장 최근 조사 결과로 두 후보의 주별 지지율을 추정했다. 최근 지지율 조사가 없는 주는 이미 큰 격차가 나는 곳들이어서 좀 지난 결과라도 예측이 많이 빗나갈 가능성은 낮다. 추가로 주요 경합주들은 지난 16일을 기준으로 지지율을 업데이트했다. 이렇게 추정한 주별 지지율에 기반해 통계적 시뮬레이션을 통해 각 주의 후보별 승리 확률을 추정하고 해당 주의 선거인단을 이 확률에 따라 나눠 주는 방식으로 두 후보가 얻을 총선거인단 수를 추정해 보았다. 16일을 기준으로 선거인단 수에서 277명(해리스) 대 261명(트럼프)로 해리스가 불과 16명 차이의 우위를 보였다. 이런 후보 간 격차는 트럼프가 이긴 2016년 선거에서 필자가 대선 한 달 전 동일한 분석을 실시했을 때 나온 78명 차이(308명 대 230명으로 클린턴 우세)의 5분의1에 불과한 숫자다. 또 2주 전 필자가 동일한 분석을 했을 당시의 24명 차이보다 훨씬 줄어든 것이기도 하다. 참고로 FTE도 273명 대 265명으로 거의 비슷한 결과를 내놓았다. 2주 전 FTE는 후보 간 격차를 약 28명(283명 대 255명) 정도로 추정한 바 있다. 두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2016년 대선 당시에는 지금보다 후보 간 차이가 훨씬 커 선거인단 수에서도 클린턴의 낙승이 예상됐었음에도 실제로는 232명 대 306명으로 트럼프가 완승을 거뒀다. 따라서 지금의 해리스 우위는 거의 무의미해 보인다. 또 불과 2주 사이 그나마 유지돼 오던 해리스의 박빙 우위마저 크게 줄어들었다. 이런 추세가 남은 2주 동안 이어진다면 해리스는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2016년 당시 여론조사의 승자 예측 실패는 약간의 ‘샤이 트럼프’ 현상 때문이었다. 당시 주별 여론조사가 트럼프 후보의 지지율을 약 1.5~2% 포인트 정도 과소 추정했다고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다시 해 보면 바로 승자가 바뀌는 상황이었다. 이번에는 현재 나온 주별 여론조사들이 트럼프 지지율을 불과 0.5~1.0% 포인트 과소 추정한다고만 가정해도 시뮬레이션에서 바로 승자가 뒤바뀌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반면 2020년 대선 한 달 전 동일한 방법으로 시뮬레이션을 했을 당시에는 158명 차이(348명 대 190명)로 바이든의 승리가 예상됐고 트럼프 지지율이 약 3.5~4.0% 포인트 정도는 과대 추정됐다고 가정해야 승자가 뒤바뀔 수 있었다. 현재 모든 전문가가 꼽는 주요 경합주 중 해리스는 네바다(0.7% 포인트 차이), 위스콘신(0.2% 포인트 차이), 미시간(0.6% 포인트 차이), 펜실베이니아(0.4% 포인트 차이) 등 4곳, 트럼프는 노스캐롤라이나(0.7% 포인트 차이), 조지아(0.9% 포인트 차이), 애리조나(1.5% 포인트 차이) 등 3곳에서 근소하게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해리스가 약간이나마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 4곳의 경합주 중 선거인단 수가 비교적 적은 네바다(6명)을 제외하고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중 단 한 주 정도에만 아주 약간의 ‘샤이 트럼프’가 존재한다면 트럼프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반면 2020년 대선 당시 필자가 이 3곳의 선거 한 달 전 주별 지지율을 추정했던 결과를 보면 여론조사는 모두 바이든의 여유 있는 승리를 예측했으나 실제 선거 결과는 초박빙이었다. 즉 미시간은 7.9% 포인트(여론조사) 대 2.8% 포인트(선거 결과), 펜실베이니아는 6.2% 포인트(여론조사) 대 1.2% 포인트(선거 결과), 위스콘신은 7.8% 포인트(여론조사) 대 0.63% 포인트(선거 결과)여서 세 곳 모두에서 ‘샤이 트럼프’가 상당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금처럼 여론조사에서조차 격차가 거의 없다면 이 3곳 중 최소 한두 곳에서는 트럼프가 승리할 가능성이 상당히 있어 보인다. 왜 이렇게 됐을까. 우선 이슈 구도에서 트럼프가 유리해 보인다. 가장 중요한 ‘경제’ 부문에서 해리스는 낮은 실업률 등을 바이든 행정부의 업적으로 포장하고 있으나 반도체법(CHIPS) 등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한 대표 법안들은 사실 2016년 트럼프 당선에 놀란 민주당이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를 따라한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갤럽 설문조사를 보면 트럼프가 당선된 2016년 대선 당시 경제 정책에 대한 호감도에서 공화당(42%)이 민주당(38%)보다 높았고 이번에도 46% 대 41%로 공화당이 앞선다. 해리스는 불법 이민자를 악마화하는 막말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의 인성 문제를 공격해 왔다. 그러나 사실 불법 이민자 문제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입장인 민주당에는 ‘아킬레스건’이다. 불법 이민자 문제에 대한 미국 내 강경 여론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럼프의 막말은 불법 이민자 논쟁이라는 ‘늪’으로 해리스를 끌어들이려는 고도로 계산된 전략적 수사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현재 미국에서는 펜타민(속칭 ‘히로뽕’) 중독이 심각한 사회문제인데 미국 내 유통되는 펜타민의 거의 전량은 마약 카르텔이 중국산 원료를 들여와 멕시코에서 제조한 후 미국으로 밀반입한 것이다. 여기서 미국~멕시코 국경의 허술한 경비가 미국으로의 펜타민 대량 유입을 쉽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고브(YouGov)가 지난 6~7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심지어 히스패닉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48% 대 43%로 해리스가 압도적이지 못하다. 해리스 개인의 약점도 있다. 해리스는 자메이카 출신 흑인인 부친이 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였고 부모가 이혼한 후에는 인도계 과학자인 모친을 따라 캐나다에서 성장했다. 그러다 보니 “‘흙수저’도 아니면서 소수집단 우대정책의 수혜자가 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20대 후반 주 검찰 재직 당시 30년 이상 연상인 거물 흑인 정치인 윌리 브라운 전 샌프란시스코 시장과 ‘썸’을 탄 이력도 ‘인종’을 출세에 이용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실제로 지난주 뉴욕타임스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흑인 유권자의 해리스 지지율이 78%로 백인인 클린턴(92%), 바이든(90%)이 나섰던 2016년과 2020년보다 낮았다. 흑인 유권자들이 해리스에게 동질감을 못 느끼니 후보 자신이 흑인임에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백인 전직 대통령들이 오히려 흑인 유권자들 설득에 나서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다. 주변에 2기 트럼프 정부의 출범 가능성에 당황하는 이들이 눈에 띈다. 그러나 오히려 기회일지 모른다. 곳곳에서 위기 신호가 감지되는 한국 경제에는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고 고립시키는 트럼프식 대 중국 정책이 ‘골든타임’을 벌어 줄지도 모른다. 어차피 중국 시장에서는 중국 경쟁 업체들에게 다 따라잡혀 어려운 상황이 아니던가. 안보 면에서도 그렇다. 북한은 핵무기를 100기 가까이 가진 것으로 추정되고 100기 이상 추가 생산할 능력도 가졌다고 한다. 최근 헌법까지 바꿔 가며 언제든 남한을 공격할 수 있는 대상으로 규정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전투 병력까지 파병하며 ‘러시아파’의 ‘행동대장’화되고 있다. 자체 핵무장 없이 미국이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산업시설에 대한 대북 억지력을 계속 제공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우리의 자기 최면이나 해리스의 희망 섞인 ‘근자감’에 불과하지 않은지 고민해야 할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정치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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