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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창식 선생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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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지민 “아버지, 16살부터 독립운동…알려지지 않은 어린 독립운동가 너무 많다”

    홍지민 “아버지, 16살부터 독립운동…알려지지 않은 어린 독립운동가 너무 많다”

    뮤지컬 배우 홍지민이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 홍창식 선생을 향한 진한 그리움과 존경심을 표했다. 최근 유튜브 채널 ‘지금당장 홍지민’을 통해 공개된 영상에서 홍지민은 최근 진행된 KBS 2TV ‘불후의 명곡’ 광복절 특집 녹화를 떠올리며 “이맘때쯤 되면 친정아빠 생각이 많이 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부친이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을 한 사실을 언급하며 먹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아이를 키워 보니 어떻게 16살 때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 싶다”며 “아버지가 16살 때 백두산회라는 독립운동 단체에 가담하셨다. 일본으로 향하는 군수 물자를 폭파하는 위험천만한 일을 하셨다”고 설명했다. 홍창식 선생은 1942년 백두산회에 가입해 함경북도 성진 일대에서 항일 활동을 전개하다 1943년 일제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김천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고문을 버텨 내고 감옥에서 마침내 해방을 맞이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한 바 있다. 홍지민은 부친이 해방 이후 중풍으로 왼쪽 신체가 마비됐음에도 독립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을 위한 헌신을 이어 갔다고 전했다. 그는 “왼쪽이 다 마비됐음에도 쓸 수 있는 오른손으로 독립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분들의 서류와 자료를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작성하셨다”며 “독립운동을 했지만 자료를 제출하지 못한 분들이 많았다. 글씨를 모르는 분들도 많고”라고 안타까웠던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너무나 자랑스럽고 위대하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가 내가 20살 때 돌아가셨는데, 그때는 너무 어려서 그 위대한 업적의 의미를 깊이 알지 못했다”며 “‘우리 아빠가 너무 자랑스럽다, 멋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해 드리지 못한 것이 늘 아쉽고 속상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살아 계셔서 내가 방송하고 공연하며 여우주연상을 받는 모습까지 다 지켜보셨다면 정말 좋아하셨을 텐데”라고 말하며 “아빠가 너무 그리운 광복절이다. 아빠 보고 싶고, 사랑하고, 너무 자랑스럽다”고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넸다. 마지막으로 홍지민은 “너무나 많은 분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에 우리가 오늘날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허락된 것”이라며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기억하며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며 영상을 마무리했다.
  • SKT ‘독립운동 발자취’ 러닝 코스로 개발

    SKT ‘독립운동 발자취’ 러닝 코스로 개발

    SK텔레콤이 광복 81주년을 맞아 국가보훈부, 독립기념관과 함께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시민들이 직접 달릴 수 있는 전국 러닝 코스 ‘1만 8776명의 독립운동가 기억하길’을 10일 선보였다. ‘기억하길’은 국가보훈부에 등록된 독립운동가 1만 8776명의 활동 기록을 SK텔레콤의 인공지능(AI) 파운데이션 모델 ‘A.X K2’로 분석하고 위치 기반 데이터와 결합해 10개 코스로 구현했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총 44.6㎞ 규모다. 이번 캠페인에는 정재헌 SK텔레콤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가수 션,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 독립운동가 후손 등이 참여했다. SK텔레콤 유튜브 채널에서 선공개된 캠페인 영상에는 정 CEO 등 참가자들이 직접 ‘기억하길’ 코스를 걷고 달리는 모습이 담겼다. 정 CEO와 션은 서울 종로구에 마련된 ‘독립을 이끈 여성들을 기억하길’ 코스를 따라 새문안교회, 근우회관 터, 송계월 하숙 터, 열린송현 녹지광장을 차례로 함께 달렸다. 이 선수는 서울 중구와 종로구를 잇는 ‘교육으로 밝힌 독립운동을 기억하길’ 코스를 달리며 “마라톤은 긴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완주한다. 독립도 그랬다”고 소감을 전했다. 뮤지컬 배우 홍지민은 인천의 ‘교복 입은 영웅들을 기억하길’ 코스에 참여했다. 홍지민의 부친인 홍창식 선생은 16세에 항일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다. 천안의 ‘천안 만세의 불꽃을 기억하길’ 코스에는 독립운동가 이교옥 선생의 증손녀 최서윤 씨가 함께했다. SK텔레콤은 코스를 완주하거나 공식 유튜브 영상에 응원 댓글을 남긴 참여자 가운데 추첨을 통해 ‘2026 무한도전 런 인 경주’ 참가권을 제공한다.
  • 독립유공자 6명 유해, 광복 80년 만에 고국 품에 안긴다

    독립유공자 6명 유해, 광복 80년 만에 고국 품에 안긴다

    미국과 브라질, 캐나다에 안장된 독립유공자 6명의 유해가 광복 8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국가보훈부는 13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조국을 향한 발걸음, 끝나지 않은 길’을 주제로 국외 독립유공자 6명에 대한 유해 봉환식을 거행한다고 11일 밝혔다. 고국으로 돌아오는 유공자는 문양목(1995년 독립장)·김덕윤(1990년 애국장)·김기주(1990년 애족장)·한응규(1990년 애족장)·임창모(2019년 애족장)·김재은(2002년 애족장) 지사다. 문 지사와 임 지사는 대한인국민회에서, 김기주·김재은 지사와 한 지사는 광복군에서 활약했고 김덕윤 지사는 비밀결사대 열혈회를 결성해 활동했다. 유해 봉환식에서는 독립유공자 홍창식(1990년 애족장) 지사의 자녀인 뮤지컬 배우 홍지민이 정지용의 시 ‘그대들 돌아오시니’를 낭독하고, 국악인 이윤아가 도산 안창호 선생이 일제강점기에 지은 노래 ‘거국행’을 부르는 헌정 공연이 열린다. 건국훈장 헌정 후 추모 공연에서는 소프라노 손지수가 김소월의 시를 편곡한 곡 ‘초혼’을 노래한다. 국방부 의장병에 의해 운구된 한 지사 등 독립유공자 5명의 유해는 같은 날 오후 대전현충원장 주관으로 안장식을 갖고 영면에 들어간다. 문 지사의 유해는 봉환식이 끝나면 출생지인 충남 태안 생가터 내 추모 사당에서 추모제를 거행한 뒤 대전현충원으로 봉송, 안장될 예정이다. 이들의 유해는 유족들과 함께 1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들어오며 권오을 보훈부 장관이 공항에서 직접 유해를 영접할 계획이다. 
  • 안중근 외손녀 만난 文 “다시는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나라로”

    안중근 외손녀 만난 文 “다시는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나라로”

    “선조들처럼 日 경제보복 의연하게 대처” 安의사 외손녀 “내 나라 묻히려 한국 와” 文, 국무회의서 근거없는 가짜뉴스 경계령 “불화수소 등 잘못된 정보 불안감만 키워”문재인 대통령은 13일 독립유공자 및 후손 초청 청와대 오찬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과 관련해 “양국이 함께해 온 노력에 비춰 참으로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라며 “국민들도 우리 경제를 흔들려는 일본 경제 보복에 단호하면서도 두 나라 국민 사이의 우호 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의연하고 성숙한 대응을 하고 있다”고 했다. ‘독립유공자·유족을 끝까지 기억하겠다’는 정부 의지를 전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에는 생존 애국지사 9명을 비롯해 독립유공자 서훈 친수자, 국적 취득 유공자 후손 등 160여명이 초대됐다. 해외 6개국 거주 유공자 후손 36명도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에게 역사를 성찰하는 힘이 있는 한 오늘의 어려움은 우리가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나라로 발전해 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안중근 의사 외손녀인 황은주 여사는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후 외국을 떠돌았던 가족사를 전했다. 황 여사는 “중국 상하이에서 나고 자랐는데, 마지막 가는 날 내 땅, 내 나라에서 묻히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고 영구 귀국한 사연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황 여사님 이야기에서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꿈꾼 안 의사의 높은 기개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고 화답했다. 여성 독립운동가 심명철 지사의 아들 문수일씨는 모친이 유관순 열사와 서대문형무소에서 함께 지어 불렀다는 ‘대한이 살았다’를 낭송했다. 오는 광복절 계기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 재불한국민회 제2대 회장 홍재하 선생의 차남 장자크 홍 푸앙씨는 부친이 고국을 그리워하며 불렀다는 아리랑을 선창했다. 이에 참석자들은 합창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독립유공자 홍창식 선생의 딸인 뮤지컬 배우 홍지민씨는 대중가요 ‘말하는 대로’, 뮤지컬 맘마미아의 ‘댄싱 퀸’을 열창해 눈길을 끌었다. 오찬에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먹었던 대나무 잎으로 감싼 밥 ‘쭝쯔’, 간장에 조린 돼지고기 요리 ‘훙사오러우’가 올라왔다. 쭝쯔는 김구 선생이 일제 경찰의 추적을 피해 다닐 때 휴대하기 편해 즐겼다고 한다.오찬에 초청된 김원웅 광복회장,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회장 함세웅 신부는 예비역 장성 출신인 박삼득 국가보훈처장 내정자의 임명을 철회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서한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김 회장은 건배사에서 “잘못 길든 일본의 버릇을 고쳐 놓아야 한다”며 “정부는 일본의 경제 보복에 한 발짝도 뒷걸음질 치지 말고 국민을 믿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정부는 비상한 각오로 엄중한 경제 상황에 냉정하게 대처하되 근거 없는 가짜뉴스나 허위 정보, 과장된 전망으로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며 “(이는) 올바른 진단이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우리 경제에 해를 끼치는 일”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언급한 가짜뉴스에 대해 “국민은 기자가 쓴 것만을 뉴스로 보지 않는 것 같다”며 “(유튜브에 돌고 있는) 불화수소가 북에서 독가스 원료가 되고, 일본 여행 가면 1000만원 벌금 내고, 일본이 지정한 1194개 품목 모두 수입이 어려워진다는 등의 내용이 결국 불확실성을 높이는 결과를 낳기에 그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뮤지컬가수 홍지민, 독립유공자,유족 초청 청와대 오찬에서 노래 부른 까닭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제74주년 광복절을 앞둔 13일 생존 애국지사와 국내외 독립유공자의 유족 등 160명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 오찬 행사를 가졌다.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 부제로 진행된 행사는 독립유공자와 유족을 국가가 끝까지 기억하겠다는 정부 의지를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생존 애국지사 9명을 비롯, 안중근 의사의 외손녀 황은주 여사, 유관순 열사와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실에서 ‘대한이 살았다’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던 심명철 지사의 아들 문수일씨 등이 참석했다. 오찬은 기념 영상 및 공연, 참석자 인터뷰, 대통령 모두발언, 건배 제의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이날 오찬 중 진행된 공연에서는 뮤지컬 배우 홍지민씨가 독립유공자·유족에게 감사 의미를 담아 대중가요 ‘말하는 대로’, 뮤지컬 맘마미아의 ‘댄싱 퀸’을 열창해 눈길을 끌었다. 홍씨는 독립유공자 홍창식 선생의 딸로, 이날 행사 초청자들과 무관치 않다. 1926년 함경북도 학성 출신인 홍 선생은 1942년 비밀결사 백두산회에 가입해 함북 일대에서 활동하다 이듬해 일제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고 감옥에서 해방을 맞았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이런 인연으로 홍지민씨는 지난해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 수립 70주년 경축식에서 애국가를 제창하기도 했다. 사전 인터뷰에서 황 여사는 외할아버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후 외국을 떠돌았던 가슴아픈 가족사를 전했다. 그는 “중국 상해에서 나고 자랐는데, 8·15 해방으로 내 고향 나라, 내 나라에 와서 살면서 마지막 가는 날에 내 땅, 내 나라에서 묻히기 위해서 한국으로 왔다”고 영구 귀국한 배경을 전했다. 문씨는 ‘대한이 살았다’ 가사를 직접 낭송했다. 이 노래는 처참했던 수감 생활에도 불구하고 독립 열망을 잃지 않았던 당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강인함이 담긴 것이다. 오는 광복절 계기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 재불한국민회 제2대 회장 홍재하 선생의 차남 장자크 홍 푸앙씨도 초대됐다. 프랑스 자택 대문에 태극기를 걸어 놓을 정도인 그는 부친이 평소 고국을 그리워하며 불렀다는 아리랑을 서툰 한국어로 불렀다. 오찬에는 김구 선생 등 임시정부 요인들이 즐겨먹었던 특별 메뉴가 올랐다. 김구 선생이 일제 경찰의 추적을 피해 다닐 때 휴대하기 편해 먹었다는 대나무 잎으로 감싼 ‘쫑쯔’(찹쌀 등으로 만든 떡), 임정의 안살림을 맡았던 오건해 여사가 요인들에게 대접했다는 간장으로 조린 돼지고기 요리 `홍샤오로우‘가 제공됐다. 또 테이블마다 독립운동 당시 사용되었던 태극기 6종이 꽃장식과 함께 배치돼 행사 의미를 더했다. 독립운동가 남상락 선생의 자수 태극기, 진관사 백초월 선생의 태극기, 1923년 임시의정원 태극기,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 게양됐던 태극기, 1941년 김구 선생 서명 태극기, 1945년 광복군 서명 태극기 등이다. 문 대통령은 “100년 전 선조들의 뜻과 이상은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못했다. 평화 번영의 한반도라는 중대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고, 광복을 완성하기 위해 우리는 분단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면서 “국민의 하나 된 힘이 절실한 이 때, 독립유공자와 유족들께서 언제나처럼 우리 국민의 힘이 되어주시고 통합의 구심점이 되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독립유공자 어르신들 살아생전에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꼭 보여드리고 싶다”고 약속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91년 가을의 평양/장수근특파원 총리회담 취재기:하

    ◎“인민들 잘살기 때문 「개방」 일 없다”/“「수령」없어 동구 무너진것 아니갔소”/행사장서 만난 북 기자,“소서 개방압력” 실토/“개혁요구는 「흡수통일」 전단계” 인식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 남측대표단이 방북기간중에 공통적으로 느낀 것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개방」과 「개혁」,「변화」에 대한 북측의 심한 알레르기반응이었다. 행사장에서 만난 백남준북측대표는 『개방?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개방을 해왔는데 새삼스러이 무슨 개방이냐』며 퉁명스런 표정을 지었다. 안병수 북측대표단대변인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이들 용어에 심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북측은 「개방」과 「개혁」을 그들이 우려를 표명하는 「흡수통일」의 전단계쯤으로 이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같은 북측의 과민반응을 뒤짚어 놓고 생각해보면 지금 누군가가 그들에게 「개방」과 「개혁」을 부단히 촉구하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추론이 성립한다. 이에 대한 대답. 지난 23일 1차회담이 열리는 동안 회담장 복도에서 만난 북한의 한 언론인은 『소련이 북한에 개방압력을 넣고 있다』며 슬며시 말을 붙여왔다.그러나 그는 『소련이 뭐라해도 전체 인민이 부러움없이 살고 있기 때문에 개방 같은 건 「일없다」(필요없다)』는 부연설명을 잊지 않았다. 그의 말은 지금까지 단편적으로 전해진 소련의 대북개방압력설이 사실임을 처음으로 밝힌 것이란 점에서 기자의 관심을 끌었다. 평양에서 만난 한 동구 저널리스트는 『북한은 개방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으며 동구에서 좋은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그래서 북한은 더더욱 폐쇄의 성채를 높이 쌓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에선 동구나 소련의 사회주의 붕괴원인을 그들나라의 지도자에게 돌리고 있었다.「위대한 김일성수령동지」와 같은 지도자를 못만났기 때문에 맥없이 무너졌다는 주장이었다.그러면서 『북한에선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주위의 이목을 살피며 건네오는 귀엣말에 이런 대목이 들어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소련이 무너진 것은 인민의 정치·경제적 기대수준을 정부가 총족시켜 주지 못했기 때문 아니갔소.우리도 지금까지 별일이 없지만 현재의 삶보다 인민들의 기대가 높아질 땐 간단치 않을거요』 「통일신보」의 홍창식논설위원은 요즘들어 북한에선 『주민들을 더욱 바짝 죄고 있다』고 솔직히 말했다.「국가통제라는 나사못」이 더욱 단단히 죄어지고 있다는 뜻인듯 하다.그래선지 평양에선 「우리식대로 살자」는 구호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세계가 어떻게 변하고 달라지든 「주체」란 기둥만 잡고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게 북한의 생각인 모양이다. 『없는 것은 만들어내고 모자라는 것은 찾아내라』는 교시가 끝없이 반복되는 통제사회. 그러나 「우리식대로 살자」고 외치고는 있지만 「먹는 것으로부터 입는 것까지」 주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우리식」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실증들이 바로 오늘 북한이 맞닥뜨리고 있는 식량난과 생필품난이다. 이같은 북한의 사정은 그들이 대중소비경제의 문턱에 이르게 될 경우 더욱 악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또한 「우리식대로 살자」는 교시가 북한 주민들에게 끝내남쪽주민들수준의 삶을 보장해주지 못할 때 체제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회의 역시 증폭될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렇다고 덜컥 개방의 성문을 열수 없다는게 오늘날 북한이 안고 있는 숙제인 듯하다. 분단 46년. 통일을 마다할 동포는 북에도 없고 또한 남에도 없다.그러나 입만 열면 기계처럼 튀어나오는 북한주민들의 통일연호대로 구호에 의해 통일이 이뤄질 수는 없는 일이다.아니,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통일은 벽돌을 쌓듯 남북이 차곡차곡 상호신뢰를 쌓아 갈 때에만 꿈이 아닌 현실로 우리에게로 다가설 것이다. 본 것도 많지 않고 들은 것 역시 별로 없었던 평양체류 77시간. 다만 얻은게 있다면 단 한가지. 「우리의 소원」통일은 제일백화점에서 만난 평양봉화국민학교 4학년 백은실양(10)과 서울 반원국민학교 4학년 주종원군(10)이 한 자리에 앉을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란 깨달음이었다. 『남조선 기자 선생님,「종군기자 이인모아저씨」를 왜 북조선으로 돌려 보내지 않느냐』고 따져 묻던 백량.그리고 27일 어머니와 관악산을 다녀가며 『엄마 집에 가서 컴퓨터책좀 사주세요』라던 주군. 이들 두 어린이가 「이인모」도 아니고 「컴퓨터」도 아닌 「공동의 화제」를 공유하는 시점이 바로 「꿈에도 소원」인 통일이 오는 날이 될 것이다.그러나 그날이 언제올지는 현재로선 아무도 점칠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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