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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 보는 여성 쫓아 호텔 여자화장실 따라가… 성폭행 시도한 20대 “기억 안 나”

    처음 보는 여성 쫓아 호텔 여자화장실 따라가… 성폭행 시도한 20대 “기억 안 나”

    제주시 한 호텔 여자화장실에서 한번도 만난적 없는 여성을 성폭행하려 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제주서부경찰서는 강간미수 혐의로 20대 A씨를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27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6일 오후 4시쯤 제주시 연동의 한 호텔 1층 여자화장실에 들어가던 피해자 B씨를 뒤따라 들어가 성폭행을 시도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화장실에서 옷을 벗은 뒤 피해자 B씨를 제압하려 한 것으로 파악됐다. 범행은 B씨가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은 행인이 즉시 신고하면서 미수에 그쳤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코드0’(최우선 출동)을 발령해 현장으로 출동,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와 B씨는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술에 취해 범행 당시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범행 동기와 사건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 호텔 女화장실서 ‘비명’… 낯선 여성 성폭행 시도 20대 현행범 체포

    호텔 女화장실서 ‘비명’… 낯선 여성 성폭행 시도 20대 현행범 체포

    경찰, 강간미수 혐의 구속영장 신청 방침 제주의 한 호텔 화장실에서 일면식 없는 여성을 성폭행하려 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이 체포돼 조사받고 있다. 제주서부경찰서는 강간미수 혐의로 20대 A씨를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27일 밝혔다. A씨는 전날 오후 4시쯤 제주시 연동의 한 호텔 1층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던 피해자를 뒤따라 들어가 목을 조르고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는다. 당시 피해 여성의 비명을 들은 행인이 경찰에 신고했으며,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A씨를 현행범 체포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와 피해자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며, 자세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 멋진 명함보다, 멋진 삶을 택했다[창간 기획-청년 블루칼라 리포트]

    멋진 명함보다, 멋진 삶을 택했다[창간 기획-청년 블루칼라 리포트]

    대학 졸업장 아깝지 않다는 원규씨“목수가 되려고 1년 무보수도 불사‘진짜 원하는 일’ 하게 돼 100% 만족”평생 먹고살 기술 찾은 수민씨“직업군인이었던 때보다 수입 4배‘기술’은 AI가 위협할 수 없는 영역”초중고 12년을 거쳐 대학을 나와 사무직으로 일하는 것. 한국 사회에서 으레 ‘안정적인 삶’ 하면 떠올리는 경로입니다. 하지만 4년제 대학을 나와 배관, 도배 등 소위 ‘몸 쓰는 직업’인 블루칼라 직종에 눈을 돌리는 청년들이 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유’를 묻습니다. 어쩌면 땀 흘리는 만큼 보상받는 게 좋아서 일 수도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이 대신할 수 없는 평생 먹고살 기술을 찾은 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블루칼라 직업을 선택한 청년들은 말합니다. 계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무슨 일을 하든 개인의 개성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요. 서울신문은 남들의 시선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 블루칼라가 된 청년들의 이야기와 이들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제언을 3회에 걸쳐 담습니다. 17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에 있는 한 목공방. 10년 차 목수 이원규(35)씨가 소나무 토막을 자동대패기로 얇게 깎고 있다. 종로구의 한 갤러리에 납품할 전시대를 다듬는 중이다. 은은한 나무 향이 공방에 맴돌았다. “전시대는 마감 작업이 제일 중요해요. 갤러리의 배경이 되기 때문에 색을 깔끔하게 입혀야 하거든요.” 목수가 나무 하나하나를 자르고 다듬은 가구는 공장형 가구가 대체하기 힘든 고유한 매력을 띤다. 원규씨는 고객의 요구에 맞춰 도면을 3D 프로그램으로 직접 그려 재단하고, 손으로 만져 가며 나뭇결을 다듬는다. 흰 목재 분진이 묻은 작업복을 털며 원규씨가 말한다. “힘든 일이죠. 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그런데 고객이 만족할 모습을 상상하면 기운이 나요.” 부산대 스포츠과학부를 졸업한 원규씨가 목수의 길을 택한 건 10년 전. 대학 동기들은 운동재활, 강사, 스포츠 관련 업체에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그는 다른 길을 갔다. 어려서부터 손으로 사부작사부작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목수 일을 배워 보자는 생각에 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공방에 이력서를 보냈다. 그중 한 군데서 연락을 받았다. “교육을 받는 대신 무보수였어요. 거의 1년 동안 돈을 못 받았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저한테 정말 맞는 일을 찾았다고 생각해서요.” 가족 중에 찬성하는 사람은 없었다. 4년제 대학까지 나와 굳이 몸 쓰며 밥 벌어먹고 살아야 하냐는 말을 들었다. 10년이 지났다. 이 일에 만족하는지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최근에 신혼부부가 침대 프레임 주문을 했어요. 누군가의 가구를 내 손으로 만든다는 게 설레요. 목수란 직업은 눈에 보이는 완성품이 있고, 고객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에요. 제 일에 100% 만족해요.” ●명문대 졸업 후 농부로… “환경에 도움” 정선영(33)씨는 미국 플로리다주 명문 예술·디자인 대학인 링링예술대학에서 3D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2020년 한국에 들어와 강남에서 잘나가는 게임 광고회사를 4년 넘게 다녔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았다. “회사 복지도, 급여도, 분위기도 좋았지만 내 능력을 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선영씨는 1년 전 ‘농부’가 됐다. 충남 홍성 400여평 규모의 땅에서 유기농 호박과 옥수수를 키워 판매한다. ‘블루칼라=3D 업종’이라는 편견에도 불구하고 남들 눈보다는 ‘내 취향,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홍성에서 딸기농장을 하고 있던 오빠의 지원사격을 얻어 지난해 직거래로 50명에게 직접 키운 옥수수를 팔았다. 경운기와 파종기 등 농기계와 농작업 도구들을 잘 사용했더니 두 명이서 그럭저럭 농사일을 해냈다. 선영씨는 “이왕이면 지구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작은 밭’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에 브이로그를 올린다”면서 “시골에서도 여자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안내서와 나만의 농산물 브랜드를 만들어 판매하고 싶다”고 했다. ●“웬만한 화이트칼라보다 수입 나아요” 높은 직업적 안정성이나 노력한 만큼 버는 수입 등도 청년들이 블루칼라 직종에 뛰어드는 이유 중 하나다. 이수민(31)씨는 28세 때 직업군인을 그만두고 실리콘 시공 기술자가 됐다. 수민씨는 “군인은 안정적이긴 하지만 월급이 만족스럽지 않았다”면서 “현재 수입이 군인 때의 네 배 정도 된다”고 했다. 그는 “인테리어 분야 기술은 AI도 대체하기 어렵다. 오로지 사람의 손으로만 할 수 있고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는 기술직이란 점도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건설 현장에서 철근공 신호수로 일하는 김상윤(37)씨도 “소위 화이트칼라라고 하면 기업 사무직을 떠올리는데 중소기업은 월급이나 복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기술자 중에는 고소득자가 꽤 있다”고 강조했다. 구인·구직 플랫폼 벼룩시장이 지난해 10월 블루칼라 및 사무직 종사자 13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무직 근로자의 61.1%는 블루칼라 일자리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노력한 만큼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서(33.7%)’가 가장 큰 이유다. ●“조직 생활보다 혼자 일하는 게 맞아” 블루칼라는 기술직으로 혼자 일할 때가 많다. 수직적 조직문화의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적다. 경직되고 보수적인 ‘꼰대문화’를 질색하는 청년들이 이 직업을 선호하는 원인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MZ(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세대의 특성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얘기다. 5년 차 타워크레인 조종사인 진주성(35)씨는 하루 대부분을 45m 상공에서 일한다. 조종석에 한번 올라가면 약 5시간 이상은 지상으로 내려오기 어렵다.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꼬박 반나절 혼자서 크레인을 조종한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점을 주성씨는 장점으로 꼽는다. 그는 “남과 같이 일하는 것보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맞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2년 차 줄눈 시공자 가은서(23)씨는 원래 호텔리어를 꿈꾸던 20대였다. 인하공업전문대에서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인턴 체험도 했다. 그런데 정장에 구두를 신고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줄눈 시공을 하던 형부의 ‘한번 해 보면 어떻겠냐’는 말에 우연히 업계에 뛰어들었다. 은서씨는 “이제야 몸에 맞는 일을 찾은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아들은 대기업”… 여전한 편견도 물론 블루칼라에 대한 고정관념도 여전하다. 은서씨는 “줄눈 시공을 하러 한 아파트에 갔는데 ‘이거 해서 얼마나 버냐. 우리 아들은 대기업에 다닌다’고 말하던 고객이 있었다”면서 “몸 쓰는 일은 못 배운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3년 차 배관공인 허진규(30)씨도 “전통적 미디어에 노출되는 건설 현장 근로자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노총각이나 가정불화가 많은 가장으로 묘사된다”면서 “실제로 ‘행복한 가정의 기둥’ 같은 아버지, 어머니들이 많다. 다들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세면대 수도꼭지 교체나 욕실 환풍기 수리 등을 하는 주택수리기사로 6년여 동안 일했던 안형선(36)씨는 직업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칼라가 뭐가 중요한가요? 화이트칼라도 블루칼라도 자기 적성에 맞고, 본인이 전문성을 갖고 진심으로 임한다면 모두 좋은 직업이고 전문직 아닐까요.”
  • “남들 시선보다 내가 하고싶은 일”… 우리가 작업복을 입은 이유[청년 블루칼라 리포트]

    “남들 시선보다 내가 하고싶은 일”… 우리가 작업복을 입은 이유[청년 블루칼라 리포트]

    초중고 12년을 거쳐 대학을 나와 사무직으로 일하는 것. 한국 사회에서 으레 ‘안정적인 삶’ 하면 떠올리는 경로입니다. 하지만 4년제 대학을 나와 배관, 도배 등 소위 ‘몸 쓰는 직업’인 블루칼라 직종에 눈을 돌리는 청년들이 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유’를 묻습니다. 어쩌면 땀 흘리는 만큼 보상받는 게 좋아서 일 수도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이 대신할 수 없는 평생 먹고살 기술을 찾은 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블루칼라 직업을 선택한 청년들은 말합니다. 계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무슨 일을 하든 개인의 개성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요. 서울신문은 남들의 시선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 블루칼라가 된 청년들의 이야기와 이들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제언을 3회에 걸쳐 담습니다. 17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에 있는 한 목공방. 10년 차 목수 이원규(35)씨가 소나무 토막을 자동대패기로 얇게 깎고 있다. 종로구의 한 갤러리에 납품할 전시대를 다듬는 중이다. 은은한 나무 향이 공방에 맴돌았다. “전시대는 마감작업이 제일 중요해요. 갤러리의 배경이 되기 때문에 색을 깔끔하게 입혀야 하거든요.” 목수가 나무 하나하나를 자르고 다듬은 가구는, 공장형 가구가 대체하기 힘든 고유한 개성과 매력을 가진다. 원규씨는 고객의 요구에 맞춰 도면을 3D 프로그램으로 직접 그려 재단하고, 손으로 만져가며 나무 결을 다듬는다. 흰 목재 분진이 묻은 작업복을 털며 원규씨가 말한다. “힘든 일이죠. 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그런데 고객이 만족할 모습을 상상하면 기운이 나요.” 부산대 스포츠과학부를 졸업한 원규씨가 목수의 길을 택한 건 10년 전. 대학 동기들은 운동재활, 체육 강사, 스포츠 관련 기업에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그는 다른 길을 갔다. 내가 주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어려서부터 손으로 사부작사부작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목수 일을 배워보자는 생각에 서울에 있는 대부분 공방에 이력서를 보냈다. 그중 한 군 데서 연락을 받았다. “교육을 받는대신 무보수였어요. 거의 1년 동안 돈을 못 받았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저한테 정말 맞는 일을 찾았다고 생각해서요.” 가족 중에 찬성하는 사람은 없었다. 4년제 대학까지 나와 굳이 힘들게 몸쓰며 밥 벌어먹고 살아야 하냐는 말을 들었다. 10년이 지났다. 이 일에 만족하는지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최근에 신혼부부가 침대 프레임 주문을 했어요. 누군가의 첫 가구를 내 손으로 만든다는 게 아직도 설레요. 목수란 직업은 눈에 보이는 완성품이 있고, 고객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에요. 제 일에 100% 만족해요.” 명문대 졸업후 농부로…“지구에 도움 되는 일” 정선영(33)씨는 미국 플로리다주 명문 예술·디자인 대학인 링링 예술대학에서 3D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2020년 한국에 들어와 강남에서 소위 잘 나가는 게임 광고회사를 4년넘게 다녔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았다. “회사 복지도, 급여도, 분위기도 좋았지만 내 능력을 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선영씨는 1년 전 ‘농부’가 됐다. 충남 홍성 400여평 규모의 땅에서 유기농 호박과 옥수수를 키워 판매한다. ‘블루칼라=3D업종’이라는 편견에도 불구하고 남들 눈보다는 ‘내 취향,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홍성에서 딸기농장을 하고 있던 오빠 도움이 컸다. 지난해 직거래로 50명에게 직접 키운 옥수수를 팔았다. 경운기와 파종기 등 농기계와 농작업 도구들을 잘 사용했더니 그럭저럭 두명으로 농사일을 해냈다. 선영씨는 “이왕이면 지구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하고 싶었다”면서 “건강한 흙에서 키운 농작물을 사람들과 나눈다는 점에서 만족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언젠가 자기만의 브랜드를 내세운 농작물을 판매하는 게 꿈이다. 선영씨는 “지금은 ‘작은 밭’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에 브이로그를 올린다”면서 “시골에서도 여자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안내서와 나만의 농산물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웬만한 화이트칼라보다 수입도 나아요” 높은 직업적 안정성이나 노력한만큼 버는 수입 등도 청년들이 블루칼라 직종에 뛰어드는 이유 중 하나다. 이수민(31)씨는 28살 때 직업군인을 그만두고 실리콘 시공 기술자가 됐다. 그는 “솔직히 금전적인 문제가 가장 컸다”고 했다. 수민씨는 “군인은 안정적이긴 하지만 월급이 만족스럽지 않았다”면서 “현재 수입이 군인 때보다 네배 정도 된다”고 했다. 기술이 서툴렀던 초반엔 벌이가 시원찮았지만, 지금은 솜씨좋은 이씨를 찾는 전화가 많다고 한다. 수민씨는 “인테리어 분야 기술은 AI도 대체하기 어렵다. 오로지 사람의 손으로만 할 수 있고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는 기술직이란 점도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건설현장에서 철근공 신호수로 일하는 김상윤(37)씨도 “소위 화이트칼라라고 하면 기업 사무직을 올리는데 중소기업 월급이나 복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기술자 중 고소득자가 꽤 있다”고 강조했다. 스무살에 도배일을 시작한 박서영(20)씨는 “힘든만큼 돈이 들어오는 것도 재미”라고 말했다. 구인·구직 플랫폼 벼룩시장이 지난해 10월 블루칼라 및 사무직 종사자 13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무직 근로자의 61.1%는가 블루칼라 일자리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박씨처럼 ‘노력한 만큼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서(33.7%)’가 가장 큰 원인이다. 취업난에 선택한 블루칼라가 평생 직장으로 취업난에 블루칼라 직종에서 일하다가 평생 직장으로 삼은 사례도 있다. 이영식(33)씨는 경기도에 있는 한 4년제 대학교에서 공연예술학과를 전공했다. 관련업계 취업을 준비하다 2020년 코로나가 터졌다. 당시 공연예술 산업은 ‘암흑기’였다. 영식씨는 생활비를 벌려고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했던 배관 일을 다시 시작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재건축 현장 지하2층에서 만난 그는 “펌프로 물을 위로 밀어내면 배관에 공기가 찬다. 공기를 잘 빠지도록 하는게 기술”이라며 “단순 노동이 아니라 기술이 필요한 고부가 가치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영식씨는 기술력을 쌓고자 최근 국가기술자격증인 용전산업기사를 딴 데 이어 전기기사 자격증도 준비 중이다. “조직 생활보다 혼자 일하는게 맞아” 블루칼라는 기술직으로 혼자 일할 때가 많다. 수직적 조직문화의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적다. 경직되고 보수적인 ‘꼰대문화’를 질색하는 청년들이 이 직업을 선호하는 원인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MZ(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세대의 특성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얘기다. 5년차 타워크레인 조종사인 진주성(35)씨는 하루 대부분을 45m 상공에서 일한다. 조종석에 한번 올라가면 약 5시간 이상은 지상으로 내려오기 어렵다.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꼬박 반나절 혼자서 크레인을 조종한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점을 주성씨는 장점으로 꼽는다. 그는 “남과 같이 일하는 것보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맞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2년차 줄눈시공자 가은서(23)씨는 원래 호텔리어를 꿈꾸던 20대였다. 인하공업전문대에서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인턴 체험도 했다. 그런데 정장에 구두를 신고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 불편하게 느꼈다. 우연히 줄눈 시공을 하던 형부가 ‘한 번 해보면 어떻겠냐’는 말에 이 업계에 뛰어들었다. 은서씨는 “이제 몸에 맞는 일을 찾은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아들 대기업 다니는데”…여전한 편견도 물론 블루칼라에 대한 고정관념도 여전하다. 은서씨는 “줄눈 시공을 하러 한 아파트에 갔는데 ‘이거 해서 얼마나 버냐, 우리 아들은 대기업에 다닌다’고 하는 말하던 고객이 있었다”면서 “몸쓰는 일은 못 배운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3년차 배관공인 허진규(30)씨도 “전통적 미디어에 노출되는 건설현장 근로자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총각이나 가정 불화가 많은 가장으로 묘사된다”면서 “실제로 ‘행복한 가정의 기둥’ 같은 아버지, 어머니들이 많다. 다들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세면대 수도꼭지 교체나, 욕실 환풍기 수리 등을 하는 주택수리기사로 6년여동안 일했던 안형선(36)씨는 직업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칼라가 뭐가 중요한가요? 화이트칼라도 블루칼라도 자기 적성에 맞고, 본인이 전문성을 갖고 진심으로 임한다면 모두 좋은 직업이고 전문직 아닐까요.”
  • 라커룸 없어 화장실서 탈의한 女축구선수들…지소연 “미국이면 큰일 나”

    라커룸 없어 화장실서 탈의한 女축구선수들…지소연 “미국이면 큰일 나”

    국내 여자축구선수들이 라커룸이 없어 천막에서 옷을 갈아입는 등 여자축구의 열악한 대회 환경이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우리나라 여자축구 간판 지소연(33·시애틀 레인)이 “미국이면 큰일 나는 일”이라며 쓴소리를 내놨다. 지소연은 지난 1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선수들은 라커룸이 없는데도 당연하게 화장실이나 천막 아래에 들어가 그냥 옷을 갈아입는다”며 “우리 같은 ‘천막 탈의’는 외국이라면 난리가 날 일인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선수들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며 안타까워했다. 지소연이 지적한 건 앞서 지난 8월에 열린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다. 전국 61개 팀이 참여한 이 대회는 국내 여자축구대회 중 최대 규모이나 올해 대회에서는 탈의실이나 라커룸이 없어 선수들이 화장실이나 천막 아래에서 가림막도 없이 옷을 갈아입는 상황이 연출됐다.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도 그달 9일 홈페이지에 ‘폭염 속 최대 규모 대회에 나선 여자 선수들, 사람들이 있는 데서 옷 갈아입어야’라는 제목의 글로 열악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지적했다. 지소연은 “항상 그래왔으니 그러는 거라지만 이제 바뀔 때”라며 “이런 이야기를 해도 당장 뭐가 바뀌지 않는다. 그래도 어린 친구들에게는 지금보다 좋은 환경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소연은 국내 여자 실업축구 WK리그의 열악한 현실을 언급하며 “WK리그 선수들 연봉이 10년째 멈춰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명목상 WK리그 최고 연봉은 5000만원이다. 신인 선수들은 1차 지명 시 3000만원, 4차 지명 이후라면 2000만원을 받는다. 지난해 말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은 23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4명이 ‘연봉 2천만원’ 처지인 4차 이하 지명으로 선발됐다. 다만 지소연은 영미권에서 나오는 ‘남녀 선수 동일 임금’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결코 남자랑 돈을 똑같이 달라는 게 아니다. 리그든, 대표팀이든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틀은 갖춰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다른 나라는 빠르게 발전하는데 우리만 그대로인 게 안타깝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소연은 WK리그와 잉글랜드 여자 슈퍼리그(WSL)를 비교했다. 그는 “WK리그와 WSL은 비슷한 시기에 출범했으나 지금은 천양지차”라고 말했다. WK리그와 WSL의 원년은 각각 2009, 2010년이다. 대한축구협회의 산하 기관인 여자축구연맹이 운영하는 WK리그와 달리 WSL은 처음부터 잉글랜드축구협회(FA)가 직접 책임지고 키워내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지소연은 “변화 시기를 놓친 건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도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선수협 등이 노력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다들 여자축구가 ‘안 될 사업’이라 하지만 ‘해볼 만한 사업’으로 인식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이어 “다들 여자축구에 너무 관심이 없는 게 근본적 문제다.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런 인식 자체부터 바꾸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소연이 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는 여자 선수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오는 14일 강남구 더 리버사이드 호텔 노벨라홀에서 ‘자체 시상식’을 연다. 이날 2024시즌 여자 실업축구 WK리그 시상식을 통해 베스트 11, 최우수선수(MVP) 등을 선정할 예정이다. 한편 2011년 일본 고베 레오네사에서 프로 데뷔한 지소연은 2014년 한국 최초로 유럽 최고 무대인 WSL에 진출해 첼시 위민 소속으로 8시즌을 뛰며 리그 6회, 축구협회(FA)컵 4회, 리그컵 2회 우승 등에 앞장섰다. 지소연은 2022년 5월 국내 WK리그 수원FC로 전격 이적해 화제를 모았다. 지소연은 A매치 154경기에서 69골을 넣으며 한국 남녀 국가대표를 통틀어 최다 경기 출장, 최다 득점 기록을 썼다. 올해에는 세계 최고의 무대로 손꼽히는 미국여자프로축구(NWSL) 시애틀 레인FC에 입단했다.
  • “톱스타가 입으로…” 성폭행 폭로한 前모델, 21년간 ‘증거’ 보관했다

    “톱스타가 입으로…” 성폭행 폭로한 前모델, 21년간 ‘증거’ 보관했다

    전 여자친구 폭행 영상이 공개돼 공분을 샀던 미국 힙합계의 거물 션 디디 콤스(54)가 이번엔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했다. 성폭행 피해를 폭로한 전직 모델은 “당시 입었던 옷을 그대로 보관해왔다”고 호소했다. 23일(현지시간) BBC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퍼프대디’라는 예명으로 유명한 콤스는 최근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했다. 전직 모델인 크리스탈 맥키니는 22세이던 지난 2003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패션 위크 행사 후 콤스에게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했다. 맥키니는 17세 때 MTV ‘모델미션’이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면서 모델로 데뷔했다. 맥키니에 따르면 그는 콤스와 해당 행사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콤스는 “모델일을 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며 술을 권했고, 그날 밤 자신의 스튜디오로 맥키니를 초대했다고 한다. 스튜디오에 도착하자 콤스는 다른 남성들과 함께 마리화나(대마초)를 흡연하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맥키니 역시 마리화나와 술을 건네받았는데, “충분히 마셨다”는 말에도 콤스가 계속 강요했다는 게 맥키니의 주장이다. 맥키니는 “내가 취하자 콤스는 (나를) 화장실로 데려가 구강성교를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의식을 잃은 맥키니는 깨어나자마자 택시를 타고 도망갔다. 그는 “수치심과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의지할 곳이 없다고 느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이후 모델 활동 기회가 줄어들었다”며 “콤스가 영향력을 이용해 업계에 협박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맥키니는 2004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고 한다. 소장에 따르면 맥키니는 성폭행당했을 당시 의상에 대해 “옷을 세탁하지 않고 그대로 비닐에 싸 옷장에 보관해왔다”고 밝혔다. 콤스, 前여자친구 폭행 영상 공개되기도 앞서 콤스는 8년 전 당시 여자친구였던 가수 캐시(본명 카산드라 벤투라)를 폭행하는 동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일기도 했다. 지난 17일 CNN 방송이 공개한 영상에는 2016년 3월 5일 로스앤젤레스(LA)의 한 호텔 복도에서 콤스로 보이는 남성이 맨몸으로 하체에 수건만 두른 채 달려 나와 여자친구인 캐시를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장면이 담겼다. 그는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영상을 올려 “진심으로 죄송하다”(truly sorry)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inexcusable)고 사과했다. 콤스는 과거 그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적이 있었던 여성 조이 디커슨-닐에게서도 성폭행 혐의로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 북바인딩 수업/이지혜 [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 단편소설]

    북바인딩 수업/이지혜 [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 단편소설]

    책방 안에 희미하게 레몬빛이 돌았다. 창문에는 아이보리색 커튼이 드리워졌고, 형광등과 보조등에서 퍼져나온 빛이 커튼 위로 어우러져 따듯하면서도 산뜻했다. 윤재는 사람들과 함께 반대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내 기척을 느낀 몇 사람이 얼굴을 돌렸고 윤재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줄지어 선 책장을 지나쳐 테이블 쪽으로 걸었다. 중앙에 자리 잡은 매대 위에는 윤재가 만든 책들이 놓여 있었다. 여기 있어요, 오래된 자리, 쓰고 만듦. 이모의 환갑을 열흘 앞두고 윤재는 나에게 다시 연락해왔다. 휴대폰 액정에 윤재에게 온 메시지 알림이 떴을 때 나는 윤재가 환갑잔치 일정을 알려주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메시지에 이모 이야기는 없었다. 윤재는 내가 사는 곳 근처 책방에서 북바인딩 수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날짜는 이틀 뒤였다. - 민정아, 와줄 수 있어? 나는 답장하길 망설였다. 윤재와는 한동안 거리를 두며 소원하게 지내고 있었다. 반년 만에 온 윤재의 연락이 반갑기보다는 어색했다. 윤재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여섯 살 때 아빠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나를 이모에게 부탁했다. 동생만 외할머니 집에 데려가 함께 살면서 식당에서 종일 일하며 돈을 벌었다. 아빠가 남긴 유산은 없고 병원비와 빚만 쌓여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훗날 엄마는 설명해 주었다. 일이 년 돈을 모아서 방이라도 얻을 수 있게 되면 나를 데리러 올 예정이었다고 덧붙였다. 엄마의 결정과 계획을 당시에는 알지 못한 채로 나는 이모네 집에 들어갔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사촌인 윤재와 함께 자랐다. 윤재가 한 살 많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윤재를 오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윤재의 형인 윤석을 꼬박꼬박 오빠라고 부른 것과 달리 윤재는 이름으로 부르며 친구처럼 대했다. - 이모 환갑은 어떻게 할 거야? 내가 되묻자 윤재는 만나서 얘기하자고 답장했다.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말을 우리는 반년 전에도 나눴다. 당시 그렇게 말한 건 나였고 윤재는 알겠다고 우선 만나자고 선뜻 대답했다. 그때 윤재도 속으로는 내키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윤재에게 답장을 보내 책방으로 가겠다고 말해 놓고도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도 올까 말까 망설였다. 이런 마음을 모르는 윤재는 웃으면서 나에게 손짓했다. 유난히 하얗고 마디가 굵은 윤재의 손. 어린 시절엔 지금보다 훨씬 작은 손으로 윤재가 내 등을 쓸어내렸던 적도 있었다. 처음 이모네 집에 들어갔을 때 나는 잘 웃지 않았다. 울거나 떼를 쓰지도 않았다.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지 않을까 봐 걱정했고, 괜히 말썽을 부렸다가 이모네 집에서 쫓겨나게 될까 봐 불안해했다. 이모나 이모부가 나에게 눈치를 줬거나 윤재나 윤석과 사이가 나빴던 것도 아니었는데. 이모부는 이 년 동안 나를 거두어 키우면서도 싫은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아이를 돕는 일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윤재와 윤석을 대할 때는 태도가 엄격했고, 자녀의 교육과 생활 지도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이 확고했다. 거기 어긋나거나 미치지 못하면 납득이 될 때까지, 원하는 말을 들을 때까지 사람을 몰아세웠다. 왜 그렇게 했니. 말해봐, 왜.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야. 왜 말을 못 해. 어떻게 할 거냐니까. 윤석은 공부나 생활 면에서 이모부의 기대만큼 해내는 편이었고 이런 말을 듣는 건 대체로 윤재였다. 이모네 집에 들어간 지 세 달쯤 지났을 때 윤재가 이모부에게 크게 혼났다. 그날은 이모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았다. 도중에 이모부가 윤재를 때리려고 해 이모가 말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공부방으로 들어온 윤재가 테이블 앞에 주저앉았다. 윤재 눈에서 눈물이 한두 방울 떨어지는가 싶더니 줄줄 흘러내렸다. 소리 없이 우는 윤재를 보다가 나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왜 그랬는지 윤재가 하는 것처럼 숨죽여 울었다. 한번 터진 울음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누군가 내 등을 다독이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윤재가 테이블 앞으로 몸을 숙인 채 내 등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윤재의 눈에서도 계속 눈물이 흘렀다. 간식을 들고 온 이모가 우리 둘 사이에서 눈가를 훔치는 모습을 나는 봤다. 와달라는 윤재의 요청을 끝내 거절하지 못한 것, 머뭇거리면서도 뒤돌아 책방에서 나가지 못한 것, 이게 다 그 순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울었고 또 웃기도 했으니까. 단지 그것뿐이라고 속으로 되뇌며 윤재에게 손을 흔들었다. 모두 여섯 사람이 색지와 실, 송곳 등이 놓인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모서리가 둥근 사각 테이블은 밝은 갈색의 원목 상판과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철제 다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벽면 스크린 앞에 서 있던 윤재가 목을 가다듬었다. “저는 책 만드는 박윤재예요. 제 목소리가 좀 작은 편이죠? 혹시 안 들리시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빔 프로젝트 화면을 넘기자 윤재가 만든 세 권의 책이 스크린에 올라왔다. “그동안 이 책들을 만들었고요. 여러 책방에서 북바인딩 수업을 진행해 왔어요. 첫 번째 책을 만든 게 벌써 칠 년 전이네요.” 윤재는 책들을 소개했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고, 어떤 상황에서 만들었으며,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어려움은 또 어떻게 해결했는지, 하는 내용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낮고 느린 목소리에서 나름대로 강약이 느껴졌다. 가끔 참여자들이 소리 내어 웃기도 했는데 사람들 앞에서 술술 이야기하는 윤재가 나는 좀 낯설었다. 윤재는 참여자들에게도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첫 번째 참여자는 프랑스어를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곧 어학연수에 갈 예정이라며 거기서 보고 느낀 것들을 책으로 펴낼 거라고 했다. 두 번째 참여자는 입을 열기 전, 옆에 앉은 세 번째 참여자를 잠깐 봤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사내 커플이었다. 퇴근 후 함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걸 즐긴다고 했다. “우리가 같이 보낼 시간을 책에 기록하고 싶어요.” 두 번째 참여자가 말하자 세 번째 참여자가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했다. 다른 사람들은 웃으며 박수했고 윤재도 따라서 손뼉을 쳤다. 나는 타이밍을 놓쳐 고개만 끄덕거렸다. 속없이 웃는 윤재가 내심 못마땅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 “저는 호텔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하던 호텔에서는 팬데믹 시기에 나와야 했고, 요즘 다른 호텔에서 아르바이트한다는 말을 덧붙일 순 없었다. 윤재의 사촌이라는 것은 밝히지 않았다. 그렇게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었다. 그 후 대화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마지막 참여자가 평소에 책을 좋아해서 신청했다고 말하는 것만 귀에 들어왔다. 내가 처음 호텔에서 일하기 시작한 때는 윤재가 첫 번째 책을 만들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인턴으로, 정확하게는 프리인턴으로 호텔에 입사했다. 육 개월간의 프리인턴 과정을 통과한 사람만 일 년제 인턴이 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호텔이라는 공간이 꽤 그럴싸해 보였고 그 안에서 유니폼을 맞춰 입고 구성원이 되면 든든한 소속감을 느끼게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반년이 지나가고 인턴 전환 시험이 다가왔다. 개별 면담과 지필 시험, 조별 면접까지 마치고 며칠간 결과를 기다렸다. 어느 날 쉬는 시간, 직원 로커룸에서 친한 동기가 가방을 꾸리고 있었다. 내가 뭐 하냐고 묻자 동기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나 집에 가.” 오후 세 시가 되기도 전에 동기는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로커룸을 나갔다. 다음 날 나는 인턴이 되어 출근했고 평소처럼 유니폼을 입은 채 일했지만 호텔이라는 공간, 특히 매일 지나는 길고 어두운 직원 통로가 좀 무서워졌다. 나는 이런 일들을 그때그때 윤재에게 알렸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엄마는 이모네 집 가까이에 셋집을 얻었다. 윤재와 따로 살면서도 같이 밥을 먹고 숙제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이미 엄마보다는 이모를, 동생보다는 윤재를 더 친밀하게 느끼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윤재와 가깝게 지냈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윤재에게 연락했다. 내 친구들이 윤재와 내가 연인 같다고 놀린 적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그런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호텔에서 있었던 일들을, 윤재는 책 만드는 작업을 주로 이야기했다. 내가 인턴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을 알리자 윤재도 첫 번째 작업에 대해 소식을 전해왔다. 윤재가 처음으로 만든 책 <여기 있어요>는 서울아트시네마가 많은 사람의 후원과 노력에도 낙원상가에서 철수하고 서울극장 삼 층에 단일 상영관으로 축소되어 자리 잡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었다. 윤재는 일이 벌어지는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위치를 옮긴 서울아트시네마가 오픈하던 날부터 백 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곳에 갔다. 많은 사람이 거기 서울아트시네마가 들어섰다는 데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선 여전히 특별기획 프로그램이 진행됐고 새로운 독립영화가 상영됐고 또 누군가는 계속 극장을 찾았다. 나는 윤재의 책을 통해서 그런 일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윤재는 대학교 사 학년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윤재가 색지를 테이블 가운데로 옮겨서 색깔별로 펼쳤다. “이 두꺼운 색지는 여러분이 만들 책의 표지가 될 거예요. 좋아하는 색으로 두 장씩 골라주세요.” 같은 크기로 잘린 흰 종이도 색지 옆에 꺼내두었다. “눈에 띄는 색이 없으실까 봐 걱정인데요. 그러면 흰 종이에 색연필이나 펜으로 표지를 꾸미셔도 좋을 것 같아요.” 마음에 드는 표지를 만드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윤재가 혼잣말하듯 덧붙이고 뒤통수를 긁적였다. 여러 색의 색지들은 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진달래색 표지 두 장을 손에 들었다. 조금 촌스러운가 생각했지만 그대로 내 앞에 가져왔다. 진달래색 색지는 묘하게 기시감이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내 매니큐어 색깔과 비슷했다. 며칠 전 나는 발톱에 짙은 분홍색 매니큐어를 발랐다. 꽃잎을 그려 넣듯 하나하나 두 번씩 덧칠했다. 매니큐어가 마른 발을 보면서 색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손을 보며 조금 씁쓸했다. 이제 정직원도 아닌데 적당히 넘어가도 되는 규정을 철저히 지키는 내가 답답하기도 했다. “이 얇은 종이들도 열 장씩 가져가세요. 이건 책의 내용을 담을 내지가 될 거예요.” 윤재는 표지와 같은 크기인 흰색 종이들도 테이블 위에 죽 늘어놓았다. 어차피 내지는 다 똑같은 흰 종이라 열 장씩 나눠줘도 될 텐데 한 장 한 장 직접 골라서 가져가라고 했다. 참여자들은 테이블 중앙에 세 줄로 놓인 종이들을 훑어보다가 한 장씩 집었다. 옆 사람이 고르기를 기다렸다가 가져가기도 했고 앞 사람과 손가락이 부딪히기도 했다. 그 과정이 나는 좀 번거로웠는데 옆에 앉은 연인 참가자들은 서로 종이를 골라주며 재미있어했다. 나는 윤재를 흘끔 봤다. 윤재는 테이블 반대쪽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윤재가 나를 왜 이곳에 불렀는지 알 수 없었다. 이모 환갑잔치 일정은 전화로도 충분히 알려줄 수 있는 내용이라서 나는 윤재가 그걸 핑계로 나에게 연락해 관계를 회복하려는 게 아닌가 짐작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윤재는 나에게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다 하셨으면 이렇게 표지 사이에 내지를 넣어 보세요. 벌써 책 같은 모양이 됐죠?” 다들 윤재가 말한 대로 표지 사이에 내지를 넣어서 앞뒤로 살폈다. 나도 앞에 놓인 종이들을 한 손에 잡고 어떤 책이 완성될지 가늠해 보았다. 잘 그려지지 않았다. 윤재가 실뭉치와 송곳 두 개를 테이블 가운데로 가져오더니 이제 구멍을 뚫을 차례라고 말했다. 이미 묶어둔 견본을 펼쳐서 우리에게 보여줬다. “구멍을 잘 뚫는 게 중요해요. 그 구멍으로….” 그때 책방 문이 열리고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대화 소리가 커서 윤재의 말이 끊겼다. 책방 직원이 다가가 수업 중이니 목소리를 낮춰달라고 말했다. “수업이요? 무슨?” 한 사람이 이쪽을 건너다보며 물었다. “책 만드는 수업을 하고 있어요.” 책방 직원이 목소리를 낮춰가며 대답했고 세 사람은 한 마디씩 말을 보탰다. 책이요? 그래, 책을 만든대. 그런 수업도 하는구나. “그걸 어떻게 만드는데?” 셋 중 한 사람이 물었고 실내가 조용해졌다. 세 사람은 서가 앞에 서서 이쪽을 들여다보더니 테이블 위를 둘러보고 윤재와 참가자들도 훑어봤다. “저렇게 만드는가 보네.” 그런가 보다고 몇 마디를 더 주고받고는 책방 직원을 향해 그러면 다음에 오겠다고 말했다. 문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세 사람이 나간 뒤 닫힌 문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근데 저걸 왜 만들지.”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윤재는 서너 차례 목을 가다듬었다. 잠깐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곧 견본을 손에 잡고 테이블 앞으로 내밀었다. “구멍을 잘 뚫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죠? 그 구멍으로 한 장 한 장의 낱장들이 모이고 묶여야 책이 되는 거니까요.” 목소리가 조금 흔들리는가 싶었지만 윤재는 막힘없이 말을 마무리했다. 당황하는 기색은 없었고 마음이 상한 듯해 보이지도 않았다. 당황하고 마음이 흔들린 쪽은 오히려 나라는 것을 깨닫고 있을 때 윤재는 표지를 자세히 보라며 견본을 들어 올렸다. 구멍 사이의 간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모두 다섯 개의 구멍을 뚫어야 했다. 모든 구멍은 왼쪽 끝을 기준으로 가로 0.5cm를 띄워놓아야 했으며, 첫 번째 구멍은 왼쪽 끝 윗면에서 세로 1cm의 간격을 둬야 했고, 두 번째 구멍부터는 세로 2.5cm의 거리가 필요했다. 그렇게 간격을 유지하다 보면 마지막 다섯 번째 구멍은 자연스럽게 네 번째 구멍과는 세로 2.5cm, 종이의 아랫면과는 첫 번째 구멍과 마찬가지로 세로 1cm의 거리가 생겼다. 표지에 윤재가 알려준 간격대로 점을 찍어 두었다. 송곳이 나에게 넘어오길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들이 책 만드는 모습을 둘러봤다. 옆에 앉은 커플은 알맞은 위치에 점을 잘 찍었는지 서로 확인하는가 싶더니 책을 바꿔 상대방의 책에 구멍을 뚫어주고 있었다. “제일 끝에 있는 구멍은 잘 안 되는데? 잘못했다간 종이 찢어질 것 같아.” “이리 줘. 내가 해볼게.” 여자가 마지막 구멍을 뚫어서 남자에게 건넨 뒤 나에게 송곳을 전해줬다. 여자가 몸을 돌렸고 두 사람은 테이블에 놓인 하늘색 표지 위로 손을 포갰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송곳을 잡았는데 무언가에 찔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벼려진 바늘 끝으로 오래된 흉터를 짓누르는 기분. 송곳을 고쳐 쥐었다. 진달래색 표지와 흰색 내지들을 모아서 왼손에 잡고 오른손으로 송곳을 들어 첫 번째 구멍으로 가져갔다. 종이 위에 찍어 둔 점을 송곳으로 누른 뒤 힘을 줬지만 종이는 뚫리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종이를 내려놓고 왼손 손바닥으로 고정한 채 송곳을 좌우로 돌렸다. 손의 힘이 풀려 낱장들이 자꾸 흩어졌다. 윤재가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윤재는 앞 장 표지만 가져가 송곳을 살살 돌려가며 구멍을 뚫었다. 뾰족한 송곳 끝이 표지 반대편으로 빠져나오자 내지를 서너 장씩 집어서 같은 위치에 구멍을 만들었다. 송곳을 돌리는 윤재의 손. 가까이서 보니까 작은 흉터가 많았다. 윤재가 종이를 다시 내게 건넸다. 가지런히 뚫린 다섯 개의 구멍이 흠집 같았고 그 자체로 고리 같아 보이기도 했다. 윤재는 사람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살펴보며 테이블을 한 바퀴 돌았다. 송곳 두 개를 한쪽에 모아놓고 실뭉치를 풀었다. 미리 준비해 둔 실을 손에 잡고 그 길이에 맞춰서 한 줄씩 잘라나갔다. “이제 구멍 사이에 실을 넣어서 책으로 엮어 볼게요. 실 한쪽 끝에 매듭을 만들어 주세요. 구멍에 매듭이 고정될 수 있도록이요.” 참여자들이 그 말에 따라 매듭을 묶고 있을 때 윤재 앞에 놓인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윤재는 한동안 테이블을 내려보다가 빠르게 말했다. “급한 전화라 잠깐 받고 올게요.”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져 통화를 시작하는가 싶더니 곧 몸을 돌려 책방 서가를 가로질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윤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지 걱정됐다. 반년간 왕래 없이 지내는 동안 윤재에게도 많은 일이 생겼을 것이다. 그전엔 윤재와 이렇게 오래 연락이 끊긴 적이 없었다. 윤재는 만들고 싶은 책이 떠오르면 나에게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며 작업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나갔고, 책이 나오면 나에게 제일 먼저 보여줬다. 그런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는 윤재도 나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함께 있는 게 그저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느끼지 못한 동안 윤재와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대학을 졸업한 뒤 윤재는 내가 어디냐고 물을 때마다 대개 카페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도 한 번은 윤재를 만나러 도서관에 갔다. 윤재는 열람실에서 책을 읽다가 나를 만나러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가지, 우선 나갈까? 내가 묻자 윤재는 여기에도 식당이 있다며 내려가 보자고 했다. 우리는 도서관 지하 식당에서 라면과 김밥을 사 먹었다. 내가 내려고 하는 걸 여기까지 왔는데 그럴 수 없다며 윤재가 막아섰다. 내가 한 번 더 나서자 윤재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럴 땐 좀.” 식사 후에는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마시며 일 층 만남의 광장에서 조용조용 얘기를 나눴다. 윤재는 당시 구상 중이던 책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내가 딴생각을 하지 않는지 가끔 눈치를 살피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마 멈추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질문을 부지런히 삼켰다. 그때는 내가 정규직이 된 지 육 개월쯤 지난 시기였다. 인턴 때에 비하면 생활이 조금 나아졌고 해고에 대한 불안감은 없어졌다. 하지만 유니폼이 마치 내 일부인 듯 익숙해지면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나는 뭘 놓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애꿎은 매니큐어만 사서 모으고 있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립스틱이나 아이섀도 같은 값이 더 나가는 것은 사지 못했고 가끔 퇴근길에 매니큐어를 샀다. 화장대 위에 올려둔 매니큐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더니 두세 달이 지나자 두 줄 세 줄로 길어졌다. 업무 규정 때문에 손톱에는 바를 수 없어서 나는 발톱에만 매니큐어를 발랐다. 그날 도서관에서 윤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도 화장품 가게에 들러 매니큐어를 하나 더 샀다. 일하지 않은 날 매니큐어를 산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윤재를 사랑하는 마음이 발톱에만 바를 수 있는 매니큐어 같다는 생각도 그날 처음으로 했다. 이런 시간이 윤재와 나 사이에 난 구멍처럼, 적당하지 못한 간격처럼 느껴졌다. 구멍을 뚫는 건 종이에 손상을 주는 일인데도 그 구멍을 통과해야 낱장들이 하나로 묶여서 책이 된다는 윤재의 말을 곱씹었다. 지난 반년 새 우리 사이에는 확실히 거리가 생긴 것 같았다. 나는 윤재에게 호텔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지내는 근황을 알리지 못했고 어쩌면 윤재도 나한테 전하지 못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전화를 받으러 나간 윤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불만을 내비치는 사람은 없었지만 하나둘씩 핸드폰을 꺼내기 시작했다. 십 분쯤 지났을 때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밖으로 나왔다. 복도는 어두웠고 아무도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층계참에서 방향을 꺾고 뛰어 올라오는 윤재가 보였다. “미안, 많이 늦었지?” 윤재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방금 들은 말과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윤재의 모습이 어디선가 본 듯 낯익었다. “아니야, 다들 신경 안 써. 무슨 일이야?” 윤재는 발을 멈추고 주저하다가 그게, 하면서 입을 열었다.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지만 윤재는 참여자들에게 여러 차례 사과했다. “일이 생겨서 시간이 지체됐어요. 죄송합니다.” “그럴 수도 있죠. 괜찮아요. 근데, 괜찮으신 거예요?” “그래요. 작가님 별일 없으면 됐어요.” 참여자들에게서 괜찮다는 반응과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이어졌다. 윤재는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거듭 시간을 확인했다. “매듭을 만드는 데까지 했죠? 이어서 나가볼까요?” 윤재가 테이블을 훑더니 작업하던 것을 위로 올렸다. “이제 표지 뒷장 두 번째 구멍에 바늘을 넣어서 매듭으로 고정해 주세요.” 두 번째 구멍에서 나온 실로 책등을 한 바퀴 돌려서 묶고 두 번째 구멍으로 다시 돌아왔다. 세 번째 구멍으로 이동해서 또 책등을 한 바퀴 돌리고 한 번 더 옆으로 바늘을 움직였다. 윤재의 손을 따라서 나도 구멍 안으로 바늘을 넣었다. 낱장의 종이들을 묶으려고 하니까 표지와 내지가 모이는가 싶다가도 금방 실이 풀려 흩어지고 말았다. “헐거워지지 않도록 적당한 힘으로 당겨주는 게 중요해요.” 윤재의 말을 듣고 손에 더 힘을 줬다. 다시 옆으로 바늘을 돌려 책등을 만들고 아래로 이동해 나가며 종이를 엮었다. “이걸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옆에 앉은 사람이 혼잣말했다. 여러 방향을 오가며 구멍에 바늘을 넣었다가 빼야 하는 과정이라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시간이 지체된 것 때문인지 윤재는 윤재대로 조급해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통화 내용이나 나와 나눈 이야기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졌을지도 몰랐다. 윤재는 사람들 사이를 분주하게 오갔는데 일의 진도는 빨라지지 않았다. 내 옆에 앉은 사람도 같은 자리에서 바늘을 넣었다가 빼기만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도와드릴까요? 순서가 바뀐 것 같아요.” 내가 손을 내밀자 그는 나에게 자신의 책을 건넸다. 오렌지색 표지 끝부분에 자리 잡은 구멍으로 실을 빼내고 윤재가 알려줬던 순서로 다시 바늘을 넣었다가 뺐다. 다른 사람의 책을 들고 있다는 게 왠지 긴장돼서 조심히 손을 움직였다. 복도에서 윤재에게 들은 얘기가 떠오를 때마다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도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선 느슨해진 매듭을 꽉 묶어두고 바늘로 구멍과 구멍을 옮겨가며 그의 책을 엮었다. 팽팽히 묶인 책을 건네고 나자 반대쪽 테이블에서 참여자들을 도와주던 윤재가 고개를 들었다. 몸을 세우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방식은 동양식 바인딩이라고 말한 뒤 이쪽으로 다가왔다. 옆을 지날 때 윤재가 내 어깨에 잠깐 손을 올렸다. 두 시간 전에 고른 열두 장의 종이가 제법 책의 틀을 갖췄다. 단단하고 부드러운 표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윤재가 입을 열었다. “이제 여러분 책에 내용을 채워 보도록 할 건데요. 책의 제목은 <북바인딩 수업>이라고 정해볼게요. 이 시간 동안에 여러분께 생긴 일, 느낀 감정, 떠오른 생각 등을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윤재는 내지 첫 장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책을 옆으로 돌려서 그 내용에 대해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적어주는 것으로 책 속 내용을 채워 나가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여기서 함께 시간을 보낸 건 맞지만, 다 같은 시간을 보낸 건 아닌 것 같거든요. 이 수업에 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으니 솔직하게 써볼까요.” 참여자들은 손에 색색의 책을 한 권씩 들고 있었다. 색연필을 나눠준 뒤 윤재는 내 맞은편에 와서 앉았다. 옆에 놓인 책장을 곁눈질로 가리켰는데 거기엔 윤재의 세 번째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윤재가 나에게 색연필을 건넸다. 글씨 쓰기 편하도록 끝이 뾰족하게 깎여 있었다. 윤재는 나를 향해 살짝 웃더니 몸을 돌렸다. 앞에 놓인 책의 표지를 넘기고 하얀 바탕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세 번째 책으로 윤재는 독립출판 작가들의 인터뷰집을 만들었다. 다섯 작가의 인터뷰를 싣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책을 만들기 직전, 윤재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윤재는 카페 아르바이트 휴무일에 물류 창고 일을 하러 갔다가 허리를 다쳐 원래 하던 아르바이트도 못 하게 됐다. 당시 나는 정규직 사 년 차로 호텔의 중식 레스토랑과 베이커리를 거쳐 연회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각종 포럼이나 세미나를 위해 준비해야 했고, 결혼식이 주말마다 하루에도 두세 번씩 열렸다. 나는 손님들에게 웃으며 인사하다가 또 상사에게 웃으며 고개 끄덕이길 반복했다. 정신이 없을 땐 명찰을 착용하는 것도 잊었다. 내가 호텔 얘기를 하면 이모는 그만둬도 괜찮다고 말했다. 이모가 윤재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는 건 나중에 전해 들었다. 뭘 선택해도 길은 있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했든 윤재도 나도 마음껏 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윤재가 마지막 통원 치료를 받았다며 전화를 걸어와 독립출판 작가들을 인터뷰해서 책을 만들 거라고 얘기했을 때 나는 윤재가 답답하다고 느꼈다. 윤재가 책을 만들수록 윤재와 함께할 수 있는 미래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애초에 쉬운 관계도 아닌데. 불쑥 눈물이 나왔다. 이번에는 참을 수 없었다. “그걸 왜 만드는데?” 윤재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윤재가 다시 입을 닫았고 나도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냥 내가 남았어.” 윤재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 근데 지금 와서 보니까, 그냥 책을 만드는 내가 남았어. 나는 책이 남는 건 줄 알았지.” 윤재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테이블 위에는 손바닥만 한 책이 아홉 권 놓여 있었다. “다 적으셨으면 다른 사람의 책을 같이 완성해 봐요.” 책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윤재 앞에 오른쪽에서 넘어온 책이 놓였고 나도 옆 사람이 만든 책을 건네받았다. 내 앞에 차례로 전해지는 책들은 이 시간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어떤 책에는 책방 공간에 대한 묘사와 거기서 얻은 느낌들이 적혀 있었고, 다른 책에는 책 만드는 과정과 재미있었던 점이 쓰여 있었다. 참여자들과 겪은 에피소드를 적어둔 페이지에서 나에 관한 내용을 읽었을 때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느새 윤재의 책이 내 앞에 도착했다. 나는 민트색 표지를 넘겼다. 막상 쓰려고 하니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써봤어요.) 앞으로 북바인딩 수업을 쉬려고 했거든요. 책 만드는 것도 그만하려고 했고요. 엄마가 아프셔요. 큰 병은 아니지만 수술을 받고 잘 관리해야 한대요. 엄마 컨디션 때문에 일정이 당겨져서 오늘 수술을 받으셨는데 다행히 경과가 좋다고 연락이 왔어요. 한동안 엄마 옆에 있으려고 해요. 그래도 북바인딩 수업은 계속해야 할 것 같아요. 오늘 서툴게 진행한 부분이 있어서 이번 참여자분들은 다음 수업에 한 번 더 오실 수 있도록 할게요. (그만 사과하라고 하셨지만 정말 죄송해요.) 책, 책이요. 책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또 솔직하게 써보자면) 어영부영 책 만든다고 놓치고 산 게 많아요. 우선 옆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싶어요. 못 본 척해 온 것을 이젠 제대로 보고 싶고요. (더 솔직하게는) 할 수 있는 한 마음껏 사랑하며 살아보고 싶어요. 오늘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모가 아프다는 말은 복도에서 들었지만 윤재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은 몰랐다. 오늘로 북바인딩 수업을 그만하려는 줄은. 그래서 나에게 와달라고 한 건가. 예전에 윤재에게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을 윤재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책 만드는 걸 쉬겠다는 윤재의 말도 뜻밖이었다. 페이지를 넘기자 참여자들이 남긴 메시지가 이어졌다. 어머님 쾌차하실 거예요, 작가님 팬인데 책도 계속 만들어 주세요. 다음에 또 뵐 수 있다니 좋네요, 같은 말들이 페이지 가득 적혀 있었다. 내가 윤재에게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병원에 있을 이모가 걱정됐다. 아까 복도에서 윤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수술 전에 엄마가 괜히 겁을 내면서 나한테 당부하더라고. 너를 잘 챙기라고.” 이모는 어째서 윤재에게 나를 부탁했을까. 어째서 윤재에게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어째서 엄마나 동생이 아닌 윤재에게 나를. 그래도 우선은 수술이 잘 끝난 게 다행이었다. 얼마 전 엄마가 두 번 연달아 전화를 걸어왔는데 아마 이모 소식을 전하려던 것 같았다.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뒤로 나는 엄마의 전화를 피하고 있었다. 그날도 일이 바쁘니 다음에 전화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은 없었다. 선뜻 색연필을 들지 못하다가 윤재의 글을 다시 읽어봤다. 아까는 급하게 읽느라 놓친 것인지 이번에 유독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윤재는 못 본 척해 온 것을 이젠 제대로 보고 싶다고 썼다. 나는 윤재가 어떤 일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반년 전 그날은 이른 장마가 끝난 직후라 여름 한복판에 들어선 듯 무더웠다. 나는 아침에 윤재에게 불쑥 전화해 만나자고 했다. 윤재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와도 만나서 얘기하자고 대답했다. 그동안 만나왔던 루트를 벗어나 윤재와 새로운 곳에 가보면 좋을 것 같았다. 처음 가는 곳에서 윤재와의 관계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우리는 우선 경복궁역에서 만나 같이 버스를 타기로 했다. 윤재가 잠깐 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한 뒤 오겠다고 해서 나는 십 분 정도를 더 계산해 집을 나섰다. 십 분 정도 늦게 나가면 시간이 딱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한 시간이 지나서도 윤재는 오지 않았다. 경복궁역 앞 잡화점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밖으로 나와 다시 십여 분을 기다렸다. 윤재는 일이 좀 꼬인다며 금방 온다고만 말했다. 금방 온다고 하지 않았다면 어디 카페에라도 가서 기다렸을 텐데 윤재는 곧 도착할 것 같다고 했고 나는 윤재와 새로운 곳에 가려고 했으므로 땡볕을 참았다. 원래 약속했던 시간보다 삼십여 분이 지나서야 윤재가 지하철 역사 안쪽에서 뛰어 올라왔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미안하다고 했는데 왜 늦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느꼈다. 아니, 윤재가 정말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이미 기분이 상해서 윤재가 사과할수록 서운함만 더 커졌다. “뭐 하느라 늦었어?” “미안해.” “왜 늦었는데?” 진짜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다. 윤재는 대답이 없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그게 버스 때문에.” “버스?” “딴생각하다가 정거장을 놓쳐서. 괜히 좀 돌아오느라.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 윤재의 답은 계속 늘어졌고 종종 끊겼다. 둘러댈 말을 찾는 것 같기도 했다. “너 지하철로 왔잖아.” 내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그래도 왔잖아.” 윤재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중간에 갈아탔어. 너무 오래 걸려서.” 말을 마치자마자 입을 다물었고 나를 앞질러서 걸어 나갔다. 윤재가 입은 파란색 티셔츠 위에 등을 따라 흐른 땀자국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그날 가려고 했던 새로운 곳에 가지 않았고 나는 하려던 말을 하지 않았다.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서 늘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시켜 놓고 마주 앉았다. 윤재는 유독 말이 없었고 내가 나서서 평소에 하던 얘기라도 해보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잘되지 않아 곧 일어났다. 그 후로 한동안 윤재와 연락하지 않았다. 뜸하게 업데이트되는 윤재의 SNS 피드를 보며 나는 혼잣말했다. 그냥, 나를 보듯 너를 보며 살아야 했을까. 그날 내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윤재는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윤재의 글을 한 번 더 읽었다. 색연필을 손에 잡고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하얀 종이 위에 윤재의 이름을 썼다. 윤재를 부르고 나니까 쌓여 있던 말들이 술술 풀려 나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대로 모두 적었다. 나만 너무 길게 쓰는 게 아닌지, 내용이 너무 튀는 게 아닌지, 윤재를 난처하게 할 만한 말은 없는지, 신경을 쓰느라 자주 주저했지만 멈췄다가도 다시 적어나갔다. 그동안 못한 이야기들을 모두 적고 나서 추신을 남겼다. - 너의 다음 책이 또 뭘 남길지 궁금해. 색연필을 내려놓고 앞을 봤다. 윤재도 조금씩 손을 움직여 가며 누군가의 책에 메시지를 적고 있었다. 윤재가 잠깐 고개를 들었을 때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어떤 책에 답글을 적고 있는지 윤재가 볼 수 있도록 앞에 놓인 윤재의 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윤재가 쓰던 것을 멈추고 책을 덮었다. 나는 윤재의 책을 두 손으로 잡았다가 내려놓고 민트색 표지 위에 내 손을 포개어 올렸다. 나를 바라보던 윤재의 눈매가 조금씩 휘었다. 윤재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우리가 함께 만든 첫 번째 책이야,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 키가 큰 사람들이 사는 아름다운 요새의 도시 코토르(Kotor) [한ZOOM]

    키가 큰 사람들이 사는 아름다운 요새의 도시 코토르(Kotor) [한ZOOM]

    전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들이 사는 나라는 어디일까? ‘세계 인구 논평’(World Population Review)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192개국 가운데 1위는 ‘네덜란드’가 차지했으며, 이어 ‘몬테네그로’ 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미국’은 47위, ‘한국’은 67위를 차지했다. 두 나라의 순위 차이는 크지만, 키 차이는 남자 1.4cm, 여자 0.1cm로 크지 않았다. 영원히 우리보다 키가 클 것만 같았던 미국인과 우리가 이제는 비슷한 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재미있는 발견이었다.  2위를 차지한 몬테네그로(Montenegro)를 여행해보면 이 나라 사람들의 키가 크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레스토랑이나 호텔 화장실에 가면 변기의 높이가 높았다. 처음에는 그 불편함이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현지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물어보니 변기의 높이가 높은 것은 사실이며, 몬테네그로를 방문하는 한국인들 대부분이 변기 높이로 인한 불편함을 이야기한다고 했다. 키가 우리보다 약 7cm나 큰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변기의 높이가 높은 것은 당연하지만, 키가 약 7cm 작은 우리 입장에서는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검의 산의 의미를 가진 나라, 몬테네그로  몬테네그로는 발칸반도의 아드리아해 연안에 있는 나라다. 동쪽으로는 세르비아, 서쪽으로는 아드리아해, 남쪽으로는 알바니아, 북쪽으로는 보스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몬테네그로’는 ‘검다’의 ‘네그로(Negro)’와 ‘산’의 ‘몬테(Monte)’가 합쳐진 이름으로 ‘검은 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검은 산’은 아름다운 요새의 도시 ‘코토르(Kotor)’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로브첸 산(Mount Lovcen)’을 의미한다.  몬테네그로의 대표적인 관광도시 코토르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 도시이다. 성벽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요새의 웅장함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아름다운 요새의 도시, 코토르  몬테네그로에는 수많은 도시가 있다. 그 중에서 아드리아해 코토르만에 위치한 ‘코토르’(Kotor)’는 작은 도시이지만 자연역사지구와 이 도시를 둘러싼 성벽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중세 해양도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코토르는 아드리아해 연안 코토르 만에 위치한 지리적 이유 때문에 수많은 이민족들의 침입을 받았다. 그래서 동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Justinianus I, 483~565)는 535년 이 도시를 이민족의 침입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요새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불가리아 제국, 세르비아, 베네치아 공화국, 오스만 투르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 수많은 나라들이 이 도시의 주인 자리를 거쳐갔다.  고양이의 천국, 코토르  코토르 중심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차를 마시다가 잠시 화장실에 갔다. 돌아와보니 고양이 한 마리가 자리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고양이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살짝 눈을 떴다가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마시던 차를 포기하고 코토르 거리를 걸었다. 발이 닿는 곳마다 고양이들을 만났다. 관심을 끌기 위해 보스니아에서 산 육포를 내밀었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잠시 냄새만 맡고나서 다시 햇살이 비치는 자리로 돌아가 하품만 해댔다. 코토르는 고양이의 천국이었다. 곳곳에 고양이와 관련된 가게들이 있었다. 심지어 기념품 가게에는 계산대 옆에 고양이 먹이를 위한 모금함이 있었다. 기념품을 계산하면서 점원에게 코토르에 고양이가 많은 이유를 물었다. “오래 전 유럽 전역에 흑사병이 돌아 유럽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죽어 나갔어요. 그때 흑사병을 옮기는 동물이 쥐였어요. 다행히 고양이들이 쥐를 잡아주었어요. 그래서 우리 코토르에서는 고양이를 고마운 동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 고양이들은 코토르 사람들의 보호와 사랑을 받으며 관광객의 자리도 빼앗으며 이 도시의 주인이 된 것이었다. 
  • 은색의 크롭티, 여장남자…日 ‘머리 없는 시신’ 피해자였다

    은색의 크롭티, 여장남자…日 ‘머리 없는 시신’ 피해자였다

    일본 삿포로에서 머리 없는 시신이 발견된 가운데, 피해자가 생전 ‘여장남자’로 활동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31일 일본 뉴스포스트세븐 등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홋카이도 경찰은 지난 24일 사체손괴 및 유기 혐의로 다무라 루나(29·여)와 그의 아버지이자 정신과 의사인 다무라 슈(59)를 체포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일가족이 공모한 사건으로 봤다. 피해자 A씨(62·남)의 절단된 머리로 추정되는 신체 부분은 다무라 가족의 집 화장실에서 발견됐다. 애초 이 사건은 지난 2일 호텔 종업원이 객실에서 머리가 없는 남성의 시신을 발견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를 통해 하루 전인 1일 오후 남성과 함께 입실한 또 다른 인물이 2일 새벽 혼자 여행가방을 들고 호텔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추적해왔다. 경찰은 용의자인 루나의 아버지가 현장 부근까지 차로 마중 나오는 등 범행을 사전 모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그의 어머니도 시신의 절단된 목이 집에 있는 것을 안 것으로 보고, 구체적인 범행 관여 내용을 조사 중이다.“여자인 척 딸 성폭행하고 스토킹”…희생자는 ‘가짜 트랜스젠더’ 경찰에 따르면 지난 5월, 성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던 루나는 관련 행사를 찾아다녔고, 한 클럽에서 A씨를 만났다. 이후 루나가 A씨에게 성폭행을 당하며 갈등이 불거졌다고 현지 언론은 설명했다. 루나의 할아버지는 “루나는 남자를 싫어했다. 루나는 클럽에서 만난 A씨가 여성 옷을 입고 있어서 여자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A씨가) 러브호텔에 데리고 갔고, A씨는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남자로 본색을 드러내더니 루나를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현지 매체는 이 과정에서 A씨가 루나와의 성관계 영상을 촬영했고, 이를 빌미로 루나에게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스토킹(과잉접근행위)했다고 전했다.그렇다면 루나는 왜 경찰에 스토킹을 신고하지 않았을까. 할아버지는 “(A씨가) 더 이상 그러지 않겠다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그러나 A씨는 이 약속을 어기고 루나에게 계속 연락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여장을 좋아하는 A씨는 자주 방문하던 스스키노의 한 클럽에서도 문제를 일으켜 출입이 금지된 유명인이었다”고 부연했다. 언론에 공개된 사진 속 A씨는 은색의 크롭티를 입고 여장으로 변장한 상태였다. 경찰은 “이번 사건 이전에 A씨가 다무라 가족의 집에 난입했고, 슈는 그가 다시 집에 올까 봐 두려워 문 앞에서 식사하며 딸을 보호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 “일본 여행 가서 이런 행동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일본 여행 가서 이런 행동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도쿄 최대 유흥가 가부키초 거리를 배회하는 가출 청소년을 일컫는 ‘토요코 키즈’는 2020년 들어 일본 최대의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들은 조건만남 같은 불법 성매매로 돈을 버는 경우가 많은데 유흥업은 야쿠자 같은 범죄 단체와 연관된 경우가 많아 이들을 도와주면 위험하다는 인식이 생겼다. 실제로 토요코 키즈를 위해 활동하던 남성이 야쿠자에게 피살돼 변사체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여러분들 제발 일본 오셔서 이러지 말아주세요’라며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한 유튜브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긴급상황이라고 판단해 영상을 만들었다는 일본 거주 한국인 유튜버는 일본인 남성 쇼타의 입을 빌려 “신주쿠 클럽 바로 옆은 최근 카부키초 타워가 생겨 한국 관광객들이 특히 많이 오는 곳인데, 토요코 키즈가 모이는 곳과 굉장히 가깝다”라며 “나와보니까 한국인 관광객들이 토요코 키즈한테 말을 걸더라”고 말했다. 쇼타는 “바로 중재에 나서 ‘도대체 왜 말을 거냐’고 물었더니 처음에는 ‘길을 물었다’고 대답하더라. 토요코 키즈인 거 확인하고 무슨 말 했냐고 물어보니까 ‘성관계하자’고 자기들한테 말했었고, 게다가 ‘얼마냐’고까지 물었다더라. 내가 그 한국인 3명한테 정색하면서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풍속점이 있으니 차라리 거기를 가시라. 얘네는 안 된다’고 얘기했다”라고 회상했다.그는 “일본은 미성년자 관련은 엄청 엄하다. (한국인들에게) 내가 이런 정보를 어떻게 얻었냐고 하니까 인터넷에 적혀있다고 대답하더라”며 “그래서 찾아봤더니 누가 여행 플랜을 짜놨는데 어차피 일본 오면 호텔 비용은 들지 않느냐, 그런데 ‘미성년자와 10만원에 잘 수 있음’ 그렇게 쓰여있는 글을 내가 봤다”고 밝혀 충격을 더했다. 한국인 출연자 상짱 역시 “과거 가부키초에서 일했었는데 조언해 드리자면 진짜 죽을 수도 있다. 뉴스에도 나왔던 건데 토요코 키즈는 지하 아이돌, 호스트, 야쿠자에 관련된 아이들이 꽤 많다. 사기도 굉장히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례로 “여러분들이 호텔에 들어갔다 치자. 방에 들어오는 야쿠자들도 있다. ‘너 이거 신고한다?’ ‘신고하기 전에 빨리 돈 내놔’ 하면 그 관광객은 돈도 뜯기고 국격도 낮아지는데 실제로 토요코 키즈한테 손댄 남자들 중 죽은 사람이 꽤 많다. 이건 뉴스 조금만 찾아도 금방 나오는데, 뉴스에 보도되는 것이 일부고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상짱은 “만약 토요코 키즈랑 뭔 짓을 한다면 야쿠자랑 엮였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건 100%”라며 “미성년자가 믿는 것 하나 없이 밤새 길거리에 있을 리가 없지 않냐. 걔네는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는 거다. 한국인 상대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도 경고했다.심각한 사회문제 됐지만 적극적 해결의지 안보여 NHK 역시 지난해 한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을 집중 조명했는데 이 곳에 모인 미성년자 약 100명 정도는 근처 호텔에 몰래 들어가서 잠을 자고, 돈이 없을 때는 노숙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토요코 키즈들이 모인 극장 앞에는 10대 소녀들에게는 말을 거는 남성들이 자주 목격됐다. 한 50대 남성은 혼자 휴대전화를 보며 서 있는 여자 아이들에게 말을 건다며 한화로 10만원 정도면 만남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가출 5개월이 된 15살 소녀는 원조교제를 통해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었다. SNS로 가격을 흥정하고 한번 만남에 20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최근 카부키초 타워가 여자화장실을 없애고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했는데, 토요코 키즈들이 화장실을 호텔 대용으로 사용해 성매매를 일삼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교수이자 사회활동가 유아사 마코토는 NHK에 “위험천만한 곳을 아이들이 유일한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라며 가정이나 학교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이 머물 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종 원조교제인 ‘파파가츠’도 성행하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남성이 젊은 여성과 데이트를 하면서 스폰서 역할을 하는데 이 때 남성들을 ‘아빠’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11살 초등학생 2명은 한 유튜브에 출연해 “파파가츠를 해서 숙박비를 (마련했다)”라고 답해 충격을 안겼다. 가나가와현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 만남사이트에 원조교제를 희망하는 게시물을 올린 게 밝혀져 논란이 됐다. 그러나 일본 당국의 적극적인 해결 의지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타인의 일에 간섭하지 않고 정해진 일만 하려고 하는 일본 사회의 특성상 ‘집으로 돌아갑시다’라고 적힌 전광판 트럭을 신주쿠 주변을 순회하게 하는 수준이다.
  • 비늘 돋는 몸, 잃어버린 말… 경계선 밖으로 밀려난 존재

    비늘 돋는 몸, 잃어버린 말… 경계선 밖으로 밀려난 존재

    “사람들은 손을 뻗어 어디에서 이 세계가 끝나는지를 느낀다. 거기가 내 피부다. 피부는 이 세계를 저 세계와 떼어놓는 막이다.”(99쪽) 피부는 나와 세계를 가르는 경계다. 이 경계 자체가 남들과 다른 이들이 있다.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된다. 소설 주인공 ‘나’는 독일에 거주 중인 일본인 여성이다. 그런데 피부가 ‘비늘’이다. 출근 때 목욕탕 욕조에서 몸을 불린 다음 비늘을 긁어낸다. 동시통역 일을 하는 그에게 어느 날 한 일본 무역 회사의 의뢰가 들어온다. 회사의 독일 파트너를 초대한 모임에서 통역을 하다 갑자기 역함을 느낀다. “사람들은 쓰레기를 쏟아내는 듯하고, 쓰레기를 씹고 삼키고 다시 다른 나라의 말로 다시 토해내야”(33쪽) 하기 때문이다. 구토를 하러 화장실로 가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나 보니 호텔 직원의 방이다. 소설은 초반부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고, 뒤로 갈수록 독자들이 이를 구별할 수 없게 만든다. 주인공이 앞서 설명을 연이어 부정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일인 사진작가 ‘크산더’의 존재가 그렇다. 그는 사진사로 주인공의 사진을 찍다가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그러나 주인공은 중반부에서 크산더가 그에게 처음 독일어를 가르쳐 준 ‘선생님’이라고 말을 바꾸니, 후반부에선 책상과 의자를 만들어 준 ‘목수’라고 설명한다. 주인공은 호텔에서 자신이 먹었던 생선이 자신의 혀를 잡아먹었다고 느낀 뒤로 더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되고 기괴한 일들이 이어진다. 신기하게도 읽을수록 무언가가 명확해진다. 초반부 복선으로 깔아 둔 ‘비늘 짐승’ 설화를 은유로 회수하면서다. ‘몸뚱이로 쉬지 않고 암석을 들이받았던’ 비늘 짐승처럼 주인공, 혹은 비늘이 계속해서 돋아나는 어머니는 맨몸으로 세계와 맞부딪치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나선 이들이다. 비늘 때문에 마을에서 쫓겨난 여자와 이방인 여성으로 일본과 독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겹친다.이쯤에서 독일어와 일본어로 글을 쓰는 저자의 이력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소설이 결국 언어와 몸을 통해 경계에 관해 이야기하려 했음을 알게 된다. 작가의 시선이 번뜩이는 문장들도 독자가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카메라는 부엌칼로 고기를 자르듯 시간을 얄따란 조각으로 저몄다. 이 조각들을 사람들은 손에 쥘 수 있다”(19쪽), “나를 ‘나’(わたし·와타시)라고 불러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왔을 때 나는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나’라는 말은 음절 사이사이에 큰 간격을 두고 조각들로 부서졌다”(32쪽) 등 마치 시공간을 정지시킨 상태에서 들여다본 듯한 표현들이 곱씹을수록 감탄스럽다. 짧은 분량에도 읽기 벅차지만, 그러면서 도무지 끝까지 벗어날 수 없게 하는 힘이 있다. 다 읽고 뒤돌아보니 여전히 안개 속 같아서, 그 속에 혹여 내가 놓친 게 있을까 싶어 다시 읽게 된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의미가 맞나 싶어 다시 안갯속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앞서 출간됐다 절판된 소설을 현 출판사가 판권을 사 10년 만에 복간했다. 당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재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된다. 예전 작품이라도 작가만의 독특한 색을 진하게 느껴 보는 것도 좋겠다.
  • “벗고 있었는데” 호텔 커튼 열었다가 창문 청소부 마주친 中커플

    “벗고 있었는데” 호텔 커튼 열었다가 창문 청소부 마주친 中커플

    중국의 한 호텔방에서 알몸 상태로 무심코 커튼을 열었다가 창문 청소부를 마주치는 봉변을 당했다며 호텔 측에 불만을 제기한 투숙객의 사연이 전해졌다. 24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 6일 수모씨는 여자친구와 함께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 있는 5성급 호텔에 묵었다가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수씨 일행은 당시 1649위안(약 31만원)을 지불하고 강이 내려다보이는 41층 객실을 예약해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두 사람은 옷을 입지 않은 상태로 호텔 방 커튼을 열었다가 화들짝 놀랐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 대신 유리창 청소부가 창문을 닦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씨는 창문 청소 시간을 사전에 알리지 않은 점을 따지며 호텔 측에 사과와 숙박비 환불, 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 호텔 측은 불만 사항을 처리하는 동안 이틀간 더 머물 것을 제안했고, 수씨 일행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수씨는 “이틀이 지난 후에도 호텔 측에서 찾아오지 않았고, 추가 숙박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고 주장했다.호텔 측 관계자는 “날씨처럼 통제할 수 없는 요인 때문에 창문 청소 시간을 정확하게 알리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투숙객들이 몇 시에 잘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든 투숙객들에게 창문 청소 시간을 사전에 알릴 수 없다”면서 “추후엔 창문 청소 공지를 각 방에 붙여 놓겠다”고 덧붙였다. 중국 네티즌들은 호텔 측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창문 청소부도 당황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나타냈다. 한 네티즌은 “수씨 일행보다는 창문 청소부가 충격 받았을 것”이라고 농담조로 말했고, 다른 네티즌은 “창문 청소부는 몸을 피할 곳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3일에는 한 여배우가 베이징의 한 고급 호텔에 묵었다가 화장실에 3시간 동안 갇혀 있었다는 경험을 털어놔 논란이 되기도 했다.
  • “숙소에 ‘불법촬영카메라’ 있나 불안해요”…승무원이 알려준 확인법

    “숙소에 ‘불법촬영카메라’ 있나 불안해요”…승무원이 알려준 확인법

    코로나19의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 전환) 전환과 함께 해외여행 수요가 늘어난 가운데 혹시라도 여행지 숙소에 있을지 모르는 불법촬영카메라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한 승무원이 ‘꿀팁’을 공유했다. 21일(한국시간) 영국의 매체 더 미러에 따르면 한 현직 승무원이 밝힌 불법촬영카메라를 찾아내는 손쉬운 방법을 공개했다. 먼저 육안으로 화장실내 청소비품이나 장식물을 확인한다. 또 호텔 내 와이파이를 확인한다. 이상하고 긴 와이파이가 있을 경우 의심해봐야 한다. 특히 가장 민감할 수 있는 장소인 화장실 거울을 잘 살펴봐야 한다. 화장실 거울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거울에 비치는 상을 관찰하자. 만약 손가락과 반사된 상 사이에 약간의 간격이 생긴다면 정상적인 거울이다. 그런데 만약 손가락과 거울에 비친 상이 딱 붙어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손가락 보다는 손톱을 댔을 때 구별이 더 쉽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는 방송에도 소개됐던 방법인데, 만약 이중 거울형 불법촬영카메라라면 어느 각도에서든 손가락 사이의 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스마트폰의 플래시를 이용하는 것도 유용하다. 불법촬영카메라의 렌즈는 빛을 반사한다. 이에 조명을 끄고 커튼을 친 다음 플래시를 비춰보면 반사되는 빛을 통해 렌즈를 찾아낼 수 있다. 렌즈와 플래시의 빛이 직각을 이룰 때 반사광이 잘 보이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스마트폰의 기본 카메라를 이용해 불법촬영카메라를 찾을 수도 있다. 어둠 속을 촬영하는 불법촬영카메라는 적외선을 사용하는데 사람의 눈은 이를 볼 수 없지만, 스마트폰 카메라는 이를 포착해낸다. 한 보안 전문가는 “어둠 속을 촬영할 때 적외선 광원은 화면에 깜박이는 점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또 “스마트폰의 기본 카메라는 간혹 적외선 필터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전면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이 더 좋다”고 조언했다.숙박 예약 서비스업체 야놀자가 20~30대 남녀(남자 150명, 여자 150명)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약 94%가 중소형 숙박업소를 이용할 때 불법촬영카메라 등 사생활 침해를 걱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불법촬영카메라가 가장 많이 설치돼 있을 것 같은 곳으로 거울(77.33%), 벽면(65.67%), 화장실(57.33%), PC(51%)를 꼽았다. 한편 경찰청에 따르면 숙박업소에 불법촬영카메라를 설치해 촬영했을 경우 카메라등 이용촬영죄로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 조금 더 몸 만들어요…맘껏 뽐낼 해변이 기다려요

    조금 더 몸 만들어요…맘껏 뽐낼 해변이 기다려요

    여행지에 대한 정보보다 여행 준비를 위한 정보가 더 중요한 시기다. 코로나19 시대라 그렇다. 우리도, 상대국도 감염병 정책이 널뛰듯 급변한다. 그러니 바깥 나라를 돌아보려면 발빠른 적응이 필수다. 변화무쌍한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만이 코로나 시대의 유일한 여행법인 셈이다. 얼마 전 다녀온 태국 푸껫에서도 그랬다. 애초 태국행을 결정했을 때는 한국도, 태국도 해외 입국자 무격리였다. 한데 출장을 코앞에 두고 오미크론이 불거졌다. 10일 격리로 돌아선 우리 정부와 달리, 태국은 ‘테스트 앤드 고’ 정책을 고수했다. 유전자증폭(PCR) 검사에서 음성이 확인되면 제한 없이 여행할 수 있게 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제 태국도 7일 격리로 돌아섰다. 태국 정부는 21일 ‘테스트 앤드 고’를 유보하고 ‘샌드박스’ 제도를 다시 적용한다고 밝혔다. 샌드박스는 지정 장소에서 일정 기간(7일)을 보내면 격리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앞서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한 푸껫이 이번에도 샌드박스 지역으로 재지정됐다.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8%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이 중요한 나라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여행지 조사에서 늘 선두권을 유지할 만큼 가까운 나라이기도 하다. 국민 대다수에게 관광이 필수 먹거리인 만큼 격리 정책에 대한 해제 압박 역시 우리보다 거셀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당분간은 보다 꼼꼼한 여행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충’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준비해 갈 필수 서류는 코로나백신예방접종증명서, 영문 PCR 음성 확인서다. 예방접종증명서는 주민센터 등에서 무료로 발급해 준다. 영문 PCR 음성 확인서는 선별검사소가 있는 큰 병원에서 발급해 준다. 검사 방식은 우리도, 태국도 신속(RT) PCR이다. 발급 수수료는 15만원 안팎이다. 본인 이름과 한국 주소의 영문 표기가 서류마다 일치하는지 신경 써야 하고, 현지 숙소 주소 등도 꼼꼼하게 표기하는 게 좋다. 푸껫행 직항편 탑승 시간을 기준으로 72시간 전에 발급된 RT PCR 음성확인서만 유효하다. 방콕행이 아닌 푸껫행 직항편이란 것에 유의해야 한다. 방콕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푸껫으로 가는 직항편은 아직 재개되지 않았다. 예전처럼 싱가포르를 경유해 가는 것이 대안이 될 듯하다.태국에 도착하면 곧바로 PCR 검사를 받는다. ‘테스트 앤드 고’ 때는 공항 외부 병원에서 드라이브스루 방식으로 검사를 받았다. 이 정책이 복원되기 전까지는 공항에서 검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6시간 정도 걸린다. 음성이 확인돼야 비로소 숙소의 방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모차나(Morchana) 앱도 설치해야 한다. 우리의 쿠브(COOV) 비슷한 백신 패스다. 푸껫 경계의 검문소 등에서 이 앱이나 백신접종증명서를 요구할 때도 있다. 태국 내 PCR 검사는 2회다. 도착 즉시 받고, 출국 72시간 전에 또 한 번 받는다. ‘에어텔’ 상품처럼 숙박과 PCR 검사를 합한 상품도 있다. 예를 들어 페닌슐라 방콕 호텔에 투숙할 경우 검사비용은 2400밧(약 8만 5000원)이다. 3900밧(약 14만원)에서 할인된 가격이다. 다른 호텔들도 2000~3000밧 선에서 PCR 검사를 진행해 준다.모든 여행자가 만들어야 했던 ‘타일랜드 패스’는 일시 중단됐다. 이미 패스를 받은 여행자에게만 한시적으로 무격리 입국을 허용할 예정이다. 코로나 여행자보험, 푸껫 샌드박스 전용 입국허가서(COE)도 필수다. 자세한 내용은 태국관광청 누리집(www.visitthailand.or.kr)에서 확인하는 게 좋겠다. 이제 여행지를 말할 차례다. 태국 사람들에게 푸껫은 우리의 제주와 같은 곳이다. 누구나 가고 싶어 해도, 높은 물가 때문에 누구도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요즘 푸껫은 다시 태국 사람들의 천국이 됐다. 물가도 내려갔고, 외국 여행객 숫자도 확 줄었다. 특히 소란과 무례의 대명사인 중국 관광객이 사라진 것에 만족해하는 눈치다. 푸껫 여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사멧낭시다. 팡아만 일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풍경의 언덕’이다. 단순한 전망대를 넘어 ‘답답증’에 걸릴 듯한 시야를 뻥 뚫어 주고 방문객의 심상을 음유시인처럼 만들어 주는 놀라운 곳이다. 행정구역은 짱왓팡아다. 우리 식으로는 팡아도(道)쯤 되려나. 한데 방문객 대부분은 짱왓푸껫에서 온다. 사실상 푸껫과 가깝다는 뜻이다. 현지인의 발음을 우리 식으로 표기하면 ‘사메드 나~앙 시’에 가깝다. 태국관광청의 공식 표기 역시 ‘Samed Nang Chee’다. 한데 구글 지도나 현지인 사이에선 ‘Samet Nang Che’로 표기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여명의 사멧낭시를 ‘영접’하려면 푸껫에서 늦어도 새벽 5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현지 여행업체에선 ‘푸껫에서 30분 거리’라고 호언장담하지만, 이 시간 안에 닿으려면 ‘목숨 걸고’ 달려야 한다. 푸껫 중심부 숙소에선 승용차로 최소 1시간 30분, 푸껫 중북부에서도 1시간 정도는 잡아야 한다. 입구에서 정상까지는 1㎞ 정도. 돈을 내더라도 가급적 사륜 지프차로 오르길 권한다. 제법 된비알이어서 걸어서 오르면 이후 일정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사멧낭시로 가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섬이 있다. 돌올하게 솟구친 기상이 어디서 보든 사뭇 당당하다. 현지인이 전해준 전설에 따르면 이 바위 섬은 젊은 남자 스님이 변한 것이다. 전설이 그럴싸해지려면 상대가 있어야 할 터. 이 스님을 만나러 가는 여성 보살이 또 한 명의 주인공이다. 한데 스님이 있는 곳까지 가는 게 문제였다. 맹그로브 숲을 넘고, 팡아만의 물길을 헤치려면 치맛단을 걷어야 했다. 바로 이 장면, 그러니까 치맛단을 걷어 올린 여성 보살의 모습이 바로 사멧낭시다. 전망대 정상에 오르면 팡아만 일대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베트남 할롱베이처럼 대부분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다. 사멧낭시는 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사이에서도 해돋이 명소로 급격히 발돋움하는 중이다. 캠핑을 하며 은하수를 촬영하는 이들도 많다. 은하수가 흐르는 어두운 밤을 지나 해가 뜨는 새벽까지, 사멧낭시엔 늘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캠핑을 원할 경우 주민에게 텐트를 대여할 수 있다. 긴팔원숭이 재활센터(Gibbon Rehabilitation Project의 약자인 GRP로 불린다)도 깊은 인상을 받은 곳 중 하나다. 요즘 태국에서 활발하게 확산되고 있는 동물권에 대한 각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GRP는 일부 활동가들이 인간과의 경쟁에서 상처받은 긴팔원숭이를 돌보는 곳이다. 이 센터에서만 30년 동안 350마리가 넘는 긴팔원숭이를 구조했다고 한다. 긴팔원숭이는 야생의 곡예사다. 시속 60㎞의 속도로 나무 사이를 오갈 수 있다. 타고난 성악가이기도 하다. 보통 가족 단위로 사는데, 영역을 방어하기 위해 고음의 소리를 낸다.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선율 덕에 태국 사람들은 긴팔원숭이를 ‘숲의 여왕’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서식지가 파괴되고 밀렵이 성행하면서 멸종 위기까지 내몰렸다.GRP에서 생활하는 긴팔원숭이들은 한때 인간들의 노리개였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녀석도 있고, 음식점이나 절집 등의 호객 행위에 동원된 녀석도 있다. 어릴 때는 그나마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만, 힘이 세지고 공격적인 나이가 되면 그냥 버려진다. 야생의 생존 방식을 미처 배우지 못한 채 말이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GRP엔 긴팔원숭이 15마리가 살고 있다. 원래 14마리였으나, 최근 구조된 ‘새미’가 합류하면서 수가 늘었다. 이들은 대부분 유무형의 상처를 안고 있다. 실명과 백내장에 시달리고, 손과 발이 절단된 녀석도 있다. 이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GRP에 머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짝에 적응한 몇몇 개체만 야생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GRP에서 300m 정도 올라가면 방패 폭포가 나온다. 이 공원의 유래가 된 유명한 폭포다. 가볍게 산책 삼아 다녀올 만하다. GRP 인근의 무슬림 마을에선 고무농장, 파인애플 따기, 염색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태국도 우리처럼 마을 단위에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내놓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파통 중심부의 방라로드는 푸껫에서 가장 현란한 밤 풍경을 선보이는 곳이다. 출입구 쪽에서 체온을 재고 입장할 수 있다. 주말 무렵엔 관광객들로 북적대지만 평일엔 예전 활기를 되찾지 못한 분위기다. 카타, 카론 등 유명 해변들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다만 ‘해방구’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선지, 외국 관광객 대부분은 관광지 내부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마스크를 쓰는 태국인들과 비교되는 장면이다.코랄섬은 찰롱 부두에서 스피드 보트로 10분 남짓 걸리는 섬이다. 거리가 가까워 시간이 많지 않은 여행자에게 제격이다. 푸껫 일대의 다른 섬처럼 스노클링, 투명 카약 등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해변은 텅 비었다. 태국인과 몇몇 외국 관광객들이 그 너른 해변을 독차지하고 있다. 자연 회복 등을 이유로 문을 닫았던 크라비의 마야 비치는 내년 초 열릴 예정이다.푸껫 올드타운은 뜻밖에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중국과 포르투갈 양식이 결합된 치노 포르투기스(Chino Portuguese) 양식의 건물 등 독특한 건물들이 많다. 푸껫 올드타운은 1800~1900년대 주석 채굴 황금기에 형성된 마을이다. 노다지를 찾아 태국으로 이주해 온 중국인, 말레이시아인들이 모여 산다. 푸껫 올드타운이 말레이시아 이포, 페낭 등의 올드타운과 판박이처럼 닮은 건 이 때문이다. 푸껫 올드타운의 주민 역시 대부분이 중국계다. 중국 이민자의 후손은 바바()라고 부른다. 이들은 태국인으로 살지만 바바로서의 정체성도 잊지 않는다. 미국 배우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가 영화 ‘비치’(2000) 촬영 당시 묵었던 앙앙(on on) 호텔 화장실처럼, 지금도 오래된 건물의 화장실 벽엔 남자는 바바, 여자는 뇨냐(娘惹)라고 적혀 있는 걸 볼 수 있다.고풍스런 건물 일부엔 그래피티도 그려져 있다. 가장 유명한 건 태국 예술가 앨릭스 페이(파타폴 탱루엔)가 그린 ‘빨간 거북이 마디’다. 중국인의 ‘최애’ 색인 빨간색 등껍질을 이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의 다른 작품처럼 주인공 이마에 세 번째 눈이 달린 것이 특징이다. 태국의 존경받는 왕 라마 9세의 벽화도 있다. 그를 구름 위의 존재로 표현했다. 태국인들이 그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방콕에 왕궁-새벽사원 코스가 있다면, 푸껫엔 빅부다 왓찰롱 코스가 있다. 빅부다는 이름처럼 높이 45m의 거대한 불상이 있는 곳이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아 전망도 훌륭하다. 왓찰롱은 푸껫을 대표하는 사원이다. 다양한 형태의 불교 전각들을 만날 수 있다. [여행수첩] -우리나라 여행객 대부분이 한번은 들렀을 파통의 쇼핑몰 정실론은 아직도 폐쇄 중이다. 푸껫 시내의 로빈슨 백화점은 문을 열었다. 귀국 선물 등을 살 수 있다. -숙박업체들은 코로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해변과 바짝 붙은 몇몇 리조트는 성수기의 투숙률을 회복해 가는 듯하다. 다만 가격은 여전히 낮게 형성돼 있다. 30만~40만원대의 고급 리조트들도 20만원 대에 묵을 수 있다. 외국 관광객은 태국 정부가 인증한 코로나 안심 마크 ‘SHA+(플러스)’를 획득한 숙소에서만 묵을 수 있다. 대부분 숙박업체들이 인증 마크를 받긴 했지만 가급적 대형 리조트에 묵길 권한다. 푸껫 시내 인터콘티넨털 호텔, 센타라 리조트, 카타타니 리조트 등이 ‘SHA+’급 숙소들이다. 다들 해변을 끼고 있는 고급 리조트이다. 푸껫 공항 위에 있는 살라푸껫 호텔도 권할 만하다. 푸껫 시내에서 30~40분 떨어진 북부에 있는데, 그만큼 한적해서 좋다. 호텔 앞 너른 해변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시야를 가리는 섬도 없다. 이 분위기엔 팝송 ‘워터 이즈 와이드’가 딱일 듯하다. -원춘(One Chun) 레스토랑은 꼭 들르길 권한다. 메뉴 하나하나 흠잡을 데 없는 맛을 선사한다. 푸껫 올드타운 초입에 있어 찾기는 쉽지만 주차 공간은 없다.
  • 조금 더 마음 달래요, 눈이 부신 절경이 있잖아요

    조금 더 마음 달래요, 눈이 부신 절경이 있잖아요

    여행지에 대한 정보보다 여행 준비를 위한 정보가 더 중요한 시기다. 코로나19 시대라 그렇다. 우리도, 상대국도 감염병 정책이 널뛰듯 급변한다. 그러니 바깥 나라를 돌아보려면 발빠른 적응이 필수다. 변화무쌍한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만이 코로나 시대의 유일한 여행법인 셈이다. 얼마 전 다녀온 태국 푸껫에서도 그랬다. 애초 태국행을 결정했을 때는 한국도, 태국도 해외 입국자 무격리였다. 한데 출장을 코앞에 두고 오미크론이 불거졌다. 10일 격리로 돌아선 우리 정부와 달리, 태국은 ‘테스트 앤드 고’ 정책을 고수했다. 유전자증폭(PCR) 검사에서 음성이 확인되면 제한 없이 여행할 수 있게 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제 태국도 7일 격리로 돌아섰다. 태국 정부는 21일 ‘테스트 앤드 고’를 유보하고 ‘샌드박스’ 제도를 다시 적용한다고 밝혔다. 샌드박스는 지정 장소에서 일정 기간(7일)을 보내면 격리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앞서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한 푸껫이 이번에도 샌드박스 지역으로 재지정됐다.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8%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이 중요한 나라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여행지 조사에서 늘 선두권을 유지할 만큼 가까운 나라이기도 하다. 국민 대다수에게 관광이 필수 먹거리인 만큼 격리 정책에 대한 해제 압박 역시 우리보다 거셀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당분간은 보다 꼼꼼한 여행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충’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준비해 갈 필수 서류는 코로나백신예방접종증명서, 영문 PCR 음성 확인서다. 예방접종증명서는 주민센터 등에서 무료로 발급해 준다. 영문 PCR 음성 확인서는 선별검사소가 있는 큰 병원에서 발급해 준다. 검사 방식은 우리도, 태국도 신속(RT) PCR이다. 발급 수수료는 15만원 안팎이다. 본인 이름과 한국 주소의 영문 표기가 서류마다 일치하는지 신경 써야 하고, 현지 숙소 주소 등도 꼼꼼하게 표기하는 게 좋다. 푸껫행 직항편 탑승 시간을 기준으로 72시간 전에 발급된 RT PCR 음성확인서만 유효하다. 방콕행이 아닌 푸껫행 직항편이란 것에 유의해야 한다. 방콕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푸껫으로 가는 직항편은 아직 재개되지 않았다. 예전처럼 싱가포르를 경유해 가는 것이 대안이 될 듯하다.태국에 도착하면 곧바로 PCR 검사를 받는다. ‘테스트 앤드 고’ 때는 공항 외부 병원에서 드라이브스루 방식으로 검사를 받았다. 이 정책이 복원되기 전까지는 공항에서 검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6시간 정도 걸린다. 음성이 확인돼야 비로소 숙소의 방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모차나(Morchana) 앱도 설치해야 한다. 우리의 쿠브(COOV) 비슷한 백신 패스다. 푸껫 경계의 검문소 등에서 이 앱이나 백신접종증명서를 요구할 때도 있다. 태국 내 PCR 검사는 2회다. 도착 즉시 받고, 출국 72시간 전에 또 한 번 받는다. ‘에어텔’ 상품처럼 숙박과 PCR 검사를 합한 상품도 있다. 예를 들어 페닌슐라 방콕 호텔에 투숙할 경우 검사비용은 2400밧(약 8만 5000원)이다. 3900밧(약 14만원)에서 할인된 가격이다. 다른 호텔들도 2000~3000밧 선에서 PCR 검사를 진행해 준다.모든 여행자가 만들어야 했던 ‘타일랜드 패스’는 일시 중단됐다. 이미 패스를 받은 여행자에게만 한시적으로 무격리 입국을 허용할 예정이다. 코로나 여행자보험, 푸껫 샌드박스 전용 입국허가서(COE)도 필수다. 자세한 내용은 태국관광청 누리집(www.visitthailand.or.kr)에서 확인하는 게 좋겠다. 이제 여행지를 말할 차례다. 태국 사람들에게 푸껫은 우리의 제주와 같은 곳이다. 누구나 가고 싶어 해도, 높은 물가 때문에 누구도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요즘 푸껫은 다시 태국 사람들의 천국이 됐다. 물가도 내려갔고, 외국 여행객 숫자도 확 줄었다. 특히 소란과 무례의 대명사인 중국 관광객이 사라진 것에 만족해하는 눈치다. 푸껫 여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사멧낭시다. 팡아만 일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풍경의 언덕’이다. 단순한 전망대를 넘어 ‘답답증’에 걸릴 듯한 시야를 뻥 뚫어 주고 방문객의 심상을 음유시인처럼 만들어 주는 놀라운 곳이다. 행정구역은 짱왓팡아다. 우리 식으로는 팡아도(道)쯤 되려나. 한데 방문객 대부분은 짱왓푸껫에서 온다. 사실상 푸껫과 가깝다는 뜻이다. 현지인의 발음을 우리 식으로 표기하면 ‘사메드 나~앙 시’에 가깝다. 태국관광청의 공식 표기 역시 ‘Samed Nang Chee’다. 한데 구글 지도나 현지인 사이에선 ‘Samet Nang Che’로 표기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여명의 사멧낭시를 ‘영접’하려면 푸껫에서 늦어도 새벽 5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현지 여행업체에선 ‘푸껫에서 30분 거리’라고 호언장담하지만, 이 시간 안에 닿으려면 ‘목숨 걸고’ 달려야 한다. 푸껫 중심부 숙소에선 승용차로 최소 1시간 30분, 푸껫 중북부에서도 1시간 정도는 잡아야 한다. 입구에서 정상까지는 1㎞ 정도. 돈을 내더라도 가급적 사륜 지프차로 오르길 권한다. 제법 된비알이어서 걸어서 오르면 이후 일정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사멧낭시로 가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섬이 있다. 돌올하게 솟구친 기상이 어디서 보든 사뭇 당당하다. 현지인이 전해준 전설에 따르면 이 바위 섬은 젊은 남자 스님이 변한 것이다. 전설이 그럴싸해지려면 상대가 있어야 할 터. 이 스님을 만나러 가는 여성 보살이 또 한 명의 주인공이다. 한데 스님이 있는 곳까지 가는 게 문제였다. 맹그로브 숲을 넘고, 팡아만의 물길을 헤치려면 치맛단을 걷어야 했다. 바로 이 장면, 그러니까 치맛단을 걷어 올린 여성 보살의 모습이 바로 사멧낭시다. 전망대 정상에 오르면 팡아만 일대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베트남 할롱베이처럼 대부분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다. 사멧낭시는 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사이에서도 해돋이 명소로 급격히 발돋움하는 중이다. 캠핑을 하며 은하수를 촬영하는 이들도 많다. 은하수가 흐르는 어두운 밤을 지나 해가 뜨는 새벽까지, 사멧낭시엔 늘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캠핑을 원할 경우 주민에게 텐트를 대여할 수 있다. 긴팔원숭이 재활센터(Gibbon Rehabilitation Project의 약자인 GRP로 불린다)도 깊은 인상을 받은 곳 중 하나다. 요즘 태국에서 활발하게 확산되고 있는 동물권에 대한 각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GRP는 일부 활동가들이 인간과의 경쟁에서 상처받은 긴팔원숭이를 돌보는 곳이다. 이 센터에서만 30년 동안 350마리가 넘는 긴팔원숭이를 구조했다고 한다. 긴팔원숭이는 야생의 곡예사다. 시속 60㎞의 속도로 나무 사이를 오갈 수 있다. 타고난 성악가이기도 하다. 보통 가족 단위로 사는데, 영역을 방어하기 위해 고음의 소리를 낸다.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선율 덕에 태국 사람들은 긴팔원숭이를 ‘숲의 여왕’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서식지가 파괴되고 밀렵이 성행하면서 멸종 위기까지 내몰렸다.GRP에서 생활하는 긴팔원숭이들은 한때 인간들의 노리개였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녀석도 있고, 음식점이나 절집 등의 호객 행위에 동원된 녀석도 있다. 어릴 때는 그나마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만, 힘이 세지고 공격적인 나이가 되면 그냥 버려진다. 야생의 생존 방식을 미처 배우지 못한 채 말이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GRP엔 긴팔원숭이 15마리가 살고 있다. 원래 14마리였으나, 최근 구조된 ‘새미’가 합류하면서 수가 늘었다. 이들은 대부분 유무형의 상처를 안고 있다. 실명과 백내장에 시달리고, 손과 발이 절단된 녀석도 있다. 이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GRP에 머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짝에 적응한 몇몇 개체만 야생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GRP에서 300m 정도 올라가면 방패 폭포가 나온다. 이 공원의 유래가 된 유명한 폭포다. 가볍게 산책 삼아 다녀올 만하다. GRP 인근의 무슬림 마을에선 고무농장, 파인애플 따기, 염색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태국도 우리처럼 마을 단위에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내놓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파통 중심부의 방라로드는 푸껫에서 가장 현란한 밤 풍경을 선보이는 곳이다. 출입구 쪽에서 체온을 재고 입장할 수 있다. 주말 무렵엔 관광객들로 북적대지만 평일엔 예전 활기를 되찾지 못한 분위기다. 카타, 카론 등 유명 해변들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다만 ‘해방구’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선지, 외국 관광객 대부분은 관광지 내부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마스크를 쓰는 태국인들과 비교되는 장면이다.코랄섬은 찰롱 부두에서 스피드 보트로 10분 남짓 걸리는 섬이다. 거리가 가까워 시간이 많지 않은 여행자에게 제격이다. 푸껫 일대의 다른 섬처럼 스노클링, 투명 카약 등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해변은 텅 비었다. 태국인과 몇몇 외국 관광객들이 그 너른 해변을 독차지하고 있다. 자연 회복 등을 이유로 문을 닫았던 크라비의 마야 비치는 내년 초 열릴 예정이다.푸껫 올드타운은 뜻밖에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중국과 포르투갈 양식이 결합된 치노 포르투기스(Chino Portuguese) 양식의 건물 등 독특한 건물들이 많다. 푸껫 올드타운은 1800~1900년대 주석 채굴 황금기에 형성된 마을이다. 노다지를 찾아 태국으로 이주해 온 중국인, 말레이시아인들이 모여 산다. 푸껫 올드타운이 말레이시아 이포, 페낭 등의 올드타운과 판박이처럼 닮은 건 이 때문이다. 푸껫 올드타운의 주민 역시 대부분이 중국계다. 중국 이민자의 후손은 바바()라고 부른다. 이들은 태국인으로 살지만 바바로서의 정체성도 잊지 않는다. 미국 배우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가 영화 ‘비치’(2000) 촬영 당시 묵었던 앙앙(on on) 호텔 화장실처럼, 지금도 오래된 건물의 화장실 벽엔 남자는 바바, 여자는 뇨냐(娘惹)라고 적혀 있는 걸 볼 수 있다.고풍스런 건물 일부엔 그래피티도 그려져 있다. 가장 유명한 건 태국 예술가 앨릭스 페이(파타폴 탱루엔)가 그린 ‘빨간 거북이 마디’다. 중국인의 ‘최애’ 색인 빨간색 등껍질을 이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의 다른 작품처럼 주인공 이마에 세 번째 눈이 달린 것이 특징이다. 태국의 존경받는 왕 라마 9세의 벽화도 있다. 그를 구름 위의 존재로 표현했다. 태국인들이 그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방콕에 왕궁-새벽사원 코스가 있다면, 푸껫엔 빅부다 왓찰롱 코스가 있다. 빅부다는 이름처럼 높이 45m의 거대한 불상이 있는 곳이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아 전망도 훌륭하다. 왓찰롱은 푸껫을 대표하는 사원이다. 다양한 형태의 불교 전각들을 만날 수 있다. [여행수첩] -우리나라 여행객 대부분이 한번은 들렀을 파통의 쇼핑몰 정실론은 아직도 폐쇄 중이다. 푸껫 시내의 로빈슨 백화점은 문을 열었다. 귀국 선물 등을 살 수 있다. -숙박업체들은 코로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해변과 바짝 붙은 몇몇 리조트는 성수기의 투숙률을 회복해 가는 듯하다. 다만 가격은 여전히 낮게 형성돼 있다. 30만~40만원대의 고급 리조트들도 20만원 대에 묵을 수 있다. 외국 관광객은 태국 정부가 인증한 코로나 안심 마크 ‘SHA+(플러스)’를 획득한 숙소에서만 묵을 수 있다. 대부분 숙박업체들이 인증 마크를 받긴 했지만 가급적 대형 리조트에 묵길 권한다. 푸껫 시내 인터콘티넨털 호텔, 센타라 리조트, 카타타니 리조트 등이 ‘SHA+’급 숙소들이다. 다들 해변을 끼고 있는 고급 리조트이다. 푸껫 공항 위에 있는 살라푸껫 호텔도 권할 만하다. 푸껫 시내에서 30~40분 떨어진 북부에 있는데, 그만큼 한적해서 좋다. 호텔 앞 너른 해변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시야를 가리는 섬도 없다. 이 분위기엔 팝송 ‘워터 이즈 와이드’가 딱일 듯하다. -원춘(One Chun) 레스토랑은 꼭 들르길 권한다. 메뉴 하나하나 흠잡을 데 없는 맛을 선사한다. 푸껫 올드타운 초입에 있어 찾기는 쉽지만 주차 공간은 없다.
  • 여친 살해 美 부동산 재벌 종신형 선고 이틀 만에 코로나19로 입원

    여친 살해 美 부동산 재벌 종신형 선고 이틀 만에 코로나19로 입원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사실을 경찰에게 털어놓을까봐 범죄작가인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미국의 78세 부동산 재벌이 선고 이틀 만에 코로나19로 입원했다. 9·11 테러 공격에 무너진 세계무역센터(WTC) 건물 등을 소유했던 뉴욕의 부동산 회사 ‘더스트 오가니제이션’ 설립자인 조지프 더스트의 손자인 로버트 더스트는 39년 동안 3개 주에서 아내와 친구 등 세 사람을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으면서도 법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다 지난 14일(이하 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 공항 재판소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그런데 그의 법률 대리인 딕 드게린이 16일 LA 타임스에 “그렇잖아도 수많은 건강 문제를 안고 있던 그가 지금은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내가 그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나빠진 것처럼 보였다”고 털어놓았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 그가 어느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더스트는 2000년에 오랜 친구이며 범죄작가인 수전 버먼(당시 55세)을 살해한 혐의로 죽지 않는 한 감옥을 나오기 어렵게 됐다. 검찰은 이날 그를 가리켜 “자아도취형 사이코패스”라고 했다. 그는 두 가지 혐의가 더 남아 있다. 1982년 뉴욕에서 의대생 아내 캐슬린 매코맥 더스트(당시 28세)가 실종된 것이 그의 소행이 아닌가 의심된다. 버먼을 살해한 것도 캐슬린 살해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버먼은 범죄작가로서 자신의 무죄를 변론했는데 LA 자택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됐다. 검찰은 더스트가 캐슬린 살해 사건의 은폐를 도왔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았다는 이유로 버먼을 살해했다고 봤다. 뿐만 아니라 2001년 텍사스주에서 도피 생활 중 자신의 신원을 알아낸 이웃 모리스 블랙의 목숨까지 빼앗았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더스트는 블랙의 시신을 토막 내 바다에 버린 혐의로 기소돼 혐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몸싸움 중 벌어진 정당방위라는 사실이 법원에 받아들여져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해 증거를 인멸한 혐의만 유죄 판결을 받았다. 아내 캐슬린 살해 혐의는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기소를 면했다. 이에 캐슬린의 유족들은 뉴욕 웨스트 체스터 카운티 검찰에 재수사를 요청했다. 더스트는 2015년 HBO에서 방영된 범죄 다큐멘터리 ‘더 징크스: 로버트 더스트의 삶과 죽음들’ 촬영을 마친 뒤 화장실에서 혼잣말로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물론 그들을 다 죽여버렸지”라고 내뱉었다. 당시 마이크가 켜진 것을 몰랐던 탓이었다. 검찰은 이를 자백으로 봤다. 마지막 편이 방영되기 몇 시간 전에 그는 뉴올리언스의 호텔에 숨어 있다가 체포됐다.
  • “1박 2500만원” 바흐 숙소…골판지침대 선수들과 딴판[김유민의돋보기]

    “1박 2500만원” 바흐 숙소…골판지침대 선수들과 딴판[김유민의돋보기]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도쿄올림픽 선수촌의 열악한 환경이 연일 논란인 가운데, 정작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토마스 바흐는 일본 정부의 지원으로 호화생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주간현대는 최근 특집 기사를 통해 “도쿄 올림픽이 IOC 귀족들의 놀이터로 변하는 것 같다”며 바흐의 호화생활을 집중조명했다. 바흐가 현재 묵고 있는 곳은 도쿄 중심부에 있는 오쿠라 도쿄의 임페리얼 스위트룸으로 1박에 250만엔, 한국 돈으로 2500만원에 달한다. 숙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내 가구도 모두 IOC 측에서 가져온 것으로 바꾸고, 요리사도 외국에서 초빙했다. 이와 관련 오쿠라호텔은 손님의 개인정보라며 별도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IOC 규정에 따르면 바흐 측에서 지불해야 하는 상한선은 최대 1박에 4만4000엔(44만원) 수준이기 때문에 나머지 금액은 일본 측이 지불하고 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에 따르면 올해 3월 경비는 1조6440억엔(16조 4400억원)이며 이 가운데 IOC 간부들의 접대비를 포함한 대회운영비가 7310억엔(7조 3100억원)이나 된다. 호화 접대의 피해는 고스란히 일본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이다.세계 최고의 선수들 모아놓고 골판지침대 자며 손빨래 현실정작 중요한 선수촌은 서구인의 체형에 맞지 않는 화장실, 골판지 침대, 빨래를 맡기고 찾을 때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하는 등 연일 애로 사항이 발생하고 있다. 16개 건물 숙소에 세탁실은 겨우 3개 뿐이고, 그마저도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세탁물 분실 소동을 겪기도 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선수촌 투숙객들은 여유 있게 비치된 세탁기와 건조기에서 빨래를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선수촌에 세탁기 200대, 건조기 400대가 설치돼 매일 10만 벌 이상을 세탁할 수 있었다. 미국 럭비 대표팀 선수 코디 멜피는 세탁물을 되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세탁물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럼 직접 하면 된다”면서 직접 욕조에 옷을 넣고 발로 밟아 세탁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올렸다. 같은팀 일로나 마허는 자신의 틱톡에 “선수촌 식당의 플라스틱, 젓가락 등 식기류 분리수거가 너무 세분화돼 있다”며 관련 영상을 올렸다. 선수촌의 실상을 담은 영상들은 공개 며칠 만에 조회수 140만회 이상을 기록했고, WP는 옷을 밟아 세탁하는 선수의 모습에 대해 “포도주를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무더운 날씨에 각국을 대표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선수들은 정작 푸대접을 받으며 경기에 임하고 있다. “지금껏 가장 잘 준비된 올림픽”이라는 바흐의 말은 그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말이었다.
  • 알몸수색 카타르 도하 공항 “10대의 여객기 여성 뒤졌다”

    알몸수색 카타르 도하 공항 “10대의 여객기 여성 뒤졌다”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의 하마드 국제공항 터미널 화장실에 버려진 신생아의 엄마를 찾는다며 여성 승객들을 여객기에서 내리게 한 뒤 앰뷸런스 안에서 알몸수색을 한 일이 있었다. 애초에 시드니로 비행할 예정이었던 카타르항공의 QR 908편 승객들만 알려졌는데 다른 여객기 9대에 올랐던 여자 승객들도 같은 봉변을 당했다고 호주 정부 각료가 28일 밝혔다. 어처구니없는 봉변을 당한 호주 여성들이 시드니에 돌아온 직후 호주 정부에 신고했는데 2주 동안의 호텔 격리를 마치고 호주와 카타르 정부가 이를 공개적으로 문제삼지 않자 언론에 제보해 지난 26일 만천하에 공개됐다. 머리스 페인 호주 외교통상부 장관은 28일 상원 청문회에 QR908편 말고도 9대의 여객기 승객들이 난데 없는 봉변을 당한 것으로 믿고 있다고 밝혔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이틀 전에는 13명의 호주 여성이 수모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페인 장관은 이들 외에 다른 나라 여성 5명도 마찬가지 수모를 당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여전히 카타르 관리들이 그날 밤 하마드 공항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해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카타르 정부도 이날 뒤늦게 사과하고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고 방송은 전했다. 신생아는 화장실 쓰레기 더미로 가려진 비닐봉지 안에서 발견됐으며 현재 의료진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했다. 또 포괄적이고 투명한 조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내 다른 나라들과 공유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호주 외교부의 고위 관료는 두세 나라와 함께 카타르 당국에 진상 규명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외교부에서 비서로 일하는 프란체스 애덤슨도 이날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한 호주 외교관이 같은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했고 즉각 외교부에 알려왔다고 증언했다. 그녀는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 황당하기만 했다”면서 “어떤 기준으로도 이건 보통의 행동이 아니며 카타르 당국도 인지하겠지만 다시는 일어나선 안되는 일이었다”고 혀를 찼다. 호주 정부는 이 사건을 연방경찰에서 다룰 예정이지만 우선은 카타르 측의 성의있는 답변을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하마드 국제공항은 이번주 성명을 냈는데 상세한 설명이나 봉변을 당한 여성들에게 사과하는 내용이 없이 그저 산모가 출산 뒤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된다는 의료진의 조언을 듣고 산모가 출국하기 전에 찾아내려 했을 뿐이라고 밝혀 호주인들의 화를 돋웠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한발 떨어져 찾는 ‘은밀한 일상’ 한발 앞서 찾아온 ‘따뜻한 위로’

    한발 떨어져 찾는 ‘은밀한 일상’ 한발 앞서 찾아온 ‘따뜻한 위로’

    빼앗긴 봄에도 꽃은 피듯이 코로나19 시대에도 여름은 왔다. 6월 초, 기온이 27도까지 올라가자 베를리너들은 성급히 옷을 벗고 공원에 드러누웠다. 꽁꽁 싸맸던 마음을 꺼내 햇빛에 널고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에 멍든 몸을 뜨거운 햇살에 지졌다. 남자들은 웃통을 벗고, 여자들은 비키니 차림이었다.7월의 수영장이나 해변이 아닌, 5월부터(!) 공원에서 저러고들 있으니 계절의 경계가 무색했다. 절로 눈길이 갔지만 동네이웃처럼 자주 보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풍경이 됐다. 하루는 나도 비키니를 챙겨 입고 태닝족에 합류했다. 반듯이 누워 배와 등을 태웠다. 두 시간 남짓 누워 있었는데 벌겋게 살이 익었다. 베를린에선 이미 여름이 시작된 느낌이다.베를린에서 가장 좋은 계절을 꼽으라면 역시 여름이다. 베를린뿐만 아니라 유럽 도시 전체가 여름에 활기를 띤다. 오전 5시가 되기도 전에 날이 밝고(서머타임 때문에), 해는 밤 9시가 넘어야 진다.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나오면 하늘은 그제서야 짙은 푸른 색으로 어두워지고 석양의 끝을 지운다. 유럽으로 출장을 올 때마다 놀라던 초여름의 늦은 일몰, 잊고 있던 유럽의 긴 해가 매일 떠오르는 요즘이다. 여름에만 할 수 있는 일도 하나둘 늘어난다. 늦은 밤에 보는 오픈에어 시네마도 며칠 전부터 시작했다. 베를린에 있는 35곳의 야외 영화관이 문을 연 것이다. 야외 영화관은 여름 한철 반짝 문을 열고 9월 초면 문을 닫는다. 오픈에어 시네마가 문을 닫는 건 베를린의 여름이 끝났다는 신호다.●‘한여름 밤의 꿈’ 같은 오픈에어 시네마 지난해 여름엔 거의 매주 야외 영화관에 갔다. 이 좋은 걸 베를린 다닌 지 12년 만에, 남자친구가 생겨서 처음 해봤다. 야외 영화관은 동네마다 몇 군데씩 있다. 큰 공원 안에 있기도 하고 슈프레 강변의 바 안에 있기도 하고 클럽 옆에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곳은 크로이츠베르크의 마리아난 플라츠에 있는 프라이루프트 키노다. 영화관 뒤로는 1800년대에 지어진 멋진 문화공간이 있고, 사방은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시골 숲속이나 인적 드문 공원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자연적이고 평온한 바람이 분다. 오픈에어 시네마의 자리는 일찍 온 순서대로 앉는다. 맨 앞자리 몇 줄은 천으로 된 비치의자를 놓을 수 있다. 자리를 사수하려면 한 시간 정도 일찍 가는 것이 좋다. 줄을 서 있다가 30분 전에 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비치의자를 들고 좋은 자리를 찾는다. 영화관 안에는 생맥주와 팝콘, 커리 부어스트(소시지) 등을 먹을 수 있는 야외 매점도 (당연히) 있다. 매점의 불빛이 서커스장 조명처럼 발랄하다. 야외 영화는 보통 밤 9시가 넘어야 시작한다. 싱그러운 나무의 냄새를 맡고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는 건 여름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계절엔 아예 즐길 수 없으니까. 커다란 스크린이 야외에 있으니 코로나19의 일상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심이 된다. 앉는 사람들 간의 거리는 조정을 하겠지만, 춤도 출 수 없고 디제이도 없이 문을 여는 베를린의 클럽보다는 상황이 훨씬 낫다. 베를린에서 야외 영화관을 고를 때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독일어로 더빙된 영화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일이다. 독일에선 극장뿐 아니라 TV에서 보여 주는 모든 해외 영화에 더빙이 돼 있다. 자막이 익숙한 우리에겐 구식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오디오 북을 듣고 자는 독일인들에게 더빙은 친숙하고 일상적인 문화다. 더빙 문화의 역사도 길어서,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의 목소리는 보통 정해져 있는 성우가 있다. 예를 들어 브루스 윌리스는 30년 넘게 한 목소리다. 야외 영화관을 고를 때는 원어에 영어 자막이 있는 영화를 선택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이해도 못 하는 독일어를 두 시간 내내 듣게 될 수도 있다. ●베를린의 편의점 ‘슈페티’ 앞에서 맥주 한 잔 베를린의 여름이 뜨거워지는 건 슈페티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수로 알 수 있다. 슈페티는 베를린의 편의점 같은 곳. 동네마다 있고 대부분 24시간 문을 연다. 없는 것 없이 다 파는 우리나라의 편의점과는 달리 간단한 식료품과 과자, 음료, 담배류, 술을 주로 판다. 종류마다 다 있는 건 역시 맥주. 밤 10시면 슈퍼마켓까지 다 닫는 베를린에서 유일하게 술을 살 수 있는 곳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밤마다 슈페티 앞으로 모이는 건 당연하다. 술을 사서 가게 앞 인도나 벤치, 길가에 아무렇게나 앉아 마신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슈페티 앞에는 늘 사람들이 맥주병을 들고 서 있다. 하지만 여름엔 그 열기의 농도 자체가 달라진다. 가게 앞의 긴 테이블과 의자를 가득 메우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바이브가 짜릿하게 전해진달까. “여긴 뭔데 이렇게 사람이 많아?” 하고 쳐다보면 힙한 바가 아니라 슈페티 앞일 때도 많다. 베를린의 슈페티는 술 취한 아저씨나 돈 없는 어린애들만 가는 곳이 아니다. 온 몸에 문신을 한 힙스터들, 소문 듣고 찾아온 관광객, 클럽 가기 전에 취하러 온 젊은 애들, 집 앞에 한 잔 하려고 나온 동네 주민까지 한데 어울려 같이 마시고 같이 취한다. 동네 사랑방이자 여름엔 펍보다 붐비는 ‘가맥집’이다.그 도시에서 꼭 가 봐야 하는 바 순위가 있는 것처럼 베를린에는 유명한 슈페티 명소가 있을 정도다. 미테의 로젠탈러플라츠 역 바로 앞 슈페티가 그렇다. 밤새도록 사람들이 앉아 술을 마시는 다국적 만남의 장소다. 이곳은 워낙 유명해서 슈페티답지 않게 안에 어엿한 화장실도 갖추고 있다. 서울의 ‘편맥’처럼 베를린에는 ‘슈맥’이 있다. 슈페티 앞에 사람이 꽉 차 있는 밤을 만나면 베를린의 여름밤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것이다.●히피들의 은신처, 크룽커크라니히 옥상 바 날이 좋으면 더 각광받는 곳, 바로 루프톱 바다. 베를린에도 내로라하는 야외 옥상 바가 많다. 대부분은 호텔 꼭대기에 있다. 25아워스 호텔 꼭대기에 있는 몽키바는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하다. 베를린 동물원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때문에 유독 사랑받는다. 베를린을 놀러 오는 여행자들의 인기 리스트에 항상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미테의 아마노 호텔 꼭대기에도, 베를린에서 가장 핫한 부티크 호텔, 소호에도 루프톱 바가 있다. 모두 세련되고 힙한 분위기가 넘친다. 하지만 우리가 매번 호텔 바를 가지는 않듯이, 여기서도 그렇다. 호텔 바보다는 오래돼 보여도 자연적이고 자유가 넘치는 곳을 좋아한다. 그런 옥상 바가 한 군데 있다. 히피들의 아지트처럼 대접받는 크룽커크라니히 바다. 노이쾰른의 쇼핑몰 꼭대기에 숨어 있는 이곳에는 삐걱대는 나무 의자와 테이블이 제멋대로 놓여 있다. 사람들은 바에서 맥주 한 잔을 사서 아무 데나 털썩 앉는다. 유일하게 이들이 신경을 쓰는 건 아름다운 노을. 그것만큼은 놓치지 않으려고 집요하게 쳐다본다. 이곳에서 내다보이는 베를린의 도시 풍경 또한 최고다. 시야를 막는 고층빌딩 하나 없이 고만고만하게 낮고 많은 지붕 너머로 베를린의 상징인 TV타워가 내다보인다. 이 낮은 지평선 도시와 석양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 노이쾰른의 아카덴 쇼핑몰 꼭대기로, 한 번에 찾기는 힘든 길을 헤매면서 올라간다. 가는 길이 쉽지 않아 관광객의 레이더에서는 여전히 조금 벗어나 있다. ●야외 사우나서 꿈꾸는 ‘이열치열’ 베를린의 여름이 매일 뜨겁고 쨍쨍한 것만은 아니다. 30도까지 치솟다가도 갑자기 13도로 뚝 떨어질 때가 있다. 그러면 7월 말이어도 조용히 가죽재킷을 꺼내 입어야 한다. 전기장판만큼은 켜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이렇게 으스스한 날엔 목욕가운을 챙겨 바발리로 향한다. 인도네시아 발리에 있는 스파 단지처럼 넓은 정원과 실내외 수영장, 마사지실, 레스토랑 그리고 사우나가 13개나 있는 곳이다. 카운터에서 밴드를 차고 들어가고, 나올 때 쓴 비용을 결제한다. 바발리 안에서는 모두 가운을 입고 돌아다닌다. 그러다 사우나에 들어갈 때는 고이 가운을 걸어두고 알몸으로 들어간다. 사우나 안에 남자 여자가 ‘깨벗고 같이’ 들어가는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독일의 사우나는 혼욕 문화다. 안에 들어가면 계단식 나무의자에 줄줄이 발가벗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매 시간마다 열리는 사우나 프로그램에 맞춰 온 사람들이다. 처음엔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몰라 허공을 쳐다보고 일부러 자연스러운 척도 한다. 하지만 알몸이라는 부끄러움도 잠시, 모두가 똑같이 알몸인 그곳에서 뭔가 원초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누구 하나 똑같은 체형 없이, 늘어진 배와 제각각으로 생긴 허벅지, 어깨, 가슴, 성기까지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그냥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바발리의 사우나에는 특별한 점이 또 있다. 필링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 팬티만 걸친 전문 마스터가 들어와 프로그램 소개를 하고 커다란 부채질을 한다. 사람들이 앉아 있는 뒤쪽 끝까지 골고루 뜨거운 바람을 보내 주는 것이다. 종교 의식을 치르듯 강하고 경건하게 부채질을 하는 마스터의 몸놀림 또한 이곳 사우나의 관전 포인트다. 야외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고 2층 벽난로 앞에서 와인을 마실 수도 있다. 바발리는 베를린에서 단연 최고의 경험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다만 코로나19 상황으로 현재 사우나는 이용이 중단된 상태다. 그래도 야외 수영장에서 나체로 수영하고 정원에 누워 마사지를 받거나 휴식을 취하는 건 여전히 가능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바발리는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이다. 뜨거운 사우나에서 땀을 쫙 뺀 후 뻥 뚫린 샤워실에서 샤워하며 이열치열 여름을 나고 싶다. ●공원처럼 산책하는 베를린만의 ‘묘지피서 ’ 베를린에서 공원만큼 산책하기 좋은 곳이 묘지다. 동네마다 크고 작은 묘지가 있다. 제각각 다른 크기의 비석과 그 앞에 놓인 꽃들, 울창한 나무들이 많아 평화롭다. 대부분 숲처럼 나무가 많아서 공원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나중에 묘지인 걸 안 적도 많다. 아주 춥고 우중충한 날씨가 아니라면 음산한 기분도 들지 않는다. 햇볕 좋은 여름이라면? 18세기의 멋진 비석도 구경하고 책 읽고 빈둥거리기 좋다. 베를린 사람들은 묘지에서도 공원처럼 산책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풀어놓고 놀게 한다. 누군가의 묘지가 이토록 가깝고 친근하게 있다면 추모하는 일도 서글프지만은 않을 것 같다. 보다 가벼운 걸음으로 찾아와 마음을 나누다 갈 듯하다.베를린에 사는 친구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묘지가 있었다. 그 묘지 안에는 장례식을 치르던 작은 교회가 있었는데, 나중에 카페로 오픈을 했다. 카페 스트라우스. 내부는 아치형의 천장이 그대로 있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장례식 홀로 쓰이던 공간이 나온다. 반투명 유리로 돼 있는 지붕과 빈티지한 카키색의 창문, 스테인드글라스 유리, 그 안으로 따사롭게 들어오던 햇살에 낮은 탄성이 나올 정도다. 누군가의 죽음이 거쳐 갔고 누군가의 눈물이 흘렀던 공간이라고 하기엔 더없이 평온하고 조용하다. 어느 해 8월, 이 묘지 교회의 작은 정원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시며 오전 내내 책을 읽던 아침이 생각난다. 베를린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작년 여름엔 남자친구와 함께 노트북을 싸 들고 자주 묘지로 갔다. 프란즐러베르크의 오래된 묘지 안에 있는 라이제파크에 가기 위해서다. 검은 비석과 잡풀, 큰 나무들이 울창한 묘지 안쪽으로 죽 걸어 들어가면 공원이 나온다. ‘볼륨을 줄인’, ‘거의 들릴 듯 말 듯한’, ‘나즈막한 목소리’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라이제파크는 이름처럼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가 있다. 공원에는 짧은 풀들이 잔디처럼 자라 있고 그 뒤로 무릎까지 오는 잡풀이, 그 뒤로 중간 키의 나무들이, 그 뒤로 가장 큰 나무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풀숲이 무성해 바로 앞까지 와서야 인기척이 느껴진다. 풀밭에 누워 있으면 도심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푹푹 찌는 한여름, 살갗이 타 들어갈 것처럼 덥다가도 이 공원 나무 아래에만 누우면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에어컨 있는 집이 거의 없고 지하철에도 에어컨이 없는 베를린에서 호수로 피신을 못 갈 땐 이 공원이 제일 만만하면서도 은밀한 피서지다. 여행작가 dongmi01@gmail.com
  • 왜 중국 남성은 서울에서 7살 딸을 살해했나

    왜 중국 남성은 서울에서 7살 딸을 살해했나

    서울의 한 호텔에서 자신의 7살 난 딸을 살해한 중국 남성이 22년형을 선고받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1일 한국 언론을 인용해 장이란 성만 알려진 중국 남성이 서울에서 딸을 살해한 사건을 자세히 보도했다. 장은 2017년 아내와 이혼한 뒤 여자친구를 사귀었는데 이 여자친구가 2번의 유산 원인으로 전처의 딸을 들며 아이가 ‘악마’라고 비난했다. 지난해 8월 중국 남성은 호텔 화장실에서 딸을 살해하고 호텔 바로 가서 술을 마신 뒤 방으로 돌아와 딸이 사망했다고 신고했다. 장은 살인 혐의를 부인했으며 술을 마시고 방으로 돌아와 보니 딸이 사망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여자친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와 감시카메라 그리고 부검 결과, 딸을 살해한 사실이 드러났다. 장은 “오늘 할거야…중요한 곳에 감시 카메라가 몇대 있어”란 문자메시지를 여자친구에게 보낸 사실이 밝혀졌다. 장이 이혼하고 새로 여자친구를 사귀기 전에는 딸과의 사이가 좋아 한국, 일본, 대만 등으로 몇차례 해외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또 이혼 뒤에도 전처 집 근처에 살면서 딸을 유치원으로 데려다 주기도 해 어린 딸도 아빠와의 서울여행에 따라나선 것으로 짐작된다. 장의 새 여자친구는 두번이나 유산으로 태아를 잃자 자살 시도까지 했으며, 장은 서울 여행 첫날 딸을 살해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는 “여자친구의 딸에 대한 분노가 극심했기에 무고한 피해자가 사랑했던 아버지로부터 죽임을 당해야 했다”며 “법정은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생명을 앗아간 행위에 상응하는 형벌을 내린다”고 밝혔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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