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한국 미술사학
    2026-10-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총 386 건
  • 성북, 한글·한국 문화 알린 한창기 바라본다…‘뿌리, 깊은, 나무’ 개최

    성북, 한글·한국 문화 알린 한창기 바라본다…‘뿌리, 깊은, 나무’ 개최

    서울 성북구 성북문화재단은 9일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최순우 옛집에서 ‘2026 성북 신문인사 프로젝트: 한창기’ 전시 ‘뿌리, 깊은, 나무’를 연다고 이날 밝혔다. 2024년 시작된 ‘성북 신문인사 프로젝트’는 구에 머무르며 활동했던 문화예술인을 찾아 오늘의 예술과 이어보는 사업이다. 올해는 성북동에 생활 터전과 출판사를 두고 활동했던 출판언론인 한창기를 조명한다. 한창기는 잡지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깊은물’을 창간하고 국어와 한국 문화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해 알리는 데 힘쓴 출판인이자 문화기획자다.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를 실천하고 쉬운 우리말을 지면에 담아 새로운 잡지 문화를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 전시 제목 ‘뿌리, 깊은, 나무’는 한창기의 대표적인 발간물 ‘뿌리깊은 나무’의 제목 사이에 쉼표를 두어 지었다. 익숙한 잡지의 이름을 세 낱말로 나누어 바라보듯 전시는 ‘뿌리깊은 나무를 만든 출판인’이라는 한창기의 모습에서 더 나아가 그가 남긴 여러 삶의 결을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전시장에서는 주요 출판물과 친필 원고, 한창기가 수집하고 곁에 두었던 민예품 등 그의 관심과 활동을 보여주는 자료를 볼 수 있다. 한창기를 오늘날 시선으로 바라본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도 선보인다. 임수식, 정진화, 태싯그룹은 각자의 예술 언어로 한창기가 남긴 자취와 그가 관심을 기울였던 문화를 새롭게 바라보고 그의 생각과 태도를 동시대의 감각으로 풀어낸다. 한창기의 삶을 보다 깊이 살펴보는 연계 프로그램 ‘뿌리깊은 안목: 한창기 깊이 알기’도 운영한다. 강연과 판소리 청음회 등으로 전시에서 다룬 이야기를 확장한다. 프로그램은 구글 폼으로 신청할 수 있다. 전시가 열리는 최순우 옛집은 한창기와 함께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렸던 미술사학자 최순우가 살았던 곳이다. 당대 문화예술인들이 오가던 성북동의 사랑방에서 한창기의 기록과 작품을 보며 두 사람의 인연과 당시 문화예술인들의 교류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전시에 대한 세부 내용과 신청 방법은 재단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재단 관계자는 “그가 남긴 기록과 오늘의 예술가들이 새롭게 읽어낸 작품을 통해 한창기의 생각과 태도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만나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프리즈가 남긴 것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프리즈가 남긴 것

    지난주 ‘프리즈 서울 2026’이 막을 내렸다. 데이미언 허스트를 비롯한 젊은 브리티시 아티스트들의 등장과 함께 미술 잡지 프리즈는 1991년 런던에서 창간되었다. 영국 현대미술의 주역들이 창간한 프리즈는 2003년 리젠트 파크에서 아트페어로 확장하며, 오늘날 세계 미술시장을 선도하는 담론의 진원지가 되었다. 필자가 2016년 리젠트 파크 안에서 만난 프리즈 런던은 근현대 미술사 섹션을 함께 두어, 신작과 중세시대 작품이 나란히 놓인 두터운 시간의 층을 보여주었다. 공원을 산책한 뒤 만나는 전시관과 관람 동선도 여유로웠다. 반면 프리즈 서울은 키아프, 즉 한국국제아트페어와의 동시 개최라는 축제성과 도심 빌딩에서 열리는 편리한 접근성 때문에 속도감과 편리성이 두드러졌다. 아시아 첫 개최지로 선정된 프리즈 서울에 대한 반응은 첫해부터 뜨거웠다. 이후 5년, 서울은 실제로 아시아 미술시장의 새 거점으로 부상했고 참여 갤러리와 해외 컬렉터, 세계 각지 언론의 관심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런 흐름 속에서 눈여겨볼 것은 프리즈 뷰잉룸이다. 뷰잉룸은 대체로 프리즈 개막 일주일 전부터 폐막 후 일주일까지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5월 프리즈 뉴욕에서 처음 등장한 이 플랫폼은 이후 참여 갤러리의 작품을 미리 감상할 수 있는 온라인 창구가 되었다. 뷰잉룸은 지리적·경제적 이유로 현장을 직접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프리즈를 관람할 수 있게 했다는 점과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바꿔 놓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프리즈 런던의 야외 조각 전시 역시 공원을 산책하는 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은 역할을 해 왔다. 결국 두 창구 모두 프리즈가 문턱을 낮춰 관람객을 맞이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대중들을 끌어들인 방식은 내년이면 다른 시험대에 오른다. 프리즈 서울의 강점 중 하나는 통합 티켓 하나로 프리즈와 키아프를 에스컬레이터 하나로 오르내릴 수 있다는 접근의 편리함이었다. 그러나 내년 코엑스 공사로 프리즈 서울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로 자리를 옮기면, 두 페어는 처음으로 다른 장소에서 열리게 된다. 두 장소 간 물리적 거리를 메울 장치를 지금부터 세밀하게 준비하지 않는다면, 접근성이라는 프리즈 서울의 최대 강점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장소 분리는 이미 예정된 일이지만, 그 불편함을 어떻게 상쇄할지는 준비의 몫으로 남아 있다. 2016년 브렉시트라는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프리즈 런던은 역대급 관람객을 모으며 시장의 저력을 증명한 바 있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오히려 신중하고 절제된 구성으로 이어져 성공적인 결과를 낳은 셈이다. 지금의 프리즈 서울도 비슷한 갈림길에 서 있다. 2027년 코엑스와 동대문디자인플라자로 개최 장소가 갈라지는 변화 앞에서, 이 불확실성과 불편함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서울이 런던처럼 위기를 성장의 계기로 바꿀 수 있을지를 가를 것이다. 이미경 미술사학자
  •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이름보다 얼굴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이름보다 얼굴

    몇 해 전부터 유명 연예인이 개인전을 여는 일이 낯설지 않게 됐다. 실제로 몇몇 연예인 작가의 작품들이 키아프, 서울 옥션, 홍콩 아트페어 등에서 판매되고 호평을 받아 왔다. 개막 전부터 작품이 모두 팔렸다는 소식, 억대 낙찰가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뒤따르며 이들은 ‘아트테이너’라는 신조어로 불린다. 대중의 호기심과 인지도가 만나 만들어 내는 이 현상은 화제성만큼이나 한국 미술계의 취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평가 체계의 부재다. 일반 작가는 공모전을 통과하고, 레지던시에 들어가고, 기획전에 이름을 올리고, 또 평론가의 검증을 거치고 그렇게 몇 년을 버텨야 겨우 개인전을 열 수 있다. 이들 신진 작가는 포트폴리오, 학력, 수상 경력, 전시 이력 등 자신의 작업을 증명해야 한다. 반면 유명인은 인지도 자체가 검증을 대신한다. 그들의 작업은 종종 ‘새로운 도전’이나 연예계 활동의 ‘확장된 활동’으로 해석되며, 검증이나 비판보다는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전시가 열리기도 전에 작품이 팔리는 현상은 예술적 완성도가 아니라 예술가의 인지도가 이미 가격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이는 무명 작가들이 수십 년에 걸쳐 쌓아야 할 신뢰를 단숨에 도달하게 만든다. 이 차이는 결국 기회의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한 원로 아트테이너 대작 사건은 아트테이너 전반에 존재하는 검증 부재 문제를 드러낸 사례다. 그는 평론, 공모전 같은 통상적 검증 절차 없이 유명세만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실제 제작자가 누구인지 오랫동안 확인되지 않은 채 작품 거래가 이뤄졌다. 이는 아트테이너 시장이 작품의 진위와 제작 과정을 검증할 별도의 장치를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두 번째는 시장의 투기화다. 완판이라는 단어가 마케팅 언어로 소비되면서, 컬렉터들은 작품 자체보다 향후 되팔 수 있는 구매 경향을 보인다. 갤러리 입장에서도 판매가 보장되는 유명인 전시를 우선 배치할 공산이 크고, 이는 결과적으로 무명·신진 작가들이 설 수 있는 전시 공간과 기회를 뺏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작가의 인지도가 곧 시장 가치로 환산되고 있는 셈이며, 그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게 문제다. 그렇다고 아트테이너의 창작 활동 자체를 막거나 폄훼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진입이 아니라 이후의 검증 구조다. 첫째, 상업 갤러리와 아트페어는 아트테이너 작가에게도 동일한 비평적 리뷰를 의무화해 작품이 인지도가 아닌 맥락 속에서 평가받도록 해야 한다. 둘째, 미술 전문지와 평론가 집단이 유명세와 무관하게 독립적인 비평을 지속적으로 펴내 대중이 유명인의 작품과 신진 작가의 작품을 나란히 비교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를 기회를 넓혀야 한다. 문제는 누가 그림을 그리느냐가 아니라, 그 그림이 어떤 기준으로 평가받느냐를 미술계 스스로 다시 세우는 일이다. 이름을 가리고도 좋은 작품을 가려낼 줄 아는 안목과 제도, 그것이 지금 한국 미술계에 필요한 진짜 완판의 조건이다. 이미경 미술사학자
  • 반복과 절제, 시간이 빚어낸 ‘환한 자유’… 이대원의 70년

    반복과 절제, 시간이 빚어낸 ‘환한 자유’… 이대원의 70년

    피상적 단어에 가려졌던 작품 세계관찰과 축적의 회화 다시 만날 기회멀리서 봐도 유지되는 독립적 색점사방으로 펼쳐진 과수원으로 초대 “무한한 형태, 무한한 색채를 이 조그마한 눈·머리·손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정복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자연의 힘에 새로운 마음의 눈이 열리는 것 같다.”(이대원, ‘내 마음속 공간 1번지-파주 과수원’ 중에서)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인 이대원(1921~2005)은 해방과 분단 와중에 실종된 아버지가 사줬던 과수원에 작업실을 만들었다. 자연을 오래오래 바라보다 대상이 거의 자신의 일부처럼 느껴졌을 때 마침내 붓을 들었다. 그의 캔버스 속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그 주변을 지킨 산과 연못은 그렇게 탄생했다. 같은 모습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계절마다 시간마다 달라지는 자연, 그려도 그려도 끝이 없는 자연 속에서 외경심을 느꼈던 작가는 이제 없지만, 작품은 고스란히 남아 관객을 과수원 한가운데로 초대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덕수궁에서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제목으로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은 미술 애호가는 물론 대중에게도 크게 사랑받았다. 그러나 친숙함은 그의 작품을 제대로 바라볼 기회를 감췄다. 홍익대 총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지낸 이력 역시 그를 ‘팔자 좋은 화가’라는 타이틀에 가두기도 했다. 최초의 대규모 회고전인 이번 전시는 피상적인 말들로 가려졌던 그의 작품 세계를 깊이 살필 기회다. 전시 제목은 작가와 막역했던 고고미술사학자 김원룡이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던 그림 평에서 따왔다. 이런 평은 생동감 넘치고 명랑한 색채가 그의 기질과 닮았다는 해석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슬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전시를 기획한 배원정 학예연구사는 “이대원의 회화는 오랜 관찰과 반복, 축적과 절제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환하고 자유로운 화면에 도달한 것”이라며 “이번 전시는 그 시간을 다시 살펴본 전시”라고 소개했다. 전시장 입구를 채운 것은 5m의 대작 ‘담’(1986)이다. 주미한국대사관에서 빌려온 이 작품은 오랜 시간 타지에서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얼굴로서 역할을 해왔다. 멀리서 보면 나무와 흰 담이 어우러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담은 하나의 흰색이 아니다. 미색과 분홍빛, 푸른빛이 감도는 여러 흰빛이 나란히 놓여 있으며 각각의 색은 서로 섞이지 않고 고유한 발색을 유지한다. 색실이 서로 인접해도 저마다의 색을 잃지 않는 전통 자수의 방식을 연상시킨다. 전시에서는 작가가 12세에 그린, 가장 이른 작품인 ‘백일홍’,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에서 미술 교사 사토 구니오에게서 회화와 공예를 배웠던 시절의 작품까지 만날 수 있다. 작가가 깊은 관심을 두고 소장했던 자수, 나전, 화각, 목가구 등이 그림과 함께 전시된 것도 눈길을 끈다. 전통 공예의 원리가 그의 화면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 그 과정을 엿볼 수 있다. 1970~2000년대까지 작품에서는 색점, 색선, 색면을 거듭 쌓아 올리며 독자적인 회화 언어를 완성해 가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배 학예연구사는 “조르주 쇠라의 점묘법이 서로 다른 색점을 나란히 놓아 일정한 거리에서 시각적으로 혼합되는 방식이라면, 이대원의 색점은 멀리서 봐도 하나의 색으로 혼합되지 않고 각자의 색채적 독립성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전시의 백미는 작가의 말년 작품을 만날 수 있는 4전시실이다. 5m, 7m에 달하는 작품들이 서로 마주 보며 펼쳐지고 전시장 바닥에 스틸 반사경을 설치했다. 관람객은 마치 사방으로 펼쳐진 과수원 안에 들어선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화면 가득 채워진 꽃과 나무를 헤아리다 보면 어느새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순간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전시는 11월 8일까지.
  • 한국 미술사학 기틀 세운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한국 미술사학 기틀 세운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한국 미술사학의 기틀을 세운 안휘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가 20일 별세했다. 86세. 고인은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와 프린스턴대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홍익대 미대를 거쳐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해왔다. 한국미술사학회장, 서울대 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건립 자문위원,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2012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현재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2006년 옥조근정훈장, 세종문화상(2011년·학술 부문), 연세대 용재학술상(2013년), 대한민국학술원상(2015년·인문학 부문) 등을 받았다. 1980년 출간한 ‘한국 회화사’가 유명하다. 한국 회화사 연구자들에게 필수 자료로 꼽힌다. ‘한국회화의 전통’, ‘한국 풍속화’, ‘나의 한국 미술사 연구’ 등 저서를 냈다. 유족으로 아내 김유정씨, 아들 우영씨, 딸 지현씨 등이 있다. 빈소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22일 오전 9시. (02)2072-2010.
  •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600년 전 경쟁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600년 전 경쟁

    2026년 북중미월드컵을 향한 기대가 높아질수록 대한축구협회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도 함께 부각되었다.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핵심은 ‘공정한 경쟁의 부재’다. 과정이 사라진 자리에는 책임도 희미해진다. 축구는 실력으로 말하는 스포츠지만, 그 실력이 검증되는 과정이 불투명하다면 결과 역시 설득력을 잃는다. 600여년 전 피렌체에서 벌어진 한 경쟁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1401년 피렌체 세례당의 두 번째 청동문 제작을 위해 7명이 공개 경쟁을 벌였다. 이른바 ‘천국의 문’ 경쟁이다. 경쟁에 참가한 인물들은 토스카나 지역 출신의 금속 공예 및 조각가로,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예술가들이었다. 경쟁자들은 ‘이삭의 희생’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부조 샘플로 제출했고 심사위원단은 구성의 조화, 기술적 완성도, 재료 활용 능력을 기준으로 평가했다. 이후 최종 후보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와 로렌초 기베르티 두 사람으로 좁혀졌고 두 예술가는 동일한 주제와 조건 아래에서 경쟁했다. 심사 과정 역시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기베르티가 청동 주조의 효율성과 제작 비용 절감 측면에서 30명이 넘는 심사 위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아 최종 선정되었다. 이 경쟁은 투명한 심사와 동등한 조건 속에서 예술적 혁신을 촉진한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한편 경쟁에서 좌절한 경험은 훗날 더 큰 도약대가 되었다. 패배한 브루넬레스키는 로마로 향해 판테온 건축을 통해 고대 건축을 연구했다. 그는 건축 구조와 비례에 대한 이해를 축적하며 새로운 해법을 모색해 건축가로 성장했다. 두 인물은 같은 도시에서 대성당의 거대한 돔 설계로 또다시 경쟁을 이어 갔다. 브루넬레스키는 혁신적 설계를 제안했고, 경쟁 끝에 대성당 돔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이 돔은 르네상스 건축의 상징이 되었으며, 경쟁을 통한 기술 혁신이 도시의 위상을 어떻게 끌어올리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로 남았다. 중요한 것은 승패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공정한 경쟁은 패자에게도 다음 기회를 남겼고, 패자는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더 큰 성취로 나아갔으며, 도시 전체에 창조적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이러한 경쟁을 가능하게 한 배경에는 메디치 가문이나 상공업 길드를 중심으로 한 후원 시스템이 있었다. 이들은 특정 인물을 밀어주는 대신 다양한 예술가들이 실력을 겨룰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서양미술사 연구에서도 이 경쟁이 르네상스 예술 발전의 중요한 촉매였다는 점이 강조된다. 공정한 경쟁은 단순한 선발 방식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구조였다. 투명한 선발 기준과 평가가 축적되면서 피렌체는 르네상스 예술과 사상의 중심지로 우뚝 성장할 수 있었다. 한국 축구가 마주한 문제 역시 다르지 않다.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가 증명했듯 경쟁의 공정성은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을 성장시킨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원이나 제도가 아니라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경쟁의 조건이다. 공정한 경쟁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전략이다. 이미경 미술사학자
  • 송파구 책박물관 ‘佛 루이14세 미술과 명품의 탄생’ 강연

    서울 송파구는 송파책박물관에서 미술사학자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초청해 ‘책문화 강연’을 연다고 5일 밝혔다. 8일 열리는 강연은 2019년 박물관 개관 이후 꾸준히 이어진 프로그램으로 인문과 교양, 예술, 과학 분야의 저자가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책 내용을 풀어내는 자리다. 이번 주제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미술과 프랑스 명품의 탄생’이다. 17세기 프랑스 궁정에서 펼쳐진 그림과 건축, 공예가 어떻게 권력의 언어이자 문화의 자산이 됐는지, 그 흐름이 오늘날 프랑스 문화와 명품 산업으로 이어졌는지 친숙한 사례로 설명할 예정이다. ‘명작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등 다양한 저서를 쓴 양 교수는 방송과 라디오 등을 통해 대중에게 미술 이야기를 쉽게 전달하고 있다. 책문화에 관심 있는 성인이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며 수강료는 무료다. 서강석 구청장은 “송파책박물관의 책문화 강연은 책 한 권에서 시작된 관심을 한층 더 깊은 인문 경험으로 이어주는 자리”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저자와 주제를 통해 책문화가 주는 즐거움을 넓혀가겠다”고 밝혔다.
  •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해설의 그늘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해설의 그늘

    도슨트는 ‘가르치다’를 뜻하는 라틴어 도케레(docere)에서 유래한 말이다. 도슨트는 1907년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120여년이 지난 오늘날 전시에서 필수 인력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국공립 미술관을 중심으로 자원봉사 형태로 도입되었고, 이후 민간 미술관으로 확산되며 전시 해설 인력으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관람객에게 도슨트는 낯선 존재가 아니다. 관람객들은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도슨트 해설을 선호한다. 그러나 도슨트 제도가 확산될수록 그 이면의 구조적 모순 역시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 도슨트 제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전문 자원봉사자’라는 모순된 개념에 있다. 이처럼 전문이라는 수식어와 자원봉사라는 무급의 신분은 한국 도슨트 제도의 태생적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해외 역시 자원봉사 형태로 도슨트 제도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지만, 제도적 위치와 사회적 인식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프랑스의 루브르는 도슨트를 국가 자격을 갖춘 전문 직업인으로 제도화했다. 영국 내셔널 갤러리는 전문 직원을 중심으로 해설을 운영한다. 다시 말해 프랑스는 전문가가 설명하고, 영국은 직원이 설명한다. 반면 한국은 그 경계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무급 도슨트에게 전문적인 역할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도슨트는 비용 절감의 수단으로 전락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의 해설 준비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도슨트는 스스로 작가론과 미술사, 전시 맥락을 독학한다. 스크립트를 쓰고, 수십 번 리허설을 반복하며,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는 언어로 다듬는다. 그럼에도 이에 상응하는 보상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블록버스터급 전시가 활발해지며 도슨트의 활동 영역이 점차 확장되고 있다. 이는 기존의 무급 구조를 벗어나 도슨트가 전문직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1조원에 달하는 미술 시장 규모의 성장 속에서, 쉽고 전문적으로 설명해 주는 도슨트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며 스타 도슨트가 탄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의 제도는 소수의 스타 도슨트와 다수의 무급 도슨트 사이의 격차를 더욱 벌리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는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그릇된 제도의 설계에서 비롯된 문제다. 도슨트가 단순한 작품 해설자가 아니라 작품과 관람자 사이를 매개하는 해석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역할에 걸맞은 지위와 처우가 마련되어야 한다. 제도는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한국의 도슨트 제도가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전문 자원봉사자’라는 모순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문성에 상응하는 보상과 명확한 제도적 위치를 부여할 때, 도슨트는 비로소 지속 가능한 전문인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도슨트는 단순히 작품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관람자를 예술의 시간과 공간으로 안내하는 시간여행 안내자이기 때문이다. 이미경 미술사학자
  •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논문 심사 비용의 현실화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논문 심사 비용의 현실화

    4~5월은 논문 심사가 한창인 기간이다. 논문 심사는 대학 교육의 정점에 놓인 과정이며 한 연구자가 지금까지 축적해 온 학문적 업적을 종합적으로 평가받는 자리다. 그렇기에 이 과정은 무엇보다도 신중하고 엄정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대학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 중요한 과정이 놀라울 만큼 값싸게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일부 대학의 사례를 보면 석·박사 논문 심사위원에게 지급되는 수당은 한 편당 몇만 원 수준에 그치고 있다. 언뜻 신성한 학위 과정 평가를 금액으로 환산하는 일이 속물스러운 일일 수 있으나 그 이면을 생각해 보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논문 한 편을 읽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연구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연구 방법론이 적절한지 판단해야 하며, 수정 방향까지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감안하면 심사위원에게 지급되는 심사비는 사실상 부족하다. 오랜 시간 논문을 검토하고 학문의 성취를 평가하는 고도의 판단을 내리면서도 돌아오는 보상이 얼마 되지 않을 때, 심사위원은 자신의 전문성과 시간이 헐값으로 취급된다는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논문 심사료 구조는 지도교수와 심사위원, 학생 모두를 난처하게 만든다. 지도교수는 턱없이 낮은 수당을 알기에 외부 심사위원을 위촉하기도 어렵고 위촉해도 금액을 선뜻 말하기 어렵다. 심사위원 역시 수고에 비해 적은 보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도 관계를 고려해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이처럼 낮은 비용 구조는 두 가지 문제를 드러낸다. 첫째, 전문 노동에 대한 명백한 저평가다. 박사 논문 심사는 해당 분야에서 오랜 시간 연구를 축적한 전문가만이 수행할 수 있는 고도의 지적 작업이다. 그럼에도 논문 심사로 지급되는 금액은 단순 행정 업무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둘째, 심사의 질을 위협할 가능성이다. 물론 많은 교수들이 학자의 양심으로 심사에 임하고 있지만 제도적으로 정당한 보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과정이 점차 형식화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검토하기보다 최소한의 기준만 확인하는 방식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이는 결국 학위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일로 직결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분명하다. 심사비를 대학 개별 예산이나 학생들이 내는 논문 지도비로 충당할 것이 아니라 정부와 교육부가 별도의 공적 재원으로 마련해야 한다. 국가가 학위의 공신력을 보증하는 만큼 그 평가 과정 역시 공적 책임 아래 두어야 한다. 적정 수준의 심사비를 국가가 지원하고 표준화한다면 심사의 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학위는 단순한 종이 한 장이 아니라 한 사회가 특정한 수준의 학문적 성취를 인정한다는 확인증이다. 그렇다면 그 평가 과정 또한 그에 걸맞은 학문적 존중과 경제적 보상을 받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비용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행위에 대해 정당한 비용을 지급하는 일이다. 이미경 미술사학자
  • “고려인, ‘불쌍한 동포’ 아닌 중앙亞 개척자… 한류 덕에 자신감”[월요인터뷰]

    “고려인, ‘불쌍한 동포’ 아닌 중앙亞 개척자… 한류 덕에 자신감”[월요인터뷰]

    러 연해주서 카자흐로 강제 이주 한국말 잃고 유랑민의 슬픔 체감고려일보·극장 통해 공동체 유지낯선 땅에서 풍부한 정체성 얻어발전한 한국 보며 깊은 감동 느껴 한국어·음식 인기 덕에 당당해져러 독립운동사, 민족 뿌리 찾는 일가족사 담은 회고록, 역사로 남길“기록되지 않은 고통은 개인의 슬픔으로 사라집니다. 글로 남길 때 비로소 민족의 역사가 됩니다. 강제 이주라는 절박한 상황 속 고려인들은 우리말 신문(고려일보)과 극장(고려극장)을 지켜냈습니다” 고려인 지식인이자 카자흐스탄 미술계의 거장인 리 까밀라 비딸리예브나(82) 여사는 “고려인을 중앙아시아에 한민족의 강인한 생명력을 심은 개척자로 봐달라”며 이렇게 말했다. 미술사학자인 리 여사는 고려인의 디아스포라(강제 이주) 생존사를 기록한 회고록 ‘나는 자고배(혼혈인)다’를 지난 3월 광주 월곡고려인문화관에서 공개했다. 회고록에는 그의 아버지이자 카자흐스탄 지질학의 선구자인 리 비딸리 가브릴로비츠(1915~1999) 선생의 강제 이주와 가족의 굴곡이 담겼다. 강제 이주로 인한 고려인들의 중앙아시아 거주는 내년이면 90년이다. 월곡고려인문화관의 초청으로 방한한 리 여사를 서울 중구 한국국제교류재단(KF) 서울사무소에서 지난달 10일 만났다. 러시아어 통역은 김병학 월곡고려인문화관장이 맡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자고배는 어떤 의미인가. “자고배는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이 타 민족과 결혼해 낳은 아이를 부르던 말이다. 나는 고려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내게 이 단어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고독한 경계인의 낙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내 안에는 러시아어라는 사유의 도구와 고려인 특유의 끈질긴 생명력이 함께 흐르고 있다.” -가족이 강제 이주 당한 건가. “전주 이씨인 할아버지(리환유)는 구한말 서울에서 연해주로 이주했다. 하지만 스탈린 집권기인 1937년 9월, 고려인들이 일제의 간첩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강제 이주 명령이 내려졌다. 고모부이자 항일 독립투쟁가인 김 미하일 미하일로비츠(1896~1938)는 간첩 누명을 쓰고 처형당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지질학을 공부하던 아버지는 카자흐스탄 악쭈빈스크에서 천신만고 끝에 가족과 재회했다. 이후 지질탐사대원으로 파견된 곳에서 지질학도였던 러시아인 어머니(나르바이트 갈리나 옌소브나)를 만났다. 외할아버지 역시 공산당 간부였으나 독일 간첩 누명을 쓰고 처형된 터라, 두 분은 동서양에서 ‘인민의 원수’ 가족이라는 아픔을 공유하며 부부의 연을 맺었다.” -고려인의 정체성을 언제 느꼈나. “소련 시절인 16세 때 첫 여권을 만들며 민족 표기란에 ‘러시아인’으로 적었다. 어머니는 제가 러시아 문화권에서 자랐으니 러시아인으로 등록하길 바랬다. 하지만 여권을 본 아버지의 실망 가득한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제 겉모습도, 내면의 끌림도 러시아인이 아니었다. 결국 18세 때 당국에 ‘여권을 분실했다’고 말하고 ‘고려인’으로 정정했다. 내 진짜 이름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디아스포라를 겪은 고려인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낯선 땅에 던져졌으나 그곳에 자신만의 뿌리를 깊게 내린 당당한 개척자들이다. 내 몸 안에는 고려인의 피가 흐르고, 내 사유는 러시아어로 이뤄지며, 내 삶의 터전은 카자흐스탄이다. 이 세 세계가 하나로 어우러진 모습이 바로 오늘날 고려인의 정체성이다. 이는 남들이 갖지 못한 ‘두 배의 풍요’라고 본다.” -고려인으로서 정체성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미술사학자인 나는 그 사람이 발을 딛고 선 ‘문화적 토양’을 중요하게 본다. 내 몸을 키운 것은 카자흐스탄의 대지이지만, 내 영혼의 뿌리는 조상들의 땅, 한국을 향해 뻗어 있었다. 정체성이란 단순히 어디서 태어났느냐가 아니라, 영혼이 어디를 지향하고 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고려인 사회에서 한국어는 어느 정도 사용되나. “냉정하게 말해, 우리 세대와 젊은 세대 모두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한다. 강제 이주 이후 소련의 강력한 동화 정책 속에서 우리는 생존을 위해 러시아어를 선택해야만 했다. 한국어를 쓰시던 할머니와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을 때, 할머니의 눈빛 속에 담긴 그 수많은 사연을 끝내 다 이해할 수 없었을 때, 언어를 잃어버린 디아스포라의 슬픔을 뼈저리게 느꼈다.” -고려인 공동체가 붕괴하지 않고 정체성을 지켜온 비결은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두 개의 기둥이 있다. 하나는 우리말 신문 ‘고려일보’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극장’이다. 1937년 강제 이주라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고려인들은 신문사의 활자 주조기와 무대 의상을 챙겨 화물열차에 올랐다. 먹을 빵조차 부족하던 시절에도 언어와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1938년 ‘레닌 기치’로 개칭됐다가 1991년 이름을 되찾은) 고려일보는 우리가 누구인지 잊지 않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극장은 문을 열었고, 사람들은 민족의 노래와 춤, 연극을 보며 영혼을 치유했다.” -1937년 강제 이주 당시 고려인들의 수난사가 가슴 아프다. “당시 연해주에서 화물열차에 실려 6000㎞를 이동한 고려인들이 내던져진 곳은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이었다. 영하 40도의 칼바람이 부는 그 벌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사투를 벌였다. 천막조차 부족했던 그곳에서 어른들은 원을 그리며 겹겹이 늘어섰다. 그리고는 그 한복판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자신들의 몸으로 칼바람을 막아내는 ‘인간 벽’이 됐다. 밤새도록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지만, 아침이 밝으면 가장 바깥쪽에 섰던 어른들은 얼어 죽은 채 발견되곤 했다.” -어떻게 살아남았나. “황무지에서 고려인들은 땅을 파고 볏짚이나 누더기를 덮어 ‘토굴’을 만들어 버텼다. 하지만 그 비극 속에서도 생명의 끈을 이어준 것은 이름 모를 현지인들의 자비였다. 고려인들이 처음 정착했을 때, 카자흐스탄 아이들이 우리를 향해 하얀 돌멩이 같은 것을 던졌다. 처음에는 우리를 공격하거나 조롱하는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그것은 ‘쿠르트’라고 불리는 딱딱하게 말린 치즈였다. 카자흐스탄인들의 포용력이 없었다면 고려인의 역사는 거기서 끊겼을지도 모른다. 서로를 겹겹이 에워싸며 추위를 견디는 우리를 보고 그들의 마음이 움직였다고 들었다.” -카자흐스탄 내 고려인 규모는. “현재 카자흐스탄에는 10만~11만명의 고려인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조상의 땅인 한국에도 이미 8만명 이상이 돌아와 정착했다고 한다. 전 세계 50만명이 넘는 고려인이 유라시아 대륙과 한반도를 잇는 거대한 ‘글로벌 인간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셈이다.”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의 정체성이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나. “글로벌화로 민족의 경계가 옅어지는 상황이라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그 답을 한국의 태극기에서 찾곤 한다. 미술사학자의 시각에서 보면 태극기는 단순한 국기가 아니라, 대조적인 두 색이 완벽한 질서를 이루는 예술품이다. 빨강과 파랑이 서로 밀어내지 않고 하나의 원 안에서 섞이듯, 내 안의 서로 다른 민족적 뿌리들도 그렇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나는 평소 이러한 ‘대조와 조화’라는 한국적 미학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 -평소 모국에 대한 생각은 어떠했나. “아버지는 평생 한반도 땅을 밟길 열망했다. 1960년대 북한으로부터 지질부 장관직을 제안받고 평양으로 가려고 했으나 인재 유출을 우려한 소련 당국의 만류로 무산됐다. 냉전 이후 아버지가 처음 한국을 방문해 눈부신 발전상을 보고 깊이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이번에 한국에서 잘 정리된 공업지대와 농업지대를 보며,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해 왔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고려인의 비극적 가족사’를 기록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아버지는 지질학자로서 땅속의 자원을 캤지만, 나는 그가 남긴 ‘기억의 자원’을 캐 이 자리에 섰다. 연해주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이끌었던 고모부 김 미하일 같은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도 없었을 것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처절하게 싸웠지만 ‘인민의 원수’나 ‘간첩’이라는 오명을 쓰고 숙청당해야 했던 삶을 잊을 수 없다. 우리가 그 이름을 다시 불러주고 기록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일이 아니라 민족의 자존심을 수습하고 복원하는 일이다.” -고려인에게 한국적 요소는 남아있나. “돌잔치 문화다. 현지에서는 ‘톨(Tol)’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1937년 척박한 땅에서도 아이의 첫 생일만큼은 반드시 챙겼다. 쌀과 돈, 실과 연필을 상에 올리고 아이의 미래를 축복하는 돌잡이 전통은 살아있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이 문화가 카자흐스탄인들 사이에서도 전파됐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민족이 긴 시간 속에서 어떻게 하나로 섞이고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한류의 위상이 높아진 덕분일까. “카자흐스탄 대학의 한국어학과를 보면 그 변화가 명확하다. 과거에는 주로 고려인 학생들이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어를 전공했지만, 지금은 한국어학과 학생의 대다수가 카자흐인을 비롯한 타민족 학생들이다. 한국어는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2외국어 중 하나가 됐고, 시내 식당에서도 카자흐인들이 젓가락을 사용하며 한국 음식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류는 고려인들이 현지 사회에서 더욱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준 든든한 배경이 됐다.” -한국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고려인을 ‘불쌍한 동포’로만 보지 말아 달라. 우리는 비극 속에서도 카자흐스탄을 함께 일궈낸 당당한 주역이자 개척자들이다. 분단과 유랑의 역사는 우리 모두의 몸에 새겨진 공동의 흉터다. 고려인의 역사를 남의 이야기가 아닌 ‘민족의 확장된 외연’으로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 기록된 고난은 위대한 역사가 된다. 우리가 기록을 멈추지 않을 때 우리의 자존심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리 까밀라 비딸리예브나 여사는 소련 시절인 1944년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알마티 외국어사범대와 미술 명문 대학인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알마티 과학아카데미 대학원을 나와 카자흐스탄 조형미술 연구센터 학술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여 건의 논문과 기고 등 저술 활동을 한 미술사학자이자 미술평론가다. 카자흐스탄 정부로부터 문화공로훈장과 대통령 표창, 공훈 활동가 칭호 등을 받았다. 현재 유네스코 산하 국제미술평론협회 회원이다.
  •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퐁피두의 질문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퐁피두의 질문

    이달 초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국빈 방한 중 여의도 63빌딩 별관으로 향했다. 그가 찾은 곳은 퐁피두센터 한화였다. 현장에는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김수자, 이배와 함께 신진 작가들도 자리했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이 방문은 단순한 의전이 아니었다. 프랑스가 한국의 미술계를 얼마나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신호탄이었다. 퐁피두센터 한화는 오는 6월 4일 공식 개관한다. 루브르와 오르세에 이어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인 퐁피두센터가 아시아에서 민간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어 분관을 여는 건 처음이다. 첫 전시는 큐비즘을 주제로 피카소, 브라크, 들로네 등의 작품을 선보이는 대규모 기획전이다. 이후 4년간 마티스, 샤갈, 칸딘스키 등 20세기 모더니즘의 핵심 컬렉션이 차례로 소개될 예정이다. 이 사업의 의미는 단순한 해외 유명 미술관 유치를 넘어선다. 퐁피두는 한국을 선택한 이유로 “아시아에서 가장 뜨거운 미술시장이자 젊은 세대의 참여도가 높은 문화예술 허브”라는 점을 꼽았다. 이는 한국 미술의 현재 위상을 확인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로 국제 미술시장의 이목을 집중시킨 서울이 이제 현대미술을 직접 들여오는 단계로 올라선 것이다. 퐁피두는 2025년 9월 문을 닫고 2030년 재개관을 목표로 현재 대규모 보수 공사에 들어간 상태다. 본관이 닫힌 지금, 퐁피두는 분관과 순회전 활용으로 오히려 더 넓은 세계와 만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2010년 프랑스 메츠를 시작으로 스페인 말라가, 중국 상하이에 분관을 운영해 온 경험이 그 기반이다. 개관 첫해 퐁피두센터 메츠는 쇠락하던 중소 도시에 문화적 활력을 불어넣었고, 피카소 탄생지에 자리잡은 퐁피두센터 말라가는 관광도시 브랜드를 강화하는 효과를 거뒀다. 반면 뉴저지에 개관하기로 했던 퐁피두센터 저지시티의 경우 지역 정치인들의 반대와 재정 적자로 공식 취소되었다. 퐁피두센터 한화에 거는 기대만큼 우려도 크다. 계열사 출연금으로 운영되는 구조는 지속 가능성의 숙제를 안고 있으며, 4년 단기 계약이라는 한계도 그 이후를 걱정하게 만든다. 해법은 상하이 분관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2019년 출범한 퐁피두센터 상하이는 개관 직후 코로나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았음에도 2023년 파트너십 연장을 이끌어냈다. 중국 작가 6명의 개인전을 열었고, 신진 작가 전용 갤러리를 운영했다. 계약 연장의 핵심 성과는 신진 작가 발굴과 지원을 더욱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퐁피두센터 한화에도 같은 원칙이 필요하다. 한국 관람객과 작가들에게 실질적 흔적을 남기는 전시를 하는 게 흥행과 재계약의 지름길이다. 한국 작가와의 협업을 전시 구조 안으로 끌어들일 때 단순한 브랜드 유치를 넘어설 수 있다. 퐁피두라는 이름은 매력적이지만 그 이름을 유지하는 비용과 미술계의 공감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언제든 계약은 취소될 수 있다는 게 이미 사라진 다른 분관 사례들이 보여 준 현실이다. 이미경 미술사학자
  •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문송합니다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문송합니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뜻의 ‘문송합니다’라는 말도 이젠 옛날 얘기다. 이 말은 인문사회 전공생들이 자연과학 전공생에 비해 취업과 직무에서 선호도가 떨어지는 현상에 대한 자조적 표현이다. 한국의 인문사회 분야 지원은 한국연구재단을 중심으로 유지돼 왔지만, 지난 10년 사이 인문학 지원의 구조적 축소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첫째, 인문사회 지원 비중의 구조적 축소다. 과학기술 분야는 기초연구사업, 연구기획과제, 과학기술 기반 조성, 과학기술 인력 양성으로 다원화돼 있는 데 반해 인문사회 분야는 인문사회 분야 학술연구지원사업으로 일원화돼 있다. 이 구조는 다시 인문학, 사회과학, 문화융복합 분야로 나뉘어 지원된다. 문제는 미술사·음악사·체육사와 같은 예술사 분야가 독립된 영역으로 인정받기보다 문화융복합이라는 큰 범주 안에 묶여 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제한된 재원 안에서 서로 다른 성격의 연구들이 경쟁하게 되며 예술사 분야는 상대적으로 더욱 치열한 선정 경쟁에 놓이게 됐다. 둘째, 인문학 지원 과제 수 감소나 폐지다. 과학기술 분야 기초연구사업 개인연구의 경우 1~10년 등 다양한 연구 기간과 함께 5000만원에서 16억원까지 제시돼 있다. 이공계 박사후 국내 연수 제도는 1~3년간 6000만원을 지원한다. 인문사회 연구자들이 체감하는 지원 축소는 더욱 크다. 인문계 박사후 국내 연수는 1~2년간 3400만원을 지원했으나 그마저도 2021년 이후 폐지됐다. 이는 단순한 예산 배분 문제가 아니라 정책 우선순위에서 인문사회가 후순위로 밀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 셋째, 인문학 과제의 단기, 소액 과제로의 전환이다. 연구재단이 지원하는 개인 연구 장기지원 프로젝트는 학술연구교수 A형(5년, 4000만원), 신진연구(1~3년, 2000만원), 중견연구(10년 1000만원, 혹은 2~3년 2000만원) 지원이 있다. 개인 연구는 학술연구교수 B형(1년, 2000만원) 단기 과제 중심으로 편성돼 있다. 이는 연구의 지속성과 심화 가능성을 제한하고, 성과를 단기에 내야 하는 구조를 강화한다. 또한 학술연구교수 A, B형 구분은 행정 편의를 위한 형식적 분류 용어로 명칭만으로는 그 차이를 파악하기 어렵다. 최근 국가 연구개발(R&D) 정책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전략기술 등 산업 연계 분야에 집중되면서, 인문사회는 융합이나 보조적 역할로 편입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 결과는 인문학 비중 축소, 과제 수와 분야 감소, 연구 기반 약화, 단기화라는 구조적 변화로 요약된다. 이로 인해 인문사회 연구는 장기적 사유보다 단기 성과 중심으로 재편됐다. 이런 상황에서 인문사회 연구자들은 탈락과 낙오를 반복하며 연구 생활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과 과학기술을 결합해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와 개발이 미래의 경제 성장과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에 공감하나 길이가 다른 날개로는 날 수가 없음을 새겨 봐야 한다. 이미경 미술사학자
  • 영화 속에 담긴 우리의 전통문화를 찾아서[정지욱의 창가에서 바라 본 영화]

    영화 속에 담긴 우리의 전통문화를 찾아서[정지욱의 창가에서 바라 본 영화]

    연초부터 미국에서 날아든 K컬처 관련 낭보에 많은 이들이 설레고 있다. 먼저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주제가상과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해 2관왕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뒤이어 ‘케데헌’이 아카데미에서도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며 K콘텐츠의 저력을 재확인시켰다. ‘케데헌’은 알다시피 미국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한국계 미국인 매기 강 감독이 연출한 K컬처를 담아낸 작품이다.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K팝과 한국의 전통문화 속 신비롭고 해학 넘치는 캐릭터를 잘 버무렸다. 비록 한국 애니메이션은 아니지만 한국계 감독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 공개 후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과 인기를 모았고, 극장에서 ‘싱얼롱 버전’의 상영도 이어지는 등 화제가 된 작품이다. 지난해 여름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한 강 감독을 유홍준 관장이 직접 안내했고 유 관장이 “백자 달항아리는 어질고 친숙한 맛이 있고, 불가사의한 아름다움을 지닌다”고 설명하자 강 감독은 “설명을 듣고 보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얘기하며 한국 전통 미술의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케데헌’의 여파에 힘입은 듯 국립중앙박물관의 문화상품인 뮷즈(뮤지엄+굿즈)가 날개 돋친 듯 팔린다. 또한 박물관에 관람객이 몰려들어 주말이면 주차장에 들어서려는 차들로 박물관 인근이 북새통을 이룬다. 겨울방학을 맞은 지금도 관람객들로 가득하다. 박물관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 역시 크게 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해 관람객 650만명이 찾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873만명)과 바티칸 박물관(682만명)에 이어 세계 주요 박물관 가운데 관람객 순위 3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한 ‘케데헌’을 바라보는 눈길도 다양한데 학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해 연말에 열린 한국미술사학교육학회에서는 ‘케데헌의 도상학’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케데헌’과 한국 전통미술·도상학을 연결해 ‘케데헌과 해태의 도상학’, ‘저승사자의 도상과 그 변천’, ‘케데헌과 경복궁’, ‘케데헌 포스터의 도상학적 접근’ 등 한국 전통의 이미지, 상징의 의미를 해석하고 토론했다. 리움미술관의 ‘까치호랑이 호작(虎鵲)’전도 마찬가지 의미에서 열리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영화 중에는 이런 작품이 없을까 생각해 보니 임권택 감독이 2002년 연출한 ‘취화선’이 떠오른다. 이 영화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단원 김홍도(1745~?), 혜원 신윤복(1758~?)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오원 장승업(1843~1897)의 일대기를 담았다. 거지소년에서 천재 화가로 거듭나는 장승업의 예술과 당시 사회상을 담아 임 감독은 제55회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다. 영화에서는 화가이며 중앙대 교수를 역임한 김선두 작가가 장승업 역 최민식 배우의 손을 대신해 그림을 담아냈고 김근중, 이종목, 조순호 등 소장파 한국화 작가들이 영화 속 도화서 화원 화가로 분장해 스크린 속 화폭을 아름답고도 사실적으로 채워 줬다. 영화가 개봉된 이듬해인 2003년 봄 사간동의 한 미술관에서는 ‘취화선, 그림으로 만나다’라는 전시를 열어 작품에 등장했던 작품들을 관람객들이 직접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는 영화와 미술의 만남, 전통과 현대의 접속, 한국 전통문화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도 아쉬움은 남는다. 개봉 당시 프랑스문화원 주최로 열린 시사회에서 미학자이며 문화평론가인 서경대 이즈미 지하루 교수가 지적했듯이 장승업의 기준작을 비롯해 진작이 한 점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은 많이 아쉬웠다. 영화에 출연하는 등 뛰어난 실력을 지닌 소장파 작가들의 심혈을 기울인 모작들로 채워졌지만, 영화 속에 진작이 전혀 등장하지 않음은 후대에 이 작품을 통해 장승업을 평가함에 다소 부족함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리라. 이후 신윤복을 다룬 전윤수 감독의 영화 ‘미인도’(2008)나 조선 중종 때 기생 황진이의 삶을 다룬 장윤현 감독의 영화 ‘황진이’(2007)와 김철규 피디의 드라마 ‘황진이’(2006) 등 전통문화를 담은 사극 작품이 있었으나 여러 아쉬움을 남겼다. 전통문화를 재현하는 것은 막대한 예산뿐 아니라 치밀한 인문학적 해석이 전제돼야 한다는 화두를 다시금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주면 설 연휴가 시작된다. 추석과 함께 한국 영화산업에서 가장 큰 관객몰이를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올해 설 영화 라인업에 반갑게도 한국 사극 영화가 있다. 1457년 청령포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과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어린 임금(단종)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장항준 감독이 연출했다. 설을 맞아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고, 이 작품을 통해 역사적 사실에 관심을 갖게 됐으면 좋겠다. 그것이 애절한 역사적 사실을 담아낸 작품임에도, 영화 속에 재현된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에 조금이나마 감동해 한 발짝 다가간다면 많은 영화인들이 무척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정지욱 영화평론가
  •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신사와 선비의 패션 아이템, 모자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신사와 선비의 패션 아이템, 모자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그 자체로 오늘의 K문화를 상징하기에 이르렀다. 전통문화 요소를 적극 차용하며 글로벌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다. 그중에서도 주인공들이 착용한 검은 갓은 외국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한국적 이미지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부상했다. 실제로 일부 관광지에서는 외국인들이 한복과 함께 갓을 쓰는 장면이 늘었으며, 갓을 모티프로 한 전시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갓은 조선 시대 남성의 예복에 포함된 필수품으로 사회적 지위와 품격을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이다. 그러나 유교적 가치가 지배적이었던 조선 사회에서 선비가 갓을 갖추어 쓰는 것은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인격과 위엄을 표현하는 행위였다. 갓이 신분과 권위를 드러내는 소품이라는 점에서 신사의 상징인 실크햇과 비교할 만하다. 실크햇은 신흥 부르주아와 귀족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이었고, 공식 석상의 필수 예복이었다. 그러나 남성복이 경량화되고 활동성을 중시하면서 가볍고 관리가 쉬운 모자로 대체됐다. 또한 공원, 강, 바다 등 근대적 여가 공간이 확대되면서 파리 사람들은 모자를 쓸 기회가 많아졌다. 파리의 모자 상점은 패션 트렌드를 이끌며 고급문화와 소비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이 됐다. 19세기 인상파와 신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에는 다양한 모자가 등장한다. 르누아르의 ‘선상 파티’에는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의 모자와 보닛이 등장한다. 쇠라의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에도 모자가 사회 계층과 패션을 구분하는 시각적 장치로 표현된다. 19세기 모자 산업의 발전은 곧 프랑스 명품 산업의 토대가 됐다. 파리의 모자 상점들은 예술적 디자인과 장인정신을 강조하며 고급 주문생산 체계를 확립했다. 이는 고급성과 희소성을 중시하는 명품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었고, 모자는 패션을 완성하는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경험은 오트 쿠튀르와 럭셔리 브랜드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며 프랑스를 세계 명품 산업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늘날 갓은 생활 복식으로서의 기능을 잃었으나 한국다움의 문화 아이콘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젊은 세대는 갓을 ‘케데헌’과 드라마 ‘킹덤’, 갓 전시와 미술관 굿즈를 통해 ‘힙한 소품’으로 소비한다. ‘케데헌’의 갓 연출은 이런 흐름을 대표하는 사례로서 전통적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세계인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K문화’로 확장한 것이다. 결국 갓은 과거에는 유교 사회의 규범을 담은 예복이었고, 현재는 한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시각적 코드로 기능한다. ‘케데헌’은 이 두 의미를 절묘하게 연결하며, 과거 속에 우리 미래가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갓의 이미지가 무분별하게 소비되거나 굿즈의 대량생산으로 인한 질 저하와 상업화의 위험도 존재한다. 전통을 존중하며 동시에 친환경 소재 활용과 공정 생산 방식을 도입해 현대 소비자 윤리에 맞출 필요가 있다. 이미경 미술사학자
  • 한국 단색화 거장의 작품 세계, 파주에 깃들다

    한국 단색화 거장의 작품 세계, 파주에 깃들다

    아카이브·강연 등 예술의 장 활짝“아흔 살 되는 해에 오랜 꿈 이뤄져” “오늘이 최고의 날입니다.”(하종현 화백) 한국 단색화의 거장으로 미술 안팎의 역사를 증언해 온 하종현(90) 화백의 이름을 딴 ‘하종현 아트센터’가 9월 1일 경기 파주 문발동에 문을 연다. 개관에 앞서 지난 29일 기자들과 만난 하 화백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풍채 좋던 과거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평생 소원을 이룬 화백은 “나는 먼저 가렵니다. 가서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라며 농담을 건넸다. 현장을 함께한 그의 아들 하윤 연세대 의대 교수는 “아트센터 개관은 아버지의 오랜 꿈이자 가장 큰 꿈이었는데 아흔 살이 되는 해에 이루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트센터는 연면적 2967㎡(약 897평), 지상 4층짜리 규모로 조성됐다. 1전시장에는 높은 층고를 활용한 대형 ‘접합’ 작품들을 전시했다. 1974년부터 선보인 ‘접합’은 화백의 대표 연작으로 ‘배압법’이라는 독자적 기법을 활용한다. 올 굵은 마대 뒷면에서 앞면으로 빠져나오게 한 물감을 밀어내거나 형태를 그려 넣는 기법이다. 높이 3m에 가까운 캔버스에서 위로 밀려 올라간 채 굳어 버린 물감은 마치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전의 파도처럼 느껴진다. 2021년 스위스 아트 바젤에서 선보였던 ‘접합’ 연작과 마대, 철조망 등으로 꾸린 설치작품도 만날 수 있다. 2전시장에서는 전위예술을 이끌던 한국아방가르드협회장이었던 그가 철조망, 용수철 등을 이용해 만든 오브제와 1960~70년대 초반의 회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차갑고 폭력적인 재료를 활용한 작업은 1970년대 한국을 짓밟았던 군사정권에 대한 소리 없는 저항이자 시대에 대한 증언이다. 같은 층 아카이브 공간에는 주요 전시 도록과 사진, 영상, 디올과 협업했던 가방 등을 전시했다. 3전시장에서는 다양한 시기의 ‘접합’ 연작을 선보이며, 4전시장에서는 2010년 시작한 ‘이후접합’ 연작을 만날 수 있다. 배압법을 응용한 ‘이후접합’은 색과 형태뿐 아니라 회화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을 재해석하고 탐구한 작업이다. ‘접합’이 마대를 평면적으로 사용하고 두꺼운 물감으로 물성을 살렸다면 ‘이후접합’은 나무, 거울 등 사물 자체의 물성으로 새로운 표면을 형성한다. 개관일에는 제14회 하종현미술상 시상식도 진행된다. 서울시립미술관장을 지낸 하 화백이 홍익대에서 퇴임한 뒤 사회 환원과 후학 양성을 위해 2001년 제정한 상이다. 동시대 작가뿐만 아니라 평론가, 큐레이터 등 국내외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인물에게 수여된다. 올해 수상자로는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과 미술사학자이자 큐레이터인 애슐리 롤링스가 선정됐다. 아트센터는 앞으로 화백 개인의 아카이브와 전시뿐만 아니라 강연, 세미나, 연구 프로그램 등을 선보이며 동시대 예술 담론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하 화백은 “아트센터가 현대미술을 탐구하고 발전시키는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 [책꽂이]

    [책꽂이]

    폭력의 유산(캐럴라인 엘킨스 지음, 김현정 옮김, 윤영휘 감수, 상상스퀘어) 수백 건의 기록과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영국이 자행한 국가적 폭력의 실체를 폭로했다. 영국 제국주의를 ‘폭력 그 자체’라고 규정한 저자는 영국이 만든 ‘피의 역사’를 낱낱이 고발하면서 지금 일어나는 국제 분쟁의 씨앗이었음을 증명한다. 20세기 초 영국이 팔레스타인 땅을 두고 아랍인과 유대인에게 적용한 이중적 정책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낳았고 ‘문명화 사명’이라는 명분으로 인도, 파키스탄, 이란, 아프리카 등에 제국주의적 폭력을 행사했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폭력과 착취를 정당화했던 영국 제국주의가 몰락하기까지 세계사 흐름을 조망하면서 오늘을 이해하는 통찰에 다가서게 된다. 1148쪽. 4만 4000원. 솜씨-DNA(이종선 지음, 홀리데이북스) 현대 과학으로 풀기 어려운 청동기 시대 정문경의 정밀한 문양부터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휩쓰는 기능공들까지, 우리 민족에게는 눈과 손에 관한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고고학자이자 미술사학자인 저자는 정문경, 천마총 금제관모, 팔만대장경, 고려자수 불화 등 조상의 놀라운 유물이 양궁, 골프, 씨름, e스포츠, 나노의학, 반도체 등 오늘날 우리의 솜씨와 기술에 어떻게 전승됐는지 흐름을 짚는다. 464쪽. 3만 5000원. 타자의 시선(김주용 지음, 선인) 원광대 역사문화학과 교수인 저자는 10년 전 독립기념관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중국 인민항일전쟁기념관과 항일독립운동사를 공동발간하는 기획에 참여했다. 발간 끝엔 한중 공동평화선언을 하고자 했으나 두 사업 모두 독립기념관 상급기관장의 압력으로 불발됐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역사를 파헤치고 항일투쟁사를 기록하려는 작업을 우호 관계를 해치는 일로 여기는 게 현실이다. 책에서 중국과 독일, 일본 언론 기사를 분석하면서 10년 전 미완의 작업을 잇고 평화와 공생을 논한다. 230쪽. 1만 6000원. 다시 쓰는 자살론(김명희 지음, 그린비) 자살은 개인의 정신적·심리적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양극화, 권위주의, 신자유주의 경쟁, 젠더·세대·지역 불평등 등 복합적인 사회구조가 빚어낸 집단 비극이다. 19세기 말 프랑스 학자 에밀 뒤르켐이 개척한 사회학적 통찰을 되살리면서 그의 미완 개념인 ‘숙명론적 자살’을 한국 사회의 자살 현상을 분석하는 도구로 삼아 사회적 책임을 사유하게 한다. 616쪽. 3만 5000원.
  •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아트숍을 지나야 출구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아트숍을 지나야 출구

    ‘뮷즈’, 즉 ‘박물관 상품’이라는 말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전시를 본 뒤 방문하는 아트숍은 미술관 관람 경험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특히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의 주요 미술관들은 이 아트 상품 전략에서 선도적이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는 회화 중심 미술관답게 고전 명화들을 응용한 상품이 주를 이룬다. 반 에이크, 터너, 모네 등의 작품을 활용한 에코백, 머그컵, 마그네틱이 대표적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하 ‘메트’)은 전통과 권위를 상품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사례다. 방대한 소장품을 자산으로 삼아 고대 이집트 장신구, 중세 십자가 문양, 르네상스 회화 등을 응용한 주얼리, 액세서리 상품이 특히 강세다. 최근에는 ‘The Met Store’ 브랜드로 자체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뉴욕의 현대미술관(이하 ‘MoMA’)은 디자인 미술관답게 아트 상품 자체를 오브제로 승화시킨 사례로 주목받는다. 이곳의 상품은 펜톤 램프, 알바 알토의 꽃병, USM 가구 등이며 MoMA 로고가 박힌 에코백도 인기다. 모든 디자인은 큐레이터가 승인한 정품으로서 디자인 자체를 ‘예술적 경험’으로 제시하는 전략이 다른 미술관들과의 차별점이다. 현재 국내 미술관 관련 좋은 소식이 예술계뿐 아니라 방송계 전파를 타고 있다.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의 관람객 수 증가와 무료입장인 박물관의 수입이 증대됐다는 소식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통 유물과 한국적 문양을 활용한 상품이 주를 이루며, 실용적이면서도 유머 있는 디자인으로 관광객에게 인기다. 특히 인기 아이돌 가수의 방문과 아트 상품 구입은 박물관 관람과 구매를 독려한 일등 공신이다. 이렇듯 미술관 상품은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내셔널 갤러리는 고전 명화의 현대적 변형, 메트는 전통의 재해석, MoMA는 디자인 오브제화, 휘트니 미술관은 작가와의 협업, 뭉크 미술관은 지역성과 예술가의 정체성을 앞세운 전략을 펼친다. 관람객들은 이제 전시만으로 미술관을 기억하지 않는다. 미술관에서 구입한 아트 상품이 미술관을 지속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미술관 아트숍은 이제 부속 공간이 아니라 미술관 브랜드를 확장하는 중요한 문화 공간인 셈이다. 그러나 아트숍의 성장은 생각해 볼 만한 문제를 던져 주었다. 뱅크시의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미술관의 노골적인 상업주의를 비꼰 설치 작품으로, 작품 관람 직후 아트숍으로 향하게 하는 동선을 비판한다. 그는 미술이 상품으로 환원되는 현실을 풍자하면서, 예술과 자본의 관계에 질문을 던진다. 특히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전시장 내 상업 공간 배치에 대한 비판적 재고, 아트 상품의 예술적 가치와 상업성 간 균형, 아트 상품이 예술 감상의 본질을 왜곡하지 않도록 하는 가이드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예술과 소비의 경계를 묻는 지금, 박물관과 미술관은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를 균형 있게 조율해야 한다. 이미경 미술사학자
  • 유홍준 신임 국립중앙박물관장 “K컬쳐 뿌리 박물관, 문화 강국 위상 보여주겠다”

    유홍준 신임 국립중앙박물관장 “K컬쳐 뿌리 박물관, 문화 강국 위상 보여주겠다”

    “K컬처의 뿌리가 여기(박물관)에 있음을 국민에게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세계만방에 알려 ‘K문화강국’의 위상을 드높이라는 시대적 요구와 명령 앞에 놓여 있습니다.” 유홍준 신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취임식을 열고 시대가 박물관에게 요구하는 것이 변화하고 늘어났다며 이제는 ‘문화강국’의 위상을 세계에 보여줘야한다고 강조했다. 유 관장은 이날 취임사에서 “누구보다 많이 박물관을 애용하면서 항시 밖에서 전적으로 응원해 왔는데 이 자리에 서고 보니 이제 객석에서 내려와 선수로 뛰게 된 기분”이라며 “국립박물관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문화재를 보존 관리하면서 그 가치를 연구하고 전시를 통해 이를 세상에 알리며 안으로는 국민에게 우리 문화재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밖으로는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박물관의 3대 구성요소는 유물, 건물, 사람인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며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박물관의 모습과 위상이 달라지고 그 성과는 어떤 형태로든 전시회를 통해 나타나고 수렴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상설전시든 기획전시든 좋은 전시를 위해서는 유물의 보존처리, 학술연구, 전시 디스플레이, 박물관 교육, 풍부한 아카이브, 대내외 홍보, 원활한 행정지원, 완벽한 안전, 긴밀한 민간협업, 친절한 민원 등이 원활히 수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 관장은 앞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13개 소속 국립박물관을 이끌게 된다. 유 관장은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했다. 영남대박물관장, 문화재청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로서 연구와 후학 양성에도 힘을 기울여 왔다.
  • 새만금개발청장에 김의겸… 중앙박물관장 유홍준 임명

    새만금개발청장에 김의겸… 중앙박물관장 유홍준 임명

    인사혁신처장 최동석 발탁금융위 부위원장에 권대영한동훈 “金, 청담동 가짜뉴스” 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김의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차관급인 새만금개발청장에 임명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20일 김 신임 청장을 비롯한 4곳의 차관급 인사를 단행했다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밝혔다. 김 청장은 새만금개발청이 위치한 전북 군산 출신이다. 강 대변인은 “새만금의 전략적 가치를 국민께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국내외 투자 유치에 필요한 미디어 전략을 수립하는 데 탁월한 성과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장에는 문화재청장을 지냈던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를 임명했다. 유 신임 관장은 저서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는 등 대중 참여형 문화 확산에 기여한 만큼 국립중앙박물관을 이끄는 데 적임자라고 평가받는다. 인사혁신처장에는 최동석 현 최동석인사조직연구소장을 발탁했다. 최 신임 처장은 한국은행 인사조직개혁팀장, 교보생명보험 인사조직 담당 부사장을 거치는 등 공공과 민간에서 인사·조직 관리 경험을 쌓았다.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에는 정통 금융위 공무원 출신의 권대영 현 금융위 사무처장을 임명했다. 6·27 부동산 대출 규제 정책을 설계한 담당자로 앞서 이 대통령이 충청권 타운홀미팅에서 “부동산 대출 제한 조치를 만들어 낸 분이다. 잘하셨다”고 공개 칭찬한 바 있다. 김 청장 인선에 대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법무부 장관 당시 저를 상대로 ‘청담동 첼리스트 술자리 가짜뉴스’를 유포했던 사람”이라며 “이 정부의 성공을 위한다면 재고하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이 대통령은 22일 파견될 캐나다 특사단장에는 김병주 민주당 의원을, 말레이시아 특사단장에는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임명했다.
  •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에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임명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에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임명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에 임명됐다. 광주비엔날레재단 이사장인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18일 시청 접견실에서 윤범모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임기는 18일부터 오는 2028년 7월 17일까지 3년간이다. 윤 대표이사는 40여년간 미술평론가, 미술사학자, 기획자, 행정가로서 국내 미술계에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후 가천대 명예교수, 동국대 명예석좌교수,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초대 회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맡아 한국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 대표이사와 광주비엔날레의 인연도 깊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창립 당시 집행위원 및 특별전 기획자를 맡았으며, 2014년에는 특별전 전시감독으로 활동했다. 이 밖에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예술총감독, 창원조각비엔날레 총감독 등 주요 국제행사에서 활약했다. 강기정 시장은 “윤 대표이사는 한국 미술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와 풍부한 현장 경험을 갖춘 적임자”라며 “다가오는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와 2026 광주비엔날레를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감동적인 행사로 만들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