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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극장에서 만나는 영국 무대 ‘NT 라이브’…최신작 3편 국내 상영

    국립극장에서 만나는 영국 무대 ‘NT 라이브’…최신작 3편 국내 상영

    국립극장이 영국 연극 무대의 화제작을 스크린으로 옮긴 NT 라이브(Live)를 9월 25~27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상영한다. ‘서쪽 나라의 멋쟁이’, ‘모두가 나의 아들’, ‘더 피프스 스텝’ 세 편을 하루 한 편씩 선보인다. NT 라이브는 영국 국립극장이 공연 실황을 고화질 영상으로 찍어 전 세계 극장에 배급하는 프로젝트다. 국립극장은 2014년 국내에 처음 이 프로그램을 들여와 ‘워 호스’, ‘프랑켄슈타인’ 등을 꾸준히 소개해 왔다. 이번에는 2025년 11월부터 2026년 5월까지 상영한 작품을 공개한다. 25일 상영하는 ‘서쪽 나라의 멋쟁이’는 아일랜드 작가 존 밀링턴 싱(1871~1909)의 문제작이다. 아버지의 선술집을 지키며 살던 페긴 플래허티 앞에 아버지를 죽였다고 털어놓는 청년 크리스티가 나타난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영웅으로 떠받든다. 인간의 허영과 맹목적인 군중심리를 겨눈 작품은 1907년 초연 당시 관객의 거센 반발을 사 ‘플레이보이 폭동’을 불렀다. 초연을 올렸던 아일랜드 애비 극장의 공동 총감독 겸 예술감독 카트리오나 맥러플린이 연출을 맡아 원작의 기발함에 재치와 활력을 보탰다. 넷플릭스 ‘브리저튼’의 니콜라 코클란이 페긴을, 아일랜드 영화·텔레비전상(IFTA) 남우주연상 수상자 에나 하드윅이 크리스티를 연기한다. 영국 가디언은 “디테일과 기교, 볼거리가 풍부한 연출”이라고 평했다. 26일에는 아서 밀러(1915~2005)의 대표작 ‘모두가 나의 아들’이 이어진다. 전쟁 중 군수 사업으로 큰 부를 쌓은 조 켈러 가족이 오래 감춰온 비밀과 마주하며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 도덕적 책임과 이기심의 경계를 묻는다. 연출은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 ‘헤다 가블러’로 고전을 자기 방식대로 다시 읽어온 이보 반 호브가 맡았다. 장식을 걷어낸 미니멀한 무대에 오랜 협업자 얀 페르스베이벨트의 조명이 더해져 인물들의 불안과 죄책감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2026년 올리비에상 최우수 리바이벌상과 남우조연상(파아파 에시에두)을 받으며 2관왕에 올랐다. 마지막 날인 27일에는 날카로운 대사와 파격적인 소재로 주목받아온 작가 데이비드 아일랜드의 신작 ‘더 피프스 스텝’을 상영한다. 알코올 의존증 치료의 12단계 프로그램을 오래 이어온 제임스가 신입 회원 루카의 멘토가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지던 두 사람은 가장 어두운 비밀을 털어놓는 제5단계에 이르러 신뢰에 금이 가고, 관계는 팽팽한 심리전으로 흘러간다. 올리비에상 수상자 잭 로던과 에미상·BAFTA 수상자 마틴 프리먼 단 두 사람이 무대를 채우며 고백과 믿음의 한계는 어디인가를 묻는다. 2025년 런던 웨스트엔드 소호플레이스 실황을 담았다. 아일랜드 고전과 미국 현대 희곡, 영국 신작이 사흘에 걸쳐 차례로 이어지는 셈이다. NT 라이브는 3년 만에 해오름극장으로 돌아와 대형 스크린과 최첨단 음향 시스템으로 만난다.
  • 부의 집중·패권 충돌·극단 정치… 1920년대가 보내온 ‘경고’ [모종린의 문화로 읽는 AI시대]

    부의 집중·패권 충돌·극단 정치… 1920년대가 보내온 ‘경고’ [모종린의 문화로 읽는 AI시대]

    미중 패권경쟁, 100년전과 닮은꼴‘군함·석유’ 대신 ‘반도체·AI’로 맞서부의 불평등은 자본주의 위기 불러극단주의·문화 충돌 ‘반작용’까지대공황·세계대전 필연적 역사 아냐‘불안한 번영’의 경고 외면한 대가중산층 경제·다자주의 질서 재정립‘자유주의 복원’으로 파국 막아야역사가 필요한 시대다. 인공지능(AI)이 산업과 노동시장의 지형을 재편하며 화이트칼라 일자리마저 위협하고, 무역과 기술을 넘어 군사와 이념의 영역으로 확산되는 미중 패권 경쟁의 핵심 대상으로 부상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극우 정당과 포퓰리즘 세력이 주류 정치로 복귀하는 반면 미국 Z세대에서는 사회주의에 대한 호감과 기술 권력에 대한 경계가 커지고 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보이는 변화들이 이제는 하나의 시대적 위기 속에서 얽히며 동시에 밀려오고 있다. 어느 것이 원인이고 어느 것이 결과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정책 하나, 정치인 한 명을 탓하는 진단으로는 이 복잡한 국면을 설명할 수 없다. 다만 흐름의 끝에서 경제위기와 정치적 극단화, 패권 충돌이라는 낯설지 않은 궤적이 어른거린다. 낯선 시대를 이해하려면 먼저 닮은 시대를 찾아야 한다. 미래는 반복되지 않지만 구조는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을 이해하는 데 특히 유용한 시대적 나침반이 바로 1920년대다. ●美서 주목한 1910년대론·1930년대론 현재 미국 학계는 1920년대보다 1910년대와 1930년대에 더 주목한다. 예일대 교수 오드 아르네 베스타는 지금을 1차 세계대전 전야에 견준다. 강대국의 세력균형이 흔들리고 민족주의와 경제적·인종적 긴장이 고조된 시기다. 그는 지금의 다극화가 1914년 이전의 불안정한 세력균형과 닮았다고 본다. 존스홉킨스대 교수 할 브랜즈는 대공황과 파시즘이 부상한 1930년대를 지목한다. 그는 중국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수정주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지금을 그 도전이 본격화되는 국면으로 읽는다. 두 견해는 서로 다른 시대를 호출하지만 국제질서의 불안정을 강대국 간 힘의 이동과 수정주의 세력의 도전에서 찾는다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국제정치라는 단일 축만으로는 불평등과 독점, 금융 불안정, 문화적 충돌 같은 자본주의 체제 내부의 위기를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특히 브랜즈의 1930년대론은 파시즘의 부상을 강조하지만 그 확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대공황이라는 경제위기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국제정치학은 강대국 간 힘의 재편을 설명하는 정교한 이론을 갖추고 있지만 자본주의 내부의 균열을 분석하는 축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그 빠진 축을 채워 줄 역사적 참조점이 1920년대다. 미국에서 1920년대는 흔히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로 불린다.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 시대를 ‘재즈 시대(Jazz Age)’라고 명명하고 대중화했다. 유럽도 비슷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그린 파리와 드라마 ‘바빌론 베를린’이 재현한 베를린에서는 예술과 대중문화가 도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전쟁 뒤 경제적 번영과 대량소비가 확산되고 도시문화는 새로운 해방감을 누렸다. 그러나 그 화려함 아래에서는 국제질서의 재편과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영국의 패권이 저물고 미국의 힘이 부상했지만 권력의 이양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워싱턴 해군군축조약과 국제연맹이 상징하듯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힘의 재배분은 진행 중이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채권국이 되고도 국제연맹 가입을 거부하며 패권국으로서의 책임을 주저했다. 지금의 미중 경쟁 역시 기존 패권국의 우위가 흔들리지만 신흥국이 기존 질서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한 과도기라는 점에서 닮았다. 1920년대 군함과 석유를 둘러싼 경쟁의 자리에는 오늘날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AI와 배터리가 놓여 있다. 자본주의 체제 내부의 유사성도 뚜렷하다. 미국 상위 1%의 소득 비중은 1920년대 말 다시 1차 세계대전 이전의 18~19% 수준에 이르렀다. 포드의 대량생산 체제 아래 ‘모델 T’가 대중 자동차로 자리잡으면서 소수의 거대 기업이 다수의 소비를 조직하는 산업 구조가 확립됐다. 할부 구매와 신용을 동원한 주식 투자가 확대됐고 과도한 부채와 투기는 금융 붕괴의 파괴력을 증폭시켰다. 피츠제럴드의 1925년작 ‘위대한 개츠비’가 화려함 아래 감춰진 공허를 그렸다면, ‘바빌론 베를린’은 그 이면의 정치를 보여 준다. 1929년 베를린의 재즈클럽에서 사람들이 춤추는 동안 거리에서는 공산주의자와 극우 세력이 충돌했다. 미국에서도 재즈 시대의 열기는 이민 배척주의, KKK의 재부흥, 적색공포와 나란히 존재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로 모습을 드러낸 극우 세력도 전쟁의 상처와 경제 불안, 불평등, 민족주의가 결합하며 성장했다. 지금도 플랫폼과 AI 붐을 이끄는 빅테크 기업의 천문학적 기업가치와 부의 집중은 1920년대를 연상시킨다. 동시에 예술과 문화는 인간의 정체성과 새로운 생활양식을 둘러싼 사회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주의가 중산층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문화적 진보주의가 이를 충분히 다루지 못하면서, 그 반작용으로 공동체와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유럽의 극우 정당 약진과 미국의 포퓰리즘 부상 속에서 인종과 이민, 젠더와 정체성을 둘러싼 문화충돌도 격화되고 있다. ●두 번의 전환이 겹친 시대 1920년대와 지금의 유사성을 관통하는 첫 번째 개념은 ‘패권전이’다. 강대국 간 힘의 배분이 재편될 때 기존 패권국은 쇠퇴하고 신흥국은 부상한다. 어느 쪽도 질서를 온전히 주도하지 못하는 과도기는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 두 시기는 모두 미완의 전환 국면에 서 있다. 국제질서에 패권전이가 있다면 자본주의 내부에도 정치와 경제의 국면 전환이 존재한다. 아서 슐레진저 주니어의 정치순환론은 1920년대가 미국 정치의 어떤 국면이었는지를 보여 주고, 피터 터친의 구조인구학 이론은 그 국면에 축적된 불평등과 엘리트 경쟁이 어떻게 사회 불안으로 이어지는지를 설명한다. 역사학자 슐레진저는 미국 정치가 ‘공적 목적’과 ‘사적 이익’ 사이를 한 세대 안팎의 주기로 오간다고 보았다. 그의 구분에 따르면 1920년대는 진보주의 시대의 개혁이 후퇴하고 방임과 사적 이익이 지배한 국면이었다. 그 과정에서 누적된 문제가 대공황을 거치며 뉴딜이라는 새로운 공적 목적을 불러냈다. 터친이 ‘종말의 시대(End Times)’에서 제시한 구조인구학 이론(Structural-Demographic Theory)으로 보면, 1920년대 미국은 기존 질서의 균열이 정치적 불안과 폭력으로 분출한 전환기였다. 진화생물학자 출신으로 역사동역학을 연구해 온 터친에 따르면 대중의 생활수준이 정체되는 가운데 엘리트 지망자가 늘어나고 한정된 지위와 권력을 둘러싼 경쟁이 격화되면 사회의 구조적 압력도 높아진다. 두 이론을 함께 읽으면 지금의 불안은 구조적 패턴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국제정치체제의 패권전이와 자본주의체제의 국면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며 임계점에 가까워지던 시대가 1920년대였다. 지금 그 두 전환이 다시 겹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다. ●1920년대가 주는 시대적 교훈 1920년대가 주는 진짜 교훈은 파국이 예정된 운명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무솔리니의 1922년 로마 진군과 히틀러의 1923년 뮌헨 폭동은 파시즘의 부상을 알렸지만 아직 독재의 완성은 아니었다. 무솔리니의 일당독재는 1926년에야 확립됐고 히틀러의 뮌헨 폭동은 실패로 끝났다. 파시즘의 부상과 독재의 완성 사이에는 경로를 바꿀 시간이 있었다. 대공황도 필연은 아니었다. 1929년 주식시장 폭락으로 경제위기가 시작되자 미국의 긴축적 대응은 경기침체를 악화시켰다. 이어 각국이 경쟁적으로 관세를 높이면서 위기는 세계적 대공황으로 확산됐다. 세계대전의 발발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은 아니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1938년 뮌헨협정에서 히틀러를 저지하는 대신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 병합을 허용했다. 그러나 유화정책은 전쟁을 막지 못했고, 히틀러는 이듬해 체코슬로바키아를 해체한 뒤 폴란드를 침공했다. 1930년대의 파국은 경고가 없어서가 아니라 경고를 거듭 외면하고 대응을 미룬 결과였다. 2020년대가 1920년대와 닮았다면 이 역사는 예언이 아니라 파국으로 향하는 경로를 미리 바꾸라는 경고다. 현재와 같은 혼란 속에서 완성된 대안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하다. 자유주의의 복원이다. 국내 정치에서는 극단주의와 포퓰리즘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의 제도와 규범을 지켜야 한다. 경제에서는 자유주의를 시장방임과 동일시하지 않고 부의 집중을 완화하며 안정된 일자리와 소득, 사회적 이동성을 뒷받침하는 중산층 경제를 다시 세워야 한다. 국제 정치에서는 강대국의 일방주의와 충돌을 완충할 국제기구의 조정 기능과 중견국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정치적 자유, 중산층 경제, 다자주의 국제질서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자유주의 질서다. 개츠비가 밤마다 바라보던 초록빛은 희망인 동시에 끝내 닿을 수 없었던 신기루였다. 1920년대의 사람들은 그 불빛을 좇느라 발밑에서 커지던 균열을 보지 못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초록빛을 좇는 일이 아니다. 이미 도착한 역사의 경고 신호를 읽고 파국으로 향하는 경로를 바꾸는 일이다. 1920년대라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도 바로 그곳이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 대법, ‘서부지법 폭동’ 가담자 5명에 11억 손배소…“불법행위 책임 물어야”

    대법, ‘서부지법 폭동’ 가담자 5명에 11억 손배소…“불법행위 책임 물어야”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지난해 1월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의 주동자들을 상대로 파손 시설물 복구 비용 11억여원을 배상하라는 내용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행정처는 26일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에 가담해 유죄 판결이 확정된 5명을 상대로 물적 피해 복구 비용 11억 7589만 9770원 및 지연손해금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고 밝혔다. 원고는 대한민국이고, 소관청은 법원행정처다.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는 지난해 1월 19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지지자들이 법원에 난입해 시설물을 파괴하고 경찰관을 폭행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유리창, 출입문, 외벽, 내부 사무실 집기, 전산 설비 등 법원 청사 내 다수의 시설물이 파손됐다. 가담자들은 특수건조물침입,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 4월 30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가의 사법 작용이 이루어지는 법원 청사에 대한 집단적 폭력·파괴 행위로 소속 공무원들이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며 “단순한 기물 파손이나 폭력행위를 넘어 국민의 기본권 수호와 법치주의의 최후 보루인 법원의 기능과 권위를 심각하게 훼손한 중대한 불법행위”라고 밝혔다. 이어 “헌정 질서를 문란케 하고 사법부의 독립을 정면으로 위협했다”면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사건의 가담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5·18 민주화운동은 폭동” 허위사실 인터넷에 올린 2명 송치

    “5·18 민주화운동은 폭동” 허위사실 인터넷에 올린 2명 송치

    경남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허위사실을 인터넷에 게시한 혐의(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위반)로 30대와 40대 남성 2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는 취지의 허위사실이 담긴 게시물을 올린 혐의를 받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한 명은 지난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내용의 게시물 2건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다른 한 명은 지난 5월 같은 취지의 글을 한 차례 게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게시물은 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 올라온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앞두고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살피던 중 관련 게시물을 확인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 왜곡은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넘어 잘못된 역사 인식을 전파해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는 악의적이고 명백한 허위사실을 생산·유포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 與, 이진숙 징계안 제출…김민석 “반드시 최소 활동 정지”

    與, 이진숙 징계안 제출…김민석 “반드시 최소 활동 정지”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5·18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고 역사 왜곡 발언이 쏟아진 토론회를 개최한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21일 제출했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도 “이 의원의 제명, 최소한 활동 정지를 반드시 이루어내겠다”고 강조했다. 이주희 민주당 원내대변인과 안도걸 전남광주시당위원장은 이날 국회 의안과에 이 의원 징계안을 제출했다. 이 원내대변인은 제출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지난번 제명 징계 촉구 결의안을 제출한 데 이어 오늘은 본격적으로 구속력 있는 징계안을 제출했다”며 “국회 안에서 벌인 행태는 그대로 묵과하고 지나갈 수 없고 반드시 징계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안 위원장은 “이 의원의 행태는 헌법정신과 5·18 정신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중대한 도발”이라며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2차 피해이자 광주와 전남 지역민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과거에도 5·18 폄훼 발언을 이유로 국회의원 징계를 추진한 전례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원내대변인은 “2019년에도 여야 4당이 5·18을 모독한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 3명(김진태·이종명·김순례 전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제출한 사례가 있다”며 “그때보다 훨씬 강력하고 광범위한 방식으로 이 의원이 잘못된 행위를 한 만큼 징계 사유는 충분하다고 본다”고 했다. 지난 2019년 2월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이던 김진태·이종명 전 의원이 공동 주최한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서는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발언이 잇따라 논란이 됐다. 이 전 의원은 5·18 민주화운동이 ‘폭동’에서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고 주장했고, 김순례 전 의원은 5·18 유공자를 “괴물 집단”이라고 폄훼했다. 당시 공청회 연단에는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한 지만원씨도 올랐다. 민주당은 이 의원 징계안을 당론으로도 추인할 예정이다. 이 원내대변인은 “민의를 적극 반영해 국회도 하루빨리 윤리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이진숙 의원 징계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김 대표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5·18 폄훼 이진숙 의원이 진짜 징계 대상이라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이진숙 (의원에 대한 징계) 처리를 시작으로 5·18 헌법 전문 수록을 거쳐, ‘국민의힘’이 진정 국민 곁으로 다가가기를 기대한다”고 적었다. 한편 김 대표는 오는 24일 오전 국회에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예방한다. 이 자리에서 이 의원 징계 관련 내용이 거론될지도 관심이다.
  • 이진숙 주최 토론회서 “5·18은 소요·폭동” 망언

    이진숙 주최 토론회서 “5·18은 소요·폭동” 망언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13일 국회에서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광주 소요”, “광주 정신은 역사의 퇴영물”, “5·18은 폭동” 등의 망언이 쏟아진 토론회를 강행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의원직 제명을 추진하고, 토론회 사용을 허가한 황정근 국회도서관장의 해임을 촉구했다. 이 의원은 이날 국회도서관에서 새역사국민운동 등과 함께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이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이 의원은 개회사에서 “5·18은 특정 진영의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기본 통념과 다른 주장, 불편한 질문이 나올 수도 있어도 학술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서는 이영훈 새역사국민운동 공동대표가 ‘경상도의 선행 개발을 지탄하는 호남의 지역색’,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얄팍한 지성의 자존심’ 등의 PPT를 띄우고 “결론은 광주정신은 이 같은 역사의 퇴영물을 종합하여 일으킨 부정과 불임의 회오리바람”이라고 주장했다. 또 ‘임을 향한 행진곡’에 대해서는 “이런 정체불명의 노래는 재고해야 한다”며 “이것이 주체사상과 결합이 되고 통일 운동으로 전개됐다”고 했다. 또 다른 발제자로 나선 주동식 전 광주 서구갑 당협위원장은 “5·18 문제는 대외적으로는 고립시키고 내부적으로는 분열시켜야 한다”며 “이게 없으면은 대한민국도 살아남기 힘들고 호남도 결과적으로 죽게 된다”고 주장했다. 참석자들이 욕설과 고성으로 충돌했고, 경찰과 구급대도 출동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토론회와 거리를 뒀고 의원 누구도 참석하지 않았다. 앞서 정점식 원내대표가 부적절하다며 토론회 취소를 요구하고 의원들에게도 불참을 당부했다. 2019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시절 북한군 개입설 주장이 나온 토론회로 현역 의원 3명이 당시 당 윤리위의 최고 수위 징계인 제명을 포함해 징계를 받은 바 있다. 민주당은 이 의원의 국회 퇴출을 요구했다. 한병도 원내대표는 규탄대회에서 “국회를 5·18 민주화운동 폄훼의 장으로 전락시키려는 천박하고 저열한 시도를 절대 용인하지 않겠다”며 “이 의원은 대한민국 국회의원 자격이 없다”고 했다. 전남광주 지역 의원들은 ‘5·18 역사 날조 방조, 국민의힘 규탄한다’ 피켓을 들고 토론회장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 “美 Z세대, 사회주의·반기술 저항… 창조적 에너지로 바뀌어야”[모종린의 문화로 읽는 AI시대]

    “美 Z세대, 사회주의·반기술 저항… 창조적 에너지로 바뀌어야”[모종린의 문화로 읽는 AI시대]

    DSA 등 진보성향 정치 세력 성장맘다니 당선·임대료 동결 등 열광사회주의 호감도 40%대 후반 상승SNS 중독·AI발 일자리 위협 반발여름축제에 휴대전화 반입 금지25%가 “스마트폰 아예 없어져야”1960년대 정치ㆍ문화 저항 ‘닮은꼴’단순한 자본주의 배척 땐 분열 조장인간중심 기술철학 발달 계기 돼야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한 달 간격으로 미국 Z세대를 겨냥한 특집기사를 두 번 냈다. 6월에는 ‘Z세대 사회주의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로 좌경화를 경고했고, 7월에는 ‘떠오르는 Z세대 러다이트’로 기술 이탈을 조명했다. 언뜻 무관해 보이는 두 현상-국가의 재분배를 요구하는 정치적 급진주의와 삶의 반경을 축소하려는 개인적 저항-은 사실 미국 현대사에서 낯설지 않은 조합이다. 60년 전에도 미국은 이 두 저항을 동시에 겪었다. 막 시작된 이 조합의 의미는 무엇일까. 1960년대가 돌아오는 것일까? ●사회주의로 기우는 Z세대 이코노미스트의 경고를 뒷받침하는 것은 뉴욕시장 조란 맘다니의 부상이다. 34세 민주사회주의자인 그는 지난해 11월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이라 할 뉴욕시장 선거에서 압승해 올해 1월 취임했고, 임대료 동결과 무료 버스 같은 급진 공약은 Z세대와 젊은 유권자들의 열광적 지지로 실현됐다. 그러나 진짜 위협은 맘다니 개인이 아니라 그가 속한 민주사회당(DSA)이라는 조직된 정치 세력이다. 6월 뉴욕 예비선거에서 DSA 후보들이 현역 하원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기성 정치인들을 잇따라 꺾었고 같은 달 덴버에서도 15선 현역 의원이 낙선했다. DSA는 회원이 2017년 2만 4000명에서 올해 10만명을 넘어섰고, 전국 225개 지부를 통해 250개가 넘는 지방 공직을 차지하고 있다. 곳곳의 예비선거에서 현역 민주당 의원들을 실제로 낙선시키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민주당과 시장주의를 지탱해 온 기득권층에는 눈앞에 닥친 위협이다. 수치도 이를 뒷받침한다. 갤럽 조사에서 자본주의 호감도는 54%로 201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대기업 호감도는 37%에 그쳤다. 18~34세 청년층은 43%, 젊은 민주당 지지층은 31%까지 떨어졌는데, 2010년 같은 조사의 54%에 비하면 15년 사이 거의 절반이 줄어든 셈이다. 반면 청년층의 사회주의 호감도는 40%대 후반으로 올라와 세대에 따라 두 체제의 지지율이 역전됐다. ●스마트폰을 버리는 Z세대 같은 세대가 다른 한편에선 기술문명에 등을 돌린다. 이코노미스트가 현장 취재한 뉴욕 ‘러드의 여름’ 축제(6월 28일~7월 5일)는 빅테크에 회의적인 이들이 모인 자리로 휴대전화 반입 금지, 소셜미디어(SNS) 계정 없이 포스터와 입소문으로만 홍보하며 원칙을 지켰다. 참가자는 많지 않았지만 대부분 20대인 이들의 정서는 Z세대 전반의 기술에 대한 양가감정을 보여 준다. 한 세션에서는 ‘재판’을 거친 기기들이 ‘처형’당하는 퍼포먼스도 열렸다. 이 세대는 완전한 스마트폰 시대에 태어나 자란 첫 세대다. 해리스 조사에서 Z세대 4분의1이 스마트폰이 아예 없었으면 좋겠다고 답했고, 퓨리서치에서는 절반 이상이 16세 미만 SNS 금지에 찬성했다. 마리스트 조사로는 70%가 인공지능(AI)의 일자리 악영향을 우려한다. 19세기 러다이트가 기계화 자체가 아니라 생계 위협에 저항했듯, 오늘의 네오 러다이트도 기술 전체가 아니라 추적 도구와 알고리즘, 관계 훼손에 반발한다. 플립폰과 카세트테이프 판매가 늘고, 스마트폰을 끊은 이들은 다시 책 한 권을 끝까지 읽게 된 것을 성취로 꼽는다. 뉴욕에서 임대료 동결을 외치며 투표장으로 향한 그 세대가, 동시에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축제에 모이는 세대이기도 하다. ●처음이 아니다: 1960년대의 원형 한 세대가 사회주의자를 시장으로 앉히는 동시에 기술문명에서 발을 빼는 조합은 처음이 아니다. 1968년 베트남전 반대 시위와 도심 폭동, 마틴 루서 킹과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 시카고 전당대회의 유혈 충돌, 컬럼비아대·버클리대 캠퍼스 점거로 미국 사회 전체가 붕괴 직전까지 흔들릴 때도 두 저항이 함께 자랐다. 사회학자 시어도어 로자크는 1969년 ‘카운터컬처의 형성’에서 정치·제도 개혁을 추구한 뉴레프트와 테크노크라시에 대한 정신적 저항인 카운터컬처를 구분했다. 뉴레프트가 워싱턴으로 행진했다면 카운터컬처는 정치권력을 잡는 대신 히피 공동체와 자연주의, 록 음악, 동양철학으로 눈을 돌렸다. 주목할 것은 카운터컬처가 저항한 군산복합체가 오늘날 다시 몸집을 키운다는 점이다. 아이젠하워가 1961년 경고한 이 결합체는 팔란티어·앤듀릴 같은 방산 기업이 오픈AI·메타·구글·마이크로소프트·앤스로픽 같은 AI 기업들과 손잡고 8500억 달러 국방예산을 두고 다투는 오늘날 ‘군사·기술 복합체’로 재현되고 있다. 기술 엘리트가 국가 권력과 결탁하는 테크노크라시의 조건이 다시 조성되자 1960년대와 같은 유형의 저항이 다시 자라는 것이다. ●두 운동의 부침 두 저항은 이후 다른 궤적을 그렸다. 카운터컬처는 1970년대 후반 석유파동과 경기침체를 거치며 급속히 힘을 잃었고, 1980년대 레이건 시대에는 시장과 기업가정신이 새로운 미덕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정치보다 문화 속에서 살아남았다. 1990년대 영화가 중산층의 정신적 공허함을 겨냥했고 그런지·인디음악과 도심 다운타운 회귀가 뒤를 이었다. 2000년대에는 이 갈래들이 힙스터로 수렴해 빈티지 패션과 아이러니한 태도로 대량생산 체제에 대한 거부감을 재현했지만 2010년대 들어 스스로 상업화되며 쇠락했다. 뉴레프트는 반대로 꾸준히 힘을 키웠다. 1970년대 이후 여성·환경운동으로, 1990년대엔 다문화주의로 영역을 넓혔고 2011년 월가 점령 운동이 경제적 불평등을 다시 세웠다. 결정적 전환점은 2017년이었다. 트럼프 1기 출범과 맞물려 여성 행진과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이 재점화되며 ‘레지스탕스’ 정치를 주도했고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사상 최대 시위로 이어지며 미국 저항 정치의 구심점이 됐다. 그 조직적 유산이 오늘날 맘다니의 부상을 뒷받침한다. ●2020년대 중반, 수렴하는 두 저항 2010년대까지 두 진영 모두 실리콘밸리에 우호적이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실리콘밸리 인사를 대거 기용했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아랍의 봄과 오바마 캠페인을 가능케 한 민주주의의 도구로 칭송받았으며, 힙스터 역시 아이폰과 인스타그램을 적극 소비했다. 그러나 2020년대 중반 생성형 AI가 지식노동과 창작 영역을 잠식하고 플랫폼 권력과 앞서 살펴본 군사·기술 복합체까지 겹치며 기술·자본·국가권력이 한 덩어리가 됐다. 맘다니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세력은 플랫폼 독점 해체와 AI 실업에 대한 사회 안전망, 빅테크 과세를 요구하며 이를 정치 언어로 번역했고 네오 러다이트로 대표되는 카운터컬처의 후예는 같은 문제를 개인적 탈주로 답했다. 출발점은 달라도 두 저항운동이 겨냥하는 대상은 플랫폼 자본주의와 AI가 결합한 새 기술체제로 수렴한다. 실제로 맘다니 지지자와 러다이트 클럽 참가자는 상당 부분 겹친다. 1960년대 이후 처음 나타나는 이 수렴 앞에서, 진보·보수의 대립만으로는 지금의 미국을 설명하기 어렵다. ●제2의 1960년대가 될 것인가 2020년대 중반은 제2의 1960년대가 될 것인가. 정치적 저항과 문화적 저항이 동시에 폭발하고 기존 질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며 그 불신이 정치적 급진화와 개인적 탈주로 동시에 표출된다는 구조는 닮았다. 그러나 진짜 질문은 닮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느냐다. 1960년대 카운터컬처는 개인의 자율성과 수평적 조직문화라는 유산을 남기며 실리콘밸리 혁신 정신의 뿌리가 됐고, 뉴레프트는 시민권 확대와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며 민주주의의 자기교정 기능을 강화했다. 두 저항 모두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기는커녕 체제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같은 순기능이 반복되리라 낙관하기는 이르다. 1960년대 기술이 노동을 보조하는 수준이었다면 AI는 지식노동과 창작 영역까지 대체한다. 플랫폼 기업의 독점력도 과거 제조업체와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하고, SNS는 저항운동조차 빠르게 상품화하며, 정치적 양극화는 사회적 합의를 어렵게 만든다. ●사회주의와 반기술주의가 남길 변화 그럼에도 이 저항을 창조적 에너지로 바꿀 가능성은 남아 있다. 관건은 사회주의와 반기술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이를 단순히 반자본주의나 기술 혐오로 배척하면 미국은 더 깊은 분열에 빠질 수 있다. 반대로 두 운동의 문제의식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안으로 끌어들인다면 지금 미국에 가장 부족한 사회적 신뢰와 공동체성, 인간 중심의 기술철학을 되살릴 계기가 될 수 있다. 미국은 저항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흡수함으로써 더 강한 사회가 되어 왔다. 정치적으로는 맘다니식 의제가 반기업 포퓰리즘에 머물지 않고 AI발 부의 집중을 재분배하는 제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 문화적으로는 네오 러다이트의 아날로그 취향이 크리에이터 경제와 수공예, 대면 서비스업 같은 새로운 산업 기반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1960년대 카운터컬처가 개인용 컴퓨터라는 뜻밖의 산업을 낳았듯, 오늘의 네오 러다이트 역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새로운 경제를 낳을 수 있다. 결국 미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AI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키워 가는 문화와 가치다. 이코노미스트가 한 달 간격으로 경고한 두 개의 반란은, 결국 하나의 질문을 서로 다른 언어로 던지고 있는 셈이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 “5·18 민주화운동은 무장 폭동” SNS 댓글 쓴 20대 여성 불구속 송치

    “5·18 민주화운동은 무장 폭동” SNS 댓글 쓴 20대 여성 불구속 송치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를 받는 20대 여성이 검찰에 넘겨졌다. 30일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20대 여성 A씨를 지난 13일 불구속 송치했다. A씨는 지난 5월 15일 광주 등 지역에서 5·18을 맞이해 혜택을 제공한다는 내용의 인스타그램 게시글에 “5·18 민주화운동은 반국가세력에 의한 무장 폭동”이라는 내용의 댓글을 1차례 작성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이 화면을 갈무리해 본인 계정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게시하기도 했다. 해당 사건 고발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됐다. 경찰 관계자는 “5·18 관련 역사 왜곡은 희생자·유족에게 모욕감을 주고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넘어 잘못된 역사 인식으로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도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는 악의적이고 명백한 허위사실의 생산·유포 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 조선인 학살 부른 괴담 또 나왔다…日강진에 “외국인이 방화” [핫이슈]

    조선인 학살 부른 괴담 또 나왔다…日강진에 “외국인이 방화” [핫이슈]

    일본 구마모토현을 강타한 규모 7.1의 지진 직후 “외국인이 불을 질렀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퍼지고 있다. 103년 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부른 방화 유언비어와 닮은 혐오성 거짓 정보가 대형 재난을 틈타 다시 등장한 것이다. 29일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엑스(X·옛 트위터)와 스레드에는 지진 발생 뒤 외국인이 화재를 일으켰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잇따라 올라왔다. 이를 뒷받침할 사진이나 당국 발표는 없었다. 지난 28일 오후 일본 규슈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구마모토현 가시마마치의 대형 쇼핑몰 일부가 무너졌다. 현지 당국은 가스 누출에 따른 폭발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지만 SNS에서는 별다른 근거 없이 외국인의 방화로 몰아가는 주장이 확산했다. 지진은 구마모토현 일대의 건물과 도로를 무너뜨리고 교통·통신망에도 피해를 줬다. 거짓 구조 요청도 실제 구조 작업에 혼선을 줄 위험을 키웠다. X에는 “살려 달라. 산 채로 매몰됐다”는 글과 함께 구조를 요청하는 주소가 게시됐다. 해당 글은 30만 회 넘게 조회됐지만 확인 결과 게시물에 적힌 주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작성 계정은 이후 정지됐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방송사 보도처럼 꾸민 가짜 영상도 유튜브에서 수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일부 이용자는 2024년 노토반도 지진 당시 촬영한 쇼핑몰 영상을 이번 지진 현장인 것처럼 다시 유포했다. 지진을 사전에 예측했다는 주장과 인공지진 음모론도 뒤따랐다. 지도와 함께 지진 발생 장소를 맞혔다고 주장한 게시물은 조회 수 340만 회를 넘겼다. 그러나 현재 기술로 지진의 발생 시각과 장소, 규모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입소문 대신 AI…더 빠르고 정교해진 재난 괴담 일본에서는 대형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자극적인 허위 정보가 반복해서 등장했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당시에는 “동물원에서 사자가 탈출했다”는 거짓 게시물이 퍼졌다. 게시자는 해외에서 촬영한 사자 사진을 구마모토 시내 모습처럼 꾸몄고, 동물원에는 사실 확인을 요구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2024년 노토반도 지진 때도 허위 구조 요청이 잇따랐다. 구조 당국이 존재하지 않는 주소를 확인하느라 인력과 시간을 낭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번에는 기존 영상 재활용에 AI로 제작한 가짜 보도까지 더해지면서 허위정보의 형태가 한층 정교해졌다. 특히 ‘외국인 방화설’은 단순한 장난이나 조회 수 노리기를 넘어선다. 재난의 원인을 사회적 소수자에게 돌려 혐오와 폭력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팩트체크센터의 후루타 다이스케 편집장은 자극적인 정보를 접하면 공공기관 발표나 언론 보도로 진위를 확인하고 불확실한 내용은 공유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현지 언론과 구조 당국도 거짓 신고와 유언비어가 실제 구조·구호 활동을 방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03년 전에도 “조선인이 불 질렀다” 이번 외국인 방화설은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 직후 일본에서 확산한 유언비어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도쿄와 요코하마 일대에서는 “조선인이 불을 질렀다”, “우물에 독을 풀었다”, “폭동을 일으킨다”는 거짓말이 퍼졌다. 경찰과 군인, 일본인 자경단은 이를 구실로 조선인들을 색출해 살해했다. 외모나 말투가 다르다는 이유로 중국인과 조선인으로 오인받은 일본인도 희생됐다. 정확한 희생자 수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역사학계에서는 조선인 희생자가 최대 약 6000명에 이른다는 추산도 제시한다. AP통신은 관동대지진 100주년을 다룬 보도에서 근거 없는 소문에 따라 경찰과 자경단 등이 수천 명의 조선인을 살해했다고 전했다. 관동대지진 당시에는 입소문과 전단, 신문이 거짓 정보를 퍼뜨렸다. 이번에는 SNS 알고리즘과 생성형 AI가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순식간에 수백만 명에게 전달한다. 전파 수단은 달라졌지만 재난의 책임을 외국인에게 돌리는 방식은 103년 전과 다르지 않다. 실제 폭력으로 번지기 전에 거짓 정보를 차단해야 한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 李 “1주택 보유세 차등 둬야”… 거주용 깎고, 초고가 더 걷나

    李 “1주택 보유세 차등 둬야”… 거주용 깎고, 초고가 더 걷나

    “투기 기회 만든 똘똘한 한 채 심각”양도세 감면, 횟수·총액 제한 검토“보유세 3배 올려야 선진국 수준… 정치적 손해 있어도 대비” 이재명 대통령은 23일 주택 보유세 강화와 관련해 “1주택을 기준으로 적정하게 보유 부담을 설정하고 실거주 또는 거주 용도일 경우에는 (세 부담을) 감해 주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차등 과세 체계’를 거론했다. 또 1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감면 제한에 공감을 표하는 한편 재개발 용적률 상향은 신중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KBS 별관에서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를 주재하고 주택 보유세 강화와 관련해 “통상적인 선진국 수준으로 하려 해도 지금보다 3배는 올려야 한다. 그러면 폭동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겠나”라며 “정치적 손해를 보더라도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통상적인 1주택을 기준으로 적정한 보유세 부담을 설정한 뒤 각각 감면 및 가중 요소를 두는 차등 과세 체계 구상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실거주 용도나 서민·중산층용 주택, 지방 지역 요인에는 감면 혜택을 주겠다”며 “반대로 호화·초고가 주택, 다주택, 명백한 투기 목적의 비거주 주택에는 가중 요소를 더해 단계적으로 차등을 두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1주택자 양도소득세 감면도 1회로 제한해야 한다’는 유튜브 ‘광수네복덕방’ 이광수 대표의 제안에 대해 “기회를 무한대로 주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공감을 표했다. 이 대통령은 “양도세 감면을 생애 1회로 (제한) 할지는 모르겠다”며 “(감면) 횟수를 제한하거나 (감면을) 첫 번째 때엔 많이 해 주고 두 번째 땐 조금 덜 해 주는 건 아주 좋은 생각인 것 같다.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또 “총액으로 제한할 수도 있다”며 “여러 차례 고가 주택을 사고팔고, 사고팔고 하는 경우에도 똑같이 (감면)해 줘야 하냐는 것은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세제 손질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앞으로의 일에 대한 대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집값 문제는) 언젠가는 터질 문제이며 터지면 치명적”이라고 우려했다. 이 대통령은 이른바 ‘똘똘한 한 채’에 대해선 작심 비판했다. 그는 “똘똘한 한 채가 우리나라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며 “효율적으로 투기할 기회를 만든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거주용이냐 아니면 투자·투기용이냐를 구분하지 않으니 그 작은 구멍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 대통령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잠시 집을 비워 두는 경우 투기로 봐선 안 된다고 했다. 이에 ‘실거주’ 대신 ‘거주용’이라고 용어를 바꾸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재개발과 관련해선 “용적률을 올려 주면 주택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지 반대로 집값 폭등의 유인이 되느냐 하는 문제도 있다”고 짚었다. 이 대통령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 목표에 대해 “억지로 가격을 낮추자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주택 가격 목표를 정해 놓고 수요·공급을 억제하거나 조정하겠다면 그건 사회주의 국가에 가깝지 않나. 가능하지도 않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정부 관계자를 포함해 유튜버와 부동산·맘카페 회원, 관련 시민단체와 공인중개사, 금융기관 종사자, 언론인과 교수 등 모두 14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대체로 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세율과 적용 범위, 초고가 주택 기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전국 주택 평균 가격의 2배까지, 10억 원 이상 주택은 초고가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형일 재정경제부 1차관은 사전에 취합한 국민들의 부동산 관련 의견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초고가 주택 기준이 30억원 이상과 50억원 이상이라는 의견이 제시됐다”고 소개했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실거주냐 비거주냐의 구분 없이 보편적으로 강화하는 게 맞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종합부동산세와 관련해 강성훈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 “현행 제도에서 30억원 주택 1채를 가진 경우와 10억원 주택 3채를 가진 경우를 비교해 보면 1채를 가진 쪽의 세율이 더 낮다”며 “과세 형평성 차원에서 주택 보유 수가 아니라 주택 가액을 기준으로 세율을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 李대통령 “양도세 감면 무한대는 문제…보유세 강화 동의”

    李대통령 “양도세 감면 무한대는 문제…보유세 강화 동의”

    이재명 대통령은 23일 1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감면에 대해 “기회를 무한대로 주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제한해야 한다는 뜻을 보였다. 또 보유세 강화에 공감하면서도 그 범위에 대해 좀 더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KBS 별관에서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를 주재하고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감면을 생애 1회로 제한해야 한다’는 유튜브 ‘광수네복덕방’의 이광수 대표의 제안에 “매우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양도세 감면을 생애 1회로 (제한) 할지는 모르겠다”며 “(감면) 횟수를 제한하거나 (감면을) 첫 번째 때엔 많이 해 주고 두 번째 땐 조금 덜 해주는 건 아주 좋은 생각인 것 같다. 한번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총액으로 제한할 수도 있다”며 “여러 차례 고가 주택을 사고팔고, 사고팔고 하는 경우에도 똑같이 (감면)해줘야 하냐는 것은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보유세에 대해서는 “강화해야 한다는 점은 사실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라며 “그러면 어느 범위에서 어느 정도로 강화할지, 어떤 차등을 둘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다만 “보유세 강화, 사실 강화도 아닌데 통상적 선진국 수준으로 하려 해도 (현재의) 세 배는 올려야 한다. 그런데 세 배를 올리면 폭동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겠나”라며 “사실 과거에 해야 했던 일인데 지금은 (집값이) 너무 많이 올라버렸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보유세와 관련해 1주택자와 다주택자에 대해 차등적으로 적용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내가 진짜로 살기 위해 산 집에 대해서는 보호 정책을 써야 하지만 이와 달리 다주택자들 중 명확하게 자산 증식 목적인 경우가 있다”며 “돈을 벌기 위해 여러 채를 (매입하면) 저는 당연히 차등을 둬야 한다고 본다. 여기에도 국민들께서 이견이 있을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피하기 위해 고가의 아파트 한 채를 매입하는 이른바 ‘똘똘한 한 채’에 대해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똘똘한 한 채가 우리나라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며 “효율적으로 투기할 기회를 만든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거주용이냐 아니면 투자·투기용이냐를 구분하지 않으니 그 작은 구멍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이 대통령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잠시 집을 비워두는 경우 투기로 봐선 안 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직장 때문에 잠깐 옮기거나 애들 교육 때문에 잠깐 (비우는 것은) 어떻게 하라는 거냐는 지적이 많다”며 “저는 청와대 공관에 있다 보니 집이 비었는데 그럼 비거주용 아니냐는 이야기도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실거주’ 대신 ‘거주용’이라고 용어를 바꾸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주택 공급과 관련해 “공급을 늘리면 해결이 되는데 문제는 ‘어디에서’, ‘어떻게’가 마땅치 않다”며 “공급에 한계가 뚜렷하다”고 말하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대통령은 공공임대에 대해 역세권 중심으로 고품질 아파트를 건설하고 중산층도 입주할 수 있도록 해서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개발과 관련해 이 대통령은 “용적률을 올려주면 주택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지 반대로 집값 폭등의 유인이 되느냐 하는 문제도 있다”며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또 3기 신도시 건설 착공이 지연되는 건 심각한 문제라며 “(건설 기간을) 절반 이하로 줄이기 위해 내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준공업 지구 용도 변경을 통한 주택 공급과 관련해 “용도 변경을 하되 필요하면 그로 인해 생기는 과도한 이익은 일부를 환수하는 공공 기여를 하는 쪽에서 부담시키고 (용도를) 변경해서 주거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 목표에 대해 “억지로 가격을 낮추자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주택 가격 목표를 정해놓고 수요·공급을 억제하거나 조정하겠다면 그건 사회주의 국가에 가깝지 않나. 가능하지도 않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결혼하면 대출이나 청약 등에서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이른바 ‘결혼 페널티’를 없애기 위해 전 분야에 대한 전수조사를 총리에게 지시했다고 했다. 또 재건축 공사비 인상에 대해 “(공사비) 상승률이 놀라울 정도”라며 “한 번 전면 점검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유튜버와 부동산·맘카페 회원, 관련 시민단체와 공인중개사, 금융기관 종사자, 언론인과 교수 등 모두 140여명이 참석했다. 한성숙 국무총리와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이억원 금융위원장 등 정부 관계자도 함께했다. 당초 토론회는 1시간 40분으로 예정됐지만 3시간 13분간 진행되는 등 이 대통령과 참석자들 간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 총성을 멈춘 축구공, 전쟁을 부른 축구공 [한ZOOM]

    총성을 멈춘 축구공, 전쟁을 부른 축구공 [한ZOOM]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크리스마스 이브 서부 전선. 독일군 참호에서 크리스마스 캐럴 ‘고요한 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영국군 병사들은 전투 의지를 꺾으려는 계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잠시 뒤 독일군이 참호를 넘어 비무장 구역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자, 영국군도 총을 내려놓고 참호 밖으로 나왔다. 조금 전까지 서로 총을 겨누던 두 나라 병사들은 담배와 음식을 나누고, 전사자들을 함께 묻었다. 그리고 누군가 축구공을 꺼냈다. 거짓말 같은 이 이야기는 ‘크리스마스 휴전’(Christmas Truce)으로 기록된 실제 사건이다. 이날의 공놀이가 정식 축구 경기였는지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지금도 논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정식 경기였든 간단한 공차기였든, 적군의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공을 찬 그 순간, 서로에게 방아쇠를 당기기는 어려워졌다. 이 사실을 뒤늦게 보고받은 군 지휘부는 즉각 재발 방지 명령을 내렸다. 명분도 이유도 없이 잔인하기만 한 전쟁 기계가, 공 하나에 멈춰 선 것이다. ●1969년 축구 경기 때문에 발생한 전쟁 그런데 이번에는 축구가 전쟁을 부른 사건이 일어났다.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가 ‘멕시코 월드컵’ 지역 예선을 치르던 중이었다. 1차전은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에서 열렸다. 온두라스 응원단은 엘살바도르 선수단이 묵고 있는 호텔 앞에서 밤새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한 엘살바도르 대표팀은 다음 날 경기에서 1대0으로 패배했다. 패배 소식이 전해지자 엘살바도르의 18세 소녀 ‘아멜리아 볼라뇨스’가 아버지가 갖고 있던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엘살바도르 언론은 “조국의 수치를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소녀가 목숨을 던졌다”며 이 비극을 민족주의의 불씨로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소녀의 장례식은 국가장 수준으로 치러졌고, 대통령과 국가대표 선수단 전원이 운구 행렬을 따랐다. 엘살바도르 국민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복수심에 휩싸였다. 2차전은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열렸다. 이번엔 엘살바도르 측이 보복에 나섰다. 온두라스 선수단에게 마찬가지로 밤새 잠을 못 자게 했고, 경기장에는 온두라스 국기 대신 찢어진 낡은 천 조각을 달았다. 예상대로 엘살바도르가 3대0으로 승리했다. 양국 응원단은 경기장 안팎에서 난투극과 폭동을 벌였고, 자국으로 돌아간 온두라스인들은 자국 내 엘살바도르 이민자들을 습격해 약탈과 살인을 저질렀다. 양국 간의 감정은 파국으로 치달았고, 국교 단절을 거쳐 결국 1969년 7월 14일 엘살바도르 국군이 온두라스 국경을 넘었다. 역사는 이 전쟁을 ‘축구 전쟁’(Soccer War)으로 기록하고 있다. 5일 100시간 동안 벌어진 이 전쟁으로 약 4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그 상당수는 무고한 민간인이었다. 양국은 전쟁으로 인한 경제 붕괴로 수십 년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전쟁 발발 11년 만인 1980년에야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정식으로 국교를 재개했다. 물론 축구가 전쟁의 원인은 아니었다. 이미 오랫동안 양국의 관계는 곪아 있었다. 1869년부터 국경 분쟁이 계속되었고, 온두라스가 자국에 정착한 엘살바도르 농민 30만 명을 추방하자 양국 감정은 폭발 직전이었다. 축구는 그 화약에 불을 당긴 성냥개비였을 뿐이다. ●2002년 대한민국의 붉은 물결 2002년 6월 수백만 명이 붉은 옷을 입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폴란드, 미국,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차례로 꺾으며 아시아 최초로 4강 신화를 써 내려갔다.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외환위기의 아픔이 채 가시지 않았던 그때, 대한민국을 가득 채운 붉은 물결은 단순한 응원이 아니었다.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자존감의 집단적 폭발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열기가 아니었다. 어느 경기에서도 상대팀을 비방하거나 위협하는 응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 패배했지만 붉은악마는 자발적으로 독일 응원단을 조직해 결승전에서 독일을 응원했다. 튀르키예와의 3위 결정전에서는 ‘형제의 나라’를 강조하며 패배 후에도 튀르키예 대표팀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국가기록원은 당시의 뜨거웠던 연대를 공식 기록을 통해 “온 국민이 하나 되어 붉은 옷을 입고 거리를 가득 메운 채 성숙한 응원 문화를 보여주었으며, 이는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민주적 공동체 의식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라고 이렇게 평가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세대가 표현의 도구로 삼은 것은 새로운 무언가가 아닌, 익숙한 국호 ‘대한민국’과 태극기였을 뿐이다. 오랫동안 신성함의 대상이자 엄숙함의 상징이었던 그것을 이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배타성 없이 유쾌하게 소화해냈다. ●축구 덕분에 전쟁이 줄었다는 주장 크리스마스 휴전, 축구 전쟁, 그리고 2002년 대한민국까지. 이 세 장면을 나란히 놓고 보면 스포츠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정치학에서는 “스포츠가 전쟁을 줄인다”는 주장이 있다. 스포츠 교류가 많은 국가들 사이에는 무력 충돌이 줄어든다는 통계적 연구 결과에 근거한 주장이다. 스포츠 경기를 통해 적국의 국민을 ‘적’(敵)이 아닌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고, 그 인식이 지도자들의 전쟁 결정을 억제한다는 논리다. 크리스마스 휴전에서도 서로의 얼굴을 보고 함께 공을 찬 순간, 방아쇠를 당기기가 어려워졌다. 물론 1969년 축구 전쟁은 이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축구가 오히려 쌓인 적대감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는 촉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집단적 열광 속에서 민족주의는 강화되고, 패배의 분노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국경 장벽과 이민자 문제, 보호무역 갈등이 첨예하게 얽혀 있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 세 나라가 공동 개최하는 2026년 북중미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동안 세 나라의 팬들은 총칼 대신 잔디밭 위를 굴러가는 같은 공을 바라볼 것이다. 그 공이 평화의 씨앗이 될지, 새로운 갈등의 촉매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 결과가 공을 차는 선수가 아니라, 그 공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 전두환 찬양, 노무현 비하…교사 10명 중 9명 “학교서 혐오표현 경험”

    전두환 찬양, 노무현 비하…교사 10명 중 9명 “학교서 혐오표현 경험”

    “버킷리스트 발표 시간에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리기’, ‘코알라 코 만지기’, ‘부엉이 키우기’를 말했습니다.” “5·18 민주화 운동을 ‘광주폭동’이라고 말하고, 전두환을 ‘전땅크’라고 친숙하게 표현합니다.” “제주도 수학여행 도중 중국인 관광객을 향해 학생들이 ‘멸공’이라고 외쳐 몹시 당황스러웠습니다.” 최근 학생들의 혐오표현 사용이 심각한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전국 초·중·고 교사 10명 중 9명은 지난 1년간 학교 현장에서 혐오·차별·역사왜곡 표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배재고 야구부의 혐오 응원 사태로 수면 위로 드러난 학생들의 ‘혐오의 놀이화’가 일부 학생들의 일탈이 아닌 일종의 또래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7일 서울 서비스연맹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혐오·역사왜곡 표현 교사·청소년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최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제일고를 상대로 5·18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구호를 외친 사건을 계기로 실시됐다. 전국 초·중·고 교사 1109명 중 직·간접적으로 혐오표현을 접한 교사는 전체의 89.3%에 달했다(표본오차 95%, ±2.9%포인트). 직접 목격했다는 응답은 73.9%였다. 특히 중학교에서 혐오표현 사용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학교 교사의 혐오표현 경험률은 92.7%로 초등학교(87.4%), 고등학교(86.4%)보다 높았다. 중학교 교사의 직접 목격 비율 역시 81.7%로, 초등학교(68.4%)·고등학교(68.5%)와 월등히 높았다. 표현이 사용되는 상황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등 학생 간 대화가 77.3%로 가장 많았지만, 수업 중 발언도 52.6%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교사들이 가장 많이 접한 표현은 정치인 또는 역사적 인물의 죽음·비극을 조롱하는 표현이었다. 교사 88.9%가 이를 접했다고 답했고, 이 가운데 58.2%는 “반복적으로 자주” 접한다고 말했다. 박영환 전교조 위원장은 이 중 대부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운지’ 등의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등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던 극단적 표현이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상용화되고 있다는 게 학교 현장의 목소리다. 박 위원장은 “말끝마다 ‘∼노’를 붙이거나 운지, 부엉이바위 같은 단어를 대화에서나 각종 과제물에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에 대한 혐오·차별 표현도 86.8%가 경험했다. ‘세대·직업·계층 비하’(81.8%), ‘역사적 사건 왜곡·희화화’(80.5%) 등이 뒤를 이었다. 청소년도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초6~고3 청소년 1636명 중 80.6%는 “다른 사람이나 지역, 역사적 아픔을 조롱하는 표현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표본오차 95%, ±2.42%포인트). 또한 혐오·차별·조롱 표현 때문에 본인 또는 주변 사람이 상처받거나 기분 나쁜 적이 있다는 응답도 44.8% 수준이었다. 청소년들이 이런 표현을 접하는 경로는 유튜브 53.1%, 인스타그램 51.6%, 틱톡 33.6% 순이었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확산된 혐오·조롱 표현이 또래문화와 학교생활로 옮겨오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에 대한 논의도 재점화되는 모양새다. 교사들은 혐오표현이나 역사왜곡 문제를 지도하기 어려운 이유로 “정치적 중립 위반으로 문제 삼을까 우려된다”는 답변을 69.9%로 가장 많이 꼽았다. 이밖에도 교사들은 혐오표현 사안 대응 매뉴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혐오·극단주의 콘텐츠에 대한 규제, 민주시민교육 현실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교실을 오염시키는 혐오와 차별, 역사왜곡 표현은 학교 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혐오 문화가 학교와 교실로 스며든 결과”라며 “정부와 정치권은 차별과 혐오, 역사왜곡 표현이 난무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제도적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5·18은 폭동 혁명” 허위사실 유포한 20대 여성 불구속 송치

    “5·18은 폭동 혁명” 허위사실 유포한 20대 여성 불구속 송치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를 받는 20대 여성이 검찰에 넘겨졌다. 3일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부산 부산진경찰서는 지난달 30일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20대 여성 A씨를 불구속 송치했다. A씨는 지난해 5월 18일 자신의 블로그에 ‘5·18 폭동 혁명 민주화 전두환, 박정희 무장 공비 사건 그날의 실체’라는 제목으로 게시글을 작성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호기심 차원에서 공개 채팅방의 게시글을 복사한 뒤 붙여넣기 하는 방법으로 글을 쓴 것”이라고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앞으로도 5·18 민주화운동의 의미가 훼손되지 않도록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 지속해서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 “우리 아들, 배재고 보내야 하나”…수영 금메달리스트 SNS 글에 ‘시끌’

    “우리 아들, 배재고 보내야 하나”…수영 금메달리스트 SNS 글에 ‘시끌’

    5·18 민주화운동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여자 수영 금메달리스트 출신 조희연(43)씨가 최근 지역 비하성 응원으로 비판을 받는 배재고등학교를 언급해 또 논란을 불렀다. 조씨는 지난 30일 소셜미디어(SNS) 스레드에 “우리 아들들 배재고 보내러 서울로 이사 가야 하나”라고 적었다. 앞서 지난달 29일 서울 양천구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광주제일고(광주일고)와 맞붙은 배재고 선수들은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응원가를 불렀다. 일부 선수는 “탱크데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러한 응원가 개사는 지난달 스타벅스 코리아의 이른바 ‘5·18 탱크데이’ 이벤트 논란을 연상케 하는 조롱성 구호로 해석된다. 당시 스타벅스는 ‘탱크데이’, ‘책상에 탁’ 등의 문구를 활용한 마케팅을 진행해 5·18 민주화운동과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광주일고의 출신 지역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수많은 시민이 희생당한 광주라는 점에서 해당 응원가는 단순한 상대 팀 조롱을 넘어선 혐오 행위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조씨의 배재고 언급은 배재고 선수들의 문제 행동을 두둔하려는 의도로 해석돼 누리꾼들의 비판을 받았다. 일부 이용자들은 “누군가를 모욕하고 조롱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부모도 있구나” 등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이용자가 비판 댓글을 단 이들을 ‘좌빨’이라고 표현하며 “여기 차단해야 할 이용자가 많다”고 하자 조씨는 ‘좋아요’를 누르고 “그렇죠”라고 답글을 달기도 했다. 조씨는 앞서 지난해에도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지난해 6월 8일 스레드에 “제가 맨날 하고 다니는 말. 5·18은 폭동이다! 반항정신으로 똘똘 뭉친 폭동! 그런데 무슨 헌법에 5·18 정신을 넣겠다느니 어쩌느니. 한숨만 나옴”이라고 적었다. 한 이용자가 우려를 표하자 그는 “생각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있다. 제가 제 생각 말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결국 조씨는 이 발언으로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상 허위사실 유포금지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다. 해당 조항의 법정형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이다. 결국 그는 “5·18 사건으로 피해 받으신 무고한 시민분들께 대단히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어 “민주주의를 외치고 돌아가신 분들께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 제가 비판하고 싶었던 부분은 무고하고 숭고하신 영령분들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고 해명했다. 다음날에도 그는 “공인으로서 경솔한 발언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겠다. 쓴소리 맘껏 해주시면 달게 받고 반성하겠다”고 덧붙였다. 조씨는 중학교 3학년이었던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여자 접영 200m에서 금메달을 딴 수영 신동이었다. 그해 조희연은 한국 신기록을 18차례나 경신해 주목받았다. 한편 1일 배재고 교직원 및 야구부 소속 학생·학부모는 사과를 위해 광주일고를 방문하겠다고 전했으나 무산됐다. 광주일고 측은 “현재 학생들이 사과를 받아들일 만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라며 “금일 방문은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배재고의 사과 방문과 관련해 조윤채 광주일고 감독은 “아직은 선수들의 마음이 닫혀 있다”며 “마음이 풀려 안정되면 사과받겠다는 말씀을 배재고 쪽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참사’ 빼고 다 좋았던 환대와 열정… “아디오스, 멕시코!”[박성국 기자의 Vamos! 월드컵]

    지는 사람이 삭발하는 ‘멕시코식 내기’를 했더라면 그나마 올여름 시원하게 보낼 수 있었을까. “적어도 7월 첫째 주까지는 한국에 없을 것”이라던 기자의 호기롭던 장담은 내심 월드컵 8강까지 기대했던 홍명보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의 꿈과 함께 물거품이 됐고, 6월의 끝자락인 30일 15시간의 콩나물시루 비행을 거쳐 인천 땅을 밟았다.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아침 댓바람부터 두 시간이나 기다린 끝에 받은 ‘미국 취재 비자’는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이번 대회 유일한 기념품으로 남았다. ●3주 동안 ‘안녕하세요’ 인사 계속 들어 결과적으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월드컵에서 홍 전 감독이 이끌던 한국 대표팀은 적어도 16강까지는 갈 것으로 봤다. 홍 전 감독에 대한 신뢰보다는 손흥민(로스앤젤레스 FC)과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황인범(페예노르트) 등 이른바 한국 축구 ‘황금 세대’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었다. 한편으로는 대표팀의 실력보다는 ‘카르텔 폭동’ ‘세계 타살률 1위 국가’ 등 자극적인 기사로만 인식됐던 멕시코 현지 치안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출국을 앞두고 만난 주한멕시코 대사와 대사관 직원들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월드컵 대회가 열리는 멕시코시티, 과달라하라, 몬테레이 세 도시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은 떨칠 수 없었고, 멕시코 카르텔의 최대 본거지로 알려진 할리스코주 과달라하라에 도착한 뒤 처음 이틀간은 너무 긴장하고 다닌 탓에 목덜미가 뻣뻣하게 굳기까지 했다. 그러나 과달라하라에서의 2주, 몬테레이에서 보낸 일주일은 출장과 여행 등으로 수많은 나라와 도시를 방문했던 기자에게 잊을 수 없는 환대와 열정으로 가득한 ‘파이스 에르마노’(형제의 나라)였다. 어딜 가나 ‘니하오’나 ‘곤니찌와’가 아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끊이지 않았다. 광장과 펍에서는 스무살 가까이 어린 청년들이 ‘꺾인 40대’를 눈앞에 둔 기자에게 테킬라를 병째 입에 퍼부으며 “꼬레아노, 에르마노, 야 에레스 메히까노!”(한국인 형제여, 당신은 이제 멕시코 사람입니다!)를 연호했다. ●마을 식당 “이 음식도 맛보라” 덤까지 일부 우버 기사들은 번역기까지 돌려가며 ‘절대로 가면 안 되는 지역’을 알려주며 기자의 안전을 챙겼고, 마을 타코 식당에선 “이 음식도 맛보라”며 이제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덤’의 미덕까지 보였다. 물론 밤늦은 외곽, 빈민가의 멕시코는 여전히 위험한 곳일 테다. 그러나 넷플릭스와 외신으로 배운 멕시코는 공포의 과잉이었고, 한국 축구의 ‘참사’만 빼놓고는 모든 게 좋았던 월드컵 출장이었다. 아디오스! 월드컵, 아디오스! 메히꼬.
  • 모든 게 좋았던 멕시코, 딱 하나 축구만 빼고 [박성국 기자의 Adios! 월드컵]

    모든 게 좋았던 멕시코, 딱 하나 축구만 빼고 [박성국 기자의 Adios! 월드컵]

    지는 사람이 삭발하는 ‘멕시코식 내기’를 했더라면 그나마 올여름 시원하게 보낼 수 있었을까. “적어도 7월 첫째 주까지는 한국에 없을 것”이라던 기자의 호기롭던 장담은 내심 월드컵 8강까지 기대했던 홍명보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의 꿈과 함께 물거품이 됐고, 6월의 끝자락인 30일 15시간의 콩나물시루 비행을 거쳐 인천 땅을 밟았다.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아침 댓바람부터 두 시간이나 기다린 끝에 받은 ‘미국 취재 비자’는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이번 대회 유일한 기념품으로 남았다. 결과적으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월드컵에서 홍 전 감독이 이끌던 한국 대표팀은 적어도 16강까지는 갈 것으로 봤다. 홍 전 감독에 대한 신뢰보다는 손흥민(로스앤젤레스 FC)과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황인범(페예노르트) 등 이른바 한국 축구 ‘황금 세대’에 대한 믿음이었다. 한편으로는 대표팀의 실력보다는 ‘카르텔 폭동’ ‘세계 타살률 1위 국가’ 등 자극적인 기사로만 인식됐던 멕시코 현지 치안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출국을 앞두고 만난 주한멕시코 대사와 대사관 직원들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월드컵 대회가 열리는 멕시코시티, 과달라하라, 몬테레이 세 도시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은 떨칠 수 없었고, 멕시코 카르텔의 최대 본거지로 알려진 할리스코주 과달라하라에 도착한 뒤 처음 이틀간은 너무 긴장하고 다닌 탓에 목덜미가 뻣뻣하게 굳기까지 했다. 그러나 과달라하라에서의 2주, 몬테레이에서 보낸 일주일은 출장과 여행 등으로 수많은 나라와 도시를 방문했던 기자에게 잊을 수 없는 환대와 열정으로 가득한 ‘파이스 에르마노’(형제의 나라)였다. 어딜 가나 ‘니하오’나 ‘곤니찌와’가 아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끊이지 않았다. 광장과 펍에서는 스무살 가까이 어린 청년들이 ‘꺾인 40대’를 눈앞에 둔 기자에게 테킬라를 병째 입에 퍼부으며 “꼬레아노, 에르마노, 야 에레스 메히까노!”(한국인 형제여, 당신은 이제 멕시코 사람입니다!)를 연호했다. 일부 우버 기사들은 번역기까지 돌려가며 ‘절대로 가면 안 되는 지역’을 알려주며 기자의 안전을 챙겼고, 마을 타코 식당에선 “이 음식도 맛보라”며 이제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덤’의 미덕까지 보였다. 물론 밤늦은 외곽, 빈민가의 멕시코는 여전히 위험한 곳일 테다. 그럼에도 넷플릭스와 외신으로 배운 멕시코는 공포의 과잉이었고, 멕시코에서의 3주는 한국 축구의 ‘참사’만 빼놓고 모든 게 좋았다. 아디오스! 월드컵, 아디오스! 메히꼬.
  • “5·18은 간첩 폭동” 인스타그램에 왜곡 글 올린 30대…검찰 송치

    “5·18은 간첩 폭동” 인스타그램에 왜곡 글 올린 30대…검찰 송치

    ‘5·18 민주화운동이 간첩의 폭동’이라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을 유포한 30대 남성이 검찰에 넘겨졌다. 대구 달서경찰서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A(30대)씨를 불구속 송치했다고 2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19일 인스타그램에 ‘5·18은 간첩이 광주시민 일부를 선동해서 일으킨 폭동이다, 그렇지 않으면 5·18 명단을 공개하라’, ‘미안한데 저 일베 아닌데 5·18은 명백한 북괴 간첩들이 일으킨 폭동이 맞습니다ㅋㅋㅋ’ 등의 글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현행법상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해 민주화운동을 부인·비방·왜곡·날조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5·18에 대한 평소 생각을 올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수십 년에 걸쳐 법적 평가와 폭넓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특별법이 제정됐음에도 불특정 다수에게 단정적이고 자극적인 문장으로 허위 사실을 전파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고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중대한 범죄행위에 대해 엄중히 수사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 [김정인의 역사프리즘] 한국의 월드컵 진출, 첫 관문은 한일전이었다

    [김정인의 역사프리즘] 한국의 월드컵 진출, 첫 관문은 한일전이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지난 12일(한국시간)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체코를 멋지게 이겼다. 이제 19일 오전 열리는 2차전에서 홍명보호가 멕시코를 상대로 어떤 멋진 경기를 보여 줄지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한국은 1986년 멕시코 대회를 시작으로 이번까지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하며 아시아 최장 연속 진출 기록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일본이 1998년부터 8회 연속 본선 진출로 그 뒤를 잇고 있다. 한국이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건 1954년 스위스 대회였다. 당시 월드컵 동아시아 예선에는 한국, 일본, 중국이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중국이 기권하면서 한일 두 나라의 대결 승자가 본선에 오를 예정이었다. 해방되고 10년이 되지 않아 일본에 지배받던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한국인들은 예선이 단둘의 맞대결로 좁혀지자 일제 침략에 대한 설욕의 기회라며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한일전은 더이상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니었다. “외교전이자 사상전”이요 “한민족 대 일본 민족 간의 총력전”이며 “무기 없는 전쟁”이었다. 그들의 눈에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전쟁에 출정하는 군인이었다. 그러므로 반드시 승리해야 했다. 월드컵 예선은 통상 각국 대표팀이 자국과 상대국에서 한 번씩 경기를 치른다. 그런데 1954년 3월 7일과 14일에 열린 동아시아 예선은 모두 일본 도쿄에서 치러졌다. 정부가 일본 선수들의 입국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삼일절인 1954년 3월 1일, 한국 선수단 24명을 태운 비행기는 부산 수영 비행장에서 환송객이 흔드는 태극기 물결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향했다. 해방 후 첫 축구 한일전은 3월 7일 오후 2시, 도쿄 메이지 신궁 외원에 자리한 국립경기장에서 열렸다. 5만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태극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게양됐다. 빨간 유니폼의 한국 선수와 파란 유니폼의 일본 선수가 입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일본 땅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한국 선수들은 물론 관중석에 자리한 재일동포들까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함께 목놓아 애국가를 불렀다. 며칠 동안 눈비가 뒤섞여 내린 탓에 운동장 상태가 불량한 가운데 ‘한국군’은 ‘일본군’을 5-1로 격파했다. 경기가 끝나자 목놓아 응원하던 재일동포들은 얼싸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대한해협 건너에서 라디오로 중계방송을 듣던 한국인들도 ‘식민 지배에 대한 설욕전’에서 승리한 기쁨을 누렸다. 당시 중계방송을 하던 아나운서는 승리가 확정되자 목이 멘 채 연거푸 태극기를 외쳤다고 한다. 일본이 아닌 한국 땅에서 월드컵 한일전이 처음 열린 건 1960년 11월 6일이었다. 1962년 칠레 대회 동아시아 예선전이었다. 해방 이후 15년 만에 서울에서 열리는 최초의 한일전이었다. 애초 대한민국 정부는 이 경기를 불허했다. 식전 행사의 일장기 게양과 일본 국가 연주가 민심을 자극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판 여론이 빗발치자 정부는 경기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국무회의를 거쳐 결국 허가할 수밖에 없었다. 준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경기장 질서 유지를 위해 지정 좌석제를 운영하라는 조건이 붙자 대한축구협회는 급히 관중 좌석에 번호를 부착하는 공사에 착수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심판이었다. FIFA가 선임한 필리핀 심판 3명이 개최 결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한국까지 오기엔 시간이 촉박하다며 불참을 통고했다. 결국 일본 축구팀이 3명 모두 한국 심판을 써도 좋다고 양해하면서 문제가 해결되었다. 일장기 게양과 일본 국가 연주를 둘러싼 갈등도 막판까지 이어졌다. 정부는 한일전은 허가하되 일장기 게양과 일본 국가 연주는 허가할 수 없다고 버텼다. 여론은 국제관례를 무시한 ‘쇄국적’ 처사이자 ‘소아병적 기우’라며 반발했다. 결국 경기 당일 오전에야 일장기 게양과 일본 국가 연주가 허용되었다. 11월 6일 오후 2시, 문을 연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서울 효창운동장에는 구름처럼 관중이 몰려들었다. 전례 없이 비싼 입장료에도 1만 3000석이 꽉 찼다. 경기장 북쪽 언덕 위에도 1만명 넘는 관중이 빽빽하게 모였다. 경찰은 관중이 흥분하면 선수들의 신변이 위험하다며 기마경찰과 구호차, 거기다 헬리콥터까지 대기시켰다. 한국과 일본 대표팀 선수들이 입장하고 마침내 일본 국가가 울려 퍼지며 일장기가 게양됐다. 식민 지배를 기억하는 수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해방 이후 처음으로 한국 땅에 일장기가 게양되는 동안 정부가 우려한 폭동은 일어나지 않았고 정적과 긴장감이 운동장을 감쌌다. 경기는 한국의 2-1 승리로 끝났다. 남다른 벅찬 감회와 기쁨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축구 경기가 민족의 자존심이 격돌하는 전장이 되는 경험은 이번 월드컵이 열리는 멕시코에도 있다. 멕시코는 미국 원정에서는 질지언정 적어도 자국 안방에서는 75년간 미국에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멕시코시티의 아즈테카 스타디움은 멕시코인의 미국에 대한 설욕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그 기록은 2012년 8월 15일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미국이 1-0으로 이기면서 깨졌다. 도쿄 국립경기장에 처음 울려 퍼진 애국가에 재일동포들이 흘린 눈물, 효창운동장 하늘에 일장기가 게양되던 1분 동안의 정적, 그리고 아즈테카 스타디움에서 절박하게 승리를 염원하던 멕시코인의 응원. 90분의 경기에서 치열하게 구르는 축구공에는 이렇게 민족의 기억과 자존심이 새겨져 있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 19명의 참전용사들… 호국의 성지서 영웅을 기억하다

    19명의 참전용사들… 호국의 성지서 영웅을 기억하다

    워싱턴 DC는 그저 한 나라의 수도가 아니다.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어떻게 스스로를 정의하는지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어디를 가도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돌과 건물에 새겨져 있고, 기념비의 형태로 서 있다. 그 바탕을 지지하는 건 호국과 보훈의 정신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나라를 단일한 목표와 비전 아래 묶기 위한 필수적인 가치다. 이번 여정의 테마도 이와 정확히 일치한다. 워싱턴은 기념비와 박물관의 도시다. 한 집 건너 커피숍인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셀 수 없이 많은 상징 공간 중 유독 한국과 관련된 곳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역시 피는 더운 법이다. ●102년 만에 되찾은 조선의 외교 중심 주미대한제국공사관부터 찾는다. 요즘 ‘K컬처’만큼이나 ‘힙’했던 조선 말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후 1889년 고종이 내탕금 2만 5000달러를 들여 매입했고,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강탈당하기 전까지 우리 외교활동의 중심 무대였다. 1910년 일제가 단돈 5달러에 사들였다가 헐값에 되판 걸 102년 만인 2012년에 우리 정부가 재매입했다. 이후 복원 작업을 거쳐 2018년 전시관으로 재개관했다. 공사관은 백악관에서 북쪽으로 1.5㎞ 정도 떨어진 로건 서클에 있다. 유서 깊은 건물들이 밀집한 역사 지구다. 공사관은 당대의 ‘핫플’이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개관 당시 워싱턴 조야의 유명 인사 등 2000여 명이 내부 장식 등을 돌아보기 위해 찾았다고 한다. 공사관은 빅토리아 양식의 3층 건물이다. 국내외에서 발견된 당대 각종 문헌과 사진을 바탕으로 재현됐다. 워낙 꼼꼼하게 원형을 회복한 덕에 2024년 미국 정부가 국가사적지로 공식 등재했다. ●한국전 참전한 병사 기리는 ‘내셔널 몰’ 내셔널 몰로 발걸음을 옮긴다. 워싱턴을 상징하는 거의 대부분의 랜드마크와, 살면서 한 번은 들었을 명문들이 밀집된 곳이다. 가장 가슴 저릿한 공간은 당연히 한국전쟁 기념공원이다. 바로 옆이 미국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링컨기념관과 워싱턴 기념비란 걸 생각하면 미국인들에게도 6·25전쟁의 무게감이 가볍지 않은 듯하다. 기념공원은 전장을 상징하는 삼각형과 추모를 의미하는 원형이 결합된 형태로 조성됐다. 그 안에 다양한 의미를 담은 조형물을 배치했다. 대표적인 게 스테인리스 강철로 제작한 ‘19명의 병사상’이다. 한국의 험준한 산악지형을 행군하는 육·해·공군과 해병 등 군종별 이미지를 조각했다. 병사들이 입은 우의(판초)는 한국의 혹독한 날씨를, 바닥의 키 낮은 관목들은 한국의 산악 지형을 상징한다. 삼각형 끝자락의 모서리 바닥엔 황동 재질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조각상만 보며 가다간 지나치기 십상이다. 내용은 이렇다. “그들이 알지 못했던 국가와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나라의 부름에 응했던 우리의 아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거의 매 순간 잊고 살지만, 우리가 딛고 선 토대는 이런 희생 위에 세워졌다. 그 사실을 새삼 깨닫는 순간, 작은 조형물 하나하나가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선다. 조각상 바로 옆은 화강암 벽화가 자리한다. 2400여 장의 실제 전쟁 사진을 샌드블라스팅 기법으로 새겼다. 샌드블라스팅은 돌이나 유리 등 단단한 재료에 그림이나 글자를 새길 때, 조각칼 대신 모래 입자를 고압 공기로 쏴서 원하는 부분을 마모시키는 기법이다. 안개가 낀 듯한 흐릿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표현할 때 흔히 쓴다. 이 벽에 ‘19명의 병사상’이 반사된다. 병사들의 투영은 날씨나 낮밤을 가리지 않고 계속된다. 이 덕에 19명의 조각상이 38명이 되고, 이는 38선과 38개월 동안 치러진 전쟁의 은유로 이어진다. ●‘공짜로 얻어지는 자유는 없다’는 교훈 추모를 상징하는 원형의 작은 공간은 물로 채워졌다. 벽면에 ‘프리덤 이즈 낫 프리’,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는 뜻의 글귀가 새겨졌다. 이 역시 이 일대를 장식하는 명문 중 하나다. 그 너머로 전사자의 이름을 새긴 ‘추모의 벽’이 있다. 한때 한국인 전사자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상실감을 느꼈던 곳이다. 현재는 6·25전쟁 중 전사한 4만 3000여 명의 미군과 한국인 카투사 이름이 새겨져 있다. ●“피부색이 아닌 인격으로 평가한다” 내셔널 몰 서쪽 끝, 포토맥 강을 등지고 선 링컨기념관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기념물 중 하나다. 그리스 신전 양식의 흰 대리석 건물 안에는 1922년 봉헌된 높이 5.8m의 에이브러햄 링컨 좌상이 있다. 건물 내·외부에 저 유명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글귀로 유명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문,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를 꿈꾼다’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연설문, ‘여럿이 모여, 하나’라는 미국 건국 이념 등 무수한 명문이 새겨져 있다. 반사 연못(리플렉팅 풀)을 사이에 두고 동쪽 끝에 워싱턴 기념비가 솟아 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리는 기념물이다. 높이 169m의 오벨리스크로, 완공된 1884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었다. 엘리베이터로 전망대에 오르면 내셔널 몰 일대와 백악관, 국회의사당 등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예약제로 운영되는데, 예약이 쉽지 않다. 자세히 보면 기념비 하단 3분의 1 지점에서 대리석 색깔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남북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됐다가 재개되면서 다른 채석장의 돌을 사용한 탓이다. 미국의 굴곡진 역사가 이 탑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화석·노예제… ‘세계 박물관의 수도’ 이제 박물관을 돌아볼 차례다. DC는 ‘세계 박물관의 수도’라 불릴 만하다. 스미소니언 협회 소속 박물관만 17개, 여기에 국립미술관 등을 더하면 20개가 넘는 국립 박물관·갤러리가 있다. 대부분 무료다.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국립자연사박물관은 공룡 화석부터 45.52캐럿의 ‘호프 다이아몬드’까지 1억 4600만 점의 소장품을 갖춘 세계 최대 규모의 자연사 박물관이다. 국립미술관은 동관과 서관으로 나뉘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부터 피카소, 모네까지 서양 미술의 정수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2016년 개관한 국립아프리카계미국인역사문화박물관은 노예제부터 민권운동, 현대 흑인 문화까지를 아우르는 전시로 DC에서 가장 주목받는 박물관 중 하나다. 인기가 높아 예약이 필수다. ●낮과 밤이 다른 두 개의 얼굴 가진 DC DC는 두 개의 얼굴을 가졌다. 낮에는 정치와 역사의 도시, 밤에는 의외로 활기찬 문화와 음악의 도시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이 도시가 살아 숨 쉬는 방식이 보인다. 다만 방문을 자제해야 하는 지역도 있다. 한 현지 교포는 “DC가 미국 내 다른 도시들에 견줘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국회의사당 오른쪽은 우범지대라서 현지인들도 잘 찾지 않는다”고 전했다. DC는 정치의 도시이기 전에 음악의 도시였다. 그 심장이 ‘U 스트리트’다. 재즈의 거장으로 꼽히는 듀크 엘링턴이 걷던 길로, 한때 ‘블랙 브로드웨이’로 불렸던 곳이다. 뉴욕의 할렘에 앞서 ‘U 스트리트’가 흑인 문화의 진원지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R&B의 전설 마빈 게이, ‘라떼 세대의 음악’이었던 ‘고고’의 대부 척 브라운 등이 이 도시 출신이다. 1968년 마틴 루서 킹 암살 이후 폭동으로 무너졌다가 수십 년에 걸쳐 되살아났다. 조지타운은 DC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로 꼽힌다. 19세기 붉은 벽돌 건물들이 남아 있는 거리를 따라 트렌디한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포토맥강에 있는 워싱턴 하버에서 강변 풍경을 보며 식사하는 것도 이 동네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다. [여행수첩]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전시물 교체 등을 위해 15~24일 휴관한다. 무수히 많은 영화의 촬영지였던 ‘리플렉팅 풀’은 현재 부분 공사 중이다.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이전 재개방할 예정이다. -링컨 좌상, 워싱턴 기념비 등은 연중무휴로 24시간 개방한다. 성탄절에만 쉰다. 대부분의 박물관처럼 입장료는 없다. -크랩케이크는 DC의 솔 푸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틀 걸러 한 번씩 먹었다는 음식이다. 하지만 과연 예전 그 맛일까 의문이다. 현지인도 많이 소비하고 외국인 관광객까지 가세한다면 식재료가 남아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DC 중심지를 돌아보려면 ‘메트로+전기자전거’ 조합을 고려할 만하다. 메트로는 DC와 버지니아주, 메릴랜드주 등 인근 세 지역이 공동 투자해 설립한 교통 시스템이다. 지하철과 버스가 환승된다. 2달러짜리 카드를 구입한 뒤 충전해 쓴다. DC뿐 아니라 교외 지역을 돌아보기에도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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