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클럽문화
    2026-09-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2
  • 문화로 지방을 살린 ‘축제의 신’이 말하는 성공 비결

    문화로 지방을 살린 ‘축제의 신’이 말하는 성공 비결

    감독을 맡은 축제마다 성공신화를 써서 축제의 신으로 불리는 문화기획자가 있다. 홍대 앞을 클럽문화의 성지로 만든 류재현 감독으로부터 문화의 힘으로 사람을 불러모으는 비결을 들었다. “어렵거나 망했거나 아니면 돈이 없으면서 처음 시작한 축제만 감독을 맡아왔어요.”  서울대 미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미대오빠’인 류재현 감독은 서울시의 정책연구기관인 서울연구원에서 일하다 문화기획자의 길을 걷게 됐다. 류 감독은 2001년 팔찌 하나만 사면 홍익대 앞 모든 클럽을 다 갈 수 있는 ‘클럽데이’로 홍대를 클럽 문화의 성지로 만들었다. 클럽데이는 클럽끼리 상생하는 효과를 낳아 더 나은 문화를 만드는 발판이 됐고, 홍대 일대의 상권을 키웠다.  이어 2003년 홍대앞 인디문화를 처음으로 서울시 대표축제인 ‘2003 하이 서울 페스티벌’에 선보임과 동시에 축제감독이 됐다. 서울과 양평, 춘천에서 개최된 ‘월드DJ페스티벌’은 대한민국 최고의 전자음악(EDM) 축제로 성장했다. 점프 구로축제, 나이없는 날, 서울문화의 밤, 마포나루 새우젓축제, 서울장미축제, 내나라여행박람회, 아트프라이즈 강남, 전주비빔밥축제 등을 연달아 성공하면서 축제의 미다스 손이 됐다.  특히 8년째 감독을 맡고 있는 서울장미축제는 5000명이 오던 행사를 200만명이 찾는 축제로 성장시켰다. 2019년 한국관광연구학회 저널에 실린 논문에서 추산한 서울장미축제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투입예산의 8.7배나 되는 52억 6700만원에 이른다.  “장미축제는 서울 중랑구에서 여는데 처음에 예산은 5000만원밖에 안되지만 총감독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장미축제인데 장미가 별로 없다는 공무원들의 걱정에 ‘밤에 피는 장미’란 아이디어를 내놓았죠” 발광다이오드(LED) 장미를 심은 서울장미축제는 서울에서 제일 예쁜 축제로 입소문이 나면서 그야말로 ‘장미 잭팟’이 터졌다. 장미의 날, 연인의 날, 아내의 날 등의 이벤트를 열고 ‘자기야, 장미 안 줘’ 등의 홍보 문구를 만들어냈다.  류 감독의 아이디어를 징계까지 불사하면서 구현해 낸 공무원들의 노고도 있었다. 인근 동대문구 아파트 주민이 장미축제에 쉽게 올 수 있도록 중랑천에 징검다리를 놓자고 제안했다. 축제개막일까지 징검다리를 놓느라 고군분투했던 중랑구 치수과장은 상급 부처와의 협의과정에서 미흡한 점이 발생해 징계를 받기도 했다.  현재 그가 감독을 맡은 축제는 서울장미축제, 아트프라이즈 강남, 내나라 여행박람회, 전주비빔밥축제, 의령 리치리치페스티벌 등이 있다. 코로나19 방역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힘들었던 지난 2년 동안에도 9개의 축제를 맡아 7개를 제대로 치러냈다.  류 감독은 혁신적 아이디어로 방역기간에도 축제를 열었다. 서울장미축제는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훌라후프 안에서만 춤을 추는 ‘제자리 디스코’ 행사로 인기를 끌었다. 그가 행사를 알리기 위해 만든 홍보 문구는 ‘멈춤에서 춤춤’이었다. 아트프라이즈 강남은 논현동 가구거리 매장에서 ‘쇼윈도 콘서트’를 열었다. 가수와 관람객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공연을 즐기는 형식이었다. 또 의료진들이 입는 방호복을 캔버스 삼아 작가들이 예술혼을 펼친 ‘방호복 전’으로 코로나 극복 영웅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지방에서 열리는 축제는 유명 트롯트 가수만 부르면 사람이 모인다. 하지만 류 감독은 25년간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면서 한 번도 연예인 초청으로 흥행을 도모한 적이 없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선심성 행정에 가까웠던 축제를 장소 마케팅과 연계해 지방에 경제적 효과를 안겨주고, 지역주민이 행복해지는 장으로 만들어왔다. 그는 “남이 원하는 것을 해주면 기획가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 예술가”라면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해 왔다”고 그동안 기획한 축제의 성공 비밀을 털어놓았다.  올해 그가 새로 맡은 축제로 경남 의령군에서 열리는 ‘의령 리치리치 페스티벌’이 있다. 의령에는 삼성을 창업한 호암 이병철 회장뿐 아니라 삼영화학을 세운 관정 이종환 회장의 생가가 있다. 또 임진왜란 때 곽재우 홍의장군이 왜적을 소탕한 남강변에 부귀가 끊이지 않는다는 전설의 솥바위가 있다.  류 감독은 사람들이 부자의 기운을 받고, 의령군민이 부자 되는 축제를 기획했다. 유명 창업가뿐 아니라 해외에서 일하며 다양한 분야에 도전을 통해 경력의 정점을 찍고 있는 30~40대 젊은 전문가들이 의령으로 모인다. 축제 마지막 날인 10월 30일에는 솥바위 주변에서 사람들의 소원을 적은 은행잎을 띄워 대장관을 연출할 계획이다.    그는 “지역의 가치를 찾아주는 축제 기획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소통”이라며 “예산은 기획이 잘 되면 자연히 따라붙는다”고 강조했다.
  • “강간문화 근절” 세계여성의 날, 페미니즘 단체들 클럽 앞 시위

    “강간문화 근절” 세계여성의 날, 페미니즘 단체들 클럽 앞 시위

    111주년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페미니즘 단체들이 클럽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불꽃페미액션, 녹색당,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등 페미니즘 단체들은 8일 오후 8시 서울 강남구 신사역 인근에서 ‘버닝, 워닝’(Burning,Warning)이라는 이름으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먼저 “행사 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110명 중 77명이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대답했다”며 “전국 클럽 내 성폭력 발생 전수조사, 클럽 내 CCTV 의무 설치 등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200여명의 참가자가 행진을 시작했고, 버닝썬과 함께 마약유통·폭행 의혹에 휩싸인 아레나 클럽을 거쳐 버닝썬이 입주한 르메르디앙 호텔 앞까지 “성폭력 난무하는 클럽문화 불태우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걸었다. 참가자 중 일부는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장미꽃을 들고 걸었으며, 남성도 15명가량 참여했다. 시위대는 오후 9시쯤 버닝썬 입구에 도착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버닝썬에서 경찰 유착 의혹과 마약·세금 탈루 의혹 등이 덧붙여져 문제가 크게 불거지고 나서야 ‘아 여기에서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었구나’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면서 “여성 혐오와 성차별·성폭력 문화는 오래된 사회 문제”라고 말했다. 신 위원장은 또 “그동안 강간문화에 부역해 온 남성들이 있다면 반성하고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되어 같이 싸워달라. 내가 춤출 수 없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라는 구호로 발언을 마쳤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미래유산 톡톡] 토지 번호가 거리 이름 된 ‘서교 365’ 독특한 건물에 서울의 역사 오롯이

    [미래유산 톡톡] 토지 번호가 거리 이름 된 ‘서교 365’ 독특한 건물에 서울의 역사 오롯이

    지난 16일 그랜드투어 일행이 찾은 홍대에는 서교 365와 연남동 기사식당거리 등 단 두 개의 서울미래유산이 지정돼 있다. 홍대 앞은 ‘천의 얼굴’을 가진 흥미로운 문화 공간이지만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에 서울미래유산 지정 기준에는 다소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다만 최근 클럽문화와 게스트하우스, 버스킹, 프리마켓 등 대중 유흥문화 일변도의 홍대에 경의선 숲길과 책거리의 조성은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인다. 서교 365는 용산에서 당인리발전소를 연결하던 폐선로를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상가거리다. 도시의 역사와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만나 특이한 경관을 만들어 내고 있는 곳이다.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된 서울의 역사가 형성돼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옷가게 거리로 불리는 서교동 365-2번지~26번지까지 23개 필지에 들어선 이 낡은 건물들은 홍대 앞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며 동시에 가장 의미 있는 건축물들이기도 하다. 지번이 거리의 명칭으로 굳어졌다. 서교 365의 시작은 1976년 화력발전소의 연료가 석탄에서 가스로 대체되면서 폐선이 된 철둑을 따라 들어선 건물이 가게나 작업실로 사용되면서 지역 주민들의 생활 터전이자 예술 공간으로 남게 됐다. 이 건물이 독특한 것은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는 외관에 있다. 건물의 폭은 2~5m 정도. 높이나 재료가 제각각인 2~3층 건물들이 250m 이어져 있다. ‘주차장길’이라 부르는 넓은 길과, ‘서교시장길’이라 불리던 좁은 길 사이에 놓였다.동교로 연남파출소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약 400m 구간은 ‘연남동 기사식당거리’로 불린다.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 순댓국집을 시작으로 저렴하고 맛도 좋은 식당들이 들어섰다.자연스레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은 택시운전사들이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서울 곳곳의 기사식당 밀집 지역 중 가장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30년 넘도록 시간이 부족한 택시운전사들이 식사하면서 짧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랑을 받아 왔다’며 이 거리를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지정만 할 뿐 사후 관리나 지원은 없었다. 요즘 서울에서 가장 핫한 ‘연트럴파크’가 서울미래유산 연남동 기사식당거리를 잠식하고 있다.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살아난 경의선 숲길 공원에 밀려 한때 10곳이 넘던 거리의 기사식당은 계속 줄고 있다.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거리미술·버스킹·클럽·게스트하우스… 젊은이들이 만든 대중문화 놀이터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거리미술·버스킹·클럽·게스트하우스… 젊은이들이 만든 대중문화 놀이터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3회 ‘서울의 놀거리-대중문화1번지 홍대 앞’ 편이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과 상수동, 당인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평소 홍대 앞에 한 번쯤 가 보고 싶었지만 엄두를 내지 못했던 중장년층 참석자들은 자녀들이 즐겨 다니는 카페와 클럽, 디자인숍을 누빌 모처럼의 기회를 잡았다. 왕년에 홍대 문화를 경험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손이 시릴 만큼 날이 찼지만 미래투어단의 얼굴에는 홍조가 그득했다.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해설을 맡은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인디 감성과 복고풍을 아우르는 ‘융합적 답사’를 이끌었다.●본래 ‘홍대 앞’은 정문부터 산울림소극장까지 1㎞ 플레이스 블랜딩(Place Blanding)은 장소의 가치와 힘을 규정하는 마케팅 기법이다. ‘다이내믹 코리아’가 국가 이미지를 나타내듯 ‘홍대 앞’은 ‘홍대’라는 장소와 ‘앞’이라는 정체성을 동시에 담은 지역 명칭이다. 과거 500년 이상 서울의 명실상부한 대중문화 1번지로 군림했던 종로를 대체하는 새로운 대중문화 1번지 ‘홍대 앞’의 탄생이다. 종로라는 공간(Space)이 거리와 방향을 파악하게 하는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상태라면, 홍대 앞이라는 장소(Place)의 개념에는 인간의 경험과 인식이 포함됐다. 형태와 공간의 내부에 주목하는 스페이스와 달리 플레이스는 관계와 맥락이 주목의 대상이다. ‘왕조에 의해 주어진’ 종로와 ‘젊은이들이 창조한’ 홍대는 다르다. 플레이스 블랜딩은 단순 볼거리가 아니라 호기심을 자극하고, 인식을 호의적으로 만든다. 이미지와 정체성을 갖춰야 완성된다. 홍대 앞은 최적의 플레이스 블랜딩이다. 홍대 앞만큼 역동적인 곳이 또 있을까. 1990년대 이후 줄곧 핫플레이스였다. 홍대 앞은 ‘홍대 스타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장소의 이미지와 정체성을 온전히 구축했다. 한마디로 축약할 수 없는 넓은 문화적 스펙트럼과 복합적인 문화코드를 품고 있다. 홍대 스타일은 장르를 넘나드는 대안공간을 지향한다. 미술과 음악을 중심으로 예술 전 영역에 걸친 다양성과 유연성, 확장성이 특징이다. 스쳐 간 사람의 손때로 쌓은 시간의 피라미드 같다. 본래 홍대 앞은 1980년대 홍익대 미대 출신 작가들의 화실과 공방, 갤러리를 중심으로 미술학원과 미술서점이 모여 미술학원거리를 형성한 곳이다. 홍대 정문에서 산울림소극장까지 1㎞에 이르는 와우산로다. 지금의 ‘걷고 싶은 거리’는 옛 경의선 철도를 따라 형성된 먹자골목이었다. 동교동사거리에서 당인리발전소까지 이어지는 당인선 기찻길에는 지금도 플랫폼의 흔적이 남아 있다.1990년대 들어 압구정을 떠나온 오렌지족과 신촌에서 옮겨온 대학문화가 이곳에서 합류했다. 1994년 라이브클럽의 전설 ‘드럭’이 문을 열었고, 1995년 홍익대 미대가 주최하는 거리미술제의 막이 올랐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전후해 인디밴드와 언더그라운드밴드가 활동하는 록카페와 라이브클럽, 댄스클럽이 홍대 앞을 클럽문화의 본거지로 만들었다. 홍대 놀이터(홍대어린이공원) 주변은 버스킹과 거리미술전시, 프린지공연, 프리마켓의 해방구가 됐다. 퇴폐·향락의 주범이라는 손가락질도 따랐지만 대중문화의 신발상지 홍대 앞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전에 없던 새로운 패션과 출판디자인, 음식문화가 창조됐다. 4000개에 가까운 출판·디자인·인쇄업체가 홍대 스타일을 기름지게 했다. 출판사 직영 북카페는 홍대만의 독특한 풍경이다. 이어 한류문화의 수출기지로 우뚝 섰다. 2013년 기준 서울을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 1200만명 중 54%가 홍대 앞을 다녀갔다. 공항 접근성이 좋고, 서울에서 가장 많은 게스트하우스가 동교동과 연남동 일대에 밀집된 덕분이다. 클럽과 카페, 공연장, 쇼핑가와 먹을거리가 즐비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 서울의 나이트라이프를 경험할 필수코스로 떠올랐다.●상품이 아니라 문화·예술을 파는 곳 ‘홍대 앞’ 홍대 앞은 홍익대 앞이 아니다. 홍대 앞은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됐다. 앞으로 어디까지 늘어날지 모른다. 그것이 홍대 앞의 매력이다. 행정적으로 서교동, 동교동, 창전동, 상수동 지역을 일컫지만 2010년 이후 합정동과 연남동, 서강동을 점령했다. 최근에는 당인동, 망원동까지 세력을 넓히고 있다. 홍대 앞은 단순히 상품을 팔지 않는다. 홍대 앞을 발상지로 하는 문화와 예술을 판다. 업주들이 임대료 인상을 피해 가게를 주변부로 옮길 때마다 소비자도 쫓아가는 이유다. 홍대 앞은 이미 와우교를 넘어 연남동 경의선 책거리로, 망원동 망리단길로, 또 내년이면 한국판 테이트모던이 들어설 당인동으로 뿌리를 뻗어 가는 중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남산과 장충동 (근대 역사기억장소) ■일시:11월 18일 오전 10시 3호선 동대입구역 5번 출구 ■신청(무료) : 서울시 서울미래유산 (futureheritage.seoul.go)
  • [현장 행정] 백스테이지 투어·홍대 축제 “1000만명 관광도시 마포로”

    [현장 행정] 백스테이지 투어·홍대 축제 “1000만명 관광도시 마포로”

    서울에서 게스트하우스가 가장 많은 곳, 인디·클럽문화의 메카, 한강을 가장 넓게 끼고 있는 자치구….과거 ‘마포종점’, ‘돼지갈비’ 정도의 이미지가 떠오르던 마포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등을 계기로 서울의 대표 관광지가 됐다. 당시 상암동에 신설된 축구전용 경기장이 큰 역할을 했다. 박홍섭 마포구청장은 “한해 외국인 관광객 651만명(2015년 기준)이 찾고 있지만 관광지로서 잠재력은 더 있다”면서 “한 단계 도약할 시점으로 본다”고 말했다.마포구는 올해를 ‘관광 원년’으로 정하고 2020년까지 연간 관광객 1000만명이 찾는 세계적 관광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마포의 극단과 맛집, 게스트하우스, 엔터테인먼트사 등 민간업체가 모여 재밌는 관광정책을 직접 짜면 외국인 관광객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계산이다. 15일 구에 따르면 민간 주도의 ‘마포문화관광협의회’(이하 협의회)가 다음달 창립할 예정이다. 협의회는 YG엔터테인먼트와 문화방송(MBC) 등 대형업체는 물론 한국도시민박업협회, 홍대걷고싶은거리상인회, 홍대클럽투어협회 등 17개 단체가 모여 만든 모임이다. 협회장을 맡은 김정현(45)씨는 “구청 등 ‘관’이 주도해 관광프로그램을 짜면 재미없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뭘 원하는지 아는 민간 전문가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지역 관광의 질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구청장도 “현장의 전문가들이 정책을 짤 때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철학으로 지난해 관광 전문가 자문모임인 ‘마포관광포럼’을 만들었다. 또 구는 협의회가 다음달 설립허가를 받으면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다. 협의회는 올해 이색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관광객을 끌어 모을 계획이다. 대형버스에서 내려 시간에 쫓기듯 관광지를 둘러보는 붕어빵식 프로그램과는 다르다. 김씨는 “예컨대 한류 공연을 본 관광객이 무대 뒤편을 둘러보며 가수·배우와 사진을 찍는 ‘백스테이지 투어’를 준비한다”면서 “유커(중국인 단체관광객)에 이어 싼커(개별 관광객)가 느는 현실에 맞는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홍대 인근의 소규모 공방, 미술관끼리 연계해 목걸이와 지갑, 액세서리 등 개성 있는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거나 마포의 300여개 게스트하우스(허가업체 기준) 간 협업해 외국인에게 길 안내 서비스도 제공한다. 업체 간 힘을 합쳐야 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다. 또 인디밴드, 무용인, 연극인, 디스크자키(DJ) 등이 출연하는 ‘홍대문화관광축제’도 준비 중이다. 박 구청장은 “구에서는 홍대 인근에 거리공연을 할 수 있는 ‘버스킹 존’을 만들고 야외무대, 거리갤러리 등을 조성하는 등 민간에서 하기 어려운 사업을 할 예정”이라면서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통역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홍대 밤거리, 말(馬)없는 청춘을 위로하다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홍대 밤거리, 말(馬)없는 청춘을 위로하다

    “항상 대학, 일류, 냉정한 얼굴뿐이었지, 이처럼 소년답고 인간적인 기쁨은 없었다. 덴버까지 와서, 덴버까지 와서 나는 그저 죽은 듯이 있었네.” 201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가수 밥 딜런, 소싯적 한 말씀 하셨다. ‘잭 케루악의 작품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듯이, 내 삶도 바꾸어 놓았다’라고. 밥 딜런의 운명을 노벨상으로 바꾸어 주었다는, 미국 소설가 잭 케루악(1922~1969)의 글이다. 1960, 70년대의 '젊음'을 그가 만들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지금도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손잡이를 떠받든 채 온 세계를 주행하고 있다. 손으로 직접 붙여 만든 36m짜리 타자용지에 일필휘지, 휘갈긴 소설인 '길 위에서'(On the Road. 1957)는 출간되자마자 세상은 '청춘'이 위대해야 함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누구나 겪게 되는 방황의 경전(經典)이자 절망의 안내서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 지금 '헬조선'이라는 자조적인 표현을 들어도 웃지 않는, 한국에서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젊음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우리네 청춘같이, 메말라가던 젊은 작가 ‘샐 파라다이스’는 우연히 열정의 청년 ‘딘 모리아티’를 만난다. 딘은 샐에게 있어 젊음 그 자체였고, 제임스 딘이었며, 탈출구였으며, 광화문 광장이었다. 샐은 광활한 미 대륙을 히치하이크로 횡단하며 길 위의 삶(On the Road) 속에서 절망이 아닌 기쁨을 발견한다. 비록 그것이 희망이 아닐지라도 삶 자체는 기쁜 것이라는 사실! 책 출간 이후 밥 딜런 뿐만 아니라 비틀즈, 짐 모리슨에서 핑크 플로이드, 커트 코베인, 들국화, 김승옥의 ‘무진기행’, 무라카미 하루키 등 또 다른 세계의 방랑하는 젊음이 그를 뒤따랐다. 누구나 잭 케루악이 되었고, 될 수 있었고, 되고 싶었다. 태초부터 아마도 젊음은 매 시기마다 있어 왔기에 그 자체가 종교라고 불러도 좋다. 사이비 무당이 만든 밀교(密敎)가 아닌 인류가 태동할 때부터 있었던 방황과 변혁의 근원이었다. 그러하기에 버나드 쇼는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 너무 아까운 것이라고 말했던가? 서울 한복판, 네델란드산 말을 타고 대학을 다닐 형편이 되지 않는 청춘은 어디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을까? 청춘의 혼이 비정상이어서 우주의 기운이 내려오지 않기에 늘 인턴으로, 비정규직으로, 계약직으로 버텨야 하는가? 그래서 어른들이여, 홍대 거리의 클럽을, 버스킹(야간거리공연)을, 포차의 술기운을 욕하지 마라. 2016년의 청춘은 지금, 그대들만큼 괴롭다. 죽은 듯이 눌려있는 우리네 청춘들의 놀이터, 홍대의 밤거리다. ● 70년대에 태어난, 베이비붐세대가 만든 X세대의 거리 홍대 거리는 홍익대학교 주변의 거리를 일컫는 말로, 원래 서울 마포구에 있는 서교동을 중심으로 하여 동교동, 합정동까지 아우르는 지명의 통칭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홍대 상권이 급격히 확장함에 따라 상수역 주변부터 당인리 화력발전소까지의 길과 경의선 숲길이 들어서 있는 연남동, 흔히들 망리단길이라고 부르는 망원동까지도 포함하는 지명이 되었다. 명동과 가로수길에 버금가는 서울의 핫 플레이스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홍대 거리의 핵심은 바로 홍익대 정문에서 삼거리포차를 돌아 KT&G건물(별칭 상상마당)까지 이르는 클럽거리다. 이 주변은 늘상 밤이 낮보다 밝은 대표적인 서울의 골목이다. 해가 지면, 청춘의 불빛들이 피카소 거리부터 상수동 언덕 거리 곳곳을 밝히는 곳이다. 태초에 젊음이 있어라고 한 시작은 이러하다. 이 거리의 중심인 홍익대가1946년에 개교, 한국전쟁 이후인 1955년 4월에 현재의 마포구 상수동에 학교의 터를 옮긴다. 이후 상수동과 서교동, 동교동에는 홍익대를 다니는 학생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였고 또한 상대적으로 집세가 저렴하다보니 신촌 등지에 터를 잡지 못하는 학생들도 대거 유입이 되어 늘상 하숙집마다 밤새 통기타 소리와 물감 냄새가 가시지지 않았다. 더구나 자랑스러운(?) 홍익대 미술대학을 다녔던, 어깨 힘 잔뜩 들어간 미대생들이 통금 따위가 막지 못할 예술적 열정을 위해 밤새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마련되면서 이 지역은 자연스레 뉴욕의 소호거리처럼 예술적 감성으로 분위기가 조금씩 어우러지게 되었다. 그러다 1984년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이 개통된다. 한 마디로 젊음의 터널이 도버해협 뚫리듯 뻥하니 비상구 문이 열린 것이다. 이 때부터 홍대 거리의 원형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이 당시 산울림 소극장이 개관하였고, 한강미술관, 녹색갤러리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주점 중심의 신촌과는 다른, 격이 높은 문화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 시기까지도 여전히 미술, 문학 중심의 문화 공간으로서의 조용하고 운치있는 거리특색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 1970년대 초반 출생들, 흔히 베이비붐세대라고도 불리는 '응답하라 1994' 주인공들이 젊음을 맞이하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홍대 거리는 비약적인 거대 상권으로 도약을 한다. 양화대교를 건너온 압구정의 ‘오렌지족’들이 홍대 입구쪽으로 아버지 차를 몰고 모여 들었다. 이 때가 1990년대 초,중반으로 클럽의 전신으로 볼 수 있는 락카페가 속속 생겨나면서 홍대 거리는 급속하게 젊은 트렌드에 맞는 거리로 재편된다. 물론 이전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부터 이 곳에는 다양한 장르의 젊은 음악가들이 모이는 클럽이나 카페가 등장했었고 각자의 음악적 세계를 알리는 공간이 열리면서 홍대 거리는미술적 특성 이외에 ‘폐인 클럽’, 인디 밴드의 조상님(?)으로 볼 수 있는 ‘황신혜밴드’의 발전소, 본격 클럽문화의 원형인 ‘황금투구’ 등과 같은 음악적 활동 공간이 이미 존재하였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음악, 문학, 미술이 어우러지는 공연 공간인 라이브카페나 작은 인디음악 클럽들이 생겨남으로써 현재의 홍대 거리 모습의 밑그림이 완성된다. 또한 이 때에 신촌 연세대 앞 독수리다방 주변과과 이화여대 인근이나 장미여관 주변 락카페에서 은거하던 인디밴드나 하우스 뮤직을 만들던 전문 DJ, 군소 락카페들도 홍대 주변으로 이주하여 활발한 클럽 문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명월관>, <TI>, <500>, <HARLEM> 등과 같은 클럽들이 홍대 거리에서 명멸하였고, 이후 <VERA>, <M2>, <Cocoon>, <HMB>, <NB>, <스카>, <매드홀릭>, 등과 같은 수준높은 장르별 음악을 선보였던 젊은 클럽들 몇몇은 지금도 여전히 홍대 거리에서는 건재하고 있어 이들이 여전히 홍대의 밤거리 주인공으로 나서고 있다. ● 3평 옷가게의 월세가 100만원을 넘는 상권으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하지만 홍대 거리의 비약적인 발전은 누구에게나 마냥 신나는 것만은 아니었다. 미생(未生)의 등장이다. 2010년 12월 인천국제공항철도가 홍대입구에 연결되고, 2012년 경의선역이 개통되어 홍대거리는 이제 ‘거리’가 아닌 ‘상권’으로 형성이 되었다. 기존에 홍대 거리를 만든 주인공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시 짐을 싸야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주인집과 세입자가 너나들이하며 김치 얻어먹고 맥주잔 기울였다고 말을 하면 누구도 믿지 않는다. 2016년 지금, 그 때에 김치 손으로 벅벅 찢어 먹던 주인아저씨와는 통화도 직접 안 된단다. 크루즈타러 그리스 가셨기에, 시차가 달라서 부동산을 통해서 계약하라니 말 그대로 조물주 위 건물주가 기도빨도 안 먹힐 만큼 높은 곳으로 승천하셨다. 상황은 이렇다. 골목 중심인 ‘수(秀) 노래방’ 주변의 33㎡도 채 안 되는 보세 옷가게의 권리금이 2016년 11월 현재 1억이 넘어가고 있으며, 월세 역시 150만원 수준이다. 너무 놀랄 필요는 없다. 부동산 유리벽에 붙은 광고지 중에 제일 싼 점포니까. 또한 이 주변 가득차 있는 10평 남짓의 원룸 월세 역시 보증금 2000만원에 월 100만원 수준을 웃돌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원주민이 임대료를 감당 못해 다른 곳으로 쫓겨 가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급속도로 진행 중인 지역이 바로 홍대거리다. 그러다보니 1990년대 이 지역에 거주하면서 홍대 거리의 불을 밝혔던 30, 40대의 맘씨 좋던 사장님과 이모님들은 이 거리에 그들의 열정을 건물주 아저씨 크루즈 여행에 돈을 보태 주시는 놀라운 선행(?)으로 바꾸시고 사라졌다. 볼 꼬집어가면서 100원씩 쥐어주던 꼬맹이 주인집 아들은 이제는 어엿한 대기업 브랜드 커피 전문점 사장님이 되어 도장 10개, 커피 1잔 공짜 쿠폰을 열심히 찍어주고 있다. 한편 요새들어 건물주들에게 희소식이 또 있다. 중국인 관광객들의 거대한 유입으로 인하여 홍대 거리는 명동에 버금가는 관광 산업 중심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비록 거리 풍광은 '역변(逆變)'하고 있어도 땅값은 계속 오르고 또 올라, 건물주가 초등학생 희망 직업으로 등장하였다. 이제 조만간 누군가는 다른 곳으로 쫓겨 가리라. 한국에서 청춘은 늘상 이렇듯 쫓겨 다닌다. 월세로부터, 정규직으로부터, 꿈으로부터. 홍대 거리도 예외일 수는 없다. 홍대 밤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청춘의 풍경 속으로 여전히 클럽의 음악은 흥겹고, 어디선가 나타난 또 다른 청춘들은 그들 앞의 오래된 청춘들을 밀어내면서 이 거리를 말없이 지나가고 있다. <홍대 거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당신이 만약 20살이라면, 아니면 20살의 자녀가 있다면, 혹은 20살 무렵 홍대 근처 락카페나 클럽을 다녔던 추억이 있다면, 아니면 아직 마음만은 20살 언저리인 늙은 청춘이라면. 2. 누구와 함께? -고등학교 동창들 4명과 함께. 3. 가는 방법은? -2호선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주의할 점은 금요일, 토요일 오후 6시 이후 클럽데이로 인하여 인파가 몰릴 수 있으니 참고할 것! 4. 감탄하는 점은? -끝없이 등장하는 젊은 인파들의 행렬.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20대 초반 청춘들의 놀이터. 명동에서 건너온 중국인 관광객들이 타고 온 관광버스 운전기사들의 주차 실력.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90년대의 홍대 거리는 분명 아니다. 예전의 아련한 그리움을 들고 찾아간다면 담아오는 풍경은 중국 관광객들의 흥청거림이다. 너무 거대한 상권으로 변했지만, 그럼에도 청춘들에게는 신기한 아지트가 많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홍대앞 놀이터라고 불리는 홍익 어린이 공원이다. 이 곳에서 토요일에 프리마켓(www.freemarket.or.kr)이 열린다. 이외에 KT&G 상상마당, 기타 입맛에 맞는 다양한 클럽들. 7. 먹거리 추천? -한 가지 분명히 알아둘 필요는 있다. 홍대거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화된 일본식 먹거리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극동방송국 주변과 홍대 거리 주변 곳곳에 작은 상점으로 모여있는 수많은 일식 전문점에서 규동, 라멘, 오코노미야키, 타코야키, 일본식 정식 등이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에 어디를 가도 기본 이상은 한다. 더 자세한 정보는 아래 홈페이지로. 8. 홈페이지 주소는? -홍대 거리에 관한 모든 정보는 (street-h.com)으로. 홍대 거리에 있는 맛집, 멋집, 옷집에 대한 정보가 다 모인 잡지. 발행인이 존경스럽다.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마포구 경의선 숲길을 적극 권유함. 푸른 하늘을 만날 수 있는 곳. 10. 총평 및 당부사항 -응답하라 1994를 추억하는 홍대 거리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강남의 <옥타곤>이나 <아레나> 같은 규모의 공간도 없다. 그럼에도 어린 젊음을 엿보고 싶다면 홍대 거리에는 아직 청춘의 열정은 남아 있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낙원상가…쇠락과 번성 사이를 흐르는 선율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낙원상가…쇠락과 번성 사이를 흐르는 선율

    “그렇게 하고 싶어하던 음악하고 사니까 행복하냐구… 진짜루 궁금해서 그래… 행복하냐…?”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나오는 대사다. 밤무대와 카바레를 전전하는 4인조 밴드의 삶을 보여주는 감독의 메시지는 역설적으로 우울하다. 한때 그들도 '음악'을 통해 세상을 품을 수 있는 '낙원(樂園)'을 꿈꾸었을 것이다. 종로구 낙원동에서. 정확한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원동 284-6번지 낙원악기상가이지만 그냥 ‘탑골공원’ 옆쯤으로 퉁쳐도 얼추 누구든 찾아가기 쉬운 자리에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월남참전전우회’ 새겨진 붉은 색 등산조끼차림의 군복입은 늙은 섹스폰 연주자가 힘겹게 내뱉는 ‘사랑밖에 난 몰라’를 들을 수도 있다. 혹은 폭염 속에서도 검은 가죽 재킷으로 온 몸을 감싼, 열정의 홍대 인디 록 밴드들의 달뜬 미소도 만날 수 있다. 세대(世代)는 음악을 통해, 악기를 통해 낙원동에서 이어진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악기상점, 낙원악기상가이다. ●조선후기 여흥문화가 있던 자리 그대로 애당초 이곳에는 '악사'(樂士)들이 모여들 수 밖에 없었다. 지리적으로 낙원동, 인사동, 익선동은 조선시대부터 온갖 기방(妓房)들이 들어서 있던 곳이니 거문고나 가야금 둘러멘 가객(歌客)들이 늘상 북적대던 곳이었다. 더구나 조선의 법궁(法宮·임금이 거주하는 곳)이었던 창덕궁, 운현궁 주변에 머물던 한량이나 다름없던 고관대작(高官大爵)들과 그들의 망나니같은 막내 아들 한 명 쯤이, 분명 피맛골 배나무집 뒷방 사는 기생 치맛폭에서 아비 얼굴에 똥칠했다는 일화쯤이야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닌 동네였다. 또한 조선 팔도 온갖 뇌물과 진상품을 들고 궁궐 앞 서성이던, 현감(縣監)자리 하나 추렴하려는, 마음 삐뚜름한 지방 부호(富戶)들의 대기 장소이기도 하였다. 조선의 밤은 이곳에서 열리고 닫혔다. 사실 낙원상가가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건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실제 낙원상가는 1968년에 올려졌고, 이보다 앞서 바로 옆동네 세운전자상가가 1967년에 만들어진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였다. 이 세운상가에는 당시의 부자들이나 고위공무원들이 거주하였고, 낙원상가는 기존의 낙원동에 있던 낙원시장의 대체부지로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세운상가와는 달리 낙원상가는 실용적 목적에 기반을 둔 건축물이어서 격벽(隔璧)이 많지 않아 쇼핑객들의 동선이 사통팔달(四通八達) 다 뚫려 편한 느낌이다. 처음부터 이곳에 악기점들이 들어선 것은 아니었다. 원래 낙원상가는 양품점, 즉 의류상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원래 1960년대부터 피맛골, 종로2가 주변에 당시 음악다방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미8군에서 활동하던 밴드들의 영향으로 젊은 층의 악기 수요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이에 종묘 주변과 종로2가, 3가에 풍금이나 피아노, 기타 등을 판매하는 점포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한국대중음악의 1세대이자, 기타문화를 불러일으킨 ‘트윈폴리오’가 데뷔한 ‘세시봉’도 원래 이곳 종로2가에도 있다가 인근 서린동으로 옮겨 간 당대 최고의 음악다방이었다. 그러다 1979년 서울시의 탑골공원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종로 2가와 종묘주변에 몰려있던 악기점들이 대거 낙원상가 안으로 이주하게 된다. 진정한 낙원악기상가의 시작이다. ●낙원악기상가의 전성기와 암흑기를 거쳐 문화거리로 1982년 1월 6일 자정,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 낙원악기상가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아시안게임, 올림픽과 더불어 밤문화시설(?)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남으로써 전국 각지에 라이브 밴드 수요가 빗발치게 된다. 바로 이 인력 및 악기 수요를 다 맞추어내는 공간이 낙원악기상가였다. 낙원상가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1980년대 후반에는 건반 연주자가, 드럼 연주법을 점포 주인에게 반나절 배워 봉고 타고 동두천으로 성남으로 다녔다고 한다. 한 달 후 뭉칫돈 들고 헐레벌레 뛰어와 맘에 넣어둔 야마하(YAMAHA) 건반을 사들고 가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한다. 낙원상가는 악기판매점이었고, 단기속성 음악학원이었고, 유흥업소와 연주자들을 이어주는 직업소개소였으며, 급전 돌리는 전당포였다. 꿈만 같던 시절이었다. 1997년 IMF의 직격탄은 낙원상가가 다 맞았다. 말 그대로 신기하게도 한 사람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육이오 피난 시절에도 사람은 보였다는데 갑자기 모든 시간이 끊긴 듯 하였다. 수천 만원짜리 그랜드 피아노가 고작 수 백만원에 몸을 낮추어 팔아도 이를 싣고 갈 트럭을 못 구할 정도였으니 눈물 한 번 단단히 흘린 시절이었다. 다행히도 2000년대 들어서 교회 CCM 찬양 밴드의 지속적인 등장, 각종 대학교의 실용음악학과의 개설, 그리고 클럽문화로 인한 인디밴드의 결성 등으로 낙원악기상가는 비록 예전만 못할지라도 다시금 부활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다. 현재 서울시는 창덕궁 앞 재생계획을 발표하여 2018년까지 200억원 사업비를 들여 낙원상가주변을 궁중문화와 대중음악 중심인 근현대 문화지대로 재편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상가 옥상에 공원과 상설무대를 만들어 명실상부한 한국 음악의 중심지로 낙원악기상가의 모습을 바꿀 예정이다. <낙원악기상가에 대한 여행 10문답> -아래 질문은 실제 독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을 바탕으로 만든 10문답입니다. 1.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일반인에게는 ‘꼭’이라는 부사는 빼도 된다. 하지만, 음악에 관심이 있거나, 관련 업종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나라 최고의 방문지가 될 것은 분명하다. 2. 교통편은 어때? -탑골공원 뒤에 있다. 5호선 종로3가역 5번 출구가 가장 가깝다. 3. 인근 편의시설, 주차장 등의 시설환경은 괜찮은가? -왠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을 추천한다. 자동차로 이동할 경우 없던 종교라도 하나 믿고 들어가는 것이 낫다. 출, 퇴근 시간이나 주말의 경우 무조건 대중교통을 이용하길 바란다. 4. 주변에 맛집은 있나? -낙원상가 주변는 예로부터 낙원떡집 거리를 비롯한 진정한 먹거리의 천국이다. 특히 종로 5가쪽으로 펼쳐지는 포장마차촌은 종로 뒷골목의 운치를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5. 직원이나 주변 상인들은 친절한가? - 친절하다. 다른 곳보다는 악기나 음악을 다루는 분들이어서 기본적으로 상냥한 편이다. 참고로, 이곳 매장 직원들 앞에서 연주 실력 뽐내지는 말기를. 유명 그룹 프로 연주자들도 한 수 가르침을 받고 가는 고수(高手)들이 모여 있다고 보면 된다. 6. 운영시간은? - 평일, 토요일 9시~20시/ 토요일 일부매장 오픈/ 일요일이나 공휴일은 쉬는 가게가 많음. 7. 이 곳에서 가장 감탄하는 점은 어떤 것? -악기의 가격과 종류들. 전 세계 희귀한 악기들도 많이 볼 수 있다. 8. 홈페이지 주소와 도움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전화 (02)743-6131/ 팩스(02)743-7070/ 홈페이지 www.enakwon.com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낙원떡집 거리. 운현궁, 종묘, 인사동 거리 외 종로 구석구석.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원악기상가는 관광지가 아닌 건강한 생계의 공간이다. 단지, 이곳을 여행지로만 방문한다면 약간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악기산업의 메카라는 사실 하나는 기억하고 방문하자.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The Best 시티] 서울 마포구 떠오르는 ‘신홍합 밸리’

    [The Best 시티] 서울 마포구 떠오르는 ‘신홍합 밸리’

    신홍합(신촌·홍대·합정)밸리가 서울 강북권 발전의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먹고 마시고 흔드는 ‘클럽문화’를 넘어서 ‘예술’과 ‘창업’이 결합한 창조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뜨끈하고 시원한 국물을 내는 홍합이 아니라 ‘핫’하고 ‘창의적인’ 생각이 용틀임하는 신홍합밸리는 ‘스타트업의 성지(聖地)’라 불리는 미국 뉴욕 실리콘앨리(Silicon Alley)의 한국판이라 할 만하다. 실리콘앨리는 정부와 기업, 대학이 긴밀하게 뭉쳐 혁신의 메카가 됐다. 신홍합밸리도 대중교통으로 45분 거리에 인천·김포공항이 있고, 반경 5㎞ 안에 13개 대학의 대학생 10만명이 있으며, 예술가 2만 3000여명이 모여 있는 자생적 에너지를 발판으로 창업의 메카로 발돋움하고 있다. 서울시도 산업거점조성반 신홍합밸리팀을 구성, 한국형 실리콘앨리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신홍합밸리와 뉴욕의 실리콘앨리는 닮은꼴이다. 실리콘앨리는 구글, 페이스북, 애플이 태어난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 본뜬 이름이다. 1990년대 후반 도시의 매력을 잃어가는 뉴욕에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만들어졌다. 뉴욕의 핵심산업이던 광고·출판업의 발전이 둔화하자 뉴욕시는 기반시설 구축, 세제 혜택 등을 제공했고, 기업의 요구 사항을 정책에 반영했다. 뉴욕 맨해튼의 41번가 아래에 있는 실리콘앨리에는 소프트웨어 제작업,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 출판업, 광고업 등의 벤처기업들이 속속 둥지를 틀었다. 신홍합밸리는 2000년대 들어 지하철 2호선 합정역과 홍대입구역 주변으로 싼 임대료를 찾아 벤처기업인들이 모이면서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연세대와 이화여대, 서강대 등 젊은 대학생 에너지가 창업 열기를 빨아들이는 자력이 됐다. 특히 2010년부터 공항철도와 경의선 홍대입구역이 개통하면서 이 지역은 서울에서 공항과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곳이 됐다. 홍대입구역 이용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며 수송인원 숫자도 강남역에 이어 전국 2위다. 교통의 이점은 신촌과 홍대에서 원주민이 과대한 임대료로 쫓겨나야만 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부작용도 낳았다. 신홍합밸리에는 똑같은 이름의 벤처기업 지원공간인 홍합밸리가 있다. 서울시는 내년 1월 1000㎡(300여평)인 홍합밸리 공간의 절반을 젊은 창업가를 위한 라운지로 바꾼다, 또 라운지 인근에는 모텔을 고친 기숙형 창업시설이 입주자를 맞게 된다. 기숙형 창업시설로는 SH공사가 만든 ‘도전숙’이 성북구에 1~3호가 있으며, 성동구도 내년 초 입주를 시작할 예정이다. 신홍합밸리의 기숙형 창업시설도 ‘도전숙’과 유사한 형태지만, 공동 업무공간의 기능이 강화된다. 서울시의 안인숙 신홍합밸리 팀장은 “젊은 벤처기업인들의 가장 큰 고민은 공간과 자금”이라며 벤처기업 지원공간과 기숙형 창업시설을 설립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벤처기업 지원공간인 홍합밸리는 ‘스타트업의 꿈이 실현되는 곳’이다. 신동혁 이사는 “최근 신홍합밸리에서 설립되는 벤처기업 숫자는 구로·금천의 G밸리보다 더 많다”며 “G밸리가 구로공업단지의 산업기반 시설을 바탕으로 진화했다면 홍합밸리는 젊은이들의 열정과 에너지를 기반으로 자생적인 벤처기업 단지로 발돋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기존 벤처기업 집적지였던 테헤란밸리는 투자자와 창업자가 안정된 생태계를 구성한 장점이 있지만 비싼 임대료는 신규 창업자의 발목을 잡는다. 신 이사가 일하는 홍합밸리의 공동 사무공간에는 10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다. 떨이여행 상품 전문 판매업체인 ‘원나잇’, 커피원두 판매업체 ‘원두판다’, 유아 온라인 학습교육 개발업체, 초등학교 소프트웨어 교육업체, 공유공간 컨설팅업체, 치유 콘텐츠 제작업체, 패션회사에다 3인조 걸그룹을 제작해 중국에서 활동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까지 있다. 1인 기업에서 많아야 직원 10여명 이내의 작은 벤처기업들이다. 이들 벤처기업인은 책상을 맞대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 충전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책상과 책상을 나누는 칸막이 없이 서로 얼굴을 보며 일하는 열린 공간은 최근 새로 확장한 페이스북의 사무실과 닮았다. 신 이사는 “서로 떠들면서 교류하고 협업을 한다”며 “즉각적으로 조언을 주고받을 수 있어 성장도 빠르다”고 강조했다. 벤처기업의 성장에는 열린 공간이 최적이라는 것이다. 책상과 책상을 벽으로 나눈 국내 대기업의 사무환경에서는 서로 제품이나 아이디어를 베끼는 표절이나 복제가 더 빈번할 수 있다고 신 이사는 덧붙였다. 홍합밸리는 업무공간 제공뿐 아니라 벤처기업의 네트워킹과 투자 유치, 마케팅 등도 돕고 있다. 대기업의 호텔 조찬 모임을 본뜬 ‘아침 밥상 모임’을 만들어 경향 분석, 구인·구직 등을 주선할 계획이다. 또 ‘밸리 스튜디오’에서는 기업의 홍보 영상 제작 등을 돕고 있다. 박홍섭 마포구청장은 “홍대앞은 먹고, 마시고, 춤추는 곳으로만 생각하는 데 출판사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4500곳이 등록되어 있다”며 “만화, 애니메이션, 디자인, 출판 등 지식 벤처 기업이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힐링’ 이승환, 주진우 통편집에 “진우 무서워하는 OOO 이해 안간다” 누구?

    ‘힐링’ 이승환, 주진우 통편집에 “진우 무서워하는 OOO 이해 안간다” 누구?

    힐링 이승환, 주진우 기자 통편집 논란에 “진우 무서워하는 OOO 이해 안간다” 누구? ‘힐링캠프 이승환’ 가수 이승환이 힐링캠프에 출연한 주진우 기자가 통편집된 것에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다. 지난 5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 500인’은 가수 이승환이 출연해 ‘500vs이승환 with 프렌즈’편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는 이른바 ‘강동모임’으로 불리는 가수 이승환, 영화감독 류승완, 시사인 기자 주진우, 방송인 김제동, 웹툰작가 강풀 5명이 함께 출연했다. 하지만 이날 출연한 주진우 기자는 두어 컷밖에 나오지 않았다. 주진우 기자는 이승환의 동료들이 모두 잡힐 때 전체 화면에 잡힌 것과 지나가듯 화면에 모습을 드러낸 것 외에는 단독컷이 나오지 않았다. 멘트도 통편집됐다. 주진우 기자의 멘트가 등장한 것은 단 한 부분, 인디 뮤지션과 라이브 클럽문화 상생을 위해 이승환이 인디 밴드의 클럽 대관료 일체를 지원한다는 계획인 ‘프리 프롬 올(Free from all)’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할 때였다. 방송 후 이승환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작진들이야 최선을 다하셨을 테지요. 그 상황, 그 심정 모두 이해가 갑니다”라면서 “하지만 진우가 나오는 걸 싫어하시거나 미워하시는 ‘그 누군가’는 이해가 안 갑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승환은 그러면서 “진우야 미안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이승환은 ‘강동 모임’ 멤버가 모두 나온 ‘힐링캠프’ 대기실 사진을 함께 게재했다. 사진=이승환 페이스북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힐링캠프’ 이승환, 주진우 통편집에 “진우 나오는 걸 싫어하는 OOO 이해 안가” 대체 누구?

    ‘힐링캠프’ 이승환, 주진우 통편집에 “진우 나오는 걸 싫어하는 OOO 이해 안가” 대체 누구?

    힐링 이승환, 주진우 기자 통편집 논란에 “제작진 이해하지만 OOO은 이해 안가” 일침 ‘힐링캠프 이승환, 힐링 이승환’ 가수 이승환이 힐링캠프에 출연한 주진우 기자가 통편집된 것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지난 5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 500인’은 가수 이승환이 출연해 ‘500vs이승환 with 프렌즈’편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는 이른바 ‘강동모임’으로 불리는 가수 이승환, 영화감독 류승완, 시사인 기자 주진우, 방송인 김제동, 웹툰작가 강풀 5명이 함께 출연했다. 강풀은 “원래 이 5명이서 잘 어울린다. 소모임처럼 모여서 지낸지 3년 정도 됐다”며 강동모임에 대해 소개했다. 이승환 역시 “이들 중 처음에 알게 된 사람은 강풀이었다. 어느날 인터넷에서 어떤 영화가 4년 째 제작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영화가 바로 ‘26년’이다. 내가 1호 투자자가 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승환은 “내가 이승환이라고 연락했는데 하필 연락을 한 날이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강풀이 드림팩토리 앞에 있는 아파트와 마트 이름을 대라는 등 연락한 이가 내가 맞는지 검증을 했다. 그렇게 강풀부터 시작해서 다른 동생들까지 모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출연한 주진우 기자는 두어 컷밖에 나오지 않았다. 주진우 기자는 이승환의 동료들이 모두 잡힐 때 전체 화면에 잡힌 것과 지나가듯 화면에 모습을 드러낸 것 외에는 단독컷이 나오지 않았다. 멘트도 통편집됐다. 주진우 기자의 멘트가 등장한 것은 단 한 부분, 인디 뮤지션과 라이브 클럽문화 상생을 위해 이승환이 인디 밴드의 클럽 대관료 일체를 지원한다는 계획인 ‘프리 프롬 올(Free from all)’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할 때였다. 방송 후 이승환은 자신의 SNS을 통해 “(’힐링캠프’)제작진들이야 최선을 다하셨을 테지요. 그 상황, 그 심정 모두 이해가 갑니다”라면서 “하지만 (주)진우가 나오는 걸 싫어하시거나 무서워하시는 ‘그 누군가’는 이해가 안 갑니다. 진우야, 미안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와 함께 이승환은 ‘강동 모임’ 멤버가 모두 나온 ‘힐링캠프’ 대기실 사진을 함께 게재했다. 사진=이승환 페이스북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살롱과 클럽 ‘지식·교양의 씨앗’ 품다

    살롱과 클럽 ‘지식·교양의 씨앗’ 품다

    담론의 탄생/이광주 지음/한길사/336쪽/1만 7000원 거리에 흔한 카페나 살롱, 클럽은 대중적 만남·회합이 이뤄지는 대표적 공간이다. 그곳에선 만남뿐만 아니라 이야기가 있고, 다양한 취미·관심사의 교류며 교감이 이어진다. 그런데 카페나 클럽 공간을 드나들면서 그 유래나 의미를 생각하는 이는 드물다. ‘담론의 탄생’은 흔한 대중 공간인 살롱, 카페, 클럽을 통해 유럽문명과 지성발달사를 엮었다. 그리고 한 줄로 꿰어낸 그 궤적은 다양한 담론의 역사로 읽힌다. 흔히 담론은 어렵고 까다로운 대화나 공공의 이야기쯤으로 인식되곤 한다. 고담준론이나 학술대회의 머리 아픈 발표며 토론 정도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인간들은 어느 시대건 담론을 통해 관계를 만들고 지속해 왔으며, 그 담론을 사회변혁이나 전환의 토대로 삼았다. ‘왜 반듯한 예절과 사회적 비전을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이야기가 오가지 못할까.’ 책은 원로 서양학자인 인제대 명예교수가 우리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담론문화를 살롱과 카페, 클럽을 매개로 훑어낸 유럽 지성사랄 수 있다. 담론은 고담준론의 까다로운 대화가 아닌 일상의 자유롭고 즐거운 이야기이며 그 뿌리는 바로 고대 그리스로부터 시작됐다는 이야기 투르기가 흥미롭다. 우선 저자가 주목한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와 아고라를 들여다보자. 폴리스는 자유로운 시민공동체이고, 아고라는 그 복판에 세운 시민담론의 사교장이다. 그리스에서 사람 됨과 교양의 최고 덕목이 ‘세련되고 아름다운 언동’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레토릭(수사학)을 철학보다 훨씬 귀하게 여겼다는 그리스인들의 이야기문화, 즉 담론문화가 중세·르네상스시대를 거쳐 살롱과 클럽, 카페문화로 발전했음을 풍부한 자료와 지식으로 입증한다. 프랑스·독일에서 발달한 살롱과 영국의 클럽은 같은 담론의 장소이면서도 국민들의 심상과 사는 방식에 따라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주로 귀부인들이 주도했던 프랑스 살롱은 궁정연회나 모임의 양식을 닮아 화려하고 귀족적인 양태를 띤 반면 궁정 사교문화가 없었던 독일의 살롱은 사교 터전이나 지적 호기심이 가득한 유연한 놀이터와는 멀었다. 오히려 진실을 추구하는 동지들의 배움터 성격이 강했다. 궁정과 귀부인 문화가 드물었던 영국에서도 살롱보다는 귀족과 상층 부르주아층인 ‘담론하는 신사’들의 클럽문화가 발달했다. 이런 편차에도 불구하고 살롱과 클럽, 카페는 당시 사회를 휩쓴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지적이고 교양 있는 담론의 출처이면서 사회를 바꿔 간 트렌드의 중심 역할을 해냈다. 프랑스 혁명의 시작도 바로 철학살롱에서 비롯됐다. 루소, 볼테르, 데카르트, 몽테스키외, 보카치오, 에밀, 괴테 같은 이들은 살롱과 카페를 드나들던 단골이었고 그곳에서 그들이 이어간 언동은 어김없이 사상과 정치, 문화의 흐름으로 뭉쳤다. ‘우리의 저술은 특정한 시민에게만 영향을 주지만 우리의 담론은 모든 계층을 감화한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드니 디드로가 밝힌 대로 세계사를 바꾼 계몽주의 철학의 중심에는 ‘인간성’을 구심점으로 모두 동시대인임을 공감하며 새로운 비전을 향한 담론문화가 존재했다. 저자는 그 대목에 특별히 주목한다. 유럽 지성사와 맥을 같이한 살롱, 클럽, 카페에선 사교와 지성이 조화를 이뤄 정파·당파를 구성하더라도 슬로건을 내세운 이데올로기적 논리로부터 자유로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도 이렇게 맺어진다. “생각이나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압박하고 이데올로기적 슬로건이 그림자를 드리운 우리의 현실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반듯한 담론문화가 요구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뮤직페스티벌 ‘윌페(WILFE) 2014’ 9월 인천에 상륙

    뮤직페스티벌 ‘윌페(WILFE) 2014’ 9월 인천에 상륙

    새로운 페스티벌 문화의 장을 열 ‘WILFE(윌페, We are In Love Festival)’가 오는 9월 세계적인 페스티벌컨텐츠를 등에 업고 인천 송도에 상륙한다. 9월 12일부터 14일까지 2박 3일간 인천 송도 23호 근린공원에서 열리는 뮤직페스티벌 ‘WILFE 2014’는 행사장과 무대 시설의 규모가 지금껏 국내에서 치루어졌던 규모를 넘어서는 최대 수준으로 알려져있다. 스페인 이비자섬을 대표하는 클럽이자 세계 TOP3 클럽 중 하나인 파차(Pacha)의 화려한 공연과 페스티벌도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파차 클럽은 80년대 초 영국의 DJ들이 하우스 뮤직과 테크노 음악을 연주한 것을 시작으로 세계 클럽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클럽문화의 대명사로 불려왔다. 이번에 한국에서 선보이게 되는 무대에서는 매년 전 세계인들을 매료시켜왔던 네덜란드의 페스티벌 팀이 합류할 것으로 알려져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WILFE는 한 마디로 설명하기에는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는 독창적인 페스티벌이다. 페스티벌 안에 서로 다른 몇 개의 페스티벌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점에서 종래의 한 가지 테마로 진행되어 오던 여타 뮤직페스티벌과는 차별점을 가지고 있다. 음악 장르 면에서도 하우스, 트랜스, 일렉트로닉 음악을 여러 개의 무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독특하다. 행사 관계자는 “WILFE는 관객이 다양한 컨텐츠에 참여하고, 즐기고, 누리는 페스티벌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공연이나 음악만을 즐기는 식의 단일품목 페스티벌에 대해 이제는 식상함을 느끼는 국내 페스티벌 관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윌페는 7월 말부터 공식 티켓판매처를 통해 입장권 예매를 시작한다. 페스티벌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www.wilfe.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일본 ‘파격적인’ 클럽 비키니 파티

    [포토] 일본 ‘파격적인’ 클럽 비키니 파티

    15일(현지시간) 일본 도쿄의 한 클럽 이벤트 현장. 세계 클럽문화의 중심부 중 하나인 도쿄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거친 밤문화는 경찰의 ‘춤’ 단속에도 불구하고 교묘하게 살아남기 시작했다. 사진 ⓒAFPBBNews=News1/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신문에서 젊은이를 보는 시각/강청완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4년

    [옴부즈맨 칼럼] 신문에서 젊은이를 보는 시각/강청완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4년

    신문을 보고 있노라면 젊음은 특권이구나 하고 느낀다. 어려운 세상 때문일까,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은 관심을 두고 격려와 질책을 보낸다. 온갖 지면에 젊음을 북돋고 또 한편으로 다그치는 글이 매일같이 쏟아진다. 물론 특권이 달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주로 기성세대의 눈으로 쓰인 염려와 연민은 고맙고 따뜻한 것이지만 마냥 눈을 낮추라는 충고나 대안 없이 그저 힘을 내라는 목소리에는 되레 힘이 빠질 때도 있다. 서울신문에서는 어떤 식으로 젊음을 그리고 있을까. 키워드는 ‘위로와 격려’ ‘취업’ ‘등록금’ ‘클럽문화’ ‘공시족’ 등으로 요약된다. 9월 15일 자 30면에는 미국 언론의 분석을 인용해 ‘짜증 난 세대’라는 비유까지 등장했다. 암울하기 그지없지만 어쩔 수 없는 청춘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에는 젊은 세대가 지나치게 대상화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기사에서 젊은이들은 그저 위로받아야 할 ‘가여운 청춘’이거나 혹은 계도의 대상으로만 비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논설에는 어떻게 하라는 해라체의 주문만 있을 뿐 구체적이고 진지한 고민이 담겨 있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젊은 세대에게 직접 다가가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하는 기사가 아쉽다. 단순히 관련 기사에 한두 마디 취재원으로 등장하는 것 이외에는 젊은이들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 예컨대 반값 등록금 문제는 현장에서 대학생들이 느끼는 체감도를 직접 취재할 수 있다. 정치적 이슈로만 보도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어려운 취업 현실 보도는 단순히 실업률 등의 지표를 제시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취업박람회나 면접장에서 그 열기를 간접적으로나마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몇 달간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직접 취재한 기사는 ‘대학 구내식당 문제’나 공무원 취업수기 등이 거의 전부였다. 다양한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젊은 세대를 조명했으면 한다. 스펙 열풍은 부작용도 불러일으켰지만, 그 덕에 대학생들은 어느 때보다 다양한 대외활동을 벌이고 있다. 소비뿐 아니라 문화 생산의 주체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젊음도 많다. 이 시대 젊은이들을 단순히 취업에만 골몰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에 허덕이는 세대로만 한정 짓는 것은 너무 피상적이다. 사회 현상에 대해 젊은 세대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직접 그 목소리를 듣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 7월 18일 자 ‘20대, 정치를 묻다’는 기사는 그런 의미에서 참신하고 관심이 가는 기사였다. 현장에서 활약하는 20대 젊은 주역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데다 20대의 정치불신에 대해 다각적으로 취재한 노력이 돋보였다. 정치에 그칠 것이 아니라 문화현상이나 경제 등 다른 분야로 확대하면 어떨까. 젊은 세대가 직접 자기 이야기를 하는 대담 자리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한 주간 뉴욕 월가 시위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다. 세계의 이목이 쏠린 이번 시위는 단순히 미국의 일만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젊은이들의 분노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단순히 강 건너 불이 아니라는 서울신문의 전망처럼(10월 4일 자 31면 사설) 우리나라도 구체적인 사회문제 개선과 더불어 세대 간 화합과 소통을 절실히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신문의 독자층이 젊은 세대가 아니라는 것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의 신문기사에서는 정작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럴수록 젊은이들에게 말을 걸고 다가가는 것이 신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공감이 되지 않는 내용에는 더더욱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또한, 진정으로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의 후배들에게, 아우들에게 책임감을 느낀다면 내려다보는 식의 조언보다 현장에서 눈높이를 맞추고 고민을 함께 나누는 것이 더 바람직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터널 속에 갇힌 청춘에, 밝은 곳에서 나오라는 손짓보다 어둠 속에서 함께 손잡아주고 말을 걸어줄 손이 더욱 절실하기 때문이다.
  • [클럽데이의 부활] 클럽문화의 역사

    우리나라 사람들이 클럽문화를 처음 접한 시점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 ‘구락부’란 일본식 명칭에서 알 수 있듯 1880년대 개화기였다. 당시 클럽은 외교관, 세관원, 의사 등이 주로 이용했던 서구식 사교장이었으며 치열한 외교 전쟁터였다. 영화 ‘모던 보이’를 통해 일제 강점기 시대의 클럽문화를 엿볼 수 있다. 가수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본격적인 클럽 쇼가 성행한 것은 미군 때문이었다. 전국 각지에 주둔한 미군 부대에는 미군 장병을 대상으로 한 클럽이 있었는데 여기서 춤추고 노래한 이들을 미8군 연예인이라고 불렀다. 미8군 무대는 엄격한 오디션을 거쳐야만 설 수 있었고 신중현, 조용필 등 한국 대중음악사의 거장들은 모두 이 무대를 거쳤다. 미군 부대가 가까이 있었던 이태원에도 클럽문화가 발달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재즈클럽인 ‘올댓재즈’가 바로 이태원에 있다. 1976년 문을 연 올댓재즈는 그리 크지 않은 무대지만 홍대 앞 인디 음악가들과는 차별화된 연주 실력과 가창력으로 여전히 성업 중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홍대에서 라이브클럽이 발달한 것은 대학 문화를 꽃피운 신촌이 바로 옆이었기 때문이다. 클럽데이가 생긴 것은 2001년부터다. 주류나 담배 위주로 이루어졌던 기업의 홍보 활동과 홍대에서 뿌리를 마련한 YG 같은 기획사도 클럽데이의 후원자가 됐다. 이후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전 때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딱 한 번 쉬었다. 2007년에는 인디 밴드의 공연이 주로 이뤄지던 라이브클럽 행사인 ‘사운드데이’와도 통합돼 클러버들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켰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클럽데이의 부활] “DJ·라이브 팬층 갈려 결별…클러버 문화 실종 아쉬워”

    클럽데이 부활에 빠진 그룹이 있다. 춤을 기반으로 하는 DJ클럽들과 별도로 인디밴드들이 서는 라이브클럽들이다. DJ클럽과 라이브클럽 두 축으로 이뤄졌던 클럽데이로서는 아플 수 있는 대목이다. 홍대 라이브클럽 DGBD의 기획자로 일하는 한국진(43)씨의 얘기를 들어봤다. 한씨는 사진 촬영은 한사코 거부했다. →DJ·라이브클럽이 어떻게 갈렸나. -팬층이 겹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라이브클럽은 밤 9시 정도, DJ클럽은 밤 11시 이후가 피크타임이다. 기대했던 것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라이브클럽에서 DJ클럽으로 흘러가는 거였는데 이게 안 됐다. 팬층이 갈려버렸다. 더구나 DJ클럽이 주류를 이루다 보니 서운한 감정이랄까 그런 게 있었던 것 같다. →지나친 상업성 때문에 클럽데이가 한때 폐지됐는데. -글쎄, 상업성 자체를 무조건 배척할 수 있을까. 난 오히려 긍정적인 편이다. 널리 알릴 기회가 드물었던 인디밴드 입장에서는 좋은 자리가 많이 마련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덕분에 몇몇 실력 있는 밴드들의 경우 더 큰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잡기도 했다. 물론 라이브 공연이 질적으로 조금 더 업그레이드되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 →클럽문화가 변질됐다는 탄식도 많다. -예전 클럽데이 때는 클러버 문화라는 게 있었다. 클러버들은 그냥 클럽에서 하는 라이브 그 자체가 좋다, 이런 파였다. 그래서 누가 무대에 오르건 라이브클럽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보가 공유되고, 그에 따라 취향들이 나뉘면서 그런 문화 자체가 없어졌다. 자기들이 원하는, 좋아하는 밴드를 찾아다니는 형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클럽데이의 부활] 정부도 나선다

    정부도 클럽문화에 눈을 돌리고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2일 ‘대중문화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의 하나로 홍대 클럽의 인디음악 거점화를 내놓았다. 인디음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홍대 주변 라이브클럽을 인디음악 활성화 거점으로 삼아 키우겠다는 의지다. 정병국 장관은 “최근 프랑스, 영국 등 K팝에 대한 지구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아이돌 그룹 중심”이라면서 “K팝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대중음악의 다양성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디음악 등을 키워 K팝의 저변을 확대하겠다는 얘기다. 정 장관은 “일본 J팝도 한때 높은 인기를 누렸으나 소재 고갈 등으로 하락세를 경험했다.”면서 “J팝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홍대 지역을 인디음악 메카로 육성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방자치단체와 대기업 등의 참여를 유도해 라이브 전용 클럽 공간을 확보하고 이를 우수 밴드에 싼값에 대여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아울러 ▲티켓 통합 전산시스템 구축 ▲주 1회 인디음악 정기 공연 및 경연 대회 지원 ▲홍보·마케팅 총괄 지원도 병행하며, 클럽문화를 한류 스타의 거리(충무로) 등 문화 콘텐츠 체험 공간과 연계시켜 한류 관광 명소로 키울 방침이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클럽데이의 부활] 한류 체험의 장으로

    전문가들은 콘텐츠로서의 클럽문화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 한류 문화 체험의 장(場)으로 충분히 승산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문화 거버넌스’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상업적인 측면과 문화적인 가치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구자순 한양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클럽 문화가 한류 체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요즘 관광객은 보고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즐기고 체험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개방성과 다양성이 특징인 클럽문화와 잘 부합할 수 있다.”면서 “이렇다 할 밤 문화 콘텐츠가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클럽문화를 K팝 등의 한류를 체험하는 대안문화로 발전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관련 단체들의 협력을 기반으로 한 문화 거버넌스 개념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구 교수는 “클럽문화를 하나의 문화산업 시각으로 본다면 민간, 기업, 지방자치단체, 이용자들이 문화 거버넌스를 조직해 클럽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유지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K팝 열풍 여세 몰아 문화 특구로 젊고 자유로운 클럽문화의 가치를 지키려는 성숙된 의식이 먼저 조성되어야 한다는 쓴소리도 나왔다. 홍대 문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온 공연홍보사 아담스페이스의 김은 대표는 “홍대는 이곳만의 독특한 음악,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젊은이들의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면서 “또다시 퇴폐적인 유흥 문화로 빠지지 않으려면 클럽 업주나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문화적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선행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문화적 특구로 키우려는 지자체 의지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 대표는 “공식적으로 클럽 홍보를 할 수 있는 공개 게시판을 만들고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숙박 시설을 짓는 데 관계기관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문화적 가치와 상업적 이익 균형점 찾아야 문화예술인들은 클럽문화가 단순히 먹고 마시고 노는 데 머무른다면 클럽데이 중단 사태가 되풀이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명동(1950~60년대), 신촌(1970~80년대), 대학로(1990~2000년대), 홍대(2000년대 이후)의 명맥을 잇는 문화예술의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백기 한국실험예술정신 대표는 “(홍대, 강남, 이태원 등) 클럽 밀집지역을 보면 상업성이 강한 댄스 클럽이 득세하고 인디 밴드들의 공연 무대인 라이브 클럽은 줄어드는 추세”라면서 “이로 인해 많은 아티스트들이 (클럽에서) 밀려난 실정”이라고 우려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클럽데이의 부활] “경쟁력 있는 문화아이콘” vs “포장된 유흥… 그들만의 퇴폐”

    [클럽데이의 부활] “경쟁력 있는 문화아이콘” vs “포장된 유흥… 그들만의 퇴폐”

    ‘클럽데이’ 부활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클럽문화가 ‘홍대 앞’으로 통칭되는 서울 서교동 일대를 떠올리는 열쇠 말인 동시에 서울의 문화 아이콘으로 보는 긍정론이 우선 존재한다. 하지만 인디음악의 인큐베이터였던 라이브클럽들이 발을 빼면서 자칫 ‘그들만의 축제’로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그럴 듯하게 포장된 유흥 문화에 불과하다는 냉소 또한 뿌리 깊다. 홍대 클럽문화가 주목받은 것은 강남, 이태원 등 서울의 다른 곳은 물론 서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특성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록 밴드 공연 위주의 라이브클럽들이 먼저 홍대에 자리 잡았다. 당시만 해도 라이브클럽은 2인 이상의 동시 연주를 금지하는 식품위생법의 적용을 받아 툭하면 영업 정지를 당했다. 클럽 관계자들과 문화 예술인들이 합법화 투쟁을 벌인 끝에 1999년 불법 딱지를 뗐다. 신촌이 일찌감치 유흥가로 변모한 것과 달리 홍대 정문에서 극동방송, 주차장 거리에 이르는 도로변에는 화랑과 미술학원, 카페가 모여들면서 ‘피카소 거리’란 애칭이 붙었다. 1993년 ‘발전소’, 1995년 ‘드럭’ 등 홍대 출신들이 만든 전위적 인테리어와 독특한 분위기의 클럽이 입소문을 타면서 패션, 음악, 문학, 건축, 미술 분야의 재기발랄한 신예들이 더욱 모여들었다. 하지만 2001년 3월 m1, nb 등 4개 클럽으로 단출하게 클럽데이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클럽 문화에 대한 시선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일부 클럽에서 외국인, 유학생이 엑스터시 등 환각제를 복용한 사건을 놓고 언론에서 탈선과 범죄의 온상으로 몰아간 탓이 컸다. 클럽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결정적 계기 중의 하나는 2002년 월드컵 축구 대회였다. 2004년부터 사운드데이란 이름으로 독자적인 행사를 열어온 라이브클럽 9곳이 2007년 12월 클럽데이와 합쳐지면서 매달 마지막 금요일에는 1만여명의 ‘순례자’들이 찾는 해방구로 변했다. ‘클러버’가 아닌 ‘몸치’도 부담 없이 홍대를 찾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여행·문화 정보 사이트 CNN GO는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인 50가지 이유’ 중 하나로 홍대 문화를 꼽았다. 서울시도 클럽데이를 ‘서울 테마별 관광 코스 30선’에 포함시켰다. 장양숙 클럽문화협회 총무는 “클럽데이는 홍대뿐 아니라 서울의 상징적 행사로 외국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관광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는데 올 1월 중단된 이후 홍대 거리가 활력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월드컵을 전후로 외부 상업 자본이 빠르게 침투하면서 홍대의 문화 지형도도 바뀌었다. 대형 클럽들이 득세하면서 언더그라운드 음악가나 실험 예술가, 출판사 등은 당인리발전소 부근과 망원동, 광흥창역, 문래동 등으로 밀려났다. 클럽데이가 번창하면서 역설적으로 클럽들의 독창성이 사라지고 청년 하위 문화를 일궈 온 홍대의 문화 예술인들이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부비부비’라는 속어로 상징되는 선정성 논란과 미성년자 출입, 잦은 폭력·폭행 사고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최근 홍대의 한 클럽에서 “‘짝짓기’에 성공하는 커플에게 모텔 숙박권을 주겠다.”고 공지했다가 취소하는 등 볼썽사나운 이벤트를 하는 것도 클럽문화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부추긴다. 홍대의 문화 정보를 다루는 월간지 ‘스트리트 H’의 정지연 편집장은 “1990년대 홍대의 록카페는 대안적·전위적 성격이 있었고 ‘수질 관리’나 연령 제한이 없는 열린 공간이었는데 2000년대 들어 ‘부비부비’가 번지고 클럽이 대형화되면서 문화가 아닌 유흥의 성격이 짙어졌다.”면서 “클럽데이 수익금 분배 방식이 종전 n분의1에서 (기여도 등을 감안한) 차등 분배로 바뀌면 자본의 논리가 강해져 대형화, 상업화, 획일화를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과거 클럽데이는 단순히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이곳의 자생적인 인디 문화와 창조적인 분위기가 결합돼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것”이라면서 “5개월 만에 부활한 클럽데이가 이전과 달리 시장의 논리가 지배하는 경쟁사회의 구조를 답습한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용어 클릭] ●클럽데이 & 클러버 한 장의 티켓으로 홍익대 앞 주요 클럽들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날이 클럽데이다.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이다. 2001년 3월 30일 4개의 테크노 클럽이 처음 시작했다. 클럽을 정기적으로 돌아다니며 클럽문화를 즐기는 사람을 클러버라고 한다. 클럽데이의 최초 행사 이름도 ‘클러버들이 하나 되는 날’(Clubbers’ Harmony)이었다.
  • [클럽데이의 부활] 내·외국인 경계없이 젊음이 들썩들썩

    [클럽데이의 부활] 내·외국인 경계없이 젊음이 들썩들썩

    24일 오후 9시 서울 홍익대 앞 주차장 거리. 아직 클럽을 찾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거리 곳곳에 클럽데이 부활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둘러 서 포스터를 보고 있다. 포스터에 나와 있는, 클럽데이에 참가한다는 클럽 ‘M○’를 찾아 나섰다. 먼저 자유이용권 격인 티켓을 샀다. 가격은 2만원. 분홍색 띠 모양의 티켓을 손목에 휘감으면 댄스클럽 9곳과 카페 10곳을 이용할 수 있다는 클럽 주인의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졌다. 자정이 ‘피크 타임’인 점을 감안해 몇 시간 거리를 배회하다가 클럽 안으로 들어섰다. 화려한 조명과 심장을 뛰게 하는 비트 섞인 음악이 맨먼저 반겼다. 조명에 익숙해지자 맥주를 마시며 춤을 추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노출이 심한 사람, 평범한 차림의 사람 등 복장은 다양했다. 친구들과 함께 왔다는 이승호(19)씨는 “하도 주변에서 클럽데이 얘기를 많이 해 경험해 보고 싶었다.”면서 “부활한다는 소식을 듣고 첫날 달려왔다.”고 말했다. 박혜민(28·여)씨는 “대학 1학년 때인 2002년 클럽문화를 처음 접하고서 취직한 뒤에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찾곤 했다.”면서 “갑자기 중단돼 아쉬웠는데 다시 생겨 반갑다.”고 털어놓았다. 클럽데이가 처음 생긴 것은 2001년 3월. 홍익대 앞 클럽 18곳을 티켓 한 장으로 모두 즐길 수 있어 한국을 찾는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인기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상업화 논란 등으로 올 1월 28일 117번째 클럽데이를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그러다가 5개월 만에 부활한 것. 점점 무르익는 분위기를 뒤로 하고 근처의 다른 힙합 클럽 ‘N○’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명소’로 소문난 곳이어서인지 외국인들의 모습도 눈에 많이 띄었다.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왔다는 앤드루 페틱(32)은 “클럽데이가 유명하다고 해서 한국인 친구들에게 일부러 데려다달라고 했다.”면서 “소문대로 재미있고 환상적”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새로 부활한 클럽데이에는 댄스클럽 9곳과 30대를 겨냥한 카페 10곳 등이 참여했다. 종전과 달리 인근 음식점 10곳도 참여해 티켓 소지자에게 10% 가격할인 혜택을 준다. 하지만 티켓으로 라이브클럽을 이용할 수 없는 것은 아쉬웠다. 공연 위주의 라이브 클럽들은 이번에 불참했다. ‘사운드데이’ 혹은 ‘사운드로드’라는 이름의 별도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밤 12시가 가까워 오자 ‘클러버’들이 본격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자정 넘어 만난 이혜영(27·여)씨는 “초창기 클러버들은 대부분 직장인이 돼 강남이나 이태원 클럽도 자주 찾지만 홍대 클럽은 이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어 오랜만에 찾았다.”고 털어놓았다. ‘한국 클럽문화의 중심’답게 음악은 앞서 갔고, 젊음은 한껏 발산됐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경계도 없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시선을 뒤로 하고 홍대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