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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애쓰지 마라… 골목이 건넨 다정한 쉼표[박상준의 문장 여행]

    너무 애쓰지 마라… 골목이 건넨 다정한 쉼표[박상준의 문장 여행]

    ‘“쓸데없이 애쓰지 않는다.내 한계를 받아들인다.내 페이스를 유지한다.뭐든 천천히, 꾸준히 해나간다.한 번에 한 걸음씩 옮기면어려울 것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다.”한수희의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중 동인천을 여행했다. 한수희 작가가 동네 산책이라 부를 만한 골목을 걸었다. 동네 사람이 아닌 내게는 여행이라 부를 만큼 다채로웠다. 사람들이 살아낸 세월의 모습이 얼마나 대단하던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풍경이 얼마나 다정하던지. 무리하지 말아야지 생각하고는, 조금 무리하며 걸었다. ●무리하지 않는 산책 언젠가 어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무 애쓰지 마.” 나는 어머니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어떻게 애쓰지 않고 살아요.” 애쓰지 않고 되는 일이 있던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애쓰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게 쉽지 않을 때 산책을 한다. 그리고 여유가 생기면 여행을 한다. 그동안 애쓴 나를 위한 선물이 아니라 ‘애쓰지 말자’를 잊지 않기 위해서. 이 또한 애쓰는 것일까. 한수희 작가는 동인천에 산다. 작가는 동네를 산책하고 단골 카페에서 작업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때로는 동인천을 여행하는 소책자를 만들거나 가볼 만한 장소들을 틈틈이 인스타그램에 올린다.(한수희 작가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터틀넥프레스)는 작가가 7년 전 안양에 살던 시절에 썼다. 대신 개정판(2026)에는 동인천의 한수희가 안양의 한수희를, 쉰을 바라보는 한수희가 갓 마흔이 되던 해의 한수희를 돌아보며 몇 마디를 덧붙인다. 내게는 그 덧말들이 현재의 작가가 그때의 자신에게 건네는 감사의 인사처럼 다가와 따스했다. 7년이 지난 지금, 작가는 ‘천천히 살자’는 목표를 세우고 여전히 무리하지 않으며 산다(그러려 애쓰는지도). 제대로, 충실히 살고 싶어서다. 이러나저러나 한 인생이니까. 나는 작가의 책을 읽고 작가의 동네인 동인천을 걷는다. 무리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산책 좋아하는 작가처럼 걷다 보면 조금은 덜 애쓰고 사는 법도 알게 되겠지 싶어서. 대신 “해치우듯 밀어내는” 여행 말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걷기로 한다. ●작고 여려 반짝이는 것들 동인천역에서 지하철을 내렸다. 동인천지하상가를 지나 지상으로 나온다. 홍예문과 자유공원까지 올랐다가 각국조계지 계단에서 캔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신포시장으로 내려오는, 작가가 추천한 ‘우리 동네 만끽 리스트’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그러고는 배다리헌책방거리와 작가가 애정하는 패치워크의 동양가배관에서 커피 한잔을 마셔야지 마음먹는다. 첫 진입로는 내리감리교회로 잡는다. 내동 성공회성당을 거쳐 홍예문까지 가야지. 큰길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가게에 호기심이 인다. 과일도 있고, 도자기도 파는 듯하다. 안쪽에는 족자가 하나 걸려 있다. “어르신, 무슨 뜻인가요?” “나도 몰라.” 뜻을 몰라도 마주 보고 웃는다. 내리감리교회 옆으로 난 골목은 가파르다. 걸음은 저절로 느긋하다. 그럴수록 많은 게 보인다. 동네라고 느끼는 곳들의 특징들. 사람 사는 집이 있고 집 앞에 작은 화분들이 옹기종기하다. 길가에 들마루가 놓여 있고 그곳에는 꼭 동네 할머니 한둘이 꽃무늬 원피스 차림으로 도란도란하며 지나는 이웃에게 말을 건다. 동인천도 다르지 않다. “어디 좋은 데 가?” “어디 좋은 데 가지!” 그런 장면들은 스치듯 지나쳐도 자꾸만 뇌리에 남아, 나는 홍예문 가는 길에 이름 모를 꽃이나 낡은 간판, 태양초를 널어 말리는 풍경 앞에서 멈춘다. 그리고 자꾸 고개를 숙인다. 땅 위의 작은 꽃들과 눈 맞추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 ●쉼터가 된 전망 좋은 집들 높은 홍예문 위에서는 반대로 기다란 길을 내려다본다. ‘홍예’는 교통의 편의를 위해 산을 가로질러 낸 통로치고는 지나치게 예쁜 이름이다. 홍예문부터 자유공원까지는 느슨한 구간이다. 좌측은 내항이 내려다보이는 카페들이, 우측은 ‘어린이헌장기념비’ 같은 옛날 공원의 흔적이 남은 숲이다. 서쪽에서 살금살금 갈바람이 불어온다. 그제야 계절의 기온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은 내려갔다는 걸 깨닫는다. 자유공원은 1888년에 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각 나라의 조계지가 있던 개항 초기라 첫 이름은 각국공원이었다. 광복을 맞은 해 만국공원이 되었고 지난 1957년부터는 자유공원이라 불린다. 공원이 있기 전에는 응봉산(69m)이었다. 각국공원이 되고 나서 동네 사람들은 오포산이라고도 불렀다. 매일 정오마다 공포를 쏘아 시간을 알렸기 때문이다. 공원의 산책로는 키 큰 나무가 하늘을 가린다. 오늘은 외국인 여행객 두 사람이 나란히 걷고 막 걸음마 뗀 아기가 아장아장 막아선다. 자유의 풍경들, 공원은 한참을 지나 비로소 동네 공원이 되어 간다. 자유공원 광장 남쪽 아래는 옛집들이 여행자의 눈길을 끈다. 동네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산책길의 풍경이다. 하지만 여행자에게는 산책을 여행으로 만드는 장소들이다. 제물포구락부는 1891년에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이 지은 2층 양옥이다. ‘구락부’는 외국인의 사교장을 뜻하는 일본어 ‘쿠라부(Club)’를 한자식으로 표기한 단어다. 사교장답게 중심의 바 테이블이 눈길을 끈다. 인천시민愛집은 옛 일본식 주택 터에 1961년 지은 한옥이다. 2001년까지 인천시장 17명이 관사로 사용했다. 이웃한 이음 1977은 1977년에 김수근 건축가가 지은 벽돌 주택이다. 일제강점기 정미소의 벽돌과 전돌 등으로 마감했다. 세 집을 넘나들며 100년 동인천 건축의 변천사를 보는 건 흥미롭다. 형태도 구조도 모두 다른 집은 인천항이 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라는 점만은 공통이다. 그러니 부와 명예가 아니고서는 살 수 없는 집이었을 거다. 여행자와 시민들의 쉼터가 된 현재는 이들 집에서 긴 시간을 보낸다 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는다. 간간이 몇몇의 방문객이 소란스러워도 그럴수록 그들이 머무는 시간은 짧아서 금세 고요가 찾아든다. 신경 쓰이지 않을 즈음에는 이 넉넉한 집에 주인이 된 듯하다. ●비밀의 정원에서 세 집 가운데 인천시민愛집은 정원이 화사하다. 옛 일본식 주택이 간직하던 정원이다. 개량한옥은 종이 문 대신 유리 문을 달았다. 창밖으로 햇살에 반짝이는 초록들이 눈부시다. 나뭇가지 사이를 총총히 넘나다니는 새들도 보인다. 그때마다 잎사귀가 살랑살랑 계절의 샘 위에 찻잔처럼 흔들리는데 정원이 부르는 것이다. 정원은 남쪽 경사지에 아담하다. 알고 보니 그쪽이 정문이다. 뒤편 제물포구락부에서 들어와서 알아채지 못했다. 정원 사이로 몸을 숨긴 호젓한 계단은 벌써부터 아름다운 단풍을 기대케 한다. 그 풍경에 반해 참지 못하고 카메라를 꺼낸다. ‘가을에 꼭 다시 와야겠네’라고 혼잣말하며. 일단 카메라를 꺼내니 찍고 싶은 장면이 많다. 괜스레 들떠서 허둥지둥, 그러다가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발가락이 심하게 아려 촐싹댄다. 이놈의 욕심이란. 천천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산책하기로 다짐한 지 서너 시간이 지났으려나. 무리하지 않는 선은 이런 순간들이 얼마나 반복되어야 생겨나는 것일까. 정원 경계석에 앉아 숨을 고른다. 고개를 드니 하늘이 둥글다. 정말 단풍이 들면 아름답겠다. 오늘의 ‘상처’를 기억해 여유로운 가을 나들이를 한 번 더 계획해야지. 대문을 지나 바깥으로 나와서는 걸음의 속도를 늦춰 걷는다. 발가락이 아프니 그럴 수밖에. 각국조계지 계단에서는 한 번 더 쉬어간다. 조계지는 개항장의 각 나라가 치외법권을 누리던 지역이다. 이 평범한 골목의 계단이 각국 열강의 경계였다는 게 좀체 믿기지 않는다. 그 사이 시간은 어느새 점심을 넘어섰다. 무리하지 않으며 느리게 돌아보자 마음먹었지만 실은 또 욕심이 앞섰던 게 분명하다. 한수희 작가의 ‘우리 동네 만끽 리스트’에 있던 중국집, 전가복에 들러 짬뽕밥 한 그릇을 주문해 꼭꼭 씹어 먹는다. 이곳의 짬뽕밥은 공깃밥 대신 볶음밥이 나온다. 짬뽕은 붉은데 과하게 맵지 않고 감칠맛이 난다. ●여름을 쉬는 과잣집 동인천 산책의 마무리는 인천 최초의 상설시장 신포시장이다. 시장 입구 닭강정 맛집은 이미 사람들로 붐빈다. 점포 앞에서 갓 튀겨낸 치킨에 양념을 쓱쓱 비벼 파니 모두가 주목한다. 시장에는 숯불에 구운 김이나 에그타르트도 맛있다. 정말 놓치지 말아야 할 숨은 맛집은 또 있다. 한수희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맛과 품질에 타협하지 않기 위해” 여름을 쉬는 신포과자점이 휴가를 끝내고 드디어 문을 열었다. 10㎡(약 3평) 남짓한 과자점은 반세기 넘게 상투과자 등 10여 종의 생과자를 구워 판다. 생과자는 습기에 약해 여름에는 금세 눅눅해지므로 장사를 쉰다. 저울에 한 근을 달아 파는데 거짓 없는 땀의 무게다. 한수희 작가는 이런 이들을 “마음속의 스승들”이라 했다. ‘머털도사’ 같은 사람들, 계절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세상의 속도보다 조금 느리게 사는 사람들. 신포시장을 나와서는 동인천역으로 복귀한다. 그전에 기어이 토니커피하우스에 들러 한수희 작가의 동네 만끽 리스트를 마무리한다. 천천히 내린 드립커피와 호박파이 하나를 앞에 두고서, 배다리마을과 패치워크는 단풍 든 가을에 찾았을 때 들러야지 하며. 물론 급행 지하철 시간에 맞춰 뛰쳐나오는 길에 다시 한번 스스로의 모자람을 확인하고 말았지만. “텀블러 두고 가셨어요.” 카페 바리스타가 문 앞까지 급하게 쫓아와 나를 배웅한다. 아차차! 그가 건넨 텀블러를 받고 인사하며 ‘서두르지 않는 선’은 없을까 생각한다. 한 번에 한 걸음씩 옮기면 어려울 것은 없다, 고 한수희 작가는 말했지만.
  • 오름이 건넨 ‘비움의 미학’… “기쁨도 슬픔도 모두 내려놔요”[올레길에서 만난 벅차오름]

    오름이 건넨 ‘비움의 미학’… “기쁨도 슬픔도 모두 내려놔요”[올레길에서 만난 벅차오름]

    ‘케데헌’ 등장한 밭담길 총 2만여㎞아름다운 귤밭·소박한 밭담 펼쳐져물통·밥통처럼 움푹 파인 ‘통오름’봉수터 흔적 남아 있는 독자봉 정상전망대 가면 성산일출봉 등 한눈에김영갑갤러리선 오름의 비움 만나“제주의 오름은 오름이 아니라 내림인 것 같아요.” 최근 ‘제주올레’라는 한국·인도 합작 영화를 만든 진광교 감독이 지난 2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주오름은 단순히 올라가는 산이 아니라 삶을 비우고 내려오는 공간이라는 생각에서 비움인 것 같다”며 간결하게 정의 내리는 것에 내심 놀랐다. 영화감독다운 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무언가를 더 얻기 위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 아픔, 상처를 하나씩 내려놓고 비우고 돌아오는 곳”이라며 “새벽에도 오름을 찾는 이들을 보면서 제주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치유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름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내년 봄 촬영하기 위해 사전답사차 제주를 찾았다고 했다. ‘제주앓이’를 하는 그를 응원하는 마음에 테마별 이색오름 목록을 건넸다. 그리고 그 목록에 있는 오름이 속한 올레길 3코스의 여정을 떠났다. 온평포구에서 시작한 올레길 3코스는 온평리 올레민박 앞에서 3-A코스와 3-B코스로 나뉜다. 중산간 마을과 오름을 잇는 3-A코스는 20.9㎞, 해안을 따라 걷는 3-B코스는 14.6㎞다. 오름을 품은 길을 걷고 싶은 마음에 길고 긴 강행군이겠지만, 망설임 없이 3-A코스를 택했다. 제주빌레성 통나무펜션을 지나 보석암을 통과하자 길은 금세 외지고 한적해졌다. 돌하르방이 묵묵히 길손을 맞이하는 길을 지나 난산리 마을 초입에 들어서니 정겨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관광객님 귤 드시고 산책하세요.” 시골의 정감이 묻어나는 글귀가 적힌 난산명월민박 간판과 함께 나무 안내판이 말을 걸어왔다. 제주 올레길을 걷다 보면 가끔 정자 한편에 작은 소쿠리나 쟁반을 내놓고 지나가는 길손에게 귤을 먹고 가라고 권하는 모습을 종종 만난다. 돈은 받지 않는다. 이름도 묻지 않는다. 그저 지나가는 사람에게 귤 한두 개의 휴식을 권한다. 어쩌면 제주 올레길에서만 만날 수 있는 가장 소박하고 따뜻한 배려의 풍경인지도 모른다. 난산리는 오래전 제주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마을이다. ‘구경하는 갤러리 용강화실’, 귤밭 옆 창고를 개조해 지은 ‘난산리다방’과 그곳에 풀어놓은 백구가 뛰어노는 고즈넉한 마을은 그 자체가 빛나는 보석이고 오소록(구석지고 고요한 뜻의 제주어)한 마을에서 만나는 휴식 같은 친구였다. 제주관광공사 공식 홈페이지 ‘비짓제주’에는 이곳 난산리 난미밭담길이 이렇게 소개돼 있다. ‘제주에는 천 년 이상의 시간을 간직한 밭담길이 있다. 인기 콘텐츠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배경으로도 등장하는 밭담은 제주의 거센 바람을 막아 작물을 보호하는 놀라운 건축 기술을 보여준다. 모든 밭담을 이으면 약 2만 2000㎞에 달할 만큼 검은 돌들이 끝없이 이어진 모습 때문에 ‘흑룡만리’라고 불릴 만하다.’ 그중 난미 밭담길은 ‘난초처럼 아름다운 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해발 50여m, 한라산이 내려다보일 만큼 높은 지대에 자리한 난산리는 예로부터 토질이 좋아 귤 농사가 발달한 곳이다. 이승익 시인의 성산십경 중 제4경인 ‘난산귤림(蘭山橘林)’이 바로 이곳이다. 아름다운 귤밭과 소담한 밭담이 어우러진 풍경을 감상하며 걷기 좋다. 걸어온 올레길 화살표 7㎞를 앞두고서야 통오름(성산읍 난산리 1976번지 일대) 초입에 들어섰다. 산 모양이 물통, 밥통 같은 통처럼 움푹 팬 형태라고 하여 불리는 통오름은 인동초가 한창이었다. 유년 시절 들판에서 뛰어놀 때, 인동초 꽃잎은 심심한 입을 달래줬다. 꿀 향기에 취해 꽃잎을 따 입에 물고 얼마나 쪽쪽 빨아먹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인동초 하면 김대중 대통령이 떠오른다. 야당 총재 시절 광주 5·18 민주화운동 묘역을 찾은 그는 “나는 혹독했던 정치의 겨울 동안 강인한 덩굴풀 인동초를 잊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바쳐 한 포기 인동초가 될 것을 약속합니다”라는 말을 남겨 인동초라는 별명이 생겼다. 이재명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목포 유세 현장에서 한 시민으로부터 인동초를 선물 받았다. 그는 “아직 미완성이지만 평화롭고 안전하고 잘 사는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겠다”고 화답했다. 그런 인동초가 지고 가을이 오면 통오름은 패랭이와 갯쑥부쟁이, 꽃향유 등이 피어나며 오름 전체가 보랏빛 꽃밭으로 물든다. 김종철 선생은 ‘오름 연구의 고전’(古典)으로 불리는 ‘오름나그네’에서 표고 143.1m의 통오름을 ‘몽실몽실한 몸매를 비단잔디로 싸고 아늑한 굼부리를 품어 안은, 어디를 보아도 미운 데라곤 없는 오름’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걸어보니 그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오름의 능선은 부드럽고 길은 평평했다. 지친 뚜벅이의 발걸음마저 가볍게 해주는 길이었다. 통오름을 내려오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독자봉이 기다린다. 삼달마을 북쪽 약 1.5㎞에 누운 모습의 통오름이 있다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표고 159.3m의 독자봉(성산읍 신산리 1785번지)이 의좋은 이웃처럼 앉은 자세로 있다. 외로운 산이라는 의미의 독산, 망오름, 오음사지악이라고도 불리는 독자봉은 화구가 남동향으로 벌어진 말굽형의 ㄷ자형으로 길게 뻗어 내려 있다. 산꼭대기에는 봉수터 흔적이 돌담으로 둘러져 남아 있는데, 이곳 봉수는 조선시대 북동쪽에 수산 봉수와 서쪽의 남산 봉수와 교신했다고 한다. 독자봉 남서쪽 미천이머루에는 미천굴이 있는데 전장이 1695m인 용암 동굴로서 동굴 내부에 있는 돌다리, 거북바위 등 비경으로 유명한 동굴이다. 비탈면에 듬성듬성 곰솔과 삼나무가 있고, 화구 안에는 곰솔, 삼나무, 편백, 찔레나무가 어우러져 숲을 이루고 있다. 홀로 떨어져 있어 외롭게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독자봉이 있는 마을은 독자가 많은 것도 이 오름의 영향이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5분이면 오르는 정상 전망대에선 바다 쪽으로는 성산일출봉부터 표선백사장까지, 내륙으로는 한라산과 수십 개의 오름이 한눈에 펼쳐진다. 소나무 숲길을 내려와 밭길을 한참 걷다 보니 삼달마을이 나타났다. 그리고 멀리서 반가운 이름 하나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중간 스탬프를 찍는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이다. 한라산의 옛 이름인 두모악은 쉼을 뜻하는 한자 휴(休) 같은 곳이다. 나무(木) 옆에 사람(人)이 기대어 있는 한자. 사람이 나무에 기대든, 나무가 사람에게 기대든 결국 그곳에는 휴(休)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휴식 같은 친구 박훈일 관장이 있다. 수장고가 열악해 김영갑 선생의 사진 작품을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할 것인지 늘 고민했던 박 관장. 한때는 경영 악화로 갤러리를 휴관해야 했을 만큼 마음고생도 컸다. 김영갑 선생은 1985년 제주에 입도한 이래 20여 년간 제주의 자연, 바람, 특히 오름을 피사체에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로 담아냈다. 그러나 루게릭병에 걸린 그는 투병 생활 6년 만인 2005년 손수 개척한 김영갑갤러리두모악에서 잠들었다. 박 관장은 지난 3월 평소 바람대로 소원을 이뤘다. 고인의 작품이 공공기관으로 옮겨져 체계적인 보존과 관리의 길이 열린 것이다. 국립제주박물관이 두모악으로부터 9만 8652점을 기증받아 수장고에 보관하는 협약을 맺었다. 마음고생이 위로받는 순간이었다. 이날 두모악에 걸린 오름의 풍경을 바라보며 ‘오름은 비움이고 오름은 내림’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리고 그 오름은 기다림의 길이고 위로의 길이란 걸. 신풍리와 신천리 바닷가의 신풍신천바다목장을 지나 ‘배고픈 다리’를 건너자 20.9㎞ 여정의 끝인 표선해변이 가슴에 와닿았다. 마음이 헛헛한 날, 오래 걸었지만 오래 남을 사진첩 하나를 채운 기분이다. 누구나 한 번쯤 배터리가 방전된 듯 ‘번아웃’을 겪는다. 그럴 때 이 길을 권하고 싶다. “오름에 한 번 올라보세요. 기쁨도 슬픔도 유효기간이 있다잖아요. 시간이 지나면 지금보다 더 단단해져 있을 거예요.” ※ 이 기획은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관광공사 지원으로 제작됐습니다.
  • 챗GPT로 ‘가족 살해 시나리오’ 구상해 실행에 옮긴 17세 美 소년 [월드픽]

    챗GPT로 ‘가족 살해 시나리오’ 구상해 실행에 옮긴 17세 美 소년 [월드픽]

    미국에서 17세 소년이 어머니와 남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특히 범행 전 오랫동안 인공지능(AI) 챗봇을 통해 가족 살해 시나리오를 구상해 온 것으로 조사돼 AI 챗봇의 안전 문제가 다시금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챗GPT로 ‘가족 살해 시나리오’ 구상…母·동생 살해 뒤 도주CNN, 폭스뉴스 등 미국 현지 보도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후 6시 37분쯤 매사추세츠주 액턴에서 “가족과 연락이 안 된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경찰이 신고자의 자택으로 출동해 진입한 결과 1층에서 둘째 아들 시다르트 아라빈드(14)가, 지하실에서는 아내 수다 벤카테산(45)이 숨진 채 발견됐다. 두 사람 모두 외상을 입은 명백한 흔적이 있었다. 검찰은 “집 안에서 격렬한 몸싸움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사인은 둔기에 의한 외상으로 추정된다. 맏아들 아르준 아라빈드(17)는 경찰 수색 당시 집 안에 없었다. 수다의 승용차가 없어진 것을 볼 때 아르준이 어머니의 차를 타고 도주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3시 40분쯤 액턴에서 차로 20분 거리인 웨일랜드의 한 주차장에서 경찰이 차에 있던 아르준을 발견해 체포했다. 웨일랜드 경찰은 당시 가족 살해 사건과 무관한 신고로 출동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에 따르면 사건 당일 오전 아버지는 출근 전 아내와 마지막으로 연락했고, 그날 오후 과외 교사가 방문했다가 문이 잠겨 있고 가족들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후 아버지가 경찰에 신고했던 것이다. 액턴은 보스턴에서 북서쪽으로 약 32㎞ 떨어진 교외 부촌으로, 이들 가족은 최근 학군 등을 이유로 이곳으로 이사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3일 아르준에 적용된 살인 2건, 가족 폭행 2건 및 기타 혐의에 대한 무죄 주장 답변이 제출됐다. 액턴 지역을 관할하는 미들섹스 카운티 검찰의 매리언 라이언 검사장은 피의자 아르준에 대해 “최근 우려스러운 행동을 보여온 가운데 인터넷과 챗GPT를 이용해 가족 살해와 연관된 이론적 아이디어나 판타지 스토리를 검색한 기록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아르준은 챗GPT를 이용해 고딕 소설류의 이야기를 만드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챗GPT에 질문을 던지고 캐릭터를 만들면서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나?’,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되지?’ 같은 식으로 물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가족이 살아남지 못하는 상황과 관련 있어 보인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었다. 가족들도 비슷한 우려를 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아르준은 지난 1년간 문제 행동을 보여 왔고, 가족들은 그의 문제 행동과 온라인 활동을 우려해 집 안의 부엌칼을 숨겨두고 있었다고 아버지가 진술했다. 법원 기록에는 아들이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아버지의 진술도 포함돼 있었다. 아르준의 변호인은 “아르준이 집을 나설 때 그는 두 사람이 사망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온전히 상황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상태”라고 주장하며 정신감정을 신청했다. 플로리다주, 오픈AI ‘범죄 조력 방조’ 주 차원 소송 이번 사건은 그동안 AI 기술이 범죄나 인명 피해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혹을 받는 여러 사건과 같은 선상에 놓였다. 앞서 플로리다주는 지난 6월 챗GPT 개발사 오픈AI와 대표 샘 올트먼을 상대로 주 차원의 첫 소송을 제기했다. 플로리다주립대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과 사우스플로리다대 유학생 살해 사건이 소송 계기가 됐다. 플로리다주립대 총기 난사 사건 범인은 범행 전 챗GPT에 산탄총 탄약의 살상력, 학교 총격범의 수감 현황, 학생회관이 가장 붐비는 시간대 등 범행 준비를 위한 질문을 던졌다. 검찰은 챗GPT가 무기 선택과 효과에 대해 “상당한 조언”을 제공했다고 판단했다. 사우스플로리다대 유학생 살인 사건 범인은 범행 전 “사람을 검은 쓰레기봉투에 넣으면 어떻게 되나” 등의 질문을 했고, 범행 후에는 “저격 총탄을 맞고 생존한 사람이 있나”, “이웃이 총소리를 들을 수 있나” 등의 질문을 했다. 플로리다주는 챗GPT가 부모 감독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고, 미성년자를 중독시켰으며, 이용자의 비판적 사고 능력을 상실케 하고, 총기 난사범을 돕고 자살을 조장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오픈AI는 그동안 “미성년자에게 상당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업계 최고 수준의 보호 장치와 정책을 마련해 두었다”라고 밝혀 왔다. 다만 아르준 아라빈드 사건과 관련해서는 아직 별도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범행 위험 인지하고도 신고하지 않았다가 소송반대로 최근에는 범행 계획을 챗GPT에 털어놓은 남성이 오픈AI의 신고로 덜미가 잡히기도 했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대런 저우(25)는 지난 3월 챗GPT에 헤어진 여자친구를 살해하겠다는 계획을 상세히 털어놨다가 최근 체포됐다. 그는 챗GPT에 “이달 말까지 그 여자를 죽일 것”이라며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아무도 가질 수 없다” 등의 대화를 나눴다. 또 전 여자친구의 취미, 자주 찾는 장소를 기록했고, 다른 남성에 대한 질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전 여자친구가 다니는 체육시설 주차장에서 꽃을 들고 기다리다가 거절당하면 총으로 살해하고 목숨을 끊겠다’고 챗GPT에 언급하는 등 단순 감정 표출을 넘어 구체적인 범행 계획을 세우는 수준이었다고 수사 당국은 설명했다. 소총과 권총, 산탄총 등을 구매하고 그 사진을 전 여자친구에게 보냈다고 챗GPT에 과시하기도 했다. 오픈AI는 저우의 챗GPT 대화 패턴에서 위험성을 감지하고 대화 내역을 연방수사국(FBI)에 신고했다. 저우는 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했으나 감형 합의를 통해 판결이 유예되고 보호관찰 8년과 전자발찌 2년 착용 처분을 받았다. 오픈AI가 범행 전 위험을 감지하고도 이를 방치했다는 의혹을 받고 소송을 당한 것은 플로리다주 사례만이 아니다. 지난 2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북동부 탄광 마을 텀블러리지에서 벌어진 가족 및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제시 밴 루트셀라(18)의 경우 범행 8개월 전인 2025년 6월 오픈AI는 밴 루트셀라의 챗GPT 계정을 정지했다. 그가 총기 범행 시나리오와 연관된 질문을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오픈AI 직원 12명은 회사 측에 경찰 신고를 요구했으나 경영진은 신고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밴 루트셀라의 활동이 ‘범행으로 곧바로 이어질 만큼 신빙성이 있는 위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이 사건은 오픈AI 측이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플로리다주 사례에서 더 나아간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에 지난 4월 피해자 유족은 오픈AI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샘 올트먼은 “계정 정지와 관련해 수사기관에 알리지 않은 데 대해 깊이 사과한다”고 공개 사과했다.
  • ‘인기만점’ 원어민 교사, 아내 죽이고 ‘해외도피’한 전직 경찰이었다…제자가 제보 [월드픽]

    ‘인기만점’ 원어민 교사, 아내 죽이고 ‘해외도피’한 전직 경찰이었다…제자가 제보 [월드픽]

    21년간 미제 사건의 범인이 해외로 도망쳐 신분을 숨긴 채 영어 교사로 일하다 제자의 제보로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됐다. 미국 폭스뉴스, CBS 등에 따르면 2005년 아동성범죄와 아내 살해 혐의를 받은 뒤 잠적했던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경찰국 소속 전직 경찰 대니얼 윌리엄 히어스(53)가 지난 23일(현지시간) 중국에서 미국으로 송환됐다. 그의 첫 범행은 2004년 11월이었다. 노스찰스턴 경찰은 16세 미만 아동 대상 음란행위 혐의로 히어스를 체포했다. 피해자는 그가 가라테 수업에서 만난 소녀였다. 그는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직위해제는 피할 수 없었다. 11년 경찰 경력이 끝난 히어스는 건설 일용직으로 일했다. 2005년 3월 9일 동일 피해 아동과 관련해 추가 성폭력 혐의가 접수됐고, 같은 달 15일 경찰에 출석하기로 했던 히어스는 변호인에게 “늦을 것 같다”는 통화를 남긴 뒤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히어스의 어머니는 아들이 경찰에 출석하지 않고 며느리 루디밀라도 출근하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고 아들의 집을 찾았다가 며느리의 시신을 발견했다. 히어스의 아내 루디밀라는 안방 침대에서 자던 중 뒤통수에 총상을 입고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사망 추정 시각은 오전 7시에서 정오 사이였다. 이웃들은 히어스가 오후 일찍 집을 나서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히어스의 차량은 멕시코 국경 인근에서 버려진 상태로 발견됐다. 히어스는 영어 외에도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았고, 아내의 모국어인 포르투갈어도 구사해 수사당국은 그가 중남미 모처로 도피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2005년 8월 히어스에 대해 미 수사당국은 인터폴 적색수배를 발부했다. 히어스의 행적은 오랫동안 묘연했다. 수사당국은 히어스를 2022년 7월까지 15대 지명수배 명단에 올릴 정도로 히어스 사건을 중요하게 취급했다. 이후 몇 년간 수사당국은 수많은 히어스 목격 제보를 받았지만, 그 어느 것도 사실로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다 2018년 9월 10일 라이브5뉴스는 이날 발행된 히어스 관련 기사와 함께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았다. 미국에 온 한 중국 여성의 제보였다. 제보자는 기사를 읽다가 수배자 명단에 있는 히어스의 사진을 보고 중국에서 자신을 가르쳤던 원어민 교사를 떠올렸다고 한다. 제보자는 “그 선생님은 키도 크고 잘생겨서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면서도 “사생활이 복잡했고 심지어 내 친구에게도 추파를 던진 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다만 이름은 대니얼 히어스가 아닌 ‘데이비드 윌리엄스’라고 했다. 제보를 토대로 수사가 이뤄졌고 같은 해 중국 상하이에서 원어민 영어 강사 ‘데이비드 윌리엄스’로 활동하던 히어스는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그러나 미국 수사당국은 오랜 기간 히어스의 송환은 물론 체포 여부도 공식적으로 확인받지 못했다. 2018년 당시 연방보안관실은 “국제 파트너들과 전면 공조 중”이라고만 밝혔다. 2022년 7월 15대 지명수배 명단에서 히어스를 제외했을 때도 연방보안관실은 그의 중국 내 구금 등이 아닌 다른 지명수배자를 넣기 위해서라고만 언급했다. 중국 당국이 히어스를 체포한 이유도 알려지지 않았다. 2023년 한 매체는 상하이 구치소에 있는 히어스와 짧은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히어스는 “혐의를 해소하고 싶다. 나는 무죄”라면서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히어스의 미국 송환은 지지부진했다. 미중은 서로 범죄인인도조약을 맺지 않았기 때문에 히어스의 미국 송환에는 별도의 외교적 노력이 필요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히어스 송환이 가시화됐고, 미 수사당국은 지난 7월 23일 중국 측으로부터 히어스의 신병을 인계받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미 연방보안관이 공개한 신병 인수인계 사진에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 수사 관계자들이 파란색 상의를 입은 남성(히어스)을 연행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미 연방보안관실은 중국 공안부, 국무부 외교안보국, 법무부 국제업무국, 연방수사국이 이번 수사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 카우스, 한국 미술관에 처음 들어온 ‘21세기 앤디 워홀’

    카우스, 한국 미술관에 처음 들어온 ‘21세기 앤디 워홀’

    스페이스K 내일부터 개인전신작 회화·조각 등 20점 소개“나는 캐릭터를 뮤즈로 삼아표현하고픈 캐릭터 등장시켜” 2018년 여름, 28m 거대 조형물이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에 나타났다. 미키마우스를 생각나게 하는 반바지를 입고 큼직한 신발을 신은 채 호수에 누워 멍하니 하늘을 보던 캐릭터. 해골형 얼굴에 ‘X’자 모양의 눈으로 웃음과 위안을 건넸던 존재는 미국의 팝아티스트 카우스(KAWS·52)의 ‘컴패니언’(COMPANION)이었다. ‘21세기 앤디 워홀’이라 불리는 그의 전시가 한국에 상륙했다. 거리 문화와 만화에서 영감을 받은 그라피티와 아트토이로 주목받은 카우스는 회화, 조각, 공공미술 등으로 작업 영역을 확장했다. 특히 상품 디자인, 패션으로 작업 영역을 확장, 유니클로, 꼼데가르송, 디올 옴므 등 유명 브랜드와 협업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예술가다. 순수미술과 대중문화, 작품과 상품, 거리와 미술관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던 그가 드디어 한국 미술관의 문턱도 없애버렸다. 서울 강서구의 문화공간인 스페이스K 서울은 23일부터 카우스의 한국 첫 미술관 개인전 ‘친구, 그리고 이웃’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카우스의 대표 캐릭터가 등장하는 신작 회화와 조각 등 20여 점을 소개한다. 전시는 가까운 관계 안에 존재할 수 있는 위로와 친밀함뿐 아니라 갈등과 불편함을 함께 다룬다. 21일 전시 현장을 찾은 카우스는 “이번 전시 제목은 동네, 나아가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언제든 축소와 확장이 가능한 상호 관계를 다루고 있다”며 “갈등은 제 작업의 주요 모티브 가운데 하나인데 9살, 12살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갈등은 언제나 인식할 수밖에 없는 주제”라고 소개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대표 캐릭터 중 하나인 ‘첨’(CHUM)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첨은 미쉐린 맨을 연상시킨다. 올록볼록하게 겹친 튜브 형태의 포동포동한 몸에 카우스의 상징인 X자 눈을 하고 있다. 카우스는 “회화 작가가 모델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린다면 나는 캐릭터를 뮤즈로 삼고 표현하고 싶은 분위기가 있을 때 거기에 맞는 캐릭터를 등장시킨다”고 설명했다. 컴패니언이 주로 얼굴을 가리거나 고개를 숙이는 등 고독, 수줍음 등을 표현했다면 첨은 역동적인 에너지를 내뿜는다. 전시된 신작 조각 작품 ‘막상막하’는 서로의 목을 붙잡고 밀고 당기는 듯한 기묘한 대치 상황에 놓여 있는 첨의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 카우스의 작품에서 두 명 이상의 캐릭터가 함께 등장할 때, 이들은 주로 서로 안거나 기대는 모습으로 표현되며 연대와 위로의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반면 이 작품은 친구라는 이름을 가진 캐릭터들이 서로를 붙잡고 밀어내는 모습을 통해 가까운 관계가 언제나 평화롭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회화 작품인 ‘빨간 공’ 역시 마찬가지. 놀이터를 배경으로 두 캐릭터가 서로 밀고 당기는 듯한 장면을 그린다. 정작 갈등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이는 빨간 공은 멀찍이 떨어져 있다. 배경이 되는 놀이터는 우정의 공간인 동시에 규칙과 경쟁을 배우는 사회적 공간이라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토끼를 연상시키는 그의 또 다른 캐릭터 ‘어컴플리스’(ACCOMPLICE)는 ‘그림자 측정하기’라는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공범’을 뜻하는 이름처럼 귀여움과 불안함, 친숙함과 낯섦을 동시에 품고 있다. 작품은 짧아졌다 길어지고 짙어졌다 흐려지는 그림자처럼 쉽게 수치화할 수 없는 감정의 무게와 마음의 그늘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는 12월 27일까지.
  • 거리와 미술관 경계 넘나드는 ‘21세기 앤디 워홀’ 카우스(KAWS) 상륙…한국 최초 미술관 전시

    거리와 미술관 경계 넘나드는 ‘21세기 앤디 워홀’ 카우스(KAWS) 상륙…한국 최초 미술관 전시

    2018년 여름, 28m 거대 조형물이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에 나타났다. 미키마우스를 생각나게 하는 반바지를 입고 큼직한 신발을 신은 채 호수에 누워 멍하니 하늘을 보던 캐릭터. 해골형 얼굴에 ‘X’자 모양의 눈으로 웃음과 위안을 건넸던 존재는 미국의 팝아티스트 카우스(KAWS·52)의 ‘컴패니언’(COMPANION)이었다. ‘21세기 앤디 워홀’이라 불리는 그의 전시가 한국에 상륙했다. 거리 문화와 만화에서 영감을 받은 그라피티와 아트토이로 주목받은 카우스는 회화, 조각, 공공미술 등으로 작업 영역을 확장했다. 특히 상품 디자인, 패션으로 작업 영역을 확장, 유니클로, 꼼데가르송, 디올 옴므 등 유명 브랜드와 협업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예술가다. 순수미술과 대중문화, 작품과 상품, 거리와 미술관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던 그가 드디어 한국 미술관의 문턱도 없애버렸다. 서울 강서구의 문화공간인 스페이스K 서울은 23일부터 카우스의 한국 첫 미술관 개인전 ‘친구, 그리고 이웃’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카우스의 대표 캐릭터가 등장하는 신작 회화와 조각 등 20여 점을 소개한다. 전시는 가까운 관계 안에 존재할 수 있는 위로와 친밀함뿐 아니라 갈등과 불편함을 함께 다룬다. 21일 전시 현장을 찾은 카우스는 “이번 전시 제목은 동네, 나아가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언제든 축소와 확장이 가능한 상호 관계를 다루고 있다”며 “갈등은 제 작업의 주요 모티브 가운데 하나인데 9살, 12살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갈등은 언제나 인식할 수밖에 없는 주제”라고 소개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대표 캐릭터 중 하나인 ‘첨’(CHUM)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첨은 미쉐린 맨을 연상시킨다. 올록볼록하게 겹친 튜브 형태의 포동포동한 몸에 카우스의 상징인 X자 눈을 하고 있다. 카우스는 “회화 작가가 모델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린다면 나는 캐릭터를 뮤즈로 삼고 표현하고 싶은 분위기가 있을 때 거기에 맞는 캐릭터를 등장시킨다”고 설명했다. 컴패니언이 주로 얼굴을 가리거나 고개를 숙이는 등 고독, 수줍음 등을 표현했다면 첨은 역동적인 에너지를 내뿜는다. 전시된 신작 조각 작품 ‘막상막하’는 서로의 목을 붙잡고 밀고 당기는 듯한 기묘한 대치 상황에 놓여 있는 첨의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 카우스의 작품에서 두 명 이상의 캐릭터가 함께 등장할 때, 이들은 주로 서로 안거나 기대는 모습으로 표현되며 연대와 위로의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반면 이 작품은 친구라는 이름을 가진 캐릭터들이 서로를 붙잡고 밀어내는 모습을 통해 가까운 관계가 언제나 평화롭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회화 작품인 ‘빨간 공’ 역시 마찬가지. 놀이터를 배경으로 두 캐릭터가 서로 밀고 당기는 듯한 장면을 그린다. 정작 갈등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이는 빨간 공은 멀찍이 떨어져 있다. 배경이 되는 놀이터는 우정의 공간인 동시에 규칙과 경쟁을 배우는 사회적 공간이라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토끼를 연상시키는 그의 또 다른 캐릭터 ‘어컴플리스’(ACCOMPLICE)는 ‘그림자 측정하기’라는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공범’을 뜻하는 이름처럼 귀여움과 불안함, 친숙함과 낯섦을 동시에 품고 있다. 작품은 짧아졌다 길어지고 짙어졌다 흐려지는 그림자처럼 쉽게 수치화할 수 없는 감정의 무게와 마음의 그늘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는 12월 27일까지.
  • 이웃집 에어컨 실외기에 배설물 상습투척한 홍콩 여성…“증거 있냐” 발뺌

    이웃집 에어컨 실외기에 배설물 상습투척한 홍콩 여성…“증거 있냐” 발뺌

    홍콩의 50대 주부가 이웃집 에어컨 실외기에 배설물을 반복적으로 투척한 혐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여성 측 변호인은 문제의 물질이 대변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식별하는 데 특별한 훈련이 필요하지 않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명보, HK01,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홍콩 매체에 따르면 홍콩 동부법원은 배설물 투척 등의 혐의로 기소된 가정주부 A(59·여)씨에게 최근 유죄를 선고했다. A씨는 2025년 6월 6일부터 7월 13일 사이 자신이 거주하는 건물의 이웃집 에어컨 실외기에 오물을 투척한 혐의를 받았다. 이와 별도로 같은 해 5월 31일에는 건물 복도에 설치된 이웃의 폐쇄회로(CC)TV 카메라를 파손한 혐의도 받았다. 재판 과정에서는 A씨의 범행 장면으로 추정되는 영상이 공개됐다. 먼저 CCTV 파손 혐의와 관련해, 피해자의 남자친구가 카메라를 설치한 지 7분 만에 A씨가 렌즈에 포착됐다. 영상에는 A씨가 지상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창밖을 살핀 뒤 창틀 쪽으로 손을 뻗었다가 황급히 자리를 뜨는 모습이 담겼다. 직후 큰 충격음이 들렸는데, 이 소리가 발생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카메라가 15층에서 1층으로 떨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과 거의 일치했다. A씨 측 변호인은 A씨가 단순히 창문을 열려던 것뿐이며, 카메라가 제대로 고정돼 있지 않아 그 과정에서 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카메라가 설치된 곳이 A씨 자택 아래층이어서 그곳까지 가 창문을 열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없었던 점, 그리고 영상 속 A씨의 행동이 비정상적이었던 점을 근거로 A씨가 카메라를 파손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배설물 투척 혐의에 대해서도 영상 증거가 제시됐다. 2025년 6월 6일부터 7월 13일까지 5주간 A씨 아파트 창문 쪽을 촬영한 영상에는 총 10일 밤에 걸쳐 A씨 아파트 창문에서 뻗어 나온 손이 이웃집 에어컨 실외기에 미상의 액체를 붓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A씨 측 변호인은 ▲영상 속 손이 A씨의 것이라는 증거가 없고 ▲투척된 물질을 검사하지 않는 한 이를 대변 등 배설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투척이 이뤄진 시간대에 A씨 자택에 A씨 외에 다른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이 없어 제삼자의 소행일 수 없다고 봤다. 아울러 에어컨 실외기에 버려진 냄새 나는 물질이 배설물인지 구별하는 데 특별한 훈련까지 필요하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피해자가 간호사인 만큼 물질의 색이나 냄새만으로도 배설물 여부를 충분히 판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A씨 측은 전과가 없고 평소 분실물을 습득하면 돌려준 이력이 있다며 모범적인 시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2022년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다고 밝히며 이를 양형에 참작해 달라고 요청했다.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온 A씨에 대한 선고는 오는 8월 21일 내려질 예정이다.
  • 국가가 만든 감시 장벽… 괴물이 된 인간들

    국가가 만든 감시 장벽… 괴물이 된 인간들

    시민 6.5명마다 정보원 한 명 배치동독시절 비밀경찰을 추적한 작가전직요원부터 피해자까지 인터뷰감시가 파괴하는 영혼의 비극 고발현대 국가·자본의 감시에도 경고장 ‘시민 6.5명마다 한 명.’ 통일이 되면서 세상에서 사라진 옛 동독(독일민주공화국)은 냉전시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치밀한 감시 국가였다. 비밀경찰 슈타지 관계자와 그들이 운용하는 정보원 규모는 히틀러 치하 나치 독일(2000명마다 한 명), 스탈린 치하 소련(5830명마다 한 명)보다도 훨씬 많았다. ‘역사상 가장 완성된 감시 국가’라고 불렸던 동독의 폭력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은폐됐다. 호주 출신의 변호사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이기도 한 작가 애나 펀더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은폐된 진실의 퍼즐을 맞춘다. 동독에 대한 언급을 꺼리는 독일을 대신해 그는 슈타지에게 감시와 박해를 받았던 피해자와 과거 슈타지에서 일했던 가해자를 만나 인터뷰하고 잊힌 기억을 복원한다. “슈타지는 정부가 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둔 내부 군대였다. 그 기관의 임무는 스스로 선택한 어떤 수단이든 가리지 않고 사용해 모든 사람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슈타지는 당신을 찾아오는 손님이 누구인지, 당신이 어디에 전화를 거는지, 심지어는 당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지 아닌지까지 알았다. 그것은 동독 사회 전체에 퍼져나가는 하나의 관료 체제였다.” 1968년 열여섯 나이의 미리암은 경찰이 소방 호스로 사람들에게 물을 뿌리고 체포하는 과정을 보고 부당함을 느낀다. 이에 전단지를 만들어 붙였다는 이유로 그는 ‘국가의 적’이 된다. 그는 두려움 끝에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남편 찰리 역시 의문스런 죽음을 맞이한다. 줄리아는 이탈리아인 남자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슈타지의 표적이 된다. 슈타지는 그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직장을 얻지 못하게 하는 등 모든 인간관계를 고립시킨다. 비극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이 빛을 내기도 한다. 중병에 걸려 장벽 너머 서독 병원에 있는 아이를 둔 파울 부인은 모성애를 시험당한다. 그는 아들을 보게 해줄 테니 동독 탈출을 돕는 조력자를 밀고하라는 제안을 거절한다. 작가는 악이 얼마나 평범하고 관료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지, 과거 슈타지 요원들을 인터뷰하며 ‘악의 평범성’을 폭로한다. 그들은 반성하기보다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에 바쁘다. 동독 시절 정치 선전 방송인 ‘검은 채널’의 진행자였던 폰 슈니츨러는 여전히 자본주의를 맹렬히 비난하며 베를린 장벽과 국경에서 벌어진 살해 행위를 정당한 조치였다고 주장한다. 형편없는 보수에도 이웃을 밀고했던 정보원들, 체제가 붕괴한 후에도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전직 요원들의 모습도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편물을 검열하고 이웃을 감시하게 했던 일들을 마치 우체국에서 서류 작업을 한 것처럼 덤덤하게 회상하는 모습은 섬뜩하게 다가온다. 장벽과 슈타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거대한 국가 권력의 상흔은 ‘머릿속의 장벽’을 남겼다. “나는 이 말을 그저 독일인들이 자신을 여전히 동독인과 서독인으로 규정하는 간단한 방식이라고만 여겼다. (중략) 장벽은 슈타지 출신 남자들의 머릿속에서는 언젠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무언가로, 그리고 피해자들의 머릿속에서는 무시무시한 가능성으로 계속 존재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수십년이 흘렀다. 냉전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일까. 저자가 맞춰낸 퍼즐은 스마트폰 위치 추적, 인터넷 검색 기록 데이터, 빅데이터 등 모든 것이 기록되고 추적되는 21세기에도 국가와 거대 자본의 감시는 여전하다는 것을 경고한다.
  • 시인은 가도 낱말은 남아 나를 안았다

    시인은 가도 낱말은 남아 나를 안았다

    故허수경 시인의 ‘마지막 불꽃’8년 만에 유고 시집으로 찾아와 선물처럼 다시 만난 시인의 세계필사·낭독회엔 독자 발길 이어져 시인은 가고 없어도 시인의 마음을 간직한 시는 여기에 남아 있다. 그것은 언젠가 다른 이의 음성으로 환하게 읽힐 날을 기다린다. 어쩌면 인간은 그렇게, 문학을 통해 죽음을 견뎌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인 허수경(1964~2018)의 유고 시집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이 그의 생일인 지난 9일 출간됐다. 시인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8년 만이다. 사람을 지독히도 사랑했고, 시에는 한없이 엄격했던 허수경의 마지막 불꽃이 시간의 지층을 뚫고 마침내 우리에게 왔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문학과지성사·2016)를 마지막으로 시인의 세계가 끝난 줄 알았던 독자에게는 뭉클한 선물이다. “어제는 당신이 나를 더 기다렸고/ 오늘은 내가 당신을 더 기다린다/ 그것만이 농담이 아닌 이국의 공항에서/ 상냥한 벗인 취기에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아, 당신을 기다리면서 물들면서/ 나는 이 세상 속, 어떤 예쁜 사람이 되어/ 사라져간다”(‘공항에서’ 부분) 허수경의 삶은 이방인으로서 고독함과 괴로움을 견디는 일의 연속이었다.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1992년 돌연 독일로 떠났다. 줄곧 그곳에서 살며 시와는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고고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런 그에게 ‘공항’이 지니는 의미는 남달랐을 것이다. ‘나’를 ‘너’와 이어주는 관문으로서 공항은 기꺼운 기다림의 공간이다. 그러나 기다리는 일은 동시에 이 세상에서 조금씩 사라지는 일이기도 하다. 오랜 기다림 속에서 우리의 육신은 서서히 증발한다. 이곳에 남는 것은 너를 향했던 사랑, 그리고 그것을 애절하게 기록한 시뿐이다. “나는 너야. 나는 바람, 태양, 소금, 물이 필요해. 그리고 짝짓기도. 나를 먹으렴. 나는 너니까. 너는 네 욕망의 근원이고 네 복의 근원이고 심지어 네 불행의 근원이니까. 너는 너의 모든 근원이니까. 너를 먹으렴.”(‘나의 코끼리 꿈과 코끼리의 내 꿈’ 부분) 허수경의 생일에 맞춰 시집을 출간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생전 시인과 가까웠던 후배이자 이번 시집을 편집한 김민정 시인은 “지난해 유족들을 통해 한국에서 언니(허수경)의 사망신고가 아직 안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서류상으로는 아직 살아 있는 언니를 이제 편히 쉬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허수경의 기일인 오는 10월 3일에는 시인을 기리는 나무를 한 그루 심고 그 아래 문인과 독자들의 편지를 담은 달항아리도 함께 묻을 예정이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시집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서는 출간일에 맞춘 기념행사 ‘허수경 하루’가 열리기도 했다. 오후 2시부터 종일 허수경의 시를 필사하고 낭독하는 자리였다. 저녁 7시에 시작한 낭독회에는 50명이 참석했다. 서점 안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였다. 대학생 노윤서(23)씨는 “시인의 시를 다른 사람과 함께 손으로 쓰니 ‘시집’이라는 말처럼 함께 하나의 집을 짓는 기분이 들었다”고 전했다. 낭독회는 밤 10시가 가까워서야 마무리됐다.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을수록 서점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시의 마법일까,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울지 않고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시가 하나 있었다. 소리 내어 읽어내는 것조차 버거운, 압도적인 슬픔. 현장은 단숨에 눈물바다가 됐다. “집 앞을 쓸다가 마주친 이웃이 물었다/ 당신의 고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나도 모른다, 고 말하는데/ 눈물이 났다/ 사람들이 바닷속에 있어요/ 엄마들이 울고 아빠들이 울고/ 삼촌 친구 짝사랑하던 소녀가 울고/ 잠수부가 울고/ 다 우는데 아무도 몰라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원한 실종을 완성할 일이/ 제 고향에서 일어났는지도 몰라요 … 이십 년 동안 독일에 살면서/ 망설이면서도 포기한 적 없던/ 내 얼굴의 고향은 서러웠다/ 길게 울었다 눈앞에 없는/ 바다 앞에서/ 고향의 수박등이 흔들렸다”(‘누군가 물었다’ 부분)
  • 50회의 칼부림으로 짓밟힌 자매의 꿈…대전 도마동 자매 살인사건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50회의 칼부림으로 짓밟힌 자매의 꿈…대전 도마동 자매 살인사건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는 대한민국을 뒤흔든 주요 사건들을 통해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시리즈입니다. 과거의 기록을 되짚으며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고 정의와 안전의 가치를 깊이 있게 고찰하는 서울신문의 특화 기사입니다. 서울신문은 기사 내용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AI 음성을 이용해 기사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새벽의 비명과 비워진 현장... 평온을 깬 잔혹한 서막2009년 9월 26일 토요일 새벽 5시 33분 추석을 단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대전 유성구의 한 빌라 단지는 명절 준비로 분주해야 할 평온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으나 이 정적은 긴박한 112 신고 접수와 함께 깨졌다. 사건의 시작은 4층에 거주하던 집주인의 목격담이었다.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던 집주인은 옆집 문이 미세하게 열린 틈을 타 황급히 계단을 내려가는 정체불명의 남성을 발견했다. 해당 남성은 위아래로 검은 옷을 입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 젊은 인상이었다. 집주인은 즉시 계단을 뛰어 내려가 그를 추격했으나 남성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골목 안쪽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시 4층으로 올라온 집주인이 조심스럽게 옆집 안을 확인했을 때 그곳에는 참혹한 유혈의 현장이 펼쳐져 있었다. 꽃다운 나이의 두 자매가 차가운 방바닥 위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의 상태는 수사팀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범인은 도주하기 직전 쓰러진 자매의 하반신 위에 이불을 정성스럽게 덮어놓는 기묘한 행동을 보였다. 범죄 심리학적으로 이러한 행위는 증오와 연민이 교차하는 모순된 심리 상태나 자신이 저지른 참혹한 광경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심리적 회피(Depersonalization)’를 시사하는 중요한 단서였다. 혈흔이 재구성한 진실…50회의 난자와 처절한 저항과학수사팀이 정밀 감식한 원룸 내부는 ‘우발적 사고’라는 변명이 끼어들 틈이 없는 처절한 전장이었다. 주방을 지나 중문을 넘어서면 나타나는 단칸방 바닥은 이미 피가 흥건하게 고인 상태였고 자매는 같은 방향을 향해 나란히 쓰러져 있었다. 피해자들은 각각 반팔과 민소매 티셔츠에 짧은 바지를 입고 있어 마치 잠을 자다 변을 당한 것처럼 보였다. 검안 결과는 수사팀조차 탄식하게 할 정도로 잔혹했다. 26세인 언니에게서는 24군데, 22세인 동생에게서는 26군데에 달하는 예리한 자창이 발견됐다. 두 사람을 합쳐 50번이 넘는 무차별적인 칼부림이 가해진 것이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두 사람 모두의 팔과 손에 남겨진 무수한 ‘방어흔’이었다. 이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범인의 흉기를 맨손으로 막아내려 했던 자매의 처절한 생존 의지가 담긴 기록이었다. 수사팀은 방 안 벽면 곳곳에 흩뿌려진 비산 혈흔을 분석하며 범행 과정을 재구성했다. 수사팀은 “비산 혈흔의 위치와 형태로 보아 범인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자매를 좁은 방 안에서 쫓아다니며 반복적으로 공격했음이 증명된다”고 밝혔다. 또한 현장 분석 결과 범인은 신발을 신은 채 방 안으로 진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방바닥과 시신 위 이불에 찍힌 동일한 ‘혈흔 족적’은 침입 직후 어떠한 대화나 교감도 없이 곧바로 공격이 시작됐음을 의미했다. 범인의 냉혹함은 도주 준비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현관 바닥에는 피가 묻은 수건 하나가 떨어져 있었는데 이는 범인이 범행 후 자신의 신발 바닥을 닦으며 흔적을 지우려 했던 시도로 분석됐다. 범행 당시의 광기 어린 폭력성과 범행 직후의 냉정하고 치밀한 뒤처리는 이 사건이 단순한 우발적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님을 강력하게 방증했다. 2.1미터의 도약…조작된 강도 시나리오의 붕괴범인은 수사팀을 교란하기 위해 이 사건을 ‘외부 침입에 의한 단순 강도 사건’으로 위장하려 했다. 그는 자매의 지갑과 카메라 박스를 챙겨 들고 빌라 옥상으로 올라가 옆 건물 옥상으로 뛰어넘는 대담함을 보였다. 이는 범인이 사전에 치밀하게 설계한 ‘위장된 도주로’였다. 실제 자매의 빌라 옥상과 옆 건물 슬라브 지붕 사이에는 약 2.1미터의 위험천만한 간극이 존재했다. 현장을 수색하던 과학수사팀은 자매 빌라 옥상과 옆 건물 옥상에서 동일한 ‘먼지 족적’을 발견했다. 또한 범인이 옆 건물로 넘어가기 위해 붙잡았던 난간에서 결정적인 잠재 지문을 채취하는 데 성공했다. 신원 조회 결과 범인은 자매의 집 바로 맞은편 주택에 조부와 함께 거주하던 22세 남성 이모씨로 밝혀졌다. 그는 이미 강도상해 등 전과 9범에 수배 중인 조직폭력배 가담자였다. 범인은 살해 후 카메라 박스와 지갑 등을 들고 2.1미터의 허공을 뛰어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강도 사건으로 보이게끔 현장을 가공하려 했다. 1층 주차장에서는 그가 도주 중 떨어뜨린 것으로 추정되는 피 묻은 카메라 박스와 자매의 집 열쇠가 발견됐다. 범인은 집주인에게 목격되자 당황한 나머지 옥상문으로 내려와 지갑과 칼을 챙겨 도망갔지만 그가 필사적으로 붙잡았던 옥상 난간의 지문은 오히려 그를 막다른 길로 몰아넣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뒤틀린 욕망과 궤변…피의자의 거짓말을 해체하다사건 발생 후 이씨는 전북 익산과 충북 청주 등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도주하며 수사망을 피했다. 경찰은 실시간 위치 추적과 탐문 수사를 이어갔고 결국 이씨의 지인으로부터 “사고를 친 것 같다”는 제보를 받았다. 경찰은 대전의 한 친구 집 원룸으로 이씨를 유인해 긴급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체포 당시 그의 집에서는 범행 당시 입었던 피 묻은 청바지와 운동화가 발견됐다. 경찰에 붙잡힌 피의자는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손끝 하나 안 건드렸다”는 이해할 수 없는 뻔뻔한 주장을 내뱉었다. 이는 50차례나 흉기를 휘두른 살인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성범죄는 저지르지 못했다는 뒤틀린 의미였다. 그는 수사 과정 내내 자신의 범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시종일관 궤변을 늘어놓았다. 피의자는 평소 안면이 있던 언니가 새벽에 직접 문을 열어줘서 들어갔다고 진술했으나 이는 명백한 거짓이었다. 자매와 피의자 사이의 통화 기록은 단 한 건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신발을 신고 진입한 혈흔 족적은 그가 몰래 침입했음을 증명했다. 범행 동기 또한 지극히 반사회적이었다. 그는 최근 채팅으로 알게 된 여성에게 느낀 무시감을 자매에게 투영했다. 언니가 “왜 밤늦게 돌아다니느냐”고 훈계하듯 말한 것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져 살해했다는 주장은 자신의 억눌린 공격성을 폭발시킨 비겁한 변명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수사팀을 경악게 한 것은 피의자의 태도였다. 그는 두 생명을 잔인하게 앗아간 후 수사망을 피해 도주하는 중에도 매일같이 PC방에 들러 게임에 몰두했다. 사람을 죽인 뒤에도 일상의 유흥을 즐겼다는 사실은 그가 가진 극도의 공감 능력 결여와 인명 경시 태도를 여실히 드러냈다. 자매의 안타까운 사연과 법의 심판이 사건이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피해 자매의 성실하고 눈물겨운 삶의 태도에 있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아버지의 사고 이후 26세의 언니는 자신의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문구점에서 일하며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해왔다. 22세의 동생은 그런 언니의 희생에 보답하듯 직전 학기에 전 과목 A학점을 받을 정도로 성실한 간호대생이었다. 사건 전날 밤 10시까지 학교 도서관에서 꿈을 위해 공부하고 귀가했던 동생, 그리고 그런 동생을 지키기 위해 범인의 칼날을 온몸으로 받아냈던 언니. 두 자매의 소박한 꿈은 이웃집에 살던 전과 9범의 비뚤어진 욕망과 분노 앞에 허망하게 무너졌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정상적인 정신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으며 생명에 대한 존중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심리 분석 결과 이씨는 사이코패스적 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법원은 무고한 두 생명을 잔혹하게 앗아간 이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 2026년 현재, 90년대생들의 결혼관… “자산 격차를 목격한 세대의 현실주의”

    2026년 현재, 90년대생들의 결혼관… “자산 격차를 목격한 세대의 현실주의”

    -결혼 시장의 새로운 주역이 된 세대 2026년 새해를 맞아 결혼정보업계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90년대생이 완전히 메인 고객층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현재 27~36세에 이르는 이들은 결혼 적령기의 중심에 있으며, 프리미엄 결혼정보회사들이 가장 주목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결혼관이 바로 위 세대인 80년대생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단순히 “요즘 젊은 세대”라는 표현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들만의 독특한 특징들이 결혼 시장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를 실시간으로 목격한 세대 90년대생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201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이들은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10여년 동안 놀라운 변화들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며 성장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자산 시장의 폭발적 성장이었다. 서울과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은 연봉만으로는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았고 환율은 급등했다. 주식 시장은 등락을 거듭해 코스피 4000 시대라는 기염을 토하고 있으며,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은 완전히 새로운 자산 개념을 제시했다. 이 모든 변화는 한 가지 메시지를 명확히 했다. “월급을 모아서 집을 사고 안정적인 삶을 꾸린다”는 부모 세대의 공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업에 대한 가치 평가도 극적으로 변화했다. 2010년대 초중반만 해도 “공무원이 최고”라는 인식이 강했다. 노동의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2020년대에 접어들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의사가 가장 선호되는 직업으로 꼽힌다. 안정성만으로는 급격히 벌어지는 자산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이 반영된 것이다. 여기에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의 폭발적 발전은 또 다른 불안 요소가 됐다. 어떤 직업이 10년 후에도 존재할지, 어떤 기술이 어떤 일자리를 대체할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90년대생들은 더욱 신중하고 현실적인 판단을 하게 됐다. -SNS가 바꾼 비교의 범위 90년대생들이 경험한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SNS의 완전한 보편화다. 이들에게 인스타그램, 유튜브는 선택이 아닌 일상이다. 이는 결혼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는 “내 주변”이라고 하면 실제로 아는 사람들, 대학 동기나 직장 동료 정도를 의미했다. 하지만 이제 “내 주변”의 범위는 무한히 확장됐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의 결혼식, 신혼집, 일상이 마치 이웃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친구의 친구, 지인의 지인, 같은 회사 다른 부서 사람의 SNS까지 비교 대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는 자연스럽게 기준의 상향으로 이어졌다. “이 정도면 괜찮다”는 기준이 계속해서 올라간다. 연예인 수준의 외모와 라이프스타일을 일상적으로 접하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그것이 보편적 기준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달라진 결혼 조건, 그 이면의 논리 이런 배경 속에서 90년대생들의 결혼 조건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강남 지역 한 결혼정보회사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상담 내용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며 “특히 의사에 대한 선호가 압도적이고 부모의 자산 배경에 대한 질문도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의사 선호 현상은 단순한 직업 선호를 넘어선다. 이는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충족하는 몇 안 되는 직업이며 AI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고, 무엇보다 급격히 벌어지는 자산 격차를 빠르게 극복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 상담 사례에서는 회원이 “공무원도 좋지만 의사만큼 빠르게 자산을 형성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배경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 개인의 스펙만큼이나 부모의 자산 상황, 특히 부동산 보유 여부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다. 이는 현실적인 판단의 결과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서울에 집을 마련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고 부모의 지원 여부가 실질적으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외모 기준 역시 상향됐다. SNS를 통해 수많은 사람의 외모를 일상적으로 접하면서 “이 정도면 괜찮다”는 기준 자체가 올라간 것이다. 과거라면 매력적이라고 여겨졌을 외모도 이제는 “보통”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현실주의와 조급함 사이에서 대치동에서 10여년 동안 노블 결혼정보회사를 운영해온 클렌베리 결혼정보회사의 한 관계자는 “90년대생 고객들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한 현실주의”라며 “사랑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들은 너무 많이 봐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들은 결혼을 매우 현실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집값, 육아비, 사교육비 등을 구체적으로 계산하고 “우리 힘으로 이게 가능할까”를 따져본다. 낭만적 사랑의 이야기보다는 경제적 파트너십에 대한 이야기가 상담에서 더 자주 나온다. 하지만 이런 현실주의는 동시에 조급함과 불안을 동반한다. 시대 변화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지금 놓치면 내년에는 더 어려워질 것 같고 조건을 낮추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불안감이 크다. 반대로 너무 신중하게 고르다가는 기회를 놓칠 것 같은 조급함도 있다. -업계가 마주한 딜레마 결혼정보회사 매니저들은 이런 90년대생 고객들 앞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조건을 조금 낮춰보시는 게 어떨까요”라고 조언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자산 격차는 심각하고 그들의 걱정은 현실적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한 매니저는 “예전 같으면 ‘너무 조건을 따지지 마세요’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말이 무책임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며 “이들이 목격한 현실은 실제로 그만큼 가혹하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서울 아파트 가격은 1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랐고 의사와 일반 직장인의 평생 소득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으며 SNS를 통해 보이는 타인의 삶은 점점 더 화려해지고 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조건만 보지 마세요”라는 조언은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럼에도 찾아야 할 것들 클렌베리 관계자는 “90년대생 고객들의 현실적 판단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조건만으로는 행복한 결혼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경제적 조건이 중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30~40년을 함께 살아갈 수는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함께 자산을 키워갈 수 있는 파트너십”이다. 지금 당장 많은 자산을 가진 사람보다 함께 성장하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 장기적으로는 더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이는 “삶의 방향성”의 문제다. 상대방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함께 적응하고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인지,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온 사람인지가 본질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클렌베리에서는 이런 점에 주목하여 상담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의사와 결혼하고 싶다”는 고객에게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함께 탐구해본다. 진정으로 그 직업을 존경해서인지, 경제적 안정 때문인지, SNS에서 봐서인지, 주변의 영향인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고객 스스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현실을 인정하되, 본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2026년 현재 90년대생들의 높은 결혼 조건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이들은 실제로 자산 폭등을 목격했고 직업 가치의 급변을 경험했으며 SNS를 통해 끝없는 비교를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형성된 그들의 기준을 단순히 “눈이 높다”고 평가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결혼정보업계는 이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과 결혼하면 행복할까요” “10년 후, 20년 후에도 그 조건들이 여전히 중요할까요” “함께 성장하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클렌베리가 추구하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본질을 놓치지 않는 균형이다. 경제적 조건의 중요성을 인정하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정답인 삶은 없지만 얼마나 자신만의 인생의 답을 찾아왔는지, 그리고 함께 답을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90년대생들이 마주한 현실은 분명 이전 세대보다 가혹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조건을 넘어선 진정한 파트너십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2026년 새해 결혼 시장은 이 세대와 함께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다.
  • 낭비 없이 빼곡히 채운 사랑과 존경… 절실함으로 써내려간 ‘김대중 옥중서신’[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낭비 없이 빼곡히 채운 사랑과 존경… 절실함으로 써내려간 ‘김대중 옥중서신’[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희호 여사에 보낸 엽서편지 4장큰 시련 앞에 아내 향한 감사 인사한 자 한 자 깨알같은 글씨에 감동김우진·박화성·차범석·김현을 기리며바다 굽어보는 언덕 위 ‘목포문학관’목포가 사랑한 문학가들과의 만남동료·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 전시‘목포는 항구다.’ 이 말에는 ‘개항장 목포’의 근현대와 격동이 담겨 있습니다. 전남 목포시는 그 세월을 여태껏 몸에 지닌 채 살아낸 도시입니다. 시간을 덧대어 쌓은 근대의 골목에서 만난 모든 것이 편지처럼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에게 빼곡히 눌러쓴 옥중서신이, 문학평론가 김현을 떠나보내고 쓴 소설가 이청준의 편지를 읽다가, 그들의 말과 글이 자꾸만 눈에 밟혀 당신에게 전하는 새해 편지에 슬그머니 옮겨 적고 말았습니다. ●빼곡하게 적어나간 마음 목포에 오기 전, 꼭 두 눈으로 보고 싶던 편지가 있었습니다. 우연히 본 사진 한 장 때문이었는데요. 편지의 실물을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내용을 모두 읽기도 전에 발신인의 진심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곧장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을 향합니다. 목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학창 시절을 보내고 정치 생활을 시작한 곳입니다. 그의 부모는 목포진 인근에서 영신여관을 운영했고요. 지금은 소년 김대중 공부방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공부방 창가로는 목포 앞바다와 삼학도가 보입니다. 소년 김대중은 이 풍경을 보며 꿈을 키웠겠습니다. 그러니 삼학도에 목포어린이바다과학관과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 위치한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삼학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니라서 차로 오갈 수 있습니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1층은 카페테리아가 있고 벽면에는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전시실은 2층에 해당합니다. 2000년 노벨평화상 시상이 이뤄진 노르웨이 오슬로 현장을 재현한 공간에서 출발해 노벨평화상과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를 따라갑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편지는 ‘동아시아 민주화를 위해 걸어온 길’이라는 제목이 붙은 제3전시실에 있습니다. 우선 옥중 생활을 재현한 공간을 들여다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76년 3·1민주구국선언과 1980년 내란음모사건으로 6년 넘게 감옥에서 보냈지요. ‘인동초’라는 별명은 그때 생겨났고요. 창가에는 그가 옥중에서 읽은 ‘서양철학사’, ‘역사의 연구’, ‘이방인’ 등의 제목이 적혀 있는데요. 수감 중에 무려 60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제가 두 눈으로 보고 싶었던 네 장의 엽서 편지는 그 맞은편에 있네요. 아내 이희호 여사에게 쓴 편지에는 읽을 책들을 청하는 내용이 보이고요.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와~’하는 감탄이 일어요. 숨을 턱 멎게 하는 빼곡한 글씨가 단박에 시선을 끌거든요. 훨씬 큰 지면일 줄 같았는데 고작 A4 한 장 크기에 불과했습니다. 덕분에 실체가 주는 감동은 훨씬 컸고요. ●편지지 빛 바래갈수록… 빛 발하는 감정 김대중 대통령의 편지는 옥중에서 써 내려간 편지입니다. 긴 시간 이어진 편지는 두 권의 책으로 출간할 만큼 방대한 양입니다. 옥중서신은 크게 세 시기로 나뉩니다. 1976년 3·1민주구국 선언으로 복역하던 진주교도소, 1977년 12월 서울대병원 특별감옥, 그리고 1980년 내란음모사건으로 청주교도소에서 갇혔던 시기입니다. 서울대병원 특별감옥에서는 펜이 없어 못(철사)으로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소장한, 잉크 없는 편지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은 진주교도소와 청주교도소 시기에 쓴 편지를 전시합니다. 펜으로 쓴 편지 역시 못으로 쓴 편지 못지않습니다. 무엇보다 글씨의 모양이 깨알처럼 작습니다. ‘깨알 같다’는 소소하게 재미있는 사건을 비유적으로 쓰는 단어일 텐데요. 이 편지는 글자 그대로 깨알 같습니다. 낭비 없이 가득 채워 촘촘하지요. 어떤 심정이기에, 어떠한 절박함이기에 이리도 절실한 글들을 담아 건넸을까요. 편지의 글씨는 쉬이 읽을 수 없을 만큼 작았습니다만, 다행히 원본 옆에는 확대 스크린이 있어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존경하며 사랑하는 당신에게.” ‘사랑하는’ 앞에 ‘존경’을 표하는 사이라니요. 받는 이를 향한 편지의 첫 호칭은 이미 많은 것을 말합니다. ‘존경하며 사랑하는 당신에게’로 시작하는 이 편지는 1980년 11월 21일에 썼다고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로 지목돼 사형을 선고받은 두 달 후였지요. 편지 안에는 두 사람의 오롯한 관계 속에서, 편지지의 빛이 바래갈수록 외려 빛을 발하는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빈틈없는 편지는 진심의 다름 아닐 테고요. 김대중 대통령은 “일생을 두고 겪은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큰 시련 앞에서 아내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그리고 “믿음이란 느낌이나 지식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의 결단으로 이뤄지는 것“이라 씁니다. 편지 속 장래, 행복, 희망 같은 단어가 왜 그리도 낯선지요. 아마도 죽음을 앞둔 이의 언어처럼 보이지 않아 그랬을 겁니다. 전시하는 편지는 아니지만 ‘옥중서신2’(시대의 창)에는 같은 날 밤 이희호 여사가 쓴 답장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존경하는 당신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는 “내일에 대한 희망 꼭 가지세요”라고 적혀 있습니다. 옥중에서도 흔들림 없이 곧고 단단한 사랑이 못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편지 전시를 보고는 어록 푯말의 통로를 지납니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다’, ‘용기는 최고의 미덕이다’ 같은 용기에 관한 말들이 유독 많습니다. 인동초라 불린 그 또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겠지요. 씩씩하고 굳센 기운이 몹시도 필요한 날이 있었을 겁니다. 그 가운데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라는 말이 마음을 움직입니다. 깨알처럼 작은 믿음일지라도 모이고 쌓이면 신념이 될 수 있겠지요. 한 해의 초입에서 그 말들을 가슴에 새겨 품어봅니다. ●문학보다 더 문학적인 편지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에서 삼학도 서쪽 해안을 따라가다 보면 목포문학관이 나옵니다. 목포문화예술회관 맞은편 입안산 자락입니다. 바다를 굽어보는 언덕 위 문학관은 그 자체로 문학입니다. 이곳에서 목포가 사랑한 4인의 문학가를 만납니다. ‘난파’ ‘산돼지’ 등을 쓰고 성악가 윤심덕과 열애한 극작가 김우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장편 소설 ‘백화’를 쓴 소설가 박화성, 드라마 ‘전원일기’의 얼개를 만든 사실주의 극작가 차범석,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문학평론가 김현이 그 주인공입니다. 목포문학관은 이들 네 문인의 주제 전시관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 희곡 최초로 국가등록문화유산에 등재된 김우진의 친필 원고와 차범석이 쓴 ‘전원일기’ 첫 집필본, 후배 소설가 박완서가 선배 소설가 박화성에게 보낸 ‘작은 것이나마 선생님이 아껴주실만한 것’으로 시작하는 짧은 편지를 읽습니다. 그리고 김현관에서 꽤 오래 머뭅니다. 김현은 진도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 목포로 이사 왔다고 해요. 1977년에는 김병익 등과 함께 계간 문예지 ‘문학과 지성’을 창간했고요. 김현관은 그의 문학전집을 비롯한 노트와 필기 자료, 작가들이 건넨 선물 등을 전시합니다. 저는 김현이 김병익, 이청준 등 동료 작가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꼼꼼하게 읽어 나갑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학 시절이던 1975년 2월에는 이청준에게 이런 편지를 씁니다. “대답없는 편지인 줄” 알고 있지만 “너에게 밖에 편지할 놈이 없다”는 푸념으로 써나간 편지는 막역한 사이를 짐작하게 합니다. 자신이 읽은 책 가운데 감명 깊었던 대목을 옮겨 적는 게 전부이지만, 편지의 마지막에는 “불행의 사진을 그리지 말거라”라고 당부합니다. 김현이 편지를 쓴 이유는 이청준이 “고통하고 있는” 소설가이기 때문입니다. 아파할 줄 아는 이가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이청준의 ‘알리바이 문학’에도 나오지요. 이청준은 김현이 세상을 떠난 2년 후 그의 아들 김상구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늘 생각하고 있다”로 시작하는 편지는 김현의 글을 읽는 것이 이청준에게는 “절실한 추모”라 전합니다. 둘은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자극이 되며 격려가 되는 친구였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편지는 단순한 편지로 읽히지 않습니다. 내게 가까운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 그들의 안부를 묻고 싶어지는 날입니다. ●새날의 아름다운 것들에게 목포의 옛 시간이 남은 근대역사문화공간에서는 포도책방에 들릅니다. 일제강점기 미곡창고로 지었고 한동안 지역독립영화관이 있던 곳이라지요. 양쪽 벽면과 책방 가운데 커다란 원형 책장이 눈길을 끕니다. 특이한 건 책방의 ‘주인’입니다. 무려 218명이나 됩니다. 200명이 넘는 책방지기가 각각 책장의 한두 칸을 차지하고 ‘엄마별의 뒤죽박죽 책방’ ‘행복@로컬’ 등의 문패를 내걸었습니다. 그러므로 책장의 칸칸은 작은 서점이 됩니다. 알알이 맺힌 포도송이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포도책방이겠습니다. 새 책도 있고 헌책도 있고 소품도 있습니다. 책방지기 가운데는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작가도 있고 평범한 우리네 이웃도 있지요. 홍보도 기발합니다. 펜션 주인장인 어느 책방지기는 펜션 할인권을 내걸기도 했네요. 책방을 나와서는 몬도마노에 머물며 새해 첫 여행의 시간을 갈무리합니다. 몬도마노는 이탈리아어로 ‘한없는 세계’를 뜻하는 숙소입니다. 연극인인 호스트는 작은 집과 방과 뜰에 무한히 확장하는 세계의 염원을 담았지요. 일제강점기 창고를 리모델링한 내부는 층고가 높은 스튜디오 스타일의 복층입니다. 지난해 연말에는 변방연극제가 열리기도 했다 합니다. 숙소였다가 연극의 무대였다 다시 숙소로 돌아온 셈입니다. 삶과 연극이 따로이지 않다는 전갈이겠습니다. 자그마한 뒤뜰 또한 매력적입니다. 저는 자그마한 창 너머 겨울의 뜰을 품은 방에서, 몇 년 동안 쌓인 글들을 읽습니다. 먼저 머물다 간 이들의 글과 주인장이 답장하듯 써놓은 글은 한 권의 편지 모음이라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저는 그들처럼 앉은뱅이책상에서 당신에게 건네는 새해 첫 편지를 씁니다. 목포는 항구라는 뻔한 말 대신 목포는 희망이라고 적습니다. 그리고 목포문학관에서 읽은 김현의 문장을 옮겨 적습니다. “정말로 바다로 가는 길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바다로 가는 노력을 나는 그쳐본 적이 없다.” 아름다울 수 있는 것들을 희망하다 보면 아름다운 것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새해는 우리가 그렇게 살아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 오전 9시 ~ 오후 6시(입장 마감 오후 5시 30분), 월요일 휴관, http://www.kdjnpmemorial.or.kr ● 목포문학관 - 오전 9시 ~ 오후 6시, 월요일 휴관, https://biz.mokpo.go.kr/munhak
  • 행여 전해지지 못할까… 선비들의 진심 꾹꾹 눌러 담은 낭만 편지[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행여 전해지지 못할까… 선비들의 진심 꾹꾹 눌러 담은 낭만 편지[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느릿하게 걷기 좋은 ‘소나무숲’500년 고목 등 870여 그루 장관서원 정문 죽계천 흐르는 ‘경렴정’퇴계 이황·주세붕 풍류 즐기기도선비 하루 중요 일과였던 편지 쓰기꼬리에 꼬리 물고 안부 인사 이어져사람 걸음과 같은 속도로 전한 마음연애편지 같은 서정적 표현에 눈길소수서원(紹修書院) 소나무 숲을 거닐고 있습니다. 경북 영주시에 있는 소수서원은 소수박물관에서 열리는 ‘안부-간찰에 얹어 보내는 사계절’이라는 전시를 보기 위해 찾았습니다. 간찰은 조선시대 편지를 부르던 말입니다. 옛 선비들은 하루에 따로 시간을 정해둘 만큼 편지 쓰기에 진심이었다지요. 지난봄에 시작한 전시는 어느덧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에 다다랐습니다. 수백 년 전 편지가 저를 향한 것은 아닐 테지만, 그들이 주고받은 안부가 한 해 끝의 저에게 온기가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12월의 소나무숲에서 홀린 듯 길에서 벗어나 숲 안쪽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선비의 팔자걸음으로 느릿하게 걷고 있자니 점차 사념이 사라집니다. 코끝은 시린데 정신은 맑습니다. 괜스럽던 조바심을 다잡습니다. 소수서원의 고즈넉한 소나무 숲을 좋아합니다. 옛사람의 ‘안부’ 편지를 핑계 삼았지만 겨울 숲을 오고 싶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서원을 건립하면서 조성한 송림은 500년 가까이 된 고목을 비롯해 870여 그루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 수치를 일일이 재고 헤아릴 수 없지만 푸른 숲이 주는 평안은 12월이라 한층 값집니다. 소나무와 소나무 사이를 거닐다 서원 서쪽 담과 접한 영귀봉에 오릅니다. 거북이가 알을 품은 모양의 낮은 언덕은 그저 숲 가운데 조금 높은 정도지요. 그런데도 담장 너머 서원의 전경이 보입니다. 영귀봉에는 서원 이전에 있던 옛 숙수사의 별대 초석이 소혼대를 가리킵니다. 소혼(消魂)은 글자 그대로 풀면 ‘넋이 나간다’는 의미겠습니다. 옛 중국의 문인 강엄의 ‘별부’에서 인용했는데 이별의 깊은 슬픔을 뜻하는 구절입니다. 소혼대는 유생들의 쉼터로, 서원을 오가던 이들이 이별의 정을 나누기도 한 장소지요. 제게는 한해의 끝과 다음 해의 시작 사이에 존재하는 틈새 인양합니다. 일 년이 쏜살같이 지났습니다. 1월에 띄워 보낸 바람들이 어디쯤 다다랐을까요. 또 얼마만큼 이뤄졌을까, 한 해를 잠시 되돌아봅니다. 서원 정문 앞에서는 경렴정에서 걸음이 멎습니다. 동쪽으로는 죽계천이 흐르고 물 건너 취한대가 매혹하네요. 소수서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가운데 맏형에 해당하지요. 풍기군수를 지낸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을 세웠고, 퇴계 이황이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소수서원이라 불립니다. 두 사람 모두 경렴정에서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권돈인 또한 순흥에 귀양 와서 취한대와 죽계천을 보며 세한도를 그렸습니다. 세한도는 절친한 벗이었던 김정희의 그림이 더 잘 알려져 있지요. 그의 세한도에는 권돈인의 발문이 있고요. 두 사람의 유배 시기와 장소는 달라도 오가는 편지에는 세한의 시절을 지나는 동병상련이 있었겠습니다. ●오전 11시는 편지의 시간 소수서원은 강학당과 문성공묘가 중심을 이룹니다. 강학당 뒤편으로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 안향과 서원을 세운 주세붕 등의 영정이 있는 영정각, 유생들의 기숙사 학구재와 지락재 등이 있지요. 제사를 지내는 문성공묘는 강당에 해당하는 강학당 서쪽입니다. 서원을 좀 다녀본 이들은 그 구조에 의아해합니다. 서원은 앞쪽에 배움 공간을, 뒤쪽에 사당을 두고 중심축으로 삼고 좌우로 건물을 두는 게 기본입니다. 소수서원의 배치는 지형에 기대 자유롭습니다. 서원의 틀이 잡히기 전에 들어선 ‘최초’의 또 다른 증거겠습니다. 오늘은 경내를 가로지르는 대신 경렴정 앞에서 서원둘레길을 택합니다. 죽계천 징검다리를 건너고 취한대와 광풍대를 지나는 구간은 15분 남짓합니다. 계절과 무관하게 걷기 좋은 길입니다. 박물관에 가까워지자 ‘안부’의 전시를 알리는 가로등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네요. 소수박물관은 크게 본관과 별관으로 나뉩니다. ‘안부-간찰에 얹어 보내는 사계절’ 전시(2026년 2월 27까지)는 별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 전시물부터 호기심이 입니다. 조선 후기 선비 윤최식이 ‘일용지결’에 기록한 선비의 시간표입니다. 일과 가운데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사이에 해야 할 일이 단연 눈길을 끕니다. ‘지인과 친구에게 편지쓰기’입니다. 옛 선비는 편지를 하루의 중요한 일로 여겼던 듯합니다. 그러고 보면 선비의 하루에는 이렇다 할 오락이 없습니다. 부모님께 문안 인사를 드린 후에는 독서나 글을 쓰고 손님을 맞거나 집안일을 돌보는 게 전부입니다. 인터넷도, 넷플릭스나 유튜브도 없던 시절, 어쩌면 편지는 삶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려는 꼿꼿한 선비의 부드러운 몸짓 같기도 합니다. 편지 쓰는 방법을 소개한 서식집이 있었다는 것 역시 흥미롭네요. 유교 중심 사회였으니 상대방이나 목적에 따라 편지의 격식이 중요했겠지요. ‘구소수간’은 중국 북송 시대, 우리에겐 소동파로 유명한 소식이 구양수와 나눈 편지를 모은 책입니다. 세종대왕이 왕자 시절에 수십 번 읽은 책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그리고 조선 철종 때 나온 ‘간독정요’는 그 사례를 계절별, 열두 달로 나눠 적절한 표현을 수록했고요. 영주 지역의 편지 모음집으로는 괴헌고택 소장 간첩을 전시합니다. 괴헌고택의 선조 김영이 주고받은 201통의 편지를 12권의 책으로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계절별로 묶은 책은 춘하추동이 아닌 주역의 원형이정(元亨利貞)으로 구분한 게 이채롭습니다. ●멀리 사모하는 마음 이길 수 없어 옛 선비의 편지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도 합니다. 김종덕은 이상정에게 천연두로 인해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을 전합니다. 몇 해 전 코로나19 팬데믹을 떠올리게 하는 편지입니다. 다시 이상정은 최홍원에게, 최홍원은 이상정의 아우 이광정에게 안부 편지를 씁니다. 안부는 상대가 편안히 잘 지내는지 혹은 그렇지 아니한지를 묻는 일입니다. 더불어 상대가 무탈하기를, 별일 없이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평안을 기원하는 축복과 축원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편지에 선물을 더해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광정은 부채 선물을 같이 보내며 ‘제가 잊고 있지 않다는 뜻을 당신께서는 생각해주시겠지요’라고 썼습니다. 이황은 국화 화분을 선물 받고 ‘말할 수 없이 감격스럽다’ 답장합니다. 저는 옛 선비의 편지가 너무도 서정적이어서 놀랍니다. 요즘으로 치면 연애편지에 나올 법한 고운 문장과 낭만적인 표현들은, 말이 아닌 글이어서 행여 전해지지 못할까 싶은 감정을 꼭꼭 눌러 써나갔다는 걸 알게 합니다. 몇 번이고 곱씹어 내뱉는 조심스러운 고백처럼 말이지요. 당대의 대학자 정구는 조목에게 보낸 봄날의 편지에서 ‘멀리서 사모하는 마음 이길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나학천은 어느 해 여름 편지에 ‘우러러 바라보니 그리운 마음 여러분께 치달아 나도 모르게 근심이 쌓인다’라고 적었고요. 문자나 메일이 실시간으로 세상을 연결하는 요즘과 비교하면, 서로를 향한 마음은 사람의 걸음과 같은 속도로 옮겨갔겠습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이 걸리기도 했겠지요. 그래서 옛 편지는 가로와 세로를 구분 짓지 않고 남은 칸을 빼곡하게 채워 써나갔을까요. 글자 하나 허투루 적지 못하였겠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 희로애락이 더디게 가닿았겠습니다. 선비는 명예나 재물 따위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라지요. 그들의 편지를 빌려 유유한 삶을 배웁니다. 그 가운데 당신에게 전하고픈 편지글 하나를 옮겨 적으며, 2025년의 마지막 안부를 전합니다. ‘연말이 멀지 않으니 당신 집의 경사가 시냇물이 바야흐로 이르는 것처럼 무성하기를 바랍니다.’ ●선비세상에서 백남준을 만나다 소수서원 곁에는 선비촌이 있고 또 선비촌은 ‘선비세상’과 이웃합니다. 선비세상은 한옥, 한복, 한식, 한지, 한글, 한음악의 6개 주제를 체험할 수 있는 테마파크입니다. 선비다례원에서 다도를 즐기거나 한지뜨기 공방에서 한지 만드는 체험 등을 할 수 있습니다. 한지뜨기 공방이 있는 한지촌은 고비가 숨은 볼거리입니다. 고비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편지 등을 꽂아두던 일종의 편지함이자 서류함입니다. 방이나 마루의 벽에 걸어 사용했습니다. 대나무, 오동나무 등을 조각해 만드는데 다채로운 문양의 고비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선비세상 기획 전시를 놓칠 수 없겠습니다. 얼마 전 시작한 ‘백남준의 선비정신–붓에서 전자까지’(2026년 2월 28일까지)는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 작가의 원화, 드로잉, 판화 연작 등 약 40점을 전시합니다. 백남준의 작업은 미디어아트라는 형식을 취하지만 그 바탕에는 한국적인 선비의 사유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를 대변하듯 전시실의 첫 작품은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백남준의 사진입니다. 스스로 작품의 뿌리를 선언하는 듯합니다. 맞은편 ‘TV풍경’은 세 개의 직사각형을 붓으로 그린 작품이라 특별합니다. 직사각형은 텔레비전 수상기를 상징하지요. 흰 면에 검은 수묵만으로 색깔 없이 생동하는 그림입니다. 선비세상 입장객은 무료 관람이 가능해 백남준의 작품 감상만으로 입장료가 아깝지 않습니다. ●성혈사 꽃살문에 마음을 기대 서서 소수서원과 선비세상을 돌아보고는 정해진 코스처럼 꼭 다녀와야 하는 곳이 있습니다. 영주에 있는 또 하나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부석사입니다. 굳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최순우 지음, 학고재)를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가 찬양하는 우리나라 목조 건축의 백미입니다. 범종각 계단을 오르며 사선으로 방향을 튼 안양루와 무량수전을 바라보는 순간은 가히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무량수전 앞에 있는 석등을 등지고 해 질 녘 소백산을 바라보는 것 또한 누군가의 버킷리스트일 겁니다. 부석사 말고도 소수서원 인근에는 꼭 들러야 하는 또 하나의 사찰이 있습니다. 성혈사는 부석사나 소수서원의 명성에 가린 영주의 숨은 보석입니다. 정면 3칸, 옆면 1칸의 단층 맞배지붕 건물은 얼핏 보기에는 큰 특징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나한전의 꽃살문이 가까워질수록 그 진가가 빛을 발합니다. 세 짝의 꽃살문은 격자로 무심하게 선을 그은 문살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널판을 통째로 파고 깎아 새긴 연꽃과 동자승, 물고기와 용, 두루미, 모란 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입니다. 유서 깊어 문화재가 많은 도시 영주가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더 큰 대접을 받지 않았을까요. 성혈사는 부석사와 마찬가지로 의상대사가 세웠다 합니다. 나한전은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법당이고요. 1553년에 처음 지었고 1634에 다시 지었다 하지요. 다만 꽃살문은 언제 누가 지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때로는 알 수 없어 더 신비로운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아름다움은 시간이 쌓일수록 더 빛나곤 합니다. 햇살이 뉘엿해질 때까지 꽃살문을 오래도록 바라보다 돌아섭니다. ■ 여행수첩 ● 소수서원 -오전 9시~오후 5시(11~2월), 오전 9시~오후 6시(3~5, 9~10월) 오전 9시~오후 7시(6~8월), 연중무휴
  • “중매女와 4시간 만에 혼인신고…한달만에 전재산 털렸습니다” 中남성의 절규

    “중매女와 4시간 만에 혼인신고…한달만에 전재산 털렸습니다” 中남성의 절규

    중국 후난성의 한 40대 남성이 중매로 만난 여성과 불과 4시간 만에 혼인신고를 한 뒤, 겨우 3주 만에 전 재산을 모두 탕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이후 여성의 가족과 지역 주민의 폭로로 여성의 사기 결혼 정황이 드러났으나, 남성이 피해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홀로 딸 키우는 성실한 이혼녀”소개팅 자리엔 중매인 9명 등장26일 중국 최대 뉴스 포털사이트 163.com에 따르면, 후난성 헝양 출신의 황중청(40)씨는 지난 8월 21일 중매인을 통해 한 여성을 소개받았다. 갑자기 그를 찾아온 중매인은 “이혼 후 미용 일을 하며 두 딸을 키우는 예쁘고 부지런하며 성실한 여성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병든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일찍 학교를 그만두고 광둥성으로 떠나 공사장에서 일해온 황씨는 성격이 순박하고 말수도 적어 연애 경험이 없었다. 솔깃해진 황씨는 “누가 됐든, 함께 가정을 꾸릴 사람만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곧장 휴가를 낸 뒤, 평생 모은 전 재산이 든 은행 카드 한 장을 주머니에 넣어 고향으로 달려갔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황씨는 깜짝 놀랐다. 여성이 무려 9명의 중매인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중개인 중 한 명은 “내가 아는 사람은 한 명뿐이고, 나머지 8명은 그녀가 데려온 사람”이라며 조심하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만난 지 4시간 만에 중매녀와 혼인신고하지만 여성은 놀란 황씨를 달래며 “우리 나이도 적지 않으니 오늘 바로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주변 중매인들 역시 “이런 여자 드물다”, “당신 나이 마흔인데 이번 아니면 기회 없다”라며 일제히 황씨를 설득했다. 혼이 나간 황씨는 얼떨결에 민정국 혼인등기처까지 끌려갔고, 순식간에 사진촬영부터 서명까지 모든 혼인신고 절차를 마쳤다. 만난 지 4시간 만에 ‘기혼자’가 된 황씨의 손에는 빨간색 혼인증명서가 들려 있었다. 첫날밤 거부… 다음 날부터 “돈 벌어와”혼인신고 후 황씨는 근처 숙소에서 첫날 밤을 보내게 됐다. 하지만 여성은 “건들지 말라. 준비가 안 됐다”라며 황씨를 밀어냈다. 황씨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수줍어서 그런가 보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날이 아내를 가장 가까이서 본 마지막 순간이 됐다. 결혼 다음 날, 아내는 바로 광둥성으로 돌아가 돈을 벌어오라고 황씨를 재촉했다. “집에 돈 들어 갈 일이 많다. 얼른 가서 돈을 벌어야 우리도 제대로 살 수 있다”라는 게 여성의 주장이었다. 이제 막 결혼한 아내와 떨어지기 싫었지만, 황씨는 그래도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결혼 사흘째 되던 날 다시 광둥성으로 돌아갔다. 일터로 돌아간 황씨는 하루 종일 아내 생각만 했다. 시간이 나면 위챗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아내는 대부분 답장하지 않았고, 전화도 귀찮다는 투로 받았다. 아내의 말투가 부드러운 순간은 돈을 요구할 때뿐이었다. 연락은 무시, 돈 요구만…전 재산 거덜나 아내는 처음에는 “계절이 바뀌어서 옷을 사야 한다”라며 5000위안(약 100만원)을 요구하더니 며칠 뒤에는 “집세가 밀렸다”며 1만 위안(약 200만원)을 부쳐 달라고 했다. 나중에는 “딸이 피아노를 배워야 한다”, “어머니가 아프셔서 약값이 필요하다” 등의 명목으로 점점 더 많은 돈을 요구했다. 중국 밸런타이데이로 불리는 칠석날(음력 7월 7일)에도 선물 대신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위챗 대화 기록에 따르면 황씨는 중국에서 ‘영원’을 상징하는 숫자인 1314위안(약 27만원)을 보냈고, 여성은 “고마워, 여보”라고 답장했다. 지난 9월 6일에는 딸에게 컴퓨터를 사줘야 한다는 명목으로 2300위안(약 48만원)을 송금받았다. 급기야 아내는 황씨에게 ‘투자’ 제안까지 했다. 그는 “아는 전당포 친구가 있는데, 10만 위안(약 2000만원)을 맡기면 한 달에 5000위안을 이자로 준다. 절대 손해 볼 일 없다”고 설명했다. 아내는 “돈이 조금 더 모이면 고향에 집을 사서 온 가족이 함께 살자”고 설득했고, 황씨는 요구대로 10만 위안을 송금하기에 이르렀다. 투자 제안 후 잠적…“뭔가 잘못됐다”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내는 더 큰 돈을 요구했고, 월급으로도 그 요구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황씨는 24년간 일하며 모아온 저축통장을 깼다. 이때까지만 해도 황씨는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저 떨어져 사는 부인에게 생활비를 보내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24만 위안(약 5000만원)에 달하던 그의 통장 잔액이 10만, 5만, 1만 위안으로 빠르게 줄어들다가 마침내 바닥을 드러냈을 때, 그의 마음 한편에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때가 결혼한 지 3주가 겨우 지난 9월 8일이었다. 그리고 아내가 영상통화도 거부하고 메시지도 읽지 않는 등 연락이 두절되자, 황씨의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되레 ‘의붓딸 성추행’ 모함당해이상함을 느낀 황씨는 곧장 고향으로 향했다. 그러나 아내는 그를 반갑게 맞기는커녕, 이웃들 앞에서 ‘딸을 건드리려 했다’고 모함하며 소리쳤다. 황씨는 “당신 딸 손끝 하나 건드린 적 없다. 어떻게 이렇게 나를 모함하느냐. 날 속인 거냐. 24만 위안은 내가 평생 모은 전 재산”이라고 절규했다. 치를 떠는 황씨를 본 아내는 잠시 멈칫하더니 “속였으면 뭐 어떤가. 그 돈은 당신이 자진해서 준 것”이라며 비웃었다. 황씨가 돈을 돌려달라고 애원했으나, 아내는 오히려 “내가 속인 것 맞다. 억울하면 고소하라”며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리곤 딸과 함께 짐을 싸서 고향을 떠났다. 황씨가 그 뒤를 쫓았을 땐 이미 모든 연락 수단을 끊고 잠적한 뒤였다. 억울했던 황씨는 처가를 찾아갔으나, 모두 그를 피하며 아내의 행방을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도박 빚 수십만… 중매인은 전부 ‘가짜’” 그 후로 사흘이 지나, 양심에 가책을 느낀 아내의 친언니가 황씨에게 실상을 털어놓았다. 언니는 자신의 동생이 도박 중독으로 이미 수십만 위안의 빚이 있었고,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았으며, 이번 결혼은 그 빚을 갚기 위한 사기였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소개팅에 나온 9명의 중매인 모두 동생이 고용한 연기자였다고 언니는 밝혔다. 또한 동생이 이미 과거에도 다른 지역 남성을 같은 수법으로 속인 전력이 있었다고 전했다. 황씨는 “24년 동안 피땀 흘려 모은 돈이 4시간의 충동 때문에 사라졌다”라며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경찰 신고·법적 대응 중… “돈 돌려받기 어려워”황씨는 지난 20일 이 사건을 영상으로 촬영해 온라인에 올리며 도움을 호소했다. 현재 그는 경찰에 신고하고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변호사는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설령 승소해도 상대가 재산을 숨기거나 없다면 회수는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황씨 사건과 관련해 현지 누리꾼들은 “조직적인 혼인 사기다”, “9명의 중매인을 전부 조사해야 한다”, “외로운 중년 남성 노린 악질 범죄”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현지 전문가들은 “경제적 취약층을 노리는 혼인 사기가 늘고 있다”며 “결혼을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주변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 시골의 평온을 깨는 세 남녀의 불꽃같은 로맨스, 혹은 서스펜스

    시골의 평온을 깨는 세 남녀의 불꽃같은 로맨스, 혹은 서스펜스

    아마존 등 美 휩쓴 베스트셀러 소설복잡하게 얽힌 과거와 현재의 사건아들·남편의 죽음 뒤 가려진 진실은 영국의 평온한 시골 목장에서 난데없는 총격 사건이 벌어진다. 지미란 남자가 심장을 관통당해 숨지고, 형 프랭크는 자기 과실이었다며 범인을 자처하고 나선다. 현장에 있던 프랭크의 아내 베스, 10살짜리 이웃집 남자아이 레오, 그의 아빠 가브리엘 등은 모두 이에 묵시적으로 동의한다. 소설 ‘브로큰 컨트리’의 시작이다. 물론 진실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누구나 예감하겠지만. 책은 기자 출신 영국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세 남녀의 삼각관계와 비극적인 사망 사건이 맞물려 펼쳐진다. 소설은 ‘나’(베스)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가브리엘과 처음 만난 1955년, 재회한 1968년, 프랭크의 재판이 진행되는 1969년 등 세 시간대의 이야기가 교차해 펼쳐진다. 베스와 가브리엘은 이 마을에서 함께 자란 친구다. 가브리엘은 상류층, 베스는 평민 가정 출신이다. 사춘기를 함께 보내는 동안 둘은 첫 경험을 나누며 걷잡을 수 없이 가까워진다. 급기야 가브리엘이 공부하던 옥스퍼드대 기숙사에서 밤을 보낸 일로 베스가 아이를 갖게 된다. 하지만 이들을 떼어 놓으려는 가브리엘 모친의 계략에 말려 둘은 헤어지고 만다. 그런 베스를 안아 준 이는 어릴 때부터 남몰래 그를 좋아하던 프랭크였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베스를 프랭크는 순수한 사랑으로 받아들인다. 우여곡절 끝에 낳은 아이는 그러나 10살 무렵 프랭크의 실수로 죽게 된다. 얼마 뒤 가브리엘이 베스의 죽은 아들과 비슷한 나이의 레오를 데리고 마을에 나타난다. 문제는 둘에게 “한 번만 그어도 불이 붙는 성냥처럼, 밑바탕에서 끓어오르는 욕망이 있었다”는 거다. 그리고 그 와중에 벌어진 지미의 사망 사건. 법정에서 프랭크는 과실치사를 주장했지만, 판사는 그에게 8년 형을 내린다. 베스의 배에서는 이미 또 다른 생명이 자라는 상황. 총을 쏜 이는 누구고, 이들 사이에 얽힌 인연은 8년 뒤 어떻게 봉합될까. 평온하고 아름다운 전원을 배경으로 서스펜스와 로맨스, 과거와 현재 등이 복잡하게 얽혀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점에선 미국의 미스터리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이미지가, 매우 다른 성격의 남자들과 한 여자의 복잡한 사랑 이야기란 얼개에선 영국 토머스 하디의 소설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의 플롯이 살짝 겹치는 소설이다. 미국 아마존, 뉴욕타임스 등에서 소설 베스트셀러 1위로 꼽고 유수한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영화화를 결정했다지만 사실 ‘한국 마초’의 감성으로는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 가을 양구엔 시간을 넉넉히 챙겨오시게… ‘빨래터’ ‘아이 업은 소녀’만이 아닐 테니[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가을 양구엔 시간을 넉넉히 챙겨오시게… ‘빨래터’ ‘아이 업은 소녀’만이 아닐 테니[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한 계절이 지나갑니다. 어젯밤에는 이불을 가슴께까지 끌어올리고 잤습니다. 여름과 가을 사이 고갯마루는 이편과 저편이 달라서, 스산한 바람은 허전한 마음 한구석을 파고듭니다. 그런 날에는 좋은 어른들을 만나러 갑니다. 오늘은 강원 양구 박수근미술관에서 ‘과일 파는 세 여인’을 한참 보았지요. 감동은 기교보다 시선에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박수근은 그런 작가이자 어른이었습니다. 한생을 묵묵히 버텨 낸 ‘나목’은 그 존재만으로 위안이 됩니다. #열렬한 우리들의 연애편지 다행히 볕 좋은 날입니다. 양구는 이름처럼 맑고 따뜻합니다. 사실 그 지명은 금강산 가는 길에 버드나무가 많아서 붙었다는 걸 알고 계실까요? 그래서 버드나무를 뜻하는 ‘양’(楊) 자를 쓰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화강암을 촘촘히 쌓은 박수근기념전시관의 외벽은 이른 가을 햇살에 반짝입니다. 그 거친 암석의 질감(마티에르)은 종종 박수근 작품의 특징을 대변합니다. 그리고 화강암은 이 땅의 가장 흔한 돌 재료이기도 하지요. 전시관은 산기슭 경사의 끝자락을 물고는 나선으로 벽을 그리며 입구를 향합니다. 그 뒷산 위에는 ‘화백 박수근, 전도사 김복순의 묘’가 있을 겁니다. 묘소에는 수건을 머리에 쓰고 쪼그려 앉은 여성과 뒤편에 아이를 업은 여성을 음각한 ‘서민화가 박수근 기념비’도 있고요. 그 그림을 어디에서 보았던가 떠올립니다. 박수근의 그림에는 늘 우둘투둘한 우리의 삶이 겹겹으로 녹아 있습니다. 그래서 낯설지 않고 남의 이야기 같지 않으며 기시감이 일지요. 전시관에 들어서기 전 ‘빨래터’ 그림 안내판 앞에 섭니다. 작품 설명을 대신한 박수근 작가의 편지를 읽습니다. 그가 결혼 전 아내에게 쓴 편지입니다. 가진 건 붓과 팔레트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 주겠노라 자신합니다. 박수근 작가의 부모님은 김복순 여사를 며느리로 점찍고 있었다지요. 박수근 작가는 어머니의 점심을 핑계로 빨래터에 가서 김복순 여사를 보고 결혼을 결심했고요. 약혼 전 편지에는 또 이렇게 쓰기도 했습니다. “나는 나 혼자 당신을 모델로 그림을 그려 보기도 합니다. 나는 이 숨김없는 고백을 들으시고 당신도 당신의 심정을 솔직히 적어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 후 박수근이 평양에 취직하며 신혼 시절 얼마간을 떨어져 지냅니다. 하지만 평양 가는 기차 안에서 보내는 첫 엽서를 시작으로 ‘매일이다시피 편지’가 오갑니다. 김복순 여사는 그 시기를 ‘편지 두 통이 교체하는 열렬한 우리들의 연애’라고 표현하지요. 전시관으로 곧장 들어서지 못하고 자작나무 숲 옆 개울가를 서성이는 건 방금 읽은 러브레터 때문이겠습니다. 화강암의 표면처럼 거칠고 투박한 작가의 고백이 ‘빨래터’ 그림과 겹칩니다. 그림 속 두드러지는 분홍 저고리의 여인이 스물여섯 살의 박수근을 사로잡은 이일까요? 졸졸대며 흐르는 물소리는 몽글몽글하여 따스합니다. #과일 몇 알도 나눠 사던 선량함 올해는 박수근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박수근기념전시관에는 박수근 작고 60주기 소장품 특별전 ‘봄이 오다: 정림리에서 전농동까지’가 열리고 있습니다. 정림리는 박수근이 태어난 동네입니다. 지금 제가 서 있는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이 바로 그 터 위에 지어졌네요. 그리고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세상을 떠났지요. “친애하는 박수근님께” 첫 번째 전시물은 박수근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아내의 답장은 아닙니다. 마거릿 밀러가 1950~1960년대에 보낸 편지 세 통이 차례로 걸려 있습니다. 밀러는 박수근의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고 그의 작업을 응원한 후원자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1958년의 편지는 박수근에게 큰 힘이 되었겠습니다. “절대 낙심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언젠가 크게 이름을 떨칠 인물이라는 걸 우리는 직감하고 있습니다.” 박수근의 미래를 확신한 이는 또 있습니다. 소설가 박완서의 첫 장편은 미군 부대에서 같이 일했던 박수근에게서 영감을 얻어 쓴 ‘나목’입니다. 전시장에는 ‘월간미술’에서 발췌한 박완서 작가의 글이 있습니다. 작가는 화집을 옆구리에 끼고 출근한 박수근을 보고는 “꼴값하고 있네”라고 비웃었다지요. 하지만 곧 꼴만으로 판단한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선량함이 비로소 의연함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고백합니다. 그 글과 편지를 읽고 나면 익숙했던 박수근의 작품이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절구질하는 촌부의 그림’도, ‘아이 업은 소녀’의 소묘도, ‘한가한 날’과 ‘굴비’도, 박수근이 그린 건 우리 곁에 있는 삶이었습니다. 전시관을 나오기 전에는 ‘과일 파는 세 여인’을 한 번 더 마주합니다. 이 그림에는 일화가 있습니다. 박수근 작가가 가장 행복했다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살던 시절입니다. 비 오는 날이었고 김복순 여사는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갔다지요. 돌아오는 길에는 과일 행상하는 아주머니들이 있었고요. 박수근은 한 아주머니에게서 과일 몇 알, 또 그 곁의 아주머니들에게서 몇 알을 일부러 나눠 사더랍니다. 한 아주머니에게만 사면 다른 아주머니들이 섭섭해할까 봐요. 바깥으로 나오니 잔디밭 위에 서 있는 삼층 석탑 하나가 보입니다. 그 거친 단면은 박수근 작품의 원전이 되었겠습니다. 층층이 쌓은 탑의 옥개석에는 비바람의 얼룩이 낡고 오래된 세월처럼 번집니다. #화가를 닮은 건축가 박수근미술관은 박수근 작가와 김복순 여사의 묘소 아래 넓게 자리한 ‘박수근 마을’에 가깝습니다. 여러 동의 건물이 있고 그 사이로는 나무가 무리 짓고 개울이 흐르고 느린 걸음들이 지나지요. 그 길에서는 미술관을 짓고 나무를 심고 길을 닦은 이의 숨결을 같이 느껴 보았으면 합니다. 그가 느꼈을 박수근의 마음을 곁에 두고 말이지요. 작가의 진품 한 점 없이 개관한 미술관을 떠받친 건 이종호 건축가의 성심입니다. ‘과일 파는 세 여인’의 곁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이 그에게도 있었겠지요. 박수근기념전시관을, 박수근파빌리온을 또 현대미술관을 그리 정성 기울여 지었겠지요. 그 시간이 10년이었습니다. 박수근파빌리온은 박수근기념전시관에서 오솔길로 이어집니다. 곁으로는 전시관 앞 빨래터에서 흘러온 개울물이 나란합니다. 박수근의 묘소를 향하는 샛길 앞에 이르자 건너편으로 3개 동의 건물이 줄지어 있네요. 금속그물망(Expanded Metal)이 본체를 감싸안은 건물은 또 한 번 박수근 작품의 질감을 떠올리게 하지요. 3개의 동은 내부 통로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또 하나의 보물 같은 집, 아틀리에 홀이 있습니다. 조덕현 작가가 박수근의 창신동 옛집을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박수근 가족의 행복한 한철은 보는 이의 가슴을 훈훈하게 합니다. 예술이란 결국 삶 안에 존재하는 것인가 봅니다. 박수근파빌리온을 나와서는 습지의 파고라 쉼터에 머뭅니다. 웃자란 풀들이 하늘대고 박수근파빌리온이 보이고 이웃한 박수근라키비움이 보입니다. 박수근라키비움은 박수근의 작품을 프로젝트 매핑과 미디어아트로 전시합니다. 그의 작품 안에서 시간이 바뀌고 계절이 변하는 걸 느껴 볼 수 있겠지요. 또 그 너머에는 현대미술관과 어린이미술관이 차례차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박수근미술관을 찾을 계획이 있다면 시간을 넉넉하게 챙겨 오셨으면 합니다. 저는 9월의 따스한 햇살을 꼭 부여잡고 크게 심호흡하듯 느리게 쉬어 가며, 양구의 소슬바람을 가만히 기다려 맞습니다. #‘나목’을 닮은 박수근나무 곁에서 박완서 작가의 소설 제목 ‘나목’은 잎이 지고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를 말하지요. 6·25 전쟁 이후 풍경이자 박수근 작가의 비유겠습니다. 박수근의 작품에도 그런 나목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나무를 찾아갑니다. 양구교육지원청 주차장 앞에는 일립그린아파트 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언덕 위에는 커다란 느릅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요. 약 300년 수령의 나무는 둘레가 2.1m, 높이가 16m에 달하지요. 박수근 작가가 양구공립보통학교에 다니던 시절 즐겨 찾아 그림을 그리던 ‘박수근 나무’입니다. 양구공립보통학교가 언덕 아래 양구우체국 부근에 있던 시절입니다. 박수근미술관을 가기 전에 먼저 들러도 좋겠습니다. 그럼 ‘나무와 두 여인’, ‘나무 아래’ 등이 새롭게 보이겠지요. 어쩌면 ‘박수근 나무’는 그가 그린 모든 나목의 깊은 뿌리일 수 있겠습니다. 가을이 조금 더 깊어지면 느릅나무 단풍이 붉게 물들겠지요. 양구읍내는 이곳이 박수근의 고향이라는 걸 말해 주는 장면이 많습니다. 상리 군인아파트는 동쪽 벽 전체가 아기를 업은 단발머리 소녀 그림 ‘길가에서’입니다. 보배아파트는 4개 동의 벽에 ‘나무밑’, ‘골목안’ 등이 10여m 높이로 그려졌고요. 전주식당에서 두부찌개로 늦은 점심을 먹고는 보물찾기하듯 읍내를 어슬렁댔습니다. 박수근이 그린 동네 할머니와 할아버지, 소녀와 아이 그림이 말을 걸어 주었고 저는 또 한 번 양구의 온기를 쬐었습니다.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의심하게 될 때, 우리는 그의 그림을 오래도록 바라보아도 좋겠습니다. #가슴 따뜻한 어른들의 ‘민들레 영토’ 양구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많은 고장인가 봅니다. 읍내에서 한반도섬 가는 길에는 양구인문학박물관이 있습니다. 박물관은 두 동의 건물로 이뤄져 있는데요. 1관은 이해인 수녀의 해인글방이고, 2관은 김형석·안병욱 철학자의 집입니다. 이해인 수녀의 고향이 양구입니다. 그녀의 ‘민들레 영토’인 셈이지요. 해인글방에는 시인이기도 한 이해인 수녀의 육필 원고와 소장품을 전시합니다. 그녀는 편지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보물”이라고 말합니다. 또 편지는 “말로 할 수 없는 내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전하지요. 그러고 나니 전시 편지가 다시 읽히네요. ‘큰언니가 멀리 기숙사에 가서 동생한테 보내는 편지’ 같기도 해서, 방명록을 대신한 포스트잇 벽에 짧은 답장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형석, 안병욱 두 철학자는 친한 친구입니다. 양구와의 인연은 두 사람이 2012년에 소장 자료를 기증하며 시작됐습니다. 2013년에는 안병욱 철학자가 세상을 떠났고 인문학박물관에 부인과 함께 묻혔지요. 김형석 철학자는 올해 4월부터 매달 한 차례 인문학 강연을 진행하고 있고요. 10월 18일, 11월 8일 토요일에 각각 열리지요. 저는 1층 안병욱 전시실과 2층 김형석 전시실을 돌아보며, 그들이 수정한 원고들을 유독 눈여겨보았습니다. 몇 차례나 줄을 긋고 고쳐 쓴 글은 철학이란 완성보다 개선되어 가는 여정이라 말하는 듯했습니다. 저는 그 취소선들을 보기 위해 인문학박물관을 찾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박물관을 떠나기 전에는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박물관 앞으로 지나는 파로호가 잔잔하게 배웅합니다. 여름이 물러갑니다. 글·사진 여행작가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오전 10시~오후 6시, 1시간 전 입장 마감, 월요일, 설날과 추석 오전 휴관.
  • ‘기적의 투자 리딩’ 현혹돼 2억원 퇴직금 통장 깬 은퇴자 [파멸의 기획자들 #09~#12]

    ‘기적의 투자 리딩’ 현혹돼 2억원 퇴직금 통장 깬 은퇴자 [파멸의 기획자들 #09~#12]

    서울신문 나우뉴스는 ‘사기공화국’ 대한민국에 경종을 울리고자 르포 소설 ‘파멸의 기획자들’을 연재합니다. 우리 사회를 강타한 실제 가상화폐 사기 사건을 나한류 작가가 6개월 가까이 취재·분석해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기를 피하는 바이블’이자 정부가 범죄에 더 엄하게 대응하도록 촉구하는 ‘여론 환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제보자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사건 속 인물과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 등은 모두 가명 처리했습니다. 부산 해운대에 사는 60대 박성갑은 35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은퇴’라는 거대한 파도를 맞이했다. 그에게 은퇴는 단순히 직장에서의 해방만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7시까지 일어나 작업복을 챙겨 입지 않아도 되는 자유, 하루 종일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밀린 독서를 할 수 있는 여유, 종종 아내와 전국 곳곳으로 여행다닐 수 있는 작은 사치 등…그간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자신에게 주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해왔다. 그런데 막상 회사를 떠나고 보니, 그의 장밋빛 꿈은 그저 꿈에 불과했음을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정부가 기금 고갈을 이유로 국민연금 수급 연령을 최대 65세까지 높이면서 성갑은 수 년의 공백을 수입 없이 견뎌야 했다. 몇 년 전 아내 신정자가 집 근처에 사 둔 꼬마 상가에서 쥐꼬리만한 월세가 들어오지만 수년째 취업하지 못해 의기소침한 아들 정민, 이제 곧 대학을 졸업하는 딸 정아를 뒷바라지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퇴직금으로 받은 2억원은 자녀들 결혼 자금으로 쓸 계획이어서 가급적 손대고 싶지 않았다. 이것저것 따져보니 ‘아들이 직장을 구해서 독립할 때까지 좀 더 벌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버리지 못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력서를 넣는 곳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 한마디가 35년간 사회생활을 하며 쌓아온 자존심을 한순간에 짓밟았다. “미안합니다. 더 젊은 사람을 구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참으로 냉혹했다. 겉으로는 ‘경로효친’과 ‘장유유서’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나이든 사람들에게 차갑게 등을 돌렸다. 성갑은 매일 아침 일어나 거울을 보며 ‘아직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세상의 냉정한 시선 앞에서 그의 의지는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회사에 다닐 때 당연하게 여겼던 ‘우리’, ‘함께’라는 가치는 온데간데없었다. 직장을 떠나보니 이 세상은 오직 ‘적자생존’과 ‘각자도생’이라는 냉혹한 규칙만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다. 고질병인 이명으로 밤이 깊도록 잠 못 이루던 어느 날, 그는 유튜브에서 유명 은퇴 전문가의 강연을 보게 됐다. “은행 이자로 노후 생활을 책임지던 시대는 진작에 끝났습니다. 소액이라도 주식 등 고위험 자산에 투자해야 인플레이션을 이겨낼 수 있어요.” 그가 성갑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했다. 자녀들을 위해 들고 있는 퇴직금 2억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금 은행 예금에서 나오는 이자로는 월 50만원도 안 되는데… 재취업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매달 최저임금 수준인 200만원이라도 벌려면 투자 말고는 답이 없네. 기왕 이렇게 된 거 퇴직금 일부라도 주식으로 돌려서 돈을 불려보자.’ 문득 10여년 전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당시 유행하던 ‘작전주’에 멋모르고 뛰어들었다가 운 좋게 큰돈을 벌었던 짜릿한 순간. 그는 종목 분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느낌’이 좋아서 바이오 기업 주식 하나를 샀고, 그 주식이 며칠간 상한가를 기록하자 황급히 팔고 나왔다. 신기하게도 그 주식은 며칠 뒤부터 하한가로 직행했고, 몇 달 뒤 상장폐지됐다. 행운의 열차에 우연히 올라탔고 타이밍 좋게 내렸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그때 번 돈이 디딤돌 역할을 했다. 당시의 짜릿한 행운이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내심 과거의 영광을 또 한 번 누리고 싶은 욕심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종목을 선별해 보기로 했다. 평소 투자에 대해 잘 안다고 떠들고 다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오랜만이야. 늘그막에 퇴직금으로 주식 투자를 해보려는데, 배울 만한 곳이 있을까?” 친구의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이놈아, 우리 나이에 투자하다가 망하면 부산 앞바다밖에 갈 곳이 없어.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퇴직금이나 잘 지켜. 그 돈이야말로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너를 지켜줄 인생의 마지막 동아줄이야.” 친구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몇 년 전 여윳돈으로 골드바를 샀다가 금값이 뛰어 큰 돈을 벌었다. 요즘은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자랑질을 일삼고 있다. 자기는 투자로 큰돈을 벌어놓고, 나보고는 퇴직금이나 지키라니. 그의 이중적인 모습에 화가 났다. ‘투자하지 말라’는 친구의 경고가 역설적으로 성갑의 투자 결심에 기름을 부었다. ‘네가 성공한 것처럼 나라고 못할 것 있나. 학교 다닐 땐 내가 너보다 공부도 잘했다고.’ 늘 그랬듯 잠들기 전 이명을 견디고자 스마트폰을 켰다. 간만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었다. 이성 친구가 생겼을까 싶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살폈지만, 아직까지 남자 사진은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딸의 해맑은 사진들 위로, 그의 눈길을 잡아끄는 광고가 섬광처럼 번쩍였다. ‘상한가 급등주 추천’ 아래에는 친절하게도 연락처를 입력하는 칸이 마련돼 있었다. 그를 위해 나타난 구원의 메시지처럼 보였지만 고개를 드는 의구심 또한 피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은 일본보다 사기 범죄 건수가 10배나 많은 ‘사기 공화국’ 아니던가. ‘이놈들, 대단하지도 않은 종목 몇 개 추천해주고 수수료만 잔뜩 뜯어가는 건 아니겠지.’ 성갑의 머릿속에 의심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래도 돈은 굴려야했기에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인스타그램 광고창에 연락처를 남겼다. 몇 시간 뒤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프로필 사진을 보니 미모의 젊은 여성이었다. “안녕하세요. 급등주 종목 추천을 요청하신 선생님 맞으시죠? 김가영이라고 합니다. 제가 모시고 있는 이성조 교수님께서 운영하시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으로 초대해 드릴게요. 초대를 원하시면 ‘777’을 눌러 주세요.” 너무도 인위적인 행운의 숫자가 오히려 불길하게 느껴졌지만, 가영의 예쁜 얼굴과 공손한 말투에 마음이 끌렸다. “감사합니다. 아래 링크로 들어오시면 이 교수님의 단체 채팅방으로 입장하실 수 있어요. 교수님께서는 오랜 투자 경험을 바탕으로 회원님들께 통찰력있는 투자 강의를 진행하십니다. 현재 수업이 진행 중이니 열심히 공부하시고 투자 수익도 얻어 가세요.” 성갑에게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다. “잠시만요. 회비는 얼마인가요?” “우리 교수님은 회비를 받지 않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교수님께서 차차 안내해드릴 예정이예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굳게 믿고 살아온 성갑에게 가영의 답변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의심을 완전히 거두진 못했지만 아직 돈을 넣은 것이 아닌 만큼 채팅방에서 강의 좀 듣는다고 해도 손해날 건 없어 보였다. 그는 PC를 켜고 카카오톡 링크를 눌러 이 교수를 찾았다. 낮 시간인데도 40명 정도 되는 회원들이 강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수업 내용은 기대 이상이었다. 증권 방송에 나오는 자칭 ‘전문가’라는 자들보다 핵심을 더 잘 짚어주는 것 같았다. “자, 여러분. 눈을 크게 뜨고 주목하십시오. 제가 오늘 추천하는 종목은 바로 코스피 대표주 △△조선입니다. 매수가는 현재가에서 5% 이내로 진입하시고, 손절가는 -3%로 잡으세요!” 성갑은 스마트폰으로 주식 앱을 켰다. △△조선 주가가 이 교수가 지정한 매수 권장가를 살짝 넘어서 있었다. ‘그럼 이 교수라는 작자의 능력을 한번 볼까?’ 그는 상황을 좀 더 주시하기로 했다. 권장가에서 +6%까지 올랐다가 빠르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주가가 손절가 부근까지 떨어졌다. ‘그럼 그렇지. 이 교수라는 인간도 사기꾼이었구만. 그런데 오늘따라 저 큰 기업이 이상하게 요동을 치네.’ 그에게 실망을 느끼고 채팅방에서 빠져 나가려던 찰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주가가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순식간에 반등에 나선 것이다. 잠시 횡보하기도 했지만, 결국 용이 승천하듯 하늘로 치고 올라갔고 어느새 +11%까지 치솟았다. “여러분, 바로 지금입니다. △△조선을 전량 매도하세요!” 이 교수의 신호가 떨어지자 회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몇 분 뒤부터 자신의 수익을 인증하는 사진들이 쏟아졌다. 사진 사이사이로 그를 찬양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너무 놀라워요. 교수님 덕분에 이번 달에만 100% 수익을 달성했어요!” “교수님은 예언가신가요, 아니면 초능력자신가요? 어떻게 이렇게 주가 예측이 늘 정확할 수가 있죠?” “쓰레기 같은 다른 리딩방에서 큰 손실을 입었는데요. 2주 만에 모두 회복했어요! 교수님 덕분입니다.” “교수님, 앞으로 저희를 평생 책임져주실 거죠?” 성갑에게 이곳 채팅방은 사이비 종교집단 모임처럼 느껴져 불편했다. 다만 이 교수가 보여준 신기에 가까운 리딩 능력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단 몇 분 만에 거둔 10% 수익! △△조선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코스피 대형주로, 소위 말하는 ‘작전 세력’이 붙어서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종목이 아니었다. 이 교수가 채팅방에 있는 40여명을 털어 먹으려고 이 회사 주가를 10% 넘게 끌어 올렸다고 가정하는 건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카톡방 회원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보다 저 기업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쓴 돈이 몇 백배는 더 클 테니까. 살면서 이런 놀라운 일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교수의 탁월한 분석과 예측의 결과 말고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었다. 마음을 진정시킨 성갑은 이 교수의 주식 투자에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문득 ‘여자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아내와 먼저 상의하고 투자 여부를 정하는 것이 순리였다. 하지만 아내 정숙은 100% 반대할 것이 분명했다. 자녀들의 결혼 자금을 주식에 투자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소리칠 것이 뻔했다. 묻지 않아도 정숙의 답은 정해져 있는 듯했다. 결국 성갑은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이 돈을 인출하기로 마음먹었다. ‘35년간 고생해서 번 퇴직금 2억원, 따지고 보면 다 내 돈 아닌가.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결정권도 나에게 있다고. 이 돈을 잘 굴려서 원금보다 훨씬 크게 만들어 보자. 정민이·정아 결혼에도 보태고 남는 건 가족 생활비로 쓰면 모두에게 좋은 거 아니겠어.’ 신분증을 챙겨서 은행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최근 몇 년 새 가장 가볍고 활기찼다. 이 교수의 기적과 같은 리딩 능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기에 두려움이 없었다. 성갑이 퇴직금 통장을 창구 직원에게 건넸다. 잔고에는 35년간의 직장 생활의 애환이 오롯이 담긴 ‘200,000,000’이라는 숫자가 선명했다. 평생을 모은 돈이 담긴 통장을 건넨 탓인지 손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창구 직원은 익숙한 듯 통장을 받아 들더니 상냥하지만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고객님, 한 달만 있으면 만기인데요. 지금 해지하시면 그간 모은 이자가 대부분 사라져요… 아깝지 않으세요?” 그 말은 성갑의 불안한 심리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성갑은 속으로 그녀를 비웃었다. ‘그깟 은행 이자 몇 백만원이 아깝다고? 이성조 교수의 선물 거래를 따라가면 그 이자의 수천 배도 벌 수 있는데, 뭐하러 한 달을 기다려!’ 그가 태연한 척 입술을 뗐다. “개인적으로 사정이 생겼어요. 해지 부탁드립니다.” 성갑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2억원이 손에 들어오자 김가영 비서의 설명대로 IEKAF 거래소 고객센터에 연락해 1억원을 USDT로 충전했다. 잠시 스마트폰에서 숫자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이내 환희로 바뀌었다.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IEKAF 고객센터 한국인 매니저의 텔레그램 메시지가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회원님, 안녕하세요! 방금 1억원을 충전하셔서 ‘VIP 2등급’으로 레벨업 되셨습니다.” 난생 처음 받아보는 ‘VIP’ 대우에 성갑의 심장은 터질 듯 벅차올랐다. “앞으로 제가 회원님을 모시게 되었는데요. VIP가 되신 기념으로 최신 스마트폰을 선물로 드립니다. 전화기가 필요 없으시면 이에 상응하는 1500 USDT(약 210만원)로 받으셔도 돼요.” 성갑의 얼굴에 확신에 찬 미소가 번졌다. ‘지금 쓰고 있는 스마트폰이 멀쩡한 있는데 뭐하러 전화기를 신청해. 차라리 돈으로 받아서 그걸 불리는 게 훨씬 이득이지.’ 성갑은 망설임 없이 스테이블 코인을 선택했다. 1500 USDT가 자신의 계좌로 입금되는 것을 보며 승리의 예감에 취했다. 1분쯤 지나서 2100 USDT(295만원)가 추가로 들어왔다. ‘이건 무슨 돈이지’하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성갑에게 매니저가 친절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 거래소가 글로벌 회원 1000만명 모집을 달성했어요. 그래서 사은 행사로 고액 투자 회원님들께 충전 금액의 3%를 리워드로 지급해 드렸습니다.” 불과 10분도 안 돼 500만원 넘는 돈을 받았다. 그것도 공짜로.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였다. 팍팍한 은퇴 후의 삶, 냉혹한 재취업 시장에서 무너진 그의 자존감이 완벽하게 회복되는 듯했다. 인생의 진정한 황금기가 이제 시작됐다고 그는 굳게 믿었다. 이 교수의 리딩이 주식 현물 거래에서 코인 선물 거래로 바뀌었지만 IEKAF 거래소의 ‘선물 보따리’에 감격한 성갑은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 며칠 뒤 그는 5만 달러(7000만원) 이상 예치한 이들을 위한 ‘예비클럽’에서 이 교수가 이끈 선물 거래를 통해 하루 만에 1만 USDT(1400만원)를 거머쥐었다. 신이 난 성갑은 잔고에서 2000 USDT를 인출했고, 다음 날 통장으로 280만원을 받았다. 기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아내 정숙을 데리고 시내로 향했다. 오랜만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고 이동통신사 매장으로 들어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싸다는 스마트폰 두 대를 구입해서 하나를 아내에게 건넸다. “오늘 갑자기 왜 그래? 돈이 어디서 난거야?” 정숙이 크게 놀라서 물었다. 아직은 ‘가상화폐에 투자해 성공했다’는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비트코인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신 여사에게 ‘코인 선물 거래’ 개념을 설명해봐야 ‘싸움만 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몇 달 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액수가 불어난 IEKAF 계좌 내역을 ‘깜짝 선물’처럼 보여주면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여겼다. “요즘 잘 나가는 주식을 사서 좀 벌었지. 내가 젊어서부터 투자에 재능이 있었잖아.” 한 손에는 레스토랑에서 얻어 온 식전빵 봉투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성갑이 사 준 전화기로 쉬지 않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아내를 보며 ‘이런 게 행복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남은 전화기는 서울에 사는 딸에게 택배로 부쳤다. 정년 퇴직 이후 처음으로 가족들에게 멋진 가장의 모습을 보여준 그의 어깨가 한껏 올라갔다. 이 작은 성공이 성갑의 확신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 다음 날 남은 퇴직금 1억원에서 3000만원을 추가로 인출해 IEKAF 계좌에 충전했다. 얼마 뒤 김가영 비서가 10만 달러(1억 4000만원) 이상 투자자 모임인 ‘브론즈클럽’ 승격 안내 문자를 보냈다. 김 비서는 다음 주부터 이어질 미국 통계치 발표를 언급하며 “앞으로 엄청난 수익을 낼 수 있다”고 기대감을 부풀렸다. 성갑은 자고 나면 불어나는 코인 자산을 보며 ‘인생 2막을 위한 기적의 결실’이라고 믿었다. 그를 더 깊은 함정으로 유인하려는 사기꾼들의 ‘끈끈이 덫’임을 깨닫지 못한 채. 성갑은 김가영 비서의 초대를 받아 50~60대 은퇴자 텔레그램 채팅방에도 들어갔다. 그곳은 그가 사는 현실 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세상이었다. 증권사와 사모펀드, 벤처캐피탈 등에서 퇴직한 임원 출신이 다수였고 하나같이 세련된 프로필 사진과 우아한 말투를 자랑했다. 그들의 대화는 격조와 품위가 있었다. 일반적인 주식 이야기를 넘어, 세계 경제의 거시적 흐름과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주고 받았다. 블루칼라 출신인 자신과 확연히 다른 이들의 지적 수준에 감탄과 존경을 느낄 정도였다. 신기하게도 이곳의 방장은 그와 이름이 같은 ‘김성갑 대표’라는 자였다. “저와 동명의 신입 회원이 들어오셨네요. 정말 반갑습니다.” 자신을 열렬히 환영하는 김 대표의 메시지가 묘한 친근감을 불러일으켰다. 성갑은 오랜 방황 끝에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승리자들의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교류한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다. 그들은 금융권 출신답게 이성조 교수의 리딩 없이도 능숙하게 선물 거래를 진행했다. 그들의 거래는 이 교수보다 훨씬 과감했고, 매매 속도도 더 빨랐다. 성갑은 옆에서 그들의 대화와 거래 내역을 지켜보며 점점 욕심이 생겼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뤄지는 이들의 적극적인 베팅이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브론즈클럽 거래와 이 친목방 거래를 병행하면 가상화폐 수익이 훨씬 커지겠구나!’ 며칠을 지켜보며 망설이던 성갑이 마침내 채팅방에 참여 의사를 밝혔다. “여러분들의 선물 거래에 저도 함께할 수 있을까요?” 방장인 김 대표가 친절하게 답했다. “물론이죠. 우리 방에 계신 누구나 가능합니다. 단, 투자 결과는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점 명심하시고요.” 성갑은 친목방 회원들을 따라 가상화폐 선물 투자를 시작했다. 이 교수의 경우 판단 착오로 인한 손실 가능성을 열어두고 1회 매매 시 최대 투자 규모를 전체 자산의 20%로 제한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40~50%가 기본이었고, 투자금 전체를 한 번에 ‘올인’하는 이들도 많았다. 금융 전문가들의 모임답게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했고 덕분에 성과도 이 교수를 압도했다. 국립대 경영학 교수 출신이라는 회원은 한 번 거래에 2만 달러(약 2800만원)를 태웠는데, 10여분 만에 수익률이 100%를 넘기자 능숙하게 코인을 팔고 빠져 나왔다. 잠깐 사이에 우리 돈 3000만원을 챙기자 회원들의 찬사와 환호가 이어졌다. 성갑 역시 이들을 따라하며 수익을 빠르게 불렸다. 어느새 IEKAF 자산이 40만 달러에 육박했다. 우리 돈 5억원이 넘는 액수가 계좌에 찍히자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1억원 조금 더 넣었는데 불과 몇 주 만에 5억원을 넘기다니… 이 추세면 아무리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올해 안에 10억원은 너끈히 벌겠어. 이게 바로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구나. 앞으로 나와 내 가족은 영원히 노동에서 해방된 경제적 자유인이 될 수 있어.’ 이제 그는 하루 종일 가상화폐 앱을 켜고 잔고를 확인하는 것이 일과가 됐다. 이명으로 잠 못 이루던 예전의 자신은 온데간데없었다. 성갑에게 심야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코인 차트를 지켜보며 부를 일구는 시간으로 변모해 있었다. 그의 머릿속이 코인 투자와 수익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퇴직금을 지키라던 오랜 친구의 조언도, 예금 이자가 아깝지 않냐는 은행 직원의 걱정 어린 질문도 더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신을 푸대접하던 세상에 대한 서운함 또한 눈 녹듯 사라졌다. 자신과 같은 목표를 가진 ‘엘리트’ 동지들이 있었고, 그들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돈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대신, 더 큰 수익을 올리지 못할까 봐 초조해하는 도박꾼의 심리가 그의 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성공의 달콤함에 취한 성갑은 자신이 지금 서 있는 곳이 지옥의 문턱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를 둘러싼 ‘승리자들’이 모두 사기꾼 패거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파멸의 늪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 ‘부의 추월차선’에 현혹돼 코인 사기 미끼 무는 이웃들 [파멸의 기획자들 #05~#08]

    ‘부의 추월차선’에 현혹돼 코인 사기 미끼 무는 이웃들 [파멸의 기획자들 #05~#08]

    서울신문 나우뉴스는 ‘사기공화국’ 대한민국에 경종을 울리고자 르포 소설 ‘파멸의 기획자들’을 연재합니다. 우리 사회를 강타한 실제 가상화폐 사기 사건을 나한류 작가가 6개월 가까이 취재·분석해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기를 피하는 바이블’이자 정부가 범죄에 더 엄하게 대응하도록 촉구하는 ‘여론 환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제보자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사건 속 인물과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 등은 모두 가명 처리했습니다. 20대 대학생 이성진 대전의 한적한 대학가. 졸업을 코앞에 둔 20대 청년 이성진은 오늘도 자신의 원룸에 켜켜이 쌓인 전공 서적 옆에서 한숨을 쉬었다. 지역에서 알아주는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있지만 지금같은 불경기에는 원하는 회사에 취직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이수 학점을 거의 채웠지만 졸업을 최대한 미룬 채 아르바이트 일로 하루를 보냈다. 낮에는 왁자지껄한 중국집 주방에서 웍 소리와 기름 냄새에 뒤섞여 땀을 쏟아냈다. 뜨거운 불 앞에서도 그의 머릿속은 온통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했다. 밤이 되면 시 외곽 공업단지 한편에 자리잡은 편의점의 계산대를 지켰다. 그나마 여기는 일이 많지 않아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는 곳이었다. 처음엔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네 시간을 일했지만, 야간 근무를 하던 형이 취업에 성공해 ‘심야 알바’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성진아, 야간 일 좀 맡아줄 수 있을까? 정 안 되면 사람 구할 때까지만이라도…” 편의점 사장의 간절한 부탁에 성진은 망설였다. 돈은 필요했다. 하지만 밤까지 이 일을 이어가면 ‘알바 인생’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섰다. 그래도 사장의 거듭된 요청을 못이겨 며칠만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며칠이 그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았다. 공단 지역 편의점은 밤이 되면 유령 마을처럼 고요했다. 편의점을 찾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새벽 내내 졸아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심지어 한두 시간 가게 문을 잠그고 창고에서 잠을 자도 문제가 없었다. 폐쇄회로(CC)TV를 돌려보니 자정 이후 편의점을 찾는 손님은 하루에 한두 명뿐. 이마저도 상당수는 술에 취해 잠긴 문을 잡고 졸다가 돌아갔다. 이곳 심야 알바 자리는 그야말로 ‘신이 숨겨놓은 꿀 보직’이었다. 사장은 편의점 매출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도심 곳곳에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는 ‘큰손’이었고, 요즘은 번화가에 막 개업한 프랜차이즈 고깃집에 온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하루 매출 400만원을 넘나드는 그 가게에 비하면 편의점은 그저 용돈벌이 수준이었다. 다른 편의점 사장들은 심야 매출이 조금만 떨어져도 알바생을 닦달한다지만, 이 사장은 오히려 알바생이 가게를 걱정해 줄 만큼 편의점 경영에 무심했다. 덕분에 성진은 길고 긴 심야 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업무가 몸에 익자 계산대에 앉아 교재를 펼쳐 놓고 취업을 위한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그가 이성조 교수의 텔레그램 채팅방을 알게 된 것은 심야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두 달쯤 지나서였다. 유튜브로 지루한 취업 콘텐츠를 시청하다가 문득 ‘틈나는 대로 투자 공부나 해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렇게 이 교수의 카카오톡 채팅방을 발견했고, 오래지 않아 김가영 비서의 안내로 텔레그램으로 옮겨갔다. IEKAF 거래소에도 가입했다. 거래소에서 가입 기념으로 300 USDT(약 42만원)를 받았다. 공짜 돈이었지만 성진은 이 교수가 이끄는 선물 거래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외삼촌이 가상화폐 선물 투자로 큰 손실을 봤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였다. 그는 그저 이 교수의 리딩을 면밀히 관찰하며 회원들의 투자 성공담을 ‘눈팅’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단 한 차례도 손실을 보지 않는 이 교수의 ‘족집게 예언’에 성진도 마음이 흔들렸다. 거래가 끝난 뒤 채팅방에는 수익 인증 사진들이 올라왔는데, 한 회원의 ‘인증샷’에 그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성진이 그토록 입사하고 싶었던 대기업 A사의 초봉이 4000만원이었는데, 그 회원은 30분 만에 그 돈을 벌었다고 자랑한 것이다. ‘내가 1년 동안 뺑이쳐서 벌어야 할 돈을 불과 한 시간도 안 돼 모을 수 있는 세상이라니… 어차피 거래소에서 준 300 USDT는 공짜 돈이니까 그걸 다 잃어도 손해는 아니잖아? 속는 셈 치고 한 번 도전해 볼까?’ 그날 저녁, 그는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이 교수의 리딩에 맞춰 가상화폐 ‘HERMES’ 선물을 20% 비중으로 매수했다. 12분 뒤, 이 교수의 매도 신호에 맞춰 버튼을 누르자 정확히 33 USDT(약 4만 6000원)가 수익금으로 들어왔다. 편의점에서 4시간 넘게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단 10여분 만에, 그것도 버튼 몇 번 눌러서 얻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그의 심장이 기쁨에 못이겨 격렬하게 요동쳤다. 이때부터 성진은 이 교수를 전적으로 믿고 선물 거래에 참여했다. 그의 계좌에 날마다 투자금의 20~30%씩 수익이 쌓였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언제 끝날지 모를 ‘알바 인생’의 고단함 때문에 미래가 암울해 보였지만 지금은 이성조 교수의 텔레그램 채팅방이 그에게 등대같은 희망으로 느껴졌다. 김 비서가 개인 메시지로 ‘채팅방에 투자 수익 인증샷을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성진은 다른 회원들과 수익률이 비교되는 것이 부담스러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평소와 다름없이 선물 거래가 끝나자 김 비서에게서 텔레그램 개인 메시지가 도착했다. “학우님, 저는 오늘 하루에만 1만 5000 USDT를 벌었어요. 우리 돈 2000만 원이 넘는 돈이죠. 연말에는 꿈에 그리던 대형 아파트와 최고급 전기차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학우님은 오늘 얼마나 버셨나요?” “저는 투자금이 작아서 많이 벌진 못했어요. 그래도 교수님 덕분에 매일 수익이 생겨서 행복합니다.” “어쨋든 학우님 정말로 축하드려요. 투자금이 많으면 더 많은 수익을 벌 수 있을 텐데 아쉽네요. 투자금을 좀 더 모으실 것을 추천 드릴게요. 교수님 가르침만 충실히 따른다면 우리 모두 머지않아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을 거예요. 파이팅!” ‘경제적 자유, 경제적 자유….’ 김 비서의 말대로 경제적 자유를 얻게 된다면... 더는 지방대를 나왔다는 이유로 취업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고, 지금의 ‘알바 인생’도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상화폐 선물 거래용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있으면 인생의 모든 어려움을 단박에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음 날 성진은 은행을 찾아가 지금까지 알바로 모은 1000만원이 들어 있는 예금을 해지했다. 통장에 찍힌 숫자가 ‘0’으로 바뀌자 잠시 불안감이 밀려왔지만, 곧 찾아올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니 홀가분한 기분이 더 커졌다. ‘1000만원을 환전하면 대략 7200 USDT가 되겠지. 이 돈의 20%인 1400 USDT(196만원)만 투자해도 하루 20%씩 수익이면 약 300 USDT, 우리 돈 40만원을 능히 벌 수 있어. 이런 식으로 한 달 20일만 거래해도 800만원이 손에 떨어지네. 코인에1000만원 투자해서 한 달 800만원 수익이라니. 이제 A사에 들어가려고 가슴 졸이며 취업을 준비할 필요가 없겠구나.’ 결심을 굳힌 성진은 김가영 비서가 알려준 IEKAF 거래소 고객센터 텔레그램 채팅방에 ‘USDT를 충전하겠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잠시 뒤 고객센터 담당자가 알려준 환전소 계좌로 1000만원을 입금했다. 현물 계좌에 7200 USDT가 충전됐다. 얼마 뒤 고객센터 직원에게서 텔레그램 메시지가 도착했다. “회원님, 최근 코인 사기 우려 때문에 거래 은행에서 고객님께 전화해서 방금 전 계좌이체에 대한 자금 사용 동향을 물어볼 건데요. 아무 걱정 마시고 ‘이 돈은 상품 구매에 사용된다’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가상화폐 투자용이라고 이야기하시면 은행에서 더 자세히 물어볼 수밖에 없어서 번거로움이 커질 수 있어요. 그러니 상품 구매 용도라고만 답하시면 됩니다.” 텔레그램 메시지를 다 읽었을 무렵, 진짜로 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고객님 안녕하세요. XX은행 상담센터 박아름입니다. 조금 전 고객님 계좌에서 거액의 금융 거래가 확인돼 연락드렸습니다. 어떤 거래였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성진은 IEKAF 직원의 조언을 그대로 따라 답했다. “예, 물품 구매 대금으로 사용했어요.” “알겠습니다.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화를 마친 뒤 성진은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 곧 그의 세상이 올 것 같아서였다. 자신의 원룸으로 돌아온 성진은 중식당과 편의점 사장에게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겠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손가락으로 터치 스크린을 미끄러지듯 누르는 순간,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퍼져 나갔다. 부자가 되는 초입에 들어섰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그의 눈에는 성공의 빛만 보였을 뿐, 그를 향해 입을 벌린 거대한 함정은 보이지 않았다. 30대 워킹맘 민진영 서울 금천구의 빽빽한 빌딩숲. 30대 워킹맘 민진영이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길 지하철에 올랐다. 촉망받는 유통 대기업 본사의 야근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1년 전 집 근처 영업장으로 근무지를 옮겼지만 쳇바퀴 도는 일상은 여전히 두 손 가득 든 장바구니 무게만큼 버겁게 느껴졌다. 진영은 지방에서 상경한 남편과 캠퍼스 커플로 만나 4년 간 연애한 뒤 결혼했다. 그녀의 꿈은 ‘방 세 개짜리 아파트’를 갖는 것이었다. 6살이 된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전셋집에서 벗어나 정착하고 싶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은 그녀의 월급을 비웃듯 자고 나면 저만치 달아났다. 자신의 꿈이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었지만, 진영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 그런 그녀에게 이성조 교수는 그간의 노력을 보상해 주려는 신의 은총 같았다.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그의 차분하고 자신감 넘치는 설명은 고단한 현실에 지친 진영에게 성스러운 예언처럼 들렸다. 이 교수는 21세기에 기적처럼 나타난 성인(聖人)이자 가족의 행복을 위한 성배(聖杯)를 쥐여줄 구원자였다. “학우 여러분, 제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경제적 자유를 이룬 만큼 여러분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 사명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어제도 몇 분이 가상화폐 선물 거래로 큰 수익을 냈다고 고마워하며 제게 ‘학비를 받으라’고 제안했습니다. 어떤 분은 저에게 사례할 테니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도 하셨고요.” 진영 역시 소액이라도 감사 표시를 하고 싶었다. 그가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학우 여러분, 저에게 금전적으로 도움 주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전 이미 충분히 부유하니까요. 그저 저를 통해 돈을 많이 버셨다면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 가족과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사진을 찍어 보내주세요. 패밀리카를 구입해서 다같이 탑승해 즐거워하는 영상을 전송하셔도 됩니다.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이 교수의 숭고한 말들이 진영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수많은 사람이 돈을 최고의 가치로 좇는 현실에서, 자신은 오직 학우들의 행복만을 바란다는 말에 진심으로 감동했다. 진영의 가상화폐 거래소 IEKAF 잔고가 날마다 불어났고, 방 세 개짜리 아파트의 꿈도 더 선명해지는 듯했다. 진영은 이 교수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사람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의 퇴근길 강의를 듣고 가상화폐 선물 거래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어가는 날이었다. 이 교수가 새로운 투자 전략을 발표한다고 선언했다. “학우 여러분, 텔레그램 채팅방 회원 수가 오늘로 100명을 돌파했습니다. 이제 김가영 비서가 학우님 한 명 한 명께 맞춤형 메시지를 드리는 것이 힘들어졌어요. 회원 수가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우리를 시기 질투하는 외부 세력도 생겨나기 마련이죠. 카카오톡 채팅방을 폐쇄하고 텔레그램으로 넘어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잖아요. 그래서 더 이상은 신규 회원을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본격적인 ‘부의 추월차선’으로 뛰어 들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교수가 말을 이었다. “문제는 지금 여기 계신 학우님들의 투자금이 제각각이라는 점입니다. 지금처럼 하나의 리딩 신호로 100명이 동시에 선물 거래를 이어가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아요. 그래서 저와 팀원들이 오랜 고민 끝에 새로운 전략을 만들었습니다. 앞으로는 모두가 함께 거래하지 않을 생각이예요. 투자금 규모에 따라 팀을 나눈 뒤 거기에 따라 맞춤형으로 관리하려 합니다.” 이 교수는 투자금 20만 달러(2억 8000만원) 이상을 ‘골드클럽’, 15만 달러(2억 1000만원) 이상 ‘실버클럽’, 10만 달러(1억 4000만원) 이상 ‘브론즈클럽’, 5만 달러(7000만원) 이상 ‘예비클럽’으로 나눈다고 설명했다. 상위 클럽일수록 더 많은 거래 기회를 제공한다고도 했다. 특히 골드클럽 회원은 특별 관리를 통해 1개월 안에 투자금을 두 배로 불려준다고 약속했다. 하위 클럽으로 갈수록 리딩 횟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 사실상 ‘돈을 더 많이 가져오라’는 압박이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경제 스승’이 되겠다고 큰소리치던 평소 발언과 사뭇 달랐지만, 이미 그에게 깊이 빠져든 진영은 이상한 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의 심장은 이 교수의 발표를 듣는 순간 차가운 돌덩이처럼 굳어버렸다. 투자금이 1만 달러(1400만원)밖에 되지 않아 어떤 클럽에도 들어갈 수 없어서였다. 지난밤까지 진영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내 집 마련’ 꿈이 산산조각 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이 교수의 모순된 행보를 의심하기보다, 자신의 부족한 투자금 때문에 ‘부의 사다리’에 올라설 수 없는 현실을 탓하며 절망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진영은 희망을 잃은 사람처럼 힘없는 발걸음으로 영업장을 돌았다. 허탈한 마음에 직원 휴게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매일 밤 희망찬 미래를 그리며 잠들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던 그때, 스마트폰 알림이 울렸다. 김가영 비서의 개인 메시지였다. 진영이 떨리는 손으로 스크린을 켰다. “좋은 아침이예요. 어제 이성조 교수님이 발표하신 새 전략 보셨죠? 지금 팀을 나누고 있는 중인데, 현재 학우님이 가지고 계신 투자금은 어느 정도 되나요?” “비서님,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투자금이 1만 달러(약 1400만원)밖에 안 돼요. 어느 클럽에도 참여할 수 없어요.” “교수님께서는 모든 학우님이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를 원하세요. 하지만 투자금이 너무 적으면 더는 교수님의 가상화폐 선물 거래에 동참하기 어렵습니다. 학우님께서도 서둘러 투자금을 마련하시길 권해 드려요.” 김가영 비서의 메시지를 받으니 진영은 마음이 더 급해졌다. 서둘러 친정 식구들과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가상화폐 투자에 필요하니 긴급 자금을 빌려달라고. 모두가 그녀의 부탁을 일언지하 거절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냐며 화를 내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손실도 없이 날마다 꾸준히 수익을 내는 이 교수의 ‘기적’을 눈으로 본 진영은 친구들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며칠 전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한 회원이 ‘자녀 수술비가 필요하다고 울며 이야기하면 대부분은 돈을 빌려준다’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가상화폐라는 말은 쏙 빼고 ‘아들의 병원비가 모자란다’고 거짓말을 시작했다. 그 작전은 효과가 있었다. 친구들이 100만원, 200만원씩 십시일반 도와줬고 예상보다 많은 액수가 모였다. 곧바로 가상화폐 거래소 IEKAF 고객센터에 연락해 원화를 USDT로 환전했다. 그래도 ‘예비클럽’에 들어갈 수 있는 최소금액 5만 달러(7000만원)까지는 1만 5000달러(2100만원)가량 부족했다. 다음 날 오후였다. 현장을 돌고 있는데 이 교수가 직접 텔레그램으로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성조입니다. 김 비서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니 학우님께서 아직까지 어느 클럽에도 가입하지 않으셨더군요. 금액이 모자라서 그러시는 듯해서 연락드렸습니다. 현재 투자금 규모는 얼마나 되시죠?” “교수님, 저는 지금 예비클럽에 들어가려고 열심히 투자금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아직도 1만 5000달러가 부족해요.” “잘 알겠습니다. 투자금을 더 모아 보시고 준비가 되시면 저에게 개인적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진영은 다음 날에도 돈을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자 이 교수가 먼저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학우님처럼 투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김 비서에게서 들었습니다. 젊은 시절 제 모습이 떠올라서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그 분들에게 특별한 도움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예비클럽에 가입할 수 있는 투자금을 만들 수 있도록. 당분간 학우님께 1대1 선물 거래 리딩을 해 드릴게요. 대신 약속해 주실 것이 있습니다. 회원방 내에서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으니 제가 학우님을 돕고 있다는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해선 안 됩니다.” 그날부터 이 교수는 진영을 위해 별도의 선물 거래 매수·매도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진영은 이틀간 네 번의 거래로 1만 USDT의 수익을 냈다. 우리 돈 1400만원. 그녀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없는 ‘가상화폐의 신(神)’ 이 교수가 너무도 고마웠다. 방 세개까리 아파트를 사게 되면 반드시 보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튿날에도 이 교수가 먼저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학우님, 좋은 아침입니다. 제 특별 리딩 거래를 통해 상당한 수익을 내셨을 것으로 생각해요. 현재 회원님의 투자 현황을 스마트폰으로 캡처해서 보내 주세요.” 진영은 IEKAF 앱을 열고 자산 현황 화면을 확인해 전달했다. 이 교수가 말을 이었다. “학우님, 큰 성과를 내셨습니디만 아직도 예비클럽에 들어가려면 5000달러(700만원)가 부족하군요. 마음 같아서는 계속 개인 거래를 도와드리고 싶은데요. 학우님 말고도 챙겨드려야 하는 분들이 많고요. 개별 클럽들 거래도 이끌어야 하기에 더 이상은 힘들 듯 합니다. 대신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제가 회원님께 1만 달러를 빌려 드리죠. 회원님의 전자지갑 주소를 보내주시거나 IEKAF 거래소 아이디를 알려주시면 바로 송금해 드릴게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에게 1400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선뜻 빌려주겠다니. 이 교수의 말이 진영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아! 교수님, 말씀은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어요. 저 스스로 투자금을 모으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아니예요.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학우님이 느끼는 고민과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요. 저 역시 젊은 시절 투자금을 모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으니까요. 회원님들과 손 잡고 ‘부의 길’로 함께 나아가는 것을 제 인생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이 돈을 예비클럽 가입에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이 돈을 공짜로 드리는 건 아니예요. 충분한 수익을 내신 뒤 원금은 반드시 돌려주셔야 해요.” 진영은 자신이 예비클럽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주는 이 교수에게 깊은 감동을 느꼈다. 잠시 뒤 IEKAF 현물 계좌로 1만 달러가 들어왔다. 드디어 예비클럽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기쁨과 그간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면서 느낀 서러움이 겹치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때까지도 진영은 알지 못했다. 그가 이 교수에게 송금받은 게 ‘진짜 돈’이 아니었다는 걸.
  • 대한민국 소시민, 자신도 모르게 코인 사기의 덫에 걸리다 [파멸의 기획자들 #01~#04]

    대한민국 소시민, 자신도 모르게 코인 사기의 덫에 걸리다 [파멸의 기획자들 #01~#04]

    서울신문 나우뉴스는 ‘사기공화국’ 대한민국에 경종을 울리고자 르포 소설 ‘파멸의 기획자들’을 연재합니다. 우리 사회를 강타한 실제 가상화폐 사기 사건을 나한류 작가가 6개월 가까이 취재·분석해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기를 피하는 바이블’이자 정부가 범죄에 더 엄하게 대응하도록 촉구하는 ‘여론 환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제보자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사건 속 인물과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 등은 모두 가명 처리했습니다. ‘It takes money to make money.’돈을 벌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미국 속담이다. 돈이 없어서 돈을 마련하려는데,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충고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내용의 격언이 아닐 수 없다.그런데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이 돈을 번다’는 사실을. 취업하려면 최소한 정장 한 벌은 있어야 면접을 본다. 월급이 나올 때까지 버틸 생활비도 있어야 하고.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려 해도 어느 정도 종잣돈은 필수다.세상은 우리에게 ‘먼저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돈 많은 이들이 돈을 더 쉽게 불린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들은 늘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며 살아간다.이런 소시민들을 노려 구원의 손길인 양 다가오는 이들이 있다. 자본주의의 치명적 약점인 경제적 불평등을 파고드는 ‘투자 사기꾼들’이다. 대한민국의 근간을 뒤흔드는 ‘파멸의 기획자들’로 불러야 할 놈들 말이다. 40대 직장인 김민준 경기도 남양주의 작은 빌라. 이 집은 40대 가장 김민준이 사랑스러운 아내 나소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지영과 함께 사는 안식처였다. 가구 공장에 다니는 그에게 딸은 삶의 목표 그 자체였다. 지영의 성적표가 나오는 날은 하루종일 인생의 희망이 샘솟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상위권을 유지하는 딸의 반짝이는 눈빛을 볼 때마다, 민준의 가슴 속에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유년 시절의 안타까운 꿈이 되살아났다. 동두천의 작은 마을에 살던 소년 민준은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5살 때부터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머리가 좋다는 소리를 곧잘 듣던 그는 명문대에 진학해 인생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어려서부터 공부에 몰두했다. 하지만 가난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외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민준은 눈물을 머금고 자퇴서를 내야 했다. 이때부터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고단한 삶이 이어졌다. 수년의 분투 끝에 고교 졸업 자격증을 손에 쥐었지만 그의 도전은 거기까지였다. 대학에 입학해서 공부에 전념하려고 해도, 등록금과 생활비가 모자라 직장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야간대에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당시만 해도 밤 근무가 밥 먹듯 이어져 이 역시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군대에 다녀 온 청년 민준은 긴 고민 끝에 진학을 포기하고 생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대신 딸이 태어나자 울먹이며 다짐했다. 절대로 내 보배에겐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그가 다니는 가구 공장은 규모가 작아 학자금 제도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400만원에 턱없이 모자란 월급으로는 유명 사립대에 진학하고 싶어 하는 지영의 등록금을 감당하기 버거웠다. 그래서 2년 전부터 부업으로 대리운전을 해왔다. 딸이 대학생이 되면 이 돈으로 미래를 열어주기 위해서다. 퇴근 뒤 서둘러 편의점 도시락을 먹고 피곤한 눈을 비비며 핸들을 잡았다. 고통과 희망이 뒤섞인 고된 노동이었다. 술에 잔뜩 취해 반말과 하대로 자신을 무시하는 이들을 수도 없이 만났다. 그때마다 민준은 오직 한 가지 생각으로 분노와 자괴감을 삼켰다. ‘이 돈은 지영이의 대학 등록금이 된다.’ 그렇게 700일 넘는 땀과 눈물이 모이자 ‘2100만원’이라는 숫자가 통장에 찍혔다. 딸의 대학 생활을 책임질 값진 보물이었다. 그의 심장이 뜨겁게 요동쳤다. 일단 2000만원은 안전하게 6개월짜리 예금에 넣어두었다. 100만원이 남았다. 자투리 돈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던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걸 좀 더 적극적으로 굴려서 한 달에 몇만 원이라도 수익을 내 보자. 그걸로 지영이 용돈에 보태주면 되겠다. 최악의 경우에도 100만원만 손해보면 되니까 위험할 건 없어.’ 민준은 주식 관련 정보를 뒤지기 시작했고, 인스타그램에서 ‘무료 단기 급등주 추천’ 광고를 접했다. 그가 그토록 찾던 문구였다. 처음에는 사기꾼들의 허장성세가 아닐까 의심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에도 100만원만 날리면 된다’는 생각이 안도감을 줬다. 10여분의 고민 끝에 광고 계정 하단에 연락처를 남겼다. 몇 시간 뒤 ‘박순필’이라는 이름으로 카카오톡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앞으로 저희가 알려 드리는 급등주가 회원님의 수익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국내 최고 전문가 이성조 교수님이 도와드릴 건데요. 일단 이 교수님의 비서 김가영 씨를 카톡 친구로 추가해 주세요.” 박순필의 말대로 김가영 비서에게 메시지가 왔다. 민준은 그녀가 보낸 링크를 타고 단체 카톡방에 입장했다. ‘이성조 교수’라는 이가 50명 넘는 회원들에게 열심히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투자의 성공은 시장의 흐름을 읽는 거시적 안목에서 시작된다’ 라는 점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단순히 오르는 종목을 쫓는 것은 투기가 될 뿐이죠. 지난주 미국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 이후 시장은 연준이 예상보다 빠른 시점에 금리 인하를 단행할 수 있다는 ‘피벗’(정책 전환) 기대감에 부풀어 있어요. 어려운 말 같지만 간단합니다. 미국이 조만간 돈을 풀 것이고 그러면 우리 같은 신흥국 시장까지 그 돈이 흘러 들어온다는 거죠. 기술주 중심 코스닥 시장에 강력한 유동성이 공급될 신호탄입니다. 외국인 자본이 밀물처럼 들어오기 전, 우리가 미리 길목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요. 이것이 바로 ‘거시적 안목의 힘’이죠.” 그의 메시지가 끝나기가 무섭게 회원들이 감사의 이모티콘을 쏟아냈다. 단순히 종목 몇 개를 찍어주고 매수·매도 신호만 보내는 일반적인 리딩방과 차원이 달랐다. 국내외 경제 동향부터 글로벌 시장 현황과 전망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소개하고 있었다. 이 교수가 잠시 쉬었다가 카톡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면 이 유동성은 어떤 분야로 가장 먼저 흘러 갈까요? 저는 단언컨대 ‘인공지능(AI) 기반 신약 개발’ 섹터라고 확신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어요. 누구나 건강 관리만 잘 하면 100살 넘게 사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오죠. 첨단 제약 및 바이오 기술에 대한 국가적 투자와 관심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TV에서 나오는 뉴스는 늘 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설명은 한 번만 봐도 머리에 쏙 들어왔다. 채팅방에 들어온 지 몇 분만에 이 교수의 정확한 비유와 해박한 지식이 민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매일 오전 9시 30분, 이성조 교수는 회원들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고는 국내 주식 한 종목을 골라 상세히 분석했다. 저녁 7시에는 30분가량 출석체크를 마친 뒤 3시간 넘게 경제 지식을 쏟아냈다. 회비를 받지 않는 강의인데도 수준이 상당했다. 게다가 김가영 비서의 안내로 채팅방에 출석체크 문자 ‘777’을 찍으면 5000원씩 보상금을 적립해줬다. 10번의 강의를 수강하자 정확히 5만원이 계좌로 입금됐다. 민준은 이 교수와 단톡방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걷어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난 어느 저녁 강의 시간이었다. 이날따라 회원들의 이모티콘 반응이 눈에 띄게 줄어 들어 있었다. 이 교수는 ‘낮에 너무 열심히 일하셔서 그런지 수업에서 조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여러분들의 잠을 깨워 드리겠다’며 자신이 살아 온 이야기를 꺼냈다. “여러분, 제가 왜 돈 한 푼 받지 않고 이렇게 강의하고 종목을 추천하는지 궁금하시죠? 여기 계신 대부분 회원님처럼 저 역시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낮에는 돈 벌고 밤에는 공부했습니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해 뜰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을 품고서요. 그런데 30대 초반, 남의 말만 믿고 주식 투자에 전 재산을 밀어 넣었다가 모든 걸 잃었습니다. 제 돈을 노린 사기꾼들에게 ‘작업’을 당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죠. 삶의 의지를 내려놓고 자살을 시도했어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병원에 실려 가서 천우신조로 깨어났습니다. 저를 살리려고 병원까지 업고 오신 분들에게 정말 미안했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단 한 번만 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인생을 걸고 도전해 보자고.” 채팅방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다들 이 교수의 다음 메시지를 숨죽여 기다렸다. “그때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낮에는 죽어라 돈을 벌었고 밤에는 죽어라 세계 경제를 공부했죠. 국내외 주식과 가상화폐, 부동산, 채권 등 닥치는 대로 연구하고 투자한 뒤 성공과 실패 사례를 자세히 분석했어요. 그렇게 10년 넘게 모은 데이터를 살펴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물리가 트였습니다. 투자 대상마다 폭등과 폭락 전 나타나는 특별한 매매 패턴이 제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를 토대로 저만의 ‘필승 투자 공식’을 완성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은 남들이 말하는 백만장자가 되었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서울 강남의 최고급 아파트에서 조용히 살고 있어요.” 회원들이 감동과 축하의 이모티콘을 보냈다. 이 교수가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말이죠. 언젠가부터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요. ‘내가 처음 투자를 시작했을 때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내 인생이 이토록 힘들고 괴롭진 않았을 텐데’라고 말이죠. 가난한 이들이 조금이라도 일찍 좋은 스승을 만나면 나처럼 수십년간 고통을 겪지 않고도 부를 일굴 수 있을 텐데. 그러면 다 같이 행복해지는 ‘좋은 세상’을 더 빨리 만들 수 있을 텐데.” 민준은 그 글을 읽으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 교수의 인생 역정이 마치 거울처럼 자신의 삶을 그대로 비추는 것 같아서였다. 그의 다음 발언이 민준을 완전히 무장해제시켰다. “여러분, 당시 제 머릿속에 무슨 계시가 떠올랐는지 아세요? 바로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죠. 바로 제가 가난한 이들의 ‘참스승’이 되기로요. 여러분의 경제적 어려움을 빨리 끝내 드리고 다 같이 부자가 되는 새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저는 여기에 남은 삶을 모두 걸었습니다. 예수님이 인류에 종교적 복음을 전했다면 저는 감히 여러분께 경제적 복음을 나누려고 해요.” 민준에게 이 교수는 단순히 투자 정보를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유일한 희망이자 ‘투자’라는 종교의 교주였다. 이 교수만 믿고 따른다면 딸에게는 가난을 물려주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매일 밤 그는 이 교수의 강의 내용을 꼼꼼히 복습했다. 실제로 이 교수가 추천한 주식 종목에서도 조금씩 수익이 나고 있었다. ‘이 분은 진짜다’라는 믿음이 더욱 커졌다. 그러던 어느 날, 김가영 비서가 긴급 공지를 올렸다. “회원 여러분, 교수님을 시기하는 일부 유료 리딩(투자조언)방에서 우리 채팅방을 사기 조장 등 혐의로 카카오에 신고했습니다. 우리가 이 방을 무료로 운영해 눈엣가시로 여긴 듯 해요. 더는 여기서 공개 채팅방을 운영할 수 없게 됐어요. 교수님께서 카카오 측에 항의하고 있지만, 단체방 폐기를 피하기 힘들 듯해요. 고민 끝에 다른 소셜미디어(SNS)로 채팅방을 옮겨서 열기로 했습니다. 준비되는 대로 링크를 다시 공지할게요.” 다음 날 텔레그램 채팅방 링크가 올라왔다. 민준은 아무 의심 없이 동참했다. 플랫폼은 바뀌었지만, 이 교수와 김 비서의 단톡방 운영 방식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카카오톡에서 텔레그램으로의 이동이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파멸 기획자들’의 거대한 음모였음을. 민준은 자신이 사기꾼들의 먹잇감이 됐다는 사실을 깨달지 못한 채, ‘희망’이라는 이름의 구렁텅이 속으로 조금씩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50대 농업 스타트업 대표 최승현 전라북도 완주군. 밤이 깊어질수록 적막이 한층 더 두터워졌다. 낡은 창문 너머로 새어 나오는 빛줄기 하나가 어둠을 베고 있었다. 그 빛의 주인은 50대 농업 스타트업 대표 최승현. 2년 전 고통스럽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숨 막히는 도시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이제 누구보다 용기 있는 도전자로 살았다. 낮에는 뙤약볕 아래서 억척스러운 농부로 땀 흘리며 작물을 키웠고, 밤에는 컴퓨터 스크린 앞에 앉아 복잡하고 역동적인 금융 시장의 흐름을 읽는 야심 찬 투자자로 활동했다. 그에게 흙냄새 가득한 낮의 삶이 현실의 뿌리라면, 디지털 세상의 밤은 희망을 향한 날개였다. 요즘 그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존재는 이성조 교수였다. 매일 밤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진행되는 그의 강의는 기존의 따분한 금융 지식과 다른, 살아있는 통찰력과 경험을 선사했다. 승현은 이런 귀인을 이제야 알게 됐다는 사실이 내내 아쉬웠다. 이 교수의 강의를 들은 지 한 달쯤 됐을까. 국내 주식 시장이 며칠째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승현의 계좌는 초반 상승분을 대부분 반납하고 원금만 지키고 있었다. 그때 이 교수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텔레그램을 통해 전해졌다. “여러분, 지금 국내 주식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세요. 누가 봐도 작전 세력이 주가를 계속해서 빼고 있는데, 금융 당국은 이놈들을 잡아들일 생각이 없어요. 대한민국 금융 시장 전체가 썩어빠진 ‘작전 세력들의 집합소’라는 증거죠. 외국인 큰손들도 한국 시장의 ‘불편한 진실’을 잘 알기에 이렇게 탈출하고 있는 겁니다. 정부가 나서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고쳐야 한다고 선언하고 ‘금융 마피아와의 전쟁’을 선포해야 하지만, 요새 지도자들은 그럴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대한민국이 새로 태어나지 않는 한 우리 증시에는 투자 모멘텀이 없어요. 그래서 더 이상 국내 주식에는 투자하지 않으려 합니다!” 갑자기 회원들이 술렁였다. ‘그럼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던 채팅방에 이 교수가 결단 내린 듯 하나의 화두를 던졌다. “가. 상. 화. 폐.” 그는 곧바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 금융 천재들과 손잡고 가상화폐 시장을 크게 끌어올릴 것이라며 설득력 있는 논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승현의 마음속에서 강한 거부감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전국에 비트코인 광풍이 몰아치던 2017년, 친구처럼 따르던 지인 박상철이 있었다. 그는 ‘흙수저 탈출’을 외치며 수억 원의 사채까지 빌려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두 달 만에 100% 넘는 수익률을 거둬 잠깐 부자가 된 상철은 승현과 후배들을 유흥주점으로 불러냈다. “니들도 늦지 않았어. 나처럼 큰돈 벌고 싶으면 당장 가상화폐 거래소 가서 계좌부터 만들어!” 아가씨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의기양양하게 소리치던 그의 오만한 태도가 모두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승현은 그런 상철이 내심 부러웠다. 하지만 그 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했고, 그는 홀연히 동네에서 사라졌다. 소문이 무성했다. 사채업자들을 피해 외국으로 도망쳤다는 이야기도, 조폭들에게 붙잡혀 물고기 밥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상철의 비극적인 실종은 승현에게 비트코인이 ‘패가망신’의 상징으로 깊이 각인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불편한 감정과는 달리, 채팅방의 다수 회원은 이 교수의 새로운 제안에 폭발적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마치 새로운 구원자를 만난 듯 열렬히 환호했다. 이 교수는 회원들의 호응에 힘입어 “앞으로 가상화폐와 주식 투자를 병행하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부터 강의 내용은 오로지 가상화폐로만 채워졌다. 다음 날 저녁, 이 교수는 ‘아이카프’(IEKAF)라는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를 소개했다. “오늘 소개할 ‘IEKAF’는 미국 재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 라이선스를 받아 누구나 믿을 수 있는 해외 거래소입니다. 지난 5년 동안 저도 이 거래소를 통해 투자해 왔고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큰 수익을 냈어요. 앱스토어나 구글플레이에서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회원 가입을 진행해주세요. 궁금한 점은 제 비서나 거래소 내 한국인 전담 매니저에게 문의하시면 됩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승현의 마음속에서 낡은 기억과 새로운 유혹이 충돌하며 혼란의 소용돌이가 일었다. 씁쓸한 과거의 교훈을 지켜야 할지, 아니면 이 교수의 제안을 받아 들여 신세계를 열어야 할지 고민이 커졌다. 이성조 교수의 강의가 끝나자 가상화폐 거래소 IEKAF의 매니저 한 명이 승현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앞으로 회원님의 전담 매니저가 될 박세훈입니다. 가상화폐 거래소 회원 가입이 어려우시면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저희 IEKAF에서는 처음 가입하시는 회원님들께 가입 선물로 미화 300달러에 해당하는 300 USDT를 제공합니다. 가입 절차가 완료되는 대로 제게 말씀해주시면 즉시 회원님 계좌로 충전해 드립니다.” ‘가입만 해도 우리 돈 40만원 넘는 돈을 준다고?’ 승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국내 증권사들이 가입 선물로 1만원 예치금을 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파격적 혜택이어서다. 반신반의하며 회원 가입을 마치자, 정말로 그의 계좌에 ‘300’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찍혔다. 눈앞에서 기적이 벌어진 것만 같았다. “이 돈을 다 날려도, 내 돈만 넣지 않으면 전혀 손해 볼 게 없네.” 그동안 가상화폐에 대해 굳게 닫아둔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짜릿한 발걸음의 시작이었다. 다음 날 저녁, 이 교수는 IEKAF 이용법을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처음 접하는 낯선 화면이었지만, 주식 거래에 능숙한 승현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 주식 앱보다 단순하고 직관적이어서 사용이 편했다. 밤 10시가 가까워지자 이 교수가 ‘연습 거래’를 제안했다. “자, 다들 300 USDT 갖고 계시죠? 이제 직접 거래를 시작해 봅시다. 현물 계좌로 들어가셔서 매수 대상을 ‘비트코인’으로 지정하시고요. 예치금의 10%만 투자하세요.” 승현은 망설임 없이 IEKAF에서 받은 300 USDT의 10%인 30 USDT(약 4만 2000원)로 비트코인을 매수하고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15분 뒤 채팅방에 “매도”라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승현은 곧바로 갖고 있던 비트코인을 모두 팔았다. 15분 만에 0.9 USDT(1260원)를 얻었다. 수익률 3%. 금액이 크진 않았지만, 긴장감으로 시작한 첫 코인 투자에서 재미와 짜릿함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다음 날 저녁 7시. 승현은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김가영 비서의 강의 안내 메시지가 올라오자 망설임 없이 ‘777’을 눌러 출석 체크를 마쳤다. 7시 30분이 되자 이 교수가 강의를 시작했다. 이날도 주제는 가상화폐였다. 주식은 이제 완전히 접은 것처럼 보였다. 8시 반, 그가 회원들을 새로운 세계로 안내했다.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상화폐 선물 거래였다. “선물 거래는 매우 위험합니다만, 다행히도 저는 이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하우를 쌓아왔습니다. 저렇게 변동성이 극심해도 제 눈에는 최적의 매수·매도 패턴이 뚜렷하게 보여요. 여러분도 제 말만 잘 들으시면 단 한 번의 거래로 20~30%의 수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이 교수는 현물 계좌에 있는 USDT 예치금을 선물 계좌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그리고는 수많은 코인 가운데 ‘QUANTA’를 지정하며 “투자금의 20%만 매수하세요”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현물 거래에서 자신감을 얻은 승현은 이 교수의 제안에 아무런 거부감도 느끼지 않았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300 USDT의 20%인 60 USDT(8만 4000원)로 QUANTA를 샀다. 20분 뒤 이 교수의 지시에 따라 매도 주문도 넣었다. 결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경이로웠다. 60 USDT를 투자해 20 USDT(2만 8000원)를 벌었다. 20분 만에 투자금액 대비 33%라는 놀라운 수익률이었다. 1억원 어치를 넣었다면 20분 만에 3300만원을 챙겼을 것이다. 종일 흙냄새를 맡으며 땀 흘려야 얻을 수 있는 수확의 보람과는 다른, 매우 강렬하고 중독성 있는 짜릿함과 황홀함이었다. 승현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가상화폐에 대한 마지막 우려가 모두 녹아내렸다. 대신 그 자리를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설렘과 기대감이 채웠다. 이날부터 승현은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다음 강의가 너무 궁금했고 다음 거래가 너무 기대됐다. 그의 삶에 뒤늦게 찾아온 ‘미지의 유혹’이 너무나 즐거웠다. 그것이 자신의 영혼을 파괴할 ‘쥐약’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 “DK아시아, 인천 최고 핫플레이스 개장” 로열파크씨티Ⅱ, 국내 최대 순백의 메밀꽃과 황토 십리길 9월 20일 오픈

    “DK아시아, 인천 최고 핫플레이스 개장” 로열파크씨티Ⅱ, 국내 최대 순백의 메밀꽃과 황토 십리길 9월 20일 오픈

    -프리미엄 리조트 라이프와 건강한 쉼, 일상이 힐링 되는 도심 속 ‘핫플’ 개장 -9월 27일, 가을밤을 수놓는 인천 대표 문화 행사 ‘2025 로열 가든 페스티벌’ 개최 -국내 최대·최장 ‘메밀꽃·황토 삼십리길’ 조성 통해 도심 속, 건강한 쉼을 위한 명소 조성 예정DK아시아는 신검단 로열파크씨티Ⅱ에 ‘검단 메밀꽃·황토 십리길’을 개장하며, 도심 한 가운데서 프리미엄 리조트 라이프와 함께 건강한 쉼과 일상의 힐링을 즐길 수 있는 인천 최고의 핫플레이스를 선보인다고 밝혔다. 검단 메밀꽃·황토 십리길 오픈 축하 행사 기간은 오는 9월 20일부터 10월 31일까지이며 오는 27일에는 개장 축하 공연으로 인천 대표 문화 행사인 ‘2025 로열 가든 페스티벌’ 특집 콘서트도 개최한다. 행사 기간 방문객들은 메밀꽃이 활짝 핀 풍경 속에서 황톳길 맨발 걷기와 로열 트레인 투어, 불꽃놀이 등 다채로운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즐기며 가을밤 잊지 못할 추억과 특별한 순간을 만나게 된다. 이번 행사를 위해 조성된 검단 메밀꽃·황토 십리길의 규모는 약 13만8천㎡(4만 평)로, 국내 최대 규모이자 메밀꽃과 황톳길이 함께 어우러진 전국 최초의 사례다. 오는 10월까지 순백의 메밀꽃이 절정을 이루며 장관을 이룰 전망이다. 특히 메밀꽃은 ‘연인과 사랑의 약속’이라는 꽃말을 지니고 있어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과 새로운 시작을 상징한다. 실제로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와 ‘도깨비’에서는 사랑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메밀꽃밭이 등장했으며, 영화 ‘서편제’에서도 남도의 들녘을 수놓는 순백의 메밀꽃이 인상 깊게 그려졌다. 이처럼 한국인의 감성과 서정 속에 깊이 자리한 메밀꽃의 풍경 속에서 방문객들은 사랑과 약속의 의미를 되새기며 건강한 쉼과 일상의 힐링, 그리고 특별한 추억과 감동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황토 십리길은 다양한 길이와 다채로운 풍경을 자랑하는 A코스부터 B코스, C코스 그리고 D코스와 E코스까지 총 5개 코스로 십리(4.0km)가 넘는 총 4.5km에 달한다. 다양한 코스로 조성된 황톳길은 방문객 발걸음 하나하나에 편안함을 전하기 위해 특별히 투수성을 확보해 조성됐다. 덕분에 비가 온 뒤에도 황토가 맨발에 붙지 않아 쾌적하게 걸을 수 있으며, 황토 특유의 따뜻하고 포근한 촉감을 느끼며 자연 속에서 진정한 힐링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동시에 30명 이상이 이용할 수 있는 국내 최대규모의 아름다운 세족장이 마련돼, 가족과 이웃 그리고 친구와 연인들이 황톳길을 걸은 뒤 휴식을 즐기는 특별한 힐링의 순간을 선사한다. 또한 E코스에는 메밀꽃과 함께 추후 1,500주의 단풍나무를 심어 검단 메밀꽃·황토 십리길 축제 이후에도 즐길 수 있는 단풍 터널을 조성해 방문객들에게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특히 전체 수목의 80%를 홍가시, 둥근사철, 둥근황금사철, 블루엔젤, 선주목, 회양목 등 상록수 계열로 조성해 겨울에도 푸르름을 유지하며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조경을 선보였다. 이번 검단 메밀꽃·황토 십리길 오픈을 기념해 9월 27일 OBS가 주최 및 주관하고 DK아시아가 후원하는 인천 대표 문화 행사 ‘2025 로열 가든 페스티벌’ 특집 콘서트가 개최된다. 축제는 웅장한 대북 공연을 시작으로 소리꾼 오정해의 무대가 펼쳐지며 화려한 불꽃놀이와 팝페라 가수 아리현, 싱어송라이터 조정민, 여성 발라드 가수 왁스, 원조 꽃미남 가수 김원준 등 다양한 아티스트가 출연해 풍성한 공연을 선사한다. 행사가 펼쳐지는 기간 토요일에는 로열파크씨티 플라워가든에서 다양한 공연과 무료 게임존이 운영되며 방문객들을 위한 로열 트레인 투어, 황톳길 맨발 걷기, SNS 인증샷 이벤트와 다채로운 먹거리 공간도 마련된다. 프리미엄 리조트 라이프를 통해 건강한 쉼과 일상이 힐링이 되는 로열파크씨티에서 가족, 연인, 친구 그리고 이웃들이 함께 즐기며 가을밤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추억이 될 것이다. 김정모 DK아시아 회장은 “오는 2026년 7월 검단구 분구를 앞두고 국내 최초로 메밀꽃과 황톳길을 함께 조성한 1차 ‘검단 메밀꽃·황토 십리길’을 통해 로열파크씨티를 도심 한가운데서 즐길 수 있는 인천 최고의 힐링 핫플레이스로 발전시켜 나가겠다” 며 “DK아시아는 2차(110만2천㎡, 33만 평) 로열파크씨티Ⅲ과 3차(50만6천㎡, 15만 평) 로열파크씨티Ⅴ의 녹지를 통해 국내 최대규모, 국내 최장 12km에 달하는 ‘메밀꽃·황토 삼십리길’과 단풍 터널을 조성함으로써 더 큰 감동을 선사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DK아시아는 검단 메밀꽃·황토 십리길, 로열 가든 페스티벌을 인천 대표 문화 행사로 자리매김 시켜 나갈 것이며 대한민국 첫 번째 프리미엄 리조트 도시 로열파크씨티의 진정한 가치는 멀리 떠나지 않아도 내 집 앞에 마련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채워지는 것으로 로열파크씨티에 거주하는 로열파크씨티즌들은 프리미엄 리조트 라이프를 통해 건강한 쉼과 일상이 힐링이 되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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