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집값 전쟁
    2026-10-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총 320 건
  • “K팝 생태계 새로운 접근 돋보여… 조어 사용은 신중해야” [독자권익위]

    “K팝 생태계 새로운 접근 돋보여… 조어 사용은 신중해야” [독자권익위]

    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회는 지난 29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제202차 회의를 열고 9월 한 달간의 서울신문 보도를 평가했다. 회의에는 김춘식(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위원장을 비롯해 박경환(서울시 민생노동국장), 이명행(SK하이닉스 PR기획팀장·변호사), 이상은(고려대 미디어학과 석사과정·교사), 홍정석(법무법인 화우 GRC그룹장·파트너 변호사) 위원이 참석했다. 차윤주(연세드림세무회계 대표·세무사) 위원은 서면 의견을 냈다. 위원들은 ‘K팝 생태계, 지속 가능한가요?’ 기획이 산업 내부의 양극화 문제를 구조적으로 분석해 업계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호평했다. 후속 보도가 필요하다는 점도 짚었다. 다만 제목이나 본문의 조어는 기사 내용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신중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다음은 위원들의 주요 의견. 이상은 고려대 미디어 석사과정 K팝 생태계, 수치로 구조 한계 제시지자체·관객 등 목소리도 담겼으면3일·8일 연재한 K팝 생태계 기사는 최근 일부 중소 기획사 아이돌이 유튜브 등을 통해 급부상하는 상황에서 흥미로운 기획이었다. 소수의 성공담이 아닌 산업 구조를 기준으로 문제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K팝을 다룬 기사들을 보면 ‘개천에서 용 난다’고 특정 사례를 부각하며 구조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낮은 생태계 특성을 외면한다. 반면 이번 서울신문 기획은 수치로 구조적 한계를 보여줬다. 다만 데이터 해석이 미흡했다. 신인 아이돌의 41%가 사라졌다고 했지만 이 문제가 대형사 쏠림 현상 때문인지, 실물 음반 시장 전체가 위축돼서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K팝을 수도권의 전유물이라고 소개하면서 지방자치단체, 지역 공연장 관계자, 관객 등의 목소리가 없었던 점도 아쉽다. 공연장 사용료 조례 관련 내용으로 기획이 끝나 마무리가 가볍다는 인상도 받았다. 22일자 ‘다음달부터 4세·7세 고시 금지’ 기사는 국무회의 의결 당일 학원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핵심 정보를 담았지만 모든 내용이 교육부발이었고, 인용된 취재원도 장관뿐이었다. 정책의 수용성, 실효성, 역효과 등을 판단할 근거가 빠졌다. 18일자 ‘또 님비에 막힌 여명학교’ 기사는 현장 취재를 통해 반대 주민 측 논거와 교육청의 추진 근거를 함께 설명하며 대립 구도를 입체적으로 담았다. 그러나 기사 제목에서 인용된 ‘따나라’등 발언은 본문에서 확인할 수 없었다. 건립 절차, 탈북민에 대한 편견 등을 짚었어야 했는데 성급하게 ‘님비’로 규정했다. 김춘식 한국외대 교수‘추·석 대전’ 같은 조어 출처 필요대법관 제청, 다각적 해설은 부족본문 내용에 불필요한 조어가 많았다. 22일자 ‘커지는 추·석 대전’ 기사에서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추미애 경기지사 사이의 긴장감을 추·석 대전으로 표현했다. 최고위원 사이에서 의견이 갈린 상황인데도 제목은 두 사람의 맞대결처럼 보이게 묘사했다. 명칭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방소비세율 인상 같은 재정 의제가 신경전 뒤로 밀려 무엇을 논의했는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조어는 특정한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써야 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고소영·강부자’가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인사가 편중된 구조 문제를 정확히 짚었기 때문이다. 기사에 인용하기 위해선 누가 만든 조어인지 밝힌 다음 구조와 정책을 명확히 드러내야 한다. 법무부·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개인의 흠결을 인사 시스템의 문제로 확장한 건 긍정적이다. 22일자 ‘관대한 셀프 답변과 세평이 부른 줄낙마’ 기사는 미국 사례로 비교의 틀을 제공했지만 독립 검증 기구 제도를 설계하기 위한 핵심 질문이 없었다. 기구를 어디에 둘지, 대통령 인사권과 어떻게 양립시킬지, 법적 근거는 무엇인지 제시할 필요가 있다. 대법관 제청을 둘러싼 청와대와 대법원 간 갈등 보도는 사건 초기 폭넓은 지면 구성으로 양측에 책임을 묻으며 객관성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달에 지면 보도가 끊겼고 관측 기사가 빈자리를 메웠다. 취재원 구성도 비대칭적이었다. 청와대 측 발언이 한 번도 실명으로 인용되지 않았고, 대법원장 논리에 가까운 익명 판사들이 법적 쟁점을 설명했다. 실명 헌법학자 의견은 없었다. 기 싸움, 치킨게임, 전면전, 파국 등 갈등 프레임이 주를 이루면서 정작 쟁점을 풀어낸 해설은 부족했다. 다각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정치적 맥락을 고려해 제청권과 임명권의 관계, 학설 대립, 선례를 정리한 문답형 해설. 대법관 공석으로 늦어지는 재판 실태 등을 보도해야 한다. 박경환 서울시 민생노동국장AI와 차보험료 기사, 알기 쉽게 설명K팝 여러 뒷이야기들 이어졌으면K팝 생태계 기획은 자금력 싸움으로 번진 기획사 업계의 현실과 우려를 적확하게 지적했다. 정부, 공공기관을 빼고 철저히 업계를 중심으로 취재해 의미 있었다. 두 편으로 끝난 게 아쉽다. 후속 기사에 소규모 기획사의 아티스트 이야기가 담기길 바란다. 1일자 ‘빛바랜 90년대생 장관’ 기사가 1면에 실렸는데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90년대생’이라고 표현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용 후보자가 90년대생의 생각과 행동을 대표하는 게 아니어서 결과적으로 낙마한 것이다. 9일자 ‘능력·공정 따지는 2030, 실망 커진다’ 기사에서는 용 후보자에 대해 10여명의 청년들의 의견을 들었지만 설득력이 부족했다. 두잇서베이 같은 설문조사 플랫폼을 이용하면 단시간에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21일자 ‘한국, 세금·복지 재분배 OECD 꼴찌 수준’는 1면에 쓸만한 기사였다. 결론을 두괄식으로 제시해 명쾌했다. 통계 기사가 높게 평가받지 못해도 수준 차이는 분명히 있다. 7일자 ‘AI가 차 사고 줄여주는데 차보험료는 왜 안 내리나’ 기사는 AI를 통한 이익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연휴가 이어지면서 지뢰 추정 폭발 사고의 진상 파악이 늦어지는 부분에 대해선 28일자 ‘DMZ 폭발’ 현장도 못 봤다’ 기사 이후 진실에 다가가는 취재가 필요하다. 이명행 SK하이닉스 PR기획팀장부동산 기사엔 더 객관적인 언어를밀·국내 빵값 관계 설명 없어 아쉬워독자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1일자 ‘서울 집값 희비’ 기사는 강남과 강북 지역의 상반된 시장 분위기를 거래 데이터와 현장 취재로 전달한 점이 유익했다. 다만 제목에 ‘희비’는 그 기준을 거주자, 매수자, 세입자 중 누구에게 뒀는지 모호해 결과적으로 집값 상승이 기쁜 것이라는 프레임으로 읽힐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을 다룰 때는 가치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언어를 써야 한다. 2일자 ‘전쟁에 치이고 가뭄에 말라붙은 밀 곳간…빵값 대란 온다’ 기사는 글로벌 식량위기의 원인을 분석해 시의적절했으나 국내 빵값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지 않아 아쉬웠다. ‘국제 밀 가격 상승이 국내에 어떤 경로로 반영되는지, 환율 등 변수가 소비자가격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줬으면 더 와닿았을 것이다. 3일자 ‘국민연금 2065년 소진’ 기사는 국회 예산정책처의 지난해 전망치를 다뤘다. 연금 고갈 시점은 관계 기관이 예측할 때마다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단정적인 의미의 제목을 붙이면 수치가 굳어진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또 예산정책처가 지난 6월 소진 시점을 2069년으로 수정했고 서울신문이 이 내용을 보도했던 흐름을 설명했으면 이해하기 편했을 것이다. 16일자 ‘독약 게이트 맹공에… 김승원 “문과라 몰라”’ 기사도 신중하게 제목을 달아야 했다. 홍정석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공소청·중수청 출범 등 내용 집중피해자 대처·문제 요소 짚어줘야검찰이 없어지고 공소청, 중수청이 출범하는 의미를 짚었다. 검찰 기사가 쏟아져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형사 사건에 휩쓸리면 어떻게 수사받게 될지 떠올려보게 하는 기사가 많았다. 타 매체들이 정치적 승자가 누군지 조명할 때 29일 ‘새달 2일 조용히 간판 거는 공소청’ 기사 등은 내부 분위기를 자세하게 전달하며 독자가 관심 있는 내용에 집중했다. 국정감사 관련 기사가 많았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29일자 ‘전자장치 달고 석방 3배 늘었는데… 감독 인력은 감소’ 기사 등은 유익하고 읽기 편했다. 반면 의원실에서 받은 자료만 활용하고 반론이나 추가 설명을 담지 않은 기사는 심층 취재로 내용을 보강해야 한다. 형사 사법 체계의 변화로 로펌에 새로운 시장이 열렸기 때문에 다음달엔 범죄 피해자들에게 벌어지는 상황과 대처 방안, 수사 공전 여부, 사건 처리 중 문제 요소 등을 짚어줄 필요가 있다. 차윤주 연세드림세무회계 대표어떻게 살지를 묻는 인터뷰 인상적李 떠나는 여성, 일상 문제로 확장K팝 생태계 기획과 같이 표면적인 사실에서 한 발 더 들어가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기사들이 눈길을 끌었다. 인사 논란, 아시안게임 등 화제성이 큰 이슈에 휩쓸리기 쉬운데 스트레이트 보도와 기획·분석 기사를 고르게 배치해 균형을 지켰다. 28일자 법의학자인 유성호 서울대 의대 교수의 월요 인터뷰 기사는 이미 대중적으로 익숙한 법의학 사건 내용만 반복하지 않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게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일간지의 긴 인터뷰가 필요한 이유를 보여줬다. 의료인 조력자살 등 사회적 논쟁이 큰 사안은 향후 별도로 의료계, 법조계, 환자 등 입장을 모아 공론을 확장해도 의미 있을 것이다. 14일자 ‘李 떠나는 2030 여성’ 기사는 여성 의제 소멸, 보완수사권 폐지 논란, 주거·치안·자산격차 등 정부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정치공학적 접근에 머물지 않고 여성들의 실망감을 일상 문제까지 확장해 살폈다. 청년이나 여성을 표밭으로 취급하는 정치권의 관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것도 의미 있었다. 기사 내용뿐 아니라 그래픽과 지면 구성도 적절했다. 다만 직접 여성들을 폭넓게 취재했다면 설득력이 더 컸을 것이다.
  • 추석 밥상 달군 ‘농지 전쟁’… 與 “죄송스럽다” 野 “수탈 멈춰라”

    추석 밥상 달군 ‘농지 전쟁’… 與 “죄송스럽다” 野 “수탈 멈춰라”

    민주당, 농민 불안감 달래기 주력野 “서민·청년 인내심 한계” 맹공 여야는 연휴 마지막 날인 27일 추석 명절 청취한 엇갈린 민심을 전하며 정국 주도권 경쟁을 벌였다. ‘민생 올인’을 강조한 더불어민주당은 부동산 정책에 대해선 민심을 반영해 보완하겠다고 했고, 농지 전수조사로 인한 불편함에는 “죄송하다”며 몸을 한껏 낮췄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번 추석 민심을 ‘일촉즉발’로 표현하며 이재명 정부를 향해 “농지 수탈, 부동산 수탈을 즉각 중지하라”고 했다. 권칠승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추석 민심 기자간담회를 열고 “연휴 기간 가장 무겁게 들은 말씀은 역시 민생이었다”며 “이번 정기국회 대원칙은 민생 올인 정책 국회”라고 강조했다. 이어 “수출과 경제성장의 온기가 골고루 퍼지지 못한 것 같다”며 “이런 것들이 정책을 담당하는 정부·여당에 뼈아픈 부분”이라고 했다. 권 의장은 추석 밥상머리를 달군 농지 전수조사와 관련해선 “여러 불편함을 느끼는 분들이 많이 계셨을 것”이라며 “저도 인정하고 그 부분에 대해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연휴 기간 지역 주민들을 만난 여당 의원들도 농지 조사에 대한 농민 불안감을 달래는 데 주력했다. 재선 A의원은 “농촌에 대한 지원을 더 체계적으로 하기 위한 조치이지, 강제로 땅을 사들이거나 소유자를 처벌하기 위한 조사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다”고 했고, 초선 B의원은 “조사원들에게 조사받을 때 위축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토로하는 분이 계셔서 투기 근절 차원에서 시행되는 조사라고 설명드렸다”고 전했다. 지지율이 40%대 초반 박스권(리얼미터 조사 기준)에 머무는 여당으로선 돌파구가 필요하지만 서민들의 체감 경기가 녹록지 않다 보니 지도부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박성준 수석대변인은 간담회에서 “부동산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도 잘 안다”며 “민심이 정책에 잘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서울 지역의 한 의원은 “추석 이후 김민석 대표가 추진하는 위원회 등을 통해 양극화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 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반면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농지 전수조사, 부동산 정책 등에 대해 날을 세웠다. 장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민들의 분노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며 “죄다 들쑤셔 놔서 몇 남은 청년들마저 일손 놓고 떠날 판이라고 분노했다”고 했다. 장 대표는 “한 줌도 되지 않는 투기꾼들 잡겠다고 농민들 삶을 다 망가뜨리는 게 이 정권의 농업 정책인가”라며 “대도시 인근 몇 안 되는 지역의 농지를 제외하면 농지은행조차 매입을 잘 안 하려고 한다. 그게 투기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반문했다. 장 대표는 또 “명절이 지나고 연말 이사철이 가까워 오면서 집 걱정하는 국민들도 정말 많았다”며 “서민들은 전월세 걱정으로 밤잠을 못 이루고, 작은 집이라도 한 채 사 보려고 해도 대출까지 나오지 않는다. 집 가진 국민들은 세금 폭탄에 떨고 있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서는 “집값 떨어진다는 좌파 부동산 유튜브 방송 좀 그만 보고 부동산 정책 대전환 하기 바란다”고 했다. 장 대표는 “자영업자들은 장사가 안돼서 죽을 노릇, 청년들은 일자리 없어 ‘전업 자녀’가 되고 있다”며 “국민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장외 집회 개최 여부를 묻는 질문엔 “앞으로 대통령과 민주당이 어떻게 하는지 좀 더 살펴보겠다”고 답했다.
  • 폐허 위에 삶과 예술을 짓다… 반세기의 시간 담은 ‘바비칸’ [포토다큐]

    폐허 위에 삶과 예술을 짓다… 반세기의 시간 담은 ‘바비칸’ [포토다큐]

    지난 8일(현지시간) 찾은 영국 런던 ‘바비칸’은 잿빛 콘크리트와 초록빛 자연이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거대한 기둥 아래로 물이 흘렀고, 물이 고여 만들어진 연못 위론 수련이 떠다녔다. 각 세대 발코니마다 나무와 화분이 자랐다. 연못가와 광장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거친 콘크리트 사이를 자연이 메우고 사람들의 일상이 다채로운 공기를 더하는 곳. 주거단지면서도 미학적 가치와 자연의 역동성, 문화적 활기를 한데 품은 바비칸의 풍경이었다. 뜻밖에도 이 풍경의 시작은 폐허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크리플게이트(현 바비칸 부지) 일대는 사실상 초토화됐다. 전쟁이 끝난 뒤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하던 런던시는 이 부지를 단순히 복구만 하는 건 원치 않았다. 약16만 5000제곱미터에 달하는 그곳을 완전히 새로운 주거 패러다임의 시험장으로 삼고자 했다. 단순 거주공간이 아닌, 그 안에만 있어도 삶을 향유할 수 있는 ‘도시 속 작은 도시’를 구성하려 한 것이다. 그 뜻을 받들어 건축회사 ‘체임빌런, 파월 앤 본’이 설계의 총대를 멨다. 2000여가구의 주택과 함께 학교, 교회, 도서관 등 생활 인프라 시설을 배치했다. 건물 사이에 정원과 인공호수, 공중 보행로를 만들어 단조롭지 않게 공간을 연출했다. 특히 대규모 복합문화시설 ‘바비칸센터’는 화룡점정이었다. 1982년 문을 연 바비칸센터엔 1943석 규모의 콘서트홀을 비롯해 두 개의 공연장과 세 개의 영화관이 들어섰다. 그뿐 아니라 미술관과 도서관, 2000종 이상의 열대식물이 자라는 온실까지 갖췄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개관 때부터 이곳을 거점으로 삼았고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무대에 올랐다. 우리나라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그중 한 명이다. 아파트 단지 안에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상주하는 공연장이 공존한다고 상상해보면, 바비칸이 지닌 주거 이상의 의미와 위상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놀라운 지점은 이토록 풍성한 도시를 감싼 외피가 투박하기 그지없는 콘크리트라는 사실이다. 콘크리트는 바비칸의 건축 양식 ‘브루탈리즘’을 대표하는 소재다. 브루탈리즘은 단순한 형태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특징으로 한다. 재료의 순수성, 즉 콘크리트 본연의 거친 질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화려한 장식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대신 건물 전체를 콘크리트 조각상처럼 만들어 기하학적 예술성을 살렸다. 그렇다면 바비칸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집값과 임대료가 높은 가격에 형성돼 있어 주로 고소득계층 및 경제적 상위층이 입주민의 주를 이룬다고 한다. 바비칸을 처음 설계할 당시로 돌아가보면, 런던시의 의도 역시 이와 맞아떨어진다. 문화, 편의, 자연 등에 대한 수요와 자금 여력이 동시에 있는 이들을 런던 도심으로 유인할 방책이 바로 바비칸이라는 ‘주거 유토피아’ 구축이었던 셈이다. 바비칸은 결국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집에 ‘어떤 삶’을 담을 것인가. 건축과 예술을 좋아한다면 런던에서 이 거대한 콘크리트 도시를 한번 걸어보는 건 어떨까. 거친 벽면 사이를 걷다 보면 그곳에 켜켜이 쌓인 반세기의 시간을 마주할 수 있다.
  • 금리 상승 전망 2년 11개월 만에 최고… 소비심리는 반등·집값 상승 전망도 여전

    금리 상승 전망 2년 11개월 만에 최고… 소비심리는 반등·집값 상승 전망도 여전

    6개월 뒤 금리가 지금보다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강해지면서 금리수준전망지수가 2년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출 호조와 소비 개선 등에 힘입어 전반적인 소비심리는 한 달 만에 반등했고, 집값 상승 기대도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9월 소비자동향조사’을 보면, 6개월 뒤 금리 수준을 어떻게 예상하는지를 보여주는 금리수준전망지수는 128로 전월보다 3 포인트 올랐다. 2023년 10월(128) 이후 2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현재 가계부채 수준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는 현재가계부채지수도 101로 1 포인트 올라 2024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비심리는 한 달 만에 반등했다.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의 심리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월 106.6으로 전월보다 2.1 포인트 상승했다. 100보다 높으면 장기 평균보다 소비심리가 낙관적이라는 뜻으로, 지난 4월 이후 5개월 연속 100을 웃돌았다. 한은은 수출·소비 등 양호한 실물경제 흐름과 증시 변동성 축소 등에 따라 소득 여건 개선 기대가 커진 영향으로 분석했다. 세부적으로 현재경기판단은 83으로 전월보다 4 포인트 올라 가장 큰 폭으로 개선됐다. 앞으로 가계 수입이 어떻게 될지를 보여주는 가계수입전망도 102로 2 포인트 상승해 지난 2월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박용민 한은 경제심리조사팀장은 “반도체 수출 호조가 설비투자와 소비 개선으로 이어지면서 소득 여건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집값이 어떻게 움직일 것으로 보는지를 나타내는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25로 전월과 같았다. 지난 7월 127로 2021년 9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뒤 지난달 2 포인트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서울은 133으로 가장 높았다. 이에 대해 박 팀장은 “수도권 주택 가격 오름세가 높은 수준이라 주택 가격 상승 기대도 여전히 높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비심리가 계속 개선될지는 불확실하다. 박 팀장은 “주식시장 상황이나 중동 전쟁 등 여러가지 돌발 변수가 있기 때문에 우상향할 것이라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고 덧붙였다.
  • [세종로의 아침] 코 옆의 점보다 중요한 것

    [세종로의 아침] 코 옆의 점보다 중요한 것

    덴마크 여성 총리 메테 프레데릭센은 지난달 말 한 성형외과 의사로부터 인스타그램 다이렉트메시지(DM)를 받았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4년 넘게 전쟁을 이어 가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다른 북유럽 국가 정상들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한 뒤 막 귀국한 길이었다. 총리가 받은 메시지에는 그의 코 옆에 난 작은 점(사마귀)을 없애 주겠다는 제안이 담겨 있었다. 프레데릭센 총리는 의사의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 주고받은 메시지 캡처본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는데 그는 “괜찮다. 나는 내 몸에 만족한다. 내 몸에 대한 남성 성형외과 의사의 의견은 필요 없다”고 거절했다. 어떤 이는 대중의 다양한 의견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정부의 수반이 “그토록 사소한 일에 분개해서 되겠느냐”고 할지 모른다. 실제로 덴마크 현지 매체에 따르면 야당의 한 남성 의원은 프레데릭센 총리의 대응을 두고 지난 7년간 해결 못 한 국정 현안이 산더미라며, 메시지를 보낸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취지로 비꼬았다. 하지만 지도자라고 해서 자기 신체에 대한 부적절한 조언까지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없다. 더욱이 코 옆의 점처럼 정치적 자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신체적 특징을 타인이 제멋대로 ‘결점’으로 규정하고 ‘고쳐야 할 대상’이라고 단정하는 건 정치적 비판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프레데릭센 총리가 의사의 제안에 “완벽하지 않은 내 모습에 만족한다”고 응수한 데 통쾌함을 느낀 이유다. 통쾌함도 잠시, 곧 착잡해졌다. 2019년부터 덴마크를 이끌어 온 베테랑 지도자조차 여전히 이런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 때문이다. 사회민주당을 이끌며 41세에 최연소 총리에 오른 프레데릭센 총리는 유럽을 대표하는 여성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위협에 맞서고,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하는 등 유럽 안보 사안에서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며 강인한 리더십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런 지도자조차 외모 평가를 피해 갈 수 없다는 사실은 못내 씁쓸하다. 더구나 프레데릭센 총리가 이런 조언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총리는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이가 그의 치아, 머리숱 등 외모를 문제 삼았다고 털어놨다. 여성 정치인들이 정치적 역량이 아닌 외모나 의상 등으로 평가받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여성은 정치적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강인함과 여성에게 기대되는 온화함이라는 상반된 기준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이중 구속’에 시달린다. 여성 지도자가 충분히 강인한 모습을 보이면 ‘여성스럽지 않다’는 평가가, 반대로 여성성을 드러내면 ‘지도자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의심이 따라붙는다. 어느 쪽을 택해도 평가의 대상이 되는 셈인데, 이런 논란은 여성 정치인의 정책 성과나 정치적 자질에 대한 주의를 분산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여기엔 언론의 책임이 크다. 미국 ‘여성미디어센터’ 공동 설립자인 고 로빈 모건은 “언론 보도에서 여성을 불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저널리즘이며 민주주의에도 해롭다”고 지적한 바 있다. 프레데릭센 총리는 의사에게 “메시지를 보낼 거라면 내 코 말고 좀더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해 줬으면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여성을 외모라는 프레임에 가두려는 시선에 대한 경고이자 지도자를 그저 지도자로 평가해 달라는 요구다. 총리의 말대로 ‘코에 난 작은 점’보다 덴마크인으로서 다룰 중요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었다. 미국의 위협에 맞서 그린란드를 지킬 장기 전략은 무엇인지, 러시아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대(對)유럽 하이브리드 위협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급등하는 생활비·집값 문제는 어떻게 풀 것인지. 가치 있는 질문이었다면 답변도 달랐을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정치인의 얼굴에 난 작은 점이 아니라 그가 지닌 정치 철학과 소신이다. 이제는 얼굴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자. 조희선 국제부 기자(차장급)
  • “서울 잔류 제로”…李, 공공부문 대수술로 ‘국토 재편’ 승부수

    “서울 잔류 제로”…李, 공공부문 대수술로 ‘국토 재편’ 승부수

    350개 지방으로… 109개 통폐합 ‘균형발전’ 페달로 국정 주도권 잡고 성장 동력 확충에 집값 안정도 기대 공공기관 재설계… 행정 효율 강화 李 “인프라 민영화는 국민 부담 늘려” 공공기관 통폐합으로 ‘차단’ 조치 정부가 부처·공공기관의 ‘지방 이전’과 공공기관 ‘통폐합’ 카드를 속도감 있게 내놓은 배경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정책적 포석이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핵심 국정 과제에 가속페달을 밟아 국정 주도권을 쥐는 동시에 수도권과 지방의 비대칭적인 집값을 안정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기관 이전과 통폐합에 긴 시간이 걸리는 만큼 지금이 아니면 정책 추진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도 로드맵을 한 박자 빠르게 공개한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1차 이전 때 수도권 집중 해소 못해”법무부·검찰청·경찰청 모두 세종 이전정부는 3일 법무부·성평등가족부 등 중앙행정기관 세종 이전과 350여개 수도권 공공기관 지방 이전, 109개 공공기관 통폐합을 내년 상반기부터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수도권 1극 체제 해소를 통한 국토 균형 발전과 유사·중복 기관의 과감한 통폐합으로 행정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한성숙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행정·공공기관 이전 및 공공기관 기능개혁’ 브리핑에서 “많은 문제들의 출발점에 수도권 1극 체제와 국토 불균형이 있다”며 “이번 발표는 메가프로젝트, 5극3특 성장엔진 추진 등과 연계해 수도권 과밀 완화와 지역 성장동력 마련을 위한 상징적·실질적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법 개정 절차 없이 즉시 가능한 기관은 곧바로 이전·통폐합하고 법 개정이 필요한 경우 연내 입법을 거쳐 내년 상반기부터 이전을 가시화하기로 한 것도 ‘수도권 잔류 최소화’와 ‘속도전’으로 실현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2012년부터 2021년까지 43개 부처 1만 5000여명이 세종으로 이전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수도권에 여전히 많은 기관이 있다”며 2차 이전에 나섰다. 법무부·검찰청·경찰청 등 17만명 규모의 치안부처 본부를 세종에 둠으로써 정책의 집적 효과와 국정 효율을 높이려는 조치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중앙행정기관 이전은 행정 효율을 높이고 세종의 행정중심복합도시 기능을 강화해 국가 균형 성장의 기반을 더욱 튼튼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李 “수도권 집중 못 풀면 미래 없다”1차 공공기관 이전의 ‘수도권 쏠림’ 완화 효과가 제한적이었다는 판단도 깔렸다. 2005~2019년 150개 기관, 약 5만명이 지방으로 옮겨 종사자의 70%가 정착했지만 수도권 집중을 꺾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1차 이전은 수도권 집중 추세를 근본적으로 반전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았다”며 “2차 이전은 혁신도시 전략산업과 연계한 기관을 집적해 기업 유치 등 연쇄 효과를 내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2차 공공기관 이전에 대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서울에 남는 기관을 제로화하라”고 김 장관한테 지시한 데 이어 지난 3월 충북 타운홀미팅에서 “2차 공공기관은 가급적 집중해 이전할 것”이라며 ‘흩뿌리기식 이전’에 선을 그은 바 있다. 이 대통령은 그간 “수도권 집중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나라의 명운이 걸렸다”라며 국토 균형발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 왔다. 실제 지금까지 정부의 정책도 모두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연결됐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한 ‘3대 메가프로젝트’를 비롯해 이재명표 지역화폐, 농어촌 기본소득,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지방 기업 근로자 근로소득세 감면 등이 대표적이다. 지방 이전 로드맵을 정기국회가 열리는 시점에 맞춰 공개한 건 좌고우면하지 않고 신속한 법 개정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발전 5사와 4개 항만공사 등의 통합은 유사·중복 기능을 정비하고 재배치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취지다. 특히 석유공사와 가스공사 통합은 중동 전쟁을 계기로 부상된 에너지 공급망 리스크를 해소하고 규모의 경제로 산유국 등과의 국제 협상력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허장 재정경제부 2차관은 이날 “유사·중복 기능을 정비해 비핵심 기능은 덜어내고 전략적으로 재배치해 급격한 환경 변화와 미래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공공 부문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李, SNS에 ‘민영화 반대’ 문구 게시이와 관련해 노조들은 공론화 없는 통폐합이라며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109개 공공기관 감축과 관련해 ‘민영화는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 대통령은 엑스(X) 계정에 “주요 인프라의 민영화는 종국적으로 국민의 부담을 늘린다”며 “약속대로 철도, 전기, 수도, 공항, 항만 등의 민영화를 막기 위한 제도적, 정책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선 후보 시절 내건 ‘전기·수도·공항·철도 등 민영화 반대’ 문구가 담긴 이미지를 게시하며 “4년 만에 실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통상 공공기관 민영화는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민간 매각’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공공기관끼리 중복되는 기능을 하나로 합쳐 비효율을 해결하는 대안을 오랜 기간 구상해 왔고 이번에 정책 구현에 나섰다. 공공기관이 덩치가 커지면 재무 건전성이 확보된다. 그러면 민간 자본에 의존하지 않아도 돼 민영화 요구를 차단할 수 있게 된다. 재경부도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중복된 기능을 통합하고 역량을 결집해 경영 효율성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열린세상] ‘집값 전쟁’의 본질

    [열린세상] ‘집값 전쟁’의 본질

    집값과의 전쟁이 또 시작됐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이 불안해질 때마다 반복해 오던 ‘국공유지 주택용지 활용’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태릉골프장 부지나 과천 경마장 부지는 물론 국가적 상징성을 지닌 용산공원 부지까지 개발 후보지로 거론하며 서울과 수도권의 땅을 사실상 ‘징발’하듯 끌어모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못해 격앙되어 있다. 최근 발표된 부동산 세제 개편안은 집값을 안정시키기는커녕 실거주 사정이 여의치 않은 비거주 1주택자들의 공분만 샀다. 청년 주거 안정을 위한다며 내놓은 비아파트 대출 지원 정책 역시 ‘폐버스 활용 대책’과 다를 바 없다는 청년층의 원성이 높다. 특히 용산공원 부지 개발 논의는 역사성과 공원 녹지의 가치, 후손들이 누려야 할 미래 공간을 간과한 치명적인 졸속 대책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정부 입장에서 집값 잡기가 얼마나 급박하고 답답했으면 이런 다급한 카드까지 만지작거렸을지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정부에 진정 필요한 것은 조급한 땜질식 대책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직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 격언은 단순히 정책의 손을 놓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문제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더 신중하고 체계적으로 진단하라는 경고다. 그동안 수없이 반복된 실패를 돌아본다면, 이제는 정부 정책이 간과해 온 본질적인 원인을 짚어보고, 추진 중인 대책마저 과감히 수정·보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서울 집값 상승의 가장 큰 동력 중 하나는 ‘대학입시제도가 강남권과 서울에 유리한 교육 불균형’에 있다는 주장을 신중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수능 중심 입시 체제는 부모의 소득 수준이 높고 사교육 인프라가 집중된 강남과 서울 주요 지역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것이 바로 거듭된 규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남불패’ 부동산 신화의 작동 요인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초·중·고 교육의 불균형은 지방 대학의 소멸을 가속화하고, 지방의 고급 인재 육성을 가로막는 악순환을 낳는다. 이는 곧 심각한 지역 불균형으로 이어져 인구 소멸, 지방 의료 체계의 붕괴, 문화 편익 시설의 부재라는 총체적 위기를 불러온다. 과거 행정중심복합도시, 각 지역의 기업도시 및 혁신도시 지정 등 수많은 지방 분권 대책이 추진되었음에도 서울 집중을 막지 못했던 이유 역시 자녀교육을 위해 서울을 떠날 수 없는 본질적 요인을 풀지 못해서다. 최근 정부는 반도체를 비롯한 3대 메가 프로젝트라는 장대한 국가 계획을 수립하고 전격적인 지방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단순히 확보된 부지나 수백조 원의 재원이 아니다. 핵심은 ‘고급 인재들이 지방에 안착해 아이들을 키우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지방이 살아나려면 아이들이 돌아와야 하고, 아이들이 돌아오려면 지방 교육이 살아나야 한다. 지방 교육을 살리는 유일한 길은 사교육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현행 입시 제도를 대수술하는 것이다. 대학입시에서 지역균형선발을 획기적으로 확대해 지방 고등학교를 실질적으로 배려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만 비로소 지방 소멸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서울의 특목고나 강남권 고등학교들이 서울 주요 대학의 입학 정원을 독식하는 구조가 계속되는 한 집값 안정도, 지방 소멸 방지도, 국가 미래 프로젝트의 성공도 기대할 수 없다. 교육 불균형을 방치한 채 공급만 늘리는 부동산 정책은 수도권 과밀을 심화시키고 특정 계층에게만 기회가 집중되는 암울한 미래를 낳을 뿐이다. 집값 문제는 부동산 정책 하나만으로 풀 수 없는 종합적인 국가 불균형의 결과물이다. 교육 불균형을 바로잡아 지역을 살리는 대수술만이 집값 전쟁을 끝내고,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담보하는 근본 열쇠가 될 것이다. 유창수 전 서울시 부시장
  • 집값 전쟁에…‘정책통’ 젊은 부총리 ‘李와 호흡’ 실무형 장관

    집값 전쟁에…‘정책통’ 젊은 부총리 ‘李와 호흡’ 실무형 장관

    1차관서 승진 이형일, 1971년생 정통 관료 출신… 조직 내 신망 높아 국토 홍지선, 경기 주택 정책 경험 중기 이소영, 환경 전문 현역 의원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을 동시에 교체하기로 결정을 내린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악화한 부동산 민심을 쇄신하기 위한 개각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정부 관계자는 30일 “재경부는 세제 개편안, 국토부는 집값 상승과 공급 대책 잡음 때문이 아니겠느냐”면서 “구 부총리와 김 장관이 잘못했다기보단 민심 쇄신을 위한 정치적 결단의 희생양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구 부총리가 총괄한 세제개편안은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보유세 강화 등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결국 당정은 비거주 1주택자를 차별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형일 재경부 1차관이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것을 놓고선 ‘파격 인사’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차관에서 장관급을 건너뛰고 부총리급으로 직행한다는 점에서다. 이 후보자는 행정고시 36회 출신으로 32회인 구 부총리보다 4기수 아래이고, 1971년생으로 근래 보기 드문 젊은 경제사령탑이다. 이 후보자가 자신보다 비교적 연배가 높은 경제부처 장관들을 잘 통솔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재경부 내부에서는 “정통 관료 출신으로 청와대 파견 경험이 있고, 주요 현안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데다 조직 내 신망이 두터워 그 누구보다 부총리 임무 수행을 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국토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홍지선 국토부 2차관은 경기도 도시주택실장과 남양주시 부시장 등을 거친 주택 공급 분야에 특화된 실무형 관료다. 특히 이 대통령이 경기지사로 재직하던 당시 경기도에서 도시주택 정책을 담당하며 정책 현장에서 호흡을 맞춘 인연이 있다. 결국 홍 후보자 지명은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겠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는 기후·환경 전문 변호사 출신의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명됐다. 신설된 청와대 메가프로젝트 보좌관에는 이원주 기후에너지환경부 에너지정책실장이 임명됐다.
  • 월급 15만원, 집은 360억원…테헤란 부촌 ‘딴 세상’ [핫이슈]

    월급 15만원, 집은 360억원…테헤란 부촌 ‘딴 세상’ [핫이슈]

    미국과의 전쟁과 국제사회의 제재로 이란 경제가 흔들리는 가운데 수도 테헤란의 일부 부촌에서는 수백억원대 초고가 주택 매물이 등장하고 있다. 일반 노동자 월급이 10만원대에 불과한 상황에서 최고급 주택 호가는 300억원을 훌쩍 넘어 극심한 자산 격차를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19일(현지시간) 이란 인터내셔널은 현지 일간 파르히크테간이 테헤란 북부의 대표적인 부촌 아그다시예와 엘라히예의 고급 주택 매물을 조사한 결과 일부 매물의 호가가 제곱미터(㎡)당 250억 리알, 약 1만 3228달러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한화로는 ㎡당 1800만원대, 평당 약 6000만원 수준이다. 조사 대상 16채 가운데 11채는 ㎡당 100억 리알, 약 5291달러를 넘었다. 다만 이 수치는 실제 거래 가격이 아니라 매도자가 제시한 호가이며, 테헤란 전체 평균을 보여주는 자료도 아니다. 가장 비싼 매물 가운데 하나는 엘라히예에 나온 2000㎡ 규모의 재개발용 부동산이다. ㎡당 250억 리알을 적용하면 전체 호가는 약 50조 리알, 2646만 달러에 이른다. 한화로 환산하면 360억원 수준이다. 같은 지역의 510㎡짜리 주거용 타워 매물도 ㎡당 같은 가격에 나와 전체 호가가 약 675만 달러로 책정됐다. 월급은 10만원대…부촌 집 한 채는 수백억원 고급 주택 가격과 일반 이란인의 소득 사이 격차는 훨씬 크다. 이란 노동자 상당수의 월급은 2억~2억 5000만 리알 수준으로, 현재 공개시장 환율로 약 105~132달러에 해당한다. 한화로는 약 14만~18만원 수준이다. 최고가 매물 한 채의 호가가 일반 노동자 월급의 수만 배에 달하는 셈이다. 테헤란 전체의 평균 주택 호가는 이보다 훨씬 낮다. 파르히크테간은 테헤란 평균 호가를 ㎡당 약 23억~25억 리알, 1217~1323달러로 추산했다. 실제 거래 가격은 매도자가 제시한 호가보다 더 낮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북부 고급 주택 가격은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아그다시예의 500㎡짜리 주택은 ㎡당 약 7937달러, 전체 약 397만 달러에 매물로 나왔다. 600㎡짜리 다른 주택은 약 571만 달러, 850㎡ 규모 재개발용 부동산은 약 989만 달러에 제시됐다. 뮌헨·시드니보다 비싸다?…비교에는 함정도 현지에서는 테헤란 북부의 일부 고급 주택이 세계 주요 도시보다 비싸다는 비교도 나왔다. 파르히크테간은 테헤란 북부 고급 주거용 부동산 가격을 ㎡당 약 1만 3369달러로 추산했다. 같은 비교에서 독일 뮌헨은 1만 3217달러, 호주 시드니는 1만 3067달러, 중국 선전은 1만 2947달러로 집계됐다. 단순 수치만 보면 테헤란 일부 부촌이 뮌헨이나 시드니보다 비싸게 나타난다. 하지만 이 비교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테헤란 수치는 수도에서 가장 비싼 지역의 일부 고급 매물 호가를 토대로 했지만, 해외 도시 수치는 보다 넓은 도심 아파트 시장의 평균값이기 때문이다. 실제 최고급 주택끼리 비교하면 결과가 달라진다. 국제 부동산 컨설팅업체 나이트프랭크 자료를 적용할 경우 지난해 말 시드니의 최상급 주택 가격은 ㎡당 약 2만 3800달러 수준으로, 테헤란 북부의 최고가 매물보다 훨씬 높다. 결국 이번 자료가 보여주는 핵심은 테헤란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라는 점보다 전쟁과 제재, 통화 가치 하락 속에서도 일부 부촌의 초고가 주택 시장이 일반 시민의 생활 수준과 완전히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가깝다. 리알화 떨어지자 집값도 달러로 이란 리알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서 고급 부동산 시장에서는 가격을 아예 달러로 제시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파르히크테간에 따르면 일부 집주인은 고급 아파트의 매매 가격이나 월세를 달러 기준으로 내놓고 있다. 리알화 가치가 계속 하락하자 임대료와 자산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달러와 연동하려는 움직임이다. 다만 이란의 대부분 주택 매매와 임대차 계약은 여전히 리알화로 이뤄진다. 문제는 집값과 소득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높은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일부 테헤란 주민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외곽이나 다른 도시로 이동하거나 부모 집으로 돌아가고, 여러 명이 한 집을 공유해 임대료를 나눠 부담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전쟁과 제재로 생활비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테헤란 북부의 일부 초고가 주택은 수백억원대 호가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도시 안에서도 일반 노동자의 월급과 최고급 부동산 가격 사이에는 좀처럼 좁혀지기 어려운 간극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 청년에게 폐버스 임대주택?… 이것은 인종차별이나 마찬가지 [노정태의 뉴스 인문학]

    청년에게 폐버스 임대주택?… 이것은 인종차별이나 마찬가지 [노정태의 뉴스 인문학]

    네덜란드식 공급 구상에 여론 발칵비판 쏟아지고 AI 패러디 영상 봇물같은 당 의원까지 “닥치고 사과해야”문제는 민주당 임대주택 중심 정책흑인 내 집 마련 꿈 빼앗았던 미국남북전쟁 ‘40에이커’ 약속 저버리고뉴딜 때도 백인과 달리 주담대 막아가장 가혹하고 잔인한 소수자 차별대출 옥죄고 임대주택 늘린다는 與이미 집 가진 50대 이상 손해 없지만집 살 기회도 자산가격 상승 기회도 청년과 저소득층은 박탈당하는 셈 “폐기되는 버스를 주거 공간으로 리모델링하고, 대학가 청년들의 단기성 주거 공간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제안해 본다.” 지난 7일 황희(3선·서울 양천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의 내용이다. 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운하에 보트하우스가 즐비하게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며 “네덜란드는 폐선박 또는 중고 선박을 리모델링해서 1만 가구 이상을 공급하여 주택문제 해결책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한국에서도 비슷한 정책을 추진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던졌다. 무더운 여름, 신선한 아이디어가 제공되자 세상이 후끈 달아올랐다. 당사자인 청년들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 황 의원에게는 아쉽게도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라 부정적인 방향이었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직접적인 분노를 담은 글과 패러디, 심지어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제작된 영상까지 쏟아져 나왔다. 야당에서 반발이 빗발친 것은 물론이거니와 5선의 박지원 민주당 의원마저 “닥치고 사과해야 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낼 지경이었다. 폐버스를 활용한 임시 주택은 말 그대로 ‘임시 주택’일 뿐이다. 제아무리 잘 갖춰져 있다 한들 비좁고 냉난방 효율이 떨어질뿐더러 사생활이 잘 보호될 것이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자연재해가 많은 옆 나라 일본에서 지진 등 재난 상황에 투입하는 ‘최후의 카드’로 여겨지는 이유다. 그런 폐버스 주택을 청년 임대주택으로 제안했으니 여론이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한 일. “청년들이 안정된 주택을 마련하기 전 단계까지 임시 주거 공간으로 활용”하는 차원이라는 설명이 뒤따랐지만 청년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고, 결국 며칠 후 황 의원은 게시물을 삭제하고 공개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대체 청년들은 왜 이렇게 분노한 걸까? 폐버스를 청년의 주거지로 제공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워낙 충격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직 그것만이 문제였다면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나고 넘어갔을 수도 있을 일이었다. 문제는 황 의원이 속한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임대주택 중심의 주거 정책 방향이다. 청년들은 왜 집을 사려고 할까? 현금으로 집을 살 수 있는 부자는 흔치 않다. 대부분은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수십 년에 걸쳐 절약하며 갚아 나가야 겨우 내 집이 된다. 그나마도 집값이 오르면 다행이지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 손해는 곧장 집주인의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럴 바에야 나라에서 제공하는 임대주택에 사는 편이 속 편하고 좋지 않을까? 사는 ‘곳’이 확실히 보장된다면, 집을 사는 ‘것’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 않으냐는 반론이다. 이른바 ‘진보’에 속하는 분들은 적잖이 동의할 법한 생각이다. 문제는 역사가 우리에게 반대의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이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지 못하게 하는 것, 부동산을 소유할 수 없도록 가로막는 것은, 어떤 사회가 소수자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잔인하고 가혹한 차별 중 하나다. 흑인에 대한 미국의 인종차별은 바로 그렇게, 내 집 마련의 꿈을 빼앗는 식으로 전개되어 왔던 것이다. 1865년 1월, 남북전쟁이 막바지로 향하던 미국으로 돌아가 보자. 연방군의 윌리엄 T 셔먼 소장 휘하에는 특별한 부대가 있었다. 스스로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흑인들로 이루어진 부대였다. 해방노예들의 사기는 하늘 높은 줄을 몰랐다. 셔먼 장군이 발표한 특별 야전명령 15호에 따라, 전쟁이 끝나면 1인당 40에이커의 땅과 노새 한 마리를 받기로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났다. 흑인들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하지만 40에이커와 노새 한 마리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졌다. 전쟁 과정에서 압류된 땅 모두가 백인 농장주에게 되돌아갔다. 남부에 살던 흑인 노예들은 ‘해방’을 맞이했지만, 이제는 같은 주인 밑에서 소작농으로 일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노예를 부리던 남부뿐 아니라 노예해방을 명분으로 전쟁을 시작한 북부 역시 흑인에게 진정한 자유를 줄 생각은 없었다. 남부는 소작농을 원했고 북부는 저임금 노동자를 원했을 뿐이다. 그렇게 ‘40에이커와 노새 한 마리’는 미국의 구조적 인종차별을 의미하는 관용어구로 정착되고 말았다. 흑인의 경제적 자립과 자산 증식을 방해하는 기조는 그 후로도 지속됐다. 1930년대 미국은 대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모로 발버둥을 쳤다. 경제가 침체되어 있으니 국민들은 소비를 하지 못한다. 소비를 하지 못하니 경기가 살아날 리 없다. 이 악순환을 깨려면 인위적으로 수요가 창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대규모 공공사업이 벌어진 이유다. 그렇게 국민들의 호주머니에 돈을 채워 넣으면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 돈을 쓸 곳도 만들어 주었다. 연방주택국(FHA)을 신설한 것이다. 연방주택국의 임무는 분명했다. 평범한 중산층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살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공황의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무슨 수로 집을 산단 말인가? 루스벨트 행정부는 발상을 뒤집었다. 일단 집을 팔고 나중에 천천히 집값을 받기로 한 것이다. 집값의 10%만 있으면 일단 소유권을 넘겨주고, 나머지 90%는 천천히 갚아 나가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파격적인 장기주택담보대출이었다. 나라가 보증을 서서 국민이 집을 사게 하고, 그렇게 창출된 수요로 건설 경기를 일으키며, 경제를 되살려 국민들이 빚을 갚게 하는 뉴딜정책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뉴딜정책에 한층 더 박차를 가했다.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싸운 군인들에게 다양한 지원을 해 주는 제대군인지원법, 일명 ‘GI Bill’이 통과된 것이다. 미국인은 군대만 갔다 오면 적은 돈으로 큰 집을 사서 천천히 갚아 나갈 수 있었다. 원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대학에 진학해 장학금 혜택을 받으며 더 좋은 일자리를 얻을 기회를 제공받았다. 이렇게 미국은 순식간에 중산층의 나라로 탈바꿈했다. 흑인들은 이 모든 변화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태평양과 대서양 양쪽에서 전쟁을 치러야 했기에 미국은 흑인도 군인으로 동원했다. 날아오는 총탄 앞에서 피 흘리고 쓰러질 때까지만 해도, 흑인과 백인 모두 동등한 전우였다. 문제는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이었다. 제대군인에 대한 지원에서 흑인을 법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었지만, 미국은 흑인에게 계층 상승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 방법은 간단했다. 주택담보대출을 틀어막은 것이다. 연방주택국은 흑인들이 사는 구역을 지도에서 빨간색으로 칠했다. ‘빨간 줄’이 그어진 곳은 융자가 되지 않는 곳이었다. 이런 수법을 ‘레드라이닝’이라 불렀다. 흑인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세입자에 머물러야 했고, 월세가 높아지면 더 열악한 환경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우후죽순 지어지기 시작한 교외 주택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으러 온 흑인을, 은행은 어떻게든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마치 오늘날 한국인이 아파트를 선호하듯 20세기 중반 미국인은 교외 주택가를 선호했다. 그러니 교외 주택가에 집을 산다는 것은 좋은 주거 환경을 누린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집값이 오르면 그것을 담보 삼아 자녀에게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고, 더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자 하는 백인 참전 용사에게는 너무도 활짝 열려 있던 이 기회의 문은 흑인 앞에서 여지없이 닫혀 버렸다. 100만여 흑인 참전 군인들은 계층 상승의 사다리에 발을 올려 보지도 못한 것이다. 공급을 줄이며 대출을 틀어막는다. 대신 임대주택을 늘린다.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해 이재명 정부까지 이어지고 있는 민주당 정권의 일관된 주택 정책 방향이다. 이미 서울, 특히 강남에 집을 가지고 있는 50대 이상 기득권층은 손해 볼 일이 없다. 반면 갓 노동시장에 진입해 미래를 계획하고 있는 청년과 저소득층은 집을 살 기회도, 자산 가격 상승의 혜택을 볼 기회도 사실상 완전히 박탈당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정책 실수가 아니다. 미국에서 흑인을 차별할 때 동원된 경제적 억압의 수단이다. 청년들의 꿈꿀 권리를 레드라이닝, 빨간 줄 긋기 하지 말라.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 [박성원의 직설대담] “여름 베짱이 아닌 겨울 개미처럼 미래에 투자할 때다”

    [박성원의 직설대담] “여름 베짱이 아닌 겨울 개미처럼 미래에 투자할 때다”

    2030에게 지금 민주당은 기득권층대결·전투 아닌 결과 내는 여당 돼야대지진의 전조… 양극화 해법 절실조작기소 예단 말고 진상규명 집중혁신고속도로 깔아 30년 뒤 평가를미래 투자로 엔비디아 10개 만들자메가특구식 산업 생태계 조성할 것정년연장, 고용·임금체계 변화 필요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거듭 하락하고 있다. 국정기조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박용진 대통령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 2024년 총선에서 ‘비명횡사’(공천 탈락)할 만큼 이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기도 했던 그는 이재명 정부에 울린 경보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박 부위원장은 “마치 대지진의 전조 같은 느낌이 드는 요즘”이라면서 “20, 30년 뒤를 향한 혁신의 고속도로를 깔고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6·3 지방선거 이후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자꾸 하락하는데. “민심의 경고다. 양극화와 관련해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는 층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2030층은 자산 축적도 못 하고 어려워져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이 많아졌다. 민주당은 지금 기득권층이다. 그런데 여전히 사회적 약자라는 의식에 빠져 있다. 2030은 민주당 주류세력인 586세대가 20대 운동권적 시절에 민정당, 민자당을 보던 눈으로 지금의 민주당을 보고 있다. -여당이 된 민주당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건가. “우리 사회의 과제로 등장한 양극화 해법을 제시하고 사회적 불합리, 불공정 문제를 바로잡아 달라는 경보가 울렸다. 민주당은 협의를 하고 성과를 만들어 내기보다는 여전히 대결적이고 전투적이다. 야당은 창이고, 여당은 방패다.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여당이 여전히 투쟁만 하고 거친 목소리를 내는 데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 -구체적으로 여당에 어떤 역할이 필요하다는 건가. “시간이 별로 없다. 아파트 하나 지으려 해도 20년이 걸린다. 5년 단임제 정부에서는 웬만한 사업은 집권 기간 안에 성과를 보기 어렵다. 국회에서 안정적으로 입법을 할 수 있도록 야당을 설득하고 끌어들이는 역할을 해 줘야 한다.” -양극화 해소의 실질적 해법은 뭐라고 보나. “지금 대지진 직전의 전조가 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삼성전자 성과급 사태, 코스피 9000, 미국 아카데미·오스카상 잇단 수상 등은 모두 전무후무한 사태들이다. 천재급 관료들도 역대급 초과세수는 예측하지 못했다. 이러한 때 정부는 20년 뒤를 위해, 한국 사회 양극화를 시정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노르웨이처럼 급증하는 세수를 갖고 만든 기금, 펀드로 수익률을 높이면 국민 전체의 삶이 달라진다. 미래성장기금, 국부펀드 같은 구상도 이런 아이디어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대출규제에 이은 보유세와 양도세 인상 등 수요억제 위주의 부동산정책에 대한 비판과 불만도 커지고 있는데. “과열된 시장을 식히기 위해 수요억제책을 동원하는 건 고육지책이다. 지금 (공급 계획을) 시작해도 첫 삽 뜨는 데만도 20년 정도 걸리니까 다양한 금융·세제 정책을 동원하려는 것이다. 공급도 중요하지만, 저런(집값 상승) 상황을 속수무책으로 둘 순 없지 않나.” -이 대통령 공소취소를 가능케 하는 조작기소특검법에 대한 반발과 거부감도 특히 2030의 민심 이반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부당한 수사, 기소, 판결을 받았던 일들이 과거에 많지 않았나.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들이 20년, 30년 지나서 재심받고 수사, 재판 과정의 문제점들이 뒤늦게 드러나 법무부도, 재판부도 사과하는 사례들을 많이 봤다. 정치적 의도를 갖고 이 대통령을 혹은 야당을 향해서 수사와 기소를 했다는 여러 상황들이 드러나고 있으니 일단 확인해 보자는 것이다. 특검은 그런 의심스러운 상황들을 들여다보는 단계다. 결과를 예단해서 지금 (공소취소 같은 얘기를) 뭐라 하는 건 대통령과 정부에 부담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진상규명에 집중하면 된다.” -비주류 의원 때와 가까이서 이 대통령을 접해 본 이후 ‘이재명 리더십’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게 있다면. “당대표 시절이나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이 대통령을 접하면서 상황적응력, 임기응변이 빠르다고 느꼈다. 지난 1년간 계엄을 해결하고, 미국과의 위험천만하고 다급한 무역통상협상을 해내고, 이란전쟁이라는 대외적 위기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을 따박따박 해냈다. 쓸모 있는 대통령으로서 일을 잘하고 있다고 본다.” -성공하는 이재명 정부가 되기 위해 유념했으면 하는 게 있다면. “5년 단임 정부에서는 일의 결과나 성과가 한두 번 정권이 바뀐 뒤에야 나올 수 있다.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부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새로운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정책적 준비를 해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경부고속도로, 김대중 정부 때 정보고속도로처럼 새로운 길을 닦는 일을 해 줬으면 좋겠다. 20, 30년 뒤 ‘이재명 정부가 그때 새로운 혁신의 세 번째 고속도로를 깔아서 오늘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으면 한다. 김대중 정부 때 초고속 인터넷고속도로를 깔았기에 네이버 같은 기업들이 나오지 않았나. 30년 뒤 평가를 받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초호황기에 급증한 초과세수를 놓고 국민배당식으로 쓸 거냐, 미래투자에 쓸 거냐를 놓고 정부 내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있는데. “일시적 호황, 주기를 탈 수밖에 없는 ‘반짝 세수’는 중장기적으로 어려울 때를 대비한 일종의 연금저축으로, 중장기 안정화기금으로 쌓아 둬야 한다고 본다. 지금 벌었으니 지금 쓴다는 여름 베짱이식으로 소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회안정기금으로 써야 할 것을 60, 70년대 스웨덴식 사회연대기금으로 쓴다면 나는 반대다. 초과세수는 겨울 개미와 같이 미래를 위한 성장동력을 만드는 데 써야 한다. 초과세수는 늘 있는 게 아니니까 국가가 책임 있게 투자 구조를 만들어서 엔비디아 같은 성장기업 10개를 만들고 성과를 함께 향유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으로 교섭과 파업의 대상이 ‘사업경영상 결정’으로 넓어졌고, 하청기업 노조도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벌일 수 있게 됐다. 산업현장이 노조리스크에 빠져들고 기업투자와 청년고용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기업들의 우려는 알겠지만, 사회적 양극화에 대해 기업들이 해야 할 역할도 있고, 업무환경 변화에 대해 노동자들이 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은 맞다고 본다. 다만 실제 기업에 큰 부담을 지우느냐 하는 것은, 실제 판례가 쌓이는 것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AI와 반도체 기업 육성을 위한 각국의 경쟁은 기업과 정부가 한 몸이 된 총력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기업에서 절실히 요청하는 연구개발(R&D) 분야의 주52시간제 예외 인정 문제조차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주52시간은 반도체보다는 스타트업에서 더 많이 요구되는 사항이다. 원청보다는 빨리 납품해 달라는 요구를 받는 하청에서 더 많이 필요한 거다. 열어 놓고 검토해야 할 사안이지만, 그걸 적극 요구하는 쪽에 되묻고 싶다, 과연 무엇을 혁신했는지를. 주52시간제가 혁신을 게을리한 것에 대한 핑계가 돼선 안 된다고 본다.” -우리 경제는 1분기에 반도체 수출에 힘입어 예상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였지만 산업의 양극화, 경제 양극화 때문에 온기를 고루 느끼지 못하고 있다. 고른 성장을 위해 산업정책, 특히 규제합리화 정책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소재·부품·장비산업을 포함해 반도체의 독자적 생태계 형성에 기업과 정부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자율주행택시, 바이오, 로봇, 이런 분야에서도 생태계를 얼마나 잘 형성하는지가 중요하다. 기업이 잘나간다고 거기에 다 맡기기만 해서는 안 된다. 중소·혁신기업들이 함께 크는 생태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 -그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규제합리화위원회가 할 일도 많을 텐데. “활동을 시작한 지 이제 3개월 지났다. 생태계 조성을 메가특구식으로 하려 한다. 로봇산업에 제일 필요한 게 데이터다. 사람과 로봇이 함께 생산 현장에서 협업하고 생활 현장에서도 로봇과 동거하려면 배달로봇이 인도를 갈 수 있는지,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지, 공원 주행을 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잘 풀려야 한다. 하나씩 풀어서는 부지하세월이다. 로봇산업 메가특구를 지정해서 로봇제조업체, 서비스·부품업체들을 다 그곳으로 오게 하고 지자체가 인허가권을 다 갖고, 지역도 성장시키고 산업도 성장시키는 구상이다. 로봇의 도시 광주, 자율주행의 도시 대전 이런 식이다. 올해 안에 관련법을 통과시키고 특구 지정까지 해서 변화의 시작을 국민이 체감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다.” -좀더 구체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규제혁신의 성과 같은 건 없나. “주식결제 주기를 예로 들 수 있다. 매도 후 2일이 지나서야 돈이 들어오는 불편을 개선하기 위해 금융당국과 협의해 왔다. 증권사들이 반대했지만,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양대 노총은 임금 삭감 없는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청년일자리 축소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고용유연성을 높이고 연공서열형 임금 체계를 개인별 직무·성과급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정년 연장은 60세 이후 연금 수급 연령까지의 소득절벽을 메워 줌으로써 국민 전체의 삶이 안정되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국민 건강수명도 길어져서, 과거에 합의된 은퇴 시기를 늦추는 건 맞는 방향이라고 본다. 다만 AI 도입에다 정년 연장까지 겹치면 청년고용에 타격이 커질 수 있다. 청년들에게 창업의 기회, 교육의 기회를 더 많이 마련해 주는 정책과 함께 가야 한다. 일률적 정년 연장이 아니라 고용·임금체계 변화를 노사 간 합의로 열어 두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박용진 부위원장은 1971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났다. 신일고, 성균관대 사회학과·국정관리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 총학생회장을 지낸 뒤 정치에 투신해 민주노동당, 민주통합당, 민주당에서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2016년 20대 총선(서울 강북을)에서 당선된 뒤 재선의원까지 지냈다. 민주당에서 이재명 대표 시절 비주류로 대척점에 섰다가 2024년 22대 총선에서 공천 탈락했다. 하지만 2025년 대선 때는 이재명 후보 선거대책위 국민화합위원장을 맡았고, 올해 3월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에 발탁됐다. 의원 시절 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파고들어 ‘삼성 저격수’로 불렸고 ‘유치원 3법’ 제정을 주도하는 등 진보와 실용을 겸비한 활동을 보였다. 박성원 논설위원
  • [황수정 칼럼] 아무도 휘슬을 불지 않는다, 단타 공화국

    [황수정 칼럼] 아무도 휘슬을 불지 않는다, 단타 공화국

    지금 대한민국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 안 하는 사람, 못 하는 사람. 두 번째 부류는 두 눈 질끈 감고 포모(소외 공포)를 견디고 있는 사람들. 세 번째 부류는 투자 밑천이 없거나 주식 정보권 바깥에 아예 소외된 사람들이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도파민을 뿜어낸다. 덕분에 공기는 말할 수 없이 명랑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온통 주식 이야기다. ‘포모 대처법’까지 알려 준다. 청년의 푸념 하나를 퍼왔다. “남들은 삼전닉스(삼성전자·SK하이닉스)로 돈 복사를 하네. 더 불행해지지 않게 한탕 크게 레버리지를 하자.” 수익률 2배로 추종하는 ‘삼전닉스 레버리지’는 사전교육을 받아야 투자할 수 있다. 신청자의 절반이 50대 이상이다. 아들도,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풀베팅. ‘뇌동매매’ 삼매경이다. 산이 깊으면 골이 깊다. 가만 있어도 벌어지는 양극화가 가속을 붙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삼전 성과급을 막지 않았다. 그것이 두고두고 이 정부의 공든탑을 갉아먹을 패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긴급조정권으로 성과급 판을 깨버렸어야 했다. 70% 이상의 국민이 긴급조정권에 찬성했다. 국민빽이 든든한데, 왜 하지 않았을까. 양대노총이 들고일어나면 지방선거에 해로울 수 있었다. 주가가 흔들리면 그 또한 선거에 해로웠다. 시중 해설들이 그렇다. 실제로 여당 대표는 유세장에서 “주식 3배, 누가 올렸나”고 했다. 이 대통령이 불법 계곡 설치물을 철거했듯이 성과급 판을 깨버렸다면. 친노동 정책에 실금이 갔을 뿐 거의 모든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세금 빼고도 삼전 노조원 한 사람이 쥐는 성과급은 3억원쯤. 이 회사는 5억원의 주택대출까지 해준다. 이자는 연 1.5%. 거의 공짜다. 수도권의 15억원 넘는 주택의 담보대출 한도가 겨우 4억원. 조만간 기준금리가 오르면 주담대 이자는 8%까지 치솟을 판이다. 한 줌도 안 되는 삼전닉스 노조원들이 60조원 성과급으로 수도권 집값을 휘젓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이 전쟁을 선포한 집값 아닌가. 그 집값이 어이없는 복병에 흔들리고 있다. 미친 집값에 못 올라타 벼락거지, 미친 주식에 못 올라타 또 벼락거지. 이 탄식을 아프게 들어줄 순간이다. 아프게 듣는다면 “대기업 초과이익의 사회적 분배”를 쉽게 말할 수 없다. 초귀족 노조에 천문학적 성과급을 조율한 노동부 장관이 말할 수는 더더욱 없다. 자본주의 총아인 주식투자로 온 나라가 흥청거린다. 자본주의 첨병인 거대기업의 당기순이익을 빼앗아 어떻게 나눠 줄 수 있나. 이율배반을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국민이 너무 똑똑하다. 대공황이 덮친 1929년의 미국은 낙관으로 들떠 있었다. 온갖 안전 보증으로 고위험 주식을 팔았다. 단돈 10달러로 빚을 내 100달러짜리 우량주를 살 수 있었다. 투자자들은 불나방처럼 빚투를 했다. 한탕주의에 취했던 그해 10월 24일 하루 동안만 1290만 주가 쏟아졌다. 증권사들의 패닉 셀링이었다. 100년 전 상황이 우리 현실과 오버랩된다. 몇 대목만 훑어봐도 그렇다. 증시 거품 우려 속에 단일종목 2배 레버리지 초고위험 상품까지 허용됐다. 너도나도 두 배를 먹거나 두 배를 토해내는 단타 베팅에 들어갔다. 하필 이럴 때 국민참여성장펀드가 나왔다. 1차분이 완판되자 계획에 없던 2차분이 또 출시 예고됐다. 1차 6000억원 기준으로 정부의 매칭 부담은 1200억원. 5년간 묶일 재정을 한턱 쏘듯이 불쑥 던진다. 이 돈이면 주식 호황이 별천지 얘기인 취약계층에게 폭염 전기요금으로 다만 몇 만원이라도 지원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왜 반도체를 빼고 종합주가지수를 계산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반도체를 뺀 실질적 코스피 지수는 4100~4200선이라는 증권사의 분석을 반박했다. 엎치나 메치나. 국민은 똑같은 말로 알아듣고 있다. 대공황 때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주가 폭락을 “공황”(panic)이라 하지 못하게 했다. 덜 자극적인 단어 “불황”(depression)을 쓰게 했다. 엎치나 메치나. 진격의 코스피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한 부분이 작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휘슬을 불어줄 때다. 벼랑이 어디일지 너무 무섭다는 사람이 많다. 황수정 논설실장
  • “한은, 28일 기준금리 매파적 동결” “연내 2차례 인상 가능성”

    “한은, 28일 기준금리 매파적 동결” “연내 2차례 인상 가능성”

    중동전쟁 불확실성에 금리 동결물가·집값에 ‘인상 시그널’ 예측 7명 “올해 금리 3%까지 오를 것”성장률·물가 전망치도 상향 조정 경제 전문가들은 오는 28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현재 2.50%인 기준금리를 만장일치로 동결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동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고유가로 인한 물가 불안과 반도체 호황에 따른 수출 호조세로 금리 인하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중동전쟁과 내수회복의 불확실성 등으로 당장 인상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수입물가의 소비자물가로의 전이, 수도권 집값 상승세, 1500원대로 올라선 원달러 환율 등을 고려할 때 향후 강력한 금리인상 시그널을 보낼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서울신문이 24일 경제 전문가 8인에게 한은 금통위의 5월 기준금리와 경제성장률 전망을 조사한 결과 만장일치로 기준금리 동결을 예상했다. 금리동결 배경으로는 중동 전쟁의 불확실성을 들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성장과 물가 측면에서 금리 인상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조금 더 중동 전쟁의 추이와 영향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물가 안정이라는 명분은 있지만, 기준금리를 인상했을 때 가져올 파급력이 부정적일 수 있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금리 동결에도 불구하고 향후 인상 시그널은 강하게 보낼 것으로 봤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올해 성장률이 2% 후반에서 3%까지 거론되는데 물가압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통화정책의 긴축(인상)전환을 강하게 시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이코노미스트도 “이란 전쟁 장기화, 미국 국채시장 불안, 원달러 환율 상승 등이 계속되면 인상 쪽에 무게가 실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연내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그 시기에 대해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연내 기준금리를 2차례 올려 기준금리가 3.00%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8명 중 7명에 달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하반기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진 측면은 있지만, 당장 7월 인상이 이뤄질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국채금리 발작이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기준금리 방향엔 크게 영향 미치지 않을 것으로 봤다. 다만 연준 내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목소리가 한은 금리인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열어뒀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동결로 예상되는 미국의 금리 결정이 한은의 금리 변화에 큰 요인이 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연준내 매파적 목소리는 한은 금리인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봤다. 5월 수정경제전망에 대해선 경제성장률과 올해 소비자물가 전망치 역시 상향 조정할 것이라는 예상이 대부분이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소비자물가는 유가 상승과 인플레이션 우려가 반영되는 영향이 크고, 성장률의 경우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순수출 효과가 주요 배경”이라고 상향 근거를 들었다. 신현송 한은 총재의 첫 데뷔전인 만큼 신중하게 발언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신 총재가 금리 인상 시그널을 강하게 줄 것을 주문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제 인상이 어렵다면, 최소한 금리 인상 가능성이 크다는 암시는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어 클릭] ●매파적 동결 기준금리는 그대로 두되 향후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 두는 긴축적 메시지를 함께 내는 결정을 가리킨다. 통화정책에서 ‘매파’는 물가 안정을 중시해 금리 인상 등 긴축을 선호하는 태도를 뜻한다.
  • 28일 한은 금통위 ‘매파적 동결’ 유력…전문가 8인의 기준금리, 성장률 전망은

    28일 한은 금통위 ‘매파적 동결’ 유력…전문가 8인의 기준금리, 성장률 전망은

    경제 전문가들은 오는 28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현재 2.50%인 기준금리를 만장일치로 동결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동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고유가로 인한 물가 불안과 반도체 호황에 따른 수출 호조세로 금리 인하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중동전쟁과 내수회복의 불확실성 등으로 당장 인상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수입물가의 소비자물가로의 전이, 수도권 집값 상승세, 1500원대로 올라선 원달러 환율 등을 고려할 때 향후 강력한 금리인상 시그널을 보낼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서울신문이 24일 경제 전문가 8인에게 한은 금통위의 5월 기준금리와 경제성장률 전망을 조사한 결과 만장일치로 기준금리 동결을 예상했다. 금리동결 배경으로는 중동 전쟁의 불확실성을 들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성장과 물가 측면에서 금리 인상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조금 더 중동 전쟁의 추이와 영향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기준금리 인상의 필요성은 높아졌지만 우리나라 내수는 여전히 좋지 않고 가계부채 문제도 심각하다”면서 “물가 안정이라는 명분은 있지만, 기준금리를 인상했을 때 가져올 파급력이 부정적일 수 있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금리 동결에도 불구하고 향후 인상 시그널은 강하게 보낼 것으로 봤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올해 성장률이 2% 후반에서 3%까지 거론되는데 물가압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통화정책의 긴축(인상)전환을 강하게 시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이코노미스트도 “이란 전쟁 장기화, 미국 국채시장 불안, 원달러 환율 상승 등이 계속되면 인상 쪽에 무게가 실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연내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그 시기에 대해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연내 기준금리를 2차례 올려 기준금리가 3.00%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8명 중 7명에 달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하반기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진 측면은 있지만, 당장 7월 인상이 이뤄질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3분기와 4분기에 한 차례씩, 총 두 차례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미국 국채금리 발작이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기준금리 방향엔 크게 영향 미치지 않을 것으로 봤다. 다만 연준 내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목소리가 한은 금리인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열어뒀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동결로 예상되는 미국의 금리 결정이 한은의 금리 변화에 큰 요인이 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연준내 매파적 목소리는 한은 금리인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봤다. 5월 수정경제전망에 대해선 경제성장률과 올해 소비자물가 전망치 역시 상향 조정할 것이라는 예상이 대부분이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소비자물가는 전쟁 여파에 따른 유가 상승과 인플레이션 우려가 반영되는 영향이 크고, 성장률의 경우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순수출 효과가 주요 배경”이라고 상향 근거를 들었다. 신현송 한은 총재의 첫 데뷔전인 만큼 신중하게 발언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신 총재가 금리 인상 시그널을 강하게 줄 것을 주문했다. 양 교수는 “환율을 봐도, 물가를 봐도 금리를 올려야 할 이유가 커졌고, 성장률 전망도 빠르게 상향 조정되고 있다”면서 “실제 인상이 어렵다면, 최소한 금리 인상 가능성이 크다는 암시는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세종로의 아침] 5월 9일 이후, ‘정상화’를 이어 가려면

    [세종로의 아침] 5월 9일 이후, ‘정상화’를 이어 가려면

    ‘그날’이 왔다. 5월 9일.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가 종료되는 시한이다. 이제 조정대상지역 내 다주택자의 양도세율은 기본세율(6~45%)에 2주택자의 경우 20% 포인트를, 3주택자 이상 다주택자는 30% 포인트를 각각 가산한다. 지방소득세까지 더하면 3주택 이상의 실효세율은 최고 82.5%에 달한다. 정부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재개 방침을 내세우면서 서울 주택 시장에는 눈에 띄는 움직임들이 나타났다. 정부 의도대로 매물이 쏟아지며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 등 고가 단지가 많은 지역에서 아파트 가격은 하락세를 보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처음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메시지를 밝힌 지난 1월 23일 5만 6219건이던 서울 아파트 매물은 3월 21일 8만 80건까지 42.4%나 늘었다. 2월 말부터는 한국부동산원 통계에서 강남 3구와 용산구 아파트의 매매가격지수 변동률에 ‘마이너스’가 붙었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강남 3구와 강동구가 속한 동남권의 누적 변동률은 0.88%로 지난해 같은 기간 3.59%에 비하면 치솟은 집값을 잠재운 듯하다. 실제 ‘급매’로 아파트 시세가 수억원씩 뚝 떨어졌다. 지난 1월 2일 31억 4000만원으로 신고가를 썼던 송파구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84.99㎡는 2월에 23억 8200만원으로 3년 내 최저가에 거래됐다.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 전용 84.94㎡는 2월 37억 4000만원에 거래됐다가 지난달 21일에는 31억원에 팔렸다.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전용 183.41㎡는 지난해 12월 거래 가격이 128억원이었다가 두 달 만에 97억원에 거래됐다. 다만, 애초에 닿을 수도 없는 금액에서 몇 억이 내려갔다 한들 여전히 내가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니 체감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수십억대 급매물을 턱턱 사는 사례들에 벽을 느꼈다. 차라리 집 때문에 난리라는 주변의 아우성이 더 가깝게 들렸다. 지난해 오름세가 저조했던 성북구를 비롯해 노도강(노원·도봉·강북)과 금관구(금천·관악·구로) 등 서울 외곽 지역에선 신고가 거래가 이어졌다. 6억원 한도 대출이 가능한 곳에 실수요가 몰린 이유다. 특히 전세 품귀가 겹치며 떠밀리듯 내 집 마련에 나선 이들이 서울 아파트값 상승을 이끌며 ‘키 맞추기’가 이뤄졌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다주택자 매도 물건을 무주택자가 매수한 비율이 지난해 56.1%에서 73%로 증가했고, 주택시장 미래 세대층인 30대 이하도 45%였다”며 부동산 정책의 긍정적인 면을 설명했다. 지난 3월 다주택자 매도 물량 2087건을 사들인 매수자 가운데 무주택자는 1523명(73%), 30대 이하는 1017명(48.7%)이었다고 한다. 당장 10일부터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궁금하지만 주택 소유자 중 15% 정도에 불과한 다주택자의 양도세 부담을 걱정할 처지는 아닌 것 같다. 애초에 다주택을 소유할 재량으로 증여든 급매도든 이미 방도를 세웠을 것이고, 이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서다. 그러나 ‘전세의 월세화’로 갈림길에 선 많은 임차인이나 아파트 시장에 진입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이들, 이미 살았던 지역이나 살고 싶은 지역에서 멀어지게 된 이들, 다주택자나 고가 주택 소유자의 세 부담을 전월세 비용으로 떠안게 될지도 모르는 이들의 처지는 먼일이 아니고, 생활과 직결된 문제다. 악성 미분양(준공 후 미분양) 비중이 85.5%에 달하는 비수도권의 박탈감도 여전하다. 이번엔 정부의 부동산 정상화 의지에 대한 기대도 큰 것 같다. 다만 목표에 대한 설명이 더 필요하다, ‘부동산 불패’ 신화는 어떻게 해야 끊는 것인지, ‘넘사벽’ 강남 집값을 떨어뜨리는 것이 목표인지, 서울의 평균 집값을 얼마나 낮추려 하는지, 얼마나 가격이 내려야 안정세인지 모호하다. 특정 계층을 겨냥한 ‘전쟁’보다 중요한 것은, 집이 필요한 사람들이 안심하고 일상을 꾸려 갈 수 있도록 주거 시장의 구체적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다. 그래야 정책 신뢰도 강화될 수 있다. 허백윤 산업부 기자(차장급)
  • [황수정 칼럼] 삼성전자 돈 잔치, 李대통령이 막아야 한다

    [황수정 칼럼] 삼성전자 돈 잔치, 李대통령이 막아야 한다

    지난 23일 삼성전자(삼전) 노동조합의 집회는 표정이 달랐다. 피켓 뒤에 숨었지만 어쩌다 카메라에 잡힌 얼굴은 여유만만. 사정을 모르고 보면 놀러 나온 사람들 같았다. 웃는 사람도 많았다. 이런 표정의 파업 집회를 본 적이 없다. 대한민국 연봉 상위 0.1%. 초기업 직원들의 요구는 1인당 성과급 7억원쯤이다. 주지 않으면 이재용 회장 집 앞으로 몰려가서 시위하겠다고 한다. 모든 것이 처음 보고 처음 듣는 ‘사건’이다. 겪어 보지 못한 반도체 호황에 겪어 보지 못한 문제들이 들이닥쳤다. 천문학적 초과 이익을 어떻게 배분할지 사회적 고민을 해 본 적은 지금껏 없었다. 삼전 노조가 요구하는 성과급은 45조원. 이 돈이 어떤 규모인지 짚어 보면 새삼 더 놀랍다. 정부가 온갖 논란 속에 책정한 중동전쟁 추경이 26조원이다. 삼전과 SK하이닉스의 성과급을 합치면 이 돈의 몇 배인가. 성과급 쇼크에 사회가 흥분 상태일 수밖에 없다. “집값 잡기는 글렀다”는 푸념이 흉흉하다. 뭉칫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넘어가지 않게 성과급을 지역화폐로 주라는 말까지 돈다. 결코 우스개가 아니다. 정부가 노심초사하는 집값을 단박에 폭발시킬 뇌관일 수 있다. 이번 파동은 삼전 구성원들이 한밑천 잡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넘어선다. 삼전 노조는 다음달에 18일간 총파업을 하면 30조원의 손실이 날 수 있다고 압박한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협박이다. 따져 보자. 성과급 산정 방식을 놓고 노조가 깨알 간섭하면 원래는 경영권 침해였다. 이제는 정당한 쟁의행위다. 파업으로 천문학적 손실이 난들 사측은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어렵다. 쌍용차 47억원, 두산중공업 65억원, 대우조선해양 470억원. 이런 파업 손배는 전설이 됐다. 노조는 리스크를 저울질할 이유가 없어졌다. 파업을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기대값은 무조건 크다. 영업이익 15% 성과급, 상한선 없음. 삼전 노조가 만든 공식은 이후의 모든 노사 교섭 테이블에 기본값으로 올라갈 것이다. 현대차는 영업이익 30%를 달라고 이미 선전포고했다. 그런데도 이재용 회장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민노총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싶을 것이다. 제 코가 석자나 빠진 야당은 언감생심. 노봉법 책임론에 엮일까 정부와 여당은 전전긍긍, 사기업 노사 문제라는 핑계로 입을 닫았다. 나비효과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갈지 모른다. 부동산, 사교육, 채용 시장의 양극화는 더 깊어질 일만 남았다. 삼전 노조원 평균 나이를 45세로 잡자. 정년까지 성과급 파티를 하겠다면 그 청구서는 누가 받나. 인공지능(AI)에 안 그래도 일자리가 마른 청년들이 받아야 한다. 이대로라면 삼성전자가 한국에서 버티리라는 보장도 없다. 자식들 몫의 노동시장을 아버지들이 탈탈 털어먹는 세대 간 수탈 구조는 끔찍하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50년, 100년을 갈 것도 아니다. 청년 1만명을 채용할 수도 있는 돈을 성과급 잔치로 날리느냐는 개탄이 쏟아지는 이유다. 지난해 네팔의 혁명은 누가 일으켰나. 불평등에 분노한 청년 세대였다. 1분기 성장률이 악재 속에 선방했다. 정부와 청와대는 놓치지 않고 자찬했다. 반도체 덕인 줄 모두가 안다. 그래도 이재명 대통령이 잘해서 그런 것으로 많은 사람은 믿어 주고 있다. 60%가 넘는 고공 지지율이 말해 준다. 이 대통령도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성공담을 알고 있을 것이다. 대처는 초강성 탄광노조(NUM)의 악성 파업에 이를 악물고 본때를 보여 줬다. 노조 간부의 면책특권, 노조 의무 가입 조항을 없애 버렸다. 동조·지원 파업도 금지했다. 파격 조치였다. 총파업에 나선 노조에 물러서지 않았고 고통을 참아 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국민은 대처 편에 섰고 노조는 1년여 만에 백기 투항했다. 그렇게 대처는 국민을 얻었다. 노봉법 때문에 내부 인력 말고는 대체 근로조차 막혀 있다. 노조의 엄포대로 파업으로 하루 1조원씩 증발할지 모른다. 삼전 파업이 산업계에 나비효과를 일으키면 노봉법 책임론이 계속 커질 수 있다. 그대로 정권 리스크가 된다. 가장 목이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 파업을 막겠다면 긴급조정권을 꺼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임기가 4년이나 남았다. 황수정 논설실장
  • “ 고유가·고환율 불안해”… 소비 심리는 얼어붙는다

    “ 고유가·고환율 불안해”… 소비 심리는 얼어붙는다

    경기·가계 수입 등 전망은 ‘하락’금리·물가·집값 ‘상승’ 관측 우세 1분기 ‘깜짝 성장’에도 불구하고 중동전쟁 여파로 인한 고유가·고환율 등으로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소비자들의 경제 심리는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한국은행이 23일 발표한 ‘2026년 4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9.2로 전월 대비 7.8포인트 하락했다. 이 지수가 100을 밑돈 것은 지난해 4월(93.6) 이후 1년 만이다. 하락폭은 비상계엄 사태가 있던 2024년 12월(-12.7포인트) 이후 가장 컸다. CCSI는 현재생활형편·생활형편전망·가계수입전망·소비지출전망·현재경기판단·향후경기전망 6개 지수를 이용해 산출한 지표다. 100보다 높으면 소비 심리가 낙관적, 100을 밑돌면 비관적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현재 경기를 6개월 전과 비교해 평가하는 현재경기판단은 68로 18포인트 급락했고 향후경기전망(79), 생활형편전망(92), 가계수입전망(98), 소비지출전망(108) 등도 일제히 하락했다. 이흥후 한은 경제심리조사팀장은 “중동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공급 차질, 경기 불확실성 확대가 소비자 심리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반면 6개월 후의 금리 수준을 예상한 금리수준전망(115)은 6포인트 상승해 2023년 11월(119) 이후 2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시장 금리 및 대출 금리 상승,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이다. 향후 1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2.9%)는 한 달 사이에 0.2% 포인트 상승했다. 이달 전망치는 2024년 12월(2.9%) 이후 1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상승폭은 2024년 3월(0.2% 포인트) 이후 1년 11개월 만에 가장 컸다. 주택가격전망지수(104)는 전월보다 8포인트 올랐다. 100을 줄곧 웃돌던 지수는 지난달 일시적으로 96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100을 넘었다. 이 지수가 100을 넘은 것은 1년 뒤 집값 상승을 예측하는 소비자가 더 많다는 뜻이다. 이 팀장은 “외곽지역 중심의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세 지속, 중동전쟁에 따른 공사비 및 분양가 상승 우려의 영향으로 주택가격전망지수가 상승했다”고 말했다.
  • “성장·행복 모두 막아선 서울 집값… 보유세 높이고 공급 대폭 늘려야” [월요인터뷰]

    “성장·행복 모두 막아선 서울 집값… 보유세 높이고 공급 대폭 늘려야” [월요인터뷰]

    부동산 수렁에 빠진 대한민국소득 대비 집값, 뉴욕·도쿄의 두 배보유세는 최대 5분의1 수준 그쳐저출산·빈부격차·성장 둔화 불러‘1기 신도시 설계자’의 집값 해법3기 신도시 분양 앞당겨 공급 확대단독·다가구 재개발로 양극화 완화보유세 강화해 투기 수요 억제도원로 경제학자의 성장 해법출산율 높이고 외국인·로봇 활용첨단 과학기술 개발에 국력 집중부동산 아닌 기술 투자 이어져야40억원 넘는 기부 이끈 철학 ‘나’보다 ‘우리·사회적 이익’ 우선타인·사회 배려로 얻는 행복 더 커지금, 할 수 있는 만큼 배려해 보길집 한 채를 향해 돈이 몰리면 경제는 다른 길을 잃는다. 공장으로 가야 할 자금은 아파트로 향하고, 미래를 설계해야 할 청년의 시간은 대출 상환에 묶인다. 결혼은 늦어지고 아이 울음은 줄어든다. 성장률 둔화와 저출산, 빈부격차. 따로 노는 문제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곳에서 시작된다. 집값이다. “대한민국 전체가 부동산 수렁에 빠졌다.” 노태우 정부 시절 대통령 경제수석과 건설부 장관으로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를 설계해 ‘주택 200만호 시대’를 연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의 진단은 단호했다. 그는 집값 문제를 공급과 유동성, 두 축에서 모두 다뤄 본 인물이다. 신도시 개발로 공급을 늘리고, 과열기에는 통화정책으로 균형을 맞추며 집값 안정을 설계해왔다. 12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만난 그는 한국 경제의 병목을 묻는 질문에 머뭇거림 없이 답했다. “소득 대비 집값을 절반으로 낮춰야 합니다.” 소득 대비 집값(PIR)은 연 가구 소득으로 집을 사는 데 걸리는 기간을 의미한다. 서울은 24 수준인데, 뉴욕은 11, 도쿄는 10이다. 쉽게 말해 서울의 중간소득 가구가 한 푼도 쓰지 않고 24년을 모아야 중간 수준의 집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주요 도시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 오래 걸리는 셈이다. 집값을 낮추는 것이야말로 성장과 분배, 삶의 질을 동시에 회복하는 ‘경제 정상화의 출발점’이라는 설명이다. 박 전 총재의 해법은 명확하다. 단독·다가구 밀집 지역 재개발과 3기 신도시 조기 분양으로 공급을 늘리고, 보유세를 강화해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 결국 집값이 계속 오른다는 기대 자체를 끊어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수석, 건설부 장관,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한국은행 총재까지 60년 가까이 정책의 최전선에 서 온 원로 경제학자. 그의 경제관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회적 윤리’다. 개인의 행복은 작고, 타인과 사회의 행복은 크다는 철학을 갖고 학자와 공직자로 일생을 보낸 박 전 총재는 40억원이 넘는 재산을 사회에 기부해왔다. 다음은 박 전 총재와의 일문일답.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성장 엔진이 꺼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성장률은 20년 전 5%대에서 10년 전 3%대로, 지금은 2% 내외까지 떨어졌고 이 추세가 이어지면 앞으로 0%대 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과 독일이 이미 같은 길을 걸었다. 일본은 장기 저성장에 빠졌고 독일도 최근 마이너스 성장에 들어섰다. 경제가 성장을 멈추면 분배와 복지도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원인은 분명하다. 생산 노동력이 줄고 있고, 첨단 과학기술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으며, 국내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 출산율 제고와 외국인 노동력 활용 그리고 로봇의 생산현장 투입을 통해 노동력 감소에 대처해야 한다. 다음으로 첨단 과학기술 개발에 국력을 집중해 첨단 과학기술이 성장 약진을 이끌도록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을 인공지능(AI) 경쟁력에서 세계 3대강국이 되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정책방향은 매우 바람직하다.” -K자형 성장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국은 대표적인 ‘고소득 저생활국’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1인당 소득이 3만 6000달러 수준의 선진국이지만,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높고 출산율과 국민행복지수는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행복지수는 33위로 하위권이다. 소득 수준에 비해 삶의 만족도가 낮은 이유는 분명하다. 집값이 너무 비싸 내집 마련이 어렵다는 데 있다.특히 한국은 성장할수록 격차가 벌어지는 ‘K자형 구조’가 나타나고 있는데, 그 중심에도 부동산 문제가 있다. 한국의 빈부격차는 소득 격차보다도 자산 격차가 근본 문제인데 최대 원인은 집 문제다.” -부동산이 왜 문제인가. “높은 집값은 결혼 기피와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이고, 빈부격차와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따라서 집값을 안정시키는 것은 단순한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한국 경제 전반의 정상화를 위한 기본 과제가 된다. 그래야만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다. 소득 대비 집값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정책적으로는 공급과 수요를 동시에 건드려야 한다. 공급 측면에서는 단독·다가구 주택 밀집 지역의 재건축을 국책적으로 적극 추진해 주거 환경 개선과 공급 확대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이는 저소득층 지원과 양극화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3기 신도시 분양을 앞당겨 대규모 물량 공급을 실감토록 해야한다.수요 측면에서는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해 국민 저축이 부동산으로 가는 길을 차단해 국내 투자로 흐르도록 해야 한다.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에서 미흡하다고 여기는 것은 수요쪽에서 종부세에 손대지 않고 있는 점, 공급쪽에서 3기 신도시 공급을 늦추고 있는 점이다.”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는 투기 목적의 가수요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둘째는 빈부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것이다. 소비세보다 자산세를 강화하는 것이 불평등 해소에 더 효과적인데, 그 중심이 바로 부동산 보유세다. 셋째는 사회정의의 문제다. 고가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부담해야 사회적으로 떳떳하고, 사회적 형평성에도 이것이 맞다.지금 한국은 이 세 가지 측면 모두에서 문제가 있다. 보유세 수준이 선진국의 3분의 1~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뉴욕은 시가 대비 약 1.3%, 도쿄는 1.7% 수준인데 서울은 0.3%에 그친다. 시가 10억원 주택 기준으로 보면 미국 휴스턴은 재산세 500만원과 교육세 1000만원을 합쳐 연 1500만원 수준인데, 서울은 재산세와 종부세를 합해도 약 300만원에 불과하다.과세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총 보유가액 기준으로 과세하는 것이 맞다. 서울의 70억원짜리 한 채와 지방의 5000만원짜리 여러 채를 단순히 주택 수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최근 한국 증시와 환율 흐름은 어떻게 평가하나. “그동안 한국 증시는 선진국 대비 저평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상태였는데, 최근 정부의 증시 활성화 정책과 AI 산업 확산이 맞물리면서 반도체 중심으로 강한 상승 흐름을 보였다. 반도체 산업 호황과 정부 정책이 맞물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는 현상으로 본다. 이러한 상승은 일정 부분 지속성을 가질 것으로 본다. 환율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기초 체력이 견고한데도 환율이 상승하는 것은 이란 전쟁, 대미 투자, 해외 투자 확대 등 일시적 외화 수요 때문으로 본다. 이러한 특별 수요는 시간이 지나면 완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연말에는 환율이 1300원대 수준에서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AI와 로봇 확산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보나. “앞으로는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결합되면서 생산 현장에 로봇이 빠르게 투입될 것이다. 로봇은 24시간 가동이 가능하고 보상이나 휴식이 필요 없으며 노동 분규도 없다. 이런 변화는 생산비를 낮추고 물가를 안정시키며, 결과적으로 국민의 생활 수준과 실질 소득을 높일 것이다.다만 단기적으로는 부작용이 불가피하다. 일자리 감소와 실업 문제, 불평등 심화, 윤리와 보안 문제 등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를 막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리더십 철학이 있나. “언제나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한다. 작은 선택에서도 마찬가지다. 불편하더라도 남을 먼저 배려하고, 조직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택하는 것이 쌓이면 결국 개인의 길도 열린다.정책은 항상 갈등을 동반한다. 분당·일산 등 1기 5대 신도시를 건설할 때의 일이다. 현장에서는 극심한 반대가 있었고, 도로 점거와 시위가 이어졌으며 국회에서는 백지화 결의안까지 통과됐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후퇴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지금의 불편과 손해보다 미래의 사회적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사업은 예정대로 추진됐고, 나는 정치적 책임을 지고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됐는데, 그 때 일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기부한 이유는. “나 자신의 큰 행복을 위해서다. 하늘을 보고 별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 때마다 개인적인 행복은 작고 좁은 행복이고, 남과 사회를 배려하는 데서 오는 행복은 크고 넓은 행복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폐교 위기에 있던 전북 김제의 한 농촌 초등학교에 도서관을 지어주고 장학기금을 마련해 주었는데, 이 학교가 다시 살아나 최근에 4개 학급을 증축하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을 보는 것이 내게는 큰 행복이다.젊은 세대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 삶도 힘든데 어떻게 남과 사회까지 생각하느냐’고 묻지만, 그렇게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주변을 배려하고 조직에 기여하는 태도를 가지면 된다.” ■박승 前한은 총재는 1936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1년 한국은행에 입행한 뒤 중앙대 교수, 대통령 경제수석, 건설부 장관,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한국은행 총재 등을 역임하며 정책과 학계를 넘나들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성장한 경험을 바탕으로 ‘더 가진 사람이 더 나누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철학을 실천해왔으며, 모교와 농촌 학교, 공익재단 등에 40억원이 넘는 재산을 기부해왔다. 2013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 소사이어티’에 최초로 부부가 함께 가입해 100억원이 넘는 유산을 펀드 형태로 사회에 환원한 권준하·조강순 부부가 박 전 총재의 처남인데, 그의 기부 철학에 영향을 받아 실천에 나선 사례로 꼽힌다.
  • [사설] 여야정 싸우더라도 만나길, 민생 정치 불씨 살려 가길

    [사설] 여야정 싸우더라도 만나길, 민생 정치 불씨 살려 가길

    이재명 대통령이 어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여야정 민생경제 협의체 회담’을 열었다. 이 대통령은 7개월 만에 이뤄진 여야 수장 회동에서 26조 2000억원 규모의 ‘전쟁 추경(추가경정예산안)’과 관련해 야당의 협조를 당부했다. 장 대표는 “국민 70%에게 현금을 나눠 주는 방식이라면 물가와 환율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부적절한 예산 삭감과 꼭 필요한 국민생존 7개 사업 지원 등을 제안했다. 여야가 추경 필요성에는 뜻을 같이한 셈이다. 이 대통령도 “지금 예산안은 정부 의견이고, 심의·의결권을 가진 국회에서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정 대표는 이 자리에서 야당이 반대하는 TBS 지원 사업의 삭제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장 대표는 이날 국정 기조의 전면적 변화를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의 전날 대북 무인기 침투 사건에 대한 사과 등 유화적 대북 정책을 비판하고, 대북송금 사건 등에 대한 여권의 조작기소 국정조사 및 공소취소 추진 움직임에도 우려를 쏟아냈다. 반면 이 대통령은 5·18 정신과 부마항쟁, 비상계엄 남용 방지, 지방자치 강화 등을 골자로 한 순차적·점진적 개헌에 야당의 참여를 당부했다. 이에 장 대표는 개헌 논의 전 이 대통령의 연임·중임 포기 선언을 역제안했다. 쟁점 현안들에는 입장 차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여야가 마주앉아 상대방이 우려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직접 듣고 소통하는 장이 성사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작지 않다. 서로 낯만 붉혔던 여야 대표가 ‘통합 넥타이’를 맨 이 대통령의 중재로 손을 잡기도 했다. 여야는 민생 회담을 정례화해 정치 복원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 중동발 공급망 위기와 검찰청 폐지, 사법개편 3법 시행에 따른 국민적 혼란, 집값 및 전월세 등 여야가 함께 해결해야 할 민생 과제들이 차고 넘친다. ‘잘하기 경쟁’을 벌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6·3 지방선거 대책이 될 수 있다.
  • 자산보다 빚이 더 많은 고위험 가구 46만… 35%가 2030

    자산보다 빚이 더 많은 고위험 가구 46만… 35%가 2030

    사회초년생 직장인 이모(27)씨는 최근까지 국내 증시가 급등하자 ‘나만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신용대출로 주식을 샀다. 하지만 중동 전쟁 이후 주가가 흔들리면서 빚을 안고 투자에 나선 선택이 오히려 더 큰 위험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주택 구입과 주식 투자를 위해 빚을 지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한국은행이 26일 공개한 ‘금융안정상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고위험가구 45만 9000가구 중 20∼30대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34.9%로 집계됐다. 이 비율은 2020년(22.6%)보다 12.3% 포인트 늘었다. 같은 기간 청년층의 금융부채 규모도 2배 이상 증가했다. 코로나19 이후 치솟는 집값과 주가 상승에 ‘지금 아니면 늦는다’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소득이 부족한 청년층까지 대출을 끌어 투자에 뛰어든 결과다. 한은은 “부채 상환 부담이 크게 확대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환율·주가 변동성이 커지고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한은은 취약차주 연체율 상승과 고위험가구 증가가 맞물릴 경우 금융시스템 전반의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2월말 중동 사태 발발 이후 달러화 강세로 주요국들보다 크게 올랐다. 중동사태가 터지기 직전 영업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9영업일 뒤 한국의 환율 상승률은 4.1%에 달했다. 영국(1%), 유럽연합(2.6%), 일본(2.1%), 중국(0.3%), 말레이시아(0.9%), 대만(2%), 브라질(2.4%) 등과 비교해도 상승 폭이 컸다. 주가 하락폭도 주요국보다 높았다. 한국의 주가는 같은 기간 12.1% 하락했지만 미국, 영국, 독일, 일본은 각각 3%, 5.2%, 0.8%, 7.5% 떨어지는 데 그쳤다. 이는 구조조정 진행 중인 석유화학 업종의 중동지역 원유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은 70.7%에 달하며, 이 중 99%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특히 지난 4일엔 주가변동성지수(V-KOSPI)가 치솟아 역대 최고치(80.37)를 기록한 바 있다. 한은은 중동 리스크가 장기화하면 국내 실물경제에 연쇄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특히 지방은행과 저축은행은 부동산 경기 둔화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까지 겹치면서 자본 건전성이 흔들릴 수 있다. 이는 위험자산인 대출·채권 등이 늘어나거나 자본이 줄어드는 상황을 뜻한다. 중동 전쟁이 길어지면 기업들이 회사채를 갚지 못하는 위험이 커질 수도 있다. 이수형 한은 금융통화위원은 “중동 리스크 장기화로 물가 상승 압력과 성장 둔화 위험이 동시에 커지는 복합 위기 상황”이라며 “충격이 금융시스템으로 번지지 않도록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