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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처럼 펼쳐진 공간, 미술의 숲… 글 옆에 흐르는 선율, 음악의 성[박상준의 서행]

    책처럼 펼쳐진 공간, 미술의 숲… 글 옆에 흐르는 선율, 음악의 성[박상준의 서행]

    의정부미술도서관BTS의 RM 기증 도서·글 3층 전시열린 평면 구조… 편안·친근한 예술 의정부음악도서관독서 테이블에 음악 감상용 헤드폰이달 ‘한강 작가’ 플레이리스트 구성 2024년은 여러분에게 어떤 시간이었는지? 그리고 2024년의 12월을 어떻게 지나고 계시는지. 경기 의정부미술도서관에 앉아 안녕을 바라며 안부를 묻는다. 12월은 한 권의 책으로 치면 마지막 단락이다. 얼마 안 남은 페이지가 넘기기 아깝거나 반대로 지루한 졸음과의 사투 끝에 다다른 종착일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건 마지막 장을 덮기 전까지 끝을 장담할 수 없다. 어떤 책들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제일 뒷장에 숨겨두기도 하는 법이니까. 우리의 12월에도 아직 끝나지 않은 희망의 페이지가 남아 있을 것이다. ●미술이 편하고 친근하게 의정부미술도서관은 2019년 우리나라 최초 미술 전문 공공도서관으로 문을 열었다. 지난 11월 29일은 꽉 채운 5년이었다. ‘오픈빨’이 끝이 나고 온전히 제 모습이 드러나는 시기. 의정부미술도서관의 올해는 그리고 지난 5년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은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그런 궁금증이 뒷북 치듯 의정부미술도서관을 찾게 했다. 이는 한해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질문이기도 하다. 실마리는 3층 ‘기증 존’에서 얻는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은 지역민 못지않게 여행자가 많이 찾는다. 개관 초기 방문객 가운데는 방탄소년단(BTS)의 RM이 있었다. 기증 존은 기관과 개인이 기증한 미술 전문 도서로 채워진 서가 방이다. 그곳에 RM이 기증한 몇 권의 책과 그가 남긴 글이 있다. 장식 같은 인사말이 아니라 짧은 편지글이어서 좋다. 이렇게 시작한다. “정말이지 책만큼 무언가를 쉽고, 깊게 알아갈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5년이 지나도 그 말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가 BTS의 RM이라서가 아니라 책은 정말 그러하다. 그걸 눈치챈 그가 반가울 따름이고. 그리고 이렇게 끝난다. “그림은 어렵지 않아요. 바로 저희 곁에 있습니다.” 의정부미술도서관에 대한 ‘기증’의 응원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올해 6월에는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미술 분야 희귀도서 등 9000권을 기증했다. 그가 전한 말도 비슷하다. “미술을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고 친근하게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그들의 말은 의정부미술도서관이 하고 싶은 말, 지난 5년 동안 일관되게 하고 있는 일이다. 미술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우리가 미술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길잡이가 되겠다는 선언. 그래서 의정부미술도서관은 여느 공공도서관과 달리 회원가입 대상을 지역으로 한정 짓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과 외국인 등록자’ 모두가 회원 가입이 가능하다. ●5년 만에 다시 백영수 그럼 개관 5주년을 맞아 어떤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을까? 가을밤 영화음악회 ‘무비 뮤직 라디오’(Movie Music Radio)가 있었다. 금관 오케스트라 ‘코리안 아츠’가 연주하는 영화음악이 도서관 안에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은은하게’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그 장소 때문이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은 조도연 건축가(디엔비건축사사무소)가 설계를 맡았다. 2020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건축이다. ‘펼쳐진 책처럼 열린 평면’을 구상했다고. 여기서 ‘열린’은 평면에 그치지 않는다. 도서관 1층부터 3층까지는 중앙의 원형 계단으로 연결된다. 탁 트인 하나의 공간이다. 입구 반대편은 3층 높이의 전면 유리창이다. 자연광이 넉넉하게 내린다. 개방감이야말로 ‘열린’ 도서관의 상징이다. 그러니 오페라하우스의 아트리움 같은 구조를 활용해도 좋았을 터. 하지만 공연은 도란도란 둘러앉을 수 있는 1층 ‘스테이지A’에서 소박하게 열렸다. 그럼에도 음표들이 그려내는 선율은 공간을 가득 채워 물들였다. 도서관 곳곳에서 책을 읽던 사람들이 독서를 멈추고 잠시 귀를 열어 음악에 귀 기울이는 장면은, 장엄하거나 거창하지 않아서 좋다. 아마도 음악은 책과 커피의 온기처럼 번져나갔을 것이다. ‘예술은 어렵지 않다’는 말은 그렇게 ‘편안하고 친근’하게 퍼졌겠다. 그 작지만 큰 공연에 함께하지 못했다 아쉬워할 건 없다. 도서관의 1층 전시실에서는 5주년 기념 전시 ‘백영수 화백 특별전: 함께 그리다’가 한창이다. 백영수 화백은 의정부미술도서관의 뿌리다. 김환기, 유영국, 이중섭 등과 더불어 신사실파를 대표하는 작가로, 2011년 프랑스 파리에서 영구 귀국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의정부에서 그림을 그렸다. 덕분에 의정부의 미술도서관이 뜬금없지 않을 수 있었다. 2019년 의정부미술도서관 개관기념전의 주인공 역시 그였다. 2025년 3월 31일까지 열리는 특별전은 백 화백의 예술 세계 전반을 조망한다. 그의 그림을 상징하는 ‘모자상(母子象)’ 시리즈는 12월 그리고 겨울이라 더 따스하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그림을 처음 접한 이들조차 편하게 다가서고 소통한다. 그 밖에도 백 화백이 파리 아틀리에에서 사용했던 이젤과 화구, 관객이 직접 ‘나만의 모자상’을 그려볼 수 있는 체험 공간도 마련했다. 겨울 찐빵처럼 따스한 온기가, 함께 그리는 그리움이 전시장 구석구석에 번진다. ●언젠가가 아닌 여기 함께 특별한 공연과 전시뿐일까. 5년을 지속한 의정부미술도서관의 힘은 사서다. 층마다 한 달에 한 번씩 바뀌는 사서들의 컬렉션(큐레이션) 역시 흥미롭다. 특히 ‘사사책’(‘사서가 사서 읽은 책’의 앞 글자를 딴 줄임말)은 마치 ‘내돈내산’(내 돈으로 내가 산 물건) 후기처럼 독특한 제목이 눈길을 끈다. 사서가 사서 읽은 책을 짧은 평과 함께 소개하는데 12월의 첫 칸에는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한여진, 문학동네)가 놓였다. 도서관 입구에는 ‘아트북크’(Art+Book+Walk) 책 꾸러미가 기다린다. 건축, 인상주의 등 10개의 예술 키워드로 나눠진 꾸러미 안에는 사서들이 추천하는 주제 책과 자료, 그리고 증정품이 들어 있다. 꾸러미 채로 대여해 선물을 열어보는 듯한 기쁨을 누리는 책 서비스다. 의정부 시민들 역시 사서와 컬렉션 대결을 펼친다. 한 달 전 시민들이 추천한 책은 이달의 ‘시민 컬렉션’으로 또 다른 선택지를 제공한다. ‘필사의 숲’에도 시민들의 추천 책이 있다. ‘필사의 숲’은 책을 옮겨 적는 작은 방이다. 도서관 5주년을 맞아서는 시민들이 추천한 필사 도서 외에 추천의 편지가 더해졌다. 필사 도서 추천 코너 앞에서 독서가들의 편지를 읽으며 나의 취향을 저격할 책을 고른다. 겨울의 한가운데서 읽고 쓸 오늘의 책은 ‘소설보다 여름 2021’(서이제·이서수·한정현, 문학과지성사)이다. 출판사에서 분기마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해 엮은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먼저 읽은 독자 ‘hye’는 “그것은 작고 투명한 유리잔 같은 여름이었다. 하지만 그런 여름을 사람들은 사랑이라 부르는 듯했다”를 기억에 남는 문장으로 꼽았다. 그의 인사말처럼 ‘안온한 저녁’이 가까워져 오는 시간, 내가 고른 소설은 그 가운데 서이제 작가의 ‘#바보상자스타’에 실린 닐 암스트롱에 관한 내용이었다. “닐 암스트롱은 언젠가 인간이 달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오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인류가 여기 지구에서 함께 잘 살 수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언젠가가 아닌 여기, 내일이 아닌 오늘, 그리고 함께. 처음의 들뜬 마음을 잃고 비틀거리는 것이 아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하게 해나가는 것, 가까운 이들과 그렇게 나란히 걸어가는 것. 2024년의 남은 시간 우리에게 남겨진 희망이자 과제는 아닐까. 도서관을 나오는 길, 아이에게 가만히 고개를 기울인 백 화백의 엄마 조각이 배웅한다. ●이곳은 도서관인가? 레코드숍인가? 의정부미술도서관을 다녀간 이들은 백영수 화백이 궁금할 테다. 그는 1973년 도봉산 안말 언덕에 반해서 손수 집을 짓고 작업실을 꾸렸다. 그리고 의정부 호원동 골목의 집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인 2018년 4월 백영수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미술관 외관에는 모자상이 보인다. 하얀 벽은 순백의 눈밭 같지만 그 위에 수놓은 엄마와 아이의 모습은 세상 무엇보다 따뜻하다. 자그마한 정원을 지나 들어선 미술관 역시 마찬가지다. 백 화백이 옛집 어딘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듯하다. 의정부에는 의정부미술관 외에 여행지 삼을 도서관이 또 있다. 의정부음악도서관은 의정부 시내 장암 근린공원 내에 있는 3층 건물이다. 책은 물론 CD, LP 등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도서관이다. 문을 열자 음악이 흐른다. 1층 북스테이지는 일반 도서와 음악 도서를 갖췄다. 아직은 도서관 느낌이다. 2층부터 서서히 본색을 드러낸다. 악보 서가를 지나고, 독서 테이블에는 음악 감상용 헤드폰과 태블릿이 놓여 있다. 12월의 사서컬렉션은 ‘한강 작가의 곁에 있어 준 노래들’이다. 음악도서관다운 발상이다. 2021년 문학동네에서 진행한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인터뷰에 기초한 플레이리스트로, 조동익의 ‘럴러바이’, 필립 글래스의 ‘에튀드 No. 5’와 악동 뮤지션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등은 작가가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곁의 소설가라는 걸 느끼게 한다. 3층은 도서관보다 레코드숍이라거나 작은 공연장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턴테이블 옆에 가방을 내려놓은 채 LP 음반을 고르는 직장인의 모습이 보이고, 스튜디오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이용객도 보인다. 오디오룸에서는 매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상영한다. 12월 21일에는 스팅의 ‘어 윈터스 나잇 : 라이브 프롬 더럼 캐더럴’, 22일에는 J.S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등이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돋운다. 뮤직홀의 자동 피아노 연주나 ‘사서와 함께하는 도서관 투어’ 역시 도서관을 특별하게 즐길 방법이다. ●희망은 힘이 세다 서울을 출발점 삼아 의정부미술도서관에 갈 때는 도봉산역에서 버스를 환승한다. 도봉산역에는 1980년대 민주화의 산증인인 고 김근태 전 의원을 기려 지은 김근태기념도서관이 있다. 도봉산역에서 500m 거리다. 김근태기념도서관은 도서관과 전시관을 갖춘 라키비움((Library+Archive+Museum) 형태다. 크게 생각곳(열람실)과 기억곳(전시실)으로 나뉘는데 생각곳은 서가 분류를 눈여겨볼 일이다. 한국십진분류 옆에 김근태 전 의원의 말과 글을 별칭처럼 붙였다. 100철학은 ‘도덕적 가치’, 700언어는 ‘평화가 밥이다’, 800문학은 ‘희망은 힘이 세다’ 등이다. ‘근태생각곳’과 산바람길도 추천한다. 근태생각곳은 그의 사상과 철학을 읽을 수 있는 책들의 방이다. 그리고 도서관 3층과 4층에 위치한 산바람길은 옥외 공간으로 서쪽 도봉산과 동쪽 수락산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겨울 추위가 무색할 만큼 수려한 전망이다. 한해를 마감하거나 새해를 ‘함께’ 맞이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도서관을 나오기 전에는 그의 발자취가 깃든 기억곳에 들린다. 그리고 입구에 적힌 글 앞에서 멈춘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그의 삶을 고백하는 말이겠다. 그리고 그가 생전에 쓴 마지막 글이다. ■여행 수첩 ● 의정부미술도서관 -오전 10시~오후 9시(화~금요일 자료열람공간), 오전 10시~오후 6시(토~일요일 자료열람공간), 오전 10시~ 오후 6시(전시관, 화~일요일), 월요일, 일요일을 제외한 법정공휴일 휴관 누리집 www.uilib.go.kr/art
  • “정부미 유통 사업 하는데…” 지인 4명에게 10억 가로챈 40대 구속

    “정부미 유통 사업 하는데…” 지인 4명에게 10억 가로챈 40대 구속

    정부 지원 ‘정부미 유통 사업’을 미끼로 지인들에게 10억원 상당을 가로챈 40대가 구속됐다. 대구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A(40대)씨를 구속했다고 16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지인 4명에게 “정부가 지원하는 정부미 유통 사업을 하고 있는데, 사업 자금을 빌려주면 높은 이자를 주겠다”고 속인 뒤 총 10억원 가량을 빌려 갚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A씨는 실제로 정부 지원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가로챈 돈 대부분을 기존 채무를 돌려막거나 생활비로 썼다. 조사 결과 A씨는 평소 고급 외제차를 타고 재력을 과시했으며, 소액을 빌리고 다음날 10%의 이자를 더해 갚는 방식으로 피해자들과 신뢰 관계를 쌓은 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최근 정부 지원을 받아 쌀이나 금을 유통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빌리거나 투자를 유도하는 사기 사례가 늘고 있어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수법의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사업 실체를 확인하고 고이율 보장에 대한 객관적 자료를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면서 “또 지속적이고 점차 증가하는 차용 요구는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 나주 쌀로 빵·국수 생산… “농촌에 청년 기회 많아” [대한민국 인구시계 ‘소멸 5분전’]

    나주 쌀로 빵·국수 생산… “농촌에 청년 기회 많아” [대한민국 인구시계 ‘소멸 5분전’]

    계약재배로 가공용 종자 쌀 구매간편식으로 쌀 소비량 증진 노력 “나주 청년, 농민들과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쌀 식품을 연구개발하고 있습니다. 지역 기업이 살아야 더 많은 청년 농업인들이 도전할 활로가 생길 것입니다.” 쌀 주산지 전남 나주에서 다양한 쌀 가공식품을 생산하는 사회적기업 레인보우팜㈜ 류정희(30) 대표는 고향의 쌀 품질을 널리 알리고 있는 벤처기업인이다. 류 대표는 20대인 2017년 회사를 세웠다. 류 대표는 농촌과 6차 산업을 융합한 ‘농촌융복합산업인’으로 쌀산업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현재 396.69㎡(약 120평) 규모 공장에서 직원 11명과 국내산 쌀로 만든 쌀과자, 쌀호두과자, 쌀국수, 쌀파스타 등 순쌀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레인보우팜은 나주산 쌀만 재료로 사용한다. 류 대표는 나주의 쌀 재배 농가들로부터 가공용 종자 쌀을 구매한다. 2019년 계약재배 형식으로 계약한 33057㎡(1만평) 규모의 논에서 생산된 쌀만 사들였다. 류 대표는 “소비자들이 우리 쌀을 외면해 국내 쌀산업이 위축되는 모습을 보고 지역 쌀을 이용한 간편식을 만들어 쌀 산업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회사 이름인 ‘레인보우팜’은 ‘비온 뒤 맑게 갠 날씨에 피어나는 무지개’라는 뜻을 담았다. 그는 “시작은 힘들었지만 그 끝에 보이는 희망을 이름에 녹였다. 아버지의 꿈인 쌀 소비량 증진과 법인의 꾸준한 성장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는 취지”라고 했다. 그는 “밀가루를 쓰거나 가격이 싼 정부미를 사용하면 제품 단가는 낮출 수 있지만 회사 이름인 레인보우팜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지역의 쌀 재배 농가가 살아야 나라 전체의 쌀산업이 유지된다는 소신 때문이다. 류 대표는 해외 시장도 바라보고 있다. 쌀과자나 쌀빵을 외국 소비자에게 판매하면 쌀 소비량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수출을 위해서는 유기농과 해썹(HACCP) 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는 “인증을 받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 중”이라며 “더 많은 청년 농업인이 우리 농식품 수출에 도전할 수 있게 HACCP 인증 등에 정부가 지원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농촌이 쇠퇴하고 있다고 하지만 청년들에게 기회가 가장 많은 영역이 바로 농업”이라면서 “초심을 잃지 않고 다양한 건강식 쌀 가공식품을 만들어 우리나라 식품산업이 발전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 [단독] 외교장관 공관에 걸린 김환기 작품, 관리시스템엔 없는 까닭은?

    [단독] 외교장관 공관에 걸린 김환기 작품, 관리시스템엔 없는 까닭은?

    정부 부처 가운데 가장 많은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는 외교부가 일부 주요 작품의 정부 관리시스템 등재를 빠뜨리거나 작품명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등 관리에 허점을 보인 것으로 파악됐다. 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주요 미술품 보유 현황 등을 분석한 결과, 외교부는 총 4119점의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다. 취득 당시 기준으로만 해도 126억원에 이르는 규모로, 정부 부처 가운데 가장 많은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다. 정부미술은행에서 임차한 1118점을 포함하면 5237점의 미술품이 외교부 본부와 재외공관에 전시돼 있다. 외교부는 매년 두 차례씩 본부와 재외공관이 소유한 미술품을 조달청이 제공하는 미술품 관리시스템에 등재해 관리실태를 점검해야 한다. 그러나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외교부 장관 공관에 걸려있는 김형대 화백의 ‘Halo 98-628’, 김환기 화백의 ‘무제’, 민경갑 화백의 ‘자연과의 공존’이 관리시스템에는 누락된 것으로 드러났다.이 작품들은 한남동 공관 시절에도 걸려 있었고, 지난해 삼청동으로 공관이 이전된 뒤에도 주거동 복도와 접견실에 각각 걸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민 작가의 ‘자연과의 공존’은 구입 당시 2000만원 상당의 예산을 들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외교부는 정확한 구입처와 취득가액을 모르고 있다고 박 의원 측은 지적했다. 외빈 접견이 수시로 이뤄지는 공관 입구에 걸린 주태석 작가의 작품은 정확한 작품명을 파악하지 못해 삼청동으로 공관을 이전한 뒤 다시 작품을 걸면서 ‘미상’으로 기재한 것으로 파악됐다. 외교부의 미술품 관리규정에 따르면 본부 및 재외공관은 소관 미술품을 조달청 미술품 관리시스템을 이용해 ‘미술품 관리대장’에 등재해야 한다. 등재할 땐 사진과 함께 특성 등 주요 이력을 첨부해 현품과 대조 확인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도 명시돼 있다. 외교부가 재외공관에 보낸 회계와 관리 지침에도 “(실무자가) 파악하기 곤란하다고 해서 내버려뒀다가 후에 숫자가 맞지 않는다거나 훼손·망실이 발견되는 경우 미술품 관리관이 변상 책임을 갖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박 의원은 “외교부와 재외공관은 한국 문화의 얼굴이나 마찬가지인데 소유 미술품의 관리나 활용은 문화 강국인 대한민국의 수준에 현저히 못 미치고 있다”며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보다 널릴 수 있도록 미술품의 용도나 취득 경로, 향후 활용 방안 등을 전면 재점검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외교부는 “2007년부터 조달청 물품관리시스템을 이용해 미술품을 전산 등록, 관리하는 과정에서 관리대장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던 장관 공관 소장 미술품 중 2003~2006년 구입한 장관 공관 미술품들이 누락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본부 및 재외공관 미술품의 체계적 관리를 위해 미술품 관리 규정에 따라 기존 정기점검 등 조치를 더욱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 [데스크 시각] 양곡법 통과돼도 국산 쌀떡볶이 시대는 안 온다/홍희경 세종취재본부 부장

    [데스크 시각] 양곡법 통과돼도 국산 쌀떡볶이 시대는 안 온다/홍희경 세종취재본부 부장

    “수입쌀보다 국산을 쓰고 싶죠. 하나 중장기적으로 나랏미(정부미) 수급이 안정적이지 못하니까요.” 야당 대표가 1호 법안이라며 처리를 강행하고 대통령이 1호 거부권을 쓰며 저지 중인 양곡관리법의 기본 전제는 지금 쌀이 남아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떡볶이떡 원료를 수입쌀에서 국산쌀로 대체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 앞에서 쌀 가공기업 대표는 선뜻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나랏미, 즉 정부가 비축했다가 가공용으로 판매하는 쌀의 가격이 ㎏당 1000원 안팎으로 수입쌀의 두 배 정도라는 점도 문제이지만 더 곤혹스러운 게 수급 안정성 문제란 설명이다. 요즘이야 쌀 가공업체가 필요한 만큼 나랏미를 공급받을 수 있지만 불과 2년 전인 2021년 나랏미 공급량은 기존의 40% 안팎으로 뚝 떨어졌다. 역대급 장마로 2020년에 쌀 부족 현상이 생기자 정부가 나랏미를 대거 방출했고, 정작 나랏미를 주로 쓰던 쌀 가공업체들은 높은 가격에 일반미를 구하거나 수입산으로 원료를 대체해야 했다. 그때 나랏미를 못 구해 거래업체마다 전화해 원료를 수입쌀로 바꿔야 한다고 통사정하던 기억 때문에 나랏미가 풍족한 지금에 와서도 수입쌀 원료를 국산쌀로 바꾸는 결정이 쉽지 않게 됐다. 10년 넘게 쌀 가공기업을 운영하면서 이런 나랏미 품귀 현상을 서너 번은 겪었다고 한다. “떡볶이는 분식으로 생각하잖아요. 국산쌀인 나랏미를 쓰면서 가격을 조금만 올려도 프리미엄 시장용 제품이 됩니다. 그런데 나랏미를 못 구하게 되면 몇 년 동안 쌓은 소비자 신뢰를 한순간에 잃게 되겠죠. 대기업이라면 몰라도 중소기업이 나랏미 수급 불안정을 감내하는 건 위험한 선택입니다.” ‘미식 떡볶이’로 명성을 얻은 제품을 판매하는 가정간편식(HMR) 스타트업의 대표 역시 최근 정치권이 주목하는 국산쌀 초과생산 국면을 무심하게 봤다. 밥쌀 소비가 줄어드는 국면에서 국산쌀을 활용한 가공식품 생산·수출 활성화는 쌀 소비 촉진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그런데 실제 쌀 초과생산이 벌어진 상황임에도 중소 쌀 가공기업들은 새 사업 기회를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직접 신경 쓰게 된 상황에서도 쌀 초과생산, 이에 따른 법 개정 작업은 왜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쪽으로 이행되지 않을까. 우리 진영이야말로 농민을 위한다는 공허한 구호, 상대 진영의 미래 쌀농사 추계는 잘못됐다고 꼬투리를 잡아 논지를 흐리는 격발성 공격, 서로의 말실수를 낚아채 공격하는 소모적인 정치의 장에서만 양곡법이 논의되고 있어서다. 즉 쌀을 ‘산업정책’이 아니라 ‘정치’의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정책의 문제로 접근했다면 쌀 초과생산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었을 터다. 갈수록 밥쌀 소비량이 줄어드는 일은 막기 어렵고, 쌀 외의 곡물 자급률을 높여야 하는 미래 과제가 결부된 문제이며, 동시에 가공식품 원료로 활용하는 식으로 쌀의 새로운 활용처를 찾아야 한다는 ‘복합위기’로 이 문제가 인식됐을 것이다. 실제 2019년에 농림축산식품부가 설계한 ‘쌀가공산업 육성 5개년 기본계획’에는 쌀산업 체질 변화를 위한 중장기 계획이 망라돼 있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이 5개년 기본계획 중 여야 막론하고 정치권이 착실하게 이행 중인 과제가 포함됐는데, 바로 ‘천원의 아침밥’ 사업이다. 여야 정치인들의 체험 사진이 덧대지며 청년복지 정책으로 널리 알려진 이 사업은 사실 아침밥 먹는 문화를 확산시켜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한 정책으로 입안됐던 것이다. 이 정책 이외에 나랏미 공급체계 개선, 쌀 관련 연구개발(R&D) 확대, 밀가루 대체를 위한 쌀가루 산업 육성, 수출 전략, 식량안보 강화 대책 등은 정치권의 논의 속으로 끼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양곡법 사태는 정부의 중장기 정책이 정치화됐을 때, 가장 말초적인 정책만이 살아남는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 물길 따라 쓴 시집 일곱권… 詩지도로 그려 낸 한반도 [작가의 땅]

    물길 따라 쓴 시집 일곱권… 詩지도로 그려 낸 한반도 [작가의 땅]

    ‘새벽 시내버스는/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엄동 혹한일수록/선연히 피는 성에꽃/어제 이 버스를 탔던/처녀 총각 아이 어른/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입김과 숨결이/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낸/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자리를 옮겨 다니며 보고/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성에꽃 한 잎 지우고/이마를 대고 본다/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 최두석 시, ‘성에꽃’ 전문내가 막 시인으로부터 풀솜대 한 줄기를 받아 든 그때 몇몇의 사람들이 양말을 벗고 물에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시인은 말없이 가방을 짊어지고 더 깊은 산 속으로 가 버렸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도 훨씬 전에 학과의 문학기행차 방문했던 검룡소에서의 일이다. 그전에도 같은 이유로 시인과 이곳에 왔던 내가 옛일을 추억하며 풀솜대 이야기를 하니, 시인이 검룡소의 지천에 널린 그것을 채집해 온 터였다. ‘각종 쓰레기’, ‘녹슨 동전들’, ‘불우 이웃 돕기’ 등등의 말이 물 위를 흐르자 가열찬 학생들 몇몇이 계곡에 들어가 색 바랜 동전들과 쓰레기를 거둬 모으기 시작했다. 검룡소를 무척 아껴서 자신이 쓴 시의 발원으로도 여기던 시인이 멀리서 그것을 보고는 그곳의 사정을 짐작할 새도 없이 심기가 상해 버렸던 거다. 그 검룡소에 우리만 왔겠는가. 등산과 관광차 올라왔던 사람들은 환경 정화를 하고 있던 사람들을 보고 그저 그곳에서 발 담그고 노는 이들쯤으로 오해했고, 쓰레기와 동전들을 모아 의기양양하게 관리소에 제출했던 우리는 되레 혼쭐이 났다. ‘진달래 꽃잎 띄우고/그리움은 어디로 흘러가는가/겨울 골짜기에 얼어붙었던/슬픔은 어디로 흘러가는가/그리움은 슬픔을 만나 깊어지고 넓어지고/슬픔은 그리움을 껴안아/강이 된다고 넌지시 일러주며/하염없이 일렁이는 물살은/어디로 아득히 흘러가는가/여울을 지나 소를 지나/다시 오지 않을 생애의 한 굽이를/소용돌이치며 돌아’ (최두석, ‘아우라지에서’ )●한강 곡류 따라 흐르는 詩語 한강의 발원으로도 불리는 검룡소에서 내려온 물은 정선의 아우라지로 흐른다. 그리고 그 물은 황새여울과 어라연을 품고 있는 동강을 지나 남한강으로 흐른다.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져 한강의 본류로 흐르고, 임진강 맥을 만나 한강 하류의 머머리섬까지도 간다. 그 강줄기들이 끝끝내 만나는 것은 사람과 바다. 최두석의 시는 그 곡류를 고스란히 따른다. 사람살이와 새, 꽃, 강의 물줄기를 따라서 시를 쓴 시인 최두석은 1955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다. 마을에서 하나뿐인 서울대 국어교육과의 입학생이 된 스무 살의 청년은 그때까지 몰래 시를 쓰던 고등학생에서 본격적으로 시인의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이 기뻤다고 한다. 공부와 진학에 대한 기대감을 한 몸에 받고 있던 고등학생이 마음을 분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 시였기 때문이었다. 두 살 연상의 학과 선배와 결혼을 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시집 ‘대꽃’에 실린 시 ‘누님’에 나오는 “대학 과사무실에서 만난 선배 은숙이 누나”. 최두석은 1980년 ‘심상’에 ‘김통정’ 등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시인의 길에 들어선다. 시집으로 ‘대꽃’, ‘임진강’, ‘성에꽃’, ‘투구꽃’ 등이, 평론집으로 ‘리얼리즘의 시정신’, ‘시와 리얼리즘’ 등이 있으며 2007년 불교문예작품상, 2010년 오장환문학상을 수상했다. 한신대 문예창작학과에서 시를 가르쳤으며, 오월시 동인이다.●잊혀져 가는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동학농민운동의 터에서 자란 까닭인가. 시인의 초기작들은 ‘사람’을 향해 있다. 핍박받는 농민들과 힘없는 사람들, 더이상 목소리를 내지 못할 정도의 노동에 지친 이들이 집에 돌아와 씹는 찰기 없는 정부미의 맛으로도 ‘사람’을 쓴다. 함께 민주화 투쟁을 하던 친구의 이름을 부르고, 차창에 어린 성에꽃마저도 사람으로 치환해 시 속에 놓아 준다. 성에를 꽃으로 이 땅에서 맨 처음 발음해 준 사람이 바로 최두석이다. 사람이 사는 곳마다 물길이 있듯이 겨울이면 성에가 낀다. 그것은 왜 유독 어렵고 힘든 사람의 곁에 주로 피는 걸까. 그는 시 속에서 잊혀져 가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주고 싶다고 했다. 결국 시는 사람과 연결될 수밖에 없고, 시를 쓸 적에 시인 감정의 투여보다는 제재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어 쓰고 싶었다는 말로 우리에게 ‘자연’과 ‘리얼리즘 시’를 해석해 준다. 시에 김통정, 전태일, 서호빈, 권인숙과도 같은 사람 이름으로 시의 제목을 지은 것도 그 때문이다. 성에꽃을 호명하듯이 사람을 부른 시인의 마음이라니. 시인의 아버지는 풍수지리에 해박한 농민이었다. 그 덕분일까. 그가 자연을 대하고 시를 쓰는 방식은 여타의 사람들이 산과 강 그리고 바다에 가는 일반적인 순서와는 조금 다르다. 산 능선에 피어난 꽃들의 자리를 따라 가거나 한강의 발원부터 본류와 하류까지 샅샅이 찾아다니며 사람살이의 모습과 강물이 굽이쳐 흐른 자국들을 두 발로 직접 디뎌 본다. 지리가 다소 떨어져 있는 것 같은 곳이어도 본류를 알고 보면 ‘한강’인 시들이 꽤나 많다. 한강의 발원으로 불리는 검룡소와 오대산의 우통수 그리고 경포와 동강 아우라지를 지나 강화와 충청, 전라, 경상, 제주와 백두에 이르기까지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가 시로 쓴 지명과 꽃들은 아직 쓰지 않은 것을 찾는 게 더 빠르다. 한강의 물길처럼, 사람의 혈맥처럼, 끊임없이 피는 계절의 꽃처럼 최두석의 시는 그렇게 삶과 자연의 곳곳을 꾸밈없는 발걸음으로 디뎌 갔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무슨 꽃인들 어떠리/그 꽃이 뿜어내는 빛깔과 향내에 취해/절로 웃음짓거나/저절로 노래하게 된다면//사람들 사이에 나비가 날 때/무슨 나비인들 어떠리/그 나비 춤추며 넘놀며 꿀을 빨 때/가슴에 맺힌 응어리/저절로 풀리게 된다면’ ( 최두석 ,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꽃들에게 건네는 연대의 손길 “꽃으로 시를 쓰셨을 때, 우리나라 어디까지 가 보신 거예요?” 여름의 초입에 두물머리에서 시인을 만났다. 약속 시간보다 다소 늦게 도착한 시인이 가뿐 숨을 고르며 두물머리 주변 강의 흐름과 지형의 변화, 그 주변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꽃들을 설명을 하던 참이었다. 질문이 다소 어색했던 탓인지, 아니면 꽃과 사람을 주제로 시를 썼던 이력을 속으로 되짚었던 것인지 시인은 한참 동안 강물을 응시했다. “물이 흐르고, 꽃 있는 데는 그저 다 다녀봤지요.” 일곱 권의 시집을 모아 목차를 펼치면 그가 꽃과 사람과 새와 같은 ‘자연’에 대해 시를 쓰며 다녀온 한반도의 지도가 그려진다. 따로 한반도 최두석 시(詩)지도를 그려도 무방할 정도다. 그렇다면 시인의 시를 쓰기 위해 디뎌 온 자리야말로 꽃이 피는 생명의 강물 그 자체의 시간이 아닌가. 그것을 위해 살아온 시간 모두가 그에게는 그야말로 리얼리즘이다.‘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여/감돌아 흐르다가/밀물에 밀려 다시 회돌아 흐르는 섬//한강과 임진강이 몸을 섞는/격정의 강물 위에 떠올라/서해로 가는 물결 하염없이 배웅하는 섬(중략) 아무도 넘볼 수 없게/자신의 자리를 오롯이 지키면서/세월의 물살 고스란히 받아넘기는 이여//내 자유롭게 훨훨/남북을 오가고 싶은 소망의 새 한 마리/가슴에 품어 살뜰히 길러다오.’ (최두석, ‘머머리섬’ ) 인간사와 삼라만상이 모두 물줄기들 곁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의 소리와 형태와 역사를 고스란히 받아 적은 이가 시인이 됐다. 한반도의 강과 바다 그리고 땅, 섬들과 산의 속속들이에 박혀 사는 사람들과 새들의 소리도 강줄기와 꽃의 형상으로 기어코 받아 적은 시인, 그리하여 마침내는 ‘사진으로는 찍을 수 없고/늙은 무녀의 목쉰 노래로 귓가에 맴돌며’(시 ‘숨살이꽃’) 핀다는 숨살이 꽃에게까지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 준 사람, 최두석이다.작가의 땅 연재는 오늘로 30회가 됐다. 돌이켜 보니 한강의 발원에서 하류까지 이어진 땅의 곳곳에 있는 문학관과 작품에 나온 지명들을 따라 흐른 거였다. 그러는 동안에 출산을 하여 아이가 21개월이 됐다. 아이의 임신과 출산, 육아와 꼬박 맞먹는 횟수다. 사람들 사이에 핀 꽃들 속에서 작품이 맺혔다. 우리가 딛고 사는 이곳이 사실은 문장들의 두물머리가 아닌가 하며 이 연재를 마친다. 소설가 이은선
  • 요즘 도서관 가면… 로봇도 있고, 공룡도 있고, 재활도 있고…

    요즘 도서관 가면… 로봇도 있고, 공룡도 있고, 재활도 있고…

    독서, 영화감상, 인문학 특강, 정보기술(IT) 교육, 만화 창작, 치매 예방 독서교육…. 도서관이 책 읽는 곳에서 다양한 교육과 체험까지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부산중앙도서관은 5월 한 달 동안 매주 토요일 성인을 대상으로 줌을 활용한 인문학 프로그램 ‘나는 넷플릭스로 인문학 한다’를 운영한다고 3일 밝혔다. 참가자들은 영화를 감상하면서 다양한 주제로 인문학에 대해 배우고 토론하게 된다. 오는 7일에는 인문학당 달리의 서현나 강사가 영화 ‘숲속으로’를 통해 선과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21일에는 미술학 박사 유현욱 작가가 ‘취화선’을 통해 천재 화가 장승업의 삶과 작품을 설명한다.지난해 12월 개관한 울산 산전만화도서관에는 만화책 8000권과 만화 주인공을 따라 그릴 수 있는 책상(라이트박스), 웹툰 열람 전용 좌석 등이 마련됐다. 만화 창작실에서는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만화 교육을 진행한다. ‘나도 만화가’, ‘한복 삽화·전통 배경 제작’, ‘창작만화 도전’ 등의 창작 강좌가 인기다. 울산남부도서관은 2015년부터 올해까지 8년 연속으로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문화체육관광부 주최) 공모사업을 진행한다.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은 인문학 강연과 현장 체험을 연계해 주민들에게 생활 속 인문학을 알려 준다. 올해는 ‘미술관 옆 음악당: 미술은 음악의 선율을 타고’를 주제로 고전음악과 현대음악,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의 융합적 이해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충북 청주흥덕도서관에는 지난 3월 IT 교육 공간인 ‘행복 IT 존’(면적 83.56㎡)이 문을 열었다. 행복 IT 존은 노트북과 태블릿 30대, 큐브로이드·알파미니 등 교육장비 20종을 갖추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코딩, 메이커스페이스 등의 IT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경기도 용인 디멘시아도서관은 치매 특화 도서관이다. 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치매의 역사, 예방, 치료, 재활, 돌봄, 정책, 문학에 대한 책을 한데 모았다. 또 의정부미술도서관은 미술, 건축, 디자인 등 예술서적 4만여권을 소장하고 예술가를 위한 스튜디오까지 갖추고 있다. 판교어린이도서관에는 IT의 메카인 판교답게 로봇체험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말하는 로봇, 책 읽어 주는 로봇을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롤러코스터, 잠수함, 공룡 등을 주제로 한 가상 체험과 드론 체험도 가능하다. 산전만화도서관 관계자는 “만화도서관이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게 이용하는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며 “앞으로 다양하고 수준 높은 만화 관련 문화 강좌를 발굴·보급해 만화에 대한 인식 개선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 사과한다면서… 與후보 부동산 공약 현 정부와 ‘엇비슷’

    사과한다면서… 與후보 부동산 공약 현 정부와 ‘엇비슷’

    대선 국면에서 최대 승부처가 될 부동산 정책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들이 딜레마에 빠졌다. 돌아선 민심을 고려하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책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투기를 잡고 서민층을 보호한다’는 민주당 기조에서 벗어나긴 어려운 탓이다. 후보들은 ‘총론 찬성, 각론 반대’ 입장을 유지하면서 저마다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제대로 된 진단이 없고 차별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6일 3차 TV토론에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평가’라는 주제를 두고 후보들은 “부족했다”고 답했다. 특히 국무총리를 지낸 이낙연 전 대표는 “걱정을 끼쳐드려 송구스럽다”, 정세균 전 총리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사과했다. 윤순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은 7일 “죄송하다고만 하고 어떤 점이 문제였는지에 대한 진단이 빠졌다”고 지적했다. 가격 상승으로 인한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후보들은 방향과 취지는 옳았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대통령이 말씀하신 데 답이 있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방향은 옳았지만 섬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체적인 방향은 문제없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인 부분에서는 표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집권여당으로서 정부의 기조는 유지하되 보완하는 방식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본주택(이재명), 토지공개념 3법(이낙연), 토지 공공임대제(추미애) 등 후보들은 앞다퉈 부동산의 공공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토지공개념, 공공임대주택, 실수요자와 청년을 우대하는 정책들은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것들이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기본적으로 민주당은 다주택자 규제와 서민층 보호라는 큰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밝혔다. 현 정부가 실패한 부동산 공급도 너나없이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민주당의 색을 유지할 수 있는 공공이 주도하는 공급이 주로 거론된다. 이 지사는 신도시 공공택지에 기본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혔고, 박용진 의원은 김포공항 등 공공부지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정 전 총리만 민간을 통해 15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윤 연구원은 “민간 위주의 공급을 하려면 안전진단규제 등을 완화해야 하는데, 민주당에서 현실적으로 이런 공약을 내놓기 힘들다”고 말했다. 야당 대선 주자인 윤희숙 의원은 CBS라디오에서 이 지사의 부동산 공약에 대해 “정부가 아파트를 잔뜩 쟁여놨다가 가격이 오르면 시장에 팔겠다는데, 무슨 정부미(米)도 아니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이 지사의 국토보유세와 이 전 대표의 개발이익환수 등 증세 방안은 종부세 완화로 기조를 바꾼 민주당 정책과 모순된다는 지적도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종부세가 부동산 시장에서 갖는 의미가 큰데, 종부세 완화를 반대하지 않으면서 보유세를 강화한다는 건 기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 부동산 반성한다면서…현 정부와 유사한 민주당 부동산 공약

    부동산 반성한다면서…현 정부와 유사한 민주당 부동산 공약

     대선 국면에서 최대 승부처가 될 부동산 정책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들이 딜레마에 빠졌다. 돌아선 민심을 고려하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책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투기를 잡고 서민층을 보호한다’는 민주당 기조에서 벗어나긴 어려운 탓이다. 후보들은 ‘총론 찬성, 각론 반대’ 입장을 유지하면서 저마다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제대로 된 진단이 없고 차별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6일 3차 TV토론에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평가’라는 주제를 두고 후보들은 “부족했다”고 답했다. 특히 국무총리를 지낸 이낙연 전 대표는 “걱정을 끼쳐드려 송구스럽다”, 정세균 전 총리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사과했다. 윤순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은 7일 “죄송하다고만 하고 어떤 점이 문제였는지에 대한 진단이 빠졌다”고 지적했다.  가격 상승으로 인한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후보들은 방향과 취지는 옳았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대통령이 말씀하신 데 답이 있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방향은 옳았지만 섬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체적인 방향은 문제없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인 부분에서는 표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집권여당으로서 정부의 기조는 유지하되 보완하는 방식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본주택(이재명), 토지공개념 3법(이낙연), 토지 공공임대제(추미애) 등 후보들은 앞다퉈 부동산의 공공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토지공개념, 공공임대주택, 실수요자와 청년을 우대하는 정책들은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것들이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기본적으로 민주당은 다주택자 규제와 서민층 보호라는 큰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밝혔다.  현 정부가 실패한 부동산 공급도 너나없이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민주당의 색을 유지할 수 있는 공공이 주도하는 공급이 주로 거론된다. 이 지사는 신도시 공공택지에 기본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혔고, 박용진 의원은 김포공항 등 공공부지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정 전 총리만 민간을 통해 15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윤 연구원은 “민간 위주의 공급을 하려면 안전진단규제 등을 완화해야 하는데, 민주당에서 현실적으로 이런 공약을 내놓기 힘들다”고 말했다. 야당 대선 주자인 윤희숙 의원은 CBS라디오에서 이 지사의 부동산 공약에 대해 “정부가 아파트를 잔뜩 쟁여놨다가 가격이 오르면 시장에 팔겠다는데, 무슨 정부미(米)도 아니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이 지사의 국토보유세와 이 전 대표의 개발이익환수 등 증세 방안은 종부세 완화로 기조를 바꾼 민주당 정책과 모순된다는 지적도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종부세가 부동산 시장에서 갖는 의미가 큰데, 종부세 완화를 반대하지 않으면서 보유세를 강화한다는 건 기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 김혜련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장, 영아보육 발전에 기여로 감사패 수상

    김혜련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장, 영아보육 발전에 기여로 감사패 수상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김혜련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서초1)은 지난 8일 서울시의회 제2대회의실에서 열린 ‘2020년도 (사)서울시가정어린이집연합회 신년회’에서 영아보육 발전에 기여를 인정받아 감사패를 수상했다. 이번 수상은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장으로서 가정어린이집의 영아반반당운영비 확대 지원 및 보조교사 2시간 연장 등 가정어린이집의 보육환경 개선 및 보육교직원의 처우와 지위향상에 노력한 점을 인정받아 이루어졌다. 김 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가장 작지만 보육 수요가 제일 많은 가정어린이집은 한동안 그 중요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책의 주요 대상으로 주목받지 못해왔다”면서 “우리 의회는 가정어린이집 운영의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해 2019년 추경에 영아반반당운영비 확대를 이끌어낸 바 있어 오늘 이 자리가 더욱 뿌듯하고 자랑스럽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김 위원장은 “보육의 시작인 가정어린이집에서 서울의 아이들을 밝고 건강하게 키워내고 있는 교직원분들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서울시의회도 힘을 모으고 함께 하겠다”라고 가정어린이집 교직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2020년에도 지금처럼 아이들의 그늘 없는 웃음을 위해 더욱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서울시의회 유일한 여성 재선의원인 김혜련 위원장은 초선 의원때부터 보건복지위원으로 의정활동을 하면서, 서울시 보육 발전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이해를 기반으로 국공립어린이집확충심의위원회 위원으로 약 2년간 활동한 바 있으며, 정부미지원시설인 민간·가정어린이집을 이용하는 만 3~5세 아동의 학부모들이 부담하던 차액보육료를 전액지원하도록 서울시를 지속적으로 견인하여 2019년 진정한 무상보육을 이끌어내는 등 서울시의회의 보육통으로 평가받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국내 첫 미술 전문 도서관 의정부에서 개관

    경기도 의정부시는 29일 국내 처음으로 미술 전문 공공도서관(의정부미술도서관)을 개관했다. 이 도서관은 기존 작가와 신진 작가를 발굴 육성하고 미술을 전공하려는 청소년에게 꿈을 실현하는 예술 교육의 기반을 제공한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은 민락동 하늘능선 근린공원에 지하 1층, 지상 3층, 전체면적 6565㎡ 규모로 건립했다. 지상 1층은 전시 공간으로 이용한다. 미술 관련 자료를 관람할 수 있으며 다양한 전시회도 열린다. 지상 2층에는 연령·주제별 자료 열람실이, 3층에는 예비 작가를 위한 창작 공간과 다목적 홀 등이 각각 마련됐다. 지하 1층은 서고, 작품 수장고, 주차장 등으로 활용된다. 모든 공간은 중앙 원형 계단을 통해 연결됐다. 의정부시는 미술도서관 개관을 기념해 고 백영수 화백을 조명하는 전시회를 함께 열었다.백 화백은 한국 최초 추상미술 그룹 신사실파 동인의 유일한 생존자였으며, 2011년부터 의정부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지난해 6월 96세로 별세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박양숙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워원장 “누리과정 보육료 차액 55%까지 지원”

    박양숙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워원장 “누리과정 보육료 차액 55%까지 지원”

    서울시의회는 내년부터 민간어린이집에 다니는 누리과정 아동(만3세~5세)에 대한 부모부담금인 ‘보육료 차액’에 대하여 서울시에서 55%를 지원하도록 관련 예산 총 237억 2,515만 원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18년부터는 민간어린이집 이용 아동(보호자)에게 매월 4만1,500원(3,4,5세 평균) 가량의 보육료차액이 지원될 예정이다. ‘보육료 차액’은 만3~5세 아동이 일반 민간․가정 어린이집(정부미지원시설)을 다닐 경우 정부미지원시설 보육료 수납한도액과 정부지원 보육료의 금액 차이만큼 부모가 부담하는 금액을 말하는 것으로, 2017년 기준으로 서울시 관내 민간어린이집을 이용하는 만 3세 아동의 경우 월 8만3,000원을, 만 4~5세의 경우에는 월 6만8,000원의 부모 부담금을 추가로 부담해 왔다. 그동안 ‘보육료 차액’과 관련하여 부모들과 민간어린이집 관계자들로부터 상당한 민원이 야기되어 왔는데, 민간어린이집에 아동을 맡기는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무상보육 실시 이후에도 정부지원시설(예. 국공립, 서울형)과 다르게 별도의 보육료 차액을 지불하는데 따른 형평성 논란과 재정 부담 등에 관한 민원이 야기되어 왔다. 한편, 차액 보육료를 부모로부터 받아야하는 민간어린이집 입장에서도 무상보육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집에서 별도의 보육료를 받는 것처럼 부모로부터 오해를 받는 등 운영상 어려움이 컸던 상황이다. 이에 서울시의회는 지난 2015년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보육료 차액’에 대한 시민 불편을 해소하고자 서울시와의 협의를 통해 부모부담 차액보육료의 38.5%(보육료 지원시 시비부담비율에 해당하는 비율)를 지원할 수 있도록 예산을 증액 확보했고, 이후 2016년과 2017년 3년간 같은 비율의 지원금을 부모에게 지원해 왔다. 이에 대한 예산액으로는 2015년 70억 8,400억원, 2016년 94억 3,161억 원, 2017년 112억 7,038만 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지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모 부담분이 존재함으로써 이에 대한 논란이 완전하게 해소되지는 못해 왔던 상황이다. 이에 보건복지위원회(위원장 박양숙·사진)에서는 지난 2017년 11월 27일과 28일 양일간에 걸쳐 진행된 ‘2018년도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소관 예산안에 대한 예비심사’과정에서 그동안 38.5%를 지원하던 차액보육료를 전액(100%) 서울시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관련 예산 315억 원을 증액했다. 이의 조치와 관련하여 박양숙 위원장은 “2018년 예산기준으로 보면 2013년 이후 완전 무상보육 시대를 맞이 한지 5년차를 맞이하고 있지만, 특정 유형의 어린이집을 이용할 경우 여전히 추가적인 부모부담금이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하여 명실상부한 무상보육을 실현하고자 보건복지위원들이 한 뜻으로 이뤄낸 조치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증액 예산은 서울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사과정에서 서울시와의 지난한 줄다리기 과정을 거치면서 부모부담금 55%(보육료 지원시 지방비(시비 및 자치구비)분)를 지원하도록 관련 예산 106억 원을 증액(편성액 130억원 ⇨ 237억원 으로)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었고, 이는 2017년 지난 15일 열린 서울시의회 제277회 정례회 제5차 본회의를 통해 확정됐다. 서울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는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증액 조치한 취지에 공감하며 끝까지 서울시와의 조율과정을 거쳤으나, 서울시에서도 ‘차액보육료 지원 취지에는 같은 입장이나 제한된 재정여건 하에서 중앙차원의 차액보육료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양숙위원장은 “서울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보육료 차액’전면 지원을 놓고 우리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증액 조치한 취지에 크게 공감하며 끝까지 서울시와 조율해 온 점에 대해 감사하다”며 “아쉬움이 있지만 예산결산위원회의 결정을 존중 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박 위원장은“전면 무상보육 실시에 따라 보육정책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 되었으나, 특정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동의 경우 여전히 유상보육이 실시되고 있어 반쪽의 무상보육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근본적으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차액보육료를 보육료의 개념에 포함하여 지원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보육료 차액 지원을 통하여 이용 어린이집 유형에 따른 차별의 문제를 해소하고 보다 질 높은 보육서비스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여 무상보육 정책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봉급과 물가

    [그때의 사회면] 봉급과 물가

    1968년 11월 말 운행이 중단된 서울의 전차 요금이 2원 50전이었다. 1원이 요즘의 100원 가치는 족히 됐으니 전 단위의 가격이 매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1원의 10분의1에 해당하는 10전짜리와 그 다섯 배 가치인 50전짜리 지폐는 1962년 12월 1일 처음 발행돼 1980년 12월 1일까지 찍었다고 한다. 화폐 수집용 10전짜리 지폐의 인터넷 가격이 1640원이다. 생각보다 저렴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따지고 보면 액면가의 1만 6400배나 된다. 1972년 3월 21일자에 공무원 봉급표가 실렸다. 지금의 9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5급을 1호봉의 봉급이 본봉 4180원과 직책수당 1만 3120원을 더해 1만 7300원이었다. 현재의 5급인 3급을 1호봉의 봉급은 2만 8000원이었다. 올해 9급 공무원 1호봉의 수당을 포함한 실수령액은 180만원가량, 5급 1호봉은 295만원가량 되니 대략 100배 이상 오른 셈이다. 당시 최고 인기 직업이던 은행원의 첫 월급이 3만~4만원(고졸)이었다. 번듯한 직업의 월급이 이 정도이고 일반 공장 근로자의 월급은 몇천원에 불과했다. 월급이 몇백 배 오른들 뭐하랴. 물가는 그보다 더 뛰었으니 말이다. 1972년과 2016년을 비교한 통계청 물가지수 통계를 보면 소비자물가는 16배 오른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통계는 통계일 뿐 실생활 물가의 상승폭은 훨씬 크다. 1971년 준공된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의 분양가는 평균 450만원이었다. 지금은 200배 이상 비쌀 것이다. 1974년 분양된 서울 잠실 시영아파트의 분양가는 230만~250만원 선이었다. 목욕료, 짜장면값, 설렁탕값, 연탄값, 이발료, 커피값 등은 이른바 협정요금으로 묶여 있었다. 만약 이를 어기면 위생검사,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받았다. 1971년 6월 물가를 보면 짜장면과 우동 60원, 라면 20원, 커피 50원, 설렁탕 100원, 연탄 20원, 이발료 180원, 신문구독료 350원, 시내버스 요금 10원이었다. 그러나 이후 1차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물가는 급등해 짜장면은 1976년에는 200원으로 5년 만에 3배 이상 뛰었다. 1973년 영화 개봉관 입장료는 300~670원이었다. 또 같은 해 택시 기본요금과 주택복권 한 장값은 100원, 1974년 서울 지하철 개통 당시 기본요금은 30원이었다. 쌀값은 1972년 80㎏ 한 가마니에 1만 200원선이었다. 10년 후인 1982년에는 5만 6000원(정부미 기준)으로 올랐다. 지난해 말 산지 기준 쌀 한 가마니값은 12만 9000원이다. 쌀값은 2000년대 초반 21만원대까지 꾸준히 오르다 이후 풍작과 소비 감소로 1995년 수준으로 도리어 뒷걸음질쳤다. 정부가 서민을 위해 억제하고 있는 연탄값(한 장 600원)과 더불어 가장 적게 오른 게 쌀값인 셈이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서울광장] 촛불 정국 공직사회 비틀어 보기/김성곤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촛불 정국 공직사회 비틀어 보기/김성곤 편집국 부국장

    # 1. “청와대와 정치권의 간섭이 없어서(?)인지 이번에 역대 가장 공정한 인사가 이루어진 것 같아요.” # 2. “중요한 일들이 산적해 있는데 청와대의 사인이 없으니 대충 수정해서 낼 수도 없고….” # 3. “‘시키니까 했다’는 영혼 없는 ‘코스튬 플레이’만 성행하고 있어요. 공직사회가 이래서 되겠나 싶습니다.” 정치권 등 온 나라가 최순실 국정 농단이라는 블랙홀에 빠져들면서 나타난 공직사회의 단면들이다. 이를 비틀어서 한번 분석해 봤다. 첫 번째 얘기는 갑작스런 인사로 논란을 낳은 경찰 인사의 다른 면이다. 인사가 당겨지고, 청와대와 정치권이 다른 데 정신이 팔리면서 ‘자기식 인사’를 했다는 것으로 들린다. 거기에는 경찰대와 비(非)경찰대 출신의 조화나 지역 안배, 연공서열 등의 조화 등 산술적 의미도 포함돼 있다. 역설적이지만 이번 게이트 이후의 상황이 싫지만은 않은 기색이 읽힌다. 다른 부처도 다르지 않다. “국민만 보고 간다. 이 상황이 빨리 정리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지만, 간섭이 줄어서 좋다는 반응은 현실이다. 두 번째는 경제 부처의 얘기다. 매사 청와대나 정치권의 눈치를 보면서 결정을 하다가 ‘시어머니’가 없어지니 시원하기는 하지만, 갈피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결정을 미루는 ‘금단현상’도 엿보인다. 경제 관료들이 간섭에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실제로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은 지금 마무리를 해 중순쯤 발표를 해야 하는데 청와대 등과의 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연말로 미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라든가 고려할 변수들이 있기는 하지만, 익숙한 ‘시그널’ 부재로 인해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이 맹탕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다음 예는 엘리트들의 몰락에 대한 공직사회의 자조다.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문제가 될 때만 해도 “‘일반미’(비공무원 출신 정무직 공무원)보다는 그래도 ‘정부미’(공무원 출신 정무직 공무원)가 낫다”고 자위했다. 조원동 전 경제수석이나 최상목 기획재정부 차관 등이 이번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는 놀라움과 함께 “대한민국의 머리 좋은 공무원들 다 쓰러진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키니까 했다’는 코스튬 플레이가 번지고 있다는 게 현장의 얘기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격랑들이 제법 많았다. 1979년 10·26에서부터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 1987년 6월 항쟁,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등이 꼽힌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경제성장률은 10·26의 여파와 제2차 오일쇼크가 이어진 1980년(-1.7%·1981년 7.2%)을 빼고는 모두 예년 이상이었다. 1987년은 12.5%(1988년 11.9%), 2004년은 4.9%(2005년 3.9%)였다. 물론 당시의 성장 배경이 고도성장기(1981년과 1987년)였다거나 금융위기 이후 반등기(2004년)였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뿐일까. 여기에는 정치적 격변기에도 생업에 전념하며 인내한 국민과 주어진 업무를 묵묵히 수행한 공무원들의 공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위기 때마다 리더십을 발휘한 고위 경제 관료도 있었고, 서슬 퍼런 통치자에게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관료들도 있었다. 1979년 2차 오일쇼크 때 물가가 급등하자 성장주의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의 고집을 꺾고 강력한 물가 대책을 폈던 강경식 차관보, 김재익 경제기획국장도 있고, 전두환 전 대통령 때에는 김재익(경제수석), 2004년엔 이헌재 전 부총리가 있었다. 이들 외에도 소신과 철학이 있었던 관료들이 적지 않았다. 대통령과 친한 강남 아줌마의 하수인 역을 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쓴 경제수석이나 관료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아무리 판이 뒤집어지는 과정이고, 경제 수장인 부총리의 위상마저 어정쩡하지만, 공직자만큼은 자존심과 제자리를 찾았으면 한다. 지금 공직자들은 역사를 만들고, 그 역사는 평가받는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sunggone@seoul.co.kr
  • [新전원일기] 연매출 24억 수출 효자… 쌀빵, 히트다 히트

    [新전원일기] 연매출 24억 수출 효자… 쌀빵, 히트다 히트

    아버지라는 이름은 냄새로 온다. 시큼하고 눅눅하고 그러면서도 따뜻하고 구수한 냄새. 새벽 별 같기도 하고 노을 같기도 한 냄새. 아버지의 등에 코를 묻고 있으면 냄새가 나를 둘러싸 그 세계 속에서 언제까지나 안전하리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가족을 업고 사느라 아버지의 등은 굽고 작아졌지만 냄새는 여전하다. 나는 여전히 아버지의 등에 코를 묻고, 냄새를 들이마시고, 고달픔을 위로받는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라앉고 세상이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이 있다면 아버지의 냄새일 것이다. 또 하나 있다. 빵 냄새. 길을 걸을 때 어디에선가 빵 굽는 냄새가 흘러나오면 저절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냄새만으로도 입안에 가득 침이 고이고 시장기가 돈다. 하얀 반죽이 화덕 속에서 서서히 부풀어 오르며 갈색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냥 지나치기란 어렵다. 단순히 식욕을 자극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냄새에 배어 있는 것들 때문이다. 온기와 온정과 향수 같은 것들 말이다. #‘글루텐 알레르기’는 이제 안녕 빵은 간식으로서도 그렇지만 식사 대용으로도 훌륭하다. 여러 가지 토핑을 얹어 근사한 식사를 마련할 수 있고, 계란 프라이 하나만 끼워 넣어도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종류가 많아서인지 몰라도 빵을 싫어한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안타까운 것은 밀가루에 들어 있는 글루텐 성분으로 인해 빵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글루텐은 보리나 밀 등에 함유된 불용성 단백질로 몇 가지 단백질이 혼합된 것이다. 글루텐이 갖고 있는 끈기로 인해 빵의 점성을 유지할 수 있고 식감과 맛이 향상되기도 하는데, 글루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는 소화 장애나 피부 질환 등을 유발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특히 아토피 피부염 환자에게 글루텐은 독이나 마찬가지다.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도 빵은 그림 속의 떡일 뿐이다. “몇 해 전에 스캇 존슨이라는 16세 소년이 과민성 쇼크로 사망한 일이 있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고 3일을 넘기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유제품이 들어간 팬케이크 때문이었어요. 유제품이 첨가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먹었다는데 판매하는 분이 실수를 했던 거지요. 유제품도 그렇고 글루텐도 그렇고 단순히 몸에 이상을 가져올 뿐 아니라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위험도 있습니다.” 이은창(51) 쁘띠아미 대표가 순수 쌀빵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소화장애나 피부질환을 걱정하지 않고 모두가 빵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쌀에 관한 한 자신이 있었다. 정보기술(IT) 업체를 운영하다가 30대에 뇌경색으로 일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시절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쌀눈이 남아 있는 쌀을 꾸준히 먹고부터 뇌경색 증세가 호전된 것이다. 그때부터 이 대표는 쌀에 몰두했다.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발표된 논문을 찾아가며 쌀에 대해 공부했고 3년의 연구 끝에 쌀눈을 남겨두는 도정 기계까지 개발했다. 쌀눈에는 비타민, 미네랄, 아미노산 등 우리 몸에 필요한 5대 영양소가 다량으로 함유돼 있다. 또한 가바(GABA) 성분과 비타민 B1, B2, B6, 옥사코사놀, 알파토코페롤, 감마오리자놀, 리놀렌산, 베타시스테롤, 라이신 등이 들어 있어 항암 효과, 항산화 기능, 면역기능 향상, 콜레스테롤 감소, 노화 방지, 치매 예방 등에 효과적이다. 글루텐과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라도 쌀빵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결정했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니 난감했다. 빵이라고는 만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빵을, 그것도 쌀빵을 만든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본인 스스로도 의구심이 들었다. 시중에 쌀빵이 나와 있기는 했지만 글루텐을 15% 이상 함유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글루텐 없이 빵을 만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2008년부터 1년여에 걸쳐 전국의 제빵장과 기능장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지만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09년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이 대표가 운영하던 쌀 동호회 회원 중 하나가 이 대표를 찾아왔던 것이다. 그는 쌀가루만으로 쌀빵을 만들어 보이겠다고 장담했다. 처음에는 코웃음 쳤다. 내로라하는 기능장들도 실패한 것을 아마추어가 성공시킬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래도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몸집도 작고 나이도 어려 보였는데 눈빛만은 거침이 없고 생생했다.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대책 없이 믿고 싶어지게 만드는 눈빛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그에게 쌀가루를 건넸다. 그리고 다음날 그가 쌀빵을 들고 나타났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걸 도무지 믿기 어려웠다. 이 대표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다시 만들어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그때부터 이 대표의 ‘프러포즈’가 시작됐다. 그리고 일주일에 3번, 1년의 구애 끝에 그가 손을 들었다. 이 대표의 삼고초려에 백기를 든 이가 바로 지금의 공동 대표 최지연(32·여)씨다. #최고품종 쌀과 천연 재료와의 만남 쁘띠아미의 쌀빵이라고 하면 ‘100% 쌀빵’, ‘글루텐프리(free)’, ‘건강’ 등 단어가 떠오른다. 쁘띠아미의 쌀빵 외에도 시중에 유통되는 것들이 많지만 쁘띠아미 쌀빵은 뭔가 다르다. 다른 업체에서는 일반미와 4~5년 묵은 정부미를 사용하는 데 비해 쁘띠아미에서는 ‘삼광’이라는 최고품종 쌀과 햅쌀만을 사용해 빵을 만든다. 가공용이 아니라 밥상용 쌀을 사용하는 것도, 글루텐을 전혀 첨가하지 않는 것도 쁘띠아미의 자랑이다. 당연히 가격이 두 배 넘게 차이가 나지만 쁘띠아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를 고수하고 있다. 쌀 외에도 식품첨가물 대신 천연 재료를 사용해 ‘웰빙 건강빵’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빵에 들어가는 재료에만 신경을 쓰는 건 아닙니다. 정기적으로 제품 영양 성분과 자가 품질을 검사하고 있는데, 그 비용 또한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거기다 저희는 제약회사용 제분기를 사용하고 있거든요. 제분할 때 온도가 높아지면 맛이 떨어지고, 가루도 될수록 미세하게 제분해야 하니까요. 당연히 제품 단가가 오를 수밖에 없지만 고객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요.”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별도의 마케팅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아이가 아무런 탈 없이 빵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유일하게 걱정 안 하고 먹을 수 있는 건 쁘띠아미 쌀빵뿐이에요”. 부모들의 바람이 모이고 쁘띠아미 덕에 그 바람이 이뤄졌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지방은 물론이고 해외에서까지 주문이 들어온다. 초기 연 매출 1억원에서 불과 6년 만에 24억원 정도로 증가했다. 경기 남양주에 위치한 쁘띠아미 본사와 공장 외에, 수원과 성남에도 매장을 확장하는 등 몸집도 제법 커졌다. “성남 매장에는 쌀빵 체험장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원하는 재료를 이용해 자신의 손으로 직접 빵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거든요. 똑같은 재료로, 똑같은 빵을 만들었는데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이에요. 빵을 만드는 데도 저마다의 개성이 반영된다고나 할까요. 재미있는 건 연인들은 주로 하트 모양의 빵을 만든다는 겁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그들의 사랑이 더욱 깊어지고 오래도록 행복했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사랑을 듬뿍 담아 만든 빵이 그 가교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아 체험장 만든 일에 보람을 느낍니다.” 건강에 아무리 좋다고 해도 맛이 없으면 쌀빵을 찾는 사람들도 줄어들 게 뻔하다. 그런데 쁘띠아미의 쌀빵은 글루텐프리임에도 불구하고 밀가루빵의 식감과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쫀득쫀득하고 고소하다. 달기도 하다. 자극적인 단맛이 아니라 입안으로 은은하게 퍼지는 단맛이다. 아버지의 냄새처럼 그윽하고 고소하고 아늑하다. 가족을 등에 업고 일평생 묵묵하게 살아온 아버지처럼, 내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빵을 만들어서일까. #해외로 수출하는 쌀빵 지난 4월 6일 농촌진흥청에서 기술지원본부를 출범시키는 자리에 쁘띠아미도 함께했다. 정부에서 프리미엄 쌀 가공식품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글로벌 농식품 수출 효자 품목으로 지정해 해외에 적극 홍보하는 자리였다. 입소문을 타고 쁘띠아미 쌀빵의 우수성이 알려지자 정부도 농업의 ‘6차 산업’ 성공 사례로 주목했던 것이다. 이후 미국과 중국, 일본에서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밥보다 빵을 주식으로 하는 추세이고, 쌀빵과 관련해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쁘띠아미처럼 100% 글루텐프리 빵을 만들지는 못한다. 당연히 글루텐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쁘띠아미의 쌀빵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이미 쁘띠아미의 흑미식빵이 일본에 진출한 상태이고 미국과는 수출 협약이 진행되고 있다. 조만간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과 중국 현지에서도 쁘띠아미의 쌀빵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알레르기 없는 아이스크림 출시 현대인은 스트레스를 피해 갈 수 없다. 다만 운동이나 음악 감상, 야외 활동 등 각자의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수밖에. 그중에서 가장 손쉽고 즐거운 일 중 하나가 단 음식을 섭취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단 음식 하면 아이스크림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신이 만약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스트레스에 하나를 더 얹는 셈이 되지나 않을까. 특히나 어린 아이의 경우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한다는 것은 삶의 즐거움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일이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쁘띠아미는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지난해 초부터 쌀아이스크림을 출시했다. 현재 플레인 아이스크림부터 시작해 초콜릿, 오렌지, 체리, 흑미, 블루베리 등 12종이 출시된 상태다. 물론 쁘띠아미 아이스크림에는 주재료 외에 우유와 계란, 설탕과 식품첨가물이 전혀 함유돼 있지 않다. 새삼 먹거리의 중요성을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먹거리를 단지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쁘띠아미의 한길 행보가 무척 반갑다. 아버지처럼 묵묵하게, 가족을 아끼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내내 한길을 걸어갈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글쓴이 소설가 진연주 200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방’(房)으로 등단. 2015년 ㈜문학동네에서 장편소설 ‘코케인’ 출간.
  • 月10만원이라도 저축 쪽방의 재테크는 희망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절대 빈곤층의 재산 관리

    月10만원이라도 저축 쪽방의 재테크는 희망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절대 빈곤층의 재산 관리

    경기 하남시에 사는 싱글맘 A(39)씨는 세 자녀 명의로 한 달에 총 10만원의 생명보험료를 내고 있다. 저축성 보험이라 비상시에 대비하면서도 돈까지 모을 수 있다. 여기에 가급적 매달 10만원씩 저축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 팍팍한 살림 탓에 아직까지 100만원밖에 모으지 못했다. 그러나 A씨는 아라비아 숫자 ‘0’이 6개 일렬로 찍힌 통장 잔고를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보험료와 저축액을 합해 매달 많아야 20만원이 나가는 정도지만 A씨에게는 쥐꼬리만 한 수입의 6분의1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큰돈이다. A씨의 한 달 수입은 월 130만여원의 기초생활보장수급비가 전부다. 이 중 지금 살고 있는 15평 빌라 월세로 41만원이 나간다. 여기에 생후 8개월인 막내딸이 쓰는 기저귀 등 육아용품으로 20만원, 본인과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쓰는 휴대전화 요금으로 10만원, 아들의 태권도 학원비 12만원, 큰딸(4살)의 어린이집 특별활동비 8만원 등이 더해진다. 식비로는 20만원 정도 쓴다. 수급권자로서 전기나 수도 등 각종 공과금 할인 혜택을 받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A씨는 “가족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저축을 하지만 ‘그 돈이면 큰아이를 학원에 보낼 수도 있는데’ 하는 고민이 떠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사는 간호조무사 B(45·여)씨도 매달 15만원의 정기 적금을 붓는다. 간호조무사 월급 135만원에 주말 일본어 과외로 버는 24만원, 정부에서 극빈층 모자 가정의 초등학생 이하 자녀에게 한 명당 5만원씩 지급하는 지원금까지 합쳐 B씨의 한달 총수입은 174만원이다. B씨는 “고등학생을 포함한 자녀 4명과 함께 어떻게든 먹고살기 위해 매일 전쟁을 벌이지만 저축마저 안 하면 살아갈 의욕을 잃을 것 같다”고 했다. B씨의 간호조무사 업무 시간은 오전 7시 20분부터 오후 7시까지다. 출퇴근 시간까지 합치면 하루 14시간 넘게 일에 쏟아붓고 있다. 토요일은 쉬지만 일요일에는 격주로 출근한다. 이렇게 해서 매달 30만원의 월세 외에도 전기비, 수도비 등으로 30만원을 낸다. 한창 크는 아이들은 무섭게 먹는다. 아무리 못해도 식비로 60만원은 써야 한다. 둘째와 셋째 태권도 학원비로 19만원, 막내 어린이집 독서교실 비용으로 5만원을 쓴다. 중계동의 판자촌 ‘백사마을’에서 부인과 함께 살고 있는 C(73)씨도 없는 살림 가운데서도 조금씩을 쪼개 저축하고 있다. 매달 부부가 받는 노령연금 40만원과 조금씩 나오는 국민연금이 수입의 전부다. 이 중 20만원을 매달 은행에 넣고 있다. 좀 더 괜찮은 곳으로 집을 옮기고 싶어서다. C씨는 “우리도 이제 제대로 된 전세를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돈을 조금씩 비축하는 중”이라며 “서울을 벗어나면 전세가 좀 싸니까 꾸준히 모으면 이사를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했다. 그는 “여기 사는 사람들이 다 어렵게 살지만 그래도 좋은 곳으로 전세를 얻어갈 꿈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했다. C씨는 현재 살고 있는 판잣집에 1500만원의 보증금을 집주인한테 주고 들어왔다. 전세 보증금 격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보통의 전세 개념은 아니다. 비가 새고 무너질듯한 낡은 집에 집주인이 1500만원만 받고 사실상 무한정 살도록 한 것이다. 그러니 일반 전세와 달리 집 수리도 다 C씨의 돈으로 해야 한다. 그는 “그래도 다른 데 가면 못해도 7000만~8000만원은 줘야 전세를 얻는데 여기는 이렇게 (구호단체에서) 연탄도 날라 주고 하니 당장 어려운 사람들한테는 이런 데가 없다”고 했다. C씨는 매달 두 부부 휴대전화(폴더폰) 요금과 식비 등을 빼면 특별히 나가는 돈이 없어 저축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앞에서 소개한 세 사람의 경우와 같이 하루하루 먹고살 일을 걱정해야 하는 절대빈곤층 중에서도 없는 돈을 쪼개 저축하는 가구가 서울신문 취재 결과 아주 적게나마 있었다. 내일에 대한 희망마저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빈곤층 중에서도 남성보다는 여성이 저축을 하는 사례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부천시오정노인복지관 관계자는 “할머니들은 기초생활수급자라도 수급비를 통장에 알뜰하게 모아 두지만 할아버지들은 며칠 만에 다 써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서대문구에 사는 극빈층 남성 D(44)씨는 한때 지방 공사현장이나 양계장 등에서 일할 때는 한 달에 400만원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주머니에 일단 돈이 들어오면 남김 없이 쓰는 습성 탓에 돈을 모으지 못했다. 한 달 수입이 90만원에 불과한 요즘도 그는 주머니 사정이 좀 괜찮다 싶으면 한 그릇에 3만원이 넘는 ‘전복 삼계탕’을 사먹는다. 배우자가 없는 D씨는 돈을 관리해 주는 사람이 주변에 없을 뿐 아니라 돈에 대한 개념도 익히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건강이 안 좋아져 일을 못할 때를 대비해 돈을 쌓아 둬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저축 습관이 들지 않아 주머니에 일단 돈이 들어오면 쓰는 편”이라고 했다. D씨는 한 달 평균 10일 정도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한다. 날씨가 나쁘거나 일자리가 바로 나타나지 않아 더 많은 날을 일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일당 10만원에서 직업소개소 소개비로 1만원을 뗀 9만원이 그의 하루 수입이다. 매달 생활비는 40만~50만원 정도 들어간다. 현재 살고 있는 빌라 임대료는 월 17만원. 지난해 11월에 전기비 3만 1050원, 수도비 1만 2950원, 디지털TV 요금 3만 2890원, 도시가스 요금 3100원을 썼다. 이를 함께 사는 지인과 나눠 낸다. 식료품과 각종 용품 등을 사면 남는 돈은 매달 10만원 정도인데 이 돈은 PC방 요금 등 여가 비용으로 쓴다. 하지만 남녀를 막론하고 최저생계비 이하의 생활을 이어가느라 허덕이는 다수의 빈곤층에게 저축은 ‘사치’에 가깝다. 경기 부천시 원미구에 사는 E(65·여)씨의 최근 한 달 수입은 50만원이 채 안 된다. 이 돈으로 초등학교 6학년과 2학년인 손자 2명과 연명하는 처지다. 노령연금 20만원과 복지단체의 조손가정 지원금 24만원이 전부다. 노령연금이 나오기 전에는 한 달에 10만원으로 생활한 적도 있다. E씨는 한겨울에도 가스 난방을 하지 않는다. 대신 잘 때만 전기장판을 잠시 튼다. 가스비는 1000원 이하, 전기비와 수도비도 각각 1만원 남짓만 나온다. 식비는 아무리 안 먹어도 한 달에 20만원은 써야 한다. 동네 마트의 ‘떨이 상품’을 주로 산다. 그나마 주변의 도움이 있어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 지역 복지관에서 밑반찬을 지원받고 10㎏에 2만 2900원 하는 정부미를 동사무소 등에서 구매할 수 있다.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ADHD) 증세를 보이는 큰손자는 초등학교 교사의 지원으로 매달 8만원을 내야 하는 태권도를 무료로 다닌다. 작은손자는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 원장이 철마다 옷을 사준다. E씨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2010년 이전에는 매달 20만원 정도 저축을 했지만 이젠 다 까먹고 남의 얘기가 돼 버렸다”고 했다. E씨의 현재 생활형편만 보면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가 되고도 남지만 지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강원도에 땅이 조금 있기 때문이다. E씨는 “남편이 사망하면서 유산으로 나하고 두 아들한테 공동 명의로 땅이 상속됐다”며 “그러나 아들들이 사이가 안 좋은 데다 작은아들은 감옥에 들어가 있어 땅을 처분하지도 못하는 상태”라고 했다. 경기 광명시에 사는 F(91·여)씨도 노령연금 20만원에 공장에 다니는 손녀딸이 보내주는 30만원 등 50만원으로 근근이 생활한다. 이 돈으로 인근에 사는 수양딸이 F씨를 봉양한다. 매달 각종 약값만 10만원이 나간다. F씨는 “젊었을 때 장사하러 돌아다니느라 하도 고생을 해서 골다공증에 걸려 파스 없이는 한시도 못 견딘다”면서 “여기에 우울증약과 우황청심환 등을 사면 남는 돈이 없다”고 했다. 빈곤층의 경우 상속은 꿈도 못 꾼다.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현실은 이를 종종 배반한다. 부천에 사는 독거노인 G(82)씨는 자식들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60대인 두 아들이 변변한 직업이 없는데도 매달 그에게 10만원씩 부쳐 준다. 음식은 주말마다 집에 들르는 둘째 며느리 몫이다. 의복 역시 복지관에서 얻어 입거나 며느리가 가져온 옷을 입는다. G씨의 한 달 수입은 노령연금 20만원과 아들들이 부쳐 주는 돈을 합해 30만원이 전부다. 한때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10여평의 집도 갖고 있었지만 부인 병치레 등으로 다 날렸다. G씨는 “노령연금으로 가스비 등 각종 공과금을 내면 남는 게 없다”고 했다. 어렵게 사는 와중에 자식들로부터 부양은 못 받을망정 시달림을 받는 노인들도 보인다. 강남구 개포동의 판자촌 ‘구룡마을’에 사는 70대 후반의 H씨는 “가끔씩 자식들이 찾아와서 (그나마 있는 돈을) 싹 뒤져서 가져간다”면서 “그래봤자 워낙 가진 돈이 없으니 가져가는 돈도 별로 없다”고 했다. 이두걸 유대근 송수연기자 douzirl@seoul.co.kr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사는 300억원대 자산가 H(92)씨는 구순(九旬)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새벽 빠짐없이 일어나 외신을 꼼꼼히 챙겨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CNN 등 방송은 물론 월스트리트저널과 파이낸셜타임스 등 경제 전문지도 태블릿PC로 살핀다. 속칭 ‘슈퍼 개미’인 그는 오전 9시 본인 소유의 강북 지역 빌딩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해 국내 금융시장을 꼼꼼히 체크한다. 오후 6시 퇴근 시간 전까지 투자 전략을 짜고 투자를 단행한다. 개미 투자자들이 속절없이 나가떨어졌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장기 투자를 통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그의 성공가도에서 가장 위력적인 ‘무기’는 영어였다. 그는 그 나이 또래에 몇 안 되는 ‘미국 유학파’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는 미군을 상대로 사업을 벌여 큰돈을 벌었다. 영어를 통해 얻은 정보가 ‘일확천금’으로 이어지던 시절이었다. 이를 토대로 부동산과 주식으로 투자 범위를 넓혀 본격적으로 재산을 축적했다. 그는 요즘 연 10억원 가까운 빌딩 임대료 수익을 얻지만 여전히 영어를 토대로 한 국제 감각을 활용해 돈을 번다. 그의 투자 대상은 우리나라를 벗어난다. 해외 금융시장뿐 아니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부동산 투자를 위해 미국행 비행기를 종종 탄다. 체력 유지도 필수적이다. 매일 새벽 일어나 맨손 체조를 한 뒤 인근 야산을 오르내린다. 여간해서는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는다. 과다한 운동으로 얼마 전에는 발목 수술을 받았을 정도다. H씨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전 세계에서 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각을 유지하니 돈이 수중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H씨의 경우 100% ‘개천에서 용 난’ 사례로 볼 수는 없지만 본인의 노력이 상당 부분 작용한 자수성가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H씨 이후 세대 중에서는 부모로부터 직접적으로 받는 상속이 부를 형성하는 추세가 짙어지고 있다. 경기 고양에 사는 I(41)씨는 1년 전 부모로부터 시가 30여억원의 공장 부지를 물려받았다. 부모가 손주들 교육비에 보태 쓰라면서 증여를 시작한 것이다. 부동산 증여는 고소득으로 이어졌다. 그는 부지 내 5곳의 공장으로부터 매달 750만원의 임대료를 받는다. 가만히 앉아서 올리는 임대 수입만 한 해 9000만원으로 웬만한 고액 연봉자 수준이다. 돈이 돈을 버는 ‘행운아’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의 부모는 공직 생활 도중 틈틈이 땅을 사 모은 덕에 100억원대의 재산을 모았다. 그가 부모의 도움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여러 차례 사업 밑천을 대준 것은 물론 사업이 망했을 때 뒷감당도 부모 몫이었다. 일반인에게 인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패자부활전’을 그는 부모 덕에 여러 차례 치른 셈이다. 강남구 압구정동에 사는 J(38·여)씨는 최근 2년간 증여세만 2억원 넘게 냈다. 시댁으로부터 10억원 이상을 물려받았다. 주식과 토지, 현금 등 형태도 다양하다. 패션 업종 중견 업체를 경영하는 시댁은 앞으로도 틈틈이 증여해 줄 가능성이 높다. 지금 살고 있는 압구정동의 상가 건물 역시 J씨 부부의 소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지 않는 한 꿈도 꿀 수 없는 금액이다. J씨는 증여받은 재산을 시댁에서 소개해 준 시중은행 프라이빗 뱅커(PB)에게 맡겨 관리한다. 금융상품의 수익률은 연 5% 정도다. 10%가 넘었던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최근 불경기와 저금리 상황을 생각하면 이 정도도 적지 않다. 월급 말고도 연 5000만원은 통장에 꼬박꼬박 들어온다. J씨는 “시부모께서 과거에 세금 문제 때문에 곤란했던 경험이 있는 데다 자식들이 일찌감치 돈을 굴리는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 재산을 미리 나눠 주고 있다”고 했다. 전직 대학교수인 K(68)씨는 3년 전 정년퇴직을 하면서 100억원대 재산 중 70억원 정도를 2남 1녀인 자식들에게 나눠 줬다. 서울 반포 특급호텔 헬스 회원권과 K씨 부부의 실버타운 생활비, 1년에 한 번 정도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는 비용 등 총 30억원이 그에게 남은 전부다. K씨는 “셋 중 형편이 좀 안 좋은 아들 한 명에게 증여를 더 하려고 했지만 딸이나 사위 눈치가 보여 똑같이 재산을 나눠 줬다”면서 “그래도 죽기 전에 ‘숙제’를 마친 것 같아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외국계 기업 한국지사장인 L(44)씨의 사례는 부모의 재산과 개인의 능력이 만났을 때의 시너지 효과가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그의 연봉은 10억원이 넘는다. 미국 본사에 근무할 당시에는 성과급까지 합쳐 연 200만 달러를 넘게 번 적도 있다. 현재 그의 자산은 100억원대다. 그러나 이를 모두 연봉만으로 모은 건 아니다. 부모의 증여가 큰 뒷받침이 됐다. 그의 부친은 한때 국내 굴지의 건설사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칠순이 넘는 나이에도 여전히 관련 기업의 CEO로 재직 중이다. L씨의 부친은 아직까지 그에게 본격적인 상속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러나 벌써 예금과 보험 등을 활용해 20억원 가깝게 물려준 상태다. L씨는 자신의 연봉과 이를 종잣돈 삼아 금융상품에 직접 투자한다. 미국과 싱가포르, 홍콩 등의 금융시장이 주 무대다. 현재 거주 중인 서울 용산의 15억원대 아파트와 함께 싱가포르에 주상복합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그가 미국의 유명 사립고와 명문대를 졸업한 뒤 소위 ‘잘나갈 수’ 있었던 것도 부모의 막대한 교육비 투자가 ‘마중물’이 됐다. L씨는 “몇 년 전에는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큰 선물옵션에서도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면서 “건설업에 종사하는 부친과 투자 정보를 교환한다”고 말했다. L씨의 경우처럼 단순히 돈을 주는 것뿐 아니라 ‘노하우’를 전수하는 부자도 보인다. ‘물고기’ 대신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부모 세대가 물려준 부를 효과적으로 늘리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중소 제조업체 사장 M(64)씨는 아들이 미국에 유학 중일 때는 학비와 생활비를 전액 지원해 줬다. 그러나 방학 때 한국으로 들어오면 용돈을 한 푼도 주지 않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네 유흥비는 네가 벌어서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돈이 얼마나 소중한지 자식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아들은 방학 기간에는 화장품 공장 등에서 틈틈이 일해 용돈을 벌었다. M씨는 “외환위기 직후 서울 강남이나 대전 등으로 땅을 보러 갈 때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아들을 꼭 데리고 갔다”면서 “부동산뿐 아니라 좋은 ‘물건’을 어떻게 판별하는지 현장에서 직접 알려준다는 취지였다”고 했다. 재산 관리를 위해 ‘정치판’에 뛰어드는 부유층도 발견된다. 특히 ‘상위 0.1% 부자’들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어느 정도는 사회적 영향력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500억원대 자산가인 N(44)씨는 불과 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은행맨’이었다. 대학 졸업 뒤 15년 가까이 국내 대형 시중은행에서 근무했다. 본점에서 쭉 일할 정도로 능력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초 직장을 제 발로 걸어나갔다. 부동산 관리업을 하던 부친에게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서다. 마침 당시 금융권의 분위기도 어수선했다. 요즘엔 수도권 지역의 여당 당원협의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명예직’에 가깝지만 산하 위원회 위원장 자리도 맡았다. N씨는 “경제력을 갖췄으니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싶다는 생각도 없지 않지만 우리 집안의 부를 지키기 위한 ‘방패’를 얻는 게 정치 활동의 일차적 목표”라며 “재산이 일정 정도 넘어서면 정치적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부의 대물림’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상위 1% 부자도 많다. 돈은 무엇보다 강력한 ‘권력’인 만큼 가능한 한 오랫동안 손에 쥐려는 심리가 강하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PB는 “부자들은 돈의 통제권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데다 자식이나 주변 사람들이 이를 권하기도 쉽지 않아 미리 증여를 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증여 시점이 늦어질수록 그리고 분산하지 않고 한꺼번에 할수록 증여세 부담은 커진다. 그는 “고객 중 한 명이 얼마 전에 시가 130억원짜리 빌딩을 매각했지만 증여세 등을 떼고 나니 결국 자식에게는 50억원 정도밖에 돌아가지 않았다”고 전했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기부를 선택하는 자산가도 없지 않다. 명품 패션 브랜드 업체 대표인 O(59)씨는 얼마 전 두 명의 자식들에게 “재산의 20%만 상속하겠다”고 천명했다. 자식이 물려준 재산을 관리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자식을 망치는 일인 만큼 본인 스스로 돈 버는 재미를 느끼고 성공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일정 금액 이상은 악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O씨는 “재산의 20% 정도면 20여년 전 8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한 나보다 훨씬 여유 있게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두걸 유대근 송수연 기자 douzirl@seoul.co.kr
  • [데스크 시각] 무늬만 ‘측근’-‘무늬’도 측근/송한수 사회2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무늬만 ‘측근’-‘무늬’도 측근/송한수 사회2부 부장급

    아이들 말로 ‘완전’ 놀랐다. 공무원들을 만난 자리에서다. 얘기는 옛 단체장과 얽혔다. 내가 먼저 불쑥 내뱉었다. “A시장, 참 아쉬운 분이죠.” 간부 B가 소주잔을 비우고 나서 말을 받았다. “그럼요, 갈 길이 바빴는데.” 그리고 덧붙였다. “근데, 사람을 잘 못썼어요.” 나도 머쓱해 다시 물었다. “아하, 무슨 일이 있었군요.” B는 목청을 높였다. 2011년 어느 날이었다. 한창 회의할 무렵이다. 이른바 ‘정부미’뿐 아니라 교수 등 외부인도 끼었다.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공직자 C가 받았다. “×× 오빠한테 말하면 돼요.” 헉, B는 까무라칠 뻔했다. ××는 A시장 이름이다. C는 바깥에서 기용됐다. 꽤 높은 직위라 시장 최측근으로 불렸다. B는 “그런 C와 한솥밥을 먹었으니…”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측근이란 무엇인가. ‘가까이 모시는 사람’이다. 사실 ‘제대로’가 생략된 것이다. 측근 제1덕목은 이렇다. 복심(腹心)을 헤아려야 한다. 외려 윗분을 앞세워 득을 보려고 들면 여러모로 골치다. 호가호위(狐假虎威)가 제일 나쁘다. 교수들이 C를 어떻게 봤을까. 깎아내릴 수밖에 없었을 터. 공익은 안중에 없고 저만 챙기기 때문이다. 화(禍)는 단체장까지 미친다. 사람 볼 줄을 모른 죄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단체장이라면 작든 크든 조직의 지도자다. 국민 삶과 맞닿지 않았는가. 사회적 파장이 큰 까닭이다. C는 ‘트로이 목마’에 버금간다. 선거로 분위기가 뜨겁다. 더러는 권력자를 팔기도 한다. 측근이라고 내세우는 꼴이다. ‘힘있는 여권 후보’란 구호도 똑같다. 다른 힘을 빌리는 데서 그렇다. 더욱이 당선으로 끝이 아니다. 어떻게 일하느냐가 문제다. 만고에 불변하는 진리다. 좋은 평가를 못 받는다면 끝내 윗사람을 욕먹인다. 더 큰일을 그르치는 게다. 사람을 제대로 쓸 일이다. 앞선 사례가 잘 말해준다. 몇 해 전으로 되돌아간다. D대변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니, 꼬집은 셈이다. 못된 근성이 발동하고 말았다.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는 눈만 휘둥그레 떴다. 대답하기 궁색할 만하다. 나는 또 들입다 쏘아붙였다. “수장(首長)에게 바른말을 하세요.” D는 손사래를 쳤다. “어떻게 ‘아니오’라고 해요.”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 바른길로 이끌어야 옳다. 그에게 농담을 툭 건넸다. “혹 무늬만 대변인 아닙니까.” 대답이 걸작이다. “이왕이면 ‘무늬도 대변인’이라고 불러주세요.” 이를 농담으로 넘겨야 할까. D 역시 수장 측근으로 알려졌다. 출입처마다 느낀 게 있다. 그릇된 측근 옆에 맹장이 없다는 결론이다. 끝내 모두가 잘못된 길을 걷는다. 취재 현장에선 늘 배운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덕분이다. 최근 식사하는 자리에서 E고위공무원은 말했다. “권력을 조심 또 조심해야죠.” 부처 차관까지 거친 E다. 그는 또 두어 마디 보탰다. “흔히들 착각합니다. 칼 아닌 칼날을 잡고도 말이죠.” “딴 사람 말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귀담아들을 이야기였다. 경청도 측근의 덕목이다. 판단 잣대로 작용한다. 그래야 수장을 제대로 모신다. 칼날을 잡지 않게 돕는다. C, D와 함께 만났더라면 좋았겠다 싶었다. 측근의 바탕은 올곧은 마음 씀씀이에 있다. 이를 성심(誠心)이라고 한다. 진짜 측근은 스스로 측근이라 부르지 않는다. onekor@seoul.co.kr
  • [미술·전시]

    해운대 우동미술관에 ‘이우환 갤러리’ 조성 현대미술의 세계적인 거장인 이우환 화백의 갤러리가 부산 해운대구 우동 시립미술관 내에 건립된다. 부산시는 12일 지하 1층, 지상 2층(1400㎡) 규모의 ‘이우환 갤러리’ 조성에 착공, 내년 상반기에 개관할 예정이라고 10일 밝혔다. 갤러리에는 이 화백의 회화 8점과 조각 6점 등이 전시될 예정이다. 경남 함안 출신인 이 화백은 재일 한국인 작가로 현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미술가로 꼽힌다. 작품 ‘점으로부터’(1977년 작)가 2012년 해외 경매에서 196만 1181달러(약 21억원)에 거래됐다. 화랑미술제 관람객 3만여명 성황속 폐막 한국화랑협회와 코엑스가 공동 주최한 ‘제32회 2014화랑미술제’가 나흘간 관람객 3만 6000여명을 모으고 지난 9일 폐막했다. 화랑미술제는 620여점의 작품을 판매해 3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 관람객 2만 5000여명, 작품 570여점 판매보다 소폭 늘어났다. 지난해보다 15곳이 늘어난 94곳의 화랑이 참가한 이번 미술제는 집중조명작가제를 시행하는 등 선택 폭을 넓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정부미술은행을 통해 미술작품 1억원어치를 구매했다. 재테크전문지 ‘리치’ 17일까지 ‘韓佛 미술전’ 종합금융재테크 전문지인 ‘리치’가 창간 10주년을 맞아 12일부터 17일까지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미술관에서 ‘한·불 특별 미술전’을 연다. 원로작가 구자승을 비롯해 박성남, 김명숙 등 다양한 세대의 국내 작가들이 참여한다. 프랑스에선 1954년 벨라스케스상을 수상한 게랄드 가랑과 무용수들을 우아하게 묘사한 폴 알렉시, 몽환적 아름다움을 표현한 클로드 아바가 동참한다. 서성록 안동대 교수는 “열린 ‘시선의 지평’이란 입장에서 일상을 바라본다면 일상과 자연이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다운지 인식할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명인·명물을 찾아서] 경기 광주시 전통 식음료 제조업체 세준하늘청

    [명인·명물을 찾아서] 경기 광주시 전통 식음료 제조업체 세준하늘청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 가마을길 ㈜세준하늘청은 식혜 특유의 맛과 효능을 내는 데 필요한 우리 고유의 전통 방식을 20년째 고집한다. 은은한 온도에서 장시간 당화(糖化) 과정을 거친다. 대규모 생산시설을 갖춘 전통 식음료 제조업체 중 유일하게 이 같은 공정을 도입했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려는 경영자로서는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선택하기 쉽지 않은 길이다. 문완기 대표는 처조모로부터 3대째 내려온 손맛을 지키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식혜를 만들겠다는 ‘장인정신’에서 출발했다. 식혜가 한류 바람을 타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 인정하는 음료로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점을 중국과 타이완, 베트남에서 열린 한국상품 판촉전을 통해 감지하고 식혜의 세계화에 나섰다. 전통음료 산업이 콜라, 주스 등 서양 식음료에 밀려 내리막길을 걷는 게 안타까워서다. 전통산업을 하는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으로 천대받기 일쑤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K푸드가 세계에서 주목을 받으면서 달라졌다. 특히 쌀을 주원료로 한 제품에 세계인들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식혜 산업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국내 쌀은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수출할 수 없지만 쌀 가공식품은 충분히 가능하지요. 우리 농산물, 그것도 쌀을 수출한다는 게 신나는 일 아닌가요.” 이 회사가 식혜 수출에 매달리는 데는 쌀 생산 농민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겼다. 하지만 식혜를 세계인에게 내놓는 것엔 걸림돌이 적잖았다. 위생적인 생산과 상온에서의 장시간 보관 등에 어려움을 겪었다. 밥알이 뜨고 검고 탁한 색깔은 외국인들에게 거부감을 안겼다. 이런 문제를 해결한 게 국내 처음으로 개발한 바나나 식혜다. 멸균 포장을 하기 때문에 상온에서 18개월 동안 보관해도 변하지 않는다. 밥알도 뺐고 바나나우유와 같은 색깔을 띠게 만들었다. 최근 동남아 식음료 전시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베트남과 중국 등지에서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특히 바나나 식혜에는 경기도농업기술원이 세계 최초로 느타리버섯에서 추출한 아미노산을 함유해 주목받고 있다. 아미노산은 어린아이 성장 발육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탄산음료에 길들여진 아이들 때문에 걱정이 많은 주부들에게 더없는 희소식이었다. 옛 조상들은 잔칫날에 후식으로 식혜를 내놨다. 모처럼 과식으로 인해 체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식혜와 같은 발효 음식이 소화에 도움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았던 선조들의 지혜가 숨어 있다. 정중식 세준하늘청 이사는 “낮은 온도에서 5시간 이상 발효, 즉 당화하는 것은 밥알을 삭히고 엿기름의 구수한 맛을 더 진하게 만들 수 있어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중요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번에 수십만개씩 대량 생산하는 기업에서는 당화 과정을 생략하고 효소제를 첨가해 식혜 맛을 내기 십상이다. 비용을 절약하려는 것이다. 이런 식혜는 설탕물이나 다름없다. 밥맛이 좋으려면 쌀 맛도 좋아야 하는데, 식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원가를 줄이려고 묵은 정부미나 수입쌀을 사용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반면 하늘청식혜는 농약을 뿌리지 않은 여주·이천 쌀 등 경기미를 100%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여느 쌀보다 30~40% 비싼데도 감수하는 것이다. 4년 전 획득하기 힘들다는 경기도지사 인증 G마크도 따냈다. 규모가 큰 매장에서 최고가로 팔리는 비결이다. 세준하늘청은 식혜 세계화를 위한 연구개발에도 힘 쏟고 있다. 일반 식혜를 비롯해 바나나 식혜, 산양삼 식혜, 유기농 식혜, 호박 식혜, 커피 식혜, 오미자 식혜, 탄산 식혜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1991년 대량 생산체제를 갖췄으며 경기도농업기술원과 농촌진흥청 농업실용화재단으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아 퓨전 식혜를 개발하는 등 산·관 협력사업도 활발하다. 쌀, 보리, 옥수수, 조, 콩, 수수 등 국내산 12가지 곡물로 만든 ‘12곡 식혜’는 다음 달 20일 시판에 들어간다. 글 사진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씨줄날줄] 논 3모작 시대/정기홍 논설위원

    우리의 숙원이던 쌀 자급을 이룬 통일벼는 조그마한 키로 인한 재배 과정의 뒷얘기가 여럿 전해진다. 통일벼의 키는 일반벼의 3분의2밖에 안 된다. 몸피는 작아도 아주 야무져서 일반벼와 달리 쓰러짐이 덜하고 병해충에도 강해 수확량이 기존 벼보다 30% 정도나 더 많았다. 작은 키 때문에 잃은 것도 있었다. 밥맛이 덜하다는 것과는 별개로 볏짚 또한 사료용과 연료용 외엔 별 쓸모가 없었다.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짜고, 초가지붕을 이을 때도 일반벼보다 물량이 많이 달렸다. 소의 여물로 쓰기에도 마땅찮았다. 밥맛이 떨어지는 통일벼의 볏짚이 소에겐들 뭐 그리 달랐을까. 통일벼는 1971년 ‘통일벼 박사’ 허문회 교수가 이끈 수원 농대(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연구팀에 의해 개발돼 다음 해 농가에 보급됐다. 동남아시아 등 열대지역에 잘 적응하는 인디카 품종과 온대지역에서 주로 재배하는 자포니카 품종을 교잡한 것이다. 당시 통일벼는 ‘기적의 벼’로 불렸다. 하지만 보급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농가에서는 검증이 안 됐다며 재배를 기피했다. 통일벼가 보급되기 전에는 밥알에 윤기가 있고, 맛 또한 좋은 ‘아끼바레’(秋晴)란 일반벼 품종을 주로 심었다. 당시 두 품종의 품질 차를 빗대 정부미(통일벼)와 일반미(아끼바레)로 불리기도 했다. 여름 냉해가 심해 쭉정이가 많은 해의 다음 해에는 반대가 더욱 심했다. 열대품종 유전자를 지닌 통일벼는 냉해에 약하다. 면사무소와 농촌지도소 직원이 나와 통일벼를 심지 않은 못자리를 장화발로 짓밟는 사례도 있었다. 마침내 정부는 통일벼 수매가를 대폭 인상하면서 농민 달래기에 나선다. 1974∼1976년 연평균 벼수매가 인상률은 이전의 두 배 정도인 27%에 달했다. 하지만 영욕의 통일벼는 1991년 쌀 자급 달성과 함께 보급이 중단되면서 자취를 감춘다. 우리나라에서도 동남아시아에서 가능한 ‘논 3모작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농촌진흥청은 지난해 논에다 호밀(11~4월)과 조평벼(5~8월), 하파귀리(9~10월)를 이어 심어 3모작 재배에 성공했다. 1㏊당 연간 수익도 벼·보리 2모작 때보다 오히려 많다. 우리 논농사 역사에 또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조생종인 조평벼는 일반벼와 비교해 맛 차이도 거의 없다고 한다. 오늘날 농업은 단순한 1차 산업을 넘어 ‘6차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생산의 1차와 가공의 2차, 음식·숙박관광업의 3차산업을 합친 개념이다. 앞으로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면 머잖아 또 다른 품종을 이용한 3모작도 가능해질 것이라니 가히 논농사의 무한 진화시대라 할 만하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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