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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광호의 어찌보면] “그래미도 로컬이다”… BTS ‘그래미 보이콧’의 의미

    [이광호의 어찌보면] “그래미도 로컬이다”… BTS ‘그래미 보이콧’의 의미

    방탄소년단(BTS)의 그래미 어워드 보이콧 선언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이것은 ‘보편’의 가치를 독점해 온 미국 중심의 문화 제도가 비서구 문화를 어떻게 취급하는가를 보여 주며, 동시에 그 균열을 드러낸 사건이다. 그래미 주최 측인 레코딩 아카데미는 ‘베스트 아시아 팝 뮤직 퍼포먼스’ 등 신설 부문을 발표하면서, 이 부문은 아시아 언어를 일정 수준 이상 사용해야 한다는 자격 기준을 만들었다. BTS는 멤버들의 명의로 2027년 그래미 출품을 거부한다고 밝히며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는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규 5집 ‘아리랑’이 빌보드 메인 싱글·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성공의 정점에 있던 시점이었다. 이후 그래미는 제도 개선을 시사했지만, 8월 21일 출품 마감일이 지나버렸고 결과적으로 그래미는 BTS의 문제 제기에 응답을 보여 주지 않았다. ‘아시안 팝’ 부문의 신설이란, 비서구 음악에 출품의 자격을 부여하면서 ‘정통’과 ‘보편’의 본격 경쟁의 장에서는 배제하는 기만적인 전략이다. 그동안 그래미는 글로벌 팬덤을 가진 BTS를 시청률을 위한 공연 퍼포머로 소비하면서도 본상 경쟁에서는 배제해 왔다. 미국 음악의 하위 장르에는 세분화된 카테고리를 부여하면서, ‘아시안 팝’은 장르가 아닌 지역과 언어로 묶어내는 그래미의 분류법 자체가 이중적이다. 미국 음악은 미학적인 계보와 장르로, 비서구 음악은 지리적 언어적 속성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BTS의 음악은 ‘한국음악’의 지역적 범주에 갇혀 있지 않으며, 하이브리드한 음악으로서의 세계성을 획득했는데도 말이다. 음악의 지역적 명명 행위 자체가 권력의 작동 방식이다. 그래미의 지리적 상상력은 미국을 세계 음악 지형의 보편으로, 그 외의 모든 미국 밖의 세계는 ‘지역’이나 ‘기타’로 배치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은 서구를 보편으로, 비서구 문화를 이국적이고 특수한 타자로 보는 위계의 작동 방식이다. ‘아시안 팝’, ‘월드 뮤직’, ‘글로벌 뮤직’ 같은 음악 범주의 명명 방식도 마찬가지다. 서구 음악은 ‘음악 그 자체’이며 나머지는 다른 표식이 필요한 변두리 음악이다. 이런 미국식 보편주의에 대한 균열의 조짐은 곳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를 받기 전 2019년 봉준호 감독은 미국 매체와 인터뷰하면서 “아카데미는 로컬이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칸이나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비해 아카데미는 미국 중심이라는 맥락이었다. 이후 ‘기생충’이 오스카의 ‘외국어 영화상’이 아닌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한번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이 발언은 처음에는 오스카의 미국 중심적 특수성을 지적하는 것이었으나, 그 이후에는 한국 영화가 지역성을 극복하는 서사의 상징이 되었다.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았을 때, 이 상은 영연방 지역 이외의 작가가 쓴 작품에 주는 상이었다. 2024년 한강 작가에게 노벨 문학상을 주었을 때, 서구의 입장에서 ‘번역 소설’이라는 한국문학의 꼬리표는 극복되었다. 그해 12월 내가 참여했던 노벨상 시상식은, 무대와 객석에 단 한 명의 흑인도 찾기 힘든 연미복을 차려입은 백인들의 잔치였다. 수많은 백인 남성 수상자 사이로 단 한 명의 아시아-한국 여성이 앉아 있는 모습은, 노벨상이 이제 겨우 서구와 남성중심주의 보편성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전후 용산 미군기지 무대에서 출발한 한국 대중음악의 소프트파워가 미국 대중문화의 표준과 권위에 균열을 낼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래미의 제도적 권력은 세계적인 상징 자본인 BTS에게도 넘어야 할 벽이지만, 보이콧은 BTS의 영향력을 역설적으로 시험하는 계기이다. 세계 곳곳의 ‘아미’(BTS 팬덤)는 ‘ArtHasNoAliens’란 해시태그(#)를 달아 지지를 보냈다. 수상에서 배제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분류 규정과 경쟁의 규칙 자체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도래했다. 물론 미국의 문화 제국주의가 완전히 해체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아카데미는 아직도 비서구 영화를 ‘국제장편영화상’으로 따로 분류하고 있다. 비서구 콘텐츠들은 여전히 서구와 미국 소유의 플랫폼(유튜브, 넷플릭스, 스포티파이)에 탑재되어야만 ‘지구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나’와 ‘우리’를 보편으로 타자를 특수하고 비정상적으로 인식하는 우리 안의 ‘제국주의’는 혐오와 배제의 근원이다. ‘나-우리’는 보편적인 사람 자체이고 이질적인 타자들은 다른 표식이 필요하다는 분류법은 사람 사이 ‘식민’의 관계를 만든다. 이 태도는 ‘위치성’을 은폐하고, ‘나’의 특정 위치를 보편으로 위장한다. 보편은 어디에도 서 있지 않은 초월적 관점인데, 실제로는 언제나 특정한 역사적·사회적 위치에서 발화된다. 타자에게는 위치성이 과잉으로 부과되어, 그의 언어는 특수한 것으로 치부된다. 특정한 자리에 서 있는 개별적인 ‘나’는 이미 타자이고 이방인이다. 이 위치 때문에 ‘보편’이 되지 못하지만, ‘나’와 ‘당신’은 그래서 더없이 고유하고 매력적이다.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
  • [이광호의 어찌보면] 귀향과 환대는 가능한가… ‘오디세이아’의 현재성

    [이광호의 어찌보면] 귀향과 환대는 가능한가… ‘오디세이아’의 현재성

    서구의 문학적 자산은 지중해의 파도에서 시작됐다. 오디세우스의 항해는 끊임없이 귀환하는 깊은 기억의 서사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의 한 사람인 크리스토퍼 놀런의 영화적 야심이 ‘오디세이’에 이르렀다는 것은 필연이다. 이 이야기는 끝없이 다시 쓰는 일종의 거대한 ‘매트릭스’이며 놀런의 영화는 그 현재적인 응답이며 질문이다. 광대한 신화적 서사를 따라가는 놀런의 영화는 특유의 ‘비선형적 서사구조’를 연출한다. 영화적 시간은 오디세우스가 돌아오기 직전 고향 이타카를 현재점으로 하여, 승리와 고난의 기억, 그리고 귀향 이후의 ‘자기 증명’의 싸움을 전개한다. 초자연적 장면에서 컴퓨터그래픽(CG)의 판타지적인 재현을 억제하고 사실주의적 매체 기법을 동원한다. 아이맥스 필름 카메라에 실물 세트와 실제 항해 등의 연출 방식은 신화적 ‘숭고’를 영화적 스펙터클의 ‘실감’으로 대체한다. 250만 달러의 거대 자본이 투여된 ‘아이맥스 서사시’로서 가능한 결과물이다. 서구 문화사에서 귀향은 부재하는 혹은 변질된 고향과 현존하는 자아 사이의 간극 때문에 생기는 병리적 갈망의 문제였다. ‘귀향 불가능성’은 유럽 지성사의 반복되는 정서이다. 귀향 과정에서의 오랜 부재와 시련, 변장한 귀환, 자기 증명과 폭력적 재통합 등의 서사적 요소들은 패턴화되어 있다. 놀런은 오디세우스를 신들의 저주를 극복하는 초인적인 영웅이 아니라, 전쟁의 책임과 속죄를 떠안은 문제적 개인으로 묘사한다. 오디세우스의 실존적 붕괴는, 놀런의 영화에서 반복되는 죄의식과 트라우마, 기억의 상실과 회복, 정신적 감금 같은 요소들을 통해 드러난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환대의 윤리를 배반하고 ‘폐허’를 마주한 자의 자기 처벌에 가깝다. 칼립소가 주는 망각의 약초를 먹으며 보낸 7년은 그 죄의식과 정체성으로부터의 회피와 망각의 시간이다. 제우스의 법인 ‘크세니아’, 즉 환대는 그리스에서는 여행자와 상인의 안전한 여행을 위한 장치였다. 환대의 법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손님을 향한 주권자인 주인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자크 데리다가 말한 ‘조건적 환대’에 해당한다. 그런데 주인 혹은 손님이 이 환대의 약속을 저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낯선 손님에 대한 주인의 선의는 때로 배반과 죽음으로 돌아온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헬레네의 사건에서 트로이 목마의 속임수와 페넬로페에게 구혼하는 자들의 행패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서사에서 환대는 배신과 파괴의 통로가 된다. 환대의 윤리가 사라진 세계는, 승리를 위한 속임수와 야만적인 폭력과 문명의 붕괴가 있을 뿐이다. 오디세우스는 전쟁의 승리를 위해 환대의 윤리적 파탄을 자초한 인물이며, 한 세계의 종말을 먼저 알아챈 인물이다. 아내를 압박해 온 ‘나쁜 손님들’인 구혼자들을 처단하는 것은 환대의 법을 회복하는 시도일 수 있다. 오디세우스는 환대의 법을 배반한 자이면서 그것의 피해자이며, 또한 환대의 규범을 회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폭력만으로 그것이 가능할 때, 환대의 윤리는 온전하게 복구되지 않는다. 남편이 없는 20여년 동안 이타카를 지킨 페넬로페는 누구인가? 그녀는 여자는 왕이 될 수 없다는 법 때문에, ‘수의 짜기’라는 시간의 지연을 통해서만 오로지 ‘기다리는 자’로 그려진다. 페넬로페는 ‘호스티스’로서의 ‘여성-환대자’로서의 역할을 떠안았으면서도, 환대의 주체적인 지위에서 배제된다. 전쟁의 승리자인 남성 영웅은 그 지혜로움과 도덕적 딜레마 때문에 외로운 존재다. 그는 세이렌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자기 몸을 묶는 도착적인 자기 억압을 통해서만 ‘귀향하는 주체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미국적 억양을 가진 백인 참전 군인의 신체를 통해서 그 보편적 주체를 재현할 때, 주인공의 트라우마는 미국적 주체의 알레고리로만 제한될 수 있다. 놀런은 오디세우스를 다시 떠나는 자로 만들어 길고 긴 ‘귀향담’을 ‘디아스포라의 서사’로 다시 쓴다. 오디세우스는 불가능한 귀환을 통해서 창조적 떠돎(노마디즘)과 망명을 다시 시작한다. 망명이 집과 자아 사이의 구조적으로 ‘치유될 수 없는 균열’을 의미한다면, 이상적인 단 하나의 고향은 더이상 가능한 목적지가 아니다. 영화 마지막 불타는 트로이 목마 이미지는 전쟁의 지혜와 승리의 상징이 아니라 환대의 법이 사라진 세계의 종말을 보여준다. 지금 환대의 윤리는 전 지구적으로 파국을 맞고 있다. 자국 중심주의와 극우 이데올로기로 인해 이방인들은 추방되고, 이질적인 것과 공존하려는 노력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아프가니스탄과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그리고 모로코와 스페인 국경의 바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귀환할 자신의 국가가 있는 오디세우스의 영웅적 귀향과는 다른 차원에서, 고향 자체가 지워진 ‘난민’들의 이산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환대의 윤리가 붕괴된 세계의 파국은 진행형이다. ‘나’는 그 사람을 진정으로 맞이했을까. 신화는 이토록 서늘한 방식으로 귀환한다.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
  • “손녀 같아서” 외국인 밥값 내준 ‘아저씨’…“한국에 감사” 눈물 흘렸다 [이슈픽]

    “손녀 같아서” 외국인 밥값 내준 ‘아저씨’…“한국에 감사” 눈물 흘렸다 [이슈픽]

    “일하러 가기 전 그저 평범한 한 끼 식사였을 뿐인데, 아주 오랫동안 간직할 기억이 됐습니다.” 최근 소셜미디어(SNS) 등에서는 ‘태국인 손님들 밥값 대신 내주고 떠난 어르신’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공유됐다. 지난 6월 한 태국인 여성이 틱톡에 올린 영상인데, 뒤늦게 한국 온라인상에서 주목받은 것이다. 해당 영상을 보면 태국인 여성들 옆 테이블에 있던 한 어르신은 “필요한 거 더 시켜, 맛있게 먹어”라며 “손녀딸 같아서, 뭐 사주는 거 좋아해”라고 말한다. 그러더니 “이거 내가 내고 가니까 그렇게 알고 맛있게 먹어”라며 여성들의 식삿값을 대신 내주겠다고 한다. 여성들은 어르신의 호의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서툰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연신 말했다. 어르신은 이들의 식삿값 6만원을 ‘쿨하게’ 결제하고 자리를 떠났다. “더 시키라”던 옆 테이블 ‘아저씨’“진짜 대신 내주실 줄은 몰랐어요” 화제가 된 영상에 등장하는 태국인 여성 와와(34)는 지난 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너무 놀랐고, 솔직히 진짜로 내주실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와와는 해당 어르신을 ‘아저씨’라고 표현했다. 와와에 따르면 그는 태국인 친구 2명과 함께 지난 6월 15일 오후 4시쯤 해당 식당을 방문했다. 이들은 함께 동대문에서 제품을 조달하기 위해 한국에 자주 오는 편이라고 한다. 와와는 “친구들과 ‘진짜 로컬’ 한국 식당에 가보고 싶어서 숙소 근처에 있는 작은 식당을 선택했다”며 “지나가면서 봤는데 주로 한국 어르신 손님들로 가득 차 있길래 ‘진짜 맛집이겠다’ 싶어서 방문했다”고 말했다. 이어 “식사를 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들어와서 음식을 주문하고 우리 옆 테이블에 앉았다”며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 아저씨가 ‘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주문하라’며 본인이 밥값을 대신 내주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들 일행은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계속 “괜찮다”고 말했다고 한다. 와와는 “아저씨가 본인이 주문하신 순대도 다 못 드셨는데 사장님께 가더니 저희 테이블 금액을 계산하겠다고 말했다”고 떠올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저씨는 이들 테이블에 물밖에 없는 것을 보고 결제하기 전 “마실 건 필요 없냐”라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와와는 “단순히 저희 밥값을 내주는 것만이 아니라, 저희에게 필요한 게 다 있는지를 세심하게 생각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저씨가 실제로 돈을 꺼내서 낼 때 우리 모두 얼어붙었다”며 “우리는 식사를 멈추고 재빨리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드리며 ‘감사합니다’라고 반복해서 말했다”고 덧붙였다. 아저씨 호의에 눈물 흘린 태국인들“이방인에 추억 선물해 주셔서 감사” 영상을 올리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그 일이 있고 나서 감동한 친구가 영상을 틱톡에 올렸다”며 “아저씨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왜 그렇게 친절한 행동을 하고 싶어 하셨는지 사람들이 알려줬으면 하는 마음에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함께 있었던 와와의 친구는 아저씨의 행동에 감동받아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아저씨가 떠난 뒤 “우리도 나이 들면 저 아저씨처럼 따뜻하고 넉넉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대화를 나눴다. 와와는 “저희에게 남은 건 ‘돈’이 아니라 그 행동 뒤에 숨은 ‘마음’이었다”며 “저희도 기회가 있을 때 누군가를 위해 비슷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여행으로, 일로, 한국에 오갔다는 와와는 이전부터 한국에 대한 인상은 매우 좋았다고 밝혔다. 그는 “자주 가는 동네 김밥집 이모님은 항상 반갑게 인사하며 안부를 물어봐 주시고, 길거리 카트에서 신선한 주스를 파시는 사장님은 여러 과일과 채소 조합을 추천해 주신다”며 “이번 일을 통해 한국 사람들에 대해 훨씬 더 깊은 감사함을 느끼고 돌아왔다”고 전했다. 이어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도 아무 대가 없이 선의를 베풀어 주셨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며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밝게 만들어주는 데에는 항상 어떤 이유나 인연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셨다”고 말했다. “아저씨, 혹시라도 이걸 보신다면 저희가 여전히 정말로 감사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아저씨에게는 작은 호의였을지 몰라도, 저희의 하루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해 주셨어요. 저희는 아저씨를 진심으로 존경하며, 언젠가 저희도 같은 마음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길 바라요. 낯선 이방인 3명에게 이렇게 뜻깊은 추억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와와 일행은 아저씨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장수를 온 마음으로 기원한다고 전했다.
  • 딱, 규정하지 않고 글쓰기…문득, 다음 문장 발견하기

    딱, 규정하지 않고 글쓰기…문득, 다음 문장 발견하기

    문학평론가 이광호의 새 산문집 ‘그의 이름은 만약에’는 에세이라는 글쓰기를 골똘히 들여다본다. 에세이를 “‘아직 살아 있음’의 몸짓에 대한 글쓰기”(56쪽)라고 정의한 저자는 글 스물여섯 편에 부재자, 샛길, 기억, 몽타주, 편린, 여행 같은 단어를 앞세우고 “유명 관광지를 향해가다가 매력적인 낡은 골목과 건물들 사이의 비밀스러운 틈을 발견하거나, 주택가 뒤쪽 오래된 놀이터 미끄럼틀에 주인처럼 누워 있는 늙은 고양이에 매혹당”(24쪽)하듯 글을 써내려갔다. 에세이의 출발점으로 삼은 글은 ‘약력’에 대한 거부감이다. 저자에게 약력 쓰기가 “삶의 이력을 요약하려는 불가능한 시도”라면, 에세이적인 글쓰기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 글을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안에서 삶의 근원적인 문제들을 직면”하고 “영혼이 구체적인 형식을 찾아가는 투쟁”(‘이름의 시작과 가장자리’ 부분)이다. “낯설고 기묘하고 매혹적인 타자성의 냄새들”(‘보이지 않는 세계의 감각’ 부분)에서 현재를 인식하고, “얼핏 무가치해 보이는 사소한 사물들의 기억 안에서 사물의 숨겨진 의미뿐만이 아니라, 사물과 자신의 위치를 재구성”하며 “또 다른 소우주”(‘보물과 잡동사니의 사이’ 부분)를 만든다. 제목을 비문인 듯 만들어 버린 ‘만약에’는 무엇인가. 마치 누군가의 이름이 ‘만약에’인 것처럼 보이는 제목은 저자가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이자 에세이의 시작이다. 저자는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한 세계의 펼침”이라 “그 사람의 고유한 비밀들을 빼앗지 않기 위해”(6쪽) ‘만약에’라고 호명한다. 문학적 글쓰기 역시 “규정할 수 없는 것, 혹은 ‘텅 빈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해 “쓰면서 문득 다음 문장을 발견”(7~8쪽)해 나간다. 먼저 떠나보낸 고양이, 이방인들의 시장에서 느낀 음식 냄새, 이사하던 날 트럭 위에 뒤집힌 채 묶여 있던 낡은 책상을 보며 저자는 기억을 살리고 감각을 재구성해 글을 완성했다. 글 끝에는 “흔적의 일회성과 그 우연한 아름다움을 보존하려는 작업”이자 “일종의 세리머니”(54쪽)처럼 직접 찍은 사진을 실었다. 글의 구성과 흐름, 사진까지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무언가 쓰고 싶지만 시작이 막막한 이에게 책을 건네고 싶어진다.
  • 청·일·미군 주둔한 이방인의 길… 이젠 세계인 찾는 ‘K감성의 길’[서울 로드]

    청·일·미군 주둔한 이방인의 길… 이젠 세계인 찾는 ‘K감성의 길’[서울 로드]

    접근성 좋아 침탈·수탈의 거점화강제징용 노동자상·효창공원 등이 땅이 견뎌온 역사 묻어나는 곳낡은 기찻길 뒤 높이 솟은 아파트복고적인 분위기에 관광객 ‘북적’골목마다 개성 넘치는 식당 가득 “장소의 의미를 둘러싼 싸움은 기억에 대한 투쟁이다. 억압된 기억은 긴 우회를 거쳐 언젠가 유령의 얼굴로 기억한다.”(문학평론가 이광호의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용산에서의 독백’) 한강으로의 접근성 때문에 용산은 오랜 세월 교통의 중심이었다. 한양도성 서쪽 안산 자락이 남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가 한강을 향해 구불구불 나아간 모양이 용을 닮았다 해서 용산이란 이름이 붙었다. 현재의 효창공원과 원효로 서쪽 일대 구릉지가 본래 용산이고, 미군기지와 삼각지, 이태원이 자리 잡은 일대는 신용산이라 불리다 ‘신’을 빼고 용산으로 굳어졌다. 조선시대 경강상인의 터전이자 개항 이후 근대 문물의 유입 통로였던 용산은 접근성 탓에 일본 군국주의 침탈과 수탈의 거점이 됐고 이후 미군과의 동거가 최근까지 이어졌다. 시작은 구한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오군란(1882)이 일어나자 파병된 3000명의 청나라 군대가 이곳에 주둔했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4년 러일전쟁을 치르기 위해 용산기지를 본격 조성했다. 용산이 행정구역상 경성부(현재 서울)에 포함된 것도 이때다. 일본군을 내몰고 이 땅을 접수한 미군은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거의 철수했지만, 한국전쟁으로 돌아온 뒤 1957년 주한미군사령부 창설과 함께 본격적인 주둔을 시작했다. 2004년 용산기지 이전협정 타결로 100여년간 이어진 남의 땅 신세는 면했지만, 아직도 반환 절차가 진행 중이다. 미군장교숙소, 용산어린이정원 등은 일반에 개방됐지만 여의도 면적과 비슷한 총 243만㎡(74만평)의 대부분은 여전히 접근할 수 없다. 옛 지명인 둔지방이 유래한 둔지산도 기지 안에 있다. 용산 곳곳에는 이 땅이 견뎌온 오욕과 그에 대한 교훈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남아있다. 용산기지 바깥에 외국군 주둔 흔적은 ‘왜명강화지처비’나 후암동에 있던 ‘호국신사’ 터 앞 108계단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도시개발 과정에서 사라졌다. 다만 미군이 일본군의 건물을 재활용한 덕에 남아있는 용산기지 안에 1952년 이전에 지은 건물이 132동에 이른다. 2017년 용산역 광장에 세워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용산을 거쳐 일본 본토와 사할린, 남양군도, 쿠릴열도로 강제징용됐던 조선인들을 기리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 김서경 작가가 제작했다. 2010년대 이후 용산은 서울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은 백자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최근 완전체로 컴백한 방탄소년단(BTS)의 소속사인 하이브 신사옥은 글로벌 아미(BTS의 팬덤)들의 성지다.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과 삼각지역 사이 이면도로에는 최근 소셜미디어(SNS)에서 가장 뜨거운 ‘용리단길’이 있다. 새로운 분위기의 가게들이 하루가 멀 만큼 들어서고 있다. 용리단길은 재개발 구역의 느낌과 신축 건물들이 뒤섞인 레트로 감성을 뽐낸다. 일본 하라주쿠 뒷골목에 있을 법한 선술집과 정갈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세련된 분위기의 한우구이 식당, 왁자지껄한 디제잉이 곁들여진 바(bar) 문화가 뒤섞인 무국적 공간으로 유동인구의 연령대도 폭넓은 편이다. 조금만 더 걸어 왜고개 성지의 고요한 마당에서 명상을 해도 좋다. 병오박해 때 순교한 한국인 첫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시신이 모셔졌던 곳이다. 왜고개란 이름은 조선 시대 기와를 구워 공급하던 와서(瓦署)의 흔적이다. 명동성당과 중림동 약현성당 벽돌도 이곳에서 공급했다고 한다. 한강대로 서편 골목길은 은행나무길로 불린다. 일제강점기 철도기지화와 함께 신시가지로 개발된 적산가옥이 남아있고, 독특한 감성의 식당과 카페가 들어섰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나온 백빈건널목의 저녁노을 배경 인증사진은 명불허전이다. 1928년 지어진 용산철도병원은 이제 용산역사박물관으로 쓰인다. 길 건너 주상복합단지 한켠에는 2009년 29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용산참사’를 기리는 용산도시기억전시관이 있다. 백빈건널목의 철제 가림막 너머에는 일제강점기 철도정비창 부지를 재개발하는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있다. 이곳 철도정비창에서 일본인 어깨 너머로 기술을 배운 조선인들이 광복 직후 ‘조선해방자호’ 열차를 만들었다. 1946년 7월 부산항에 도착한 독립운동가 이봉창·윤봉길·백정기의 유해가 이 열차에 실려 돌아왔고,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모셔졌다.
  • 미술에 미치다

    미술에 미치다

    국내 주요 미술관, 갤러리마다 내년 전시 일정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저마다 ‘최초, 최대, ~주년 기념’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전시로 관람객에게 손짓한다. 2026년을 화려하게 여는 첫 전시로 어떤 카드를 내밀었는지, ‘프리즈 서울’이라는 세계적 아트페어로 전 세계 미술계 시선이 한국을 향하는 9월에 맞춰 어떤 전시를 준비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관전 요소다. 2026년 미술의 세계에 풍덩 빠지고 싶은 당신을 위한 주요 전시를 모았다. ●국립현대미술관 데미안 허스트 회고전 먼저 올해 ‘론 뮤익’ 전 등의 흥행으로 337만명(12월 20일 기준)이라는, 개관 이래 역대 최고 방문객 기록을 세운 국립현대미술관은 내년 대형 전시 라인업을 예고했다. 서울관에서는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데미안 허스트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회고전①(3~6월)을 기획했다. 작가의 핵심 주제인 죽음과 영생, 과학과 의학에 대한 인간의 믿음과 욕망을 조명하고 작가의 대표작과 작품세계를 다층적으로 풀어내는 전시다. 한국 작가 회고전도 굵직하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아 청주관에서는 ‘빛의 화가’ 방혜자 회고전(4~9월)이 열리며, 덕수궁관에서는 한국 화단에서 독자적 궤적을 구축한 이대원 회고전(8~11월)이 열린다. 12월에는 1950~70년대 프랑스로 건너간 권옥연, 김환기, 이응노, 이성자, 한묵 등 작가들의 삶과 예술을 통해 한국 근현대 미술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파리의 이방인’ 전이 마련된다. 프리즈 기간에 앞서서는 한국 대표 설치미술가 서도호의 대규모 개인전⑤(8월~2027년 2월)이 출격한다. 거주, 개인과 공동체라는 근본적 주제를 중심으로 초기부터 현재까지 심화해 온 작가의 작업 세계를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전시가 될 예정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취리히 미술관 소장전 국립중앙박물관은 내년 연말 ‘스위스 취리히 미술관 소장전’(가칭·11월~2027년 4월)을 통해 유럽의 19~20세기를 관통하는 인상파, 모더니즘의 주요 작품을 소개한다. 취리히 미술관은 지역의 소장자와 작가들의 협력으로 발전시킨 특수한 미술관으로 컬렉터의 취향과 당시 유럽의 역사가 대폭 반영된 작품을 대거 소장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스위스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리움·호암미술관 김윤신 등 여성 작가展 한국 대표 사립미술관인 리움·호암미술관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여성 작가들의 작업을 앞세운다. 호암미술관은 내년 첫 전시로 한국 여성 조각 1세대를 대표하는 김윤신의 70여년 예술 세계를 두루 살피는 대규모 회고전④(3~6월)을 열고 리움미술관도 상반기 1세대 여성 설치미술가의 계보를 조명하는 대규모 국제교류전 ‘환경, 예술이 되다-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실험 1956~1976’을 준비했다. 하반기 리움미술관에서는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대표했던 ‘구정아 개인전’②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개념 세계인 ‘우쓰’(가상도 현실도 아닌, 이해할 수 없지만 감지할 수 있는 맞닿은 세계)로 관람객을 초대한다. 내년 개관 20주년을 맞는 경기도미술관은 ‘환대’와 ‘연대’를 의제로 미술관의 역사를 되짚고 미래 방향성을 제시하는 전시를 준비했다. 그중 봄봄봄 프로젝트 ‘폼폼폼’(3월)은 새해를 여는 첫 지역 기반 전시로 미술관과 호흡해 온 문화자원봉사자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다. 신진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청년작가전 ‘우리의 여름에게’(7~9월)와 국제전인 ‘아시아 현대미술’(10월~2027년 2월)을 통해 미술관의 20년이 지역을 넘어 아시아로 확장되는 의미를 담는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아시아 첫 기획전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4월 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을 통해 해외 동시대 미술의 넓은 스펙트럼과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 경향을 보여줄 예정이다. 데이비드 호크니, 로즈 와일리, 키키 스미스, 백남준⑥, 이불, 이우환 등 국내외 작가 40여 명의 회화, 사진, 조각, 설치 작품 50여 점을 선보인다. 9월에는 조나스 우드의 지난 20년 작업 세계를 망라하는 아시아 첫 기획전을 예고했다. 아트선재센터는 내년 3월 대규모 퀴어 미술전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을 연다. 전시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퀴어 미술의 다층적인 지형을 조망하며 트랜스적 존재 조건과 퀴어적 시공간성을 탐구한다. 전시에는 김아영, 마리아 타니구치, 마크 브래드포드, 오인환, 이강승 등의 작업을 선보인다. 7월부터는 공존을 위한 개인과 세계의 관계를 재사유하는 함양아 작가의 개인전이, 10월 말에는 통제 불가능한 신체의 감각으로 ‘정상성’의 개념에 질문을 던지는 최하늘 작가의 개인전이 찾아온다. ●국제갤러리, 작고 3주기 박서보 개인전 국제갤러리는 작고 3주기를 맞는 박서보의 개인전③을 비롯해 박찬경, 제니홀저, 메이플소프까지 한옥과 K1·K2·K3, 부산점을 아우르며 회화, 사진, 영상, 설치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갤러리현대는 1월 새해 첫 전시로 ‘민화 기획전’을 준비했다. 본관에서는 조선시대 궁중 회화의 장엄함과 민화의 자유로운 창의성을 아우르는 ‘장엄과 창의: 한국 민화의 변주’를, 신관에서는 민화의 형식과 정신을 오늘의 회화 언어로 확장한 ‘화이도’를 선보인다.
  • 인간 결핍·오류가 이야기의 힘… AI는 항상 한발 늦을 겁니다 [오경진 기자의 노이즈캔슬링]

    인간 결핍·오류가 이야기의 힘… AI는 항상 한발 늦을 겁니다 [오경진 기자의 노이즈캔슬링]

    언어가 사라진 3000년 후의 세계자연 모든 것에 이름 붙이는 인간‘생태계의 이방인’이 된 존재 그려“이야기가 세상 바꿀 수 있다 믿어AI, 인간 의외성 흉내낼 순 있을 것” 안온하고 무해하며 다정하다. 소설가 천선란(31)이 구축한 세계는 천천히 그리고 서서히 스며든다. 정신을 차려 보면 우리가 그 따스함에 사로잡혀 있다는 걸 알아챈다. 그리고 거기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는 것도. 소설집 ‘모우어’(사진·문학동네)로 돌아온 천선란을 2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어릴 적 몽상가에 가까웠다”는 그의 관심은 인간과 지구를 뛰어넘는 곳에 있었다. 공상과학(SF)소설은 그런 천선란에게 딱 맞는 옷이다. “인간 속에 있을 땐 작은 것도 커 보이고 거기에 휘둘리게 되잖아요. SF소설을 쓸 땐 지구에서 멀어지는 느낌이에요. 그 거리감에서 오는 차분함이 좋아요.” 지금도 무한한 우주의 바다를 유영하고 있을 ‘보이저 1호’는 언젠가 시선을 잠시 지구 쪽으로 돌린 적이 있었다. 그때 보이저 1호의 눈으로 본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했다. 멀리서 보면 작디작은 점인 지구에서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아웅다웅하는가. 천선란의 말은 과학자 칼 세이건(1934~1996)이 우리에게 일찍이 던졌던 질문을 새삼 상기시킨다. “만화를 보면 뒷이야기를 혼자 상상하곤 했어요. ‘우리 세상에 외계인이 섞여 있다면 어떨지’ 하는 생각도요. 소설은 이런 몽상을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수단이었죠.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내가 쓴 이야기가 절대 내게서 끝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독자가 받아들이는 건 다 다르니까요. 소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세계란 걸 알았죠.” 앞서 천선란의 대표작 ‘천 개의 파랑’(허블)은 올해 연극과 뮤지컬로 재창작됐다. 그는 자기가 원작자임에도 “처음 보는 느낌이었다”며 “마치 독자가 책을 읽는 순간을 훔쳐보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소설은 소설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가닿고 보통은 이야기를 전달한 사람의 예상을 넘어선다. 천선란 역시 자기가 창조한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서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을 즐기는 듯하다. “과연 동물이 사물에 이름을 붙일까요? 인간이 모든 것에 이름을 붙였던 건 결국 자연을 도구처럼 이용하기 위한 것 아니었을까요?” ‘모우어’는 언어가 사라진 3000년 뒤의 세계를 다룬다. ‘창세기’ 속 아담은 사물에 이름을 부여하면서 ‘자연의 주인’으로 거듭났다. 천선란은 이것을 살짝 뒤튼다. 인간이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면서 오히려 ‘생태계의 이방인’이 됐다는 문장으로 이야기의 포문을 연다. 독일에서 이 작품을 썼다는 천선란은 모국어를 ‘학살자의 언어’라며 부끄러워했던 어느 독일인과의 대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비단 이것은 독일어와 독일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또 다른 단편 ‘얼지 않는 호수’에서는 이런 질문이 반복된다.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나요?” 이 질문을 그대로 작가에게 돌려줬다. 언어는 의심스러운 것이고 인간은 이야기를 언어로만 전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천선란은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이야기의 힘은 인간 내면의 결핍과 오류에서 비롯된 의외성에 있어요. 인공지능(AI)이 그걸 흉내 낼 순 있겠지만 언제나 한발 늦을 겁니다. 저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아요. 재밌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다만 그 재미의 종류가 다 달라야겠죠. ‘천 개의 파랑’이라는 제 책의 제목처럼 천 가지 종류의 재미를 독자에게 드리고 싶어요. 불가능할 것 같지만…. 일단 죽을 때까지 쓸 겁니다.”
  • “먹고 자는 것도 사치인 참혹함 속에서… ‘사람들’ 덕에 웃었다”[곽소영 기자의 튀르키예 참사 현장을 가다]

    “먹고 자는 것도 사치인 참혹함 속에서… ‘사람들’ 덕에 웃었다”[곽소영 기자의 튀르키예 참사 현장을 가다]

    “제일 빠른 비행기는 내일모레입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강진 나흘째인 지난 9일(현지시간)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비상이 걸렸다. 지진 피해 지역과 가까운 아다나로 가려고 수속을 밟던 기자에게 항공사 직원이 결항 소식을 전한 것이다. 직원에게 애원해 취소 표를 겨우 잡아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만 참사를 취재한 일주일은 변수의 연속이었다. 피해가 극심한 하타이주에 들어가기 전 일주일 치 기름을 사 두기 위해 아다나의 한 주유소에 들렀다. 주유소 직원은 평소 1시간 안팎 거리인데 5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라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실제로 새벽 4시에 출발했지만 도로 위에 피난민과 구급차, 중장비 차량이 뒤엉키면서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다 무너진 건물에 가로막혀 돌아가는 일도 허다했다. 어렵게 도착한 하타이주의 건물들은 ‘팬케이크’처럼 위층부터 차곡차곡 무너져 있었고 콘크리트와 벽돌은 가루가 돼 있었다. 튀어나온 철근 사이로 식기, 유아차, 욕조, 시계부터 누군가의 다이어리까지 생의 흔적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모닥불 타는 냄새와 흙먼지 냄새 그리고 우유가 부패한 듯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건물 잔해 어딘가에서 시신이 부패하며 풍기는 냄새라는 것을 알아채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피해가 큰 지역엔 멀쩡한 숙소가 없었고 그나마 피해가 덜한 도시의 호텔에선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숙소를 구할 수 없는 곳에선 차 안에서 영하의 추위를 견디며 쪽잠을 청해야 했다. 밤마다 흙먼지에 머리카락이 버석거리고 얼굴을 닦은 물티슈가 흙먼지로 누렇게 됐지만 ‘차박’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었다. 몸보다 힘든 건 마음이었다. 기자는 일주일 후면 다시 한국으로 떠나는 ‘이방인’이었지만 현지인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언제 복구될지도 모르는 터라 그저 견뎌야만 했다. 비참한 현실을 목도한 현지인 운전기사는 밤새 잠을 설치고, 통역사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매일 취재를 마친 뒤 차 안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절망 속에서도 셋이 함께 웃는 유일한 순간은 그곳 ‘사람들’ 덕이었다. 텐트촌이나 대피소에서 만난 아이들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같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거나 잔해 속에서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 인형을 꺼내 보여 줬다. 구호식품을 나눠주는 푸드트럭을 취재하던 때에는 줄을 기다리는 것으로 착각한 이재민 수십 명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먼저 받으라’며 홍해처럼 길을 터 줘 얼떨결에 빵을 받기도 했다. 추위에 고생한다며 따뜻한 차 한잔이나 먹을 것을 건네는 이재민들의 호의를 거절한 적이 스무 번은 넘었다. 스무 살 조카의 시신이 꺼내지길 기다리며 홀로 잔해 앞에 앉아 있던 오즐람(45)은 먼 길을 떠나는 기자를 껴안으며 튀르키예식 전통 인사로 두 볼을 차례로 맞댄 뒤 “온 세상의 기쁨이 너와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희망을 속삭였다. 이 순간에도 구호의 손길을 기다릴 튀르키예인에게 같은 말을 전한다. 온 세상의 기적이 튀르키예와 함께하기를.
  •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 참혹함 속에서도 “온 세상 기쁨 함께하길” 유가족 한 마디에 울고 웃었다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 참혹함 속에서도 “온 세상 기쁨 함께하길” 유가족 한 마디에 울고 웃었다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지역을 강타한 규모 7.8의 대지진 여파로 곳곳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아직 수 많은 이들이 건물 잔해에 갇혀 있는데도 구조 작업은 더디고 시간만 빠르게 흐르면서 살아남은 이들을 더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한 순간에 가족, 친구, 보금자리를 모두 잃은 생존자들은 질병, 추위, 굶주림이라는 또 다른 재난과도 싸워야 한다. 이 곳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지만 폐허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이들은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 재난의 현장에서 서울신문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기록을 써내려 간다는 심정으로 현지 상황을 기록한다.“제일 빠른 비행기는 내일 모레입니다.” 튀르키예에 강도 7.8의 지진이 발생한지 나흘째였던 지난 9일(현지시간) 오전 5시. 이스탄불 공항에서 아다나행 항공편의 탑승 수속을 밟던 기자에게 항공사 직원은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전했다. 온라인 사이트에서 미리 예매해 결제까지 해둔 항공편이 결항됐다는 소식이었다. 이미 공항 곳곳에선 기약없이 표를 기다리던 튀르키예인들이 ‘가족에게 빨리 가야한다’며 애타는 목소리로 항의하고 있었다. 당시 주요 지진 피해 지역인 튀르키예 남부의 하타이 공항과 가지안테프 공항 등은 모두 지진 여파로 폐쇄돼있던 상황. 직원에게 애원해 취소표를 겨우 잡은 그 순간부터 튀르키예 지진 참사를 취재한 일주일은 변수의 연속이었다. 피해가 극심한 하타이주에 들어가기 전, 일주일치 기름을 사두기 위해 아다나의 한 주유소에 들렀는데 주유소 직원은 하타이까지 가려면 5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라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에서는 1시간 10분이면 도착한다고 나와 있었지만 그걸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새벽 4시에 출발했지만 도로 위엔 피난민과 구급차, 중장비 차량이 뒤엉키면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불이 켜진 휴게소마다 모든 식량이 동나 있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다 무너진 건물에 가로막혀 돌아가는 일도 허다했다.어렵게 도착한 하타이주의 건물은 ‘팬케이크’처럼 위층부터 차곡차곡 무너져 있었고 콘크리트와 벽돌은 가루가 돼 있었다. 튀어나온 철근 사이로 식기, 유아차, 욕조, 시계부터 누군가의 다이어리까지 생의 흔적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 앞에서 노숙 중인 주민들은 구조대가 지나갈 때마다 ‘이 안에 가족이 있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모닥불 타는 냄새와 흙먼지 냄새 그리고 우유가 부패한 듯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게 건물 잔해 어딘가에서 시신이 부패하며 풍기는 냄새라는 것을 알아채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숙소를 구할 수 없다보니 밤에는 차 안에서 추위를 견디며 쪽잠을 청해야 했다. 밤마다 흙먼지에 머리카락이 버석거리고 얼굴을 닦은 물티슈가 흙먼지로 누런 색이 됐지만 ‘차박’을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행운이었다.몸보다 힘든 건 마음이었다. 기자는 일주일 후면 다시 한국으로 떠나는 ‘이방인’이었지만 현지인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언제 복구가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견뎌야만 했다. 몸보다도 마음이 무거웠다. 매일 취재가 끝나면 현지인 운전기사와 통역사, 기자가 함께 타고 돌아가던 차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백발이 성성한 운전기사 사마안띳(67)은 “편하게 먹고 자는 게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다”며 밤마다 잠을 설쳤다. 취재 마지막 날에는 기자를 아다나 시내 호텔로 데려다준 뒤 가족들이 머무는 텐트촌으로 돌아갔다. 사마안띳은 이번 지진으로 충격이 커서 당분간 일을 못할 것 같다며 회사에 휴직 신청을 했다. 비참한 현실을 함께 목격하고 한국어로 전하는 통역사 베이사(25)도 취재 내내 눈물이 마르질 않았다.절망 속에서도 셋이 함께 웃었던 유일한 순간은 그곳의 ‘사람들’ 때문이었다. 텐트촌이나 대피소에서 만난 어린 아이들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거나 잔해 속에서 한국 드라마인 ‘오징어게임’ 인형을 꺼내와 보여줬다. 구호식품을 나눠주는 푸드트럭을 취재하던 기자가 줄을 기다리는 것으로 착각한 이재민 수십명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먼저 받으라’며 홍해처럼 길을 비켜줘 얼떨결에 빵을 받기도 했다. 추운 날씨에 고생한다며 차나 음식을 건네는 이재민들의 호의를 거절한 적이 스무번은 넘었다.일주일동안 들었던 말 중 가장 따뜻한 말은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에서 들었다. 스무살 조카의 시신이 꺼내지길 기다리며 홀로 잔해 앞에 앉아있던 오즐람(45)은 먼 길을 떠나는 기자를 껴안으며 튀르키예식 전통 인사로 양볼을 차례로 맞댄 뒤 “온 세상의 기쁨이 너와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속삭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구호의 손길을 기다릴 튀르키예인에게 같은 말을 전한다. 온 세상의 기적이 튀르키예와 함께하기를.
  • 김동리·황순원·카뮈… 작가를 섭렵한 작가, 끝없는 읽기로 문학적 색깔 다듬어[김언호의 서재탐험]

    김동리·황순원·카뮈… 작가를 섭렵한 작가, 끝없는 읽기로 문학적 색깔 다듬어[김언호의 서재탐험]

    1964년 부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미래의 작가 조성기는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고등학교 때부터 입주 아르바이트를 했다. 고교 1학년 때 조성기는 문학의 길로 가는 독서를 하게 된다. 아르바이트하는 집의 다락방에 누렇게 빛바랜 ‘현대문학’이 창간호부터 100여권 꽂혀 있었다. 조성기는 그걸 전부 읽었다. 고독한 사춘기 시절의 엄청난 문학 체험이었다. 당시 ‘현대문학’은 매월 10여편의 중·단편을 실었다. 1년에 1000여편의 소설을 읽은 셈이었다. 물론 시와 평론도 읽었다.“김동리·황순원·김정한·손창섭·이범선·박영준·안수길·강신재·이호철·최인훈·이봉구·이문희·이주홍·손소희·장용학·강용준·최상규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작가들의 작품을 섭렵했습니다. 어느새 나는 펜을 들고 소설을 쓰고 있었습니다.” 창작은 독서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인간과 세상에 눈뜨게 할 것이다. 질문하고 성찰하게 만들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삶과 세계에 대한 끝없는 질문, 다시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문학가와 문학 작품이 탄생할 것이다. 작가 조성기는 ‘읽는 사람’이다. 끝없는 읽기를 통해 그의 문학의 영역은 깊어지고 자기 빛깔을 띨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알베르 카뮈의 모든 작품을 섭렵했습니다. ‘이방인’, ‘시지프스의 신화’를 읽었습니다. 김동리의 작품을 다 읽었습니다. ‘무녀도’, ‘역마’, ‘달’, ‘정원’, ‘천사’, ‘까치소리’를 읽고는 ‘사춘기의 고독과 육정’이란 평론을 쓰기도 했습니다.” ●책 읽는 작가 조성기 조성기는 자신이 저간에 읽은 책들의 일부를 소개했다. 책들은 그의 문학의 빛과 그림자, 그 세계와 지향을 살펴보게 한다. 작가에게 책 읽기는 세상을 체험하는 것이고, 작품 쓰기의 역량일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지하생활자의 수기’,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과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읽었습니다. 10년 이상 소설을 쓰지 않고 있다가 ‘금각사’를 보고 문학의 열정이 되살아났습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대학 1학년 때 3일 밤낮 동안 두문불출하고 독파했는데 황홀경에 빠졌습니다. 르네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은 소설 분석을 통한 심리 현상과 사회·정치 현상을 통찰하게 해 주는 위대한 평론서였습니다. 수십 번을 독파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로마를 실제로 살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세계 최고의 기록문학입니다. 나치에 의해 처형당한 본회퍼의 ‘옥중서신’은 참으로 감동적이지요. 홍명희의 ‘임꺽정’은 우리말의 보고입니다. ‘김교신 전집’은 나의 신앙의 모델이 된 김교신을 알게 했습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기억의 향기에 흠뻑 젖게 합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카프카의 ‘변신’과 ‘성’은 엄청난 문학의 세계입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한때 나를 탐미주의에 빠지게 했습니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보다 뛰어난 성장소설의 백미입니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와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은 나를 과학에 눈뜨게 했습니다. 악의 평범성을 제기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그의 다른 책들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캐런 암스트롱의 ‘신을 위한 변론’은 신학 책 중에서 가장 깊은 감동을 줬습니다. 피터 버거의 ‘사회학에의 초대’는 사회·정치 현상 분석의 길잡이였습니다. 이태의 ‘남부군’은 빨치산 문학의 백미입니다. 베트남전을 다룬 바오닌의 ‘전쟁의 슬픔’은 최고의 전쟁 문학입니다.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은 토지경제 사상에 관한 결정판입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내 생애를 바꾼 한 권의 책 조성기에게 ‘내 생애를 바꾼 한 권의 책’은 어떤 책일까. 생애를 바꿨다기보다 생애를 견디게 해 준 책,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의학자 빅토어 프랑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나에게 인생을 비굴하게 살지 않도록, 인생을 품위 있게 살도록 도와줬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가스실, 그 극한상황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끝까지 지키는 사람들을 프랑클은 봤다. 모두가 개돼지처럼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자기에게 배급된 빵을 자기보다 더 배고픈 동료에게 나눠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프랑클은 수용소 체험을 통해 인간이 환경과 조건에 굴복당하는 존재가 아님을 깊이 확신하게 됐다. 프랑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부모와 부인, 두 자식을 잃었다. 프랑 클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의미에의 의지’를 발동해 ‘의미’를 찾으며 인생을 견뎌 냈다. “산다는 것은 고통을 당하는 것이고, 살아남는다는 것은 고통당하는 가운데서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조성기는 40대 중반에 유서를 써야 할 만큼 죽음의 문턱에 다가간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그 고통을 견뎌 내기가 힘들어 죽음이 나를 자연스럽게, 포근하게 감싸 줬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간신히 발을 옮겨 잠깐 집 밖으로 걸어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마침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내 앞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딸아이의 뒤를 조용히 따라갔습니다. 딸아이의 뒷모습이 내가 살아남아야 할 이유이자 의미였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1980년대의 험난한 정치·사회 상황이 조성기에게는 가파른 역사의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1961년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박정희 군부가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용공분자’로 체포됐다. 4월 혁명 후 아버지는 교원노조 부산지부장을 맡아 교육운동에 나섰다. 일본에서 중·고교를 다닌 아버지의 삶은 조성기의 작품에 투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학과 종교와 현실 1971년 대학 3학년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만화경’으로 당선됐다. 고향 경남 고성의 들과 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실존을 담았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자신의 삶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이었다. 심사를 맡은 황순원 선생이 격려했다. “자네는 먼 훗날 신과 인간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룰 소설가가 될 것이야.” 당초 그는 법대를 가려 하지 않았다. 법의 길이 아니라 문학이 그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법대는 아버지의 강력한 희망이었다. 법대로 진학했지만 ‘사법고시’ 같은 주제는 그에겐 당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가슴엔 문학과 종교가 공존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엔 기독교 선교가 그의 내면을 치열하게 지배했다. 한때는 문학도 그에게는 파괴해야 할 ‘우상’ 같은 것이었다. 1985년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 써낸 ‘라하트 하헤렙’으로 제9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그간 축적된 문학적 상상력이 폭포수처럼 작품으로 분출됐다. 86년에 전 4권의 장편소설 ‘야훼의 밤’을 발표했다. 이 작품으로 제4회 ‘기독교문화상’을 받았다. 87년엔 두 장편 ‘가시둥지’와 ‘슬픈 듯이 조금 빠르게’를 냈다. 88년엔 장편 ‘베데스다’와 창작집 ‘왕과 개’를 출간했다. 89년엔 장편 ‘바바의 나라’, 90년엔 창작집 ‘천년 동안의 고독’과 ‘아니마, 혹은 여자에 관한 기이한 고백’을 냈다. 91년 중편 ‘우리 시대의 소설가’로 ‘이상문학상’을 받았고 장편 ‘우리 시대의 사랑’을 냈다. 92년 창작집 ‘통도사 가는 길’과 종교적인 장편들을 모아 전 7권의 ‘에덴의 불칼’을, 93년 전 5권의 장편 ‘욕망의 오감도’를 펴냈다. 94년 창작집 ‘안티고네의 밤’을, 95년 창작집 ‘우리는 완전히 만나지 않았다’를, 96년 전 2권의 장편 ‘너에게 닿고 싶다’를 펴냈다. ●중국 고전을 읽고 쓰기 조성기는 중국 고전을 읽고 해석해 낼 수 있다. “‘자’(子) 자 돌림의 고전을 다 읽었습니다. 품격 있는 담론을 보여 주는 ‘맹자’를 참 좋아합니다. 제2인자의 철학 ‘안자’(晏子)가 좋습니다. ‘열자’도 좋아합니다.” 1990년 장편 ‘굴원의 노래’와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서: 맹자와의 대화’를, 91년엔 전 5권의 ‘전국시대’를, 97년엔 전 3권의 ‘홍루몽’을 펴냈다. 2001년엔 ‘삼국지’를 전 10권으로 정역(正譯)해 냈다. 2003년엔 ‘반(反)금병매’를 써냈다. ‘우리 시대 시리즈’는 조성기의 문학을 해석하는 주요한 작품들이다. ‘우리 시대의 소설가’를 비롯해 ‘우리 시대의 무당’, ‘우리 시대의 법정’, ‘우리 시대의 하숙생’, ‘우리 시대의 검열’, ‘우리 시대의 어린이’가 그것들이다. 조성기에게 기독교 세계는 그의 또 다른 글쓰기 장르다.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장로회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공부했다. 로마서를 해설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마가복음을 해설한 ‘권력을 넘어서’, 사도행전을 해설한 ‘성전을 넘어서’를 써냈다. ‘십일조를 넘어서’를 통해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현실을 비판했다. 2016년에 써낸 ‘헌법의 아홉 기둥’은 법대를 졸업한 작가의 작업이다. 우리 정치 현실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일 것이다. “법의 정신과 인권이 짓밟히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법대에서 공부한 한 작가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2018년 ‘자랑스러운 서울대 법대인상’을 받았다. “판검사 하는 동창들에게 주는 상이라 한사코 사양했습니다. 그런 상을 받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최인훈 선생이 법대를 졸업하지는 않았지만 명예졸업장을 받았고,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 선생도 받았다고 권유해 결국 받았습니다.” 2007년엔 ‘카를 융: 기억·꿈·사상’을 독일어 원서를 가지고 번역했다. 조성기가 좋아하는 한 권의 책이다. 그는 대학원에서 융의 심리학을 공부했다. ●인간 김재규를 새롭게 조명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젊은 작가들과 대화했다. 2020년 장편 ‘사도의 8일: 생각할수록 애련한’을 써냈다. 인간 역사에서 참으로 보기 드문, 아버지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의 처참한 갈등을 다뤘다. 지금 그는 또 다른 소설을 쓰고 있다. 작가 조성기의 진면을 발휘할 작품이 아닐까. “김재규의 죄와 벌을 쓰고 있습니다. 김재규는 자신을 향해 쏘았지요. 그의 참회록 같은 소설입니다. 생의 마지막에 그는 불교에 귀의했지요. 득도했다고 생각됩니다. 스스로 죽게 해 달라고 했지만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파란만장한 생은 곧 우리 현대사이지요. 한 작가로서 인간 김재규를 새롭게 조명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조성기는 아버지의 삶이 더 간절하게 가슴에 다가온다. 아버지의 삶을, 아버지가 산 시대를 소설로 쓰고 싶어 한다. 아버지와 갈등도 있었지만 이제 그 갈등을 승화된 작품으로 만들고 싶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때그때 일기를 남겼습니다. 제사 지낼 땐 아버지의 일기를 읽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김재규에 의해 사살당한 석 달 후에 아버지도 고단했던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의 삶을, 아버지의 그 험난한 시대를 쓰고 싶습니다. 이 시대 모든 아버지들의 이야기입니다.” 한길사·한길책박물관 대표
  • 텍스트 너머 콘텍스트… 헤밍웨이와 포크너의 다름을 읽다[김언호의 서재탐험]

    텍스트 너머 콘텍스트… 헤밍웨이와 포크너의 다름을 읽다[김언호의 서재탐험]

    “마침내 끝났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만 해도, 끝이 보이기는커녕 끝이 있기나 한 것일까, 그곳에 정말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기도 했던, 그 멀고 오랜 길이 이제는 다 끝나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1994년에 시작한 시오노 나나미의 대하역사평설 ‘로마인 이야기’ 전15권의 번역 작업을 2007년에 끝낸 김석희는 제15권의 끝에 붙인 ‘옮긴이의 말’에서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로마인 이야기’와 함께 한세월을 보낸 번역가 김석희. 저자와 함께 고대 로마세계의 시공을 넘나들던 그 역사기행의 감회를 이렇게라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1970년대와 80년대의 치열한 인문·사회과학의 책만들기·책읽기를 넘어 90년대라는 ‘세계화 시대’를 맞으면서 나는 책만들기의 새로운 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하나가 “동서고금의 사상과 이론을 집대성하는” ‘한길그레이트북스’의 기획이었고, 열린 문제의식으로 세계화 시대에 대응하는 책만들기·책읽기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였다. ●‘죄와 벌’, ‘이방인’의 충격적 감동 김석희가 지금까지 번역한 책은 300여종 350권이나 된다. 김석희는 영어·불어·일어 번역이 다 가능하기 때문에, 그의 번역 장르는 넓고 깊다. 인문·예술이 60퍼센트, 40퍼센트가 소설이다. 어떤 책이 그를 번역의 세계, 번역가의 길로 이끌었을까. “영국 작가 존 파울스의 소설 ‘프랑스 중위의 여자’가 나를 번역의 세계로 이끈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세 번이나 번역했습니다. 1982년에 처음으로 번역했는데, 당시 영화로 만들어졌지요. 그러나 기회가 오면 다시 번역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판권을 정식으로 계약한 출판사의 요청으로 다시 번역해 출간했지요. 1997년이었습니다. 그 출판사가 사업을 접게 되자 친분 있는 ‘열린책들’과 이야기가 되어 개역 수준의 작업을 더해서 2004년에 출간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책 읽으며 글 쓰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때 내 고향 제주도는 바닷길과 하늘길로 사방이 열린 관광지가 아니고, 바다로 갇힌 척박한 섬이었습니다. 바닷가에 서면 그 답답한 섬을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에 숨이 막히곤 했습니다. 그런 나를 다잡기 위해서 나는 책에 빠져들었습니다. 시도 쓰고 산문도 썼습니다. 몇몇 선후배들과 문예서클을 만들어 동인지를 펴냈습니다. 한 대학이 주최하는 백일장에 참가하여 장원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학교를 오가는 도중에 도립도서관이 있었다. 고모부가 도서관장이었다. 서고를 우리 집 안방처럼 드나들면서 마음대로 책을 꺼내 읽었다. “그 무렵 내가 읽고 충격적인 감동을 받은 책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카뮈의 ‘이방인’이었습니다. 나의 독서편력에서 너무나 판이한 두 주인공 살인자에 대한 이해가 처음엔 요령부득이었으나 그 상이한 자의성이야말로 작가의 세계관이라는 걸 이해하게 되면서 소설가에 대한 존경과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도로스 작가’가 되고 싶었다. 섬을 떠나고 싶은 열망 속에는, 망망대해를 누비며 세상을 체험하고 싶다는 소망도 깃들어 있었다. 해양대에 진학할 마음도 먹었지만 6·25 때 납북된 숙부 때문에, 이른바 연좌제에 저촉되어 입학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해양대의 꿈을 접어야 했다. ●기계에 의한 번역은 정보일 뿐 “1972년에 불문학과에 입학했는데, 우리 동기들은 그해의 ‘10월 유신’에 빗대어 ‘유신학번’이라고 자조했습니다. 그 자조의 이면에는 분노와 절망이 깔려 있었습니다.” 학교는 걸핏하면 휴교령으로 문을 닫았고 제대로 강의받거나 공부해 본 기억이 그에겐 별로 없다. 일기를 썼다. 그것이 시가 되기도 하고 소설이 되었다. 대학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왔다. 국문학과에 학사편입하고, 다시 대학원에 진학했으나 중퇴했다. 1988년 소설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보르헤스는 책이야말로 인간이 사용하는 여러 도구들 가운데 가장 놀라운 발명품이라고 했지요. 책은 기억과 상상을 통해 과거와 미래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와 같은 것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미래를 내다보며 꿈꾸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요. 책을 숭배하는 종교가 있다면, 나는 아마 그 사원 맨 앞자리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번역가 김석희에게 번역이란 무엇일까. 나는 1997년 그가 저간에 번역한 책들의 끝에 붙인 ‘역자의 말’을 모아 ‘북마니아를 위한 에필로그 60’을 펴냈다. “번역은 한 나라의 언어를 그 울타리 밖으로 옮겨 나르는 일입니다. 하나의 텍스트가 국경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은 번역가의 행랑을 거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텍스트는 비로소 콘텍스트를 얻게 됩니다. 번역은 해석입니다. 해석은 하나의 텍스트를 해체하고 재구성해 또 하나의 콘텍스트를 얻어내는 과정입니다. 번역이 단순한 낱말풀이나 의미 전달이라면, 번역은 사람의 몫이 아니라 기계의 몫이 되어도 좋을 것입니다. 기계에 의한 번역은 정보에 지나지 않습니다. 본질적인 것은 언어 이전에 있습니다. 번역은 그것을 찾아내는 작업입니다. 독일의 뛰어난 번역가이자 문예학자인 발터 베냐민은 그것을 ‘원문의 메아리’라고 부르고, 그 메아리가 울려 퍼질 수 있는 ‘의도’를 찾아내는 것이 번역가의 과제라고 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해야! 번역자는 원작 뒤에 그림자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번역가 김석희는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모든 번역서의 끝에 ‘역자의 말’을 놓고 있다. 나는 2008년에 다시 그의 역자의 말을 모은 ‘번역가의 서재’를 펴냈다. “번역을 할 때, 내가 기본적으로 취하는 태도는 겸손입니다. 저자와 원서에 대한 예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저자의 문체를 존중하는 태도에 닿아 있습니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에 대해, 그 단어와 그 문장을 작가는 왜 이곳에 이렇게 썼을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문구의 문체와 이청준의 문체가 다른 것처럼, 헤밍웨이의 문체와 포크너의 문체가 다릅니다. 그 다름을 읽어내야겠지요. 그 다름을 옮기는 것이 번역자의 몫이 아닐까 합니다.” 김석희는 새 책의 번역을 시작할 때마다 목욕을 한다. 목욕탕에 가서 때를 벗긴다. 먼젓번 작업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다. “번역을 많이 하던 시절엔 옆에 놓고 사용하던 영한·불한·일한 사전의 귀퉁이가 하도 달아서 거의 해마다 갈아치웠습니다. 번역 전문가가 무엇 때문에 사전을 그리 자주 보냐고 할지 모르나, 평범한 단어라도 그것이 문맥 속에서 담당한 몫을 찾다 보면, 오히려 사전 안에 갇혀 있지 않은 다른 뜻을 궁리하게 됩니다.” 1990년대 초반 100여권까지 번역해 내면서 그는 문체가 무엇인지 체득하게 된다. 자신의 문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우리말로 번역해야 한다고 늘 다짐하고 있습니다. 원전을 존중하되 ‘자유롭게’ 그러니까 텍스트에 갇히지 않는 번역을 하려 합니다. 번역을 끝내고는 약간 소리 내어 읽습니다. 문장의 리듬을 생각합니다.” 그의 번역 작업에는 참고저서들이 대거 동원된다. ‘로마인 이야기’ 작업을 위해 10권 이상의 문헌을 읽고 연구했다. 불멸의 해양문학 ‘모비 딕’(작가정신)은 김석희가 혼신을 다해 번역해 낸 성과다. ‘옮긴이의 덧붙임’에서 그는 기록했다. “중도에 포기할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곳곳에 온갖 비유와 상징이 널려 있고, 축약과 도치와 비문(非文)의 문장들이 난무했다. 그 덤불 같은 상징과 알레고리의 숲을 지나면서 단어와 구절들의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을 끊임없이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덤불이 무성한 숲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마침내 밖으로 나올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 ●홋타 요시에의 ‘고야’와 ‘몽테뉴’ 나는 책을 만들면서 20세기의 빛나는 두 지성을 직접 만났다. 자본주의 3부작인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를 써낸 큰 역사가 에릭 홉스봄 선생과, ‘고야’(전4권)와 ‘위대한 교양인 몽테뉴’(전3권)를 써낸 홋타 요시에 선생이다. 홉스봄 선생은 1987년 우리 출판사를 직접 방문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격려하는 말씀을 해 주셨다. 1997년에 나는 홋타 선생 댁을 방문해 말씀을 들었다. 김석희는 홋타 선생의 이 두 거작을 번역했다. 98년 3월 나는 출간된 ‘고야’를 들고 홋타 선생을 다시 뵈러 가서 말씀을 들었다. 홋타 선생의 명저 ‘고야’와 ‘몽테뉴’는 김석희의 번역으로 명품이 되었다. 김석희는 ‘고야’에 헌사를 썼다. “이 책을 번역하는 동안 그 무게와 매력에 압도당한 나머지, 나는 아직도 울창한 숲을 다 벗어나지 못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고야의 파란만장한 삶과 창조적 열정도 그렇거니와, 그 고야의 인생과 예술을 활달한 필력으로 서술해 낸 작가의 문학적 성취에 대해서도 나는 그저 숨이 막힐 뿐입니다. 위대한 삶과 위대한 글이 행복하게 만난 예를 이 책은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나는 책을 낼 때, 저자의 말이나 역자의 말을 중시한다. 인간적이고 핵심적인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을 것이다. 저자의 말 또는 역자의 말을 통해 우리는 그 저자의 내면으로 다가간다. 역자 김석희가 ‘몽테뉴’에 붙인 ‘르네상스적 교양인의 내면 풍경: 독자들에게’가 그렇다. “400년 저쪽의 몽테뉴를 불러내어 마치 친구를 대하듯 담소하며 평전을 써내려간 홋타 요시에는, 어쩌면 윤회의 업을 거듭한 끝에 다시 태어난 몽테뉴 자신인지도 모릅니다. 둘이 하나라는 느낌은 나 혼자만의 인상이 아닐 것입니다. 홋타의 ‘몽테뉴’에는 한 인간에 대한 한 인간의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전20권으로 번역해 낸 쥘 베른 선집은 김석희의 또 하나의 성과다. 2002년에 시작해 2015년에 끝냈다. ‘해저 2만리’, ‘15소년 표류기’, ‘80일간의 세계일주’, ‘신비의 섬’ 등 쥘 베른의 대표작 13개 작품을 담았다. “이 세상에 SF를 선물한 최초의 작가지요. 모험소설 작가들도 그에게 빚지고 있습니다. 놀라운 상상력과 천재적인 통찰력을 가진 위대한 작가입니다.”●귀향,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 작업실 김석희는 2009년 제주도로 귀향했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간다고 생각했지만, 2006년 아버지가 작고하자 홀로 되신 어머니가 큰아들 석희가 내려왔으면 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집을 지었다. 1층이 서재고 2층이 집필실이다. 그 어머니도 2021년에 아버지 곁으로 떠나셨다. 그는 2000년부터 한 해 한 번씩 단식을 한다. 이를 계기로 일일 일식을 한다. 하루 세 갑씩 피우던 담배도 끊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친구들과 술을 마신다. 그래서일까. 그의 얼굴은 맑고 건강해 보인다. 번역가 김석희는 지금 ‘아이들을 위한 그리스신화’를 번역 아닌 자기 글로 쓰고 있다. 김석희의 그리스신화는 아마도 따뜻하고 포근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사랑하는 책이 될 것이다. 한길사·한길책박물관 대표
  • [신간] 시베리아의 이방인들

    [신간] 시베리아의 이방인들

    생존을 위해 시베리아에 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의 준호는 가업을 살릴 시베리아산 소나무를 얻기 위해, 북한의 지석은 공화국의 외화벌이를 위해, 러시아의 빅토르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시베리아로 온다. 준호는 과거 주재원 당시 운전기사였던 빅토르에게 호의를 베풀었고 두 사람은 친해진다.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일 년 만에 연락이 닿은 준호가 시베리아산 소나무를 찾자, 빅토르는 그를 자신이 일하는 벌목장 소장 지석에게 소개해주고 거래가 시작된다. 국적은 다르지만 이처럼 얽히고설킨 관계가 된 이들 젊은이는 각자 실패를 맛보지만 새로운 우정을 꽃피운다. 인종과 국적, 이념보다 더 소중한 건 휴머니즘이라고 소설은 말한다. 문학평론가 방민호씨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묻고 생각하도록 하는 근래 보기 힘든 문제작이며 스케일 작은 ‘문단적 소설들’에 지쳐 있는 독자로 하여금 눈 크게 뜨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시원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2009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장마리의 장편소설이다. 소설집 ‘선셋 블루스’, 장편 ‘블라인드’ 등을 펴낸 그는 불꽃문학상과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문학사상. 312쪽.
  • [유정훈의 간 맞추기] 고양이와 편견/변호사

    [유정훈의 간 맞추기] 고양이와 편견/변호사

    얼마 전 주말에 업무로 서울을 떠난 지인의 집에 머물며 고양이를 봐 주게 됐다. 고양이 밥을 주는 것은 명분이고, 한옥에 대한 로망이 있는 우리 부부에게 한옥 스테이를 시켜 주려는 호의였을 것이다. 시류에 맞지 않게 “고양이 안 좋아한다”라는 말을 하고 다니던 사람이 덜컥 고양이와 주말을 보내게 됐다. 고양이의 행동 양식은 낯설었다. 자기 공간에 이방인이 들어왔으니, 불편을 느끼는 쪽은 사실 고양이였을 것이다. 집과 정원을 오가는 구멍이 있는데 굳이 현관 앞에 와서 내가 문을 열도록 한 다음 밥그릇으로 향하고, 사료를 먹고 나면 유유히 구멍을 통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얘가 지금 나를 집사로 훈련시키나’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었다. 고양이를 보며 내가 그동안 정확하지 않은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릴 때 개는 키웠지만 고양이를 기른 적은 없다. 고양이 집사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사진은 많이 봤지만 고양이를 실제 가까이 접한 적은 없어 익숙하지 않다”라고 해야 할 것을 “고양이 싫어해요”라며 뭉갠 것이다. 불과 이틀 정도 고양이와 같은 공간에서 지냈을 뿐이지만 앞으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적, 어딘가에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접한 경험은 없는 대상과 싸움을 하는 경우가 꽤 있다. 1970~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면 북한 사람은 머리에 뿔이 난 것처럼 여겼던 기억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을 때가 있을 것이다. 동성동본 금혼, 호주제가 폐지된 지 10년이 넘게 지났으니 한국 사회는 전통적 윤리·도덕의 쇠퇴와 가정의 해체로 벌써 망했어야 하는데, 다들 본인의 선택에 따라 결혼할 사람은 결혼하고 비혼할 사람은 비혼하고 애 낳을 사람은 애 낳으며 잘살고 있다. 미국에서 트럼프를 적극 지지하는 주 가운데는 멕시코 국경과 한참 떨어져 있거나 원체 백인 비중이 높아 소수인종이나 이민자를 별로 겪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있다. 한 번도 만나 보지 않은 동성애자, 트랜스젠더와 싸우느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어기는 개신교회는 수도 없이 많다. 낯선 존재, 익숙하지 않은 현상 앞에서 일단 움츠러들고 경계하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 본능에만 의존해 살아가는 존재인가. 설혹 그런 본능이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에 대해 알아보는 것조차 거부하는 편견과 혐오를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편견을 없애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직접 만나 보고 겪어 보는 것은 꽤 괜찮은 방법이다. 고양이와 주말을 한 번 보냈다고 해서 바로 고양이 입양을 알아보러 다니거나 한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고양이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에서는 자유로워졌다. 그것만으로도 내 삶은 가능성이 넓어지고 좋아진 것이다. 고양이를 집에 모시는 것 같은 개인적 선택이든 차별과 혐오로 문제 될 수 있는 사회적 이슈이든, 접해 보지도 않은 대상 때문에 스스로를 벽에 가둘 이유는 없지 않은가.
  • [이종실의 베트남 표류기] 하노이~호치민 1730km 자전거 종주한 한국 대학생

    [이종실의 베트남 표류기] 하노이~호치민 1730km 자전거 종주한 한국 대학생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렵고 험난한 길을 택하는 사람들을 간혹 만난다. 분명 나름의 까닭이 있고, 그 안에는 남들이 쉽게 얻을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이 녹아있게 마련이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호치민까지 장장 1730㎞의 길을 자전거로 종주한 한국인 대학생 배동일 씨(25)가 그런 사람이다. 호치민의 한 로컬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한국에서 베트남어 학과를 전공하는 그는 2년 여전 호치민 인문사회과학대(인사대)의 교환학생으로 왔다. 그리고 지난해 5월 중순 자전거로 베트남 종주를 결심했다. 그전에도 베트남의 유명 관광지들을 여행하긴 했지만, 베트남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는 “자동차나 오토바이의 빠른 속도로는 베트남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어려운 것 같아서 자전거를 택했다”면서 “자전거로 천천히, 자세히 이곳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호치민에 거주하는 그는 우선 비행기로 하노이로 이동, 자전거를 구입했다. 지난 5월 18일 하노이에서 출발, 푸리, 닌빈(북부), 다낭, 꾸이년, 나짱(중부), 달랏(중부 고원지대), 판티엣, 붕따우를 거쳐 호치민에 6월 12일 도착했다. 항공료(하노이행 편도), 자전거 비용, 숙박비, 식사비 등을 포함한 총비용은 한화 100만 원에 불과했다. 그는 “숙박은 저렴한 로컬 숙소를 이용했고, 늦은 시간 숙소에 도착하면 음식점이 문을 닫아 초코파이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면서 “여행을 마치고 나니 5㎏이 빠졌다”며 웃었다.출발 당시에는 친구 한 명이 동행했지만, 생각보다 고된 여정에 친구는 다낭에서 비행기를 타고 호치민으로 돌아갔다. 홀로 남겨졌지만, 무슨 일이든지 끝장을 보고야 마는 그의 근성이 이번에도 발휘됐다. 하지만 베트남의 도로 사정은 녹록지 않았고, 오가는 차량과 오토바이 사이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평소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지만, 5월의 작렬하는 태양과 딱딱한 자전거 의자에 엉덩이가 욱신거리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산비탈을 오를 때는 자전거를 끌고 고지에 올라야 했다. 하지만 고통의 순간을 견뎌내면 기쁨의 순간이 다가왔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은 육신의 피로를 위로했고, 더러 마주치는 베트남 사람들의 따뜻한 인심은 마음을 위로했다. 특히 꾸이년을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소로 꼽는다. 배 씨는 “꾸이년은 개발이 덜 된 탓에 관광객들로 북적거리지도 않고, 천연의 바다 빛이 너무 아름답다”고 소개했다. 닌빈에서는 3년 전 여행 중 알게 된 베트남 지인이 집으로 초대해 따뜻한 밥상을 차려 주고, 숙소도 제공해주었다. 자연과 사람으로부터 받는 위로가 여행의 묘미 아닐까? 종착지인 호치민을 앞두고 붕따우에서는 뜻밖의 사고를 당했다. 붕따우 바닷가의 갯바위에 올라섰다가 미끄러지면서 날카로운 물건에 손이 깊숙이 찔렸다. 근처에 있던 베트남 사람이 지혈을 도왔지만, 피가 멈추지 않았다. 병원에 가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어디에서도 택시는 보이지 않았다. 발을 동동거리며 서 있는 그의 모습을 지켜본 베트남 사람이 본인의 차로 병원에 실어다 주었다. 다행히 신속한 병원 치료로 흉터가 남지 않았다. 이렇게 어려움에 처한 낯선 이방인에게 선뜻 내민 그들의 호의는 잊지 못할 선물로 남았다. 현재 그는 2년간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고, 인사대 한국어학과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한국행을 접고, 호치민에 남아 베트남어 실력을 쌓으면서 취업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 여파로 취업 문은 좁아졌지만, ‘인생은 지름길이 없다’는 것을 체득했다. 홀로 이국땅에서 앞날을 개척하는 것이 쉬운 길은 아니리라. 그러나 험한 길을 거쳐 본 자의 단단함과 자신감이 그의 모습에서 배어났다. 이종실 호치민(베트남)통신원 litta74.lee@gmail.com
  • 2020 BIFAN 즐기기 “추천은 내가 할게, 어떤 영화 볼래?”

    2020 BIFAN 즐기기 “추천은 내가 할게, 어떤 영화 볼래?”

    제24회 경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집행위원장 신철)가 제3차 올해의 추천작을 3일 공개했다. BIFAN에서 상영하는 42개국 194편(장편 88편, 단편 85편, VR 시네마 21편) 가운데 김종민 프로그래머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욘드 리얼리티’ 추천작 5편이다. ●레인 프루츠(Rain Fruits) 미얀마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온 투라의 개인적인 글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다. 스스로가 외국인 노동자인 투라는 관찰자적 입장에서 한국에서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불평등과 불합리한 차별에 대해 묘사,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명암에 대해 다소 시적인 의견을 전한다. 감정의 이입에 강점을 가진 VR과 볼류매트릭 포인트 클라우드 형태의 이미지가 가진 시적인 특징을 결합, 관객에게 직접 투라의 분노와 슬픔과 소외감, 그리고 외국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며 느끼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비단 한국에 있는 투라 뿐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그 어디에서건 누구나 이방인일 수 있다. 미얀마 출신 외국인 노동자의 자전적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타지에서 겪는 외로움과 차별·분노와 같은 감정들을 함께하다 보면 한국 자본주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부조리한 장면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볼류 매트릭 캡처한 이미지를 변형하여 표현한 것도 상당히 예술적이고 실험적이다. 이러한 새로운 룩이 정교한 스토리텔링과도 잘 어우러지면서 이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깨닫게 하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트라이베카·칸국제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에서도 호평받고 있는 작품이다. ●퍼스트 스텝(1st Step) 달 착륙이라는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아폴로 미션에 대한 VR 다큐멘터리이자 한 편의 ‘동화’같은 이야기다. 이륙 직전의 로켓을 엘리베이터로 올라 사령선의 비좁은 내부를 살펴보는 등 달 탐사 미션을 완수한 아폴로 11호의 이륙 및 귀환 과정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다. 지난 주 온라인에서 개최된 칸 XR 영화제에서 360 부문 Future Award를 수상한 작품이다. XR이 다른 시공간을 경험하는 데에 특화된 미디어라 우주를 다루는 가상현실 작품들은 초창기부터 많이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우주의 이미지를 둘러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달을 여행하는 우주인의 시선에서 흥분과 불안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상당히 높은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다.●룩앳미(Look at Me) 모두가 VR 기술에 의존하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로맨틱 멜로드라마다. 주인공 장과 주변 사람들은 VR 중독에 시달리고 있다. 장은 데이트하는 동안 여자 친구가 더 이상 눈을 맞추지 않고, 이로 인해 사랑을 나눈 지도 오래라 매우 우울하고 좌절한다. 그러던 중 현실에서의 상호작용을 갈구하는 세상을 발견하는데…. 매년 시네마틱 VR 작품의 중요한 레퍼런스를 만들어내는 대만 가오슝 영화제 오리지널 작품이다. VR을 비롯한 뉴미디어들이 이미 정착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사람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바뀔지를 진지하게 고찰하는 작품이다. 늘 여러 가지 가상 관계들에 몰입하고 있는 연인과 조금 더 가까워지기를 원하는 주인공은 결국 사설 파이트 클럽을 찾아가게 되고, 맞고 부딪히면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매체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대중적 이야기 구조에 잘 녹인 작품으로, 주제의식과 표현 방법이 적절한 균형을 맞추고 있는 수작이다. ●괴수 대소동(Kaiju Confidential) 큰 괴물들 간 작은 무시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매개로 펼쳐지는 몰입형 VR 코미디다. 이 구역에서 가장 크진 않지만 가장 예민한 괴수다. 어느 날 그리곤은 자신의 구역에서 전설적인 메가 히드라가 날뛰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수동적이면서도 공격적인 사이에서 묘한 균형을 유지하며 싸움을 벌인다. 2019년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된 작품. 감독은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도 위트 있고, 즐거운 영화적 경험을 충분히 제공한다. 장르적 컨벤션을 새로운 미디어에 녹여내는 것에 발군의 기량을 보여주는 에단 감독은 이 작품 외에도 Space Buddy를 선보이고 있다. 영화적 상상력이 VR 안에서도 충분히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업스탠더(Upstander) 괴롭힘에 대해서, 그리고 그 상황에 개입했을 때 어떤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VR이라는 수단이 가지는 특성을 활용해 제작해다. 관객이 작품에 몰입해 학교 내 괴롭힘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어린이를 형상화 한 책가방을 캐릭터로 활용했다. 학교 내 괴롭힘, 지켜만 볼 것인가 아니면 변화의 한 걸음을 내디딜 것인가. 올해 트라이베카영화제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따돌림에 대한 사회적 이슈를 귀여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냈다. 학생들을 ‘가방’으로 표현한 것도 참신하지만, 대사 없이 작은 동작만으로도 캐릭터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것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다. 제24회 BIFAN의 XR 부문 ‘비욘드 리얼리티’는 관객과의 접점을 늘리고 상시적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체제로 정비했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영화제의 XR 부문 비욘드 리얼리티에서는 가상 단계를 넘어 확장 영역을 구현해내는 국내외 유수의 XR(eXtended Reality) 콘텐츠를 한데 모아 선보인다. 국내 XR 플랫폼인 ‘SK텔레콤 Jump VR’과 협업을 통해 스트리밍 서비스로 초청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다음 주 개막을 앞둔 제24회 BIFAN은 ‘관객과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코로나 19 감염 방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주요 행사를 축소·연기·폐지하고 CGV소풍과 토종 온라인 플랫폼 왓챠, 모바일 플랫폼 스마트시네마코리아 등을 통해 오프·온라인 상영을 병행한다. VR체험과 해외 게스트 마스터 클래스 등 산업프로그램과 이벤트는 비대면으로 진행한다. 오는 9일부터 16일까지 8일간 개최한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너와 나의 시간이 멈춘 듯, 신록에 물들다

    너와 나의 시간이 멈춘 듯, 신록에 물들다

    최근 ‘춘불회(春佛會) 추내장(秋內藏)’이란 말을 들었다. 봄날의 경치로는 전남 나주 불회사의 신록이 으뜸이고, 가을 풍경은 전북 정읍의 내장사 단풍이 최고라는 거다. 내장산 단풍이야 귀에 익다. 한데 과문한 탓에 불회사는 도무지 생경하다. 신록이 전하는 풍경이 어떻길래 내장산 단풍과 견줄 만하다는 걸까. ‘4대강 사업’으로 빼어난 봄 풍경의 동섬이 사라지고 코로나19 탓에 문 닫은 곳도 적지 않지만 그래도 나주의 봄은 화사했다. 드들강의 소박한 풍경이 여전하고, 영산강이 휘돌며 만든 ‘느러지’며, 하루가 다르게 신록의 이파리들을 내놓는 들녘의 나무들도 정겨웠다. 산자락을 타고 신록이 쏟아져 내리는 불회사야 더 말할 게 없다. 이웃한 화순에도 세량제 등 봄의 명소들이 많다. 함께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최근 정부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했다. 코로나19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고는 하나 안심할 단계는 아닌 만큼 아직은 ‘지면 속 풍경’으로만 즐기시길.산자락의 신록들이 절집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불회사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이 그랬다. 불회사를 감싸 안은 덕룡산은 활엽수 관목이 많다. 나무들은 가지 끝에 채도가 제각각인 연둣빛 이파리를 매달고 있다. 이 덕에 무리지은 활엽수 관목들을 멀리서 보면 꼭 ‘무도장’의 미러볼이 여럿 뭉쳐 있는 듯하다. 혹은 연둣빛 구름이 몽실몽실 피어나는 듯한, 딱 그런 느낌이다. 여기에 진초록으로 추임새를 넣는 나무들이 있다. 늙은 비자나무와 동백 숲, 그리고 우뚝 솟은 삼나무들이다. 늙었으되 여전히 성성한 나무와 여리되 싱싱한 나무들이 어우러지며 봄날의 풍경을 완성하고 있다. 물론 이를 내장산 단풍에 견주는 것엔 의견이 다를 수 있겠다. 미적 감각은 저마다 다르니 말이다. 한데 매우 독특하고 매력적인 풍경이란 것엔 다들 동의하지 싶다. 주차장에서 절집으로 드는 길. 어딘가 느낌이 다르다. 소나무가 아닌 삼나무가 도열해 있다. 여느 절집 진입로와 달리 상점도 없다. 불국으로 가는 돌길 위의 연꽃 문양만 조용히 이방인을 맞고 있다. 이런 길은 걸어 줘야 제맛이다. 연꽃을 즈려밟을 때마다 머리가 말개지는 듯하다.진입로에 세워진 벅수(돌장승·중요민속자료 11호)도 인상적이다. 여러 설이 있지만 절집으로 부정한 기운이 드는 것을 막는 수문장 구실을 한다는 것이 정설로 보인다. 벅수는 남녀 한 쌍이다. 남장승은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을, 여장승은 주장군(周將軍)을 각각 가슴에 새겼다. 당(唐)나라건, 주(周)나라건 모두 중국이다. 그럼 절집에도 사대주의가 있었다는 얘기? 그렇지는 않다. 불회사 벅수가 만들어진 건 300여년 전인 1719년이다. 이웃한 운흥사 돌장승(중요민속자료 12호)에 새겨진 조각 연대로 추정한 것이다. 이 시기에 가장 무서운 역질은 천연두였다. 당시 우리 선조들은 천연두를 중국에서 들어온 잡귀로 여겼다. 중국 잡귀가 우리 말을 알아듣지는 못할 터. 무시무시한 주 장군, 당 장군을 동원한 것은 이런 이유다. 어딘가 300여년 뒤 발생할 코로나19의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운흥사 입구에도 한 쌍의 돌장승이 서 있다. 돌장승 뒤엔 ‘강희 58년’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조각 연대가 명문으로 새겨진 건 드문 경우다. 불회사와 덕룡산을 나눠 쓰는 운흥사는 ‘한국의 다성(茶聖)’ 초의선사가 출가한 절집이다. 초의선사가 차에 심취했던 것도, 이 일대 지명이 다도면(茶道面)인 것도 덕룡산 일대의 야생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운흥사 역시 독특하다. 무엇보다 여느 절집과 달리 가람 배치가 ‘제멋대로’다. 담장은 아예 없고 경내엔 잡초들이 무성하다. 대웅전 밑의 웅덩이-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에선 도롱뇽 알이 부화를 앞두고 있다. 좋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고, 나쁘게 보면 전혀 관리가 안 된 것이다. 그간 여러 절집을 다녔어도 운흥사처럼 자유분방한 곳은 여태 보지 못했다. 불회사 일대의 신록이 다채로운 색감의 파스텔화라면 드들강의 신록은 수묵화에 가까워 보인다. 그림의 소재는 단색의 나무와 강물이 고작이지만, 그 단순함 때문에 아랫입술로만 부는 하모니카처럼 어딘가 애잔하면서도 말간 느낌을 준다. 드들강의 공식 명칭은 지석강이다. ‘4대강 삽질’에 사라진 동섬의 몫까지 더해 나주 사람들의 쉼터 노릇을 하는 곳이다. 현지인들은 드들강이라 즐겨 부른다. 경기 여주를 지나는 한강을 여강, 충남 부여 앞을 흐르는 금강을 백마강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드들강 건너 전남산림자원연구소의 메타세쿼이아 숲길, 그 한 발짝 옆에 있는 전통마을 도래마을, 풍류 넘치는 벽류정, 바위 하나에 일곱 석불을 새긴 철천리 칠불석상 등도 사정상 길게 설명하지 못할 뿐, 봄 풍경이 빼어난 곳들이다. 나주 시내에선 완사천을 찾아야 한다. 목마른 남정네에게 버들잎 동동 띄운 물을 건넨 지혜로운 처자의 전설이 담긴 곳이다. 버들잎 고사는 지역별로 몇몇 버전이 전해지는데, ‘나주 버전’의 주인공은 고려 태조 왕건과 나주 호족 오다린의 딸이다. 둘은 현 나주시청 앞 완사천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갖고, 바로 그날 함께 밤을 보낸 뒤 고려 2대왕 혜종을 얻었다고 한다. 당시 금성(나주)은 후백제의 도시였지만 왕건의 편에 선 덕에 이후 1000여년간 전라도의 핵심 도시로 번성할 수 있었다. 전라도의 ‘라’ 자가 나주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것만 봐도 ‘라떼’ 시절 나주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영산강 끝자락, 무안과 인접한 곳에 느러지 전망대가 있다. ‘느러지’는 물살이 느려진다는 뜻이다. 강물이 이 일대에서 ‘U’ 자 모양으로 휘어지며 물돌이동을 만들었는데, 그게 ‘느러지’다.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이 조롱박 모양이라면 영산강변의 느러지는 한반도를 닮았다. 느러지를 지난 영산강은 무안에서 ‘꿈여울’ 몽탄(夢灘)으로 이름을 바꾼 뒤 바다로 흘러간다. 글 사진 나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나주의 먹거리로 첫손 꼽히는 것은 영산포 홍어회다. 특히 초봄에 보리 싹과 홍어 내장을 넣고 끓인 ‘보리애국’의 칼칼한 맛은 놓칠 수 없는 제철 별미다. ‘홍어의 거리’ 어느 집에서나 맛볼 수 있다. 나주목사 내아 앞에는 곰탕집들이 즐비하다. 나주곰탕은 국물이 말갛다. 소뼈로 육수를 내는 일반적인 곰탕과 달리 양지나 사태 등 살코기로 육수를 내기 때문이다. 나주곰탕 거리에 ‘하얀집’, ‘남평’, ‘노안’ 등 맛집이 몰려 있다. ‘왕곡가든’은 생고기비빔밥이 맛있는 집이다. 코로나19 와중에도 식사 때면 번호표를 들고 대기해야 할 만큼 사람들이 몰린다. 화순에선 지리산 아래 ‘우리들목장’, ‘너와나목장’ 등이 흑염소 요리로 알려졌다. -숙소를 겸하는 나주 목사내아, 신록의 메타세쿼이아 숲이 아름다운 전남산림자원연구소, 동복호의 화순적벽 등은 코로나19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가기 전에 미리 해제 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겠다. -화순 별산풍력발전단지는 내비게이션에 나오지 않는다. 주소창에 ‘화순군 동면 청궁리 438’을 쳐야 한다. 도로 옆으로 ‘화순풍력발전소’ 이정표가 있다. 표지판에서 3㎞ 정도 올라야 한다. 도로는 대부분 비포장이다. 험하지는 않지만 승용차는 조심해서 운행해야 한다.
  • 순박한 불심의 땅…마지막 황금 도시

    순박한 불심의 땅…마지막 황금 도시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 대부분을 여행한 이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여행지가 미얀마다. 하지만 미얀마는 우리에게 다소 가기 어렵다는 인상을 준다. 실제로 옛날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육로를 통해서는 입국이 힘들었고 오직 항공만 이용해야 했다. 미얀마 여행에 대해서도 세계 여행자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다. 여행자들이 현지에서 사용하는 돈이 고스란히 미얀마 군부정권의 독재 자금줄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불편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들은 미얀마로 기꺼이 떠났다. 아마도 마음 깊이 부처님을 믿는 순박한 사람들, 곳곳에 자리한 불탑과 사원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이미지가 여행자들의 가슴에 강렬한 매혹을 불러일으켰으리라. “밍글라바.” 미얀마 양곤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가이드 틴윈투(31)가 처음 한 말이었다.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을 지닌 이 말은 아마도 미얀마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일 것이다. 길을 걷다가도 음식을 먹다가도 미얀마 사람들은 눈만 마주치면 ‘밍글라바’ 하고 고개를 가볍게 숙인다. 물론 새하얀 이를 보이며 미소를 짓는 것도 잊지 않는다. 미얀마를 여행하다 보면 어떻게 이런 나라에 군부독재정권이 들어설 수 있지? 어떻게 로힝야족 사태 같은 비극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지? 하며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양곤에서 곧장 바간으로 향했다. 미얀마의 가장 일반적인 여행 루트는 양곤~바간~만달레이~인레로 이어지는 코스다. 양곤은 가장 최근까지 미얀마의 수도였고 바간은 우리의 경주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만달레이는 미얀마 제2의 도시다. 인레는 거대한 호수인 인레 호수가 있고 수상마을이 만들어져 있다. 각각 다른 특색과 매력을 가진 이 네 도시를 돌아보면 미얀마 기본 코스를 섭렵했다고 보면 된다. ●11~13세기 수도 ‘바간’… 세계 3대 유적지 양곤에서 바간의 냥우 국제공항까지는 비행기로 약 1시간 20분이 걸렸다. 기내식으로 나온 사과파이를 먹다 보니 어느새 도착. 거리로 나오니 동남아시아 특유의 시끌벅적한 풍경이 펼쳐졌다. 바간은 미얀마 이라와디강 동쪽에 자리한 도시다. 11~13세기 버마족은 이 도시를 수도로 삼아 바간왕조를 세웠다. 2000여 기가 넘는 불탑과 사원이 아득한 들판을 메우고 서 있다. 바간의 수많은 불교 사원들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과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르드 사원과 함께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로 꼽힌다. “옛날 바간에는 지금보다 열 배는 더 많은 탑과 사원이 있었습니다.” 틴윈투가 서툰 한국말로 띄엄띠엄 말했다. “안타깝게도 2011년과 2016년에 큰 지진이 나면서 많은 불탑이 무너졌습니다.” 바간에는 고고학 구역이 있다. 서울 강남구 면적과 비슷하다. 불탑은 이곳에 몰려 있다. 사람들은 불탑 앞에서 도시락을 먹고 사원 안에 자리를 펴고 낮잠을 잔다. 여행자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빌려 탑과 탑 사이를 메뚜기처럼 건너다닌다. 가이드북에는 “바간에서는 사방 어디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켜도 반드시 불탑을 볼 수 있다”고 씌어 있는데 이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여행자들은 2만 5000원 정도 하는 프리패스를 산다. 이것만 있으면 5일 동안 바간의 사원을 돌아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슈웨지곤 파고다. ‘성지에 세운 불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황금색으로 칠해진 거대한 종 모양의 탑이 서 있는데 이 탑은 바간 불탑의 어머니로 불린다. 바간 왕조 초기 아나우라타가 옆 나라 타톤을 정벌하고 불사를 시작해 그의 아들 치얀지타가 완성했다. 1105년에 지어진 아난다 사원은 건축미가 가장 빼어나고 내부에 불상과 벽화가 잘 보존돼 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 중 하나이기도 하다.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 수도 ‘만달레이’ 이튿날 바간을 떠나 만달레이로 갔다. 냥우 국제공항에서 오전 8시 30분 날아오른 야다나폰 항공 7y131 편은 이륙 후 16분 만에 착륙 안내방송을 했다. 스튜어디스가 나눠 준 사탕 하나를 다 먹기도 전이었다. 비행시간은 24분. 하지만 차로 가면 여덟 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서니 바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거리는 삼륜오토바이와 자동차, 마차로 북적였다. 미얀마 정중앙에 자리한 만달레이는 약 200만명이 넘게 사는 미얀마 제2의 도시다. 미얀마가 19세기 중엽부터 1948년까지 영국의 식민지였을 당시 수도였다. ‘황금의 도시’로도 알려졌던 이 도시는 19세기에 버마왕국 최후의 왕족들이 건설했다. 만달레이를 찾는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가는 곳은 왕궁이다. 1857년 민돈왕이 아마라푸라에서 이곳으로 천도하고 지었다. 성벽의 높이가 8m나 된다. 1885년 영국군이 미얀마를 점령했을 때 왕궁을 클럽으로 이용해 수치심을 안겨 주었다. 1942년 일본군이 함락했을 때는 왕궁에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지금의 왕궁은 1990년 복구된 것이다. 높이 33m의 전망대에 오르면 왕궁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우베인 다리도 유명하다. 타웅타만 호수를 가로지르는 1.2㎞의 다리다. 1850년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목조다리다. 당시 시장이었던 우베인이 잉아 궁전을 짓다 남은 티크목으로 다리를 만들었다. 오랜 세월 굳건하게 버티던 다리 기둥은 양식사업을 위해 호수물을 가두는 바람에 썩기 시작해 지금은 콘크리트 기둥으로 교체하고 있다. 다리 기둥 수는 무려 1086개에 달한다. 운이 좋지 않아 비가 왔다. 이 다리는 낮에는 별로 볼품이 없지만 일몰 때면 그 풍경이 180도 변한다. 다리 주차장은 대형관광버스로 가득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우르르 다리로 몰려갔다. 다리 위에는 ‘유명해서 와봤는데, 별로 볼 게 없군’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 앞사람의 등을 보고 줄지어 걸어가고 있다. 걷다가 중간에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 다음에는 꼭 날씨 좋을 때 저물 무렵에 와 봐야지. 쿠도더 사원도 특별한 곳이다. 사원 경내에는 하얀색 탑이 무려 729개나 있다. 탑마다 대리석에 새겨진 불경이 안치돼 있다. 그래서 이 사원의 별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책’(The World’s Biggest Book)이다. 미얀마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스타그램 핫스폿으로 불리는 곳이다. 봉우리 거느린 호수… 그 안에 자리잡은 삶●호수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 다음날 다시 인레 호수로 향했다. 공항에서 한 시간 거리의 리조트에 체크 인을 하고 다시 배를 30분이나 타고 나가 점심을 먹었다. 샨족 전통 요리라고 했는데 중국 광둥요리와 비슷했다. 호수는 해발 880m 고원지대에 자리한다. 호수 주변에는 12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다. 호수의 넓이는 충주호의 두 배(116㎢)쯤 된다. 길이는 22㎞, 폭 11㎞로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다. 호수 위의 수상마을만 스무 곳에 달한다. 미얀마에는 160여개의 소수민족이 살아가는데, 이곳 인레 호수에는 샨족과 인타족, 파오족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많이 사는 부족은 인타족이다. 미얀마 전역에 흩어져 있는 인타족의 75%인 8만여명이 호수 주변에 마을을 이루며 살아간다. 이들은 장대로 물을 내리쳐서 고기를 잡고 배를 타고 한 발로 노를 저으며 호수를 가로지른다. 한 발은 배 위에 딛고 노는 다른 발 장딴지에 끼워 젓는데, 드넓은 호수에서 방향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전통옷을 입고 삿갓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노를 젓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보여 주기 위해 공연하는 사람들이다. 진짜 어부들은 그럴 시간이 없다. 평상복을 입고 그물질에 열중이다. 고기잡이 외에도 이들은 갈대와 대나무를 이용해 물위에 밭을 만들어 수경재배를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대부분의 인타족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호수 위에서 생활한다. 이들은 티크 나무를 호수 바닥에 꽂아 기둥을 세운 뒤 수상가옥을 짓는다. ●수상 상점 둘러보면 마을이 큰 테마파크 관광객들은 배를 타고 호수 위 상점을 차례차례 방문한다. 연줄기에서 실을 뽑아내 천을 만드는 마을, 은세공 상점, 목이 긴 카렌족 가옥 등을 방문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관광객들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팔려고 하고 남자들은 의자에 누워 쿤야를 씹고 있다. 마치 마을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테마파크 같다. ●“돈 없어도 그냥 가져가요… 햇빛 따가우니까” 인레 여행을 끝내고 다시 양곤으로 가는 공항이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공항 대합실에서 양곤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주머니에는 바간 냥우 시장에서 어느 소녀가 쥐어준 타나카(천연 자외선 차단제)가 들어 있다. 시장에서 만난 소녀는 타나카를 사라고 계속 졸라댔지만 지갑을 차에 두고 내려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돈이 없다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더니 선물이라며 바지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이건 그냥 선물이에요. 햇빛이 따가운 미얀마에서는 필요할 거예요.” 나는 일본의 여행작가 후지와라 신야의 책 ‘동양기행’에서 본 에피소드를 떠올랐다. 후지와라 신야가 양곤을 여행하던 중 뜨거운 뙤약볕 아래 노천식당에서 쌀국수를 먹고 있는데, 어떤 아이 두 명이 그의 등 뒤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후지와라는 그 아이들이 소매치기일까 의심하며 배낭을 꼭 안고 국수를 다 먹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자기 갈 길을 갔다. 후지와라는 옆에 있던 남자에게 저 아이들은 소매치기냐고 물었는데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 아이들은 ‘응달’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땡볕 아래에서 쌀국수를 먹는 이방인이 너무 더울까 봐 그들의 몸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나는 양곤으로 가는 비행기 속에서 타나카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글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여행수첩 인천국제공항에서 미얀마 양곤국제공항까지 대한항공이 직항편을 운항한다. 미얀마의 정식 명칭은 미얀마 연방공화국(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이다. 우기가 끝나는 5월부터 9월 중순까지가 여행하기에 가장 좋다. 시차는 2시간 30분. 통화는 차트로 1000차트(MMK)는 약 800원이다. 1000원으로 계산하면 대략 맞아 떨어진다. 사원이나 탑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맨발이어야 한다. 양말과 덧신도 허용되지 않는다. 신고 벗기 편한 샌들이 좋다. 올해 9월 30일까지 관광객에 한해 30일 무비자를 허용한다. 연장은 불가. 비용이 넉넉하다면 항공 이동을 추천한다. 버스 이동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바간~만달레이는 6시간, 인레~양곤은 10시간 정도가 걸린다. 모힝가는 생선 국물을 우려내 만든 미얀마식 쌀국수다. 양파, 레몬그라스, 생강, 파, 마늘, 바나나, 무 줄기 등을 함께 넣어 먹는데, 베트남·태국·라오스에서 먹던 쌀국수와는 맛과 향이 확연히 다르다. 처음 맛보는 이들은 약간 비린 육수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지만 2∼3일 미얀마에 머무르다 보면 아침부터 모힝가를 찾게 된다.
  • [러시아의 외침-우뜨라 라시야] 신태용호 여정서 느끼는 러시아제국의 저력·숨결

    [러시아의 외침-우뜨라 라시야] 신태용호 여정서 느끼는 러시아제국의 저력·숨결

    축구대표팀이 스웨덴에 분패한 현장은 과거 러시아제국의 ‘주머니’로 불렸던 니즈니노브고로드였다. 13세기에 박람회가 열릴 정도로 일찍이 우랄과 페르시아를 잇는 활발한 교역의 중심지였다. 볼가강과 오카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던 옛 경기장을 폭파하고 새로 스타디움을 지으며 이웃 주에서까지 근로자들을 징발해 값싼 임금으로 착취했다고 말들이 많았다. 옛사람들이 교역의 터전을 방어하기 위해 쌓았던 크렘린(성채) 위에 동상 하나가 두 강이 유유히 합류하는 것을 고즈넉이 굽어보고 있다. 대문호 막심 고리키다. 숱한 저작들로 러시아의 양심을 깨운 그가 강의 역사, 교역의 역사와 현재, 미래를 주시하고 있다.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의 무대 상트페테르부르크 베이스캠프로 돌아온 대표팀은 23일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2차전이 열리는 로스토프나도누로 21일 다시 떠난다. 1980년대 많은 이들의 눈을 밝혔던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의 무대다. 신태용호의 발걸음이 몽골의 유럽 침공 루트였으며 중국의 종이 제조술이 전해진 경로였던 고리키의 고향에서 미하일 숄로호프의 고향을 거쳐 27일 독일전이 열리는 타타르족의 터전인 카잔까지 이어지는 것은 우연치곤 흥미롭다. 러시아제국의 저력과 숨결, 웅혼함이 느껴지는 여정이다. 지난 12일 대표팀이 러시아에 입성한 뒤 여정을 함께 하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기자를 매번 놀라게 했다. 보행자가 길을 건너면 자동차가 먼저 멈춰 선다. 운전자들은 거의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버스에 오른 이방인에게 서로 길 안내를 하겠다며 승객들과 차장이 입씨름을 했다. 니즈니노브고로드의 기자단의 숙소에 도착한 것은 지난 16일 밤 10시 30분이었다. 지친 몸으로 샤워를 하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여성 콘시어지가 커피와 호박케이크, 초콜릿 등을 담은 쟁반을 내밀며 미소 지었다. 19일 이른 새벽 공항으로 떠나는 일행에게 호박케이크, 샌드위치, 과일 등이 담긴 봉지를 건넸다. 그 도시의 어느 레스토랑 매니저는 생각이 안 나는 영어 단어를 떠올리느라 연신 몸을 흔들어 대면서 우리 일행과 의사소통을 하려고 진땀을 흘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크렘린, KGB, 체첸이나 크림반도 진압과 같은 근육질 이미지의 정부, 체제와 길거리에서 만난 장삼이사 러시아인들은 많이 달랐다. 근엄한 얼굴로 안 된다고 하면서도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슬쩍 알려 주는 친절을 경험한 기자들도 적지 않았다. ●월드컵이 러 이미지 바꾸고 있어 당연한 얘기지만 일주일여 러시아의 서부를 조금 돌아보고 장님 코끼리 만지듯 그릇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도 러시아 어디에선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폭압적이고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가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 러시아월드컵이 다른 어느 곳보다 러시아를 변화시키고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와 희망이다. bsnim@seoul.co.kr
  • [영화 리뷰] ‘택시 운전사’

    [영화 리뷰] ‘택시 운전사’

    ‘화려한 휴가’(2007) 이후 10년 만에 ‘택시 운전사’(감독 장훈)가 개봉한다는 게 공교롭다. 딱 10년이다. 두 작품은 국내 상업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오월의 광주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공통점이 있다.에둘러 광주를 표현한 영화들도 있긴 하지만 두 작품은 1980년 5월의 그날, 비극의 현장을 직접 마주하게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공교로운 점은 또 있다. 모두 택시 기사가 주인공이다. 하지만 ‘택시 운전사’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광주를 본다는 점에서 완연하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선다. ‘택시 운전사’는 2003년 송건호 언론상을 받은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의 수상 소감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힌츠페터는 목숨을 건 잠입 취재를 통해 광주의 진실을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그는 당시 광주 잠입을 도와 줬던 택시 운전사 김사복을 애타게 찾았으나 결국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이 같은 이야기를 극화한 ‘택시 운전사’는 기어를 ‘버디 무비’에 넣고 운행을 시작한다. 영화 초반에는 사우디에서 5년간 벌어 온 돈을 아내의 병수발로 소진하고, 아내의 마지막 소원으로 장만한 택시를 60만㎞나 운행하며 딸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는 소시민,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면서도 택시비가 없는 승객에게 험한 소리 못하는 서울의 택시 운전사 만섭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할애한다. 밀린 사글세 10만원을 벌어 볼 요량의 만섭이 계엄령으로 외부와 단절된 광주에 가려는 독일 기자 피터와 동행하며 영화는 속도를 낸다. 원맨쇼에 가까운 송강호의 연기는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입이 아프다. 너무나 독보적이라 토마스 크레취만이 연기한 독일 기자 피터가 평면적으로 비칠 정도다. 40년 전 붉은 피가 꽃잎처럼 뿌려진 금남로를 생생하게 재현하기 위해 실제 크기의 세트장을 지을 정도로 공을 많이 들였다. 광주뿐만 아니라 당시 브리샤, 포니 택시가 오가는 시대상을 충실하게 되살린 것도 돋보이는 대목이다. 제작비 150억원이 투입됐다. 137분에 달하는 영화에서 50분가량 지나고 나서야 카메라가 광주역 광장으로 진입하며 군중을 만난다. 관객들의 가슴을 쿵쾅쿵쾅 방망이질하는 순간이다. 카메라는 불타는 광주MBC를 거쳐 클라이맥스인 금남로에 다다른다. 소시민인 만섭은 큰 사명감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지만 보편적인 인류애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동시대를 살았던 이방인의 부채 의식이 투영된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광주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정답은 없다.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진즉부터 엄숙함에서 벗어나 유쾌하고 경쾌한 템포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택시 운전사’도 이러한 흐름에 발을 걸치고 있기는 한데, 김사복을 그리워하는 생전의 힌츠페터 인터뷰가 곁들여진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 왠지 모르게 허전함이 엄습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대목이다. 8월 2일 개봉. 15세 관람가.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유진모의 테마토크] ‘프리즌’, 감옥에 빗댄 현실 혹은 그(‘세상’의) 이면

    [유진모의 테마토크] ‘프리즌’, 감옥에 빗댄 현실 혹은 그(‘세상’의) 이면

    지난 23일 개봉돼 흥행 1위를 달리는 영화 ‘프리즌’(나현 감독, 쇼박스 배급)은 한 교도소를 지배하는 장기 복역수 익호(한석규)와 형사였던 신입 수감자 유건(김래원)이 의기투합해 대한민국을 장악할 범죄를 음모한다는 내용이다. 감옥의 폐쇄성과 그 내부의 권력 구조를 비틀고, 여기서 파생될 허점은 디테일을 촘촘하게 살려 현실감의 환시로 재편함으로써 제거했으며, 현 시국의 혼란이라는 타이밍의 도움을 받아 더욱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사회 고발 및 풍자의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거듭난 게 강점이다. 익호의 뒤를 봐주던 교도소장이 궁지에 몰리자 특별사면으로 익호를 추방(?)하려 한다. 죄수에게 특사는 최고의 특혜지만 익호에겐 왕관을 빼앗긴 채 국외로 추방당하는 ‘탄핵’이다. 밖에서 완전 범죄를 마친 죄수들은 직장인들이 귀가하듯 귀소한다. 혼돈의 현실을 향한 조소다. 수감자는 바깥세상에선 이방인이지만 동질감으로 소통이 편한 감옥에선 동족이다. 익호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헌법이나 사회규범에 비해 매우 단순하고 쉬우니 수감자의 체질이 순응한다. 달리 경제활동을 안 해도 편하게 주식, 간식, 술, 담배, 레크리에이션 등을 즐길 수 있다. 유토피아는 최소한 그들에게만큼은 멀리 있는 것도, 환상도 아니었다. 각자 개성 넘치는 생동감이 살아 숨 쉬는 적지 않은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마치 멀티캐스팅의 블록버스터를 즐기는 듯한 다양하고 풍성한 재미를 제공한다. 익호는 합리적인 지도자와 극악무도한 범죄자, 그리고 과잉 에고이즘에서 비롯된 그릇된 낭만에 사로잡힌 자아 등의 다중인격을 지니고 있다. 그는 교도소장은 물론 말단 교도관에게도 서운치 않을 만큼의 뇌물을 뿌린다. 또 죄수와 그 가족의 경조사까지 일일이 챙겨 주는 등 ‘민심’을 다스리는 데 최선을 다한다. 아낌없이 베풀고 확실하게 신상필벌하며 진정한-최소한 감옥 내에서만큼은-통치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한다. 또 다른 그의 통치 비결은 깡패도 오줌을 지릴 잔인한 폭력성이다. 반발하거나 걸림돌이 되는 자는 서슴없이 불구로 만들거나 죽인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철학’에 순응하는 ‘국민’에겐 한없이 자애롭고 따뜻하다. 일부 강대국에서 실패한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를 그는 범죄의 합리화란 역설을 통한 혁명으로 진행 중이다. 익호를 무너뜨리려는 신임 교정국장은 소통을 모르는 고위직 공무원이다. 고발하는 게 마땅하지만 교도소장을 압박해 익호의 세계를 와해시키는 데 집착한다. 출세와 안위에만 연연하는 직무유기다. 익호에게 다짜고짜 막말과 폭력을 휘두르는 행위는 직권남용이자 인격모독이다. 막상 익호의 부하들에게 잡히자 “살려 달라”고 애원하며 비로소 지위 뒤에 숨겼던 나약하고 치졸한 진면목을 드러내는 장면은 스트레스 해소용 장치다. 익호와 맞서는 깡패 창길은 권위주의(교도소장), 패권주의(익호), 실리주의(교도관)가 그득한 감옥 안에서 유일한 분리주의자다. 그 어느 이념에도 속하지 않은 채 명분이라는 확실한 신념만을 투철하게 실행하고자 하는 자기애가 강한 인물로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의 본질을 구성하는 3개의 원리 중 주관주의에 속한다. 권력의 외곽을 선택한 아웃사이더 혹은 아나키스트다. 익호의 오른팔에게 교란작전을, 또 익호에게 속임수를 쓰는 게 비겁하다고? 어차피 전쟁의 목적은 승리고, 역사는 이긴 자의 관점에서 기술된다는 승자독식의 일방통행을 향한 풍자적 메타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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