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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공장, 로봇·AI만으로 원가 낮춰 1위 전략… 한국에 최대 위협 [최광숙의 Inside]

    中공장, 로봇·AI만으로 원가 낮춰 1위 전략… 한국에 최대 위협 [최광숙의 Inside]

    자는 척했던 거인창신메모리, 5년 내 판도 엎을 것국가 빅펀드, 수십조원 씨앗 뿌려IPO로 시장에서 자본 회수 모델DDR4 반값에 뿌리며 시장 잠식삼전닉스, 멈추는 순간 따라잡혀AI 응용시장에 사활 거는 中14억 인구와 데이터 원석이 무기AI로 제조업 전환, 생산성 극대화2500명 필요했던 공장, 로봇 대체불도 끄고 사람도 없이 밤새 가동원가절감해 제조업 세계 1위 목표한국의 대응방안은한국 제조업·미국 빅테크 손잡고중국처럼 생산 원가 낮춰 생산을반도체·배터리·바이오 최종 보루규제·주52시간 근무 등 타개하고고품질·고신뢰 첨단 공급자 돼야인공지능(AI) 시대의 총아인 반도체와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 중국이 무섭게 부상하고 있다. 최근 중국경제전문가인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을 만나 중국 반도체·AI 굴기의 비결, 한국 반도체의 갈 길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전 소장은 “최근 반도체 초호황은 미중 갈등에서 우리가 어부지리를 얻은 것으로 실력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며 “미국도 중국도 못 하는 고품질·고신뢰의 첨단 기술 공급자 포지션을 확보하는 것이 한국의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유일하게 中 앞선 반도체, 기술 격차 3년 -창신메모리(CXMT)가 최근 상하이 증시에 상장해 시가총액 1위(약 770조 원)에 올랐다. “잠자던 거인이 깨어난 게 아니라, 사실 자고 있던 척했던 거다. 지금은 세계 4위지만 5년 안에 판도가 뒤집힐 것이다. 현재 우리와 기술 격차는 범용 D램은 3년, HBM은 5년 격차, 이 숫자를 편하게 볼 수 있는 한국 기업은 없다. 올해 2분기 CXMT의 D램 점유율은 불과 1년 만에 4%에서 10%로 2.5배 뛰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CXMT에 자금과 자신감을 동시에 선물했다. 호황의 과실이 경쟁자를 키우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 -중국 반도체 산업이 ‘국가 보조금’에서 ‘증시 활용’으로 전략을 바꿨나. “씨앗은 국가가 뿌리고 열매는 시장이 따가는 구조다. 1단계는 국가 빅펀드가 수십조원을 쏟아 기술 기반을 닦는 것, 2단계는 기업공개(IPO)로 자본을 회수하는 것이다. CXMT는 666억 위안, YMTC는 330억 위안을 증시에서 확보할 예정이다. 리스크는 국가가, 수익은 시장이 가져간다. 반도체에 이어 로봇까지 이 공식이 반복된다. 더 교묘한 건 글로벌 자본을 끌어들여 외국 투자자들이 중국 반도체에 돈을 넣게 만들면, 미국도 함부로 제재하기 어려워지는 구조를 만든다는 점이다. 외국 돈이 들어오면 미국도 쉽게 손을 못 댄다.” -CXMT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시점은. “범용 D램 기술 격차 3년, 실적 타격은 5년, 달력을 보면서 긴장해야 할 숫자다. CXMT는 지금 DDR4를 반값에 뿌리며 시장을 잠식 중이다. 가격전쟁은 이미 시작됐고, 한국에 남은 방어선은 HBM뿐이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HBM4, HBM4E에 자원을 집중하고 범용 D램 의존도를 줄이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다. 중국이 쫓아올 수 없는 속도로 계속 앞으로 달아나야 한다. 멈추는 순간 따라잡힌다.” -HBM 경쟁에서 중국은 아직 못 따라오고 있는데. “5년 격차의 기술 해자(진입 장벽), 지금은 든든해 보이지만 해자도 메워진다. HBM은 단순 반도체가 아니라 패키징·적층 공정이 결합된 복합 기술이다. 2030년 이전에 판도가 뒤집힐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중국이 HBM3를 양산하는 순간, 한국은 HBM4E와 HBM5로 이미 올라서 있어야 한다. 기술 우위란 결국 속도 경쟁이다. 앞서가고 있다는 안도감이 가장 위험하다.” -최근 반도체 호황은 우리 기업의 실력 아닌가. “운을 실력으로 오판하는 착각이다. 미중이 싸우는 바람에 우리한테 황금비가 내린 것이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AI 제재가 없었다면 지금의 초과수요는 절반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어부지리를 얻은 셈이다. 단군 이래 최대의 지정학적 횡재를 실력으로 포장하는 순간 판단이 흐려진다. 지금 대비해야 할 건 반도체 가격 하락이다. 부동산 폭락보다 더 빠르고 더 깊을 수 있다.” -중국의 AI모델 딥시크가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딥시크가 증명한 건 단순하다. 돈 많이 쓴다고 이기는 게임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AI 기업들은 오픈AI·구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모델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미국은 물량으로, 중국은 저비용 효율로 싸운다. 다만 추론 극한·에이전트 AI·멀티모달 최전선에서는 미국이 여전히 6~12개월 앞서 있다. AI는 1등이 독식하는 시장이다. 그 격차가 작아 보여도 결정적이다.” -중국은 AI보다 기존 산업에 AI를 활용하는데 적극적인데. “중국은 이걸 ‘AI플러스’라 부른다. AI 모델 전쟁에서 이기기 어려우면 AI 응용 시장에서 이기겠다는 전략이다. 14억 인구와 세계 최대 제조업이 데이터 원석이다. 제조·물류·농업·의료에 AI를 입히면 데이터가 폭발하고 AI 성능이 다시 올라가는 선순환이 생긴다. 제조업의 AI 전환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중국 수출이 금지된 최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없어도 산업적인 응용은 중간급 칩으로 충분히 작동한다. 싸움터를 자신에게 유리한 곳으로 옮긴 것이다.” ●저비용 두뇌·몸통 단 中휴머노이드 -AI플러스로 어떻게 생산성을 높일 수 있나. “작년에 중국의 가전제품을 만드는 공장을 다녀왔다. 과거 2500명이 돌리던 라인을 지금은 로봇과 자율 운반차가 대신한다. 불도 끄고 사람도 없이 밤새 돌아가는 공장, 이른바 ‘다크팩토리’(Dark Factory)다. 현재 중국에서 수백 개가 가동 중이다. 중국이 노리는 건 AI로 생산원가를 절반으로 자르는 것, 제조업 세계 1위를 기술이 아닌 원가절감으로 굳히는 것이다. AI를 목적이 아니라 돈 버는 수단으로 본다.” -중국의 AI플러스 전략이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AI플러스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다. 반도체 빼고 제조업에서 중국을 앞서는 분야가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중국이 다크팩토리로 인건비를 0에 수렴시키고 원가를 40~50% 낮추면 한국 제조업은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다. 경고음은 울리고 있지만 한국은 듣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제조업에서도 AI를 활용할 방안이 있다면. “한국이 미국에 무역 합의에 따른 3500억 달러를 투자해도 원금 회수가 쉽지 않다. 그 해법으로 산업 데이터를 많이 확보한 한국의 제조업과 미국의 빅테크가 손 잡고 중국처럼 생산원가를 낮춘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현대차와 오픈AI, 삼성전자와 클로드, SK하이닉스와 구글이 손잡고 ‘한국형 AI플러스’를 만드는 것이다. 먼저 한국에서 다크팩토리를 만들어 원가가 50% 절감되는 것을 보여주는 시범사업을 한 뒤 미국에 이런 공장을 짓는 것이다.” -중국 로봇 기업 유니트리도 상장해 주가가 폭등했다. “1600만 원짜리 휴머노이드가 로봇 시장의 문법을 바꿨다. 테슬라 옵티머스보다 싸고 더 많이 찍어낸다. 유니트리 G1은 글로벌 가격 파괴를 선도하며 전 세계 휴머노이드 시장의 32%를 장악했다. 중국의 강점은 부품 공급망이 전부 국내에 있다는 점이다. 모터·배터리·센서·액추에이터 등 핵심 부품을 외국에서 조달할 필요가 없다. 글로벌 휴머노이드 설치 시장 상위 4개사가 전부 중국 업체다. 로봇 시장을 만든 것도, 지배하는 것도 중국이다.” -중국 휴머노이드 밸류체인이 세계에 주는 영향력은. “딥시크라는 저비용 두뇌에 유니트리라는 저비용 몸통, 이 조합이 ‘피지컬 AI’ 양산 시대를 열고 있다. 모터·배터리·AI 모델·로봇 프레임까지 밸류체인이 중국 안에서 완결된다. 외부 의존도가 거의 없다. 역설적으로 이 지점이 한국의 기회다. 서방 기업들이 중국산 하드웨어를 꺼리는 상황에서, 자동차·정밀기계 기반을 갖추고 신뢰성과 공급망 안정성을 증명할 수 있는 한국이 믿을 수 있는 대안으로 부상할 수 있다.” -미국 제재에도 중국의 반도체·로봇 기술이 향상되는 이유는. “미국 제재가 오히려 자립을 강요했다. 화웨이가 미국 칩 공급이 끊기자 기린 칩을 스스로 만든 게 상징적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게 아니라,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거다. 그 결과 중국 반도체 엔지니어 수는 5년 만에 3배 이상 늘었다. 공대생이 의대생보다 대우받는 나라, 그 선택이 지금의 기술력을 만들었다. 현재 반도체 자립도 33%, 로봇 자립도 55~65%다. 제재의 역설이다.” ●수명 다한 전략적 모호성 버려야 -이대로면 우리 기업이 코너에 몰리지 않을까. “가마솥의 개구리가 물이 뜨거워지는 걸 모르듯, 위기는 천천히 온다. 철강·조선·가전·화학은 이미 중국에 내줬다. 반도체·배터리·바이오가 마지막 보루인데, 이마저 내주면 한국의 수출 경쟁력은 해체된다. 다음 세대 기술인 HBM5·차세대 배터리·바이오신약에 지금 당장 베팅해야 한다. 중국보다 1~2세대 앞서 있으면 가격이 아닌 기술로 싸울 수 있다. 규제·주 52시간 근무·데이터·벤처자본 등 발목을 잡는 구조를 빨리 타개해야 한다.” -미중패권 시대 한국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나. “전략적 모호성은 수명이 다했다. 이제는 선택적 명확성의 시대다. HBM·AI 반도체·첨단 방산은 미국 동맹 체계 안에서만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경제와 시장에서는 중국과의 실용적 관계를 끊을 수 없다. 중국은 여전히 한국 최대 수출처다. 등을 돌리는 건 전략이 아니라 자해다. 미국도 중국도 독자적으로 할 수 없는 것, 고품질·고신뢰의 첨단 부품 공급자 포지션을 선점하면 양쪽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나라가 된다.” -오래전부터 중국을 지켜봤다. 느끼는 점은. “중국은 느리다는 편견은 착각이었다. 20년 전 중국 공대생은 100만 명이었다. 지금은 이공계 졸업생만 480만 명, 한국 전체 대학생보다 많다. 중국 기업가들의 위기의식은 한국보다 훨씬 날이 서 있다. ‘내일 망할 수 있다’는 공포가 혁신을 만든다. 실패해도 다시 하는 집요함이 있다. 한국은 대기업 시스템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 지도자들은 45일에 한 번씩 AI·빅데이터 등 첨단 산업을 함께 공부한다. 국가 장기 산업전략을 세우고 일관성 있게 밀어붙인다.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략이 흔들린다. 그 차이가 지금의 격차를 만들었다.” ■ 전병서 중국경제연구소장은 중국 칭화대에서 석사, 푸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우경제연구소에서 반도체와 IT애널리스트로 17년간 일했다. 대우증권 상무, 한화증권 전무를 역임한 이후 20년여간 중국 경제와 금융을 연구하고 있다.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MBA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금융대국 중국의 탄생’, ‘기술패권시대의 대중국 혁신전략’, ‘한국반도체 슈퍼乙전략’,‘차이나 퍼즐’ 등이 있다. 최광숙 대기자
  • [세종로의 아침] 여름을 보내며 드는 단상들

    [세종로의 아침] 여름을 보내며 드는 단상들

    “올여름이 당신의 남은 인생에서 겪을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는 기후과학자들의 경고처럼 지난여름 폭염은 무시무시했다. 여름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가을이 다가오면서 많은 사람이 추석과 10월 초 연휴를 기대한다. 그렇지만 잡문을 쓰고 지낸 지 26년, 그중 과학 분야만 20년을 넘게 담당하다 보니 가을이 가까워 오면 선선해진 날씨나 울긋불긋 변하는 풍경보다 다른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한 달 뒤면 노벨 과학상 수상자 발표가 있다. 올해는 10월 5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6일 물리학상, 7일 화학상 수상자 발표가 예정돼 있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 발표 마지막 날을 축하라도 하듯 7일은 누리호의 5차 발사까지 잡혀 있다. 오랜만에 찾아오는 과학기자들의 대목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묘한 긴장감, 혹시나 하는 기대감과 함께 분노, 짜증 등 복잡한 감정이 느껴진다. 평소 눈곱만큼도 과학에 관심이 없다가 노벨 과학상 발표, 로켓 발사 같은 큰 이벤트가 있을 때만 호떡집에 불난 듯 호들갑 떨면서 훈계질도 모자라 전문가 의견조차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 ‘배고프면 밥 먹어야 한다’는 식의 뻔한 해법을 제시하는 언론, 정치권, 호사가들의 모습은 실소를 자아낸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배우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과학과 기술의 차이에 대한 몰이해와 ‘그게 그거 아니냐’는 뻔뻔스러움까지 마주하면 울화가 치민다. 한국 과학기술의 백년대계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과학과 기술은 엄연히 다르지만 우리는 과학기술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 쓰면서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됐다. 과학은 자연 현상의 근본 원리와 ‘왜’를 탐구하는 행위라면 기술은 그렇게 얻은 지식으로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쓸모를 찾는 ‘어떻게’의 영역이다. 이런 상식조차 갖고 있지 않다 보니 과학을 기술발전의 수단이나 경제성장의 도구쯤으로 취급한다. 돈이 되는 연구,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에만 관심을 갖다 보니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는 기초과학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린다. ‘이공계 위기’ 담론만 봐도 우리 사회의 과학에 대한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언론이나 정치권은 툭하면 ‘이공계 위기’, ‘의대 블랙홀’을 주장하며 한국 과학기술 기반이 금세 무너질 것처럼 떠들어댔다. 최근 반도체 호황으로 전기·전자, 반도체 분야 지원자가 의대 못지않게 늘어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하다. 사실 취업 잘 되고 돈 잘 버는 특정 학과 쏠림 현상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이공계 위기가 진짜 구조적 위기였다면 아무런 정책 없이 고작 몇 달 만에 사라질 수는 없다. 현상의 한 부분만 붙잡고 위기라 목청을 높이다가 슬그머니 입을 닫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수시로 배출하는 미국이나 독일, 아시아 노벨상 강국 일본 같은 과학 선진국들은 좀 다르다. 과학을 단순히 국가 경쟁력 제고나 경제 발전의 수단이 아니라 일상 속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인다.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일본 오스미 요시노리 박사가 “‘도움이 된다’는 말이 사회를 망치고 있다”고 말한 것도 문화로서 과학을 강조하는 것이다. 과학 선진국들에서는 언론, 정치인, 시민들도 과학을 성패나 손익으로만 취급하지 않는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을 장려하고 인내심을 갖고 긴 호흡으로 기초연구를 지켜보며 실패를 새로운 발견으로 가는 당연한 과정이자 자산으로 여기는가 하면 모르는 것은 솔직히 드러내고 배우려고 한다. 선진국에 들어선 한국 사회도 이제 과학을 이런 식으로 바라봐야 할 때가 됐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이제는 철 지난 농담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이번 가을에는 아는 척하며 되도 않는 훈수 두기에 앞서 차분히 과학책 한 권을 읽어 보라 권하고 싶다. 노벨 과학상 발표와 누리호 발사를 지켜보며 과학책을 보는 일이야말로 과학을 문화로 바꾸는 가장 확실하고 손쉬운 첫걸음이 될 것이다. 유용하 산업부 과학전문기자
  • “대구대만의 정체성 발전시켜 학생들 잠재력 이끌어낼 것”

    “대구대만의 정체성 발전시켜 학생들 잠재력 이끌어낼 것”

    복수전공 넘어선 융복합 전공 도입진로 동아리로 공동체 간 협력 장려지역사회 연계 계약형 학과 구상도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을 대신하는 대학인 만큼 구성원들이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윤재웅 대구대 총장은 지방대학의 생존 위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대학의 체질을 미래형으로 바꿀 결정적 기회라는 것이다. 임기를 시작한 지 40여 일 된 윤 총장은 임기 중 최우선적으로 추진할 역점 사업으로 학생 중심 교육과 디지털 혁신을 꼽았다. 이를 통해 대구대만의 정체성을 키워 브랜드 가치를 발전시키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윤 총장은 1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구대는 특수교육과 재활과학, 사회복지 등 특성화 분야가 명확하다. 어떻게 보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지역의 사립대학이 대신하고 있는 셈”이라며 “잠재력을 가진 학생들도 굉장히 많은 만큼 ‘우리도 가능하겠는데’라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도권 집중화로 인한 지방대학 위기로 사기가 떨어진 학생들의 자신감을 끌어올리는 게 우선”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취임과 동시에 기존의 교육혁신원을 ‘AI교육혁신처’로 승격했다. 총장 선거 과정에서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던 재학생 충원율 제고와 학생 중심 지원 체계 강화를 위해서다. 윤 총장은 “AI 기반 학생 역량 및 진로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AI가 학생 개인의 성적과 역량을 진단해서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성적 향상, 졸업 후 진로를 추적 관리하는 체계를 갖출 것”이라며 “전공 및 교양 교육에도 AI 활용 교육을 강화해서 융복합 인재로 길러내는 역할도 맡는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성공지원센터를 총장 직속 기구로 신설해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대학 생활을 지원하고 학생이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캠퍼스 환경도 구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70년 역사 동안 쌓아온 독보적 자산인 특수교육, 재활과학, 사회복지 분야의 정체성도 시대 흐름에 맞춰 재정립한다. 대학 전체의 위상을 견인할 ‘스타학과’로 집중 육성하는 동시에 기존 전공 교육과 접목한 융복합 혁신 교육의 토대로도 활용하겠다는 게 윤 총장의 설명이다. 그는 “인문계, 이공계 학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복수전공을 넘어서는 융복합 전공을 도입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대학의 전반적인 교육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체질 개선의 핵심인 학과 구조 개편에 있어서도 단순한 경제적 논리에 매몰되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윤 총장은 “지방대학은 앞으로 양적 팽창이 아닌 질적 성장으로 승부해야 생존할 수 있다”며 “명문 사학으로서 기초 학문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학과 최소 정원 기준을 30명 미만으로 하향 조정해 소규모 학과의 자생력을 높이고, 이에 따른 재정·수업 시수 부족 문제는 단과대학 공통 교양 강좌 개설 및 국제대학 유학생 수업 연계 등 유연한 제도로 극복해 나가겠다”고 했다. 윤 총장은 학생들이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갖고 같은 목표를 향해 공동체를 형성해 협력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시대가 변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학생들이 예전보다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주도적으로 준비하는 문화가 줄어든 건 사실”이라며 “비슷한 목표를 가진 학생들이 함께 준비하면 발생하는 시너지가 명확한 만큼 스터디 모임 형식의 진로 동아리를 활성화하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거나 공부를 도와가는 환경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대학 육성 정책을 두고는 지방 사립대에도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윤 총장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모든 투자가 집중되는 게 문제가 있고 지역에 분산 투자해야 한다는 정책 기조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다만 지방 국립대 등록금 0원 정책 등이 나오는 만큼 지방 사립대에도 그에 걸맞은 역할과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사회와의 협력에 대해선 “인근 대학과 협력해서 지역의 핵심 산업과 대학 교육을 연계해 특정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지역 기업에 취업할 수 있게 하는 계약형 학과 도입도 구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텍스트힙이 뜨는 시대…읽는 인간은 사라졌다

    텍스트힙이 뜨는 시대…읽는 인간은 사라졌다

    서울국제도서전 역대급 흥행성인 독서율은 꾸준하게 하락세AI에게 읽기·쓰기마저도 외주화“읽기는 인간에 희망 주는 ‘광선검’AI에게 인류의 유산 넘기면 안 돼” 지난 24일 막을 올린 서울국제도서전이 닷새 일정으로 진행된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텍스트힙’ 유행, 도서 관련 상품(굿즈) 구매 열풍이 더해지며 역대급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성인 독서율이 꾸준히 하락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벌어진다. 최근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읽기와 쓰기를 대신하고 있다. 이처럼 읽기와 쓰기마저 ‘외주화’하는 이런 상황, 정말 괜찮은 걸까. 저자인 나오미 배런 미국 아메리칸대 언어학 명예교수는 단호하게 “매우 걱정스럽다”고 밝힌다. 배런 교수는 언어와 기술, 인간 사고의 관계, 읽기와 학습에 관해 오랜 시간 연구한 세계적 언어학자다. 전작인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와 ‘쓰기의 미래’에서는 소셜미디어(SNS) 사용 증가와 생성형 AI의 등장이 쓰기, 읽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이번 책에서는 읽기가 인간의 뇌와 공감력, 비판적 사고를 어떻게 진화시켰는지, 그리고 읽기까지 AI에게 맡기는 현재 상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더 깊이 진단했다. 사실 대학 현장만 들여다봐도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국내 많은 이공계 대학 교수들은 신입생들이 수학·과학 기초 지식과 과학 문해력을 갖추지 못해 수업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한다고 개탄한다. 배런 교수 역시 “학생들의 강의 내용 요약 능력과 기본 원리 파악 능력이 저하됐다”고 대학 현장 분위기를 전한다. 미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교수들은 대학에 입학하면 이미 읽기 능력을 갖췄으리라 가정하고 토론을 시키고 글쓰기 과제를 내준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이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이유는 학생들이 자발적 독서나 읽기 과제를 완수하는 데 들였던 시간을 이제 SNS, 짧은 동영상(쇼츠), 아르바이트, 과외 활동에 쓰고 있어서다. 그러다 보니 읽기와 쓰기를 AI에 의존하고, 문해력은 떨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저자는 읽기 능력에 대해 “우리가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믿을지 스스로 결론에 도달하도록 이끌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등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특별하고도 진정한 ‘광선검’이라고 강조한다. 영화 ‘스타워즈’에서도 알 수 있듯 광선검은 강력한 무기다. 책을 쥐어 들고 직접 글을 읽는 일에서 멀어지고, 그 일을 AI에 넘겨준다면 우리는 광선검을 버리는 셈이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인간 고유의 창의성까지 넘본다며 많은 이들이 ‘위기’를 말한다. 그런데 정작 창의성의 기본이 되고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히는 읽기까지 AI에 넘겨주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고 있다. 저자는 “읽기 도구로서 AI에 의존하면 할수록, 읽을 줄 아는 존재로서 힘들게 얻은 인류의 유산을 포기할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모든 논의가 AI로 귀결되고 잠식되는 요즘에 ‘읽기’란 어쩌면 영화 ‘매트릭스’ 속 빨간 약이 아닐까 싶다. 환상에서 벗어나 진짜 삶을 마주하기 위해, 이제부터 읽기를 시작해야 할 때다.
  • [서울광장] 머스크의 절대권력, 한국의 성과급 갈등

    [서울광장] 머스크의 절대권력, 한국의 성과급 갈등

    미국은 주주자본주의의 본산이다. 경영진은 철저히 주주의 감시를 받는다. 그런데 상장을 추진 중인 스페이스X는 정반대의 지배구조를 내놓았다. 차등의결권을 통해 일론 머스크가 85%가량의 의결권을 쥐는 방식이다. 이를 두고 “머스크를 해고할 수 있는 사람은 머스크 본인뿐”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스페이스X는 한술 더 떠 소송권과 주주제안권까지 제한하는 ‘독재적’ 모델까지 제시했지만 투자자들은 오히려 몰리고 있다. 더구나 이 방식이 향후 기업공개가 거론되는 오픈AI와 앤트로픽 등 인공지능(AI) 기업들의 본보기로 번질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제왕적 지배구조라는 꼬리표에도 시장은 머스크의 절대권력보다 그가 만들어 낼 미래 가치에 베팅하는 셈이다. 우주 개척이나 AI처럼 천문학적 투자와 긴 호흡이 필수적인 신산업은 분기 실적과 단기 주가에 얽매이면 제대로 진행하기 힘들다. 불확실한 길을 오래 밀고 가야 하는 미래 산업에서는 창업자의 비전과 결단을 일정하게 보장하려는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견제받지 않는 오너의 절대권력이 특권으로 변질될 리스크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혁신의 싹을 조급한 이해관계에서 사수하려는 미국 자본시장의 치열한 문제의식만큼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국의 국가 전략산업은 정반대의 거센 압박에 직면해 있다. 과거 오너에게 권한이 집중된 성장 방식과 불균형한 분배에 대한 반작용으로 최근 산업 현장에서는 이익을 나누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까스로 타결된 삼성전자 노사의 임금 협상은 사상 초유의 총파업 위기까지 불렀다. 경쟁사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나누는 방식도 삼성전자 직원들을 자극했다. 물론 이번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국가적 병폐인 ‘의대 쏠림’ 현상이 극심한 가운데 이공계 핵심 인재에게 파격적인 보상을 안겨 주는 것이 우수 두뇌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유인할 현실적 타개책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첨단 기술로 올린 막대한 이익을 땀 흘린 인재와 확실히 나누는 것은 장기적인 산업 경제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기계적으로 할당하라는 요구가 공식처럼 굳어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반도체는 호황과 불황의 진폭이 극심한 사이클 산업이다. 이익이 날 때 나누는 것만큼이나 대규모 손실 위기가 닥쳤을 때 그 위험을 누가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불투명하다. 위기 때의 고통 분담은 모르쇠하고 호황의 과실만 기계적으로 나누려는 것은 자칫 황금알을 낳는 성장의 모태를 갉아먹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삼성의 노사합의가 던진 파장은 개별 기업을 넘어서서 구조적 국면 전환마저 예고한다. 정보기술(IT), 조선, 방산 등 주요 산업 현장 곳곳에서 이익 배분의 ‘미투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막강한 교섭력을 무기로 막대한 성과급을 독식할수록 그 사다리 아래에 있는 중소 협력사 및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격차는 회복하기 힘든 선으로 벌어진다. 노동의 몫을 키운다는 도덕적 명분이 도리어 우리 사회의 임금 격차를 심화시키는 이중 구조를 고착화하는 역설을 낳는 것이다. 호황의 단비가 산업 생태계 전반을 적시지 못하고 소수 기업 내부에 갇히는 셈이다. 스페이스X의 극단적 선택 이면에는 혁신을 지키려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 반면 우리는 해마다 성과급 갈등과 파업 리스크에 국가 전략산업이 흔들릴 지경에 놓여 있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은 숨 고를 틈 없는 전쟁이다. 눈앞의 파이를 가르는 내부 갈등에 발목이 잡힌다면 경쟁국에 주도권을 헌납할 수밖에 없다. 성과급 배분이라는 과제는 이제 개별 노사를 넘어서서 국가적 현안으로 부상할 만큼 중차대해졌다. 오너의 독점도, 노조의 일방적 요구도 정답이 될 수 없다. 장기 투자의 동력을 유지하면서도 산업 경쟁력을 잃지 않는 배분적 정의의 룰을 마련하는 일에 정치와 정부가 묵직한 책임을 다해야 할 때다. 박상숙 논설위원
  • ‘역대급 다자구도’ 대구대 총장 선거…7파전 속 ‘세대교체’ 바람 불까

    ‘역대급 다자구도’ 대구대 총장 선거…7파전 속 ‘세대교체’ 바람 불까

    학령인구 감소와 지방대 소멸 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대구대학교 제14대 총장 선거가 오는 20일 치러진다. 대구대의 향후 4년을 이끌 총장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에서는 대학 생존 전략을 재설계할 젊은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8일 대구대 총장후보자 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따르면 이번 선거는 현직인 박순진 총장의 불출마로 다자구도가 형성됐다. 출마자는 기호 순으로 ▲박영준(58·사회복지학과) ▲이정호(64·생물교육과) ▲김동윤(56·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김시만(59·디자인예술대학) ▲우창현(63·국제학부) ▲송건섭(62·공공안전학부) ▲윤재웅(62·기계자동차공학부) 교수 등 7명이다. 사회과학부터 이공계, 예술계까지 다양한 전공 배경을 가진 교수들이 후보로 나서면서 선택지도 넓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젊은 후보들의 출마도 눈에 띈다. 최연소인 김동윤 후보를 필두로 박영준, 김시만 후보 등 50대 후보들이 대거 출사표를 냈다. 총장 후보가 7명에 달하는 만큼 지방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도 저마다 달랐다. 다만, 단순 관리형 총장으로는 위기를 넘을 수 없고 참신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데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정호·김동윤 후보는 대학 구조 혁신을 강조했다. 학령인구가 지속해서 감소하는 만큼 대학 규모는 줄이되, 특수교육이나 사회복지 등 전통적인 강점 분야와 인공지능(AI) 등 미래 분야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우창현·송건섭 후보는 전공과 교육과정을 유지하면서 내부적인 안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밖에도 김시만·윤재웅 후보는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신입생 유치를 위한 홍보 혁신을, 박영준 후보는 기술지주회사 등을 통한 재정 구조 혁신을 생존 전략으로 제시했다. 공식 선거운동은 오는 19일까지 이어진다. 선거는 20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온라인투표시스템을 이용한 전자투표 방식으로 1차 투표가 진행된다.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같은 날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결선투표를 통해 최종 당선자를 가린다. 최대 변수는 ‘투표 비율’과 ‘결선 투표’다. 대구대는 총장 선거 때마다 교원과 직원 투표 반영 비율을 교수회와 직원 노조의 협의를 통해 결정하기 때문이다. 현재 막판 협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후보자가 많아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기 힘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학 관계자는 “이번 선거는 단순한 총장 선출을 넘어 대학의 미래 방향과 지역 사회와의 상생 모델을 결정짓는 중요한 분수령”이라며 “구성원들의 선택이 대학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 “내가 소아성애자라고?”…총격범 문건 읽자 트럼프 ‘버럭’ [핫이슈]

    “내가 소아성애자라고?”…총격범 문건 읽자 트럼프 ‘버럭’ [핫이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 총격 사건 직후 진행된 방송 인터뷰에서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진행자가 총격 용의자의 문건 속 표현을 읽자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강간범도, 소아성애자도 아니다”라며 즉각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미국 CBS 시사 프로그램 ‘60분’ 인터뷰에 출연해 전날 워싱턴DC 워싱턴 힐튼호텔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총격 직후 경호원들이 자신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를 대피시킨 장면을 떠올리며 “우리는 미친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얼마나 걱정했느냐는 질문에 “걱정하지 않았다. 나는 삶을 이해한다”고 답했다. 이어 “처음에는 접시나 쟁반이 떨어지는 소리인 줄 알았다”며 총격음을 곧바로 알아차리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 총격 순간 설명하다 분위기 급변 인터뷰 분위기는 진행자인 노라 오도넬 CBS 앵커가 총격 용의자 콜 토머스 앨런의 문건을 언급하면서 급격히 냉랭해졌다. 오도넬 앵커는 앨런이 범행 전 남긴 것으로 알려진 문건 속 표현을 읽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을 물었다. 문건에는 “소아성애자, 강간범, 반역자가 저지른 범죄로 내 손에 죄가 묻도록 더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나는 강간범이 아니다. 누구도 강간하지 않았다”며 “나는 소아성애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당신이 그런 병든 사람의 헛소리를 읽은 것이냐”며 진행자를 향해 날을 세웠다. 오도넬 앵커가 “이것은 총격범의 말”이라고 설명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그런 내용을 ‘60분’에서 읽으면 안 된다”며 “당신은 수치스러운 사람”이라고 거듭 비판했다. ◆ “그런 말 방송서 읽으면 안 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 등과 관련해 여러 의혹에 휘말렸지만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로 반박했다. 엡스타인은 미성년자 성착취 혐의로 기소된 뒤 수감 중 숨진 인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엡스타인과 친분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관련성을 부인해 왔다. 총격 용의자의 문건에 등장한 ‘소아성애자’와 ‘강간범’이라는 표현은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기존 의혹과 맞물려 민감하게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들에 연루됐다”는 취지로 말하며, 해당 표현을 방송에서 그대로 읽은 진행자에게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용의자 앨런에 대해서도 “매우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며 “그는 정말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했다. 다만 자신이 직접적인 표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밝혔다. ◆ 캘텍 출신 용의자, 행정부 인사 겨냥 정황 수사당국은 총격 용의자 앨런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약 1000단어 분량의 문건을 확보해 범행 동기를 조사하고 있다. 미국 주요 외신들은 해당 문건에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을 겨냥한 정황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앨런은 캘리포니아주 토런스 출신의 31세 남성으로, 캘리포니아공과대학(캘텍)을 졸업한 이공계 배경의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산탄총과 권총, 흉기 여러 점을 소지한 채 워싱턴 힐튼호텔 보안검색대를 돌파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국에 따르면 앨런은 캘리포니아에서 열차를 타고 시카고를 거쳐 워싱턴으로 이동했다. 이후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이 열리는 호텔에 투숙한 뒤 행사장 인근에서 보안검색대를 향해 돌진했다. 비밀경호국 요원들은 앨런을 현장에서 제압했다. 이 과정에서 법집행관 1명이 총탄을 맞았지만, 방탄조끼 덕분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 “NFL이 영입해야 할 정도로 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비교적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앨런이 보안검색대를 향해 빠르게 돌진한 장면을 두고 “그는 45야드(약 41m) 정도를 내달렸다”며 “마치 NFL이 그를 영입해야 할 것처럼 달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경호원들이 자신에게 몸을 낮추라고 지시했지만, 처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려 했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싶었다”며 자신이 경호원들의 대피 지시에 곧바로 따르지 않아 “그들을 조금 더 느리게 만들었을 수 있다”고 전했다. 행사장에서는 총성이 들린 직후 비밀경호국 요원들이 단상으로 올라가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 주요 인사들을 대피시켰다. 현장 영상에는 경호 인력들이 대통령 주변을 에워싸는 장면이 담겼다. ◆ 총격 이후에도 정치 공방 번졌다 이번 사건은 미국 내 정치 폭력 논란을 다시 키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정치 테러가 역사적으로 반복돼 왔다며 “20년, 40년, 100년, 200년을 거슬러 올라가도 항상 존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민주당의 혐오 발언이 훨씬 더 위험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총격 사건을 계기로 미국 정치권의 책임 공방도 다시 불붙는 분위기다.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은 사건 직후 중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친 사람이 행사를 취소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만찬을 30일 안에 다시 열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총격범 문건을 둘러싼 논란과 CBS 인터뷰에서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격앙된 반응은 사건의 파장을 더 키우고 있다. 총격 현장의 긴박감은 경호 논란으로 번졌고, 용의자의 문건은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적·사법적 논쟁까지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 투자 격차·검경 수사 기획 호평… “전쟁 보도 해설 보완해야”[독자권익위]

    투자 격차·검경 수사 기획 호평… “전쟁 보도 해설 보완해야”[독자권익위]

    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제196차 회의를 열어 3월 한 달간의 서울신문 보도를 평가했다. 회의에는 김춘식(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위원장을 비롯해 박경환(서울시 재무국장), 이명행(SK하이닉스 PR기획팀장·변호사), 이상은(고려대 미디어학과 석사과정·교사), 차윤주(연세드림세무회계 대표·세무사), 홍정석(법무법인 화우 GRC그룹장·파트너 변호사) 위원이 참석했다. 위원들은 3월 한 달간 기획기사 비중이 크게 늘었고, 사회·정책·경제 전반에서 구조적 문제를 짚어낸 보도가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특히 자산 격차 문제를 다룬 ‘투자격차’ 기획 시리즈와 검경 수사 구조 변화를 짚은 보완수사·전경예우 기획은 현안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정책적 함의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과학·정책 분야 기사에서도 실생활과 연결되는 사례를 발굴하며 독자 접근성을 높였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다만 전쟁 등 국제 이슈 보도에서는 단순 사실 전달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아 해설과 맥락 제시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음은 위원들의 주요 의견. 홍정석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전쟁 국면 유가·환율 기사 인상적신중한 표현·전후 맥락 설명 필요3월은 전쟁 이슈가 지면 전반을 관통한 시기였던 만큼 관련 보도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보도량은 충분했고, 전쟁 장기화 국면에서 유가 상승이나 환율 변동 등 경제적 파급효과를 다룬 기사들은 인상적이었다. 특히 물가와 금융시장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지점을 짚어낸 보도는 시의성과 실용성을 모두 갖춘 사례로 평가된다. 전쟁이라는 거시적 사건을 민생과 연결해 설명하려는 시도는 독자 이해를 돕는 방향에서 의미가 있었다. 다만 전반적으로 외신 인용 중심의 사실 전달 보도가 많아 독자적인 해석이나 분석이 부족한 점은 아쉬웠다. 일부 기사에서는 근거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은 채 긴장감을 부각하는 표현이 사용되거나, 특정 발언을 따옴표로 강조하는 제목이 반복돼 독자에게 불필요한 공포감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전쟁 보도는 체감하기 어려운 만큼 보다 신중한 표현과 함께 맥락 설명이 필요하다. 외신 의존도를 줄이고 국내 산업과 기업, 가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등 서울신문만의 시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차윤주 연세드림세무회계 대표‘투자 격차’ 기획 전체 설계 돋보여주거 안정 칼럼, 공익·실효성 갖춰이번 달은 전반적으로 기획기사의 완성도가 높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2026 투자 격차 리포트’ 시리즈는 개별 기사 완성도를 넘어 연재 전체의 설계가 돋보였다. 3월 24일자 10면 “영국은 취약층에 투자 자문 바우처… ‘모두의 성장’ 기회 넓혀야” 좌담회 기사는 기존 시리즈 첫 회의 문제 제기에서 해법 제시로 나아가면서 시리즈의 완성도를 높였다. 수익률 격차를 넘어 행동 격차와 정보 격차, 제도 개선 필요성까지 논점을 확장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오피니언에서는 3월 26일자 27면 ‘[데스크 시각] 강남 아파트값, 강북 전셋값’과 3월 17일자 27면 ‘[열린세상] 서울 아파트값만 오르는 이유’ 역시 단순 가격 흐름이 아닌 주거 안정 문제를 중심에 놓고 접근한 점이 의미 있었다. 특히 전세난과 실거주 환경을 중심으로 용적률 상향이라는 구체적 정책 대안을 제시한 칼럼은 공익성과 실효성을 동시에 갖춘 보도로 평가된다. 다만 일부 단일 기사에서는 아쉬움이 드러났다. 3월 13일자 20면 ‘서초, 3년 연속 자살률 최저… 마음편의점·안심고시원 통했다’ 기사는 자살률이라는 민감한 지표를 ‘최저’와 ‘통했다’는 표현으로 성과처럼 소비하고 있다. 자살은 사회적 비극의 지표인 만큼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며, 국가 전체 자살률 상승이라는 맥락도 함께 제시했어야 했다.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쓰는 방식에서 벗어나 정책의 한계와 구조적 문제를 함께 짚는 비판적 보도가 필요하다. 이상은 고려대 미디어 석사과정‘청년 행복 정책’ 기획 시의성 높아학생 경험 충분히 안 담겨 아쉬워3월 12일자 1면 ‘청년이 행복하게 정책 해법 찾는다[청년, 지역의 내일을 만들다]’ 보도는 시의성이 높고 문제의식도 분명했다. 또 3월 13일자 10면 ‘‘저출생’ 학령인구 감소에, 5년 만에 꺾인 사교육비’라는 상반된 흐름을 함께 제시한 기사는 교육 현실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며 설명과 해설이 잘 결합된 사례로 평가된다. 2월 10일자 B1면 ‘夜! 내일 새벽도 늦어… 이젠 당일배송 전쟁’ 기사 역시 사례 나열을 넘어 경쟁 심화의 구조적 배경과 영향을 함께 설명해 완성도가 높았다. 사례·구조·영향이 연결되는 흐름이 잘 드러난 기사로 이러한 방향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 다만 정책 중심 서술에 치우치면서 실제 학생이나 청년 당사자의 경험과 목소리가 충분히 담기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청년 정책 기사에서 개인 서사가 부족해 정책 필요성이 추상적으로 전달될 가능성이 있다. 정책 기사일수록 사용자 경험과 구조적 분석을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 박경환 서울시 재무국장‘1만人’ 기획 등 인재 양성 방향 제시보완수사 기사도 제도 쉽게 풀어내3월 보도에서는 정책과 과학, 사회 분야에서 실질적 시사점을 제공하는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특히 3월 3일 4면 ‘38세 늦깎이도, 이민자도 OK… ‘퍼스트 펭귄’ 키우는 美장학금[초격차 과학인재 1만人 프로젝트]’와 3월 9일자 8~9면 ‘교실이 곧 연구실... SSH, 이공계 떡잎부터 키운다’는 미국과 일본 사례를 통해 과학 인재 양성 방향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점이 인상적이었다. 4면 박스기사 ‘나는 LA의 택시 운전사… 취미는 3D 프린터 조형입니다’처럼 공공도서관 사례는 정책적으로도 참고할 만했다. 3월 19일자 10면 ‘“추행” “장난”… 덮일 뻔했던 성폭력, 보완수사로 억울함 풀었다’ 기획은 보완수사 제도의 의미를 쉽게 풀어낸 점이 돋보였고, 3월 23일자 19면 ‘10만 인파 BTS 컴백 공연, 안전사고 ‘0’’ 기사 역시 현장 노력과 공공 역할을 잘 드러냈다. 다만 일부 기사에서는 비교와 맥락 설명이 보완될 필요가 있다. SSH 기사처럼 해외 사례를 소개할 때 우리나라와의 차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면 정책적 시사점이 더 분명해졌을 것이다. 과학 기사인 2월 26일자 16면 ‘푸른빛 무대 위 바이올린 선율 시리게 들렸다’ 역시 국내 사례를 함께 제시했다면 이해도가 높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정책 기사에서도 후속 보도를 통해 실제 작동 방식까지 이어지는 설명이 필요하다. 이명행 SK하이닉스 PR팀장전쟁 보도 하루 평균 9건 이상 충분칼럼 통한 판단 틀 제공도 긍정적3월 전쟁 보도는 양적인 측면에서 충분한 수준이었다. 한 달 동안 ‘이란·미국·전쟁’ 키워드 기사만 193건에 달해 하루 평균 9건 이상 보도되며 상황 파악에 필요한 정보 제공은 부족하지 않았다. 초기 외신 인용 중심 보도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세종로의 아침’, ‘노정태의 뉴스 인문학’ 등 칼럼을 통해 판단의 틀을 제공하려는 시도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다만 해석과 맥락을 제공하는 보도는 부족했다. 3월 6일자 1면 사진 ‘어뢰로 이란 전함 격침’은 상징성은 있었지만 군함이 왜 스리랑카 인근 해상에 있었는지 등 핵심 맥락 설명이 부족했다. 3월 5일자 사설 ‘해외 두뇌들 제 발로 찾아오게’ 역시 관련 기사로 확장되지 않아 독자가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전쟁 보도는 외신 전달을 넘어 국내 영향과 의미를 재해석하는 방향으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 또 3월 27일자 ‘K-과학인재 아카데미 비전선포식’ 기사에서는 ‘초격차’라는 주제에 맞춰 학생들 사진을 1면에 내세웠다면 기사의 밝은 느낌을 살릴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김춘식 한국외대 교수‘전경예우’ 기사 새로운 현상 짚어역사·AI 칼럼 등도 새 해석 틀 제시3월 보도에서는 기획기사의 완성도가 높아진 점이 돋보였다. 특히 3월 24일자 10면 ‘2026 투자 격차 리포트: 투자도 포용 금융을’은 투자 격차 문제를 정책적 과제로 확장하며 현실 진단과 대안을 함께 제시한 점에서 의미가 컸다. 3월 17일자 12면 ‘전경예우’ 기사 역시 5대 로펌을 직접 취재해 새로운 현상을 짚어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김정인의 역사프리즘’, ‘모종린의 문화로 읽는 AI시대’ 등 칼럼도 새로운 해석의 틀을 제시했다. 다만 외신 인용 기사와 일부 지면 구성에서는 보완이 필요하다. 2월 24일자 ‘인구 붕괴 위기의 우크라…전쟁 4년 만에 1000만이 사라졌다’는 원 출처와 다른 프레임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영국 가디언지의 원래 기사는 희망적인 프레임이었다.
  • “전체 학교 10곳 중 8곳에 상담교사… 학생 자살률 30% 급감”

    “전체 학교 10곳 중 8곳에 상담교사… 학생 자살률 30% 급감”

    SNS 통한 비교·입시 강박 짓눌려불안한 가정 환경이 가장 큰 요인예방~사후관리 대책 ‘그립’ 구축상담교사↑… ‘긴급 위기지원단’도‘우리 애는 괜찮다’ 부모 인식 문제자살의 71%가 ‘정상군’ 분류 학생돌보는 교사들 마음건강도 중요맞춤형 심리 상담·치유 휴식 제공‘상대평가’→‘자기 성장’ 교육으로AI시대 협력·문제 해결 능력 초점 “학생들은 많은 경우 자신이 ‘쓸모 없는 존재’라고 여길 때 위험에 빠집니다. 학생들에게 모두 ‘가치 있는 인간’이라는 걸 알려주고 제대로 보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은 2024년 첫 취임 당시 최우선 중점 사안으로 ‘학생 마음건강’을 꼽았을 정도로 정신건강 문제에 진심이다. 취임 이후엔 매번 교육감실로 올라오는 자살 학생들의 ‘사안보고서’를 하나 하나 꼼꼼히 읽으면서 직접 원인을 분석하기도 했다. 정 교육감은 “보고서를 읽으면서 ‘교육청이 제대로 도와준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지난해 9월 ‘그립’(GRIP)이라는 종합 대책을 만들었다. 올해부턴 전문상담교사를 45개교에 추가로 배치하며 대응 강화에 나섰다. 현장의 ‘1차 방어선’인 전문상담교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마음 건강 대책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초등학교에 집중적으로 추가 배치해, 초·중·고 전체 학교 10곳 중 8곳에 배치를 마쳤다. 이러한 노력에 보답하듯 실제 올해 2월까지 집계된 자살 학생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0% 이상 급감했다. 지난해엔 자살 학생수가 전년 대비 27.5% 증가했었다. 정 교육감은 “서울시교육청이 생명존중과 자살 예방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갖는 만큼 현장에서도 정책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정 교육감과의 일문일답. -최근 학생들의 마음건강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는 원인은. “크게 보면 세 가지다. 첫째는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기술 환경변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노출된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둘째는 입시에 대한 보이지 않는 강박이다. 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가정 환경이다. 실제 위기 학생들을 분석해 보면 가정이 불안정한 경우가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사회적으로는 결혼과 이혼이 자유로워졌다고 이야기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엄청나게 큰 불안 요인이 된다.” -교육청 차원에서는 어떤 대응을 하고 있나. “‘마음 건강’과 ‘생명 존중’을 단순히 강조하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 정책으로 구현하고 있다. 아무리 극단적인 환경이라고 해도 ‘사회적 보호망’이 작동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방, 조기 발견, 위기 개입, 사후 관리까지 이어지는 ‘종합적인 마음건강 시스템’(그립)을 구축했다. 교육청 단위에선 처음으로 시도된 종합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나. “첫 번째는 상담 체계다. 현재 대부분 학교(80.3%)에 상담교사가 배치돼 있다. 지난해에 비해 45명 늘렸다. 초등학교(28곳), 특성화고(16곳)의 상담교사가 크게 늘었다. 2029년엔 ‘1학교 1상담교사’ 체계를 완비할 계획이다. 두 번째는 위기 대응 시스템이다. ‘긴급행동 위기지원단’을 구성해 올해 강동구와 송파구에서 먼저 시범사업을 할 예정이다. 자살 시도 등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시 개입하고, 병원과 연계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구조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을 것 같다.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는 학부모 인식이다. 학교에서는 위기 학생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학부모가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아이는 내가 제일 잘 안다’며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인식 차이로 인해 개입 시기를 놓치면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 실제 ‘학생 정서·행동 특성 검사’에서 정상군으로 분류된 학생들의 자살 시도도 늘고 있는 만큼 학부모의 신뢰가 중요하다. 정상군에서 발생한 자살 사건은 지난해 71.0%에 이른다.” -학생들과 동고동락하는 교사들의 마음건강도 중요한 것 같다. “맞다. 교사가 건강해야 학생을 제대로 보살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교사들이 악성 민원이나 과중한 행정 업무로 인해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교사의 마음 건강이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개인별로 맞춤형 심리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선생님들 상담건수는 2024년 연간 2838건이었지만, 2025학년도엔 상반기에만 3060건을 기록했다. 학교 현장을 잘 아는 ‘마음닥터’(정신의학과 전문의)도 확보했다. 정신과 진료비 30만원도 올해부터 새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2박 3일 제주도 여행, 진관사 템플스테이 등 치유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실제 참여한 교사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아 앞으로 여러 종교 기관들과 협력해 이러한 프로그램을 늘릴 예정이다.” -입시 중심 교육 구조가 학생들의 정신 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지적도 있다. “상대평가 중심의 교육은 친구를 협력 대상이 아니라 경쟁자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런 구조는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크게 증가시킨다. 그래서 ‘자기 성장’ 중심으로 교육 문화를 바꿀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객관식 평가를 서·논술형으로 전환하고, 내신과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겠다. 평가의 패러다임을 ‘남보다 잘하는 것’이 아닌, ‘무엇을 할 줄 아는가’로 바꾸는 거다. 학생들이 등급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꽃피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의대 쏠림 현상과 이공계 기반 약화가 계속 문제로 지적된다. STEM 교육을 강화할 방안은 뭔가. “수학, 과학, 융합 교육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K-STEM’을 추진 중이다. 실생활에서 수학·과학적 사고가 왜 중요한지를 가르치려고 한다. 아이들이 좋은 실험 기자재를 바로 빌려 쓸 수 있도록 ‘교구 공유 은행’(K-STEM Bank)을 만들었다. 또한 여러 과학 탐구를 중점적으로 할 수 있는 학교들을 운영 중이다. 과학고가 3곳, 과학중점학교가 22곳, 과학 중점 방과후교실을 운영하는 학교가 85곳 있다.” -향후 서울시 교육 정책의 방향은. “AI 시대에 맞는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지금까지의 교육이 단순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이었다면 이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AI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고유한 역량, 즉 창의력과 공감 능력이 더욱 중요해진다. 그래서 역량 기반 교육, 학생 성장 중심 교육으로 가려고 한다. 학생들이 서로 협력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통해 성장해야 한다. 시민들이 맡겨준 교육감으로서의 책무에 우선 최선을 다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향후 두 번째 임기 때 학생 마음건강과 K-STEM 등의 정책에서 더 많은 성과를 내고 싶다.”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은 1957년 전북 익산 출생인 정 교육감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5년 전남대학교 사회학과에 전임강사로 부임하며 교육자로서 첫 발을 뗐다. 서울대 사회학과에 교수로 복귀해 사회학 연구와 교육 활동을 이어갔다.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교토대, 시카고대, 베를린 자유대 등 세계 굴지의 교육기관에서 방문교수로 일하기도 했다. 전쟁과 냉전, 민주화운동 등을 중점적으로 연구한 그는 여러 정부에서 공직을 맡았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지냈고, 이명박 정부 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장관급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024년 치러진 서울시 교육감 보궐선거에서 처음으로 선출직에 도전해 당선됐다.
  • [기고] 농생명 기초학문의 마지막 보루

    [기고] 농생명 기초학문의 마지막 보루

    지난해 7월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은 기술 패권 시대에 한국이 직면할 암울한 미래를 경고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중국이 기술 굴기를 위해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는 사이 우리나라는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전략 기술 분야보다 ‘의사’와 같이 국가 면허로 보호받는 직종에 상위권 인재가 매몰되는 기형적인 현상이 심화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올해 일부 고득점 수험생이 컴퓨터공학과를 선택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기도 했으나, 장기화한 의정 갈등 속에서도 이러한 ‘의대 쏠림’의 큰 흐름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제 서울대 이공계 박사과정 대학원 진학률이 미달 수준인 1대1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은 더이상 놀라운 뉴스조차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공계 분야의 소외 학문인 농업생명과학계열은 어떤 상황인가. 인류는 기후 위기와 식량 안보, 인구 절벽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농생명 산업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으나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매우 엄중하다. 십수 년 전 수도권 사립대의 농과대는 폐지되거나 이름이 바뀌었고, 그나마 남아 있던 농학 분야 전공도 폐지됐거나 모집 인원이 크게 축소됐다. 거점 국립대의 대학원 연구실은 외국인 학생들로 채워진 지 오래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도 예외가 아니다. 스마트팜과 생명공학을 이용해 기후변화와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자 입학했던 신입생 중 20% 가까이가 2학년 전공 진입 시기에 의약학계열 진학을 위해 자퇴하며 학문 후속 세대 단절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비인기 분야에 흔히 있는 현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학부 연구생 제도의 도입과 활성화가 그 열쇠다. 학부 연구생 제도는 학생이 지도교수의 과제에 직접 참여해 대학원생과 공동 연구를 수행하며 실험 데이터 분석 등 실질적인 연구 과정을 경험하게 하는 제도다. 이는 학부 1~2학년의 기초 이론 교육과 대학원 심화 연구 사이의 간극을 메워 주는 ‘완충 역할’을 하며 학생들이 전공에 대한 흥미를 잃고 이탈하는 것을 막는 핵심 중추가 될 수 있다. 실제 일부 대학은 자체 예산을 투입해 이 흐름을 방어하고 있으나 재정이 열악한 지방 거점 국립대들은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 거점 국립대를 대상으로 한 시범 사업을 시작으로 전국의 농학계, 나아가 전체 이공계로 확산하는 단계별 로드맵이 필요하다. 이러한 지원은 그린바이오, 스마트팜 등 국가 전략 산업의 인재 파이프라인을 조기 확보하고 식량 안보와 기술 주권을 수호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또한 소멸 위기의 지방대가 단순히 장학금만 주는 곳이 아닌 ‘연구 커리어를 만들어 주는 대학’으로 거듭나 지역 연구개발(R&D) 생태계를 되살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론과 실습의 간극을 해소해 실무형 창의 인재를 육성하고 대학원 진학의 마중물 역할을 수행할 때 비로소 우리 농생명과학의 미래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강병철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학장
  • “100번 실패해도 101번째 성공하도록… K과학에 과감 투자를”[초격차 과학인재 1만人 프로젝트]

    “100번 실패해도 101번째 성공하도록… K과학에 과감 투자를”[초격차 과학인재 1만人 프로젝트]

    위기보다 비전 보여 줄 때유학 가지 않아도 좋은 연구 가능단기 성과 없다고 흔들려선 안 돼젊은 인재에겐 보상 메시지 필요정부가 K과학의 잠재력 믿어 달라100번의 실패도 과정일 뿐재미와 끈기가 연구자의 원동력실패할 때 얻은 정보가 성공 불러해외 연구자들과 ‘네트워킹’ 중요인재 유입시킬 인프라 고민해야 “과학의 위기를 강조하기보다 한국 과학기술의 발전상과 비전을 보여주세요.” 우리나라에서 노벨과학상에 가장 근접한 후보로 꼽히는 박남규(66)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종신석좌교수는 ‘K과학’의 수준은 이미 크게 성장했기에 기술·과학계 인재 육성을 위해 정부의 참을성 있는 연구 투자가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기술·과학계 후배들에게는 100번의 실패는 101번째 성공 확률을 높이는 길목일 뿐이라며 재미와 함께 ‘끈기’를 강조했다. 차세대 고효율 태양전지인 페로브스카이트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박 교수를 지난 12일 경기 수원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세계가 한류에 열광하나 K과학의 국제화는 멀어 보인다. 한국 과학기술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강점은 분명하다. 내가 대학원을 다니던 1980~90년대에는 한국 과학자가 사이언스나 네이처 논문 하나만 내도 언론이 떠들썩 했다. 지금은 한국 과학자들이 이런 논문을 내는 사례가 많다. 굳이 외국에서 유학하지 않아도 토종 연구자들이 국내에서 충분히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왔다. 정부가 꾸준히 연구·개발(R&D) 투자를 하고, 연구자들도 그만큼 잘한다. 다만, 가시적 성과가 바로 안 보인다고 쉽게 흔들려선 안 된다. 과학자 우대 분위기도 충분하지 않다. 과학자들은 믿고 맡기면 잘한다. 정부는 그 잠재력을 믿고 장기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기업도 사회 문제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R&D 지원에 나서야 한다.” -몇 년 전 갑작스러운 정부의 R&D 예산 삭감이 과학기술계에 충격이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학기술 분야는 경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맞다. 동시에 ‘최초의 기술’을 내놓을 수 있는 분야도 지원이 필요하다. 연구자가 ‘이건 아무도 안 한 최초의 기술이나 한번 해보겠다’고 제안하면, 평가를 거쳐 가능성이 있다면 과감하게 밀어줘야 할 필요가 있다. 단기 성과만 요구하지 말고 5~10년짜리 장기 지원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2000년대에 들어 일본이 노벨과학상 수상을 많이 한 이유 중 하나도 1970년대에 기초 연구를 비교적 자유롭게 하도록 지원했던 경험 때문이라고 들었다.” -과학 연구에서 ‘국제 네트워킹’의 중요성에 대해 항상 강조해왔다. “국제 네트워킹은 단순히 공동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연구실에만 있으면 연구 분야의 메가 트렌드(큰 줄기)가 어디로 가는지, 앞으로 무엇이 중요해질지 알 수 없다. 해외 연구자들을 만나고 대화해야 지금 세계에서 어떤 연구가 진행되는지, 내가 뒤처진 건 아닌지, 방향을 잘못 잡은 건 아닌지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국제 네트워킹은 정보 싸움이다.” -이공계 위기에 대한 우려가 크고 우수인재의 의대 쏠림에 대한 걱정도 많다. “이공계 위기나 우수인재의 의대 쏠림이라는 식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거꾸로 말하면 ‘우수한 인재는 이공계로 가고, 의대에는 덜 우수한 사람이 가야 한다’는 건데, 말이 안된다. 우수한 인재는 의대도 가고, 이공계도 가야 한다. 문제는 위기를 조장하는 분위기이다. 이러면 학생들도 ‘위기라는데 왜 내가 거길 가야 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과학의 위기를 강조하기보다 한국 과학기술의 발전상과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열심히 하면 보상이 있다’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해외 우수 인재나 외국의 한인 연구자를 국내에 유치할 방법은 뭘까. “연구 환경도 중요하지만, 연구 외적인 생활 환경도 정말 중요하다. 정부가 고가 연구 장비나 연구비를 지원하지만 우수 인력은 돈만으로 오지 않는다. 박사후연구원이나 외국 연구자들이 한국에 와서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주거 환경, 학교 인프라, 생활 편의가 필요하다. 일본이 우리보다 급여 수준이 크게 높지 않은데도 인재를 끌어오는 것은 생활 인프라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대학 주변이나 학교 안에 거주 시설이나 방문 연구자용 시설 등을 더 잘 갖춰야 한다. 연구실의 현대화도 필요하다. 아직 노후화된 연구실이 많고, 안전이나 동선이 비효율적인 곳도 많다. 해외 대학의 경우 연구실이 훨씬 현대적이고 안전하다. 대학 안팎에 연구자들이 머물 호텔급 시설까지 갖춘 곳도 많다. 그런 인프라를 지방자치단체와 대학, 정부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인공지능(AI) 시대에 기초과학과 연구 환경은 어떻게 변할까. “새로운 소재를 찾고, 새로운 기술 방향을 정하려면 방대한 데이터를 다뤄야 하는데, 사람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특히 재료 분야의 데이터베이스는 바이오나 신약 분야만큼 잘 축적돼 있지 않다. 그래서 로보틱스를 활용해 빠르게 실험하고, 양질의 데이터를 모으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AI를 활용하는 방식이 중요해질 것이다. 그렇게 하면 원래 5~6년 걸릴 신소재 개발도 훨씬 빨라진다. AI는 기초과학에서도 필수적이다. 다만 현재 상용화된 AI를 그냥 가져다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신소재를 개발하려면 그 분야에 특화된 AI 툴이 필요하다. AI 툴을 만드는 쪽과 실제 그 툴을 쓰는 연구자 사이에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국내 최초로 종신 석좌교수에 임명됐는데. “정년을 맞기 전까지는 죽을 때까지 연구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서 종신 석좌교수를 하라니 부담도 되고 겁도 났다. 이전에는 평생 연구만 하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해야 하지’라는 고민이 생겼다. 했던 연구를 계속 업데이트해야 할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연구를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됐다. 책임감이 더 생겼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 등도 종신 연구자 제도를 만드는데 우수 과학인재 유치에 도움이 될까. “도움이 된다. 미국에서는 우수 연구자에게 65세 이후에도 강의, 연구 등을 이어갈 수 있는 ‘테뉴어 제도’를 운영한다. 우리도 단순한 정년 보장보다 미국식 테뉴어 제도를 도입하면 좋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세대 순환을 막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럽다. 윗사람이 계속 연구를 하고 싶다고 해서 자리를 오래 유지하면 새 연구자들이 들어올 자리가 줄지 않겠나. 좋은 제도이지만 조심해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 -어떻게 태양전지에 관심을 갖게 됐나. “우연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원자력 쪽에 관심이 있었는데,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 연구소에 입사했는데, 학사 학위만으로는 지식의 한계를 느껴 대학원에 진학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모르는 걸 알게 되는 즐거움, 새로운 걸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래서 박사까지 했다. 박사 시절 연구 주제는 초전도체였는데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하는 동안 우연히 염료감응형 태양전지를 접하고 연구했다. 그러던 중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됐다.” -실패도 많았다던데 과학자에게 ‘실패’란 어떤 의미인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갈 때 ‘실패’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존 기술을 개선하다가 안 되면 실패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전혀 가보지 않은 길이라면 그건 실패라기보다 탐색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연구자는 실패를 많이 할수록 얻는 정보도 많아진다. 한두 번 안 되는 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100번 시도해서 안 됐다면, 그 100번 동안 엄청난 정보를 얻은 것이다. 그럼 101번째에는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그래서 100번의 실패도 실패라고 볼 수 없다.” -앞으로는 어떤 연구를 하고 싶나. “지금의 태양전지 원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원리를 찾고 싶다. 또 이산화탄소 전환 기술에도 관심이 있다. 이산화탄소를 다른 유용한 탄소화합물이나 고분자로 높은 효율로 전환할 수 있는 기술을 찾는다면 기후위기 대응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외 실리콘 반도체를 뛰어넘는 새로운 반도체 물질을 찾고 싶다. 지금보다 더 유연하고, 집적도가 높고, 만들기 쉽고, 사람들에게 편리한 새로운 반도체가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있다.” -평생 과학자로 살게 된 동력은. “재미인 것 같다. 연구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재미다. 여기에 끈기가 하나 더 붙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결과가 돌아온다고 생각해야 한다.” ■ 박남규 교수는 ▲1960년 경남 마산 출생 ▲서울대 학·석·박사 ▲프랑스 ICMCB-CNRS 박사후 연구원 ▲미국 국립 재생에너지 연구원(NREL) 박사후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선임·책임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태양전지센터장 ▲성균관대 화학공학·고분자공학부 교수 ▲2018년 호암상 공학상 ▲2024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 인재와 미래의 초연결… 26일 한국 과학 백년대계 열린다 [K-과학인재 아카데미 비전선포식]

    인재와 미래의 초연결… 26일 한국 과학 백년대계 열린다 [K-과학인재 아카데미 비전선포식]

    노벨상 수상자들도 한자리에… 이공계 기피 넘을 해법 찾는다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과학·기술 인재의 육성 방안을 모색하는 ‘호반그룹과 함께하는 K-과학인재 아카데미’가 오는 26일 첫발을 내딛는다.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의 슬로건은 ‘미래를 짓고, 인재를 잇다’다. 호반그룹과 호반장학재단이 주최하고 서울신문과 전자신문이 주관한다. 학계·산업계·교육계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과학 인재 육성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호반그룹과 서울대는 로봇과 함께하는 K-과학인재 아카데미업무협약(MOU)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예비 과학 인재들이 연구 경험을 넓힐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한다. 이번 행사는 국가적 난제로 떠오른 이공계 기피와 의대 쏠림 현상을 극복하고 정부의 과학기술 인재 육성 정책에 발맞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201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랜디 셰크먼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분자생물학과 교수와 2025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오마르 M 야기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화학과 교수 등 국내외 석학들이 기조강연 등을 통해 과학기술 인재 양성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 밖에 인공지능(AI) 로봇과 함께하는 포토존 등 풍성한 볼거리로 흥미로운 과학기술을 만날 수 있다. 국내외 과학기술계 교수, 연구자, 학생 등의 뜨거운 관심 속에 열리는 이번 행사는 오전 9시 30분에 공식 행사를 개막한다. 이어 MOU 체결식이 열리며 기조강연, 패널 토의, 콘퍼런스, 타운홀 미팅 순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미래를 만드는 연구는 무엇인가’라는 대주제로 진행되는 첫 번째 기조강연 세션에서는 셰크먼 교수가 ‘파킨슨병을 기초과학으로 해결하기’를 주제로 강연한다. 셰크먼 교수는 세포 내 단백질 수송 메커니즘을 유전학적으로 규명해 세포 단백질 운반 시스템 이해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과학자다. 이어 야기 교수가 녹화 강연을 통해 ‘미래를 만드는 기초과학’을 주제로 발표한다. 야기 교수는 금속·유기 골격체(MOF)를 개발해 새로운 다공성 재료 설계에 혁신을 가져온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연구자다. MOF는 이산화탄소 포집이 가능해 기후위기 대응에도 활용될 수 있다. 두 노벨상 수상자의 기조강연을 관통하는 공통 키워드는 ‘기초과학’이다.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이 필요한 기초과학 분야의 열악한 연구 환경과 처우 문제는 과학기술 인재들이 연구 현장을 떠나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 왔다. 이번 아카데미를 계기로 기초과학 인재들이 연구 현장을 떠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대한 논의가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 인재를 통한 국가 경쟁력 강화’를 주제로 열리는 두 번째 기조강연에서는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연단에 오른다. 장 교수는 AI 연구를 이끌며 차세대 과학 인재 양성과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 확장에 참여해 온 연구자다. 그는 이번 강연에서 ‘인공지능의 진화: 상징에서 몸을 가진 지능까지’를 주제로 발표한다. 이어 정연욱 성균관대 나노공학과 교수이자 양자정보연구지원센터장이 ‘양자 시대에 필요한 미래 인재의 역량’을 주제로 강연한다. 정 교수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선임·책임연구원을 거쳐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Boulder) 객원 박사후연구원을 지낸 연구자다. 그는 현재 초전도체 기반 양자정보처리와 양자소재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 다뤄질 주요 주제들은 서울신문 ‘K사이언스랩’이 두 차례 시리즈로 연재한 ‘초격차 과학인재 1만 명 프로젝트’를 통해 조명한 연구 생태계의 구조적 한계와 제도적 과제, 과학자를 대하는 사회적 위상 문제 등과 맞닿아 있다. 행사에서 교육계 관계자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며 이공계 인재 양성과 연구 환경 개선을 위한 제언을 내놓는다. K-과학인재 아카데미는 이번 행사를 시작으로 지속 가능한 과학 인재 육성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계획이다. 앞으로 과학기술 인재로 성장하고 있는 대학·고등학교 재학생들의 도전과 꿈을 응원하는 프로그램을 연중 운영한다. ■주최 : 호반그룹·호반장학재단 ■주관 : 서울신문·전자신문 ■장소 :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
  • 38세 늦깎이도, 이민자도 OK… ‘퍼스트 펭귄’ 키우는 美장학금[초격차 과학인재 1만人 프로젝트]

    38세 늦깎이도, 이민자도 OK… ‘퍼스트 펭귄’ 키우는 美장학금[초격차 과학인재 1만人 프로젝트]

    나이·인종 등 따지지 않고 장학금연구 독창성·인류 기여도가 우선“새로운 분야 시도하라는 말 들어”호반 장학생, UC어바인 박사과정“조건 없이 지원해야 깊은 연구 가능” 미국 캘리포니아주 테크 코리도어(샌프란시스코·실리콘밸리·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난 과학·기술자들은 수많은 장학금이 미국의 인재 육성 동력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구 지원금은 나이·인종·국적 등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연구 프로젝트의 독창성과 인류 기여도가 우선시된다. 캘리포니아대(UC)어바인에서 물리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크리스 곤잘러스(38)는 지난달 19일(현지시간) “38세에 공부를 시작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늦은 나이이기에) 책임감도 강하고, 교수와 동료 사이의 소통을 잘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멕시코 이민 가정 출신인 크리스는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 대신 미국 통신회사에서 인터넷 설비 기사로 일했다. 6년의 근무 기간 동안 인터넷 설비와 관련된 물리학 강의를 들으며 과학자의 꿈을 키웠고 2019년 대학에 진학했다.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인 크리스는 “미국 국립과학재단과 국립보건원의 장학금 제도가 잘 마련돼 있어 늦은 나이에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불안하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투자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항공우주공학 박사과정을 밟는 한해윤씨도 “한국에선 어느 정도 연구가 이뤄진 영역을 발전시키려 연구한다면, 미국에서는 연구 성과가 안 나와도 좋으니 본인의 아이디어로 연구하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씨는 “우주 분야의 주류가 아닌 소행성에 관심이 많은데, 우리나라에선 실용적이지 않은 주제라 연구에 펀딩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며 “이와 다르게 미국에서 연구 후원을 받을 때는 ‘소행성과 같이 아예 새로운 분야의 연구를 시도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캐나다 출신 해나 루포(22)는 학부에서 법의학을 전공한 뒤 화학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진학해 화학과 범죄 간의 연계성을 연구할 계획이다. 그는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학문일수록 접목하면 더 큰 시너지가 날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장학금·투자 제도는 연방정부, 주정부, 학교, 기업, 민간 재단 등 사회 전 분야에 촘촘하게 퍼져 있는 연구 안전망이다. 미국 역시 자금을 지원받으려는 경쟁이 치열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지원 규모가 압도적인 세계 1위인 데다 지원 시스템도 다양하다. 정순조 칼텍 항공우주공학 교수는 “칼텍은 규모가 작다는 것을 이점으로 살려 소수 정예 연구진에게 상대적으로 넉넉한 지원을 해 준다”며 “연구 분야가 희귀하고 실패 확률이 클수록 학교는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호반 장학생 9기로 UC어바인의 박사과정 5년 차가 된 김기민(33)씨는 “한국의 경우 5년 안에 논문이나 특허를 몇 개 내는지 정량적 평가가 중요하고, 그때그때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연구 주제의 유행이 뚜렷하다”면서 “반면 미국에서는 각 연구자가 관심사에 맞춰 자신만의 속도로 한 연구가 장기적으로 ‘퍼스트 펭귄’이 되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호반 장학제도처럼 조건 없이 학문 연구를 이어 갈 수 있게 지원해야 개인의 관심사에 따른 다양하고 깊이 있는 연구가 가능하다고 느꼈다”고 덧붙였다. 스탠퍼드대는 전공 무관 재학생들을 위해 이공계 학생들의 창업을 돕는 ‘스탠퍼드 기업가정신 양성 프로그램’(STVP)과 디스쿨을 운영하는데, 사무실에는 ‘당신이 실수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도전하지 않았다는 뜻’이라는 문구를 붙여 놓았다. 티나 실리그 STVP 명예교수는 “새로운 시도를 할 때 실패는 피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실패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며 “큰 실패로 이어지기 전에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작은 실험에서부터 시작해 결과를 보며 실패에 대한 데이터를 쌓는 게 핵심이다. 도전은 실패가 아닌 데이터”라고 강조했다. 민간에서는 ‘와이 콤비네이터’(YC)와 같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초기 스타트업 육성 조직)가 활발하게 활동한다. 에어비앤비 등 45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배출한 미국 최대 액셀러레이터 YC는 아이디어뿐인 초기 스타트업 창업 준비자에게 초기 창업 교육, 투자자·기업 등 네트워크 연결, 시장 전략 코칭 등을 제공한다. 지난달 26일 찾은 YC에서는 창업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YC 지원 인터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출신 학생들을 위한 현지 네트워크 조직도 있다. 캘리포니아주립대 풀러턴 캠퍼스공중보건학 부교수인 박보영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 남가주지부 회장은 “유색 인종에 대한 유리천장이 있는 미국 사회에서 한국 학생들이 자신의 연구를 편하게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으며 기성 학계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도록 ‘안전하게 실패하는 곳’으로 만드는 게 목표”라며 “작고 소소하게 자기 능력을 시험하고 아이디어를 선보일 기회를 다양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의대 막차 기회” “공대 인재 유출”

    정부가 향후 5년간 의과대학 정원을 3342명 늘리기로 하면서 교육 현장은 ‘의사 면허를 딸 마지막 기회’라는 기대와 ‘이공계 공동화’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학부모와 수험생들은 당장 내년부터 적용되는 이번 정책에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고교 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김숙영(50)씨는 11일 “4년 전 예고가 원칙인 대입 전형이 정치적 입맛에 따라 휙휙 바뀌니 혼란스럽다”며 “지역인재전형을 겨냥한 ‘주소 옮기기’ 편법 컨설팅까지 성행한다는 소문에 허탈하다”고 토로했다. 고1 딸을 둔 손희경(56)씨도 “5등급제 도입에 의대 증원까지 겹쳐 상위권 학부모들이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의사 경쟁력 하락을 점치며 공대로 선회하거나, 거꾸로 ‘의사 막차’의 기회로 보고 다시 입시에 뛰어드는 등 반응이 극명히 갈린다”고 했다. 상위권 이공대는 인재 유출의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의 한 사립대 공대 교수는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신입생들 사이에 ‘수능특강 펴라(수능특강 책 펴고 재수 준비하라)’는 말이 농담이 아닌 현실이 됐다”며 “주변 공대 교수들도 ‘반수하겠다는 제자들이 늘 것’이라고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학생들의 시각은 ‘지역 의사제’를 두고 갈렸다. 고3 노유민(18)군은 “지역 의대를 나와 서울로 오기 힘들다면 차라리 재수를 하거나 ‘SKY’ 일반과를 가겠다”고 말했다. ‘지역 의무 근무’ 조건이 수도권의 상위권 학생들에겐 기피 요인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반면 중3 이혜원(15)양은 “서울에서 자랐지만 의사의 경제적 이점이 확실하다면 평생 지역에서 일하며 살아도 좋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규모가 대폭 확대되는 만큼 의대 합격권 ‘커트라인’은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의대 증원 규모는 서울대 자연계 모집정원의 27.4%로 입시에 상당한 영향력 발휘할 것”이라면서 “의대 합격선은 수시 내신 성적 기준으로 최소 0.1등급 이상은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종로학원 분석에 따르면 2025학년도에 의대 정원 규모가 확대됐을 때도 합격자 커트라인이 내신 성적 기준 1.6등급에서 1.9등급으로 0.3등급 정도 하락했다. 일반전형은 최상위권 중심의 경쟁이 지속되지만 지역의사전형은 전략 지원으로 합격선이 ‘이원화’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027학년도는 현행 9등급제 내신과 통합수능이 시행되는 마지막 대입이기 때문에 상위권 자연계 학생들의 ‘N수’가 증가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서울의 한 자사고 입시 담당 교사는 “출생률이 높았던 황금돼지띠(2007년생) 수험생과 ‘불수능’ 영향에 의대 증원 변수까지 겹치면서 N수 폭증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여성 연구자 비율 ‘OECD 최하위’ 한국… 남성 중심 연구실 문화가 발목 잡았다

    물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30대 박모씨는 여성으로서 학업을 이어갈지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업계 종사자나 대학 교수들이 초청되는 세미나에 참석하면 연사 대부분이 남성이어서다. 박씨는 “한번은 박사급 강사 16명이 왔는데 여성은 1명뿐이었다”며 “공부를 더 한다고 과연 내 자리가 있을지 암담했다”고 전했다. 11일 한국여성과학기술인단체총연합회(여성과총)가 ‘세계여성과학인의 날’을 맞아 발표한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여성 연구인력 비율은 전체의 23.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6.3%)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 30개국 중 최하위(29위) 수준으로, 한국보다 여성 비율이 낮은 국가는 일본뿐이었다. 여성과총은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에서 학부, 석사, 박사로 이어지는 학업 ‘파이프라인’에서 여성 연구인력의 누수가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여성 연구인력 비율은 2019년 21.0%에서 2023년 23.7%로 2.7%포인트 증가했지만, 이 속도라면 OECD 평균 수준에 도달하는 데 22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유독 한국 과학계에 여성 인력이 적은 이유로는 연구실의 남성 중심 문화가 지목된다. 과거보다 여성 비율이 높아졌다고 해도 남성이 다수인 연구실에선 여성 연구자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엄미정 여성과총 정책위원장은 “일부 이공계 연구실에서는 성 관련 문제를 의식해 여성 연구자를 기피하는 성차별 현상도 나타난다”며 “여성과 업무를 볼 때 문을 열어두거나 표현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는 식의 반응도 있다”고 전했다. 과학기술 분야의 특수성도 있다. 이 분야는 특히 지식 주기가 짧아 휴직 기간이 길어지면 최신 연구 동향을 따라가기 어려운데, 석·박사과정을 마치는 시기와 결혼 및 출산 적령기가 겹치면서 여성 이탈 현상이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여성과총은 여성 과학기술인의 이탈률을 줄이기 위해 ▲박사과정·초기 경력 단계에서의 휴식기 지원 및 복귀 프로그램 ▲여성 연구개발(R&D) 참여 확대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과 성평등 교육 강화 등을 촉구했다.
  • MIT 석학의 K과학 일침 “제발, 왜냐고 묻고 또 따져라” [초격차 과학인재 1만人 프로젝트]

    MIT 석학의 K과학 일침 “제발, 왜냐고 묻고 또 따져라” [초격차 과학인재 1만人 프로젝트]

    “한국선 질문하는 훈련 너무 부족교수 향해서도 비판할 줄 알아야”“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필요 과학자도 연예인처럼 환호 받길”자신 향한 질문을 멈추지 마세요 대한민국의 중고등학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물리과 교수 최순원입니다. 중학교 이후 저는 스스로에게 묻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모험가를, 또 어떤 때는 발명가나 과학자를 꿈꿨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질문할수록 내가 원하는 삶의 윤곽은 조금씩 분명해졌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이 최우선이었습니다. 과학자와 공학자는 시대와 국경을 넘어 세상을 변화시켜 왔습니다. 몇 해 전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19 팬데믹을 인류가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 기술이었습니다. 수많은 과학자와 공학자의 집요한 연구 결과입니다. 이 순간에도 인공지능(AI), 정보통신, 생명공학, 로보틱스, 양자 정보와 같은 첨단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나 엔비디아의 젠슨 황 같은 이공계 출신 기업인들입니다. 저 또한 제2차 양자 혁명의 최전선에서 양자 과학기술이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게 제 꿈이자 야망입니다.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은 어떤 꿈을 좇고 계신가요? - 최순원 MIT 교수가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 쓴 편지 “한국 교육은 질문하는 훈련이 부족합니다.” 최순원(39)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는 지난달 20일 세종 아름동 복합커뮤니티센터에서 진행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학생들은) 교수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다. 과학적이고 비판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과학자가 연예인처럼 대접받는 한국을 꿈꾼다는 최 교수는 대전과학고와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캘텍)을 나와 하버드대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세계적 석학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학창 시절은 어땠나. “캘텍에 들어가서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에 봉착했다. 진로와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 과목당 숙제하는 데 10시간이 걸렸다. 일주일에 5과목을 들으니 주 50시간이었다. 살인적인 공부량이었다. ‘내가 진짜 물리를 사랑하나’, ‘직업으로서 물리를 할 수 있을까’ 등을 많이 고민했다.” -양자역학에 빠진 계기는. “캘텍은 다른 전공 과정을 필수로 수강해야 한다. 전자정보학을 듣고 ‘눈이 떠지는 느낌’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양자정보과학에 관심을 가졌고, 이 분야의 대가인 존 프레스킬 교수님을 무작정 찾아가 이력서를 내밀었다. ‘학부생과 연구하지 않는다’며 거절당했고 다시 몇번이나 찾아갔다. 낙심할 때쯤 (허락) 이메일이 와 있었다.” -만약 한국에 남았다면 진로가 달라졌을까. “지식을 덜 배우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내 경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간은 별로 없었을 것 같다. 한국과 미국 문화의 가장 큰 차이다. 한국에서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하면 무조건 성적 관리만 한다. 그런데 미국 학생들은 중간에 회사 인턴 등을 해보면서 대학원 진학이 적성에 맞는지 치열하게 고민한다.” -교육 시스템도 다른가. “예를 들어 한국의 실험 수업은 이론과 결과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실험 데이터와 이론이 맞지 않으면 틀렸다고 간주한다. 과학고 재학 시절에도 실험과 이론이 맞지 않으면 점수가 깎였다. 그런데 캘텍에선 애초부터 실험 결과와 이론이 맞지 않게 설계돼 있었다. 결과가 다르면 왜 그런지 분석하는 훈련을 시킨다.”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은 어떤가. “기술력은 전혀 부족하지 않다. 핵융합 기술은 한국이 압도적이다. 반도체 분야도 삼성전자 등 기업을 기반으로 우리나라가 거의 최고 수준이다. 한국 학생들이 외국에 오면 좋은 평가를 받는다. 부족한 점은 교수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다. 반항하라는 말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대학원 1학년·2학년 학생과 대화하면서 배워간다. 우리나라는 대학 교육에서도 질문하는 훈련이 부족한 것 같다. 단순히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다.” -국내 과학기술계에 대한 지원과 대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과학자는 국가를 살리기 때문에 국가에서 지원해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나는 100%는 동의하지 않는다. 과학자를 필요에 의해 지원하겠다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국가가 나를 원하니까 연구하지 않는다. 대부분 재미있어 연구한다. 하고 싶은 연구를 지원하는 게 효과적이다. 단순히 연구비를 더 준다, 월급을 올려준다는 식의 접근은 지속 가능성이 없다. 보수는 시장 논리로 형성되는데 어떻게 국가 지원금으로 해결하겠는가. 근본적인 문제는 가치관이다.” -가치관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교육으로 해결해야 하지 않겠는가. 초·중·고교 교육으로 올라가 보자. ‘너 장래에 뭐가 될래?’ 했을 때 직업 안정성에 대해서만 배워선 안 된다. 이제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인가.(웃음)” -과학기술을 골고루 끌어올려야 하는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가. “어려운 질문이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자생적인 커뮤니티가 형성되려면 일정한 규모, 즉 ‘볼륨’이 필요하다. 인구 규모를 고려할 때 한국은 모든 과학기술 분야에서 충분한 연구자 집단(커뮤니티)을 갖추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맞다. 그런데 기술 트렌드가 바뀌면 잘못된 선택이 된다. 지금은 AI가 화두인데 몇 년 후엔 양자가, 또 몇 년 후엔 바이오가 커질 수 있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보단 국내 연구 커뮤니티를 오픈해서 융합 전략을 취할 수 있다.” -어떤 융합인가. “선진국 (과학기술) 커뮤니티와 하나의 팀으로 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영국 혹은 독일의 과학기술 실력이 좋다는 것은 의미 없다. 유럽연합이 통째로 하나의 국가처럼 활동하니 과학 분야도 순환이 된다. 그런 식으로 우리나라의 커뮤니티를 열어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과 파트너십을 한다든지, 미국과 같은 강대국과 파트너십을 맺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꿈이 무엇인가. “과학자가 연예인이 되는 세상이다. ‘내 꿈이 과학자야’라고 했을 때 대접받는 세상이다.”
  • [마감 후] 과학 인재, 돈이 다가 아닌 이유

    [마감 후] 과학 인재, 돈이 다가 아닌 이유

    2000년대 초반 개교한 경기도의 A직업계고는 주변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민원을 자주 받았다. “학생들이 불량하고 면학 분위기가 없어 집값이 떨어지니 학교를 옮기라”는 내용이었다. 20여년이 지난 요즘 A고에 대한 여론은 뒤집혔다. 반도체 등 4차 산업에 특화된 교육과정을 도입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면서 학생들이 전공 탐색에 몰두하는 학교가 됐다. 취업률이 오르고 대내외 수상 실적도 쌓이면서 예전 같은 민원은 말끔히 사라졌다. 교육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만든 변화다. 하지만 A고에는 아직 무너지지 않은 심리적 장벽이 있다.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중학생 학부모들의 생각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고 이공계에 진학한 학생들도 편견을 마주한다. “수능 만점인데 왜 의대 안 가고 공대에 가냐”는 잔소리다. 2026학년도 대학 수시모집에서 의대에 합격한 학생이 국어 교사가 되겠다며 사범대를 선택한 사례도 화제가 됐다. 이들은 계속 비슷한 얘기를 들을 수 있다. 한국에서 의사가 가진 건 높은 소득과 사회적 위상, 즉 강력한 상징자본이기 때문이다. 최근 과학 인재 유출을 취재하며 만난 이공계 관계자들은 “의대보다 공대 졸업생 연봉을 더 주고 연구비 지원을 많이 하면 인재가 온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처우 개선 말고도 공통으로 강조한 것이 있다. 바로 사회적 인식의 변화다. 세계적인 반도체 업체에서 전문성을 쌓아 억대 연봉을 받고, 창업으로 신기술을 개발할 수 있어도 과학자가 매력적인 직업으로 인식되지 않으면 과학 강국은 없다는 얘기였다. 반면 미국과 중국에서는 과학자를 영웅으로 여기는 문화가 깊다고 한다. 중국은 과학이 발전해야 국가가 발전한다는 과학흥국 의식을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친다. 미국에선 과학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브레이크스루상’ 시상식을 열고 과학자들을 스타로 대접한다. 학계에 뿌리 깊은 한국 특유의 위계 문화도 개혁 대상이다. 같은 랩 안에서도 선후배 관계가 우선시되고, 진로와 취업 등 모든 권력은 교수에게 집중되어 있다. 경직된 문화는 대학원생들을 연구실에서 몰아낸다. 해외 체류 중인 연구자들은 “인프라나 네트워크도 중요하지만 연구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수평적인 분위기는 창의적인 연구에 꼭 필요하다”고 전한다. 대학 졸업장이 필수라는 인식도 넘어야 할 고정관념이다. 대학에 가든 가지 않든, 언제 대학에 가든 다양한 경로를 인정해야 한다. 올해 마이스터고를 졸업한 한 학생은 “실무 경험을 쌓고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할 때 대학에 가려 한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런 학생을 편견 없이 보는 시선이 우리에겐 아직 부족하다. 인공지능(AI) 발전에서 보듯 과학기술은 인간의 삶과 문화를 통째로 바꾼다. 하지만 역방향의 힘도 있다. 과학기술의 방향, 자원 배분, 보상의 틀을 만드는 건 문화다. 이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김지예 산업부 기자
  • “연봉도 정년도 모두 맞춰 줄게… K브레인 웰컴” [초격차 과학인재 1만人 프로젝트]

    “연봉도 정년도 모두 맞춰 줄게… K브레인 웰컴” [초격차 과학인재 1만人 프로젝트]

    中 영입 표적 된 K과학자… ‘연봉 4억원+α’ DM 쏟아진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인재들이 주요 선진국의 영입 표적이 되면서 인력 유출과 연구 공백에 대한 우려가 크다. 반도체·배터리·인공지능(AI) 등 전략 과학기술 수준은 높고, 인재가 성장할 커리어 패스가 빈약한 데다 양질의 일자리 부족, 낮은 처우, 연구 자율성 침해 등이 겹치면서 인재 영입 시장이 된 셈이다. 서울신문이 6일 ‘2025 한국과학상·한국공학상·젊은과학자상’ 수상자 등 과학기술계 우수 인재 10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8명이 해외에서 최근까지 직간접적으로 집요하고 치밀한 영입 제안을 받았다. 지난달 젊은과학자상을 받은 정예환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해외 기관에서 온 영입) 이메일에 반응을 보이지 않자 (구인구직 서비스를 제공하는) 링크드인을 통해 다이렉트메시지(DM)까지 보내더라”며 “교수의 역량이 드러나는 지표인 국제 학술지 논문과 인용 지수까지 일일이 확인하고 연락을 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학기술계 전반에는 이미 위기감이 짙다. 한국공학상을 수상한 한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교수는 “이틀에 한 번꼴로 해외 연구기관 등에서 파격적인 연봉을 조건으로 내건 ‘영입 제안’ 이메일을 받는다”며 “진지하게 이직을 고민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 보안 업무를 담당하는 김국태 카이스트 선임연구원은 “지난달에도 한 교수가 영입 제안 메일을 받아서 연구보안팀에 문의했다”고 전했다. 한 공과대학 교수도 “동료 교수들끼리 모이면 해외에서 영입 제안이 온 경험을 공유하는 일이 많다”고 했다. 이들은 해외 연구기관들이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사정을 명확히 파악해 약점을 파고든다고 설명했다. 신진 과학자에게는 파격적인 금전 보상을, 중견 연구자에게는 자율성과 안정된 연구 환경을, 은퇴를 앞뒀거나 은퇴한 연구자에게는 사실상의 정년 연장을 내거는 ‘맞춤형 영입 제안’을 한다는 것이다. 접근 방식도 다양하다. 중국의 경우 파견 프로그램이나 국제 콘퍼런스, 경연대회 형식을 빌린 ‘우회적인 접근’이 늘고 있다. 또 주로 전기·전자, 기계공학 분야를 전공한 연구자가 주요 영입 대상이지만 산업디자인 분야까지 접근 범위가 확대됐다는 얘기도 있었다. 신미경 성균관대 글로벌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는 “최근 젊은 교수들에게는 기관 이동을 직접 요구하기보다는 공동 연구를 제안하며 연구비 지원을 내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중국 칭화대에 재직했던 이우근 성균관대 교수는 “중국(정부)의 인재 유치 프로그램은 한국에 잘 알려진 천인계획뿐 아니라 만인계획, 치밍계획, 횃불계획 등 다양하다”고 전했다. 해외에서 영입 제안을 받은 연구자들은 대부분 “무시하려고 하지만 솔깃한 대목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젊은 연구자에게 전폭적인 자금 지원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김 선임연구원은 “연구비가 부족한 신진 연구자들이 해외에서 10억원 단위의 펀딩을 제시받으면 더 크게 체감할 수밖에 없다”며 “영입 제안 사례를 보면 결국 한국 과학기술 정책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지원금뿐 아니라 실험실·연구 인력 배정, 자녀 학교 입학 지원 등 정교하게 설계된 소위 ‘패키지 조건’이 연구자들을 흔든다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의 적극적인 구애에 해외 박사 취득 후 한국으로 돌아오는 젊은 과학자들도 줄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주요 과학기술인력 통계’에 따르면 해외에서 자연과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한국연구재단에 신고한 인원은 2019년 360명에서 2023년 259명으로 줄었다. 또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미국에서 과학·공학 분야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한국인 2550명 중에 절반이 넘는 1300명이 미국에 체류했다. 한국에서 소위 ‘나이 때문에 잘리는’ 시니어 연구자들은 연구를 계속하려 해외로 향한다. 한양대에 재직하다 2019년 중국 푸단대로 옮긴 이영백 교수는 “처음엔 중국 갈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퇴직 이후) 학교에 더 있기가 어렵게 돼 옮겼다”며 “한국에서는 정년을 맞으면 일을 아예 못 하는데 중국에선 이공계 연구에서 필수인 대학원생까지 배정해 준다”고 말했다. 서울과학기술대의 한 교수는 “시니어 연구자들을 붙잡으려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연구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학기술계 인재의 해외 유출 문제는 2024년 초 카이스트 교수 149명이 ‘중국의 글로벌 우수 과학자 초청 사업’이라는 제목의 동일한 이메일을 받은 것이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알려지며 조명됐다.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최초로 이 문제를 제기했고, 중국의 천인계획에 대한 대응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해당 이메일을 최초로 신고한 김광조(카이스트 명예교수) 국제사이버보안연구원장은 “인재 유출이 자칫 핵심 기술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최수진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이메일에는 연봉 최대 4억원 제공, 연 최대 2억원의 장려금 추가 지급, 주택·보험·자녀학업자금 지원 등의 내용이 나열돼 있었다. 국가정보원은 이후 이공계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을 조사했고, 650여건의 이메일이 국내 우수 과학기술 인재에게 발송된 것으로 파악했다. 연구 현장에선 인재 유출이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평가한 한국의 두뇌 유출 지수는 2020년 5.46(28위)에서 2023년 4.66(36위)으로 추락했다. 해당 지수가 0에 가까울수록 인재가 해외로 더 많이 나간다는 뜻이다. 한국 연구자들이 해외로 나가서 보여 주는 높은 역량은 더욱 뼈아픈 지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을 떠난 연구자들의 과학저널 기여도는 2022년 기준 1.69로 주요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미국과 같은 수치이며 프랑스(1.66)와 일본(1.55) 등 보다 높다. 장항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사람을 데려가는 것이 가장 빠르게 기술을 따라잡는 수단”이라며 “기술은 완성 단계에서만 나가는 게 아니라 연구개발(R&D) 과정 전반에서 새어 나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장렬 과학기술유공자지원센터장은 “해외 인재 유출은 열악한 우리 연구 현장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며 “연구비가 아니라 사람에게 투자하는 연구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국 귀환한 ‘양자 석학’…“투자 늘리고 자율성 주면 인재는 온다”

    한국 귀환한 ‘양자 석학’…“투자 늘리고 자율성 주면 인재는 온다”

    “한국도 최근 양자 분야에 대해 투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돌아온 이유입니다.” 지난해 12월 29일부터 대전 기초과학연구원(IBS) 트랩이온 양자과학연구단 초대 단장직을 맡은 김기환 단장은 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귀국 계기를 이렇게 밝혔다.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받고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미국 메릴랜드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거친 뒤 2011년부터 칭화대 물리학과 교수로 일한 김 단장은 양자 컴퓨터 등 다양한 양자 플랫폼 개발을 선도해 온 세계적인 연구자다. 김 단장은 “중국 과학기술 발전의 바탕에는 연구에 대한 지원과 자율성 보장이 있다”며 “한국도 과학자에 대한 대우와 인식이 나아지면 들어올 인재가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2011년 칭화대 물리학과로 간 계기는 “유럽과 미국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한 뒤 대학에서 일할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칭화대가 유일한 기회였다. 칭화대에서 양자 정보학 분야 연구센터를 만들면서 교수 자리가 생겼다. 미국과 유럽에서 많은 인재가 중국으로 유입되던 시기였다.” -중국의 연구 환경이 가진 강점은 무엇인가 “중앙정부 뿐 아니라 지방정부도 투자를 많이 한다. 분야 상관없이 기초부터 응용과학까지 연구 잘하는 학자들을 영입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검증된 젊은 학자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커뮤니티도 탄탄해졌다. 미국에선 연구 지원을 위한 초기정착금이 100만달러(약 14억원) 선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중국도 이 이상 지원한다. 장비를 구매하든 연구 인력을 고용하든 간섭이 거의 없다. 중국은 이공계를 중시하는 분위기 덕분에 훌륭한 학생도 대학에 많이 온다.” -투자가 빠른 성과로 이어졌다고 보나 “최상위 논문으로 평가하는 ‘네이처 인덱스’ 순위에서 중국이 지난해 미국을 처음 누르고 1위에 올랐다. 주요 대학에서 활발한 연구자들이 좋은 기반을 갖고 연구하기 때문에 나온 성과라고 본다. 경제가 좋지 않아도 국가를 위해 과학에 투자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안정적인 지위를 두고 한국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일단 좋은 연구 환경과 기회가 됐기 때문이다. 전에는 한국에서 내 전공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최근에 관심과 투자가 많아졌다. ‘양자 붐’이 오면서 내 분야에 대한 이해도 높아졌다. IBS에서 장기적으로 계획 중인 연구를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국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좋은 환경에서 시작한 연구들이 바람직한 선례를 남기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책임감을 느낀다. 또 독일의 ‘막스플랑크’ 모델처럼 주변 대학들과 교류하면서 교육과 연구가 함께 이뤄질 필요도 있다. 연구뿐 아니라 학생 지도까지 연결된다면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 대덕 연구실은 ‘외딴섬’… 행정 처리에 예산 따느라 진 뺀다[초격차 과학인재 1만人 프로젝트]

    대덕 연구실은 ‘외딴섬’… 행정 처리에 예산 따느라 진 뺀다[초격차 과학인재 1만人 프로젝트]

    여의도 15배 면적에 2900개 기관대학·연구소·기관 역할은 제각각尹정부 때 연구비 삭감이 직격탄단기 성과 힘든 기초과학은 뒷전“내가 연구자인지 행정담당인지…”“칼자루는 사실상 부처 사무관이” 이직자 대부분 기업보다 대학行처우보다 연구 자율성에 목말라 “대덕 특구 어디 어디 가시게요? 건물끼리 워낙 멀어서 버스로 다니기 어려울 텐데요.” 지난달 22일 대전 대덕 연구개발특구로 향하는 택시에서 기사로부터 들은 얘기다. 실제 이날 방문한 2개 연구소 사이는 차량으로 10분 정도 걸리는 불과 5.4㎞ 거리였지만, 버스는 한 번 갈아타야 했고, 연구소끼리 연결하는 셔틀버스도 없었다. 연구기관과 대학, 기업이 모인 거대한 ‘벨트’를 떠올리며 도착한 대덕 특구는 각각의 기관이 ‘외딴섬’처럼 고립된 듯한 인상을 주었다. 한 연구원은 “굳이 서로 오갈 일이 없고, 필요할 때만 내 차로 움직인다”고 했다. 이곳은 한때 ‘불 꺼지지 않는 연구의 메카’이자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상징’이었다. 1973년 출범해 반세기 동안 세계 최초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상용화를 이뤄냈고, 누리호 발사를 성공시키는 등 굵직한 성과를 쌓았다. 여전히 여의도(4.5㎢)의 15배에 달하는 67.8㎢ 면적에 총 2914개 기관(연구 분야 49개·기업 2803개 등)이 있다. 하지만 이제 이공계 대학원생과 취업 준비생들은 대덕 특구를 ‘연구개발직의 남방한계선’이라고 부른다. 한국 과학정책의 문제점과 답답함을 토로하면서도 경직된 조직문화 속에서 해를 입을까 두려워 소속을 밝히는 것도 꺼리는 연구원들은 갈라파고스에 외롭게 갇힌 것 같았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사태에 큰 타격을 받았다고 했다. 2023년 당시 대덕 특구에는 49개의 연구기관이 있었는데, 연구소는 물론 인근 지역 경제까지 휘청였다. 국책연구원에서 일하는 정모씨는 “연구원의 유일한 메리트(장점)가 연구의 안정성인데 예산 삭감으로 그마저 무너졌다”고 말했다. 인근 신성동에서 20년째 부동산을 하는 박모씨는 “예산 삭감 여파로 체험형 일자리가 덩달아 줄어서 방학 기간에 단기 월세방 수요까지 확 줄었다”고 했다. 연구비 삭감으로 연구 기관들은 비용 세부 규칙을 깐깐하게 변경했다. 국립연구소 연구원 김모씨는 “사람의 오감을 분석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연구원이 1만원대 이어폰이나 스피커조차 사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연구 성과를 내라면서 연구는 불가능한 구조로 만들었으니 현장은 크게 술렁였다고 했다. 또 연구원들은 “내가 연구자인지 행정 담당자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적잖이 했다. 한 정부 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인사팀 직원은 “대학은 조교가 행정 업무를 분담하지만, 출연연은 인력 활용에 한계가 있다”며 “(행정업무에 치여) 이럴 바엔 대학으로 옮기거나, 차라리 기업으로 나가겠다는 말을 주변에서 자주 듣는다”고 전했다. 연구에 대한 열정을 위축시키는 또 다른 요소는 ‘관료 통제’다. 연구의 자율성 및 독립성 보장을 내세웠던 대덕 특구의 설립 취지와 달리 현장에서는 정부의 입김이 지나치게 세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책연구원에 다니는 장모씨는 “연구 과제들이 대부분 바텀업(상향식)이 아닌 탑다운(하향식)으로 내려온다“며 ”칼자루는 사실상 정부 부처 사무관이 쥐고 있다“고 했다. 결재선을 거치면서 정부 부처 과장·국장·차관의 한마디에 연구 방향이 수정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는 “아예 과제를 기획하는 단계부터 부처에서 개입하니 자율성을 훼손하는 것 같아 자괴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런 예산 삭감과 행정 업무 부담, 정부의 지나친 간섭 등으로 사명감과 자부심이 가득했던 대덕 특구에는 수동적인 조직 문화가 확산했다고 한다. 20년 넘게 연구원 생활을 한 이모씨는 “다들 가슴 속에 태극기를 품고 들어오지 않았겠냐”면서 “예전에는 미션 달성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힘들게 무리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인근에서 식당을 하는 성모씨는 “연구원 수가 줄고 지역 인구도 빠져나가면서 예전 같은 활기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이 필요한 기초과학 분야는 “당장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기초과학에 대한 홀대는 곧 처우 문제로 이어지고, 과학기술계 인재들이 연구 현장을 떠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신성범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산하 출연연 23곳의 연구원 이직자 수는 2023년 143명에서 2024년 166명으로 증가했고, 지난해 상반기에만 85명이었다. NST 산하 출연연 중 평균 연봉 1위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이직자는 대학(79.1%)과 기업체(10.4%)로 직장을 옮겼다. 최연택 공공과학기술연구노동조합 위원장은 “기업에 가는 것보다는 대부분의 이직 연구원들이 학교로 향하는 부분이 뼈아프다”며 “이건 처우(부족)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고 싶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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