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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2007 CEO대상 성상철 서울대병원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2007 CEO대상 성상철 서울대병원장

    때는 1884년(고종21) 음력 10월17일, 둥근 달이 휘영청 떠오른 밤이었다. 당시 개화당의 거두이며 우정국총판(郵政局總辦)이었던 홍영식. 그는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새로 세워진 우정국의 낙성식에 정부고관과 외국사신들을 초청, 한창 연회를 베풀고 있었다. 그런데 이웃 민가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다. 연회장은 순간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금위대장(禁衛大將)이자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은 반사적으로 가장 먼저 불이 난 곳으로 달렸다. 바로 이때, 민영익은 자객의 칼에 맞고 피흘리며 쓰러졌다. 이날 연회에 참석한 독일인 외무협판(外務協辦) P.G. 묄렌도르프는 민영익을 얼른 자기 공관으로 데리고 가서 미국인 의사 H.N. 앨런을 황급히 불렀다. 머리와 안면부에 예리하게 깊은 상처를 입은 민영익은 동맥이 끊어지는 등 출혈이 심해 매우 위중한 상태였다. 다행히 민영익은 앨런의 치료를 받고 3개월 만에 완치됐다. 그러자 고종과 민씨 가문에서는 이같은 기적에 경천동지할 정도로 놀라워했다. 그럴 것이, 조선의 내로라하는 내의원들은 벌꿀을 펄펄 끓여 환부에 들이부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앨런의 치료를 극구 반대했기 때문이다. 고종과 궁중의 신임을 얻은 앨런은 관립병원을 세울 것을 건의했다. 그래서 1985년 4월 한국 최초의 국립병원인 광혜원(제중원)이 설립된다. 또 앨런은 관립의학교의 필요성을 제기했으며 나중에 지석영 선생이 초대 관립의학교장을 맡아 근대의학 발전에 많은 공로를 세우게 된다. ●스포츠 의학 명의… 연골재생시술 1인자 그러던 1907년 3월 관립의학교는 당시 서울에 설치됐던 치료기관 광제원과 합쳐 대한의원으로 개칭됐다. 이 대한의원은 1909년 새 건물을 지었는데 현재 서울시 종로구 연건동에 있는 서울대학병원 시계탑건물(빨간벽돌)이다. 지금도 10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서울대병원의 행정업무를 관장해오고 있다. 아울러 이 건물 입구에는 지석영 선생의 동상이 서 있어 우리나라 병원사(史)를 실감케 해준다. 성상철(60·정형외과) 서울대병원장의 집무실도 바로 100년의 빨간벽돌 건물 안에 있다. 성 원장은 지난해 ‘대한의원 100주년·제중원 122주년 기념행사’를 이 병원 시계탑 건물 앞에서 개최, 관심을 모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서울대병원은 국내 서양의학의 효시인 제중원과 대한의원의 정신을 이어받은 국가중앙병원”이라면서 “우리나라 근대의학의 출범과 발전의 토양이 됐던 제중원과 대한의원의 뿌리깊은 역사적 성찰을 통해 대한민국 의학의 밝은 미래를 열어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성 원장은 지난해 3년 임기의 서울대병원장에 연임됐으며 병원 원장으로는 보기 드물게 ‘2007년 올해의 CEO대상’에서 최고 영예인 ‘종합대상’에 뽑히기도 했다. 최근에는 ‘u(유비쿼터스)-헬스산업 활성화 포럼’ 초대의장에 선출되는 등 의료발전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성 원장은 인공관절 치환술과 관절경수술 등으로 이미 스포츠의학의 명의로 소문나 있다. 특히 연골배양 이식을 국내 처음으로 성공시켜 연골재생 시술의 새 지평을 열기도 했다. 그는 또 지난해 작고한 신현확 전 국무총리의 사위이자, 서울대의대 1회 졸업생으로 경남 거창에서 60년 가까이 ‘자생의원’을 개업, 지역의료 봉사에 일생을 바쳐온 성수현(86)옹의 아들이기도 하다. 화제거리는 이 뿐만 아니다. 우리 현대사의 물줄기를 크게 바꾼 10·26과 12·12사건때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지켜본 의사였다. ●“박지성도 나한테 왔어야 했는데…” 집무실에서 직접 만난 성 원장은 나이보다 꽤나 젊어보였다. 명의여서, 아니면 서울대병원장이어서 특별한 건강관리법이 있는 것일까.“그저 잘 웃는 편이다.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서 유머를 섞어가며 좌중을 웃기려고 한다. 웃음만큼 명약이 없는 것 같다.”면서 긍정적인 생활이 건강유지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했다. 또 음식을 가리지 않는 성격인데 최근들어서는 인절미 한두개와 우유 한잔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한다고 부연했다. 잠시 짬이 생기면 청계천과 삼청공원을 찾아 걷는다고 했다. 술은 한때 폭탄주를 열잔 넘게 마실 정도로 즐겼지만 지금은 조금 자제하는 편이란다. 그는 나이들게 되면 관절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통증이 오면 대개 3주 이상 지속되는데 붓는다든가 눌러서 아프면 전문의를 찾아야 하며 관절에 무리감이 느껴지면 휴식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지성 선수의 무릎 연골재생 수술 얘기가 나오자 “우리나라의 수준도 세계적이다. 그런데 왜 다른 나라에서 수술을 받았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대개 연골파괴의 경우, 그 상처부위가 100원짜리 동전 크기 이내라면 재생수술로 완치가 가능할 정도로 많이 발전했다고 자랑한다. “우리 병원은 올해를 제2의 도약, 즉 세계와 경쟁하는 해로 삼았습니다. 서울대병원의 강점인 최고의 브랜드 파워와 의료진, 연구역량 및 4개병원(본원, 분당서울대병원, 강남센터, 보라매병원) 인프라를 앞세워 ‘대한민국 의료를 세계로’라는 비전을 실현하는 원년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울대병원이 개원 100년을 맞이한 오늘날 연간 입원환자만 100만명, 외래환자가 300만명에 이를 정도로 세계적 규모로 발전했다는 것. 특히 2005년 국내 단일 의료기관으로는 처음으로 과학논문 인용색인(SCI) 등재 국제학술지 논문 발표 1000편을 돌파했으며 파킨슨센터, 뇌자도(腦磁圖)센터 등 중심 진료시스템을 구축했다. 아울러 병원부지내 연면적 8400여평, 지상 4층, 지하 6층 규모의 외래암센터가 오는 2009년 완공되면 생명공학(BT)산업의 핵심영역인 첨단치료개발센터와 함께 명실상부 ‘글로벌병원’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진료수준은 이미 세계적이다. 아시아의 의료허브병원으로 거듭날 것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부자간을 떠나 의사로서 아버지 존경” 성 원장은 어릴 적부터 부친의 영향을 받아 의사가 되려고 마음을 먹었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먼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는 그는 “자연스럽게 슈바이처나 나이팅게일 등을 다룬 책을 자주 읽게 됐다.”고 술회했다. 성 원장의 아들도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전문의로 있으니 3대째 이어지는 의사집안인 셈이다. 성 원장은 부친에 대해 “부자간을 떠나 의사로서 무척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의미부여를 했다. 성 원장은 군복무시절 특별한 경험을 한다.15사단 전방을 거쳐 국군서울지구병원(서울 경복궁 옆)으로 근무지를 옮겼을 때 국가원수 시해사건을 접하게 된다. “그러니까 10월26일 저녁 병원에 갑자기 비상이 걸렸지요. 현관 입구에 쭉 도열해 있는데 김계원 청와대비서실장이 달려오고 그 뒤에 최규하 국무총리와 장인(신현확 경제부총리) 등이 급히 병원으로 들어오더군요. 박정희 대통령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지요.” 당시 의무소령이었던 성 원장은 10·26 사건 현장에서 여러발의 총격에도 불구하고 경호요원으로 유일하게 숨이 멎지 않은 채 실려온 박상범 전 경호실장의 수술을 맡아 기적적으로 소생시키는 역할을 했다. 곧이어 발생한 12·12사건 때에도 총상을 입은 많은 군인들을 치료하게 된다. 그는 경남고 21회 출신. 동기로는 현재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허창수 GS회장,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등이 있다. 동기들과는 등산과 골프, 당구모임 등을 통해 취미별로 일년에 몇차례 만난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8년 거창 출생. ▲경남고 졸업(21회). ▲73년 서울대의대 졸업. ▲78년 서울대병원 인턴 및 레지던트 수료. ▲83년 서울대대학원 의학박사. ▲85∼86년 미국 하버드대 정형외과 연구원. ▲81년∼현재 서울대의대 정형외과 교수(무릎관절 외과). ▲2002∼04년 분당서울대병원장. ▲04∼현재 서울대병원장, 국립대병원장협회장, 대한병원협회 부회장. ▲07∼현재 제17차 한·일정형외과학회 대회장.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③-현대·기아차 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③-현대·기아차 그룹

    정몽구(67^MK)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격의없이 지내는 지인들은 정 회장을 이렇게 평가한다. “곰같은 외모에 뱀같은 머리를 지녔으며 여우같은 행동가이다.”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현대의 한 고위임원은 서슴없이 정 회장을 ‘지략가’라고 정의했다. “현대차는 현대차, 기아차, 현대정공, 현대차써비스 네 집안이 합쳐진 회사다. 그런데도 큰 잡음이 없다. 카리스마만 갖고서는 이렇게 이끌 수가 없다.MK가 대단한 지략가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이어지는 그의 얘기.“햇볕도 잘 들지 않는 땅(서울 원효로)에서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을 만든 이가 MK다. 다른 아들들이 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한테 기업을 물려받은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는 사실상 창업자나 마찬가지다.” 현대·기아차그룹의 비약적인 성장이 결코 요행이나 우연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실제 정 회장은 2000년 9월 그룹에서 독립한 지 불과 4년만에 현대차를 세계 6위 반열에 올려놓았다. 독립 당시 10개에 불과하던 계열사 수는 28개로 불어났으며, 종업원 수도 10만명을 넘는다. 총자산 규모 67조원(3월14일 현재)에 올해 매출목표액 85조원, 재계 서열 3위다. ‘싸구려 현다이’라고 비웃던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은 이제 현대차를 두려움의 존재로 인식한다. ●갤로퍼 신화에서 품질경영까지 서울 경복고와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나온 정 회장은 현대건설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현대자동차써비스(74년)와 현대정공(77년)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일찌감치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이후 기아차를 인수해 자동차 전문그룹을 만들기까지 평생을 차(車)와 함께 했다. 그를 가까이서 본 고위임원의 얘기다.“세상 사람들은 보여지는 외모와 어눌한 말투만 보고 MK의 저력을 더러 간과한다. 그러나 현대정공 시절, 그는 일일이 차를 뜯어보고 조립하면서 갤로퍼 신화를 만들어냈다. 차에 관한 한 누구보다 전문가다.” 그런 정 회장이 충격을 받은 사건이 발생했다.98년 미국 JD파워의 신차 품질조사에서 현대차가 꼴찌를 한 것이다. 이듬해, 그 이듬해에도 꼴찌권을 맴돌았다. 엄청난 모멸감에 휩싸인 그는 “이제부터 등수는 잊어라. 대신 무조건 품질을 끌어올려라.”라고 일갈했다. 현대·기아차의 보도자료에서 ‘세계 톱5 진입’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품질본부가 즉각 하나로 합쳐지고, 회장이 직접 주재하는 품질 회의가 꾸려졌다. 올초 쏘나타는 ‘세계에서 가장 결함이 적은 차’로 선정(컨슈머 리포트지)됐다. 몇년 전의 수모를 보기 좋게 설욕한 것이다. ●부인 이정화여사 실질적 맏며느리 정 회장은 평범한 ‘실향민’ 집안의 셋째딸(이정화·66)과 결혼해 1남3녀를 두었다. 고향이 이북인 부인 이씨는 손위동서인 이양자씨가 91년 암으로 세상을 뜨자 이때부터 집안의 실질적인 맏며느리 역할을 도맡아 했다. 시아버지 생전에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3시30분이면 청운동 시댁으로 달려가 아침을 준비하곤 했다. 시어머니(변중석)가 이 무렵 거동이 불편해져 병원 신세를 졌기에, 대식구의 아침 준비는 오롯이 며느리들 몫이었다. 틈날 때마다 현대아산병원을 찾아 시어머니를 돌보는 일도 맏며느리인 그의 몫이다. 시어머니가 그랬듯,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다. 이렇다할 직함도 없다. 굳이 찾자면 그룹 계열사인 ‘해비치 리조트’(제주도 다이너스티 골프장과 콘도 등을 운영하는 회사)의 개인 대주주라는 정도다. ●외아들 의선… ‘ES 시대’ 개막 그룹의 핵심인 자동차는 정 회장의 막내 외아들이자 현대가의 종손인 의선(35·ES)씨가 한 축이 돼 이끌고 있다. 이달초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담당 사장 겸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모비스(자동차부품 전문회사) 부사장도 맡고 있다. 본텍·글로비스·엠코 등 비상장 계열사의 최대 주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오너 3세’의 프리미엄만을 업고 사장에 오른 것은 아니다. 휘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온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다. 정 회장이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을 갖고 있다는 ‘현대정공 자재부’에 94년 과장으로 입사, 현장감각을 익혔다. 이후 기아차 슬로바키아공장 건설 등 굵직한 해외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면서 차세대 리더로서의 잠재능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얼마전 기아차 수출 500만대 돌파 기념식때는 임원들의 넥타이를 기아차 상징색인 빨간색으로 즉석에서 통일시켰을 만큼 회사에 대한 애착과 감각이 남다르다. 자기생각을 당당하게 말하면서도 상대에게 겸손하다는 느낌을 준다. 직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우스갯소리도 곧잘 해 평이 좋다. 생전에 정주영 회장이 지선(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의 장남)씨와 더불어 가장 예뻐했던 손주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의 사촌여동생이 미국에 유학을 오자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 95년 결혼에 성공했다. 훗날(2000년) INI스틸에 흡수된 당시 강원산업 정도원 부회장의 딸 지선(32)씨가 부인이다. 스물다섯, 스물둘의 나이에 일찌감치 결혼한 두사람은 딸 진희(9)양과 아들 창철(7)군을 두고 있다. ●의사집안 대 잇는 큰사위 정 회장의 큰딸 성이(43)씨는 저명한 정형외과 전문의 고 선호영 박사의 둘째아들 두훈(48)씨와 결혼했다. 역시 의사인 두훈씨는 현재 대전 선병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목동 선병원, 중촌 선병원, 선치과병원, 건강증진센터, 유성 선병원 등이 모두 같은 계열이다. 서울집(한남동)과 대전을 오가며 병원 일을 보고 있다. ●금융 사업 이끄는 둘째 사위 93년 현대차 원효로 사옥에서 프로젝트팀 형태의 현대오토파이낸스㈜로 출발한 현대캐피탈은 우리나라에 자동차할부 금융업을 처음 선보였다. 그러나 ‘카드 사태’ 등으로 현대카드가 어려워지자 ‘구원투수’로 투입된 이가 정태영(45)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이다. 정경진 종로학원장의 아들이자 MK의 둘째딸 명이(41)씨의 남편이다. 한 임원의 얘기다.“그 분(정태영 사장)은 스스로를 오너의 사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문경영인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아깝다며 골프조차 안친다. 회사가 안정될 때까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골프에 할애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식이다.” 당장의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착실히 손실을 털어낸 덕분에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은 올해 ‘동반 흑자’ 전환을 앞두고 있다.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와 미국 MIT(매사추세츠공과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궁금한 게 있으면 실무자에게 직접 휴대폰을 걸어 물어봐 직원들을 긴장시키기도 한다. 현대차 근무시절 함께 호흡을 맞췄던 제갈걸(53) 부사장, 옛 현대그룹 문화실장을 지낸 김상욱(52) 전무 등이 그와 함께 금융소그룹을 이끄는 핵심 브레인들이다. ●꿈의 철강 라인업 셋째 사위-조카 한보철강(현 당진공장) 인수를 계기로 그룹은 열연(당진공장)-냉연(현대하이스코)-스테인리스(INI·BNG스틸)로 이어지는 철강 풀라인업을 달성했다. 이 꿈의 라인업에 정 회장의 셋째 사위와 조카들이 포진하고 있다. 김원갑(53) 부회장과 함께 현대하이스코(옛 현대강관)를 이끌고 있는 신성재(37) 사장은 현대정공에 근무하던 시절, 정 회장의 동갑내기 셋째딸 윤이씨를 만나 결혼했다. 미국 페퍼다인대학 MBA 출신이다.98년 현대하이스코로 옮겨 수출부장, 영업본부장 등을 거쳐 이달초 사장으로 승진했다. 영업본부장 시절에 1조원대에 머물던 연간 매출액을 2조 3000억원대로 끌어올려 ‘장인’의 인정을 받아냈다. 김 부회장은 78년 현대건설 경리부로 입사해 건설과 자동차에서 잔뼈가 굵은 재무 전문가다. 이계안 현 열린우리당 의원이 2001년 7월 현대차에서 물러날 때 함께 사표를 냈지만 정 회장이 다시 발탁했다. INI스틸(옛 인천제철) 김무일(62) 부회장도 빼놓을 수 없는 철강 인맥이다. 정통 철강맨은 아니지만 취임하자마자 한보철강 인수를 보기좋게 성공시켜 정 회장의 신임을 확실하게 굳혔다. 지난해 4월 현대·기아차 구매총괄본부장(부사장)에서 사장을 거치지 않고 곧장 INI스틸 부회장으로 승진 이동했다.‘수처위주 입처개진’(隨處爲主 立處皆眞·언제 어디서건 그 곳의 주인이 돼라)이 좌우명이다. 김 부회장이 지인에게 털어놓은 현대차의 타이어사업 진출 무산 뒷얘기가 재미있다.90년대 초반 현대차는 현대정공을 통해 타이어사업 진출을 모색했다. 그러나 정주영 명예회장이 “공예산업(타이어에 홈을 파는 작업을 공예에 비유)은 안된다.”고 하는 바람에 막판에 철회했다고한다. ●LS전선·김&장과의 혼사 BNG스틸은 젊은 나이에 타계한 동생 몽우씨를 생각해 MK가 조카들에게 대부분 맡긴 회사다. 몽우씨의 세 아들이 모두 이 회사에 있다. 큰아들 일선(35)씨가 대표이사 사장이다. 그룹이 2000년 말 삼미특수강(BNG스틸의 전신)을 인수할 때 실무를 맡아 내부사정에 밝다. 철강의 꽃으로 불리지만 유통구조는 낙후된 스테인리스 업계에 서비스센터(코일센터)를 도입해 새 바람을 일으킨 이도 그다. 운동을 워낙 잘해 그룹사 축구시합때면 직접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빈다. 사촌인 의선씨와는 생일이 일주일 밖에 차이 나지 않아 어려서부터 유난히 친했다. 유학중에 ‘어린 신부’를 만난 것도 똑같다. 고려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던 일선씨는 같은 대학 심리학과로 갓 유학온 여섯살 연하의 구은희씨를 만나 96년 결혼했다. 현대가 내로라하는 재벌 집안과 처음 혼사를 맺는 순간이기도 했다. 은희씨는 구자엽 희성전선 부회장의 딸로, 구태회 LG전선(현 LS전선) 명예회장의 손녀이다. 결혼할 때 스무살이었다. 지금은 세 아이(창현·진주·창민)의 엄마다. 일선씨의 동생 문선(31)씨도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다. 김&장 법무법인 김영무 대표변호사의 딸 선희(31)씨가 부인이다. 재정부에서 이사로 근무하다 미국 연수길에 올라 현재 미시간대학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다. 올 연말에 귀국한다. 미국 버클리대학 회계학과를 나온 막내 대선(28)씨는 지난해 11월 품질혁신부 대리로 BNG스틸에 합류했다. 아직 미혼이다. ●MK의 용병술 현대차그룹의 인사 시스템은 ‘예측 불허’다. 그런데도 떠난 사람들 가운데 그룹을 욕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한 전직 고위임원의 분석이다. “MK는 아버지를 몹시 어려워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자신 아버지와 몹시 닮았다. 우선 그룹내에서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현대차그룹에는 2인자가 없다. 웬만한 간부는 회장에게 모두 직접 보고한다. 충성 경쟁을 유발하는 셈이다.” 그는 “빈번한 패자부활과 적절한 견제도 MK 용병술의 특징”이라고 했다. 이를 그룹내 파벌싸움의 산물로 보는 이도 있지만 ‘권위에 대한 도전’을 용납지 않는 MK의 치밀하게 계산된 행보라는 분석이 더 많다. ●자동차 전문인맥 ‘탱크 박사’ 김동진(55) 현대차 부회장이 단연 눈에 띈다.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의 전문 엔지니어로 국방연구소에서 ‘K1탱크’ 국산화를 주도하다가 78년 정 회장에 영입됐다. 정의선 사장과도 가깝다. 중국시장을 거의 개척하다시피하고 있는 화교 출신의 중국통 설영흥(60) 부회장과 ‘갤로퍼 신화’의 숨은 조력자 전천수(59·생산노무담당)사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 등 정·재계에 발이 넓은 채수일(52·방송인 이숙영씨 남편) 고문도 빼놓을 수 없다. 이사대우 5년 만에 사장이 된 MK의 대학후배 최한영(53·전략조정실장겸 마케팅총괄본부장)사장은 한때 ‘MK의 입’으로 불렸었다. 본인은 “99년 해외출장중에 갑작스럽게 홍보실 컴백 명령이 나 사표쓸 생각까지 했었다.”그렇지만, 곧이어 터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누구보다 MK의 의중을 정확히 짚어내 파격 승진을 거듭했다. GE캐피탈과의 자본제휴, 글로비스 지분 매각 등을 주도한 재무통 채양기(52·기획총괄부본부장)부사장도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이다. 그가 쓴 ‘채권관리 실무교본’은 지금도 채권 전문가들 사이에 필독서로 꼽힌다. 그룹 ‘암행어사’ 인 이전갑(58·감사실장)사장, 품질경영 전도사인 서병기(58·품질본부장)사장, 신차 기술개발 주역인 김상권(59·연구개발본부장)사장, 미국시장 공략의 중책을 맡고 있는 최재국(57·국내외 영업기획담당)사장, 김수중 전 사장의 계보를 잇는 ‘영업의 귀재’ 이문수(57·내수영업본부장)부사장, 치밀한 홍보맨 이용훈(55)부사장 등도 현대차를 이끄는 중추세력이다. 기아차의 선두주자는 단연 김익환(55) 사장이다.‘오너 아들’과 대표이사를 같이 맡고 있어 적잖은 부담이지만 도약의 기회이기도 하다. 영업·수출·홍보를 두루 거쳐 실무에 밝다. 외모만큼이나 선이 굵다. 양쪽 날개로는 구태환(50·재경본부장)부사장과 김용환(49·해외영업본부장)부사장이 있다. ●‘오랜 동반자’ 정공 인맥 현대·기아차 출신들이 ‘신측근’으로 분류된다면, 현대정공과 현대차써비스 인맥은 ‘전통가신’으로 분류된다. 유홍종-박정인-김동진-김익환으로 이어지는 정공 인맥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 한토막. 언젠가 MK가 해외출장지에서 뜬금없이 막걸리를 찾았다. 현대차 출신들은 난색을 지었다. 정공 출신들은 “어떻게든 구해보겠다.”며 나가 정말로 막걸리를 구해왔다. 유홍종(67) BNG스틸 회장은 MK와 양궁 신화를 함께 써내려간 정공 인맥의 대부다. 그 뒤를 잇는 박정인(62) 현대모비스 회장은 현대차써비스가 일개 사업소(현대차 원효로사업소)에 불과했던 72년,MK를 처음 만났다. 이후 자재부장과 경리담당 대리로 황금콤비를 이루면서 30년 넘게 MK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인터넷 화상회의·전자결재 등을 정착시킨 ‘스피드 경영’으로도 유명하다.“맹꽁이”가 부하직원들을 나무라는 가장 심한 욕일 만큼 점잖지만 허점이 너무 없어 오히려 겁날 때도 있다는 게 아랫사람들의 얘기다. 서울 양재동 사옥을 사들일 때 점쟁이까지 불러 감정한 것으로 유명한 이중우(57) 다이모스(자동차부품회사) 사장, 등산 마니아인 김평기(60) 로템·위아 사장, 이여성(55) 서울시메트로 구호선 사장, 정석수(53) 현대파워텍 사장 등도 정공이 ‘뿌리’다. 서비스업체(해비치리조트) 사장에서 하루아침에 그룹의 신생 건설사업을 책임진 김창희(52) 엠코 사장도 시선이 쏠리는 인물이다. hyun@seoul.co.kr ■ 인간 정몽구회장 술을 많이 마시면 다음날 아침 꼭 라면으로 해장하는 버릇이 있다. 폭탄주 20잔도 끄떡없을 만큼 주량이 세지만 절제력이 강해 실수하는 일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폭탄주보다 소주를 즐긴다. 해외출장길에 수행원들이 맨먼저 챙기는 것도 소주와 라면이다. 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를 닮아 먹성이 소탈하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에는 서울 양재동사옥의 지하2층 중역식당을 애용한다. 임원들의 구내식당행도 개의치 않는다. 이는 아버지와 다른 면이다. 왕 회장은 임원들이 구내식당에 나타나면 “밖에 나가 사람들 만나라고 접대비를 줬더니 기껏 안에서 먹는다.”며 불호령을 내리곤 했다. 가정적인 면모도 아버지와는 딴판이다. 주말이면 아들딸 사위들과 함께 곧잘 산을 찾는다. 대신 골프는 별로다. 좋아하지 않다보니 실력도 그저 그렇다. 여느 현대가 사람처럼 ‘새벽형 인간’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에 아침을 먹고 6시30분쯤 출근한다. 대신 밤 10시면 잠자리에 든다. 그를 가까이서 본 사람들의 공통된 얘기는 “겉 인상과 달리 마음이 매우 여리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잘 자르지 못한다. 현대차는 한때 이사만 100명에 이르렀었다. 더는 버틸 수 없는 포화상태에 이르러서야 MK는 “진급한 숫자만큼 자르라.”며 지난해 구조조정을 지시했다. 어눌한 말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 처음 그를 접하는 사람들은 말뜻을 해석하느라 진땀을 흘린다. 해석이 쉬워질 때쯤이면 “참모들보다 서너배는 빠르다.”는 그의 머리회전에 진땀을 흘리게 된다고. 어떤 이는 이를 “아버지의 ‘방목’과 형제간 경쟁과정에서 터득한 본능적인 생존지수”로 해석했다. 효심도 남다르다. 한 현직임원의 얘기다.“일을 하다 보면 종종 과거에 잘못 벌여놓은 일과 마주치게 된다. 그럴 때면 MK는 ‘이거 참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고 잘했다고도 할 수 없고‘하며 말을 흐린다. 한번도 대놓고 선친때 일을 지적한 적이 없다.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섭섭한 감정이 남아 있을 텐데도 말이다. 형제들 일도 마찬가지다. 장남으로서의 원초적 책임감 내지 부담감을 늘 갖고 있는 느낌이다.” 경영권 분쟁때 동생(정몽헌)과 그토록 부딪쳤건만, 그 동생이 2003년 8월 계동사옥에서 몸을 던졌을 때 맨먼저 사고현장에 달려가 시신을 수습한 이도 그였다. 한 전직 임원은 “빈소 뒤에서 나를 붙잡고 우시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큰무대 주역 잇달아 맡는 신예/농아장애 극복한 강진희양

    ◎영혼의 울림으로 춤추는 발레리나/타고난 예술성·각고의 노력으로 역경극복/고난도 테크닉 훼테 소화… 모스크바 콩쿠르 결선 진출도 희미한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절대정적의 세계에서 오로지 영혼의 울림으로 춤을 추는 농아 발레리나 강진희양(22·한양대 무용과 4년).태어날때부터 소리를 듣지못하는 장애속에서도 무용에의 소중한 꿈을 키워온 그가 최근 큰 무대의 주역을 잇따라 맡으며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르고 있어 화제다. 지난달 세종문화회관 분수대 야외공연을 통해 메마른 도심에 우아한 발레의 멋을 심어준데 이어 이번에는 잠실체육관에서 열리는 「무용선교 페스티벌」(5일 하오 2시·7시30분)에 프리마 발레리나로 출연,관객과 다시 만나게 된 것.『역경은 무슨 역경이에요.다른 사람들보다 인생의 출발지점이 좀 뒤처졌을 뿐이죠.연습하면 안될 일이 없어요』 고난청 장애속에서도 춤을 출 수 있는 비결을 그는 오직 노력뿐이라고 강조한다. 의사집안의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무용가로서의 그의 눈물겨운 삶의 이력은 한편의 드라마틱발레보다 감동적이다.국민학교 시절부터 무용을 좋아 했는데 『청각장애인이 무용가가 되는것은 불가능하다』는 주변의 얘기는 그를 실의에 빠지게 했다.그러나 독실한 기독교도인 그는 기도를 통해 좌절을 극복했다.자신이 무용가가 된것을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그가 본격적으로 수업을 받게된 것은 부산 대연여중 무용반에 들어가면서부터.보청기를 단채 지도교사의 입모양만 보고 가르침을 알아채야 했던 것은 오히려 당연했으며 여고시절엔 남들보다 힘들었던 훈련에 매일같이 팔다리에 퍼런 멍이 가시지 않았다.하지만 타고난 예술성과 각고의 노력은 이 모든 장애의 벽을 넘어 오늘의 그를 만들어냈다. 『너무 성실해요.한번 했던 작품이라도 충분히 연습한 후가 아니면 절대로 무대에 서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학때부터 그를 지도하고 있는 한양대 무용과 조승미교수의 귀띔이다. 지난 92년 전국대학무용 콩쿠르에서 「흑조」2인무로 금상을 받은 강양은 지난해엔 일본 북규슈 국제발레콩쿠르 준우승과 함께 모스크바 국제발레콩쿠르 결선에 진출하는 등 국제무대에서도 기량을 인정받고 있다.특히 고난도 테크닉인 훼테(fouette·한자리에서 회전하는 동작)의 경우,세계적인 발레리나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31회를 거뜬히 해낸다는 것. 이번 공연에서 선보일 작품은 신의 영광을 찬미하는 내용의 성무「영광,영광」(안무 조승미)으로 지난 8월 광주 국제발레페스티벌에서도 시선을 모았던 창작발레다.『「영광…」은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입니다.그 속에는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이 온전하게 녹아있기 때문이죠.무대예술가로서의 저의 부족한 점을 잘 알고 있는만큼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공연을 위해 옷가지를 챙겨들고 총총히 연습실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만의 여유가 배어난다.
  • 소장사료 부족… 제구실 못해/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

    ◎개관 1년 넘었는데도 전시품은 194전뿐/거의 40년대이후것… 기증자 애타게 찾아 국내 최초의 서양의학 박물관으로 문을 연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이 소장사료의 부족으로 제구실을 못해 의학사료를 애타게 찾고 있다. 이 박물관은 지난 해 4월 서양의학이 도입된지 2세기가 되었는데도 의학전문박물관이 없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의학인들의 뜻을 모아 서울대병원이 설립했다. 현재 이 박물관에는 의료기기·의학고서등 1백94점이 전시되어 있으나 이 가운데 1900년대의 대한의원관련 사진들과 1910년대의 폐·위질환표본,1920년대의 상아청진기등 20여점을 제외하면 대부분 1940년대이후의 사료들로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낮은 것들이다. 이러한 소장사료의 절대부족은 서울대병원이 구한말 광혜원과 대한의원시절부터 보관해오던 의료기기등 귀중한 사료들이 70년대말 대형화재때 대부분 소실된 때문이기도 하다. 박물관 관계자들은 세브란스병원등 유서깊은 의료기관이나 3∼4대를 가업으로 이어오는 의사집안으로부터 구한말이나 금세기 초의 가치있는 사료들을 수집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으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박물관측은 우리나라 서양의학의 아버지격인 송촌 지석영선생의 소중한 유물인 종두침·대한의원학감 임명장등 77종 1백33점을 인수하기위해 유족들과 어느정도 합의를 보았으나 이를 보관중인 한독의약박물관과의 문제때문에 진전을 보지못하고 있다. 또 이 박물관이 들어있는 서울대병원 시계탑건물이 1907년에 건립된 목조건물로서 문화재사적 제248호로 지정돼있는 것도 소장사료를 늘리고 일반에게 공개하는 것을 막는 걸림돌이 되어있다.화재위험과 일반공개때의 훼손을 막기위해 시설을 보완해야하나 예산배정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장 김광우 제1의료부원장은 『인식부족과 예산문제등으로 사료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송촌선생유물의 인수가 어느정도 마무리되면 이를 전환점으로 연말쯤부터 획기적인 박물관 정상화계획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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