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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로의 아침]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만든 훈장

    [세종로의 아침]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만든 훈장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대적인 유대인 학살이 자행됐던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 새겨진 말이다. 전쟁 직후 유럽 대륙의 반민족 부역 행위자에 대한 단죄는 가혹할 만큼 엄격했다. 해방 직후 프랑스는 샤를 드골이 이끄는 임시정부 주도로 대대적인 청산에 나섰다. 나치독일과 협력해 국가 반역을 주도한 최고위 정치인과 관료는 물론 말과 글로 협력한 지식인과 언론인까지 주저 없이 법정에 세웠다. 그 결과 사형 선고를 받은 이가 6000여 명에 달했으며 유죄 판결을 받은 5만여 명이 ‘비국민’으로 규정돼 투표권 박탈과 재산 몰수를 당했다. 사회 주요 직종 진출은 영구히 금지됐다. 즉각적인 숙청이 일단락된 뒤에도 프랑스는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법을 제정해 끈질긴 추적을 이어 갔다. 실제로 50여 년이 지난 1998년 파리 경찰국장, 예산장관까지 지낸 80대 고위 관료 모리스 파퐁이 나치 점령기 유대인 강제 수용소 압송 문서에 서명한 사실이 드러나자 10년 형을 선고한 사례는 그들의 집념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등 다른 유럽 국가들 역시 수만 명의 부역자를 처벌하며 민족과 공동체를 배신한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기준을 분명히 했다. 반면 한국의 과거사 청산은 어땠는가. 1948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출범했지만, 정권의 방해와 분열 속에 1949년 8월 사실상 와해되는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최근 불거진 한 배우의 증조부 친일 논란은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발단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훈장’처럼 꺼낸 가문 이야기였다. 그는 ‘4대째 의사 가문’이라며 증조부가 ‘한양에 서양식 양의원을 최초로 개원하고 고종 황제를 진료한 인물’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증조부인 안상호의 실제 행적이 드러나며 파장이 일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안상호는 이토 히로부미 추도를 위한 ‘국민대추도회’ 준비위원으로 참여했고 일제 식민통치를 뒷받침한 경성부 협의회원을 지냈다. 나아가 내선융화 단체인 대정친목회 평의원 등 친일 단체에서 활동했다. 특히 그가 신문에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일본 사람과 똑같다”, “조선 사람과 상관이 없다”고 밝히며 일제의 동화정책을 전면적으로 따른 사실까지 확인됐다. 처음 “사실무근”이라던 배우의 소속사는 사료가 확인되자 하루 만에 성급했던 대응을 사과했고, 배우 역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만 알고 가족의 자랑처럼 여겨 왔다”며 고개를 숙였다. 거센 비난 속에 예능 프로그램은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단했으며 그를 모델로 세우던 기업들은 광고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일부 일본 언론은 이를 두고 조상의 죄를 후손에게 묻는 ‘현대판 연좌제’라며 한국 사회의 반응을 비판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의 본질은 배우 개인이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사실에 있지 않다. 핵심은 조상의 친일 이력에 대한 일말의 성찰 없이, 이를 비판 없이 미화하고 소비한 ‘역사 인식의 부재’에 있다. 거센 비난은 부끄러워해야 할 친일의 유산이 세대를 거치며 자랑스러운 명문가의 훈장으로 둔갑해 버린 상황에 대한 성토인 것이다. 국가보훈부에 등록된 공식 독립유공자가 1만 8776명인 반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은 4776명에 그친다. 엄혹했던 식민지 시절 일제에 부역한 자보다 독립운동을 한 이가 4배가량 많다는 통계는 어딘가 이상하다. 여전히 기록되지 않은 부역자가 훨씬 더 많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 논란이 한 개인을 향한 맹목적 비난에 그쳐서는 안 된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오늘날에 미친 영향을 냉정하게 묻고 해당 가문의 후손이 “몰랐다”고 말할 수밖에 없던 그 구조를 되짚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윤수경 문화체육부 기자(차장급)
  • 김주하 “전남편, 딴 데서 자식까지 낳아”…강부자도 당황

    김주하 “전남편, 딴 데서 자식까지 낳아”…강부자도 당황

    방송인 김주하가 배우 강부자와 부부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전남편의 과거를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5일 방송된 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에는 강부자가 출연해 59년간 이어온 배우 이묵원과의 결혼생활과 자신의 부부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날 강부자는 남편의 외박이나 늦은 귀가도 이해했다며 “유부남이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다”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어디에 있는지 알고 별다른 사고가 없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 김주하는 “그러면 집에 안 들어온다면, 짐 싸 들고 나가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강부자는 “짐 싸 들고 왜 나가겠느냐. 나가더라도 가족이 집에 있으면 들어오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그러자 김주하는 “근데 그러더라고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다. 두 사람의 대화는 ‘배우자를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김주하가 “남편을 어디까지 용서해야 되느냐”고 묻자 강부자는 “남편이 자식만 딴 데서 안 낳아 온다면”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김주하는 잠시 머뭇거리다 “낳았어요”라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당황한 강부자는 “그건 좀 곤란하다”고 반응했다. 김주하는 2004년 결혼했으나 이후 이혼 소송을 거쳐 2016년 이혼이 확정됐다. 당시 법원은 전남편이 김주하에게 위자료 5000만원을 지급하도록 하고 재산분할과 친권·양육권 등에 대해서도 판단했다. 한편 강부자는 이날 방송에서 자신의 가족 이야기도 공개했다. 과거 중학생 시절 패혈증으로 생사를 오갔던 아들이 현재 미국 의과대학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딸에 대해서는 대학 시절 군 복무 후 복학한 선배를 위해 장학금 신청을 양보했던 일화를 전했다. 강부자는 방송을 마치며 “방송 생활 64년, 내 인생이 85년인데 그동안 토크쇼를 얼마나 많이 했겠느냐”며 “오늘은 작심하고 정말 하고 싶은 얘기를 실컷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 ‘증조부 친일 의혹’ 하영, 중국 SNS에선 사과문 삭제…“中배우였다면 퇴출” 거센 반발

    ‘증조부 친일 의혹’ 하영, 중국 SNS에선 사과문 삭제…“中배우였다면 퇴출” 거센 반발

    배우 하영이 친일 의혹이 제기된 증조부의 행적을 자랑처럼 밝힌 데 대해 사과한 가운데 중국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던 사과문을 돌연 삭제했다. 16일 연예계에 따르면 하영의 중국 SNS 샤오홍슈 공식 계정에 올라와 있던 자필 사과문 게시물이 전날 오전 사라졌다. 샤오홍슈는 인스타그램과 비슷한 중국의 SNS다. 앞서 하영은 지난 12일 인스타그램에 공개한 자필 사과문과 같은 사진을 샤오홍슈 계정에도 올렸다. 게시물 본문에는 자필 사과문의 내용을 중국어로 번역한 내용이 올라갔다. 하영은 자필 사과문에서 “부끄럽게도 무지한 상태로 증조부에 대한 이야기를 가족의 자랑처럼 꺼내 왔다”면서 “일제 강점기라는 뼈아픈 시간을 지낸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족사를 가볍게 언급했던 것을 반성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중국 현지 누리꾼들은 하영의 자필 사과문 게시물에 “중국인들도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 “중국 배우였다면 모든 플랫폼에서 계정이 정지되고 퇴출당했을 것”, “조용히 살았다면 인기를 누렸을 텐데” 등 부정적인 댓글이 쏟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중일전쟁으로 일제의 침략과 난징대학살 등의 만행을 겪었던 중국에서도 당시 친일 행적은 반역 행위로 여겨진다. 중국에서도 거센 반발 여론이 일자 하영 측이 사과문을 삭제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영은 그동안 방송과 인터뷰 등에서 여러 차례 증조부 이야기를 꺼냈다가 증조부 안상호에 대한 친일 의혹이 제기되며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특히 지난 7일 방송된 KBS 2TV 예능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소개하고 증조부가 고종 황제를 진료하기도 했다고 언급하면서 그의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사실이 드러났고, 안상호의 당시 행적을 둘러싼 친일 의혹이 확산했다. 논란 초기 하영의 소속사는 친일 의혹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냈지만, 하영은 지난 12일 자필 사과문을 통해 증조부의 행적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밝혔다. 하영은 “가족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만으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다. 무지한 상태에서 증조부에 관한 이야기를 가족의 자랑처럼 꺼내 왔다”면서 “미처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역사를 외면하거나 가볍게 여길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 과오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후에도 논란이 계속 확산하며 하영과 상대 배우 정해인은 신작 넷플릭스 시리즈 ‘이 엿같은 사랑’ 인터뷰를 취소했다. 하영이 모델로 활동한 삼성전자와 의류 브랜드 아티드는 광고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KBS ‘옥탑방의 문제아들’도 하영이 증조부를 언급한 방송의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단했고 유튜브 클립 영상도 비공개 처리했다.
  • “3만 원 갚아라” 말에…망치로 후배 뒤통수 친 60대, 징역 10개월

    “3만 원 갚아라” 말에…망치로 후배 뒤통수 친 60대, 징역 10개월

    빌린 돈 3만원을 갚으라는 말에 동네 후배의 머리를 망치로 친 60대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대구지법 형사1단독(부장 김동석)은 특수상해 혐의로 기소된 A(66)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고 14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10월 9일 오후 5시 54분쯤 경북 영천에 있는 지인의 집에서 후배 B(59)씨로부터 “빌려준 돈 4만원 중 아직 갚지 않은 3만원을 달라”는 말을 듣자 화가 나, 망치로 뒤통수를 2차례 내리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후두부 두피가 찢어지는 등 14일간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입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향해 손망치를 휘두르는 장면을 보면 위험성이 상당해 자칫하면 큰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고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도 못했다”며 “다만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이 사건 범행의 위험성에도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입은 상해의 정도가 그리 중하지 않은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 “연좌제 운운 자격 없다”…서경덕, 日언론 ‘하영 감싸기’에 “창피한 줄 알길” 일갈

    “연좌제 운운 자격 없다”…서경덕, 日언론 ‘하영 감싸기’에 “창피한 줄 알길” 일갈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52)가 배우 하영(33·본명 안하영)의 증조부 논란과 관련해 ‘현대판 연좌제’라고 비판한 일본 언론에 일침을 가했다. 서 교수는 1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일본 매체들이 하영에게 쏟아진 비판을 ‘현대판 연좌제’로 규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日언론 “후손 ‘사회적 제재’는 현대판 연좌제”앞서 지난 12일 일본 매체 JB프레스는 ‘왜 한국은 친일파의 자손을 용서하지 않는가’라는 취지의 칼럼을 통해 하영 증조부 논란을 다뤘다. 매체는 하영 증조부의 행적이 후손 비판의 근거가 되는 상황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매체는 “하씨가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것도 아니고, 만난 적도 없는 증조부의 과거 행위가 문제 되고 있다”며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어느새 그에게 ‘친일파의 자손’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 하영과 비슷한 논란에 휩싸였던 한국 배우들의 사례를 나열하며 “한국 사회는 조상의 죄를 후손에게 묻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에 관한 표현마저 법으로 심판하려 하고 있다”며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것은 역사를 잊는 일이 아니라 역사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을 심판하는 도구가 되는 현실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후지뉴스네트워크(FNN)에도 ‘한국에서 친일이 갖는 무거운 의미’라는 제목의 칼럼이 올라왔다. 후지TV 객원 해설위원인 가모시카 히로미 교수는 “한국에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있다”며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인식은 지금도 뿌리 깊어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의 조상에게 친일 의혹이 제기되면 ‘친일 대가로 후손까지 번영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선조의 행적을 검증하는 것과 후손에게 사회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별개 문제”라며 “증조부의 의혹을 이유로 방송 프로그램과 광고까지 비공개되는 상황은 현대판 ‘연좌제’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 “올바른 역사 인식이 먼저”일본 언론의 보도에 서 교수는 “일본 언론이 이런 비판을 할 자격이 있나”라며 “강제동원에 관한 역사를 왜곡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시킨 나라가 어디냐”고 반문했다. 이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진심 어린 사죄와 배상은 제대로 했느냐”면서 “대한민국 독도를 아직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 주장을 펼치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라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일본 언론은 먼저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고 행동한 후, 다른 나라를 비판하라”면서 “창피하지 않느냐”고 일침을 가했다. 앞서 하영은 지난 7일 방송된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언니까지 4대째 의사 집안”이라며 “증조할아버지께서 당시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하셨다고 한다. 고종황제를 진료하시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하영의 증조부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에서 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의료인인 안상호(1872~1927)로, 당시 친일 인사들이 모여 만든 단체인 ‘대정친목회’에서 활동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친일 의혹이 일었다. 이 단체는 조선인 상류층이 참여했으며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완용이 고문을 맡았다. 역사문제연구소 장신 상임연구위원의 2007년 논문 ‘대정친목회와 내선융화운동’에 따르면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1927년 대정친목회에 대해 “총독정치를 시인하고 내선민족의 융화를 목적으로 하는 내선융화단체”라고 언급했다. 다만 안상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펴낸 친일인명사전에는 이름이 등재돼 있지 않다. 논란이 커지자 하영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장문의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하영은 “이번 일을 계기로 관련 자료를 직접 찾아보는 과정에서 증조부의 친일 행적을 알게 됐다”면서 “일제강점기라는 뼈아픈 시간을 지낸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족사를 가볍게 언급했던 것을 반성한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제가 미처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 역사를 외면하거나 가볍게 여길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과오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광복절을 앞둔 시기에 저의 부족함으로 물의를 일으켜 더욱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 손님 만취시켜 술값 부풀리고 방치해 숨지게 한 업주 징역 6년

    손님 만취시켜 술값 부풀리고 방치해 숨지게 한 업주 징역 6년

    손님을 고의로 만취시킨 뒤 술값을 부풀려 결제하는 이른바 ‘작업’을 벌이고 의식을 잃은 손님을 장시간 방치해 숨지게 한 유흥업소 업주와 종업원들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부산지법 형사6부는 유기치사와 컴퓨터 등 사용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유흥주점 업주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고 14일 밝혔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종업원 B씨는 징역 2년, 또 다른 종업원 2명은 각각 징역 1년, 나머지 종업원 1명은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 등은 2024년 10월 24일 손님 C씨를 유흥주점으로 유인한 뒤 짧은 시간 안에 양주 1병과 맥주를 마시게 해 의식을 잃게 했다. 이후 C씨가 의식을 잃은 틈을 타 술값을 부풀려 결제하고, 별다른 조치 없이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주점에서는 손님에게 술을 집중적으로 마시게 해 만취시킨 뒤 돈을 빼내는 이른바 ‘작업’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에 성공하면 가담자들이 금액을 나눠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A씨 등은 무단 결제 사실을 감추려고 방 안에 양주 빈 병 여러 개를 가져다 놓은 뒤 결제를 진행했다. C씨가 의식을 잃자 손가락으로 휴대전화 지문 잠금 해제를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이후 신용카드를 이용해 91만원을 무단 결제했다. 추가로 132만원을 결제하려 했지만 미수에 그쳤다. C씨는 의식을 잃은 뒤 약 3시간 20분 동안 방 안에 방치됐고 결국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숨졌다. 재판부는 C씨의 사망에 대한 피고인들의 예견 가능성과 의식을 잃은 피해자를 방치한 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손가락으로 지문을 찍거나 지갑에서 카드를 빼내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의식을 잃어야 작업이 가능한 구조”라며 “알코올을 과다 섭취하게 해 의식을 잃게 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치명적인 위협을 발생시킨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해자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상태임을 알고도 적극적으로 상태를 확인하거나 깨우는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며 “범행 이후 공범들과 말을 맞추고 휴대전화 대화 내용을 삭제하는 등 범행을 은폐하려 한 점, 유족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했고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도 충분하지 않았던 점 등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 日언론 “韓, 왜 친일파 자손 용서 안 하나”…“연예인 몰아세우는 연좌제” 주장도

    日언론 “韓, 왜 친일파 자손 용서 안 하나”…“연예인 몰아세우는 연좌제” 주장도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33)의 증조부가 일제강점기 친일 단체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일본 언론들이 하영 증조부 논란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12일 일본 매체 JB프레스는 ‘왜 한국은 친일파의 자손을 용서하지 않는가’라는 취지의 칼럼을 통해 하영 증조부 논란을 다뤘다. 매체는 “한국 연예계에는 오래전부터 따라다니는 ‘주홍글씨’가 있다. 다름 아닌 ‘친일파의 자손’이라는 낙인”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하영 증조부의 행적이 후손 비판의 근거가 되는 상황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매체는 “하씨가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것도 아니고, 만난 적도 없는 증조부의 과거 행위가 문제 되고 있다”며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어느새 그에게 ‘친일파의 자손’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고 전했다. 매체는 “한국 연예계에선 인기를 얻으면 당사자의 과거 행적뿐만 아니라 부모, 형제, 심지어 조상의 행적까지 파헤쳐진다. 그중에서도 ‘친일 선조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국인을 가장 격분하게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 하영과 비슷한 논란에 휩싸였던 한국 배우들의 사례를 나열하며 “한국 사회는 조상의 죄를 후손에게 묻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에 관한 표현마저 법으로 심판하려 하고 있다”며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것은 역사를 잊는 일이 아니라 역사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을 심판하는 도구가 되는 현실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후지뉴스네트워크(FNN)에도 ‘한국에서 친일이 갖는 무거운 의미’라는 제목의 칼럼이 올라왔다. 후지TV 객원 해설위원인 가모시카 히로미 교수는 안상호에게 제기된 친일 행적과 의혹을 소개하며 “소셜미디어(SNS)에선 (하씨에 대해) 사실과 근거가 부족한 의혹으로 ‘이완용을 구하고 고종을 독살한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비난이 퍼졌다”며 “하씨의 사과에도 출연작으로부터 하차나 연예계 은퇴를 요구하는 등 거센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의 친일 청산 인식도 언급했다. 가모시카 교수는 “한국에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있다”며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인식은 지금도 뿌리 깊어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의 조상에게 친일 의혹이 제기되면 ‘친일 대가로 후손까지 번영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선조의 행적을 검증하는 것과 후손에게 사회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별개 문제”라며 “증조부의 의혹을 이유로 방송 프로그램과 광고까지 비공개되는 상황은 현대판 ‘연좌제’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친일’이라는 표현의 범위가 확대됐다는 주장도 내놨다. 그는 “확인된 행위와 근거 없는 의혹, 선조와 후손, 역사적 책임과 현대의 정치적 공격은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친일’이라는 말의 적용 대상은 끝없이 확대되고 본래 무엇을 비판하고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마저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를 잊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기억이 새로운 차별이나 집단적 공격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며 “이번 논란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뿐만 아니라 그 책임을 누구에게, 어디까지 물을 것인가라는 어려운 과제를 한국 사회에 던지고 있다”고 했다. 앞서 하영은 지난 7일 방송된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언니까지 4대째 의사 집안”이라며 “증조할아버지께서 당시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하셨다고 한다. 고종황제를 진료하시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하영의 증조부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에서 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의료인인 안상호(1872~1927)로, 당시 친일 인사들이 모여 만든 단체인 ‘대정친목회’에서 활동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친일 의혹이 일었다. 이 단체는 조선인 상류층이 참여했으며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완용이 고문을 맡았다. 역사문제연구소 장신 상임연구위원의 2007년 논문 ‘대정친목회와 내선융화운동’에 따르면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1927년 대정친목회에 대해 “총독정치를 시인하고 내선민족의 융화를 목적으로 하는 내선융화단체”라고 언급했다. 다만 안상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펴낸 친일인명사전에는 이름이 등재돼 있지 않다. 논란이 커지자 하영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장문의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하영은 “이번 일을 계기로 관련 자료를 직접 찾아보는 과정에서 증조부의 친일 행적을 알게 됐다”면서 “일제강점기라는 뼈아픈 시간을 지낸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족사를 가볍게 언급했던 것을 반성한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제가 미처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 역사를 외면하거나 가볍게 여길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과오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광복절을 앞둔 시기에 저의 부족함으로 물의를 일으켜 더욱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 원하건 원치 않건 익숙한 고통… 삶과 죽음의 경계서 ‘서성이다’

    원하건 원치 않건 익숙한 고통… 삶과 죽음의 경계서 ‘서성이다’

    작가와 주인공 ‘슬퍼지지 않음’을 고민어설픈 위로 속 무너진 삶 다시 일으켜비루한 언어로 찾은 치유·회복의 과정 일기(日記)가 문학인 이유는 개인의 내밀한 고통을 보편적인 감각으로 바꿔내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그 자체가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다. 작가의 아픔은 말과 글을 거치며 공동체의 감정과 연결된다. 소설가 장강명(51)의 신작 ‘서성이다’를 읽는 내내 심경이 복잡했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를 곁에서 지키는 소설 속 주인공 안시찬은 거의 그대로 현실 속 장강명과 겹치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장강명의 아내는 지난해 갑작스럽게 쓰러진 뒤 교모세포종 진단을 받았다. 최근 두 번째 뇌수술을 받았으며 현재 회복 중이라고 한다. 일간지 기자에서 성공한 소설가로, 쓰는 족족 작품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린 장강명의 삶은 멀리서 보기엔 더 바랄 게 없어 보였다. 그러나 삶의 위기는 누구에게나 예측할 수 없이 찾아온다. 당연하게도. “나는 지금 슬픈 걸까? 그는 또 생각했다. 두려움, 답답함, 막연함은 이제 아주 잘 알았다. 매사에 의심이 많은 인간이기는 했지만 자신이 그런 감정들을 겪고 있다는 데에는 일말의 의구심도 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슬픔이란 뭘까?”(207쪽) 침상에 잔뜩 토사물을 뱉어낸 아내는 지금이 몇 월인지, 남편의 이름이 무엇인지 대답하지 못했다. 그대로 응급실에 실려 가 수술을 받기까지 있었던 일과 감정들이 숨가쁘게 지나간다. 너무도 갑작스러웠기에 슬퍼할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 벌어진 이 일의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 주인공 혹은 작가 장강명은 한참 ‘슬퍼지지 않음’의 이유를 고민한다. 그러다 아주 공교로우면서도 잔인한 일이 발생한다. 부부가 집을 구하고자 아내 명의로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다. 잔금을 치르려면 아내 통장에서 돈을 뽑아야 했다. 그런데 주인공은 아내가 어떤 비밀번호를 쓰는지 알지 못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투하고 있는 아내를 옆에 두고 남편은 은행의 절차와 돈 문제를 고민해야 했다. 이보다 더 큰 아이러니가 있을까. “세상에는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적어도 그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은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순간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렇게 서성이다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되겠지. 원하건 원치 않건 미래가 그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결국 그는 미래와 타협하게 되리라. 희미해진 혹은 익숙해진 고통에 자신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트라우마를 통해 성장했다는 말을 지껄이게 될 거라 상상하니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214쪽) 어설픈 위로가 그에게 몰려들었을 것이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문장이 작가의 귀에 맴돌았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우리가 전할 수 있는 건 오직 그뿐이다. 거대한 고통 앞에서 위안의 언어는 한없이 비루하다. 하지만 그것으로라도 무너진 삶을 일으켜 세울 수밖에 없다. 잔인한 진실 속에서 인간은 기어이 신을 찾는다. 자기가 스스로 ‘발명’한 신을.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보다 먼저 죽기 때문에 신을 발명한 것이다. 무언가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빌고 싶어서. 그 앞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는 기분을 얻고 싶어서. 기적을 주관하는 존재가 절실해서.”(221쪽) 장강명의 체험이 깊이 반영돼 있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소설이다. 안시찬이 겪은 감정의 상당 부분은 장강명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지만, 소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실제와는 꽤 다르다고 장강명은 밝혔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는 실제 울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는 침상 앞에 선 채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도움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다. 미안해, 내 잘못이야, 나 때문에 자기가 이렇게 됐어, 정말 사랑해, 정말 미안해…….”(183쪽)
  • 해외로 아이를 입양 보낸 엄마들… 가슴에 묻힌 목소리를 듣다

    해외로 아이를 입양 보낸 엄마들… 가슴에 묻힌 목소리를 듣다

    ‘가난 때문에 아이를 포기한 희생적인 어머니’, ‘미숙하고 방탕하며 무책임한 미혼모’. 해외로 아이를 입양 보낸 친생모에 대한 극과 극의 프레임. 이 프레임이 그동안 이들의 목소리를 숨겼다. 해외입양인 수는 정부 추산 17만여명. 국가별 친생모 집단 가운데 한국이 그 규모가 가장 크다. 그러나 이들에게 주목한 기록은 미비하다. “한국사회는 왜 지금까지 수많은 여성의 존재에, 경험에, 나아가 이들을 상대로 벌어진 재생산 폭력의 역사에 이토록 무관심했던 것일까?” 이 의문에서 시작한 저자 김호수 미국 뉴욕시립대 스태튼아일랜드 칼리지 사회학·인류학 부교수의 연구는 해외입양 연구에서 공백으로 남아 있던 친생모의 관점을 최초로 채워 넣는다. 저자는 한국에서 태어나 1990년대 중반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이민자다. 그는 그동안 사회가 외면하고 은폐해 온 친생모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두 종류의 친생모에 대한 상(像)을 제시하는 인식의 틀을 통해서다. 하나는 아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며 입양을 결단한 ‘가상한’ 어머니, 또 다른 하나는 실재하지 않는 시공간에서 재구성되고 표상되는 ‘가상의’ 어머니다. 한국 정부는 자본주의 경제 발전을 추구하는 흐름 위에서 적정 인구수를 강조했고, 공격적일 만큼 구체적인 가족계획 목표를 설정했다. ‘정상가족’이라는 규범적인 가족상을 강화하며 가난한 노동계급 어머니, 미혼모, 기지촌 성노동자 여성과 그들의 자녀는 잉여로 취급했다. 사회복지 서비스의 공백은 가족에게 그 기능을 전가했다. 해외 원조로 세워진 입양기관이 이를 대체했다. 이 과정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기보다 창창한 미래가 보장된 서구 가정으로 아이를 보내는 것이 어머니된 도리로 강요됐다. 특히 미혼모에게는 아이를 포기하는 것을 최선의 선택지로 내밀었다. 저자는 이들이 해외입양을 선택함으로써 “국가적 안보 의제에 동참”하는 “미덕을 갖춘 어머니 주체, ‘가상한’ 어머니 자리에 서게 된다”고 설명한다. 1990년대 들어 국제사회에서 해외입양이 비판적으로 검토되자 한국에서는 생방송 가족 찾기 프로그램이 성행한다. 저자는 2005년 가족 찾기 프로그램에 통역사로 관여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친생모가 ‘가상의’ 어머니로 거듭났던 순간을 되짚는다. 연출자의 각본에 따라 친생모들은 과거를 후회하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조명이 켜진 무대에서 화해와 용서가 이뤄진다. 입양 가정에서 번듯하게 자란 자녀를 맞이하는 친생모 뒤에 숨은 국가는 수치스러운 과거를 회복한다. 책의 탁월성은 인터뷰를 통해 담긴 실제 친생모들의 목소리에 있다. 그들의 생생한 증언은 납작하거나 추상적으로 다뤄지던 친생모의 삶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공간을 마련한다.
  • ‘레버리지 ETF’ 책임론에 金·宋 “국민께 죄송”…鄭 “문책할 일 있으면 강력한 조치”

    ‘레버리지 ETF’ 책임론에 金·宋 “국민께 죄송”…鄭 “문책할 일 있으면 강력한 조치”

    더불어민주당 송영길·정청래·김민석(기호순) 당대표 후보들은 12일 8·17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TV 토론회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책임론 등을 놓고 치열한 난타전을 벌였다. 정 후보는 이날 서울 양천구 SBS 목동 스튜디오에서 열린 TV 토론회에서 “민주당을 민주당답게, 더 강력한 개혁당대표 정청래”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광주에 설치하는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는 지역 발전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 사업부터 잘 챙기고,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호남의 지지를 호소했다. 반면 송 후보는 “개혁당 대표도, 청래당 대표도, 조국혁신당 대표도 아닌 민주당 대표 후보 기호 1번 송영길”이라고 소개하며 “지난 6·3 지방선거를 통해 국민들은 저희들에게 경고를 줬다. 비록 형식상으로는 이겼습니다만, 내란 세력을 다시 부활시키고 대등한 정치 세력으로 만들어준 잘못을 저질렀다”고 지방선거 책임론을 부각했다. 김 후보는 “전당대회 기간에 이러저러한 논쟁과 갈등이 있었다”며 “전당대회가 끝나면 당을 하나로 잘 화합시켜서 든든하게 국정을 뒷받침하고 총선 승리에 이르는 길을 이끌어가겠다”고 당내 화합을 강조했다. 그러나 당권주자들은 급격한 주가 변동 원인으로 지목된 레버리지 ETF 도입에 대한 공통질문부터 첨예한 입장차를 보였다. 송 후보는 “먼저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며 “레버리지 ETF 때문에 약 60조 원이 시가총액에서 사라졌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단기적인 변동폭을 조정하기 위해서 더 기탁금을 올리고 시장을 잘 예의주시해서 반전의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김 후보도 “우려하셨던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며 “마침 그 레버리지 ETF를 통과시킨 회의를 제가 사회를 봤지만, 경제팀 고유의 사안이어서 사전에 특별히 대면 보고는 없었다. 이 문제를 야당에서 또 특히나 여당 내에서 과도한 정치 공세로 삼는다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정 후보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로 피멍 든 일반 투자자들이 많다”며 “4월 21일 국무회의 법령안을 보면 제출자가 김민석 총리로 되어 있고, 국무회의 주재도 김민석 총리가 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김 후보는 ‘내가 직접 지시한 적이 없다’며 책임 회피성 발언을 하고 있다”면서 “문책할 일이 있으면 대통령 몫이겠지만 강력한 조치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2028년 총선 승리를 위한 바람직한 당청관계를 주제로 한 주도권 토론에선 본격적인 네거티브전에 나섰다. 김 후보는 정 후보가 2021년 해인사 입장료에 대해 ‘봉이 김선달’ 발언으로 불교계의 반발을 샀음에도 사과와 탈당 요구를 거부하면서 20대 대선 패배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을 집중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지난 대선에서 저희가 아주 근소하게 패했을 때는 이재명 후보에 대한 불교계의 갈등이 문제가 됐었다”며 “그 발단은 정 후보의 봉이 김선달 발언이 문제가 됐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정 후보는 “공격해 주셔서 감사하다. 근데 그 공격이 저한테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며 “불교계에서 숙원사업이었던 문화재 관람료, 절에 가면 돈을 내는 문제를 문화재 보호법 개정안으로 해결해서 국가에서 그걸 보조를 해주고 있어 지금 불교계 스님들이 정청래를 다들 좋아한다”고 반박했다. 정 후보는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정몽준 대선 후보 단일화를 위해 탈당한 김 후보의 전력을 물고 늘어졌다. 정 후보는 송 후보에게 김 후보 관련 질문을 하며 “2002년 정몽준과의 단일화 문제에 있어서 정몽준이 대선 후보가 돼도 좋겠다 하는 심정으로 정몽준으로 날아갔다고 얘기를 했다”며 “아무리 사과를 수백 번 했다지만 이런 분이 당대표가 됐을 때 실제로 우리 전통적인 지지층들이 ‘아니 정몽준을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했단 말이야’ 이런 생각이 들 텐데 이게 당에 도움이 되는 거냐”고 비판했다. 송 후보는 “잘못한 부분이 있다. 저도 그때 많이 비판을 했다”면서도 “근데 어찌 됐건 정몽준과 단일화를 하지 않았으면 대선을 이기기가 쉽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대선 승리에 도움을 줬다고 생각이 들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그 용서를 하고 받아줬다”고 말했다. 정 후보는 김 후보의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스마트 독재’ 발언을 송 후보에게 묻기도 했다. 정 후보는 “그렇지 않아도 지금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져서 전통적 지지층, 핵심 코어층이 실제로 마음이 식은 것은 아니냐”면서 “이런 정체성 부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송 후보는 “왜 그렇게 전통 지지층이 흔들린다는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그런 부분들은 뿌리가 확고한 리더십을 가지고 설득해 나가면 될 문제이고 우리 외연을 확장하지 않으면 구조적 다수를 어떻게 만들 수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정 후보와 김 후보는 ‘치하한다’는 표현을 두고 감정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정 후보는 “김 후보가 저한테 치하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치하는 윗사람이 아랫사람한테 하는 거”라며 “그렇게 사람 무시하고 윗사람이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 태도는 국민들한테 눈살을 찌푸릴 것 같다”고 지적했다. 송 후보는 이재명 정부의 1호 국정과제에 대한 질문에 대해 ‘내란 종식’이라고 답했던 정 후보와 입씨름을 벌이기도 했다. 송 후보는 “이재명 정부가 국무회의를 통해서 공식 확정한 국정과제 123개 자체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게 너무나 저는 충격”이라며 “내란 종식이라는 것은 조국혁신당의 1호 공약인 걸로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 후보는 “송 후보께서는 무슨 청래당 얘기도 하는데 그 당이 ‘파티’가 아니고 ‘청래이당’”이라며 “그럼 국정과제 50호는 뭐냐”고 맞받았다. 송 후보는 “정 후보의 이런 태도가 국민들이 봤을 때 집권여당의 대표가 솔직하지가 않다”며 “여야의 관계도 마찬가지고 당 내부에서도 임기응변으로 말꼬리를 흐리는 건 맞지 않다”고 했다. 세 후보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만찬에 함께 갈 사람을 선택하라는 질문에도 상이한 답변을 했다. 정 후보는 아내, 송 후보는 김용 최고위원 후보, 김 후보는 정 후보와 함께 가겠다고 답했다. 후보들은 이 대통령이 당대표에게 ‘레드팀’ 역할을 요청한다면 어떤 말을 하겠느냐는 질문에도 각자 답을 달리했다. 송 후보는 “우리 부동산은 투기고, 주식은 투자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해야 한다. 부동산도 투자일 수 있다”며 “현실성 있는 대안, 공급과 함께 금융 지원의 필요성을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김 후보는 “(이 대통령에게) 일정을 좀 줄이라고 하고 수첩을 뺏겠다”며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에게는 생각의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 건강의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 후보는 외교 라인에서 이른바 ‘자주파’와 ‘동맹파’를 적절히 활용할 것을 제안하겠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께서 지금 전 분야를 다 잘하고 계시지만 외교를 특히 잘하고 있다”며 “외교의 최종 목표는 국익 추구”라고 말했다.
  • 동네 후배와 시비 끝에 흉기 살해한 40대…징역 16년

    동네 후배와 시비 끝에 흉기 살해한 40대…징역 16년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았던 동네 후배와 다툰 뒤 흉기를 들고 찾아가 살해한 40대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창원지법 통영지원 형사1부(부장 김영석)는 10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6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A씨는 지난 6월 12일 낮 12시 25분쯤 경남 고성군에 있는 30대 B씨의 주거지를 찾아가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와 B씨는 인력사무소에서 알게 된 사이로, A씨는 평소 B씨가 자신에게 버릇없이 행동하고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 당일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던 B씨와 부딪힐 뻔한 일을 계기로 시비가 붙었다. 두 사람은 다툰 뒤 헤어졌지만 A씨는 자택으로 돌아가 흉기를 챙겨 B씨의 거주지로 다시 찾아갔다. A씨는 B씨에게 “죽이라고 해서 죽이러 왔다”고 말하며 몸싸움을 벌였고, B씨가 인근 컨테이너로 달아나자 뒤쫓아가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것으로 파악됐다. 범행 당시 A씨는 술에 취한 상태였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도발적이고 위협적인 언행을 한 사정은 있다고 하더라도 생명을 빼앗은 행위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며 “범행 경위와 수법, 내용 등에 비춰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은 피해자 유족으로부터 용서받거나 합의에 이르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있고 벌금형을 초과하는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피해자와 다투던 중 다소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 “제 손으로 아이들 숨 끊어야”… 여우고개 백골 자매 비정한 천륜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제 손으로 아이들 숨 끊어야”… 여우고개 백골 자매 비정한 천륜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은 대한민국을 뒤흔든 주요 사건들을 통해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시리즈입니다. 과거의 기록을 되짚으며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고 정의와 안전의 가치를 깊이 있게 고찰하는 서울신문의 특화 기사입니다. 서울신문은 기사 내용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AI 음성을 이용해 기사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잠시 후 저희 손으로 아이들의 목을 졸라야 합니다. 이런 부모가 또 있을까요?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모든 사람에게 더 큰 피해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야 할 ‘가족’이라는 이름. 그러나 그 이름 뒤에 숨어 가장 잔혹한 예고장을 쓴 이들은 다름 아닌 30대 어머니 정 씨와 40대 아버지 이 씨였다. 2011년 2월 15일, 매서운 겨울바람이 살을 에던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백운계곡의 한 차가운 민박집 주차장. 정 씨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지를 꺼내 천인공노할 범죄를 덤덤히 써 내려갔다. 같은 시각, 남편 이 씨 역시 눈물과 비겁한 변명으로 얼룩진 유서를 매형에게 남기고 있었다. “남겨진 아이들이 천덕꾸러기가 될 것 같아 저희가 데려갑니다. 불쌍한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죽을 각오로 잘 살아보려 했는데 현실은 너무 무섭습니다. 어제도 행동으로 옮기려 했으나 아이들의 눈이 밟혀 못했습니다.” 이들이 ‘가족 여행’이라는 달콤한 거짓말로 13살, 10살 두 딸을 데리고 집을 나선 지 이틀째 되던 날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 잔혹한 예고장은 현실이 되었다. 10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2011년 12월 30일, 성탄절의 들뜬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경기도 포천시 여우고개 6부 능선 계곡. 한 등산객이 70m 깊이의 가파른 낭떠러지 아래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진청색 승용차를 목격했다. 그곳에는 차에서 불과 10m 떨어진 곳에 파란색 비옷과 담요 등으로 조심스럽게 덮인 두 구의 백골 시신이 방치되어 있었다. 치아 발육 상태와 뼈의 길이를 통해 확인된 신원은 불과 13살, 10살의 어린 자매였다. 동반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며 사라졌던 4인 가족 중 어린 두 딸만이 캄캄하고 차가운 계곡의 백골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자매를 그곳에 남겨둔 채 사라진 부모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이 참혹한 사건의 전말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잔혹한 이기심의 극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빚더미가 앗아간 이성… 경제적 파탄이 부른 비극의 서막사건의 비극은 지극히 평범하고 성실했던 한 부부의 삶이 경제적 파탄이라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면서 시작되었다. 남편 이 씨(당시 46세)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전자상가 등에서 컴퓨터 관련 일을 하던 평범한 기술자였다. 그는 성실하게 모은 전세금 등 전 재산을 쏟아부어 지인들과 야심 차게 사업을 시작했으나 처참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집 보증금까지 전부 날린 이 씨는 결국 가족들을 이끌고 경기 고양시 일산에 있는 자신의 누나 집에 얹혀사는 신세로 전락했다. 비록 사업은 망했으나 이 씨는 일용직 노동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려 애썼고 주변 이웃들은 그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유난히 강했던 성실한 가장”으로 기억했다. 문제는 아내 정 씨(당시 37세)에게서 터져 나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학습지 판매회사에 입사한 정 씨는 남다른 영업력으로 해당 지점의 연간 총매출 6억 원 중 무려 4억 5,000만 원을 혼자 달성할 정도로 독보적인 우수 사원이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실적의 이면에는 썩어 들어가는 곪은 상처가 있었다. 업계의 무리한 실적 압박에 시달리던 정 씨는 직급을 유지하고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편법을 쓰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의 명의를 도용해 허위로 학습지 구매 계약을 체결한 뒤 고객들이 준 현금으로 이를 이른바 ‘돌려막기’ 하기 시작한 것이다. 허위로 도맡아 사들인 교재들은 인터넷에 헐값으로 되팔아 자금을 마련하려 했으나 빚은 걷잡을 수 없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이 비정상적인 영업 방식은 본사에 적발되었고 정 씨는 회사 측의 고발로 1,000만 원의 벌금형까지 선고받자 가계는 완전히 파탄 났다. 정 씨의 월급은 압류되었고 정 씨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한 달에 고작 50만 원뿐이었다. 반면 매달 변제해야 하는 학습지 대금과 사채 이자는 600만~700만 원에 달했다. 정 씨는 주변 지인들의 신용카드까지 빌려 쓰며 버텼으나 채무는 무려 1억 3,000만 원을 돌파하며 한계에 다다랐다. 설상가상으로 얹혀살던 이 씨 누나의 집마저 월세가 밀려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무엇보다 정 씨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은 당장 다음 달이면 중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첫째 딸의 교복을 살 단돈 10만 원조차 없었다는 참혹한 현실이었다. 더 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는 궁지에 몰리자 정 씨는 해서는 안 될 극단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다. “여보, 난 더 이상 못 살겠어. 이 빚 절대 못 갚아. 이제 다 끝이야.” 정 씨는 남편 이 씨에게 가족 모두가 세상을 떠나자는 끔찍한 제안을 했다. 처음엔 이 씨도 펄쩍 뛰며 말렸다. “어떻게든 열심히 살면 기회가 온다”고 아내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하지만 정 씨의 태도는 완강했다. 죽음 외에는 이 지옥 같은 현실을 탈출할 방법이 없다는 아내의 짙은 절망 앞에 결국 남편 이 씨의 이성마저 마비되고 말았다. ‘가족 여행’의 가면을 쓴 잔혹한 이별식과 편지2011년 2월 14일 새벽 4시. 부부는 곤히 잠든 두 딸을 깨워 차 뒷좌석에 태웠다. 누나와 매형에게는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다”는 짤막한 메모만 남겨둔 채였다. 첫째 딸과 둘째 딸은 그저 오랜만의 밤하늘을 보며 가족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에 신이 나 있었다. 부모가 준비한 이 여행의 최종 목적지가 끔찍한 ‘죽음’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고양시 일산을 출발한 부부는 약 13시간 동안 정처 없이 떠돌다 당일 오후 경기 포천시 이동면 백운계곡의 한 민박집에 투숙했다. 부부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방에 들여보내 놀게 한 뒤 주차장에 세워둔 승용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다음 날 지인에게 급히 빌린 돈의 일부로 인근 편의점에서 편지지와 봉투, 볼펜을 구입해 각자 마지막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아내 정 씨는 시누에게 보내기 위한 유서에 자신들이 저지를 천인공노할 범죄를 덤덤하게 써 내려갔다. “처음 ‘형님’이라 불러 보네요… 아이들을 키울 자신도, 미래도 보이지 않기에 이리 죽을 결심을 했습니다. 세상이 참 무섭다는 거 너무 늦게 깨달아 죄송합니다. 잠시 후 저희 손으로 아이들의 목을 졸라야 합니다. 이런 부모가 또 있을까요…” 그들의 유서에는 자식을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가 아닌 자신들이 마음대로 거두고 처분할 수 있는 ‘소유물’로 취급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죽으면 남겨진 자식들이 비참하게 살 것이라는 핑계로 아이들의 찬란한 미래를 강제로 빼앗으려는 끔찍한 범행 모의에 불과했다. “보육원 갈래, 같이 갈래?”… 아이들의 영혼을 뒤흔든 잔혹한 가스라이팅그날 밤, 민박집 방 안에서 첫 번째 끔찍한 시도가 행해졌다. 그러나 신은 이 끔찍한 범죄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한밤중 잠결에 화장실에 가려던 어린 둘째 딸이 어두운 방 안에서 넘어졌다. 소스라치게 놀란 이 씨는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보며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고 급히 창문과 문을 열어 환기시켰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다음 날 일가족은 민박집을 나와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늦은 식사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나온 아내 정 씨는 차에 타기 전 두 딸을 앞에 두고 세상에서 가장 비정하고 잔혹한 질문을 던졌다. “엄마 아빠는 이제 죽기로 결심했어. 너희가 원치 않으면 보육원에 보내줄게. 그러면 나중에 친척들이 데리러 올 거야. 어떻게 할래?” 고작 13살, 10살에 불과한 아이들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아직 세상 물정도 모르는 어린 자매에게 “우리를 따라 죽을래, 아니면 낯선 보육원에 버려져 고아로 살래?”라는 협박과 다름없는 가스라이팅이었다. 부모의 절대적인 보호가 생존의 전부인 아이들에게 이 질문은 선택이 아닌 명백한 강요였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식을 외면한 악마적 본성부부는 급히 빌린 돈을 인출한 뒤, 포천 산정호수 인근의 한적한 숙박업소 공터로 이동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부부는 막걸리와 소주를 구입하고 치명적인 수단을 동원할 준비를 마쳤다.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자식들의 숨통을 끊을 수 없었기에 알코올의 힘을 빌리려 한 것이다. 2월 17일 새벽 2시. 졸음을 이기지 못해 칭얼거리는 두 딸을 다독여 승용차 뒷좌석에 눕힌 부부는 앞좌석에 탑승했다. 그리고 밀폐된 차 안에서 끔찍한 범행을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자 뒷좌석에서 괴로운 신음이 들려왔다. 잠에서 깨어난 두 딸이 숨이 막혀 고통스럽게 발버둥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식을 보았다면 즉시 문을 열고 구하는 것이 부모의 최소한의 본능일 터다. 그러나 부부의 선택은 잔인했다. 남편 이 씨는 뒷좌석으로 넘어가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발버둥을 치자 아내 정 씨는 앞좌석에서 뒤로 손을 뻗어 딸의 두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움켜쥐었다.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도리라는 병적인 망상에 빠진 채 부부는 그렇게 차례대로 첫째 딸과 둘째 딸의 호흡을 강제로 앗아갔다. 피지도 못한 두 송이 꽃이 가장 믿고 따르던 부모의 억압에 의해 무참히 꺾인 순간이었다. 질긴 목숨과 비겁한 생존 그리고 시신 방치두 딸이 차갑게 식어가자 부부는 시신을 포갠 뒤 자신들도 뒤따라 죽겠다며 차를 몰았다. 그들이 선택한 장소는 포천 여우고개 6부 능선의 낭떠러지였다. 이 씨는 70m 아래 가파른 절벽을 향해 가속 페달을 밟았다. 차는 허공을 날아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승용차는 바위에 부딪히며 산산조각이 났고 그 엄청난 충격으로 뒷좌석에 있던 두 딸의 시신은 차창 밖 거친 눈밭 위로 처참하게 튕겨 나갔다. 하지만 기적이자 비극적이게도 앞좌석에 탄 부부는 목숨을 건졌다. “죽기를 결심했다”던 그들은 차량이 추락하기 직전,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습관으로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던 것이다. 정신을 차린 부부는 다시 자살을 시도했다고 주장한다. 그 기나긴 실패 끝에 부부는 참으로 뻔뻔하고도 편리한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가 이렇게 해도 안 죽는 것을 보니, 우리는 살 운명인가 보다.” 참으로 비겁한 변명이었다. 생존을 선택한 부부는 눈밭에 처참하게 버려진 두 딸의 시신을 단 한 번 수습하지도 않은 채 여우고개를 걸어 내려왔다. 자식들의 가엾은 시신은 야생동물과 혹독한 비바람 속에 10개월 동안 백골로 변해갔다. 전국을 누빈 2년 2개월의 도피와 악마의 거짓말여우고개를 빠져나온 부부는 철저하게 ‘자신들만의 생존’을 도모했다. 2011년 2월 25일, 부부의 유서 편지를 받은 매형이 일산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접수하고 수사가 시작되었으나 부부는 이미 연기처럼 사라진 뒤였다. 그들은 며칠간 몸을 숨긴 뒤 버스를 타고 탈출했다.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소액의 돈을 송금받은 부부는 그 길로 대학병원을 찾아가 자신들의 동상 치료부터 받았다. 자식들은 차가운 눈밭에 백골로 썩어가고 있는 와중에, 부모라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언 발을 치료하기 위해 의정부와 강릉의 대형병원을 뻔뻔하게 전전한 것이다. 치료를 마친 부부는 경찰의 집요한 추적을 피하기 위해 PC방에서 일자리를 검색했다. 그들의 도피 경로는 대한민국 전국 지도와 다름없었다. 경기 의정부에서 시작해 강원 강릉, 충북 진천의 오이 농장, 충남 보령의 모텔, 경북 상주의 버섯 농장, 경북 청도, 경남 밀양의 펜션, 전남 여수,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전국 방방곡곡의 외진 시골을 유유히 누볐다. 주변에서 “젊은 부부가 왜 아이도 없이 이런 시골에서 일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정 씨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소름 돋는 거짓말을 지어냈다. “우리 애가 둘 있는데요 지금 다 호주로 유학 보냈어요. 유학 자금을 몇 년 치 미리 다 송금해 줘서 당장 돈 걱정은 없어요. 애들 유학비 벌려고 부부가 같이 고생하는 중이랍니다.” 자신의 손으로 생명을 앗아가고 그 사체가 산짐승에게 훼손되도록 내버려 둔 가엾은 자식들을 ‘호주 유학생’으로 둔갑시키는 악마적인 뻔뻔함이었다. 부부의 도피 행각은 부산 기장군의 한 농장에 안착하면서 장기화되었고 그곳에서 무려 1년 6개월 동안 숨어 지냈다. 은행 벽 수배 전단 1번, 드디어 드러난 실체와 배심원들의 분노길고 길었던 비극의 고리는 우연한 눈썰미에 의해 극적으로 끊어졌다. 여우고개에서 자매의 유골이 발견된 이후 경찰은 이 씨 부부를 전국의 공개수배 전단에 올렸다. 수많은 범죄자 중에서도 이 씨의 사진은 수배 전단 맨 첫 줄, 공개수배 1번에 당당히 배치되었다. 2013년 4월 초, 부산 기장군에 거주하던 한 주민이 농협을 방문했다가 벽에 붙은 전단을 보게 되었다. 수배자 1번의 얼굴이 동네 농장의 일꾼과 일치했던 것이다. 제보를 받은 경찰은 2013년 4월 10일 밭에서 일하고 있던 부부를 덮쳤다.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못한 이 씨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전 죽어 마땅한 사람입니다. 저쪽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이야기하시죠.” 자매가 목숨을 잃은 지 2년 2개월, 유골이 발견된 지 1년 4개월 만에 도피 행각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구속기소 된 부부는 재판 과정에서 뜻밖에도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배심원들에게 생활고를 눈물로 호소해 감형을 받아내겠다는 얄팍한 계산이었다. 법정에서 부부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오열했다. 이 씨는 “자식을 죽인 부모 입장에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진정으로 자식들을 사랑했다. 속죄하며 살겠다”며 뻔뻔하게 선처를 구했다. 그러나 7명의 배심원과 재판부의 시선은 냉정했다. 검찰은 “피지도 못한 어린아이들이 부모에게 생명을 빼앗기며 느꼈을 거대한 공포와 고통, 시신을 산속에 방치하고 도망 다닌 비정함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며 부부에게 각각 징역 20년을 강력히 구형했다.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유죄를 평결했다. 재판부 역시 이들의 범행이 명백한 ‘살인’임을 판결문을 통해 엄중히 선언했다. “자녀들은 부모의 몸을 통해 태어났으나 부모와는 독립된 인격체로서 어떠한 경우에도 보장되고 존중되어야 할 고귀한 생명권을 가진다. 피고인들은 자녀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고 주장하지만 어린아이들에게 ‘엄마 아빠와 같이 죽을래, 혼자 살래’라고 묻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판단할 수 없는 강요이며 극심한 학대다. 부모라고 할지라도 자식을 자기의 소유물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솜방망이 처벌과 이 비극이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재판부는 생활고로 인한 정신적 혼란과 초범인 점 등을 참작하여 부부에게 각각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자식을 잔혹하게 유기한 대가치고는 대중의 법 감정에 턱없이 부족하고 가벼운 형량이었으나 사법부가 내린 판결의 메시지만큼은 묵직했다. 부부는 형량이 너무 무겁다며 즉각 항소하는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였으나, 기각되어 원심이 확정되었다.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이 씨 부부는 형기를 모두 채우고 2023년 4월 9일 만기 출소하여 우리 사회로 이미 돌아왔다. 그들이 지은 끔찍한 죄에 비해 10년의 감옥 생활은 너무나도 짧고 가벼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사회로 복귀한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는 유사한 비극이 처참하게 되풀이되고 있다. 언론에 종종 보도되는 ‘일가족 동반자살’의 실체는 대부분 명백한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이다. 자신의 삶이 무너진다고 해서 무고한 자식의 생명까지 동반 처분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서구 사회에서는 이를 ‘가장 잔혹한 아동 살해 사건’으로 분류하여 가중처벌하지만 한국 사회는 ‘오죽했으면 자식과 함께 죽었겠느냐’는 온정주의적 잔재가 남아 있다. 이 사건의 국선 변호인을 맡았던 변호사는 훗날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저희가 만난 수많은 피고인 중 자신들이 저지른 짓을 가장 뼈저리게 후회하고 지옥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만약 지금 이 순간에도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며 자식을 같이 데려가겠다는 부모가 있다면 먼저 저질렀던 이들이 겪은 지옥 같은 후회를 보고 제발 멈추어 달라고 간곡히 전하고 싶다.” 벼랑 끝에 몰린 부모들이 절망 속에서 손을 뻗을 수 있는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과 더불어 ‘자식의 생명은 온전히 자식의 것’이라는 아동 인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인식 대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 “스펙보다 AI 실무”… 한성대, 직원 채용서 학력 제한 전면 폐지

    “스펙보다 AI 실무”… 한성대, 직원 채용서 학력 제한 전면 폐지

    한성대학교는 지난 4일 실시한 2026학년도 하반기 직원 채용부터 학력 제한을 전면 폐지하고 ‘생성형 AI 활용 직무시험’을 도입했다고 7일 밝혔다. 대학 행정직 채용에서 학력 요건을 완전히 없앤 것은 국내 대학 중 이례적인 시도다. 정형화된 스펙 대신 실무 역량과 디지털 활용 능력을 우선하겠다는 취지다. 이번 시험은 민원 응대, 예산 보고서 작성 등 실제 대학 행정 현장의 업무 사례를 제시하고 지원자가 생성형 AI를 활용해 해결안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단순 도구 사용을 넘어 AI의 결과물을 검증하고 수정·보완하는 실전 역량을 다각도로 평가했다. 이창원 총장은 “학력 등 형식적 기준보다 현장 문제 해결 능력을 검증하는 이번 채용이 미래 대학 행정을 이끌어갈 인재 선발의 새로운 모델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성대는 앞으로도 학력·스펙 중심에서 벗어나 디지털·AI 융합 역량 중심의 채용 혁신을 지속해서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 가수 이랑, 日 나가이 가후 문학상 수상…‘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여성 향한 폭력과 상처 응시

    가수 이랑, 日 나가이 가후 문학상 수상…‘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여성 향한 폭력과 상처 응시

    가수이자 작가인 이랑이 에세이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로 일본 나가이 가후 문학상을 받았다고 출판사 이야기장수가 9일 밝혔다. 한국 국적 작가가 이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나가이 가후 문학상은 일본 근대문학의 거장인 나가이 가후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종합 문학상이다. 시, 소설, 에세이, 평론, 희곡 등 장르의 경계를 두지 않고, 1년간 일본에서 출간된 모든 문학작품 중 문학성과 작품성이 뛰어난 단 한 편의 최고 작품을 선정한다. 상금은 100만 엔(약 900만 원)이다.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출간된 이 책은 어머니와 언니, 그리고 자신으로 이어지는 여성 가족의 삶을 통해 개인과 사회에 반복되는 폭력과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이다. 특히 가족과 사회의 압력 속에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타인에게 전부 내어주다가 끝내 자살한 언니의 죽음을 이랑 작가는 ‘소진사’라고 썼다. 올해는 일본을 대표하는 비평가이자 사상가 아즈마 히로키, 2022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소설가 이도가와 이코, 일본 논픽션의 거장 사와키 고타로, 시, 연극 등 장르를 넘나드는 예술가 가게야마 기쇼다이 등이 후보에 올랐다. 출판사 관계자는 “일본 출간 직후, 초판 5000부가 수일 만에 소진됐으며 한국에서도 출간 즉시 에세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출간 8일 만에 4쇄를 찍었다”고 설명했다. 올해 나가이 가후 문학상 심사위원을 맡은 가네하라 히토미는 “죽고 싶을 때, 용서할 수 없을 때, 구원받고 싶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을 때, 나는 죽을 때까지 이 책을 계속 펼칠 것”이라고 평했다. 시상식은 오는 11월 2일 일본 이치카와시에서 열린다.
  • 보훈부 “노태우 묘소 참배 계획 없어”...발언 수습

    보훈부 “노태우 묘소 참배 계획 없어”...발언 수습

    노태우 전 대통령 묘소 참배 가능성을 내비쳤던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이 참배하지 않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앞서 국민통합 차원에서 묘소 참배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힌 뒤 논란이 확산하자 부 차원에서 입장을 명확히 정리한 것으로 풀이된다. 보훈부는 6일 배포한 자료를 통해 “노태우 전 대통령은 사면복권은 됐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복원되지 않았고, 국민의 반대 정서 등을 신중히 고려해 참배할 계획이 없다”라고 밝혔다. 권 장관은지난 3일 대통령 업무보고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진영을 넘어 전직 대통령과 영부인 묘소를 참배하고 대통령 근조화환을 비치하는 행보로 국민 통합 메시지를 전했다”면서 노 전 대통령 참배 문제에 대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장관은 진영에 따라 전직 대통령 묘소 참배 여부를 달리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할 수 있다며, 국민통합 차원에서 노 전 대통령 묘소 참배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다만 권 장관도 당시 “보훈부 장관 개인 생각만 가지고 처신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며 국민 정서와 법적 지위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권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의 경우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탄압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는 없었지만, 아들 노재헌 주중대사가 사후 유언을 통해 책임과 과오에 대한 용서를 구한 점 등도 언급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97년 특별사면·복권됐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까지 회복된 것은 아니다. 반면 전두환 씨에 대해서는 5·18과 관련해 진솔한 사과 없이 항변과 강변만 했다며 참배 검토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보훈부는 “앞으로 독립·호국·민주 등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에 대한 예우와 지원이라는 본연의 업무는 물론 보훈의 또 다른 역할인 국민통합 행보에 있어서도 더욱 신중을 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李 “육사 출신들, 쿠데타 벌여… 사관학교 합치면 이런 일 줄 것”

    李 “육사 출신들, 쿠데타 벌여… 사관학교 합치면 이런 일 줄 것”

    “쿠데타 벌이고 책임 물은 적 있나”미군 공여지 반환 늦자 “선불 안 돼”전작권 로드맵, 후반기 완성 목표연합구성군사령부 내년까지 상설화 이재명 대통령은 5일 “대한민국의 군사 쿠데타가 몇 번 있었나. 다 육군에서 벌어진 일 아닌가”라며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한 일인데 거기에 대해 책임을 물은 일이 있나”라고 지적했다. 일종의 세력화가 된 육사 출신을 겨냥하며 정부의 통합 사관학교 추진에 힘을 실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방부 대상 업무보고에서 육·해·공 3군 사관학교 통합 필요성을 언급하던 중 “대다수의 장병은 국가에 충성하며 군인의 소명을 다하고 있는데, 일부가 이런 용서 못 할 짓을 벌인다”며 “그런 소지를 없애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헌정질서를 통째로 파괴하는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여전히 압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나”라며 “(사관학교를) 통합하면 이런 가능성이 좀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이에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책임감을 갖고 추진하겠다”며 “국민이 ‘그만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 설득을 구하고 정진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신속하고 강력하게, 빨리 (추진)하라. 얘기만 하고 진척 속도는 조금 그렇다(느리다)”고 꼬집었다. 이 대통령은 미군의 공여지 반환이 지연되는 상황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평택 기지 짓는 데만 땅값 빼고 10조원 이상 들었다”며 “미군 공여지 반환 협상이 너무 늦어지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안 장관이 “미군 측에서 약간 소극적인 자세가 있어 저희가 촉구하고 있다”고 보고하자, 이 대통령은 “이래서 원래 선불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또 “외부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는 자주국방은 우리의 가장 큰 과제”라며 “당연히 주권의 일부인 군 지휘권도 스스로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장관은 “후반기에는 조속히 (전시작전통제권 회복) 로드맵을 완성하고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이 완료되면 전작권 회복 시기를 건의하는 등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국방부는 오는 4분기 예정된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전작권 전환 목표연도를 정해 양국 군 통수권자에게 건의할 계획이다. 국방부는 연합구성군사령부 상설화를 지속 추진하는 등 연합방위 태세 구축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6개 연합구성군사령부 중 상설 운영 중인 4개 외에 연합특수작전구성군사령부(연특사)는 연내에, 연합군사정보지원작전구성군사령부(연정사)는 내년까지 상설화할 방침이다. 한편 육사 총동창회는 입장문을 내고 사관학교 통폐합에 대해 “합동성 강화와 스마트 강군 육성은 명분에 불과했고, 과거 역사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 아내 가출하자 성매매女 불러 술판…3개월 아들 때려 죽였다

    아내 가출하자 성매매女 불러 술판…3개월 아들 때려 죽였다

    아내가 가출했다는 이유로 집에 성매매 여성을 불러 술을 마신 뒤 생후 3개월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30대 남성이 중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5일 법조계와 연합뉴스에 따르면 창원지법 형사2부(부장 김성환)는 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아동학대살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남성 A씨에게 지난 6월 11일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와 아동 관련 기관 취업제한 10년도 함께 명령했다. A씨는 지난해 11월 24일 오전 2시쯤 경남 김해시에 있는 자택에서 생후 3개월 친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범행 전날 아들을 욕실에서 씻기다가 떨어뜨렸지만 별다른 처치를 하지 않기도 했다. 범행 당시 A씨의 아내 B씨는 가출한 상태였다. 이들은 이틀 전인 같은 달 22일 음주 문제 및 경제적 갈등 등을 이유로 다투었다. A씨는 B씨가 가출하자 성매매 여성을 자택으로 불러 소주 약 4병과 생맥주 1500㎖를 함께 마셨다. 만취한 그는 성매매 여성이 나간 뒤 아내와의 불화, 계획하지 않은 출산·양육에 대한 스트레스, 아내의 반대로 평소 술을 마음껏 마시지 못한다는 불만 등으로 화가 나 자기 아들을 폭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내 B씨는 범행 당일 밤 집으로 돌아왔고, 이튿날 오전 분유를 먹인 뒤 눕힌 아들이 숨을 쉬지 않는 것을 발견해 112에 신고했다. 아들은 병원에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살인 고의가 없었고 만취해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는 취지로 항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생후 3개월에 불과했던 피해 아동은 부모로부터 완전히 방치돼 머리뼈 골절과 출혈 등 성인조차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며 “범행 경위와 수단, 방법, 결과에 비춰 A씨의 반인륜성은 용서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살해 고의를 부정하는 등 진지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죄책에 상응하는 만큼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된 상태에서 진심으로 참회하고 피해 아동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 李대통령 “쿠데타는 다 육사가 벌여…사관학교 통합하면 가능성 줄 것”

    李대통령 “쿠데타는 다 육사가 벌여…사관학교 통합하면 가능성 줄 것”

    이재명 대통령은 5일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군사 쿠데타가 몇 번 있었나. 다 육군에서 벌어진 일 아닌가”라며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한 일인데, 거기에 대해 책임을 물은 일이 있나”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방부 등 외교·안보 부처 대상 업무보고에서 사관학교 통합 필요성을 언급하던 중 “대다수의 장병은 국가에 충성하며 군인의 소명을 다하고 있는데, 일부가 이런 용서 못 할 짓을 벌인다”며 “그런 소지를 없애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군별로 따로 떼어서 군을 육성하고, 아주 장기간 특정 군종이 군대를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가끔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절단 내고 난 다음 아무런 책임을 안 지면 되겠나”라며 “통합을 하면 이런 가능성이 좀 줄어들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앞으로 또 (쿠데타를) 할 수도 있지 않나. 누가 또 쿠데타를 할 것이라고 상상했겠나”라며 “대한민국이 민주화가 되고 전 세계가 바라보는 선진국이 됐는데 육군 장성이 동조해서 군사 친위 쿠데타를 할 것으로 생각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지난 일이고 진압이 됐다고 적당히 넘어갈 일이 아니다”라며 “성공했다면 옛날처럼 육군 대위들이 (정부를) 다 감시하지 않았겠나. 언론사들 부사관들이 들어가서 (원고를) 찍찍 그어가며 인터넷 검열을 하지 않았겠나”라고 덧붙였다.
  • 金 “당정 삐걱” 鄭 “탈당 안한 건 나” 宋 “진짜 외로운 건 대통령”

    金 “당정 삐걱” 鄭 “탈당 안한 건 나” 宋 “진짜 외로운 건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8·17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송영길·정청래·김민석(기호순) 후보가 전국순회경선 첫날부터 ‘2대 1 구도’로 맞붙었다. 김·송 후보는 ‘당정 갈등’과 ‘자기 정치’를 고리로 정 후보를 협공했고, 정 후보는 검찰개혁 등 개혁 성과를 앞세우는 한편 탈당 이력을 거론하며 두 후보를 견제했다. 세 후보는 1일 충남 공주 충남교통연수원에서 열린 충남 합동연설회에서 각각 당대표 적임자를 자처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첫 번째 연설에 나선 김 후보는 ‘당정 일체’를 내세우며 정 후보를 정조준했다. 그는 “우리의 시대정신은 대한민국의 황금시대를 여는 것”이라며 “당정 삐걱대니 선거가 흔들리고 증시가 흔들린다. 더 흔들리면 황금시대의 입구도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당대표 시절 당정 관계 엇박자를 냈다는 지적을 받는 정 후보를 직격한 것이다. 이어 “명청(이재명·정청래) 대전의 연장전은 민주당의 지옥이고 그 지옥문을 닫아야 한다”며 “당도 정부도 대통령도 흔들리는 최악의 길로 갈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후보는 “3개월 내에 우리 당 지지율을 10% 올리겠다”며 “이 대통령과 정부와 함께 손발을 맞출 수 있는 진짜 친명 지도부를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모든 당원이 마지막 날까지 전원 투표해 100% 투표로 당원 주권의 온전한 의미를 살릴 수 있도록 함께 제도를 개선하고 당원들에게 투표 참여를 호소하자”고 제안했다. 두 번째로 나선 정 후보는 ‘개혁 성과’를 앞세웠다. 그는 “민주당의 정체성은 개혁”이라며 “온갖 어려움 속에서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로 검찰개혁을 완성시킨 정청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당대표 재임 시절 추석 전까지 검찰청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지켰다”며 “공수청법과 중대범죄수사청법, 대법관 증원, 헌법소원제까지 하나하나 쉽지 않았지만 당원들과 함께 개혁을 꾸준히 밀고 갔다”고 강조했다. 정 후보는 “네거티브도, 남 탓도 하지 않겠다”며 “TV 토론에서도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지 않았다. 상대방을 헐뜯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2016년 억울한 컷오프를 당했지만 탈당하지 않았다”며 과거 탈당 이력이 있는 김·송 후보를 우회적으로 겨냥했다. 이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대통령 지지자가 똘똘 뭉쳐야 한다”며 “뿌리를 자르고 꽃을 피울 수는 없다.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하겠다. 정청래가 그것을 하겠다”고 했다. 마지막 연설에 나선 송 후보는 정 후보의 ‘언더독(약자)’ 전략을 정면 비판했다. 그는 “정 후보가 2대 1로 맞는다고 ‘피해자 코스프레’(피코)를 하는데 진짜 외로운 건 이 대통령”이라며 “트럼프, 푸틴, 다카이치 사나에, 유럽의 모든 세계 강국들이 자기 이익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의 전통은 대표가 연임하는 경우가 없다. 유일하게 연임한 이재명 대통령은 검찰 독재 탄압에 강력한 대선 후보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지금은 이재명 정부 시대인 만큼 굳이 연임할 필요가 뭐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또 “자기 정치 때문에 이재명 정부가 흔들린다”며 “정 후보가 네거티브 안 한다는데 저는 이 대통령을 네거티브하고 헐뜯는 자를 용서하지 않겠다. 네거티브가 중요한 게 아니고 이재명 정부에 저주를 퍼붓는 유시민에게 침묵하는 이런 당대표가 필요한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순회경선은 부산·울산·경남(2일), 제주·인천(8일), 강원·대구·경북(9일), 호남권(15일), 서울·경기(16일)로 이어지며 권리당원 투표 70%와 국민여론조사 30%를 합산해 17일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를 선출한다.
  • “내 노래 왜 취소해”…흉기로 주점 업주 찌른 50대 징역 6년

    “내 노래 왜 취소해”…흉기로 주점 업주 찌른 50대 징역 6년

    자신이 예약한 노래가 취소된 데 격분해 유흥주점 업주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려 한 50대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울산지법 형사11부(부장 박동규)는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고 31일 밝혔다. A씨는 지난 5월 밤 울산의 한 유흥주점에서 자신이 예약한 노래를 종업원이 취소하자 화가 나 업주인 50대 여성 B씨에게 욕설하고 맥주병으로 때릴 듯 위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한 차례 귀가한 뒤에도 화를 참지 못하고 다시 주점을 찾아 건물 입구 발 매트에 인화성 물질을 뿌린 뒤 불을 붙였다. 이어 집에서 가져온 흉기로 B씨를 두 차례 찌른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다른 손님 등이 A씨를 제지하면서 범행은 미수에 그쳤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주요 장기 부위에 직접적인 손상을 입었음에도 피고인은 피해 회복을 위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했고 과거에도 폭행 범죄 등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방화와 살인 범행이 모두 미수에 그친 점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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