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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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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막 장벽 넘어… 한국식 유머가 뉴욕을 뒤집어놨다

    자막 장벽 넘어… 한국식 유머가 뉴욕을 뒤집어놨다

    한국 재벌가로 각색한 체호프 희곡전도연·박해수 등 스타 배우 출연뉴욕 맞춤 농담에 폭소 만발·호평기립박수 이어져… 11회 전석 매진 미국 뉴욕 파크 애비뉴 아모리의 웨이드 톰슨 드릴홀에 한국어 대사가 울려 퍼졌다. 19세기 무기고로 지어진 이 거대한 홀에 간이 객석 1200석이 들어섰고, 뉴욕을 겨냥한 농담이 나올 때마다 객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오페라가 아닌 이상 자막을 읽을 일이 거의 없던 영미권 관객들은 한국 연극에서 자막을 따라 읽으면서도 대사의 속도감과 유머를 놓치지 않았다. 사이먼 스톤(42) 연출이 안톤 체호프(1860~1904)의 마지막 희곡을 오늘의 서울로 옮긴 ‘벚꽃동산’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북미 초연에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스톤은 1904년 러시아의 몰락한 귀족 가문을 오늘의 한국 재벌가로 옮겼다. 영지를 잃는 여지주 라넵스카야는 가족 기업이 기우는 줄도 모르는 3세 송도영(전도연 분), 농노의 아들로 태어나 그 땅을 사들이는 신흥 자본가 로파힌은 운전기사의 아들로 자라 자수성가한 사업가 황두식(박해수)이 됐다. 현실 감각 없는 오빠 가예프는 골프 스윙과 LP턴테이블에만 마음을 쓰는 송재영(손상규), 수양딸 바랴는 회사 부사장으로 일하며 홀로 위기를 붙들고 있는 강현숙(최희서) 등으로 바뀌었다. 재벌가의 찬란한 과거인 벚꽃동산은 아버지가 딸에게 생일 선물로 지어준 유리집이 무대 위에 대신 앉았다. 건축 디자이너 사울 킴(32)이 디자인한 현대적인 유리집은 서울과 부산, 홍콩, 싱가포르, 호주 애들레이드에서는 하얀 배경의 무대 안에 있었지만 이번엔 달라졌다. 병기창 내부를 살린 검은 공간 안에 섬처럼 놓였다. 장소 안에 원래 있던 커다란 티파니 시계는 때때로 조명을 받으며 노을 장면에서 해가 됐다. 디스위크인뉴욕의 마크 리프킨은 19일자 비평에서 이 시계를 “송씨 일가의 시간이 다해간다는 의미”로 읽기도 했다. 원작에서 라넵스카야가 살다 온 파리를 뉴욕으로 바꾸어 뉴욕 관객들과 상당한 접점을 이뤘다. 아들을 잃고 10년을 뉴욕에서 보낸 도영이 “거기서는 섹스에 대해서 아주 솔직하게 얘기해, 거의 국민 스포츠라고나 할까”라고 말할 때 첫 폭소가 터졌다. “알코올 중독자로 살기 딱 좋은 도시”, “맨해튼에 널려있는, 입으로만 스타트업 하는” 같은 말이 나올 때도 웃음이 터졌다. 체호프의 희곡을 잘 알고 있다는 엘리나는 “가장 대중적인 희곡을 한국 현실로 각색해 이해하는 데 어렵지 않았다”면서 “자막으로 농담을 접해도 배우 연기와 상황이 접목되면서 매우 유쾌했다”고 말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카린은 “뉴욕 조크가 정말 정확하다”고 했고, 클로이는 “공간을 쓰는 방식이 매우 역동적이라 흥미로웠다”고 평가했다. 현지 비평도 웃음을 먼저 이야기했다. 뉴욕스테이지리뷰의 멜리사 로즈 버나도는 18일자에 “이만큼 웃긴 ‘벚꽃동산’이 있었느냐”며 “웃긴 건 어떤 언어로도 웃기다”고 썼다. 씨어터마니아의 데이비드 고든은 “전도연은 몇 마디로 무모함과 신중함을 오가고, 손상규는 껴안아 주고 싶은 인물이다. 박해수는 초반의 다정함을 빠르게 벗고 사나운 권위를 드러낸다”며 연기를 호평했다. 자막에 대해서는 “누가 말하는지 표시가 없고 너무 빨리 지나가 초반 시선을 빼앗는다”(리프킨), “접근하기 쉬웠다”(버나도)고 평가가 엇갈리기도 한다. 이 작품이 가닿은 이유를 스톤은 17일 아티스트 토크에서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은 한국을 일본과 비교하는 실수를 자주 하지만 기질을 보면 러시아와 훨씬 가깝다”면서 “러시아인들이 역사 내내 미래와 정체성을 두고 불안해했듯 한국인들도 우리는 누구인지 끊임없이 묻는다”고 진단했다. 서구에서라면 심드렁하게 들릴 혁명이라는 말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몰락한 귀족을 재벌 3세로 옮긴 치환이 관념적 유희에 그치지 않은 이유다. 배우에 대해서도 스톤은 “비극의 계곡에 떨어졌다가 다시 웃음으로 돌아온다”면서 배우들이 희극과 비극 사이를 힘들이지 않고 오간다고 언급했다. 공연 마지막 암전이 풀리자 객석 곳곳에서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전도연은 첫 공연 후 “기립박수를 받는 순간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이 났다”고 소감을 전했다. LG아트센터가 제작해 2024년 6월 서울에서 초연한 ‘벚꽃동산’은 뉴욕 공연으로 2년 3개월의 여정을 끝낸다. 26일까지 11회 예정된 뉴욕 공연은 전석이 매진됐다.
  • 뉴욕 지하철, 스타트업, 하이라인에 폭소…미국 무기고에 울려 퍼진 한국어 ‘벚꽃동산’

    뉴욕 지하철, 스타트업, 하이라인에 폭소…미국 무기고에 울려 퍼진 한국어 ‘벚꽃동산’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파크 애비뉴 아모리의 웨이드 톰슨 드릴홀에 한국어 대사가 울려 퍼졌다. 19세기 무기고로 지어진 이 거대한 홀에 간이 객석 1200석이 들어섰고, 뉴욕을 겨냥한 농담이 나올 때마다 객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오페라가 아닌 이상 자막을 읽을 일이 거의 없던 영미권 관객들은 한국 연극에서 자막을 따라 읽으면서도 대사의 속도감과 유머를 놓치지 않았다. 사이먼 스톤(42) 연출이 안톤 체호프(1860~1904)의 마지막 희곡을 오늘의 서울로 옮긴 ‘벚꽃동산’은 북미 초연에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스톤은 1904년 러시아의 몰락한 귀족 가문을 오늘의 한국 재벌가로 옮겼다. 영지를 잃는 여지주 라넵스카야는 가족 기업이 기우는 줄도 모르는 3세 송도영(전도연 분), 농노의 아들로 태어나 그 땅을 사들이는 신흥 자본가 로파힌은 운전기사의 아들로 자라 자수성가한 사업가 황두식(박해수)이 됐다. 현실 감각 없는 오빠 가예프는 골프 스윙과 지하실에서 찾아낸 LP 턴테이블에 마음을 쓰는 송재영(손상규), 수양딸 바랴는 회사 부사장으로 일하며 홀로 위기를 붙들고 있는 강현숙(최희서), 막내딸 아냐는 뉴욕에서 영화를 공부하다 돌아온 강해나(이지혜)다. 라넵스키 가문에 돈을 빌리러 오는 몰락한 지주 피시크는 김영호(유병훈)로 옮겨 시대의 종말을 드러낸다. 극의 상징인 벚꽃동산 대신 아버지가 딸에게 생일 선물로 지어준 집이 무대에 올라섰다. 건축 디자이너 사울 킴(32)이 디자인한 2층짜리 유리집은 서울과 부산, 홍콩, 싱가포르, 호주 애들레이드에서는 하얀 배경의 무대에 놓였지만 뉴욕에선 검은 배경 앞에 섬처럼 자리했다. 보통 프로시니엄 무대는 객석과 1m 이상 높이 차이가 있지만 파크 애비뉴 아모리는 평지라, 유리집 지면과 객석 1열 바닥이 같은 높이에서 객석 앞쪽은 1층, 중간은 2층, 뒤쪽은 옥상과 눈높이가 맞는다. 관객은 집을 올려다보지 않고 깊이 들여다보는 셈이다. 스톤은 라넵스카야가 집을 떠나 생활했던 프랑스 파리를 뉴욕으로 바꿨다. 아들을 잃고 10년을 뉴욕에서 보낸 도영이 “거기서는 섹스에 대해서 아주 솔직하게 얘기해, 거의 국민 스포츠라고나 할까”라고 말할 때 객석에선 첫 폭소가 터졌다. 황두식에게 그 시절을 털어놓으며 “알코올 중독자로 살기 딱 좋은 도시”라거나 송재영에게 “나도 뉴욕에 있을 때 지하철 타고 다녔어. 거기선 다 그러고 살아. 기사 데리고 다니는 거 안 멋있잖아”라고 말할 때도 객석이 크게 웃었다. 지하철, 베이글, 하이라인처럼 뉴욕을 상징하는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관객들은 크고 작게 웃었다. 어찌 보면 비아냥 같지만 관객들과 현지 비평은 이를 현실 유머로 받아들였다. 체호프의 희곡을 잘 알고 있다는 엘리나는 “가장 대중적인 희곡을 한국 현실로 각색해 이해하는 데 어렵지 않았다”면서 “자막으로 농담을 접해도 배우 연기와 상황이 접목되면서 매우 유쾌했다”고 말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카린은 “뉴욕 조크가 정말 정확하다”고 했고, 클로이는 “공간을 쓰는 방식이 매우 역동적이라 흥미로웠다”고 평가했다. 현지 비평도 웃음을 먼저 이야기했다. 뉴욕스테이지리뷰의 멜리사 로즈 버나도는 18일자에 “이만큼 웃긴 ‘벚꽃동산’이 있었느냐”며 “웃긴 건 어떤 언어로도 웃기다”고 썼다. 시어터마니아의 데이비드 고든은 “전도연은 몇 마디로 무모함과 신중함을 오가고, 손상규는 매우 껴안아주고 싶은 인물이다. 박해수는 초반의 다정함을 빠르게 벗고 사나운 권위를 드러낸다”며 연기를 호평했다. 다만 자막을 봐야하는 터라 웃음에는 시차가 있었다. 클로이는 “자막은 아주 선명하지만 연기와 함께 한눈에 담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고 했다. 비평도 자막에 대해서는 “누가 말하는지 표시가 없고 너무 빨리 지나가 초반 시선을 빼앗는다”(리프킨), “접근하기 쉬웠다”(버나도)고 평가가 엇갈리기도 했다. 이 작품이 가닿은 이유를 스톤은 개막 다음날인 17일 파크 애비뉴 아모리에서 열린 아티스트 토크에서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은 한국을 일본과 비교하는 실수를 자주 하지만 기질을 보면 러시아와 훨씬 가깝다”면서 “러시아인들이 역사 내내 미래와 정체성을 두고 불안해했듯 한국인들도 ‘우리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묻는다”고 진단했다. 체호프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러시아에서 1차 혁명이 있었고, 한국에선 1980년대부터 거리에서 시위를 하며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점도 짚었다. 서구에서라면 심드렁하게 들릴 혁명이라는 말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몰락한 귀족을 재벌 3세로 옮긴 치환이 관념적 유희에 그치지 않은 이유다. 배우에 대해서는 우스꽝스러워질 위험을 감수하는 과감함과 감정의 절대성을 미덕으로 꼽았다. 스톤은 “정직한 진실로 향하는 여정은 웃음으로 시작해 비극의 계곡에 떨어졌다가 다시 웃음으로 돌아온다”면서 배우들이 희극과 비극 사이를 힘들이지 않고 오간다고 평가했다. 집이 팔리고 가족이 흩어진 뒤 도영이 다시 뉴욕으로 떠나며 공연이 끝나자 객석 곳곳에서 관객들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첫 공연 후 전도연은 “기립박수를 받는 순간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이 났다”고 소감을 전했다. 박해수는 “작품 초반에는 자막을 보느라 살짝 낯설어하던 관객들이 후반부로 갈수록 함께 깊이 공감해주는 게 느껴졌다”고 했다. LG아트센터가 제작해 2024년 6월 서울에서 초연한 ‘벚꽃동산’은 이번 뉴욕 공연으로 2년 3개월의 여정을 끝낸다. 26일까지 11회 예정된 뉴욕 공연은 전석이 매진됐다.
  • [양창섭의 클래식 한마디] AI 연출과 콘서트 오페라

    [양창섭의 클래식 한마디] AI 연출과 콘서트 오페라

    올해는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가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전막 초연된 지 150년이 되는 해다. 전체 4부작으로 총 연주 시간이 15시간에 달하는 이 음악극은 종합예술작품을 지향한 바그너의 예술적 정수라고 불린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바그너가 건립한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매년 여름 열리는 페스티벌로 바그너의 오페라만을 무대에 올린다.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은 여느 오페라극장과는 다르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무대 앞의 피트는 깊숙이 파여있고 일부가 덮여있다. 이 때문에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직접적으로 전달되지 않고 무대와 객석의 독특한 구조를 거쳐 신비한 음향을 만들어낸다. 바그너는 귀족들이 오페라는 보지 않고 잡담을 나누거나 이성을 훔쳐보던 박스석을 없애고 모든 관객이 무대를 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현대의 관객들에겐 어려움도 있다. 딱딱한 의자나 좁은 좌석 간 거리는 여전히 개선이 어렵고, 에어컨도 없으니 요즘처럼 폭염이 닥치기라도 하면 관람환경은 끔찍해진다. 바그너 작품의 매력, 아니 마력이 아니면 이 페스티벌의 인기는 설명이 어렵다. 올해 ‘반지’ 프로덕션의 정식 제목은 ‘니벨룽의 반지 10010110’였다. 이 숫자는 150을 이진수로 표현한 것으로, 전 세계의 화두인 인공지능(AI)를 연출에 활용한 것을 의미했다. 원래는 한 차례만 공연할 예정이었지만 예산 삭감으로 일부 오페라가 취소되면서 두 사이클이 추가돼 결과적으로 세 차례 공연되었다. 연출자는 따로 없이 큐레이터와 비주얼 아티스트가 150년간 바이로이트의 ‘반지’ 공연 이미지와 역사적 사건들을 AI에게 활용하도록 했고, AI는 이를 바탕으로 공연 중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영상을 생성해 무대 전면의 거대한 스크린에 투사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한국에서 보러 간 애호가들이나 해외의 비평가들 모두 혹평을 보냈다. 영상들은 오케스트라와 성악가의 훌륭한 음악과 뒤섞이지 못하고 따로 놀았으며, 관객이 음악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했다고 한다. 공연 후 기립박수를 받은 음악가와 달리 무대 위에 오른 제작진은 야유를 받았다. 오페라 연출에서 AI 도입이 옳고 그름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술이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이 더한다고 더 풍부한 예술 경험이 만들어지진 않는다. 이런 점에서 역설적으로 콘서트 오페라의 의의도 생각해볼 수 있다. 콘서트 오페라는 무대를 덜어내고 연기와 의상은 최소화하고 음악에 최대한 집중한다. 관객은 음악과 언어에 몰입하며 자신의 상상력으로 시각적 무대 너머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콘서트 오페라는 세트 제작이나 인건비를 아끼고 연습 기간을 단축시키며 한두 번만의 공연도 가능하게 하는 장점도 있다. 국공립 콘서트홀이나 오케스트라라면 음악의 다양성 확보 면에서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콘서트 오페라를 시도하면 어떨까. 콘서트 오페라도 오페라다. 양창섭 음악칼럼니스트
  • 무용수의 화가 넘어 ‘기록가’ 드가를 만나다[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무용수의 화가 넘어 ‘기록가’ 드가를 만나다[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30여권 수첩은 화가의 ‘실험 일지’구상·재료 실험·인물 관찰 등 담겨그림, 치밀하게 계산된 ‘범죄’ 비유집요한 관찰·기록으로 완벽 재구성파스텔을 독립적 회화로 끌어올려누드화, 여신 아닌 ‘현실의 몸’ 묘사말년에는 ‘시력 악화’ 시련도 극복 조각의 고정관념 깨뜨린 걸작 남겨흔히 무용수의 화가로 불리는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르 드가(1834~1917)에게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바로 지독할 만큼 집요한 기록가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평생 수많은 편지와 카르네라고 불리는 30여권의 수첩을 남겼다. 특히 1853년부터 1886년까지 33년에 걸친 흔적이 담긴 그의 수첩들 속에는 작품 구상과 재료 실험, 인물의 움직임에 대한 관찰,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독특한 시선이 실험 일지처럼 세밀하게 적혀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드가가 찰나의 빛을 좇던 인상주의 화가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그는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면서도 탄탄한 인체 데생, 치밀한 화면 구성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예술가였다. 이제 드가가 남긴 명언들을 따라가며 그의 기록들이 캔버스 위에서 위대한 걸작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함께 살펴보겠다. 첫 번째 명언 “그림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만큼이나 많은 교활함과 악덕이 필요한 일이다.” 예술가를 범죄자에 비유하다니, 처음 들으면 다소 당혹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 범죄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그만큼 치밀하고 계산적인 행위라는 의미에 가깝다. 범죄자가 현장의 흔적을 지우고 완벽한 알리바이를 짜듯이 화가 역시 화면 속 모든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치하고 관람객의 시선을 정교하게 이끌어야 한다는 뜻이다. 드가는 인체 근육의 미세한 떨림, 무대 조명이 만들어 내는 인공적인 빛과 어둠의 대비를 포착하기 위해 범죄 현장의 증거를 수집하는 수사관처럼 대상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작업실로 돌아와 수첩 속 스케치와 기억, 반복된 수정과 계산을 바탕으로 화면을 완벽하게 재구성했다. 드가는 영감이나 즉흥성에 기대는 예술을 경계하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만큼 스튜디오에서 철저히 계산해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없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거장들을 연구하고 성찰한 결과물이다.” 실제로 드가는 청년 시절 루브르 미술관의 공식 모사공으로 등록해 옛 대가들의 작품을 수없이 베끼며 화가로서의 기본기를 다졌다. 그는 고전 거장들의 구도와 기법, 인체 표현 방식을 흡수한 뒤 무용수, 경마장, 오페라 극장처럼 현대적인 삶의 장면에 적용했다. ‘발레 수업’①은 회화란 눈앞의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일이 아니라 가장 완벽한 가짜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드가의 예술관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화면 속에는 당시 위대한 안무가였던 쥘 페로의 지도 아래 수업이 막 끝나갈 무렵의 발레 연습실 장면이 펼쳐져 있다. 언뜻 보면 드가가 연습실 한편에서 우연히 포착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작업실에서 수많은 스케치와 기억들을 정교하게 조립해 완성한 작품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나를 무용수의 화가라고 부르지만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이었다.” 드가에게 무용수는 아름다운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인체의 움직임을 연구하기 위한 가장 완벽한 피사체였다. 그는 예쁘게 멈춰 선 자세보다 근육이 팽팽하게 수축하고 몸이 비틀리며 균형이 흔들리는 순간에 더 매료되었다. 하품을 하거나 토슈즈 끈을 묶는 사소한 동작 속에서 인간의 해부학적 구조와 운동감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난다고 본 것이다. 드가는 다른 화가들이 놓쳤던 화려한 무대 뒤편의 진실을 포착했기에 무용수의 화가를 넘어 현대적 삶의 움직임을 기록한 독보적인 예술가가 될 수 있었다. 두 번째 명언 “나는 선을 통해 색채를 구현한다.” 보통 우리는 선은 형태를 잡고 색은 그 안을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드가에게 선은 색이고 색은 또 하나의 선이었다. 이런 드가의 예술 철학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매체가 파스텔화이다. 분말 안료를 점착제와 섞어 막대 형태로 굳힌 파스텔은 아름답지만 연약하고 다루기 까다로운 재료다. 드가는 이 섬세한 재료를 종이 위에 직접 긋고, 문지르고, 눌러 쌓아 올리며 색을 입히는 도구이자 선을 긋는 도구로 활용했다. 직접 개발한 특수 고착제를 사용해 파스텔 가루를 화면에 단단히 고정시킨 뒤 그 위에 다시 파스텔을 덧칠하고 쌓아 올리는 독보적인 적층 기법을 발전시켰다. 때로는 유화 물감이나 구아슈를 함께 섞어 화면의 밀도를 높이기도 했다. 이렇게 겹겹이 쌓인 색층은 가볍고 부드러운 일반적인 파스텔화와 달리 인물의 입체감과 거친 에너지를 뿜어냈다. 드가는 유화를 위한 밑그림이나 보조 수단에 머물던 파스텔을 독립적인 회화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혁신가였다. 대표 작품이 ‘모자 상점에서’②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 파리의 세련된 유행과 소비문화를 엿볼 수 있는 모자 가게를 배경으로 한다. 그는 화면 전경에 화려한 모자들이 놓인 탁자를 배치하고 이를 과감한 대각선 구도로 강조했다. 인물보다 색채의 리듬이 화면 전체를 이끌어 가도록 치밀하게 설계한 것이다. 드가는 모자를 장식한 붉고 푸른 리본, 부드러운 깃털, 천의 섬세한 주름을 통해 파스텔이 지닌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했다. 화면을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짧게 끊어진 선, 손가락으로 문지른 색면, 겹겹이 쌓인 파스텔 가루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래서 그의 파스텔화는 ‘색으로 드로잉하는 회화’라고 불린다. 세 번째 명언 “마치 열쇠 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드가가 자신의 누드화를 두고 한 이 말은 아일랜드의 비평가였던 조지 무어가 그와 나눈 대화를 기록한 글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열쇠 구멍이라는 말 속에는 서양 누드화의 전통을 뒤흔든 드가만의 통찰이 담겨 있다. 이전까지 세계 유명 미술관을 가득 채웠던 수많은 누드화를 떠올려 보라. 신화 속 비너스처럼 우아하게 누워 있거나 관객을 향해 유혹하는 듯한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모델처럼 보였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누드는 관객의 시선을 전제로 한 보여지기 위해 연출된 몸이었다. 드가의 여인들은 다르다. 그들은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억지로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그저 몸을 씻고, 머리를 빗고, 수건으로 몸을 닦을 뿐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누드는 항상 관객을 전제로 한 자세로 표현되어 왔다. 내 그림 속 여성들은 육체적인 일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소박하고 정직한 존재들이다.” 드가가 말한 열쇠 구멍이라는 표현은 그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특징인 거리 두기와 엿보는 듯한 관음적 시선을 설명해 준다. ‘욕조 속 여인’③은 드가의 열쇠 구멍 시선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화면 속 여인은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등을 둥글게 만 채 오로지 몸을 씻는 행위에만 집중하고 있다. 관객에게 아름답게 보이려는 의도적인 포즈도 시선을 의식한 표정도 없다. 이 작품에서 누드는 신화 속 여신의 이상화된 몸이 아니라 씻고, 구부리고, 움직이는 현실의 몸으로 제시된다. 시점 또한 독특하다. 우리는 지금 목욕하는 여인을 높은 곳에서 훔쳐보는 듯한 위치에 서 있다. 열쇠 구멍 시선이 화면 속에서 그대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일부 비평가들은 드가의 적나라한 표현 방식을 추하다고 비난했지만 오늘날에는 전통 누드화의 관습을 뒤집고 근대적 인간의 일상과 신체를 새롭게 포착한 혁신적 시도로 평가받는다. 드가는 또 이런 말도 남겼다. “25세엔 누구나 재능이 있다. 어려운 것은 50세에도 재능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의 치열한 작가 정신을 대변하는 말이다. 진정한 거장이란 반짝이는 재능으로 시작해 지치지 않는 끈기로 재능을 완성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 드가에게 운명은 가장 가혹한 시련을 안겨 주었다. 말년에 접어들며 그의 시력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남은 시야마저 뿌연 안개 속에 갇힌 듯 흐려졌다. 평생 세상을 집요하게 관찰했던 드가에게 시력을 잃어 간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운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너지지 않고 눈이 아닌 손의 감각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표현 방식을 실험하는 길로 나아간다. ‘열네 살의 작은 무희’④는 그가 자신의 회화적 재능을 조각으로 확장했음을 보여 주는 대표적 작품이다. 드가는 조각이란 대리석이나 청동으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깨뜨렸다. 그는 조각에 실제 인간의 머리카락을 붙이고 천으로 만든 발레 치마, 리본, 리넨 슈즈를 입혔다. 심지어 당시 조각가들이 기피했던 해부학용 밀랍을 주재료로 선택했다. 드가는 조각에 실제 사물을 도입하며 원하는 효과를 위해서라면 어떤 재료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이 작품의 모델은 벨기에 이민자의 딸로 극심한 빈곤 속에서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학생 무용수로 살아가던 열네 살의 소녀였다. 소녀의 자세를 자세히 보겠다. 두 손은 등 뒤로 깍지를 낀 채 뻗어 있고 턱은 앞으로 꼿꼿이 들려 있다. 반쯤 감긴 눈과 굳은 표정에서는 고된 연습 뒤의 피로와 세상을 향한 반항심이 엿보인다. 드가는 대중이 기대했던 우아한 발레리나의 환상을 걷어내고 무대 뒤편에서 혹독한 훈련과 가난을 견뎌야 했던 19세기 파리 하층민 출신 무용수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 조각상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관객과 비평가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의 미적 기준과 사회적 편견을 정면으로 건드렸기 때문이다. ‘열네 살의 작은 무희’는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한 작품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오늘날에는 조각의 표현 가능성을 확장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생전에 그는 “유명해지면서도 동시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고 싶다”는 역설적인 소망을 남겼다. 대중의 박수보다 작품 자체로 평가받고 싶었던 예술가의 자부심이 담겨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듯하다. 오늘날 우리는 드가를 관찰의 천재, 전통과 혁신을 동시에 이룬 화가, 20세기 거장들의 스승이라 부르며 뜨겁게 그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 [책꽂이]

    [책꽂이]

    사이렌스 콜(크리스 헤이즈 지음, 박유현 옮김, 사회평론) 테크기업들은 정교한 기술로 사용자가 머무르는 시간에 값을 매겨 이를 광고주에게 판매하고 인플루언서는 자신이 받은 타인의 관심을 현금으로 전환해 부를 축적한다. 저자는 이처럼 ‘주의력 자본주의’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에 역사, 철학, 심리학과 정치 비평을 넘나들며 인간의 주의력이 상품화되는 과정과 이를 둘러싼 경쟁이 현대사회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424쪽. 1만 9800원. 오페라 VS 뮤지컬(임윤전 지음, 제이앤제이제이) 전통과 품격을 담아 시대를 넘어선 감동을 전하는 오페라와 현대적 감각으로 에너지와 열정을 쏟아 내는 뮤지컬은 결국 같은 주제와 감정을 노래하며 인간의 본질을 일깨운다. 음악가 출신으로 오페라와 관련해 다양한 방송과 강연 활동을 펼치는 저자가 두 장르가 어떤 방식으로 서로 다른 시대를 대변하며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공유하는지 깊이 있는 시선으로 탐구한다. 다양한 작품 사례를 통해 관객을 사로잡은 무대와 스토리, 인물들의 매력, 음악적 특징과 철학 등을 폭넓게 조명한다. 400쪽, 2만 2000원. 엔비디아 젠슨 황, 생각하는 기계(스티븐 위트 지음, 백우진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현대 인공지능(AI) 발전의 역사를 써 내려간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의 통찰력을 담은 책이자 최초의 공식 자서전이다. 언론인인 저자는 3년간 젠슨 황을 밀착 취재하고 엔비디아의 핵심 관계자 300여명을 인터뷰해 젠슨 황의 비전, 리더십, 경영 철학은 물론 인간적인 면모까지 속속들이 보여 준다. 젠슨 황의 집요한 문제 해결 능력과 기술에 대한 집착이 초기 그래픽처리장치(GPU) 개발부터 AI 회사로의 대담한 전환 등에 어떻게 적용됐는지도 소개한다. 496쪽, 2만 8000원. 음악적 경성(조윤영 지음, 소명출판) 음악회는 식민지 시기 경성의 근대화 과정에 있어 최고의 유행이었다. 1920년대에는 다양한 전공의 양악 전문가들이 출현하고 양악을 향유하려는 조선인이 증가하면서 음악회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경성인의 일상을 면밀히 살펴보고, 음악 문화 형성의 중심지였던 종로와 혼마치(지금의 충무로 일대)의 다양한 공간에서 펼쳐진 근대 음악회를 정치적, 사회문화적 맥락을 통해 알아본다. 280쪽, 2만 8000원.
  • “아직은 아니다, 난 스스로에게 가장 가혹한 비평가”

    “아직은 아니다, 난 스스로에게 가장 가혹한 비평가”

    가곡이야말로 ‘가창의 최고 경지’오페라보다 발성·해석 등 더 요구프로그램 같은 ‘5번 앙코르’ 유명수려한 외모·탁월한 연기로 인기매력적 제안도 판단할 ‘마음가짐’10년 넘게 최고 전성기 유지 비결 잘생긴 데다 노래도, 연기도 잘한다. 그가 세계적인 스타가 되지 않을 이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현존 최고의 테너로 꼽히는 요나스 카우프만(56)이 다음달 한국에 온다. 2015년 첫 내한 이후 10년 만이다. 그때도 세계 최고였고,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는 비결은 뭘까. 그리고 과거와 현재 그의 음악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다음달 4일과 7일 두 차례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서는 카우프만을 19일 서면 인터뷰로 만나 봤다. “음악계에서 독일 가곡의 위상은 특별하다. 프란츠 슈베르트, 로베르트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 프란츠 리스트, 요한 슈트라우스와 같은 위대한 작곡가의 음악과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하인리히 하이네, 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 등 위대한 시인들의 문학이 이상적으로 결합했기 때문이다. 물론 독일어가 모국어인 저는 시의 색채와 뉘앙스를 이해하고 노래로 ‘번역’하는 일이 수월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중요한 건 (가수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음악의) 문을 누가 열어 줬는지다.” 카우프만은 이번 내한 공연에서 가곡부터 오페라까지 폭넓은 음악 세계를 관객에게 열어 보인다. 4일 리사이틀에선 슈만, 리스트 등 독일 작곡가들의 가곡을 선보이고 7일에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오페라 갈라 콘서트 무대를 꾸민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으며 세계 최고의 가곡 해석자로 꼽히는 피아니스트 헬무트 도이치도 함께 내한한다. 그러나 국내 팬들이 기대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그는 10년 전 내한에서 거의 준비된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앙코르를 다섯 차례나 풍성하게 펼쳤다. “오페라에서 한 인물로 변신하는 것도 무척 즐겁다. 하지만 가곡이야말로 가창의 최고 경지다. 피아니스트와 함께 무대를 이끌며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그만큼 누군가를 탓할 수 없기에 공연 내내 긴장한다. 가곡은 오페라보다 발성이나 해석에서 더 많은 걸 요구하기도 한다. 색채와 뉘앙스를 비롯해 음악과 언어를 다루는 정교함이 필요하다. 모든 요소가 완벽히 어우러질 때 비로소 가곡 리사이틀은 청중에게 ‘순간의 마법’을 선사한다.” 카우프만은 수려한 외모에 탁월한 연기로 전 세계에서 70여개 이상의 주역을 맡은 오페라계 최고의 스타다. 그러나 가곡을 향한 열정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201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으며 현재도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성악가의 악기는 자기 몸 그 자체다. 전성기를 유지하기 위해 혹독한 자기 관리를 이어 오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부터 리하르트 바그너까지, 오페라에서 어느 한 역할 또는 한 작곡가의 음악을 해석하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레퍼토리를 개발한다. 그는 “5~6개의 배역만 가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하는 것은 너무 지루한 일”이라고 했다.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마음가짐’이라고 답했다. 뻔한 말이지만 차분히 곱씹으면 꽤 진중한 성찰이 읽힌다. “단순히 성대나 몸을 관리하는 것을 넘어 어디에 참여할지 또 무엇을 피해야 할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일은 기다려야 하기도, 또 어떨 땐 유혹을 견딜 필요도 있겠다. 지나치게 이른 시기에 매력적인 제안을 받을 때가 있다. 혹할 것이지만 스스로 ‘아직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가수는 자기 자신에게 가장 가혹한 ‘비평가’가 될 필요가 있다.”
  • ‘유럽서 테너 활약’ 박세원 前 서울시오페라단장 별세

    ‘유럽서 테너 활약’ 박세원 前 서울시오페라단장 별세

    유럽에서 테너로 활약한 박세원 전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이 16일 별세했다. 77세. 1972년 서울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간 고인은 1982년 로마에서 데뷔했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독일, 덴마크, 스위스, 노르웨이 등에서 ‘토스카’, ‘라 트라비아타’, ‘카르멘’ 등 굵직한 오페라 주역으로 무대에 섰다. 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축전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해 스타 성악가로 각광받았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을 6년간 역임했으며, 서울대 음대 교수와 서울대 음대부설오페라연구소 소장 등을 지냈다. 대한민국 옥관문화훈장, 대한민국 방송대상, 한국음악비평가협회 선정 한국음악대상 등을 받았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8일 오전 11시 30분. 유족으로는 부인 권경순씨, 딸 박소은씨가 있다.
  • “女끼리 성관계, 너무 야해서 관객들 토해”…독일 오페라계 ‘발칵’

    “女끼리 성관계, 너무 야해서 관객들 토해”…독일 오페라계 ‘발칵’

    독일에서 오페라 작품의 수위가 너무 높아 관객들이 구토하고 병원에 실려 가기까지 한 사건이 발생했다. 10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데일리메일 등 외신은 오페라를 보던 관객 18명이 메스꺼움 등을 호소하다 병원 치료를 받은 사건을 보도했다. 논란이 된 작품은 파울 힌데미트(1895~1963)의 ‘성스러운 수산나’(Sancta Susanna)다. 수녀원에서 억압받던 생활을 하던 수녀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발견해나간다는 이야기다. 힌데미트가 1921년 작곡해 1922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페라극장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당시에도 엄청난 논란을 일으키며 “우리의 문화 기관에 대한 모독”이라는 혹독한 비판도 받았다. 다만 음악적으로는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독교계의 거센 반발로 금기시됐던 이 작품은 익스트림 퍼포먼스 아티스트 플로렌티나 홀징거의 각색·연출로 지난 5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랐다. ‘관능적이고 시적이며 야생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여성 출연진의 과감한 노출을 시도했다. 또한 교황으로 분장한 한 성악가가 로봇 팔에 의해 공중으로 들어 올려져 빙글빙글 도는가 하면 예수 분장을 한 성악가가 미국의 래퍼 에미넴의 노래를 부르는 등 상식을 파괴하는 장면도 넣었다. 오페라의 본고장인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는 유명한 오페라 작품이더라도 파격적인 연출이 시도되고는 한다. 작품의 설정에 충실한 연출은 이미 몇백년이나 공연됐기 때문에 연출가들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 이탈리아계 연출가들이 국내 오페라 작품 연출을 맡을 때 난해한 시도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이런 배경을 고려하더라도 이번 ‘성스러운 수산나’는 지나치게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벌거벗은 출연진이 엉덩이나 머리만 보인 채 공중에 매달리고 예수 역을 맡은 배우가 반나체 여성을 때리기도 한다. 옷을 벗은 수녀끼리 성관계도 하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표현하기 위해 가짜 피를 쏟아내는 장면도 있다. 가짜로 시늉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장면에 결국 일부 관객이 메스꺼움을 호소했다. 그중에는 병원에 실려 가는 관객도 있었다. 이에 대해 극장 측은 사전에 충분히 설명됐고 관객들도 알고 들어왔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홀징거의 작품에서 자연스러운 누드는 표현의 매우 중심적인 수단”이라며 “대담하게 새로운 연극적 경험을 원하는 관객에게 공연을 추천한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지난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연됐을 당시에도 오스트리아 교회 인사들로부터 강한 항의를 받았다. 잘츠부르크 대주교 프란츠 라크너는 “신자들의 종교적 감정과 신념을 심각하게 손상시킴으로써 자유로운 예술적 표현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을 비판하는 한 기독교 신자는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장 34절)라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논란 속에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오페라극장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 55만을 돌파했다. 기존 최고 조회수가 3만 8000여회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수치다. ‘성스러운 수산나’는 다음 달 베를린에서도 공연할 예정이다. 대체로 비판이 거세지만 일부 평론가는 “압도적인 기쁨”, “결과물이 영리하고 재미있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 어우러져 놀라게 될 것” 등의 비평을 내놓으며 홀징거의 편을 들기도 했다.
  • “위대한 개츠비 브로드웨이 흥행, K뮤지컬 도약 발판 되길”

    “위대한 개츠비 브로드웨이 흥행, K뮤지컬 도약 발판 되길”

    “이제 좀 안심이 되네요.” 신춘수(57) 오디컴퍼니 대표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가 제작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지난달 25일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이후 매회 좌석 점유율 90%를 유지하며 순항 중이다. 한국인 프로듀서가 단독으로 총지휘한 작품이 뮤지컬의 본고장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첫 사례인 데다 장기 흥행에도 청신호가 켜지면서 K뮤지컬의 확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개막 3주째인 지난 17일 서울 청담동 오디컴퍼니 사무실에서 만난 신 대표는 “본공연 전 프리뷰 때도 10회차 공연이 전석 매진돼 예감이 좋았지만 이 정도로 잘될 줄은 몰랐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브로드웨이는 진출하기도 힘들지만 무대를 지켜 내는 것은 더 어렵다고 한다. 신 대표는 “주간 티켓 판매액이 일정 수준에 못 미치면 극장주가 일방적으로 작품을 내리는 게 냉정한 브로드웨이의 세계”라며 “이번 시즌에 나온 뮤지컬 신작 가운데 5편이 흥행 저조로 막을 내렸다”고 전했다. ‘위대한 개츠비’는 프리뷰 공연부터 주당 매출액 100만 달러(약 13억 6000만원)를 달성해 ‘원 밀리언달러 클럽’에 입성했다. 폐막일이 정해지지 않은 오픈런 공연의 특성상 언제까지 무대에 오를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일단 11월까지로 예정했던 티켓 오픈을 내년 봄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하면서 롱런 가능성을 열었다. 신 대표는 “이런 추세라면 총제작비 2500만 달러를 1년 안에 회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뮤지컬은 미국을 대표하는 고전소설인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원작을 각색했다. 꿈과 사랑, 욕망과 좌절이 뒤섞인 1920년대 미국의 역동적인 자화상을 아름다운 음악과 강렬한 춤, 화려한 의상과 조명 등을 활용해 시각적인 만족도를 극대화한 무대 연출로 구현했다. 현지 평단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신 대표는 “‘뮤지컬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갖춘 작품’이라는 평가가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쇼적인 부분이 강조되면서 상대적으로 원작의 문학적 깊이가 가려졌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이는 충분히 예견했던 지점이라고 한다. “워낙 뛰어난 원작인 만큼 고민이 많았다. 모든 것을 담을 수 없기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는데, 개츠비의 화려한 파티를 통해 가장 절망적인 비극을 표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유수의 뮤지컬상 후보에 오르거나 상을 받는 등 성과도 이어지고 있다. 의상 디자이너 린다 조는 다음달 열리는 토니상 의상디자인 부문 후보에 올랐고 무대·영상디자이너 폴 테이트 드푸는 드라마 데스크상에 노미네이트됐다. 앞서 외부비평가협회상에선 의상디자인과 무대 디자인상을 받았다. ‘드림걸즈’, ‘닥터 지바고’ 등으로 브로드웨이 진출에 나섰다가 좌절을 맛봤던 신 대표는 과거의 경험이 큰 자산이 됐다고 했다. 자신을 과신하고 조급하게 일을 벌였던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기에 이번엔 초기 단계부터 심사숙고하며 4년간의 긴 시간과 공을 들였다. 향후 목표는 ‘라이언 킹’, ‘오페라의 유령’처럼 세계 무대에서 장기 흥행하는 오리지널 작품을 3개 이상 만드는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가 첫 번째 작품이고 창작뮤지컬 ‘일 테노레’가 두 번째 작품 후보다. 신 대표는 ‘위대한 개츠비’의 성공이 한국 뮤지컬이 세계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기를 희망했다. “박명성·설도윤 같은 선배 프로듀서들을 보면서 내가 꿈을 키웠듯 이제는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 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다”는 그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 정신과 경험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 내년 문체부 예산 6조 9545억원 확정, 올해보다 3.17% 증가

    내년 문체부 예산 6조 9545억원 확정, 올해보다 3.17% 증가

    내년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이 올해보다 2137억원(3.17%) 증액된 6조 9545억원으로 확정됐다. 애초 문체부가 올린 정부안보다는 총 251억원이 삭감됐다. ●청년, 노인, 장애인 등 예산 증액 내년도 시범사업으로 성년이 되는 청년(19세) 16만명을 대상으로 순수예술(공연·전시)에 사용할 수 있는 ‘청년 문화예술패스’를 연 10만원 지원한다. 이 밖에 ‘꿈의 오케스트라’ 등 취약계층 청소년을 위한 예술활동 지원이 67억원에서 107억원으로 늘었다.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모니터링 예산 17억원도 새롭게 편성됐다. 취약계층 문화향유를 지원하는 ‘통합문화이용권’ 지원 금액이 11만원에서 13만원으로 인상된다. 생활체육활동을 보조하는 ‘스포츠강좌이용권’은 지원 대상이 10만 6000명에서 14만명으로 늘어난다. 시니어 친화형 체육시설 건립이 6억원에서 56억원으로 껑충 뛰는 등 노인 세대 지원사업이 468억 원에서 502억원으로 증가한다. 장애인 맞춤형 지원사업 예산도 2701억원에서 2855억원으로 대폭 증액됐다. ●예술인 해외 진출 돕는 기반 조성 문체부는 내년도 예술인에 대한 단순한 생계 보조형 소액지원을 줄이고 대규모 간접 지원을 추진한다. 예술가들이 국내시장을 넘어 해외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미술유통업계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주요 행사 계기 특별전을 개최하는 등 한국미술을 세계 무대로 내보내는 데 주력한다. 47억원이 집행될 예정이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계기 케이(K)-아트 특별전도 17억원이 신규로 잡혔다. 원천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한 출판사의 수출을 돕는 ‘케이(K)-스토리마켓’, ‘부산국제아동도서전’ 등이 신규로 생긴다. 출판 수출 지원 예산은 이에 따라 68억원에서 81억원으로 증액됐다.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국립국악원, 국립극장 등 6개 국립예술단체와 2개 전속단체에서 활동하는 청년 공연예술인을 대폭 확대한다. 화랑에 소속되지 않은(비전속) 신진작가를 대상으로 아트페어 참여, 마케팅, 비평지원 등 시장 진도 적극 지원한다. 문학·시각예술·공연 창작공간을 제공하는 사업은 27억원에서 100억원으로 뛰었다. 작품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도다. 평택 평화예술의전당, 부산 국제아트센터 등 주요 문화예술 기반시설을 구축하는 데 432억원을 투입한다. ●콘텐츠 정책금융 1조 7400억원 공급 세계적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에 대한 국내 콘텐츠 지식재산(IP) 전부 양도 등 종속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민관이 힘을 모은다. 모태펀드와 달리 투자 제한이 없는 ‘전략펀드’를 새롭게 조성한다. 정부와 콘텐츠 분야 민간 기업이 공동 출자해 총 6000억원 규모 펀드를 조성한다. 영상전문투자조합 출자를 80억원에서 250억원으로 늘리는 등 케이(K)-콘텐츠 펀드 출자를 확대 1900억원에서 내년 3400억원으로 늘려 콘텐츠 시장에 1조 7400억원 규모 정책금융을 공급한다. 우리 기업의 콘텐츠 수출을 현지에서 지원하는 ‘콘텐츠 비즈니스센터’ 10개소를 새롭게 조성하는 예산도 올해 102억원에서 내년 172억원으로 늘어난다. 일본 도쿄에 기업지원센터가 새로 들어선다. 예산이 47억원으로 잡혔다. ‘챗 지피티(Chat-GPT)’로도 급부상한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 제작에 92억원을 신규 지원한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방송영상콘텐츠 전문인력(후반작업) 양성 프로그램을 10억원 규모로 도입한다. 세계 저작권 현안 신속 대응 연구가 올해 20억원에서 내년 85억원으로 늘어난다.●지역소멸 막자...문화환경 조성 박차 지역에 양질의 일자리와 문화환경을 조성해 지역소멸위기에 적극 대응한다. 순천 애니메이션 클러스터 조성 예산이 2억원에서 내년에 193억원으로 늘어난다. 대전 버추얼 프로덕션 공공 스튜디오 조성에 신규로 125억원을 투입한다. 이 밖에 기존 24개 문화도시 조성 지원과 함께 새로 선정된 ‘대한민국 문화도시’ 사업을 시범 지원한다. 내년에 390억원이 책정됐다.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늘리기 위한 예산도 편성했다. 남부권 지역 명소를 대대적으로 개발하는 광역관광개발사업이 올해 55억원에서 내년에는 278억원 규모로 추진된다. 도시와 산업관광도 443억원에서 내년 607억원이 책정됐다. 인구감소지역 방문 시 상품가격 할인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디지털관광주민증이 올해 3억원 규모에서 내년에는 30억원으로 뛰었다. 발급 대상 지역도 올해 15개에서 40개 지역으로 넓힌다.<br> ●파리올림픽 지원, 생활체육 지원확대 내년에는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 ‘2024 파리올림픽·패럴림픽’ 등 대형 국제 스포츠대회가 열린다. 이에 대응해 예산도 늘었다. 선수들의 사기 진작과 경기력 향상을 위해 수당·식비·국외 훈련비 등 국가대표 훈련지원을 지난해 515억원에서 570억원으로 강화한다. 특히, 파리올림픽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스포츠, 예술, 패션, 전통문화 등 다양한 역량을 선보이는 대규모 올림픽 마케팅을 전개한다. 애초 86억원이 잡혔으나 201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또 국제대회 개최 및 참여 기회를 계기로 국내 유망 스포츠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한다. 신규로 30억원이 책정됐다. 스포츠산업 펀드 출자도 10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대폭 확대한다. 스포츠산업의 민간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전년 800억원 대비 100% 이상 증가한 1637억원 규모 융자도 제공한다. 생활체육지도자 처우를 개선하고 체육지도자 양성 예산도 33억원에서 42억원으로 늘린다. 또 체육인들에게 인문 문화를 활용한 심리지원도 할 계획이다. 19억원이 신규로 책정됐다.
  • 벤츠 코리아, 뮤지컬 ‘스쿨 오브 락’ 내한공연 후원

    벤츠 코리아, 뮤지컬 ‘스쿨 오브 락’ 내한공연 후원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는 내년 1월 12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2024 스쿨 오브 락 월드투어’의 내한공연을 공식 후원한다고 15일 밝혔다. 자사의 문화예술 프로그램 ‘메르세데스 벤츠 셀렉션’의 11번째 활동의 일환이다. 스쿨 오브 락은 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새로운 대표작으로, 동명의 영화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브로드웨이 초연과 동시에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전 세계 각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토니상 4개 부문, 드라마데스크상 5개 부문, 외부비평가상, 드라마 리그상 등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시상식 주요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올리비에상과 왓츠 온 스테이지상, 헬프먼상, 그린룸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은 2024 스쿨 오브 락 월드투어의 출발지로, 이번 내한공연은 서울과 부산에서 개최된다. 2019년 월드투어 초연 후 5년만의 내한이다. 내년 1월 12일부터 3월 24일까지 서울에서, 4월에는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공연한다.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는 공연을 기념해 개막부터 1월 21일까지 관객들에게 다양한 경품을 선물하는 ‘메르세데스 벤츠 오프닝 위크’를 진행한다. 한편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는 2017년 11월 베를린 필하모닉의 내한공연을 시작으로 다양한 분야의 공연 및 전시 등 문화예술을 후원해왔다.
  • 27세에 3개 오케스트라 지휘… ‘지휘계 아이돌’ 클라우스 메켈레 첫 내한

    27세에 3개 오케스트라 지휘… ‘지휘계 아이돌’ 클라우스 메켈레 첫 내한

    1996년 1월 17일 핀란드 헬싱키 출생. 나이만 보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것 같지만 벌써 명문 오케스트라 3개를 이끌고 있다. 천재라는 수식어로도 부족한 ‘지휘계 아이돌’ 클라우스 메켈레(27)의 이야기다. 메켈레는 오는 28일 경기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30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을 지휘한다. 팬데믹으로 앞서 두 차례 한국 공연이 무산됐던 그의 첫 내한인 동시에 오슬로 필하모닉이 27년 만에 선보이는 한국 공연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메켈레에 관해서는 나이를 빼놓을 수 없다. 클래식계에서 보통 젊은 지휘자는 30대 후반 혹은 40대 정도를 의미한다. 음악가로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음악적 깊이를 보여준 뒤 지휘봉을 잡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켈레는 2018년 5월 오슬로 필하모닉 지휘단에 처음으로 오른 뒤 한 번의 연주로 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발탁됐다. 이듬해엔 프랑스 파리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맡았고 지난해엔 세계 3대 악단으로 꼽히는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의 수석 지휘자로 지명됐다. ‘예술 파트너’로서 매년 악단을 5주 이상 지휘한 뒤 2027년 정식 취임하는 조건이다. 그야말로 독보적인 행보다.젊은 나이에 이렇게 자리 잡을 수 있던 이유는 뭘까. 공연을 앞두고 서면으로 만난 메켈레는 “무대에서든 무대 밖에서든 사람들을 존중하는 진실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진정성을 강조했다. 그는 “내가 리허설에서 보여주는 모든 해석과 움직임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지점을 확실하게 표현하고 보여주려고 한다”는 철학을 밝혔다. 첼리스트 아버지, 피아니스트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일찌감치 진로를 지휘자로 정했다. 7세 때 오페라 ‘카르멘’에 합창단 일원으로 출연했는데 소년의 눈에 지휘자만 보여 꿈을 품게 됐다. 12세에 핀란드의 전설적 지휘자 요르마 파눌라(93)를 만난 일은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파눌라와 공부할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온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지휘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핀란드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곡으로 채웠다. 28일은 바이올린 협주곡과 교향곡 2번을, 30일은 교향시 투오넬라의 백조,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5번을 선보인다.메켈레는 “시벨리우스는 제 고향인 핀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작곡가”라며 “오슬로 필하모닉은 100여 년 전 시벨리우스가 직접 지휘하기도 해 시벨리우스의 곡을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몸이 알고 기억하는 악단이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과 5번을 통해 시벨리우스가 가진 각기 다른 면인 로맨틱한 모습과 어두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1919년 창단한 오슬로 필하모닉은 젊은 지휘자와 만나 “밝은 빛과 기쁨으로 함께 움직인다”(오스트리아 신문 비너 자이퉁)고 평가받을 정도로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협연자로는 바이올리니스트 재닌 얀센(45)이 함께한다. 얀센은 네덜란드 정부가 수여하는 2018 베르메르상, 다섯 차례의 에디슨 클래식상, 독일 음반 비평가상, 뛰어난 예술적 업적을 위한 NDR 음악상(NDR Musikpreis), 콘세르트허바우상 등 수많은 상을 받은 연주자다.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여성의 시선, 여성의 힘/미술평론가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여성의 시선, 여성의 힘/미술평론가

    19세기 중반까지 서양미술사에는 여성 미술가가 드물었다. 공식적인 미술 아카데미들은 20세기가 다 될 때까지 여성에게 문을 닫아 걸었다. 19세기 후반 일부 미술학교에서 여학생을 받아 주고 유명 화가들이 강습소를 열면서 여성 화가들이 늘기 시작했다. 메리 커샛은 가장 먼저 여학생을 받아들인 학교 중 하나인 미 펜실베이니아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파리로 가서 장레옹 제롬을 사사했다. 미술가가 되기도 어려웠지만 진짜 난관은 그 후부터였다. 남녀의 성역할을 철저히 구분했던 19세기 사회는 여성은 가정에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여성이 직업 활동을 하는 것은 품위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 베르트 모리조는 남 앞에서 자신이 화가임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비평가들은 여성 화가의 능력과 작품을 과소 평가했다. J K 위스망스는 커샛의 그림이 모성애의 발로일 뿐이며 여성이라면 어린아이를 그리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냐고 깎아내렸다. 정곡을 찌르는 예술 비평으로 유명하던 작가조차도 시대적 편견을 벗어나지 못했다. 중산층 여성은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고는 나다닐 수도 없던 시대였기 때문에 여성 화가들의 소재가 제한된 것은 사실이다. 커샛이나 모리조의 그림은 여성과 아이들의 세계로만 국한돼 있다. 커샛은 940여점을 그렸으나 남녀가 어울려 대화하는 장면은 겨우 4점에 불과하다.이 그림은 특별하다. 사적인 장소인 가정이 아니라 공적인 장소인 오페라 극장이 배경인 것도 그렇고, 등장인물의 시선을 다루는 방식도 특별하다. 오페라 박스에서 검정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오페라글라스를 눈에 대고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있다. 잘 보면 저편 박스에서 어떤 남자가 오페라글라스를 이 여성 쪽으로 향하고 있다. 남자는 뻔뻔스럽게 몸을 앞으로 쑥 내밀고 노골적으로 여성을 주시한다. 그러나 검은 드레스의 여성은 남자의 무례한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고 있다. 르누아르 같은 남성 화가가 오페라 박스에 앉아 있는 여성의 정면 모습을 우리에게 보란 듯이 제시하는 것과는 딴판이다. 커샛은 여성을 ‘보여지는’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 시선의 주체로 묘사했다. 엇갈리는 두 시선 중에서 우위와 당당함을 지닌 쪽은 여성의 시선인 것이다.
  • 미국 국민화가 에드워드 호퍼 국내 첫 전시회[으른들의 미술사]

    미국 국민화가 에드워드 호퍼 국내 첫 전시회[으른들의 미술사]

    미국 국민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1882~1967)의 국내 첫 단독 전시회가 오는 20일부터 8월 20일까지 4개월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회에는 호퍼의 회화, 드로잉, 판화, 아카이브 등 270여점을 선보인다. 호퍼는 그렇게 대중적인 작가는 아니지만 의외로 호퍼 작품은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호퍼의 작품을 영화 ‘사이코’에서 오마주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 걸어 두기도 했다. 얼마 전 국내 광고에서도 호퍼의 작품이 패러디된 바 있다. 60여 년간 활동했지만 무명 생활이 길었던 화가치고는 후대 평가와 대우가 꽤 좋은 편이다. 4월 한 달은 호퍼의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파리지앵 사이 이방인, 에드워드 호퍼  호퍼는 1882년 뉴욕주 나이악에서 출생했다. 호퍼는 20대 초반 상업미술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삽화와 광고, 극장 간판 등을 그리며 생계를 유지했다. 호퍼는 1906-1910년 파리를 세 번 방문해 파리지앵의 삶을 직접 관찰했다. 이 시기는 큐비즘이 태동하던 시기로 몬드리안, 칸딘스키, 뒤샹과 같은 유럽의 많은 작가들도 한 번쯤은 큐비즘을 시도한 적 있다. 그러나 큐비즘의 광풍이 불던 시기 호퍼는 유럽 미술에 물들지 않은 채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모색했다. 바로 이것이 호퍼를 가장 미국적인 화가로 평가하는 이유다.   그러나 호퍼도 경력 초기엔 피카소가 청색 시기 자주 썼던 청색을 사용하며 유럽의 미술을 탐하고 따랐다. 호퍼의 <푸른 밤>이 그것이다. 왼편부터 차례로 담배를 문 노동자, 담배 피우는 남자와 군 장교, 매춘부, 광대, 부르주아 커플이 있다. 호퍼는 소음이 가득한 카페에 광대, 화장을 짙게 한 매춘부, 오페라를 즐기기 위해 외출한 부르주아 커플 등 파리의 저녁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파리 시민들을 그렸다. 담배, 압생트 술, 파티, 오페라, 매춘, 이 모든 것들은 당시 파리지앵들이 즐긴 오락거리였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존재는 하얀 분칠을 한 광대다. 광대는 고대 그리스 희극에서 주인공을 도와 극의 흐름과 완급을 조절하는 인물이었다. 광대는 극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지만 없으면 아쉬운 존재였다. 광대의 상징인 과도하게 흰 분칠은 17세기 후반 시작되었으며, 사랑에 빠진 광대의 이룰 수 없는 애처로운 사랑 이야기에서 광대의 우울한 성격이 추가되었다. 이후 광대들은 내면의 외로움을 감추고 입은 웃고 있지만 슬픈 눈을 가진 인물로 고정화되었다.  호퍼의 <푸른 밤>에서 광대는 가장 이질적인 존재다. 호퍼는 파리지앵 사이에서 이방인이 된 자신의 소외감과 외로움을 슬픈 광대의 표정에 담았다. 이때 군중 속에서 광대가 느낀 소외, 고독, 외로움은 이후 호퍼 작품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 잡는다. 광대는 곧 호퍼 자신이었다.  뉴욕 비평가들로부터 소외받은 호퍼 미국에 돌아가 이 작품을 발표했을 때 미국 비평가들은 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후 친유럽적 성향을 보인 <푸른 밤>에 대해 신랄하게 비평을 쏟아냈다. 이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호퍼는 다시는 이 그림을 대중에게 선보이지 않았다. 호퍼는 30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무명화가였다. 수줍어하고 부끄럼 많은 이 미국 사내는 파리에 이어 뉴욕에서도 떠들썩한 군중 속 우울한 광대였다.
  • 클래식계 젊은 천재들이 만났다… 한국 찾는 OPS와 캉토로프

    클래식계 젊은 천재들이 만났다… 한국 찾는 OPS와 캉토로프

    천재와 천재가 만나면 어떤 무대가 펼쳐질까. ‘천재 지휘자’ 아지즈 쇼하키모프(34)와 ‘천재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25)가 함께 한국을 찾는다. 쇼하키모프가 이끄는 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OPS)가 5년 만에 내한해 오는 16일 성남아트센터, 18일 경남문화예술회관, 19일 안동문화예술의전당, 20일 서울예술의전당에서 무대를 펼친다. 비제의 ‘카르멘 모음곡 1번’,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2번’,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준비했다. 캉토로프는 손열음(36)이 OPS와 협연하는 18일을 제외한 나머지 세 공연에 함께한다. 이번 공연은 두 젊은 천재가 함께 만드는 무대인 만큼 기대가 크다. 쇼하키모프는 18세에 모국인 우즈베키스탄 국립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가 됐고 지난해 167년 전통의 OPS 수장에 오른 인물이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인 장자크 캉토로프(77)의 늦둥이 아들인 캉토로프는 테크닉과 음악성을 겸비해 ‘환생한 리스트 페렌츠’란 평가를 받는다. 2019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피아노부문에서 우승했는데 프랑스인이 이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쇼하키모프는 지난 8일 화상인터뷰에서 OPS에 대해 “매우 높은 정확도를 가지고 있어 악보에 충실한 연주를 들려주되 그 안에서 뛰어난 유연성이 있다”면서 “독일과 프랑스 양국 강점 모두 갖고 있는 것이 큰 강점”이라고 소개했다. 프랑스 도시인 스트라스부르는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지대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수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OPS는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양국의 음악적 색깔을 모두 흡수해 ‘독일 오케스트라의 명료함, 절제, 풍요로움이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유연함, 기교, 정교함과 결합되어 있는 오케스트라’로 평가받는다. 이번에 준비한 곡은 러시아 음악과 프랑스 음악의 연결로 설명된다. 쇼하키모프는 “차이콥스키가 오페라 ‘카르멘’을 처음 보고 나서 매우 유명한 오페라가 될 것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면서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라벨의 편곡 버전을 연주한다”고 말했다. 차이콥스키와 무소륵스키는 러시아인, 비제와 라벨은 프랑스인이다.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2번’은 캉토로프여서 더 특별하다. 그는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남들이 다 연주하는 피아노협주곡 1번이 아닌 2번을 택해 우승했다. 캉토로프는 “1번을 준비했지만 워낙 많이 들었던 곡이라 머릿속에 수많은 정보가 있어서 1번에 대한 저만의 해석을 내놓기가 어려웠다”면서 “2번 악보를 보고 탐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세계를 탐험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매우 흥미롭게 다가와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캉토로프는 음악가인 아버지 덕에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조기 교육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리스트의 환생’이란 평가에 대해 “매우 감동적이고 감사한 찬사”라면서도 “외부 평가에 너무 많이 초점을 두게 되면 사람들의 말이나 판단, 비평에 좌우되기 쉬워 음악에 충실하게 정직하게 다가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18)에 대해서는 “어떻게 그 나이에 그 정도 수준의 균형과 컨트롤, 기교, 음악성을 보일 수 있는지 놀라웠다”면서 “앞으로의 행보에 큰 관심과 기대가 있다”고 전했다. 두 천재는 서로에 대한 존경심도 각별해 무대가 더 특별해질 예정이다. 쇼하키모프가 “캉토르프는 눈부신 음악성과 기교를 가진 연주자로 오케스트라에도 깊은 영감과 영향을 준다”고 하자 캉토로프는 “음악을 흘러가는 대로 놔두지 않고 연주자에게 상당한 유연성을 제공하는 지휘자라 저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다”고 화답했다. 그는 “저를 비롯한 모든 오케스트라 단원이 한국 방문을 매우 고대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여러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차있다. 모두 만나뵙기를 고대한다”고 덧붙였다.
  • 세상 풍자 빵빵, 반전 위로 필수…스타배우 빵빵, 1인 9역은 필수

    세상 풍자 빵빵, 반전 위로 필수…스타배우 빵빵, 1인 9역은 필수

    “넌 뭘 믿고 앞줄에 앉았댜?” 공연은 시작하자마자 관객에게 경고한다. 피와 복수가 난무하는 이야기가 펼쳐질 예정이니 겁이 나면 집에 가라는 거다. 설마 그런 관객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객석을 벗어나거나 잔뜩 겁에 질렸다간 금방 후회한다. 세련된 무대 위에서 오히려 죽음이 이어질 때마다 웃음이 터지고 아름다운 선율이 눈과 귀를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은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을 달래기 딱 좋은 블랙코미디다. 1909년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가난하게 살던 몬티 나바로가 어느 날 갑자기 명문가 다이스퀴스 가문의 여덟 번째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랑하는 여인 시벨라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지만 “지렁이도 언젠가 두 발로 직립보행하는 날이 오겠지”란 냉소만 받고, 사랑과 복수를 위해 몬티는 자신보다 앞 순위 후계자들을 차례대로 ‘제거’한다. 기막힌 설정의 블랙코미디를 대세 배우들이 총출동해 더욱 유쾌하게 꾸민다. 유연석, 이석훈, 고은성, 이상이는 지질한 청년에서 점점 귀티 나는 명문가 후손으로 변신하는 몬티 역으로 매력을 살리고, 오만석, 정성화, 정문성, 이규형의 1인 9역 다이스퀴스는 코믹 연기로 극의 재미를 높인다. 겨우 5초 만에 의상을 갈아입는다는 배우들의 ‘퀵체인지’를 객석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고은(고운) 성품을 지녔구먼”처럼 배역별로 서로 주고받는 찰진 애드리브가 다르기도 하고 호흡도 가지각색이라 이 작품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겐 ‘n차 관람’은 필수로 여겨지기도 한다.오페레타(작은 오페라) 형식을 결합한 작품의 백미는 단연 음악이다. ‘앞주머니 속에 독약 들어 있다’, ‘왜 가난하고 그래’, ‘그 끔찍한 여자’ 등 우스운 노랫말에 얹은 아리아 같은 우아한 선율이 귀에 쏙쏙 박히며 멋을 더한다. 그만큼 배우들에겐 고난도 음악이겠지만 가창력과 연기를 모두 겸비한 스타 배우들 덕에 ‘귀호강’도 제대로 할 수 있다. 몬티를 두고 서로 다른 사랑을 노래하는 이정화·유리아(시벨라 역), 김아선(피비 다이스퀴스 역)의 고음도 음악의 멋에 정점을 찍고, 넘버마다 다채로운 화음을 입히는 앙상블 배우들의 활약도 돋보인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무대 위 4m 높이에 오케스트라 피트가 있는 독특한 구조에도 음악의 합이 잘 맞고 영상을 적절히 활용한 무대도 색다르다. 2014년 토니어워즈 및 드라마데스크어워즈, 외부비평가상에서 모두 최우수 뮤지컬상을 받았다. 공연은 내년 2월 20일까지 이어진다.
  • 브로드웨이가 달려왔다…한국 관객 먼저 보여주러

    브로드웨이가 달려왔다…한국 관객 먼저 보여주러

    “미국에서 한국은 뮤지컬 허브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울에서 첫 공연을 선보이는 것은 매우 설레는 일이죠.” 브로드웨이에서 엄청난 흥행을 이끈 뮤지컬 신작들이 잇따라 전 세계 첫 라이선스 무대로 국내 관객들을 만난다. 따끈따끈한 브로드웨이 신작을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곧 국내 뮤지컬 시장의 위상을 보여 준다는 호평이 나온다. 팀 버턴 감독의 초기 대표작인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비틀쥬스’가 다음달 18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2019년 4월 개막한 ‘비틀쥬스’는 화려한 무대와 다채로운 볼거리를 자랑하며 흥행했고, 그해 토니어워즈 8개 부문, 외부비평가상 4개 부문, 드라마 리그 어워즈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외부비평가상(최우수 무대디자인상), 드라마 리그 어워즈(최우수 연출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지난 24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해외 창작진은 국내 무대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브로드웨이 연출 앨릭스 팀버스는 우리나라를 ‘뮤지컬 허브’로 꼽았고 국내 연출을 맡은 맷 디카를로는 “미국에서 관객과 소통을 나눈 지 1년이 넘었다”면서 “서울은 공연과 예술을 포용하는 멋진 도시”라고 말했다. 크리스 쿠쿨 음악감독은 “한국 배우들의 음악 실력은 브로드웨이와 동등하다”고 평가했다. 제작사인 CJ ENM 예주열 프로듀서는 이 작품을 리딩 공연부터 트라이아웃, 정식 초연 등 전 단계를 지켜보며 국내에 들여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브로드웨이 최신 무대기술의 집합체를 보여 주는 공연”이라는 그는 “사전 제작비가 250억원에 달하는 대형 프로덕션으로, 이 시기에 초연하는 어려움과 책임도 크지만 이럴 때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면 뮤지컬계가 한 발짝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브로드웨이판 ‘피케팅’ 돌풍을 일으킨 뮤지컬 ‘하데스타운’도 오는 8월 24일 최초 라이선스 공연이 열린다. 그리스 신화 가운데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하데스타운’은 2019년 3월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뒤 3개월 만에 토니어워즈 15개 중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최우수작품상과 연출상, 음악상, 편곡상 등 8개 상을 휩쓸었다. 대개 브로드웨이 공연을 마친 뒤 오리지널팀이 해외 공연을 하고 라이선스 공연이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데 반해 이 작품은 코로나19 전부터 한국어 공연으로 초연이 정해졌다. 그간 ‘오페라의 유령’, ‘위키드’, ‘라이온킹’ 등 대표 스테디셀러 작품을 올린 오랜 경험으로 해외 제작사들과 신뢰가 두터워진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게다가 지난해 코로나19에도 ‘오페라의 유령’, ‘캣츠’ 내한공연을 비롯해 국내 프로덕션으로 ‘위키드’도 무사히 부산 공연을 이어 가는 등 한국 무대는 전 세계 유일한 무대이자 흔들림 없이 도전하기에 충분한 공간이 되었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국내 자본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제작 과정에도 참여하는 등 한국 뮤지컬 시장이 매우 빠르게 성장해 공연 시차를 확 좁힐 수 있었던 데다 코로나19에도 문을 닫지 않고 거리두기 좌석을 운영하며 공연을 계속하고 있어 외신 등 해외 공연계의 시선이 더욱 국내로 모이고 있다”고 설명했다.지난 3월부터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브로드웨이에서도 공연의 미래를 그려 낸 이머시브(관객 참여) 형태로 참신한 화제를 모은 작품이었다. 코로나19로 개막이 미뤄지긴 했지만 석 달간 국내 무대에서도 그 실험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지난 1년간 쌓은 공연장 방역 경험을 발판으로 상황에 맞게 배우들의 움직임을 조정하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는 마스크를 쓴 관객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한국은 뮤지컬 허브” 브로드웨이 인기 신작들, 국내 무대서 첫 선

    “한국은 뮤지컬 허브” 브로드웨이 인기 신작들, 국내 무대서 첫 선

    “미국에서 한국은 뮤지컬 허브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울에서 첫 공연을 선보이는 것은 매우 설레는 일이죠.” 브로드웨이에서 엄청난 흥행을 이끈 뮤지컬 신작들이 잇따라 전 세계 첫 라이선스 무대로 국내 관객들을 만난다. 따끈따끈한 브로드웨이 신작을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곧 국내 뮤지컬 시장의 위상을 보여 준다는 호평이 나온다. 팀 버턴 감독의 초기 대표작인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비틀쥬스’가 다음달 18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2019년 4월 개막한 ‘비틀쥬스’는 화려한 무대와 다채로운 볼거리를 자랑하며 흥행했고, 그해 토니어워즈 8개 부문, 외부비평가상 4개 부문, 드라마 리그 어워즈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외부비평가상(최우수 무대디자인상), 드라마 리그 어워즈(최우수 연출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지난 24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해외 창작진은 국내 무대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브로드웨이 연출 앨릭스 팀버스는 우리나라를 ‘뮤지컬 허브’로 꼽았고 국내 연출을 맡은 맷 디카를로는 “미국에서 관객과 소통을 나눈 지 1년이 넘었다”면서 “서울은 공연과 예술을 포용하는 멋진 도시”라고 말했다. 크리스 쿠쿨 음악감독은 “한국 배우들의 음악 실력은 브로드웨이와 동등하다”고 평가했다. 제작사인 CJ ENM 예주열 프로듀서는 이 작품을 리딩 공연부터 트라이아웃, 정식 초연 등 전 단계를 지켜보며 국내에 들여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브로드웨이 최신 무대기술의 집합체를 보여 주는 공연”이라는 그는 “사전 제작비가 250억원에 달하는 대형 프로덕션으로, 이 시기에 초연하는 어려움과 책임도 크지만 이럴 때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면 뮤지컬계가 한 발짝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브로드웨이판 ‘피케팅’ 돌풍을 일으킨 뮤지컬 ‘하데스타운’도 오는 8월 24일 최초 라이선스 공연이 열린다. 그리스 신화 가운데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하데스타운’은 2019년 3월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뒤 3개월 만에 토니어워즈 15개 중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최우수작품상과 연출상, 음악상, 편곡상 등 8개 상을 휩쓸었다. 대개 브로드웨이 공연을 마친 뒤 오리지널팀이 해외 공연을 하고 라이선스 공연이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데 반해 이 작품은 코로나19 전부터 한국어 공연으로 초연이 정해졌다. 그간 ‘오페라의 유령’, ‘위키드’, ‘라이온킹’ 등 대표 스테디셀러 작품을 올린 오랜 경험으로 해외 제작사들과 신뢰가 두터워진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게다가 지난해 코로나19에도 ‘오페라의 유령’, ‘캣츠’ 내한공연을 비롯해 국내 프로덕션으로 ‘위키드’도 무사히 부산 공연을 이어 가는 등 한국 무대는 전 세계 유일한 무대이자 흔들림 없이 도전하기에 충분한 공간이 되었다.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국내 자본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제작 과정에도 참여하는 등 한국 뮤지컬 시장이 매우 빠르게 성장해 공연 시차를 확 좁힐 수 있었던 데다 코로나19에도 문을 닫지 않고 거리두기 좌석을 운영하며 공연을 계속하고 있어 외신 등 해외 공연계의 시선이 더욱 국내로 모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부터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브로드웨이에서도 공연의 미래를 그려 낸 이머시브(관객 참여) 형태로 참신한 화제를 모은 작품이었다. 코로나19로 개막이 미뤄지긴 했지만 석 달간 국내 무대에서도 그 실험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지난 1년간 쌓은 공연장 방역 경험을 발판으로 상황에 맞게 배우들의 움직임을 조정하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는 마스크를 쓴 관객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SF=男들의 영역’ 편견 깬 두 여자, 소외된 존재를 그린다

    ‘SF=男들의 영역’ 편견 깬 두 여자, 소외된 존재를 그린다

    한국 작가 최초로 미국 SF 웹진 ‘클락스월드’에 단편 소설을 발표하고, 미국 최대 출판그룹 하퍼콜린스와 판권을 계약한 소설가. 1만 부도 팔리기 쉽지 않다는 요즘, 첫 소설집(‘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20만 부 돌파를 목전에 둔 작가. ‘SF의 불모지’라던 한국에서 움튼 김보영·김초엽 작가의 현재다. 이들은 2004년(김보영), 2017년(김초엽) 데뷔 이래 지난해 역대 최다 판매량을 기록한 ‘SF 전성시대’를 견인하는 여성 작가들이다. 전직 게임 시나리오 작가 및 기획자(김보영), 포스텍에서 생화학 석사 학위를 받은 과학도(김초엽)라는 정체성에서도 이들이 걸어온 결연한 길이 느껴진다. 먼저 가고 따라가다 이제는 함께 가는 두 작가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근황이 궁금합니다. 코로나19로 ‘SF적인 시국’에 어떻게 지냈나요. 김보영 사실 소설가는 가장 타격을 덜 입은 직종이라, 지금 고생하시는 분들 생각하면 뭐라고 할 말이 없어요. 제 일상은 변화가 없고 강원도 집(평창)에서 계속 쓰고 있어요. 서울에서 사소한 일로 부르는 일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게 없어져서 오히려 작업할 시간이 늘어 편한 게 있어요. 김초엽 동료 작가 중에 강연 많이 하시는 분들은 타격이 크더라고요. 저도 주위 상황을 보면서 마음이 안 좋았고요. 원래 카페나 공용 작업실에서 글을 쓰다가 지난해 하반기에 원룸을 구해서 작업실로 쓰고 있어요.-한국 SF 문학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두 분인데요. 처음 SF를 만난 순간을 떠올려 본다면요. 김초엽 어렸을 때 과학에 빠졌는데 과학 논픽션 작가들이 SF를 레퍼런스로 많이 다루더라고요. 한국 SF 소설을 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배명훈 작가의 ‘타워’가 처음이었어요. 제가 SF 소설에 갖고 있던 생각처럼 진지하거나 심각하지 않고 유쾌하더라고요. 그 무렵 세계 천문의 해 기념으로 나온 앤솔러지 ‘백만광년의 고독’에서 김보영 작가님 작품도 보게 됐어요.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를 보고 완전 감동받았죠. 김보영 너무 감동이네요. 눈물 날 거 같아(웃음). 제가 어릴 때는 한국에 SF라는 명칭을 단 책이 거의 나오지 않았고, 인터넷도 없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들어가니 방학숙제로 과학도서 독후감이 있더라고요. 서점에 가 보니 매대 근처에 ‘SF’라고 쓰인 책이 몇 권 있었어요. 해문사에서 나온 아동용 SF 시리즈였는데 그 책을 사서 독후감을 냈더니 선생님이 받아 주더라고요. 어느 시점부터 그 책들이 다른 책에 비해 미친 듯이 재밌었어요. 생각해 보면 사실 그 이전부터 저는 환상 소설을 좋아했어요.-SF를 직접 쓰게 된 건요. 김초엽 그건 훨씬 더 나중이었어요. 재밌게 읽다가 학교(포스텍)에서 SF를 다루는 수업을 들었어요. 그때 ‘나 SF 좋아했었지’라는 생각이 되살아났고요. 교내 공모전도 몇 번 열렸었는데 그게 소설을 직접 써 보는 계기가 됐어요. 김보영 어릴 때부터 썼는데, 어른들에게 보여 줄 용도로 동화를 쓰고 아무도 안 보여 줄 용도로 SF를 썼어요. 사실 저는 우리가 어릴 때 접하는 작품이 다 기본적으로 환상이나 SF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SF와 판타지가 확연하게 두 언어인데, 사실은 중국에서도 ‘과환’이라고 하죠. 우리는 휴고상을 SF에 주는 상으로 인식하는데 ‘해리포터’도 휴고상을 탔어요. 그래도 왜 판타지가 아니라 SF를 쓰느냐면 현대의 환상은 과학이니까요. 제 안에서 나오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소설을 썼을 때 SF였어요. -김보영 작가님은 게임 시나리오 기획자였고, 김초엽 작가님은 생화학을 전공한 과학도입니다. 둘 다 한국에서는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는데 SF도 기실 그런 측면이 있죠. 지나온 시간을 회상해 본다면요. 김초엽 제가 대학 다니던 때가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와 겹쳐서…. 제 또래 여학생들은 대부분 페미니즘 전사로 거듭났어요. 막상 작가가 되니까 여기는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아무래도 여성들이 많은 분야이기도 하고 ‘미투’ 등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이 일어난 이후에 작가로 데뷔해서 그런 거 같아요. 오히려 이공계 대학에 있을 때 차별을 많이 겪었죠. 여학생은 공대의 꽃, ‘아름이’ 취급하는 분위기가 강해서 사소하게는 조별 과제를 할 때도 여성은 떨어뜨려 배치하는 식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고요. 학내에 성폭력 사건이 많아도 화제가 잘 안 됐어요. 김보영 회사에서 게임 기획자 여럿 중에 혼자 여자였는데, 다른 기획자보다 네 배를 일해도 승진은 안 되고 월급도 안 오르더군요. 회사가 커지고 다들 이사가 됐는데 저 혼자만 대리 직급이더라고요. 게임에 들어가는 텍스트 전부를 저 혼자 썼는데도…. 그래도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열 배를 하면 팀장이 되고, 내 게임도 만들 날이 오리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어요. 그런데 내가 남보다 열 배를 할 만큼 게임을 사랑하나 생각해 봤는데 그건 아닌 거예요. 그때 다 내려놨던 것 같아요. 소설을 쓰면 돈은 못 벌어도 혼자 하는 일이니 내 성취가 오롯이 내 것이 되기는 할 것 같았어요. 하지만 성별 차별을 인식하는 것은 복잡한 문제예요. 내가 모든 것을 다 잘했다는 확신을 하고, 그런 확신을 하는 내가 정신이 멀쩡한 사람인지 점검하고, 그래서 온전한 자기 확신 속에서 내가 차별받을 조건을 다 제해서 남은 것이 없는데도 상황이 기이하다 싶으면, 그때 비로소 성별을 생각하게 돼요. 차별은 내가 가진 모든 것에서 오니까요. SF를 남성의 영역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말하자면 온라인 서점 알라딘이 독자 성비를 공개하고 있거든요. 독서 인구의 80%가 여성이고, 그중에서 SF는 남성이 약간 많은 장르이긴 해도 여전히 웬만한 책이 여자 7 남자 3 수준이에요.(알라딘 통계 기준 2010~2020 SF 여성 독자의 비중은 63.2%.) 다른 분야에 비해 약간 남자가 많다는 이유로 SF를 남성의 영역으로 속여 왔던 거죠. -그에 못지않게 ‘한국은 SF의 불모지’라는 말도 클리셰에 가까워요. 실제 김보영 작가님은 2004년 데뷔 후 첫 단편집을 내려고 했을 때 출판사로부터 “한 번도 국내 작가의 단독 SF 단편집을 출간한 적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면서요. 김보영 그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SF를 출간할 수 있다는 기대는 한 점도 없었어요. 듀나(1997년부터 SF 소설집을 출간한 ‘얼굴 없는’ 작가)는 있었는데 듀나는 듀나인 거죠. 그래서 인터넷에 올리는 것으로 만족하자고 생각했는데 그해 공모전(2004년 제1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중편소설 부문)에서 당선이 됐어요. 사실 기반 없이 공모전만 생긴 거여서 책을 낼 수 있는 출판사도 없었어요. 그래도 공모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실감을 한 게 어쨌든 작가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이 살려고 뭐든 해서 지금의 환경을 만들었던 거 같아요. 사실 저는 SF가 아닌 다른 것을 하려고 했지만 써지지가 않았어요. SF가 제게는 소설의 원형적인 형태였으니까요. 뭐가 안 되는 것도 무언가가 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초엽 저도 데뷔하고 나서 SF 지면이 거의 없다는 게 고민이었어요. 한정된 SF 지면이었지만 기회가 주어져 책을 빨리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 한국문학 분위기가 바뀌어서 예전에는 SF를 싣지 않았을 법한 곳에서 지면을 준다든지, 순문학을 출간하던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단행본 계약을 하기도 했죠. 한국 문학계도 예전보다는 재밌고 잘 읽히는 이야기들을 선호하면서 독자 친화적인 환경으로 바뀌지 않았나 싶고요. 그러면서도 가볍게만 보지 않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분위기가 있는 게, 제 활동 시기랑 맞아떨어졌던 거 같아요. 김보영 사실은 김초엽이 분위기를 바꾸고 문을 연 것이 크지요. 그래서 이후의 작가들도, 실은 이전의 작가인 저도 그 열린 문으로 갈 수 있었고요. 그 점에서 참 고맙죠. 두 작가가 만드는 SF 세상에서는 지금껏 조명되지 않았던 존재가 서사의 중심에 선다. 사이보그의 몸을 한 여성 우주인과 할머니 과학자(김초엽), ‘합성신체’를 통해 성전환이 가능해진 사회, 사람의 몸에 들어간 인공지능(김보영) 등이 그렇다. 광활한 우주에 백인 남성이 등장해 때려 부수는 미국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SF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한다. -두 분의 소설은 소외된 존재를 향합니다. 여성 서사에 대한 조명도 두드러지고요. 그래서인지 한국의 SF는 ‘올바른 장르’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김초엽 SF가 그러한 장르적 특성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독자들의 선택에 의해서 추려진 거 같아요. 사실 SF라고 해서 윤리적이진 않아요. 예전 SF 작품들 보면 백인 남성을 기준으로 제국주의적인 면모가 많이 드러나죠. 현대로 넘어오면서 다양성을 더욱 추구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리얼리즘 문학에 비해서는 작가의 사상이 좀더 선명하게 구현되는 장르예요. 현실에 비해 차별을 재현하더라도 선택적으로 보여 줄 수 있으니까요. 한국의 SF가 그렇다기보다는 동시대 SF가 다양성을 추구한다고 생각하고요.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게 어떤 소설에 윤리적이라는 프레임이 붙어버리면 무결함에 대한 강요가 될 수 있어요. 비판받을 지점이 있다 하더라도 사회적 맥락에서 읽혀야 하고요. 지금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독자들이 지친 게 있다 보니 이 작품이 ‘클린하다’, ‘여성 서사다’라고 말씀하시는 경향이 있죠. 김보영 셰릴 빈트(SF 학술지 ‘과학소설연구’ 편집장)가 쓴 ‘에스에프 에스프리’라는 비평서에서 ‘SF는 세 종류가 있다’고 해요. 흔히 생각하는 스페이스 오페라처럼 모험을 떠나는 작품, 미래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작품, 새로운 윤리나 철학을 실험하는 작품이 있다고요. 셋은 굉장히 다른데 모두 SF로 묶이고 있다는 말로 책이 시작되는데요. 한국에는 이들이 전부 다 균형 있게 들어오지 않아서 일률적으로 보이는 듯해요. 사실 지금은 종류별로 다양하게 나오고 있고 독자들이 선호하는 작품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지금 한국 독자들이 저 세 SF 중에서 세 번째를 선호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 거죠. 어쨌든 한국 SF의 초창기에 듀나가 있었고 저도 있었고요. 정세랑·김초엽·천선란·문목하 작가 같은 분들이 계셔서 ‘이 역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봐요. 그런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요.
  • 임선혜 참여한 어빈 슐호프 가곡 앨범, 독일·프랑스서 잇따라 호평

    임선혜 참여한 어빈 슐호프 가곡 앨범, 독일·프랑스서 잇따라 호평

    소프라노 임선혜가 참여해 세계 최초로 어빈 슐호프 가곡 전곡을 녹음한 앨범이 잇따라 해외에서 호평을 얻고 있다. 3일 소속사 EMK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임선혜의 앨범 ‘어빈 슐호프 가곡집’은 1/4분기 독일 음반 비평가상을 수상한 데 이어 프랑스 음악 잡지 ‘레 뮤지카’의 ‘이달의 음반(음자리표)’로 선정됐다. 독일의 그래미상으로 꼽히는 독일 음반 비평가상은 매년 발매되는 음반 가운데 최고의 완성도를 선보인 음반을 전문 비평가들이 선정하는 독일에서 가장 권위있는 음반상이다. 2009년 임선혜가 르네 야콥스 지휘로 프라이브루크 바로크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모차르트 오페라 이도매네오’ 음반이 이 상을 수상한 바 있다. 프랑스의 저명한 음악잡지 ‘레 뮤지카’에서 선정하는 ‘이달의 음반’은 임선혜에 대해 “햇볕 같고 기민한 슈트라우스 소프라노로 맑은 소리에 세련미와 유머, 극적인 드라마를 연결시킬 줄 안다”고 극찬했다.‘어빈 슐호프 가곡집’은 유태인 출신응로 수용소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독일계 체코 작곡가 어빈 슐호프의 가곡 작품집으로 후기 낭만과 현대에 걸친 슐호프의 관능적인 선율이 독일 문호가들의 텍스트와 잘 어우러졌다. 이번 앨범은 임선혜가 참여한 첫 가곡 앨범이자 슐호프의 가곡 전곡 중 40여곡을 녹음한 첫 음반이기도 하다. 독일 남서부 방송국과 베를린의 음반 레이블 바스티유 뮤직이 공동 제작했다. 임선혜는 “슐호프의 가곡 전체 80여곡 중 반이 넘는 곡이 소프라노 곡이고 나에는 처음으로 참여한 가곡 음반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면서 “몇몇 체코어 노래 빼고는 모두 독일어 곡인데 외국인인 제게 제안을 해주었다는 것이 고맙고 힘이 나게 했던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세상에 나오지 않은 노래들이 많아서 이 곡들을 가장 먼저 해석할 수 있는 영광이 있었고 앞으로 예술 가곡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임선혜는 19일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에서 열리는 2021 예울마루 실내악페스티벌 스프링콘서트에서 슐호프 작품을 초연할 예정이다. 한편 임선혜는 17일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팬텀’에서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다에 역으로 박은태, 카이, 전동석, 규현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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