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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광호의 어찌보면] “그래미도 로컬이다”… BTS ‘그래미 보이콧’의 의미

    [이광호의 어찌보면] “그래미도 로컬이다”… BTS ‘그래미 보이콧’의 의미

    방탄소년단(BTS)의 그래미 어워드 보이콧 선언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이것은 ‘보편’의 가치를 독점해 온 미국 중심의 문화 제도가 비서구 문화를 어떻게 취급하는가를 보여 주며, 동시에 그 균열을 드러낸 사건이다. 그래미 주최 측인 레코딩 아카데미는 ‘베스트 아시아 팝 뮤직 퍼포먼스’ 등 신설 부문을 발표하면서, 이 부문은 아시아 언어를 일정 수준 이상 사용해야 한다는 자격 기준을 만들었다. BTS는 멤버들의 명의로 2027년 그래미 출품을 거부한다고 밝히며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는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규 5집 ‘아리랑’이 빌보드 메인 싱글·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성공의 정점에 있던 시점이었다. 이후 그래미는 제도 개선을 시사했지만, 8월 21일 출품 마감일이 지나버렸고 결과적으로 그래미는 BTS의 문제 제기에 응답을 보여 주지 않았다. ‘아시안 팝’ 부문의 신설이란, 비서구 음악에 출품의 자격을 부여하면서 ‘정통’과 ‘보편’의 본격 경쟁의 장에서는 배제하는 기만적인 전략이다. 그동안 그래미는 글로벌 팬덤을 가진 BTS를 시청률을 위한 공연 퍼포머로 소비하면서도 본상 경쟁에서는 배제해 왔다. 미국 음악의 하위 장르에는 세분화된 카테고리를 부여하면서, ‘아시안 팝’은 장르가 아닌 지역과 언어로 묶어내는 그래미의 분류법 자체가 이중적이다. 미국 음악은 미학적인 계보와 장르로, 비서구 음악은 지리적 언어적 속성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BTS의 음악은 ‘한국음악’의 지역적 범주에 갇혀 있지 않으며, 하이브리드한 음악으로서의 세계성을 획득했는데도 말이다. 음악의 지역적 명명 행위 자체가 권력의 작동 방식이다. 그래미의 지리적 상상력은 미국을 세계 음악 지형의 보편으로, 그 외의 모든 미국 밖의 세계는 ‘지역’이나 ‘기타’로 배치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은 서구를 보편으로, 비서구 문화를 이국적이고 특수한 타자로 보는 위계의 작동 방식이다. ‘아시안 팝’, ‘월드 뮤직’, ‘글로벌 뮤직’ 같은 음악 범주의 명명 방식도 마찬가지다. 서구 음악은 ‘음악 그 자체’이며 나머지는 다른 표식이 필요한 변두리 음악이다. 이런 미국식 보편주의에 대한 균열의 조짐은 곳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를 받기 전 2019년 봉준호 감독은 미국 매체와 인터뷰하면서 “아카데미는 로컬이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칸이나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비해 아카데미는 미국 중심이라는 맥락이었다. 이후 ‘기생충’이 오스카의 ‘외국어 영화상’이 아닌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한번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이 발언은 처음에는 오스카의 미국 중심적 특수성을 지적하는 것이었으나, 그 이후에는 한국 영화가 지역성을 극복하는 서사의 상징이 되었다.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았을 때, 이 상은 영연방 지역 이외의 작가가 쓴 작품에 주는 상이었다. 2024년 한강 작가에게 노벨 문학상을 주었을 때, 서구의 입장에서 ‘번역 소설’이라는 한국문학의 꼬리표는 극복되었다. 그해 12월 내가 참여했던 노벨상 시상식은, 무대와 객석에 단 한 명의 흑인도 찾기 힘든 연미복을 차려입은 백인들의 잔치였다. 수많은 백인 남성 수상자 사이로 단 한 명의 아시아-한국 여성이 앉아 있는 모습은, 노벨상이 이제 겨우 서구와 남성중심주의 보편성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전후 용산 미군기지 무대에서 출발한 한국 대중음악의 소프트파워가 미국 대중문화의 표준과 권위에 균열을 낼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래미의 제도적 권력은 세계적인 상징 자본인 BTS에게도 넘어야 할 벽이지만, 보이콧은 BTS의 영향력을 역설적으로 시험하는 계기이다. 세계 곳곳의 ‘아미’(BTS 팬덤)는 ‘ArtHasNoAliens’란 해시태그(#)를 달아 지지를 보냈다. 수상에서 배제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분류 규정과 경쟁의 규칙 자체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도래했다. 물론 미국의 문화 제국주의가 완전히 해체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아카데미는 아직도 비서구 영화를 ‘국제장편영화상’으로 따로 분류하고 있다. 비서구 콘텐츠들은 여전히 서구와 미국 소유의 플랫폼(유튜브, 넷플릭스, 스포티파이)에 탑재되어야만 ‘지구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나’와 ‘우리’를 보편으로 타자를 특수하고 비정상적으로 인식하는 우리 안의 ‘제국주의’는 혐오와 배제의 근원이다. ‘나-우리’는 보편적인 사람 자체이고 이질적인 타자들은 다른 표식이 필요하다는 분류법은 사람 사이 ‘식민’의 관계를 만든다. 이 태도는 ‘위치성’을 은폐하고, ‘나’의 특정 위치를 보편으로 위장한다. 보편은 어디에도 서 있지 않은 초월적 관점인데, 실제로는 언제나 특정한 역사적·사회적 위치에서 발화된다. 타자에게는 위치성이 과잉으로 부과되어, 그의 언어는 특수한 것으로 치부된다. 특정한 자리에 서 있는 개별적인 ‘나’는 이미 타자이고 이방인이다. 이 위치 때문에 ‘보편’이 되지 못하지만, ‘나’와 ‘당신’은 그래서 더없이 고유하고 매력적이다.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
  • 약탈자에서 우아한 이방인으로 [으른들의 미술사]

    약탈자에서 우아한 이방인으로 [으른들의 미술사]

    ●질감의 승리 장-레옹 제롬(1824~1904)의 ‘바시-바주크’(Bashi-Bazouk)는 오리엔탈리즘 미술의 정점이자, 옷 질감 묘사에 대한 집요한 탐구 결과물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 것은 인물의 얼굴보다 그를 감싸고 있는 옷감의 묘사다. 인물이 착용한 화려한 실크 볼레로와 정교하게 감긴 터번의 주름은 마치 손을 뻗으면 그 매끄러움과 바스락거림이 느껴질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제롬은 이국적인 의상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빛이 직물 위에서 어떻게 빛나는지 집요하게 추적했다. 이 노력은 당시 유럽 관객들에게 동양이라는 공간을 극도로 화려하고 감각적인 곳으로 인식하게 했다. ●이름 없는 용병 ‘바시-바주크’라는 명칭은 튀르키예어로 지휘 계통이 없는 무질서한 비정규군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이들은 잔혹함, 약탈, 규율을 따르지 않는 악명 높은 오스만 병사들이며 급료 대신 약탈을 허용받았던 잔혹하고 통제 불능인 용병들이었다. 그러나 이 무법자는 제롬의 캔버스에서 성자와 같은 고고함과 품위를 지닌 인물로 재탄생했다.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전장에서 극도로 용맹했지만, 잔혹성으로 악명이 높았다. 특히 1876년 불가리아인 학살 사건에서의 만행은 유럽 전역에 충격을 주었으며, 이로 인해 서구권에서 ‘바시-바주크’는 야만적이고 무법천지인 집단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됐다. 이들은 오스만 제국의 쇠퇴와 함께 쓸모를 잃어 19세기 말 점진적으로 해체됐다. 그러나 제롬과 같은 오리엔탈리즘 화가들은 이들의 위협적인 면모보다는 이국적인 외양에 매료돼 예술적 소재로 자주 활용했다. 이 그림의 모델은 사실 제롬이 파리의 작업실에서 고용한 전문 모델이었다. 제롬은 자신이 여행 중에 수집한 값비싼 의복과 장신구를 모델에게 입혀 이 고귀한 이방인 전사의 이미지를 창조해 냈다. 이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으로, 서구인이 보고 싶어 하는 이국적인 이방인으로 맞춤 제작한 것이다. 실제의 잔혹한 용병은 사라지고, 오직 관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모델만이 남았다. 배경을 과감히 생략하고 인물의 옆모습에 집중한 구도는 이 인물을 하나의 정물화처럼 감상하게 만들었다. ●카메라의 눈을 가진 화가 제롬은 사진 기술의 등장을 두려워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한 화가였다. ‘바시-바주크’는 그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오만한 듯하면서도 우수에 찬 눈빛, 살짝 치켜든 턱 끝에서 느껴지는 자부심은 사진의 정밀함과 화가의 상상력이 만든 결과물이다. 모든 디테일이 완벽하게 사실적이지만, 정작 그 디테일이 모여 만든 전체 인물은 실존하지 않는 허구다. 하지만 그 거짓말이 너무나 압도적으로 아름다웠기에, 이 작품은 19세기 유럽인들에게 동양에 대한 강렬한 시각 이정표가 됐다. 제롬은 진실을 그리는 대신, 사람들이 기꺼이 속는 완벽한 합성미를 조립한 것이다. 결국 제롬의 ‘바시-바주크’는 당대 오리엔탈리즘이 구현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코스튬 플레이와 같다. 전장의 무법자로 악명 높았던 용병을 화가의 화실 안에서 고분고분한 캐릭터 인형으로 탈바꿈시킨 셈이다. 하지만 저 터번의 완벽한 주름과 금실 자수를 보고 있노라면, 그가 실제 용병인지 파리 어느 화실에 있는 모델인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압도적인 질감의 묘사 앞에선 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 [김민식의 알 수 없어요] 역사 읽기와 문학의 이유

    [김민식의 알 수 없어요] 역사 읽기와 문학의 이유

    세밑 공공기관 업무보고 중에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언급했다. 그러자 역사학계와 여러 언론에서 대통령이 ‘위서’(偽書), 가짜 책을 들먹인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고도 길었다. 정치권에서도 야권의 대표자 한 사람은 “환단고기가 역사서라면 반지의 제왕도 역사가 되겠다”며 그냥 넘기지 않았다. 강단 역사학자들은 입을 모아 사료, 팩트, 실증적 근거를 들어 환단고기를 아예 거짓 글로 규정한다. 검증 가능한 사료만이 역사를 구성한다는 역사 실증주의자들. 엄격한 이 역사학도들에게 하나 묻고 싶은 것은 그러면 히브리의 창세기와 출애굽기 그리고 일본서기도 위서인가? 또 판타지라면 반지의 제왕은 창세기나 일본서기의 옷자락 끝에도 닿을 수 없다. 듣자니 환단고기도 단군을 신으로 모시는 태백교의 경전이다. 아무튼 역사학자라면 그가 검증했거나 아니거나를 떠나 글 앞에서는 그냥 겸허해야 할 터. 장구한 인류의 문명에 비해 점토판에 새긴 문자의 역사는 고작 오천년 남짓할 뿐이다. 글로 쓰인 역사는 한 그루 나무가 지닌 진실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숱하다. 일본 규슈의 남쪽 섬 야쿠시마에는 수령 삼천년 또는 칠천년으로 추정되는 삼나무 숲이 하늘을 가린다. 미국과 칠레에는 나이테가 오천년인 소나무가 지금도 건재하고. 뿐인가 썩지 않고 땅에 묻혀 있던 만년 오만 년 나무 조각 하나로 우리는 지금 선사 시대 지구의 기후 변화 강수량까지도 파악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부질없이 글로 다투니, 나무야 내게 사실을 말해다오. 한국 고대사에도 나무로 역사의 진위가 밝혀진 큰 사건이 있었다. 1971년 공주에서 발굴된 5세기 백제 무령왕릉의 목관은 일본 특산의 상록수 금송이었다. 놀랍게도 일본서기에 기록된 무령왕의 출생과 행적이 껴묻거리 표석과 일치했다. 고고학은 말한다. 사료로서 글의 비중은 채 1%도 되지 않는다. 젊은 날 뮌헨의 1월 건축 메세를 마치고 로만 로드를 따라 밀라노로 가는 길에 이탈리아 최북단 볼차노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볼차노에는 알프스 얼음 구덩이에서 발견된 칠천년 전 아이스맨이 있었다. 이집트의 황금 마스크 투탕카멘보다 얼추 사천년 전 시대의 사람이다. 유리관 안으로 선사 시대 아이스맨의 털모자, 외투, 부츠를 보면서 다음날 도착할 밀라노 몬테 나폴레오네 거리의 트렌디한 디자인을 생각했다. 하늘 아래 새것이 있을까? 이탈리아에 들어왔으니 다시 로마사의 명장면 하나. ‘브루투스 너마저도(시저)/ 자유를 위하여 사랑하는 친구 시저를 나는 죽였습니다. 시저보다 로마 시민들을 더 사랑하기에(브루투스)/ 고결한 사람 브루투스, 여기에 시저가 누워 있습니다. 야심이 가득했다는 시저는 그의 모든 현금과 테베레강 아래의 정원과 과수원을 로마 시민들에게 남긴다는 유언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안토니우스)’ 셰익스피어의 희곡 ‘율리우스 시저’ 대사의 일부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시저편도, 로마사의 어느 글도 16세기 영국 극작가의 묘사에 닿지 못한다. 셰익스피어는 문학으로 로마의 공화정제, 원로원의 암투, 시저의 살해 앞에 모여든 군중들의 가파른 숨소리까지도 전달한다. 강이 산을 넘지 못하듯 역사는 문학을 넘지 못하니. 나는 근래 친구들과 서울 청담동의 소전서림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었다. 아테네의 시라쿠사 원정에서 최고 지휘관 니키아스의 마지막 연설을 들은 군사 중에 살아남은 자는 없었다. 에트나산과 이오니아 바다가 전장을 지켜보았을 뿐. 하지만 역사는 저자 투키디데스의 문학적 상상력을 거짓 글로 매도하지 않는다. 신화와 전설 기담 여행기로 가득한 그리스 로마 이야기는 인류 역사의 고전으로 간주하면서 사마천과 나관중, 환단고기는 엄격한 실증의 잣대로 직박는 것은 우리 내면의 오리엔탈리즘인가? 새해를 열며 헤로도토스, 펠로폰네소스를 읽던 맥락으로 나는 친구들과 나관중의 삼국지를 읽을 참이다. 우리 젊은 그 시절 상상의 공간 중원과 관운장의 적토마를 다시 만나게 되어 설렌다. 참이 아닌 기록일지라도 사료를 취사선택하는 것은 결국 역사가의 몫. 문학이 필요한 이유다. 김민식 내촌목공소 고문
  • [책꽂이]

    [책꽂이]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 하녀, 공장노동자, 지방 도시의 연금 생활자 등 평생 노동계급의 일원으로 머물렀던 한 여성의 삶을 그려낸 책이다. ‘프랑스 노동계급 여성의 전형적 일생’에 관한 사회학적 논의를 거쳐 다시 ‘노년’과 ‘노인’이라는 사회적 범주, 나아가 늙음과 장애를 숙명적으로 겪는 인간 주제의 취약성과 연대에 관한 이론적 성찰로 이야기를 확장해간다. 366쪽, 1만 8000원. 다시, 사람을 배웁니다(강원국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이었던 저자가 성숙하게 관계 맺는 법을 전수한다. 관계 공부를 위한 핵심 키워드는 중심, 경계, 리더십, 여유, 결단력, 회복이다. 관계의 확장보다는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손을 내미는 ‘마음 근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288쪽, 1만 9000원. 오스만제국사(캐럴라인 핑클 지음, 이재황 옮김, 책과함께) 서아시아, 동유럽, 북아프리카 세 대륙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600년 넘게 통치한 오스만제국. 세계사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지만,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서 폄하되고 왜곡됐다. 15년 이상 튀르키예에 거주하며 연구를 수행해온 저자는 제국의 탄생부터 튀르키예공화국 수립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를 내부자의 시선으로 새롭게 서술한다. 1096쪽, 6만 3000원.
  • “루미의 이중적 정체성, 보편적 공감 이끈 힘”

    “루미의 이중적 정체성, 보편적 공감 이끈 힘”

    다문화 관점서 세계적인 것 창조속편 나온다면 트로트 알리고파 “루미의 (이중적) 정체성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저마다 민족적·인종적 정체성을 대입해 공감하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현상이죠. 저와 같은 교포들은 정체성 혼란을 겪기 쉬운데, 루미가 그들에게 위로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이 작품의 ‘글로벌함’이겠죠.” 전 세계적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한국명 강민지) 감독의 손에서 탄생했다. 주인공 루미는 조금 독특한 캐릭터다. ‘데몬’(악령)을 퇴치하는 ‘헌터’이지만, 동시에 그 안에 데몬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다. 한국에서 태어난 강 감독은 다섯살 때 캐나다로 건너가 줄곧 그곳에서 자랐다. 감독의 정체성이 어쩌면 루미의 이중성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까. 지난 22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강 감독은 유창한 한국어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다소 길고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면 영어로 말했다. “저는 지금 영어로 말하고 있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이 강하며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소개합니다. 캐나다인이라는 사실을 종종 까먹죠. 한국어를 계속 간직했기 때문에 한국적인 것과 가까이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문화와 문화 사이에 있다는 건 무척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다문화적인’ 관점에서 진정으로 세계적인 것이 창조될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적인 것’의 본질도 계속 변화하는 것이니까요.” K팝 스타가 실은 악령을 퇴치하는 무당이었다는 설정. 이것은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발상이다. 무당이 벌이는 ‘굿’에 대해 강 감독은 종합예술로서 “최초의 콘서트”라고 치켜세웠다. 속편 제작은 미지수. 그러나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짜 놓았던 전사(前史)를 다 풀어내지 못했기에 여러 아이디어가 있다고 한다. 강 감독은 “한국의 다양한 음악 세계를 더 보여 주고 싶다”며 구체적으로 ‘트로트’를 콕 집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H.O.T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케데헌’은 슈퍼히어로 영화의 서사를 갖췄지만, 궁극적으로 다루고 싶었던 것은 ‘수치심’이었어요. 주로 어린아이를 겨냥했던 애니에선 다뤄지지 않았던 주제죠. 애니가 꼭 아이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성숙한 주제를 화려한 볼거리와 합치면 어른과 아이 모두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블록버스터로 이어지는 힘이라고 봐요. 모든 훌륭한 애니는 이 목적을 달성하고 있죠.” 작품 제작에는 7년이 걸렸다고 한다. 앞서 대성공을 거둔 ‘오징어 게임’과 같은 콘텐츠가 없었다면 ‘케데헌’을 향한 전폭 지원 역시 없었을지도 모른다. 강 감독이 가장 경계했던 것은 ‘어설픈 오리엔탈리즘’이었다. 서양이 생각하는 동양적인 것의 전형,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여러 오해를 애니로 깨고 싶었다. 스토리 구상에 시간과 공을 가장 많이 들인 이유다. 일각에서 오스카 수상 등 바람을 넣고 있지만 강 감독은 “분명 인정받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런 이유로 창작하진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우리의 문화와 우리의 관점에 자신감을 가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다른 이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그들에게 맞추려고 하는 순간 진정성이 사라지죠. 그러면 관객이 바로 알아챌 겁니다. 관객은 진심을 원해요. 이번 작품도 제 진심을 가감 없이 보여 주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에요. 그것이 한국 문화가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케데헌’ 매기 강 감독 “루미의 이중적 정체성…보편적 공감 이끈 힘”

    ‘케데헌’ 매기 강 감독 “루미의 이중적 정체성…보편적 공감 이끈 힘”

    “루미의 (이중적) 정체성은 의도하진 않았지만, 저마다 민족적·인종적인 정체성을 대입해 공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현상이죠. 저와 같은 교포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 쉬운데, 루미가 그들에게 위로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이 작품의 ‘글로벌함’이겠죠.” 가히 ‘신드롬’이라는 표현을 써도 될 듯한, 세계적인 케이팝(K팝) 열풍의 중심에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있다. ‘케데헌’은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 매기 강(한국명 강민지)의 손에서 탄생했다. ‘케데헌’의 주인공 루미는 조금 독특한 캐릭터다. ‘데몬’(악령)을 퇴치하는 ‘헌터’지만, 동시에 그의 안에는 데몬의 피도 흐르고 있어서다. 한국에서 태어난 강 감독은 다섯 살 때 캐나다로 건너가 줄곧 그곳에서 자랐다. 강 감독의 교포 정체성이 어쩌면 루미의 이중성에 영향을 주진 않았을까. 22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강 감독은 유창한 한국어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다소 길고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 답변은 영어로 말했다. “저는 지금 영어로 말하고 있지만, 한국인 정체성이 강하고 한국인이라고 스스로 소개합니다. 캐나다인이라는 걸 종종 까먹죠. 한국어를 계속 간직했기 때문에 한국적인 것과 가까이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문화와 문화 사이에 있다는 건 무척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다문화적인’ 관점에서 진정한 세계적인 것이 창조될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적인 것’의 본질도 계속 변화하는 것이니까요.” 케이팝 스타가 실은 악령을 퇴치하는 무당이었다는 설정. 이것은 한국문화를 깊이 이해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발상이다. 무당이 벌이는 ‘굿’에 대해 강 감독은 종합예술로서 “최초의 콘서트”라고 치켜세웠다. ‘케데헌’ 속편이 제작될지는 아직 미지수. 그러나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짜놨던 전사를 아직 다 풀어내지 못했기에 여러 아이디어가 있다고 한다. 강 감독은 “한국의 다양한 음악을 더 보여주고 싶다”면서 구체적으로 ‘트로트’를 콕 짚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에이치오티’(H·O·T)의 열렬한 팬이라고 한다. “‘케데헌’은 슈퍼히어로 영화의 서사를 갖췄지만, 제가 궁극적으로 다루고 싶었던 것은 ‘수치심’이었어요. 주로 어린아이를 겨냥했던 애니메이션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주제죠. 애니메이션이 꼭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성숙한 주제를 화려한 볼거리와 합치면 어른과 아이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블록버스터로 이어지는 힘이라고 봐요. 모든 훌륭한 애니메이션은 이 목적을 달성하고 있죠.” ‘케데헌’이 제작되기까지 총 7년이 걸렸다고 한다. 앞서 대성공을 거뒀던 ‘오징어게임’과 같은 콘텐츠가 없었다면 ‘케데헌’을 향한 전폭적인 지원 역시 없었을지도 모른다. 강 감독이 가장 경계했던 것은 ‘어설픈 오리엔탈리즘’이다. 서양이 생각하는 동양적인 것의 전형,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여러 오해를 애니메이션으로 깨고 싶었다. 스토리 구상에 가장 시간과 공을 오래 들인 이유다. 일각에서 아카데미상 수상 등 바람을 넣고 있기도 하지만, 이에 대해 강 감독은 “분명 인정을 받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런 이유로 창작하진 않는다”고 했다. “우리의 문화와 우리의 관점에 자신감을 가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다른 이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그들에게 맞추려고 하는 순간 진정성이 사라지죠. 그게 사라지면 관객은 바로 알아챌 겁니다. 관객은 진심을 원해요. 이번 작품도 제 진심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에요. 그것이 한국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해요.”
  • 코끝에 번지는 은은한 관능, 사전트의 ‘용연향’

    코끝에 번지는 은은한 관능, 사전트의 ‘용연향’

    1880년, 24세의 젊은 화가 존 싱어 사전트는 북아프리카 여행에서 본 장면을 떠올렸다. 모로코에서 스케치를 시작했고 이듬해 프랑스 파리의 화실에서 ‘용연향’(龍涎香)이라는 작품으로 완성했다. 그림 속 여성은 융단 위에 놓인 작은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향기를 머리에 두른 베일 아래로 들이마시고 있다. 하얀 옷으로 온몸을 감싼 채 신비롭고 고요한 의식을 치르는 듯한 모습이다. 아치형 벽 앞에 서서 눈을 감은 듯한 표정으로 향의 기운을 천천히 들이마신다. 손으로 베일을 잡는 모습은 단순히 동작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향기의 세계에 몸을 맡기는 순간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이 작품을 “매혹적이고 우아하며 고요한 관능”이라고 평했다. 고래와 시간이 빚어낸 물질, 용연향 향유고래의 장에서 만들어지는 용연은 예부터 귀한 향료이자 약재로 사용됐다. 용연은 향유고래의 장에서 자연 발효와 산화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 희귀 물질로, 바다 위로 떠오르거나 해변으로 밀려온다. 특유의 향을 지니며 고대부터 향수와 약재, 부적으로 귀하게 쓰였다. 향을 오래 지속시키는 고정제로서 가치가 높아 ‘바다의 금’으로 여겨졌으며, 오늘날에도 ‘바다에서 건진 로또’라 불린다. 용연은 향수 제조에 사용될 뿐 아니라 아프리카에서는 흡입하거나 향으로 사용된다. 나쁜 기운을 몰아내거나 관능적인 매력을 더해준다고 전해진다. 바다와 태양, 고래의 삶이 농축된 이 향은 관능적이면서도 신비로운 기운을 품고 있다. 특히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는 용연향을 피워 악귀를 쫓거나 마음을 안정시키는 의식에 사용했다. 절제된 색채, 농축된 향 사전트는 이 독특한 향 문화를 단순히 이국적인 민속 장면이 아니라 빛과 공기, 인간의 감각이 교차하는 순간으로 포착했다. 화면 속 색채는 절제되어 정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눈부신 백색의 가운과 은은한 상아빛 벽, 연기 속에서 스미는 미묘한 금빛이 전부다. 그러나 이러한 절제가 오히려 향기의 농도를 상상하게 만든다. 연기는 보이지 않는 향기를 눈에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그림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숨을 들이마시게 된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 유럽에서 유행하던 오리엔탈리즘의 분위기를 담고 있지만, 이국적 취향을 자극하거나 과장하지 않았다. 사전트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 되레 감춤으로써 은은한 관능을 표현했다. 향의 변화와 빛의 흐름을 관능의 주인공으로 만든 것이다. 이 그림은 시각을 넘어 후각을 자극한다. 코끝에 번지는 은은한 관능은 사전트가 한 번의 붓질로 만들 수 없는 세계다. 하루하루의 빛과 향, 그리고 한 사람의 호흡이 겹겹이 쌓인 결과다. 어떤 향은 시간이 지나도, 심지어 그림 밖에서도 여전히 코끝에 머문다.
  • 코끝에 번지는 은은한 관능, 사전트의 ‘용연향’ [으른들의 미술사]

    코끝에 번지는 은은한 관능, 사전트의 ‘용연향’ [으른들의 미술사]

    1880년, 24세의 젊은 화가 존 싱어 사전트는 북아프리카 여행에서 본 장면을 떠올렸다. 모로코에서 스케치를 시작했고 이듬해 프랑스 파리의 화실에서 ‘용연향’(龍涎香)이라는 작품으로 완성했다. 그림 속 여성은 융단 위에 놓인 작은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향기를 머리에 두른 베일 아래로 들이마시고 있다. 하얀 옷으로 온몸을 감싼 채 신비롭고 고요한 의식을 치르는 듯한 모습이다. 아치형 벽 앞에 서서 눈을 감은 듯한 표정으로 향의 기운을 천천히 들이마신다. 손으로 베일을 잡는 모습은 단순히 동작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향기의 세계에 몸을 맡기는 순간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이 작품을 “매혹적이고 우아하며 고요한 관능”이라고 평했다. 고래와 시간이 빚어낸 물질, 용연향 향유고래의 장에서 만들어지는 용연은 예부터 귀한 향료이자 약재로 사용됐다. 용연은 향유고래의 장에서 자연 발효와 산화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 희귀 물질로, 바다 위로 떠오르거나 해변으로 밀려온다. 특유의 향을 지니며 고대부터 향수와 약재, 부적으로 귀하게 쓰였다. 향을 오래 지속시키는 고정제로서 가치가 높아 ‘바다의 금’으로 여겨졌으며, 오늘날에도 ‘바다에서 건진 로또’라 불린다. 용연은 향수 제조에 사용될 뿐 아니라 아프리카에서는 흡입하거나 향으로 사용된다. 나쁜 기운을 몰아내거나 관능적인 매력을 더해준다고 전해진다. 바다와 태양, 고래의 삶이 농축된 이 향은 관능적이면서도 신비로운 기운을 품고 있다. 특히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는 용연향을 피워 악귀를 쫓거나 마음을 안정시키는 의식에 사용했다. 절제된 색채, 농축된 향 사전트는 이 독특한 향 문화를 단순히 이국적인 민속 장면이 아니라 빛과 공기, 인간의 감각이 교차하는 순간으로 포착했다. 화면 속 색채는 절제되어 정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눈부신 백색의 가운과 은은한 상아빛 벽, 연기 속에서 스미는 미묘한 금빛이 전부다. 그러나 이러한 절제가 오히려 향기의 농도를 상상하게 만든다. 연기는 보이지 않는 향기를 눈에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그림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숨을 들이마시게 된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 유럽에서 유행하던 오리엔탈리즘의 분위기를 담고 있지만, 이국적 취향을 자극하거나 과장하지 않았다. 사전트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 되레 감춤으로써 은은한 관능을 표현했다. 향의 변화와 빛의 흐름을 관능의 주인공으로 만든 것이다. 이 그림은 시각을 넘어 후각을 자극한다. 코끝에 번지는 은은한 관능은 사전트가 한 번의 붓질로 만들 수 없는 세계다. 하루하루의 빛과 향, 그리고 한 사람의 호흡이 겹겹이 쌓인 결과다. 어떤 향은 시간이 지나도, 심지어 그림 밖에서도 여전히 코끝에 머문다.
  • 등 돌린 여인의 시선이 꿰뚫는 불편한 진실 ‘그랑드 오달리스크’

    등 돌린 여인의 시선이 꿰뚫는 불편한 진실 ‘그랑드 오달리스크’

    1814년 프랑스 거장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가 파리 살롱에 선보인 ‘그랑드 오달리스크(La Grande Odalisque)’는 당시 미술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조르조네(본명 조르지오 바바렐리)의 ‘비너스’나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로크비 비너스’(비너스의 단장)처럼 비너스 자세를 차용한 이 작품은 단순한 누드화를 넘어 그림 속 여인의 몸과 시선이 던지는 복잡한 질문들로 가득하다. 오리엔탈리즘 욕망이 빚어낸 ‘오달리스크’의 오해‘오달리스크’(odalisque)라는 단어는 본래 튀르키예어 ‘오다’(oda·방)’에서 유래해 오스만제국 하렘에 기거하는 여인을 뜻했다. 그러나 하렘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던 서구에서는 이국적 복장과 소품을 착용하고 누워 있는 모든 동양 여성을 ‘오달리스크’로 부르기 시작했다. 18세기에서 19세기 유럽 회화에서 ‘오달리스크’는 동양을 성적, 미적 판타지로 소비하는 오리엔탈리즘적 욕망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화면 속 여인은 이국적 터번을 쓰고 비단 커튼과 보료 위에 나른하게 기대어 있다. 하지만 단순히 편안해 보이는 이 자세는 보는 이를 향해 살짝 돌린 얼굴과 과장되게 강조된 등을 통해 계산된 연출임을 암시한다. ‘기형’ 논란을 넘어선 예술가의 도전이 작품이 특히 논란이 된 것은 고전주의 대가였던 앵그르가 인체를 해부학적으로 그릇되게 그렸다는 점이다. 상식 밖으로 길게 늘어난 척추와 비현실적인 몸의 회전은 실제보다 척추뼈를 두 개쯤 더 붙여 놓은 듯하다. 그래서 비평가들은 “기형적인 여인”이라며 혹평을 쏟아냈다. 욕망으로 포장된 아름다움, 그리고 불편한 시선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랑드 오달리스크’는 르네상스 전통을 비틀어 이상적 아름다움의 기준을 조소하듯 제시한다. 누드화를 단순한 나체의 재현이 아닌 ‘시선의 정치학’으로 끌어올린 문제작으로 평가받는다. 19세기 프랑스 남성 화가들이 상상했던 ‘이국의 에로틱한 판타지’의 전형인 오달리스크와 터번, 물담배, 이국적 물건들이 놓인 향기로운 실내, 푸른 천은 튀르키예나 페르시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는 실제 중동의 모습이라기보다 서구인의 욕망이 투영된 일종의 환상이다. 이 그림은 그렇게 욕망을 포장한 ‘이국주의’가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합리화되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는 이 그림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그랑드 오달리스크’는 단순한 누드 여인의 초상화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눈으로 본 미의 기준과 세상, 그리고 서구중심적 시선을 상징하는 이미지다. 여인은 등을 돌렸지만, 그 시선만큼은 당당하게 세계를 향한다. 앵그르의 오달리스크는 은밀하면서도 강렬하게 우리 시대를 꿰뚫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 등 돌린 여인의 시선이 꿰뚫는 불편한 진실 ‘그랑드 오달리스크’ [으른들의 미술사]

    등 돌린 여인의 시선이 꿰뚫는 불편한 진실 ‘그랑드 오달리스크’ [으른들의 미술사]

    1814년 프랑스 거장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가 파리 살롱에 선보인 ‘그랑드 오달리스크(La Grande Odalisque)’는 당시 미술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조르조네(본명 조르지오 바바렐리)의 ‘비너스’나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로크비 비너스’(비너스의 단장)처럼 비너스 자세를 차용한 이 작품은 단순한 누드화를 넘어 그림 속 여인의 몸과 시선이 던지는 복잡한 질문들로 가득하다. 오리엔탈리즘 욕망이 빚어낸 ‘오달리스크’의 오해‘오달리스크’(odalisque)라는 단어는 본래 튀르키예어 ‘오다’(oda·방)’에서 유래해 오스만제국 하렘에 기거하는 여인을 뜻했다. 그러나 하렘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던 서구에서는 이국적 복장과 소품을 착용하고 누워 있는 모든 동양 여성을 ‘오달리스크’로 부르기 시작했다. 18세기에서 19세기 유럽 회화에서 ‘오달리스크’는 동양을 성적, 미적 판타지로 소비하는 오리엔탈리즘적 욕망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화면 속 여인은 이국적 터번을 쓰고 비단 커튼과 보료 위에 나른하게 기대어 있다. 하지만 단순히 편안해 보이는 이 자세는 보는 이를 향해 살짝 돌린 얼굴과 과장되게 강조된 등을 통해 계산된 연출임을 암시한다. ‘기형’ 논란을 넘어선 예술가의 도전이 작품이 특히 논란이 된 것은 고전주의 대가였던 앵그르가 인체를 해부학적으로 그릇되게 그렸다는 점이다. 상식 밖으로 길게 늘어난 척추와 비현실적인 몸의 회전은 실제보다 척추뼈를 두 개쯤 더 붙여 놓은 듯하다. 그래서 비평가들은 “기형적인 여인”이라며 혹평을 쏟아냈다. 욕망으로 포장된 아름다움, 그리고 불편한 시선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랑드 오달리스크’는 르네상스 전통을 비틀어 이상적 아름다움의 기준을 조소하듯 제시한다. 누드화를 단순한 나체의 재현이 아닌 ‘시선의 정치학’으로 끌어올린 문제작으로 평가받는다. 19세기 프랑스 남성 화가들이 상상했던 ‘이국의 에로틱한 판타지’의 전형인 오달리스크와 터번, 물담배, 이국적 물건들이 놓인 향기로운 실내, 푸른 천은 튀르키예나 페르시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는 실제 중동의 모습이라기보다 서구인의 욕망이 투영된 일종의 환상이다. 이 그림은 그렇게 욕망을 포장한 ‘이국주의’가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합리화되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는 이 그림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그랑드 오달리스크’는 단순한 누드 여인의 초상화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눈으로 본 미의 기준과 세상, 그리고 서구중심적 시선을 상징하는 이미지다. 여인은 등을 돌렸지만, 그 시선만큼은 당당하게 세계를 향한다. 앵그르의 오달리스크는 은밀하면서도 강렬하게 우리 시대를 꿰뚫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 파괴의 서사, 들라크루아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낭만주의 미학의 절정

    파괴의 서사, 들라크루아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낭만주의 미학의 절정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의 걸작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1827)은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루브르 박물관과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각각 한 점씩 소장한 이 작품 가운데 루브르 소장작은 1827년 살롱전에 출품된 첫 대형 유화다. 길이 5m에 달하는 이 그림은 당시 파리 관객들을 강렬한 색채와 잔혹한 묘사로 충격에 빠뜨렸다. 비판과 논란이 거세지자 들라크루아는 1844년, 원작의 5분의 1 크기로 두 번째 버전을 제작했다. 이는 구도와 인물 배치에서 루브르 소장작과 미묘한 차이를 보이며 원작의 강렬한 감정을 응축한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고대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 사르다나팔루스의 비극적인 최후를 다룬 이 그림은 당대 파리 미술계를 뒤흔든 문제작이었다. 화폭 가득 피로 물든 비극과 욕망, 그리고 파괴의 미학이 뒤엉켜 파괴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폭군의 몰락과 서구의 시선사방의 적군에게 포위되자 사르다나팔루스는 항복 대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러나 그는 죽음 이후 남겨질 가족과 하인들의 비참한 포로 생활을 염려해 자기 부하들에게 애첩과 하인들, 심지어 말까지 모두 학살하라고 명한다. 이러한 죽음과 살해 방식은 서구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를 미개하고 잔혹하며 난폭한 ‘동양인들의 사고방식’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서구인의 시각에서 이러한 자살과 가족 살해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이는 동양을 바라보는 서구인들의 왜곡된 시선, 즉 오리엔탈리즘이 작동한 결과였다. 무표정한 광기, 비극의 찬란함들라크루아는 이 비극적 순간에서 유혈과 죽음마저 찬란한 색채와 격정으로 묘사했다. 화면은 붉은색과 금빛으로 지배적이며 누드의 여인들은 절규하며 목숨을 잃고, 하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칼을 들어 왕의 애첩을 찌르는 잔혹한 장면이 펼쳐진다. 막 데려온 여인의 몸은 활처럼 휘어져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심지어 동물들마저 본능적으로 죽음의 순간을 감지하고 뒷걸음질 친다. 이 혼란스러운 순간에도 사르다나팔루스 자신은 침대에 무표정하게 기댄 채 모든 광경을 내려다본다. 그의 어둡고 나른한 시선은 절망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감각적인 향락을 놓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들라크루아는 그의 사치와 향락을 강조하기 위해 발가락 마디마다 반지를 끼고 있는 모습으로 재현했다. 낭만주의의 등장과 들라크루아의 선구자적 역할들라크루아는 1820년대 프랑스 낭만주의 선구자로 미술계에 등장했다. 당시 고전주의가 지배적이던 미술계에서 그는 색채와 감정의 격렬함을 강조하며 새로운 회화 세계를 열었다. 이 시기 프랑스 정치는 혁명과 왕정복고 사이에서 자유와 억압, 희망과 환멸이 교차하는 혼란의 시대였다. 어떠한 가치도 명확한 의미를 갖기 어려웠던 사회에서 들라크루아는 전통적 미의 기준을 거부하고 고통과 파괴 속에서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아카데미의 규범적인 역사화 대신 낭만주의적 주관성과 감성으로 고대의 비극을 재구성했다. 고전적 조화를 중시하던 이들은 들라크루아의 과도한 감정의 파노라마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당시 평단은 ‘잔인하고 비도덕적인 그림’, ‘광기 어린 색채와 난폭한 구도’라는 혹평을 쏟아냈다. 그러나 낭만주의가 점차 힘을 얻으면서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은 고통과 비극을 화려한 색과 역동적인 구도로 표현한 들라크루아 회화의 정점으로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광기의 미학, 시대를 넘어선 승리죽음과 쾌락, 파괴와 욕망이라는 극단적 주제들을 이토록 아름답게 그려낸 그림은 없었다. 이 그림 앞에서 관람객은 죽음마저도 ‘연출된 향락’임을 깨닫게 된다. 들라크루아는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을 통해 죽음마저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낭만주의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파국 속에서도 화려함을 잃지 않는 이 회화는 시대를 뛰어넘어 승리한 예술로 남았다. 사르다나팔루스는 모든 것을 불태우며 사라졌지만, 들라크루아는 이 강렬한 회화로 낭만주의 미술사에 영원히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 파괴의 서사, 들라크루아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낭만주의 미학의 절정 [으른들의 미술사]

    파괴의 서사, 들라크루아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낭만주의 미학의 절정 [으른들의 미술사]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의 걸작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1827)은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루브르 박물관과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각각 한 점씩 소장한 이 작품 가운데 루브르 소장작은 1827년 살롱전에 출품된 첫 대형 유화다. 길이 5m에 달하는 이 그림은 당시 파리 관객들을 강렬한 색채와 잔혹한 묘사로 충격에 빠뜨렸다. 비판과 논란이 거세지자 들라크루아는 1844년, 원작의 5분의 1 크기로 두 번째 버전을 제작했다. 이는 구도와 인물 배치에서 루브르 소장작과 미묘한 차이를 보이며 원작의 강렬한 감정을 응축한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고대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 사르다나팔루스의 비극적인 최후를 다룬 이 그림은 당대 파리 미술계를 뒤흔든 문제작이었다. 화폭 가득 피로 물든 비극과 욕망, 그리고 파괴의 미학이 뒤엉켜 파괴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폭군의 몰락과 서구의 시선사방의 적군에게 포위되자 사르다나팔루스는 항복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죽음 이후 남겨질 이들의 비참한 생활을 염려해 자기 부하들에게 애첩과 하인들, 심지어 말까지 모두 학살하라고 명한다. 이러한 죽음과 살해 방식은 서구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를 미개하고 잔혹하며 난폭한 ‘동양인들의 사고방식’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서구인의 시각에서 이러한 자살과 가족 살해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이는 동양을 바라보는 서구인들의 왜곡된 시선, 즉 오리엔탈리즘이 작동한 결과였다. 무표정한 광기, 비극의 찬란함들라크루아는 이 비극적 순간에서 유혈과 죽음마저 찬란한 색채와 격정으로 묘사했다. 화면은 붉은색과 금빛으로 지배적이며 누드의 여인들은 절규하며 목숨을 잃고, 하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칼을 들어 왕의 애첩을 찌르는 잔혹한 장면이 펼쳐진다. 막 데려온 여인의 몸은 활처럼 휘어져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심지어 동물들마저 본능적으로 죽음의 순간을 감지하고 뒷걸음질 친다. 이 혼란스러운 순간에도 사르다나팔루스 자신은 침대에 무표정하게 기댄 채 모든 광경을 내려다본다. 그의 어둡고 나른한 시선은 절망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감각적인 향락을 놓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들라크루아는 그의 사치와 향락을 강조하기 위해 발가락 마디마다 반지를 끼고 있는 모습으로 재현했다. 낭만주의의 등장과 들라크루아의 선구자적 역할들라크루아는 1820년대 프랑스 낭만주의 선구자로 미술계에 등장했다. 당시 고전주의가 지배적이던 미술계에서 그는 색채와 감정의 격렬함을 강조하며 새로운 회화 세계를 열었다. 이 시기 프랑스 정치는 혁명과 왕정복고 사이에서 자유와 억압, 희망과 환멸이 교차하는 혼란의 시대였다. 어떠한 가치도 명확한 의미를 갖기 어려웠던 사회에서 들라크루아는 전통적 미의 기준을 거부하고 고통과 파괴 속에서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아카데미의 규범적인 역사화 대신 낭만주의적 주관성과 감성으로 고대의 비극을 재구성했다. 고전적 조화를 중시하던 이들은 들라크루아의 과도한 감정의 파노라마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당시 평단은 ‘잔인하고 비도덕적인 그림’, ‘광기 어린 색채와 난폭한 구도’라는 혹평을 쏟아냈다. 그러나 낭만주의가 점차 힘을 얻으면서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은 고통과 비극을 화려한 색과 역동적인 구도로 표현한 들라크루아 회화의 정점으로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광기의 미학, 시대를 넘어선 승리죽음과 쾌락, 파괴와 욕망이라는 극단적 주제들을 이토록 아름답게 그려낸 그림은 없었다. 이 그림 앞에서 관람객은 죽음마저도 ‘연출된 향락’임을 깨닫게 된다. 들라크루아는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을 통해 죽음마저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낭만주의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파국 속에서도 화려함을 잃지 않는 이 회화는 시대를 뛰어넘어 승리한 예술로 남았다. 사르다나팔루스는 모든 것을 불태우며 사라졌지만, 들라크루아는 이 강렬한 회화로 낭만주의 미술사에 영원히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 역사는 사실이 아닌 사실의 취사선택

    역사는 사실이 아닌 사실의 취사선택

    20세기 대표 지성으로 꼽히는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는 대표작 ‘오리엔탈리즘’에서 “동양에 대한 서구의 지식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서양의 학문과 서양인의 인식, 서양의 지배영역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인으로 평생을 경계인으로 살았던 사이드는 주변인으로서 동서양의 왜곡된 관계를 분석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보는 듯한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저자인 니샤 맥 스위니 오스트리아 빈 대학 교수는 서양에서 살고 있지만 여성이자 혼혈인으로서 백인 남성으로 대표되는 주류에서는 벗어나 있다. 사이드처럼 그는 경계인의 시각으로 문명 간 문화 교류, 이주와 정체성, 기억과 권력의 관계를 탐구해 왔다. 그런 시각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학창 시절 ‘세계사’라는 이름으로 배운 서양사는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시작해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산업혁명과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서양=진보, 합리성, 보편’으로 인식한다. 그렇지만 저자는 동양에 대한 인식이 만들어진 것처럼 서양에 대한 서사와 개념도 다양한 전통과 문화를 배제하고 필요한 것만 취사선택해 만들어졌다고 지적한다. 이를 보여 주기 위해 서양의 개념이 형성된 과정을 추적한다. 이 책이 재미있는 부분은 사건의 흐름이 아닌, 서양 문명의 경계선에 서 있었던 14명의 인물을 통해 ‘서양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지금처럼 다극화되고 있는 세계에서는 서양 문명에 대해 낡고 단일한 서사를 버릴 필요가 있다”며 “새롭고 다양하며 풍부한 거대 서사는 포용성을 불러오고, 변화를 감내할 수 있는 역동성을 지니게 해 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역사뿐만 아니라 특정 사안에 대한 단일 서사에 매달리면 잘못된 결론을 도출하는 등의 문제를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거대한 망상에 빠져 국민을 상대로 계엄을 내렸던 전직 대통령을 통해서 말이다.
  • 버려질 뻔했던 그림이 무려 240억원…‘인간 동물원’의 참혹한 역사

    버려질 뻔했던 그림이 무려 240억원…‘인간 동물원’의 참혹한 역사

    흙먼지에 뒤덮인 채 버려질뻔 했던 그림이 오스트리아의 ‘상징주의’와 ‘아르누보’ 사조의 거장인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작품으로 확인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한 갤러리가 해당 작품을 대중에 공개하고 판매에 나섰는데,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서구 국가들이 아프리카 식민지 국가들을 상대로 자행한 ‘인간 동물원’의 참혹한 역사가 그림에 담겼다. 20일(현지시간) 미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오스트리아의 유명 갤러리인 ‘위너 로이터 앤 콜바허’는 클림트의 1897년 작품인 ‘윌리엄 니 노티 다우오나 왕자’를 최근 네덜란드에서 열린 한 미술 박람회에서 공개했다. 갤러리 측은 해당 작품의 가치가 1500만 유로(237억 7000만원)에 달한다면서, 여러 박물관과 개인 수집가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갤러리는 이 작품에 대해 “클림트의 초기 작품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면서 “그의 선구적인 초상화와 직결된다”고 설명했다. 갤러리에 따르면 이 작품은 지난 2023년 발견됐다. 작품의 소유주가 흙먼지로 뒤덮인 채 버려질 뻔했던 그림을 가지고 갤러리를 찾았으며, 갤러리 측은 클림트의 작품일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그림이 지저분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을 전해 들은 한 미술사 학자가 “20년 동안 이 그림을 찾고 있었다”면서 해당 그림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갤러리 측은 설명했다. “1500만 유로…‘인간 동물원’ 역사 담겨”작품은 한 아프리카 청년의 초상화다. WP는 이 초상화의 주인공이 당시 가나의 ‘오수 부족’의 왕자였으며, 그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인간 동물원’에 전시됐다고 전했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독일과 벨기에, 프랑스 등 서구 열강은 아프리카 국가들을 식민지로 삼은 뒤 식민지 사람들을 동물원의 동물처럼 전시한 ‘인간 동물원’을 열었다. 서구의 이같은 행태는 인종 차별과 오리엔탈리즘, 식민지주의에 근거한 만행이자 ‘흑역사’로 비판받고 있다. WP에 따르면 그림 속 왕자는 인간 동물원에 전시되기 위해 부족원들과 함께 53일에 걸쳐 가나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했으며, 1897년 4월부터 10월까지 매일 1만 명의 관람객을 마주했다. 런던 동양 및 아프리카 연구소의 마리 로데 교수는 “‘인간 동물원’에 전시된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며, 아마 착취당했을 것”이라면서 “이들은 백인이 전세계 인종 중 가장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에 이용당했다”고 지적했다. 이 작품은 1923년 5월 빈에서 경매를 통해 개인 수집가에게 판매됐으나, 1938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자 소유주는 그림을 버린 채 해외로 도피했다. 이후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개인이 소장해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 요절한 천재 화가 앙리 르뇨 [으른들의 미술사]

    요절한 천재 화가 앙리 르뇨 [으른들의 미술사]

    한 여성이 흘러내린 옷과 머리카락, 치렁거리는 치마, 벗겨진 슬리퍼와 함께 유혹하는 듯한 눈빛으로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다. 이 여성은 앙리 르뇨(Alexandre Georges Henri Regnault·1843~1871)가 그린 ‘살로메’다. 살로메는 신약 성경 속 여성이며 선정적이고 관능적이고 에로틱한 감성을 대표하는 여성이다. 살로메의 도발은 한편으로는 유혹하고 한편으로는 파괴하는 팜므 파탈의 전형적인 특성을 드러낸다. 친구의 약혼녀를 그린 살로메르뇨가 그린 ‘살로메’ 실제 모델은 이탈리아 여성 마리아 라티니이며 르뇨의 친구 약혼녀였다. 르뇨는 1868~1869년 무렵 마리아를 로마에서 만나 그녀의 초상을 그렸다. 로마 여성의 머리칼은 동양 여성의 짙은 검은색으로 변형시켜 동물적인 건강미를 강조했다. 그 결과 로마 여성은 의붓아버지 헤롯왕을 위해 방금 막 관능적인 춤을 마친 살로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살로메 발치에 있는 표범 가죽과 머리, 속이 훤히 비치는 치마, 차가운 금속성 접시와 나이프는 폭력적이고 동물적인 관능미를 나타낸다. 이러한 특성들은 야만, 폭력, 공포 등 오리엔탈리즘 미술에서 흔한 것들이었다. 르뇨는 마리아를 검은 피부의 아프리카 여성으로 변형시켰다. 이렇게 정숙한 유럽 여성은 도발적인 매력을 지닌 요부 살로메가 되었다. 일찍 꽃피운 재능르뇨는 1866년 로마상을 수상했다. 로마상 수상자들은 로마에 머물며 이탈리아 미술을 익히는 특전이 주어졌다. 이때 르뇨는 한발 더 나아가 스페인의 그라나다의 알함브라와 모로코 탕헤르를 여행하며 이슬람 문화의 이국적인 풍광과 풍습을 그려 오리엔탈풍을 익혔다. 이때의 경험과 습작은 ‘살로메’에 그대로 녹아 있다. 당시 유럽인들은 오리엔트에 대해 문명이 닿지 않은 그들의 순수하고 지상 낙원이라는 환상과 에로틱한 판타지를 가졌다. 르뇨는 저명한 프랑스 화학자 앙리 빅토르 르뇨의 아들이다. 르뇨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여 17살에 파리 에콜 데 보자르에 들어가 드로잉을 익혔다. 르뇨는 로마상 경연 대회에 세 번의 도전 끝에 마침내 로마상을 수상했다. 그의 나이 22살에 이룬 쾌거였다. 다가오는 불운그러나 승승장구하던 르뇨는 갑자기 보불전쟁의 징집대상이 되었다. 로마상 수상자는 군복무를 면제받았으나, 르뇨는 자발적으로 국가 방위군에 합류했다. 르뇨는 후방에 배치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은 르뇨가 생각한 대로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전쟁은 격화되었으며 프랑스군은 눈에 띄게 프러시아 군에 밀렸다. 전쟁이 기울자 르뇨는 점점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르뇨는 자신이 죽을 때 자신의 이름, 직업과 사랑하는 가족에게 보내달라는 의미로 “앙리 르뇨, 화가, 프랑스 화학 협회 소속 빅토르 르뇨의 아들”이라고 쓰인 카드를 주머니에 지니고 있었다. 삶에 대해 이토록 절박했던 한 젊은이의 바람과 달리 전쟁 종식을 10여 일 앞두고 1871년 1월 19일 르뇨는 부쟁발(Buzenval)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보불전쟁 종식 하루 전인 1871년 1월 27일 르뇨의 장례식에는 많은 정치인, 병사, 시인, 화가들이 모여 그를 추모했다. 남겨진 약혼녀의 눈물르뇨의 약혼자 주네뷔에브 브레통(Mademoiselle Geneviève Bréton·1849~1918)은 연인의 관 위에 하얀 라일락 부케를 놓으며, 약혼자의 죽음을 슬퍼했다. 이 꽃은 그들의 결혼식 꽃이었다. 동료들은 화가로 그리고 병사로 프랑스 국가 발전에 기여했던 르뇨의 짧은 인생과 고귀한 희생을 기렸다. 전쟁은 이렇게 능력 있는 젊은이의 꿈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 오리엔탈리즘 넘어선 스타워즈의 ‘진일보’

    오리엔탈리즘 넘어선 스타워즈의 ‘진일보’

    동양인 첫 제다이 역 맡아 화제기존의 백인 중심 한계 벗어나유색인종 극 이끌어 팬덤 반발디즈니 PC주의 행보에 비난도“무술·철학 등 불교사상과 유사동양인 등장 자연스럽지 않나” 촬영을 앞두고 4개월간 ‘영어 맹훈련’을 했다고 하는데 효과가 꽤 있었던 듯하다.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보다 앞선 시대의 이야기를 다룬 디즈니+의 새 드라마 ‘애콜라이트’에서 제다이 마스터 ‘솔’로 분한 이정재(52)의 대사 처리는 꽤 자연스럽다.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다소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연기도, 액션도 이내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지난 5일 공개된 이 드라마는 영화감독 조지 루커스의 ‘스타워즈’ 시리즈가 그동안 범해 왔던 잘못을 반성하는 작품으로 보인다. 이정재뿐 아니라 그와 함께 극을 이끌어 가는 핵심 인물 ‘오샤·메이’(1인 2역) 역할로 흑인 여성인 어맨들라 스텐버그를 캐스팅했다. 그동안 평론가들에게 “백인 남성 중심의 미국적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영화”라며 비판받았던 시리즈의 외연을 넓히려는 시도다. 영화에서 제다이는 우주의 평화를 지키는 기사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인 ‘포스’와 광선검을 사용한다. 영화의 핵심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와 루크의 아버지이자 훗날 ‘다스 베이더’로 타락하는 ‘아나킨 스카이워커’, 그의 스승 ‘오비완 케노비’, 일찍이 아나킨의 재능을 알아봤던 ‘콰이곤 진’ 등 대부분의 제다이는 백인 남성이 연기했다. 흑인 배우 새뮤얼 잭슨이 연기한 ‘메이슨 윈두’도 있지만 조연에 그쳤다. ‘동양인 제다이’ 이정재를 두고 해외 팬들의 불만이 거셌던 이유다. 앞서 ‘인어공주’의 주인공 ‘아리엘’ 역에 흑인인 핼리 베일리를 발탁하는 등 그동안 디즈니가 보여 왔던 ‘정치적 올바름(PC)주의’ 행보에 대한 비난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드라마의 레슬리 헤들랜드 감독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심한 편견과 인종주의 또는 혐오 발언과 관련된 그 누구든 스타워즈의 팬으로 여기지 않는다”며 강력하게 비판했다.이정재도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에 대한 소신을 전했다. 그는 “배경이 우주인 만큼 백인뿐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가 나오는 게 좋겠다는 것이 감독의 생각”이라며 “제다이들의 무술이나 머리 스타일, 심지어 철학에서도 동양적인 면모가 보이는데 그보다 앞선 시대의 제다이 중에 당연히 동양인이 있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이정재의 말처럼 제다이의 행색은 다분히 동양적이다. 특히 사상이 그렇다. 2005년 영화 ‘시스의 복수’에서 아나킨에게 충고하는 제다이 마스터 ‘요다’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어둠으로 향하는 길”이라며 “애착은 질투를 낳는 법, 잃고 싶지 않은 것을 놔주는 연습을 하게”라고 말한다. 집착이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다. 루커스 감독은 영화의 아이디어를 저명한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가져왔다고 밝힌 바 있다. 불교·기독교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신화를 비교해서 분석한 비교신화학 저술이다. 말과 행동은 동양인인데 배우의 얼굴은 서양인이다. 그동안 영화가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이라고 비판받은 이유다. ‘애콜라이트’에서 이정재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제다이 솔을 섬세하게 연기해 내고 있다. 영어 대사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것은 물론 극 중에서 누명을 쓴 제자를 향한 안타까움과 연민이 담긴 표정도 깊이가 있다. 물론 아직 1·2화만 공개된 것이라 추후 드라마가 완결될 때까지 이런 분위기를 유지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 드라마는 총 8부작으로 매주 수요일 1화씩 공개된다.
  • 남자를 사랑한 남자…프랑스·중국을 뒤흔든 세기의 사랑

    남자를 사랑한 남자…프랑스·중국을 뒤흔든 세기의 사랑

    지난해 한국에서는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와 그의 연인이었던 전청조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논란이 됐던 다른 대형 이슈와 다르게 이 사건은 여자가 남자라고 속여 각종 사기행각을 벌였다는 점에서 더 충격을 줬다. 이들에 앞서 중국과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1988년 세상에 알려진 베이징 주재 프랑스 외교관 베르나르 부르시코와 중국인 경극 배우 쉬 페이푸의 이야기다. 둘 다 남자인데 쉬 페이푸가 여장 행세를 하고 애까지 낳았다고 부르시코를 속이며 양국을 넘어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다. 쉬 페이푸에 속은 부르시코는 프랑스 국가 기밀을 유출했고 그 죄로 프랑스 법정에까지 섰다. 연극 ‘엠.버터플라이’는 바로 이들의 스캔들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부르시코는 르네 갈리마, 쉬 페이푸는 송 릴링으로 등장하고 이들의 이야기에 오리엔탈리즘으로 비판받는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마담 버터플라이)의 이야기를 더해 만들었다. 오리엔탈리즘과 섹슈얼리티라는 가볍지 않은 두 주제를 심도 있고 탄탄하게 엮어냄으로써 1988년 토니상 최우수 연극 작품상을 받은 뒤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2012년 처음 선보였고 이번에 7년 만에 다섯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이번 공연은 2017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상연된 개작 버전의 첫 국내 상연이다.1964년 중국 베이징에서 프랑스 영사관 직원으로 일하고 있던 르네는 중국 문화에 매료되고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를 공연한 중국 배우 송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난 당신의 버터플라이에요”라고 말하는 송은 르네가 꿈꾸는 순종적인 동양 여성의 표본이다. 그에게 빠진 르네는 아내가 있는 처지임에도 위험한 사랑을 이어간다. 송은 여자 행세를 하고 자신의 몸을 욕망하는 르네를 교묘하게 속인다. 동양인에 대한 자신의 환상에 갇힌 르네는 결국 법정에 선 이후에야 송에게 속았음을 알게 된다. 실제로도 부르시코는 쉬 페이푸의 벗은 몸을 보고 나서야 남자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남자가 여자라고 속이고 사랑을 한다는 설정이 최근 비슷한 사건을 본 한국 사람의 시선에서 보면 막장 같지만 이 작품의 무게는 그리 간단치 않다. 문명간의 충돌, 냉전 체제에 종속된 인간들의 삶,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과 동성애 문제 등 쉽지 않은 주제를 정교하고 폭넓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이야기를 충격적인 전개와 함께 흡인력 강한 이야기로 만들어낸 게 이 작품의 매력이다.특히나 요즘 시대에도 통하는 소재, 요즘에 오히려 더 힘을 얻는 소재를 일찌감치 다뤄냈다는 점에서 더 감탄하게 된다. 작품을 쓴 헨리 황은 “연극이 초연된 1988년 이후 동서양의 관계는 변화했고 젠더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는 발전했다”면서 “그 덕에 ‘엠.버터플라이’가 오늘날 우리 삶과 한층 가까워졌고 나아가 어느 정도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토대로 시대상과 촘촘히 엮어내면서 별다른 기교나 장치 없이도 이야기의 힘만으로 연극의 정수를 제대로 보여주는 수작이다. 깊이 있게 잘 만든 연극을 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꼭 봐야 할 작품으로 꼽힌다. 공연은 오는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르네는 배수빈·이동하·이재균, 송은 김바다·정재환·최정우가 맡았다.
  • 한국적 요소가 한류의 힘… 美 문화에 스며들다[OTT 언박싱]

    한국적 요소가 한류의 힘… 美 문화에 스며들다[OTT 언박싱]

    2022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미국 드라마 축제 에미상의 선택은 대한민국이었다. 한국계 배우들과 제작진이 뭉친 ‘성난 사람들’은 에미상 8개 부문을 수상하며 ‘오징어 게임’에 이어 다시 한번 세계 문화의 중심지에서 K콘텐츠의 힘을 보여 주었다. ‘성난 사람들’의 성공에는 ‘오징어 게임’과는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미국 주류 콘텐츠에 한류가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미국 주류 문화에서 아시아 문화는 두 가지로 소비가 됐다. 동양의 신비라는 판타지로 가득한 오리엔탈리즘, 이소룡의 무술과 일본의 닌자&사무라이로 대표되는 액션이다. 오리엔탈리즘과 무술이 결합한 영화 ‘와호장룡’의 성공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감이 미비했던 한국 문화계는 방탄소년단(BTS)의 성공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한 글로벌 영향력을 통해 그 힘을 키워 나갔다. 그리고 그간 갈고 닦은 문화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K콘텐츠에 가장 진심인 넷플릭스가 선보인 두 편의 시리즈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넷플릭스 대표 로맨틱 코미디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스핀오프 시리즈 ‘엑스오, 키티’를 소개하고자 한다. 원작 시리즈의 주인공 라라진의 동생 키티가 한국에서 만난 대라는 남학생과 사랑에 빠지며 펼쳐지는 일련의 소동극을 다룬다. 장거리 연애를 하던 키티가 한국의 국제학교에 입학하며 서울을 배경으로 청춘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간 하이틴 로맨스는 백인 여주인공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여기에 동양계 배우가 등장하며 신선함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 MZ세대 사이에 유행처럼 번진 한류에서 찾을 수 있다. 서울 도심의 풍경, 한복, 다양한 먹거리 등 키티의 한국 생활에는 대리만족을 느낄 만한 요소가 즐비하다. 오리엔탈리즘이 종식된 시대에 신비함 대신 친근함으로 다가간 K컬처의 대중성은 가장 젊은 장르에서도 힘을 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여기에 출생의 비밀과 삼각관계라는 한국 막장 드라마의 특징은 수위가 더 강한 미드의 범주에서는 가벼운 양념처럼 느껴져 별미처럼 다가온다.이런 달라진 K콘텐츠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넷플릭스의 또 다른 드라마가 ‘파트너 트랙’이다. 백인, 남성, 권력을 상징하는 뉴욕 엘리트 로펌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전하는 여성 변호사는 한국계다. 파트너 변호사가 되기 위해 분투하는 잉그리드 윤은 든든한 동료 타일러, 레이첼과 함께 원칙을 저버리지 않으면서 사랑과 우정, 가족을 모두 챙기는 위대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간 한국 또는 한국계 배우들에게 주로 주어진 배역은 스테레오타입의 계산적인 속물이나 내성적인 너드, 상업영화에서는 중국이나 일본을 떠올리게 만드는 액션 캐릭터가 주를 이루었다. 정지훈이나 이병헌 같은 할리우드에서 꾸준히 활동했던 한국 배우들의 필모그래피가 그 예다. 각각 ‘닌자 어쌔신’과 ‘지.아이.조 2’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캐릭터인 닌자를 연기했던 경험이 있다. ‘파트너 트랙’은 이런 인식의 개선을 보여 준다. 미국의 기득권층 사이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려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원작의 대만계 대신 한국계로 각색해 제작했다. 글로벌 시청자의 흥미를 더 자극할 수 있는 한국 문화의 반영과 최근 국내 드라마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주체적인 여성 서사를 더 강하게 어필하는 장점을 볼 수 있다. 문화의 힘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것이다. 이제 한류는 한국에서 제작되는 작품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계 배우와 제작진은 물론 한국적인 요소가 담긴 모든 작품에 한류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성난 사람들’과 함께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이 두 편의 시리즈를 감상하며 앞으로 또 다른 글로벌 K콘텐츠의 등장을 기대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김준모 키노라이츠매거진 편집장
  •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어머니 어머니 나의 어머니, 바라트 마타/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어머니 어머니 나의 어머니, 바라트 마타/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올해는 한국과 인도가 수교를 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인도는 오랜 기간 영국 식민지였던 까닭에 영국인들이 유럽식 근대 학문과 문화를 이식했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 미술도 마찬가지였다. 식민지가 되자 과거 무굴제국의 황제나 지방 술탄의 후원을 받던 화가들이 유럽인들을 위한 그림을 그리게 됐다. 그림 재료도 달라졌을뿐더러 서양인 취향에 맞춰 인도의 이국적인 풍경을 그리거나 오리엔탈리즘이 물씬 풍기는 그림을 그렸다. 인도 세밀화를 그리던 사람들이 서구식 투시도법을 쓰고, 입체감이 나도록 음영을 나타내려 애썼다. 하지만 곧 인도 고유의 미술을 창작하기 위해 고민하는 작가들이 늘어났다. 그중 하나가 아바닌드라나트 타고르였다. 유명한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조카다. 벵골 지방 거상 집안에서 태어난 금수저로, 지적인 소양도 풍부한 환경에서 자랐다. 게다가 타고르의 활동기는 스와데시(국산품 애용운동)와 같은 반영운동이 막 퍼지던 때였다. 역설적으로 어떤 미술 활동을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기 좋은 때였다.19세기 들어 영국 총독부는 뭄바이, 첸나이, 콜카타 등지에 미술학교를 세워 인도 전통미술을 부활시키려 했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미술학교에 입학한 인도인들은 귀족 자제들이었고, 이들의 서구 지향은 명백했다. 신고전주의에 입각한 유럽식 유화를 그리는 데 몰두한 것이다. 이에 대항해 인도 회화의 독자성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졌고, 벵골 지식인들이 이에 동조하며 적극 후원했다. 타고르도 처음에는 미술학교식 유화를 거부했다. 나아가 무굴제국의 세밀화에서 길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1900년 인도를 방문한 일본 미술사학자 오카쿠라 덴신을 만나면서 그의 작품은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아시아는 하나’를 기치로 내건 오카쿠라의 아시아주의에 깊은 감화를 받아 타고르 자신도 서구 물질문명에 대응할 아시아의 정신을 그림으로 표현하려 하게 된다. 인도의 정신, 아시아의 우수성을 찾아 아잔타 벽화를 모사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일본 회화를 두루 섭렵하기도 했다. ‘어머니 인도’는 여신의 모습으로 그린 인도의 표상이다. 자기 딸을 모델로 삼았다는 그림 속 여신은 4개의 팔로 인도인들에게 중요한 면직과 염주, 밀잎 등을 들고 있다. 힌두 신화의 신들은 팔이 4개, 8개인 경우가 많으니 인도 전통을 따른 셈이다. 간결하고 소박한 주황색 사리를 입었지만 발 아래 연꽃과 후광은 보통 존재가 아님을 암시한다. 어머니란 말로 압축된 고결한 인도의 정신이다.
  • 중국 코로나와 갈라파고스 함정

    지난 한 달 사이 중국 정부는 코로나 방역 정책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극단적인 변화를 추진했다. 12월 초 3년간 유지해 온 제로코로나 조치를 위드코로나로 전환하더니 이달 8일 중국 입국자에 대한 격리 조치를 철회하며 제로코로나 정책 폐지의 8부 능선을 넘어섰다. 중국의 코로나 정책 전환은 단기적으로 침체에 빠진 국내 경기를 되살리고 국가 간 교역을 활성화해 세계 경제 회복에 도움을 줄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20차 당대회를 통해 세 번째 연임에 성공한 시진핑 국가주석 체제의 안정에 공헌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발생 직후부터 현재까지 선보인 중국의 코로나 정책은 정치체제 안정을 위해서는 세계 인간안보에 가해지는 위협도 마다하지 않는 권위주의 정부의 위험성을 여실히 입증했다. 중국 방역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개방성, 투명성, 민주성의 부재로 감염병을 초기에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그 결과 ‘바이러스의 세계화’가 신속히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이다. 체제 안전이 최우선으로 고려되는 정부에서 전문가들은 자신의 안위 유지를 위해 왜곡과 은폐에 맞설 책무를 포기했다. 이로 인해 중국은 2002년 사스 발생 후 감염병 대응 법체계와 매뉴얼 확립, 국제 사회와의 정보 교류를 강화해 왔음에도 코로나19의 국제적 확산 방지에 실패했다. 중국 의료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건 중국 체제에 내재하는 갈라파고스 함정의 속성에서 비롯된다. 갈라파고스 함정이란 개방된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 환경에서 자기만의 진화 방식을 고집한 생명체가 결국 외부에서 유입된 생명체와의 경쟁에서 패해 도태되는 것을 지칭한다. 중국 체제에서 발견되는 갈라파고스 함정은 두 가지 속성으로 개념화할 수 있다. 첫째,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을 통해 관련 시스템이 부분적으로 개선됐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같은 위기의 반복을 방지할 수 없는 근본적 취약성이 내재하는 것이다. 이는 공산당의 권력 유지와 정치체제가 유지되는 한 극복하기 힘든 구조적 특징이다. 둘째, 강력한 국가 주도의 방역을 통해 이른 시기 코로나를 통제했음에도 권위주의 체제가 경직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무관용 정책은 QR코드 만연화, 폐쇄회로(CC)TV 확장 등 정보기술(IT)의 활용을 통해 국민 개개인의 사생활을 철저히 감시하는 국가의 빅브러더화를 촉진했다. 방역 정치에서 갈라파고스 함정의 심화는 위드코로나로의 급속 전환 과정에서 다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코로나와의 공존을 추진하며 국제보건기구와 정보를 공유하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중국은 코로나 확진자가 대규모로 발생했음에도 환자 발생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각국에서 중국인의 입국이 제약되자 서구의 중국 차별이라는 오리엔탈리즘 논쟁을 재개하고 있다. 코로나19 기원 전쟁을 둘러싸고 발생한 반외세 여론의 재점화를 통해 시진핑 체제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시도는 중국인 입국자에 대한 검역을 강화하는 한국 정부 앞에 새로운 도전을 제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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