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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계급여 깎이고 의료급여 끊길라”…기초연금 포기 노인 4년 새 3.3배

    “생계급여 깎이고 의료급여 끊길라”…기초연금 포기 노인 4년 새 3.3배

    가장 가난한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으면서도 기초연금은 받지 않는 노인이 4년 새 3.3배로 급증했다. 기초연금을 받아도 생계급여가 그만큼 깎이고 자칫 의료급여마저 끊길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다. 취약층을 더 두껍게 보호하겠다는 정부의 ‘하후상박’ 개편이 실효를 거두려면 이른바 ‘줬다 뺏는 기초연금’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5일 국민연금연구원의 ‘기초연금 미수급자 현황 및 특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65세 이상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가운데 기초연금을 받지 않은 노인은 6만 9776명으로 추산됐다. 2020년 2만 968명에서 4년 만에 3.3배가 됐다. 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 중 기초연금 미수급자 비율도 같은 기간 3.0%에서 6.5%로 두 배 이상 뛰었다. 연구진은 65세 이상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에서 사회보장정보시스템 ‘행복이음’으로 확인한 기초연금 동시수급자를 빼 미수급자 규모를 추산했다. 개인별 신청 여부를 직접 집계한 것은 아니지만 기초연금을 받지 않는 기초수급 노인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추세는 뚜렷하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초연금을 받아도 실제 소득이 거의 늘지 않는 제도 구조 때문이다. 현행 생계급여는 국가가 정한 선정기준액에서 가구의 소득인정액을 뺀 부족분만 지급한다. 이때 기초연금은 소득으로 전액 잡힌다. 기초연금을 받은 만큼 생계급여가 줄어 노인이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은 늘지 않는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생계급여와 기초연금을 함께 받은 노인 78만 3222명 가운데 99.8%인 78만 1561명이 생계급여를 감액당했다. 월평균 감액액은 33만 2610원으로 지난해 기초연금 최고액 34만 2510원의 97.1%에 달했다. 기초연금을 받아도 대부분이 생계급여에서 고스란히 빠져나간 셈이다. 생계급여 수급자인 차재설((69) 동자동사랑방 대표는 이날 국회 앞 기자회견에서 “이번 달 기초연금을 입금받고 다음 달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을 삭감하면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며 “이럴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주지 말라”고 말했다. 소득이 수급 기준선에 가까운 노인은 의료급여 자격까지 잃을 수 있다. 올해 1인 가구 의료급여 기준은 월 소득인정액 102만 5695원 이하다. 소득인정액이 70만 원인 노인이 올해 기초연금 최고액인 34만 9700원을 받기 시작하면 소득인정액은 104만 9700원으로 올라간다. 의료급여 기준을 2만 4005원 넘기 때문에 다른 조건에 변화가 없어도 수급 자격을 잃을 수 있다. 기초수급 노인에게 기초연금이 ‘안 받거나, 받아도 남지 않는 연금’이 된 것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는 “기초연금을 받아도 생계급여가 깎이고 의료급여까지 탈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아예 신청하지 않는 노인이 늘고 있다”며 “현장 사회복지사들도 적극적으로 신청을 권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해법은 이미 여러 차례 제시됐지만 실행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3년 기초연금을 기초생활보장 소득에 포함해 급여를 삭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재정 부담과 다른 수급자와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정부는 2024년 9월 연금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생계급여와 기초연금을 함께 받는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추가 지급하고 추가 지급액을 소득인정액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시행되지 않았다. 정부는 소득 하위 70%에 지급하는 현행 틀을 유지하면서 저소득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더 주는 ‘하후상박’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기초연금이 오르는 만큼 생계급여가 줄어드는 구조를 그대로 두면 가장 가난한 노인은 인상 효과를 누릴 수 없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대표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가 알려진 지 12년이 지났는데도 해결되지 않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이번 하후상박 개편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빈곤 노인의 박탈감은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이재명 정부 1년… 정책 착수 충실, 국민 체감은 아직”

    “이재명 정부 1년… 정책 착수 충실, 국민 체감은 아직”

    상법 개정, 150조원 국민성장펀드 출범, 한미 관세협상 타결, 돌봄통합지원법 전국 시행…. 이재명 정부 1년간 다양한 법·제도 개혁의 착수 속도가 빨랐지만, 국민 삶에 닿는 성과는 미진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한국정책학회가 교수 30명으로 평가단을 꾸려 8개 분야 국정과제를 평가한 결과, 전 분야에서 이행충실성은 높고 국민체감도는 가장 낮은 동일 패턴이 확인됐다. 한국정책학회(회장 이석환)는 12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하계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이재명 정부 1년 공약이행관련 국정과제평가 대토론회’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부회장 주효진 교수(가톨릭관동대)를 평가단장으로, 경제산업·외교안보·교육문화·사회복지·과학기술·정치행정사법·에너지·보건의료 8개 분야 전문가 교수 30명이 45일간 이행충실성·정책효과성·국민체감도·정책포용성·지속가능성 5개 지표(각 7점, 35점 만점)로 평가를 수행했다. 종합점수(100점 환산)는 외교안보 73.7점, 교육 73.4점, 에너지 68.6점, 문화 67.4점, 사회복지·과학기술 각 61.2점, 보건의료 58.3점, 경제산업 57.1점 순이었다. 주택 체감도 2점·북핵 19점… 분야별 명암 뚜렷경제산업(57.1점)은 8개 분야 중 최하위였다. 이행충실성은 68.3점으로 양호했으나 주택공급 과제는 체감도 7점 만점에 2점을 받았다. 분과위원장 이동규 교수(동아대)는 “정부 발표 절감액과 국민 실체감 사이의 간극을 방치한 채 대책 발표만 반복한다면, 2년 차에는 체감도가 아니라 신뢰도가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교안보(73.7점)는 최고점이었으나 과제별 편차가 컸다. 국민 참여형 통일정책(117번)이 33점/35점으로 최고, 북핵 문제 해결(122번)은 19점으로 최저였다. 분과위원장 정준호 교수(전북대)는 “국민과의 직접적인 접점, 성과의 측정 가능성, 외부 환경에 대한 의존도에 따라 평가 결과가 뚜렷하게 달라졌다”고 분석했다. 사회복지(61.2점)는 양육비 선지급제, 의료급여 부양비 26년 만의 폐지 등이 우수 평가를 받았으나 연금개혁 공전이 약점이었다. 분과위원장 조경훈 교수(한국방송통신대)는 “제도가 만들어진 속도만큼 돌봄 인력과 전달체계가 따라가지 못하면 국민이 느끼는 변화는 더딜 수밖에 없다”고 했다. 보건의료(58.3점)는 국민체감도가 5개 과제 전 지표 중 예외 없이 최저였다. 분과위원장 황석준 교수(국립공주대)는 “의료 현장의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의료계와의 신뢰 회복이 최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에너지(68.6점)는 재생에너지 대전환(71.4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국민체감도(57.1점)는 가장 낮았다. 분과위원장 은재호 교수(한국외대)는 “지금까지의 성과는 아직 ‘투입과 산출’ 단계에 머물러 있어, 2년 차부터는 사업 지정 건수가 아니라 주민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편익을 중심으로 정책을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육문화(교육 73.4점·문화 67.4점)는 마음건강지원·관광할인 등에서 성과를 보였다. 다만 분과위원장 김민희 교수(대구대)는 “달성하기 쉬운 목표를 제시하여 정책 추진 성과가 높은 것으로 보고하는 관행은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학기술(61.2점)은 AI 인프라·인재 양성 투자 확대가 긍정적이었으나, 분과위원장 김태희 교수(서울과학기술대)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 성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성과 관리와 정책 환류가 필요하다”고 했다. “2년 차 관건은 제도를 체감으로 바꾸는 것”정치행정사법 분과위원장 이승혁 교수(성균관대)는 “국민의 관점에서는 제도나 사업의 존재 자체보다 행정 서비스, 안전, 권익, 지역 생활이 실제로 얼마나 개선됐는지가 더욱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평가단장 주효진 교수는 “지나간 1년이 아닌 남은 4년의 정책 성공을 위해 객관적 분석과 지속 가능한 정책 제언을 목표로 평가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이석환 학회장(국민대)도 “국정과제에 대한 정책 평가 과정과 정보 공개가 국민에게 얼마나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 [열린세상] 기초연금도 손볼 때가 됐다

    [열린세상] 기초연금도 손볼 때가 됐다

    지난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하반기 업무보고에서 보건복지부는 기초연금 선정기준을 전체 노인의 70%로 정하는 현행 방식 대신 기준중위소득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3월 이재명 대통령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노인빈곤율 해소 방안으로 저소득층에 기초연금을 더 지급하는 하후상박식 인상을 제안한 데 따른 후속 조치로 보인다. 그동안 기초연금 개편을 위한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2023년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수립할 때와 2024년 정부가 연금개혁안을 마련할 때도 기초연금 개편을 검토했지만 포함하지 못했다. 복지 축소에 대한 부담감, 이른바 복지정책의 불가역성 때문이었다. 현재 전체 노인의 70%가 매년 소비자물가 상승률(2026년 2.1%)을 반영한 기초연금(2026년 월 34만 9700원)을 받는다. 하후상박식으로 개편하면 저소득 노인은 더 받지만 소득 상위 노인의 지급액은 늘지 않아 부담된다는 것이었다. 정책을 집행하다 보면 합리적인 방안인데도 혜택을 보는 다수는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는 반면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는 소수는 강하게 반발해 좌초되는 일이 있다. 2015년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소득 중심으로 개편하려다 발표 하루 전에 백지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가입자의 95%는 건강보험료가 내려가거나 변동이 없었지만 보험료가 오르는 5%가 80만명에 달해 정무적 부담이 됐다. 결국 같은 내용의 개편안은 2017년 3월 대통령 탄핵으로 권력 공백이 생긴 시기에야 추진됐다. 기초연금은 2014년 전체 어르신에게 지급하려다 소득 하위 70%에게 월 20만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변경됐고, 이후 대선 때마다 10만원씩 인상되고는 했다. 물론 기초연금은 노인빈곤율을 낮추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2024년 노인빈곤율은 35.9%로, 기초연금이 도입되기 전인 2013년의 46.3%보다 10.4% 포인트 개선됐다. 현재 기초연금은 기초연금법 3조에 따라 65세 이상인 노인의 70%에게 지급하기 위해 소득인정액으로 선정기준액을 정한다. 올해 선정기준액은 247만원으로, 복지사업 기준이 되는 1인가구 기준중위소득 256만 4238원의 96.3%에 해당한다. 기준중위소득은 국민을 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의 소득이다. 생계급여는 이 소득의 32% 이하, 의료급여는 40% 이하인 가구에 지급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25년 연구에 따르면 기초연금 선정기준액이 기준중위소득을 넘어서는 시점이 단독가구 기준 2032년으로 나타났다. 기초연금 선정기준을 기준중위소득으로 바꾸면 여러 이점이 있다. 우선 저소득 노인에게 연금을 더 지급해 빈곤을 완화할 수 있다. 재정 지출도 매년 4조 2500억원 절감해 2070년까지 누적 195조원을 아낄 수 있다고 한다. 기준중위소득보다 경제적 여건이 나은 노인에게까지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것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피할 수 있다. 지난 24일 코로나19에 대응했던 공직자들이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난생처음 겪은 코로나19였지만, 특별입국절차와 생활치료센터, 마스크 5부제, QR코드, 사회적 거리 두기, 재택치료 같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상황에 맞게 실행한 것이 주효했다”고 입을 모았다. 기초연금 개편도 마찬가지다. 제도 시행 12년 차인 지금 정책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출산율은 2014년 1.21명에서 지난해 0.80명으로 급락한 반면 고령화율은 12.4%(노인 639만명)에서 올해 21.2%(1084만명)로 급증했다. 이대로라면 기초연금도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전체 노인의 70%에게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기준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어렵게 사는 어르신에게 더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게 맞다. 이번에 큰 용기를 낸 복지부에 박수를 보낸다. 이기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장
  • 저소득 직역연금 수급자·배우자에 장애인연금 지급 검토

    저소득 직역연금 수급자·배우자에 장애인연금 지급 검토

    정부가 저소득 직역연금 수급자와 배우자에게 기초연금뿐 아니라 장애인연금도 지급하는 방안을 함께 검토한다. 현재는 소득과 재산이 아무리 적어도 공무원·군인·사학연금 등 직역연금 수급권자와 배우자는 두 연금을 원칙적으로 받을 수 없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22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장애인연금은 제도 전반이 기초연금과 비슷하게 설계됐다”며 “기초연금이 직역연금 관련 기준을 바꾸면 장애인연금도 같이 따라가는 것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 16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저소득 직역연금 수급자와 배우자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보고했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직역연금액이 적어 저소득층으로 분류되는 수급자와 배우자도 있다”며 “이들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여지가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공무원·군인·사학·별정우체국연금 수급권자와 배우자는 기초연금 대상에서 원칙적으로 배제된다. 받는 연금액과 소득·재산이 적어도 예외가 아니다.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연금액이 월 20만원에 못 미치는 직역연금 수급자는 3만 4018명이다. 월 100만원 미만 수급자는 5만 4104명에 달한다. 연금액이 적어 생활이 어렵더라도 당사자는 물론 배우자까지 기초연금을 받지 못한다. 장애인연금에도 같은 배제 규정이 적용된다. 장애인연금은 18세 이상 중증장애인 가운데 소득인정액이 선정 기준 이하인 사람에게 지급한다. 그러나 현재는 본인이 중증장애인이더라도 배우자가 직역연금 수급권자이면 장애인연금을 받을 수 없다. 실제 생활 형편을 따지기에 앞서 직역연금 수급권과 혼인 관계를 기준으로 일괄 배제하는 구조다. 직역연금 수급자를 기초연금에서 제외한 것은 2014년 제도를 도입하면서부터다. 직역연금 보험료의 절반을 국가나 사용자가 부담하고 연금액도 국민연금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 고려됐다. 장애인연금도 기초연금과 비슷한 구조로 설계되면서 같은 배제 기준을 따랐다. 하지만 2015년 연금개혁으로 공무원·사학·별정우체국연금을 받을 수 있는 최소 가입 기간이 20년에서 10년으로 줄면서 적은 연금을 받는 수급자가 늘었다. 직역연금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생활이 안정돼 있다고 보기 어려워진 것이다. 복지부는 기초연금 수급자를 전체 노인의 70%로 고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기준 중위소득 등을 토대로 대상을 정하는 개편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저소득 직역연금 수급자와 배우자를 기초연금 대상에 포함하고 개편된 기준을 장애인연금에도 적용할지 함께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 [열린세상] 청년들, 유튜브 연금 방송 나선 뜻은

    [열린세상] 청년들, 유튜브 연금 방송 나선 뜻은

    오래전부터 국내에서는 캐나다연금(CPP)이 거론되어 왔다. 모범적인 기금 운용 때문이다. 2018년 국민연금 4차 재정계산 이후부터는 제도 설계 측면에서도 자주 인용되었다. 소위 말하는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을 실행한 나라로 소개되면서다. 작년 3월 20일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3%로 3% 포인트, 퍼센티지로는 7.5%나 더 인상하는 근거가 된 사례였다. 코스피 지수 급등 추세와 맞물려 구조개혁이 없을지라도 잘 운용하면 2100년까지 국민연금 기금 고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기금을 효과적으로 운용한다면 현재 43% 수준보다도 소득대체율을 더 올릴 수 있는 사례로 CPP가 언급되었다. 이처럼 자주 거론되는 만큼 캐나다연금의 실체를 제대로 알아야 할 것 같다. 국민연금을 먼저 도입하고 기초연금은 나중에 도입한 우리와 달리 캐나다는 기초연금(OAS)을 먼저 도입한 후에 CPP를 도입했다. 복지정책 경로 의존성 측면에서 우리와 정반대 길을 걸어온 나라다. 기초연금 위에 본인 기여 원칙의 소득비례연금을 추가하다 보니 소득대체율은 낮게 도입되었다. 2018년 이전까지는 보험료를 9.9% 부담하면서 소득대체율을 25%만 제공하는 제도로 운영했던 배경이다. 1988년 도입 당시 3% 보험료만을 부담하면서도 70% 소득대체율을 제공했던 우리 국민연금과는 큰 차이가 있다. 김성주(21대 국회 연금특위 야당 간사)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2018년부터 ‘더 내고 더 받는 개혁’, 즉 보험료는 11.9%로 2% 포인트 올리면서 소득대체율을 33.3%로 인상한 사례로 CPP를 강조해 왔다. 이러한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개혁 이후 CPP가 기존 제도였던 기초(Base)와 추가(Additional) 부분으로 이원화되어서다. 보험료 2% 포인트 인상은 기존 제도인 기초 부분에만 적용된다. 새로 생긴 추가 부분에는 8% 포인트라는 새로운 보험료 부담이 생겨났다. 실제 상황이 이런데도 기초 부분의 2% 포인트 보험료 인상만을 언급하다 보니, 캐나다 연금개혁의 본질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 제도 개편 이전까지 CPP는 150년이 지나서도 연금을 지급할 돈 100%를 보유하고 있었다. 새로 도입된 추가 부분도 100% 적립 방식, 즉 후세대 부담이 전혀 없는 제도로 운영된다. 작년 3월 국민연금법 개정 이후에도 연금을 지급하기에 부족한 액수인 미적립부채가 1820조원(국회 예산정책처·2025)에 달하는 우리 국민연금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제도로 운영한다. 그런데도 CPP의 예를 들면서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희망회로’를 돌리고 있다. 구조개혁보다 기금 운용에 방점을 두는 듯한 최근 세태를 감안해 CPP 기금 운용 상황도 살펴보자.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정부의 정치적인 개입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다. 이와 달리 우리 국민연금 기금 운용에는 특히 최근 들어 정치적 판단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예정에도 없던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개최하면서 국내 주식투자 비중 변경과 리밸런싱 유예, ‘뉴프레임워크’란 이름으로 국민연금을 환율 방어 수단으로 활용해서다. 연금제도 설계원칙과 기금 운용 환경에 천양지차가 나고 있음에도 CPP처럼 기금 운용만 잘한다면 우리 국민연금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동안 언론에 홍수처럼 보도된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연금연구회 청년들이 유튜브 방송인 ‘연금통’을 시작하며 발표했던 성명서에 답이 있는 것 같다. “첫째, 내고 받는 돈의 균형을 맞추는 ‘수리적으로 정직한 연금’이 필요하다. 둘째, 국민연금 기금은 ‘가입자의 이익’만을 위해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셋째, 왜곡된 연금 실태를 대중에게 낱낱이 알리기 위해 청년들이 직접 마이크를 잡는다.” CPP를 포함해 연금 문제가 국민과 언론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어 자신들이 직접 나서겠다는 선언이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 [서울광장] 호남 반도체 속도전, 적은 내부에 있다

    [서울광장] 호남 반도체 속도전, 적은 내부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어제 ‘3대 메가프로젝트 민관합동 점검회의에서 ‘속도전’을 거듭 강조했다. 청와대는 895조원 규모의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를 발표한 지 1주일 만인 이날 광주 군공항 부지를 입지로 정했다고 발표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원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다 끝내고 그다음 단계로 (호남 반도체를) 얘기하려 했던 것 같아서 (내가) 동시에 추진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대통령의 의지가 각별히 실린 프로젝트다. 그런데 기업들이 구체적 투자 일정을 확정하려면 전력, 용수, 인력 등 입지 여건에 대한 확신이 서야 한다. 두 기업이 반도체 투자계획 공시 등에서 ‘경기 변동성’이나 ‘경영환경 변화’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단서를 덧붙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앞뒤 안 따져 보고 투자했다가는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규정한 개정상법 위반이 될 수 있다. 4기를 짓겠다는 호남 반도체 팹(공장) 가동에는 6.3GW(기가와트)의 전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원전 4~5기를 통한 안정적 전력생산과 송전망이 요구된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도 “전력수요가 늘어난다면 신규 원전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기존의 영광 한빛원전 1호기부터 사용연한 문제로 가동이 중단돼 있다. 2호기도 곧 중단 예정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애착이 그만큼 뿌리가 깊다. 친명·친문 계파싸움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하루 65만t이 필요한 용수는 기존 댐 수계를 활용하고 동복댐을 높이면 감당할 수 있다고 정부는 설명한다. 하지만 영산강·섬진강 유역 면적은 한강의 13~18% 수준이다. 가뭄이 닥치면 동복댐과 주암댐 저수율은 10%대로 떨어진다. 농업용 저수지인 나주호에서 빼기로 한 하루 21만t의 물도 모내기철 등에 가뭄이 닥치면 농민의 강한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더욱이 민주당 안팎에는 4대강 보 해체를 의미하는 ‘재자연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시퍼렇게 살아 있다. 지난해 10월 윤석열 정부가 국가전략산업 용수공급을 위해 건설계획을 짜 놓은 14개 기후대응댐 가운데 7개를 중단시킨 주무장관도 김 장관이다. 이제 4대강 식으로 물그릇을 키우기 위해 댐을 신·증축하는 쪽으로 선회하려 해도 환경단체와 주민 반발 등 가파른 산을 넘어야 한다. 주52시간제도 연구개발(R&D) 인력과 현장 건설공정의 발목을 잡는 복병이 될 수 있다. 호남 반도체의 진짜 난적은 “특정지역 특혜”, “8·17 전당대회용” 등 야당의 정치적 비판이 아니다. 지지층을 지배해 온 환경론 등의 도그마와 기존 정책기조야말로 내부의 적이 될 수 있다. 임기 내 반도체 클러스터를 완성하려면 기업이 확신을 갖고 투자계획을 이행할 수 있을 만큼 과감하고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여권 앞에는 세 갈래 길이 있다. 첫째, 인프라 조성 계획을 놓고 검토를 거듭하다 구체적 방안은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복수의 연금개혁안으로 고심하다 보험료 납부액 증가 부담에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차기정권으로 미뤘다. 둘째는 지지층과의 불화를 감수하고 원전, 물 관리, 노동시간과 관련한 규제정책의 대전환을 이루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당 내 반발을 무릅쓰고 한미 FTA를 밀어붙였다. 이는 수출한국의 경제영토 확장과 한미동맹 발전에 크게 기여했지만, 여권 분열과 정권교체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셋째는 용인 삼성반도체 클러스터의 부지 조성, 설비 구축 등에 필요한 인허가, 민원 문제 등을 속전속결로 해결해 주고, 동시에 서남권 클러스터에는 용수·전력·노동의 특례를 적용하는 대안을 설득하는 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지지층으로부터 ‘신자유주의자’란 비판을 받아가며 IMF와의 약속대로 부실기업 정리, 공공·금융·노동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을 적극 추진했다. 그 결과 외환위기 극복이란 레거시를 남길 수 있었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한 정권의 희망프로젝트에 그칠 것인가, 인공지능(AI) 시대 한국경제의 주춧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진실의 순간’이 문을 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 ‘李 부동산 정책’ 힘 실어준 OECD… “보유세 비중 높이고 거래세 줄여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의 부동산 세제에 대해 “거래세 비중을 줄이고 보유세 비중을 높여라”라고 권고했다. 또 “초·중·고교에 대한 정부 예산 지원을 축소하라”고 제안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보유세 강화’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에 명분을 제공하며 힘을 실은 것이다. OECD는 2일 이런 내용을 담은 ‘2026년 한국경제보고서’를 공개했다. 2년마다 발표하는 정책 권고 보고서다. OECD는 “거래세 비중을 줄이고 보유세 비율을 늘리는 세수 중립적인 전환은 주거 이동성을 뒷받침하고 노동시장 효율성을 향상하며 주택 시장의 마찰을 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 근거로 전체 부동산 세수에서 보유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OECD 회원국 평균은 56%인 반면, 한국은 절반 수준인 29.4%에 그친다는 점을 제시했다. 이달 말 보유세 강화안을 담은 세제개편안 발표를 준비하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OECD는 “한국 청년의 학력 수준은 높지만 교육 제도는 나이가 많아질수록 역량이 떨어진다”면서 “초·중·고교와 사교육에 쏟는 재원이 성인이 된 후 학습을 지속할 능력을 키워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 교육의 질이 떨어진 건 공적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면서 “대학 등록금 인상을 허용하고, 초·중·고교 교육에 대한 세수 배정은 점진적으로 축소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현재 정부는 저출산 영향으로 학령인구가 감소한 현실을 고려해 내국세의 20.79%가 자동 배정되는 교육교부금 시스템 개편을 추진 중이다. OECD는 “상속세를 물려주는 전체 재산에 세금을 매기는 유산세 방식에서 물려받는 재산에 세금을 매기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라”, “담뱃세와 담배 소매가격이 낮으니 더 올려라”는 권고도 내놨다. OECD는 고령화에 따른 재정 위험에 대비한 연금개혁도 주문했다. 보고서는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2035년까지 68세로 늦추고, 기대수명 증가분의 3분의 2만큼 추가로 연동하는 포괄적 연금개혁을 하면 2060년 국내총생산(GDP)이 개혁하지 않았을 때보다 1.9%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열린세상] 연금특위 자문위의 이상한 논쟁들

    [열린세상] 연금특위 자문위의 이상한 논쟁들

    구조개혁 논의는 뒷전인 채 팩트 논쟁에 시간을 허비하다가 22대 국회 연금특위 자문위원회 활동이 종료되었다. 미적립부채, 자동조정장치, 노인 빈곤율,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금지출 비율, 외국 국고 투입 사례에 대한 팩트 논란 때문이었다. 기본적인 팩트조차 이견이 많은 우리 현실, 어디가 출발점일까. 초단기간에 걸쳐 압축적으로 국민연금을 확대해 온 우리는, 100년 이상 장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온 국가들이 사용하는 지표들만으로는 내재된 문제를 제대로 진단할 수 없다. 1988년 1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해서 11년 만에 전 국민 대상 국민연금을 도입하다 보니 그러하다. 1988년 70% 소득대체율로 출발한 국민연금에 어떤 문제가 있을지는 공무원연금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1960년 도입된 공무원연금은 소득대체율 40%에 60세부터 받을 수 있는 제도로 도입되었다. 이후 소득대체율은 76%(33년 가입)까지 20년 재직하면 퇴직 즉시 받는 제도로 바뀌었다. 이렇게 더 주는 제도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1990년대 초까지는 연금 지출액이 적어서였다. 이후 몇 번 개혁했다는 공무원연금 충당부채(연금을 지급하기에 부족한 액수)는 1052조원(2024년 기준)이며 작년 적자 보전액은 10조원 수준에 달한다. 반면에 일본은 100년 후까지도 공무원에게 연금 줄 돈이 있다. 어쩌다 우리는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작년 11월 특위 자문위원회에서의 필자 발표 내용이다. “8년에 걸쳐 보험료를 13%로 인상하는, 2025년 3월 20일 통과된 국민연금 개편으로 인해 기금소진 시점이 2055년에서 2064년으로 9년 늘어났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2025년 2060조원으로 추정된 미적립부채(국민연금 지급 부족액)가 더 늘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당장 보험료를 21.2%로 올려야 했다. 8년 동안이 아닌 일시에 보험료를 13%로 올릴지라도 2050년 미적립부채는 6159조원(GDP 대비 119.2%)으로 급증하고, 2095년 4경 2032조원(GDP 대비 311.4%)으로 증가한다.” 필자 발표 후 거친 논쟁이 벌어졌다. 공적연금에서 미적립부채는 필자와 같은 극소수만 쓰는 개념으로 국민연금에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당시 필자는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가 사용을 권장해 온 개념이고 우리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미국 소셜연금에서 사용하는 근거 자료도 제시했다. 최근 미국 사회보장청이 의회에 제출한 2026년 보고서는 미적립부채(Unfunded Obligation·2100년까지 GDP 대비 1.5%)와 무한기간에 걸친 지속 가능한 지급 능력(Sustainable Solvency)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수치를 명시하면서 조속한 연금개혁을 촉구했다. 2065년 공무원연금의 적자 보전액만 GDP 대비 0.69%에 달할 우리와의 극명한 차이다.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특위 자문위원의 국민연금과 사학연금 미적립부채 요구에 대해 “미적립부채를 산정하지 않고 있어 제공할 수가 없다”고 했다. 2023년 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과 21대 국회 연금특위 자문위원회에서도 똑같이 답했었다. 그러는 동안에 구조개혁 논의를 위해 출범한 자문위는 소모적 논쟁만 거듭하며 정작 본게임은 시작도 못한 채 활동이 종료되었다. 이처럼 전문가에게는 제공하지 않던 자료가 21대 국회 김진표 국회의장에게는 보고되었다. 21대 국회 자문위원회에서는 필자의 요구로 195조원의 사학연금 미적립부채 수치가 제출되었다. 그런데 22대 국회 특위에서는 자료 제공을 거부하고 있다. 연금개혁과 관련해 벌어지는 불필요한 논쟁의 상당 부분은 이처럼 민감한 이슈들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 회피에서 기인한다. 그 사이에 ‘아니면 말고’ 식의 막가파 주장들이 끼어들면서 진흙탕 논쟁의 빌미가 되고 있다. 가장 기초적인 팩트조차 제공하지 않고 있는 우리 현실, 제대로 된 연금개혁을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 [사설] 대학생 시국선언… 응축된 청년 분노, 무겁게 직시해야

    [사설] 대학생 시국선언… 응축된 청년 분노, 무겁게 직시해야

    어제 서울대 등 18개 대학교 총학생회가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훼손된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대학가는 총학생회 구성이 어려울 만큼 자발적 결사체의 기능이 박약했다. 그런 대학생들이 6·10 항쟁 39주년 기념일에 ‘참정권 수호’를 외치며 결집한 것이다. 청년들의 분노가 낯설 정도로 거세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그제 투표용지가 전국 91개 투표소에서 7000여장 모자란다고 했다. 하루 전날보다 2000여장이나 더 늘었다. 용지 부족 투표소도 수시로 늘고 있다. 법원이 증거보전 결정을 내린 투표용지 상자도 사라졌다. 총체적 관리 부실과 무능이 끝이 없다. 여야는 각각 진상 규명 특검법안을 발의했고, 국정조사도 벌이기로 했다. 수사와 조사 대상 등을 놓고 신경전이 예상되지만, 법과 상식에 입각하면 입씨름할 여지가 별로 없다. 특검추천권은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야당이 행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일 때 주장하고 관철시켜 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조사 또는 수사 대상에 청와대와 과거 부정선거론에서 제기한 의혹들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야당 일각의 주장은 자칫 정쟁만 격화시킬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문제가 제기된 곳들로 한정하면 된다. 국민의힘이 여당 때 주장해 온 논리 그대로다. ‘참정권 수호’와 ‘재선거’를 외치는 2030 청년들은 여야나 이념, 진영과 철저히 거리를 두고 있다. 조직이 아닌 소셜미디어(SNS)로 정보를 주고받고 행동하는 ‘소셜시티즌’이 요구하는 것은 박탈당한 투표권을 되돌려 달라는 것이다. 소쿠리 투표, 투표지 반출, 채용 비리, 선거의 해 대량 휴직 등 선관위의 비리와 일탈이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를 입법으로 바로잡을 책무를 저버린 정치권은 직무유기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2030의 분노는 선거 민주주의 훼손에서만 비롯됐다고 볼 수 없다. 불공정의 박탈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분노의 뇌관으로 응축됐다고 봐야 한다. 법치와 상식쯤은 우습게 여기는 기득권 정치가 누구보다 긴장할 때다. 막혀 버린 취업문과 집값·전월세난으로 인한 주거·자산·소득 격차, 반쪽에 그친 연금개혁 등 청년 분노가 터질 뇌관은 곳곳에 있다.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청년들의 좌절감을 직시하고 경제적 불균형과 정치·사회적 불공정성 해소에 나서야 할 순간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수면 아래 분노가 언제, 어떤 계기로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할지 알 수 없다.
  • ‘민생 복지 향한 고집’ 남인순, 한 번 잡은 의제는 끝까지 [주간 여의도 Who?]

    ‘민생 복지 향한 고집’ 남인순, 한 번 잡은 의제는 끝까지 [주간 여의도 Who?]

    매주 금요일 [주간 여의도 Who?]가 온라인을 통해 독자를 찾아갑니다. 서울신문 정당팀이 ‘주간 여의도 인물’을 선정해 탐구합니다. 지난 일주일 국회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정치인의 말과 움직임을 다각도로 포착해 분석합니다. “정치의 역할은 사회적 자원의 배분입니다. 약자 편을 들어줘야 하는 이유입니다.” 내년부터 만 18~26세 청년 중 국민연금 가입 신청자에게 국가가 첫 보험료를 지원하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지난달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학업, 군 복무, 취업 준비 등으로 노동시장 진입이 늦어지면 국민연금 가입 시점도 늦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청년들의 국민연금 조기 가입을 유도하기 위한 방책으로 ‘생애 최초 연금보험료 지원’ 제도를 신설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 공약이자 국정과제인 이 법안은 남인순(4선·서울 송파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초선 의원이었던 19대 국회부터 지속적으로 발의를 해 왔던 것으로 22대 국회 전반기가 거의 끝날 때쯤 국회 문턱을 넘었다. 남 의원은 국민연금이 40년 가입을 전제로 설계가 돼 있으니 ‘미래 세대’의 연금 가입 기간을 늘려주는 게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국가가 먼저 ‘납부 이력’을 쌓아주면 청년들의 노동 시장 진입이 늦어져도 이를 메울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설명이다. 남 의원은 1일 “국가가 청년을 국민연금 제도권 안으로 포함시켜 연금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3월 말 통과한 환자기본법 제정안도 남 의원의 ‘민생 입법’ 고집이 이끈 성과로 꼽힌다. 환자의 권리를 체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법으로 상급종합병원·공급자 중심 의료 정책이 환자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계기가 마련됐다. 이 대통령도 지난 대선 공약으로 “환자의 권리와 안전을 최우선 보장할 수 있도록 의료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법안 통과로 첫발을 내딛게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러한 입법 성과를 발판 삼아 남 의원은 22대 후반기 국회 부의장 선거에 도전장을 냈다. 의장단 후보 등록 날인 4일 공식 출마 선언도 예고했다. 22대 전반기 부의장 선거에 출마했던 그는 재도전을 하며 ‘소통과 경청’을 강조했다. 부의장은 당적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의원들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지 않고 다양한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선배 의원이 후배 의원의 의정 활동에 도움을 주는 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그는 “민주당 강령 전문에 나오는 것처럼 유능한 정당, 당원 중심 정당이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오랜 기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몸담았던 남 의원은 국가적 과제가 된 저출생·고령화, 지방 소멸 위기에 대해 의원들과 머리를 맞대자고 제안한다. 그는 “초저출생·초고령사회, 인구 절벽에 대응해 사회적 충격을 완화하고 지속가능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구조화하겠다”고 했다. 전반기 부의장에 도전할 때 내걸었던 ‘의원 외교’ 강화도 재차 꺼내 들었다. 국회의원들의 친선 외교는 양국 간 약속 이행 및 점검 차원도 있는 만큼 국회 국제국의 위상과 기능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는 게 남 의원 설명이다. 국제국을 ‘의원외교 지원처’ 등으로 격상시키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그는 특히 선진국 중심의 의원 외교에서 벗어나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에 대한 외교 전략을 강화하고 자원, 방산, 에너지, 바이오 등 이른바 ‘테마’가 있는 의원 외교를 활성화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개헌과 관련해선 “국회의장과 합심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개헌 공론화 기구를 설치해 개헌 논의를 제도화하고, 대통령 4년 연임제 등 책임정치 강화를 위한 개헌 추진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 재임 때부터 고민해 왔던 ‘국회의원 선거제도 제안위원회’ 설치 등 선거구 획정 안정화도 공약으로 내걸었다. 아울러 다양한 사회적 주체와 의제를 논의할 수 있는 창구인 ‘국회 사회적 대화 기구’ 법제화와 함께 부처별 지출 한도를 예산안 편성 지침에 포함시키고 부처별 예산요구서의 국회 제출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여성 인권에 앞장서 온 남 의원은 인천여성노동자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를 거치며 30년간 여성운동을 했다. 19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입성한 뒤 20·21·22대 총선에서 민주당에 ‘험지’로 통하는 서울 송파병에 내리 당선됐다. 민주당 여성위원장과 원내부대표,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에 이어 이재명 대표 시절 정개특위 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민주당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 [단독] 공무원연금 ‘밑 빠진 독’ 커진다… 2065년엔 적자만 23조원 돌파

    [단독] 공무원연금 ‘밑 빠진 독’ 커진다… 2065년엔 적자만 23조원 돌파

    2065년에 이르면 대한민국이 1년 동안 벌어들인 부의 0.7%가 공무원연금에 생긴 ‘구멍’을 메우는 데 쓰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정부가 공무원의 고용주로서 부담하는 법정 보험료와는 별도로, 부족한 연금 재원을 채우기 위해 투입되는 순수 적자 보전금이 국내총생산(GDP)의 0.69%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됐다.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드는데 연금 부담은 늘면서 미래 세대의 복지 재원을 잠식하는 ‘재정 블랙홀’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신문이 28일 입수한 공무원연금공단 산하 연금연구소의 ‘공무원연금 장기 재정추계 보고서’를 보면, GDP 대비 적자 보전금 비중은 2025년 0.33%에서 2065년 0.69%로 2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정부가 부담해야 할 9%의 사용자 보험료와는 별개로 오직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추가로 투입되는 재정이다. 적자 규모는 이미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19년 2조 563억원이던 적자 보전금은 2024년 7조 4712억원으로 뛰었고, 지난해에는 8조 6798억원에 이른 것으로 추산됐다. 향후 증가 속도는 더 가팔라질 전망이다. 2030년에는 10조 7584억원으로 ‘10조원 시대’에 진입하고, 2065년에는 23조 8528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2065년에는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지출해야 할 돈(41조 7530억원)이 보험료 수입(17조 9002억원)의 두 배를 훌쩍 넘기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마저도 낙관적 전망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당장 2025년 보전금만 해도 전년 대비 1조 원 넘게 늘어난 흐름을 보면 실제 재정 상황은 이보다 훨씬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 적자 보전금이 정부 재량으로 줄이기 어려운 ‘경직성 의무지출’이라는 점이다. 지출이 늘어 다른 재정 여력이 줄어들면 복지 지출 간 ‘제로섬 경쟁’이 불가피해진다. 이미 공무원들에게 장래에 지급할 연금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충당부채는 2024회계연도 기준 1052조 3000억원에 달한다. 사실상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될 ‘미래의 빚’이다. 이처럼 재정 압박이 커지고 있는데도 국회 연금개혁특위는 공무원·사학·군인연금 등 직역연금 개혁을 의제에 올리지조차 않았다. 윤 위원은 “반도체 사이클 덕에 세수가 늘어나는 지금이야말로 부채와 의무지출을 관리할 시기”라며 “직역연금 개혁은 외면한 채 국민연금만 손대는 것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상황을 모면하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 [열린세상] 하고 싶은 것보다 ‘할 수 있는’ 정책을

    [열린세상] 하고 싶은 것보다 ‘할 수 있는’ 정책을

    2018년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을 맡았던 당시의 일이다. 새 보직을 맡고 보니 의료전달체계 마련을 위해 의료계·병원계·전문가들이 1년 반가량 협의체를 꾸려 논의를 이어 갔고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었다. 의료전달체계란 아픈 정도에 따라 환자가 적절한 의료기관에서 알맞은 진료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감기 등 가벼운 질환은 동네 의원에서, 맹장·치질 등은 병원에서, 암·심뇌혈관 질환이나 고난도 수술이 필요한 중증 질환은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받도록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전국이 대중소 진료권으로 나뉘어 있어 동네 의원과 지역 병원을 거쳐야만 대형 병원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8년 규제 개혁으로 이 제도가 폐지된 뒤 지금은 돈만 내면 어디든 갈 수 있게 됐고 그 결과 소위 ‘대형 병원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체는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협의안을 마련하고 마지막 회의를 열었는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의원은 입원보다 외래에 집중하고 상급종합병원은 외래를 줄이는 대신 중증 수술에 전념하기로 했지만, 개원가는 의원급 7만 5000개 병상을 줄이는 데 난색을 보였다. 이것이 걸림돌이 돼 합의문을 만들지 못했고 2년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나중에 돌아보니 100점짜리 정책을 만들려다 95점까지 완성하고도 남은 5점을 채우지 못해 결국 0점이 되고 만 셈이었다. 합의가 안 된 부분은 그대로 두고라도 시행했더라면 95점은 달성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남았다. 모든 정책이 그렇다. 70점짜리 정책이라면 30점이 부족하더라도 일단 시행하는 게 맞다. 겉보기에는 미흡하거나 미봉책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만큼 반대가 덜해 오히려 생명력이 있다. 정책이 실행되면 70점이 기본이 되고 이후 70점짜리 정책을 더하면 140점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이 ‘하고 싶은’ 정책, 즉 100점짜리 정책을 추진하고 싶어 한다. 이런 시도는 상대방의 반발이 커 실패로 돌아가 0점 정책이 되기 쉽다. 보건의료처럼 이미 생태계가 형성된 분야일수록 더욱 그렇다. 결국 정책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2025년 3차 연금개혁은 ‘할 수 있는 것을 한’ 대표적 사례다. 100점짜리 연금개혁을 하려면 보험료율을 9%에서 18%까지 한번에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40%로 고정해야 했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국민이 받는 연금은 그대로인데 보험료를 단번에 두 배로 올리는 일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그래서 3차 개혁은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해마다 0.5% 포인트씩 8년에 걸쳐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3%로 높이기로 했다.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출산·군복무 크레디트 보완, 지급 보장도 담았다. 미완의 개혁이지만 점수를 매기면 70점짜리다. 이제 70점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청년층 의견을 반영해 국민·기초·퇴직·개인연금 간 구조 개혁을 추진하는 게 다음 과제다.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사회와 약사회의 극한 대립과 수가 인상으로 2001년 건강보험 재정이 고갈됐을 때 고(故) 김원길 장관은 ‘5·31 재정안정대책’을 시행해 건보 재정을 안정시켰다. 당시 수행 비서였던 필자가 “왜 의약계 모두가 불만을 가질 재정 대책을 만드셨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재정을 안정시키려면 누군가는 부담을 져야 합니다. 의료계와 약업계, 정부가 함께 나눠야 하지요. 그리고 그 부담은 불만은 있되 뛰쳐나오지 않을 만큼 고르게 배분해야 합니다.” 이런 경험은 지금도 유효하다. ‘하고 싶은 정책을 하려는 건 아닌지’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소 부족해 보이더라도,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정책’을 선택했으면 한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말했듯 정치에서 가장 쉬운 일은 선명하고 강하게 말하는 것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이기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장
  • [열린세상] 국민연금에 대한 우려의 시선들

    [열린세상] 국민연금에 대한 우려의 시선들

    국민연금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원화 약세가 뉴노멀이 되는 듯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 마련 과정에서의 국민연금기금 역할 때문이다. 통상 2월 또는 3월에 첫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가 개최되던 것과 달리 올해에는 1월 26일 열렸다. 이번 기금위 회의는 개최 전부터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미 정해져 있던 국내외 국민연금기금 투자 규모의 재배분이 중요 의제여서였다. 정부조직 개편으로 신설된 기획예산처 차관이 기금위의 정부 위원으로 추가되다 보니 정부 입김이 더 커진다는 우려도 있었다. 게다가 관심이 집중됐던 회의 결과가 2030년까지 봉인된 상황이라 회의 내용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짤막한 보도자료만으로는 회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일부 언론이 보도한 관련 분야 전문가 추정치가 그래서 필요하다. “작년에 결정된 올해 목표 포트폴리오 대비 해외 주식 투자는 25조원을 줄이면서 국내 투자를 7조원 더 늘린다. 국내 채권 투자 비중은 17조원을 더 늘린다.” 이는 전략적 자산 배분 목표치일 뿐이다. 시장 상황에 따라 10%를 더 매수할 수 있는 전술적 자산 요인까지 고려하면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더 늘릴 수 있다. 이번 회의로 “목표 투자 비중 초과 시 자동으로 매도해 당초 목표를 유지하게 하는 기능”인 리밸런싱 조치 작동이 유예되었다. 목표보다 국내 투자 비중이 더 늘어난 상황에서 투자 비중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될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더욱이 리밸런싱 유예 기한조차 명시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복지부 1차관이 위원장인 TF를 구성해 국민연금기금으로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우면서 환율 방어를 해 오던 차에 이런 식으로 기금 운용 방향이 결정되다 보니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작년 3월 국민연금법 개정의 핵심은 50대 이상 연령층의 연금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대신 청년층과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더 늘린 것이다. 청년층 불만을 달래기 위해 국회에 연금개혁 특위가 구성되었다. 몇 달이나 허비하고 나서야 구성된 특위 자문위원회는 특위 운영 취지와는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구조 개혁 그 자체에 논의를 집중하지 못해서다. 연금특위 자문위원인 KDI 신승룡 박사는 국민연금 개방형 미적립부채(연금을 지급하기에 부족한 액수)를 약 3009조원으로 추정했다. 기금 운용 수익률을 향후 70년 동안 매년 1% 포인트 더 높여도 미적립부채는 1236조원에 달한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미적립부채가 1820조원이라고 발표했다. 현재의 국민연금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징표다. 최근 IMF는 국민연금 구조 개혁을 주문했다. 국가 부채가 GDP 대비 200%에 달할 것으로 전망돼서다. 그런데도 정치권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기금 운용만 잘하면 지속 가능한 국민연금을 만들 수 있다고 장담한다. 시급한 구조 개혁인 자동조정장치 도입은 거부하면서 말이다. 전문가 목소리를 반영해 운영돼 오던 기금위는 정치적인 외풍에 휘둘리고 있다. 최근 기획예산처가 정책당국의 입맛에 맞도록 연기금 운용 규정을 개정해서다. 국내 투자 비중을 늘리면서 해외 투자 비중은 줄이고, 수익률 제고 차원에서 그동안은 해 오지 않았던 환헤지를 사실상 강요하고 있어서다. 국회 연금특위 자문위원인 김학주 동국대 교수의 코멘트다. “과거 관치금융이 재무부 중심으로 금융기관에 대한 자금 배분과 투자 방향을 직접 지시하는 방식이었다면, 작금의 신관치금융은 국민연금을 축으로 해서 정부가 공공성과 책임 투자라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시장에 구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정책당국은 이와 같은 우려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야 한다. 국민연금이 특정 정권의 정책 수단이 아니기에 그렇다.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위해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해야 할 때이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 6선 주호영의 대구로 향한 전심전력 [주간 여의도 WHO]

    6선 주호영의 대구로 향한 전심전력 [주간 여의도 WHO]

    국민의힘 최다선 ‘여의도 부처님’‘필버’ 사회 거부에 국회법 개정도대상 2회 포함 백봉신사상 5회 수상국민의힘 위기마다 ‘비상당권’21대 총선 김부겸 대구 재선 제동6·3 지방선거 대구시장 도전 매주 금요일 [주간 여의도 Who?]가 온라인을 통해 독자를 찾아갑니다. 서울신문 정당팀이 ‘주간 여의도 인물’을 선정해 탐구합니다. 지난 일주일 국회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정치인의 말과 움직임을 다각도로 포착해 분석합니다. 국민의힘 소속 주호영(6선, 대구 수성갑) 국회부의장은 지난해 7월부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사회를 거부해왔다. 22대 국회에서 국회의장과 거대 여당의 여야 협의 없는 의사일정 강행과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일상화하면서 “사회 거부는 의회주의를 위한 최소한의 거부권 행사”라며 의장석에 오르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주 부의장에 대한 ‘국회부의장 사퇴 촉구 결의안’도 발의했다. 주 부의장은 우원식 의장이 야당의 마이크를 끄는 등 반(反)의회주의적으로 국회를 운영하는 데 동의할 수 없다고 맞섰다. 주 부의장은 우 의장을 향해 “민주당과 이재명 정권의 입법 폭주를 비호하는 시녀(侍女) 노릇을 자처한 것”이라고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의 의회주의에 대한 판이한 소신과 원칙은 29일 본회의에서 민주당 주도로 의장이 상임위원장에게 사회권을 넘길 수 있도록 국회법을 개정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뒤틀린 의사일정 강행과 필리버스터 관행을 바로잡는 게 아니라 거대 여당이 일방 독주를 이어가겠다는 예고로도 해석됐다. 우 의장은 본회의에서 “국회 의장단 중 한 분이 오랜 기간 동안 사회를 거부하는 비정상적인 형태의 무제한 토론이 계속되면서 불가피하게 개정 의견에 동의했다”며 주 부의장을 다시 한번 겨냥했다. 국민의힘 최다선(6선)인 주 부의장의 의회주의와 대타협에 대한 원칙은 경험을 통해 체화한 그의 정치적 자산이다. 2008년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 2009년 대한민국 특임장관, 2013년 국회 정치개혁특위원장, 2014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위원장, 2015년 대통령 정무특보, 2015년 국회 정보위원장, 2017년 바른정당 원내대표, 2020년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국민의힘 원내대표, 2022년 또다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국회 운영위원장, 2022년 국회 연금개혁특위원장,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까지 대한민국 국회의 주요 역할을 모두 거쳤다. 특히 2015년 그가 위원장을 맡은 공무원연금개혁특위의 연금 개혁은 이해당사자와 전문가, 여야와 정부가 꼬박 18개월을 매달려 해낸 대업으로 꼽힌다. 2000년 이후 대부분의 연금 개혁을 밀실에서 진행한 것과도 질적으로 다르다. 처음으로 대타협 기구를 가동했고, 하후상박의 소득재분배 장치를 마련했고, 수급자에게 고통을 분담했다. 60년간 총재정부담금 333조원을 절감한 개혁이다. 10년이 지난 지난해 국민연금 개혁 때 여야가 모두 그를 연금개혁특위원장으로 다시 찾은 이유이기도 하다. ‘여의도 부처님’으로도 불리는 그의 의회주의에 대한 원칙과 철학은 백봉신사상 수상 경력에서도 나타난다. 백봉신사상은 가장 신사적이고 성실한 태도로 의정 활동을 한 국회의원에게 주어지는 영예다. 독립운동가이자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백봉 라용균 선생을 기리는 취지에서 1999년 제정된 상으로 국회출입기자, 동료 의원, 국회 직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 수상자를 선정한다. 주 부의장은 2025년 백봉신사상 ‘베스트 10’에도 선정됐다. 앞서 21대 국회에서는 무려 4년 연속 수상 기록을 세웠다.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맡고 있던 2020년에는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고도 헌정사상 처음으로 수상을 거부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의 북한 원전 추진 의혹과 법관 탄핵 등을 둘러싼 여야 대치 정국에서 대여 투쟁을 이끌어야 하는 야당 원내대표로서 수상이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2022년에 두 번째 대상에 선정됐을 때야 상을 받았다. 한나라당부터 국민의힘까지 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비상당권도 여러 차례 맡았다. 정치적 부침으로 당이 휘청일 때마다 비대위원장을 맡아 혼란을 수습했다. 주 부의장은 이제 대구로 향한다. 오는 6·3 지방선거 대구시장에 도전한다. 지난 25일 동대구역 박정희광장에서 “대한민국 산업화와 근대화의 상징인 박정희 대통령의 길 위에서 대구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판사 출신의 주 부의장은 정계 입문 후 대구에서 내리 6선을 했다. 하지만 안방에서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는 순탄한 길이 아니었다. 20대 총선 때는 바로 옆 지역구 현역 의원인 공관위원장의 공천 학살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21대 총선 때는 당의 요청에 따라 수성을에서 수성갑으로 지역구를 옮겼다. 20대 총선에서 민주당 진영으로 31년 만에 대구에서 당선된 김부겸 전 국무총리의 재선을 막기 위해서다. 결국 주 부의장이 김 전 총리를 꺾었다. 민주당은 김 전 총리를 이번 대구시장 선거에 투입해 국민의힘을 완전히 고립시키는 선거 전략을 고심 중이다. 국민의힘에 지난 2018년 지방선거보다 더 비극적인 패배를 안기겠다는 것이다. ‘김부겸 대구시장’ 카드가 현실화할 경우 대구에서 김 전 총리를 꺾을 국민의힘 후보가 누구인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주 부의장은 대구 발전을 위해 자신의 모든 정치적 역량을 쏟아붓는 전심전력(全心全力)을 예고했다. 주 부의장은 특히 대구를 ‘꼴보수’라 칭하는 오해에 격분한다. 동대구역 출마 선언 때도 “대구는 오랫동안 옳고 그름을 제대로 가르는 강한 비판정신을 가진 강직한 선비의 고장이었다”며 “지금의 대구 정치, 대구 정신이 제대로 된 보수라는 이름에 걸맞은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이 명백한 잘못이고, 폭정을 거듭해 탄핵 사유가 충분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구시장 선거에 나서기 위해선 국민의힘 경선부터가 만만치 않다. 30일 윤재옥(4선, 대구 달서을) 의원이 공식 출마를 선언했고 앞서 추경호(3선, 대구 달성) 의원, 최은석(초선, 대구 동·군위갑) 등도 출마 선언을 마쳤다.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도 출마를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대구로 향한 주 부의장의 ‘전심전력’이 국민의힘 당원들과 대구 시민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는 이제 곧 찾아올 ‘대구의 봄’에 달려 있다.
  • 캐나다 연기금 환헤지 0% 실상은…진땀 뺀 이창용 한은 총재[경제블로그]

    캐나다 연기금 환헤지 0% 실상은…진땀 뺀 이창용 한은 총재[경제블로그]

    지난 2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새해를 맞아 한은 기자실을 방문해 출입 기자들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한은과 정부가 연말 원달러 환율을 낮추기 위해 시장에 고강도 개입을 한 이후여서 그런지 환율 관련 질문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 총재는 “캐나다 연기금은 달러표시 채권을 발행하고 있는데, 이게 달러 채무로 잡혀 실질적으로는 자연적으로 20% 정도 환헤지 효과(환율을 낮추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면서 “우리 국민연금도 최근 해외채권 발행을 검토 중이라 하는데, 이것도 외환시장 영향을 줄이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발언이 국민연금에 환헤지를 권고하는 취지로 읽히면서 한은 측에서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는 후문입니다. 달러표시 채권이란 달러로 발행하고 상환되며, 이자도 달러로 지급하는 채권을 말합니다. 채권은 정부나 은행 같은 금융기관, 회사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돈을 빌리고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원금과 함께 이자를 상환하는 채무증서예요. 즉 외환당국이 달러 표시 채권을 발행하면 달러가 시중에 공급되는 효과가 있는 거죠. 그러면 달러 가치가 낮아져 원화 가치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 총재가 말한 캐나다 연기금은 이런 방식을 통해 환율을 낮추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겁니다. 이 총재가 언급한 캐나다연기금은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 Investments·CPPI)를 말합니다. 캐나다 정부는 1997년 연금개혁을 통해 CPPI를 설립했죠. 두 차례의 연금개혁을 통해 현재 보험료율은 11.9%, 소득대체율은 33.3%입니다. 우리나라 국회에서 논의되는 국민연금 개혁안(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3~45%)에 비해 한참 모자라는 수준이죠. 캐나다 연기금 규모 역시 국민연금(1239조원)의 60%인 약 700조원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캐나다연기금은 고갈 이슈가 없다니 놀라운데요. 이는 바로 높은 수익률 때문입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발전전문위원회에 따르면 2013~2022년 10년간 캐나다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10.01%로 국민연금(4.70%)에 비해 2배 이상이었습니다. CPPI는 캐나다달러 뿐 아니라 미국 달러, 유로 등 기축통화 채권을 발행해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수익률 극대화 전략을 씁니다. CPPI가 발행한 채권의 누적 규모는 약 1310억 캐나다달러(약 137조원)에 달한다고 하네요. 2050년엔 CPPI가 3500조원을 굴리는 ‘초대형 연기금’이 될 거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이 총재가 말한 국민연금의 달러 표시 채권 발행 여부는 현재 재정경제부, 보건복지부, 한국은행, 국민연금 등으로 구성된 4자 협의체에서 국민연금 ‘뉴프레임워크’를 꾸려 논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국민의 쌈짓돈 유용 논란을 뒤로 하고 관련 논의가 진지하게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일은 늘고 사람은 없다”… 말하지 않은 장관, 곪아 가는 복지부 [세종 B컷]

    “일은 늘고 사람은 없다”… 말하지 않은 장관, 곪아 가는 복지부 [세종 B컷]

    “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사람은 너무 부족하다. 그 한마디 하기가 그렇게나 힘드셨습니까.” 지난 16일 대통령 업무보고 이후 보건복지부 익명게시판이 끓어오르고 있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은 “복지부가 일이 많아서 그럴 텐데 현원이 정원을 초과했네요”라고 물었다. 정은경 장관은 “코로나 때 별도 정원을 받았는데 그 인원이 그대로 남아 초과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그런 사연이 있군요”라고 말한 뒤 잠시 침묵했고, 이내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복지부 직원들이 기대했던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익명게시판에는 ‘전 국민 앞에서 복지부 인력 상황은 문제없다고 천명한 것 같아 속상하다’, ‘대통령이 업무가 늘 수밖에 없는 조직이라고 언급까지 했는데,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한마디 하는 간부가 없었다’는 성토가 잇따랐다. 하루 사이 게시판에는 70여 개가 넘는 비판 글이 올라왔고, 간부들은 상황을 장관에게 전달하기 위해 대책 회의까지 열었다. 이후 정 장관은 일부 실무 직원들과 간담회를 했지만 논의 내용은 직원들에게 공유되지 않았다. ‘조직의 미래에 희망이 없다.’ 한 직원은 게시판에 이렇게 적었다. 이런 반응이 나온 배경에는 복지부 내부에 누적된 극심한 피로가 있다. 복지부는 현재 집단 번아웃과 우울증을 앓는 중이다. 자체 조사에서 직원 10명 중 7명 이상이 정신건강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과중한 업무에 비해 인력은 다른 부처보다 적은 ‘고강도 저인력 구조’가 장기간 누적된 결과다. 복지부의 업무 범위는 ‘요람에서 무덤 이후까지’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방대하다. 코로나19 대유행, 의료 현안 대응, 연금개혁 등 대형 정책 과제가 잇따르며 사실상 5년째 비상근무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고독사 대응과 같은 핵심 사회 문제를 고작 지역복지과 직원 4명이 담당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승진 적체까지 겹쳤다. 2022년 이후 5급 사무관 승진은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 사람이 3배에 가까운 업무를 떠안지만 상응하는 보상이 뒤따르지 않는 구조다. 직원들 사이에서 “정신과를 다니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한 직원은 익명게시판에 “죽을 것 같은, 더는 견디기 힘든 업무 상황으로 내몰리지 않고 일할 수 있을지 두렵다”고 적었다. 달아날 곳이 휴직밖에 없다 보니 정원 대비 휴직자 비율이 17.4%에 이른다. 정부 부처 평균(10.3%)의 1.7배다. 한 과장급 공무원은 “업무가 과중한 데다 지쳐 휴직한 이들이 많아 남은 인원이 숨 쉴 틈 없이 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대통령에게 복지부가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지 어떻게 다시 알릴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속사정을 알릴 길 없이 ‘정원보다 현원 많은 부처’로 낙인찍혔다는 좌절감이 팽배하다. 한 게시글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오늘도 우리 부처는 잘 돌아갑니다. 직원 개개인의 책임감 덕분에. 누군가의 추가 노동과 보이지 않는 눈물 위에서.”
  • 한국은 아침에 발상, 저녁 뚝딱 발의… ‘영국의 91배·독일의 67배 ‘입법 홍수’[홍희경의 탐구]

    한국은 아침에 발상, 저녁 뚝딱 발의… ‘영국의 91배·독일의 67배 ‘입법 홍수’[홍희경의 탐구]

    법안 발의 2만건… 20년 만에 10배↑한국 국회 입법 신기록 경신 중#1 ‘빨리빨리’ 문화가 여전히 잘 작동되는 기관이 있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식의 생산량 극대화를 추구하는 공간이 있다. 대한민국 국회다. 국회의 법안 발의건수는 20년 만에 10배 증가했다. 즉 16대 국회(2000~ 2004년)에서 2507건이던 법안 발의건수가 21대 국회(2020~2024년)에는 10.3배인 2만 5858건으로 17일 집계됐다. 22대 국회에선 이 최고기록이 다시 깨질 기세다. 앞서 국회미래연구원은 20대 국회(2016~2020년) 기간 주요국 의회의 법안 발의건수를 한국과 비교했는데 이때 이미 한국 의원 1인당 접수법안은 80.5건으로 영국(0.88건)의 91배, 독일(1.2건)의 67배였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가 법안 한 건을 심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7대 23분, 18대 19분, 19대 18분, 20대 13분으로 줄었다고 파악했다. 법안 물량 공세 속에 법안을 제대로 살필 재간이 없는 것이다. ‘입법홍수’가 지속되는 국회의 모습은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한다. 정부 수립 77년이 지났는데도 매년 수천 건의 새 법안이 필요할 정도로 법체계가 불안정한 것인가. 혹시 법의 양에만 신경 쓰느라 품질을 방관하고 있는 것인가. 법을 이토록 쏟아내는데도 공정성·신뢰 지수는 낮고 갈등 지수는 높다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 그 답을 암시한다. 선진화법·의원 평가가 ‘주요 요인’문턱 낮은 ‘입법 컨베이어 벨트’#2 법안 폭증의 원인을 추적하면 몇 가지 제도적 요인이 보인다. 우선 법안 발의에 의원 10명의 서명만 갖추면 될 정도로 입법 문턱이 낮다. 300석 국회에서 3.3%의 동의로 법안을 발의할 수 있는 것으로 ‘아침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저녁에 법안이 나온다’는 우스개가 국회 주변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중의원에서 예산 수반 법안을 발의하려면 50명 이상 찬성이 필요한 일본, 입법 영향 분석과 재정 소요 추계가 법안 발의에 동반돼야 하는 독일과 다른 지점이다. 2012년 도입한 국회선진화법도 의도치 않게 ‘죽은 법안도 되살리는’ 효과로 이어졌다. 국회선진화법의 ‘안건 자동상정’ 제도는 상임위에 회부된 법안이 일정 기간 뒤 자동으로 전체회의에 오르게 했다. 소수당 법안이 심사대에 오르지도 못한 채 폐기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취지였지만, 법안을 발의하는 국회의원 입장에서 보면 상정되지 못할 부담을 덜어 주는 효과가 생긴 것. 실제 18대 국회(2008~2012년) 의원입법 발의건수는 1만 1191건이었으나 국회선진화법 시행이 동반된 19대 국회(2012~2016년)에선 1만 5444건이 되더니 20대부터 법안 발의건수가 2만건을 넘기 시작했다. 비정부기구(NGO)의 의원 평가나 정당 공천 심사가 ‘법안 발의건수’를 주요 지표로 삼으면서 양산 유인이 더 커졌다. 질보다 양이 중요해지자 꼼수도 늘었다. 사회적 이슈가 터지면 의원실마다 비슷한 법안을 무더기로 발의한 뒤 상임위에서 합쳐 통과시키는 식이다. 피해자 이름을 붙인 ‘네이밍 법안’은 이 관행의 산물로 꼽힌다. 피해자들 이름 딴 법안 범람 지속‘네이밍 법안’ 위헌·실효성 논란#3 스쿨존 사망사고에 대해 가중처벌하는 민식이법, 음주운전 재범을 가중처벌하는 윤창호법, 어린이집 폐쇄회로(CC)TV 의무설치를 이끌어 낸 하준이법, 위험업무 외주화를 제한한 김용균법, 양육의무 불이행 부모의 상속권을 제한한 구하라법…. 20대 국회 이후 피해자 이름을 딴 법안들이 범람했다. 비극적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을 때 의원들이 비슷한 내용의 수십개 법안을 발의하고, 이를 피해자의 이름을 붙인 네이밍 법안으로 통칭한 뒤 법률로 탄생시킨 사례가 늘면서다. 그러나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는 법이다. 네이밍 법안의 상당수가 위헌 논란이나 실효성 논란을 동반하는 부작용을 노출했다. 세 차례나 위헌 결정을 받은 윤창호법이 대표적이다. 2018년 9월 부산에서 만취 운전자에게 치여 윤창호 씨가 숨진 사고로 여론의 분노가 커지자 국회는 그해 12월 18일 음주운전 또는 음주측정 거부를 2회 이상 한 재범자를 가중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가중처벌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렸고, 시행 3년 만에 윤창호법의 핵심 조항은 효력을 상실했다. 자신이 발의한 법률이 위헌 결정을 받아도 해당 의원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는 드물다. 법안의 품질이나 실효성, 법체계와의 정합성보다 현안 이슈에 재빠르게 올라타 ‘네이밍 법안 입법의 주역’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해진 배경이다. 부실 입법에 대해선 “유권자가 다음 선거에서 심판할 것”이라는 명분이 있지만, 유권자가 개별 법안의 위헌 여부까지 따져 가며 투표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법안은 쏟아지고 위헌 결정은 반복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고착됐다. 구조·시스템 설계 없이 규제만 강화처벌하려는 한국, 예방하는 미국#4 깊이 들여다보면 문제는 ‘네이밍 법안’ 자체가 아니다. 피해자의 비극과 사회적 공분 과정에서 드러난 구조적 문제를 ‘빨리빨리’ 처리해 버리려는 한국 입법의 조급증이 문제다. 이 조급증은 대부분의 네이밍 법안이 처벌 및 규제 강화로 귀결되는 양상으로 드러난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시스템을 설계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현장의 목소리를 깊게 들어야 하지만, 형량을 올리는 방향으로 몇 개 조항을 고친 법안을 제출하는 것이다. 미국에도 피해자 이름을 딴 네이밍 법안이 있다. 1996년 텍사스주에서 아홉 살 앰버 해거먼이 납치·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앰버 경고’, 1994년 성범죄 전과자에게 살해된 일곱 살 메건 캉카의 이름을 딴 ‘메건법’이 대표적이다. 앰버 경고는 아동 납치가 발생했을 때 지역방송국과 경찰이 손잡고 TV와 라디오, 전광판으로 즉시 범죄 정보를 전파하는 조기 경보 시스템을 말한다. 주 단위 시범운영을 거쳐 2003년 연방법이 됐는데 26년 동안 1100명 이상 납치 아동을 구출하는 성과를 냈다. 메건법은 성범죄 신상정보를 지역사회에 공개하는 등록·감시 시스템으로, 뉴저지주에서 시작해 1996년 연방법으로 확대됐다. 결국 한국은 ‘엄벌’에, 미국은 ‘예방’에 집중하는 것이 차이다. 한국은 다음 가해자를 더 세게 처벌하려고 피해자의 이름을 빌리는 반면 미국은 다음 피해자가 나오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피해자 이름을 남긴다. 엄벌주의 입법은 ‘다음 피해자’를, 예방 중심 입법은 ‘피해의 종언’을 목표로 삼는 셈이다. 실제 판결 땐 기존 법 체계와 충돌상징적 엄벌, 정치적 재활용 반복#5 엄벌을 내세우면서도 네이밍 법안은 정작 ‘다음 가해자’를 강하게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법 조문에선 엄벌을 규정하지만, 실제 판결을 하려고 하면 기존 법 체계와 충돌하는 ‘상징입법’의 성격이 강해서다. 상징입법이란 실질적 효과보다 사회적 메시지 전달에 목적을 둔 입법을 뜻한다. 이를테면 민식이법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차로 어린이에게 상해를 입혔을 때 징역 1~15년의 처벌 규정을 두었다. 반면 타인에게 고의로 상해를 가하는 일반 특수상해죄에는 징역 1~10년형을 내릴 수 있게 법에 규정돼 있다. 교통사고 가해자인 과실범의 최고형이 고의범보다 높은 기형적 구조로,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입법 과정에서 있었지만 실제 표결에서 이를 문제 삼아 본회의에서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여야를 통틀어 1명뿐이었다. 그러나 실제 형량은 조문과 달랐다. 민식이법 시행 이후인 2021년부터 2024년 4월까지 민식이법 위반 1심 판결 373건을 분석한 결과 실형 선고는 22건(5.9%)에 그쳤고 88%는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였다. 법원이 과실범에게 고의범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양형 논리가 필요하지만, 현행 형사사법 체계와 충돌하는 이 논리를 정당화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신산업 규제 혁신·중장기 과제 표류‘빨리’ 입법, ‘느릿느릿’ 구조개혁#6 법이 현장에서 실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은 국회의원에게 하나도 불리하지 않다. 오히려 입법 단계에선 “강력한 처벌법을 만들었다”고 홍보하고, 실효성이 없으면 국정감사에서 행정부를 추궁하고, 예산심의에서 관련 예산 확충을 요구할 수 있다. 부작용이 계속돼야 해당 사안으로 입법·감사·예산 세 영역에서 정치적 성과가 축적되는 구조다. 문제를 뿌리 뽑자는 주장은 국회의 일감 순환 구조를 끊는 악수로 취급된다. 그러나 조항 몇 개를 고쳐 엄벌과 규제를 강화하는 ‘빨리빨리’ 입법에 길들여진 의회일수록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관련된 중장기 과제를 후순위로 미루게 된다. 신산업 규제 혁신이나 연금개혁처럼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지만 중요한 입법이 표류하는 이유다. 법은 차고 넘치는데 정작 필요한 입법은 미뤄지는 현실에서 법안 발의 건수 늘리기에 골몰하는 국회가 과연 국민에게 이로운지 질문하게 된다. 홍희경 논설위원
  • 여의도에서 ‘지구당 부활’ 외친 남인순…4선 중진의 기득권 내려놓기 왜 [주간 여의도 Who?]

    여의도에서 ‘지구당 부활’ 외친 남인순…4선 중진의 기득권 내려놓기 왜 [주간 여의도 Who?]

    매주 금요일 [주간 여의도 Who?]가 온라인을 통해 독자를 찾아갑니다. 서울신문 정당팀이 ‘주간 여의도 인물’을 선정해 탐구합니다. 지난 일주일 국회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정치인의 말과 움직임을 다각도로 포착해 분석합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자리 잡으려면 지역당 설치가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이 권리당원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1인 1표제’ 당헌·당규 개정을 추진하면서 지구당 부활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당원의 목소리가 더 커지는 만큼 당원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고 관리할 지구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돈먹는 하마’, ‘정치부패’의 딱지가 붙은 지구당 대신 ‘지역당’으로 명칭을 바꿔 정치를 업그레이드시키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당원 주권과 맞물려 진지한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어려운 논의를 이끌 선봉에 4선 중진 남인순(서울 송파병) 민주당 의원이 섰다. 남 의원은 5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1인 1표제를 하려면 당원 활동을 할 수 있는 그릇(지구당)을 만들면서 해야 되는 부분이 있다”며 “그러나 지금은 법적으로 지역 단위의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 의원은 “현역이냐 비현역이냐 상관없이 공정한 차원에서 지역정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그간의 정치 상황 때문에 우선 순위에서 제외된 것 같아 친전을 보내 지역당 설치를 이야기를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남 의원은 최근 민주당 소속 의원들에게 ‘정당 민주주의 강화를 위해 드리는 제언’이라는 제목의 친전을 전달했다. 남 의원은 친전에서 “정당은 민주 국가 시스템을 유지하는 핵심 기제이고, 민주주의 방어와 성숙을 위해 정당 민주주의는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구당 폐지 이후 지역 차원의 풀뿌리 정당 활동을 위한 법적 통로가 사실상 부재했다”며 “지역에서 당원들을 교육시키고 관리할 지역당이 필수적이다. 이번 기회에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친전을 보낸 뒤엔 지도부 방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구당은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 이후 폐지 여론이 일었다. 당시 초선 의원이었던 오세훈 시장은 일명 ‘오세훈법’을 통해 지구당 폐지를 주도했고 2004년 해당 법안은 통과됐다. 이후 원외 당원협의회는 정당의 공식 조직으로 인정받지 못해 사무실을 둘 수도 없고 후원금 모집은 물론 당원교육과 여론 수렴 등의 업무도 수행할 수 없게 됐다. 원외 인사들의 정치적 활동 공간이 사라진 셈이다. 이후에도 지구당을 부활시키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왔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남 의원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을 맡아 간사인 김영배 의원과 함께 지구당 부활을 주도하기도 했다.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도 지구당 부활에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회계 투명성 확보와 중앙정치 예속화를 방지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가정 하에 ‘찬성’ 의견을 보내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여야 의원들의 무관심과 반대로 법안 통과는 결국 무산됐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해도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 내려놓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남 의원은 포기하지 안고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지구당 설치 3법’(정당법·정치자금법·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재도전에 나섰다. ‘솔뫼정치학교’ 진행…당원 교육 실천與연금개혁특별위원장 맡아 미래 준비‘송파 똑순이’로 잘 알려진 남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83건의 법안을 발의해 40건(48.2%)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바 있다. 평균 법안 통과율(30.3%)보다 약 18% 포인트 높은 수치로 여권에선 검증된 정책통으로 평가받는다. 남 의원은 해마다 ‘솔뫼정치학교’를 개강해 당원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4선 중진의 남 의원은 수도여자사범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으나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강제 퇴학당했다. 이후 세종대학교에 재입학했으며 성공회대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여성 인권에도 높은 관심을 가진 남 의원은 인천여성노동자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들을 거치며 30년간 여성운동을 했다. 19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입성한 남 의원은 20·21·22대 총선에서 험지로 통하는 서울 송파병에 내리 당선되면서 어느덧 신뢰를 주는 4선 중진의원이 됐다. 민주당 여성위원장과 원내부대표,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에 이어 이재명 대표 시절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을 지냈다. 지금은 민주당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 “저출산, 돈 푸는 걸로 안 돼… 사회경제구조·인식 모두 바꿔야”[월요인터뷰]

    “저출산, 돈 푸는 걸로 안 돼… 사회경제구조·인식 모두 바꿔야”[월요인터뷰]

    일본 저출산 대책日, OECD 기준 관련 예산 23위 젊은 세대 취약한 안전망 절감육아도 가족 돌봄서 사회 돌봄을한국 현주소는예산은 OECD 평균 못 미치고여성에게 육아 부담 집중 여전급속한 경제성장, 저출산으로지방 이탈과 기업인력난이 지방 기업 기회 될 수도매력 느낄 근무 환경 만들어야기업 환경, 청년 삶에 더 큰 영향남은 과제는日개호보험, 고령화 대응했지만줄어드는 아이 흐름 되돌리려면사회가 공감하고 인식을 바꿔야“일본의 저출산 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1.9%, 한국은 1.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3%)에도 못 미칩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사회보장 전문가 야마사키 시로(71) 일본 내각관방 전세대형사회보장구축본부 총괄사무국장은 2일 도쿄 나가타초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력하고 있는데 효과가 없다는 건 착각”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두 나라 모두 저출생 문제에 “아직까지 충분히 노력한 적이 없다”는 일침이다. 야마사키 국장은 25년 전 일본의 ‘개호보험’ 제도를 설계·도입해 ‘미스터 개호보험’으로 불린다. 지금까지 일본의 저출산 대책 로드맵을 마련해 온 그는 일본 정부의 정책 컨트롤타워이자 총리의 핵심 참모 조직인 내각관방에서 사회보장 개혁과 인구 감소 대책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은 OECD에서도 가족 정책 예산이 적은 편”이라며 “급속한 경제성장에 사회의 제도나 의식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저출산의 큰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돈을 푸는 걸로는 안 된다. 사회구조, 일하는 방식, 인식을 모두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본의 저출산 대책은 어디까지 진행됐나.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건 1990년대 후반부터다. 하지만 개호보험처럼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일관된 정책으로 추진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정권이나 각 부처가 따로따로 대응한 게 현실이다.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고령화 대책에 비하면 예산 투입은 충분하지 않았다. OECD 기준 일본은 23위로 평균에도 못 미친다. 한국은 그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 -그렇게 낮은가. “가족·출산 관련 정책을 오랫동안 이어 온 프랑스나 스웨덴은 GDP의 3% 이상을 관련 정책에 투입한다. 반면 일본은 1.9%, 한국은 1.6%에 그친다. 경제 규모 안에서 이 분야에 얼마나 투자하느냐가 관건이다. 이 점에서 일본도 한국도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저출산 문제는) 최우선 국가 프로젝트로 다뤄져야 한다. 이에 일본은 2023년부터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에 착수했다.” -한때 모범이라던 프랑스도 최근 출산율이 전후 최저(1.62)로 떨어졌다. “합계출산율(TFR)은 ‘겉으로 드러난 변화’와 ‘구조적인 변화’를 구별해서 봐야 한다. 코로나19 같은 요인으로 결혼과 출산이 미뤄지면 일시적 하락이 생기지만 곧 회복된다. 이건 ‘시기 조정’ 효과다. 문제는 구조적 요인이다. 그런 변화는 단기 변동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변화를 의미한다. 프랑스도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고령화 대책에서 저출산 문제로 관심을 옮기게 된 계기는. “2000년 개호보험 도입으로 일본의 고령화 대책은 큰 진전을 이뤘다. 그때는 ‘이제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겠다’는 성취감을 느꼈다. 그러나 내각부에서 경제·재정 정책을 맡고 있던 2008년 리먼쇼크가 터졌고 그때 확신했다. 고령화 대책만으로는 국민의 안심을 지킬 수 없다고. 젊은 세대의 안전망이 너무 취약하다는 걸 절감했다. 그 경험이 나를 저출산과 청년 문제로 이끌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확신이었나. “개호보험을 만든 이유도 같았다 장기·중증화되는 돌봄을 가족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가족은 지치고 당사자도 고통받았다. 그래서 ‘가족 돌봄’에서 ‘사회 돌봄’으로 방향을 바꿨다. 육아도 같다. 예전엔 지역사회나 가족이 함께 키웠지만 지금은 젊은 부부가 고립된 채 육아를 한다. 특히 여성에게 과중한 부담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육아도 ‘사회 전체가 함께 지는 책임’으로 봐야 한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한국은 저출산이 너무 빠른 속도로 진행돼 사회가 대응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일본과 한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고 고용구조가 크게 바뀌었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도 육아 부담은 여전히 여성에게 집중돼 있다. 국민 의식이나 제도가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다.” 야마사키 국장은 “일본과 한국 모두 급속한 경제성장과 고용구조 변화 속에서 국민 의식과 제도 개혁이 뒤처졌다”며 “경제가 성장해도 여성을 뒷받침하는 가치관과 시스템이 부족해 여전히 ‘남성만 일하는 사회’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경제성장의 성공이 역설적으로 저출산 구조를 낳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지방의 인구 감소 문제도 심각하다. 무엇이 가장 큰 과제인가. “젊은 세대, 특히 여성의 ‘지방 이탈’이다. 도쿄로 가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훨씬 혹독하다. 물가가 높고 가처분소득은 전국에서도 낮은 편이다. 삶에 여유도 없다. 그럼에도 지방으로 돌아가지 않는 데는 지방 사회 내부의 문제도 있다. 과거엔 ‘도시 집중을 어떻게 분산시킬까’가 논점이었지만 이제는 ‘지방이 스스로 변하려 하는가’를 물어야 할 단계에 와 있다.” -지방이 변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지방에도 일자리는 있다. 하지만 젊은 여성들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은 아직 적다. 이는 지방 기업에 위기이자 기회다. 지금처럼 인력난이 심각한 시기야말로 직장 문화를 바꾸고 젊은 여성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근무 환경을 만들어야 할 때다. 20~30대는 인생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낸다. 결국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기업 환경이 젊은 세대의 삶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기업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말인가. “그렇다. 일본과 한국은 자유주의국가다. 정부가 민간기업에 직접 개입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 스스로 의식 개혁을 해야 한다. 젊은 남녀는 단순한 노동력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키우는 생활자다. 이 시점을 잊는다면 기업이 단기적 이익을 올려도 장기적으로는 손해를 본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기업도 사회도 지속될 수 없다.” -연금 문제를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을 어떻게 보나. “연금은 ‘노인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미래의 나 자신을 위한 제도’다. 젊을 때 낸 돈으로 지금의 고령자를 지탱하고 언젠가 다음 세대가 자신을 지탱하는 순환 구조. 그게 연금의 본질이다. 누구나 지금은 젊지만 영원히 젊진 않다. 그러나 저출산 대책이 작동하지 않으면 이 순환이 무너진다. 결국 연금개혁만으로는 불안을 해소할 수 없다.” -개호보험 도입 25년, 일본 사회는 어떻게 달라졌나. “2010년 조사에서 개호보험을 ‘좋은 제도’라고 평가한 응답이 50%를 넘었다. 만약 이 제도가 없었다면 돌봄 부담은 모두 가족에게 돌아가 가정이 큰 어려움에 처했을 거다. 지금 개호보험은 일본 사회에 완전히 정착한 제도가 됐다. 다만 개호 인력 부족은 여전히 심각하다. 젊은 세대를 포함한 인력 확보와 ‘일하는 방식 개혁’이 시급하다.” -남은 과제가 있다면. “사회구조를 바꾸려면 돈만 나누는 정책으로는 안 된다. 사회의 구조 그리고 사람들의 의식이 동시에 변해야 한다. 고령화 문제든 저출산 문제든 결국 사회 전체가 그 구조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행동할 때 길이 열린다.” -결국 해답은 ‘사람’에 있다는 말로 들린다. “맞다. 다만 고령화보다 저출산은 훨씬 복잡한 문제다. 정책 설계자의 시각에서 고령화는 ‘늘어나는 노인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조정’의 문제다. 쉽지는 않지만 방향은 비교적 분명하다. 그러나 저출산은 ‘줄어드는 아이의 흐름 자체를 되돌리려는 시도’다. 사회현상을 거슬러 바꾸는 일이니 훨씬 어렵다. 정부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사회 전체가 공감하고 인식을 공유하며 마음가짐을 바꿔야 한다.” ■야마사키 국장은 1954년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나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했다. 후생노동성 출신으로 40여년간 사회보장·연금·저출산·고령화 정책 전반을 다뤄 온 일본의 대표적 인구 정책 전문가다. 2010년 후생노동 관료로는 처음으로 총리 비서관을 지냈으며 2018~2021년 리투아니아 대사를 역임했다. 이시바 시게루 내각에서는 총리 직속 사회보장·인구문제 자문역을 맡았다. 일명 ‘총리의 브레인’으로 불리는 자리다.
  • 복지부 10명 중 7명 번아웃인데…이유도 모를 ‘이틀 국감’ 20년째

    복지부 10명 중 7명 번아웃인데…이유도 모를 ‘이틀 국감’ 20년째

    “국정감사 전날까지 포함해 사흘 밤을 새벽 2시까지 대기했습니다. 다른 부처는 현안이 있어도 하루만 하는데, 왜 복지부만 이틀에 걸쳐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보건복지부는 기획재정부와 함께 19개 중앙부처 중 드물게 이틀간 국감을 치르는 부처다. 기재부는 경제·재정과 조세정책으로 분야를 구분해 각각 하루씩 진행하지만 복지부는 보건·복지 전 부서가 이틀간 감사받는다. 종합감사도 별도로 이어진다. 전체 조직이 ‘이틀 국감’을 소화하는 유일한 부처다. 복지부의 ‘이틀 국감’ 관행은 2005년부터다. 한 퇴직 공무원은 16일 “언제부터인지 국감이 이틀로 늘었지만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새로 배정된 보좌진 역시 “왜 복지부만 이틀이냐”며 고개를 갸웃한다. 이스란 복지부 1차관은 국감 전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과 김미애 국민의힘 간사를 만나 일정 단축을 요청했고, 유현희 국가공무원노조 복지부 세종지부장도 직원들의 염원을 담은 손 편지를 전달했지만 허사였다. 이틀 국감이 불가피하다면 보건·복지로 분야를 나눠서 하거나 하루는 복지부 본부, 다음 날은 질병관리청 등 산하기관을 감사하는 방식이라도 검토해 달라고 제안했으나 무산됐다. 복지부 내부에서는 허탈함이 크다. 한 관계자는 “직원들이 새 장관에게 가장 먼저 건의한 게 ‘국감을 하루로 줄여 달라’는 것이었다”며 “국회도 업무 과중을 알지만 관행이 고착돼 답답하다”고 했다. 복지부가 침묵을 깨고 국감 축소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 구성원 정신건강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분당서울대병원과 함께 직원 642명을 대상으로 ‘2025년 마음건강 진단’을 실시한 결과 10명 중 7명 이상이 정신건강 위험군, 절반 이상(55.3%)이 번아웃 상태로 분류됐다. 코로나19 대응, 의정갈등, 연금개혁 등 초대형 현안이 해마다 터진 데다 ‘고강도·저인력’ 구조가 굳어진 탓이다. 한 직원은 “이틀 국감은 단순히 하루 더 밤을 새운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국회 요구자료 대응부터 사후 보고까지 업무가 배로 늘어난다. 정신적,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랐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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