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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인 3명 중 1명 우울증 경험…“신앙 약해서”라는 편견도 같은 비율(5+표)

    교인 3명 중 1명 우울증 경험…“신앙 약해서”라는 편견도 같은 비율(5+표)

    기독교인 3명 중 1명은 지속적인 우울감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비슷한 비율의 교인들이 우울증을 신앙심 부족이나 개인의 나약함으로만 판단하고 있어, 교회 공동체 내 정신건강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초 목회데이터연구소가 한국교회탐구센터에 의뢰해 실시한 ‘기독교인의 우울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독교인(교회 출석자) 3명 중 1명은 최근 1년 사이 2주 이상 지속적인 우울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우울증을 인식하고 있어도 이를 목회자나 성도들에게 알리겠다는 응답은 32%에 그쳤다. 교회 안에 우울증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여전히 마음 편히 밝히기 어려운 주제라는 의미다. 아울러 기독교인의 29%는 ‘우울증은 본인이 나약하기 때문’이라고 봤고, 28%는 ‘매우 영적인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고 답했다. 우울감을 사회 병리 문제가 아닌, 개인의 나약함과 영성 부족으로 치부한다는 뜻이다. 우울 증상이 있는 교인마저 41%가 ‘우울증은 나약함 때문’이라고 답했고, 34%는 ‘영적인 사람은 걸리지 않는다’고 응답해 스스로를 자책하는 경향도 두드러졌다. 교회 내 우울증 성도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있다는 응답도 29%에 달했다. 우울의 주된 원인으로는 경제 문제(46%), 건강 문제(36%), 가족 문제(32%), 취업·직장·학업 스트레스(31%) 등의 순이었다. 우울증이 영적 영역이 아닌 현실의 삶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수치다. 교회 공동체가 위기 극복의 자원이 될 가능성도 확인됐다. 소그룹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교인의 88%가 정서적 지지 대상이 있다고 답했고, 교회 내 상담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응답도 79%에 달했다. 우울 해소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는 운동·산책 등 신체 활동(도움도 83%)과 기도·예배 등 신앙 활동(78%)이 꼽혔다. 다만 목회자에게 상담을 요청했을 때의 도움도(63%)는 일반 교인에게 털어놓았을 때(70%)보다 오히려 낮아, 목회자 상담의 실효성에 대한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 선교사 자녀가 주한 가나대사 된 기막힌 사연

    선교사 자녀가 주한 가나대사 된 기막힌 사연

    서울 용산구 주한 가나 대사관. 집무실에 앉은 남자의 얼굴은 영락없는 한국인이었다. 최고조(Kojo Choi·48) 주한 가나 대사. 가나식 이름 ‘코조 초이’를 한국식으로 뒤집자 우연히도 ‘절정’을 뜻하는 단어가 됐다. 최 대사는 과거 정의용 전 외교부 장관과의 식사자리에서 이 조합을 알게 됐다고 한다. 당시 정 전 장관은 ‘코조 초이’라고 적힌 최 대사의 영문 명함을 보고 “이름을 참 잘 지었다. 최고조, 이건 한국 이름”이라며 감탄했다고. 이를 계기로 최 대사는 한국에서 ‘최고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1977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최 대사는 가나에서 통신과 핀테크 사업으로 성공한 기업인 출신이다. 가나의 다섯 대통령 중 네 명의 자녀와 친분을 쌓았고, 역대 대통령들의 자문과 통역을 맡기도 했다. 최 대사는 가나 민정 출범 이후 첫 아시아계 대사로 임명됐다. 춘천 소년, 30여년 만에 대사가 되어 돌아오다선교사인 아버지가 가나행을 결심했을 때, 중학교 2학년을 마친 그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낯선 아프리카 땅, 학교에서 유일한 동양인. 어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최 대사는 이를 차별이나 편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나 사람들이 저에게 보여줬던 반응은 호기심이었습니다. 호기심으로 다가온 그 친구들의 마음 안에는 정말 저를 더 알고 싶어 하고, 친해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나 사회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현지 음식을 손으로 먹기도 하고, 친구들과 같은 그릇에서 음식을 나눠 먹으며 유대감을 쌓았다. “저는 가나 속 한국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아닌, 가나인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고, 그들 중 하나로 살았습니다.” 최 대사는 2009년 척수종양으로 한국에서 수술을 받았다. 봉사에 필요할 것 같아 회복 기간 동안 침술을 배웠다. 관련된 해외 자격증도 땄다. 이것이 기회가 되어 가나 대통령과 영부인들의 건강 관리를 도왔고, 그들과 더 가까운 관계를 맺게 됐다. “한국과 가나는 놀랍게도 정말 닮았다”30여년을 가나에서 살며 두 나라를 모두 품게 된 최 대사는 한국과 가나의 공통점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신앙심이다. “가나 국가(國歌)를 보면 ‘God bless our homeland, Ghana’(우리 조국 가나에게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로 시작합니다. 대한민국 애국가도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죠. 우리보다 훨씬 더 위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는 신이 있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시작점이 똑같죠.” 두 번째는 가족 중심의 사회 구조다. “왕이 있는 곳엔 문화가 있고, 그 문화가 있는 곳엔 항상 가족의 가치가 들어가 있어요. 한국은 왕조를 거쳐 나라가 이어져 왔고, 가나도 아샨티 왕국이라는 역사를 갖고 있죠. 그래서 가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공통점 때문일까. 최근 가나에서 한류 영향력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대사로 임명된 후 그는 SNS에서 가나 현지 여성들에게 ‘아저씨’, ‘오빠’로 불린다고 한다. 가나 공영 TV는 한때 남미 드라마를 주로 방영했지만, 지금은 한국 드라마로 편성표가 채워진다. 주가나 한국대사관이 매년 여는 K팝 대회에는 수많은 참가자가 몰린다. 한류를 보며 ‘가류’를 꿈꾼다최 대사는 가나에도 한류에 버금가는 잠재력이 있다고 봤다. “10년 전 ‘아존토(Azonto)’라는 춤이 전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빨래나 요리를 하다가 일상 속 동작을 춤으로 만든 겁니다. 만약 그때 가나에 한국과 같은 콘텐츠 제작 능력과 디지털 인프라가 있었다면 한류보다 ‘가류’(Ghana Wave)가 먼저 터졌을 겁니다.” 최 대사는 가나의 원석 같은 재능이 한국의 체계적인 시스템과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문화 교류를 넘어 경제 협력 역시도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한국도, 가나도 관계 중심 사회...상호 이익될 만한 모델 찾아야” 최 대사는 한국 기업과 정부, 그리고 청년에게 아프리카 진출을 적극 권했다. 청년들에게는 장기적 안목을 주문했다. 그는 “당장 돈을 벌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전문가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3년 정도 문화와 언어를 배우며 동료와 친구를 만들면 길이 보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기업들에게는 컨소시엄 방식을 제안했다. “한 기업이 들어가서 모든 것을 다 하려니 힘들죠. 원료 공급, 제조, 포장 등 세분화된 중소기업들이 함께 들어가면 가나 정부 투자청과 아프리카 자유무역지대를 활용해 재미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는 희토류 등 핵심 자원 확보를 위한 장기적 접근을 강조했다. 그는 과거 한국의 실패 경험을 환기시켰다. “예전 한국이 광물 사업으로 아프리카에 갔을 때 실패한 이유는 목표를 정하고 서둘렀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많고 서두르면 관계도 흐트러지고 사고도 납니다.” 그러면서 최 대사는 거듭 ‘관계’를 강조했다. “한국도 가나도 관계 중심 사회예요. 함께 상호 이익이 될 수 있는 모델을 찾아보는 발걸음이 필요합니다.” 2027년, 한국과 가나 협력의 ‘최고조’를 향해최 대사의 이런 철학은 그의 임기 목표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27년 한-가나 수교 50주년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50주년은 ‘골든 주빌리’(Golden Jubilee)로 불리며 가장 값지고 귀한 해입니다. 그동안 걸어온 여정에 대한 축하와 감사,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50년의 시작을 의미하죠. 내후년인 2027년부터는 한국과 가나가 서로를 위한 동반자로 갈 수 있는 그림을 만드는 것이 저의 첫 번째 임무입니다.” 그는 이를 위해 이재명 대통령과 존 마하마 가나 대통령의 상호 국빈 방문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양국 정상이 만나 문화 교류, 사업 발전 노하우 공유, 광물 개발 협력을 논의한다면 자연스럽게 동반자 관계로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작품 완성은 창작의 시작”… 예술 한계 넓힌 ‘현대미술의 황제’[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작품 완성은 창작의 시작”… 예술 한계 넓힌 ‘현대미술의 황제’[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예술가는 가난해야’ 편견 격파대중성보다는 실험·도전하며 혁신창조적 방식으로 예술·상업성 조화불편함·자극 강조, 각성의 철학아름다움·편안보다 충격적 메시지불의 고발, 세상 보는 방식 변화시켜천재적 재능과 끊임없는 혁신전통미술 개념 파괴, 입체주의 창안유화·조각 등 사상 최다 5만점 남겨 ‘20세기 가장 위대한 예술가’,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 ‘현대미술의 혁명가’ 이러한 찬사는 파블로 피카소(1881~1973)에게 바쳐진 것이다. 그는 어떻게 신화적 존재가 될 수 있었을까. 답은 그가 남긴 말속에 있다. 피카소의 명언을 통해 그가 이룬 성공 비결을 찾아보자. 첫 번째 명언. “가난한 사람처럼 사는 부자가 되고 싶다.” 이 말은 이른 성공과 막대한 부를 축적한 피카소의 상황과는 상반되는 표현이다. 피카소는 92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예술가였다. 피카소의 전기작가 롤런드 펜로즈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예로 들었다. “피카소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연필로 그린 데생이나 심지어 낙서조차 황금으로 변했다. 1945년 피카소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 집 한 채를 샀다. 그는 이 집을 자신이 그린 정물화 한 점과 맞바꿨다. 그는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건 그림을 그려 주고 얻을 수 있었다.” 이제 독자는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황금 가마를 타고 인생의 꽃길을 걸었던 피카소가 “가난한 사람처럼 사는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 의미는 무엇일까. 역설적인 말속에는 그의 예술가적 가치관과 성공 원칙이 담겨 있다. ●성공은 창작 자유·혁신 지속하는 도구 피카소에게 성공이란 창작의 자유와 혁신을 지속할 수 있는 도구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예술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미술시장에는 예술가가 작품을 팔기 위해서는 대중과 타협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대다수의 예술가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창작을 지속하거나 반대로 상업적 성공을 위해 예술적 신념을 희생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피카소는 사진작가 브로샤이와 나눈 대화에서 이러한 편견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성공은 정말 중요하다. 사람들은 예술가는 자신을 위해서, 혹은 예술에 대한 사랑으로만 일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런 거짓말이 또 있을까? 예술가에게는 성공이 필요하다. 삶을 꾸려 가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대중과 타협하지 않고 역행하는 성공도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 보통의 예술가는 가난에서 벗어나 성공하면 초심을 잃고 창작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지만 피카소는 달랐다. 그는 가난했던 20대 초반 시절이나 성공한 이후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오직 예술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 상업적 성공을 거둔 후에도 대중의 취향을 따르는 대신 실험과 도전을 감행하며 혁신적인 작품으로 미술시장을 이끌었다. 피카소는 예술가는 가난해야 한다는 편견을 깼다. 돈만 많은 부자가 아니라 부를 예술적 자유로 바꿀 줄 아는 예술가였다. 그는 ‘예술과 상업성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방식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직업화가의 본보기다. 두 번째 명언. “좋은 그림에는 수많은 면도날이 박혀 있을 것이다.” 이 말은 미술이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과 자극을 줘 새로운 사고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그의 예술철학을 반영한다. 면도날은 무언가를 베어 내고 잘라 내는 도구로 사용되며 날카롭고 위험한 느낌을 준다. 면도날이 박혀 있는 그림은 보는 사람에게 충격과 불편함을 주게 될 것이다. 피카소에게 좋은 그림은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베어 내고 생각의 틀을 잘라 내는 것이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피카소와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우리가 읽는 책이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쳐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책을 읽어야 할까?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미술은 사회적 메시지 전달하는 강력한 무기 비록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피카소의 면도날과 카프카의 도끼는 같은 의미를 지녔다. 기존의 익숙한 세계를 깨뜨리고 사람들에게 충격과 각성을 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그림과 도끼처럼 얼어붙은 사고를 깨뜨리는 책이 피카소와 카프카가 전하는 진정한 예술과 문학의 역할이다. 피카소의 걸작 ‘게르니카’(작품 1)는 면도날과 같은 예리함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좋은 그림의 예시다. 1937년 스페인 내전 당시 나치 독일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바스크 지방의 마을 게르니카를 주제로 삼은 이 작품은 미적 감상을 위해 그려진 것이 아니다. 관객이 전쟁의 참상과 고통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거칠고 강렬한 이미지로 표현됐다. 이 그림은 마치 면도날로 화면을 베어 낸 것처럼 보는 사람의 감정을 긁어내며 상처를 남긴다. 작품의 거대한 크기는 그림 속 사건의 규모와 파괴력을 강조한다. 사람, 동물, 사물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분해되고 재조합돼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검은색과 흰색의 대비는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 희망과 절망 등 상반되는 요소를 부각시키며 관객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그림 속에서 말은 창에 찔려 고통스러워하고, 폭격으로 인해 폐허가 된 도시와 절망과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의 비명과 고통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게르니카’를 보는 관객은 아름다움이나 편안함을 느낄 수 없다. 이 작품은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자극을 줘 전쟁의 잔혹함을 잊지 못하게 만든다.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회화는 아파트를 장식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적과 싸우며 공격과 수비를 행하는 하나의 전투무기이다.” 그는 미술이 부당함에 맞서 싸우고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자신의 예술철학을 ‘게르니카’를 통해 증명했다. 세 번째 명언. “나는 그림을 그릴 때 가능하면 사람들이 기대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그리고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유별나게 그리려고 애쓴다.” 이 말은 피카소가 왜 20세기 예술의 역사를 바꾼 혁신가로 평가받는지 알려 준다. 피카소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 재능을 보인 신동이었다. 그는 12세에 이미 르네상스 거장 라파엘로처럼 완벽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실력을 갖췄기 때문에 아동 미술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다. 13세에는 미술교사이자 화가인 아버지의 그림 실력을 뛰어넘었다. 아들이 천재라는 사실을 확인한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그림 도구를 물려주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화가의 권리를 이양했다. 피카소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아버지는 내 손에 자신의 물감과 붓을 쥐여 주셨다. 화구들을 내게 물려준 이후에는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으셨다.” 14세의 피카소는 스페인 최고 미술학교 입학시험에서 하루 만에 고급반 수준의 포트폴리오를 완성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6세에 그린 ‘과학과 자비’(작품 2)는 마드리드 국전에 출품돼 전문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천재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이 작품은 의사(과학)와 수녀(자비)가 환자를 돌보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뛰어난 구도, 빛과 그림자의 활용, 인물의 감정 표현 등을 통해 인간이 과학과 신앙, 이성과 감정적 접근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피카소는 19세에 파리 만국박람회 스페인 대표 작가로 선정된 이후 1900년 파리로 건너가 진보적인 예술가 집단의 주목을 받으며 전위예술을 이끌었다. 24세에 ‘장밋빛 시기’의 작품들이 인기를 끌면서 상업적으로 성공했지만 안주하지 않고 혁신적인 입체주의를 창안했다.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초상’(작품 3)은 전통 미술의 개념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각 개념을 창조한 입체주의 대표 작품이다. 르네상스 이후 예술가들은 일점 원근법을 사용해 하나의 시점에서 바라본 대상을 캔버스에 재현하는 방식을 따랐다. 그러나 피카소는 기존 관습을 깨고 여러 시점에서 본 형태들을 한 화면에 배치해 시간성, 공간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새로운 조형언어를 개발했다. 이 작품에서도 볼라르의 얼굴과 몸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각 부분을 기하학적 형태로 나누고 다시점에서 본 형태를 하나의 화면에 결합했다. 2차원 평면에 다중 시점, 기하학적 형태, 중첩된 공간 등을 구현한 입체주의 양식은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을 가져왔다. 미국의 시인이자 작가인 거트루드 스타인은 피카소의 업적을 이렇게 평가했다. “당시 모든 예술가들은 눈으로는 20세기를 보았지만 그들이 실제로 파악한 것은 19세기의 현실이었다. 피카소는 회화에서 눈으로 20세기를 보는 동시에 실제로도 20세기의 현실을 포착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성공이란 도전하며 미래 만드는 과정 피카소는 천재로 태어났지만 그것만으로 현대미술의 황제로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그는 청색 시대, 장밋빛 시대, 분석적 입체주의, 종합적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조각, 판화, 도예, 무용극 등 다양한 미술 양식을 탐구하며 미술의 한계를 확장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창작혼을 불태우며 역사상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유화 1만 3500점, 조각 700점, 판화, 데생, 도자기 등 5만여점의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피카소가 남긴 이 말은 그의 진정한 성공 비결을 알려 준다. “한 점의 그림을 끝내자마자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림을 중단하고 더이상 손대지 않기로 결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그 아래 끝이라고 쓸 수는 없다.” 피카소의 명언은 우리에게 성공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교훈을 줬다. 그는 완성된 작품을 종착지가 아닌 더 위대한 창작을 위한 출발점으로 여겼다. 그의 삶과 예술이 증명하듯 성공이란 어떤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도전하며 확장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간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 중세는 무식하고 잔인함만 넘쳤던 ‘암흑시대’였을까

    중세는 무식하고 잔인함만 넘쳤던 ‘암흑시대’였을까

    흑사병,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기사…. 서양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나 영화, 게임 등이 넘쳐난다. 대부분 학창 시절 세계사 수업에서 배운 것처럼 고대와 근대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어 있는 시기로 야만성이 지배했던 ‘암흑시대’였다는 것을 재확인 시키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렇지만 몇 년 전부터 중세의 진짜 모습을 찾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고 관련 대중 역사서도 자주 눈에 띈다. 최근 국내외 역사학자가 나란히 중세에 관한 편견을 깨뜨리는 역사서를 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 책은 중세의 역사를 ‘사람’을 중심으로 다뤘다는 점에서도 이전 중세 관련 역사서들과 차이를 보인다.국내 대표 서양 사학자인 주경철 서울대 교수의 ‘중세 유럽인 이야기’(휴머니스트)는 이전과 다른 독특한 문명을 건설해 근대인에게 물려준 중세인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를 통해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중세에 대한 오해를 하나둘 깨뜨린다. 대표적인 것이 십자군 전쟁이다. 십자군 운동은 고향에서 기회를 얻지 못한 가난한 사람, 잃을 것 없는 사람들이 군사 모험을 통해 한밑천 잡으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있었다는 것이 기존 주장이었다. 그렇지만 주 교수는 최근 실증 연구 결과를 보여주며 십자군 전사들은 잃을 것이 아주 많은 부자로 물질적 이익을 노리고 참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돈을 번 사람들은 십자군 기사들에게서 땅을 사들이거나 전쟁 물자를 판매한 상인들처럼 십자군 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한다. 또 중세 유럽의 역사는 남성들만의 독무대로 알고 있는 것도 잘못됐음을 보여준다. 12세기 남프랑스 공작령 아키텐의 알리에노르 여공작이 대표적이다. 알리에노르는 프랑스 왕 루이 7세의 왕비였다가 이혼하고 잉글랜드 왕 헨리 2세와 결혼했으며 ‘사자왕’ 리처드 1세와 존왕의 모후였다. 또 그는 십자군 전쟁에 참전하고 아들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직접 군을 이끈 여전사였음을 보여준다.‘중세인들’(책과함께)은 영국의 중세 연구자 댄 존스의 저작으로 410년 서고트족이 서로마제국의 수도를 침공한 ‘로마 약탈’에서 시작해 1527년 신성로마제국군이 교황령 수도 로마를 침략한 ‘로마 약탈’로 끝나는 독특한 방식으로 눈길을 끈다. 2권 4부 16장으로 구성된 책은 16개 세력으로 중세를 풀어낸다. 로마인, 프랑크인, 아라비아인, 몽골인 등 나라나 민족 6개, 수도사, 기사, 학자 등 계급이나 직업군 10개로 나눠 설명함으로써 중세 1000년을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이끌어 갔는지를 새로운 관점으로 설명한다. 로마제국은 단순한 군사 강국이 아닌 유럽을 지배할 로마법, 언어, 기독교 신앙의 원천이며 게르만족의 침략은 야만인들의 소행이 아닌 서유럽의 정치적 틀을 확립하는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 현대의 다양한 인물과 에피소드를 끌어들여 중세 역사가 우리와 상관없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중세에도 오늘날 인류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기후변화, 감염병 같은 자연적 변수와 이것이 촉발한 대량 이주, 기술변화 등이 중요한 변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며 “현대인과 중세인들의 삶을 움직이는 요소는 본질적으로 비슷하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 마고할미의 힘과 지혜 불러온 제이디 차, 편견 뒤엎다

    마고할미의 힘과 지혜 불러온 제이디 차, 편견 뒤엎다

    눈가, 이마, 미간엔 오래된 이야기처럼 주름이 굽이굽이 패였다. 하지만 눈빛은 형형하다. 옅은 미소를 머금은 표정엔 당당함이, 풍성하게 물결치는 은발에선 성스러움이 퍼져나간다. 뾰족 솟은 여우 귀가 그의 정체에 신비로움을 덧입힌다.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한국계 캐나다 작가 제이디 차(40)가 처음 선보인 이 할머니 초상화의 제목은 ‘미래의 우리들’(2023). 마치 중세 귀족 여성의 초상화처럼 인물의 고귀함을 부각시키는 이 작품은 나이 든 여성에 권력과 지혜를 부여하며 존재 가치를 승격시킨다. 여성의 젊음에만 탐닉하고 노년 여성은 주변부로 밀어내며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해온 현실을 과감히 전복하려는 시도다. 남성 중심적 역사에서 무속 신앙 속 하찮은 존재로 잊혀져가는 창조신 마고 할미, 교활한 존재로 폄훼됐던 구미호를 우리 시대로 불러낸 것이기도 하다.작가는 “신화와 설화에서 노인은 사악하거나 권력을 얻으려는 악마처럼 그려지고, 서구사회에선 나이 든 여성이 존중받지 못하고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 이런 구조를 바꾸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10월 12일까지 서울 강서구 마곡동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 ‘구미호 혹은 우리를 호리는 것들 이야기’는 이처럼 미약하고 미천한 존재들에 힘과 가치를 불어넣으며 이들의 지위를 끌어올린다. 캐나다 교포 2세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경계인으로 살며 겪은 진통, 정체성에 대한 통찰의 결과물인 셈이다. 대구가 고향인 어머니에게서 밤마다 들었던 구미호와 바리데기 등의 전통설화, 학생 시절 탐구해온 여성 주도의 한국 전통 샤머니즘 등을 재료로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을 풀어내며 회화, 설치, 조각 등 33점을 내놨다.편견에 밀려난 나이 든 여성엔 힘과 지혜 부여 천대받던 동물, 혼종을 영물로 지위 격상시켜약자 밀어내고 존중하지 않는 사회 구조 전복 작가의 이런 뜻은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해태를 탄 마고 할미 ‘안내자와 짐승’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장군 등이 맡아온 꼭두의 리더로 마고 할미를 세우며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여성 역사, 샤머니즘 속 페미니즘을 주 무대에 올려놓는다. 전시장 마지막 공간을 장식하는 대형 회화 ‘트릭스터, 잡종, 짐승’(2023)은 동물과 혼종의 캐릭터들을 대거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며 작가의 화두를 관통하는 집합체로 읽힌다. 성가신 존재로 여겨져온 갈매기나 교활함의 대명사인 꼬리 아홉 달린 여우, 작가가 키우는 반려견 등이 달과 뿔소라, 다른 차원으로 오가는 듯한 문 등 신비로운 배경 속에 한데 어우러져 있다. 중세 시대 종교화처럼 3폭으로 펼쳐진 형식이나 제단, 사당, 무대처럼 보이는 구조물 위에 작품을 올려놓는 방식으로 작가는 천대받아온 동물들을 영물, 권능한 존재로 재탄생시켰다.전시장 곳곳 가벽 위에 갖가지 꼭두들의 위트 넘치는 포즈와 표정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근육질을 자랑하는 소녀 호위무사’ 등 일부는 천장 위 조명을 통해 전시장 외부 벽에 ‘그림자 작품’으로 나타나며 또 다른 관람 포인트로 역할한다. 전시장은 두 개의 문을 통과하면 미로를 탐험하는 듯한 동선으로 작품을 감상하게 돼 있다. “관람객들이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거나 각각의 작품과 오롯이 대면하는 느낌을 주려 했다”는 작가의 의도가 깃든 것이다. 관람이 끝나고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2층에서 전시장을 내려다볼 기회도 놓치지 말자. 전시장 자체에서도 작품들에서 모티브로 거듭 쓰인 전통 조각보가 구현돼 있다.
  • 편견으로 얼룩진 천 년의 중세

    편견으로 얼룩진 천 년의 중세

    흔히 ‘암흑 시대’(The Dark Ages)로 불리는 중세는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15세기 르네상스까지 1000년의 시간을 가리킨다. 중세 이미지는 맹신과 폭력, 재앙으로 고정돼 있다. 십자군 원정은 신앙이 이성을 속박하고 다른 종교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이 횡행했던 대표 사례로 거론된다. 영화나 히스토리 채널이 ‘진짜처럼’ 묘사했다는 바이킹의 야만스러운 침략과 흑사병 재앙은 중세를 피폐한 시대로 낙인 찍는 결정적 사건들이다. 미국의 두 중세학자가 펴낸 ‘빛의 시대, 중세’는 이런 편견에 도전한다. 저자는 중세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면서 여러 문화들과 좌충우돌하면서도 문화가 발전했고 예술과 이성, 인간성이 꿈틀거렸던 시대로 역사를 재건축하고 나선다. 책은 유럽과 지중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종횡무진하며 중세의 인물들과 역사에 기록된 사건들을 좇는다. 5세기 이탈리아 라벤나에 지어진 ‘산비탈레’ 성당의 천장 모자이크를 통해 비잔틴 문화와 뒤섞여 황홀한 빛을 발하던 중세 문화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중세는 이교도를 배척하고 고립됐던 시대도 아니었다. 802년 프랑크 왕국(현재의 독일)에는 4800㎞ 떨어진 아프리카 콩고에서 온 ‘아불 아바스’라는 이름의 코끼리가 존재했다. 당시 왕국 사람들이 다 목격했다는 무게 3t짜리 거대한 코끼리는 이교도와의 우호적 관계를 보여 주는 상징물이었다. 기독교에는 여러 교파와 관념이 존재했고 유럽과 지중해 전역에서 기독교인과 이슬람교도, 유대인, 몽골인 등 다신론자들이 뒤섞여 공존했다. 책은 지금의 세계화 못지않게 사회적, 경제적, 지리적 경계를 넘나들며 상품과 관념을 사고 팔았던 ‘글로벌한 중세인’의 모습을 생생히 복원한다. 저자는 유색인종에게 폭력과 테러를 가한 KKK 단원들이 ‘기사’로 자처한 점과 십자군 전사 복장을 한 유럽의 극우집회 등을 들어 암흑기로 쉽게 간주돼 온 ‘중세’의 관념이 오히려 백인 남성 우월주의와 식민주의를 ‘정당화하고’ ‘설명하는’ 수단으로 악용됐다고 지적한다.
  • 천주교·개신교 뭉쳤다 ‘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출간

    천주교·개신교 뭉쳤다 ‘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출간

    같은 뿌리에서 갈라졌지만, 이후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천주교와 개신교가 뭉쳤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29일 천주교가 쓰고 개신교가 감수한 ‘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출간 소식을 알렸다. 책은 4부 70개 문항으로 구성돼 천주교와 개신교의 외형적 차이, 성서·교리·전례·생활의 차이점, 종교 개혁의 배경과 역사 및 개신교 교파들에 대한 소개, 그리스도인 일치 운동의 필요성 등을 담았다. 요한 23세 교황은 1962~1965년 열렸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종교 개혁으로 갈라진 교회들이 오랜 반목을 뒤로하고 그리스도인 일치 운동이란는 순례 여정을 함께 걷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교황의 초대로부터 60년이 지난 오늘날에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는 같은 신앙적 뿌리를 가졌으면서도 성경과 교리 해석의 차이를 ‘다름’이 아닌 ‘이단과 오류’로 비난하며 갈등을 빚고 있는 현실이다.이런 현실에서 주교회의 산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는 2014년 한국 기독교 교회 협의회(NCCK)에 소속된 개신교 교단들과 함께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 협의회’를 창립해 연대와 협력을 체계화해왔다. ‘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본문 중 개신교와 관련한 부분은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직제협의회’ 신학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개신교 신학자들의 감수를 거쳤다.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위원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라고 간절히 기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일치 여정을 걷고 있는 한국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유용한 표지판이 되기를 바란다”면서 “그 결실로 천주교인과 개신교인 사이에 편견과 잘못된 태도를 교정하고 갈라진 형제들의 상처를 회복해 언젠가 한국의 그리스도인이 함께 어울려 공동 신앙 고백을 하는 날을 희망한다”고 전했다. ‘천주교 신자를 위한 일치 운동 길잡이’를 부제로 단 책은 천주교 용어와 표현을 기본으로 하되, 필요에 따라 개신교 용어를 병기했다. 부록에서는 천주교 성당과 개신교 교회당 구조 차이, 천주교 미사와 정교회, 개신교의 예배 순서, 2000년부터 한국에서 개최돼 온 역대 그리스도인 일치 포럼 주제 등을 소개한다. 200쪽. 6000원.
  • 콜럼버스 없었던 1000년, 세계는 이미 연결됐다

    콜럼버스 없었던 1000년, 세계는 이미 연결됐다

    지리상 발견 이전 ‘세계 단절’ 반박1181년 伊 대학살은 세계화 폐해中요나라 공주 부장품 발트해産서구 중심의 주류 역사관에 일침중세 유럽의 바이킹(노르드인)이 콜럼버스보다 500여년 먼저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했다는 것은 이제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역사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것은 노르드인이 압도적 무기를 지닌 콜럼버스와 달리 원주민의 격렬한 저항에 못 이겨 영구 정착하지 못하고 철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정말 의미 없는 사건에 불과했을까.세계 문명 교류사를 연구해 온 발레리 한센 미국 예일대 교수는 신간 ‘1000년’에서 15~16세기 ‘대항해 시대’를 통해 세계가 연결됐다는 서양 중심의 역사관에 도전하고, 오늘날 세계의 틀은 기원후 1000년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1000년을 전후한 노르드인의 탐험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대서양 양쪽의 교역망이 연결됨으로써 ‘세계화’가 시작된 중요한 기점이다. 고대 마야인의 벽화에 노란 머리에 흰 피부를 가진 사람들과 노르드인의 배가 등장하고, 15세기 스페인 사람들이 도착하기 이전에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미 남북으로 대륙을 가로지르는 정교한 교역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대항해 시대 이후 아프리카를 찾아온 유럽인이 새로운 교역망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이미 이슬람권과 아프리카에서 번성하고 있던 금 무역과 노예무역에 추가로 참여했을 뿐이다. 저자가 보여 주는 1000년 당시 인류의 삶은 21세기와 놀랍게도 닮았다. 오늘날 종교 신자의 92%는 이때쯤 확립된 4대 종교(기독교, 이슬람, 힌두교, 불교) 중 한 가지를 믿고 있다. 1181년에는 콘스탄티노플 주민들이 부를 독차지한 이탈리아 인 수천명을 학살했는데, 이는 세계화가 양극화로 말미암은 분노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다만 당시 가장 세계화한 지역은 서구가 아닌 중국이었다. 요나라 황제의 손녀 진국공주는 1018년 사망할 때 6500㎞ 떨어진 발트해에서 나는 호박 원석으로 된 부장품과 같이 묻혔다.특히 종교는 국가 간 교류를 원활하게 만드는 세계화의 핵심 도구였다. 군주들은 어느 종교가 자신에게 이익을 주고 강력한 동맹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저울질했다. 예컨대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모두 뿌리로 삼고 있는 ‘키예프 루스’의 블라디미르 1세는 전통 신앙을 대체할 종교로 유대교, 이슬람, 가톨릭 등을 모두 검토했으나 당시 비잔틴제국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콘스탄티노플 대성당 등 여러 조건에 매료돼 동방정교로 개종했다. 이는 오늘날 동서 유럽이 종교적 차이로 갈리게 된 단초를 제공했다. 중앙아시아 이슬람권의 팽창도 같은 시기에 이뤄져 사람들은 이때부터 자신을 전 세계적 종교 블록의 일원으로 생각하게 됐다. 저자는 15~16세기 유럽인이 ‘대항해 시대’를 열지 않았더라도 세계무역은 활발히 이뤄졌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지역에서 더 많은 물건이 만들어지면 다른 곳에서 그것을 찾는 소비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상인들은 알아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18~19세기 산업혁명을 통해 세계를 선도했다. 하지만 중국은 산업혁명을 하지 못한 게 아니라 영국만큼 노동력 부족 현상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산업혁명이 필요하지 않았을 뿐이다. 저자는 1000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실은 생소함에 개방적인 사람들이 새것에 무조건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세계 인구가 2억 5000만명에 불과했던 1000년과 80억명에 가까운 현재 세계를 단순 비교하긴 어려울지 모른다. 그럼에도 지리상의 발견 이전에 세계가 단절돼 있었다는 편견을 반박하고, 세계화의 주도권이 어느 특정한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저자의 주장이 반갑다.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K컬처’의 힘으로 우리도 세계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민족주의적 치기 때문일까.
  • [강남순의 낮꿈꾸기] ‘반지성주의’라는 이름의 바이러스

    [강남순의 낮꿈꾸기] ‘반지성주의’라는 이름의 바이러스

    ‘반지성주의’라는 바이러스가 한국 사회 곳곳을 병들게 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육체에 치명적인 병을 준다. 눈에 보이기에 알아차리기 쉽다. 그러나 반지성주의 바이러스는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기에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런데 반지성주의라는 바이러스는 코로나 바이러스 못지않게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 ‘나’만이 아니라 무수한 ‘너’들, 그리고 그 ‘나’와 ‘너’가 모여 살고 있는 이 사회 전체를 거짓, 왜곡, 증오, 혐오로 병들게 한다. 반지성주의는 인간이 지닌 지적 능력, 교육의 의미, 철학적 사유를 비하한다. 예술, 문학 등과 같이 손에 잡히지 않는 가치를 하찮게 여긴다. 과학이나 합리적 사유 또는 비판적 사유를 신뢰하지 않는다. 반지성주의가 추구하는 것은 오직 자기 이득의 증대와 권력의 확장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이득만이 최고의 기준일 뿐이다.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1963년에 출간하고 1964년에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에서의 반지성주의’는 지금도 반지성주의적 편견과 프로파간다에 대한 논의를 할 때 중요한 자료로 등장한다. 호프스태터는 반지성주의를 미국의 토대를 놓은 개신교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지적인 탐구보다 영혼에 우선성을 둔 개신교의 전통이 미국 사회에 반지성주의를 확산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물론 미국의 정황과 한국의 정황은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지성주의적 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다양한 폐해를 낳고 있다. 반지성주의에 대한 조명이 중요한 이유다. 호프스태터는 반지성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간결한 정의를 내리지는 않는다. 반지성주의는 단일한 형태로서가 아니라 시대와 정황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호프스태터의 분석에 따르면 반지성주의는 정신적 삶(life of mind)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정신적 삶과 연결돼 있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하고 의심하는 태도나 생각이 지닌 공통의 끈을 지칭한다. 그런데 정신의 삶, 마음의 삶이란 무엇인가. 정신의 삶이란 인간이 지닌 이성과 합리성에 기반해 성찰하고 추론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코로나19 위기 동안 반지성주의는 과학과 전문가에 대한 불신의 현상으로 드러난다. ‘트럼프주의’를 따르는 사람들은 트럼프의 전형적인 반지성주의를 맹종한다. 마스크 쓰기, 사회적 거리두기, 백신 등에 대한 불신, 기후변화의 위기에 대한 부정은 물론 의학 전문가들과 과학자들의 연구와 조언을 모두 의심하고 불신한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의 소장인 앤서니 파우치를 공격하면서 “파우치 해고”(Fire Fauci)라는 정치적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에 대해 스톡홀름대학의 언론학 교수인 크리스텐센 교수는 “반지성주의는 미국을 파괴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코로나 사태에서 트럼프와 그의 신봉자들이 보여 준 것은 정치적 반지성주의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반지성주의가 다른 옷을 입고서 한 사회를 지배할 때, 그 사회는 파괴될 수밖에 없다.종교적 반지성주의는 진화론을 부인하고 창조과학을 주장한다. 또한 이성과 합리성에 기반한 성찰이 아닌 ‘무조건 맹신’을 진정한 신앙이라고 가르친다. 그뿐인가. 2021년 9월 28일 예수교 장로회 통합 교단의 대학인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총장직 인준을 했다. 총회에서 K총장은 “장로회신학대학교는 성경적 가치와 교단 기준을 따라서 동성애는 죄라고 확실하게 믿고 있다. 우리 교수들이나 직원, 학생들도 동성애는 죄라고 믿고 있다”고 선언했다. 그는 결국 총대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인준을 받아서 이제 2025년까지 4년 동안 장신대 총장으로 일하게 됐다. 1973년 ‘미국 정신의학회’는 동성애를 정신과 진단명에서 삭제하기로 했다.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 ‘성적 지향’이라는 것은 의학, 심리학, 사회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장기간의 연구로 내려진 결론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전혀 상관없는 듯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가르치는 대학교를 이끌 총장이 ‘교수·직원·학생’ 들까지 호명하면서 모든 대학 구성원들이 ‘동성애는 죄’라고 확실하게 믿는다고 천명한다. 정녕 동성애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인가 아니면 의도적으로 ‘무지’를 가장하는 것인가. 이것에 대한 답은 본인만이 알 것이다. 그 어떤 것이든 이렇게 전형적인 반지성주의를 드러낸 ‘지도자’에게 주어진 대가는 ‘총장 권력’이다. “인문학이라는 것은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며 병행해도 되는 것이며 많은 학생이 대학 4년과 대학원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발언이다.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이 법학, 종교, 예술, 언어, 문학, 철학, 역사, 고고학, 고전, 인류학, 인문 지리학 등 다양한 전공 영역으로 이루어진 인문학이 이토록 방대한 분야라는 것에 대한 기본지식조차 없다. 반지성주의의 구성요소인 ‘무지’의 전형이다. ‘알지 못함’이라는 무지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 무지를 권력 확장에 이용하고 결과적으로 타자들까지 그 무지의 덫에 갇히게 한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평생 건강하기만 했던 저의 건강에 적신호가 커졌습니다.… 더이상 회사를 다니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고 회복하는 데 시간이 소요될 것이며 그로 인해 경제 활동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점과 이 모든 것의 원인이 과도한 업무일 것이라는 것을 회사가 인정해 성과급과 위로금을 책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화천대유’의 1호 직원으로 6년여를 일하고서 이명과 어지럼증으로 심한 건강의 위기를 맞게 돼서 ‘성과급과 위로금’의 명목으로50억원을 퇴직금으로 받았다는 곽상도 국회의원 아들의 변이다. 그런데 더이상 일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는 그가, 놀랍게도 조기 축구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권유로 그 회사에 지원해 입사했다고 하는데, 정작 그 아버지는 아들이 이러한 엄청난 금액의 퇴직금을 받았는지조차 최근까지 ‘몰랐다’고 한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이명이나 어지럼증’의 증상만으로는 산재로 볼 수 없으며, 증상이 아닌 명확한 질병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최소한의 상식, 논리성 그리고 합리성을 작동시킨다면 이러한 과정이나 변명 자체가 지닌 지독한 맹점들을 쉽사리 발견해 낼 수 있다. 한 나라의 정치 지도자로서 활동하는 사람 속에 반지성주의가 제2의 DNA처럼 녹아 있다. 모든 시대나 모든 문화는 반지성주의의 고유한 형태를 발명한다. 동성애자, 장애인, 외국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대인을 ‘괴물’로 만든 히틀러의 반지성주의는 인류 역사에 돌이킬 수 없는 ‘인류에 대한 범죄’를 가능하게 했다. 반지성주의의 지독한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반지성주의는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개인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 사회, 국가 전반에 갖가지 혐오, 배제, 억압의 가치를 바이러스처럼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성차별, 인종차별, 계층차별, 성소수자 차별, 외국인 차별, 타 종교 차별, 장애 차별 등을 국가 사랑, 신(神) 사랑 등의 이름으로 자연적인 것으로 만든다. 차별적 가치가 은닉된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교육과 비판적 사유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반지성주의의 전형인 ‘비판적 사유의 부재’는, 한나 아렌트의 경고대로 ‘인류에 대한 범죄’와 같은 ‘악’(evil)으로 이어진다. 반지성주의는 공적 교육을 얼마나 받았는가와 상관이 없다. 고등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 비판적 사유, 합리성의 존중, 공공선에 대한 인식을 조금이라도 하는 것은 아니다. 소위 전문가, 지성인, 정치인, 종교인, 언론인 또는 미디어에 대한 지독한 불신이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다. 이러한 불신은 그들이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그들의 반지성주의로 인한 불신이 역으로 다른 얼굴의 반지성주의를 등장하게 할 가능성과 이어진다는 것이다. ‘반지성주의의 릴레이’다. 이러한 반지성주의는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을 지배하고 있다. 크리스텐센 교수는 “반지성주의는 미국을 파괴할 것”이라고 했지만 이 말은 미국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반지성주의는 한 개인을 파괴하고 그가 속한 한 사회를, 그리고 이 세계를 파괴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우리 모두가 경계해야 할 바이러스인 것이다. 비판적 사유하기의 연습, 지속적인 자기 학습, 타자와의 인내심 있는 대화를 통해서 ‘나·우리 속의 반지성주의’라는 바이러스를 적극적으로 물리쳐야 할 것이다. 글 텍사스크리스천대(TCU)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 그림 김혜주 서양화가
  • UN 인권 전문가들 “중국 강제 장기적출 관련 믿을 만한 정보 입수”

    UN 인권 전문가들 “중국 강제 장기적출 관련 믿을 만한 정보 입수”

    중국의 소수민족 출신 억류자들이 이식용 장기적출 대상자로 강제 지목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믿을 만한 정보’를 유엔(UN)의 인권 전문가들이 입수했다고 밝히자 중국 정부가 이를 강하게 부인하고 나섰다. AFP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유엔 인권이사회가 선임한 독립 전문가 12명은 14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이런 의혹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 전문가 중에는 인신매매, 고문, 종교·신앙의 자유권리 분야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을 비롯해 임의(무영장) 구금 관련 유엔 특별조사위원 등이 포함됐지만, 이번 발언이 유엔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전문가에 따르면, 소수민족 출신 억류자들은 자세한 설명과 동의 없이 강제로 혈액 검사뿐만 아니라 초음파나 X선 등의 장기 검사를 받지만, 소수민족 출신 이외의 억류자들에게 이런 검사는 요구되지 않는다. 이런 검사 결과는 장기 이식용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는 데 심장과 신장, 간 그리고 각막이 주로 적출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또 “중국의 강제 장기적출은 체포 사유를 설명받거나 체포 영장을 발부받지 않은 채 구금된 특정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우리는 수감자와 억류자의 인종과 종교·신앙에 따라 차별적인 대우를 한다는 보고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류위인 주 제네바 중국대표부 대변인은 유엔 전문가들이 허위 정보를 사용하고 있다면서 중국은 이런 노골적인 주장을 확고하게 반대하고 전적으로 부인한다고 밝혔다. 유엔의 인권 전문가들은 2006과 2007년에도 중국 정부에 대해 수감자들로부터 강제로 장기를 적출했다는 의혹에 대해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중국 정부는 이식용 장기의 출처에 관한 충분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런 맥락에서 볼때 정보 이용과 정보 공유 체계의 부족이 장기적출 피해자의 신원 확인과 보호 그리고 효과적인 수사와 장기매매자를 기소하는 데 있어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유엔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류 대변인은 “중국은 법치국가”라면서 “장기 매매와 불법 장기 이식은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고 답했다. 그는 또 유엔 전문가들에게 “즉각 잘못을 시정하고 중국에 관한 편견을 버리고 노골적인 중국 비방을 지양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동성애자로 군 복무를 한다는 것은…강제람 씨의 호소

    동성애자로 군 복무를 한다는 것은…강제람 씨의 호소

    지난해 11월 영국 BBC는 시각예술활동가 강제람(36) 씨의 사연을 전했다. 그는 설치작품전 ‘유 컴 인, 아이 컴 아웃, 정신병동에서 온 편지들(You come in, I come out - Letters from Asylum)’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16일 다시 4분여 동영상을 홈페이지 전면에 올려 눈길을 끈다. 아마도 변희수 씨가 유명을 달리한 것이 계기가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전시회를 구상하게 된 것은 2017년 육군 중앙수사단이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해 군형법 92조6을 위반한 혐의로 형사처벌하도록 지시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이 때 23명이 입건됐고, 9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그 역시 성소수자로 2008년 군에 입대해 충격적인 일들을 경험했다. 영국 유학 중이었는데 기획전을 구상하면서 이듬해 처음으로 다른 시기에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했던 3명의 병사 증언을 듣게 됐다. “누군가 작은 용기를 내서 목소리를 냈을 때, 거기서 변화가 올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강씨는 배치된 자대에서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괴롭힘의 대상이 됐다. 그는 몇몇 선임들과 부대원들이 그의 몸을 만지고, 귓불에 바람을 불고 속옷을 끌어내렸다고 말했다. 한 부사관이 그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고 그는 성소수자란 사실을 털어놓았다. 문제의 부사관은 다음날 곧바로 ‘아우팅(성 정체성을 타인이 강제로 공개하는 것)’ 해버렸다. 동료 병사들은 오히려 그가 밤새 누군가 다른 병사를 유혹했다고 손가락질을 해댔다. ‘관심병사’를 가리키는 노란색 스마일 라벨을 군복에 붙이는 수모를 견뎌야 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는데도 군 정신병원에 강제로 보내져 116일을 지냈다. 항우울제를 강제로 먹였다. 군 전역 심사를 앞두고는 정신질환이 있는 것처럼 연기하라는 지시까지 받았지만 그는 거부했다. 결국 그는 복무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아 조기 전역했다. 사유는 “히스테리성 인격장애 및 자아이질적 동성애로 인한 병역부적합”이었다. 한국 군은 동성애자의 현역복무를 원칙적으로 허용한다. 국방부의 부대관리훈령 제7장은 동성애자 병사의 인권을 보호하고 이들이 다른 장병과 마찬가지로 군 복무를 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병사의 신상비밀 보장, ’아우팅‘ 제한, 동성애자에 대한 구타, 가혹행위 등 괴롭힘과 차별 금지, 성적 소수자 인권보호 교육 등 구체적인 금지사항과 의무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군형법 92조6항은 “군인·군무원·사관생도 등에 대해 항문성교 및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행위의 장소나 시간, 방식, 강제성 등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고,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조항이라는 지적이 여러 차례 제기돼 이 조항을 폐지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군형법 92조 6항은 1962년 제정 후 세 차례 위헌 심판대에 올랐지만, 세 번 모두 합헌 결정을 받았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2017년 2월 인천지법에서 제청한 위헌법률심판으로 이 조항의 위헌 여부를 네 번째 심리 중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06년 “동성애 편견과 차별을 내포하는 군형법 추행죄를 폐지하거나 개정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90%가 넘는 대한민국 남성이 군대에 다녀와요. 그래서 군형법 92조6항은 단순히 동성애자 군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전 생각합니다. 법으로 누군가의 존재가 불법이 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할 수 있을까요?” 한편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15일(현지시간) 가톨릭교회가 동성 결합을 축복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가톨릭 사제가 동성 결합을 축복할 수 있는지 묻는 여러 교구의 질의에 “안된다”고 회답한 것이다. 동성 결합처럼 결혼이라는 테두리 밖의 성행위가 수반되는 관계가 안정적이라 하더라도 축복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신앙교리성은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런 유권해석을 승인했다고 밝히고 “이것은 부당한 차별이 아닌, 혼인성사 예식 및 그 축복과 관련한 진리를 상기시켜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동성애 성향을 갖고 있어도 주님의 뜻에 따라 신의를 갖고 살 의지를 드러내 보이는 사람을 축복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런 교황청의 설명에 진보적인 독일 교단 일부는 반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군에서의 성소수자 처우로 심각한 정신적인 피해를 입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군인권센터와 친구사이, 전화 129를 이용하면 된다.
  • 마피아에 살해당한 이탈리아 법관, 30년 만에 ‘순교자’ 임명

    마피아에 살해당한 이탈리아 법관, 30년 만에 ‘순교자’ 임명

    시칠리아 마피아에게 살해당했던 이탈리아 판사가 순교자로 추앙됐다. 세상의 떠난 지 30년 만이다. 가디언 등 해외 언론의 22일 보도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사리오 리바티노 판사를 순교자로 임명했다. 그가 자신의 신앙을 지키다 살해당했으며, 그의 죽음은 가톨릭 신앙에 대한 증오 범죄 때문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1990년 당시 리바티노 판사는 시칠리아 마피아와 관련한 여러 사건을 맡아왔다. 이 과정에서 시칠리아 중남부에서 활개를 쳤던 한 마피아 범죄조직의 표적이 됐다. 이 범죄조직은 리바티노 판사가 여러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범행을 캐고 있다고, 조직원들에게 그를 살해하라고 명령했다. 결국 1990년 9월 21일, 차를 타고 가던 리바티노 판사는 다른 차와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현장에서 도망치려 했지만 괴한 4명에게 붙잡혀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관련 재판에서 증인들은 “리바티노 판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이 때문에 마피아들은 그를 편견이 심한 사람이라고 조롱했다”고 진술했다. 리바티노 판사가 사망한 뒤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정의와 신앙의 순교자”라고 칭했으나 정식 순교자로 임명하지는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리바티노는 판사뿐만 아니라 법조계 모든 사람들의 본보기”라며 그의 시복을 강력하게 지지해왔다. 교황청은 내년 봄, 시칠리아주에서 리바티노의 시복식을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복식은 가톨릭에서 순교하였거나 특별히 덕행이 뛰어났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뒤 성인의 전 단계인 복자로 추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기고] 차별금지법은 ‘민주공화국’의 초석이다/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고] 차별금지법은 ‘민주공화국’의 초석이다/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무(無)하고, 일절 평등함.”(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헌장 제3조) 100년 전 서구사회에서도 여성 해방이 요원했던 바로 그 시대에 임정은 민족·국가·인류평등의 이상을 펼치며 일체의 차별과 억압이 없는 세상을 대한민국의 국가 목표로 삼았다. 이런 다짐은 우리 헌법사를 관통하는 가장 중심적인 헌법 이념이 된다. ‘평등’과 ‘균등’, ‘균형’이라는 역대 헌법의 법문은 이를 증빙한다. 최근 입법의 길에 들어선 차별금지법안은 이 핵심 가치를 온전히 담아낸다. 차별은 평등뿐만 아니라 자유까지 침탈한다. 여성 차별은 여성의 사회 생활상 자유를 빼앗으며, 종교 차별은 신앙의 자유를 침해한다. 이런 차별이 쌓이면 인종분리주의 정책이 그러했듯이 대한민국은 국민이 아니라 차별하는 사람들만이 주인이 되는 반쪽 나라가 될 뿐이다. 차별금지법은 그러기에 ‘민주공화국’을 지켜 내는 방파제가 된다. 일부 종교 분파들은 이 차별금지법을 위헌이라 낙인찍으며 격하게 반대한다. 그들은 이 법이 동성애가 죄악이라는 자기들만의 교리를 설파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하기에 종교와 표현의 자유를 정한 헌법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헌법상의 평등이란 자유의 향유까지도 평등하게 분배됨을 요구한다. 설교의 자유가 소중하다면 성소수자가 자기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고, 특정 교리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이 부정당하지 아니할 자유도 그만큼 소중하다. 물론 (종교적) 표현의 자유는 최우선적인 자유다. 다만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다 함께 누릴 수 있는 자격을 가지는 것이다. 누구는 말할 수 있고, 누구는 입을 다물어야 하는 식의 표현의 자유란 독재의 그것에 불과하다. 성소수자들이 정체성을 표현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부정해야만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어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이겠는가? “자유를 누리기 위해 다수파에 가담해야 하는 사회에서는 진정한 자유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경고는 차별금지법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다. 차별금지법은 결코 위헌일 수 없다. 그것은 헌법의 실천을 가로막는 현실 사회의 폭력을 들어내는 법이다. 편견과 오해로 인해 고향을 빼앗기고, 새로운 고향조차도 찾지 못하는 사람(한나 아렌트)을 양산하는 차별 행위로부터 우리 모두를 보호하는 헌법 수호자로서의 법이 바로 이 차별금지법이다. “기다려 달라”는 말로는 도저히 감당되지 않는, 이 시대 최대의 민주화 과제인 것이다.
  • 예배당 없애 기본소득 나눠주는 목사 “교회는 장소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

    예배당 없애 기본소득 나눠주는 목사 “교회는 장소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한국 사회에서 교회는 미운 오리 새끼 신세다. 전광훈 목사를 포함한 10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온 사랑제일교회만 그런 게 아니다. 일부 지역 교단과 목회자단체 등은 지난 2월 신천지 대구교회의 집단 확진 이후에도 방역 당국의 모임 금지에 반발하며 줄곧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주장해 왔다. 매주 이어진 교회의 각종 예배와 소모임은 결국 8월 이후 코로나19 2차 대유행을 낳았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부 교회의 행태가 손가락질을 받고 있지만, 목사들 스스로 예배당을 없애겠다는 교회들도 있다. 경기 고양시 씨앗교회도 그중 하나다. 4명의 공동목사가 운영하는 신도 60~70명 규모의 이 교회는 코로나19 초기부터 온라인 예배를 이어 오다가 이번 2차 대유행 이후 아예 세 들어 살던 건물에서 나와 그 임대료를 신도들에게 ‘기본소득’ 개념으로 되돌려 주기로 했다. 대면예배와 예배당을 절대시하는 기성 교회들과 다른 길을 걷는 것이다. 지난 2일 이사 준비로 한창인 교회 건물에서 임인철(43) 목사를 만났다. 등 뒤로 늘어뜨려 묶은 긴 머리, 체크무늬 반팔 셔츠에 청바지, 손목에 찬 애플워치까지 이날 만난 임 목사는 정장을 갖춰 입는 일반적인 목사 이미지와는 딴판이었다. 길에서 마주쳤다면 목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법한 그의 차림은 성직자 특유의 권위를 벗어던진 씨앗교회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임 목사는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예배드리는 장소가 아닌 사람 자체”라면서 “수많은 이들이 생명을 잃고 경제적 위기 상황에 놓이는 코로나19 시국에서 대면예배 중심 문화는 더이상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코로나19 이후 교회는 바이러스 전파의 대표적인 매개체가 됐다.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가를 부르는 데다 요일별·그룹별 각종 소모임이 활성화됐다는 개신교 교회만의 특성 탓이다. 정부가 부흥회, 기도회, 성가대 연습 등을 포함한 모든 소모임 활동을 금지하는 대책을 내놓자 개신교 최대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이 즉각 철회를 요구하는 등 종교계는 크게 반발했다. 결국 교회 방역수칙 의무화 조치는 2주 만에 해제됐다. 대면예배에 집착하는 교계의 태도에 대해 임 목사는 “번듯한 교회에서 목사를 통해서만 예배드릴 수 있다는 편견이 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회 안에서 교인은 한 가족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목사와 신도가 불평등한 상하 관계여서 예배드리는 사람의 마음이 아닌 목사의 권위와 예배 장소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임 목사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목사 어머니 밑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경험이 한몫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목사 아들’이라고 교회 사람들이 엄청 챙겨 주더라”면서 “처음에는 당연하게 여겼지만, 나이가 들수록 일반 신도 자녀와 목사 자녀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는 걸 깨닫고 이상함을 느꼈다”고 돌아봤다. 예배학으로 석사 학위를 마친 임 목사는 한국 교회의 수직적 권력 구조는 성경의 가르침과도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경에는 성직자가 한 사람의 목사가 아니라 목자들(priests)이라는 복수 형태로 나온다. 우리나라 일부 교회처럼 목사 한 명이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상황은 옳지 않다”면서 “목사와 신도 사이에 권력이 끼어들면 신도들이 특정한 장소(교회)에서 특정한 사람(목사)을 통해서만 예배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씨앗교회 목사들이 교회 건물을 없애고 임대료를 모두 신도들에게 돌려주기로 한 것도 당장 전염병 때문에 예배는커녕 입에 풀칠조차 하기 어려운 교인들의 상황을 제 일처럼 공감해서다. 그는 “목사를 하면서 겸업이 가능해 평일에는 햄버거 가게에서 일했는데 코로나19 이후 일자리를 잃었고, 아이들 학원 운전기사로 일하던 다른 목사님도 일을 그만뒀다”면서 “신도 중에서도 코로나19 이후 두 명이 직장을 잃는 등 생활이 궁핍해지는 모습을 보니 교회 예배당에서 예배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임 목사는 “하나님의 뜻은 고아, 과부, 노인 등 약자를 보호하는 데 있다. 어차피 코로나19 때문에 아무도 오지 못한다면 텅 빈 건물을 유지하는 것보다 당장 힘든 사람들을 돕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씨앗교회가 있는 건물의 임대료는 보증금 3000만원에 매달 월세 70만원, 관리비 10만~20만원 정도다. 임 목사 등은 이 돈을 빼서 신도들에게 6개월간 기본소득을 나눠주기로 했다. 각 가정의 세세한 경제적 상황이 드러나지 않게 신도 모두에게 주는 대신 여유가 있거나 돈을 받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들에겐 돌려받았다. 지난달 31일 처음으로 13가구와 개인 7명에게 각각 30만원, 10만원씩 줬는데 그중 3분의1이 다시 교회에 헌금했다. 교회 건물을 아예 없애기로 한 뜻밖의 결정에 신도들의 불만이나 목사들의 이견은 없었을까. 임 목사는 “교회가 정말 한 가족이라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집과 가족 중 어떤 것을 포기하겠나. 지극히 상식적인 결정 아닌가”라며 영화 얘기를 꺼냈다. 그는 “‘토르: 라그나로크’의 상황이 지금 우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처럼 아스가르드에 헬라라는 외부의 적이 공격해 오는 상황에 모두가 맞서 싸우는데, 맨 마지막에 왕 오딘이 ‘아스가르드는 장소가 아닌 백성’이라고 한다”면서 “교회도 똑같다.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믿는 씨앗교회 목사들의 남다른 실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유족 등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들을 위해서도 꾸준히 손을 내밀었다. 임 목사는 “사회적 약자 중에서도 우리 제도권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이 있다. 제도 밖 사람들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다”며 “이들을 돕는 게 교회의 일”이라고 밝혔다. 단순히 경제적 도움만 뜻하는 건 아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당시 유족 중 한 분이 생일을 맞았는데 축하받을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면서 “그분을 불러서 깜짝 축하를 했다. 돈이 아니더라도 마음을 전할 방법은 많다”고 말했다. 예배당 없는 교회, 비대면 믿음 공동체라는 씨앗교회의 파격 실험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임 목사도 장담하지 못했다. “코로나19는 이제 삶의 일부가 됐다.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신도들에게 6개월은 기본소득을 준다고 해도 돈이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다만 그는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교회에서 예배하느냐, 유튜브로 예배를 중계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의 의미는 약자들의 곁에 함께하는 데 있으니까요.”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예배당 비워 ‘기본소득’ 나눔…“교회보다 교인이 우선이니까”

    예배당 비워 ‘기본소득’ 나눔…“교회보다 교인이 우선이니까”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한국 사회에서 교회는 미운 오리 새끼 신세다. 전광훈 목사를 포함한 10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온 사랑제일교회만 그런 게 아니다. 일부 지역 교단과 목회자단체 등은 지난 2월 신천지 대구교회의 집단 확진 이후에도 방역 당국의 모임 금지에 반발하며 줄곧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주장해 왔다. 매주 이어진 교회의 각종 예배와 소모임은 결국 8월 이후 코로나19 2차 대유행을 낳았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부 교회의 행태가 손가락질을 받고 있지만, 목사들 스스로 예배당을 없애겠다는 교회들도 있다. 경기 고양시 씨앗교회도 그중 하나다. 4명의 공동목사가 운영하는 신도 60~70명 규모의 이 교회는 코로나19 초기부터 온라인 예배를 이어 오다가 이번 2차 대유행 이후 아예 세 들어 살던 건물에서 나와 그 임대료를 신도들에게 ‘기본소득’ 개념으로 되돌려 주기로 했다. 대면예배와 예배당을 절대시하는 기성 교회들과 다른 길을 걷는 것이다. 지난 2일 이사 준비로 한창인 교회 건물에서 임인철(43) 목사를 만났다. 등 뒤로 늘어뜨려 묶은 긴 머리, 체크무늬 반팔 셔츠에 청바지, 손목에 찬 애플워치까지 이날 만난 임 목사는 정장을 갖춰 입는 일반적인 목사 이미지와는 딴판이었다. 길에서 마주쳤다면 목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법한 그의 차림은 성직자 특유의 권위를 벗어던진 씨앗교회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임 목사는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예배드리는 장소가 아닌 사람 자체”라면서 “수많은 이들이 생명을 잃고 경제적 위기 상황에 놓이는 코로나19 시국에서 대면예배 중심 문화는 더이상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교회는 바이러스 전파의 대표적인 매개체가 됐다.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가를 부르는 데다 요일별·그룹별 각종 소모임이 활성화됐다는 개신교 교회만의 특성 탓이다. 정부가 부흥회, 기도회, 성가대 연습 등을 포함한 모든 소모임 활동을 금지하는 대책을 내놓자 개신교 최대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이 즉각 철회를 요구하는 등 종교계는 크게 반발했다. 결국 교회 방역수칙 의무화 조치는 2주 만에 해제됐다.대면예배에 집착하는 교계의 태도에 대해 임 목사는 “번듯한 교회에서 목사를 통해서만 예배드릴 수 있다는 편견이 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회 안에서 교인은 한 가족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목사와 신도가 불평등한 상하 관계여서 예배드리는 사람의 마음이 아닌 목사의 권위와 예배 장소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임 목사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목사 어머니 밑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경험이 한몫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목사 아들’이라고 교회 사람들이 엄청 챙겨 주더라”면서 “처음에는 당연하게 여겼지만, 나이가 들수록 일반 신도 자녀와 목사 자녀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는 걸 깨닫고 이상함을 느꼈다”고 돌아봤다. 예배학으로 석사 학위를 마친 임 목사는 한국 교회의 수직적 권력 구조는 성경의 가르침과도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경에는 성직자가 한 사람의 목사가 아니라 목자들(priests)이라는 복수 형태로 나온다. 우리나라 일부 교회처럼 목사 한 명이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상황은 옳지 않다”면서 “목사와 신도 사이에 권력이 끼어들면 신도들이 특정한 장소(교회)에서 특정한 사람(목사)을 통해서만 예배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씨앗교회 목사들이 교회 건물을 없애고 임대료를 모두 신도들에게 돌려주기로 한 것도 당장 전염병 때문에 예배는커녕 입에 풀칠조차 하기 어려운 교인들의 상황을 제 일처럼 공감해서다. 그는 “목사를 하면서 겸업이 가능해 평일에는 햄버거 가게에서 일했는데 코로나19 이후 일자리를 잃었고, 아이들 학원 운전기사로 일하던 다른 목사님도 일을 그만뒀다”면서 “신도 중에서도 코로나19 이후 두 명이 직장을 잃는 등 생활이 궁핍해지는 모습을 보니 교회 예배당에서 예배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임 목사는 “하나님의 뜻은 고아, 과부, 노인 등 약자를 보호하는 데 있다. 어차피 코로나19 때문에 아무도 오지 못한다면 텅 빈 건물을 유지하는 것보다 당장 힘든 사람들을 돕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씨앗교회가 있는 건물의 임대료는 보증금 3000만원에 매달 월세 70만원, 관리비 10만~20만원 정도다. 임 목사 등은 이 돈을 빼서 신도들에게 6개월간 기본소득을 나눠주기로 했다. 각 가정의 세세한 경제적 상황이 드러나지 않게 신도 모두에게 주는 대신 여유가 있거나 돈을 받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들에겐 돌려받았다. 지난달 31일 처음으로 13가구와 개인 7명에게 각각 30만원, 10만원씩 줬는데 그중 3분의1이 다시 교회에 헌금했다. 교회 건물을 아예 없애기로 한 뜻밖의 결정에 신도들의 불만이나 목사들의 이견은 없었을까. 임 목사는 “교회가 정말 한 가족이라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집과 가족 중 어떤 것을 포기하겠나. 지극히 상식적인 결정 아닌가”라며 영화 얘기를 꺼냈다. 그는 “‘토르: 라그나로크’의 상황이 지금 우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처럼 아스가르드에 헬라라는 외부의 적이 공격해 오는 상황에 모두가 맞서 싸우는데, 맨 마지막에 왕 오딘이 ‘아스가르드는 장소가 아닌 백성’이라고 한다”면서 “교회도 똑같다.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믿는 씨앗교회 목사들의 남다른 실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유족 등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들을 위해서도 꾸준히 손을 내밀었다. 임 목사는 “사회적 약자 중에서도 우리 제도권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이 있다. 제도 밖 사람들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다”며 “이들을 돕는 게 교회의 일”이라고 밝혔다. 단순히 경제적 도움만 뜻하는 건 아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당시 유족 중 한 분이 생일을 맞았는데 축하받을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면서 “그분을 불러서 깜짝 축하를 했다. 돈이 아니더라도 마음을 전할 방법은 많다”고 말했다. 예배당 없는 교회, 비대면 믿음 공동체라는 씨앗교회의 파격 실험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임 목사도 장담하지 못했다. “코로나19는 이제 삶의 일부가 됐다.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신도들에게 6개월은 기본소득을 준다고 해도 돈이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다만 그는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교회에서 예배하느냐, 유튜브로 예배를 중계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의 의미는 약자들의 곁에 함께하는 데 있으니까요.”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이런 교회도 있습니다…아예 예배당 없앤 목사들

    이런 교회도 있습니다…아예 예배당 없앤 목사들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한국 사회에서 교회는 미운 오리 새끼 신세다. 전광훈 목사를 포함한 10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온 사랑제일교회만 그런 게 아니다. 일부 지역 교단과 목회자단체 등은 지난 2월 신천지 대구교회의 집단 확진 이후에도 방역 당국의 모임 금지에 반발하며 줄곧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주장해 왔다. 매주 이어진 교회의 각종 예배와 소모임은 결국 8월 이후 코로나19 2차 대유행을 낳았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부 교회의 행태가 손가락질을 받고 있지만, 목사들 스스로 예배당을 없애겠다는 교회들도 있다. 경기 고양시 씨앗교회도 그중 하나다. 4명의 공동목사가 운영하는 신도 60~70명 규모의 이 교회는 코로나19 초기부터 온라인 예배를 이어 오다가 이번 2차 대유행 이후 아예 세 들어 살던 건물에서 나와 그 임대료를 신도들에게 ‘기본소득’ 개념으로 되돌려 주기로 했다. 대면예배와 예배당을 절대시하는 기성 교회들과 다른 길을 걷는 것이다. 지난 2일 이사 준비로 한창인 교회 건물에서 임인철(43) 목사를 만났다. 포니테일, 청바지 차림의 40대 목사 등 뒤로 늘어뜨려 묶은 긴 머리, 체크무늬 반팔 셔츠에 청바지, 손목에 찬 애플워치까지 이날 만난 임 목사는 정장을 갖춰 입는 일반적인 목사 이미지와는 딴판이었다. 길에서 마주쳤다면 목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법한 그의 차림은 성직자 특유의 권위를 벗어던진 씨앗교회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임 목사는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예배드리는 장소가 아닌 사람 자체”라면서 “수많은 이들이 생명을 잃고 경제적 위기 상황에 놓이는 코로나19 시국에서 대면예배 중심 문화는 더이상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코로나19 이후 교회는 바이러스 전파의 대표적인 매개체가 됐다.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가를 부르는 데다 요일별·그룹별 각종 소모임이 활성화됐다는 개신교 교회만의 특성 탓이다. 정부가 부흥회, 기도회, 성가대 연습 등을 포함한 모든 소모임 활동을 금지하는 대책을 내놓자 개신교 최대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이 즉각 철회를 요구하는 등 종교계는 크게 반발했다. 결국 교회 방역수칙 의무화 조치는 2주 만에 해제됐다. “번듯한 교회, 목사만 예배? 편견” 대면예배에 집착하는 교계의 태도에 대해 임 목사는 “번듯한 교회에서 목사를 통해서만 예배드릴 수 있다는 편견이 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회 안에서 교인은 한가족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목사와 신도가 불평등한 상하 관계여서 예배드리는 사람의 마음이 아닌 목사의 권위와 예배 장소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임 목사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목사 어머니 밑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경험이 한몫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목사 아들’이라고 교회 사람들이 엄청 챙겨 주더라”면서 “처음에는 당연하게 여겼지만, 나이가 들수록 일반 신도 자녀와 목사 자녀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는 걸 깨닫고 이상함을 느꼈다”고 돌아봤다.예배학으로 석사 학위를 마친 임 목사는 한국 교회의 수직적 권력 구조는 성경의 가르침과도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경에는 성직자가 한 사람의 목사가 아니라 목자들(priests)이라는 복수 형태로 나온다. 우리나라 일부 교회처럼 목사 한 명이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상황은 옳지 않다”면서 “목사와 신도 사이에 권력이 끼어들면 신도들이 특정한 장소(교회)에서 특정한 사람(목사)을 통해서만 예배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햄버거 가게 부업하던 목사도 코로나19로 실직 씨앗교회 목사들이 교회 건물을 없애고 임대료를 모두 신도들에게 돌려주기로 한 것도 당장 전염병 때문에 예배는커녕 입에 풀칠조차 하기 어려운 교인들의 상황을 제 일처럼 공감해서다. 그는 “목사를 하면서 겸업이 가능해 평일에는 햄버거 가게에서 일했는데 코로나19 이후 일자리를 잃었고, 아이들 학원 운전기사로 일하던 다른 목사님도 일을 그만뒀다”면서 “신도 중에서도 코로나19 이후 두 명이 직장을 잃는 등 생활이 궁핍해지는 모습을 보니 교회 예배당에서 예배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임 목사는 “하나님의 뜻은 고아, 과부, 노인 등 약자를 보호하는 데 있다. 어차피 코로나19 때문에 아무도 오지 못한다면 텅 빈 건물을 유지하는 것보다 당장 힘든 사람들을 돕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씨앗교회가 있는 건물의 임대료는 보증금 3000만원에 매달 월세 70만원, 관리비 10만~20만원 정도다. 임 목사 등은 이 돈을 빼서 신도들에게 6개월간 기본소득을 나눠주기로 했다. 각 가정의 세세한 경제적 상황이 드러나지 않게 신도 모두에게 주는 대신 여유가 있거나 돈을 받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들에겐 돌려받았다. 지난달 31일 처음으로 13가구와 개인 7명에게 각각 30만원, 10만원씩 줬는데 그중 3분의1이 다시 교회에 헌금했다. 교회 보증금 3000만원 빼 신도들에게 ‘기본소득’ 지급 교회 건물을 아예 없애기로 한 뜻밖의 결정에 신도들의 불만이나 목사들의 이견은 없었을까. 임 목사는 “교회가 정말 한가족이라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집과 가족 중 어떤 것을 포기하겠나. 지극히 상식적인 결정 아닌가”라며 영화 얘기를 꺼냈다. 그는 “‘토르: 라그나로크’의 상황이 지금 우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처럼 아스가르드에 헬라라는 외부의 적이 공격해 오는 상황에 모두가 맞서 싸우는데, 맨 마지막에 왕 오딘이 ‘아스가르드는 장소가 아닌 백성’이라고 한다”면서 “교회도 똑같다.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믿는 씨앗교회 목사들의 남다른 실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유족 등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들을 위해서도 꾸준히 손을 내밀었다. 임 목사는 “사회적 약자 중에서도 우리 제도권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이 있다. 제도 밖 사람들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다”며 “이들을 돕는 게 교회의 일”이라고 밝혔다. 단순히 경제적 도움만 뜻하는 건 아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당시 유족 중 한 분이 생일을 맞았는데 축하받을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면서 “그분을 불러서 깜짝 축하를 했다. 돈이 아니더라도 마음을 전할 방법은 많다”고 말했다. 예배당 없는 교회, 비대면 믿음 공동체라는 씨앗교회의 파격 실험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임 목사도 장담하지 못했다. “코로나19는 이제 삶의 일부가 됐다.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신도들에게 6개월은 기본소득을 준다고 해도 돈이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다만 그는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교회에서 예배하느냐, 유튜브로 예배를 중계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의 의미는 약자들의 곁에 함께하는 데 있으니까요.”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오늘의 눈] 감염병 그리고 그들의 전염병/이현정 정책뉴스부 기자

    [오늘의 눈] 감염병 그리고 그들의 전염병/이현정 정책뉴스부 기자

    위기는 질서를 재편한다. ‘공공의 선(善)’이란 명목하에 신체의 자유와 사생활 등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정당화되고 인권의 가치는 부차적인 것이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목소리는 공포 앞에 무력화된다. 시민은 감염된 자와 오염된 자, 그렇지 않은 자로 나뉜다. 감염병을 전파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보호받아야 할 시민이 아닌 잠재적 위험으로 취급하는 것이 용인된다. 내가 걸릴 수 있는 코로나19는 ‘감염병’이지만 그들이 걸린 코로나19는 나의 건강을 위협하는 ‘전염병’일 뿐이다. 확진자는 자신의 건강보다 사회적 낙인을 더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비밀스러운 사생활이 낱낱이 공개되면서 일부는 대중의 조롱거리가 됐다. 확진자의 불요불급한 동선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뒤론 구청마다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라는 주민 요구가 쏟아진다. 확진자를 비난하지만, 그들도 감염 사실을 모른 채 보통의 하루를 살았을 뿐이다. 일부는 개인의 신앙을 고백하지 않을 권리마저 빼앗겼다. 정부는 확진자의 연번 뒤에 ‘신천지 신도’라는 알림을 낙인처럼 새겼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구로구 콜센터 직원 가운데 신천지 신도가 있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기도 했다. 진단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기에 공개할 이유가 없는 이들이었다. 최근 ‘안심밴드’ 도입 논란은 숱한 인권 문제를 수면으로 끌어올렸다. 격론 끝에 정부는 자가격리 이탈자에 한해 동의를 얻어 안심밴드를 채우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자가격리에서 이탈하면 최대 징역 1년,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되는데, 안심밴드를 착용하면 참작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바꿔 말하면 안심밴드 거부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 부착에 대한 동의를 자발적 동의로 평가하기 어렵다. 이런 행정적 발상 자체가 자가격리 이탈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럼에도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9일 공개한 코로나19 자가격리 관련 국민 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80.2%는 안심밴드 착용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자가격리 대상자들에 대한 공포, 편견과 혐오 등 보이지 않는 적을 맞닥뜨린 인간의 복잡한 감정이 엿보인다. 안심밴드를 채워서라도 가두고 싶어 했던 자가격리자는 나와 내 가족이 될 수도 있다. 생명이 달린 감염병 정국에서 인권만이 지상 최대 과제일 수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상황이 급박해도 어렵게 쌓아 온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일은 위험하다. 감염병은 되풀이될 테고, 그때마다 인권 문제를 뒷전으로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질병을 향해야 할 혐오가 사람을 겨냥하면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에 폐허만 남게 된다. 감염병으로부터 소중한 일상을 지킬 힘은 각자도생이 아닌 연대와 존중, 희망에서 나온다. 코로나19 속에 겨울은 더디게 물러갔다. 그러나 이 얼어붙은 봄을 보자고 그 긴 겨울을 견딘 것은 아닐 것이다. hjlee@seoul.co.kr
  • 일본에 등장한 ‘로봇 스님’… 프랑켄슈타인 탄생 vs 관음보살 화신

    일본에 등장한 ‘로봇 스님’… 프랑켄슈타인 탄생 vs 관음보살 화신

    일본 고도 교토의 400년 된 사찰에 이색적인 스님, ‘로봇 승려’가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괴물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이라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관음보살의 화신’(化身)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고 프랑스 뉴스 통신사 AFP가 14일 보도하였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본에서도 사찰의 승려가 되려는 사람이 부족하다 보니 로봇 스님이 절을 찾는 신도들에게 예불을 드리는 시대가 된 것같습니다. 법명이 마인다(Mindar)인 안드로이드는 자비의 부처인 관음보살로, 교토에 있는 임제종 계열의 교다이지(高台寺)에서 설법을 전합니다. 인간 동료 스님들은 안드로이드에 장착된 인공지능(AI)으로 하루 만에 가없는 지혜를 ‘획득’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마인다가 예불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올 1월부터랍니다. 이 사찰의 주지 스님 고토 텐쇼는 AFP에 “이 로봇 승려는 결코 죽는 법이 없으며, 항상 자신을 최신으로 상태로 업데이트합니다”며 “아름다움 그 자체입니다. 지식을 영원히 그리고 끝없이 저장할 수 있습니다”고 자랑합니다. 고토 스님은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있으면, 우리는 고해에 빠진 사람들이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울 지혜를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불교를 변화시키는 것이지요”라고 말합니다. #마인다 기도할 땐 합장신장이 2m로 어른보다 약간 큰 키의 마인다는 몸통과 팔, 머리를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손과 얼굴, 어깨는 사람의 피부처럼 보이게 하고자 실리콘으로 덮여있습니다. 기도할 때 두 손을 모아 합장할 수 있고, 목소리는 소녀의 톤으로 부드럽고, 로봇의 다른 기계적 부분은 선명하게 보입니다. 머리는 위쪽이 열려 있으며, 전선과 깜빡거리는 전구로 채워져 있습니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알루미늄의 몸통은 전선들이 휘감고 있습니다. 왼쪽 눈에는 작은 비디오 카메라가 심겨 있습니다. 기묘한 사이버그 같은 몸체는 암울한 미래를 그린 할리우드의 공상과학(SF) 영화에서 바로 튀어나올 법한 모습입니다. 선사(禪寺)와 오사카대학의 유명한 로봇학 교수 이시구로 히로시가 공동으로 만들어 탄생하였습니다. 약 100만달러가 들었다고 합니다. 자비와 연민을 가르치고, 욕망과 분노, 에고의 위험에 대해 설법합니다. 마인다는 신도들에게 “이기적인 자아에 집착하지 마라. 세상의 욕망은 고해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한 조각의 마음”이라고 경고합니다. #시시껄렁한 스님 아냐일상 생활에서 종교의 영향력이 큰 일본에서 고토 스님은 고다이지의 로봇 스님이 전통적인 승려들이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젊은 세대들에게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젊은 사람들은 아마 절은 장례나 결혼 장소라고 여길 겁니다”고 말하는 그는 종교와의 단절에 대해 설명합니다. “저와 같은 고리타분한 스님들이 생각해내는 것이 어렵겠지만 로봇 스님은 젊은 층과의 갭을 이어줄 재미난 다리 역할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로봇을 보고 불교의 진수에 대해 생각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고토 스님은 마인다가 관광객들로부터 수입을 올리려는 장치가 결코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로봇 스님은 우리에게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 누구든지 구제받는 곳이 여기입니다.” 신앙심이 깊은 안드로이드 스님은 반야심경을 일본어로 설법하고, 외국인들을 위해 스크린에 영어와 중국어로 번역해 줍니다. 고토 스님은 “불교의 목표는 고통을 완화하는 것입니다”며 “현대 사회는 많은 스트레스를 주지만 2000년이 넘는 동안 목표는 정말로 변하지 않았습니다”고 주장합니다. #“따뜻함 느껴” vs “너무 기계적”오사카대학이 예불을 드리는 로봇 승려를 본 소감에 대해 조사한 결과가 재미납니다. 많은 이들은 놀라움을 표합니다. 조사에 응한 한 사람은 “사람 같아보입니다. 보통의 기계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따뜻함을 느꼈습니다”고 답하였습니다. 다른 신도는 “처음에는 다소 어색하였지만 로봇 승려는 따라하기 쉬웠습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칭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로봇이 너무 나간 “가짜”라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신도는 “설법이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로봇의 설법이 너무 기계적으로 느껴졌습니다”고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괴물 프랑켄슈타인의 탄생고다이지는 종교의 신성함을 조작한다는 혹독한 비판을, 그것도 대부분 외국 사람들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고토 스님은 일본 방문객 대다수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받는 것을 들면서 “서양 사람 대다수는 로봇에 의해 기분을 망쳐버립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아마 성경의 영향 때문이겠지만, 서양 사람들은 로봇 승려를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에 비유합니다”고 덧붙여 말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로봇에 대해 어떤 편견도 없습니다. 우리는 로봇이 우리의 친구인 만화의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만 서구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합니다.”그러면서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방문 당시 신성모독죄를 범했다는 비난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관음보살 무엇이든 변신…로봇 변신일뿐고토 스님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기게는 영혼이 없습니다”고 잘라 말합니다. “불교 신앙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계로 표현되든지, 고철 덩어리로 표현되든지 나무로 나타나든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고다이지는 자비의 관음보살은 자유자재로 자신을 변신할 수 있으며, 안드로이드라는 로봇은 단순히 최신 버전의 관음보살 화신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고토 스님은 “인공지능이 개발되면서 우리는 부처님이 로봇으로 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인 단계에 이르렀습니다”고 설명합니다. “로봇 승려가 상처받은 인간의 마음과 감정을 어루만져주길 기대합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클래식 연주자도 모르는 곡은 지루하고 졸려…‘안다 박수’도 민폐”

    “클래식 연주자도 모르는 곡은 지루하고 졸려…‘안다 박수’도 민폐”

    클래식은 유난히 편견이 많은 문화 영역이다. ‘지루하고 어렵다’ 혹은 ‘일부 계층의 고급 문화’, 심지어 ‘허세와 허영의 문화’라는 시각도 있다. 최근 몇년 간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조성진, 비올리니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등 스타 연주자의 등장으로 클래식 공연 관객은 지속적으로 늘었지만, 클래식은 여전히 진입 장벽이 높고 어려운 소수층 문화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런 편견을 깨고 클래식 대중화를 위해 유튜브·페이스북·팟캐스트로 뛰어든 ‘클래식 크리에이터 3인방’을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26일 만났다.-짤막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나웅준 “트럼펫을 연주하고 클래식 콘서트 가이드 그리고 국립중앙도서관 선정 ‘2019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퇴근길 클래식 수업’을 쓴 나웅준입니다. 하하하~ 팟캐스트 ‘지루한 클래식’과 ‘클래식 사용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수민 “그림 그리는 바이올리니스트, 유튜브 채널 ‘클언니’를 운영하고 있는 이수민입니다. 클래식을 잘 모르지만 즐기고픈 사람들의 모임의 리더도 맡고 있습니다.” 안두현 “본업은 교향악단 지휘자이고요, 페이스북 ‘클래식에 미치다’ 페이지를 운영하고 클래식 라디오 방송을 2년 정도 진행한 안두현입니다. -언제, 어떻게 클래식을 접하게 됐나요. 나웅준 “중학교 때 학교 서클 중에 관악부가 있었어요. 그냥 그때 음악이 좋더라고요. 트럼펫은 음악 교과서에 있는 악기 사진 중에 그냥 트럼펫 사진이 제 눈에 확 띄었어요. 그렇게 트럼펫 연주에 빠지면서 클래식 음악을 시작했죠. 집에선 음악을 반대하셨었고, 특히 당시 트럼펫은 ‘밤무대’ 이미지가 강해 싫어하셨죠.” 이수민 “저는 반대로 집안 영향이 컸어요. 어머니가 피아노를 전공하셨었는데 ‘딸이면 바이올린이다’ 이렇게 마치 모태신앙처럼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안두현 “저는 음악하는 일반적인 친구들과 다르게 인문계 고교를 다니다가 우연히 교보문고에서 본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대한 책에 빠지면서 지휘자의 꿈을 키웠어요. 한국에서는 오케스트라 지휘에 대해 배우기 어려워 모스크바로 유학 가서 배우고 왔습니다.” -어떻게, 왜 온오프 방송을 시작했는지. 나웅준 “기존 방송이나 매체에서는 할 수 없는 얘기들을 하고 싶었어요. 클래식계의 문제점도 얘기하고 싶었고…. 연주자도 잘 모르는 곡은 지루하고 어려운 게 사실인데, 그걸 어떻게든 쉽고 재미있는 것으로 포장하려는 분위기더라고요. 그래서 반대로 ‘지루한 클래식’을 새롭게 풀어보자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이수민 “처음에는 저를 홍보할 목적으로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아직 얼마 안 됐지만 2030 여성층에서 주로 보시더라고요. 3분 내외 짧은 영상에 제 일상을 담아서, 어렵게 느껴지는 클래식을 쉽게 전달하고 있죠.” 안두현 “페이스북은 같이 오케스트라 했던 친구들과 음악 정보 공유 목적으로 만들었는데 구독자가 확 늘더라고요. 그래서 클래식 음악 잘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하면 더 관심을 갖고 좋아하게 될까를 생각하면서 키워왔습니다.” -사실 클래식이 어려운 건, 다소 경직된 공연 에티켓 때문 아닌가요. 이수민 “그렇죠. 청중의 태도가 연주회에 영향을 많이 주기 때문에 사실 필요한 부분이에요. 연주하면서 객석 다 보이거든요. 핸드폰을 본다거나 산만한 행동을 한다거나 하면 연주에 집중하기 어려워요. 복장은, 너무 캐주얼하지 않은 정도만 갖춰도 돼요.” 나웅준 “연주회장 가면 ‘안다 박수’와 ‘눈치 박수’가 있어요. 보통 긴 교향곡이 끝나는 지점을 아는 사람들이 자신있게 박수를 치면, 다른 관객들이 따라서 박수를 치거든요. 그런데 너무 확신에 차서 연주가 끝나자마자 ‘브라보’를 외치며 박수를 치는 것도 좋지는 않아요. 연주가 끝나도 몇 초간의 침묵도 연주의 연장선이거든요. 지휘자와 연주자가 인사할 때 박수 치는 게 가장 좋습니다.” -클래식을 어떻게 즐기면 좋을까요. 나웅준 “클래식은 단순히 쉽다, 어렵다 단정 지을 게 아닌 그냥 음악인 거죠. 대중가요에 익순한 사람들도 인디밴드 음악 처음 들으면 거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몇백년 전 유럽에서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음악인데, 시대가 변해도 사람의 감정이라는 건 안 변하잖아요. 그냥 다양한 음악 중 하나로 느끼시면 좋겠어요.” 안두현 “일부러 들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어요. 클래식은 영화나 광고를 통해 알게 모르게 많이 퍼져있거든요. 쉽고 귀에 익숙한 음악부터 듣다보면 더 이해하게 되고 더 깊게 들게 될 겁니다.” -셋이 함께 준비 중인 공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수민 “‘청소년을 위한 클래식 사용법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8월 24일 예술의전당에서 하는데 재치있고 개성 넘치는 악장에 이야기가 곁들여진 공연이에요. 굉장히 유익하고 재미있는 시간이 될 거예요.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아이만 남겨둘 수 없어요” “아빠도 난민 신청 받아주세요”

    “아이만 남겨둘 수 없어요” “아빠도 난민 신청 받아주세요”

    개종한 아버지도 신청했지만 불인정 “거짓 개종하기엔 벅차고 힘든 과정” 상고 대신 난민지위재신청서 제출 “한현민처럼 편견 없애는 사람 되고파”“한국에서 아빠와 떳떳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고 싶어요. 군대도 자원해서 가고 사회에 도움되는 일 하며 살 거예요. 아빠의 난민 신청을 받아 주세요.” 전국에 폭설이 내린 19일 오전 서울 양천구의 출입국외국인청 별관 앞에서 이란 출신 난민인정자 김민혁(16)군이 아버지를 위해 진눈깨비를 맞으며 취재진 앞에 섰다. 태어날 때부터 무슬림이었다가 9년 전 사업가인 아버지와 함께 한국에 와 천주교로 개종한 민혁군은 지난해 10월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국민청원, 청와대 시위 등을 한 학교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여전히 절박한 걱정거리가 있다. 아버지 A씨는 아직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날 A씨는 난민지위재신청서를 서울 출입국외국인청에 제출했다. A씨는 자신을 변호하는 아들의 외침을 곁에서 들으며 서글픈 눈빛을 지었다. 그는 “아이만 여기(한국)에 남겨둘 수 없다”며 “함께 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천주교 신자로 본국에 돌아가면 공항에서부터 잡히거나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고도 했다. 2003년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난 민혁군은 2010년 한국에 온 뒤 친구들과 어울리다 자연스레 천주교를 믿게 됐다. A씨도 아들과 함께 성당을 찾았고 무수한 고민 끝에 아들을 따라 개종했다.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서는 다른 종교로 개종하면 배교자로 여겨져 최대 사형에 처한다. 이들 부자는 2016년 한국 정부에 종교적 박해를 이유로 난민 지위를 신청했다. 그러나 출입국외국인청은 ‘구약과 신약 구분 이유, 십계명, 주기도문 등 기초적 이해와 상식이 부족해 개종의 진정성이 의문스럽다’는 등의 이유로 불인정했다. 민혁군을 가르쳤던 오현록 아주중학교 교사는 “나도 기독교인이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누구인지를 묻거나 십계명을 외워 보라고 하면 답할 수 없다”면서 “난민 심사 과정에서 본질을 보지 않고 지엽적인 문제에 집중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비판했다. A씨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해 1월 1심과 지난해 12월 2심에서 패소했다. 민혁군은 “‘거짓 개종할 수 있지 않으냐’고 하는데 천주교에서 세례, 견진성사, 구역활동 등 진짜 신자가 되는 과정을 1년 이상 밟아야 해 거짓으로 하긴 힘들다”면서 “편견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혁군은 아버지와 함께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겠다고 호소했다. 그는 “제 꿈인 모델로 데뷔해서 제2의 한현민처럼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며 “저를 믿어 주신 분들이 후회 없게 하겠다”고 아버지의 난민 인정을 호소했다. 지난해부터 민혁군과 아버지를 도와 온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광준 변호사는 “성당 신부님의 증언 등을 통해 부자의 신앙생활을 살펴보니 개종의 진실성이 확실했다”면서 “이번 재신청에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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