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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네상스의 완성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르네상스의 완성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끝없이 배우며 호기심·탐구욕 충족예술·과학·인체·우주 등 다양한 분야하나의 유기적인 지식 체계로 연결직접 보고 부딪히며 참된 지혜 얻어인체 구조 이해하려고 시신 해부도예술을 이론·과학적 원리 위에 구현스푸마토와 공기원근법 ‘혁신’ 완성 여러 분야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인류의 지평을 넓힌 천재들을 ‘르네상스적 인간’ 혹은 ‘만능인’이라 부른다. 그 가운데서도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단연 첫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이다. 미국의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그의 천재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레오나르도는 타고난 천재라기보다는 끊임없는 호기심을 상상력과 노력으로 풀어내며 스스로 천재가 된 인물이다.” 다행히도 다빈치는 후대를 위해 자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중한 증거를 남겨 두었다. 그는 평생 떠오른 아이디어와 관찰, 실험과 탐구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친필 노트(코덱스·Codex)에 기록했다. 오늘날 전 세계 미술관과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는 약 7200쪽의 친필 노트는 인류의 위대한 지적 유산이다. 이제 우리는 그의 노트 속 명언들을 이정표 삼아 그가 어떻게 창의성의 비밀에 다가갔는지 따라가 보려 한다. 첫 번째 명언 “배움은 결코 정신을 고갈시키지 않는다” 이 문장은 배움을 대하는 다빈치의 태도를 압축해서 보여 준다. 많은 이들에게 배움은 의무이거나 때로는 피로를 동반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호기심을 깨우고 탐구욕을 충족시키며 세계를 더 넓고 깊게 바라보게 만드는 희열의 과정이었다. 실제로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배움에 대한 끝없는 열정에 감탄하게 된다. 그는 불후의 명작을 남긴 화가이자 조각가였고 성벽과 무기를 구상한 군사공학자이자 건축가였다. 또한 수학, 물리학, 해부학, 지질학의 기틀을 다진 선구자였으며 자연의 이치와 인체의 구조, 물의 흐름과 빛의 원리, 식물의 생장까지 깊이 파고든 과학자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낙하산, 대기압 화약 엔진, 방적 기계와 선반을 고안하고 새의 비행 능력을 연구해 인류 최초로 비행 기계를 설계한 위대한 발명가였다. 심지어 그의 호기심은 창의적인 요리법을 개발하는 데까지 뻗어 있었다. 인류 역사에 많은 천재가 있었지만 멀리 떨어져 보이는 분야들을 하나의 유기적인 지식 체계로 연결시킨 인물은 극히 드물다. 다음 문장은 다빈치가 어떻게 그토록 다양한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결정적인 단서다. “완벽한 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원칙은 다음과 같다. 예술의 과학을 연구하고, 과학의 예술을 연구하라. 감각을 개발하라. 특히 보는 법을 배우라.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으라.” 그의 모든 탐구의 종착지에는 언제나 인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인간의 몸은 어떤 비례로 이루어져 있는가. 인간은 자연과 우주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인간 안에는 세계의 질서가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가. 그의 질문은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를 향해 있었다. 오늘날 인류의 위대한 상징이 된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이 탄생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은 다빈치가 배움을 통해 도달한 예술과 과학, 인체와 우주, 감각과 이성이 하나로 만나는 지점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이미지다. 먼저 이 드로잉에 비트루비우스라는 이름이 붙게 된 역사적 배경부터 살펴보겠다. 기원전 20년 무렵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시공을 초월한 이상적인 건축을 꿈꾸며 ‘건축 10서’를 남겼다. 이 책은 오랜 세월 잊혀 있다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다시 빛을 보게 되었고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부활시키고자 했던 당대 지식인과 예술가들에게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비트루비우스는 인간의 몸이 자연의 신성한 질서와 우주의 조화를 담고 있는 완벽한 기준이라고 믿었다. 그는 이상적인 인간의 신체가 원과 정사각형이라는 기하학적 도형 안에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건축 10서’에는 이론을 증명해 줄 삽화가 단 한 장도 실려 있지 않았다. 훗날 르네상스의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그의 이론을 이미지로 구현하기 위해 도전장을 던졌으나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기하학의 정확성, 해부학적 이해, 예술적 감각이 동시에 요구되는 난제였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숙제를 완벽하게 풀어낸 인물이 다빈치였다. 그는 실제 인간의 몸을 관찰하고 정밀하게 측정했으며 해부를 통해 인체 구조를 깊이 이해한 후 관찰 결과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인체의 중심은 배꼽이다. 등을 대고 누워서 팔다리를 뻗은 다음 컴퍼스 중심을 배꼽에 맞추고 원을 돌리면 두 팔의 손가락 끝과 두 발의 발가락 끝이 원에 닿는다. (…) 그리고 정사각형으로도 된다. 사람 키를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잰 길이는 두 팔을 가로 벌린 너비와 같기 때문이다.” 설명대로 그림 속 인물은 원과 정사각형이라는 기하학적 세계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남성은 유한한 대지(지상)를 상징하는 사각형 위에 발을 딛고 굳건히 서 있으면서도 무한한 천상(우주)을 상징하는 원의 궤적을 향해 힘차게 팔다리를 뻗는다. 다빈치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우주의 질서와 자연의 법칙을 몸 안에 품은 완벽한 소우주임을 선언했다. 두 번째 명언 “지혜는 경험의 딸이다.” 다빈치에게 참된 지혜란 직접 보고, 만지고, 부딪히면서 스스로 깨닫는 경험의 산물이었다. 그가 경험을 절대적 가치로 삼게 된 데에는 유년 시절의 아픔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피렌체의 공증인이었던 아버지와 농민 신분의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당시 이탈리아 사회의 신분 장벽 탓에 대학에 진학하거나 주류 지식인 사회로 나아갈 수도 없었다. 다빈치는 스스로를 “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낮추어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학문 세계의 언어였던 라틴어를 읽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결핍은 그를 전혀 다른 배움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자연을 직접 관찰하고 그 안에 숨은 원리를 스스로 밝혀내고자 했다. 물의 소용돌이를 관찰하며 유체의 움직임을 궁리했고 새의 비행을 분석하며 인류 최초의 비행 장치를 구상했다. 안료를 직접 조합하며 색과 재료의 성질을 실험했고 빛과 그림자가 사물의 형태를 어떻게 바꾸는지도 관찰했다. 무엇보다 그는 인간의 신체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 30여 구의 시신을 직접 해부했다. 당시로서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에게 인체는 생명의 비밀을 품은 가장 정교한 자연의 구조물이었다. 그는 인간의 몸이 어떤 기하학적·물리학적 원리로 움직이는지, 근육과 힘줄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몸을 지탱하고 움직이는지 밝혀내고자 했다. 이 해부학 드로잉은 ‘어깨와 목의 근육 구조’ 로서 인체의 기계적 구조와 움직임에 매료되었던 다빈치의 탐구 정신을 보여 준다. 그는 인체를 여러 방향에서 관찰하고 부분을 확대해 보여 주며 인체 구조와 움직임의 관계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렸다. 오늘날 그의 해부학 드로잉이 인체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규명한 의학 역사상 최고의 과학적 유산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 번째 명언 “이론 없는 실천을 사랑하는 자는 키와 나침반 없이 배에 올라 어디로 표류하는지 알지 못하는 사공과 같다.” 험과 실천을 중시했지만 이론이 없는 실천은 방향을 잃은 노력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이 명언은 예술 역시 감각과 손재주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원리와 이론 위에서 완성되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을 보여 준다. 이론과 실천의 결합이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작품이 ‘모나리자’ 다. 다빈치는 빛, 대기, 인간 시각의 원리를 연구했고 이를 회화에 적용해 스푸마토와 공기원근법이라는 혁신적인 기법을 완성했다. 모나리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눈가와 입술 주변에 뚜렷한 윤곽선이 거의 없다. 다빈치는 아주 얇은 물감층을 여러 번 덧칠하는 글레이징 기법을 통해 밝은 피부색에서 어두운 그림자로 넘어가는 경계를 연기처럼 부드럽게 흐려 놓았다. 바로 그가 창안한 스푸마토 기법이다. 이탈리아어로 연기(Fumo)에서 유래한 이 기법은 사물의 경계를 선으로 가두지 않고 자연스럽게 번지며 사라지게 만든다. 이로 인해 모나리자의 미소는 감상자의 시선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듯한 신비로운 효과를 만들어 낸다. 눈을 바라보면 미소가 느껴지고 입술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미소가 희미하게 사라지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배경 역 시 다빈치의 과학적 탐구가 반영된 중요한 장면이다. 모나리자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산과 강, 계곡이 멀어질수록 푸르고 흐릿하게 표현되었다. 이는 빛이 대기 중의 수증기와 먼지에 의해 산란되면서 먼 풍경이 흐릿하고 푸르게 보인다는 원리를 회화에 적용한 공기원근법의 결과다. 그 덕분에 우리는 모나리자의 등 뒤로 끝없이 펼쳐지는 신비롭고 아득한 자연의 깊이를 경험하게 된다. 다빈치는 1519년 프랑스 앙부아즈의 클로 뤼세 성에서 67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0년이 지났지만 그의 천재성은 여전히 인류에게 전설로 남아 있다. 그 불멸의 가치를 증명하듯 현대 미술계에서도 다빈치의 이름은 놀라운 사건을 만들어 냈다. 2017년 11월 15일,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된 예수의 초상화 ‘살바토르 문디’가 미술품 경매 역사상 최고가인 4억 5030만 달러에 낙찰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단 한 점의 그림이 천문학적 가치를 기록한 이유는 다빈치가 자연과 인간, 종교와 과학을 아름다운 질서로 통합해 낸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거장이기 때문이다. “잘 보낸 하루가 편안한 잠을 가져다주듯 참되게 잘 산 일생은 평온한 죽음을 가져다준다.” 다빈치가 남긴 많은 명언 중에서도 삶과 죽음을 다룬 자기 성찰로 꼽히는 명문장이다. 오늘 하루를 배움으로 가득 채운다면 편안한 잠을 맞이할 수 있고 그런 하루하루가 쌓인 인생의 끝자락 역시 평온한 안식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르네상스 완성자의 조언이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 자소서·학업계획서, 전체 평가의 70%… 직장인·취준생 등 입학장학금 든든

    자소서·학업계획서, 전체 평가의 70%… 직장인·취준생 등 입학장학금 든든

    총 12개 학부서 신·편입학생 모집학업수행검사, 다양한 영역 출제국내 사이버대학원 중 최대 규모일반 8개·경영전문 1개 학과 운영 2026학년도 한양사이버대는 학부와 대학원(석·박사) 신·편입학 지원자를 모집한다. 학사 일정은 댜음달 1일부터 시작된다. 학부는 ▲건축도시건설공학부 ▲기계자동차공학부 ▲에너지신소재공학부 ▲전기전자통신공학부 ▲컴퓨터∙소프트웨어공학부 ▲경영학부 ▲국제언어문화학부 ▲사회과학부 ▲심리상담학부 ▲항공학부 ▲디자인학부 ▲스푸마토학부 등 총 12개 학부 에서 학생을 뽑는다. 지원 절차는 입학 홈페이지(go.hycu.ac.kr)에서 온라인 지원서 작성, 자기소개서 및 학업계획서 제출, 학업수행검사 응시(30분·30문항), 증빙서류 제출 순으로 진행된다. 합격자 발표 후 등록금 납부와 수강신청을 완료하면 된다. 자기소개서와 학업계획서는 전체 평가의 70%를 차지하므로 지원 동기와 학업 계획을 구체적으로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업수행검사는 교육목표 및 이념, 언어, 수리, 사이버윤리, 컴퓨터학습능력 등 다양한 영역에서 출제된다. 입학장학 제도도 운영한다. 직장인·전업주부·취업준비생·고교졸업생·어학성적 우수자 등에게 장학금 혜택이 제공되며, 특별전형 지원자는 등록금 감면 등 추가 혜택이 있다. 국내 사이버대학원 중 가장 규모가 큰 대학원도 2026학년도 전기 일반대학원 및 경영전문대학원 석·박사과정 신입생을 모집한다. 모집 기간은 다음달 12일까지다. 한양사이버대학교 대학원은 2010년 국내 사이버대 최초로 개원해 현재 1119명의 재학생이 있다. 누적 졸업생은 3600명으로 국내 최대 규모다. 재학생 직업군 분석 결과 현직 전문가(51%), 관리자(18%), 사무직 종사자(17%) 순으로 구성되어 실무와 연계된 전문 교육의 수요가 높음을 보여준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학습할 수 있는 온라인 교육 시스템도 장점이다. 실제로 재학생 중 약 8%는 해외에서 수강 중이며, 아시아(54%), 아메리카(21%), 유럽(13%) 등 전 세계에 분포하고 있다. 2026학년도 전기 모집에서는 석사과정 320명, 박사과정 120명을 정원 내 전형으로 모집한다. 정원 외로는 군위탁, 산업체위탁, 외국인 전형을 운영한다. 모집 전공은 ▲기계IT융합공학과 ▲건축도시공학과 ▲아동학과 ▲상담심리학과 ▲법·공무행정학과 ▲부동산학과 ▲교육공학과 ▲디자인기획학과 등 일반대학원 8개 학과와 경영전문대학원 1개 학과다. 입학상담은 입학지원센터(학부 02-2290-0082·대학원 02-2290-0700), 카카오톡 ‘한양사이버대학교’ 채널, 학교 방문 상담을 통해 가능하다. 평일 오전 9시~밤 10시, 주말·공휴일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상담을 운영한다.
  • 그림 이상의 혁신적 발명품, 마담 조콩데의 미소 [으른들의 미술사]

    그림 이상의 혁신적 발명품, 마담 조콩데의 미소 [으른들의 미술사]

    루브르에서 만나다<3>: 인간 탐구의 끝판 ‘모나리자’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작품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모나리자’다. ‘리자 부인’이라는 뜻의 모나리자는 피렌체 상인 프란체스코 델조콘도의 부인으로,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마담 조콩데’(La Joconde)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루브르 박물관은 연간 1000만명에 달하는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가장 큰 방에 ‘모나리자’를 걸어놓았다. 그러나 많은 관람객들에 떠밀려 모나리자를 충분히 감상하기는 쉽지 않다. ‘모나리자’가 이토록 유명한 이유는 당시 작품들과 다른 혁신적인 기술이 사용됐기 때문이다. 먼저 4분의 3면으로 앉은 모습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자세였다. 당시 그리스도나 성모만 정면상이었고, 일반 인물들은 비교적 그리기 쉽게 측면으로 그렸다. 다빈치는 모델의 자세로 이 세상에 없는 구도를 만들어냈다. 이 자세는 인물의 양감과 함께 자연스러운 모습을 구현할 수 있다. 다빈치 발명 덕분에 현대 초상화뿐 아니라 오늘날 입사용 원서 사진들도 이렇게 자연스러운 자세를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은 모나리자 미소다. 중세 시대는 신 중심의 사회로, 인간의 모든 활동은 금기시됐다. 사랑, 웃음, 슬픔이라는 인간과 관련된 모든 감정은 죄악이었다. 1000년 안팎의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인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그 시대를 살던 다빈치는 인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 해부도 마다하지 않았고,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러도 그는 인간의 몸속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다빈치는 미소의 비밀을 찾아냈다. 인간이 미소를 지으려면 몇 개의 근육이 움직이는지 연구하던 다빈치는 입가 주변의 근육과 뺨, 눈가 주변의 근육 44개가 만들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곡선이 바로 미소라는 걸 발견했다. 다빈치는 날카로운 윤곽선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여러 번의 붓질을 통해 미소를 그렸다. 이 기법을 ‘스푸마토 기법’이라 한다. ‘안개 낀’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스푸마토는 윤곽선을 여러 번 흐릿하게 칠해 경계를 없애는 방법이다. 윤곽선이 흐릿하기 때문에 모나리자의 수수께끼 같은 미소는 어느 날엔 수줍게, 어느 날엔 활짝 웃는 것처럼 보인다. 날마다 다른 빛의 양, 보는 사람의 위치,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달리 보이기 때문이다. 관람객 각자의 행복 곡선이나 다름없는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는 500년 전 한 인간이 인간을 깊이 연구한 결과다.
  • [와우! 과학] ‘모나리자’ 미소 비밀…다빈치의 ‘착시’ 기술

    [와우! 과학] ‘모나리자’ 미소 비밀…다빈치의 ‘착시’ 기술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남긴 명작 '모나리자'의 비밀을 파헤친 연구결과가 또 나왔다. 최근 영국 셰필드할람 대학등 공동연구팀은 다빈치가 눈의 착각을 '의도적'으로 이용해 신비한 모나리자 미소를 만들었으며 또 다른 작품에서도 이같은 특징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세계적인 명작으로 꼽히는 모나리자는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신비한 미소로도 유명하다. 특히 모나리자의 미소는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데 정면에서 봤을 때는 입가에 미소가 드러나지 않으나 측면에서는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같은 눈의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다빈치는 그림에 여러 겹의 물감을 덧칠해 사물의 윤곽선을 안개에 싸인 것처럼 흐릿하게 처리하는 스푸마토(sfumato) 기법을 사용했다. 특히 이 사실은 지난 2010년 프랑스 박물관 연구 복원센터 전문가들이 X선 형광분광기를 동원해 모나리자 물감층과 화학성분을 분석한 결과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당시 연구에 따르면 다빈치는 모나리자의 눈가와 입가 등에 산화망간 성분의 얇은 막을 최대 30겹까지 입혔다. 이번 연구에 대상이 된 작품은 세계적으로 큰 화제와 논란을 일으킨 다빈치의 또다른 걸작 '아름다운 왕녀'(La Bella Principessa)다. 연구팀은 피실험자들을 대상으로 이 그림을 여러 방식으로 보여주는 시각적인 실험을 실시했다. 예를들어 멀리 떨어져서, 흐릿한 그림으로, 입과 눈 등 특정 부위를 가리고 보여주는 등의 실험을 실시한 것. 그 결과 그림의 표정 변화는 입가에 의해 야기된다는 사실이 확인됐으며 연구팀은 이를 '붙잡을 수 없는 미소'(uncatchable smile)라 불렀다. 연구를 이끈 알렉산드로 소란조 박사는 "이 그림의 미소를 느끼게 되는 순간 사라져 붙잡을 수 없는 미소라 부르는 것" 이라면서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한 시각적 기법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사람이 바로 다빈치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빈치는 눈의 착각을 일으키는 이같은 기술을 의도적으로 여러 작품에 넣었다" 고 덧붙였다. 한편 '아름다운 왕녀'는 지난 199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당시 이 그림은 19세기 초 독일 미술학도가 다빈치를 흉내낸 작품으로 오인돼 경매에 올랐고 이 때문에 판매 가격은 불과 1만 2039파운드로 당시 환율로 채 2000만원이 안됐다. 그러나 10년 뒤 이 그림에서 다빈치의 지문과 탄소연대 측정 결과 1440~1650년에 제작된 것이 확인되면서 세계 미술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또한 영국 옥스퍼드 대학 석좌교수 마틴 캠프는 이 그림의 인물이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 스포르자(1452~1508년)의 딸인 비앙카 스포르자라고 주장하면서 '아름다운 왕녀'라는 작품명을 갖게됐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0)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0)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대자연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면서 가장 위대한 재능의 비가 천상의 작용을 거쳐 사람들의 몸을 적시기도 하는데 가끔 단 한 사람만이 초자연적인 이유에서 이러한 아름다움, 우아함, 능력으로 흠뻑 젖기도 한다.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은 너무나도 신비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를 뒤따르면서 그 사람이야말로 인간세계에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바로 신이 점지한 천재, 혹은 그 자신이 바로 신이란 것을 재삼 확인하게 하는 것이다.”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자신보다 한 세대 앞서 태어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를 “놀랍도록 신적인 사람”으로 묘사한다. 레오나르도는 고상한 교양인 행세를 하면서도 이름 없는 풀을 스케치하려고 풀밭에 엎드리고, 30구가 넘는 시체를 해부했는가 하면, 낯선 풍경과 기괴한 얼굴을 찾아 시장을 누볐다. 거의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이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 신에 도전하는 ‘천재’의 면모였다. ●“재주가 많으나 일 마무리 못짓는 사람”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의 조용한 시골 마을 빈치(Vinci)에서 태어난 레오나르도는 17살에 아버지를 따라 피렌체로 이사한다. 15세기의 피렌체는 흑사병이 창궐했던 불결하고 역겨운 과거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길을 닦고 성당을 지으며 우아한 문명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었다. 상업과 금융으로 성장한 부르주아 계급은 독자적인 윤리를 만들어가며 변화를 주도했다. 그곳은 그야말로 낡은 세계가 부서지고 인간의 손에 의해 새로운 세계가 창조되는 신천지였다. 레오나르도의 아버지는 능력 있는 공증인으로서 피렌체의 변화를 민감하게 주시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지 못한다. 사생아였기 때문이다. 사생아라는 사실은 당시로서는 별로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으나 새로 성장한 계급은 부정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집단에 들어오는 것을 철저히 금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레오나르도에겐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아들의 재능을 간파한 부친은 그를 당시 최고의 장인이었던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의 공방에 보낸다. 베로키오는 청동 주물과 회화, 건축에서 인정받는 장인이자 ‘기술 개혁가’였다. 그의 공방은 최신 공법의 실험실이었으며, 정치 토론의 장이었고, 고대 철학을 비롯하여 음악과 문학을 즐기는 문화의 메카였다. 이런 지적 활기는 소년 레오나르도를 자극했다. 그는 이곳에서, 새로운 시대의 장인은 스스로 경험하고 탐구하여 새로운 것을 창안해야 한다는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을 배웠다. 배움과 창조의 매력은 그를 사로잡았고, 더 많은 것을 알수록 앎에 대한 그의 열정은 더해갔다. 새로운 창작 의욕으로 가득 찬 재주 많은 젊은이 레오나르도. 하지만 스승에게서 독립한 이후 그는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전쟁에 시달리던 피렌체의 재정은 파탄나기 시작했고, 교황과의 갈등도 심해져 성당을 신축할 수도 없었으며, 흑사병의 창궐로 아름다운 도시는 혼돈의 장으로 변했다. 보티첼리, 페루지노, 피에로 디 코시모 등은 교황의 부름을 받아 신축 성당의 벽화 작업을 위해 로마로 떠나갔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명단에 없었고, 몇몇 작업을 의뢰 받았으나 작품을 완성하지도 못했다. 피렌체에서 그는 아직 “재주가 많으나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장인에서 창조자로… 다빈치코드 레오나르도는 새로운 길을 찾아 밀라노로 향한다. 밀라노에서 세력을 잡은 루도비코 일 모로(Ludovico il Moro)가 부친의 청동기마상을 제작하고 싶어한다는 정보를 알아낸 것. 레오나르도는 일 모로에게 보낸 ‘구직편지’에서 ‘쉽게 운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아주 가볍고 튼튼한 다리’, ‘성을 무너뜨리는 기계’, ‘공포를 자아내는 여러 종류의 포’ 등 온갖 전쟁 기술을 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저는 대리석이나 청동 또는 진흙으로 조각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림도 그릴 줄 압니다.” 레오나르도의 예상은 적중했다. 밀라노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반도 사이에 위치한 군사와 상업의 요충지로, 격렬한 쟁탈전과 복구 작업이 번갈아 일어나고 있었다. 젊은 지배자 일 모로는 군사력을 기르는 한편 밀라노를 피렌체와 같은 문화 도시로 재정비하고자 했다. 레오나르도는 각종 분야를 넘나드는 박학한 지식과 놀라운 언변, 우아한 태도로 일 모로를 사로잡았다. 일 모로의 후원 하에 그는 자동으로 연주되는 악기를 만들고 화려한 축제를 기획하는 한편, 햇빛이 잘 들고 굴뚝의 연기는 잘 빠져나가는 쾌적한 가옥을 설계했으며, 밀라노 외곽의 강물을 도심으로 연결하여 물레방아를 돌리고, 화초를 키우고 자동으로 거리를 세척하는 설비를 고안한다. 신이 창조한 자연이 고유한 법칙대로 작동하듯이, 그 역시 자신의 ‘창조’에 따라 작동하는 도시를 꿈꾸었던 것. 밀라노에서 레오나르도는, 말 그대로 신에 필적하는 창조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700쪽에 이르는 레오나르도의 노트북은 온갖 그림과 암호 같은 문자들로 가득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다빈치 코드, 즉 신비한 ‘비밀’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비밀이나 암호보다는 거의 모든 것을 망라한 백과사전의 초고와 같다. 회화에 필요한 원근법, 빛과 그림자의 원리, 색채론은 물론, 비행원리, 인체와 동식물에 관한 생물학적 연구, 예술가의 윤리적 지침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 사색까지, 그의 노트북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더듬는 화가의 잡담이 아니라 자연에 숨겨진 신의 창조 법칙을 알아내고자 하는 탐험가의 일지에 가깝다. 레오나르도의 왕성한 탐구욕은 회화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기존의 관습적 도상을 깨고 전에 없던 화면을 구성한다. 예를 들어 ‘암굴의 성모’에서는 옥좌에 앉은 성모가 아니라 어두운 동굴 안에서 사랑스러운 아들 예수가 가야 할 길을 안타까워하는 성모의 마음을, ‘최후의 만찬’에서는 고상한 성인들이 만찬이 아니라 저녁 식탁에서 갑자기 “너희들 중 나를 배반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는 예수의 발언이 몰고 온 충격을 포착했다. 일 모로가 실각한 뒤에도 레오나르도는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떠돌면서 자신의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를 우리는 ‘모나리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모나리자’에는 윤곽을 명확하게 그리지 않고, 멀어질수록 대상을 뿌옇게 처리하는 스푸마토(sfumato) 기법이 사용되었다. 세밀하게 표현된 풍경은 안개가 쌓인 듯 흐려지면서 사실감을 더했고, 살짝 흐릿하게 표현된 그녀의 입술은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표정을 지었다. 레오나르도가 그린 것은 입술이 아니라 미소였고, 얼굴이 아니라 내면이었다. 대상을 재현하는 단순한 손 기술자를 넘어서 인간의 영혼을 눈앞에 되살려내는 창조자가 된 것이다. “시인은 이야기나 글로 형태를 정확히 묘사할 수 있지만, 화가는 얼굴 표정을 드러내는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인물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그릴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시인의 펜으로는 할 수 없지만, 화가의 붓을 통해서는 이룰 수 있는 일이다.”(다 빈치의 ‘노트북’) ●위대한 탐구자, 겸허한 연구가로 레오나르도의 완성작은 10점 남짓이다. 바사리에 따르면, 이는 그가 “그조차도 실현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들은 미완성 상태가 더 예술적이기 때문에 일부러 완성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레오나르도 스스로가 완성하는 일보다는 착상하는 일에 더 큰 기쁨을 느꼈다는 해석이다. 예술은 그에게 과학과 철학을 위한 하나의 도구였다. 꽃과 시체를 관찰하고 스케치하는 일은 생명의 원리를 파악하는 일이었으며, 대포를 고안하는 일은 물리법칙을 알아내기 위한 실험설계였다. 그리고 그 모두는 자연의 섭리를 숙고하는 과정이었다. 그림은 목적이 아니라 사유를 돕는 도구였기에 생각이 완성되면 붓도 멈추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칠 줄 모르는 탐구욕으로 자연을 탐사하던 레오나르도는 말년에 이렇게 고백한다. “자연은 경험이 절대로 보여주지 못한 무한한 원인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수첩 한 구석에 이렇게 쓴다. “나는 계속하리라.” 위대한 탐구자만이 만날 수 있는 인간 이성과 경험의 한계에 이른 뒤에, 그는 겸허한 태도로 경이로운 자연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생의 마지막까지 자연을 탐구한다. 그것이야말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놀랍도록 신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준 위대함이었다. 구윤숙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남산’에 떠오르는 젊은 연극

    ‘남산’에 떠오르는 젊은 연극

    재개관 2년째를 맞는 남산예술센터가 현대연극 전문 극장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한다. 올해는 ‘컨템포러리 & 뉴웨이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11편의 공연 중 7편을 창작 현대희극으로 선보인다. 이를 통해 자체 제작 극장으로서의 이미지도 강화하겠다는 포석이다. 지난해 2편에 그쳤던 자체 제작 공연을 올해 4편으로 늘렸다. 이 가운데 상반기 무대에 오르는 ‘당신의 잠’과 ‘우릴 봤을까?’가 시선을 끈다. 두 젊은 여성 연극인의 죽음에 대한 색다른 시선이 담겨 있다. 실험적 극작과 무대 연출로 인정받은 동이향 연출가가 직접 글을 쓰고 연출한 ‘당신의 잠’은 뒤늦게 동성과 사랑에 빠진 중년 남자의 이별 이야기를 그렸다. 새달 2일까지 서울 남산예술센터 자체 극장에 오르는 이 작품은 동성애자의 파국적 삶을 통해 현대사회의 구조화된 일상의 비극을 연극으로 형상화했다. 법학도 출신의 젊은 연출가 김한내의 ‘우릴 봤을까?’는 새달 7일부터 16일까지 무대를 장식한다. 어머니와 옛 연인의 죽음을 연이어 겪은 주인공의 이야기다. 겹쳐진 죽음 체험에서 비롯된 소통과 관계의 단절을 통해 새로운 일상성을 모색한다. 파편으로서의 삶에 익숙한 오늘날의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지 접근하고 있다. 6월18일부터 27일까지 공연되는 ‘차숙이네 1동 28번지’도 눈에 띈다. 집이 주인공인 이색 연극이다. 관객들은 무대에 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집에 얽힌 사람들의 사연과 노고를 이야기한다. 삶의 필수 공간이자 도구인 집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이 돋보인다. 하반기에는 유럽과 한국을 대표하는 연출가들의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유럽 현대연극을 이끄는 독일 샤우뷔네 극단의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햄릿’과 마르가리타 믈라데노바와 이반 도브체프가 연출하는 불가리아 스푸마토 극단의 ‘오-고골의 꿈’이 10~11월 잇따라 공연된다. 국내 작품으로는 김광보 연출가가 정유정 작가의 소설을 연극으로 옮긴 ‘내 심장을 쏴라’가 대기 중이다. 연출가 최용훈은 김명화·장성희·김민정 작가의 작품을 연작 방식으로 무대에 올리는 공동창작 프로젝트를 맡았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나이가 많지요, 500살 미녀 에 얽힌 수수께끼

    나이가 많지요, 500살 미녀 에 얽힌 수수께끼

    어떤 이는 지난해인 2006년이 모나리자 탄생 500주년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림이 1507년 완성된 것으로 보아 2007년이 500주년이라고 얘기한다. 결코 화려하지 않은 검은 의상을 입고 상반신을 우측의 관객 쪽으로 향하면서도 얼굴은 정면을 바라보며 입가에 신비스런 엷은 미소를 띠고 있는 매력적인 여성의 이 스푸마토(Sfumato)기법의 상반신 유화초상은 역사상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미술작품임에 틀림없다. 눈썹은 면도로 밀었는지 없고 머리엔 잘 보이지 않지만 베일을 쓰고 있다. 환상적인 자연 풍경이 멀리 보이는 테라스에서 난간과 두 개의 원주를 뒤로 한 채 반원형 나무의자에 앉아 왼팔은 의자 팔걸이에 올려놓고 오른 손은 왼손 손목 위에 포개 놓고 있다. 모나리자 때문에 떼돈 번 사나이 얘기부터하자. 오래 전 미국의 흑인 저음가수 낫킹콜이 한국을 다녀간 적이 있다. 그가 지금 세종문화회관 자리에서 공연할 때 그 유명한 노래 ‘모나리자’를 스스로 피아노를 치면서 부르는 것이 아닌가? “모나리자, 모나리자. 그대 이름을 불러본다. 신비한 미소를 띤 부인이여....” 1950년 6월 10일 낫킹콜이 발라드풍의 ‘모나리자’를 불러 이를 모나리자에게 바치자 300만장의 레코드판이 팔려나가는 기적적인 매상을 보여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이 젊은 날의 멜로디는 지금도 내 귓가에 흐르고 있다. 나의 가라오케에서의 18번의 하나는 바로 이 노래 모나리자가 된 것이다. 모나리자로 큰돈을 챙긴 여인은 당대의 할리우드 스타 줄리아 로버츠이다. 그녀는 2003년 모나리자 이름을 빌린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에 미국 뉴잉글랜드의 명문 웰즐리 여대에 새로 부임한 미술사 교수로 출연하면서 몸값으로 당시 우리 돈으로 환산 약 2백 80억 원을 챙겼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내용 면에서 모나리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무슨 감정을 표현하고 있을까? 2005년 말 화란의 암스테르담 대학과 미국 일리노이 대학연구팀의 감성 인식 컴퓨터를 통한 그림 이미지 공동연구 결과 모나리자의 미소는 인간의 여섯 가지의 감정 표현 중에서 행복 83%, 불쾌함 9%, 두려움 6%, 분노 2%, 무표정 1%로 구성되어 있으며 놀라움은 전혀 없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모나리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모나리자의 정체를 놓고 몇 가지 대조적인 주장이 있다. 1)모나리자를 그린 다빈치가 죽자 그의 전기를 쓴 조르지오 바사리의 주장에 의하면 피렌체의 비단 장사였던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부인이라 본다. 그리하여 조콘도의 여성형인 ‘라 조콘다’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모나리자 혹은 라 조콘다로 불린 것은 19세기에 와서 이고 그 전에는 ‘한 피렌체부인의 초상’ 혹은 ‘면사포를 쓴 창부’라고 불리기도 했다. 2004년 이태리 학자 쥬세페 팔란티니는 이 모나리자가 1479년 생으로 24세 때 이 화가의 화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기 시작하였으며 5명의 자녀를 낳고 1542년 63세로 죽어 피렌체의 상오솔라 수도원에 묻혔음을 밝혀낸다. 2) 벨연구소의 슈와르츠 박사는 컴퓨터로 디지털 해상분석을 통하여 얼굴 라인을 대조한 결과 이 그림은 여성화되긴 했으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자신의 초상화라는 주장을 도출하였다. 그렇다면 여장남인으로서 다빈치의 얼굴윤곽을 닮은 가공의 여인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3) 미술 감정가 헨리 퓰리처는 다빈치의 후견인이었던 밀라노의 메디치가(家)의 쥴리아노의 부인 프랑카빌라 공작부인일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녀의 애칭도 ‘라 조콘다’였다. 4) 다른 연구가 뤼르센은 그림의 여인은 밀라노 공작의 부인인 아라곤 이사벨라라고 주장하였다. 다빈치는 11년간 밀라노 공작을 위하여 궁정화가로 일하였었다. 다른 유명화가 라파엘이 그린 밀라노 공작부인과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모나리자는 어디에 그려져 있는가? 보통 캔버스가 아니라 포플러 나무판에 그려져 있다. 모나리자의 화폭 크기는? 세로 77cm, 가로 53 cm이다. 35인치 텔레비전 화면의 크기와 비슷한 정도이다. 모나리자의 몸값은 얼마짜리인가? 기네스북에 의하면 보험에 든 그림 중에 가장 값비싼 그림이 바로 모나리자라고 한다. 모나리자는 1962년 당시 미국 순회 전시를 위한 보험에 들 때 실제로 1억불로 감정하였다. 이것을 현가(2006년 기준)로 치면 적어도 6억 7천만 달러로 환산할 수 있다. 우리 돈으로 6천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 모나리자를 욕보인 남자들은 누구인가? 1) 1956년 신원미상인 사람이 산을 모나리자에 뿌려 그림하반을 심각하게 손상시켰다. 2) 같은 해 12월 30일 남미 볼리비아사람인 우고 비예가스는 모나리자에 돌멩이를 던져 손상을 입혔다. 그 결과 모나리자의 왼쪽 팔꿈치에 상처가 가게 되었다. 이제는 그림에 방탄유리를 씌어 전시 중이다. 3) 1911년 8월 21일 이태리인 빈센초 페루지아라는 루브르미술관 목공 직원은 모나리자를 훔쳤다. 그녀를 납치(?)후 2년간 자기 아파트에 감금하였다가 피렌체의 미술상 알프레도 게리에게 팔았고 이것이 뒤 미쳐 알려지자 우여곡절 끝에 이태리에서 순회전시가 끝나면서 루브르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페루지오는 나폴레온 시대에 프랑스가 빼앗아간 이태리의 문화유산을 도루 찾아오기 위할 목적으로 훔쳤다고 증언하였으나 실은 아르헨티나의 사기꾼 발피에르노에 고용되었었다. 그는 모사전문 화가 이브 쇼드론에게 모나리자의 모작을 그리게 하여 진품이라고 속이고 미국의 부호 여섯 명에게 각각 팔아치워 큰돈을 챙겼다. 페루지오는 1년 15일 감옥에 있다가 이태리에 대한 애국적인 입장을 참작하여 풀려났다. 이를 사람들은 20세기 최대의 미술품도난 및 사기 사건으로 일컫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모나리자 때문에 구치소 신세를 졌다? 1911년 모나리자가 도난당했을 때 프랑스의 전위 시인 기욤 아포리넬리라는 사람이 용의자로 체포되었고 그의 친우였던 파블로 피카소도 이어서 체포 구금되었다. 나중 그들은 풀려났지만 피카소는 일생 모나리자의 저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마릴린 몬로와 모나리자의 인연은? 1963년 세계적 팝 아티스트 앤디워홀은 현대적 아이콘으로 모나리자를 나염 천에 그려 넣음으로써 그가 즐겨 그린 마릴린 몬로와 함께 자기의 마스코트임을 나타내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2년 모나리자가 미국 나들이를 했을 때 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케네디 대통령이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함으로써 그와 내연의 관계에 있었다는 마릴린 몬로와는 앤디워홀의 붓끝을 통해 모나리자를 사이에 두고 다시 연계되는 꼴이 되었다고나 할까? 클린턴 대통령과 모나리자의 관계는? 미국의 뉴요커 지는 1999년 2월 8일 모나리자 이미지를 모니카르윈스키와 합성한 그림 ‘모나 모니카’를 표지에 실음으로써 클린턴에게 아픔을 주었다. 모니카르윈스키는 클린턴 대통령 집무실 옆방에서 지퍼게이트라 불리는 오랄 섹스 스캔들의 장본인이다. 살바도르 달리와 모나리자의 콧수염? 1919년 다다이즘화풍의 거장 마르셀 뒤샹이 모나리자의 모습에 콧수염과 염소 턱수염을 단 그림을 발표한바 있으나 이에 한 술 더 떠서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1954년 콧수염 달린 자신의 초상화를 모나리자 스타일로 형상화하였다. 글 최정호 한양대 겸임교수, 경영학박사, <CEO여 문화코드를 읽어라>의 저자     월간 <삶과꿈> 2007.09 구독문의:02-319-3791
  • “모나리자는 둘째 갓 출산한 엄마였다”

    500년 가까이 신비한 미소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 ‘모나리자’ 주인공은 아이를 출산한 뒤의 행복감이 자아낸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캐나다 국립과학기구(NRC)의 피에르 쿨롱브 소장은 특수 3D 레이저 기술을 이용해 모나리자를 정밀 분석한 결과,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모나리자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낼 수 있었다고 27일 주장했다. 프랑스 국립박물관 복원연구소의 브루노 모탱은 “연구 결과 모델이 아주 얇고 투명한 망사천을 두르고 있는 것이 새롭게 드러났다.”면서 “그동안 그림을 덮고 있는 에나멜 때문에 망사천을 식별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그는 “이 망사천은 16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임신부나 막 출산한 부인이 두르던 전형적인 것으로 이 젊은 여성은 갓 출산한 뒤의 행복함을 미소로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발견으로 이 그림이 모나리자의 둘째아들 출산을 기념하기 위해 다빈치가 그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서 “이렇게 본다면 이 그림의 제작 연대는 1503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모나리자의 모델이 된 주인공은 당시 피렌체의 거상이었던 프란체스코 데 조콘도 부인으로 다섯 아이를 두었던 리자 게라르디니로 알려지고 있다. 11명으로 구성된 NRC 연구팀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의뢰로 모나리자의 신비를 규명하기 위해 지난 2년간 특수 적외선 촬영과 3차원 영상기술을 동원해 이 그림의 안료층을 투시하는 분석을 벌여왔다. NRC는 나무판 위에 그려진 모나리자가 온도 등 환경 변화에 취약하지만 현 상태대로 보존된다면 앞으로 손상될 위험성은 없다고 판정했다. NRC 전문가 존 테일러는 그러나 이번 정밀 분석에서도 붓 터치의 흔적을 찾지 못해 색과 색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며 윤곽선을 없애는 다빈치 특유의 스푸마토 기법의 비밀은 찾아내지 못했다고 말했다.함혜리기자 lotus@seoul.co.kr
  • [책꽂이]

    ●지식:그 탄생과 유통에 대한 모든 지식(피터 버크 지음, 박광식 옮김, 현실문화연구 펴냄) 근대초 유럽의 지식인들은 ‘지식의 공화국’ 혹은 ‘학식의 공화국’이라는 가상의 공동체를 이뤘다. 이 국경없는 공화국은 오로지 지식을 공통분모로 경계없이 만나고 흩어졌다. 독일의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은 지식인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인텔리겐치아”로,“어디에도 뿌리를 박지 않고 상대적으로 계급에서 자유로운 집단”으로 규정했다. 이 책은 지식의 탄생과 흐름, 분류, 판매, 소비, 상품화, 그리고 지식인의 정체를 추적한 ‘지식의 사회사’다.1만 5000원. ●강조해야 할 것(수전 손택 지음, 김유경 옮김, 시울 펴냄)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과 세계에 대해 가하는 복수다.”라는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서구미학의 전통을 이루던 내용과 형식의 구별,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별을 비판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수전 손택. 그는 에세이스트, 소설가, 예술평론가, 극작가,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문화비평가, 사회운동가 등으로 활동하며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뉴욕 지성계의 여왕’ 등의 별명을 얻었다. 이 책은 독일 영화의 전설 파스빈더의 영화에서 하욱에스트와 호지킨의 그림, 차일즈와 커스틴의 춤, 볼랜드와 매플소프의 사진작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가와 작품들을 분석한다.2만 3000원. ●다빈치의 위대한 발명품(도미니코 로렌차 지음, 이재인 등 옮김, 시공사 펴냄) 스푸마토 기법의 오묘한 색감만큼이나 신비와 미스터리의 인물로 다가오는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가 숱한 발명품을 남긴 과학자였다는 것은 더이상 뉴스가 아니다. 이 책은 그가 남긴 발명노트를 3D로 재현한다. 다 빈치 노트속의 장갑선, 권양기, 비행용 기계 등을 디지털로 복원해 숨겨진 과학적 업적을 들춰낸다. 또 태엽과 톱니바퀴로 작동되는 시계, 직조기, 제분기, 인쇄기 등과 오르페우스극 무대장치, 두개골 모양의 리라, 자동드럼, 비올라 등 놀라운 발명품들이 도판과 함께 소개된다.3만 2000원. ●지폐 꿈꾸는 자들의 초상(박구재 지음, 황소자리 펴냄) 프랑스왕 루이 16세는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아시냐라는 새 지폐를 대량 발행한 뒤 자기의 인물 초상을 넣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물가폭등에 따른 경제파탄으로 대혁명이 시작됐고, 혁명군은 루이 16세 체포령을 내렸다. 마부로 변장한 왕은 궁을 빠져나와 다른 나라로 탈출을 시도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루이 16세를 단두대의 이술로 사라지게 한 것은 지폐 속에 그려넣도록 한 자신의 얼굴이었다. 탈출하는 그를 알아본 시골의 한 농부가 신고했고, 루이 16세는 체포되고 만 것이다. 지폐 속에 등장하는 세계 22개국 인물 39명의 이야기를 다뤘다.1만 2800원. ●신들도 꿈꾸는 그리스 섬 기행(정구일 지음, 작은이야기 펴냄) 그리스에는 3100여개의 섬들이 있다. 그중 상당수의 섬이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모여있는데 이곳이 바로 에게해다. 이슬람과 기독교 세력이 오랫동안 공방을 벌이던 에게해의 섬들 대부분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거의 그리스 영토로 편입됐다. 에게해는 미노소스의 황소괴물을 물리친 테세우스의 아버지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해 몸을 던진 곳이기도 하다. 그가 바로 아이게우스. 그것이 유래가 돼 에게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신화가 숨쉬는 에게해 섬에 대한 인문기행서.1만 1000원. ●하늘에 수놓은 구름 이야기(임소혁 지음, 대원사 펴냄) 권운(새털구름) 권적운(조개구름) 권층운(햇무리구름) 고적운(양떼구름) 고층운(회색차일구름) 난층운(비구름) 층적운(층쌘구름) 층운(안개구름) 적운(뭉게구름) 적란운(소나기구름) 등 10종의 기본구름에 대해 설명. 산악사진가인 저자는 구름장 햇살, 구름바다 등 다채로운 구름의 모습을 300여컷의 사진을 통해 보여준다.1만 8000원.
  • [대한시론] 모나리자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를 기념해서 정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우리나라에 빌려오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모나리자’는 세계의 모든 미술품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니 이를 우리나라에서 직접 감상할 수 있다면 그것은 놓치기 아까운 기회이다.그러나 워낙 유명세를 타는 그림이다보니 프랑스 정부로서도 섣불리 내돌리기가 쉽지 않을것이고 작품의 안전한 운송과 보관 등 여러 까다로운 조건이 붙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53×75㎝ 정도의 비교적 작은 그림으로 루브르미술관에서도 도난사고 이후 방탄유리 안에 보호하고 있어서 사실 그 바로 앞에서도 제대로 보기가 쉽지 않다.워낙 많은 관광객들이 그 앞에 몰려 북적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또 사진촬영을 금지하는데도 불구하고,그리고 복잡한 실내에서 사진을찍어보았자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몰래 사진을 찍어대는데 그것은 물론 이 세계적 그림을 보았다는 증명사진을 찍기 위한 것이다.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이 그림을 이다지 유명하게 만든 것일까. ‘모나리자’는 피렌체의 부유한 은행가 조콘도의 24세 된 부인 리사의 초상화여서 일명 ‘조콘다’라고도 불린다.이 그림은 레오나르도가 3년여 동안 작업했고 또 상당한 애착을 가져서 그가 말년에 프랑스로 건너갈 때 소지하여 결과적으로 루브르에 소장되게 된 것이다.미술사적으로는 그가 창안한 안개가 낀 듯 은은한 대기를 표현하는 ‘스푸마토’기법이 잘 드러난 초상화의 전형을 확립한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인공은 얼핏 동양의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양손을포갠 자세로 의자에 앉은채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는 구도이며 얼굴은 정면향이지만 어깨는 3/4 정면향으로 살짝 틀었다.원래 그녀 양쪽 옆으로 기둥이있었지만 세월이 가면서 조금씩 잘려나가서 현재는 겨우 일부만 보일 뿐이며,얼굴부분은 그간의 보수과정에서 거의 바탕칠이 드러날 정도로 지나치게 물감이 닦여 나갔다.어쨌든 이 작품은 당시 초상화의 한 귀감으로 높이 평가받았고 후배작가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정작 이 그림이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이런 미학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그것은 19세기에 낭만주의적인 성향의 문필가들이나 미술애호가들이 그녀의 미소를 신비화시키는 수많은 글을 썼기 때문이다.자세히 보면그녀는 그리 대단한 미모가 아니지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미소인지 비웃음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표정을 띠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물론 무심하게 넘기면 그만이지만 의미를 두고 바라보면 그녀의 시선에서 사람을 빨아들이는 묘한 힘을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은 화가가 그만큼 그녀를 살아있는인물로 그려놓은 탓이다.어쨌든 이 ‘모나리자의 미소’에 얽힌 지나친 설들은 선입견없는 정당한 평가를 가로막아 작품 감상에는 도리어 해가 되어온것이 사실이다. 이런 ‘모나리자’에게 20세기는 수난의 시대였다.1910년대 말에 레오나르도 만큼이나 유명해진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뒤샹이 이 작품의 복제화에 콧수염과 턱수염을 그려넣고 “그녀는 뜨거운 엉덩이를 가졌지”라는 뜻의 외설스럽고 장난스러운 제목을 붙인 것이다.이것은 아름답고 신비스러운여성의 대명사인 그녀를 남성화시키고 서양미술사의 대표적인 걸작을 한낮 농담거리로 비하한 우상타파적인 제스처였던 것이다. 뒤샹의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의 동성애적인 성향에 대한 언급이자 동시에 그 자신의 양성에 대한 관심의 발로였다.그것으로 부족해서 그는 말년에는 수염이 없는,그러니까 고치지 않은 ‘모나리자’의 복제화를 ‘면도한’모나리자로 둔갑시켰다.결과적으로 그는 남의 작품에 간단하게 수염을 그렸다 지웠다(실제로 지운 것도 아니지만)함으로써 원작에 버금갈만큼 유명한작품을 두 개씩이나 만들어낸 것이다. 뒤샹 이후로 ‘모나리자’는 미술에서 무수한 변조작품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특히 광고계에서는 가장 많이 패러디되고 애용되는 최고의 고전이 되었다.19세기의 신비한 미소는 현대에 와서는 한갖 농담이나 장난의 대상이 되어버렸지만 원작의 광휘는 물론 아직도 스러지지 않아 ‘모나리자’는 이제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문화사절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려는 참이다.미술품의위상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처럼 역동적으로변화하는 것을 보여주는 예로서도 ‘모나리자’는 유일하다. ◆姜 太 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 사간동 「현대미술거리」로 부상/갤러리현대 증축…대형전시공간 확보

    ◎학고재도 「아트 스페이스 서울」 문열어/금호그룹 내년 개관 목표로 새화랑 신축 경복궁 맞은편 종로구 사간동에 두개의 큰 화랑이 새 단장을 하고 재개관하면서 이 거리가 「현대미술의 본거지」로 부상할 전망이다. 현대화랑이 분관으로 활용하던 갤러리현대 건물을 최근 지하1층·지상4층 규모의 대형 전시공간으로 증·개축했다.또 학고재가 사간동 중심부에 있던 시공화랑을 인수하고 현대미술 전문의 아트 스페이스 서울을 지점으로 개관했다.게다가 금호그룹이 갤러리현대 바로 옆 자리에 이미 미술관 부지를 확보하고 내년 6월 개관을 목표로 공사를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화랑과 함께 국제화랑,그로리치화랑등 국내 화랑계의 중량급 화랑들이 이미 터를 굳히고 있는 사간동 일대가 더욱 무게있는 미술의 거리로 변모하게 된다. 이곳이 「현대미술의 본거지」로 부상할 것이란 예상은 화랑의 명성이나 규모만에 따른 것이 아니다. 국내 미술계의 내로라하는 원로·중진과 거래해 온 현대화랑이 갤러리현대 신관에서는 젊은 작가 양성을 위한 전시회를 주로 열 계획이다.국내 최초로 쇼윈도를 전시공간화한 「윈도갤러리」를 설치하고 매달 젊은 작가 한명의 작품을 소개할 뿐더러 유망한 신예작가 발굴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윈도갤러리」의 첫 주자는 작가 박관욱씨다. 새로운 현대미술 공간으로 탄생한 스페이스 아트 서울은 또 고미술로 입지를 다진 학고재 대표 우찬규씨가 현대미술에 도전하기 위해 30대 미술평론가 이주헌씨를 관장으로 영입하고 15일부터 의욕찬 프리오픈전을 열기로 했다. 내년 3월 정식 개관에 앞서 「참신한 이미지」를 과시하기 위해 마련한 이 전시는 「스푸마토의 경계위에서」란 이색적인 주제를 내걸고 한달간 고명근·김춘수·최진욱등 국내 젊은 작가 16명의 작품향연으로 꾸민다. 이 전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창안한 회화기법인 분명한 경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스푸마토화법」의 의미를 따서 기왕의 경계를 허물고 새 조형적 비전과 인식지평을 열어가는 이 시대의 젊은 작가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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