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사 ~ 갑사 산행길
새해 벽두,겨울의 한복판에 동학사에서 갑사로 넘어가는 길에 오른다.미타암∼동학사∼남매탑을 지나 삼불봉과 금잔디 고개를 넘어 다시 한 식경쯤 더 내려간 곳에서,갑사는 산자락을 지붕삼아 동그마니 들어앉아 방문객을 맞는다.
산행의 목적은 갑사가 아니라 갑사까지 가는 여정이다.계룡산 국립공원에 속한 동학사∼갑사 길은 혼자서도 심심치 않은 산행코스.예쁘게 얼어붙은 계곡,흰 옷으로 갈아입은 나목들,자연석들을 듬성듬성 놓아 만든 돌계단이 마냥 정겹다.무에 그리 빌 것이 많은지,지나는 사람이 하나씩 돌을 올려놓아 생긴 돌탑들은,계룡산이 ‘정령(精靈)의 산’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산행 기점은 동학사 아래 주차장.매표소를 지나 20분쯤 걸어 올라가면 미타암이다.암자가 제법 커 초행인 사람은 동학사로 착각하기 쉽다.계곡의 눈 덮인 고목과 거친 다듬이돌 모양의 돌을 놓아 만든 계단,암자 지붕의 곡선미가 어우러져 미타암 주변은 한 폭의 풍경화를 이룬다.
미타암에서 10분쯤 오르면 동학사다.동학사는 신라 중엽,또는 백제 때 창건됐다는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절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어 동학사란 이름을 붙였다는 설도 전해진다.여승을 위한 전문강원(講院)이 있어 수행중인 비구니들이 많다.
동학사 계곡은 산세가 특이하고,계곡 근처에 관목림이 짙게 깔려 있어 사계절 골짜기에서 뿜어 나오는 바람이 일품이다.여름엔 얼음장처럼 차지만 겨울엔 계곡 바람이 바깥보다 오히려 덜 춥게 느껴진다.
동학사를 지나면서부터는 얼어붙은 눈 때문에 등산로가 꽤 미끄럽다.조심조심 발을 내디디며 한시간쯤 올랐을까.일명 ‘오뉘탑’으로 불리는 동학사 5층·7층 석탑이 나란히 서서 가슴 시린 옛 사랑이야기를 들려준다.
1400여년 전 신라 선덕여왕 시절.당나라 상원(上原)대사가 이곳에 움막을 치고 수행하던 어느 날 밤 커다란 범이 다가와 입을 딱 벌리는 것이었다.목 안에 사람뼈가 걸려 있어 이를 뽑아주자 범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여러 날 뒤 백설이 세상을 덮은 날에 범이 한 처녀를 물어다 놓고 가버렸다.대사는 이듬해 봄 눈길이 뚫리자 처녀를 집에 데려다 주려고 했으나,대사의불심과 성품에 연모의 정이 깊어진 처녀는 부부의 예를 갖추어 달라고 간청하였다.수행의 길을 나선 승려이기에,대사는 결국 남매의 인연을 맺은 뒤 이곳에 따로 암자를 지어 불도에 힘썼고,이들이 입적한 다음 사리탑으로 세운 것이 지금의 오뉘탑이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오뉘탑 이후로는 길이 좀 가파르다.느슨해진 등산화 끈을 조여매고 속도를 붙이니 30여분 만에 삼불봉 고개에 다다른다.이곳에서 직진하면 금잔디고개를 지나 갑사 길로 접어드는데,왼쪽으로 손에 잡힐 듯 삼불봉(775m)정상이 눈에 들어온다.일단 왼쪽으로 길을 틀어 가파른 철제 계단을 10여분 올라 삼불봉에 올랐다.
동학사에서 올려다 보면 마치 세 부처님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 삼불봉으로 불린다.정상에 서면 동학사 계곡과 갑사 계곡이 친근하게 내려다 보이고,관음봉 연천봉 쌀개봉 천황봉 등 계룡의 연봉이 한눈에 들어온다.하얀 이불을 뒤집어쓴 듯 봉긋봉긋 솟은 연봉의 풍광은 겨울 계룡산의 백미다.
삼불봉에서 20여분 더 가면 관음봉인데,시간이 여의치 않아 발길을 돌리려니 아쉬움이 남는다.길을 되짚어 삼불봉 고개를 지나 갑사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이곳부터 금잔디 고개까지는 평평한 내리막길.고갯마루에 올랐지만 금잔디는 안보이고 밋밋한 흙바닥뿐이다.금잔디 고개란 이름이 무색하다.
금잔디 고개에서 갑사의 부속 암자인 신흥암까지 내려가는 길은 다소 심심하다.비록 쓸쓸함이 느껴지는 나목이지만 회화나무·쉬나무·풍게나무·때죽나무·물박달나무 등 누군가 이름표를 달아 놓은 활엽수들을 관찰하며 그나마 심심함을 덜어본다.
신흥암부터 갑사까지는 수려한 계곡길이 이어진다.‘봄에는 마곡사가 아름답고 가을엔 갑사가 그만(춘마곡 추갑사)’이란 말이 있지만 눈 덮인 갑사의 얼음계곡도 상당히 운치 있다.특히 빙벽을 이룬 용문폭포가 볼 만하다.
갑사에 채 못미쳐 계곡을 건너기 전,길 옆에 짙은 이끼가 낀 아담한 삼층석탑이 눈길을 끈다.푯말을 보니 ‘갑사 공우탑(功牛塔)’이다.백제 비류왕 때 갑사의 부속 암자를 세우는데 자재를 운반하던 소가 냇물을 건너다 쓰러져 죽자,그 넋을 위로하고자 세운 탑이라고한다.짐승일지언정 사람을 위해 공 세웠음을 알아주고,생명을 귀히 여기는 불자의 넉넉함이 느껴진다.
갑사는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사찰로 전해진다.갑사 동종과 부도·철당간 등 보물급 문화재가 많아 찬찬히 둘러보기 좋다.
동학사∼갑사 코스는 어른 걸음으로 3시간 정도면 충분하다.그러나 중간에 삼불봉·관음봉까지 들르려면 4시간은 잡아야 한다.
공주 글·사진 임창용기자
sdragon@kdaily.com
◆여행 가이드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유성IC에서 빠져 좌회전한 뒤 공주 방면 32번 국도를 탄다.10분쯤 달려 박정자 삼거리가 나오면 좌회전해 동학사 길로 접어들면 된다.32번 국도에서부터 동학사 이정표가 잘 표시돼 있다.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고속버스·기차로 대전이나 공주·유성까지 간 다음 동학사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갑사에서 버스를 타고 동학사 주차장으로 되돌아가려면 갑사 아래 버스 정류장에서 유성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박정자 삼거리에서 내려 동학사로 들어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숙박 및 먹거리동학사 아래에 계룡산장(042-825-4020) 등 여관이 많다.갑사 밑에도 계룡여관(041-857-5065), 으뜸민박(041-857-5141) 등 여관·민박집이 널려 있다.
동학사에서 30여분 거리에 있는 유성 온천지구에서는 유성호텔(042-822-0811) 등지에 묵으면서 온천도 즐길 수 있다.
박정자 삼거리에서 공주를 잇는 1번 국도를 따라 전원카페가 늘어서 있는데,‘동학사가는길에’(042-825-2447)의 대통영양밥,‘이뭐꼬’(042-825-8575)의 흑돼지 두루치기가 맛있다.
●주변 가볼 만한 곳
동학사와 갑사에서 1시간 이내 거리에 계룡산 도예촌,박동진 판소리전수관,무령왕릉,송산리 고분군,국립공주박물관 등이 있다.우리 문화유적에 관심 있는 사람은 꼭 들러보자.문의 공주시청 문화관광과(041-853-0101)국립공원 계룡산 관리사무소(041-825-3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