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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의 숨은 품, 여름날의 남원 큰엉해안경승지 [두시기행문]

    한반도의 숨은 품, 여름날의 남원 큰엉해안경승지 [두시기행문]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해안가를 따라 길게 펼쳐진 큰엉해안경승지는 바위 그늘을 뜻하는 제주 방언 ‘큰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친 파도가 빚어낸 웅장한 해식애와 짙푸른 태고의 숲이 어우러져 신비로운 비경을 뽐내는 해안 산책로다. 남해의 쪽빛 바다가 세차게 부딪히는 벼랑 끝에서 완벽하게 다듬어진 초록빛 산책로는, 널리 알려진 대형 관광지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제주의 순수한 바다 호흡을 오롯이 마주하는 안식처가 되어준다. 짙은 녹음이 절정에 달하고 시원한 갯바람이 그리워지는 계절, 묵묵히 발걸음을 옮겨 마주하는 큰엉의 여정은 일상의 무게를 가볍게 덜어내고 자연과 깊이 교감하는 묵직한 서사를 건네준다. 큰엉 탐방의 묘미는 남원포구 인근의 아늑한 들머리에서 출발하여 바다를 품은 낭만적인 숲길과 아찔한 해안 절벽을 거쳐 산책로를 따라 걷는 여정에 있다. 초입의 오붓한 숲길을 지나 바다 쪽으로 접어들면, 흙길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해안 산책로가 탐방객들에게 기분 좋은 해풍과 땀방울을 선사한다. 특히 걷는 이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가장 압도적인 풍경은, 빽빽하게 자란 아름드리 넝쿨과 나뭇가지들이 양쪽에서 자연스럽게 아치를 그리며 빚어낸 ‘한반도 지도 모양의 숲 터널’이다. 이 초록빛 터널 사이로 파란 바다가 살짝 얼굴을 내미는 순간은, 자연이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숨겨둔 가장 감동적인 예술품과 마주하는 짜릿한 희열을 안겨준다. 특히 큰엉 산책로 구석구석을 누비는 동안 마주하게 되는 기묘한 바위 절벽과 바다 풍경은 여행의 깊이를 더해주는 특별한 볼거리다. 깎아지른 해식애 아래로 거친 파도가 부딪히며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과, 시원하게 탁 트인 수평선 너머로 아스라이 펼쳐지는 남해의 파노라마는 걷는 이의 마음속까지 청량한 기운으로 가득 채워준다. 땀 흘려 걷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편안한 길 위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보면, 제주의 거친 바다와 온화한 숲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잊지 못할 여운을 마음에 품게 된다. 산책의 여운을 깊이 갈무리하기에 좋은 주변 명소들은 큰엉의 매력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인근의 고즈넉한 남원포구 주변을 거닐거나, 맑고 투명한 바닷물이 반기는 인근의 조용한 해안가 마을을 찾아 차분하게 사색에 잠기는 것을 추천한다. 물길을 따라 넌지시 이어지는 잔잔한 풍경들은 여행의 긴장감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감싸 안아준다. 바다의 거친 바람을 누비느라 허기진 몸을 달래줄 먹거리는 남원 자락의 담백하고 정직한 손맛이 책임진다. 탐방을 마치고 인근 포구의 식당가로 내려오면, 청정 제주의 맑은 물과 넉넉한 인심으로 빚어낸 고소한 각재기국이나 매콤칼칼한 갈치조림, 혹은 시원한 한치물회 한 그릇이 여행객을 반긴다. 푹 끓여낸 진하고 담백한 국물이나 신선한 해산물 요리들은, 거친 해안 길에서 지친 몸을 속 깊이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정성스러운 위로다. 자연의 맛을 고스란히 담아낸 이 풍성한 밥상 앞에서, 큰엉의 푸른 바다와 한반도 숲 터널의 풍경을 머릿속에 되새기며 차분히 하루를 매듭짓는 시간은 여행의 가장 완벽한 마침표가 된다.
  • 짜증내는 여자 [으른들의 미술사]

    짜증내는 여자 [으른들의 미술사]

    <편집자 주> ‘으른들의 미술사’는 앞으로 두 달간 ‘이상한 그림들’을 연재한다. 이상한 그림들이란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어딘가 어긋난 시선, 설명되지 않는 분위기,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이야기까지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들을 말한다. 우리는 종종 잘 알려진 명작만을 미술의 기준으로 삼지만, 오히려 이런 낯설고 기묘한 그림들이야말로 시대의 균열과 개인의 욕망을 더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상함은 곧 질문을 낳고, 그 질문은 작품을 오래 바라보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이상한 그림들 속에서 미술이 얼마나 인간적인지 다시 발견하게 된다. ●짜증이 많이 난 여인 ‘오톨린 모렐 부인’은 처음 보면 분명 이상한 그림이다. 인물의 비율은 어딘가 어긋나 있고, 얼굴은 또렷하기보다 흐릿하며, 시선은 관람자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는다. 더욱이 입을 삐죽거리고 짜증을 내고 있어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짜증이 많이 난 오톨린 모렐 부인은 사실 20세기 초 영국에서 예술가와 작가들이 모이는 살롱을 운영하며 한 시대의 문화적 흐름을 만든 예술 후원자였다. 1873년 영국 귀족 가문인 캐번디시-벤팅크 가문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귀족 사회 안에서 성장했지만, 전통적인 상류층 여성의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1902년 정치가이자 자유당 의원이었던 필립 모렐과 결혼한 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인물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유명해진 이유는 자신의 집을 예술가들의 공간으로 개방했기 때문이다. 런던 블룸즈버리의 자택은 당대 지식인들의 중요한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이곳에는 문학과 예술의 중심 인물들이 드나들었다. 그녀는 직접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는 아니었지만, 예술가들이 모이고 새로운 생각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사람이었다. ●‘이상한 귀부인’ 모렐 부인은 평범한 귀부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화려한 옷차림과 독특한 행동으로 유명했고, 사람들은 그녀를 매혹적이면서도 괴짜 같은 인물로 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삶 자체를 하나의 공연처럼 연출했다. 따라서 어거스터스 존이 그린 ‘오톨린 모렐 부인’은 일반적인 귀족 초상화와 다르다. 당시 초상화는 보통 인물의 아름다움, 지위, 품위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 속 모렐은 이상할 정도로 짜증내고 있다. 얼굴은 길게 늘어진 듯하고, 눈은 옆으로 돌아가 있으며, 입매는 짜증으로 일그러져 부인의 얼굴을 더욱 이상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이상함은 실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어거스터스 존은 모렐 부인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1906년에 처음 만난 어거스터스 존과도 가까운 친구였으나 둘은 친구 관계를 넘어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예술가와 후원자의 쿨한 관계로 남았다. 존에게 모렐은 단순한 귀족 부인이 아니라, 예술가와 작가들을 끌어들이는 독특한 에너지의 소유자였다. ●이상한 게 아니라 정확한 초상 영국 국립초상화갤러리 자료에 따르면, 모렐 부인은 단순한 후원자를 넘어 자신을 하나의 예술적 존재로 연출한 인물로 평가된다. 독특한 의상, 과장된 실루엣, 그리고 연극적인 태도는 그녀를 살아 있는 이미지로 만들었다. 이 점에서 그녀는 단순한 모델이 아니라, 이미 작품 같은 인물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초상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대중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 그림을 무대 위 괴상한 초상화처럼 보인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모렐 부인 자신은 이 작품을 좋아했고, 자신의 런던 집 벽난로 위에 걸어두었다. 왜 그녀는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말한 초상을 좋아했을까? 아마도 그 이유는 이 그림이 자신의 외모보다 자신의 본질을 보여준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모렐 부인은 완벽한 귀부인으로 기억되길 원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모이는 혼란스럽고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었고, 스스로도 그 시대의 실험적인 인물이었다. 그래서 ‘오톨린 모렐 부인’은 ‘못생긴 초상’이나 ‘이상한 초상’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솔직한 초상이다. 아름답게 포장된 귀족 여성이 아니라, 모순과 열정, 괴팍함과 매력을 동시에 가진 한 인간을 보여준다. 결국 이 그림이 이상한 이유는 얼굴 때문이 아니다. 한 사람의 삶이 너무 독특해서, 평범한 초상화라는 틀 안에 담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00년 뒤에 만난 한 사람의 시선을 그렇게도 붙잡았나 보다.
  • 제천의 숨은 명산, 감악산의 기암괴석과 능선 [두시기행문]

    제천의 숨은 명산, 감악산의 기암괴석과 능선 [두시기행문]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과 원주시 신림면에 걸쳐 솟아 있는 감악산(954.5m)은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펼쳐지는 파노라마 조망과 험준한 암릉미로 산꾼들 사이에서 이름난 명산이다. 산 이름은 ‘검은 빛을 띠는 바위산’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산 전체가 화강암 기반의 거대한 암봉과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멀리서 보면 짙고 묵직한 빛깔을 띠기 때문이다. 해발 954.5m의 높이는 결코 낮지 않으며, 인근의 치악산이나 백운산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산세를 자랑한다. 감악산 산행의 핵심은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기암괴석과 바위 지대다. 산행은 대개 제천 봉양읍 명암리에서 시작하는데, 초입부터 울창한 활엽수림이 펼쳐져 자연스러운 숲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고도를 높여 중턱에 이르면 산의 이름답게 거대한 바위들이 얼굴을 드러낸다. 특히 정상부로 향하는 능선길은 크고 작은 바위들이 병풍처럼 펼쳐지며, 발을 딛는 곳마다 깎아지른 절벽이 나타나 긴장감과 동시에 짜릿한 산행의 재미를 선사한다. 정상인 감악산 정상석에 서면 북쪽으로는 치악산의 장쾌한 능선이, 남쪽으로는 제천의 들판과 월악산 일대까지 한눈에 조망된다. 지질학적으로 감악산은 기반암인 화강암이 오랜 기간 풍화와 침식을 거치며 독특한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정상부 주변의 바위들은 층리가 발달하여 마치 책을 겹겹이 쌓아 올린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감악산만의 특징적인 지형 요소다. 산행로 곳곳에는 바위틈을 비집고 자라난 노송들이 암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연출한다. 특히 능선 위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주변 산군들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요충지로, 백두대간의 줄기가 어떻게 뻗어 나가는지를 관찰하기에도 좋다. 산행 코스는 크게 명암리에서 정상으로 올랐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코스와, 원주 신림면 방면으로 연계하는 종주 코스로 나뉜다. 등산로가 아주 잘 정비된 편은 아니기에 산행 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며, 특히 정상부 근처의 암릉 구간은 경사가 가파르고 발밑이 미끄러울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여름철에는 우거진 숲 때문에 시야가 제한될 수 있으나, 가을에는 산 전체를 뒤덮는 단풍과 암벽의 조화가 뛰어나고, 겨울에는 눈 덮인 바위산의 웅장한 설경을 감상할 수 있어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하산 후에는 제천 지역의 특색을 살린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산행 기점인 봉양읍 인근은 약초의 고장 제천의 중심지인 만큼, 각종 약재를 넣어 우려낸 육수와 함께 즐기는 오리 백숙이나 정갈한 산채정식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제천의 맑은 물과 공기로 재배한 재료들을 사용한 음식들은 산행으로 소모된 에너지를 회복하기에 충분하다. 감악산은 단순히 높이만 내세우는 산이 아니라, 암벽과 숲, 그리고 주변 산군과의 조화로운 풍경을 통해 등산 본연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장소다.
  • 낱낱의 공간, 겹겹의 시간… 그 여름 묵호는 잔잔했다[박상준의 문장 여행]

    낱낱의 공간, 겹겹의 시간… 그 여름 묵호는 잔잔했다[박상준의 문장 여행]

    첫날 태풍을 만나지 않았다면, 감사함이 이리 컸을까. 잔잔한 묵호항과 두둥실 그림처럼 떠 있는 구름이 마음에 평화를 안겨줬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잠시 멈췄다가 내쉬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순간이 영원이 되었다. ‘여행이란 결국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말처럼, 잊고 있던 내가 거기에 있었다. 채지형 ‘언제라도 동해’ 중에서 ‘여행이란 결국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란 말은 익숙하다. 그런데 이 말은 잊고 있던 나를 발견하는 순간 마음에 콕하고 별처럼 박힌다. 잊고 있던 나는 꿈꾸는 나일 수도, 어느 한철의 뜨거운 생일 수도 있어서, 우리는 그 사실을 두 번 잊지 않으려 낱장의 마음 모서리를 표시 나게 접어두곤 한다. 겹과 겹의 시간이 쌓인 묵호에는 그런 표식이 많아서 걸음을 멈추고 거리의 풍경을 읽는 시간이 길었다. ●차곡차곡 쌓인 묵호의 시간 기차를 탔다. 묵호 가는 길이다. 막 정동진역을 지났다. 차창 밖으로 바다가 흐른다. ‘바다다!’ 하며 별일 아닌 척하지만 들뜬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이미 ‘와~’하며 기차 밖으로 뛰쳐나갈 기세다. 바다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움튼다. 채지형 작가는 2020년 3월 동해시립발한도서관 강의를 위해 묵호를 찾았다. 처음 방문한 건 아니었는데 동해의 속삭임이 유독 크게 들렸다. 9월에는 묵호 논골담길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한 달의 첫날, 작가를 맞이한 건 ‘덜컹거리는 문, 방파제를 넘나드는 파도 소리, 그리고 바람의 울음소리’였다. 푸른 바다가 아닌 태풍의 ‘소리에 점령당한 밤’이었다. 다음 날, 아침은 거짓말처럼 맑고 고요했다. 결국 한 달 살기를 두 번 더 연장해 석 달을 살았다. 다음 해에는 ‘한 달’을 뗀 살기를 시작했다. 사진작가인 남편 브루스와 집을 구하고 ‘잔잔하게’라는 이름의 책방도 열었다. 어느새 5년째다. 그날, 작가가 논골담길 바람의언덕에서 만난 ‘잊고 있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묵호는 2020년만 해도 인기 있는 여행지는 아니었다. KTX가 개통되며 막 여행자들이 찾기 시작하던 시기다. 불과 6년이 지났을 뿐인데 묵호의 여행 열기는 뜨거워도 너무 뜨겁다. 그럴 만도 하다. 묵호역에서 바다가 보이는 도째비골스카이밸리까지 고작 1.5㎞다. 바다가 이처럼 가까운 KTX역은 많지 않다. 더구나 번화하던 묵호의 옛 도심에 새로 자리 잡은 카페와 소품 가게가 역과 바다를 잇는다. 시간이 혼재한 거리는 이채롭기 그지없다. 두 사람은 여전히 묵호에 산다. ‘언제라도 동해(푸른향기)’는 여행기라기보다 그 여정의 기록에 가깝다. ●한의원 옆 소품 가게 동해시는 1980년 강릉시 묵호읍과 삼척시 북평읍이 합쳐 탄생했다. 그래서 묵호와 북평을 중심으로 큰 시가를 이룬다. 묵호는 동해시가 생기기 이전부터 이미 동해를 대표하는 항구였다. 일제강점기이던 1930~40년대에는 태백과 삼척의 무연탄이 기차로 옮겨진 후 묵호항에서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1963년에는 묵호등대가 불을 밝혔고 다음 해 묵호항은 국제항으로 승격했다. 명태와 오징어가 풍요를 더했다. 개들이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고 발한삼거리 땅값이 ‘강원도에서 으뜸’이었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90년대 이후로는 과거의 영화만이 낡은 네온사인처럼 길 위에 머물렀는데, 벽화마을을 지나 바다까지 걸어가다 보면 동해의 20세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 같은 풍경이 오히려 젊은 세대에게는 과거로 떠나는 시간 여행이었나 보다. 묵호역에서 발한삼거리를 잇는 거리부터 독특하다. 실상 4차선 도로가 지나니 걷기 좋은 길이라기에는 폭이 넓다. 경북 경주시 황리단길이나 전북 군산시 근대역사문화거리는 좀 더 촘촘하고 호젓한 편이다. 대신 묵호역에서 묵호항까지 신호등이 없다. 사람들은 좌우를 살핀 후 횡단보도로 넘나들고 차들은 그에 맞춰 속도를 줄인다. 또한 여행과 삶, 옛것과 새것이 어울린 전경을 빼놓을 수 없다. 굳이 횡단보도를 건너게 하는 건 할머니와 손주처럼 나란한 상점들 때문이다. 묵호의 생활이 뒤섞인 낡은 상가에 카페와 소품 가게가 숨은그림처럼 존재한다. 묘한동해는 한의원 옆에 있고 작은 클래식 공연장 페르마타 2층에는 ‘노래빠’가 있다. 111호 프로젝트와 끼룩 등은 뉴월드상가 1층에 오밀조밀하다. 등대 모형이 있는 발한삼거리는 그 정점이다. 회전교차로 북쪽 건물은 ‘발리 관광룸클럽’이라는 큰 글자가 두드러진다. 지난 시절의 유흥을 상징하는 간판은 당당히 삼거리의 랜드마크다. 반면 건너편 서쪽 2층 타로 카페 이름은 ‘김수영을 위하여’다. 투명한 천장 위로 물결이 일렁이는 티룸 도야하우스의 옆인데, 1층 계단 입구에는 ‘정오가 조금 못되어 우리는 폐허를 지나 바닷가의 작은 카페로 돌아온다’라는 알베르 카뮈의 글이 적혔다. 동쪽 모퉁이에는 라운드어바웃 동해가 여행자의 핫플로 부상했다. 창밖으로 ‘발리 관광룸클럽’이 보이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옛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읽힌다. 김수영이라는 이름조차 그러할 것이다. 1960~70년대를 살아온 이들에게는 위대한 시인이고 저항의 아이콘일 테지만, 21세기를 사는 누군가에게는 그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카페의 이름일 따름이다. 서로 다른 세대가 같은 거리에서, 서로의 시간을 읽어가며 이렇듯 어울리고 있다. 조금 떨어져 있기는 해도(그래봐야 발한삼거리에서 2.8㎞다) 어달삼거리 역시 마찬가지다. 채 작가가 책을 쓸 때는 무심히 지나는 바다 곁의 길이었다. ‘이렇게 좋은데 왜 모를까’ 했던 동네의 명소는 이제 동해 여행의 성지다. 길 끝에 펼쳐지는 푸른 바다가 마치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장면 같다. ●괘종시계로 이어진 공간 채지형 작가와 브루스의 여행책방 ‘잔잔하게’도 묵호의 일상에 밀착한다. 발한삼거리 못미처 은행365코너와 헤어숍의 사이의 책방은 안쪽으로 길쭉해 밖에서 보는 입면이 앙증맞다. 책 속의 지혜는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두는 법이라는 은유일까. 잔잔하게 앞서 들른 만능열쇠기공이라는 가게 역시 그러했다. 묵호사거리 지하도의 출구 모퉁이에 자리해 지나치기 쉽다. 그럼에도 기어이 문을 연 건 쇼윈도에 적힌 ‘72년 기능올림픽 은메달(강원지방대회)’이라는 문구가 호기심을 자극한 까닭이다. 묵호에 아파트가 줄줄이 지어지던 1977년 문을 연 열쇠 가게에서는 열쇠만이 아니라 다양한 기기의 작은 부속품이 박상희 씨의 손에서 고쳐지고 만들어졌다. 피서철에는 자동차 열쇠를 잃어버린 여행객의 주문이 폭주해 덩달아 성수기였다고. 가게 벽면에는 이빨을 새기지 않은 원물의 열쇠가 종과 열을 맞춰 늘어서 있다. 그 가운데 옛날 자동차 열쇠가 여럿 보인다. 괘종시계와 악기도 시선을 끈다. 시계와 악기의 부품을 수리하는 것 역시 그의 일이었다. 정시가 되자 괘종시계는 시간을 맞춰 울렸다. 이제는 들을 수 없는 시간의 소리를, 시침처럼 멈춰 서서 여운이 사라지기까지 귀 기울인다. 만능열쇠기공을 나올 때는 복둥이(개)와 별이(고양이)가 무뚝뚝하게 배웅했다. 같은 해에 태어난 개와 고양이는 11년째 부부처럼 산다. 건너편 묘한 동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 건 열쇠 가게의 별이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묘한 동해는 여행을 기억할 수 있는 다채로운 기념품과 소품을 판매한다. 대부분 고양이를 주제로 한 것들이다. 사람이 빚은 세상 모든 고양이의 형상을 한곳에 모은 듯하다. 묘한의 ‘묘(猫)’는 고양이를 이르는 말일 텐데 이 거리에서 동해는 한층 묘한 도시가 된다. 묘한 동해를 나와서는 이웃한 농산물 유통업체의 ‘먹을 복 福‘이라는 글자 앞에 멈춰서 웃고 말았다. 두 가게가 영락없이 복둥이와 별이인 셈이다. ●오늘도 여행의 날들 여행책방 잔잔하게는 묘한 동해에서 멀지 않은 길 건너편이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좌우를 살핀다. 묵호 사람에게는 익숙한 일상일 테지만 여행자에게는 무단횡단만큼이나 낯설다. 책방에서 역시 책보다 괘종시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제 막 익숙해진 시간의 소리, 괘종의 여운 탓이다. 여행책방 ‘잔잔하게’를 이루는 건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여행책이다. 책방의 슬로건은 ‘책과 함께 당신의 동해 여행이 시작되는 곳’. 채 작가와 브루스는 책방을 방문한 여행자들이 해변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때 어울리는 책들을 책장에 큐레이션한다. 하지만 여행은 각자가 다르므로 여행자의 시선이 다시 큐레이션 주제로 돌아오기도 한다. 또 하나는 시간과 사연이 깃든 물건이다. 괘종시계는 채 작가 엄마의 약국에서 이미 한 생을 살았다. 괘종시계 옆에 놓인 카세트 플레이어는 그녀의 아버지가 쓰시던 것이다. 앞선 세대에게 카세트 플레이어는 여행의 필수품이었다지. 맨 안쪽 작은 방에는 채 작가가 여행에서 수집한 인형이 가득하다. 인형은 그 나라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 그러니 이곳은 여행책방이지만 ‘여행+책방’이기도 하다. 거기에 묵호의 바다가 일상으로 스민 셈이다. 이를 표현한 말이 ‘잔잔하게’다. 채 작가는 “꽃이 참 잔잔해서 예쁘다”던 엄마의 말을 떠올려 책방 이름을 지었다. 잔잔한 파도, 잔잔한 음악 돌이켜보니 잔잔한 일들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잔잔하게를 나와서는 동쪽바다중앙시장 북문을 지나 바다정원길을 오른다. 묵호의 벽화마을은 논골담길이 유명하지만 동쪽바다중앙시장부터 이미 벽화의 골목은 시작한다. 별빛마을전망대를 지나 묵꼬양치유카페까지, 묵호항과 바다를 오른편에 끼고 기슭을 오르내린다. 누군가의 생활 터를 지날 때는 발소리를 죽인다. 묵꼬양치유카페에서는 동쪽으로 논골담길 전경이 선물처럼 펼쳐진다. 묵호등대와 채 작가가 ‘태풍의 다음 날’을 맞은 바람의언덕이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이룬다. 그 너머에 도째비골스카이밸리와 도째비골해랑전망대 또 어달삼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리 이어진 풍경 안에서 마을과 바다는 다정한 이웃이자 삶의 동지다. 채 작가는 해가 지고 논골담길에 하나둘 불이 켜지는 순간을 무척 좋아한다 했다. 기슭에 촘촘한 집들 위로 별들이 고요히 내려앉은 듯한 시간, 저마다 다른 생김과 다른 사연을 간직한 반짝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풍경은 삶의 터전이 된 묵호에서 변함없는 여행의 날들을 선물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테지. 그러고 보면 여행은 풍경의 발견이 아닌 생활의 발견, 태도의 변화일 수 있겠다. 날 선 감각은 지우고 낯선 감각을 불러내며, 드러나지 않게 시간과 공간의 사연을 잇대는 여정, 순간이 영원이 될 수는 없지만 현재를 누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테다. 그래서 여행은 다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된다. 잊고 있던 어제의 내가 오늘은 거기에 있을지 모를 일이다.
  • [천태만컷] 르네상스의 숨바꼭질

    [천태만컷] 르네상스의 숨바꼭질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는 그의 얼굴이 숨겨져 있습니다. 노란 옷과 흰 옷을 입은 사람 사이 검은 모자의 젊은이가 그입니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작품에 자신을 남기곤 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올여름 미술관에선 숨은 얼굴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 구름 뚫고 솟은 기암의 전당, 경기 오악의 으뜸 운악산 [두시기행문]

    구름 뚫고 솟은 기암의 전당, 경기 오악의 으뜸 운악산 [두시기행문]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과 포천시 화현면에 걸쳐 솟아 있는 운악산(937.5m)은 ‘경기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명산이다. ‘구름을 뚫고 솟은 바위산’이라는 이름처럼, 망경대를 중심으로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뻗은 암봉들이 빚어내는 산세는 가히 압도적이다. 화악산, 관악산, 감악산, 송악산과 함께 경기 오악 중 하나로 꼽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산 아래 자리한 천년고찰 현등사의 이름을 빌려 ‘현등산’이라 불리기도 하며, 깊은 산중에 숨겨진 운악 팔경의 비경은 찾는 이들에게 계절마다 다른 얼굴로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운악산은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험준한 산세로 유명하다. 산의 정상인 망경대에 오르면 남쪽으로는 현리 시가지와 포천의 너른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고, 북쪽으로는 명지산과 화악산의 첩첩한 산줄기가 아련하게 굽이친다. 산행 길에 만나는 제1경 백년폭포는 오랜 시간 변함없이 흐르는 생명력을 보여주며, 눈썹바위와 코끼리바위 등 곳곳에 자리한 기묘한 바위들은 자연이 빚은 조각 전시장 같다. 최근 가평 방면 등산로에 들어선 출렁다리는 거친 암벽 사이를 가로지르며 산행의 긴장감에 낭만을 더하는데, 이곳에 서면 기암괴석을 병풍 삼아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가평 산군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할 수 있다. 산행의 여운을 이어가기에 좋은 주변 명소들은 운악산의 깊이를 한층 더해준다. 하산 후에는 현등사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나는 아기자기한 계곡의 정취를 따라 가평의 숨은 명소들을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운악산 인근의 ‘아침고요수목원’은 계절마다 형형색색의 꽃과 나무가 어우러져 산행의 거친 기운을 부드럽게 감싸주며, 고요한 산책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다. 또한, 가평의 물줄기를 따라 형성된 ‘쁘띠프랑스’나 ‘이탈리아 마을’ 등은 색다른 이국적 풍경을 제공하며 산행과는 또 다른 즐거운 추억을 남겨준다. 포천 쪽으로 넘어간다면 ‘포천 아트밸리’의 화강암 절벽이 선사하는 이색적인 풍경을 감상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좋다. 긴 산행으로 허기진 몸을 달래줄 먹거리는 산자락 아래 마을의 투박한 손맛이 책임진다. 가평과 포천의 경계에서 만나는 음식점들은 이 지역의 맑은 지하수로 빚어낸 두부 요리들이 단연 으뜸이다. 갓 끓여 낸 순두부나 고소한 들기름에 구운 두부 부침은 거친 산행으로 지친 몸을 다독여주는 정직하고 따뜻한 위로다. 특별한 기교 없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낸 소박한 한 상은, 산행의 긴 호흡을 내려놓고 차분히 오늘 하루를 매듭짓기에 충분한 행복을 전해준다.
  • 르네상스의 완성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르네상스의 완성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끝없이 배우며 호기심·탐구욕 충족예술·과학·인체·우주 등 다양한 분야하나의 유기적인 지식 체계로 연결직접 보고 부딪히며 참된 지혜 얻어인체 구조 이해하려고 시신 해부도예술을 이론·과학적 원리 위에 구현스푸마토와 공기원근법 ‘혁신’ 완성 여러 분야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인류의 지평을 넓힌 천재들을 ‘르네상스적 인간’ 혹은 ‘만능인’이라 부른다. 그 가운데서도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단연 첫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이다. 미국의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그의 천재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레오나르도는 타고난 천재라기보다는 끊임없는 호기심을 상상력과 노력으로 풀어내며 스스로 천재가 된 인물이다.” 다행히도 다빈치는 후대를 위해 자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중한 증거를 남겨 두었다. 그는 평생 떠오른 아이디어와 관찰, 실험과 탐구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친필 노트(코덱스·Codex)에 기록했다. 오늘날 전 세계 미술관과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는 약 7200쪽의 친필 노트는 인류의 위대한 지적 유산이다. 이제 우리는 그의 노트 속 명언들을 이정표 삼아 그가 어떻게 창의성의 비밀에 다가갔는지 따라가 보려 한다. 첫 번째 명언 “배움은 결코 정신을 고갈시키지 않는다” 이 문장은 배움을 대하는 다빈치의 태도를 압축해서 보여 준다. 많은 이들에게 배움은 의무이거나 때로는 피로를 동반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호기심을 깨우고 탐구욕을 충족시키며 세계를 더 넓고 깊게 바라보게 만드는 희열의 과정이었다. 실제로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배움에 대한 끝없는 열정에 감탄하게 된다. 그는 불후의 명작을 남긴 화가이자 조각가였고 성벽과 무기를 구상한 군사공학자이자 건축가였다. 또한 수학, 물리학, 해부학, 지질학의 기틀을 다진 선구자였으며 자연의 이치와 인체의 구조, 물의 흐름과 빛의 원리, 식물의 생장까지 깊이 파고든 과학자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낙하산, 대기압 화약 엔진, 방적 기계와 선반을 고안하고 새의 비행 능력을 연구해 인류 최초로 비행 기계를 설계한 위대한 발명가였다. 심지어 그의 호기심은 창의적인 요리법을 개발하는 데까지 뻗어 있었다. 인류 역사에 많은 천재가 있었지만 멀리 떨어져 보이는 분야들을 하나의 유기적인 지식 체계로 연결시킨 인물은 극히 드물다. 다음 문장은 다빈치가 어떻게 그토록 다양한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결정적인 단서다. “완벽한 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원칙은 다음과 같다. 예술의 과학을 연구하고, 과학의 예술을 연구하라. 감각을 개발하라. 특히 보는 법을 배우라.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으라.” 그의 모든 탐구의 종착지에는 언제나 인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인간의 몸은 어떤 비례로 이루어져 있는가. 인간은 자연과 우주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인간 안에는 세계의 질서가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가. 그의 질문은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를 향해 있었다. 오늘날 인류의 위대한 상징이 된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이 탄생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은 다빈치가 배움을 통해 도달한 예술과 과학, 인체와 우주, 감각과 이성이 하나로 만나는 지점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이미지다. 먼저 이 드로잉에 비트루비우스라는 이름이 붙게 된 역사적 배경부터 살펴보겠다. 기원전 20년 무렵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시공을 초월한 이상적인 건축을 꿈꾸며 ‘건축 10서’를 남겼다. 이 책은 오랜 세월 잊혀 있다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다시 빛을 보게 되었고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부활시키고자 했던 당대 지식인과 예술가들에게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비트루비우스는 인간의 몸이 자연의 신성한 질서와 우주의 조화를 담고 있는 완벽한 기준이라고 믿었다. 그는 이상적인 인간의 신체가 원과 정사각형이라는 기하학적 도형 안에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건축 10서’에는 이론을 증명해 줄 삽화가 단 한 장도 실려 있지 않았다. 훗날 르네상스의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그의 이론을 이미지로 구현하기 위해 도전장을 던졌으나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기하학의 정확성, 해부학적 이해, 예술적 감각이 동시에 요구되는 난제였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숙제를 완벽하게 풀어낸 인물이 다빈치였다. 그는 실제 인간의 몸을 관찰하고 정밀하게 측정했으며 해부를 통해 인체 구조를 깊이 이해한 후 관찰 결과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인체의 중심은 배꼽이다. 등을 대고 누워서 팔다리를 뻗은 다음 컴퍼스 중심을 배꼽에 맞추고 원을 돌리면 두 팔의 손가락 끝과 두 발의 발가락 끝이 원에 닿는다. (…) 그리고 정사각형으로도 된다. 사람 키를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잰 길이는 두 팔을 가로 벌린 너비와 같기 때문이다.” 설명대로 그림 속 인물은 원과 정사각형이라는 기하학적 세계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남성은 유한한 대지(지상)를 상징하는 사각형 위에 발을 딛고 굳건히 서 있으면서도 무한한 천상(우주)을 상징하는 원의 궤적을 향해 힘차게 팔다리를 뻗는다. 다빈치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우주의 질서와 자연의 법칙을 몸 안에 품은 완벽한 소우주임을 선언했다. 두 번째 명언 “지혜는 경험의 딸이다.” 다빈치에게 참된 지혜란 직접 보고, 만지고, 부딪히면서 스스로 깨닫는 경험의 산물이었다. 그가 경험을 절대적 가치로 삼게 된 데에는 유년 시절의 아픔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피렌체의 공증인이었던 아버지와 농민 신분의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당시 이탈리아 사회의 신분 장벽 탓에 대학에 진학하거나 주류 지식인 사회로 나아갈 수도 없었다. 다빈치는 스스로를 “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낮추어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학문 세계의 언어였던 라틴어를 읽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결핍은 그를 전혀 다른 배움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자연을 직접 관찰하고 그 안에 숨은 원리를 스스로 밝혀내고자 했다. 물의 소용돌이를 관찰하며 유체의 움직임을 궁리했고 새의 비행을 분석하며 인류 최초의 비행 장치를 구상했다. 안료를 직접 조합하며 색과 재료의 성질을 실험했고 빛과 그림자가 사물의 형태를 어떻게 바꾸는지도 관찰했다. 무엇보다 그는 인간의 신체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 30여 구의 시신을 직접 해부했다. 당시로서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에게 인체는 생명의 비밀을 품은 가장 정교한 자연의 구조물이었다. 그는 인간의 몸이 어떤 기하학적·물리학적 원리로 움직이는지, 근육과 힘줄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몸을 지탱하고 움직이는지 밝혀내고자 했다. 이 해부학 드로잉은 ‘어깨와 목의 근육 구조’ 로서 인체의 기계적 구조와 움직임에 매료되었던 다빈치의 탐구 정신을 보여 준다. 그는 인체를 여러 방향에서 관찰하고 부분을 확대해 보여 주며 인체 구조와 움직임의 관계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렸다. 오늘날 그의 해부학 드로잉이 인체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규명한 의학 역사상 최고의 과학적 유산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 번째 명언 “이론 없는 실천을 사랑하는 자는 키와 나침반 없이 배에 올라 어디로 표류하는지 알지 못하는 사공과 같다.” 험과 실천을 중시했지만 이론이 없는 실천은 방향을 잃은 노력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이 명언은 예술 역시 감각과 손재주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원리와 이론 위에서 완성되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을 보여 준다. 이론과 실천의 결합이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작품이 ‘모나리자’ 다. 다빈치는 빛, 대기, 인간 시각의 원리를 연구했고 이를 회화에 적용해 스푸마토와 공기원근법이라는 혁신적인 기법을 완성했다. 모나리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눈가와 입술 주변에 뚜렷한 윤곽선이 거의 없다. 다빈치는 아주 얇은 물감층을 여러 번 덧칠하는 글레이징 기법을 통해 밝은 피부색에서 어두운 그림자로 넘어가는 경계를 연기처럼 부드럽게 흐려 놓았다. 바로 그가 창안한 스푸마토 기법이다. 이탈리아어로 연기(Fumo)에서 유래한 이 기법은 사물의 경계를 선으로 가두지 않고 자연스럽게 번지며 사라지게 만든다. 이로 인해 모나리자의 미소는 감상자의 시선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듯한 신비로운 효과를 만들어 낸다. 눈을 바라보면 미소가 느껴지고 입술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미소가 희미하게 사라지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배경 역 시 다빈치의 과학적 탐구가 반영된 중요한 장면이다. 모나리자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산과 강, 계곡이 멀어질수록 푸르고 흐릿하게 표현되었다. 이는 빛이 대기 중의 수증기와 먼지에 의해 산란되면서 먼 풍경이 흐릿하고 푸르게 보인다는 원리를 회화에 적용한 공기원근법의 결과다. 그 덕분에 우리는 모나리자의 등 뒤로 끝없이 펼쳐지는 신비롭고 아득한 자연의 깊이를 경험하게 된다. 다빈치는 1519년 프랑스 앙부아즈의 클로 뤼세 성에서 67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0년이 지났지만 그의 천재성은 여전히 인류에게 전설로 남아 있다. 그 불멸의 가치를 증명하듯 현대 미술계에서도 다빈치의 이름은 놀라운 사건을 만들어 냈다. 2017년 11월 15일,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된 예수의 초상화 ‘살바토르 문디’가 미술품 경매 역사상 최고가인 4억 5030만 달러에 낙찰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단 한 점의 그림이 천문학적 가치를 기록한 이유는 다빈치가 자연과 인간, 종교와 과학을 아름다운 질서로 통합해 낸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거장이기 때문이다. “잘 보낸 하루가 편안한 잠을 가져다주듯 참되게 잘 산 일생은 평온한 죽음을 가져다준다.” 다빈치가 남긴 많은 명언 중에서도 삶과 죽음을 다룬 자기 성찰로 꼽히는 명문장이다. 오늘 하루를 배움으로 가득 채운다면 편안한 잠을 맞이할 수 있고 그런 하루하루가 쌓인 인생의 끝자락 역시 평온한 안식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르네상스 완성자의 조언이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 도서관 천장 틈 쏟아지는 햇살… 그날의 파란 여름이 떠올랐다[박상준의 문장 여행]

    도서관 천장 틈 쏟아지는 햇살… 그날의 파란 여름이 떠올랐다[박상준의 문장 여행]

    도서관 길이 92m 종묘 정전 모티브내부 삼각 구조에 ‘책의 산’ 경외감조선 실학자 황윤석 ‘기록의 대가’53년간 57권 백과사전급 일기 남겨1~2층 잇는 계단 잔뜩 꽂힌 만화책고독하지만 고독하지 않은 도서관‘취석정’ 정자 마당 7개 고인돌 눈길‘운곡습지’ 탐방로 1코스 원시림 방불“혼자서 있을 수 있는 자유는 정말 중요하지. ··· 그러니까 책을 읽는 것은 고독하면서 고독하지 않은 거야. 독서라는 것은, 아니 도서관이라는 것은 교회와 비슷한 곳이 아닐까? 혼자 가서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장소라고 생각한다면 말이야.“ 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중에서 어떤 의미들은 한참이 지나서야 우리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눈부시게 환한 햇살, 윤슬처럼 반짝이던 눈동자, 나란히 앉아 수박을 베어 물던 얼굴들. 황윤석도서관에서 책장을 넘기다 내가 당신들과 여름의 한가운데를 함께 지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밑줄 쳐진 시간들 여름날, 할머니의 과수원이었다. 점심을 먹고는 마루에 누워 사탕을 녹여 먹고 있었다. 햇살은 한 뼘씩 슬그머니 얼굴 위로 번졌다. 졸음을 견디지 못해 잠이 들려는 찰나, 미처 녹아내리지 못한 사탕이 목구멍에 턱하고 걸렸다. 놀란 나는 캑캑거려 사탕을 뱉어내고는, 손바닥 위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서러워 그만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뒤늦게 놀라서 달려오던 할머니의 발자국 소리가 그 여름 그늘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전북 고창 황윤석도서관에서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비채)를 읽다가 그날의 파란 여름이 떠올랐다. 책을 내려놓고 고개를 드니 도서관 용마루의 투명한 틈새로 하늘색이 보였고 햇살이 넉넉하게 쏟아졌다. 나는 왜 여태껏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의 인생에는 이처럼 밑줄 쳐진 시간들이 있다. 사카니시에게는 존경하던 건축가 무라이와 보낸 스물세 살의 한철이 그랬을지 모를 일이다. 무라이의 설계사무소는 매해 7월 말에서 9월 중순 사무실을 여름 별장으로 옮겨 일했는데 그해에는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공모를 준비한다. 소설은 중년이 된 사카니시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 너무도 아름다운 그 시절의 여름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고창은 소설 속 여름 별장이 있는 아오쿠리 마을과는 다르다. 아오쿠리는 가상의 지명으로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의 어디쯤이다. 아사마산 기슭의 휴양지로 초기에는 외국 선교사들의 별장지였고 시간이 지나 저명한 인사들의 휴양지로 변화했다. 그럼에도 고창에서 여름 별장을 떠올린 건 고창이 간직한 ’짓다‘라는 행위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고창에는 태초의 건축이 깃들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고인돌이다. 건축학자 김봉렬은 고인돌을 “최초의 견고한 건축물”이고 “예술적 기념물”이라 했다. 고창 고인돌은 죽림리와 상갑리, 도산리 일대에 1748기가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군집이다. 여름 별장이 생각난 이유는 또 있다. 건축가가 설계한 도서관이 있어서다. 고창 황윤석도서관은 tvN ‘알쓸신잡’ 등으로 잘 알려진 유현준 건축가가 디자인했다. 지난해 12월 개관했는데 곧장 고창의 랜드마크로서 도시의 자긍심을 높였고 여행자들의 목적지가 됐다. ●혼자여도 외롭지 않은 책의 성소 도서관은 어떤 곳이어야 할까? 70대의 노 건축가와 20대 신입 건축가가 마주 앉아 도서관 건축에 관해 이야기 나누던 소설 속 장면을 좋아한다. 유현준 건축가가 이 소설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 곁의 건축가가 도서관을 어떻게 구현했는지, 소설과 비교해 들여다보는 건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에는 스웨덴 건축가 군나르 아스플룬드의 우드랜드 공동묘지(숲의 묘지)가 중요하게 언급된다. 그는 훗날 스톡홀름공공도서관을 설계했다. 그래서 무라이는 도서관을 ‘교회와 비슷한 곳’이라 말했을지도. 건축가들에게 도서관은 성스러운 장소인 걸까? 황윤석도서관은 우리 왕가의 제례 공간인 종묘의 정전(101m)을 모티브로 했다. 길이가 무려 92m에 달한다. 첫인상은 그로 인해 강렬하다. 벽면서가인 북마운틴과 맞은편 열주의 벽이 92m 끝의 소실점을 향하는데 공간의 깊이가 극대화된다. 또 삼각의 구조가 겹치며 북마운틴 서가는 그 이름처럼 책의 산이 된다. 건축이 연출하는 책의 경외감이다. 첫걸음을 뗀 많은 이들은 ‘도서관이 이런 곳이었나’라며 감탄했겠다. 유현준 건축가는 유튜브 채널 ‘셜록현준’에서 황윤석도서관 건립 과정을 상세히 소개한다. 그는 도서관을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이용하지만, 결국 개개인이 선택한 자리에서 홀로 책에 몰입하는 장소라고 말했다. 소설 속 사카니시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때는 누군가 옆에 있어도 혼자인 것 같았다고 했다. 스승 무라이는 ‘혼자 가서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장소’라고 답한다. 유 건축가는 가로로 긴 도서관에 여러 개의 사선으로 이를 형상화한다. 그리고 비스듬한 선들은 장방형의 공간에 여러 개의 단면을 연출한다. 도서관 정문이 있는 남쪽 처마는 직선이 아니다. 서에서 동으로 가며 낮아진다. 건물의 용마루는 의도적으로 동서축을 살짝 틀었다. 2층 높이의 도서관 내부는 거대한 북마운틴 서가가 대각선으로 공간을 가른다. 그러므로 폭과 너비, 빛의 세기와 그림자, 각기 다른 공간의 구조를 만든다. 그 결과 92m의 단면은 조금씩 달라지고, 이용자는 각자의 위치에 따라서 매번 다른 공간적 경험을 가진다. 군중 가운데 ‘혼자서 있을 수 있는 자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여름휴가를 고창 도서관에서 황윤석의 흔적 또한 눈여겨볼 일이다. 황윤석도서관은 왜 그 이름이 붙었는지부터 전시하고 설명한다. 황윤석은 고창에서 태어난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기록의 대가’다. 1729년에 태어나 열 살 때부터 1791년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까지, 53년간 57권에 달하는 이재난고(頤齋亂藁)를 남겼다. 정치, 경제, 문학, 수학, 천문학, 예술 등을 아우르는 백과사전 급의 일기는 당시 시대상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자료다. 이를 건축으로 풀면 세상의 모든 이치와 지혜를 담은 책의 집, 도서관이겠다. 이재난고의 책을 펴듯 두서없는 걸음으로 도서관 자료실을 옮겨 다닌다. 북마운틴을 사이에 두고 남쪽 자료실은 층고가 높아 성스럽다. 도로와 맞댄 북쪽 자료실은 단층이어서 포근하다. 북마운틴 난간에서 남쪽 자료실을 내려다보면 창가 쪽으로 열주, 즉 서까래까지 연결된 거대한 나무 기둥이 압도하는데, 폭넓은 판형의 기둥이 열람석 사이 칸막이 역할을 해 이용자들은 혼자만의 독서를 즐길 수 있다. 북쪽 후문 입구에는 무인카페가, 반대편 서쪽 끝에는 예각의 삼각 공간이 있는데 조용히 작업하기에 알맞다. 1~2층을 잇는 계단 서가에는 만화책이 잔뜩 꽂혀 있다. 곳곳의 숨은 자리들은 낯선 이들마저 환대한다. 도서관 안에는 이미 고창 사람뿐 아니라 여행자가 한데 섞여 책을 읽거나 공간을 누리는데, 멋진 서재에 들어온 듯한 기분은 도서관을 별장처럼 느끼게 한다. 왠지 이 아담한 도시에서 조금 긴 여름을 보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휴가를 계획하기 시작하는 여름의 초입이다. 여름 여행은 바다를 먼저 떠올리는 이가 많겠지만 모두가 푸른 바다에 풍덩 뛰어드는 것으로 여름을 견디지는 않는다. 때로는 느긋하게 시골 동네의 시간을 빌려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아침에 일어나 슬리퍼와 반바지 차림으로 도서관에 들리고, 느긋하게 고창읍성을 한 바퀴 걷고 다시 도서관에 와서 오후의 책장을 넘기는 하루. 도서관은 휴관인 월요일과 주말을 제외하고는 오후 10시까지 문을 여는데, 해가 기울고 밤이 깃든 시간은 또 어떤 비밀의 장막을 열어젖힐까. 고독하지만 고독하지 않은 장소, 그런 목적지가 있어 동네 사람처럼 얼마간의 여름을 지날 수 있을 테지. 그러고 보니 사카니시가 머물던 여름 별장의 방은 침대가 있는 서고였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지만 각자이기도 한 공간, 1층 남쪽 창가에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다가 가끔씩 뒤를 돌아보면 북마운틴 서가 위로 햇살과 그림자가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고인돌이 있는 특별한 풍경 고창에는 옛사람의 도서관 같은 공간이 여럿 있다. 노동저수지 인근의 취석정이 대표적이다. 조선시대 선비 노계 김경희가 을사사화를 겪고 고향으로 내려와 지었다. 지금의 건물은 300년쯤 지나 후손들이 고쳐 지은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한옥으로 가운데 한 칸이 온돌방이고 나머지는 계자난간을 두른 마루다. 난간에는 태극, 팔괘 등을 조각했으니 그에게 이곳은 하나의 우주였겠다. 정자 이름 취석(醉石)은 술에 취해 바위 위에서 잠들기도 했다는 도연명의 일화에서 따왔다. 마루에 앉아 세상을 내려보듯 마당을 살피면 일곱 개의 커다란 취석이 보인다. 그냥 봐도 예사 돌이 아니란 걸 알겠는데 고인돌이다. 처음 정자를 지은 노계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담장 안팎으로는 정자만큼이나 나이를 먹은 느티나무 여러 그루가 자란다. 덕분에 나뭇가지가 하늘을 가려 숲에 안긴 듯하다. 선비들은 작은 별장 같은 집에서 고인돌을 바라보며 책을 읽고 글을 짓고 친구를 불러 환담했겠다. 고창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고인돌은 고창고인돌박물관을 목적지 삼아도 좋다. 주변이 온통 고인돌의 군집이다.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 등 고인돌의 형태를 고루 살필 수 있다. 더운 여름에는 모로모로 탐방열차를 타고 돌아보는 게 낫다. 잠깐씩 내려 유적지를 관람하고 해설도 들을 수 있다. 고창의 숨은 명소 운곡습지도 같이 돌아볼 일이다. 죽림리 고인돌 유적 옆에 운곡습지탐방안내소가 위치한다. 원래 360여 명의 사람들이 살던 농촌은 영광원자력발전소에 공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저수지를 조성하며 사라졌다. 28년이 지나 다시 알려졌을 때는 습지가 되어 있었다. 자연은 놀랍게도 스스로 폐경지를 변화시켜 산지형 저층습지로 만든 것이다. 탐방로는 4개 코스가 있는데 죽림리 안내소에서 원점으로 회귀하는 오베이골 자연복원습지 중심의 1코스를 추천한다. 습지를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구간이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만한 좁은 데크 위를 걷는데, 이곳의 주인은 이제 사람이 아닌 습지라는 선언 같다. 원시림에 가까운 초록의 습지는 도서관보다 고요하다. 허물어진 담장 등은 사람이 살던 시절의 흔적을 전한다. 그 또한 습지 식물에 뒤덮인 채다. 오베이골 자연복원습지 반대편에는 운곡습지 생태공원이 있다. 가족 단위에 적합한 공원이다. 안내도에는 죽림리와 연결돼 있지만 통행이 어렵다. 용계리 탐방안내소(친환경주차장)로 이동해 도보나 탐방열차를 이용해야 한다. 생태공원 내에는 또 하나의 커다란 고인돌이 볼거리다. ‘동양 최대 고인돌’로 무게가 300톤에 달한다고. 거대한 바위 앞에서 다시금 고인돌은 청동기의 무덤이 아닌 성전일 수도 있었겠다 싶다.
  • 세월을 품은 절집… 속세는 지워지고 산세만이 남았다[박상준의 문장 여행]

    세월을 품은 절집… 속세는 지워지고 산세만이 남았다[박상준의 문장 여행]

    ‘여유로운 가난’이 머문 고찰본래의 고요함은 변함없어147개 철계단 하나하나에목탁 같은 울림이 번져온다화암사 경내 마당서 올려본네모난 하늘이 주는 평온함송광사 사천왕상 위엄 압도도예공방 봉강요 들러볼 만“절로 가는 길은 가난해야 제격이다. 상점도, 술집도, 모텔도 없고, 하다못해 가로도 중앙선도 없는 가난한 길……. 그래야 가는 사람도 가슴에 품었던 세간의 옥매듭을 풀어버리고 갈 것 아닌가?”심인보 ‘곱게 늙은 절집’ 중에서봄이 봄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 세상 푸른 오뉴월의 초록이 그저 녹색으로만 보일 때가 있다. 그런 날 찾아가는 곳이 있는지? 팍팍한 마음에 여유가 되어주는 장소 말이다. 완주 화암사는 그런 절집이다. 누각 툇마루에 앉아 볕만 쬐다가 와도 족하다. 부처님의 자비는 한 걸음 더딘 이들을 위해 가난하게 존재하기도 한다. ●사찰과는 다른 ‘절집’ 절집은 사찰과 같은 말인데 다르게 들리기도 한다. 심인보 작가의 책을 빌리면 화암사는 “여유로운 가난”이 있는 절집이다. “분칠인지 분장인지 알 수 없는 흉한 몰골”을 하고 있지 않다. 불심을 과시하지 않고 너그러이 보시한다. 그 무심한 다정과 묵묵한 환대야말로 부처의 자비이고 자애일 터. 그러므로 사찰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고찰이 되지만 절집은 나이 먹어 그저 잘 늙은 절집으로 족하다. ‘곱게 늙은 절집’(지안출판사)은 2007년에 나온 책이다. 기업이미지통합(CI) 디자이너였던 심인보 작가는 이제 사진작가로 더 유명한데, 그가 찾은 전국 25개 절집의 글과 사진이 실렸다. 영주 부석사, 해남 미황사 같은 잘 알려진 절집도 있지만 포항의 오어사나 남원의 선국사 같은 숨은 절집도 있다. 그리고 화암사를 그 첫 번째 절집으로 소개한다. 내가 사랑한 절집을 말할 때 작가와 마찬가지로 화암사를 빼놓지 않는다. 그럼 “구례 화엄사?” 하는 답이 돌아온다. 완주 화암사는 구례 화엄사의 홍매만큼이나 아름다운, 시(詩)적인 절집이다. 시인이 보증한다. 화암사를 세상에 알린 건 안도현 시인의 ‘화암사 내 사랑’이다. 시집 ‘그리운 여우’(창비)에 수록된 시다. 시인은 화암사로 발을 들이는 순간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다고 했다. 마지막 행에 이르러는 자신이 사랑하는 화암사 “잘 늙은 절 한 채…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라며 마친다. 1997년 출간한 시집이니 스마트폰이 나오기 훨씬 전이다. 지도로 전국을 여행하던 시절(그런 시절이 있었다)이므로,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해도 큰 차이는 없었겠다. 아마 시를 읽고 처음 화암사를 찾은 이들은 꽤나 투덜거렸을지 모를 일이다. 고생 끝에서야 다다랐을 것이다. 하지만 화암사에 이르러서는 시인의 깊은 속마음을 알아채지 않았을까. ●모두의 ‘화암사 내 사랑’ 심인보 작가 역시 안도현 시인의 시를 읽고 화암사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책이 나온 2007년 즈음이 아니었을까. 안도현 시인이 ‘화암사 내 사랑’이란 시를 선보인 지 10년 남짓 지난 후다. 그러므로 ‘곱게 늙은 절집’은 10년 동안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선 화암사에 대한 작가의 찬가다. 내가 처음 화암사를 찾았던 건 심인보 작가가 다녀가고 또 10년이 지난 2016년이었다. 나 역시 안도현 시인의 ‘화암사 내 사랑’을 읽고는 애가 닳았다. 시집이 나오고 약 20년이 지났으니 행여 그 모습이 변했을까 조급했다. 화암사에 다다라서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절집은 안도현 시인과 심인보 작가가 보았던 그대로 잘 늙어 가고 있었다. 10년, 20년 세상의 흐름과 무관하게 자신을 지켜가는 절집이 얼마나 다행하던지. 덕분에 낡고 바랜 툇마루에 앉아서는 잘 산다는 것 무엇일까, 잘 늙는다는 건 무엇일까? 생각했다. 탐욕 없이 덤덤하게 제 몸 안에 세월을 녹이는 것일 텐데, 조금 더 나이를 먹어야 알 수 있겠거니 하며 화암사를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지나 찾은 화암사다. 부처님 오신 날 즈음이니 소란스러울 법도 하다만 화암사 가는 길은 한결같다. “봄날의 게으른 햇빛이 도로 위에 졸고” 좁은 시골길은 구불구불 흐른다. 싱그랭이마을의 500년 된 느티나무 고목 곁을 지나고 또 2㎞ 남짓을 올라가자 간신히 주차장에 이른다. 거기서부터 다시 불명산 계곡과 숲길을 걷는데, 곧 폭포와 기암 위로 놓인 147개의 철계단이 나타난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목탁 같은 울림이 발끝에서 숲으로 번진다. ‘화암사중창기’에는 나무하는 아이나 사냥하는 남자 어른도 쉽게 가기 어려운 절이라고 했다. “고요하되 깊은 성”은 철계단이 없던 조선 시대에는 암벽 등반에 가까웠겠다. 안도현 시인이 사랑한 절집답게 시인의 글귀 또한 마중한다. 그는 ‘화암사 내 사랑’ 외에 ‘화암사, 깨끗한 개 두 마리’라는 시를 썼다. 또 ‘잘 늙은 절, 화암사’라는 산문에서 화암사를 알게 된 과정을 밝힌다. 시인은 누군가의 “귓속말”을 듣고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을 찾았는데 그 귓속말이 글이 된 셈이다. 시 속에는 혼자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역력했지만, 화암사 우화루가 보일 즈음에는 사람들이 찾아가는 고된 길을 알면 지레 포기할까 염려해 한 말은 아니었을까 싶다. 애초에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면 시를 짓지도 않았겠지. ●네모난 하늘을 천장 삼다 우화루(雨花樓)는 화암사의 첫인상이다. 2층처럼 보이지만 반대편에서는 단층으로 보인다. 그 이름은 꽃비를 바라보는 누각이란 뜻이다. 한없이 낭만적인 듯하지만 ‘불설아미타경’에 나오는 극락세계의 꽃비에 가까울 것이다. 여느 사찰이었다면 우화루 아래를 지나 경내로 들어섰을 것이다. 그랬다면 꽃비를 맞으며 지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구현할 수 있었을 터. 하지만 화암사는 그 같은 ‘관례’를 따르지 않는다. 우화루 아래는 누각을 받치는 기둥과 차곡차곡 돌을 쌓아 올린 축대로 막혀 있다. 입구는 우화루 좌측에 있다. 숲을 일주문 삼고 계곡을 천왕문 삼는 절집은 작은 대문 하나가 출입의 의식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연등 하나가 걸려 있을 따름이다. 경내로 들어서자 다시 반전이다. 화려해서가 아니라 옹기종기한 전각에 반한다. 대문만큼이나 작은 마당 하나를 두고 국보 극락전과 보물 우화루가 남북으로 마주하고, 적묵당과 불명당이 동서로 얼굴을 맞댄다. ‘ㅁ’자형의 양반집처럼 네 채의 한옥이 마당을 두른 채다. 마당만 네모날까. 머리 위로 네모난 하늘이 합장하듯 펼쳐진다. 심인보 작가는 이 풍경을 “하늘이 천장이고 천장이 하늘”이라 표현했다. 작가의 말이 아니어도 누구든 화암사 경내에서는 적묵당 툇마루에 앉아 네모난 하늘과 네모난 땅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산중의 고요가 마치 야상곡처럼 흐르고 새들의 노래는 음표처럼 얹힌다. 그리 시간을 흩뿌린 뒤에야 극락전과 우화루를 번갈아 둘러본다. 우화루는 경내와 접한 쪽으로 벽과 문이 없다. 휑하니 기둥만 있어 전각 안쪽까지 마당이 확장되는 듯하다. 그 끝 외벽에 세 개의 창이 났는데 방금 지나온 산기슭의 초록이 어른댄다. 그래서 화암사의 품은 한층 깊게 아늑하다. 맞은편의 극락전은 반대다. 처마가 일반적인 맞배지붕보다 마당 쪽으로 조금 더 나와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도리 밑에 지렛대 역할을 하는 부재(하앙)를 설치해 처마를 길게 뻗을 수 있도록 해 그렇다. 이는 우리나라 유일의 하앙식 구조로 국보에 지정될 만큼 가치를 인정받았는데 화암사는 역시나 크게 뽐내지 않는다. 경내를 두루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는 우화루 목어와 눈이 마주친다. 목어는 부리부리한 눈에 반해 꼬리는 만들다 만 듯 뭉툭하게 끝이 나는데, 대신 나무의 결을 살려 정교한 비늘을 표현했다. 그마저 색 없이 소박하다. 목어마저도 참 잘 늙어가고 있는 절집이다 싶다. 화암사는 곱게 늙은 것이 아니라 잘 늙어 곱다는 걸 알겠다. ●산사를 닮은 도예가의 집 완주에는 들러볼 만한 절집이 또 있다. K드라마 촬영지이기도 한 아원고택, 송소고택 등과 가까운 거리의 송광사다. 산사와 달리 평지의 가람은 접근이 편하고 일주문과 금강문, 천왕문이 일직선에 놓여 그 현판이 겹쳐 보이는 게 특징이다. 무엇보다 보물 송광사 소조사천왕상이 눈길을 끈다. 최명희 작가가 쓴 ‘혼불’에서 승려 도환은 완주 송광사 사천왕의 조형미가 조선에서 가장 빼어나다 말한다. “도무지 투박한 진흙을 주물러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네 명의 수호신은 위엄과 익살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데 거대한 소조임에도 표정과 몸짓이 살아 있다. 범종루 역시 명성이 자자한데 지금은 보수 중이라 볼 수 없다. 대신 절집 안팎으로 꽃과 나무가 만들어내는 운치가 남다르다. 주차장에서 일주문에 이르는 구간부터 호젓한 정원을 걷는다. 옛 담과 나란한 길 끝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넉넉한 그늘을 드리는데, 이 나무 한 그루만으로 ‘절집’이라 불릴 만하다. 수형에 비해 수고가 높고 수관이 너른 것이 여간 늠름하지 않다. 바람에 잔가지를 내어주어 가벼이 흔들리는 걸 보고 있으면, 세상 시름이란 그렇게 흘려보내야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송광사 가까이에는 위봉사와 위봉산성이 있다. 방탄소년단(BTS)이 화보 촬영을 한 위봉산성도 좋지만 위봉사 옆 봉강요에서 우리 도예의 멋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봉강요는 대한민국 명장 진정욱 작가가 꾸리는 공방이다. 진 작가는 봉강요와 함께 ‘잘 늙어가는’ 도예가다. 지금의 터에는 2000년 작업실을 열었고 분청사기 인화문 대접시와 달항아리 등을 선보인다. 또한 그 자신이 도예에서 얻은 치유와 위안을 나누고픈 마음에 봉강요를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다. 그래서 여느 도예 공방과 다르게 카페와 전시관, 정원과 작업실 등으로 이뤄져 있다. 초입에는 ‘산속 깊은 미술관’이 반긴다. 창과 문 없이 활짝 열린 작은 공간은 작품과 자연이 서로를 마주한다. 봉강요 안쪽은 입장권(1만원)을 구매한 후 돌아보는데 입장료는 음료와 소품 도자기 하나를 포함한다. 작가의 작업실과 도자기가 익어가는 전통가마 그리고 청초원과 소풍원 등 꽃과 나무가 울창한 길을 거닐어 봉강요전시관에 이르는 코스다. 카페는 잘 빚은 도자기가 공간과 어우러져 우아한 시간을 선물한다. 남쪽 너른 창으로는 산사처럼 푸른 자연이 펼쳐져 밝고 환하다. 우리가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는 동안 계절은 어느새 봄의 끝에서 여름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 품에서 볕을 쬐며 가마 속 도자기처럼 익어가도 좋겠다. 그것만으로 봉강요에 머물 이유는 충분하다.
  • [단독] “아찔” 운전자 시선 빼앗는 ‘교차로 유세’… 교통법도 선거법도 속수무책

    [단독] “아찔” 운전자 시선 빼앗는 ‘교차로 유세’… 교통법도 선거법도 속수무책

    교차로 주정차, 도로교통법 위반 ‘선거운동 자유’ 이유 단속 소극적 선거법엔 로터리 금지 규정 없어 ‘노출 가성비’ 노려 너도나도 유세 운전자 시야 가리고 전방주시 방해 “앞차 박을 뻔” 시민 불만 잇달아 직장인 김모(44)씨는 24일 차를 몰고 세종시의 한 회전교차로에 진입했다가 6·3 지방선거 유세전에 나선 한 시의원 후보자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차량은 차선을 이탈했고 진입하려는 차와 부딪칠 뻔했다. 교차로에서 좌회전할 때는 손을 흔드는 시장 후보자를 쳐다보다가 차선을 이탈해 접촉 사고가 날 뻔했다. 김씨는 “차량 통행량이 많아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교차로에서 선거 후보자와 유세 차량이 나와 시선을 빼앗는 건 운전 방해 행위 같다”고 말했다. 선거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전국 곳곳의 원형·회전교차로(로터리) 주변과 중앙까지 점령한 유세 차량으로 인해 시민들의 교통 안전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수 시민에게 노출되기 좋은 교차로마다 확성기 방송과 율동 유세가 이어지면서 운전자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교차로 주정차는 명백한 도로교통법 위반이지만, 수사당국은 ‘선거 운동의 자유’를 이유로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에도 교차로 내 유세 차량 진입을 제한하는 규정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표를 호소하는 선거운동은 이어지지만, 전방주시 소홀로 인한 교통사고 위험은 결국 시민들이 떠안고 있는 셈이다. 행정안전부와 경찰·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도로교통법 32조는 교차로와 횡단보도, 회전교차로 진출입 구간, 어린이 보호구역 등을 주정차 금지구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차량 흐름을 방해하거나 운전자 시야를 가리고 분산시켜 사고 위험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철이면 상황은 달라진다. 대형 스피커와 LED 전광판을 장착한 유세 차량들이 로터리 주변은 물론 교차로 인근 차로에까지 장시간 정차한 채 확성기 방송과 율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단속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부 유세 차량과 선거운동원들은 중앙분리대 초입이나 버스정류장 앞 안전지대(빗금 구역)까지 점거한 채 선거운동을 벌이며 시민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특히 출퇴근 시간대 도심 회전교차로에서는 유세 차량과 선거운동원이 몰리면서 운전자 주의 분산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라인에서는 “신호보다 유세차가 먼저 보인다”, “차량 흐름이 꼬여 급정거했다”, “앞차를 들이박을 뻔했다” 등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현행 공직선거법에는 유세 차량의 교차로·회전교차로 진입을 제한하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선거법 79조·80조는 유세 차량과 공개연설을 허용하면서도 로터리 등을 금지 장소로 별도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연설 금지 장소 규정은 국가·지자체 시설을 제외한 도로변 등 다수인이 오가는 공개된 장소에서 연설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차량 이동 인구는 유동 인구여서 해당 지역 유권자가 아닐 가능성이 크지만, 후보들이 교차로 유세에 집중하는 이유는 압도적인 ‘노출 효과’ 때문이다. 골목을 돌며 유권자를 일일이 만나는 것보다 대형 교차로에 서는 편이 훨씬 많은 사람에게 이름과 얼굴을 알릴 수 있어 노출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런 선거 운동의 자유 뒤에 숨은 교통 안전의 공백이 운전자들의 전방주시를 방해해 교통사고 위험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의 사각지대에서 사고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선거운동의 자유도 도로교통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교통 법규를 위반하면서까지 선거운동을 허용한다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도로교통법을 적용해 교통 안전을 지켜줘야 할 경찰 역시 선거 운동의 자유를 이유로 강제 단속은커녕 이동 권고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선거운동 자유와 시민 안전 사이 균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현행 선거법상 로터리 유세를 제한할 규정이 없어 유세 차량 위치를 제재할 수가 없다”며 “경찰도 시민 불편과 교통 사고 위험성을 알지만 선거 운동 기간이라 단속하는 걸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 이후 관계기관 협의와 의견 수렴을 통해 도로교통법 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방선거 선거인수 4464만 9908명50대 19% 최다…29일부터 사전투표한편 행안부는 다음 달 3일 치러지는 지방선거의 선거인 수가 4464만 9908명이라고 공개했다. 4년 전인 2022년 지방선거와 비교하면 34만 6459명이 증가했다. 재외국민은 8만 9151명, 외국인은 15만 1532명이다. 50대는 863만 6772명(19.3%)로 가장 많고, 60대(800만 8122명·17.9%), 40대(754만 4332명·16.9%), 70대 이상(722만 5683명·16.2%), 30대(670만 9201명·15%), 20대(557만 794명·12.5%), 10대(95만 5004명·2.1%) 순이다. 경기는 1187만 8977명(26.6%)으로 가장 많다. 서울 831만 9134명(18.6%), 부산 285만 7335명(6.4%)이 뒤를 이었다. 가장 선거인이 적은 곳은 세종(30만 9134명·0.69%)이다.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는 14개 지역구 선거인 수는 263만 1866명이다. 외국인은 대선과 총선 투표권이 없다. 투표는 이달 29~30일 사전투표소, 다음 달 3일 지정된 투표소에서 하면 된다.
  • [책꽂이]

    [책꽂이]

    지적장애의 얼굴들(리시아 칼슨 지음, 이예린·유기훈 옮김, 심심) 리시아 칼슨 미국 프로비던스 칼리지 철학과 교수는 장애를 인간 존재 양식의 하나로 보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학자로 유명하다. 책에서는 지적장애를 둘러싼 제도와 역사, 철학과 비인간화 문제를 비판적으로 분석해 억압의 구조를 파헤친다. 칼슨 교수는 장애학, 생명과학, 윤리학을 아우르며 우리가 그간 지적장애를 어떻게 ‘결여된 존재’로 환원해왔는지 고찰한다. 이어 지적장애인을 ‘고통받는 존재’로 보는 뻔한 관점에서 벗어나 새롭게 사유하는 길을 제시한다. 456쪽, 2만 3000원. 공장이 사라지고 남은 얼굴들(희음 지음, 재단법인 뚜벅이 기획, 오월의봄) 경기 안산시의 한 자동차 와이퍼 생산 공장의 노동자 209명은 회사 지분 100%를 가진 외국인 투자 기업의 청산 통보에 맞서기 위해 뭉쳤다. 400일 넘는 투쟁에도 실직을 피할 수 없게 된 노동자들은 지역민들과의 연대를 결심했다. 이들은 노동자와 지역 경제를 위한 사회적 고용기금을 회사에 요구했고, 이는 곧 노동자 공익재단 탄생으로 이어졌다. 노동자와 지역 사회가 함께 한 투쟁과 연대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248쪽, 1만 8500원. 파리의 작은 미술관(김정화 지음, 쌤앤파커스) 프랑스 파리에는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외에도 들라크루아 미술관,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로댕 미술관 등 도시 곳곳에 무심히 지나치기에는 아쉬운 작은 미술관들이 여럿 있다. 모두 파리 여행객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세계적인 유산이다. 저자는 번잡함 뒤에 숨은 파리의 참모습을 보며 예술가의 길을 따라 걷는, 낯설지만 흥미로운 산책을 제안한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거장들의 작품과 시공간이 하나의 서사로 만나는 새로운 경험을 맛볼 수 있다. 340쪽, 2만 2000원. 금석문으로 읽는 신라 이야기(목요윤독회 지음, 지식산업사) ‘목요윤독회’는 역사학, 문화인류학 등 다양한 전공의 교수들이 매주 목요일마다 모여 고대사 사료를 함께 읽는 모임이다. 노중국 계명대 사학과 명예교수 등 대구·영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연구자 17명은 가까이 있어 더 친근했던 신라의 금석문을 들여다 보고 연구한 것들을 글로 풀어냈다. 저자들에 따르면 난해할 것만 같은 금석문에는 기존 통설과 신라사 해석의 틀을 깨는 내용들도 포함돼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384쪽, 2만 8000원.
  • 워터멜론향에 담아 왔다… 시의 온기와 용기

    워터멜론향에 담아 왔다… 시의 온기와 용기

    ‘이상함’을 ‘없음’으로 치환하고이해 포기하고 자폐 택한 세계불평등·소외에 대한 공감 전해 초여름의 내음을 가득 품은 시집이 봄에 도착했다. 이를테면 ‘워터멜론향 각성 캔디’와 같은 시어들. 아무래도 시인이 계절을 착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괜찮다. 시는 원래 시대착오의 감각으로 쓰이는 것이니까. ‘나’와 ‘여기’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우리를 다른 곳으로 떠나게 한다. 그 여행에 작은 ‘메신저 백’ 하나 가볍게 들어주면 좋을 것이다. 박상수(52) 시인의 새 시집 ‘메신저 백’을 읽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바다 라벤더의 향기와 출렁임은 우리가 사는 곳까지 닿지 않았지만 괜찮아, 그래도 각자의 애착 소파를 기어코 만들어서 시간을 우리 곁으로 데려왔지, 혼잣말로 끝낼 수 없는 글자들로 구슬 안을 채워서 밀봉하여 교환하는 거야, 구슬이 가득 모이면 녹이고 용접해서 커다란 텍스트 마블링 유리창을 만들자, 하지만 오늘은 우리의 마지막날, 워터멜론향 각성 캔디를 나눠 먹으면서 펼쳐지는 마지막 윤독회”(시 ‘서촌 일요 독서회’ 부분) 화한 여름의 감각이 밀려든다. ‘워터멜론향 각성 캔디’ 때문일 것이다. ‘수박향’이 아니라 굳이 ‘워터멜론향’이라고 한 것은 ‘수박향’이라고 썼을 때 상실되는 어떤 감각이 아쉬워서다. ‘워터멜론향’이라고 할 때만 느껴지는 어떤 상쾌함. 시인은 그걸 붙잡고 싶었을 것이다. ‘워터멜론향’이 시집을 휘감는다. 초록과 분홍이 어우러진 표지 디자인은 그래서 공교롭다. 그러나 시집은 후각과 시각의 심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얼굴을 파묻은 채로 나는 생각해 한 사람이 제외되어도 돌아가는 세상을, 언제나 그 사람을 제외시키면서 고요해지는 세상을, 버스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내리고 신호등이 바뀌고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고, 알고 있지 내가 맡은 책상 위에는 함부로 던져둔 저주들이 가득하겠지만 숨이 막힐 때마다 몸이 부풀어서 단추가 터지고, 녹슨 혈관들이 여길 덮어버리는 풍경을, 내가 있는 자리만 철조망이 둘러져서 녹색 피가 번져가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세상을,”(시 ‘무호흡’ 부분) 이상한 사람 하나쯤 없는 셈 치면 그만이다. 그렇게 하면 세상은 시끄럽지 않을 것이다. 그 차디찬 고요 속에서 우리의 숨은 점점 막힌다. 숨을 참는 나는 점점 부풀고 기어이 터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피가 낭자한 그 현장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이상함’을 ‘없음’으로 치환해 버리는 세계. 그 숨 막히는 동일성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여기 물이 새고 있어요, 발목까지 젖어가고 있어요 … 어서 이곳을 탈출하세요”(시 ‘다시, 파견’ 부분) “그런 소나무가 있대, 불에 타야 열리는 솔방울, 그 안에 씨앗을 숨겨놓는 소나무가, 그렇다면 소나무 씨앗이 처음 만나는 흙은 잿더미일 거라는 말, 세상을 휩쓴 재앙이 아니면 열 수 없도록 자신을 감옥에 가둬버린 솔방울의 이야기,”(시 ‘별채의 밤’ 부분) 서로를 이해하기 포기한 세계에서 우리는 결국 자폐를 결단한다. ‘솔방울’은 그런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렇게 끝나버리진 않는다. “모든 것은 덧없어도 한때는 찬란하다는 말을 새기며, 잿더미 다음에도 씨앗을 피워올리는 소나무의 긴긴 이야기를 이리저리 완성해보고,”(같은 시) 뜨거운 폐허를 딛고 솔방울은 마침내 열린다. 다시 생을 시작한다. 박상수는 2000년 ‘동서문학’에 시가, 2004년 ‘현대문학’에 평론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시집 끝에는 산문 한 편(미미하고 소소한, 그래도 우리)이 실렸다. 그는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고 시를 쓰겠다”고 한다. “불평등, 소외, 계급, 젠더, 노동이라는 말에 내가 조금이라도 민감성과 부채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내 몸에 남은 이 미미하고 소소한 시간의 상흔들 때문이다. … 먼저 떠난 사람이 남긴 문장을 되뇌어 본다. 그리고 입술 밖 너에게 건넨다. ‘물결의 신비, 우리 더 좋은 곳으로 가자.’”
  • 낙조에 흘려보낸 못난 마음… 그래서 당신은 잘 지냈나요[박상준의 문장 여행]

    낙조에 흘려보낸 못난 마음… 그래서 당신은 잘 지냈나요[박상준의 문장 여행]

    한 편의 영화 같은 봄날‘파반느’ 스크린에 비친 도시고가 아래 이화달팽이길가로등 불빛 아래 나눈 진심용기와 희망을 품은 동네한 줄의 사랑 담은 책방방산종합상가 A동 132호빛나지 않는 존재들의 반짝임서로가 서로를 발견하는 곳그래서, 그곳 이름이 ‘그래서’“사람들이 말하는 꿈같은 일이란 실은 별다른 일이 아니야. … 그냥 살아가듯이 그냥 사랑하는 거야. 기적 같은 사랑이란 그런 거라구. 보잘것없는 인간이 보잘것없는 인간과 더불어…누구에게 보이지도, 보여줄 수도 없는 사랑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나가는 거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박민규) 中 외롭고 막막하여 단단한 벽, 자꾸만 세상의 바깥으로 떠미는 원심의 힘. 이데올로기가 된 외모와 그마저 수정 가능한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소설 속 요한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구심은 사랑을 상상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향한 맹목의 사랑은 애당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이므로. 거친 숨을 내쉬며 낙산의 계단을 오르다가, 가쁜 숨들이 오가는 시장을 거닐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면 나를 닮은 그들이 있다. ●사뿐사뿐 이화동 영화 ‘파반느’를 보고 원작 소설을 다시 꺼내 읽는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위즈덤하우스)는 못생긴 ‘그녀’, 상처를 가진 ‘나’ 그리고 요한의 사랑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박민규 작가는 “아주 못생겼어도 나를 사랑했겠느냐”라는 아내의 질문을 받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나 품 안에 못생긴 상처 하나씩을 안고 살아간다. 소설 속 그녀를 연기한 고아성 배우의 말을 빌리면, 아름다워야만 한다는 세상의 묵시와 그러므로 더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욕망의 이면에는 우리 각자의 “사랑할 자신이 없는 못난 마음”이 있다. 영화 ‘파반느’는 영상에 익숙한 오늘의 세대와 같이 도시 속을 거닐며 그 상상을 조금 더 익숙한 언어로 풀어놓는다. 소설 속 그 무대는 1980년대의 서울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도시가 정확히 어디인지, 어느 시대를 살아가는지 말하지 않는다. 대신 많은 장면을 서울에서 촬영했다. 이종필 감독은 오늘의 서울에서 용기와 희망이 되는 장소들을 찾아 카메라에 담는다. 이화동, 방산시장, 신촌의 창전동 골목, 주인공들이 배드민턴을 치던 연희동 궁동공원, 신수동 도프레코드 같은 쌈지의 장소는 오래도록 변하지 않은 서울의 동네다. 그래서 영화가 그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도시는 노란색 조명처럼 따뜻하다. 그 가운데 이화동은 나(영화 속 경록)와 그녀(영화 속 미정)의 사랑이 시작되는 장면으로 인해, 가장 밝게 빛난다. 영화 속 미정의 집은 이화달팽이길 위쪽 골목이다. 이화달팽이길은 그 모양이 달팽이 집 문양과 비슷해 달팽이길이다. 높은 옹벽을 마주한 채 다리 아래에서 위로 나선을 그리며 오른다. 경록과 미정이 가로등 불빛 아래, 봄 햇살 같은 진심을 주고받던 장소는 이화달팽이길 위쪽의 충신4나길과 낙산성곽서길 사이 콘크리트 계단 앞이다. 그리고 다음 날, 미정은 나비처럼 손끝을 팔랑거리며 이화동 계단을 경쾌하게 내려온다. 찬란한 하루의 시작, 그때 미정은 처음으로 고개를 든 채 걷는다. ●한양도성 그리고 고궁을 걷는 길 미정의 집에서 조금 더 오르면 낙산성곽서길이다. 서울 한양도성 가운데 비교적 걷기가 편하고 전망이 빼어나며 쉼터가 많은 구간이다. 영화가 담지 못한 장면의 바깥에서, 미정과 경록은 한양도성을 동무 삼아 낙산 정상과 한양도성박물관 사이를 반복해 오래 걷지 않았을까.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으며 내 사는 도시의 전경을 곁에 두고 나란히 걸을 수 있는 길은, 막 사랑에 빠진 이들이 서로를 곁눈질하고 발을 맞추기에 알맞다. 또 해 질 녘에는 서로의 수줍은 마음을 붉게 물든 노을 속에 숨길 수 있다. 그 길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놓지 못하는 인간들은, 그래서 서로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실의 연인들은 낙산 정상에서 곧장 창신동 쪽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낙산5길의 채석장전망대 카페 낙타는 옛 채석장 산기슭에 기댄 ‘十’자 모양의 건물이다. 카페 낙타의 ‘一’자에 해당하는 내부에서는 창신동과 숭인동 군락과 동망봉이 보인다. 동망봉(東望峰)은 슬픈 역사가 깃든 장소다. 그 이름은 동쪽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동쪽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도 나오는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를 가리킨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는 82세까지 동망봉 정업원(청룡사)에서 지내며 단종을 그리워했다. 동망봉 반대편은 옛 한양의 압도적인 풍경이 금세 그 쓸쓸함을 지운다. 성곽을 곁에 두고 걷기에는 이화동 낙산성곽서길이 좋지만 한양도성을 포함한 전망은 한양도성 일대보다 낙산5길이 낫다. 한양도성과 남산 위 N서울타워와 시가지 전경은 들뜬 마음을 한껏 더 부풀게 한다. 그래서 주변의 카페나 식당은 하나같이 그 전망을 품고 있다. 옥상 전망대, 테라스의 난간, 실내의 통창, 주택을 개조한 자그마한 방 등 형태가 다양해 선호대로 택할 수 있다. 영화 ‘파반느’가 이화동에서 사랑을 시작했다면,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택한 장소는 고궁이다. ‘가고 싶은 곳 없어요?’라는 나의 말에 그녀는 얼마간 머뭇거리다 ‘고궁’이라고 답한다. ‘어느 한가한 도서관을 열 배는 확장’시켜 놓은 옛 궁궐을, 두 사람은 자주 찾는다. 그때 고궁을 걷는 그녀의 마음은 사랑에 대한 믿음과 상실에 대한 두려움, 왕녀와 시녀 중 어느 쪽에 속했을까. 소설에 고궁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고궁을 나와서는 화랑에 들렀고 드립 커피를 마셨다고만 쓰여 있다. 궁궐을 따라 걷는 코스는 정동길이나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는 사간동 일대가 운치 있다. 그러나 소설의 두 사람에게는 사람이 적어 한적한 창덕궁 서쪽 원서동이 적당하다. 창덕궁 돈화문에서 원서동빨래터까지 700m 남짓한 거리는 북촌에서도 가장 고즈넉한 골목이다. 곧 창덕궁 후원의 숲과 맞닿아 푸르고 길이 끝날 즈음에는 종로구립 고희동미술관이 반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 고희동이 40여 년간 머문 옛집에는, 고희동 화백과 동료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군방자재(群芳自在)’는 고희동 외 일곱 명의 작가가 같이 그린 작품이다. 매화와 국화와 수선화가 계절과 무관하게 한데 피어 있어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한다. 봄날에는 창덕궁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고궁의 봄은 어디든 아름답지만 봄꽃으로만 치자면 단연 창덕궁이다. 특히 성정각 담을 낀 후원의 입구는 매화의 천국이다. 겹겹이 붉은 자시문 앞 만첩홍매를 시작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낙선재 쪽으로 가지를 드리운 수양벚나무는 이르지만 여느 꽃들은 3월 하순이면 활짝 피어난다. 그즈음 성정각 안쪽에서는 담 위로 높게 자란 살구꽃이 곱다. ●그래서 책방, 방산시장의 숨은 발견 영화와 소설에는 세 사람이 근무하는 백화점 ‘유토피아’와, 멀지 않은 단골 술집 ‘켄터키HOPE’가 자주 등장한다. 영화는 유토피아를 나와서 희망(HOPE)을 찾아가는 길로 방산종합시장을 택한다. 어느 날 경록은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 비를 상대하는 게 쉽다는 미정 쪽으로 제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우산을 기울이며 걷는다. 그 또한 방산종합시장 동남쪽 오거리에서 촬영한 장면이다. 방산종합시장은 6·25 전쟁을 전후해 미군의 식료품이 거래되는 ‘양키시장’이었으나 1976년 옛 방산국민학교 터에 시장이 개설되며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 지류와 인쇄, 포장 재료가 주를 이루고 판촉물 가게가 여럿이다. 다른 존재를 빛나게 하는, 주연보다 조연들의 시장인 셈이다. 이종필 감독이 방산시장을 택한 건 그런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빛나지 않는 존재들의 반짝임. 그리고 시장 안에는 정말 그런 장소가 숨어 있다. 박민규 작가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요한의 입을 빌려 “인간은 하나의 극을 가진 전선 같은 존재”라고 썼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고 서로를 발견해야 한다고. 방산종합상가 A동 2층 132호에 있는 책방 ‘그래서’는 방산시장의 발견이다. 상가는 무뚝뚝한 복도를 사이에 두고 라벨, 인쇄, 포장 자재를 다루는 사무실과 작업실이 마주한다. 그 틈에 뿌리내려 7년을 살아낸 책방은 낯설어 진귀하다. 이현행, 오주현 씨는 책방 안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자꾸만 묻는다. 그래서 요즘은 어떻게 지내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사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그래서, 책방의 이름이 ‘그래서’다. 작고 사소한 존재들을 응원하는 그들만의 방식이다. 책방에 그치지 않는다. 전시하는 쇼룸과, 워크숍이 이뤄지는 워크룸까지 포함한다. 때로는 방산시장에서 남은 자투리 종이처럼, 쓸모를 다한 것들을 지역 예술가와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하는데, 이는 전시로, 워크숍으로 그리고 다시 기록으로 남겨져 순환한다. 그렇게 책방과 연을 맺은 작가들이 방산시장 안에 하나둘 자리를 잡고 연대한다. 아직은 대여섯 곳에 불과하지만 첫 프로젝트로 6월 서울국제도서전 기간에 맞춰 ‘서울자체도서전’을 열 계획이다. ●두릅과 귀여운 할머니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좋은 여름)’를 쓴 하정 작가의 여름맨션(A동 3층 78호)도 그중 한 곳이다. 작가의 작업실이지만 책이나 굿즈를 파는 곳이기도 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는 작가가 여행 중에 덴마크 모녀를 만나 빚은 추억의 기록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서로의 삶을 밝히는 이야기라 좋다. 그렇게 방산시장을 오가다 보면 간판 하나, 상자 하나, 라벨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작은 것들의 반짝임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주인공 그녀는 스스로를 오래전 “마음속에서... 얼굴을 도려낸 여자”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인간은 서로를 사랑하는 한 “스스로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동물”이다. 그녀 또한 사랑을 추억하므로 소설의 바깥에서 귀여운 할머니로 늙어가고 있지는 않을까. 방산시장을 나와서는 ‘희망’으로 옮겨간다. 퇴계로 방면으로 10여 분 거리에는 두릅이라는 술집이 있다. 영화 ‘파반느’에서 세 사람의 단골 술집 켄터키HOPE의 외관이 두릅을 빌려왔다. 켄터키HOPE의 간판이 빛나던 자리에는 다시 두릅의 한자인 ‘吻頭(문두)’가 걸려 있다. 김도현 씨는 작은 선술집을 내고 싶어 주류 도매업체와 기획사에서 일하며 두릅을 준비했다. 두릅 하면 자연스레 나물이 떠오르는데 실은 이유 없이 붙인 이름이다. 그래서 로마자 표기는 Dureup에서 ‘eu’(이유)가 없는 Durp다. 영화 ‘파반느’에서는 호프(HOP)에 ‘E’가 붙어 희망(HOPE)이 되었던가. 자신의 가게에 ‘세월이 묻는 게 좋다’는 그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파반느’의 두 주인공이 즐겨 찾기에는 힙(hip)한 술집이기는 하다. 글·사진 박상준 여행작가
  • 말 뒤에 숨은… 날것의 마음을 캐내다

    말 뒤에 숨은… 날것의 마음을 캐내다

    말·욕망으로 마음이 더럽혀지기 전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원형 탐색설화 속 소재로 재치 있게 말 비틀어 우리 마음을 한번 들여다보자. 세상의 온갖 말과 욕망으로 더럽혀져 있는 그것. 그래서 시인은 ‘생(生) 마음’을 찾는다. 날것 그대로의 마음은 어떨까. 흔히 백지에 비유되고는 하는데, 정말로 그럴까.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최초의 마음. 김복희(40) 시인의 새 시집 ‘생 마음’은 거기서 시작한다. 이 시집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마음의 한 연구’라고 할 수 있겠다. “아 이 마음// 백지에 놓기 위해/ 백지부터 만들기로 한다/ 처음부터 내 손으로 할 일/ 내 땀 내 피로 할 일 … 생 마음은 독한 것이군/ 소금에도 곰팡이 난다는데/ 소금보다 더 독한 것이군/ 생사람 잡듯 마음을 잡는다 … 백지를 가리키며/ 말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넌지시 보여줄 수도 있으리라/ 생 마음은 독하지만 정한 것이라고”(‘생 마음’ 부분) 김복희보다 훨씬 앞서 마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골몰했던 자가 있다. 바로 부처다. 시인은 이 대선배를 깍듯이 예우한다. 시집 곳곳에서 부처의 이름을 ‘샤라웃’(Shout out)하고 있다. 제목들을 보자. ‘하느님 부처님 외로운 선생님’, ‘부처님 가운데 토막’, ‘저승서 부처님 기다리듯’…. 그중에서 ‘부처의 목’이라는 시가 퍽 재밌다. “배추를 나르는데/부처의 목이 들린 것이다/ 보살님 이거 배추 아닌 거 같아요/ 옆의 보살님은 울력에 여념이 없으시고/ 배추가 배추지요 만면에 웃음까지 띠신다/ 나는 허리를 펴고 스님을 찾는다/ 하지만 배추가 너무 많다/ 배추가 쌓인다 … 부드러운 흙으로 만든 부처님/ 이라면/ 물에 녹아 배추에 다 스몄을 것이다/ 얼마나 부드러운 거슬림일까/ 한 입 한 입/ 쌀밥에 침 섞어 삼킬 수 있는// 정말로 부처를 본뜬 부처라면”(‘부처의 목’ 부분) 대선배를 존경하는 줄 알았는데 글쎄, 부처의 목을 홀랑 ‘배추’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고는 ‘쌀밥’과 함께 꿀꺽 삼킨단다. 이래도 되나. 불경한 것 아닐까.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부처가 추구했던 부처의 마음일 수도 있겠다. ‘나’를 고집하지 않는 것. 대신에 부드러운 흙이 되는 것. 아삭한 배추가 되는 것. 그리하여 누군가를 위한 맛있는 한 끼 식사가 되는 것. 지상에서 그것만큼 거룩한 일이 어디 있을까. “얼굴이 자꾸 당신에게로 흐른다/ 얼굴이 온통 당신에게로 느슨해진다/ 눈 코 입 귀가 다 저항하는데/ 아 그렇다면 흐르는 건 피부로군/ 가죽이로군/ 나지막하군/ 여기 있으면 누가 죽이기라도 하나/ 살려고 용을 쓰네 참나”(‘가죽을 남김’ 부분) 겉으로 드러나는 ‘얼굴’과 ‘가죽’은 마음의 반대다. 그것들은 자꾸만 ‘당신’에게로 가려고 한다. “당신의 눈 코 입 귀 위/ 그늘/ 심장 폐 허파/ 드리우려고/ 가는/ 가죽/ 온통 당신 앞에/ 아무것도 아닌 채/ 있으려고 가는”(‘가죽을 남김’) 당신에게 가봤자 ‘아무것도 아닌’ 게 될 뿐이다. 그러나 자꾸 나의 얼굴과 가죽은 당신에게로 가려고 한다. 존재의 무게를 잊고 편하게 가서 의탁하려고 한다. 안 될 일이다. ‘나’를 붙잡아야 한다. 시 쓰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누구도와 아무도를 배우는 요정/ 요정이 처음 시를 배우겠다고/ 인간이 쓰는 시를 배우겠다고//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나’를 쓰는 법부터 가르쳤다/ 요정은/ ‘나’를 향해/ 멀리 돌아가는 시를 쓴다// 누구도와 아무도를 알려준 날// 요정은/ 시에 외롭다는 말을 없애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다”(‘요정을 가르치기’ 부분) 김복희는 201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 ‘희망은 사랑을 한다’, ‘스미기에 좋지’, ‘보조 영혼’ 등의 시집을 썼다. 이번 시집은 시 안에 ‘이야기’가 두드러진다. 한국의 설화에서 여러 소재를 가지고 왔다. 관습적으로 쓰이는 우리말의 문장을 재치 있게 비틀어 시를 전개하는 지점들이 반짝인다. 언어 습관 뒤에 감춰진 우리의 ‘생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려는 듯하다.
  • 그림책에 빠져 볼까, 월리 찾으러 떠날까

    그림책에 빠져 볼까, 월리 찾으러 떠날까

    겨울방학의 끝자락, 아이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면 전시 나들이로 아쉬움을 달래면 어떨까. 봄이 오기 전 마지막 연휴를 앞두고 어린이와 함께 보기 좋은 전시를 소개한다. 그림책 좋아하는 아이는 여기가 딱세계 최대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그림책 애호가라면 빼놓을 수 없는 전시가 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다음달 28일까지 열리는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도서전인 이탈리아 볼로냐 아동도서전의 핵심 행사인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에 소개됐던 작가 77명의 원화 385점이 한국을 찾았다. 이번 전시는 ‘77가지 시선, 일상 속 행복을 물들이다’라는 주제 아래 다문화·환경·젠더 감수성 등 최신 그림책 경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77명 가운데 한국 작가 4명도 포함됐다. 아랍에미리트 샤르자 어린이 독서 축제에서 대상을 받았던 안경미 작가의 ‘가면의 밤’은 버섯이 핀 모습과 유사한 한국 전통 괴물 ‘가면소수’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다. 여러 가면을 써보다가 진짜 얼굴을 잃고 혼란에 빠진 아이가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철학적인 여정을 그렸다. 또 다른 한국 작가 오다라의 ‘불량감자’는 못나 보이지만 여전히 존재 의미를 지닌, 불완전한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응원이다. 한자와 고전 재밌게 배우고 싶다면 예술·체험 결합 ‘모두의 천자문’展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는 한자를 감각으로 배울 수 있는 체험형 전시인 ‘내맘쏙 : 모두의 천자문 전’ 이 다음달 22일까지 열린다. 전시는 조선시대 대표 한자 교육서인 ‘천자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세대가 고전을 새로운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전시에는 예술의전당 소장품인 한석봉의 ‘천자문’ 17점을 비롯해 곽인탄, 김범, 남다현, 박경종, 백인교, 사이다, 이이남, 홍인숙 작가 등 현대미술 작가 14팀의 작품 80여점이 전시된다. 회화, 조각, 사진, 설치, 미디어아트, 그림책, 레고아트 등 여러 장르의 작업을 통해 현대미술을 친근하고 흥미롭게 체험할 수 있다. 자연·정원서 힐링 필요한 당신께‘행복의 아이콘, 타샤 튜더의 삶’展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은 3월 15일까지 미국을 대표하는 동화 작가이자 그림책 작가인 타샤 튜더(1915~2008)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기획전 ‘스틸, 타샤 튜더: 행복의 아이콘, 타샤 튜더의 삶’을 선보인다. 튜더 탄생 11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이번 전시는 소박하고 절제된 생활로 ‘행복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그의 작품 세계와 삶을 조명하며 오늘날 현대인에게 필요한 느린 삶의 가치를 되새기는 성찰의 시간을 선사한다. 이번 전시는 ‘자연’, ‘가족’, ‘수공예’, ‘정원’ 등 주요 키워드를 기반으로 구성한 총 12개 섹션을 통해 튜더의 예술세계와 삶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전시장 초입에 설치된 거대한 시계 조형물은 전시를 통해 작가의 시간 속으로 돌아가도록 관람객을 안내하는 상징적 장치다. 전시에는 방대한 식물 스케치와 동물들을 그린 원화를 비롯해 작가의 주요 작품을 미디어아트로 만든 작품도 선보인다. 특히 아시아 최초로 공개되는 30여 권의 초판본과 데뷔작 ‘호박 달빛’ 55주년 특별판 등 사료적 가치가 높은 자료와 원화들이 출품됐다. 전시 말미에서는 관람객이 튜더의 정원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그의 정원을 모티프로 꽃과 향기, 계절의 변화를 공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구현해 튜더가 평생 실천했던 ‘자연과 함께하는 삶, 그리고 소박한 행복’이라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전한다. 엄마·아빠도 추억 속에 빠져드네책 속 공간 체험 ‘월리를 찾아라’展 40년 가까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아 온 숨은그림찾기 그림책 ‘월리를 찾아라’를 전시로 즐길 수 있는 곳도 있다. 4월 5일까지 성동구 서울숲 더서울라이티움에서 열리는 ‘월리를 찾아라, 신기한 책 속 여행’은 그림책 속 공간이 확장된 체험형 전시다. 1987년 영국 일러스트레이터 마틴 핸드포드가 선보인 ‘월리를 찾아라’ 시리즈는 수백, 수천 명이 등장하는 복잡한 그림 속에서 빨간 줄무늬 옷과 안경, 모자를 쓴 캐릭터 월리를 찾아내는 독특한 설정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전시는 관람객이 직접 각 장면에 들어가 월리를 찾는 경험을 제공한다. 전시장 내부는 월리 시리즈의 특징인 선명한 색감, 유머러스한 설정, 수많은 디테일을 그대로 구현했다. 전시는 ‘뒤섞인 책 속 세계’, ‘시공간이 뒤섞인 우주’, ‘구름 위를 걷는 상상의 나라’ 등 여러 섹션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고대 왕국·정원·해저 세계·예술 작품 속 장면 등 다양한 공간을 체험할 수 있다. 관람객은 장면마다 서로 다른 테마 공간을 이동하며 마치 책의 페이지를 넘기듯 전시를 즐길 수 있다. 월리뿐 아니라 또 다른 캐릭터인 웬다, 오프, 화이트비어드 마법사 등 익숙한 캐릭터들도 곳곳에 등장해 찾는 재미를 더한다.
  • 초등학생 목 조르고 바닷물에 ‘풍덩’…“아빠가 CEO라고?” 손사래친 회사, 日 발칵

    초등학생 목 조르고 바닷물에 ‘풍덩’…“아빠가 CEO라고?” 손사래친 회사, 日 발칵

    일본에서 학생이 또래 학생을 무차별 폭행하는 학교 폭력 실태를 담은 영상이 소셜미디어(SNS)에 공개되는 사례가 잇따르는 가운데, 이번에는 중학생이 초등학생의 목을 졸라 바닷물에 빠뜨렸다는 정황이 SNS를 통해 폭로돼 일본 사회에 충격을 안기고 있다. 20일 산케이신문 등에 따르면 오사카시 교육위원회는 최근 SNS에 확산한 학폭 영상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괴롭힘 방지 대책 추진법에 명시된 ‘괴롭힘 중대 사태’에 해당하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또 오사카부 경찰은 가해 남학생들을 지역 아동 상담소에 통보하는 등 조치에 나섰다. SNS에 확산한 문제의 영상은 오사카시의 중학생들이 초등학생 한 명에게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폭력을 저지른 장면이 담겼다. 영상을 보면 중학생 A군은 자신보다 체구가 작은 초등학생 B군의 목을 뒤에서부터 팔로 강하게 졸랐고, 피해 초등학생은 울먹이며 고통스러워했다. 함께 있던 다른 중학생들은 이를 말리기는커녕 휴대전화로 촬영하는가 하면, “너무한 거 아니냐”, “한 번만 놔줘라”라며 비웃었다. A군이 B군의 목을 졸랐던 팔을 풀자 B군은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B군과 똑같은 옷을 입은 것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바닷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영상에서 B군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돼 있었지만 A군과 이를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다른 남학생의 얼굴은 그대로 공개됐다. 휴대전화로 촬영하며 비웃기까지네티즌들은 A군의 폭력이 장난이나 단순 폭행을 넘어 살인미수에 해당하는 중범죄라고 비판한다. SNS에서는 A군의 이름과 학교 등 신상정보까지 확산했다. SNS에서는 A군의 아버지가 오사카에 본사가 있는 한 회사의 대표라는 소문까지 확산했다. 이에 해당 회사와 이름이 비슷한 한 어린이용 책가방 제조회사는 공식 홈페이지에 “우리 회사와 무관하다”는 공지문을 띄우기까지 했다. 오사카부 경찰은 지난해 11월 해당 사안에 대한 제보를 받고 A군을 비롯한 가해 남학생들을 조사했다. 이들은 모두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닌 이른바 ‘촉법소년’인 14세 미만으로, 경찰은 이들에 대해 아동 상담소에 통보했다. 오사카시 교육위원회도 영상이 확산하기 전 사안을 파악해 조사해왔다. 교육위원회는 “피해 아동의 안전과 심리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으며, 가해 학생에 대해서도 적절한 지도를 실시하고 있다”면서 “영상이 확산하며 B군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등의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최근 SNS를 통해 심각한 학교 폭력 사례가 잇달아 폭로되고 있다. 지난 4일에는 도치기현의 한 고등학교의 화장실에서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을 무차별 폭행하고 다수의 학생이 마치 격투기 경기를 보듯 환호하는 영상이 SNS에 퍼져 파문이 일었다. 이어 오이타현의 한 중학교에서는 한 학생이 복도에서 또래 학생의 머리채를 잡아 넘어뜨리고 손과 발로 무차별 폭행하는 1분 분량의 영상이 SNS에 올라와 교육 당국이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정부 차원에서도 대응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문부과학성은 지난 14일 전국의 교육위원회를 대상으로 긴급회의를 열고 “이번 학기 중에 각 학교에서 조사나 상담 등을 통해 드러나지 않은 학교 폭력 사례를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문부과학성은 “학교 폭력 관련 피해 학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대응하라”면서 “SNS를 통한 폭로가 또 다른 인권 침해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인터넷 윤리 교육도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 치매 남편 앞에서 불륜남과 애정행각 “모텔비 굳었다” [탐정들의 영업비밀]

    치매 남편 앞에서 불륜남과 애정행각 “모텔비 굳었다” [탐정들의 영업비밀]

    채널A ‘탐정들의 영업비밀’에서 아내의 노골적인 불륜에 전 재산을 아들에게 증여하며 복수한 ‘치매 남편’의 이야기가 공개돼 시청자들의 경악을 샀다. 12일 방송된 ‘탐정들의 영업비밀’의 ‘사건수첩’ 코너에서는 치매 환자인 아버지가 전 재산을 아내 몰래 아들에게 증여한 사연 뒤에 숨은 충격적인 속사정이 공개됐다. 상주 요양 보호사와 생활하던 의뢰인의 아버지는 정신이 또렷할 때마다 세무사를 찾아가 증여 절차를 진행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상태가 악화한 아버지가 요양원에 입원하게 되자 요양보호사는 아들인 의뢰인에게 “아내 얼굴만 보면 너무 화를 내신다. 그렇게까지 미워하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의뢰인은 탐정단에 조사를 요청했고, 곧 의뢰인의 어머니가 치매 환자인 남편 앞에서 다른 여성 치매 환자의 남편과 대놓고 불륜을 저지르는 모습이 포착됐다. 조사 결과 부부의 악연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고집 세고 아내를 ‘밥순이’ 취급하던 남편과 갈등을 겪던 아내는 등산 중 만난 남성과 외도를 저질렀다가 남편에게 들키고 말았다. 남편은 아내의 바람에 대해 “내가 유흥업소 다닌 문제랑은 차원이 다르다”며 몰아세웠고, 아내는 아들에게만은 비밀로 해달라고 하며 아내의 불륜은 비밀에 부쳐졌다. 그러나 남편의 괴롭힘은 나날이 심해졌다. 아내가 차라리 이혼하자고 간청했지만, 남편은 불륜을 폭로하겠다며 사실상 이혼을 거부했다. 그러던 중 불륜남의 아내가 치매에 걸렸고, 의뢰인의 아버지(남편)도 치매 증세가 나타났다. 두 사람은 각각의 배우자를 같은 치매센터와 요양원에 보내놓고 그 앞에서 거리낌 없이 불륜 행각을 이어갔던 것이었다. 이들이 나눈 “우리는 이제 자유다”, “우리 집도 비고, 너희 집도 비고, 모텔비 굳었다” 등의 대화가 출연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 “시신 싣고 운행한 살인 택시”…6년 숨어지낸 연쇄살인마를 잡은 것은 그것[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신 싣고 운행한 살인 택시”…6년 숨어지낸 연쇄살인마를 잡은 것은 그것[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010년 3월 28일 오전 10시. 일요일 아침의 평온함이 감돌던 대전 대덕산업단지의 북쪽 끝 2차선 도로 위로 자전거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트로 향하던 외국인 노동자 자하드의 시선이 길가 건물 한쪽 벽면에 머물렀다. 대형 트럭과 담벼락 사이, 언뜻 사람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듯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취객인 것으로 생각하고 자전거를 세우고 조심스럽게 다가간 자하드는 이내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질 쳤다. 잠자듯 누워 있는 줄 알았던 젊은 여성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양쪽 발목은 흰색 노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고, 얼굴과 목은 청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었다. 누군가 이 가련한 여성의 목숨을 끊은 뒤 인적 드문 이곳에 유기한 것이었다. 자하드의 112 신고가 접수된 것은 오전 10시 40분경이었다. 입만 막은 채 서서히 꺼져간 숨현장에 출동한 형사들과 감식반의 눈에 비친 시신은 기이할 정도로 깨끗했다. 앳된 얼굴의 피해자는 줄무늬 블라우스에 베스트, 검은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반듯한 옷매무새는 그가 사회 초년생임을 짐작게 했다. 코에는 핏자국이 있었고 광대뼈와 왼쪽 턱에도 작은 상처가 발견됐지만, 모두 치명상은 아니었다. 현장 바닥에서 혈흔은 찾을 수 없었다. 특이한 점은 여성 피살자들에게서 통상적으로 발견되는 목 졸림의 흔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부검의들에 따르면 살해당한 여성의 90%가 힘이 약한 여성 제압에 용이한 목 졸림으로 사망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여성은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 있었으나, 시반(屍斑·시신의 피부에 나타나는 자주색 반점)은 몸 앞쪽에 형성되어 있었다. 이는 피해자가 엎드린 상태에서 죽음을 맞았음을 의미했다. 정액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으나 가슴에서는 남성의 타액이 검출됐다. 부검 결과 밝혀진 사인은 ‘비구(鼻口) 폐쇄성 질식사’였다. 입가에 테이프 자국이 선명했다. 하지만 의문은 남았다. 테이프가 코는 제외하고 입만 막고 있었는데 왜 질식했을까. 해답은 사망 당시의 자세에 있었다. 범인은 피해자의 손을 등 뒤로 묶고 입을 막았다. 팔이 뒤로 꺾인 자세가 오래 지속되면 심장박동이 크게 떨어지는데, 법의학자들은 이 자세로 오래 방치할 경우 코나 입 어느 하나만으로 숨 쉬는 것이 어려워 질식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피해 여성은 코에서 난 피가 비강을 막아 호흡이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였다. 지문 조회 결과 사망자는 충북 청주에 사는 24세 송 모 씨였다. 대학 졸업 후 무수한 입사 도전 끝에 취직에 성공한 송 씨는 출근 첫째 주 휴일을 앞둔 3월 26일 금요일 저녁, 청주 남문로에서 친구들과 환영 회식과 생일파티를 마치고 택시를 탔다가 변을 당했다. 범인은 이제 막 피어나려던 꽃망울을 무참하게 꺾어 버렸다. 274만 개의 눈… 도시의 감시자가 범인을 지켜봤다형사들은 즉각 시신 발견 지점 주변의 폐쇄회로(CCTV) 확인에 나섰다. 범인은 트럭과 담벼락 사이에 시신을 유기하며 완전범죄를 꿈꿨겠지만, 도시의 감시자는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성과 없이 이어지는 CCTV 화면 탐색에 형사들이 조금씩 지쳐갈 즈음, 모니터 속 시간이 오전 1시 30분을 가리키는 순간 결정적인 장면이 포착됐다. 시신이 발견되기 약 9시간 전이었다. 화면 속에 퉁퉁한 체격의 남자가 등장했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트렁크를 열어 급히 무언가를 꺼냈다. 이미 숨져 있는 송 씨였다. 남자는 트럭 옆에 송 씨를 버린 뒤 황급히 차를 몰고 떠났다. 화면이 너무 흐려 범인의 이목구비나 차량 번호는 식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차종이 흰색 NF쏘나타임은 분명했고, 더 큰 수확은 차 지붕에 택시 표지가 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경찰은 송 씨가 회식을 마치고 탑승한 택시를 쫓기 시작했다. 경찰은 CCTV 속 범인이 시신을 유기한 후 다시 거주지로 추정되는 청주로 돌아갔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 갈 수밖에 없는 ‘노루목’을 찾아야 했다. 수사팀이 지목한 지점은 현도교였다. 대전 대덕단지에서 신탄진 나들목(IC)을 거쳐 청주로 넘어가려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길목이자, CCTV가 설치된 곳이었다. 범행 당일 오전 1시 30분 이후 다리를 지나간 택시는 총 67대였다. 경찰은 이 중 유독 수상해 보이는 1대에 주목했다. 번호판을 잘 볼 수 없도록 반사 테이프를 붙인 택시였다. 차종 역시 앞서 현장 CCTV에서 목격된 것과 동일한 흰색 NF쏘나타였다. 정밀 분석을 통해 드러난 차량 번호를 확보한 후 경찰은 즉시 청주의 한 택시회사로 형사들을 급파했다. “CCTV에 다 찍혀 있다.” 형사들의 추궁에 택시 기사 안남기(41)는 순순히 자기 집에서 수갑을 받았다. 신고가 접수된 지 불과 12시간 만의 검거였다. 그의 택시 운전석 문짝에서는 식칼이, 트렁크 매트에서는 송 씨의 혈흔이 발견됐다. 송 씨를 위협해 빼앗은 현금 7,000원도 함께 나왔다. 조사 결과 드러난 안남기의 행적은 엽기적이었다. 그는 청테이프로 송 씨를 질식사시킨 뒤 시신을 트렁크에 실어둔 채 집에서 잠을 잤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다음 날인 27일 오후 2시부터 시신을 트렁크에 싣고 태연히 택시 영업을 했다는 점이다. 이날 오후 11시 시신을 유기하러 가기 전까지, 안남기의 택시에 탔던 승객들은 발밑 트렁크에 시신이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택시를 이용했다. 안남기는 “테이프로 입만 막았기 때문에 송 씨가 숨은 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살인의 고의성을 부인했다. 성폭행 혐의 또한 부인했다. 이미 2000년에 감금 및 성폭력 혐의로 3년 형을 받고 2003년 6월 출소했던 그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놓고도 살인이 아닌 과실치사나 강도치사만을 적용받기 위해 갖은 술수를 썼다. 드러난 ‘죽음의 택시’, 그리고 뼈아픈 수사의 허점“연기군 조천변 살인사건 있잖아요. 이번에 나온 DNA가 그 사건 용의자와 일치해요.” 수사가 진행되던 중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은 이 사건이 단순 강도 살인이 아님을 알렸다. 안남기의 과거 범행이 칡넝쿨처럼 줄줄이 딸려 나왔다. 그는 택시 기사를 하며 6년간 무려 3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었다. 첫 번째 피해자는 2004년 10월 충남 연기군 조천변 도로에서 발견된 23세 여성 전 모 씨였다. 채팅을 통해 만난 남성을 보러 청주에 왔던 전 씨는 안남기의 택시를 탔다가 이불에 싸여 노끈으로 묶인 채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사인은 질식사였다. 두 번째 피해자는 2009년 9월 26일, 청주 무심천 장평교 아래 하천가에서 낚시꾼에게 발견된 41세 여성 김 모씨였다. 손발은 청테이프로 결박되어 있었고 하의가 일부 벗겨진 상태였다. 김 씨 역시 닷새 전 직장 동료들과 회식을 마치고 택시를 탔다가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 수사의 뼈아픈 실책도 드러났다. 2009년 김 씨 사건 당시, 경찰은 택시 회사를 상대로 탐문 조사를 했으나 기사 개개인을 조사하지 않아 안남기를 놓쳤다. 결정적인 기회는 또 있었다. 김 씨 실종 다음 날인 9월 22일 오전 7시경 청주의 한 편의점 현금인출기에서, 그리고 8일 후인 30일 또 다른 은행에서 40대 초중반 남성이 김 씨의 카드로 현금을 인출하려다 실패한 장면이 CCTV에 포착됐었다. 그러나 경찰은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고, 김 씨의 계좌에 대해 즉시 경찰 신고가 이뤄지는 ‘부정 계좌’ 등록 대신 단순 ‘지급정지’ 조치만 취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이 틈을 타 안남기는 수사망을 피해 갔고, 결국 해가 바뀐 2010년 3월, 송 씨라는 또 다른 희생자를 낳고 말았다. 미제사건을 푼 열쇠는 도로 위의 감시자 CCTV안남기의 범행 대상은 주로 늦은 밤 택시에 탄, 몸집이 작거나 술을 마신 여성들이었다. 그는 1심 재판부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다. 2010년 10월 대전지법 형사합의11부는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고의성을 부인하고, 끊임없이 진술을 번복하는 등 진지하게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면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피해자와 그 유족들이 겪은 고통 등을 고려해 극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항소심과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피해자가 숨 쉴 수 있도록 테이프를 찢어주었다는 등의 변명을 통해 ‘살인의 고의성’을 다투었던 안남기의 주장이 일부 참작되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그는 현재 16년째 복역 중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여죄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하다. 2005년 2월 충남에서 실종된 여성과 2009년 9월 청주 도로가 트럭 밑에서 발견된 미용 강사 사건 등이 그의 소행으로 강력히 의심받고 있다. 2024년 통계 기준, 정부와 지자체가 설치한 공공 CCTV는 200만 대에 이르며, 민간이 설치한 CCTV는 이 수치의 10배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CCTV는 사생활 침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하지만, 안남기 사건에서 보듯 자칫 미제사건으로 묻힐 뻔했던 억울한 죽음들의 한을 풀어주는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 “좋은 밤이에요” 여유 부린 마두로… ‘숨은 권력’ 영부인도 함께 체포

    “좋은 밤이에요” 여유 부린 마두로… ‘숨은 권력’ 영부인도 함께 체포

    미군 특수부대의 전격적인 ‘절대적 결의’ 작전으로 3일(현지시간) 체포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뉴욕시 마약단속국(DEA) 본부로 이동한 뒤 브루클린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구치소에 수감돼 이르면 5일 법정에 출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적 동반자이자 베네수엘라의 숨은 권력으로 불리는 영부인 실리아 플로레스도 남편을 따라 미국에 전격 체포됐다. 마두로는 ‘국가정상’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했다. 미국 뉴욕 남부 연방지방검찰청(SDNY)이 이날 공개한 기소장을 보면 마두로는 국가 권력을 범죄에 악용한 ‘국제 마약카르텔의 수괴’로 규정됐다. 마두로 정권이 베네수엘라 정부를 이른바 ‘태양의 카르텔’이라는 범죄 조직으로 변질시켰다는 것이다. 주요 중대 혐의는 ▲마약 테러 공모 ▲코카인 미국 수입 공모 ▲기관총 및 파괴 장치 소지 ▲무기 소지 공모 등 4가지다. 미 검찰은 마두로 정권이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민족해방군(ELN) 등 해외 테러 조직과 멕시코의 시날로아 카르텔, 베네수엘라 기반 범죄 조직인 트렌 데 아라과(TdA)와도 ‘나르코 테러리즘’(마약 범죄와 연계된 테러 조직들의 활동)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플로레스에 대해서도 마약 범죄의 공범으로 적시했다. 플로레스는 돈세탁과 친인척 부정 채용, 사법부 장악 시도 등 여러 의혹을 몰고 다녔으며,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제재 명단에 올라가 있는 상태다. 얼굴이 가려진 채 생포된 모습이 미 전역에 생중계된 마두로는 자신을 연행하는 DEA 요원에게 스페인어와 영어로 “좋은 밤이에요. 해피 뉴 이어”라며 여유를 부리는 모습이 백악관의 엑스(X) 계정에 공개되기도 했다.
  • 신선이 숨은 골짜기, 12폭포 품은 내연산을 걷다

    신선이 숨은 골짜기, 12폭포 품은 내연산을 걷다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과 영덕군 남정면, 죽장면에 걸쳐 있는 내연산(內延山)은 동해안을 향해 뻗은 태백산맥의 끝자락에 자리한 산이다. 최고봉은 해발 930m의 향로봉으로, 문수산(622m)·삼지봉(710m)·삿갓봉·천령산(우척봉) 등 준봉들이 길게 능선을 이루며 이어진다. 행정상 내연산 정상으로 불리는 삼지봉의 높이는 710m이지만, 산세의 중심과 상징은 깊은 청하골 끝에 숨어 있는 향로봉에 있다. 내연산이라는 이름은 본래 ‘종남산’에서 비롯됐다. 신라 진성여왕이 견훤의 난을 피해 이 산으로 몸을 숨긴 뒤, 산세가 깊고 안으로 길게 이어진다 하여 ‘안으로 뻗은 산’이라는 뜻의 내연산이라 불리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실제로 이 산은 겉으로 보기에는 완만한 육산처럼 보이지만, 한 걸음만 들어서면 20리 넘게 이어지는 골짜기와 절벽, 폭포가 연속적으로 펼쳐진다. 맞은편 천령산 줄기가 향로봉을 병풍처럼 감싸 안고 있어, 정상은 좀처럼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내연산은 예부터 ‘신선의 산’으로 불려왔다. 내연산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 청하골에 숨 쉬는 12폭포와 소금강전망대를 꼽는다. 보경사 아래 상생폭포를 시작으로 보현폭포, 삼보폭포, 잠룡폭포, 무봉폭포를 지나 관음폭포와 연산폭포에 이르면 계곡미는 절정에 이른다. 특히 제6폭포인 관음폭포는 쌍폭 형태로 떨어지는 물줄기와 이를 둘러싼 선일대·신선대·관음대 등의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폭포 옆 관음굴 안쪽에서는 폭포수가 한쪽 입구를 가린 채 떨어지는 독특한 풍경도 만날 수 있다. 관음폭포 위 구름다리를 건너면 높이 약 30m, 길이 40m에 달하는 연산폭포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학소대 절벽 아래로 쏟아지는 물기둥은 청하골에서 가장 웅장한 장면으로 손꼽힌다. 이 일대는 영화 ‘가을로’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소금강전망대 또한 반드시 들러야 할 지점이다. 소금강전망대 일대는 화산암 지형이 만들어낸 내연산 특유의 암릉 경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풍화에 강한 암반이 오랜 세월 침식을 견디며 남아, 병풍처럼 둘러선 절벽과 굴곡진 능선을 형성했다. 계절에 따라 풍경도 크게 달라지는데 여름에는 짙은 녹음과 계곡 물안개가 어우러지고,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청하골을 가득 메운다. 겨울에는 잎을 떨군 숲 사이로 능선의 윤곽이 더욱 또렷해져 내연산의 지형미가 한층 선명하게 다가온다. 등산 코스는 다양하지만 초보자와 가족 산행객에게 가장 추천되는 길은 보경사를 기점으로 한 원점 회귀 코스다. 보경사에서 보현암과 소금강전망대를 거쳐 은폭포 삼거리, 선일대, 연산폭포를 지나 다시 보경사로 돌아오는 약 7.5km 구간으로, 소요 시간은 4시간 30~40분 정도다. 길은 잘 정비돼 있고 안내판도 촘촘해 길 찾기 부담이 적다. 산행 후에는 보경사 인근에서 여정을 마무리하기 좋다.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보경사는 팔면경 설화와 함께 원진국사비, 승탑 등 보물급 문화재를 품고 있다. 숙소는 송라면과 청하면 일대에 펜션과 민박이 고루 분포해 있으며 여름철에는 옥계계곡 야영장을 찾는 이들도 많다. 먹거리는 포항답게 물회와 과메기, 대게 요리를 비롯해 산채정식을 내는 식당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깊은 골짜기와 폭포, 그리고 숲길이 어우러진 내연산은 사계절 내내 걷는 이에게 다른 얼굴을 내어주는 동해안 최고의 계곡 산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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