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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산업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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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잃어버린 시대 부산바다의 기록’ 전시회,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서 열려

    ‘잃어버린 시대 부산바다의 기록’ 전시회,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서 열려

    ‘잃어버린 시대 부산바다의 기록’ 테마전이 내달 1일부터 8월 30일까지 부산시 해양자연사박물관에서 열린다. 해양자연사박물관 소장 고문헌을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1950~1960년대까지 부산을 중심으로 하는 근현대 수산업 변천사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1장 바다를 자원으로, 2장 전쟁에 짓눌린 바다의 기억, 3장 되찾은 우리바다의 기억 등 3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1장에서는 1911년 조선총독부 어업령 제정 이후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부산바다에서 벌어진 수산자원 수탈의 역사를 소개한다. 2장에서는 1931년 만주사변 이후 부산의 수산물이 전쟁물자 등으로 수탈, 활용된 기록에 대하여 살펴본다. 3장에서는 해방 이후 우리 손으로 이루어진 수산업 발전 노력을 조명한다. 전시는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 [금요 포커스] 해양수산 행정 통합·강화 생각해 볼 때다/양창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원장

    [금요 포커스] 해양수산 행정 통합·강화 생각해 볼 때다/양창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원장

    1955년 해무청 설립→1961년 해무청 해체→1976년 수산청 및 해운항만청 설립→1996년 해양수산부 설립→2008년 해양수산부 폐지, 국토해양부와 농림수산식품부로 기능 이원화→2013년 해양수산부 부활. 지난 60여년간 바다행정을 총괄하는 우리나라 정부조직의 서글픈 변천사다. 정권이 바뀌거나 정부조직을 손질할 때마다 해양행정 조직이 개편 대상에 오르내렸고, 그 후유증으로 우리의 해양경제는 뒷걸음질쳤다.바야흐로 해양수산 행정의 글로벌 트렌드는 통합과 기능 강화이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이 국가 차원의 해양 전략을 마련하는가 하면 이를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해양 통합행정 체계를 구축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영토 수호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자원을 개발, 관리하고 미래 신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데 바다의 중요성이 날로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통합적인 견지에서 바다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야만 지속가능한 해양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1996년 해양수산부 설치를 계기로 해양 통합행정 체계가 출범한 지 20년이 지났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때 해양수산부가 폐지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해양수산 정책을 통해 국민경제 활성화와 첨단 해양과학기술 개발, 글로벌 비즈니스 개척 등에서 많은 성과를 냈다. 나아가 남북극 과학기지와 심해저 광구 확보, 세계 곳곳의 항만 및 배후단지 건설 등을 통해 대한민국보다 더 큰 해양영토를 개척해 왔으며 북극, 유엔 해양법과 생물다양성 회의, 국제해사기구(IMO) 등과 같은 글로벌 해양 어젠다를 선도하는 데도 일익을 담당했다. 향후 새로운 20년을 이끌어갈 해양수산 발전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관련 분야를 통합하는 동시에 기능과 역할도 강화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일은 최근 유례없는 불황의 늪에 빠진 우리 해운과 조선산업을 반드시 재건해서 제 궤도에 올려놓는 것이다. 특히 해운은 무역의 핵심 인프라인 동시에 연간 1800만명의 교통수단이자 전시에는 ‘제4군’의 역할을 수행한다. 해운을 위해서는 선박이 있어야 하고 선박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보통 60%가 넘는 선박금융이 동원된다. 따라서 해운 정책은 공적 측면이 강조되어야 하고 조선과 선박 금융까지 통합, 연계되어야 한다. 해운업은 반도체, 석유제품, 철강, 자동차, 조선과 함께 6대 외화가득산업으로 미래국가 성장동력이자 국부 창출의 주요 원천이다. 2014년 해운업의 외화가득액은 346억 달러로 382억 달러를 기록한 조선업과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는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시켜 해운, 항만, 수산, 해양관광 등 기존 해양수산업을 고도화하는 것도 절실하다. 해양 생명공학기술을 활용한 해양 바이오산업과 해양 헬스케어산업을 육성하고 첨단 소재 기술을 바탕으로 극지와 심해저 자원 개발에도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연구개발 예산의 1.5% 수준인 해양과학기술 연구비를 3%까지 확대해야 한다. 또한 해양영토와 환경 그리고 재해 관리 역량도 반드시 강화해야 할 대목이다. 서해 상의 중국어선 불법조업 척결, 독도 등 해양 영토 수호를 위한 해양력 강화와 집행기반을 재구축하고 대륙붕 및 해양경계 획정에 대비해야 한다. 또한 깨끗하고 안전한 바다를 조성하기 위해 해양 환경 관리를 강화하고 해양사고 및 재해 대응체계를 지속적으로 확인, 점검해야 한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바다는 우리에게 경제성장의 핵심 동력이자 ‘글로벌 코리아’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의 장소이다. 강화된 통합 해양수산 행정으로 바다를 둘러싼 해운, 항만, 해양, 수산 부문에서 선진 각국과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무용가 김말애(이세기의 인물탐구:149)

    ◎혼 깃든 춤사위… 한국춤의 선도자/“한국춤은 얼굴과 체구가 작아야 한다는 종래의 통념을 깨고 그는 후리후리한 키에 긴팔 수려한 용모·풍부한 감성으로 한국춤을 개척하는 타고난 춤꾼이다” 무용가 김말애가 사진집 ‘춤’을 출간했을때 무용평론가 김경애는 이 책을 소개하면서 “김말애는 끝없이 춤추는 이 시대 서정시인”이라고 했다.흑백사진속에서 그는 마치 수평선을 넘나드는 한마리 새가 되어 ‘살을 푸는 떨림과 한을 푸는 흐름’으로 장면장면마다 선명한 춤선을 그려내고 있다.지난 여름 LA예총 초청으로 ‘회귀선’공연을 가졌을때는 그곳에서 활동하는 시인 고운씨가 ‘아득한 꿈길 돌아오는 배’란 즉흥시를 지어 능란한 춤꾼인 김말애에게 헌사했다.‘아득히 끝도없이/꿈이 철철 넘치게/출렁이는 배 하나/지구가 돌아가는 선을 가르고/지금은 어디쯤 어느 물길에/덩실덩실 춤을 굴리나…’로 시작되는 이 장시는 망망대해에 뜬 한척의 배를 인생행로에 비유하여 ‘인간의 삶은 출발도 끝도 없는 원점으로 되돌아간다’는 김말애의 무일물사상을 실감있게 담아내고 있다. ○“끝없이 춤추는 서정시인” 평론가들에 의하면 그는 ‘우리 무용계에서는 흔치않은 대형무용가’다.한국춤은 얼굴이 작고 체구가 작아야 한다는 종래의 통념을 깨고 후리후리한 키에 긴팔,잘생긴 얼굴과 풍부한 감성으로 한국춤에서의 ‘정중수로’와 ‘동중백학’을 성취해 보인다.그중에서도 한국춤의 정신을 되살린 창작무 ‘춤을 위하여’는 ‘무엇이 나를 춤추게 하는가’ ‘왜 춤추게 하며 어떻게 추어야 하는가’를 빠르게 돌아가는 리듬과 함께 가벼운 움직임,강철같은 강인함을 엇섞어 내딛는 보폭마다 절륜의 백태를 연출해낸다.또 누구보다 전통춤을 잘 가꾸고 보존시키는 무용가이기도 하다.음악이 춤을 능가하거나 음악을 따라가기보다 음악을 몰고가는 쪽으로 작품을 구성하여 다른 무용가들이 간과하기 쉬운 현대성과 참신도를 간직하면서 ‘역동성의 균형’을 포착하는 안무실력이 특징이다. 그는 “춤추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는 어머니 장종숙여사로 인해 춤추게 되었고 그어머니는 지금도 여전히 딸의 후견인이자 열렬한 열성팬이다.여섯살되던 해 삼척읍에 있던 심덕진무용연구소에 데려갔고 “너는 반드시 훌륭한 무용가가 돼야 한다”는 지상명령에 따라 초등학교 2학년때 서울에서 열린 ‘전국아동무용경연대회’에서 입상,어머니는 너무 좋아서 삼척의 택시들을 총동원하여 딸을 태우고 시내퍼레이드를 벌인 일도 있다.이로 인해 “딸을 광대로 만들거냐”고 춤을 반대하던 부친 김태규씨(수산업·89년 타계)마저 딸의 재능을 인정하게 되었고 초등학교 5학년되던 해 서울로 전학,당대 최고의 무용가이던 조택원·김문숙씨 댁에 머물수 있게 도와주었다.그러다가 김백봉의 ‘부채춤’에 반해 묵정동에 있던 김백봉무용연구소에 찾아갔으나 스승은 “아무도 너를 추천해준 사람이 없는데 내가 남의 제자를 훔쳐온 줄로 알겠다”면서 받아주지 않았다.후에 김문숙씨와 ‘춤’지의 조동화씨가 적극 권하여 상명여중 시절에 김백봉 문하에 정식 입문했다. ‘어찌나 춤을 잘추던지’ 무용계의 거봉 조택원씨는 66년,일본에서 발행되는 ‘문예춘추’에다 ‘나의 사랑하는 제자’제하로 ‘너는 최승희를 능가하는 무용가가 되라’는 격려의 글을 발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김백봉 스승은 공연때마다 그를 언제나 센터에 세워주었고 고교 2학년되던 해 이화여대가 주최한 ‘전국고교무용콩쿠르’에서 특상하여 장학생 특전을 받았으나 ‘김백봉’이라는 거대한 스승의 그늘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스승이 몸담고 있던 경희대에 진학했다. ○6살때부터 무용 배워 그는 우리 무용사의 신화적인 존재들인 최승희와 조용자,그리고 김백봉을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아마도 외모 이전에 예술에 대한 치열성과 자신감때문일 것이다.편협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타악기·구음 등의 생음악으로 춤의 활력을 작동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지난 20년동안 대학교수로서 예술현장을 지키는 춤작가로서 그리고 무대에 서기를 서슴지않는 춤꾼으로서 그의 역할은 두드러졌으나 오로지 무대에서만 ‘끼’를 펼칠 뿐이며 ‘예술가는 무대에서 빛나야 한다’는 고집을 굳건히 지킨다.그러나 ‘예술가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여러 도정에 늘 함정이 도사린다’는 것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고 ‘나에게는 스승만 있는줄 알았는데 어느틈엔가 나의 제자들이 나와 같은 길을 걷고있음’을 깨달을수 있었다.그래서 제자들이 설 땅을 만들어주기 위해 전에 없이 사회 각층과의 다양한 교분을 트는가 하면 춤공연을 펼칠수 있도록 춤·타래무용단을 만들기도 했다. 그가 무대에서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수많은 춤중에서도 김백봉스승에게 전수한 ‘부채춤’을 빼놓을수 없다.전립의 패영을 늘어뜨린 장삼차림에다 두 부채를 편채 열정적으로 춤추고 나서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은 ‘범접할 수 없는 깨끗한 기상을 보이면서 지음실력으로 인위(인위)와 자연의 극치를 조화시킨다’는 평을 듣는다.지난 8월 LA 윌셔 이벨극장에서 그가 재구성한 일련의 전통춤공연을 펼쳤을때 재미 무용평론가 이병임은 “그의 춤스타일과 그가 구사하는 무용언어가 전혀 새로운 영역의 한국무용이라는 점에서 이런 류의 우리무용을 미국사회에 소개하고 싶었다”고전제하고 “미국의 관객들에게 부채춤이나 장고춤이 행사나 형식무용이 아닌,화려하고 아름다운 동양예술로 재인식됐다”고 극찬했다.가족은 사업을 하는 김효영씨와 남매. ○여중때 김박봉 문하생 입문 그는 때때로 솟구쳐 오르는 흥과 청으로 마치 무당처럼 춤추고 억제할 수 없는 벅찬 감동때문에 춤을 추는 동안 구슬같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남보기에 행복하고 순탄한 역정을 지나친 것 같지만 모든 고통스러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뿐 예술적 파란과 시행착오를 이긴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이다.평론가 김태원이 “극적인 연기로 관객의 시선과 환호를 휘몰아갈수 있는 특이한 스타적 재능을 가진 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그는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춤을 추는 춤의 완결앞에서 어느때보다 당당하고 의연한 의지를 지금 만인에게 과시할 수 있는 시기다. □연보 ▲1950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71년 경희대 무용과 졸업 ▲1972년 김말애 작품발표회 ▲1973년 경희대 대학원 졸업 ▲1976∼현재 경희대 교수 ▲1983년 김말애 창작무용발표회 ▲1985년부터 대한민국무용제 참가 ▲1986년 뮤지컬 ‘양반전’ 안무 ▲1988년 서울올림픽개막식 ‘차일춤’ 안무,주불대사관 초청 서울올림픽 유럽 홍보공연 ▲1988년 창작무용 ‘애장터’ 안무 ▲1989년 일본 오사카예술대 교환교수,우시마도국제예술제 공연 ▲1990년 춤·타래창단공연 ▲1995년 한국무용제전 참가 ▲1996년 김백봉춤 보존회 열린무대 ▲1997년 ‘아,김백봉무용’ 공연출연,LA한국예총 초청 미주 공연 ▷수상◁ 대한민국무용제 안무상(85년) 서울국제무용제 대상·안무상·음악상(92년) ▷저서◁ ‘춤’(94년)‘한·중·일 궁중무용의 변천사’(96년)외 논문집 ▷현재◁ 대한무용학회 이사·한국무용협회 부이사장·스포츠무용철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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