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서울국제도서전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73
  • “좋은 책도 외면받는 시대…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기” [이순녀의 이사람]

    “좋은 책도 외면받는 시대…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기” [이순녀의 이사람]

    창립 50년 맞은 한길사언론사 해직 뒤 준비 없이 시작송건호 첫 책 이후 3500권 펴내리영희 ‘우상과 이성’ 필화 겪어문공부 불려 가고 판금 조치도돌이켜 본 출판 반세기90년대 ‘로마인 이야기’ 등 출간대형 인문·역사 시리즈 잇따라사상가 함석헌 선생 책 좋아해‘뜻으로 본 한국역사’에 행복감인간답게 만드는 책책 읽기는 성찰·관용 정신 길러팔릴까 고민하는 상황이 고통교육, 에세이·토론으로 바꿔야공공재 책·책방 체계적 지원을‘한 권의 책은 한 시대의 정신과 사상입니다. 한 권의 책이 인간의 삶을 반듯하게 세웁니다.’ 파주출판도시 한길사 사옥을 찾는 이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문장이다. 건물 출입구 바닥에 새겨진 이 글은 김언호(81) 대표가 쓴 것이다. 더하거나 뺄 것 없는 정갈하고, 옹골찬 문장 안에 한국 출판계의 거목과 국내 대표 출판사가 지나온 궤적과 지향점이 오롯이 담겨 있다. 올해로 한길사는 사람 나이로 치면 지천명(知天命)인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자유언론수호투쟁을 펼치다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김 대표는 1976년 출판사 문을 열었다. 이듬해 ‘오늘의 사상신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한길사의 책은 3500권이 넘는다. 책 만드는 일뿐 아니라 출판 생태계 조성과 문화예술 운동에 남긴 발자취 또한 뚜렷하다. 출판인으로 살아온 반세기는 어땠을까.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책이 지니는 가치와 출판의 본질은 무엇일까. 지난 21일 김 대표를 파주 출판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50주년을 맞아 특별히 기획한 책이 있나. “지난 3월 출간한 ‘백범 강산에 눕다’를 포함해 몇 가지 중요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백범 강산에 눕다’는 언론인 출신 임순만 작가가 김구 선생의 일생을 소설로 재구성한 책이다. 유네스코가 백범 탄생 150주년을 맞아 ‘김구의 해’로 공식 지정한 해에 출판돼 더욱 뜻깊다. 하반기에 나올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관한 책도 의미가 크다. 1974년 결성돼 50년 넘게 이어 온 한국 천주교의 위대한 집단지성을 한 권으로 정리한 기념비적인 기록물이 될 것이다. 인문 시리즈 ‘한길그레이트북스’의 200번째 책도 곧 나온다. 생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존 벨라미 포스터가 쓴 ‘인류세 시대의 자본주의’라는 책이다. 1996년에 1권 ‘관념의 모험’으로 시작된 한길그레이트북스도 올해로 출간 30년이 됐다.” -직접 쓴 책도 나온다고 들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를 정리해 900쪽 안팎의 5권짜리 책으로 엮는 작업을 하고 있다. 격동의 세월을 온몸으로 겪은 출판인으로서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기록인 동시에 한국 출판계의 시대정신과 고민을 담은 역사적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9월 출간을 목표로 마무리 단계에 있다.” -처음 출판인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아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출판사 등록부터 했다고. “기자가 되고 싶어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할 정도로 언론인을 천직으로 여겼는데 신문사에서 해고되고 나니 막막했다. 일 년쯤 고민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성탄 전날인 12월 24일에 출판사 등록을 했다. 출판이 신문보다 오히려 더 본격적인 언론일 수 있다는 신념으로 대책 없이 출판사부터 차렸다. 당시 책 한 권 조판비가 30만원 정도였는데 그 돈을 마련하지 못해 어머니에게 손을 벌렸다. 그렇게 출판한 첫 책이 송건호의 ‘한국 민족주의의 탐구’다.” -한길사의 출발은 ‘오늘의 사상신서’ 총서다.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우리의 시대정신을 담는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총서 제목은 미국 저널리스트 월터 리프먼의 신문 연재 칼럼 ‘오늘과 내일’에서 영감을 받았다. ‘한국 민족주의의 탐구’에 이어 고은의 ‘역사와 더불어 비애와 더불어’, 리영희의 ‘우상과 이성’ 등을 출간했다.” -필화 사건, 판금 조치 등 험한 일도 많이 겪었다. “리영희 선생이 ‘우상과 이성’으로 필화 사건에 휘말려 옥고를 치른 것을 비롯해 당시 우리가 낸 책 상당수가 판금됐다. 1979년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나왔을 때도 문공부에 불려 갔고, 책도 판금 조치됐다. 험난한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1980년대는 누구나 손에 책을 들고 다니는 ‘위대한 책의 시대’였다.” -90년대 들어 대형 인문·역사 시리즈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70~80년대가 우리의 사상, 주체적인 인문사회과학 이론과 민족사에 집중했던 시기라면 90년대 세계화 시대에 접어들면서는 인류 역사의 보편적인 고전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동서고금의 철학과 사상을 집대성한 ‘한길그레이트북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15권)가 그렇게 나온 역작들이다. 우리 역사를 쉽게 풀어낸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22권), 중국 근현대사를 인물 중심으로 엮은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10권)도 완간까지 10~15년씩 걸린 대형 프로젝트다.” -지금까지 낸 3500여권 중에서 가장 아끼는 책을 꼽는다면. “우리말, 우리글을 가장 잘 구사한 사상가 함석헌 선생의 책을 가장 좋아한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 등 한길사에서 출간한 책이 80여권이다. 나는 ‘사상계’ 세대다. 고등학생 때 밑줄 그어가며 읽은 그 책들이 내 사상과 철학의 뿌리다. 학창 시절 강연마다 쫓아다닐 정도로 존경했던 그의 책을 우리 출판사에서 낼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내 일기에 가장 많이 언급된 분도 함 선생이다.” -책 출판의 최우선 원칙은 무엇인가. “첫 독자인 내가 설득되는 내용이라야 한다.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의미 있고, 좋은 글이면 출판한다. 진보냐 보수냐의 진영 논리가 아니라 내용 자체가 정의롭고, 도덕적이며, 민주적인지가 기준이다. 지식인·작가는 권력자나 가진 자가 아니라 약한 이들의 편에 서야 한다. 한길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책들을 만들어 왔다고 자부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만드는 지침서가 책이라고 생각하고, 지금도 그런 책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책 만드는 일을 넘어 인문·사회과학·역사 강좌 등 교육에도 힘을 기울였는데. “애초부터 출판사는 ‘열린 학교’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85년 안암동에 50~60명이 들어가는 교실을 만들어 강좌를 시작했다. 우리끼리는 민립(民立)대학이라고 불렀다. 한길사 10주년인 1986년 안동 병산서원에서 지식인 대회를 열었고, 이듬해에는 해인사에서 젊은 연구자 대회도 기획했다. 전국 각지에서 진행된 한길역사기행도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다.” -파주출판도시, 예술마을 헤이리 조성에도 앞장섰다. “80년대부터 ‘책의 유토피아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출판인들과 합심해 출판도시를 구상했다. 2002년에 파주로 이사했다. ‘책의 도시’라는 개념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실험이다. 출판과 예술, 공동체를 결합한 모델로 역사에 남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헤이리예술마을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시대에 책이 점점 더 외면받고 있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고 답하는 것이 책의 본령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깊이 있는 성찰이 불가능하다. 많은 사람이 인공지능(AI)과 스마트폰에 매여 성찰의 시간을 잃어가고 있다. 볼거리가 많아졌다고 하지만 그 무엇도 책을 따라올 수는 없다. 책 읽기는 선택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적 필수 조건이다.” -서울국제도서전에 인파가 몰리고, 책을 유행 아이템처럼 활용하는 ‘텍스트 힙’ 현상 등은 어떻게 보나. “책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어렵거나 두꺼운 인문학 서적들은 쳐다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크다. 그레이트북스도 초판 1000부 판매하기가 어렵다. 책이 좋으면 무조건 내야 하는데, 팔릴까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고통스럽다. 50년간 출판업을 해 오면서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기다.” -책을 읽는 사람과 사회는 무엇이 다른가. “책을 많이 읽는 사람만이 관용의 정신을 가지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다. 남북 관계도 마찬가지다. 책을 안 읽고 주장만 하니 평화가 어려운 것이다. 평화도 결국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사회는 정신과 사상을 일으켜 세운다. 그런 사회가 아름답고, 정의로운 사회다.” -독서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나. “정부가 최근 교육기본법을 개정해 독서교육을 강화하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일 년에 40~50권씩은 읽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을 스마트폰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시험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에세이와 토론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독자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책은 저자가 만드는 것도, 출판사가 만드는 것도 아니다. 저자, 출판사, 독자가 어깨동무하듯 수평적으로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책이다. 그래서 독자의 힘을 더 키워야 한다.” -평소 서점 지원과 도서관 정책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해 왔다. “책은 공공재다. 서점 역시 공공성을 가진 공간인 만큼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동네 책방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서점지원법을 만들어야 한다. 전주시는 지역 서점에서 책을 사면 책값의 20%를 지원해 준다. 전국적으로 이런 지원이 확산돼야 한다. 서울 뒷골목에 작은 책방 1000개가 생기면 일자리도 그만큼 늘어난다. 도서관도 건물만 지을 게 아니라 전문가들이 선정한 양서를 많이 채워 넣는 게 중요하다. 아울러 좋은 책을 만드는 편집자를 정부가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되면 좋겠다.” -반세기 출판 인생의 소회가 궁금하다. “나름으로 할 만큼은 했다고 보지만 좋은 책을 더 많이 만들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적지 않다. 50년이나 해 온 일인데 왜 여전히 힘든지 모르겠다. 양상은 많이 달라졌지만 책의 본질과 기능 자체는 예전과 똑같다. 요즘도 어디를 가나 한길사 독자를 만난다. 그게 큰 격려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겁이 나기도 한다. 더 좋은 책을 내야겠다는 다짐을 항상 하게 된다.” ●김언호 대표는 1945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 해직된 뒤 1976년 한길사를 설립했다. 한국출판인회의를 창설해 1·2대 회장을 역임했다. 파주출판도시와 예술마을 헤이리를 구상하고 건설하는 데 앞장섰다. ‘책의 탄생’, ‘책의 공화국에서’, ‘세계서점기행’, ‘그해 봄날’, ‘서재 탐험’ 등을 저술했다. 이순녀 수석 논설위원
  • 시각예술, 출판계 굵직한 인사들 한국 온다

    시각예술, 출판계 굵직한 인사들 한국 온다

    시각예술과 출판계의 유명 인사들이 한국을 찾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은 해외 문화예술계 인사 10명을 한국으로 초청해 국제협력 가능성을 모색한다고 16일 밝혔다. 올해 18회째를 맞은 ‘해외 주요 인사 초청 사업’(K-Fellowship)의 일환이다. 지난해 공연예술 분야에 이어 올해 시각예술과 문학·출판 분야 인사들이 오는 11월까지 순차적으로 한국을 찾는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도서전의 에세키엘 마르티네스 총괄국장이 지난달 방한했다. 그는 서울국제도서전을 비롯해 한국문학번역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을 방문했다. 202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도서전의 한국 주빈국 참여 가능성을 논의하는 등 한국 문학과 출판 콘텐츠의 중남미 확장 가능성을 모색했다. 하반기에도 시각예술과 문학·출판 분야 주요 인사들이 한국을 방문한다. 콩 세라카이 스튜디오의 토비아스 베르거 전시총괄,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미디어아트 분야 도시로 지정된 독일 칼스루에의 다니엘라 부르크하르트 사무국 협력 총괄, 솔베이그 외브스테뵈 노르웨이 아스트룹 피언리 현대미술관 관장, 건축·디자인·예술 콘텐츠 플랫폼 스터월드 창립자 아미트 굽타 등이 한국 주요 전시와 행사, 기관을 찾을 예정이다. 이밖에 영국 문예지 그란타 부편집장 루크 네이마, 프랑스 파리1대학 현대미술 이론·역사 부교수 엘리차 둘게로바 등이 연내 방한한다. 문체부는 초청 인사들의 전문성과 국내 문화예술계 교류 수요를 반영해 기관 방문, 주요 행사 참여, 관계자 면담 등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해 실질적인 협력 가능성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 [김민정의 일러두기] 제대로는 언제나 맨 처음이다

    [김민정의 일러두기] 제대로는 언제나 맨 처음이다

    출판업에 종사하는 내게 6월은 도서전 설렘의 달. 참여를 작정하면 초봄 기획 단계부터 책을 소개할 궁리에 몸이 바쁘고, 불참을 선언하면 초여름 티켓 예매 때부터 책을 구경할 기웃거림에 마음이 분주하다. 물론 내가 원한다고 무조건 참가사 이름표를 목에 걸 수 있는 건 아니다. 올해는 지원을 했음에도 부스를 부여받지 못한 이들이 한데 모여 ‘제대로’의 간판을 걸기도 했으니 말이다. 출판업에 종사하는 내게 7월은 도서전 뒤끝의 달. 특히 올해는 서울국제도서전과 더불어 이 주체의 공공성 회복을 간절히 바라며 독자, 작가, 출판사, 책방이 함께 모여 만든 첫 번째 도서전 서울제대로도서전이 동시에 개최되었다. ‘서울’과 ‘도서전’이라는 공통 키워드 사이에 박힌 ‘국제’와 ‘제대로’의 차이를 이제 와 거울 앞에 선 누이도 못 되는 내가 곰곰 되짚을 새도 없이 행사 종료 열흘이 지나도록 어깨 주무르고 허리 두드리며 앉아 있는 건 일단 책이 무거워서다. 사다리를 놓고 선반 위에 올려둔 책을 들고 내릴 적에 조심조심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 본 건 회사 이름을 걸고 두 번째로 참여해 본 도서전 경험에 빗대 좀더 얘기를 해 보겠다는 전초가 되기도 하겠다. 도서전이라는 데를 처음 참여한 건 3년 전의 일이다. 1995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는데 1954년에 서울 도서전으로 시작한 것을 1995년에 광복 50주년을 기념하여 국제 도서전으로 규모를 확장하여 지금에 이른다는 설명도 그때 검색해 살폈던 기억이 난다. 출판사로 모두 앞에 간판을 건다는 일의 어려움과 숭고함을 경험하면서,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상상 초월의 열정에 초심을 다져야지 결심하면서, 그럼에도 마지막 날 즉각적으로 폐기가 되어 쓰레기로 전락하는 부스 안의 여러 골조들에 큰 충격을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종이 한 장에 울고 웃는 우리가 불과 1분 전만 해도 우리의 얼굴이다 했던 간판을, 그 중심이라 할 뼈대를 이렇게 쉽게 이렇게 무참히 때려부숴 트럭에 실어 버려도 되는가. 3년 후 다시금 책을 들고 독자들 앞에 서리라 작심을 하게 된 건 되도록 버려지는 쓰레기를 줄여야지 하는 고심 속에 재활용의 방법을 모색하면서였다. 노래 가사처럼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보았더니 정적만이 어둠만이 가득했던 터, 하여 방 콘셉트로 기획하고 제작하여 사용한 책상이며 테이블이며 책장이며 파티션을 직원들과 함께 사용할 용도로 옮길 작정을 하니 이 거듭남이 용케도 말이 된다 싶어졌다. 빛과 그림자가 있듯 어떤 일이든 그 정면과 후면이란 이면은 반드시 존재하듯 5일 동안 15만명의 방문객이 들었다는 도서전 후기 속에 그 기간 동안 서점 안이 텅텅 비었다는 동네책방 대표님들의 하소연을 들었다. 미리 여름 휴가 당겨서 다녀왔다고 생각하시면 어때요. 등을 토닥이는 말이라고 생각했으나 무책임한 입방정 같아 두고두고 뒤통수가 당겼다. 격식이나 규격대로 본래 상태 그대로인 제대로, 내가 섬길 단어 하나는 그렇게 또 하나가 늘었다. 김민정 시인·난다출판사 대표
  • 도파민에 지친 현대인, 100년 전 소설 ‘싯다르타’서 위로받다 [이주의 베스트셀러]

    도파민에 지친 현대인, 100년 전 소설 ‘싯다르타’서 위로받다 [이주의 베스트셀러]

    지난 5월 말 부처님오신날을 전후해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던 100년 전 소설이 드디어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교보문고가 3일 발표한 ‘2026년 6월 4주간 금주 베스트셀러 동향’에 따르면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헤르만 헤세의 1922년 소설 ‘싯다르타’가 무서운 상승세를 이어가며 마침내 베스트셀러 1위를 거머쥐었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세계문학 작품이 베스트셀러 최정상에 오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여성 독자들을 중심으로 20대 독자층이 이번 역주행을 주도했다고 밝혔다. 싯다르타를 출간한 출판사들 중 한 곳인 민음사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에 출연하는 편집자가 책 인플루언서로 대중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그가 추천한 작품에도 자연스럽게 독자들의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도서 전문가들은 이런 외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끊임없는 경쟁, 정보 홍수, 도파민 중독에 노출돼 심각한 번아웃 증후군을 겪는 현대인들이 갈망하는 내면적 깨달음과 파편화되고 자극적인 영상 소비에 피로감을 느낀 독자들이 호흡이 길고 사유가 필요한 문학을 선택하는 심층 독서에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스테디셀러이자 과학 분야 고전으로 꼽히며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오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도 지난주와 비교해 16계단이나 수직 상승해 종합 11위에 안착했다. ‘코스모스’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는 여러 과학자들이 ‘인생 책’으로 손꼽으며 대중적인 관심을 모았다. 얼마 전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100만 부 기념 에디션’이 등장하면서 독자들의 소장 욕구도 자극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회 모든 분야가 극도로 빠르게 변하고 예측 불가능한 시대가 되면서 대중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쉽게 변하는 트렌드보다 오랜 세월을 견뎌낸 검증된 지혜에 기대려는 경향 때문에 고전들이 주목받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난주까지 2주 연속 종합 1위를 지켰던 송희구 작가의 ‘나의 첫 번째 부동산 교과서’는 한 계단 내려와 종합 2위를 기록했고 오건영의 ‘부의 갈림길’은 종합 4위로 상승해 재테크와 경제에 대한 독자의 관심도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 텍스트힙이 뜨는 시대…읽는 인간은 사라졌다

    텍스트힙이 뜨는 시대…읽는 인간은 사라졌다

    서울국제도서전 역대급 흥행성인 독서율은 꾸준하게 하락세AI에게 읽기·쓰기마저도 외주화“읽기는 인간에 희망 주는 ‘광선검’AI에게 인류의 유산 넘기면 안 돼” 지난 24일 막을 올린 서울국제도서전이 닷새 일정으로 진행된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텍스트힙’ 유행, 도서 관련 상품(굿즈) 구매 열풍이 더해지며 역대급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성인 독서율이 꾸준히 하락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벌어진다. 최근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읽기와 쓰기를 대신하고 있다. 이처럼 읽기와 쓰기마저 ‘외주화’하는 이런 상황, 정말 괜찮은 걸까. 저자인 나오미 배런 미국 아메리칸대 언어학 명예교수는 단호하게 “매우 걱정스럽다”고 밝힌다. 배런 교수는 언어와 기술, 인간 사고의 관계, 읽기와 학습에 관해 오랜 시간 연구한 세계적 언어학자다. 전작인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와 ‘쓰기의 미래’에서는 소셜미디어(SNS) 사용 증가와 생성형 AI의 등장이 쓰기, 읽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이번 책에서는 읽기가 인간의 뇌와 공감력, 비판적 사고를 어떻게 진화시켰는지, 그리고 읽기까지 AI에게 맡기는 현재 상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더 깊이 진단했다. 사실 대학 현장만 들여다봐도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국내 많은 이공계 대학 교수들은 신입생들이 수학·과학 기초 지식과 과학 문해력을 갖추지 못해 수업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한다고 개탄한다. 배런 교수 역시 “학생들의 강의 내용 요약 능력과 기본 원리 파악 능력이 저하됐다”고 대학 현장 분위기를 전한다. 미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교수들은 대학에 입학하면 이미 읽기 능력을 갖췄으리라 가정하고 토론을 시키고 글쓰기 과제를 내준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이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이유는 학생들이 자발적 독서나 읽기 과제를 완수하는 데 들였던 시간을 이제 SNS, 짧은 동영상(쇼츠), 아르바이트, 과외 활동에 쓰고 있어서다. 그러다 보니 읽기와 쓰기를 AI에 의존하고, 문해력은 떨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저자는 읽기 능력에 대해 “우리가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믿을지 스스로 결론에 도달하도록 이끌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등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특별하고도 진정한 ‘광선검’이라고 강조한다. 영화 ‘스타워즈’에서도 알 수 있듯 광선검은 강력한 무기다. 책을 쥐어 들고 직접 글을 읽는 일에서 멀어지고, 그 일을 AI에 넘겨준다면 우리는 광선검을 버리는 셈이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인간 고유의 창의성까지 넘본다며 많은 이들이 ‘위기’를 말한다. 그런데 정작 창의성의 기본이 되고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히는 읽기까지 AI에 넘겨주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고 있다. 저자는 “읽기 도구로서 AI에 의존하면 할수록, 읽을 줄 아는 존재로서 힘들게 얻은 인류의 유산을 포기할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모든 논의가 AI로 귀결되고 잠식되는 요즘에 ‘읽기’란 어쩌면 영화 ‘매트릭스’ 속 빨간 약이 아닐까 싶다. 환상에서 벗어나 진짜 삶을 마주하기 위해, 이제부터 읽기를 시작해야 할 때다.
  • 李, 새달 1일 文과 단독 오찬… 당권 경쟁 과열에 통합 모색

    李, 새달 1일 文과 단독 오찬… 당권 경쟁 과열에 통합 모색

    이재명 대통령이 다음 달 1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오찬한다. 오는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여권 지지층의 분열이 극심해지자 통합을 강조하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강유정 수석대변인은 25일 춘추관에서 “이 대통령은 문 전 대통령을 초청해 오는 7월 1일 수요일 오전 11시 30분 청와대에서 오찬을 함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취임 후 문 전 대통령과 단독 오찬을 하는 건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문 전 대통령과 환담한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해외 일정이 있어 청와대를 방문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 대통령의 부인인 김혜경 여사도 오찬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 일정은 6·3 지방선거 이후 여당의 분열과 이에 따른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하락세라는 위기 상황에서 친명(친이재명)계와 친문(친문재인)계가 갈등을 봉합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민주당 내 당권 다툼을 사실상 지목하며 “원수 싸우듯이 하지 마라”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같은 입장에 있는 같은 진영이라고 하는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전쟁을 해서야 되겠나”라고 비판했다. 또 “경쟁이 전쟁이 되지 않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권 경쟁 상황을 심각하게 보면서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관계자는 “당내 상황이 지금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며 “전당대회를 앞두고 두 분이 나서 정지 작업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김 여사는 전날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아 문 전 대통령이 쓴 ‘문재인의 독서노트’, ‘문재인의 필사노트’ 등을 구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정청래·김민석 호남서 만날까…전북도당 당선자 워크숍 참석 주목

    정청래·김민석 호남서 만날까…전북도당 당선자 워크숍 참석 주목

    8·17 전당대회에서 맞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민석 국무총리가 25일 전북에서 조우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 전 대표와 김 총리는 이날부터 1박 2일간 전북 정읍에서 열리는 전북도당 당선자 워크숍 방문을 검토하고 있다. 정 전 대표 측 관계자는 “당 대표 때 축사해달라던 일정”이라며 “참석 여부는 아직 미정”이라고 했다. 앞서 정 전 대표는 당 대표 사퇴 여부를 고심하는 과정에서 최대 ‘표밭’인 전북, 전남, 광주 등 호남권을 직접 찾는 비공개 일정을 가졌다. 권리당원 표심이 중요한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 전 대표가 본격적인 호남 민심 잡기에 나섰다는 평가다. 정 전 대표는 전날 당 대표직 사퇴 후 첫 일정으로는 평산책방 지기 자격으로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한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고없이 찾아 약 10분간 대화를 나눴다. 정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 대통령을 배출한 자랑스러운 민주당의 역사를 지키겠다”며 “민주당 DNA, 민주당 정체성을 확고히 사수하겠다. 민주주의자 겸 민주당 주의자 정청래 올림”이라고 정통성을 강조했다. 김 총리도 전날 2박 3일간 하계 다보스 포럼 참석차 중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후 비공개 일정으로 전북도당 당선자 워크숍 방문을 검토하고 있다. 김 총리 측 관계자는 “부재중 현안 보고가 밀려있는 상황”이라면서도 “비공개로 저녁쯤 방문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앞서 김 총리는 지난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광역·기초단체장 당선자 워크숍에 정 전 대표와 나란히 참석했다. 김 총리는 당시 축사에서 지방선거 이후를 당의 역사적 분기점으로 규정하면서 “대통령을 중심으로 당정이 완벽하게 하나 되고 개혁에 대해 확고하게 다짐하면서 민생, 실용, 확장의 승리 공식을 가지고 다시 이기는 민주당으로 뛰어나가자”고 강조했다.
  • 정청래 ‘명청 전쟁’ 방아쇠 당겼다[뉴스 분석]

    정청래 ‘명청 전쟁’ 방아쇠 당겼다[뉴스 분석]

    친명 ‘연임 포기’ 압박에도 승부수당심 호소하면서도 “李와 난 한 몸” 6·3 지방선거 이후 거취 압박을 받아 온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당 대표직을 사퇴하며 연임 도전을 위한 첫발을 뗐다. 이에 그동안 ‘연임 포기’를 압박해온 친명(친이재명)계와 일전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번 전당대회가 차기 권력을 둘러싼 계파 갈등으로 흐를 경우 당청 모두에 부담이 되는 만큼 과열 양상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주요 과제로 꼽힌다. 정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며칠간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저 자신을 돌아보고 정치 인생을 살펴봤다”며 “저는 오늘 당 대표직을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8·17 전대 출마 여부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전당대회 일정 등을 고려하면 연임 도전 수순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는 최고위에서 17분간 발언하며 ‘이재명’을 총 36차례 언급했다. 마지막 발언에서는 “이 대통령과 저는 정치적 운명공동체이자 한 몸 공동체”라며 “이 대통령과의 의리는 제가 끝까지 지킨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대가 ‘명청 대결’ 구도로 흘러가지 않도록 정 대표가 선제적으로 이 대통령과 각 세우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도 정 대표의 핵심 지지 기반인 강성 지지층을 향한 구애도 빼놓지 않았다. 정 대표는 “전국에서 만난 많은 사람이 제일 많이 하는 말씀이 ‘1인 1표제 해줘서 감사합니다’, ‘검찰개혁 꼭 해주세요’”라며 “개혁의 엔진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후 ‘딴지일보’ 게시판에도 ‘저는 오늘 당 대표직을 내려놓습니다’ 제목의 글을 올렸다. 정 대표는 사퇴 후 첫 행보로 평산책방지기 자격으로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한 문재인 전 대통령을 찾아가 약 10분간 대화를 나눴다. 정 대표는 “평산마을에 가서 인사를 드리려고 했는데 여기에 (문 전 대통령이) 온다고 해서 불쑥 찾아왔다”며 “(문 전 대통령이) 따뜻하게 손을 잡아 줘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친문(친문재인)계에선 정 대표의 행보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정 대표의 연임 도전이 사실상 공식화하면서 당권 경쟁은 본격화될 전망이다. 김민석 국무총리와 송영길 의원이 정 대표에 맞서 전대에 출마할 경우 ‘3자 구도’로 치러진다. 특히 2028년 총선 공천권이 걸려 있다 보니 전대 결과에 따라 여권 내 권력 지형도 요동칠 수밖에 없다. 대의원 표의 가중치를 없앤 ‘1인 1표제’ 방식으로 처음 치러져 ‘당심’이 누구를 향하는지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정 대표가 연임에 성공하면 민주당 계열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가 된다. 단번에 차기 대권 주자로 올라설 수 있는 만큼 정 대표에 대한 당내 견제는 상당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친명계의 지지를 받는 김 총리와 6선으로 원내 복귀한 송 의원이 결선 투표를 염두에 둔 ‘반청’(반정청래) 연합전선을 펼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최근 여당의 역할과 관련해 ‘책임의 정치’, ‘큰그릇론’ 등을 언급했고, 유럽 순방 출국 행사에 정 대표를 부르지 않아 ‘명심’(이 대통령의 마음)이 정 대표를 떠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정 대표가 연임에 성공할 경우 국정 성과를 내야 하는 이재명 정부 집권 2년차부터 당정 관계가 겉돌 수 있다는 우려가 친명계 쪽에선 나오고 있다. 이기헌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 대통령이 성공해야 나도 성공한다’고 하셨던 정 대표의 말씀 안에 답이 있다”며 “지금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 대통령을 지키고 당을 구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썼다. 반면 정 대표 측은 “진짜 이재명을 지킬 사람은 정청래인데 그걸 알아주지 않는다”며 서운함을 내비쳤다.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없이 당원들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건데 정 대표에 대한 견제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전대가 뉴이재명 대 친노(친노무현)·친문으로 이어지는 전통적 지지층 간 세력 싸움이 될 경우 과거 전대와는 다른 양상으로 흐를 수도 있다. 노무현재단 상임고문직을 내려놓은 유시민 작가도 26일 김어준씨 유튜브 방송을 통해 본격 참전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 책 때문에 오픈런 할 줄이야… 갓생 핫플, 서울국제도서전

    책 때문에 오픈런 할 줄이야… 갓생 핫플, 서울국제도서전

    청년층 사로잡는 굿즈·부스 눈길지난해 15만명 관람 기록 넘을 듯‘AI와 인간’ 관련 세미나 등 마련김혜경 여사·文 전 대통령도 찾아과도한 상업화·투명성 문제 비판 전시장 문이 열리는 오전 10시 전부터 행사장인 서울 강남구 코엑스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온라인으로 얼리버드 티켓을 구하지 못한 관람객들은 현장 판매분을 사려 ‘오픈런’ 행렬을 이어갔다. 코엑스와 연결된 지하철 봉은사역에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전시장으로 전력 질주하는 사람들도 여럿이었다. 숱한 논란과 잡음 속에서도 명실상부 국내 최대 책 축제로 불리는 서울국제도서전이 24일 올해의 장마당을 벌였다. 지난해 전시장 최대 수용 가능 인원인 15만명의 인파가 몰리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는데, 28일까지 이어지는 올해에도 비슷하거나 그 이상 규모 관람객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도서전 인기 이유는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 안전가옥이 이번 도서전 부스에 새긴 문구들에서 읽을 수 있다. “굿즈 사려고 책 사는 게 어때서”, “아무렇게나 읽는 게 어때서”, “책이 패션인 게 어때서” 같은 문구는 최근 젊은 세대의 독서 경향과 책 소비 행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올해도 관람객을 유인하는 한정판 ‘굿즈’의 향연이 이어졌다. 문학동네·창비·민음사 등 대형 출판사들도 도서 관련 상품들을 풀어놓고 사람들을 불렀다. 문구 편집숍 유어마인드, 오이뮤 등도 이번 도서전에 별도로 부스를 차렸는데, 출판사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식품회사 오뚜기도 참여해 라면과 스티커를 판매했다. 도서전에서만 만날 수 있는 한정판 서적들에 인파가 몰렸다. 독특한 질감을 지닌 한지를 활용해 제작한 서적들이 눈에 띄었다. 문학과지성사가 선보인 최승자 시인 첫 시선집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가 대표적이다. 진은영, 강성은, 김행숙 등 중견 여성 시인 9명이 뽑은 최승자 시인의 시를 책 한 권으로 묶었다. 민음사는 세계문학전집 500번째 책인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를, 창비는 민족시인 백석의 시 전집을 각각 한지 에디션으로 준비했다. 이번 도서전에는 한국을 포함해 총 18개국 538곳 출판사와 관련 단체가 참여한다. 주제는 ‘인간선언 호모 두두리’다. ‘호모 두두리’는 인공지능(AI) 시대에 AI가 주는 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인간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도서전은 주제에 맞춰 AI와 인간 존재를 조명하는 세미나, 강연, 전시 등 총 415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첫날 ‘글쓴이와 옮긴이’라는 제목의 세미나에서 소설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백수린, 이주혜, 정보라 작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AI가 창작의 의미를 재편하는 가운데 언어를 옮기는 번역이 무엇인지, 소설을 쓰는 것과 번역하는 것의 경계는 무엇인지에 대해 열띤 이야기가 오갔다. 한국 SF소설의 대모 김보영 작가도 이날 연사로 나서서 작품 ‘종의 기원담’을 중심에 놓고 생명의 기원과 인류의 미래에 관해 독자들과 대화했다. 흥미로운 강연은 도서전 내내 이어진다. 26일 시인 신이인·안미옥·오은과 문학평론가 전승민이 ‘시가 되는 말, 두드리는 말’이라는 제목으로 AI와 시 창작 관련 대담한다. 27일에는 소설가 은희경과 시인 황인찬이 인간과 AI가 서로 어떻게 다른 ‘몸’을 지니고 있는지 성찰한다. 소설가 천쓰홍(25일), 찬와이(27일), 베르나르 베르베르(28일) 등 해외 작가들도 한국 독자들과 만난다. 이날 개막식에는 김혜경 여사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평산책방 지기인 문재인 전 대통령도 이날 오후 2시 부스를 찾아 관람객을 맞았다. 뜨거운 열기만큼 논란도 거세다. 도서전이 점차 상업화되며 공공성을 잃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참가사 선정 과정에 투명성 문제를 제기했던 ‘서울국제도서전의 공공성 회복을 촉구하는 출판인 모임’은 25~28일 서울시 용산구 노들섬에서 ‘서울제대로도서전’을 연다.
  •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 몰린 인파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 몰린 인파

    관람객들이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입장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서울국제도서전은 출판사, 저자, 독자 등 한자리에 모이는 국내 최대의 책 축제로, 28일까지 코엑스 A홀과 B1홀에서 열린다.
  • 흥행과 잡음 ‘서국도’, AI시대 인간다움을 묻다

    흥행과 잡음 ‘서국도’, AI시대 인간다움을 묻다

    18개국 538곳 출판사 참가 김연수·AI 함께 쓴 ‘주제글’시작하기전부터 갑론을박‘서국도’ 공공성 회복 촉구서울제대로도서전도 개최 인기와 관심은 유례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그만큼 잡음도 만만치 않다. 아이돌 콘서트 티케팅을 방불케 하는 열기를 과시하는 국내 최대 출판 축제 ‘서울국제도서전’이 오는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다. 28일까지 5일간 여정에는 모두 18개국의 출판사 538곳이 참가한다. 전시와 강연을 비롯한 416개의 프로그램도 준비됐다. 15만명의 인파가 몰리며 역대급 흥행을 기록했던 지난해(참가사 535곳·프로그램 370개)보다 규모를 키웠다. 올해 전시 주제는 ‘인간선언’이다. 부제는 ‘호모 두두리’(Homo duduri)인데, ‘두두리’는 한국 신화 속 대장장이 신을 뜻한다. 인공지능(AI)이 급부상하는 가운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려는 게 주최 측의 의도다. 다만 도서전을 소개하는 짧은 ‘주제글’을 둘러싸고 출판계와 독자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글의 작성자로 소설가 김연수와 함께 AI 모델 ‘클로드 소네트 4.6’과 ‘제미나이 3’이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명색이 도서전인데 소개글을 AI가 쓰는 것이 맞느냐’는 비판과 ‘오늘날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이라는 옹호가 이어졌다. 도서전을 운영하는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지난해 미숙한 전시 운영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개막 전 얼리버드 단계에서 전체 티켓을 모두 판매해 버리는 바람에 현장에서는 아예 구할 수 없게 돼 원성을 들었다. 올해는 현장 판매분을 준비하긴 했지만, 엄청난 열기로 ‘오픈런’ 행렬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도 인기가 이어지며 지난 8일 열린 얼리버드 티켓은 연일 매진이고 한때 접속 대기자가 수만명에 이르기도 했다. 도서전 기간 내내 반복 관람할 수 있는 ‘두두리 패키지’는 6만 6000원임에도 ‘완판’됐다. 열풍의 원인은 단연 ‘텍스트힙’이다. 도서전은 젊은 층이 독서를 ‘힙한’ 것으로 인식하는 문화의 출발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도서전을 찾는 이들이 실제 책을 읽는 독자로 이어지는지는 의문이라는 게 출판계 일각의 목소리다. 출판사들이 관람객을 유인하는 한정판 ‘굿즈’ 판매에 열을 올리면서 전시의 본질인 책이 뒤로 밀려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모레퍼시픽·오뚜기 등 독서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기업들도 이번 도서전에 뛰어들었다. 책을 주제로 하는 만큼 도서전의 공공성을 고민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이유다. 문학과지성사는 올해 도서전에 참가는 하되, 부스 내 유료 굿즈는 판매하지 않을 예정이다. 도서전 참가사 선정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고 논란을 제기했던 ‘서울국제도서전 공공성 회복을 촉구하는 출판인 모임’은 아예 오는 25~28일 서울 용산구 노들라운지에서 따로 ‘서울제대로도서전’을 연다. 명칭에 ‘제대로’라는 표현을 쓴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서울국제도서전을 ‘직격하는’ 전시회다. 50여개 출판사와 책방이 참여하며, 이들의 슬로건은 ‘여유 있게, 오래, 가깝게!’다. 서울국제도서전에 ‘못 가거나 안 가는’ 출판인들을 위한 ‘서울자체도서전’도 올해 2회를 맞으며 오는 24~27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다. 이번 도서전에서 처음 만날 수 있는 ‘여름, 첫 책’으로는 재수 작가의 ‘그리고 보니 아름다웠지’(아침달), 정세랑 작가의 ‘당신의 독자가 될게요’(마음산책), 권오경 작가의 ‘빛의 전시’(문학과지성사), 실비아 박 작가의 ‘루미너스’(황금가지) 등이 있다. 출간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주옥같은 책을 다시 소개하는 ‘아깝다, 이 책’도 올해 처음 소개한다. 김기창 작가의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민음사), 소준철 작가의 ‘가난의 문법’(푸른숲), 김지승 작가의 ‘짐승일기’(난다) 등이 ‘아깝다, 이 책’에 꼽혔다. 올해 한불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도서전 주빈국은 프랑스로 정해졌다.
  • 베르베르, 뮈라이유, 콩스탕스…프랑스 작가 13명 방한

    베르베르, 뮈라이유, 콩스탕스…프랑스 작가 13명 방한

    ‘한불 수교 140년’ 서울도서전 주빈국프랑스 작가 총출동…‘프랑스를 읽다’프랑스 창작의 다채로운 풍경 속으로 한국과 프랑스의 수교 140주년을 맞아 프랑스가 오는 24~2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참여한다. 주빈국 프로그램의 주제는 ‘프랑스를 읽다’(Lire la France)로, 아동문학과 그래픽노블, 소설과 시, 미식과 철학까지 아우르며 장르, 세대, 문화의 경계를 넘는 프랑스 창작의 다채로움을 보여준다. 매년 프랑스 도서 550종이 한국어로 번역·출간될 만큼 한국은 프랑스 출판계의 주요 거점이다. 프랑스는 약 200㎡ 규모의 국가관을 운영한다. 1만 2000여종 도서를 선보이는 서점 공간과 프랑스 출판사 21곳이 참가하는 출판 전문 교류 공간, 이벤트홀로 꾸며진다. 프랑스어 입문부터 풍성한 미식 문화까지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참여 작가는 13명이다.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는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비롯해 철학자 파스칼 브뤼크네르, 미식 평론가 프랑수아 레지스 고드리, 아동문학 작가 마리 오드 뮈라이유와 콩스탕스 로베르-뮈라이유, 일러스트레이터 안느 라발·위뱅 랑드루·조이 콩스탕스, 시인 린다 마리아 바로스와 토마 비노,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스테파니 브루이에·발레리 즐레조·피에르 엠마뉘엘 루가 함께한다. 행사 기간에는 ‘AI 시대의 윤리와 저작권’ 라운드 테이블을 시작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북토크 ‘상상력과 번역’, 한-불 아동청소년문학 대담, 한-불 시인 대담, 한국학의 대중화 등 다채로운 대담과 북토크가 이어진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신작 ‘영혼의 왈츠’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와 최재천 교수와의 대담 ‘개미와 인간’으로 관객을 만난다. 일러스트레이터 위뱅 랑드루는 올해 6월 문을 연 그래픽아트 레지던시 ‘빌라 한불-부천’의 첫 입주 작가로 참여한다. 도서전 밖에서도 행사가 이어진다. 24일부터 7월 8일까지 서울 청계천박물관에서 안느 라발의 그림책 원화 전시가 열린다. 이화여자대학교와 국립중앙도서관, 경기도서관 등 서울·경기 곳곳에서 작가 북토크와 창작 워크숍이 펼쳐진다. 워크숍 등 일부 프로그램은 사전 등록 후 참여할 수 있다.
  • 김태헌 출협회장 “책, AI 데이터학습의 기반… 출판업 화합 힘쓸 것”

    김태헌 출협회장 “책, AI 데이터학습의 기반… 출판업 화합 힘쓸 것”

    임기 3개월 차에 돌입한 김태헌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 신임 회장이 인공지능(AI) 시대 출판업 방향성의 정립을 강조하며 출판계의 통합과 화합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13일 서울 종로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출판계 내부에는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며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듣고 한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의사소통을 활성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간담회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 한국 출판계의 청사진과 출협 운영 계획을 전달하기 위해 김 회장이 기획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출판의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실사구시의 태도로 출협을 운영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AI 시대 출판업계의 대응 전략을 언급했다. 그는 “AI 시대에 책은 학습 데이터로서 아주 중요한 기반”이라며 “책이 학습 데이터로 유통되고, 저작권 보호가 이뤄지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AI가 독자가 되는 새로운 시장 출현에 대비해 디지털 플랫폼 구축 등 방안도 제시했다. 다음 달 24~2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출협 공동 주최로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과 관련해서는 “참가를 희망하는 모든 출판사를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중요한 것은 도서전이 출판 산업의 저작권 수출과 산업을 이끌어가고, 아시아 출판 허브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 운영 문제에 대해서는 공공성과 사업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지배 구조를 고민하고, 여러 이해관계자와의 합의를 통해 해법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쿠팡과 맺은 업무협약(MOU)에 대해서는 “출판계와 쿠팡이 서로 협력하고 상생하자는 취지로 한 것”이라며 “앞으로의 내용이 그런 방향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쿠팡과 협의·협조하겠다”고 밝혔다. 한빛미디어 대표인 김 회장은 지난 2월 출협 정기총회에서 투표에 참여한 351개 회원사로부터 187표를 얻어 양태회 비상교육 대표이사를 누르고 제52대 출협 회장에 당선됐다. 회장 임기는 3년이다.
  • 낙조에 흘려보낸 못난 마음… 그래서 당신은 잘 지냈나요[박상준의 문장 여행]

    낙조에 흘려보낸 못난 마음… 그래서 당신은 잘 지냈나요[박상준의 문장 여행]

    한 편의 영화 같은 봄날‘파반느’ 스크린에 비친 도시고가 아래 이화달팽이길가로등 불빛 아래 나눈 진심용기와 희망을 품은 동네한 줄의 사랑 담은 책방방산종합상가 A동 132호빛나지 않는 존재들의 반짝임서로가 서로를 발견하는 곳그래서, 그곳 이름이 ‘그래서’“사람들이 말하는 꿈같은 일이란 실은 별다른 일이 아니야. … 그냥 살아가듯이 그냥 사랑하는 거야. 기적 같은 사랑이란 그런 거라구. 보잘것없는 인간이 보잘것없는 인간과 더불어…누구에게 보이지도, 보여줄 수도 없는 사랑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나가는 거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박민규) 中 외롭고 막막하여 단단한 벽, 자꾸만 세상의 바깥으로 떠미는 원심의 힘. 이데올로기가 된 외모와 그마저 수정 가능한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소설 속 요한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구심은 사랑을 상상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향한 맹목의 사랑은 애당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이므로. 거친 숨을 내쉬며 낙산의 계단을 오르다가, 가쁜 숨들이 오가는 시장을 거닐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면 나를 닮은 그들이 있다. ●사뿐사뿐 이화동 영화 ‘파반느’를 보고 원작 소설을 다시 꺼내 읽는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위즈덤하우스)는 못생긴 ‘그녀’, 상처를 가진 ‘나’ 그리고 요한의 사랑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박민규 작가는 “아주 못생겼어도 나를 사랑했겠느냐”라는 아내의 질문을 받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나 품 안에 못생긴 상처 하나씩을 안고 살아간다. 소설 속 그녀를 연기한 고아성 배우의 말을 빌리면, 아름다워야만 한다는 세상의 묵시와 그러므로 더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욕망의 이면에는 우리 각자의 “사랑할 자신이 없는 못난 마음”이 있다. 영화 ‘파반느’는 영상에 익숙한 오늘의 세대와 같이 도시 속을 거닐며 그 상상을 조금 더 익숙한 언어로 풀어놓는다. 소설 속 그 무대는 1980년대의 서울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도시가 정확히 어디인지, 어느 시대를 살아가는지 말하지 않는다. 대신 많은 장면을 서울에서 촬영했다. 이종필 감독은 오늘의 서울에서 용기와 희망이 되는 장소들을 찾아 카메라에 담는다. 이화동, 방산시장, 신촌의 창전동 골목, 주인공들이 배드민턴을 치던 연희동 궁동공원, 신수동 도프레코드 같은 쌈지의 장소는 오래도록 변하지 않은 서울의 동네다. 그래서 영화가 그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도시는 노란색 조명처럼 따뜻하다. 그 가운데 이화동은 나(영화 속 경록)와 그녀(영화 속 미정)의 사랑이 시작되는 장면으로 인해, 가장 밝게 빛난다. 영화 속 미정의 집은 이화달팽이길 위쪽 골목이다. 이화달팽이길은 그 모양이 달팽이 집 문양과 비슷해 달팽이길이다. 높은 옹벽을 마주한 채 다리 아래에서 위로 나선을 그리며 오른다. 경록과 미정이 가로등 불빛 아래, 봄 햇살 같은 진심을 주고받던 장소는 이화달팽이길 위쪽의 충신4나길과 낙산성곽서길 사이 콘크리트 계단 앞이다. 그리고 다음 날, 미정은 나비처럼 손끝을 팔랑거리며 이화동 계단을 경쾌하게 내려온다. 찬란한 하루의 시작, 그때 미정은 처음으로 고개를 든 채 걷는다. ●한양도성 그리고 고궁을 걷는 길 미정의 집에서 조금 더 오르면 낙산성곽서길이다. 서울 한양도성 가운데 비교적 걷기가 편하고 전망이 빼어나며 쉼터가 많은 구간이다. 영화가 담지 못한 장면의 바깥에서, 미정과 경록은 한양도성을 동무 삼아 낙산 정상과 한양도성박물관 사이를 반복해 오래 걷지 않았을까.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으며 내 사는 도시의 전경을 곁에 두고 나란히 걸을 수 있는 길은, 막 사랑에 빠진 이들이 서로를 곁눈질하고 발을 맞추기에 알맞다. 또 해 질 녘에는 서로의 수줍은 마음을 붉게 물든 노을 속에 숨길 수 있다. 그 길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놓지 못하는 인간들은, 그래서 서로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실의 연인들은 낙산 정상에서 곧장 창신동 쪽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낙산5길의 채석장전망대 카페 낙타는 옛 채석장 산기슭에 기댄 ‘十’자 모양의 건물이다. 카페 낙타의 ‘一’자에 해당하는 내부에서는 창신동과 숭인동 군락과 동망봉이 보인다. 동망봉(東望峰)은 슬픈 역사가 깃든 장소다. 그 이름은 동쪽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동쪽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도 나오는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를 가리킨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는 82세까지 동망봉 정업원(청룡사)에서 지내며 단종을 그리워했다. 동망봉 반대편은 옛 한양의 압도적인 풍경이 금세 그 쓸쓸함을 지운다. 성곽을 곁에 두고 걷기에는 이화동 낙산성곽서길이 좋지만 한양도성을 포함한 전망은 한양도성 일대보다 낙산5길이 낫다. 한양도성과 남산 위 N서울타워와 시가지 전경은 들뜬 마음을 한껏 더 부풀게 한다. 그래서 주변의 카페나 식당은 하나같이 그 전망을 품고 있다. 옥상 전망대, 테라스의 난간, 실내의 통창, 주택을 개조한 자그마한 방 등 형태가 다양해 선호대로 택할 수 있다. 영화 ‘파반느’가 이화동에서 사랑을 시작했다면,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택한 장소는 고궁이다. ‘가고 싶은 곳 없어요?’라는 나의 말에 그녀는 얼마간 머뭇거리다 ‘고궁’이라고 답한다. ‘어느 한가한 도서관을 열 배는 확장’시켜 놓은 옛 궁궐을, 두 사람은 자주 찾는다. 그때 고궁을 걷는 그녀의 마음은 사랑에 대한 믿음과 상실에 대한 두려움, 왕녀와 시녀 중 어느 쪽에 속했을까. 소설에 고궁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고궁을 나와서는 화랑에 들렀고 드립 커피를 마셨다고만 쓰여 있다. 궁궐을 따라 걷는 코스는 정동길이나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는 사간동 일대가 운치 있다. 그러나 소설의 두 사람에게는 사람이 적어 한적한 창덕궁 서쪽 원서동이 적당하다. 창덕궁 돈화문에서 원서동빨래터까지 700m 남짓한 거리는 북촌에서도 가장 고즈넉한 골목이다. 곧 창덕궁 후원의 숲과 맞닿아 푸르고 길이 끝날 즈음에는 종로구립 고희동미술관이 반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 고희동이 40여 년간 머문 옛집에는, 고희동 화백과 동료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군방자재(群芳自在)’는 고희동 외 일곱 명의 작가가 같이 그린 작품이다. 매화와 국화와 수선화가 계절과 무관하게 한데 피어 있어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한다. 봄날에는 창덕궁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고궁의 봄은 어디든 아름답지만 봄꽃으로만 치자면 단연 창덕궁이다. 특히 성정각 담을 낀 후원의 입구는 매화의 천국이다. 겹겹이 붉은 자시문 앞 만첩홍매를 시작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낙선재 쪽으로 가지를 드리운 수양벚나무는 이르지만 여느 꽃들은 3월 하순이면 활짝 피어난다. 그즈음 성정각 안쪽에서는 담 위로 높게 자란 살구꽃이 곱다. ●그래서 책방, 방산시장의 숨은 발견 영화와 소설에는 세 사람이 근무하는 백화점 ‘유토피아’와, 멀지 않은 단골 술집 ‘켄터키HOPE’가 자주 등장한다. 영화는 유토피아를 나와서 희망(HOPE)을 찾아가는 길로 방산종합시장을 택한다. 어느 날 경록은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 비를 상대하는 게 쉽다는 미정 쪽으로 제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우산을 기울이며 걷는다. 그 또한 방산종합시장 동남쪽 오거리에서 촬영한 장면이다. 방산종합시장은 6·25 전쟁을 전후해 미군의 식료품이 거래되는 ‘양키시장’이었으나 1976년 옛 방산국민학교 터에 시장이 개설되며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 지류와 인쇄, 포장 재료가 주를 이루고 판촉물 가게가 여럿이다. 다른 존재를 빛나게 하는, 주연보다 조연들의 시장인 셈이다. 이종필 감독이 방산시장을 택한 건 그런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빛나지 않는 존재들의 반짝임. 그리고 시장 안에는 정말 그런 장소가 숨어 있다. 박민규 작가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요한의 입을 빌려 “인간은 하나의 극을 가진 전선 같은 존재”라고 썼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고 서로를 발견해야 한다고. 방산종합상가 A동 2층 132호에 있는 책방 ‘그래서’는 방산시장의 발견이다. 상가는 무뚝뚝한 복도를 사이에 두고 라벨, 인쇄, 포장 자재를 다루는 사무실과 작업실이 마주한다. 그 틈에 뿌리내려 7년을 살아낸 책방은 낯설어 진귀하다. 이현행, 오주현 씨는 책방 안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자꾸만 묻는다. 그래서 요즘은 어떻게 지내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사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그래서, 책방의 이름이 ‘그래서’다. 작고 사소한 존재들을 응원하는 그들만의 방식이다. 책방에 그치지 않는다. 전시하는 쇼룸과, 워크숍이 이뤄지는 워크룸까지 포함한다. 때로는 방산시장에서 남은 자투리 종이처럼, 쓸모를 다한 것들을 지역 예술가와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하는데, 이는 전시로, 워크숍으로 그리고 다시 기록으로 남겨져 순환한다. 그렇게 책방과 연을 맺은 작가들이 방산시장 안에 하나둘 자리를 잡고 연대한다. 아직은 대여섯 곳에 불과하지만 첫 프로젝트로 6월 서울국제도서전 기간에 맞춰 ‘서울자체도서전’을 열 계획이다. ●두릅과 귀여운 할머니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좋은 여름)’를 쓴 하정 작가의 여름맨션(A동 3층 78호)도 그중 한 곳이다. 작가의 작업실이지만 책이나 굿즈를 파는 곳이기도 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는 작가가 여행 중에 덴마크 모녀를 만나 빚은 추억의 기록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서로의 삶을 밝히는 이야기라 좋다. 그렇게 방산시장을 오가다 보면 간판 하나, 상자 하나, 라벨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작은 것들의 반짝임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주인공 그녀는 스스로를 오래전 “마음속에서... 얼굴을 도려낸 여자”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인간은 서로를 사랑하는 한 “스스로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동물”이다. 그녀 또한 사랑을 추억하므로 소설의 바깥에서 귀여운 할머니로 늙어가고 있지는 않을까. 방산시장을 나와서는 ‘희망’으로 옮겨간다. 퇴계로 방면으로 10여 분 거리에는 두릅이라는 술집이 있다. 영화 ‘파반느’에서 세 사람의 단골 술집 켄터키HOPE의 외관이 두릅을 빌려왔다. 켄터키HOPE의 간판이 빛나던 자리에는 다시 두릅의 한자인 ‘吻頭(문두)’가 걸려 있다. 김도현 씨는 작은 선술집을 내고 싶어 주류 도매업체와 기획사에서 일하며 두릅을 준비했다. 두릅 하면 자연스레 나물이 떠오르는데 실은 이유 없이 붙인 이름이다. 그래서 로마자 표기는 Dureup에서 ‘eu’(이유)가 없는 Durp다. 영화 ‘파반느’에서는 호프(HOP)에 ‘E’가 붙어 희망(HOPE)이 되었던가. 자신의 가게에 ‘세월이 묻는 게 좋다’는 그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파반느’의 두 주인공이 즐겨 찾기에는 힙(hip)한 술집이기는 하다. 글·사진 박상준 여행작가
  • 선거의 해, 스포츠 해 [2026 캘린더]

    선거의 해, 스포츠 해 [2026 캘린더]

    2026년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가 밝았다. 오행 중 ‘병’은 불의 성질을, ‘오’는 말을 의미한다. 불의 기운이 강하다는 것은 그만큼 생기와 활력이 넘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새해에 어떠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미리 살펴본다. 1월 최저임금 시간당 1만 320원 [최저임금] 새해 첫 날 최저시급이 1만 320원으로 인상된다. 2008년 이후 17년 만에 노사 합의로 결정됐다. 지난해 1만 30원 대비 2.9% 올랐다. 월급으로 따지면 215만 6880원(주 40시간·월 209시간 기준)이다. 2월 겨울 스포츠의 ‘꽃’ 동계올림픽 [아르테미스 2호]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5일 아르테미스 2호 임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우주 비행사 4명이 열흘 동안 달 주위를 비행한다. [동계올림픽]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이 6일(현지 시각) 이탈리아에서 개막해 17일간 열전에 돌입한다. [설 연휴] 2026년 첫 연휴인 설 연휴가 14일 토요일에 시작해 18일 목요일에 끝난다. 음력 1월 1일인 설 당일은 17일이다. 닷새 연휴. 3월 다시 돌아온 야구의 계절 [코스피 70년] 지난해 코스피 4000 시대를 열어 젖힌 한국거래소(KRX)가 3일 70주년을 맞는다. [달의 몰락] 3일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월식을 볼 수 있다. [WBC와 프로야구 개막] 야구 최강국을 가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가 5~17일 열린다. 한국 프로야구는 28일부터 정규시즌에 돌입한다. [노란봉투법 시행] 근로조건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청업체 등을 사용자에 포함하는 내용 등이 담긴 노란봉투법이 10일 공포 6개월 만에 시행된다. 4월 K도서의 매력에 빠질 차례 [세월호 참사 12주기] 16일 304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는다. [파리도서전 주빈국 한국] 파리도서전이 17일부터 19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아 한국이 주빈국으로 선정됐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40주년]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주 체르노빌에서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원자력 사고가 발생했다. 최대 83만 명이 피폭된 이 사건은 냉전 종식과 소비에트 연방 붕괴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5월 다시 노동절 [63년 만에 본래 명칭 되찾는 노동절] 1일 ‘근로자의 날’이 63년 만에 본래 명칭인 ‘노동절’로 돌아간다. 우리나라에서는 1923년부터 매년 5월 1일을 노동절로 기념하다가 1963년 박정희 정부 시절 근로자의 날로 명칭을 변경했다. 6월 지역 일꾼 뽑고 월드컵 즐기고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3일 전국 지역단체장과 지역 의원, 교육감을 뽑는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판 커진 월드컵] 북중미 월드컵이 11일부터 7월 19일까지 멕시코, 미국, 캐나다에서 열린다. 본선 참가국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확대된다. 한국은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A조에 편성됐다. [서울국제도서전] 24~28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울국제도서전이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다. 2024년과 지난해에는 2년 연속 15만 명이 도서전을 찾았다. 7월 미국 독립기념일 깜짝 이벤트 [미국 독립 250주년] 4일은 북미 대륙 13개 대영제국 식민지가 독립을 선언해 미국의 기초를 쌓은 지 250년이 되는 날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연중 기념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8월 유네스코도 인정한 백범의 해 [백범 탄생 150주년] 29일 백범 김구 선생 탄생 150년을 맞는다. 김구 선생이 교육, 과학, 문화, 평화 증진에 기여한 가치가 세계적으로 높게 평가받아 탄생 150주년인 2026년이 유네스코 기념해로 지정됐다. 9월 하필 금요일! 추석 연휴 나흘뿐 [한국 첫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세계유산의 등재, 보존, 보호와 관련한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19~29일 부산에서 열린다. [아시안게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이 19일 개막해 10월 4일까지 열린다. [추석 연휴 나흘뿐] 추석 연휴가 24일 목요일에 시작해 27일 일요일에 끝난다. 추석 당일이 금요일에 자리하면서 무척 짧은 연휴가 됐다. 지난해 개천절부터 추석, 한글날이 이어지며 7일간 ‘황금연휴’를 누렸던 것과는 ‘하늘과 땅’ 차다. 10월 78년 만에 간판 내리는 검찰청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출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출범한 검찰청이 2일 7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검찰의 기소 기능을 담당할 공소청과 중대범죄 수사를 담당할 중대범죄수사청이 새롭게 출범한다. 11월 임기 중간평가 받는 트럼프 [미국 중간선거] 3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의 미국 중간선거가 실시된다. 연방 하원 전체, 상원의 3분의1, 상당수의 주지사와 주법무장관, 주의회 의원 등 다양한 공직자를 선출한다. [수능] 19일 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된다. 2008년생이 주요 응시 대상자로, 2015 개정 교육과정,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 전의 마지막 수능이다. 성적 통지표는 12월 11일 배부된다. 12월 수인선 송도역에서 KTX 출발 [인천~ 부산 2시간 30분] 수인선 송도역에서 출발하는 인천발 KTX가 12월 말 개통 예정이다. 부산까지 약 2시간 30분 소요된다. 경기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를 잇는 수도권 전철 신안산선 1단계도 개통 예정이다.
  • “그림책은 경계 허무는 세계… 돌돌 말려 있어도 책이죠”[월요인터뷰]

    “그림책은 경계 허무는 세계… 돌돌 말려 있어도 책이죠”[월요인터뷰]

    안데르센상 ‘왕관의 무게’는타 장르와 협업 등 일거리 많아져 좀먹은 옛 그림, 내 그림책이 되고동명 소설에 이어 음악으로 빚어져그림책 속 원화에 체험 더한 전시도옛것·실험적인 책에 대한 로망 각자 스타일로 다시 쓰는 해외 고전우리 이야기도 다양하게 소비되길‘2.4m 두루마리’ 형태로 신작 출간詩와 만난 새 프로젝트도 기대를 이수지(51) 그림책 작가는 한국 아동문학계의 자부심 그 자체다. 2020년 백희나 작가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 수상에 이어 2022년 이수지가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거머쥐었을 때, 세계는 ‘K그림책’의 저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있기 전, 한국의 어린이책이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먼저 두드리고 길을 열어놓았던 셈이다. 안데르센상의 무게감은 역대 수상자를 확인하는 순간 한층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삐삐 롱스타킹’의 저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작가 모리스 센닥. ‘고릴라’의 앤서니 브라운,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그린 퀜틴 블레이크 등 세계 그림책 발전사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작가 명단에 이수지가 한국인 최초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수지는 책의 물성을 활용한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글 없는 그림책’이라는 문법으로 독자에게 생각의 공간을 내어준다. 펼친 책장 사이의 ‘접힌 선’은 현실과 환상을 가르는 경계가 되고, 푸른 물감 한 방울은 거대한 상상의 바다가 된다. 음악, 미술 등 다른 장르와의 유연한 연대로 그림책의 정의를 계속해서 확장한다. 50년, 100년 뒤 그림책의 고전이 될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를 지난 19일 서울 광진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덧 안데르센상을 받은 지 3년이 흘렀다. 그 사이 많은 것이 바뀌었나. 혹 ‘왕관의 무게’로 힘들진 않았나. “일거리만 많아졌어요(웃음). 농담이 아니라 진짜 일거리가 많아졌죠. 물론 개인에게 주는 상이지만, 그 과정에서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한국위원회(KBBY) 등 노력한 분들이 많이 있기도 하고 또 ‘한국 그림책 업계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사명감에 대부분 요청에 응했어요. 여기저기서 협업하고 싶어하는 분들도 생기고요. 나중에는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상은 제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잠깐 비춰준 ‘빛’ 같은 거예요. 대단한 고마움과 응원으로 받아들이지만, 그 무게에 짓눌리지는 않아요. ‘메타인지’가 잘 되는 편이라, 세상 사람이 저한테 그렇게 큰 관심이 없다는 걸 잘 알거든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타 장르와 협업이 유독 많다. “국악을 기본으로 활동하는 ‘솔솔’이라는 듀오가 조선시대 정가(감정을 절제하고 품위 있게 부르는 전통 성악곡) 형식으로 제 책 ‘눈 내리는 삼일포’로 음악을 만들고 곧 음원 발매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간송미술관에 가서 우연히 본 옛 그림이 그림책이 되고 또 김연수 작가가 그 얘기를 듣고 단편 소설을 쓰고, 솔솔의 음악이 되는 과정이 너무 뿌듯하고 재미있어요. ‘그림에 눈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벌레 먹은 구멍이었다’는 모티브에서 출발한 건데 각자 다른 걸 보잖아요.” 이 이야기의 시작은 2022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간송미술관은 심사정(1707~1769)이 그린 ‘삼일포’를 복원·보존 처리해 전시회를 열었다. 금강산에서 흘러나온 신계천이 36개 봉우리에 가로막혀 절경을 이루는 곳을 그린 그림인데, 쪽빛 배경 곳곳에 하얗고 동글동글한 눈이 내리는 모습이 운치를 더한다. 하지만 눈처럼 보이는 흰 점들은 사실 넓적나무좀이 갉아 먹어 구멍이 난 흔적이다. 화첩 형태의 ‘해동명화집’ 속에 접혀 있던 까닭에 데칼코마니처럼 좌우대칭으로 구멍이 났다. 간송미술관은 전시를 앞두고 이 구멍이 보이지 않게 메울 것을 고민했지만 그동안 관람객들이 그림의 일부로 사랑해 온 역사를 감안해 결국 눈 내리는 모습을 유지한 채 복원했다. 여기서 영감을 받은 이수지는 지난해 ‘눈 내리는 삼일포’라는 그림책을 선보였고 이수지의 책에 영감받은 김연수는 동명의 소설을, 솔솔은 이를 음악으로 빚었다. -지난해 전남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 올해 상반기 제주현대미술관에 이어 현재는 경북 의성군 조문국박물관에서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보통 원화전이라고 해서 그림책에 쓰였던 그림을 많이 전시하는데, 작가로서 작업의 완성본은 인쇄돼 나온 ‘책’ 그 자체라고 생각하거든요. 완성된 책을 두고 굳이 다시 원화로 돌아가 ‘원래는 이런 그림이었어’라고 보여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어요. 이런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전시가 제가 하고 싶었던 이면을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좋은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부터예요. 전시는 공간에서 몸으로 체험하기 때문에 다시 기획해야 하는 게 있죠. 어린이들이 오는 만큼 ‘그림자 극장’ 같은 놀거리를 만들었는데, 기본 2시간, 심지어 6시간씩 보는 관람객도 있더라고요. 전시 개막식에 온 의성군수가 ‘의성은 어린이가 정말 귀한 곳’이기 때문에 이런 기획을 하고 싶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조문국박물관 본관 전체에서 열리는 이수지의 ‘이렇게 멋진 날’ 전시는 ‘파도야 놀자’ 등 대표작 원화를 비롯해 미디어 영상과 체험 공간을 마련해 관람객이 그림책을 다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열린수장고에서는 ‘반대말 백자’ 도서와 실제 백자를 함께 전시해 화제가 됐다. -한국의 대표적인 그림책 작가들과 함께 ‘바캉스 프로젝트’를 한 것을 비롯해 문화유산, 옛이야기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 “해외 도서전을 자주 다니는데, 갈 때마다 발견한 점이 해마다 어느 나라든 누군가는 새로운 ‘빨간 모자’를 만든다는 것이었어요. 고전에 자기만의 그림 스타일을 입히는 건 기본이고, 어떤 책은 아이에 대한 성적 가해라는 무거운 주제로 비틀기도 하고, 또 어떤 책은 아주 유머러스하게 풀기도 해요. 그걸 보면서 깨달았어요. 사람들이 ‘빨간 모자’라는 원형을 다 알고 있으니까, 패러디도 다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구나. 그런데 ‘우리나라 옛이야기는 왜 잘 그리는 데만 집중할까?’라는 아쉬움이 들더라고요. 우리 이야기도 해외에서 이런 식으로 소비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번 해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게 된 거죠. 동료 작가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재밌겠다’며 바로 나오더라고요. ‘너희 정말 심심했구나’ 싶었죠(웃음). 사실 그림책 작가는 누구나 나만의 실험적인 책을 만들고 싶은 로망이 있어요. 하지만 현실에 치이다 보면 쉽지 않은데, ‘바캉스 프로젝트’가 핑계가 되면 좋겠다 싶었던 거죠.” -올해 바캉스 프로젝트를 통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공개한 두루마리 그림책 ‘연인, 인연’의 국제표준도서번호(ISBN)가 나왔나. “한 장짜리 그림이나 두루마리 형태는 책이 아니라며 ISBN 발급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네모가 아니면 안된다’, ‘교보문고에 들어갈 수 없는 책은 안된다’는 등 응답이 돌아왔죠. 담당자가 이런 민원을 많이 받았겠지만, 작가가 진심으로 의문을 가지고 물어보면 ‘책이라는 게 뭘까’ 잠깐이라도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책의 형태가 이토록 다양해지는 시대에 그 정의를 조금 더 넓게 바라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앞서 지난 6월 이수지는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에서 본 심사정의 ‘촉잔도’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에서 영감받아, 길이가 2.4m에 이르는 두루마리책 ‘연인, 인연’을 펴냈다. 작품에는 길고 긴 두루마리 양쪽 끝에서 각기 출발해 험난한 자연을 지나 인연을 찾아가는 여정이 담겼다. -내년에 나올 그림책 막바지 작업중이라 들었다. 또 다른 계획도 있다면. “제가 오랫동안 혼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중간에 진전이 안 돼서 그냥 묻어뒀어요. ‘이후에 어떻게든 다시 돌아갈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출판사에서 진은영 시인의 시를 보내주며 그림책으로 만들 수 있겠냐고 물어본 거예요. 그 시를 읽는데, 갑자기 제가 예전에 하던 프로젝트가 생각이 나서 거기에 시를 얹어 봤어요. 그랬더니 어떤 물꼬가 트이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시인의 시와 제 프로젝트가 만나서 시너지가 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또 충북도청을 리모델링 해서 만든 그림책 전용공간 ‘그림책정원 1937’에서 전시가 예정돼 있고 가을쯤 출판사 초청으로 브라질에 다녀올 계획입니다.” ■ 이수지 그림책 작가는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영국 캠버웰 예술대에서 북아트를 공부했다. 그의 작업에서 책의 가운데 제본선은 현실과 환상을 가르는 경계가 되고, 책 넘기는 행위는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장치가 된다. ‘경계 3부작’이라 불리는 ‘거울 속으로’, ‘파도야 놀자’, ‘그림자 놀이’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으며, 2022년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았다.
  • 지원받았으니 말 들어라?… ‘관치’ 그림자 속 시들어가는 K컬처[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지원받았으니 말 들어라?… ‘관치’ 그림자 속 시들어가는 K컬처[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지원하되 간섭않는다 원칙 사라져”문체부, 도서전 보조금 2년째 끊어공무원 출신 국악원장 거론도 논란정부 지원 대상 자율·점검 균형 필요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문화 산업은 발전을 거듭해 꽃을 피웠다. K팝을 필두로 영화, 드라마 등 대중문화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 미국, 중동 등 세계로 나아가는 추세다. 2016년 60억 달러(약 8조 7000억원) 수준이었던 콘텐츠 수출액은 2019년 100억 달러를 처음 넘었고 2023년 133억 달러를 돌파했다. 세계적인 콩쿠르 등에서도 한국 연주자가 두각을 보인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국가문화지수 종합 순위는 10위다. 문화 산업의 중요도가 커지고 국가 투자가 늘어나면서 정부가 민간을 과도하게 통제하는 ‘관치’에 대한 논란도 불거진다. 이재명 정부에선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지금의 ‘K컬처’는 그 시작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문화 정책에서 찾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김 전 대통령은 문화를 21세기 전략 산업으로 보고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속에서도 처음으로 정부 전체 예산의 1%를 문화 분야로 배정하는 등 파격적인 지원을 했다. 당시 기조가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문화 정책을 만들고 문화예술 단체나 예술가에게 지원금을 주는 구조가 이어지며 관치 논란도 뒤따랐다. 그 부작용이 최고조에 이른 게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불거진 ‘문화계 블랙리스트’다. 당시 정부는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 명단을 작성하고 의도적으로 각종 지원에서 배제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민관합동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의 2018년 5월 종합발표에 따르면 블랙리스트로 피해를 본 문화예술인이 8931명, 단체가 342개로 집계됐다.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 한국 최초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 등을 받은 봉준호 감독 역시 명단에 포함됐다. 피해 문화예술인 단체인 ‘블랙리스트 이후’의 정윤희 디렉터는 이에 대해 “소통을 거부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관료 독재’로 볼 수 있다”면서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처럼 윤석열 정부 들어 관료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 첫 문체부 수장이었던 박보균 전 장관 시절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와의 갈등으로 논란을 빚은 서울국제도서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박 전 장관은 2023년 8월 “5년간 도서전 입장료 등 수익금 상세 내역을 누락했다”는 이유로 출협을 ‘이권 카르텔’로 규정하고, 윤철호 회장 등을 수사 의뢰했다. 그러나 경찰은 지난달 7일 관련 사건을 ‘혐의 없음’(불송치)으로 종결했다. 출협은 지난달 31일 성명을 내고 “서울국제도서전에 대한 근거 없는 수사 의뢰는 감사와 수사까지 합쳐 2년 넘는 시간 동안 협회와 업계를 옥죄는 수단으로 기능했다“면서 “독서 정책, 저작권 정책, 각종 예산 집행, 민관협치 구조의 파괴 등 윤석열 정부 시기 출판 정책은 육성이 아니라 억압이라고 불러 마땅하다”고 비판했다. 유인촌 전 문체부 장관이 퇴임 전 진행한 인사는 ‘알박기’ 논란도 불렀다. 올해 초 인사혁신처가 추린 신임 국립국악원장 후보 3명 가운데 문체부 고위 관료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며 국악계 반발을 불렀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민간만 지원하던 국악원장 공모에 공무원도 참여할 수 있도록 지난해 12월 대통령령을 개정한 사실도 확인됐다. 유 전 장관은 지난 4월 김상욱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장과 정용욱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를 임명·승인했다. 5월에는 김명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 사장과 우상일 국립문화공간재단 대표를 임명하는 등 정권 교체기에 인사권을 과하게 휘둘렀다는 지적을 받는다. 문체부가 국립오페라단과 국립합창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 등 5개 단체 이사회의 통합에 나서고 국립예술단체 지방 이전 방안을 문화예술계와 별다른 상의 없이 추진하다가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문화연대의 김재상 사무처장은 “문체부 지원을 받는 문화예술기관이나 문화예술인을 시혜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지원해 주는데 뭐가 더 필요하냐’는 식의 접근, 나아가 ‘지원해 줬으니 우리 말을 들어야 한다’는 식의 관치 문화가 여전하다”고 꼬집었다. 새 정부에서는 관과 민이 소통하는 통로를 넓히고 예술가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예산이 새지 않도록 점검하는 구조를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세준 숙명여대 문화관광학부 교수는 “지원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확인하는 게 당연하다. 특히 중앙 정부 입김이 잘 닿지 않는 지역 문화예술계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새 정부의 문체부는 각종 지원사업을 고도화하는 것은 물론 지원 대상의 자율과 점검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풀어야 한다”고 짚었다. 과거 정부의 관치 관련 피해 역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 디렉터는 “법을 마련해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비슷한 문제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문학 향한 진심, 진정성으로… 출판의 세계에 발 디뎠다 [오경진 기자의 노이즈캔슬링]

    문학 향한 진심, 진정성으로… 출판의 세계에 발 디뎠다 [오경진 기자의 노이즈캔슬링]

    출판은 이 거대한 우주에 절대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2019년 문학 전문 출판사 ‘무제’를 차린 영화배우 박정민(38)이 여기에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 문학계는 반신반의했다. ‘배우 인지도로 적당히 돈 벌다가 빠지겠지.’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다. 이런 시선은 이제 다 거두어진 듯하다. 어엿한 출판사 사장으로 문단을 종횡무진 누비며 진정성을 내보이고 있어서다. 이미 그에게 마음을 연 작가들도 여럿이다. “소설을 쓰는 작가와 책을 파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달라야 한다”며 제법 출판인 같은 말도 한다. 문학으로 그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지난 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박정민을 만났다. “많은 분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체감해요.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혼자서 작게 하고 싶은 거 만들고 있었는데, 이제 출판과 문학이라는 세계 안쪽으로 살짝 들어온 느낌이에요. 출판계 선배나 독자들이 저한테 기대하는 것도 생겼을 테죠. 괜한 책임감이 들어요. 안 그래도 되는데.” ●첫 장편 ‘첫 여름…’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박정민을 올해 문학·출판계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이라고 소개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제에서 처음으로 펴낸 소설인 김금희의 장편 ‘첫 여름, 완주’를 단숨에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려놓았다. 지난 6월 역대 최고 흥행을 거둔 서울국제도서전의 배경에도 박정민과 무제가 있었다. 그를 보기 위해 무제의 부스를 찾은 관람객은 도서전 내내 장사진을 이뤘다. ‘첫 여름, 완주’의 성공으로 무제는 ‘배우 박정민’의 사비를 사용하지 않고도 앞으로 3~4권의 책은 여유롭게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작은 출판사인 만큼 치열한 명분과 이야기가 필요해요. ‘배우 박정민인데, 저희랑 책 냅시다’ 하는 건 멋이 없죠. 좋은 글을 대형 출판사가 아니라 우리에게 줘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작가들을 설득할 수 있겠죠. 그게 기획입니다. 앉아서 씨름한다고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걸 하되 ‘감각을 열어 두는 것’이 중요하죠.” ●시각장애인 아버지께 바친 ‘듣는 소설’ ‘첫 여름, 완주’의 성공 뒤에는 박정민의 내밀한 이야기가 있었다. 시각장애인인 아버지를 위해 ‘듣는 소설’을 만들어 선물하고 싶다는 진심. 이 소설이 종이책으로 출간되기 전 오디오북으로 먼저 나온 이유다. 진심에서 비롯된 기획은 그 어떤 인위적인 마케팅보다 힘이 세다. 박정민은 이날 인터뷰가 끝난 뒤 서울맹학교로 향했다. 시각장애가 있는 학생들에게 직접 피드백을 듣기 위해서다. 소설 출간 이후 박정민은 꾸준히 시각장애인 당사자들을 만나며 ‘듣는 소설’ 프로젝트를 보완하기 위해 발로 뛰고 있다. 요즘엔 신문 기사와 출판을 접목하기 위해 열심히 스크랩하고 있단다. “대정전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산업적으로 문학이 넷플릭스를 이기긴 어렵겠죠. 하지만 문학만이 할 수 있는 ‘내밀한’ 게 있어요. 영상과 달리 소설 속 장면은 저마다 다른 이미지로 기억되잖아요. 개인적이죠. 들인 시간도 더 길어서 한 권 한 권이 소중하죠. 글자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움직인다는 게 신기해요.” ●내가 좋아하는 책 재밌게 만들고 싶을 뿐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 박정민이 성해나 소설집 ‘혼모노’ 띠지에 쓴 이 문장은 아마 올해 문학 시장을 요약하는 펀치라인이 될 듯하다. 띠지에 힘입은 ‘혼모노’는 최근 몇 주간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고 있다. 박정민은 웃으면서 “다른 출판사(창비) 좋은 일만 한 것 같다”며 억울해했다. 농담과 과장이 섞인 문장이지만 그리 간단하게 볼 것만은 아니다. 산업으로서 문학이 처한 위기의 본질과 그걸 돌파할 해법의 실마리가 담긴 아포리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계간 문예지 2종 정도는 꼭 챙겨 본다는 박정민이 요즘 주목하고 있는 작가는 함윤이다. 지난 6월 나온 신작 ‘소도둑 성장기’를 재밌게 봤단다. 서울신문 신춘문예(2022년) 출신 작가를 호명해 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박정민은 “그렇습니까” 하며 멋쩍어했다. 무제는 다음달 말 에세이 한 권을 출간할 예정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정잡배가 잔잔한 호수에 끼어든 형국이죠. 하지만 모르니까 용감한 부분도 있죠. 문학인으로서 고귀한 책임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재밌는 책을 예쁘게 만들고 싶어요. 모르니까 좌충우돌할 수 있지만 이렇게도 저렇게도 만들어 보면서 독자들에게 책을 한 발짝 더 가까이 소개하고픈 마음입니다.”
  • 경콘진, 출판·서점계 ‘서울국제도서전’ 지원···수출 상담 4억 원

    경콘진, 출판·서점계 ‘서울국제도서전’ 지원···수출 상담 4억 원

    경기콘텐츠진흥원(경콘진)은 지난 6월 18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경기도서 부스를 운영해, 도내 출판사 및 서점의 국내외 홍보와 콘텐츠 판로 확대를 지원했다. 경콘진은 공모를 통해 선정된 도내 13개 출판사와 7개 지역 서점 등 총 20개 사의 공동 부스 임차와 공간 구축, 디자인, 홍보, 비즈미팅 위한 통역 인력 등을 지원했다. 현장에서 북토크, 낭독회, 책갈피 만들기 등 총 23건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다양한 관람객과 소통한 결과 23,056명의 참관객을 유치했다. 이는 지난해 대비 316%의 늘어난 숫자다. 또한 총 5개국을 대상으로 13건의 비즈니스 미팅을 통해, 약 29만 2천 달러(한화 약 4억) 규모의 수출 상담을 지원했다. 경콘진 탁용석 원장은 “경기도서 부스는 단순 전시를 넘어 실질적인 거래와 교류의 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앞으로도 지역 출판 콘텐츠의 경쟁력을 높이고, 국내외 시장 진출 기회를 적극 확대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경콘진은 도서전 참가 지원 외에도 신진작가 발굴, 크라우드 펀딩 지원, 서점 문화 활동 지원 프로그램 등 다양한 출판 지원 사업을 펴고 있다.
  • [한기호의 서로서로] 도서전이 아니라 굿즈전이라고?

    [한기호의 서로서로] 도서전이 아니라 굿즈전이라고?

    지난 6월 22일 끝난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입장권 15만장 전체가 얼리버드(온라인 선예매)로 매진됐고, 5일 내내 오픈런이 펼쳐졌다. 오픈런이 굿즈(파생상품)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말하며 서울국제도서전이 아니라 서울국제굿즈전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도서전을 주로 찾은 이는 20~30대의 여성이다. 작년에는 책과 활자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젊은 세대가 대거 몰려들자 ‘텍스트힙’(text hip)에 엄청난 자극을 받았다며 출판의 희망을 말하려는 이들이 많았다. 올해는 부스를 신청하고도 참가하지 못한 출판사가 많아서인지 냉소적인 평가가 적지 않았다. 젊은이들이 굿즈를 선망하는 분위기는 콘서트, 스포츠경기 등 어디서든 읽힌다. 그렇다면 우리는 청년 세대가 인스타그램에 자신이 읽은 책 사진을 올리고, 출판사가 판매한 티셔츠를 입거나 가방을 드는 것을 ‘책 읽는 나’를 전시하려는 지적 허영이라고 비난하면 그뿐인가. 그들이 국회 앞에서 응원봉을 흔들며 이룬 ‘빛의 혁명’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 같은 짧은 영상을 즐기던 Z세대(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태어난 세대)가 텍스트 관련 활동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책멍’, ‘북톡’ 등 책 관련 신조어가 등장했다. 독서를 힙한 문화로 여기는 그들은 책 읽는 모습을 ‘섹시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이들 세대가 텍스트힙에서 텍스트딥(text deep)으로 책을 즐기는 방법을 진보시켜 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려고 분투 중이다. 트렌드 분석가인 최수진은 ‘Z세대는 텍스트힙에 왜 열광할까?’(학교도서관저널 2025년 1+2월호)에서 이들을 “본인의 취향을 더 빠르게, 더 확고하게 만들어 가는 세대”라고 했다. 그는 “디지털 기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왕성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사회적·심리적으로도 빠르게 성장”한 이 세대가 “소비 취향도 확실하고, 사회 이슈에 대한 가치관도 일찍 정립”했기에 앞으로 “소비자에서 한발 더 나아가 크리에이터로서 활약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봤다. 이들은 도서전에서 굿즈만 산 게 아니라 책도 많이 구입했다. 나는 도서전에 오래 머물며 그들이 어떤 책을 찾는지를 유심히 살펴봤다. 그들은 정확하게 자신의 소비 취향에 맞는 출판사 부스에서 자신의 욕망에 맞는 책을 구입하곤 했다. 그들은 자신이 평소 온라인에서 소통하던 작가나 임플로이언서(회사를 위해 영향력을 활용하는 직원)와 만나 대화하는 것을 즐겼다. 이번 도서전에서 최고 인기인은 신생출판사 ‘무제’를 운영하는 박정민이었다. 그는 도서전 개막에 맞춰 출간한 세 번째 책 ‘첫 여름, 완주’(김금희)를 잠시나마 온라인서점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출판이 혼자 큰일을 내는 업종이 된 지 오래다. 이것은 엄청난 가능성이다. Z세대가 크리에이터가 돼 출판사 대표나 작가로 거듭날 때 책의 가능성이 훨씬 커지지 않겠는가!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소장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