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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국인이라 절대 안 걸려” 완벽한 범죄를 믿었던 두 살인마…15년 미제를 푼 ‘고속도로 통행권 1장’의 진실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외국인이라 절대 안 걸려” 완벽한 범죄를 믿었던 두 살인마…15년 미제를 푼 ‘고속도로 통행권 1장’의 진실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은 대한민국을 뒤흔든 주요 사건들을 통해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시리즈입니다. 과거의 기록을 되짚으며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고 정의와 안전의 가치를 깊이 있게 고찰하는 서울신문의 특화 기사입니다. 서울신문은 기사 내용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AI 음성을 이용해 기사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2002년 4월 18일 오전 7시경,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갱티고개 정상 부근에서 출근 전 아침 운동을 하던 인근 공무원이 산비탈 풀숲 나무 아래 유기되어 있던 40대 여성의 시신을 발견하며 끔찍한 참극이 세상에 알려졌다. 신원 확인 결과 피해자는 발견 장소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인 아산시 온천동 번화가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던 46세 여성 A씨로 밝혀졌다. A씨는 사건 전날 밤부터 범행 당일 새벽 2시 30분경까지 가게 영업을 마치고 퇴근하던 길에 잔혹하게 납치되어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현장 감식 결과 시신의 상태는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했다. 부검을 통해 밝혀진 사인은 경부 압박(목 졸림) 등이었으나, 시신에서 성폭행의 흔적은 관찰되지 않았다. 범인은 흉기를 사용해 피해자에게 치명상을 입혔으며, 안면부의 심한 멍과 늑골 골절, 간 파열 등 무자비한 폭행의 흔적도 함께 발견되었다. 피해자가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 상태였고 발바닥에 흙이나 상처가 전혀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갱티고개 현장은 범행 장소가 아닌 살해 후 유기된 장소로 추정되었다. 조수석 안전벨트의 혈흔, 그리고 미궁에 빠진 수사경찰은 피해자 A씨의 행적을 추적하여 노래방에서 약 300m 떨어진 평소 주차 장소에서 A씨의 승용차를 발견했다. 차량 내부를 정밀 감식한 결과 조수석 아래에서는 피해자의 신발이, 뒷좌석에서는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와 담뱃재가 발견되었다. 특히 조수석 안전벨트에서는 피해자의 것이 아닌 남성의 극소량 혈흔 한 방울이 포착되었다. 이 혈흔은 뒤에서 목이 졸리던 피해자 A씨가 마지막 순간 범인의 손가락을 강하게 물어뜯어 남긴 피였으며, 범인들이 수건 등으로 이를 닦아내는 과정에서 안전벨트에 소량 남아 있게 된 결정적 단서였다. 사건 당일 낮 12시 55분경부터 누군가가 피해자의 신용카드를 이용하여 충북 청원, 대전, 충남 무주 등 여덟 곳의 현금 인출기를 돌아다니며 총 195만 원을 인출한 사실도 확인되었다. 그러나 CCTV에 포착된 범인은 모자와 마스크, 후드로 얼굴 전체를 완벽히 가리고 있어 신원을 특정하기 어려웠다. 경찰은 현장에 남겨진 담배꽁초와 안전벨트 혈흔에서 추출한 남성의 DNA를 바탕으로 수많은 인물의 DNA를 대조했으나, 일치하는 대상자를 찾지 못한 채 초기 수사는 깊은 난항에 빠지게 된다. 3개월 뒤의 2차 사건1차 사건 수사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던 중, 불과 3개월 뒤인 2002년 7월 25일 갱티고개 일대에서 또 다른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새벽 출근길에 실종된 40대 여성 B씨로, 1차 사건 현장에서 불과 300m 떨어진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B씨의 사인 역시 경부 압박 질식사였으며, 시신 가슴 부위에는 차량 타이어 자국(윤적)과 늑골 골절 등 잔혹하게 훼손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두 번째 사건 역시 성폭행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동일한 유기 장소와 유사한 범행 수법으로 인해 경찰 내부에서는 연쇄살인 가능성이 강력히 제기되며 수사력이 분산되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두 사건 모두 1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범인을 잡지 못한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반전의 시작, ‘태완이법’과 프로파일링오랫동안 묻혀 있던 사건은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한 일명 ‘태완이법’이 시행되고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이 발족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2017년 1월, 5개 지방청 소속 8명의 프로파일러 합동 수사팀은 수사 기록 4,300여 쪽을 2박 3일간 정밀 재검토했다. 프로파일러 팀은 정밀 분석을 거쳐 세 가지 핵심 결론을 도출했다. 첫째, 피해자가 별다른 저항 없이 차에 승차한 점으로 보아 범인은 피해자와 얼굴을 아는 면식범이라는 것이다. 둘째, 흉기를 사전에 준비한 계획범죄라는 점이다. 셋째, 범인은 단독범이 아닌 2인 이상의 공범이라는 사실이다. 차량 내부에서 피해자의 혈흔이 발견되지 않은 점은 차량이 단순 납치 장소였음을 의미하며 한 명은 운전을 하고 다른 한 명은 피해자를 제압했을 것이라는 합리적 유추가 가능했다. 이 같은 공범 가능성 분석은 15년간 단독범 수사 구도에 갇혀 있던 경찰 수사의 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62장의 통행권과 ‘1분의 오차’를 쫓은 집념2002년 초기 수사 당시 경찰은 범인이 현금을 인출할 때 대전 톨게이트를 통과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해당 시간대 수거된 고속도로 통행권 62장에 대해 지문 감식을 실시했다. 당시 쪽지문이라 감식이 불가능했던 4장 중 1장에서, 2012년 감식 기술의 발전으로 이모 씨의 지문이 극적으로 검출되었다. 하지만 이 씨는 과거 피해자의 노래방에서 명함이 발견되어 참고인 조사를 받았음에도 자신의 DNA가 차량 내 혈흔 및 담배꽁초 DNA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용의선상에서 이미 배제된 바 있었다. 2017년 재수사에 착수한 김도형 경위는 청주 지역 지리에 밝았던 지식을 바탕으로 범인의 이동 동선을 치밀하게 재구성했다. 첫 현금 인출 장소인 청주 은행에서 30분 만에 고속도로 휴게소 ATM에 도착하려면 반드시 청주IC로 진입해야 한다는 가정을 세우고, 직접 차량을 운전하며 실전 테스트를 반복했다. 그 결과 수거된 62장의 통행권 중 청주IC 진입 시각이 정확히 일치하고 대전 톨게이트 진출 시각과 1분의 오차만 있는 통행권 1장을 특정해 냈으며, 이는 2012년 쪽지문이 검출된 이 씨의 통행권이었다. 이 씨의 DNA가 현장과 불일치했던 이유는 그가 진범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운전을 전담한 공범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완벽히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어긋난 동행의 전말, 그리고 15년 만의 검거수사팀은 이 씨가 미성년자 시절 공범들과 택시 강도를 벌인 전과가 있으며, 사건 당시 갱티고개 인근 마을에 거주해 지형에 매우 밝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산에서 성인오락실을 개업해 평범하게 생활하던 이 씨는 체포된 후 형사들의 7시간에 걸친 집중 추궁 끝에 마침내 공범의 존재를 자백했다. 이 씨가 지목한 공범은 회사 후배이자 중국 조선족 국적의 불법체류자였던 최 모 씨였다. 공범 최 씨는 2006년 자진신고 제도를 통해 출국했다가 2014년 정식 비자를 발급받아 재입국한 뒤 경기도의 한 회사에서 버젓이 근무하고 있었다. 출근길에 체포된 최 씨의 DNA를 대조한 결과, 2002년 피해자 차량 조수석 안전벨트에 남겨졌던 남성의 혈흔 및 담배꽁초 DNA와 완벽히 일치했다. 조사를 통해 밝혀진 전말은 충격적이었다. 아산의 폐기물 업체에서 만나 적은 봉급에 불만을 품고 퇴사한 이들은 유흥비가 떨어지자 강도를 모의했다. 단골 노래방 사장 A씨를 범행 대상으로 정한 이들은 영업을 마치고 나온 A씨에게 집에 태워다 주겠다며 차량에 탑승한 뒤 강도로 돌변하여 현금 30만 원과 체크카드 비밀번호를 강탈했다. 면식범인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 날 것을 우려한 이들은 뒷좌석에 있던 최 씨가 안전벨트로 A씨의 목을 조르며 끔찍한 범행을 이어갔다. A씨가 최 씨의 손가락을 깨물며 거세게 반항하자, 이 씨는 범행 발각을 피하고자 최 씨에게 흉기를 건네어 피해자의 숨통을 완전히 끊는 잔혹한 범행을 저지르도록 유도했다. 이후 이들은 시신을 갱티고개 비탈길에 굴려 유기하고 도주했던 것이다. 2017년 11월 22일,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재판부는 강도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기소된 이 씨와 최 씨에게 각각 무기징역을 선고했으며, 2018년 항소심과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며 무기징역이 최종 확정되었다. 15년 동안 냉대 속에 묻혀 있던 1차 사건의 진실은 피해자가 마지막 순간 범인에게 남긴 피의 메시지와 수사관들의 집요한 집념, 프로파일링 과학수사가 결합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그러나 3개월 뒤 동일한 장소에서 발생한 2차 갱티고개 살인 사건은 현재까지도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어 여전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 “삶을 더 사랑하기 위해 죽음의 방식 치열하게 논의해야” [월요인터뷰]

    “삶을 더 사랑하기 위해 죽음의 방식 치열하게 논의해야” [월요인터뷰]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고통 없는 마무리 스스로 선택해야가족에게 책임과 부담 지워선 안 돼‘의료인조력자살’ 신중히 논의할 때한국 사회에서의 죽음남에게 말 꺼내는 것도 조심스러워자살, 개인 문제로 보면 해결 못 해강력 사건, 수사기관 3중 확인 필요매년 유언을 쓰는 이유친구 죽음 마주하며 한동안 ‘죄책감’연말이 되면 나를 돌아보며 유언 써가족에게 ‘사랑하고 고맙다’ 말 남겨36만 2968명. 지난해 우리나라의 사망자 수다.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지난 1983년 이후로 두번째로 많은 수치다. 가장 많았던 해는 코로나19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2022년이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사망자 수는 앞으로도 증가 추세를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건강한 시대이면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는 오늘날,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죽음은 금기시된다. 지난 2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의대 강의실에서 만난 법의학자 유성호(54) 교수는 “우리는 흔히 죽음을 병원이라는 공간에 격리하고 외면하지만, 사(死)는 생(生)의 연장선이자 마침표”라며 죽음을 올바르게 마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초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며 죽음이 우리 모두의 당면 과제가 된 지금이야말로 여러 죽음의 양상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긴 시간 지근거리에서 죽음을 목도해온 법의학자로서, 자살부터 존엄사까지 민감한 소재를 넘나드는 그의 시선이 다다른 목적지는, 결국 삶과 사람을 향한 애정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죽음’이란 화두를 양지로 끌어냈다고 평가받는데. 왜 죽음을 이야기하나. “결국은 생을 말하기 위해서다.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우리가 제대로 자각할 때 삶의 가치도 비로소 실감할 수 있다. 우리가 매일 열심히 공부하고, 직장에 다니고, 여가를 즐기는 것은 언젠가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영원히 산다면 다 부질없는 일 아니겠나. 지금도 ‘백세시대’가 모두의 염원이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하면 조금이라도 오래 살까에 혈안이 돼 있다. 생의 ‘연장’은 중요하다. 하지만 길어진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더 중요하다. 결국 끝은 온다면 결말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야할지를 죽음이란 키워드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잘 죽는 것’(웰다잉)이란 무엇일까. “질환으로 사망할 경우 통상 2주 이상은 혼수상태로 누워있게 된다. 아마 그 사이 지나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순간이 있을 거다. 그때 ‘이만하면 괜찮았다’라는 생각만 들어도 좋은 마무리가 아닐까. 또 내가 무엇을 남길 수 있는 죽음이어야 한다. 거창한 업적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지를 의미한다. 결국 내가 어떤 삶의 궤적을 살아왔느냐가 웰다잉의 조건이다.” -그럼에도 죽음의 순간은 고통스러울 것 같다. “가장 현실적인 웰다잉의 조건은 고통 없는 마무리다. 대부분 죽음을 목전에 두면 매우 고통스럽다. 사망 직전에 환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하면 의료진이 지속 여부를 가족에게 묻는다. 그럼 가족들이 그 선택을 하며 슬픔에 몸부림치고, 이후까지도 죄책감에 시달린다. CPR 중단은 곧 사망을 의미하니까. 고인의 마지막을 가족이 선택하게 종용하는 셈인 거다. 또 응급실 차가운 침대에서 대기하다가 사망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사실 이런 마지막을 맞이하게 둬서도, 가족들에게 책임과 부담을 지워서도 안 된다.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편안하게 모르핀을 실컷 맞으면서 임종하고 싶은 게 고인의 뜻일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고인에게 받아둘 수 있는 제도가 있지만, 소극적인 의미의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밝히는 수준이다. 조심스럽지만 이제 우리 사회도 의료인조력자살을 논의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존엄사를 찬성하는 입장인가. “찬반 의견을 말하는 게 아니다. 죽음의 방식에 대해 우리 사회가 치열하게 토론을 해볼 시점이 됐단 의미다. 우리나라에서 1955년생만 70만명 넘게 태어났다. 지금 70대 초반이니 건강하지만 10~15년만 지나도 본격적으로 고령 인구의 질환과 죽음이 사회적 문제가 될 거고, 큰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이 사람들의 관심사가 될 거다. 연명의료결정제도 도입도 김 할머니 사건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9년이 걸렸다. 우리 사회가 죽음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죽음을 개인이 선택하게 될 경우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큰데. “맞다. 그렇기에 그 기준과 원칙, 필요성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단 거다.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정선이 있을 거다. 캐나다에선 미성년자, 초기치매환자, 마약중독자까지도 의료인조력자살을 허용해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반면 스위스에선 장기간 극심한 고통을 받았는지 등을 의료진이 엄격하게 점검하고, 미국 오리건주에선 기대수명이 6개월 이내인 환자에 한해 의료진과 충분한 상담을 거친 뒤 경구약을 처방해주되, 복용 여부는 마지막까지 본인의 선택에 맡긴다.” -한국 사회에서 죽음의 특징이 있다면. “죽음을 ‘개인화’한다는 거다. 죽음을 지극히 내밀한 영역으로 치부하고 이에 대해 타인이 말을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는 문화다. 일례로 우리나라 사망 원인의 5위가 자살이다. 물론 개인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택한다는 것은 여러 구조적, 문화적 요인이 겹쳐있다. 그럼에도 죽음을 개인의 문제로 보는 한 근본 대책을 마련할 수 없다. 죽음이 무조건 거부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해도 ‘이렇게 빨리 죽음에 이를 필요는 없었는데’하는 죽음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 -수십년간 법의학 현장에서 일하며 기억에 남는 사건은. “하마터면 억울하게 묻힐 뻔한 죽음의 진실을 밝힌 사건들이 아무래도 오래 남는다. 몇년 전 결혼을 약속한 남녀가 함께 잠을 자다 여성이 사망했다. 평소 심장이 약했다는 약혼자 진술이 있었고, 고인의 가족들도 그 말을 믿어 사고로 종결될 뻔 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담당 검사가 사망 시점에 함께 있었던 사람의 진술만 믿는 것은 미심쩍다며 부검을 요구했고, 고인의 목에서 육안으론 확인할 수 없었던 압박 흔적이 발견됐다.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사였다. 처음엔 발뺌하고 국민참여재판을 요구하던 약혼자가 유명 부검의의 소견이라고 하니 겁을 먹고 결국 범행을 인정했다.” -죽음의 진실을 법의학으로 밝히기 위해 수사현장에선 무엇이 필요한가. “최소한 살인 등 강력사건은 무조건 여러 수사기관의 3중 확인 장치가 있어야 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사망원인의 판단은 의사가 하게 돼있다. 다만 타살 의혹이 있는지, 부검 등 정밀한 확인이 필요한지에 대한 판단은 1차 수사기관이 한다. 이 판단이 적절한지, 놓친 부분이 없는지를 별도 조직인 검찰에서 한번 더 살펴줘야 한다. 일본, 독일 등 우리나라와 유사한 사법시스템을 갖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는 체계다. 과학수사가 아무리 발전해도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면 활용하기 어렵다.” -매년 유언을 쓴다고 들었다. 계기가 있나. “미국에서 2년 반 정도 공부하고 2011년에 귀국한 직후 고교 시절부터 굉장히 친했던 친구에게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시차적응이 안 됐으니 다음주에 보자고 했는데, 그날 친구가 대신 다른 술자리에 가서 과음하고 자다가 사망했다. 차마 내가 부검을 할 수가 없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동료가 부검을 해줬는데 부정맥이 왔더라. ‘그날 술자리만 피했어도 살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약속을 미루지 않았으면 술을 덜 마시게 할 수 있었는데’ 하고 한동안 죄책감에 힘들었다.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삶을 이 친구 몫까지 더 낭비하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순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남길지 정리하고 인생을 갈무리하는 방법으로 그해 겨울부터 매년 연말에 유언을 쓰게 됐다.” -가장 최근에 쓴 유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나.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가장 많이 남겼다. 사랑하고 고마웠다,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특히 아들에게는 엄마가 뭘 좋아하니 잘 챙겨달라는 당부도 했다. 내 장례식에 누구를 부를지 쓰면서 인간관계도 돌아봤다. 유언을 기록하며 느끼는 건 나는 미련이 많은 사람인 것 같더라. 죽고 나면 잊히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사람들이 날 추억해줬으면 하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유언을 쓰는 건 날 돌아보는 과정이더라.” -올해 연말에도 유언을 정리한다면 어떤 문장이 또 추가될까. “3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혼자 지내신다. 나를 비롯한 삼남매가 매주 찾아뵙고 있긴 한데, 그럼에도 평생 함께한 반려자가 없는 외로움이 보여 생각이 많아졌다. 아무래도 아내가 나보다 더 오래 살 것 같아서 홀로 남겨질 배우자에 대한 이야기가 담길 거다.” ■유성호 교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법의학자이자 의사다.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 및 의대 도서관장으로 재직 중이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촉탁 법의관으로 20여년 간 1500건이 넘는 부검을 진행했다. 다수의 언론 및 방송에서 자문을 맡아 법의학을 대중에 알리는데 기여해왔다. 57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데맨톡’을 운영 중이다. 2012년부터 매년 개설하고 있는 교양 강의 ‘죽음의 과학적 이해’는 서울대를 대표하는 인기 강의로 꼽힌다.
  • “아기 입 막고 웃었다”…천사 엄마의 6천만 원짜리 연쇄 살인에 내려진 형량은…[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아기 입 막고 웃었다”…천사 엄마의 6천만 원짜리 연쇄 살인에 내려진 형량은…[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은 대한민국을 뒤흔든 주요 사건들을 통해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시리즈입니다. 과거의 기록을 되짚으며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고 정의와 안전의 가치를 깊이 있게 고찰하는 서울신문의 특화 기사입니다. 서울신문은 기사 내용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AI 음성을 이용해 기사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2006년 1월,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던 경주의 한 종합병원 소아 병동. 27세 여성 최 씨는 간헐적인 경련과 끝없는 하혈로 고통받는 생후 9개월 된 입양 딸 수빈(가명)이의 침대 곁을 뜬눈으로 지키고 있었다. 핏기가 가신 작은 몸에 주삿바늘 자국이 가득한 아기를 보며 최 씨는 “내 탓인 것만 같아 눈물조차 사치스럽다”며 자책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딸을 향한 지극한 모정은 방송과 언론을 타고 곧 세간의 화제가 되었고 치료비 마련을 돕기 위해 병원이 제안한 후원 방송과 지역 신문 보도를 통해 약 2200만 원이라는 따뜻한 성금이 모였다. 그러나 수많은 이들의 기원도 무색하게 수빈이는 장출혈을 막기 위한 결장전절제술을 받은 지 2주 뒤이자 방송에 출연한 지 두 달여 만인 2006년 7월 급성 호흡 부전으로 허망하게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당시 수빈이가 겪은 원인 불명의 장출혈은 의학 논문으로 보고될 만큼 희귀한 사례였다. 수빈이를 화장한 후 부부는 차마 아이를 묻지 못하고 유골함을 안방 서랍장 위에 올려두었으며 아이 아빠는 매일 밤 죽은 딸의 유골함을 가슴에 꼭 품은 채 오열하다 잠이 들었다. 이웃들은 그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애끓는 슬픔이라 여기며 함께 가슴을 쳤다. 하지만 이 참담한 비극의 이면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잔혹한 비밀이 웅크리고 있었다. 사실 최 씨는 수빈이를 입양하기 2년 전인 2004년, 첫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았던 생후 20개월의 친딸 서연(가명)이를 이미 원인 모를 장염으로 먼저 떠나보낸 전력이 있었다. 세 번째 죽음, 그리고 어둠 속의 목격자두 아이를 연달아 가슴에 묻고 2년이 흐른 2009년, 부부는 다시 셋째 딸 민서(가명)를 입양했다. 유난히 애교가 많던 민서 덕분에 집안에 다시 웃음꽃이 피는 듯했지만 비극은 소름 끼치도록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었다. 입양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민서는 앞서 떠난 언니들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급성 장염과 고열, 하혈 증세를 보이며 응급실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한 집에서 아이 셋이 연달아 쓰러지자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는 ‘저주’를 운운하는 흉흉한 소문마저 돌았다. 이 기이한 저주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2010년 1월 14일, 어두운 다인실 병동에서였다. 셋째 민서와 같은 병실을 쓰던 여고생 정 양은 평소에도 서늘한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민서는 아빠 앞에서는 방긋방긋 잘 웃었지만, 유독 엄마 최 씨와 단둘이 있을 때면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며 경기를 일으키곤 했다. 사건 당일 오후, 낮잠 시간이 되어 조명이 꺼지자 최 씨는 아이의 침대 사방으로 두꺼운 커튼을 빈틈없이 쳤다. 이윽고 고양이처럼 몸을 바짝 웅크린 최 씨의 실루엣 너머로 “읍... 읍...” 하며 숨이 막혀 헐떡이는 단말마가 울려 퍼졌다. 불길한 예감에 커튼을 살짝 걷어 올린 정 양은 인간의 탈을 쓴 악마의 민낯과 마주쳤다. 병원 환자복(이불)을 한 움큼 쥐어 아기가 숨을 못 쉬게 짓누르던 최 씨는, 목격자와 눈이 마주치고도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자신의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쉿’ 하고 소름 끼치는 무언의 경고를 보냈다. 살의의 의식을 마친 최 씨는 곧바로 커튼을 걷어젖히고 “선생님, 우리 애가 이상해요!”라며 울부짖는 완벽한 연기를 선보였다. 아기가 뇌사 상태에 빠져 중환자실로 실려 가는 아수라장 속에서, 정 양은 남몰래 차갑게 미소 짓고 있는 최 씨의 얼굴을 똑똑히 목격했다. 결국 민서는 두 달 뒤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고 최 씨는 이번에도 통곡하며 아이의 부검을 완강히 거부했다. 돈을 위해 설계된 지옥, 추악한 실체가 드러나다영원한 미제 사건으로 묻힐 뻔했던 이 엽기적인 비극은 보험 범죄 특별조사팀(SIU) 소속 김동영 조사원의 집요한 의구심 덕분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타 보험사에 근무하던 고향 후배로부터 “한 집에서 아이 셋이 똑같이 장염과 호흡 곤란으로 연달아 사망했다”는 기이한 사연을 전해 들은 그는 비밀리에 내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사망한 세 아이 모두 아동 전용 보험에 복수로 가입되어 있었으며 극심한 빚 독촉에 시달리는 궁핍한 형편 속에서도 매달 20만 원이 넘는 고액의 보험료가 셋째 민서 앞으로 꼬박꼬박 납입되고 있었다. 경찰에 정식 수사가 시작되고 치밀한 탐문 수사를 통해 그 추악한 전말이 드러났다.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희귀 장염은 결코 불운이나 유전병이 아니었다. 최 씨가 고의로 젖병을 소독하지 않고 더러운 물이나 두유를 담아 억지로 먹이면서 연약한 아기의 장기를 철저히 파괴해 낸 결과였다. 최 씨는 첫째 친딸 서연이가 앓다 죽었을 때 우연히 지급된 소액의 보험금에서 ‘아이가 아프면 마르지 않는 돈줄이 생긴다’는 악마적 공식을 학습했다. 사망 보험금은 거의 없지만 ‘입원 일당’과 ‘치료 실비’ 청구가 극도로 용이한 아동 보험의 허점을 정확히 노린 그녀는 아이들을 단번에 살해하는 대신 끊임없이 병들게 만들어 입원과 퇴원을 무한 반복시켰다. 둘째 수빈이를 입양하기 전, 임신한 것처럼 배를 부풀려 보험 설계사를 속이고 태아 보험에 가입하며 타낸 피 묻은 돈은 총 6천만 원에 달했다. 그렇다면 왜 아이들이 20개월에서 28개월, 즉 두 돌을 전후로 하여 예외 없이 목숨을 잃었을까. 세상을 인지하고 언어 능력이 발달하기 시작한 아이들이 주변 간호사나 아빠에게 “엄마가 더러운 것을 먹였다”, “코를 막았다”라고 폭로할 것을 두려워한 최 씨가 자신의 완벽한 연극이 발각될 것을 막고자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서둘러 입을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관용이 남긴 씁쓸한 마침표경찰은 삼엄한 비공개 수사 끝에 울산의 한 산부인과 주차장에서 당당히 걸어 나오던 최 씨를 전격 검거했다. 세 아이를 차가운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녀는 또다시 임신을 하기 위해 산부인과에서 불임 진료를 받고 나오던 길이었다. 경찰서 조사실에 앉아서조차 “과실사일 뿐이다”라며 철저히 가면을 고수하던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불려와 배신감에 피눈물을 쏟으며 통곡하는 남편의 애끓는 설득을 듣고서야 비로소 범행을 자백했다. 그러나 최 씨의 눈물과 참회는 마지막까지 계산된 생존 연극에 불과했다. 언론 카메라 앞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비통한 어미인 양 목놓아 울었으나 재판을 앞두고 남편에게 보낸 은밀한 편지에는 아이들에 대한 참회 대신 “내 형량을 낮춰줄 유능한 변호사를 사력을 다해 구해달라”는 냉혹하고 이기적인 요구만이 적혀 있었다. 법정에서 변호인은 그녀가 산후 우울증을 앓아 심신미약 상태였으며 극도의 생활고 탓이었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재판부는 심신미약 주장은 기각했으나, 초범이라는 점과 반성하는 기색을 보인 점, 궁핍한 경제 상황 등을 참작 사유로 들어 고작 징역 15년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 온열질환자 14년간 10배… 왜 쓰러졌는지 조사할 방법조차 없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으로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있지만 정부가 파악하는 정보는 환자의 나이와 성별, 직업, 쓰러진 장소 정도에 그친다. 온열질환 사망자의 소득 수준과 주거 환경, 노동 조건 등 ‘죽음에 이른 배경’은 조사 대상이 아니다. 왜 더위를 피하지 못했는지 들여다볼 법적 근거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5일 질병관리청의 ‘2025년 온열질환 신고현황 연보’를 보면 응급실 감시체계가 가동된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온열질환 사망자는 267명에 달했다. 환자 수는 2011년 443명에서 지난해 4460명으로 14년 만에 10배 넘게 불었다. 하지만 숫자 너머의 사정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응급실 신고자료에는 기본 정보만 담길 뿐 냉방기 한 번 마음 놓고 틀 형편이었는지, 쪽방이나 고시원에 살았는지, 폭염에도 왜 일을 멈추지 못했는지는 기록되지 않는다. 질병청 관계자는 “모니터링하는 입장에서도 사망자가 왜 더위에 오래, 강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는지 가장 궁금하다”며 “하지만 현재는 사망자의 개인정보를 알 수 없고 지방자치단체에도 유족이나 주변인을 조사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피해는 폭염을 피하기 어려운 약자층에 집중되고 있다. 2011~2025년 발생한 온열질환자 2만 9294명 가운데 2만 3091명(78.8%)은 야외에서, 9133명(31.2%)은 공사 현장 등 실외 작업장에서 쓰러졌다. 2226명(7.6%)은 집에서 쓰러지며 더는 집도 안전지대가 아님을 입증했다. 매년 같은 피해가 되풀이되지만 행정의 시선은 그 뒤에 놓인 삶까지 닿지 못하고 있다. 이런 조사 공백을 메우기 위한 법안은 국회에 이미 발의돼 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3월 대표발의한 ‘기후위기 대응 국민건강관리법안’은 폭염 등 기상재해로 건강 피해가 발생하면 질병청과 지자체가 역학조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지금은 조사할 권한조차 없지만 법이 통과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질병청은 관계 기관에 조사 자료를 요구할 수 있고 폭염 위기 경보가 ‘주의’ 이상이면 개인에게도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단순 응급실 통계를 넘어 피해자의 생활·노동 환경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보는 ‘사회적 부검’의 제도적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이런 조사가 사람을 살리기도 했다. 호주의 도시 애들레이드는 2009년 기록적인 폭염을 겪은 뒤 피해자의 위험 요인을 세밀히 분석하는 한편 폭염 경보와 취약계층 보호 대책을 강화했다. 이후 2014년 폭염이 다시 닥쳤을 때 온열질환 관련 응급실 내원이 크게 줄었다. 질병청 관계자는 “법적 근거가 있어야 조사 인력을 투입하고 예산도 확보할 수 있다. 유족이나 주변인에게 조사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구할 수도 있다”며 “피해가 발생한 지역에서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라도 알아야 다음 사람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데스크 시각] 폭염은 오늘도 약자를 노린다

    [데스크 시각] 폭염은 오늘도 약자를 노린다

    1995년 7월 13일, 미국 시카고의 낮 최고기온이 41도까지 치솟았다. 체감온도가 52도에 이르자 낡은 아파트는 가마처럼 달아올랐다. 사흘째 체감온도 38도를 넘기자 사람들은 견뎌내지 못했다. 구급차는 부족했고, 병상이 가득 찬 병원은 환자를 받지 못했다. 불과 일주일 새 739명이 숨졌다. 가혹한 날씨가 전부였을까.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부검소에 이어 사망자들이 살던 곳을 살폈다. 삶과 죽음을 가른 ‘사회적 요인’이 무엇이었는지 밝히기 위해서였다. 대부분 취약계층이 모여 사는, 에어컨조차 변변치 않은 비좁은 아파트였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친구나 가족과는 연락이 끊긴 늙고 가난한 1인가구가 많았다. “수백명이 잠긴 문과 닫힌 창문 너머 남들이 잘 찾지 않는 후덥지근하고 통풍이 안 되는 사적인 공간에 갇혀 홀로 숨을 거두었다.”(클라이넨버그 ‘폭염사회’ 중) 폭염은 소리 없이 다가왔고, 고립된 삶을 앗아갔다. 클라이넨버그는 시카고의 비극이 자연재해가 아닌 고립과 빈곤, 무관심이 결합된 사회적 참사라고 설명한다. 폭염은 평등하지 않았으며 차별적으로 가혹했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더뎌질 기미가 없는 가운데 ‘올여름이 가장 시원하다’는 역설적인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야외 노동이 불가피한 건설노동자와 배달기사, 농민과 공동체와 교류가 드문 쪽방촌 주민, 홀로 사는 어르신에게 이번 여름은 혹독하다. 6월에 1만명 이상 초과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유럽 소식을 무감각하게 흘려 넘겼지만, 장마 이후 폭염이 엄습하자 국내 상황도 심상치 않다. 행정안전부는 폭염 재난 위기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응급실에 실려온 온열질환자가 1500명에 육박하고, 9명(27일 기준)이 숨졌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죽음도 감안해야 한다. 온열질환 죽음을 증명하려면 사망 전후 직장(直腸)의 온도를 재야 하는데 홀몸노인들은 늦게 발견되는 일이 잦다. 문제는 폭염이 갈수록 길고 거칠어진다는 점이다. 1973~1982년에는 8월 중순이면 폭염이 끝났지만 2016~2025년에는 8월 중하순으로 늦어졌다. 올여름 전국 열대야 일수는 7.8일로 1973년 이래 가장 많다. 서울시와 25개 자치구도 대응에 나섰다. 취약계층에 냉방기기를 전달하고, 야외노동이 불가피한 이들과 쪽방촌 주민을 위한 무더위쉼터, 저소득 고령층을 위한 안전숙소를 운영한다. 그러나 고립된 이들에게 여름은 여전히 위태롭다. 서울의 1인가구 비율은 39.9%(2024년)로 17개 광역자치단체 중에 가장 높다. 1인가구 중 70세 이상이 19.8%다. 이들은 일상적 교류가 적을뿐더러 사회안전망을 빠져나가기 쉽다. 희생을 줄이려면 클라이넨버그가 했던 것처럼 ‘사회적 부검’(social autopsy)이 필요한 까닭이다. 1995년 참사 이후 시카고 당국은 희생자들의 사회경제적 환경을 꼼꼼하게 살폈다. 조사 결과 인종, 연령, 빈곤율이 죽음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대응체계를 바꿨다. 덕분에 1999년 다시 폭염이 닥쳤을 때 사망자는 110명으로 줄었다. 우리는 어떤가. 2012년 폭염을 겪고서 질병관리본부에서 ‘폭염피해백서’를 만들었지만, 지속되지 못했다. 2018년 최악의 폭염으로 백서가 부활했지만, 이듬해 폭염이 시들하고 팬데믹이 닥치면서 흐지부지됐다. 단순히 몇 명이 쓰러졌다고 업데이트하는 식으론 한계가 있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폭염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는지 직업과 평균소득, 가족관계, 동거인과 에어컨 유무를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 폭염은 불가항력적일지 몰라도 시스템이 있다면 희생을 줄일 수 있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역학 조사의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사망자 개인정보에 대한 접근이 어렵다. 문제를 인지하고 입법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이다. 시간이 많지는 않다. ‘일상의 위기’가 된 폭염은 오늘도 약자들을 노린다. 임일영 사회2부장
  • “가만히 있으면 살려준다” 눈앞에서 살인 목격한 피해자 …천안 구인광고 연쇄살인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가만히 있으면 살려준다” 눈앞에서 살인 목격한 피해자 …천안 구인광고 연쇄살인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은 대한민국을 뒤흔든 주요 사건들을 통해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시리즈입니다. 과거의 기록을 되짚으며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고 정의와 안전의 가치를 깊이 있게 고찰하는 서울신문의 특화 기사입니다. 서울신문은 기사 내용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AI 음성을 이용해 기사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논밭 한가운데서 발견된 두 구의 시신2006년 1월 14일 오전 11시경 충청남도 천안시 풍세면의 한 도로 공사 현장 굴다리 안에서 흉기에 찔린 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불에 탄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당시 안개가 짙게 낀 오전 10시 50분경 현장을 지나던 마을 주민이 나무토막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끔찍하게 훼손된 시신을 처음 발견했다. 시신은 가족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수의조차 제대로 입히지 못한 채 평소 입던 옷을 덮어 장례를 치러야만 했다. 수사가 난항을 겪던 중 19일 최초 발견 현장에서 불과 50m 남짓 떨어진 논바닥 보온덮개(부직포) 아래에서 또 다른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두 번째 시신은 얼굴에 비닐봉지가 씌워지고 양손이 결박된 상태였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각기 다른 살해 방식으로 유기된 두 사람. 그러나 부검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시신이 발견된 날짜는 달랐지만 두 피해자가 사망한 날짜는 1월 12일로 동일했던 것이다. 두 여성 모두 20대였으며, 우연의 일치로 고향이 같았을 뿐 일면식도, 어떠한 접점도 없는 사이였다. 달콤한 미끼와 보이지 않는 덫사건의 발단은 생활정보지에 실린 구인광고였다. 범인은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20대 여직원 구함’이라는 가짜 유령 회사의 광고를 내며 구직을 간절히 원하던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그는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치밀하게 수사망을 교란했다. 인터넷을 통해 대포폰을 구입한 뒤 택배로 배달받아 사용했고 광고를 등록할 때는 현직 시청 공무원의 이름을 도용하여 가짜 유선 전화번호까지 기재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범행 당일인 1월 12일 오전 대형마트 앞에서 첫 번째 피해자를 만난 범인 명 씨는 자신의 렌터카에 피해자를 태운 후 미리 물색해 둔 인적 드문 공사 현장으로 향했다. 피해자의 승용차는 범인을 만났던 마트 인근 주차장에 3일 동안이나 방치되어 있다가 뒤늦게 가족들에 의해 발견되기도 했다. 그는 이동 중에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피해자를 안심시켰으나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돌변했다. 흉기를 꺼내 들고 돈을 내놓으라며 위협했고 돈이 없다고 하자 끔찍한 성범죄를 저질렀다. 통제라는 이름의 폭력…그리고 참극명 씨의 수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피해자의 심리를 완벽하게 통제하려 한 사이코패스적 성향이다. 그는 첫 번째 피해자를 양손으로 결박한 뒤 “가만히 있으면 집에 보내주겠다”,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라며 헛된 희망을 주어 반항을 차단했다. 피해자를 뒷좌석에 숨겨둔 채 그는 태연하게 두 번째 피해자를 만나러 이동했다. 두 번째 피해자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다 대학 진학의 꿈을 키우며 천안의 한 고시원에 머물던 20대 여성이었다. 사건 당일 오후 3시경 고시원을 나서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인근 CCTV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오후 5시 천안의 한 휴게소 근처에서 두 번째 피해자를 만난 명 씨는 다시 흉기로 위협하여 결박했다. 그는 두 번째 피해자의 카드를 빼앗아 은행 콜센터에 대출 한도와 현금 인출을 문의했으나 통장에 잔액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돈을 뺏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명 씨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잔혹한 결정을 내린다. 그는 조수석에 있던 비닐봉지를 주워 뒷좌석으로 넘어간 뒤 첫 번째 피해자가 지켜보는 눈앞에서 두 번째 피해자의 얼굴에 비닐을 씌우고 테이프를 감아 질식사시켰다. 참극을 목격하고 살려 달라 울부짖는 첫 번째 피해자에게는 “시끄럽다”는 이유만으로 흉기를 휘둘러 살해했다. 이후 범행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첫 번째 피해자의 시신을 굴다리 밑으로 옮겨 인화 물질을 뿌린 뒤 불을 붙였고 두 번째 피해자의 시신은 인근 논바닥에 유기했다. 진화하는 괴물…수면 위로 드러난 여죄이 끔찍한 사건은 명 씨의 첫 범행이 아니었다. 특수강도강간 등의 혐의로 징역을 살다 가석방으로 출소한 지 불과 7개월 만인 2005년 12월 그는 이미 살인을 저질렀다. 당시 그는 생활정보지에서 과외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어 영어 교육 상담을 명목으로 피해자를 렌터카로 유인했다. 이후 흉기로 위협해 현금과 신용카드를 빼앗고 피해자의 얼굴을 테이프로 감아 질식사시킨 뒤 야산에 낙엽으로 덮어 유기했다. 경찰은 천안, 아산, 대전에서 차출된 60여 명의 경찰관으로 특별 수사팀을 편성해 수사에 총력을 기울였다. 경찰은 범인이 단 4일간 사용하고 버린 대포폰의 통화 내역 38건과 수발신 기지국 위치 13곳을 끈질기게 추적했다. 통신사 통화 기록 72만 건을 일일이 분석하며 겹치는 동선을 파악했고 마침내 한 렌터카 업체와의 통화 기록을 찾아냈다. 렌터카 계약자를 추적한 끝에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 명 씨의 신원을 특정하는 데 성공했다.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지던 2006년 4월 10일, 명 씨는 인천에서 또다시 과외 광고를 이용해 네 번째 범행을 시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피해자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면 살려주겠다”는 협박에도 맹렬히 저항하며 렌터카 밖으로 탈출했고 우연히 이 상황을 목격한 택시 기사가 렌터카의 번호판을 외워 경찰에 제보했다. 범죄자의 얄팍한 통제를 깨부순 피해자의 용기와 시민의 기지가 겹쳐지며 명 씨는 마침내 경기도 시흥의 한 고시원에서 긴급 체포된다. 반성 없는 살인마와 남겨진 숙제체포 후 범행을 시인한 뒤에도 명 씨에게서는 진정한 반성의 기미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수감 중인 구치소 안에서도 극도의 반사회적 폭력성을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재판부는 세 명의 생명을 앗아간 연쇄 살인마 명 씨에게 최종적으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남겨진 유가족들은 딸의 유품을 불태우며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 속에 남겨졌다. 생계를 위해 혹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애썼던 세 명의 선량한 시민은 끝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들의 발걸음을 무참히 짓밟은 범인은 아직도 교도소 안에서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간직한 민낯을 유지한 채 살아 있다. 천안 구인광고 연쇄살인 사건은 타인의 절박함을 미끼로 삼는 범죄의 악랄함을 우리 사회에 뼈아픈 기록으로 남겼다.
  • 고립된 삶에 외로운 죽음이 찾아왔다

    고립된 삶에 외로운 죽음이 찾아왔다

    국내 첫 고독사 통계 참여 연구원‘사회적 부검’ 마지막 행적 역추적“팔다리 멀쩡한데 왜 지원받느냐”중장년 일 강박, 자기학대로 변질‘자기돌봄의 삶’ 역설적으로 강조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사망한 지 일주일 만에 발견된 48세 미혼 여성 김선화씨. 사인은 불상. 기초생활수급 상담기록만이 그가 홀로 죽음을 맞이했던 이유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다. 길고양이들의 아빠로 통했던 61세 박종후씨. 그의 죽음은 고양이 급식소에 매일 나오던 사람이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캣맘’의 신고로 알려졌다. 이복형제마저 시신 인수를 거부한 그의 마지막 행적을 기억하는 이는 지역 캣맘 카페 매니저와 담당 공무원이 전부였다. 과거 정의도 통계도 없던 죽음 고독사. 어느 주택에서 부패한 시신이 발견될 때마다 사회면 뉴스로 환기되는 수준에 머물러 있던 죽음을 공적 관리 대상으로 이끌어 낸 연구자의 치열한 기록이 책으로 나왔다. 송인주 전 서울시복지재단 선임연구원은 2016년 국내 최초로 고독사 통계 산출 작업에 참여한 인물이다. 그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재단에서 고독사 실태, 사회적 고립 대응 정책 등을 연구했다. 법에서 규정하는 고독사란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사회적 고립 상태로 생활하던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임종하는 것’을 뜻한다. 저자가 말하는 고독사의 특성 세 가지는 이렇다. 관계망이 거의 없는 채로 혼자 사는 사람일 것, 홀로 임종기를 거쳤을 것, 사망 후 사흘 이상 지나 발견된 죽음일 것. 2024년 한 해 전국에서 3924건의 고독사가 발생했다. 저자는 “정책 당국이 사망 직전에 ‘혼자 죽지 않게 하는’ 대응만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이어져 온 보이지 않는 고립된 삶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 고독사의 주요 특징은 ‘중장년·남성 중심’, ‘다가구 주거’, ‘가족 아닌 집주인이나 이웃에 의한 최초 발견’이다. 왜 중장년 남성이 가장 고독사에 취약할까. 저자는 “팔다리가 멀쩡한데 왜 나라에서 지원을 받느냐”라는 중장년층의 ‘일’에 대한 강박이 자기학대로 변질되기 쉽다고 지적한다.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건너는 중장년일수록 ‘지지적 관계’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고독사의 사회적, 제도적 원인을 밝히고자 ‘사회적 부검’이라는 방법론을 활용한다. 사회적 부검은 망자의 사인을 법의학적으로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죽음의 사회적 맥락과 사회 구조적 요인을 함께 역추적하는 방식이다. 이웃, 기초생활수급 상담 기록 등이 고독사로 내몰린 고인의 목소리를 대신한다. 책에는 저자가 발로 뛰며 사회적 부검을 실시한 열두 가지 고독사 사례가 나온다. 저자는 이들 사례를 통해 삶의 방식이 달라져도 인간에게 여전히 필요한 관계와 돌봄이 있으며, 그것이 결여될 때 삶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단순히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제도가 사람에게 연결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걸림돌을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더 본질적인 해결책임을 짚어낸다. 흔히 고독사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나쁜 죽음’으로 여겨진다. 준비되지 못하고 관리되지 못한 죽음은 비참함으로 각인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기돌봄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평소 ‘까짓것’이라고 넘겼던 일에도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나아가 타인과의 연결이 인간 생존을 지탱하기 위한 얼마나 중요한 기반인지 다시금 일깨워 준다.
  • 빚의 무게와 마음의 위기: 과중채무자 심리정서 지원의 필요성 [기고]

    빚의 무게와 마음의 위기: 과중채무자 심리정서 지원의 필요성 [기고]

    빚은 통장의 숫자만 갉아먹지 않는다. 짊어진 사람의 마음까지 잠식한다. 빚 감당이 어려워 채무조정을 신청한 사람들을 심층 면접할 때면 이들에게 빚은 ‘갚아야 할 의무’ 그 이상임을 알게 된다. 어떤 이에게 빚은 ‘잘못’이고, 또는 ‘죄악’이기도 했으며, 누군가에겐 ‘점점 내 삶을 망가뜨리는 암세포 같은 질병’이었다. 채무자는 잘못한 사람, 죄인, 병자가 된다. 빚이 돈을 갚는 문제를 넘어 한 사람의 삶을 ‘잘못 산 인생’으로 덧칠해 버릴 때, 그 고통은 재무의 영역을 훌쩍 넘어선다. 채무자들은 빚 자체도 어렵지만 뒤따르는 무시와 차가운 시선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추심 전화, 집과 직장으로 찾아오겠다는 연락, 사채를 끌어다 썼느냐는 직장에서의 모욕. 빚을 가진 사람에 대한 사회적 냉대가 적나라하고 가혹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한 채무자는 ‘사람의 피를 말리는 경험’이라고 했다. 가족 앞이라고 해서 덜 힘든 건 아니다. 집에 ‘빨간 딱지’가 붙던 날 가족 앞에서 인간쓰레기가 된 것 같았다던 어느 가장의 말은, 채무가 한 사람의 자존감을 어디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회의 부정적 시선은 채무자의 내면을 파고든다. 사회적 낙인을 오래 경험한 사람은 그 부정적 시선을 자기 안으로 끌어들여 내면화한다. 다 내 탓이고, 내가 잘못한 것이라는 자책, 나는 이런 수모를 당해도 싸다는 체념은 우울과 불안, 불면, 심지어 극단적 선택에 대한 생각으로도 이어진다. 보건복지부의 심리 부검 결과 자살사망자 중 부채나 수입 감소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한 비율이 약 60%로 나타났다. 개인회생 청년 실태조사에 의하면 표본의 3명 중 1명이 채무 때문에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빚의 무게가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채무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와 차별, 비난은 사람을 고립시킨다. 채무자들은 자신의 빚을 말할 수 없는 비밀로 간직한다. 가족에게도, 가까운 친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버틴다. 옷차림까지도 주의하며 궁한 처지를 감추는 동안, 정작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과 제도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많은 채무자가 채무조정제도를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빚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고 제도의 문을 두드리는 일이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고 감추고 싶은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자기 같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제도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경우도 있다. 빚을 떠올리는 일 자체가 두려워 채무자 지원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몇 년을 회피한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과중 채무자에 대한 지원이 돈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채무조정은 변제 부담을 덜어 다시 살아갈 길을 열어주는 소중한 제도다. 그러나 빚이 남긴 수치심과 자책, 단절된 관계와 무너진 자존감까지 저절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고통과 정신적 위기에 직면한 채무자에게는 원리금 조정, 분할납부, 상환유예 못지않게 마음의 짐을 함께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채무조정이 성공하기 위해 사회적·정서적 지지도 중요한 이유다. 과중 채무자에게 심리 정서 지원을 제공하는 일은 덤이 아니라 재기를 위한 기반이다. 빚을 갚으려면 일자리와 소득이 필요하고, 일자리와 소득을 지키려면 심리 정서적 안정이 필요하다. 추심의 공포에서 벗어나니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어느 채무자의 고백처럼, 심리 정서적 안정은 성실한 상환과 경제적 재기의 조건이다. 심리 정서 지원은 자기 낙인의 사슬을 끊고, 빚을 ‘인생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 곤경’으로 바라보게 돕는다. 이는 고립에서 관계로, 회피에서 회복으로, 좌절에서 재기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된다. 최근 신용회복위원회에서 KB국민은행과 협업해 채무조정 신청자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도입한 ‘마음돌봄 상담서비스’는 좋은 사례다. 전문상담사를 통해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사업은 지난 6개월간 약 2700명이 이용했다. 이들 중 열에 아홉은 심리적 위기 상태로 즉각적이고 전문적인 개입이 필요한 상태였다. 이용자들은 10점 만점에 9점을 부여할 정도로 제공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이러한 접근은 비용이 아니다. 사회적 투자다. 채무로 인해 한 사람이 경제활동을 멈추고 사회에서 낙오하면, 그 고통은 개인과 가족을 삼키고 인적자원의 사장이라는 사회적 손실로 돌아온다. 반대로 심리 정서적 회복을 병행하는 채무조정은 변제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경제적 재기의 가능성을 높인다. 채무조정과 함께 정신건강의 회복을 돕는 것은 결국 빚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빚이라는 수렁에 빠져 헤어나오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변제 계획표를 건네는 것만큼 심리적·관계적 역량의 회복을 돕는 것도 절실하다. 채무조정에 심리 정서 지원을 결합하는 것은, 빚진 사람을 차갑게 대해 온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내미는 포용의 손길이다. 경제적으로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기회를 보장하고, 그들의 심리적 회복까지 지원하는 사회야말로 성숙하고 품격 있는 사회가 아니겠는가. 박정민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리노이대학교(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에서 종신교수로 재직하였고,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이다. 연구분야는 빈곤, 다중격차, 사회적 배제와 포용이며 특히 빈곤, 가계부채, 주거와 삶의 질의 상호작용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 시신 숨긴 시간 ‘16년’, 살인 죗값은 ‘14년’… 시멘트 살인범의 면죄부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신 숨긴 시간 ‘16년’, 살인 죗값은 ‘14년’… 시멘트 살인범의 면죄부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는 대한민국을 뒤흔든 주요 사건들을 통해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시리즈입니다. 과거의 기록을 되짚으며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고 정의와 안전의 가치를 깊이 있게 고찰하는 서울신문의 특화 기사입니다. 서울신문은 기사 내용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AI 음성을 이용해 기사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5803번의 낮과 밤이었다. 한 여성의 억울하고 처참한 죽음이 완벽한 어둠과 침묵 속에 갇혀 있던 시간이다. 영원한 미제 사건이자 완전 범죄로 역사 속에 묻힐 뻔했던 비밀이 세상에 민낯을 드러낸 것은 예년보다 유독 잦았던 폭우라는 자연의 변덕 때문이었다. 5,803일의 암흑…옥탑방 시멘트 무덤이 열리다2024년 8월 경남 거제시의 한 다세대주택 옥탑방에서는 빗물 누수를 막기 위한 방수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작업자들은 옥탑방 입구 반대편 폭 55cm 정도의 비좁은 공간에 양쪽으로 매립된 배관 구조물을 철거하는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옥탑방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가장 안쪽에 있는 창문을 넘어야만 닿을 수 있는 구석진 공간이었다. 인부들의 눈에 유독 왼쪽 구조물이 오른쪽보다 두 배가량 길게 시멘트로 덮여 있는 것이 포착됐다. 심지어 일반 구조물처럼 보이도록 초록색 페인트까지 칠해져 있어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정상적인 건축물처럼 감쪽같이 위장돼 있었다. 그러나 누수를 잡기 위해 인부들이 두꺼운 시멘트 더미를 깨부수고 들어가던 중 고무판 같은 이상한 물체가 걸려 칼로 찢어내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다리, 앙상하게 마른 종아리였다. 경찰에 다급한 신고가 접수됐고 시신을 직접 목격한 작업자들은 극도의 공포에 질려 가져온 장비마저 버려둔 채 도망치듯 현장을 빠져나갔다. 세로 70cm 크기의 24인치 기내용 여행 가방 안에는 키 162cm의 여성이 웅크린 채 반으로 접히듯 구겨져 들어가 있었다. 시신은 진공 압축 비닐에 겹겹이 싸여 있었고 머리 부분은 검은색 비닐봉지로 세 겹이나 씌워진 채 목에는 수건이 단단히 둘러져 있었다. 놀라운 것은 시신의 보존 상태였다. 두꺼운 시멘트와 압축 비닐로 인해 외부의 산소와 곤충, 호기성 세균이 완벽히 차단된 덕분에 시신은 부패하지 않고 밀랍처럼 단단하게 굳어지는 시랍화 상태로 16년의 세월을 견뎌낸 것이다. 부패가 거의 진행되지 않은 시신은 생전의 머리카락과 체모, 심지어 범인의 신원을 밝혀줄 지문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발견 당시 여성은 검은색 정장 바지와 속옷을 입고 있었고 속옷 안에는 생리대까지 착용한 상태였다. 지문 대조를 통해 확인된 피해자의 신원은 2011년 가족들에 의해 실종 신고가 접수됐던 실종자 정소연(가명)씨였다. 그녀를 비좁고 차가운 가방 속에 짐짝처럼 구겨 넣고 시멘트를 부은 이는 그녀와 오랜 기간 동거하던 50대 남성 김모씨였다. 16년 전인 2008년 10월 10일 옥탑방에서 벌어진 사건의 전말은 끔찍했다. 김씨는 피해자의 머리와 얼굴을 둔기로 무참히 내리쳐 잔혹하게 살해했다. 부검 결과 피해자의 이마와 뒤통수 등 네 군데에서 2cm 크기의 찢긴 상처가 발견됐고 두개골과 위턱뼈에는 4.50cm에 달하는 거대한 함몰 골절이 확인됐다. 두개골이 부서질 정도의 충격은 단순히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때린 수준이 아니라 사람의 목숨을 반드시 끊어놓겠다는 명확한 살의가 담긴 치명적인 폭력의 흔적이었다. 시신과 8년간의 동거경찰은 통신 기록과 위치 추적을 통해 경남 양산에 은신해 있던 김씨를 체포했다.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된 전과가 있던 그는 체포 당시에도 필로폰에 취해 횡설수설하며 범행을 전면 부인했다. 약효가 떨어진 뒤에야 마지못해 입을 연 김씨는 줄곧 피해자를 탓하며 자신의 범행을 축소하고 정당화하기에 급급했다. 그는 사건 당일 낚시를 마치고 일찍 귀가해 보니 피해자가 알몸으로 모르는 남성과 외도하는 현장을 목격했고 이에 격분하여 주방에 있던 뚝배기 뚜껑으로 우발적인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형량을 줄이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거짓말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모발 검사 결과 피해자에게서는 어떠한 마약 성분도 검출되지 않았으며 발견 당시 피해자가 생리대를 착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김씨의 알몸 외도 주장은 그 자체로 모순이었다.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피해자는 평소 김씨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해 온몸이 멍투성이였으며 김씨가 진 빚을 갚기 위해 억지로 일하며 불법 성매매까지 강요당하는 등 지옥 같은 노예의 삶을 살고 있었다. 무엇보다 김씨의 살인이 결코 우발적일 수 없는 가장 명백한 증거는 그가 보여준 사체 은닉 과정에 있다. 살해 직후 그는 핏자국을 깨끗이 닦아내고 시신을 비닐로 겹겹이 싼 뒤 자신의 체격보다 훨씬 작은 여행 가방에 시신을 억지로 꺾어 구겨 넣었다. 그러고는 옥상에 쌓여 있던 벽돌과 시멘트를 직접 물과 배합해 옥탑방 베란다 배관 구조물 사이에 가방을 숨기고 시멘트를 부어 미장질까지 완벽하게 마쳤다. 우발적인 분노 상태의 인간이 갑자기 떠올려 실행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더욱 경악스러운 점은 김씨가 동거녀의 시신을 시멘트로 공들여 암매장한 바로 그 옥탑방에서 매일 밤 자신이 만든 콘크리트 무덤을 곁에 두고 2016년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되기 전까지 무려 8년이나 버젓이 거주하는 인면수심의 기행을 벌였다는 사실이다. 16년의 유기, 고작 14년의 죗값… 분노를 부르는 솜방망이 처벌그러나 16년 만에 기적처럼 빛을 본 피해자의 억울함을 온전히 달래주어야 할 법정은 상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결로 참담함을 안겼다. 이토록 엽기적이고 치밀한 살인과 암매장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1심 법원이 김씨의 살인 혐의에 대해 선고한 형량은 징역 14년에 불과했다. 함께 기소된 마약 투약 혐의 2년 6개월을 더해도 총 16년 6개월의 징역형이 전부였으며 이는 대법원 원심 확정판결로 굳어지고 말았다. 유족의 피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검찰이 애초에 구형한 30년형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처벌이었다. 이 형량의 이면에는 가해자를 보호해 주는 듯한 기형적인 법의 맹점이 도사리고 있었다. 김씨의 사체은닉죄는 범행 당시 기준 공소시효인 7년이 이미 훌쩍 지나버려 검찰이 기소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범죄자가 사체를 더 완벽하게 숨기고 수사망을 피해 더 오래 버틸수록 오히려 사체은닉에 대한 막중한 법적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다는 역설이 대한민국 법정에서 증명된 셈이다. 게다가 범행 시기가 살인죄에 대한 형법 양형 기준이 강화되기 전인 2008년이라는 시대적 맹점 때문에 재판부는 과거의 잣대를 적용하고 말았다. 김씨는 한 사람의 인생을 갉아먹고 철저히 유린한 것도 모자라 시신을 차가운 시멘트 속에 16년이나 짐짝처럼 가두어 둔 극악무도한 살인마다. 그는 오랜 시간 뻔뻔한 거짓말로 유족과 국가 수사기관을 철저히 기만하며 조롱했다. 그동안 피해자의 어머니는 실종된 딸이 혹여나 스스로 차가운 바다에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 것은 아닐까 하는 자책과 상실감 속에서 무려 16년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그런데도 사람을 무참히 때려죽이고 콘크리트 무덤에 파묻은 대가가 14년이었다. 이는 피해자가 시멘트 더미 속에 갇혀 숨도 쉬지 못했던 16년의 시간보다도 짧은 기간이다. 좁은 가방에서 벗어난 영혼…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2008년 그해 가을, 지옥 같은 성매매와 무자비한 폭행의 굴레에서 마침내 벗어나 빚을 다 갚았다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 시간에 맞춰 어머니에게 다시 전화를 걸겠다던 소연씨. 끝내 그리운 고향의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어둡고 비좁은 가방 속에서 온몸이 꺾이고 구겨진 채 16년을 차가운 어둠 속에서 홀로 견뎌야 했던 그녀의 마지막 비명은 두꺼운 시멘트 벽에 가로막혀 그 누구에게도 닿지 못했다. 누수 공사라는 기적적인 우연을 빌려 16년 만에 범죄가 세상에 알려졌지만 법은 범죄자에게 그 악랄한 흔적에 걸맞은 합당한 철퇴를 내리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 “엄마, 그러면 죽어!” 이웃집 아이가 들은 그날 밤 소름 돋는 아이 목소리의 주인공은?[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엄마, 그러면 죽어!” 이웃집 아이가 들은 그날 밤 소름 돋는 아이 목소리의 주인공은?[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는 대한민국을 뒤흔든 주요 사건들을 통해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시리즈입니다. 과거의 기록을 되짚으며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고 정의와 안전의 가치를 깊이 있게 고찰하는 서울신문의 특화 기사입니다. 서울신문은 기사 내용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AI 음성을 이용해 기사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화마 속에서 발견된 70대 노모의 시신2010년 5월 16일 자정 무렵, 경기 파주시의 한 시골 마을 다세대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119 신고가 접수됐다. 해당 건물은 여러 가구가 밀집한 형태였으며 불은 가운데 위치한 집에서 시작됐다. 소방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불길은 거셌으나 다행히 옆집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이웃 주민들이 대피한 가운데 마당에서는 해당 주택에 거주하던 김모(53)씨가 맨발로 뛰어다니며 통곡하고 있었다. 불이 난 집은 약 10평 규모로 현관을 열면 주방 겸 거실이 있고 정면에 큰방, 오른쪽에 작은방이 있는 구조였다. 화재 진압 후 최모(72)씨는 작은방 잿더미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정쯤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불이 나 있었고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작은방 문을 열었으나 불길이 확 번지는 바람에 구조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부검 결과와 엇갈리는 현장 감식화재 감식과 시신 수습 과정에서 경찰은 단순 화재 사고로 보기 어려운 정황을 발견했다. 먼저 김씨의 진술과 최초 발화 지점이 일치하지 않았다. 그는 작은방 문을 열었을 때 불길이 번졌다고 했으나, 실제 가구가 전소된 곳은 큰방으로 확인돼 큰방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됐다. 가장 큰 의문점은 피해자 최씨의 시신 상태였다. 화재 희생자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대피 시도 흔적이 없었으며 시신은 천장을 바라보고 반듯하게 누운 상태였다. 또한 시신의 호흡기와 코 내부에서 그을음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이는 화재가 발생하기 전 피해자가 이미 사망했음을 보여 주는 결정적 법의학 단서였다. 현장에서는 가스 누출이나 전기 누전 등 자연 발화 원인도 확인되지 않았고 인화 물질 역시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약 한 달 뒤 나온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에서도 사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뼈나 장기 파열 등 폭행으로 인한 손상은 없었고 독극물이나 약물 반응도 검출되지 않았다. 목뼈 부근에 미세한 금이 간 흔적이 있었으나 시신 훼손으로 인해 일혈점 등이 발견되지 않아 경부 압박 질식사로 단정 짓기도 어려웠다. 경찰은 노령으로 인한 병사일 경우 지병과 연결된 흔적이 부검에서 나와야 함에도 그렇지 않은 점을 근거로, 누군가 고의로 살해한 뒤 방화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전과 3범 무기수 아들에 쏠린 의심의 눈초리경찰은 범행 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숨진 최씨의 주변을 탐문했다. 이웃들에 따르면 최씨는 평소 남에게 원성을 산 적이 없는 순한 성품이었고 집 근처 성당에 다니는 것 외에는 타인과 교류도 거의 없었다. 시신에 금반지와 목걸이가 그대로 남아 있어 강도 소행 가능성은 배제됐다. 특이점은 최근 최씨가 마을 사람들에게 “아들이 목돈 1500만원을 모아왔고 곧 작은 임대 아파트로 이사하게 될 것 같다”며 자랑을 하고 다녔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경찰은 함께 거주하던 아들 김씨의 신원과 과거 기록을 면밀히 조사했다. 신원 조회 결과 그는 21년 전 4살 여자아이를 납치해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전과자였다. 김씨는 21년을 복역한 뒤 사건 발생 3개월 전인 그해 2월 특별감면으로 가석방 출소해 어머니와 생활하고 있었다. 그는 성인이 된 이후 줄곧 교도소 생활을 했으며 과거 강간치상죄 3년, 출소 4년 만에 동종 범죄로 5년을 선고받은 것을 포함해 전과 3범이었다. 과거 세 차례의 범행 모두 그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벌어졌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범인의 진술을 무너뜨린 ‘교통카드’ 전산 기록경찰은 김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당일 알리바이를 추궁했다. 그는 밤 9시경 지인들과 술자리를 마친 뒤 버스를 탔으나 정류장을 지나쳐 종점부터 집까지 도보로 2시간을 걸어 자정에 귀가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김씨가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하지 못하도록 일상적인 수사 기록 확인인 것처럼 가장해 그의 교통카드 번호를 사진으로 촬영해 돌아왔다. 오랜 수감 생활로 대중교통 카드의 정밀한 전산 시스템을 알지 못했던 김씨는 당당하게 카드를 내어주었으나 경찰이 돌아간 직후 불안감을 느끼고 카드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상담원에게 “교통카드에 어디서 타고 내렸는지 시간까지 다 찍히느냐”고 캐물었고 카드 번호로 초 단위까지 조회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자 욕설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카드사 직원은 이 수상한 통화 녹음 파일을 경찰에 전달했다. 경찰이 해당 교통카드의 승하차 기록을 조회한 결과 김씨는 종점에서 걸어왔다는 진술과 달리 밤 10시경 집 앞 정류장에서 하차한 것으로 명백히 확인됐다. 이웃들의 결정적 목격담과 범행 자백알리바이가 무너진 시점에 이웃 주민들의 증언이 연이어 확보됐다. 한 주민은 밤 10시 무렵 동네 슈퍼 앞에서 김씨가 담배를 피우며 흥얼거리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주민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 소방대원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던 와중에 김씨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빨리 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불이 난 직후 집에 도착해 어머니를 구하려 했다는 진술과 모순되는 행적이었다. 사건의 결정적 쐐기를 박은 것은 현장 바로 뒷집에 거주하던 초등학생 형제의 진술이었다. 이들은 화재 발생 전 옆집에서 다투는 소리를 들었으며 어린 남자아이가 “엄마 그러지 마, 엄마 안 돼, 그러면 죽어”라고 울부짖는 고함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고 진술했다. 이는 평소 극도로 흥분하면 목소리가 어린아이처럼 하이톤으로 변하는 김씨의 신체적 특성과 정확히 일치했다. 교통카드 하차 기록과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압박하자 체포 당시 억울함을 호소하던 그는 결국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비극으로 끝난 모정과 무기징역 선고경찰 조사에 따르면 사건 당일 밤 10시경 집 앞 정류장에서 내려 귀가한 김씨는 어머니 최씨와 말다툼을 벌였다. 평소 아들을 지켜보던 최씨가 술을 마신 아들에게 “가진 돈을 유흥비로 탕진하지 말라”며 잔소리를 하고 등을 때리며 나무란 것이 화근이었다. 과거 장기간의 수감 생활로 인해 작은 비난에도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성향이었던 그는 어머니의 훈계에 격분해 이성을 잃었다. 그는 어머니의 멱살을 잡고 거칠게 흔들다 목을 졸라 살해했다. 범행 직후 흔적을 없애기 위해 자신의 큰방으로 가 라이터를 이용해 옷가지에 불을 지르고 집을 빠져나왔다. 무작정 동네를 걸으며 1시간가량 배회하던 김씨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마치 화재 현장을 처음 목격한 사람처럼 행동하며 경찰에 직접 신고했다. 부검 과정에서 피해자 최씨의 시신에는 타인에게 목이 졸릴 때 무의식적으로 발버둥 치며 남기는 방어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70대 노모가 건장한 체격의 아들에게 살해당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적극적인 물리적 저항을 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파주경찰서는 김씨에 대해 존속살해 및 방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사건 이후 진행된 재판 과정에서 그는 범행 당시 술을 마셨다며 심신미약을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한번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사건을 종결지었다. 교통카드가 남긴 디지털 기록과 이웃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경찰의 집요한 수사가 자식의 탈을 쓴 범죄자의 거짓말을 밝혀낸 것이다.
  • “먼저 떠나는 아이들 없도록”…아동 사망원인 분석·예방 법안 나왔다 [주목 이주의 법안]

    “먼저 떠나는 아이들 없도록”…아동 사망원인 분석·예방 법안 나왔다 [주목 이주의 법안]

    매일 수많은 법안이 발의되고 있지만 이 중 언론에 보도되는 법안은 쟁점 법안 등 일부에 그칩니다. 서울신문은 매주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안에 주목해 3개 정도 추려 소개를 합니다. 법안 발의 배경부터 핵심 내용, 통과 시 파장 등을 압축적으로 정리했습니다. ●장종태 의원, 아동사망검토 및 예방법 발의 한국형 아동사망검토제(CDR) 도입대통령 소속 ‘아동사망검토위’ 신설범부처 협력 아동사망 예방대책 마련“먼저 떠난 아이들의 아픔을 한 가정의 비극으로만 묻어주지 않고 그 안에서 배워 다른 아이들을 살리는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국형 아동사망검토제(CDR)를 도입해 국내 아동사망 발생을 최소화하려는 시도가 국회에서 시작됐습니다. 장종태(초선·대전 서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아동의 사망 원인을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예방 대책을 마련하는 ‘아동 안전 증진을 위한 아동사망 검토 및 예방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현재 미국, 영국, 일본 등은 국가와 정부의 책임 아래 아동사망 사건을 분석·검토해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아동사망검토’(CDR)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선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간 현행법은 아동학대 사망사건에 대한 공적 조사체계를 두지 않아 근본적인 원인 파악과 개선대책 마련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통계청의 ‘사망 원인통계’를 보면 2024년 19세 이하 아동·청소년 사망자는 1635명으로 이 중 611명(37.4%)이 질병이 아닌 사고·자살 등 외부 요인으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드러나지 않은 ‘숨은 아동학대 사망’의 존재 가능성입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2015년부터 7년간 부검한 아동 2239건 중 1147건이 학대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됐는데, 이는 같은 기간 정부 공식 통계(243건)의 약 4.7배에 달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동학대로 입증된 사망을 집계할 뿐 아동 사망 전반의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을 막기 위한 국가 차원의 체계는 사실상 부재한 상황이란 진단입니다. 장 의원은 10일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아동들이 사망해도 특별히 이슈화된 사망 사건을 제외하고는 그 사망을 정밀 검토하지 않고 넘어가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면서 “아이들의 사망에 대해서는 어떤 사유에 의해서 사망했는지를 검토하면 사회적인 관심도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법안은 한국형 아동사망검토제 도입을 위한 법적 기반 마련을 목적으로 대통령 소속 국가아동사망검토위원회 신설 및 지역 단위 검토 체계 구축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장 의원은 “권위 있는 조직이 강제성을 가지고 반드시 검토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회보장·형사사법 정보시스템 등과 연계한 아동사망정보 통합 관리, 검토 자료에 대한 수사·재판 절차와의 분리, 정책 반영 여부 점검 및 평가로 정책 순환 구조 법제화 등의 내용도 담겼습니다. 그는 “아동 사망 사건에 대해서는 사망 원인을 전수 조사해서 문제가 있는 사망 사건에 대해선 확실하게 수사와 조사를 할 수 있도록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천하람 의원, 교육·놀이시설 소음 제외법 발의 교육·놀이 시 발생 소리 소음에서 제외운동회 112 신고 350건, 출동 345건정규 수업 시간 외 스포츠 활동 금지도천하람(비례대표) 개혁신당 의원이 지난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일명 ‘아이들의 목소리는 소음이 아닙니다’법(소음·진동관리법과 경범죄 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해당 소리를 시끄러운 소리의 대상에서 원천 제외됩니다. 운동회에서의 응원전에 경찰이 출동하는 풍경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현행법은 어린이집·유치원·학교·어린이 놀이시설에서 이뤄지는 보육·교육·놀이 활동 중에 발생하는 소리도 ‘소음·인근소란’으로 취급할 수 있습니다. 천 의원이 지난달 교육부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학교 운동회 관련 112 신고는 총 350건이었고, 이 중 345건이 경찰 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운동회로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벽보까지 만드는 실정입니다. 올해 전국 6189개 초등학교 가운데 312개교(5.04%)는 정규 수업 시간 외 스포츠 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천 의원은 “민원과 신고에 위축돼 학교가 체육 활동을 줄이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며 “앞으로도 어린이의 권리와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 활동을 지키겠다”고 말했습니다. ●김건 의원, 특임공관장 낙하산 방지법 발의 상임위원회, 공관장 자격심사 검증차관급 후보자 대상 국회 인사청문외교 경험 없는 낙하산 공관장 방지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건(비례대표)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7일 이른바 ‘특임공관장 낙하산 방지법’(외무공무원법·국회법 등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현행법상 특임공관장을 임용할 때 외교부 내부 기관인 ‘공관장자격심사위원회’에서 자격 심사를 거칩니다. 그러나 대통령·여권 등의 측근들이 대사로 임용되면서 낙하산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김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통과되면 특임공관장 임용 과정을 국회가 검증하게 됩니다. 소관 상임위원회가 자격심사 경과를 보고를 받고 차관급 대우를 받는 후보자에 대해서 인사청문도 할 수 있습니다. 공관장은 전 세계의 대사·총영사·대표부 대표 등으로, 주재국에서 외교 활동의 ‘총지휘자’ 역할을 합니다. 이 중 특임공관장은 직업 외교관이 아닌 외부 전문가 인사를 임용하는 자리입니다. 경제나 안보 등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수혈해 외교 역량을 강화하는 취지입니다. 특임공관장은 외교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김 의원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특임공관장 임용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 광주 ‘묻지마 살인’ 20대 살해범 계획 범죄…이틀 전부터 흉기 소지

    광주 ‘묻지마 살인’ 20대 살해범 계획 범죄…이틀 전부터 흉기 소지

    광주 도심 심야 시간대 10대 여고생을 이른바 ‘묻지마 살인’한 20대 남성은 범행 이틀 전부터 흉기를 소지하고 다니며 누군가를 죽이려 한 계획 범죄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7일 광주경찰청에 따르면 일면식 없는 고교생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장모(24) 씨는 “어차피 죽을 거 누군가 데리고 가려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날로 사흘째 접어든 경찰 조사에서 불특정 행인을 이번 범행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자백했다. 장 씨는 범행 이틀 전부터 흉기 2점을 소지한 채 거리를 배회한 것으로 조사됐다. 2점의 흉기는 모두 주방에서 쓰는 칼로, 범행 도구로는 1점만 쓰였고 나머지 1점은 포장이 뜯기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지난 5일 0시 11분쯤 광주 광산구 월계동 한 대학교 주변을 배회하던 중 우연히 두 차례 마주친 여고생 피해자를 1차 범행 대상으로 삼아 살해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에서 여고생의 사망 원인은 경부 자창(날카로운 도구에 의한 찔림)이라는 1차 소견이 나왔다. 경찰은 정확한 범행 동기를 규명하고자 장 씨 스마트폰의 디지털포렌식 조사를 의뢰했다. 이어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진단 검사를 하기로 했다. 장 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이날 오전 11시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다.
  • 사망교사 어머니의 눈물… “학생도 죄 없다, 교장도 죄 없다 하는데… 그럼 내 아들은…”

    사망교사 어머니의 눈물… “학생도 죄 없다, 교장도 죄 없다 하는데… 그럼 내 아들은…”

    “학생도 죄 없다. 교장도 죄 없다. 그럼 누가 죄있는 거냐. 내 아들이 오죽했으면 죽었겠느냐. 너무 억울해 못 살겠다.” 제주 모 중학교 교사의 유족이 8일 오후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경찰 발표와 교육청 진상조사 발표에 따른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사회를 향해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같이 외쳤다. 이날 기자회견장에 나온 유족 측과 교사유가족협의회는 “교육청은 경찰 수사 발표를 지켜보겠다며 6개월 넘게 조사활동을 이어온 교육청 진상조사반은 그 핵심 결과인 심리부검 보고서는 반영하지 않은 채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왜 6개월동안 기다리게 했는지 묻고 싶다”고 한 뒤 “심리부검 결과서에 나와 있는 사안들을 검토하지 않고 유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급하게 발표를 서둘러야만 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되물었다. 교사유가족협의회는 “더이상 교육청의 자정 능력을 신뢰할 수 없다”며 “엉터리 진상조사보고서를 폐기하고 유가족 추천 인사가 포함된 독립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전면 재조사”를 주문했다. 특히 “진상결과 발표 자리에서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고작 경징계인 것에 분노한다”며 “관련 책임자들에 행정적 처벌에 대한 양형규정을 재적용하고 최고단계의 중징계로 책임지게 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허위 경위서를 작성하고 국회에 제출한 관련 책임자들을 교육청 차원에서 즉각 고발 조치하고 파면하라”며 “진상조사 공정성을 위해 독립된 진상조사위원회의 주최를 교육부에서 외부감사 및 특별감사 형태로 진행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박두용 교사유가족협의회 대표는 “무엇보다 근로복지공단 및 사림학교교직원연금공단(사학연금)과 산하 급여심의회에서 고인의 죽음을 공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교육청은 모든 입증 자료를 제출하고 순직 인정에 필요한 모든 법적 행정적 지원을 통해 순직(산재)인정에 협조하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광수 교육감은 유가족 앞에 직접 나와 사과하고 지금이라도 유족들의 요구사항을 수용하고 소통을 시작하며 타 시도 수준에 준하는 적어도 같은 제주 안에 다른 직군에게 지원하는 수준과 동일한 실질적인 생계 및 치료지원 대책을 즉각 시행하라”고 덧붙였다. 앞서 이날 김 교육감은 제주 모 중학교 교사 사망 관련 진상조사보고서 발표에 따른 입장문을 내고 “제주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감으로서 이번 진상조사 결과 발표 내용을 존중하며 선생님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데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며 “고인이 지역교권보호위원회에서 교육활동 침해를 인정받았고, 과중한 업무와 보호자 민원 등 복합적 요인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 조사결과를 엄중하게 받아들여 순직 인정 절차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유가족을 추가로 지원하기 위한 대책도 적극적으로 검토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고인이 숨진 지 첫 기자회견을 연 유가족은 김 교육감의 입장문에 반신반의하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이날 고인의 아내 대신 누나가 대신 유가족의 입장을 대독했다. 누나는 “저희 가족은 7개월동안 철저히 외부인이었을 뿐”이라며 “제 동생은 스스로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발생한 사회적 타살이며 진상조사 결과는 무효”라고 재차 강조했다.
  • “죽는 순간까지 여성이길 원했다”… 대법원 판례 뒤집은 ‘최초 성전환자 부검 사건’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죽는 순간까지 여성이길 원했다”… 대법원 판례 뒤집은 ‘최초 성전환자 부검 사건’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001년 3월 3일 오후 1시 울산 울주군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397.5㎞ 지점. 도로 청소하던 환경미화원이 수풀 사이에 쓰러져 있는 알몸의 여성을 발견했다. 걸친 것은 검은색 스타킹이 전부였다. 목에는 2m가량의 검정 끈이 감겨 있었다. 목 주위를 여섯 바퀴나 휘감고 있었다. 경찰은 지문을 채취해 인적 사항을 확인하는 한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현장 정황상 타살 가능성이 커 보였다. 다행히 그녀의 몸은 타살의 흔적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었다. 여성의 몸에서는 정액이 검출됐다. 목이 졸려지는 순간 방어한 흔적 탓인지 목 주위 피부가 벗겨진 큰 상처도 보였다. 피부 밑 출혈도 심했다. 누군가가 강하게 목을 졸랐다는 증거다. 얼굴엔 심한 울혈(피가 흐르지 못해 생긴 피멍)이 있었고 눈꺼풀 결막에는 일혈점(내부 출혈에 따른 좁쌀 같은 반점)이 생겼다. 한눈에 봐도 외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가 분명했다. 부검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부검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녀의 뱃속에는 자궁도 난소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궁적출술 같은 것을 받은 흔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성의 바깥쪽 생식기 모양은 여성이 맞았지만, 어딘가 일반적인 여성의 그것과는 좀 달라 보였다. 또 치골 뼈 주위에는 큰 수술을 받은 듯한 자국이 선명했다. 오른쪽과 왼쪽 가슴에는 각각 250㏄와 230㏄의 실리콘 주머니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의학적으로 성(性)을 구별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자궁과 같은 내부 생식기관, 성기와 같은 외부 생식기관, 마지막으로 염색체가 일치하는지다. 그런데 부검대 위 여성은 속은 남성, 겉은 여성이었다. 국과원은 염색체 분석에 들어갔다. 치아의 법랑질에 있는 단백질인 애멜로게닌을 떼 검사한 결과 피해자의 23번째 성염색체에선 남성(XY) 염색체가 나왔다. 부검 후 경찰의 지문감식 결과도 남성이었다. 52세 남성 N씨로 판명됐다. 이 부검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성전환자 부검 사례로 기록됐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남성이 호적 정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살해당한 것”으로 1차 정리됐다. 명쾌한 부검 결과와는 달리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죽은 사람의 몸에서 나온 정액을 통해 용의자의 DNA를 채취하기는 했지만 경찰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들과는 일치하지 않았다. 그나마 용의선상에 올릴 대상이 하나둘 무혐의가 확인되면서 사건은 영구 미제로 빠지는 듯했다. 이런 가운데 N씨의 비명횡사를 더 원통하게 만드는 일이 생겼다. 범인을 잡는다 해도 ‘살인’ 혐의는 처벌할 수 있지만 ‘강간’ 혐의는 인정받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형법 제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뒤집어 보면 피해자가 ‘부녀’가 아니라면 가해자를 강간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법적 선택은 ‘강제추행’. 일반적으로 강제추행을 했을 때 받는 형량은 6개월~2년으로 강간을 했을 때 받는 기본 형량 2년 6개월~4년 6개월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형량이 가벼우면 죄를 대하는 사회적 무게감도 범죄자들의 죄책감도 가벼워지기 마련. 이런 이유로 성전환자들은 사회에서 성폭력에 노출되는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강간하더라도 동성을 상대로 한 추행 정도로 치부하는 게 이 사회의 인식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7년여가 지난 2008년 6월 18일. 전남 광양경찰서 형사계에 이 모(당시 39세) 씨가 폭행 혐의로 붙들려 왔다. 이 씨는 자신이 평소 따라다니던 식당 여종업원 하 모(43) 씨 집에 몰래 들어갔다가 이를 따지러 온 하 씨의 아들과 친구를 때린 혐의로 입건됐다. 경찰서에서 이 씨는 “무단침입은 물론 폭행 혐의도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이 씨가 성폭력 전과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경찰은 하 씨 집 앞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와 이 씨의 구강 상피세포를 국과원에 보냈다. 뜻하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이 씨의 상피세포 유전자형이 7년 전 N씨 시신에서 발견됐던 정액의 유전자형과 일치했다. 7년간 풀리지 않던 강력범죄의 미스터리는 이렇게 우발적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그로부터 다시 1년이 흘렀다. 죽은 N씨가 반길 만한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호적상 남자 성전환자라 해도 강간의 피해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대법원은 “피해자는 어릴 때부터 여성으로서 성적 정체성을 갖고 살아오던 중 성전환 수술을 받았고, 여성으로 성적 정체성을 보유하고 있다면 형법이 정한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996년 비슷한 사건에 대해 “성염색체가 남성이고 여성과 내외부 성기의 구조가 다르며 여성으로서 생식능력이 없는 만큼 성전환 피해자는 부녀로 볼 수 없다.”고 했던 법원 판결을 180도 뒤집은 것이었다. N씨 시신 부검에 참석했던 법의관은 “성전환자에 대한 개인적 편견을 바꿀 수 있는 사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라면서 “뒤늦게나마 억울하게 숨진 N씨가 한을 풀게 된 것 같아 다행이긴 하지만 사회적 편견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 자살 사망자 95%, 경고신호 보이지만 가족 인지율 ‘22.8%’···조기 발견 중요

    자살 사망자 95%, 경고신호 보이지만 가족 인지율 ‘22.8%’···조기 발견 중요

    경기도, 심리부검 데이터 기반 자살위험 요인 분석 결과 발표 자살 사망자의 95.1%가 자살 경고신호를 보이지만, 가족들이 인지하는 경우는 22.8%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는 이 같은 내용의 ‘경기도 심리부검 데이터 기반 자살위험 요인 분석 및 대응방안 연구’ 결과를 5일 공개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공동으로 지난 6월부터 11월까지 수행한 이번 연구는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심리부검이 실시된 전국 1,250건의 사례 중 경기도 내 자살사망자 289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다. ‘심리부검’은 자살 사망자의 생애 마지막 기간에 작용한 심리·사회적 요인을 체계적으로 조사·분석이다. 조사 결과, 289명 중 성별 비율은 남성 59.2%, 여성 40.8%였으며, 연령대는 청년층 32.5%, 장년층 35.0%, 중년층 24.9%로 집계됐다. 사망 전 정신질환, 경제, 관계, 신체 등 4개 이상 스트레스 요인을 경험한 비율이 65%에 이르는 등 복합적 위험 요인이 주요 원인으로 확인됐다. 사망 전 95.1%가 자살에 대해 생각하고 있거나 자살할 의도가 있음을 드러내는 ‘경고신호’를 보였음에도 유족 인지율은 22.8%에 불과했다. 인지한 유족도 46.8%는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고위험군 조기 발견과 서비스 연계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경기도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4일 ‘경기도 자살예방대책 추진 전담조직(TF)’ 첫 회의를 개최했다. TF는 행정1부지사를 단장이자 자살예방관으로 지정해 구성됐으며, 도내 관련 실·국, 경기도교육청, 농협, 서민금융진흥원, 예방의학·임상심리·사회학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 자살예방 정책의 실행 전략을 집중 논의했다. 김성중 행정1부지사는 “자살은 예방 가능한 사회적 위기이자 정책 사각지대를 드러내는 경고”라며 “경기도는 심리부검 데이터를 기반으로 위험에 처한 도민을 조기에 발견하고 맞춤형 지원을 강화하는 선제적 예방체계를 구축하겠다. 특히 경제·정신건강 위기자를 위한 통합형 안전망을 마련해 도민 생명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10대 2명 숨진 창원 흉기 난동… SNS로 만난 20대 범행 전 흉기 구입

    10대 2명 숨진 창원 흉기 난동… SNS로 만난 20대 범행 전 흉기 구입

    경남 창원 한 모텔에서 흉기 난동으로 남녀 3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친 사건과 관련해 20대 남성 피의자가 범행 전 인근 마트에서 미리 흉기를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의자와 피해자 중 일부는 2주 전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개 채팅방을 통해 알게 됐고 범행 당일 두 번째 만남이었던 것도 파악됐다. 경찰은 계획범죄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4일 경남경찰청에 따르면 피의자 A씨는 전날 오후 2시 43분쯤 사건이 벌어진 창원시 마산회원구 한 모텔 인근 마트에서 흉기와 술을 샀다. 이후 2분 뒤 범행 장소인 모텔로 갔다. 당일 사건 현장에는 A씨와 10대 남녀 4명 등 총 5명이 있었다. 애초 A씨와 10대 3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1명이 더 있었다. 피해자인 중학생 B·C양과 D·E군은 당시 함께 놀던 중이었다. B·C양은 앞서 공개 채팅방을 통해 A씨를 알게 돼 한 차례 만났었는데, 사건 당일 A씨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재차 받았고 오후 4시 24분쯤 모텔 입구에서 그를 만나 함께 객실로 올라갔다. 객실 안에서 A씨는 “B양과 둘이 할 이야기가 있다”며 C양에게 잠시 나가달라고 말했다. C양은 객실 밖으로 나왔지만 얼마 뒤 방안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리자 근처에 있던 D·E군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다. D·E군이 모텔에 도착하고 나서 5명은 한 객실 안에 있게 됐고 대화를 나누던 중 A씨와 10대들 간 시비가 일었다. 그러다 격분한 A씨는 C양에게 흉기를 겨눈 뒤 B양과 D·E군을 공격했다. 112 신고는 오후 5시 7분쯤 접수됐다. 신고한 B양은 별다른 말이 없었지만 경찰은 수화기 너머로 고함과 함께 “하지 마”라는 소리를 들었다. 긴급상황이라 판단한 경찰은 곧 창원소방본부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다. 3분 뒤에는 C양이 112에 모텔 위치만 알려주고 급히 전화를 끊었다. B양과 D·E군을 흉기로 찌른 A씨는 경찰이 도착해 객실 문을 두드리자 3층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흉기에 찔린 세 사람은 객실 화장실에서 심정지 또는 의식 저하 상태로 발견됐다. B양과 D군은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끝내 숨졌고 중상을 입은 E군은 1차 수술을 마치고 경과를 지켜보고 있다. A씨 역시 다발성 골절 등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치료 중 사망했다. C양은 별다른 상처 없이 목숨을 건졌다. 경찰은 C양 진술을 토대로 초기 수사를 진행 중이다. “B양에게 호감이 있었던 A씨가 사건 당일 그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에 격분해 범행을 저지른 것 같다”는 진술은 확보했다. 정확한 범행 동기는 무엇인지, 흉기를 미리 산 이유는 무엇인지, 모텔 안에서 어떤 이유로 시비가 붙었는지 등은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은 시신 부검과 함께 휴대전화 포렌식, 폐쇄회로(CC)TV 분석 등을 지속할 계획이다. 다만 범죄 피의자가 사망함에 따라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할 예정이다. 경남교육청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10대 청소년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은 비극적 사건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이번 사건은 청소년들이 예상치 못한 폭력에 노출되어 목숨을 잃은 매우 중대한 사회적 문제이며 교육청은 그 심각성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 발생 직후 즉시 비상 상황 보고 체계를 가동하고, 해당 교육지원청과 함께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며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며 “경찰·지자체와 함께 학생 대상 범죄 예방·안전 보장을 위한 대책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며 숙박업소·다중이용시설 대상 청소년 보호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스스로 묶었지만 죽을 생각은 없었다”… 목숨과 맞바꾼 위험한 쾌락, 혹은 비극적 실수...‘자기색정사’[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스스로 묶었지만 죽을 생각은 없었다”… 목숨과 맞바꾼 위험한 쾌락, 혹은 비극적 실수...‘자기색정사’[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어떤 죽음은 스스로 초래한 위험한 놀이의 결과이기도 하다. 외부의 침입도, 타살의 흔적도, 그렇다고 삶을 비관한 유서도 없는 기이한 밀실 사망 사건. 현장에는 오직 싸늘한 주검과 이해하기 힘든 도구들만이 남아 있다. 법의학계에서는 이를 ‘자기색정사(自己色情死·Autoerotic death)’라 부른다. 성적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뇌로 가는 산소를 고의로 차단하다가,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져 생을 마감하는 치명적인 사고다. 본지는 국내외 사례와 법의학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 쾌락과 죽음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이 위험한 현상의 실체를 추적했다. # 사례 1. 서울의 어느 밀실, 기묘하게 묶인 남자 2004년, 서울의 한 주택가. 40대 남성 K씨가 자신의 방 침대 위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현장을 처음 목격한 가족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평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기괴하고도 충격적인 장면 때문이었다. K씨는 여성의 옷을 입고 있었다. 입안에는 여성용 스카프가 터질 듯이 채워져 있었고, 목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끈 자국들이 선명했다. 현장 감식 결과, 목을 조른 도구는 개 목걸이와 스카프 등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끈이었다. 마치 뱀이 똬리를 튼 듯 복잡하게 엉킨 매듭은 그가 강한 힘으로 목이 졸려 사망했음을 암시했다. 더욱이 무릎과 두 발 역시 스카프로 단단히 결박된 상태였다. 누가 봐도 고문에 가까운 타살이 의심되는 상황.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으나 가족들은 누군가에 의한 살인을 강력히 주장했다. 시신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옮겨져 부검대에 올랐다. 부검의의 칼끝이 피부를 가르자, 죽음의 원인을 가리키는 징후들이 드러났다. 얼굴 주변과 내부 장기에는 혈액이 순환하지 못해 생긴 울혈이 검붉게 뭉쳐 있었고, 안구 점막과 눈꺼풀 속, 폐 표면에서는 ‘일혈점(溢血點)’이라 불리는 좁쌀 크기의 붉은 반점들이 무수히 발견됐다. 이는 전형적인 질식사의 소견이었다. 그러나 국과원의 최종 결론은 예상을 뒤엎었다. 자살도, 타살도 아닌 ‘사고사’였다. 스스로를 결박하고 목을 조르며 성적 환각을 즐기다, 의식을 잃는 순간 줄을 풀지 못해 사망에 이른 것이다. K씨의 방은 그만의 은밀한 쾌락의 성전이자, 탈출구 없는 무덤이었다. # 사례 2. 방콕 호텔 옷장의 할리우드 스타 자기색정사는 비단 일반인들만의 일탈이 아니다. 2009년 6월, 태국 방콕의 한 고급 호텔. 영화 ‘킬빌(Kill Bill)’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으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할리우드 배우 데이비드 캐러딘(당시 72세)이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그는 호텔 방 옷장 안에 있었으며, 밧줄로 목을 맨 상태였다. 알몸이었다. AP통신 등 전 세계 주요 외신은 일제히 ‘자살’이라는 속보를 타전했다. 화려한 스타의 비극적인 최후로 사건은 종결되는 듯했다. 하지만 현장을 정밀 감식한 태국 경찰의 발표는 달랐다. “스스로 목을 맨 것은 맞지만, 자살은 아니다.” 방콕 경찰청 수사팀은 시신의 상태와 결박 방식에 주목했다. 알몸 상태에서 끈으로 신체 중요 부위와 목을 연결해 묶은 정황은 전형적인 자기색정 행위의 특징이었다. 오라퐁 시프리차 수사팀장은 “자살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성적 행위를 하다 실수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밝혔다. 유족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타살 의혹을 제기하며 미 연방수사국(FBI)에 재조사를 의뢰했고, 저명한 미국 법의학 전문가가 2차 부검을 진행했다. 그러나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타인의 침입 흔적도, 죽기 전 발버둥 친 방어흔(Defense mark)도 없었다. 그는 쾌락의 정점에서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 뇌를 속이는 치명적인 유혹, ‘저산소증’의 메커니즘 도대체 왜 사람들은 목숨을 담보로 이런 위험한 행위에 빠져드는 것일까. 법의학자와 의학 전문가들은 이를 ‘뇌의 착각’으로 설명한다. 목에 있는 경동맥을 압박하거나 흉부를 눌러 뇌로 가는 혈류량과 산소 공급을 일시적으로 줄이면, 인체는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이 과정에서 뇌는 가벼운 두통과 함께 현기증을 느끼게 되는데, 이를 몽롱한 환각 상태나 꿈을 꾸는 듯한 부유감(floating sensation)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뇌에서는 엔도르핀과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기도 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생리적 변화를 극도의 성적 쾌감으로 받아들인다. 과거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서로의 목을 조르거나 명치를 눌러 기절시키는 ‘기절 놀이’ 역시 같은 원리다. 문제는 ‘임계점(Critical Point)’이다. 뇌는 산소 부족에 매우 취약하다. 쾌락을 느끼는 지점과 의식을 잃는 지점 사이의 간격은 찰나에 불과하다. 혼자서 목을 조르거나 비닐봉지를 뒤집어쓰는 행위 도중, 예상보다 빨리 의식을 잃게 되면 스스로 결박을 풀거나 도구를 제거할 힘을 잃게 된다. 그 순간, 쾌락을 위해 설치한 장치는 살인 흉기로 돌변한다. 타이밍을 놓친 대가는 곧 죽음이다. ● 현장은 알고 있다… 타살과 사고사를 가르는 ‘매듭의 비밀’ 자기색정사는 수사기관에 큰 혼선을 준다. 겉보기에 타살이나 자살과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타살로 오인될 경우 경찰력이 낭비되고, 자살로 오인될 경우 보험금 지급 등 유가족의 권리에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현장 감식과 법의학적 분석은 진실을 규명하는 열쇠가 된다. 가장 중요한 단서는 ‘매듭’이다. 사망자는 대개 손이나 발 등 신체 일부를 묶고 있다. 법의관들은 이 결박이 ‘죽은 사람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구조인가’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아무리 복잡해 보이는 매듭이라도 혼자서 묶고 풀 수 있는 형태가 있지만, 단순해 보여도 타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매듭이 있다. 등 뒤로 묶인 손이나 복잡한 밧줄의 경로는 타살을 의심케 하지만, 시뮬레이션 결과 혼자서 가능한 범위라면 자기색정사의 유력한 증거가 된다. 사고 장소의 특수성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대부분의 시신은 가족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격리된 자기 방, 잠긴 욕실, 다락방, 지하실 등에서 발견된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어 ‘밀실’ 형태를 띤다. 또한 현장에 남겨진 소품들은 고인의 의도를 명확히 보여준다. 남성이 여성 속옷을 입거나 화장을 한 복장 도착증의 형태, 시신 주변에 널브러진 성인 잡지나 영상물, 그리고 자기 모습을 비추는 거울 등이 그것이다. 거울은 자신의 행위를 시각적으로 확인하며 쾌락을 증폭시키는 도구로 사용된다. 주로 10대에서 30대 남성에게서 많이 발견되지만, 드물게 여성의 사례도 보고된다. 국과원의 한 법의관은 “특히 여성의 경우, 현장 상황만 보면 성폭행 후 살해당한 타살 현장과 매우 유사하게 연출되는 경우가 많아 초동 수사 단계에서 형사들에게 큰 혼란을 주기도 한다”라고 전했다. ● ‘불명예스러운 죽음’… 통계조차 없는 한국의 현실 이처럼 기이한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미국에서는 매년 500명 정도가 자기색정적인 행위 도중 사고로 사망한다는 보고가 있다. 하루 평균 1.4명꼴로 발생하는, 절대 드물지 않은 죽음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아직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이는 사건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자기색정사에 대한 일선 경찰의 이해도가 낮아 단순 자살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유가족들의 침묵이다. 가족의 죽음이 성적 쾌락을 좇다 발생한 ‘사고’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유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수치심과 트라우마를 안겨준다. 망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혹은 남은 가족들의 사회적 체면을 위해 진실을 덮으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 10년 차 법의관 A씨는 “가족들은 고인이 성적 만족을 찾다가 죽은 것으로 알려지기보다는 그냥 자살을 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반기는 편”이라면서 “마지막까지 곱게 보내고 싶은 것이 가족의 마음이라 더욱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죽음의 원인을 명확히 하는 것은 실질적인 문제와도 직결된다. 생명보험의 경우, 자살(고의적 자해)은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제한되는 반면, 자기색정사는 ‘재해 사망(우연한 사고)’으로 인정받아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진실을 덮으려는 감정적 욕구와 경제적 이익 사이에서 유가족들은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쾌락은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그 본능이 생존 본능을 억누르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꽉 조인 매듭을 풀지 못한 채 홀로 맞이하는 차가운 죽음. 그것은 쾌락의 대가치고는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밀폐된 방 안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앞선 이들의 죽음은 무거운 경고를 보내고 있다.
  • “14세 딸 가슴에 보형물 넣었다 숨졌습니다”… 미성년자 성형수술 전격 금지한 멕 두랑고

    “14세 딸 가슴에 보형물 넣었다 숨졌습니다”… 미성년자 성형수술 전격 금지한 멕 두랑고

    두랑고 주의회, 만장일치로 ‘니콜법’ 통과미성년자 성형수술 의사·부모 최대 징역14세 딸 사망 후 가슴 수술 알게 된 친부“전처와 의사 남친이 사건 은폐해” 주장 14세 소녀가 가슴 확대 수술을 받은 후 사망해 파장이 인 멕시코 두랑고주(州)에서 사건 발생 2개월여 만인 지난 19일(현지시간) 미성년자 성형수술을 사실상 금지하는 법안이 주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엘파이스, 엘피난시에로 등 보도에 따르면 두랑고 주의회는 이른바 ‘니콜법’을 가결했다. 이 법안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성형수술을 시행한 의사와 부모 등 보호자에 대한 처벌을 골자로 한다. 니콜법이 발효되면 앞으로 미성년자 성형수술을 하는 의사는 6~8년의 징역형에 처해지고 해당 병원은 폐쇄될 수 있다. 책임자로 간주되는 부모는 방임 혐의로 기소돼 4~6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게 된다. 앞서 지난 9월 14세 소녀 팔로마 니콜 아레야노 에스코베도가 친부는 모르는 상태에서 가슴에 보형물을 삽입하는 수술을 받은 후 합병증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해 멕시코 전국적으로 큰 논란이 됐다. 소녀의 사망 진단서에는 ‘호흡기 질환에 의한 뇌부종’이라고 기재돼 있었다. 그러나 소녀의 친부 카를로스 아레야노는 장례식에서 딸의 시신을 보던 중 가슴이 예전보다 커졌다는 친척들의 말에 의심을 품었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딸의 몸을 살펴본 뒤 가슴 보형물과 수술 자국을 확인했고, 곧바로 부검을 요청했다. 카를로스는 “딸이 가슴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장례식장에서 처음 알았다”며 “수술 흔적을 발견하고 나서야 진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어 “전처는 딸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고 산에 있어 연락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해 딸이 코로나에 걸린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니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간 카를로스는 이미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던 딸을 마주했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딸의 수술을 진행한 성형외과 의사 빅토르가 전처의 남자친구이며, 이들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고 비난했다. 니콜의 어머니는 수술 당시 수술실 내에서 간호사 역할을 했으며, 적절한 허가 없이 이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랑고주 여당인 좌파정당 국가재생운동(MORENA·모레나) 소속 산드라 아마야 주의원은 소셜미디어(SNS)에 “미성년자 성형수술을 금지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개혁”이라며 법안 통과를 축하했다. 보수성향 국민행동당(PAN) 소속 가브리엘라 바스케스 주의원도 “두랑고에서는 사회적으로 큰 아픔이 된 비극이 있었다”며 “미성년자가 부당한 이유로 목숨을 잃은 것은 유행이나 허영심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가족적·사회적 실패의 문제이며 이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현지 당국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는 아직 진행 중이며 가해자로 지목된 니콜의 모친과 의사인 의붓아버지는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 경북도의회 문화환경위원회, 경북도문화관광공사 행정사무감사 실시

    경북도의회 문화환경위원회, 경북도문화관광공사 행정사무감사 실시

    경북도의회 문화환경위원회(위원장 이동업)는 지난 11일 경북도문화관광공사를 대상으로 2025년도 행정사무감사를 실시했다. 이날 위원들은 경북도문화관광공사의 전반적인 조직 운영, 관광정책 추진의 실효성, 민간투자 관리, 재정운영 투명성 등을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정경민 부위원장은 경주 보문관광단지 내 민간업체에 매각된 상가가 여전히 방치되어 있다고 언급하며, 쇼핑센터 유치 등 관광단지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POST-APEC을 대비하여 보문관광단지 내 미관을 저해하는 방치된 시설물을 정비하고, 공중화장실, 주차장 확충 등 이용객 편의시설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사 인사운영의 공정성 확보와 조직 안정화를 위한 인사 시스템의 명확한 기준 마련을 촉구했다. 김대진 위원(안동)은 경북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아시아권에 편중된 구조를 벗어나기 위한 전략적 마케팅 재편이 필요하며, 내국인 관광객의 경우 대구 등 경북 인접 지역 관광객뿐만 아니라, 전국 단위 관광객이 찾아올 수 있도록 차별화된 콘텐츠와 미래지향적 관광지 발굴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ESG 경영평가가 계속해서 해마다 등급이 낮은 것을 지적하며, 공기업으로서 윤리경영, 지역상생·협력 등 경영관리를 통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현 위원(구미)은 문화관광해설사 처우 개선과 청년층 참여 확대를 요구하며, APEC 이후 외국인 관광객 증가에 대비한 인력 확보와 체계적인 전문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직원들의 음주운전 등으로 인한 징계 현황을 지적하며, 복무 관리를 통한 내부 기강 확립이 필요하고 공기업으로서의 윤리의식 제고와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했다. 박규탁 위원(비례)은 2020년 이후 계속해서 영업이익률이 급감하고 있는 점을 강하게 질타하며, 2025년 기준 유보자금이 1000억원 정도있으므로 이를 활용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경영 전략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이사회 구성의 불공정성과 자문위원회의 전문성 부족 문제를 지적하며, 투명하고 합리적인 의결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임기 중 10대 공약으로 제시된 골프장 매각과 관련해 내부검토를 통한 명확한 입장 정리를 촉구했다. 연규식 위원(포항)은 동해중부선 개통에 따른 관광객 증대 효과가 주로 부산, 울산, 강릉 지역에 집중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포항·영덕·울진 등 환동해권 관광 활성화를 위한 철도 연계 관광콘텐츠를 개발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경북관광스타트업 지원사업이 이미 안정적으로 운영 중인 기업이 선정되는 것은 사업의 목적에 부적합하다고 지적하며, 성장 잠재력이 있는 신규 창업기업이 실질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사업의 취지에 맞는 선정 기준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윤철남 위원(영양)은 임직원 국외 선진지 견학이 유명 관광지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경북의 실정에 맞는 중소도시 견학을 통한 우수사례 발굴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또한 최근 3년간 공사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사업구조 개선을 통해 경영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춘우 위원(영천)은 경주 보문관광단지가 복합시설지구로 용도변경되면서 민간기업의 투자가 증가함에 따라 개발이익이 특정 업체에 과도하게 돌아가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공공기여 비율이 개발이익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만큼, 공익 환원 방안을 검토하여 공사가 민간과 공공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동업 위원장(포항)은 경주 보문관광단지 내 경북관광협회 부지를 관광객 유입을 위한 공간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이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골프장의 경우 야간 조명 보강, 식당 서비스 개선 등 이용환경 전반의 정비를 통해 고객만족도를 높일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끝으로 “이번 행정사무감사를 계기로 경북도문화관광공사가 경영철학을 재정립하고, 도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가길 바란다”라며 “공익성과 효율성을 조화시켜 경북 관광산업이 경북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업무 추진에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 “머리에 비닐봉지 쓴 채 발견된 여성 시신… 캄보디아 사기 조직 배후에”

    “머리에 비닐봉지 쓴 채 발견된 여성 시신… 캄보디아 사기 조직 배후에”

    최근 캄보디아 내 한국인 관련 범죄가 크게 늘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지난 4월 설악산에서 발견된 60대 여성의 죽음이 현지 대규모 다단계 금융조직과 연루된 것으로 전해졌다. 강원 강릉경찰서는 “부탁을 받고 살해했다”고 촉탁살인을 주장하며 자수한 50대 남성 A씨를 지난 4월 긴급 체포했다. A씨가 살해한 피해자는 60대 여성 강혜란(가명)씨로, 설악산 둘레길 인근에서 머리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쓰이고 손과 발, 입은 테이프로 결박된 상태로 발견돼 충격을 안겼다. 부검 결과 강씨의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사였으며, 약물이나 독극물의 흔적은 없었다. 강씨는 글로벌 투자기업을 표방한 G사에 근무했다. 그는 지인들에게 투자 참여를 권유해 오다 회사가 사실상 다단계 금융사기 조직임을 알게 된 뒤 심리적 압박에 시달렸고, 결국 함께 투자에 관여한 직원 A씨에게 자신을 살해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A씨는 경찰에 “함께하던 사업이 어려워져 동반 자살을 결심했고, 이에 먼저 살해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강씨를 살해하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했으나 실패해 자신만 살아남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난 18일 방송을 통해 이같은 촉탁살인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유족과 전문가들의 견해를 전했다. 강씨는 유서를 남기지 않았으며, 사망 직전까지 고추장을 담그고 지인에게 택배를 보내는 등 일상을 이어갔기 때문에 동반자살 시나리오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강씨와 A씨가 투자한 G사 배후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본거지를 둔 대규모 다단계 금융사기 조직이 존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강원일보에 따르면 G사 한국지사 대표는 정모씨로, 지난해 캄보디아 프놈펜에 10층짜리 호텔을 매입해 범죄조직의 거점으로 사용했다. 정씨는 수년 전 중국에서 불법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전력이 있으며, 이번 사건의 실질적 주범으로 지목됐다. 이 조직은 온라인 취업 사이트를 통해 자국인을 조직원으로 모집하고, 가상자산(암호화혜) 투자 및 고수익 보장을 내세워 다단계식 사기 구조를 구축했다. 피해자들은 ‘앱에 접속만 해도 코인이 쌓인다’는 홍보에 속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투자했으나, 지난 4월 전산이 마비되면서 수익금과 원금 모두 회수할 수 없게 됐다. 관련 피해자는 5000명 이상이며 피해액은 약 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정씨는 지난 7월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캄보디아 현지 거점은 국제공조 수사로 폐쇄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해외 범죄조직이 국내 개인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친 사례라고 분석했다. 특히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했다기보다 외부 압력에 의해 극단적 상황에 내몰렸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경찰은 강씨의 사망 경위와 A씨의 행적, G사와 캄보디아 사기 조직 간 자금 흐름을 추가로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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