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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철, ‘시우민 논란’ 뮤직뱅크서 러브콜 받아…“먼저 연락 왔다”

    김영철, ‘시우민 논란’ 뮤직뱅크서 러브콜 받아…“먼저 연락 왔다”

    개그맨 김영철이 KBS2 음악 프로그램 ‘뮤직뱅크’로부터 러브콜 받은 사연을 전했다. 지난 7일 유튜브 ‘성시경의 부를텐데’에 출연한 김영철은 신곡 ‘말하면 어떨까’를 열창했다. ‘말하면 어떨까’는 지난 1월 21일 공개된 김영철의 발라드 신곡이다. 김영철은 2022년 ‘내돈내산 빵’을 발매한 이후 2년 1개월 만에 가수로 돌아왔다. 김영철은 “여러 음악 프로그램을 하는 게 좋겠더라”라며 “가만히 있다가 뮤직뱅크, 음악중심, 인기가요가 들어올 것 같지도 않고”라고 말했다. 그러자 성시경은 “어떤 사람도 안 들어와”라며 “음원이 나오면 출연하고 싶다고 제안하는 거”라고 설명했다. 이에 김영철은 ‘뮤직뱅크’로부터 먼저 출연 제의 받은 사실을 밝혔다. 김영철은 “KBS 피디님이 ‘싱크로유’를 하셨는데 한번 도와 달라고 했었다”며 “그런데 그 피디님이 뮤직뱅크를 하시면서 그걸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성시경은 “길이도 2분 몇 초가 아니라 4분 10초를 다 부르게 해줬대”라며 놀라워했다. 김영철은 “원곡 그 서사, 스토리를 다 보고 싶어 했다”라며 “리허설을 한 번 하고 사전녹화까지 했다”고 전했다. 한편 ‘뮤직뱅크’는 최근 가수 시우민 출연 거부 논란에 휩싸였다. 시우민의 소속사 원헌드레드는 “KBS 측이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시우민이 함께 나올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뮤직뱅크’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시우민 소속사와 계속 소통 중”이라고 밝혔다.
  • 전영우·이영표기자 아프간 취재기/ (하)전쟁의 상흔

    *** “장가가는게 소원”. 전쟁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일상이다.그만큼 무자헤딘이나 보통 사람들 모두에게 전쟁의 상흔은 깊이 패여 있다. 호자바우딘에서 운전사로 일하는 압둘라(35)의 아내는 한쪽 다리가 없다.지뢰를 밟았기 때문이다.아프가니스탄 사람으로는 드물게 배가 튀어나온 압둘라는 항상 쾌활하게 일하며우리에게 농담을 걸곤 했다.그런데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아내에 대해 묻자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졌다.압둘라는 “몇 년 전까지 무자헤딘으로 탈레반과 싸웠지만,아내가 다리를 잃은 뒤 돈을 벌기 위해 운전사로 나섰다”고 힘없이 말했다. 길거리에서는 한쪽 다리를 잃어 목발을 짚은 채 힘없는 표정으로 걸어가는 젊은이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오랜 전쟁으로 아프가니스탄은 세계에서 지뢰가 가장 많이 매설된 나라이다. 남편은 러시아군에게,큰 아들은 탈레반에게 잃은 아이샤(60·여)는 전쟁으로 삶을 송두리째 파괴당한 대표적인 사례다. 난민촌에서 사는 아이샤는 구걸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살고 있었다.통역을맡았던 샤피쿨라 라솔리(25)는 “의과대를 다니다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학업을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아이샤 같은 여인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며,전쟁이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했다”고 말했다. 북부 다슈테칼라시 근처의 난민촌에 사는 압둘 카림(25)은“고향에서는 농부였지만 여기는 일자리가 전혀 없다”면서“한벌뿐인 옷도 윗도리만 내 것일 뿐 바지는 군복을 얻어입었다”고 말했다.카림은 “일자리도 얻고 남들처럼 장가도 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숨을 쉬었다.스물다섯살 한창 나이의 젊은이가 환갑 노인처럼 느껴졌다. 보통 사람들의 삶이 전쟁으로 파괴당했다면,무자헤딘들의가슴은 복수심으로 황폐해졌다.아버지나 형제가 탈레반에게죽음을 당한 무자헤딘들은 “가족의 복수는 당연한 것”이라면서 “한 명의 탈레반이라도 더 죽이기 위해 총을 잡았다”고 말하며 가슴을 펴곤 했다. 모하마드 조히르(23)는 “고교 졸업 뒤 카불에서 아버지,작은 아버지와 함께 무역업을 했다”면서 “작은 아버지와 사촌 형제들을 무참히 살해한 탈레반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복수는 다른 복수를 부를텐데,언제까지 복수를 위해 살 생각이냐”고 묻자 “우리의 복수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충혈된 눈을 부릅뜨며 대답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친절하고 고운 심성을 가졌다.독실한 이슬람교 신자들인 이들은 평소에는 매우 친절하고 관용적이다.자기네와 풍습이 다른 이교도들의 사소한 실수는 웃으며 용서한다.어려운 가운데도 웃음을 잃지 않는 낙천적인사람들이다.그러나 죽음을 당한 가족의 복수를 위해서 무서운 전사로 돌변했다. 그러나 전쟁의 참화 가운데도 희망은 자라고 있었다.아이들은 책도,의자도,책상도 없는 난민촌 학교의 맨바닥에 앉아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쫑긋 세운다.배움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젊은 군인들,가족을위해 ‘양(羊) 백정’이 된 농부들….전쟁이 끝나고 평화가찾아오면 이들은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살 것이다. 우리의 50여년 전 모습과 너무 닮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흙을 ‘헉’이라고 부르고,빨리빨리를 ‘빨래빨래’라고 하는 사람들.진흙 아궁이에 솥을 걸고 밥을 해먹는 사람들.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도 꿋꿋이 독립을 유지해 온 사람들.서양 기자들은 이들을 미개인으로 보는 듯했지만,우리는 그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편취강을 뒤로하고 아프간 땅을 떠나며 뭐라고 형언할 수없는 착잡함이 밀려왔다.하루빨리 전쟁이 끝나 우리가 그곳에서 만난 모든 이들이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기를 빈다. 전영우·이영표기자 ansel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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