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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드러운 매혹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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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정엽의 마음 처방] 폭염에 지친 뇌를 회복하려면

    [정정엽의 마음 처방] 폭염에 지친 뇌를 회복하려면

    우리 몸은 평소에 열을 방출해 체온을 낮춘다. 하지만 기온이 35도를 넘으면 공기 온도가 피부 온도보다 높아져 이 자연스러운 냉각 방식이 작동을 멈춘다. 오히려 바깥의 열이 몸 안으로 침투하기 시작한다. 뇌의 시상하부는 이를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인지하고 적색경보를 발령한다. 이때부터는 땀을 흘려 기화열로 체온을 낮추는 증발 시스템에 의존하게 된다. 체온 조절을 위해 뇌가 에너지를 끌어다 쓰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뇌는 뜨겁고 답답한 감각을 지속 감시한다. 땀, 갈증, 심박 증가, 피부의 끈적임 같은 내부 신호가 주의를 끌어당긴다. 뇌가 ‘너무 덥다’는 신체 신호를 처리하는 데 점유되는 것이다. 판단하고, 결정하는 데 써야 할 연료를 냉방에 소진한다. 이렇게 소진해 버린 에너지는 수면을 통해 다시 채워야 한다. 잠들기 직전 손발의 혈관이 확장되면서 몸 중심부의 열이 말초로 흘러나가고 심부 체온이 약 1도 떨어져야 잠이 시작된다. 깊은 서파 수면을 하기 위해서도 이 상태가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열대야는 이런 숙면 기회마저 뺏어버린다. 소모한 에너지도 다시 채우지 못하고 낮 동안 축적된 뇌의 노폐물도 씻어내지 못하게 된다. 폭염 속에서 이유 없이 무기력해지고, 안개 낀 듯 멍해지고, 일처리가 잘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름에 휴가가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심리학자 캐플런 부부는 우리를 사로잡는 자극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하나는 ‘거친 매혹’이다. 화려한 볼거리, 매콤한 음식과 술처럼 주의를 완전히 장악해 다른 생각이 들어설 틈을 주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부드러운 매혹’이다. 흔들리는 나뭇잎, 흐르는 물소리, 떠가는 구름처럼 힘들이지 않고 시선이 머무는 자극이다. 지친 뇌를 회복시키는 것은 오직 후자뿐이다. 전자는 주의를 붙잡을 뿐 채워 주지는 않는다. 제대로 된 여름휴가는 화려할 필요가 없다. 시원한 새벽 산책 삼십 분, 창밖의 나무를 오래 바라보는 시간,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오후. 뇌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자극이 아니라 조용한 여백이다.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분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매일 반복되는 짧은 쉼이 필요하다. 신경과학자 브루스 매큐언은 스트레스가 몸에 남기는 흔적을 ‘알로스타틱 부하’라 이름 붙였다. 스트레스 자체가 해로운 것이 아니라 회복할 시간 없이 다음 스트레스가 이어질 때 몸과 뇌에 마모가 쌓인다는 것이다. 심리학의 기본 법칙 중 하나인 ‘누적 부하의 법칙’이다. 스트레스는 크기보다 지속 시간이 더 문제다. 오전에 5분, 오후에 5분, 손을 찬물에 담그고 창밖을 보는 시간을 하루에 몇 번씩 흩어놓자. 짧아도 좋다. 다만 규칙적이어야 한다. 우리 뇌는 긴 회복 한 번보다 짧은 회복 여러 번에 더 잘 반응한다. 마지막으로 너무 더운 날에는 고향에 홀로 계신 아버지,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하자. 에어컨은 틀었는지, 물은 드시고 있는지 시시콜콜 물어보자. 더위에 지친 어르신들의 뇌는 자신이 뜨거운 상태인지, 물을 마셔야 되는 상태인지도 모를 수 있다. 정정엽 광화문숲 수면센터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숨막히는 새벽의 붉은 빛줄기…지구의 끝 ‘태양의 집’을 거닐다

    숨막히는 새벽의 붉은 빛줄기…지구의 끝 ‘태양의 집’을 거닐다

    세계 최대 분화구 ‘할레아칼라산’일출 압권… 한낮에도 色다른 절경분화구 속 크고 작은 분화구 매력마카푸우 일대 혹등고래 관찰 명소탄탈루스 전망대 일몰은 명불허전루비빛 샌디 비치는 서퍼들의 천국화산이 만든 원초적 세계, 미국 하와이주의 두 번째 여정이다. 마우이섬과 오아후섬이 목적지다. 두 섬은 모양새가 퍽 다르다. 화산이 만들었다는 것 외엔 공통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마우이는 빅 아일랜드처럼 극한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활화산은 없어도, 화산이 하와이에 남긴 풍경 가운데 가장 매혹적인 경관이 이 섬에 있다. 하와이주의 주도인 오아후섬이야 설명이 필요 없는 하와이의 대표 섬이다. 마우이와 오아후 여정에서 가장 기대한 건 사실 ‘우영우 고래’ 혹등고래와 바다거북 관찰이다. 결과적으로는 둘 다 실패했다. 그래도 그 파란 바다 아래 전설적인 동물들이 유영하고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하와이의 풍경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마우이섬은 색으로 말한다. 우주 어딘가에서나 볼 법한 색과 마주할 수 있다. 거기가 할레아칼라산이다. 둘레 33.5㎞, 지름 14㎞로 세계 최대 분화구다. 높이 3055m. 백두산과 서울의 남산을 합친 높이쯤 된다. 고도는 높아도 정상까지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봉우리에 가까워질수록 비릿한 담뱃잎 냄새도 강해진다. 물론 유황 냄새다. 산자락의 집들은 죄다 지붕에 굴뚝을 이고 있다. 아니, 웬 굴뚝? 하와이에서 난방을 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하와이의 연평균 기온은 22도 정도로 온화하다. 한데 마우이의 할레아칼라산이나 빅 아일랜드의 마우나케아산은 다르다. 고지대여서 낮에도 제법 춥다. 특히 절경으로 입소문 난 새벽 일출과 ‘스타리 스타리 나이트’를 이루는 별밤을 보려면 최소 늦가을 옷차림이 필수다. 숙소에서 대형 수건을 챙겨가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는다. 할레아칼라는 하와이어로 ‘태양의 집’이라는 뜻이다. 외계 행성에 온 듯한 휴화산 분화구는 새벽 무렵에 숨 막힐 정도로 다양한 색상의 일출을 선사한다. 하와이 사람들은 새벽에 나타나는 이 붉은 줄무늬를 ‘카헤 라’라고 부른다. 주로 시 같은 문학 작품에 흔히 쓰이는 표현이라는데 ‘새벽의 붉은 빛줄기’ 정도의 의미다. 태양이 중천으로 오르면 분화구 안에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을 빨강, 분홍, 주황 등의 색조가 드러난다. 빅 아일랜드의 킬라우에아 화산이 거칠고 남성적이라면 할레아칼라 화산은 우아하고 현란한 여성미가 압권이다. 분화구 안의 크고 작은 분화구(제주의 ‘오름’과 같다)들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봉긋 솟아올랐다. 분화구 내 토양은 형형색색으로 반짝거린다. 표면이 달과 흡사해 실제 우주비행사들의 훈련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단다. ‘슬라이딩 샌즈 트레일’(키오네히에 트레일)을 통해 분화구 안을 둘러볼 수 있다. 할레아칼라 방문자 센터 약간 아래에 있다. 트레일 길이는 16㎞ 정도다. 공원 관계자는 “키오네히에 트레일 전체가 꽤 길어서 하루 만에 완주하기는 어렵다”면서 “깊은 인상을 받을 수 있는 부분만 돌아보기를 권한다”고 밝혔다. 할레아칼라 분화구 건너편은 미 항공우주국(NASA) 천문관측소다. 차로 수월하게 갈 수 있다. 이 일대에서 굽어보는 마우이섬 전경이 일품이다. 섬 드라이브에 나선다. ‘로드 투 하나’(하나 고속도로)는 섬의 동쪽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대표적인 드라이브 코스다. 거리는 약 85㎞다. 길지는 않지만 만만히 볼 도로는 아니다. 머리핀처럼 굽은 구간이 617개, 1차선 다리가 59개, 사각지대도 수없이 많다. 제한속도가 시속 25마일(40㎞)이어서 도로 주행 시간은 평균 2시간 30분에 이른다. 현지에선 ‘이혼의 길’이라 불린다. 글쎄, 난폭운전은 잦은 다툼과 이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려나. 마우이엔 오아후만큼이나 가볼 만한 해변이 즐비하다. 카팔루아 비치가 가장 널리 알려졌다. 흔히 플레밍 비치 파크라 불리는데, 몇 해 걸러 한 번씩 ‘미국 최고의 해변’에 꼽힐 만큼 명성이 자자하다. 카아나팔리 비치 역시 ‘2003년 미국 최고의 해변’에 꼽혔다고 한다. 백사장 길이가 4.8㎞나 된다. 마우이 서쪽에 있다. 이 해변 북쪽의 푸우 케카아, 흔히 ‘블랙 록’이라 불리는 암초 지대는 스노클링 명소다. 라우니우포코 비치 파크는 아이들이 놀기 좋은 곳으로 꼽힌다. 용암석으로 둘러싸인 천연 수영장이다. 이제 오아후섬으로 넘어간다. 마우이에 ‘로드 투 하나’가 있다면 오아후엔 ‘72번 국도’가 있다. 탄탈루스, 다이아몬드 헤드, 진주만 기념공원 등 오아후의 거의 모든 명소가 이 도로에 굴비처럼 매달려 있다. 와이키키를 기준으로 가급적 오전 10시 이전에 출발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보는 게 좋다. 교통량, 주차 등에 유리하다. 하루에 다 돌아보기는 어렵다. 섬 동쪽 해안의 경우 마카푸우 전망대나 좀 더 위의 카일루아 비치 정도에서 복귀하는 게 좋다. 시내 와이키키 해변 뒤의 탄탈루스 전망대는 일몰을 겨냥해 찾아가면 된다. 해넘이 풍경이 명불허전이다. 야경도 빼어나다. 오아후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다이아몬드 헤드는 사실 우리나라에도 있다. 제주 성산일출봉이 다이아몬드 헤드와 생성 과정이 정확히 일치한다. 바다에서 화산이 만든 풍경은 매우 드물다. 성산일출봉과 하와이 다이아몬드 헤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유다. 섬 동쪽 코스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카이 전망대다. 여긴 한국인들에게 이른바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정확히는 산 중턱의 분지에 들어선 주택들이 한반도 형상과 닮았다는 곳이다. 사실 ‘한반도 지형’은 코웃음이 나올 정도의 억지춘향 작명이지만 코코헤드 분화구 풍경만큼은 아주 빼어나다. 여행객들이 자주 들르는 것도 사실 코코헤드를 보기 위해서다. 라이나 전망대는 현지의 한 잡지에서 본 사진 한 장에 이끌려 찾아간 곳이다. 제주 지질트레일 중 용머리 해안의 축소판 같다. 주름진 코코 헤드 분화구와 억겁의 풍화, 침식으로 형성된 해안 바위 지대가 멋들어지게 어울렸다. 좀 더 위의 샌디 비치 공원은 큰 파도가 자주 몰려오는 곳이다. 서퍼들이 즐겨 찾는다. 일몰 때면 연한 루비 색깔로 물드는 하늘이 황홀경을 펼쳐낸다. 오아후에서 가장 유명한 마카푸우 전망대는 동쪽 해안 끝에 있다. 사방으로 펼쳐진 풍경이 장쾌하다. 구글 지도엔 대놓고 ‘고래 관찰 명소’라고 표기했다. 주차장에서 1시간 정도 걸어 올라야 한다. 마카푸우 전망대에 오른 건 역시 혹등고래를 보기 위해서다. TV 드라마로 유명해진 이른바 ‘우영우 고래’다. 우리도 그렇지만 미국 사람들도 혹등고래와 바다거북에 아주 각별한 감정을 갖는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범고래가 혹등고래 새끼를 사냥하거나, 뱀상어가 바다거북의 등껍질을 갈가리 찢는 걸 보면 강한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낀다. 연민을 넘어 거의 동류의식에 가까운 듯하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매우 각별하게 보호 활동을 벌인다. 하와이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바다거북 곁에 약 3m 이내로 접근하지 말라는 법까지 만들었다. ‘대항해 시대’에 멸종에 이르도록 잡아먹었던 죄를 씻으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등고래는 등이 울퉁불퉁하다. 현재까지 알려진 생태는 남극 등 극지방의 어장에서 크릴새우 등을 잔뜩 먹은 뒤 지구 반 바퀴를 헤엄쳐 하와이 등 따뜻한 바다에서 새끼를 키운다. 사실 따뜻한 열대 바다엔 혹등고래가 좋아하는 크릴새우 등 먹잇감이 전혀 없다. 따뜻한 바다는 그저 새끼를 위한 보육원일 뿐이다. 마카푸우 일대의 물빛은 제주 바다와 비슷하다. 지구 끝에 온 것 같은 아름다운 빛이다. 같은 화산섬이니 당연하다. 다만 제주 바다와 달리 오아후는 파도가 거세 수영보다는 서핑 등 해양 스포츠를 즐기기에 적합하다. 열대섬 하면 연상되는 반얀트리 나무는 오아후에 세 그루 있다. 카메하메하 동상 옆, 와이키키 해변 인근, 그리고 바다거북 관찰로 유명한 노스 쇼어의 터틀베이다. 이 중 터틀베이 인근의 반얀트리가 가장 크다. 카이마나 비치는 와이키키 동쪽 끝에 있는 한적한 해변이다. 운이 아주 좋으면 하와이 특산종인 몽크 바다표범과 마주할 수 있다. 워낙 귀한 녀석이라 몽크 바다표범이 등장하면 곧바로 해변을 폐쇄하고 ‘인간’의 출입을 통제한다. 카카아코는 거리 벽화 덕에 힙스터의 성지가 된 곳이다. 9개 블록의 거리에 다양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호놀룰루 시가지에서 바닷가 쪽에 있다. 하와이를 찾는 신혼부부를 위해 현지의 전설 하나 소개한다. 하와이를 대표하는 꽃 중 하나는 나우파카다. 만개해도 쥘부채처럼 절반만 핀 듯한 형상의 꽃이다. 해변에 핀 건 나우파카 카하카이, 산에 핀 건 나우파카 쿠아히위다. 두 꽃은 각각 나우파카 공주와, 그의 약혼자이자 어부인 카우이의 화신이다. 카우이의 사랑을 갈망했던 ‘불의 여신’ 펠레가 둘을 질투해 각각 산과 해변에서 자라게 갈라놨다고 한다. 하와이의 연인들은 종종 완전한 사랑을 꿈꾸며 각자의 팔뚝에 두 꽃을 문신으로 나눠 새긴다. 두 꽃을 표현한 거리 벽화, 액세서리도 흔히 볼 수 있다. ■ 여행 수첩 -하와이 모든 지역의 출입 절차가 예전보다 복잡하고 까다로워졌다. 입장료도 비싼 편이다. 특히 마우이섬의 할레아칼라는 돈이 있어도 못 들어갈 수 있다. 하루 입장객과 차량 수를 제한한다. 할레아칼라로 가는 도로(Hy. 378)는 일출 예약제로 운영된다. 24시간 연중무휴이지만 매일 오전 3시부터 7시까지는 예약자 외에 공원 출입이 제한된다. 일출 관람객이 많을 경우 추첨을 하기도 한다. 누리집(www.recreation.gov)에서 2개월 전 예약이 필수다. 예약 수수료 1달러, 입장료는 자동차 한 대당 30달러다. 패스는 3일 연속 유효하다. 방문 48시간 전 오전 7시에 추가 티켓을 판매하긴 하나, 하와이 가기 전에 예약해 두길 권한다. 할레아칼라 일대에서 오래 머물 계획이라면 음식과 음료를 충분히 챙겨야 한다. 음식점은 물론 편의점도 없다. -할레아칼라의 아름다운 색이 담긴 사진은 한낮에 촬영해야 한다. 일출, 일몰 전후엔 분화구가 그늘에 가려 암석의 색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 사이를 권한다. -마우이는 12~4월 혹등고래가 몰려드는 세계적 명소다. 1~3월이 절정으로 알려졌다. 마우이와 몰로카이, 라나이섬 사이의 아우 해협이 유명하다. 호오키파 비치 공원에선 바다거북을 볼 가능성이 높다. 오아후에선 마카푸 전망대가 고래 관찰 명소, 바다거북이 자주 출몰하는 곳은 노스 쇼어 일대다. -진주만 기념관에선 속이 보이지 않는 가방을 들고 들어갈 수 없다. 소지품 보관함에 맡겨야 한다. 핵심 시설인 애리조나 기념관, 미주리호, 태평양 항공 박물관, 보우핀 잠수함 등은 오가는 셔틀과 보트 등의 예약이 필수다.
  • 행여 전해지지 못할까… 선비들의 진심 꾹꾹 눌러 담은 낭만 편지[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행여 전해지지 못할까… 선비들의 진심 꾹꾹 눌러 담은 낭만 편지[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느릿하게 걷기 좋은 ‘소나무숲’500년 고목 등 870여 그루 장관서원 정문 죽계천 흐르는 ‘경렴정’퇴계 이황·주세붕 풍류 즐기기도선비 하루 중요 일과였던 편지 쓰기꼬리에 꼬리 물고 안부 인사 이어져사람 걸음과 같은 속도로 전한 마음연애편지 같은 서정적 표현에 눈길소수서원(紹修書院) 소나무 숲을 거닐고 있습니다. 경북 영주시에 있는 소수서원은 소수박물관에서 열리는 ‘안부-간찰에 얹어 보내는 사계절’이라는 전시를 보기 위해 찾았습니다. 간찰은 조선시대 편지를 부르던 말입니다. 옛 선비들은 하루에 따로 시간을 정해둘 만큼 편지 쓰기에 진심이었다지요. 지난봄에 시작한 전시는 어느덧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에 다다랐습니다. 수백 년 전 편지가 저를 향한 것은 아닐 테지만, 그들이 주고받은 안부가 한 해 끝의 저에게 온기가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12월의 소나무숲에서 홀린 듯 길에서 벗어나 숲 안쪽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선비의 팔자걸음으로 느릿하게 걷고 있자니 점차 사념이 사라집니다. 코끝은 시린데 정신은 맑습니다. 괜스럽던 조바심을 다잡습니다. 소수서원의 고즈넉한 소나무 숲을 좋아합니다. 옛사람의 ‘안부’ 편지를 핑계 삼았지만 겨울 숲을 오고 싶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서원을 건립하면서 조성한 송림은 500년 가까이 된 고목을 비롯해 870여 그루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 수치를 일일이 재고 헤아릴 수 없지만 푸른 숲이 주는 평안은 12월이라 한층 값집니다. 소나무와 소나무 사이를 거닐다 서원 서쪽 담과 접한 영귀봉에 오릅니다. 거북이가 알을 품은 모양의 낮은 언덕은 그저 숲 가운데 조금 높은 정도지요. 그런데도 담장 너머 서원의 전경이 보입니다. 영귀봉에는 서원 이전에 있던 옛 숙수사의 별대 초석이 소혼대를 가리킵니다. 소혼(消魂)은 글자 그대로 풀면 ‘넋이 나간다’는 의미겠습니다. 옛 중국의 문인 강엄의 ‘별부’에서 인용했는데 이별의 깊은 슬픔을 뜻하는 구절입니다. 소혼대는 유생들의 쉼터로, 서원을 오가던 이들이 이별의 정을 나누기도 한 장소지요. 제게는 한해의 끝과 다음 해의 시작 사이에 존재하는 틈새 인양합니다. 일 년이 쏜살같이 지났습니다. 1월에 띄워 보낸 바람들이 어디쯤 다다랐을까요. 또 얼마만큼 이뤄졌을까, 한 해를 잠시 되돌아봅니다. 서원 정문 앞에서는 경렴정에서 걸음이 멎습니다. 동쪽으로는 죽계천이 흐르고 물 건너 취한대가 매혹하네요. 소수서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가운데 맏형에 해당하지요. 풍기군수를 지낸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을 세웠고, 퇴계 이황이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소수서원이라 불립니다. 두 사람 모두 경렴정에서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권돈인 또한 순흥에 귀양 와서 취한대와 죽계천을 보며 세한도를 그렸습니다. 세한도는 절친한 벗이었던 김정희의 그림이 더 잘 알려져 있지요. 그의 세한도에는 권돈인의 발문이 있고요. 두 사람의 유배 시기와 장소는 달라도 오가는 편지에는 세한의 시절을 지나는 동병상련이 있었겠습니다. ●오전 11시는 편지의 시간 소수서원은 강학당과 문성공묘가 중심을 이룹니다. 강학당 뒤편으로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 안향과 서원을 세운 주세붕 등의 영정이 있는 영정각, 유생들의 기숙사 학구재와 지락재 등이 있지요. 제사를 지내는 문성공묘는 강당에 해당하는 강학당 서쪽입니다. 서원을 좀 다녀본 이들은 그 구조에 의아해합니다. 서원은 앞쪽에 배움 공간을, 뒤쪽에 사당을 두고 중심축으로 삼고 좌우로 건물을 두는 게 기본입니다. 소수서원의 배치는 지형에 기대 자유롭습니다. 서원의 틀이 잡히기 전에 들어선 ‘최초’의 또 다른 증거겠습니다. 오늘은 경내를 가로지르는 대신 경렴정 앞에서 서원둘레길을 택합니다. 죽계천 징검다리를 건너고 취한대와 광풍대를 지나는 구간은 15분 남짓합니다. 계절과 무관하게 걷기 좋은 길입니다. 박물관에 가까워지자 ‘안부’의 전시를 알리는 가로등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네요. 소수박물관은 크게 본관과 별관으로 나뉩니다. ‘안부-간찰에 얹어 보내는 사계절’ 전시(2026년 2월 27까지)는 별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 전시물부터 호기심이 입니다. 조선 후기 선비 윤최식이 ‘일용지결’에 기록한 선비의 시간표입니다. 일과 가운데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사이에 해야 할 일이 단연 눈길을 끕니다. ‘지인과 친구에게 편지쓰기’입니다. 옛 선비는 편지를 하루의 중요한 일로 여겼던 듯합니다. 그러고 보면 선비의 하루에는 이렇다 할 오락이 없습니다. 부모님께 문안 인사를 드린 후에는 독서나 글을 쓰고 손님을 맞거나 집안일을 돌보는 게 전부입니다. 인터넷도, 넷플릭스나 유튜브도 없던 시절, 어쩌면 편지는 삶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려는 꼿꼿한 선비의 부드러운 몸짓 같기도 합니다. 편지 쓰는 방법을 소개한 서식집이 있었다는 것 역시 흥미롭네요. 유교 중심 사회였으니 상대방이나 목적에 따라 편지의 격식이 중요했겠지요. ‘구소수간’은 중국 북송 시대, 우리에겐 소동파로 유명한 소식이 구양수와 나눈 편지를 모은 책입니다. 세종대왕이 왕자 시절에 수십 번 읽은 책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그리고 조선 철종 때 나온 ‘간독정요’는 그 사례를 계절별, 열두 달로 나눠 적절한 표현을 수록했고요. 영주 지역의 편지 모음집으로는 괴헌고택 소장 간첩을 전시합니다. 괴헌고택의 선조 김영이 주고받은 201통의 편지를 12권의 책으로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계절별로 묶은 책은 춘하추동이 아닌 주역의 원형이정(元亨利貞)으로 구분한 게 이채롭습니다. ●멀리 사모하는 마음 이길 수 없어 옛 선비의 편지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도 합니다. 김종덕은 이상정에게 천연두로 인해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을 전합니다. 몇 해 전 코로나19 팬데믹을 떠올리게 하는 편지입니다. 다시 이상정은 최홍원에게, 최홍원은 이상정의 아우 이광정에게 안부 편지를 씁니다. 안부는 상대가 편안히 잘 지내는지 혹은 그렇지 아니한지를 묻는 일입니다. 더불어 상대가 무탈하기를, 별일 없이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평안을 기원하는 축복과 축원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편지에 선물을 더해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광정은 부채 선물을 같이 보내며 ‘제가 잊고 있지 않다는 뜻을 당신께서는 생각해주시겠지요’라고 썼습니다. 이황은 국화 화분을 선물 받고 ‘말할 수 없이 감격스럽다’ 답장합니다. 저는 옛 선비의 편지가 너무도 서정적이어서 놀랍니다. 요즘으로 치면 연애편지에 나올 법한 고운 문장과 낭만적인 표현들은, 말이 아닌 글이어서 행여 전해지지 못할까 싶은 감정을 꼭꼭 눌러 써나갔다는 걸 알게 합니다. 몇 번이고 곱씹어 내뱉는 조심스러운 고백처럼 말이지요. 당대의 대학자 정구는 조목에게 보낸 봄날의 편지에서 ‘멀리서 사모하는 마음 이길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나학천은 어느 해 여름 편지에 ‘우러러 바라보니 그리운 마음 여러분께 치달아 나도 모르게 근심이 쌓인다’라고 적었고요. 문자나 메일이 실시간으로 세상을 연결하는 요즘과 비교하면, 서로를 향한 마음은 사람의 걸음과 같은 속도로 옮겨갔겠습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이 걸리기도 했겠지요. 그래서 옛 편지는 가로와 세로를 구분 짓지 않고 남은 칸을 빼곡하게 채워 써나갔을까요. 글자 하나 허투루 적지 못하였겠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 희로애락이 더디게 가닿았겠습니다. 선비는 명예나 재물 따위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라지요. 그들의 편지를 빌려 유유한 삶을 배웁니다. 그 가운데 당신에게 전하고픈 편지글 하나를 옮겨 적으며, 2025년의 마지막 안부를 전합니다. ‘연말이 멀지 않으니 당신 집의 경사가 시냇물이 바야흐로 이르는 것처럼 무성하기를 바랍니다.’ ●선비세상에서 백남준을 만나다 소수서원 곁에는 선비촌이 있고 또 선비촌은 ‘선비세상’과 이웃합니다. 선비세상은 한옥, 한복, 한식, 한지, 한글, 한음악의 6개 주제를 체험할 수 있는 테마파크입니다. 선비다례원에서 다도를 즐기거나 한지뜨기 공방에서 한지 만드는 체험 등을 할 수 있습니다. 한지뜨기 공방이 있는 한지촌은 고비가 숨은 볼거리입니다. 고비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편지 등을 꽂아두던 일종의 편지함이자 서류함입니다. 방이나 마루의 벽에 걸어 사용했습니다. 대나무, 오동나무 등을 조각해 만드는데 다채로운 문양의 고비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선비세상 기획 전시를 놓칠 수 없겠습니다. 얼마 전 시작한 ‘백남준의 선비정신–붓에서 전자까지’(2026년 2월 28일까지)는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 작가의 원화, 드로잉, 판화 연작 등 약 40점을 전시합니다. 백남준의 작업은 미디어아트라는 형식을 취하지만 그 바탕에는 한국적인 선비의 사유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를 대변하듯 전시실의 첫 작품은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백남준의 사진입니다. 스스로 작품의 뿌리를 선언하는 듯합니다. 맞은편 ‘TV풍경’은 세 개의 직사각형을 붓으로 그린 작품이라 특별합니다. 직사각형은 텔레비전 수상기를 상징하지요. 흰 면에 검은 수묵만으로 색깔 없이 생동하는 그림입니다. 선비세상 입장객은 무료 관람이 가능해 백남준의 작품 감상만으로 입장료가 아깝지 않습니다. ●성혈사 꽃살문에 마음을 기대 서서 소수서원과 선비세상을 돌아보고는 정해진 코스처럼 꼭 다녀와야 하는 곳이 있습니다. 영주에 있는 또 하나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부석사입니다. 굳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최순우 지음, 학고재)를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가 찬양하는 우리나라 목조 건축의 백미입니다. 범종각 계단을 오르며 사선으로 방향을 튼 안양루와 무량수전을 바라보는 순간은 가히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무량수전 앞에 있는 석등을 등지고 해 질 녘 소백산을 바라보는 것 또한 누군가의 버킷리스트일 겁니다. 부석사 말고도 소수서원 인근에는 꼭 들러야 하는 또 하나의 사찰이 있습니다. 성혈사는 부석사나 소수서원의 명성에 가린 영주의 숨은 보석입니다. 정면 3칸, 옆면 1칸의 단층 맞배지붕 건물은 얼핏 보기에는 큰 특징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나한전의 꽃살문이 가까워질수록 그 진가가 빛을 발합니다. 세 짝의 꽃살문은 격자로 무심하게 선을 그은 문살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널판을 통째로 파고 깎아 새긴 연꽃과 동자승, 물고기와 용, 두루미, 모란 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입니다. 유서 깊어 문화재가 많은 도시 영주가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더 큰 대접을 받지 않았을까요. 성혈사는 부석사와 마찬가지로 의상대사가 세웠다 합니다. 나한전은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법당이고요. 1553년에 처음 지었고 1634에 다시 지었다 하지요. 다만 꽃살문은 언제 누가 지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때로는 알 수 없어 더 신비로운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아름다움은 시간이 쌓일수록 더 빛나곤 합니다. 햇살이 뉘엿해질 때까지 꽃살문을 오래도록 바라보다 돌아섭니다. ■ 여행수첩 ● 소수서원 -오전 9시~오후 5시(11~2월), 오전 9시~오후 6시(3~5, 9~10월) 오전 9시~오후 7시(6~8월), 연중무휴
  • 뮤지컬 무대 떠오른 K팝 스타

    뮤지컬 무대 떠오른 K팝 스타

    지난달 31일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이 열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은 K팝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커튼콜 때 주인공 그윈플렌 역을 맡은 인기 아이돌 그룹 NCT127 멤버 도영이 무대에 올라 이 작품의 가장 유명한 넘버 ‘그 눈을 떠’를 열창하자 팬들은 극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객석에는 일명 ‘대포 카메라’라고 불리는 전문 카메라까지 등장했고 일본, 중국 등 해외 팬들도 눈에 띄었다. ●무대 적응 빠르고 국내외 새 관객 유입 전 세계를 누비던 K팝 스타들이 뮤지컬 시장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과거에도 아이돌의 뮤지컬 출연은 적지 않았지만 최근 대형 뮤지컬의 주연으로 발탁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K팝 가수들은 연습생 때부터 다년간 춤과 노래, 연기 등을 훈련받은 경우가 많아 무대 적응이 빠를 뿐만 아니라 국내외 새로운 관객들을 유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NCT 도영 ‘웃는 남자’ 팬들 열띤 환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웃는 남자’는 총 175억원이 투입된 창작 뮤지컬이다. 얼굴에 기괴한 미소가 새겨진 채 살아가지만 순수한 내면을 간직한 그윈플렌의 삶과 성장을 그린다. 2021년 뮤지컬 데뷔작인 ‘마리 앙투아네트’ 이후 4년 만에 ‘웃는 남자’의 주연을 꿰찬 도영은 부드러운 미성과 풍부한 표정 연기로 소년에서 자신만의 신념을 찾아가는 인물의 복잡다단한 서사를 설득력 있게 소화했다. 올해 데뷔 20년차를 맞는 그룹 슈퍼주니어의 규현도 그윈플렌 역을 맡아 번갈아 무대에 오르고 있다. ●마마무 솔라 ‘마타하리’ 더블캐스팅 걸그룹 마마무 출신 솔라도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마타하리’에 옥주현과 더블캐스팅됐다.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스파이 마타하리는 고난도의 안무는 물론 노래와 연기 실력이 필요한 역할이다. 2022년 이 작품으로 뮤지컬에 데뷔한 솔라는 이번 시즌에서 한결 완숙해진 기량을 뽐냈다. 솔라는 “가수 솔라로만 살았는데 무대에서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산다는 점이 짜릿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양요섭 ‘베르테르’ 등 다양한 작품 25주년을 맞은 뮤지컬 ‘베르테르’에는 그룹 하이라이트의 메인 보컬 양요섭이 베르테르 역으로 출연 중이다. 2011년 뮤지컬 ‘광화문연가’로 데뷔한 양요섭은 ‘조로’, ‘로빈훗’, ‘신데렐라’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뮤지컬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룹 B1A4 출신 신우는 다음달 3일까지 대학로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에서 전쟁의 후유증으로 공황 상태에 빠져 여신님을 믿는 북한군 류순호 역을 맡아 관객들과 만난다. 걸그룹 ‘우주소녀’의 연정과 수빈도 꾸준히 뮤지컬에 출연하고 있다. 연정은 2022년 뮤지컬 ‘리지’를 시작으로 ‘사랑의 불시착’ 등에 출연했고, 뮤지컬 ‘알로하, 나의 엄마들’로 데뷔한 수빈은 지난해 ‘그레이트 코멧’에 출연하기도 했다. ●4월 한국과 일본서 ‘드림하이’ 개막 오는 4월에는 화려한 K팝 퍼포먼스를 내세운 쇼뮤지컬 ‘드림하이’가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개막한다. 드라마 ‘드림하이’에서 배우 김수현이 맡았던 송삼동 역에 가수 세븐, 그룹 아스트로의 진진이 양국 무대에 동시 출연하며 한국에서는 갓세븐의 영재가 출연한다. 이 작품에는 방탄소년단, 세븐틴, 트와이스 등 K팝 가수들의 안무를 담당한 안무가 최영준이 참여했고, 방송인 박경림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다. 박경림은 10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K팝의 중심인 퍼포먼스와 댄서가 중심이 된 쇼뮤지컬”이라면서 “꿈을 꾸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하는 뮤지컬”이라고 소개했다.
  • 아콜레이드 와인, 연말연시 맞아 ‘잉크 컬렉션’ 와인 프로모션 실시

    아콜레이드 와인, 연말연시 맞아 ‘잉크 컬렉션’ 와인 프로모션 실시

    깊고 진한 맛과 벨벳 같은 질감을 소비자에게 집중 전달 예정 글로벌 와인 그룹 아콜레이드 와인이 연말연시를 맞아 ‘잉크 컬렉션(Ink Collection)’ 와인 프로모션을 실시하고 있다고 20일 밝혔다. 아콜레이드 와인은 이번 프로모션을 통해 잉크 컬렉션의 깊고 진한 맛과 벨벳 같은 질감을 소비자에게 집중적으로 전달하며, 와인 애호가들에게 그 매력을 알릴 계획이다. ‘잉크 컬렉션’은 호주를 대표하는 바로사 밸리와 쿠나와라 지역의 프리미엄 풀바디 레드 와인이다. 그 이름처럼 진하고 강렬한 색상과 입안을 가득 채우는 풍부한 풍미를 자랑하며, 숙성 없이도 깊이 있는 맛과 부드러운 질감을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바로사 잉크 쉬라즈’는 블랙베리, 자두, 그리고 은은한 바닐라 향이 어우러져 복합적인 매력을 선사하며, ‘바로사 잉크 카베르네 소비뇽’과 ‘쿠나와라 잉크 카베르네 소비뇽’은 균형 잡힌 타닌과 긴 여운을 남기는 뛰어난 구조감으로 유명하다. 비비노 와인 커뮤니티에서는 ‘바로사 잉크 쉬라즈’가 2만 원대 호주 와인 1위에 선정되며 많은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가격과 고품질을 동시에 갖춘 와인으로 인정받았다. 이번 프로모션은 잉크 컬렉션의 특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잉크 스플래시 라벨과 함께 진행된다. 마치 잉크를 뿌린 듯한 디자인은 와인의 강렬함과 예술적인 감각을 동시에 강조하며, 라벨을 보는 순간 깊고 진한 맛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아울러 아콜레이드 와인은 전국 주요 판매처에서 매장별로 시음 행사도 진행한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직접 잉크 컬렉션의 풍부한 풍미를 경험하고, 각 와인의 개성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시음 행사에서는 와인의 맛과 향을 극대화하는 페어링 팁도 제공되며, 가정에서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와인 경험을 제안할 예정이다. 아콜레이드 와인 관계자는 “이번 프로모션은 잉크 컬렉션의 진하고 매혹적인 맛을 강조하고, 소비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 기획됐다”라며 “가성비 좋은 프리미엄 와인으로서 잉크 컬렉션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주요 판매처는 전국 홈플러스, 롯데마트, 보틀벙커, 그리고 GS25 등이다.
  • 한국어는 없었지만… “매혹적인 동시에 잔혹함” 스웨덴어로 짧지만 깊은 소개

    한국어는 없었지만… “매혹적인 동시에 잔혹함” 스웨덴어로 짧지만 깊은 소개

    검정 드레스 입고 네 번째 수상자로서툰 한국어 대신 “디어 한강” 불려스웨덴 국왕 수여한 메달·증서 받아2018년 수상자 토카르추크와 ‘포옹’양피지로 만든 증서, 오직 문학상만 10일(현지시간) 오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 한강(54)은 예상대로 검은 드레스를 입고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에는 검은색 클러치 백이 들려 있었다. 한국인 처음으로 노벨상 시상식장에 깔리는 ‘블루 카펫’을 밟는 순간이었다.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을 비롯해 시상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존 홉필드(91)가 직원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이동했고 나머지 수상자들은 뒤를 따랐다. 클러치 백을 등뒤편 의자에 놓느라 한강은 수상자 중 유일하게 의자 등받이에 기대지 않고 시상식 내내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앉아 있었다. ●한강, 의자에 기대지 않고 꼿꼿이 앉아 물리·화학·생리의학상 시상이 끝나고 문학상 차례가 됐다. 앞선 수상자들의 업적이 영어로 소개됐던 것과 달리 문학상은 관례에 따라 스웨덴어로 설명됐다. 스웨덴 한림원 종신 위원인 엘렌 마트손이 스웨덴어 연설을 통해 한강의 문학 세계와 그 의의를 짧지만 깊이 있게 짚었다. 마트손 위원은 “(소설 속) 한강의 목소리는 매혹적으로 부드러운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잔혹함과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말한다”면서 “그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상처 입고 연약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나약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다른 질문을 하기 위한, 또 다른 생존자의 증언을 듣기 위한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관례대로라면 마지막 문장은 한국어여야 했다. 그러나 마트손 위원은 “친애하는(Dear) 한강”이라며 영어를 썼다. 마트손 위원이 서툰 한국어에 부담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한강은 이름이 불린 뒤 바로 국왕 앞으로 나와 노벨문학상 증서와 메달을 받았다. 장내에서는 기립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상식 뒤에도 여운은 가시지 않았다. 한강을 비롯한 수상자들은 한참 단상을 지키며 악수하고 인사하고 포옹했다. 이번 시상식을 함께한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폴란드 소설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단상에서 한강을 와락 껴안기도 했다. 과거 한강이 폴란드에서 북토크를 열었을 때 토카르추크가 진행을 맡았던 적이 있을 정도로 둘은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벨 이름 밑 금색으로 한강 영문 이름 이날 한강이 받은 문학상 증서는 다른 증서와 달리 양피지로 제작됐다. 올해 문학상 증서에는 ‘스웨덴 한림원’(SVENSKA AKADEMIEN)과 알프레드 노벨의 이름 아래 한강의 영문 이름이 금색으로 새겨졌다. 시상식 중간중간 이어진 연주는 요하네스 구스타브손이 지휘하는 스톡홀름 왕립 필하모닉 관현악단이 맡았다. 노래는 스웨덴 소프라노 잉엘라 브림베리가 했다. 한강이 메달을 받은 직후에는 영국의 여성 오보에 연주자 겸 작곡가 루스 깁스가 작곡한 ‘암바르발리아’가 연주됐다.
  • “매혹적인 부드러움, 돌이킬 수 없는 상실”…노벨상 품에 안은 한강

    “매혹적인 부드러움, 돌이킬 수 없는 상실”…노벨상 품에 안은 한강

    10일 오후 4시(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 한강(54)은 예상대로 검은 드레스를 입고 시상식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에는 검은색 클러치도 들려 있었다. 한국인이 처음으로 노벨상 시상식장에 깔리는 ‘블루 카펫’을 밟는 순간이었다.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을 비롯해 시상식에 참가한 모든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존 홉필드(91)가 직원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이동했고 한강을 비롯한 나머지 수상자들이 뒤를 따랐다. 단상을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 왼쪽부터 물리학상·화학상·생리의학상·문학상·경제학상 수상자 순으로 자리에 앉는다. 한강은 왼쪽에서 아홉 번째 의자에 착석했다. 클러치를 의자 뒤쪽에 놓느라 한강은 수상자 중에서 유일하게 의자 등받이에 기대지 않고 시상식 내내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앉아 있었다. 물리·화학·생리의학상 시상이 끝나고 문학상 차례가 됐다. 앞선 수상자들의 업적이 영어로 소개됐던 것과 다르게 문학상은 관례에 따라 스웨덴어로 설명됐다. 스웨덴 한림원 종신 위원인 엘렌 맷슨이 스웨덴어 연설을 통해 한강의 문학세계와 그 의의를 짧지만 깊이 있게 짚었다. 맷슨 위원은 “(소설 속) 한강의 목소리는 매혹적으로 부드러운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잔혹함과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말한다”면서 “그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상처 입고 연약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나약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다른 질문을 하기 위한, 또 다른 생존자의 증언을 듣기 위한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예정대로라면 연설 마지막에 한국어가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맷슨 위원은 한국어 대신 영어로 “친애하는(Dear) 한강”이라며 한강을 스웨덴 국왕 앞으로 불렀다. 맷슨 위원이 서툰 한국어에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노벨상 시상식에서 한국어가 울려 퍼지는 일은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한강은 바로 국왕 앞으로 나와 노벨문학상 증서와 메달을 받았다. 장내에서는 기립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상식이 끝난 뒤에도 여운은 가시지 않았다. 한강을 비롯한 수상자들은 한참 단상을 지키며 악수하고 인사하고 포옹했다. 이번 시상식에 참석한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폴란드 소설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단상에서 한강을 와락 껴안기도 했다. 과거 한강이 폴란드에서 북토크를 열었을 때 토카르추크가 진행을 맡았던 적이 있을 정도로 둘 사이는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한강은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121명 가운데 여성으로는 18번째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아시아인으로는 일본계 영국인 가즈오 이시구로를 제외하고 2012년 중국 소설가 모옌 이후 12년 만이고 아시아 여성으로만 따지면 최초의 수상이다. 한국인 중에서는 2000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평화상의 시상식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리기에 스톡홀름에서 노벨상을 받은 건 한강이 처음이다. 시상식 직후 한강은 노벨 재단이 마련한 성대한 만찬에 참석했다. 지난 7일 많은 이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강연 ‘빛과 실’에 이어 만찬에서도 수상과 관련한 짧은 연설의 기회가 주어질 예정이다.
  • [이명옥의 창조성과 사랑] 르누아르의 여성 취향/사비나미술관장

    [이명옥의 창조성과 사랑] 르누아르의 여성 취향/사비나미술관장

    인상주의 대표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걷는 법을 알기 전부터 이미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이 말은 르누아르의 예술관을 잘 나타낸다. 그의 작품은 여성의 아름다움과 관련 있다. 특히 여성적 관능미를 강조한 작품들을 통해 삶의 행복과 즐거움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의 인물화와 누드화의 주인공이 대부분 아름다운 여성이었던 이유가 있다. 그 자신이 여성을 좋아한 데다 미인 그림은 수집가나 구매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르거나 날씬한 체형이 아니라 부드러운 젖가슴과 큰 엉덩이를 가진 통통한 몸매의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느꼈다. 알린 빅토린 샤리고는 그런 르누아르의 미적 취향에 딱 맞는 여성이었다. 1880년 39세의 르누아르는 재봉사인 18세 연하의 샤리고를 만나 첫눈에 반했다. 그녀는 르누아르가 꿈꾸는 완벽한 여성이었다. 샤리고는 금발과 장밋빛 뺨, 맑고 투명한 피부, 건강한 식욕을 가진 풍만한 몸매의 처녀였다. 르누아르는 21세 처녀의 빛나는 아름다움과 편안한 분위기에 매혹돼 모델이 돼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샤리고는 르누아르가 가장 좋아하는 모델이자 뮤즈, 연인이 돼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뱃놀이 일행의 점심’, ‘시골의 무도회’를 비롯한 많은 그림에 등장해 불멸의 존재가 됐다. 르누아르의 아들 장의 증언에 따르면 샤리고를 만난 이후 르누아르의 그림에 나오는 모든 여성은 샤리고와 비슷한 외모를 가진 둥글고 부드러운 곡선미를 가진 모습으로 그려졌다. 1890년 4월 14일 르누아르는 첫아들 피에르를 낳고 자신에게 헌신한 샤리고와 결혼했다. 지금 소개하는 샤리고의 초상화는 동거 중인 두 사람이 1885년 여름 프랑스 남부 샹파뉴 지방에 위치한 샤리고의 고향 마을인 에수아예를 방문했을 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밝고 온화한 빛이 가득한 배경과 꽃으로 장식된 샤리고의 밀짚모자, 그녀가 착용한 품이 넉넉하고 단순한 디자인의 재킷은 소박하고 평화로운 시골 분위기를 자아낸다. 르누아르는 독창적 화풍의 특징인 밝고 화려한 색채 감각과 부드럽고 섬세한 붓 터치를 활용해 샤리고의 뺨을 물들인 홍조를 생생하고도 매혹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절대적인 사랑의 증거이자 자신의 예술과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여성이었던 샤리고의 초상화를 팔지 않고 평생 간직했다.
  • [이명옥의 창조성과 사랑] 팔지 않고 평생 간직한 그림/사비나미술관장

    [이명옥의 창조성과 사랑] 팔지 않고 평생 간직한 그림/사비나미술관장

    17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나는 독신으로 살면서 금욕적인 생활을 할 자신이 없어 재혼하기로 결심했네. … 내가 붓을 들고 있어도 얼굴 붉히며 창피해하지 않는 여자를 아내로 선택했지. 나이 든 귀족 여성을 아내로 삼은 대가로 소중한 자유를 잃고 싶지 않으니까.” 루벤스는 궁정화가, 인문학자, 외교관으로 유럽 전역에 명성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당대 가장 부유한 미술가였다. 그는 부와 명예를 모두 가졌지만 첫 번째 부인 이사벨라 브란트가 38세로 생을 마감하자 깊은 상심에 빠졌다. 그러나 4년의 세월이 지난 1630년 53세의 루벤스는 인생 최고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자신보다 37세나 어린 16세의 헬레나 푸르망과 재혼한 것이다. 루벤스의 고향 앤트워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헬레나의 미모와 젊음, 관능미는 창작의 영감을 크게 자극했다. 루벤스는 청춘의 에너지와 활력을 되찾으며 새로운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림의 주제와 크기, 화풍도 바뀌었다. 현대 예술가는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 작품을 만들지만 17세기는 부유한 고객들의 주문을 받아 미술품이 생산되던 시대였다.유럽의 왕실, 귀족, 교회는 인기 화가인 루벤스에게 역사, 종교, 신화적 주제의 대작을 주문했다. 루벤스는 자신이 운영하던 공방에서 많은 조수, 제자들과 의뢰받은 작품들을 공동 제작 방식으로 완성했다. 헬레나가 24세 때 모델을 섰던 실물 크기의 이 초상화는 주문 제작 방식이 아니라 화가 자신의 개인적 즐거움을 위해 그려졌다. 루벤스에게 헬레나는 사랑과 욕망, 매혹의 대상이었다. 진주처럼 빛나는 그녀의 얼굴과 장밋빛으로 물든 뺨, 금발의 곱슬머리, 희고 부드러운 피부와 어둡고 거친 털의 대비, 풍만한 가슴을 들어 올린 손동작에서 화가의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루벤스는 자신이 가장 아꼈던 아내의 초상화를 평생 간직했다. 1640년 63세로 사망한 루벤스의 유언장에는 이 그림은 절대로 팔아서는 안 되고 아내에게 유산으로 남긴다고 적혀 있었다. 헬레나는 남편의 마지막 소원을 성실히 지켰고 1673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림을 소장했다.
  • 부드럽고 달콤한 가지각색 반전매력 [이미경의 슬기로운 집밥 생활]

    부드럽고 달콤한 가지각색 반전매력 [이미경의 슬기로운 집밥 생활]

    호불호(好不好). 사람마다 좋고 싫음이 극명하게 갈려서 의견이 분분하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된다. 밥상에 오르는 식재료 중에서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여름에서 초가을까지가 제철인 가지다. 가지가 왜 싫을까? 물컹물컹해서 싫고, 아무 맛이 나지 않아서 싫고, 요리 뒤 거무튀튀한 색감이 싫고, 향취도 싫으니 가지는 가지이기 때문에 싫은 것이다. 그럼, 가지가 왜 좋을까? 살이 통통하게 올라 겉은 질겨 보여도 속은 부드러우며 달큼한 맛이 나서 좋고, 칼로리가 적으니 배불리 먹어도 살찔 걱정이 없으며 요리법에 따라 다양한 맛으로 변화되고 우리 식탁에서 흔하지 않은 고운 빛깔까지 갖고 있으니 가지는 가지라서 좋은 것이다. 가지를 호(好)하는 입장에서 8월에 가지 예찬은 꼭 필요하다. 5, 6월에 보라색의 가지 꽃이 매혹적으로 피어나는데 꽃말은 ‘진실’이다. 꽃말까지 가지를 잘 표현해 주고 있으니 지금 한참 물이 오른 가지는 그 맛도 진실하다. 가지의 원산지는 인도로, 우리나라에는 중국을 통해 들어와 고려 이전부터 재배돼 왔다. 우리 식탁에서 만나는 가지는 길쭉한 모양이지만 가지의 원래 모양은 동글동글하게 마치 감자나 계란처럼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로 ‘Eggplant’(계란+식물)이다. 가지는 오랜 세월 품종 개량이 이루어지면서 다양한 외형으로 세계인들의 식탁에서 맛있는 요리로 애용되고 있다. 우리 식탁에서는 푹 익힌 가지를 양념해 나물로 먹는 방법이 가장 일반적이라 가지의 매력을 다 보여 줄 수 없어 아쉬움이 많다. 가지는 지용성 영양소가 풍부해 기름과 함께 섭취하는 것이 좋다. 요리에 부심이 있는 나라에서는 특별한 가지 요리들이 많은데, 가지를 주로 기름에 튀기고 지지고 볶아서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다. 기름과 어우러진 가지 요리는 입에서 사르르 녹을 만큼 부드러운 맛이 난다. 스펀지와 같은 가지가 기름을 흡수하기 때문에 고기를 구울 때 곁들여 굽거나 볶을 때 함께 볶는 것도 가지를 맛있게 요리하는 방법이다. 물론 다이어터들에게 기름을 흠뻑 머금은 가지는 너무 맛있어서 위험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가지전, 가지밥, 가지구이, 가지튀김으로 집밥을 만들고 가지를 불호(不好)하는 가족에게는 가지 치즈구이를 자신감 있게 한 접시 내밀어 본다. ●재료: 가지 2개, 소금, 후춧가루 약간씩, 식용유 4큰술, 토마토 1개, 고수 적당량, 모차렐라치즈 2분의1컵, 스위트 칠리소스 4분의1컵 ●만드는 방법●레시피 한 줄 팁 가지는 껍질은 질기지만 속은 수분도 많고 부드럽다, 얇게 썰어서 구우면 수분이 빠지면서 부스러지기 쉬워 반으로 가르거나 도톰하게 썰어서 굽는 것이 좋다.
  • 인류가 북아메리카에 산 것은 “7000년 앞선 2만 3000년 전부터”

    인류가 북아메리카에 산 것은 “7000년 앞선 2만 3000년 전부터”

    인류가 북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적어도 7000년은 앞선 2만 3000년 전이었던 것을 보여주는 인간의 발자국이 발견됐다. 아시아 대륙에 머무르던 인류가 언제 북아메리카로 건너가게 됐는지를 둘러싸고 수십년 동안 논란이 있어왔다고 영국 BBC가 23일(현지시간) 전했다. 많은 연구자들은 1만 6000년 전보다 훨씬 일찍 북미 대륙에 인간이 발을 내디뎠다는 주장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어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미국 뉴멕시코주에서 연구하던 연구진이 2만 3000년 전부터 2만 1000년 전 사이로 거슬러올라가는 인간 발자국들을 발견했다. 이번 발견으로 언제부터 이 대륙에 인류가 정착해 살았는지에 대한 견해가 바뀌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대규모 이주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들 초기 인류가 멸종되고 우리가 기존에 알던 인류가 새로 이주한 것일 수도 있다는 가설이 등장할 수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발자국들은 화이트 샌즈의 알칼리 평원 일부를 형성하는 얕은 호숫가의 부드러운 뻘밭에서 발견됐다. 미국지리조사협회 팀은 발자국이 발견된 위아래 지층의 토양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을 실시했다. 연구진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정확한 연대가 측정됐다. 발자국 크기로 볼 때 10대와 더 어린 아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고 있었으며 이따금 어른들이 어울리곤 했던 것으로 과학자들은 생각하고 있다. 이 대륙을 초기에 차지한 이들의 삶과 지금의 미국 남서부에 사는 이들의 삶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매혹적인 생각을 갖게 한다. 과학자들은 10대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나중에 북미 원주민 문화에서 보이는 사냥 관행을 돕고 있었던 것일 수 있다고 했다. 버팔로 같은 동물들을 몰이했던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본머스 대학의 샐리 레이놀즈 박사는 10대들이 장작이나 물, 기타 필요한 것들을 모으는 역할을 했을 수 있다고 했다. 논문의 제1 저자인 매튜 베네트 본머스 대학 교수는 “많은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아주 확고하고 명백한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마도 그것을 갖게 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돌도구와 달리 발자국은 지층들 사이로 올라가거나 내려가지 않아 확실한 증거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연구자들도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을 인정했다. 보통 ‘저수지 효과’로 불리는 일인데 수성 환경 때문에 오랜 탄소가 마치 재활용되는 것처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발견은 유전학적으로 밝혀진 내용과도 엇갈린다. 케임브리지 대학 유전학과의 안드레아 마니카 박사는 “탄소연대 측정이 얼마나 믿을만한지는 내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언급할 수가 없는데 2만 3000년 전 북아메리카에 인류가 살았다는 확고한 증거는 아시아에서 건너온 북미 원주민들이 1만 6000년 전과 1만 5000년 전 사이에 갈라져 나왔다는 유전학의 결론과 상치된다”고 말했다. 이어 “초기 아메리카 식민자들이 얼음 회랑이 만들어져 두 번째 건너온 이들로 대체됐음을 의미할지 모른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 [심현희 기자의 술 이야기] 부르고뉴가 아니어도 괜찮아!

    [심현희 기자의 술 이야기] 부르고뉴가 아니어도 괜찮아!

    “레드 와인의 종착역에 오신 것을 축하합니다. 근데 어쩌죠, 망하셨어요.” 와인을 마시다가 문득 ‘피노누아’가 좋아졌다면 드디어 레드 와인의 마지막 단계에 진입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품종이나 테루아별로 고유의 개성을 지녔지만 다양한 와인을 수없이 접해 본 와인 마니아들은 결국 레드 와인 품종 가운데 ‘피노누아’, 특히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생산되는 피노누아의 매력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이트 와인을 마시고 마시다 결국 샴페인에 정착하게 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부르고뉴가 고향인 피노누아는 고급 레드 와인의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와인 한 세트값이 수천만원에 달하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와인인 로마네 콩티도 부르고뉴의 ‘도멘 드 라 콩티’라는 와이너리에서 만드는 피노누아입니다. 보디가 가볍고 부드러워 음용성이 뛰어나면서도 섬세하고 우아하며 복잡한 풍미를 지녀 아무리 많이 마셔도 질리지 않는 즐거움을 선사하죠. 문제는 이 아름다운 와인이 평범한 사람들이 즐겨 마시기엔 비싸다는 겁니다. 꼭 로마네 콩티가 아니더라도 부르고뉴 ‘코트 도르’(황금의 언덕) 지역에서 나오는 피노누아도 낮은 등급이라 해도 자주 사 마시기엔 가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재배하기 까다롭기 때문이죠. 서늘한 날씨를 선호하는 데다 껍질이 얇아 잘 터지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 다뤄야 합니다. 게다가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탓에 피노누아의 생산량은 해마다 적어져 가격은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아파트와 샤넬 백과 부르고뉴 피노누아의 가격은 오늘이 제일 싸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죠. 최근 기자와 프리미어 크뤼 등급의 피노누아를 나눠 마신 한 업계 관계자는 “피노누아에 빠진 뒤 가산을 탕진한 사람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면서 “피노누아 맛을 알게 된 순간 망한 것”이라고 농담 섞인 경고를 날리기도 했는데 간담이 서늘하더군요. 미치도록 맛있는데 월급이 크게 오를 일은 없으니까요. 와인 잔을 코에 갖다 댔을 뿐인데 블랙베리, 크랜베리 등의 화사한 과일향과 장미향이 퍼지면서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였습니다. 신의 물방울이 혀를 툭 건드리는데 터치가 어찌나 섬세하고 깔끔하던지요. 부드러운 타닌과 약간의 가죽향과 버섯, 흙 내음이 더해져 여운은 한없이 길었고요. 죽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다행히 피노누아는 부르고뉴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루아르 상세르·알자스, 미국 캘리포니아·오리건, 뉴질랜드, 칠레 등에서도 재배됩니다. 가격도 합리적입니다. 물론 테루아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피노누아라고 해도 지역마다 맛의 차이는 있습니다. “부르고뉴 피노누아는 대체 불가능한 와인”이라는 얘기도 나오지만 다른 지역의 피노누아가 맛이 없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특히 캘리포니아, 오리건 등에서 생산되는 피노누아를 각각 새로운 장르로 받아들인다면 또 다른 매력의 피노누아를 즐길 수 있답니다. 먼저 캘리포니아 북부 서노마카운티, 샌타바버라·몬터레이 지역 인근의 중부 해안(센트럴 코스트) 지역에서 생산되는 피노누아는 부르고뉴보다 기온이 높고, 일조량도 많아 색상과 과일 풍미가 더욱 진한 편입니다. 부르고뉴 피노누아에서 여리여리한 청순미와 우아함이 느껴진다면 캘리포니아 피노누아에선 강인한 섹시함, 완숙미가 돋보인다고 할까요. 오리건 피노누아는 캘리포니아에 비해 부르고뉴와 더 닮아 있습니다. 서늘하지만 건조한 날씨 덕분에 피노누아 특유의 드라이하고 섬세한 풍미가 살아 있죠. 날카로운 산미의 부르고뉴 피노누아에 비해 밸런스가 좋아 더 마시기 편하다는 느낌도 종종 듭니다. 피노누아 입문자이거나 데일리 와인으로 편하게 마시고 싶은 이들에게 미국 피노누아를 추천하는 이유입니다.이 가운데 ‘캘리포니아의 로마네 콩티’라는 별명이 붙은 ‘칼레라 센트럴 코스트 피노누아’는 와인 좀 마신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가성비가 뛰어난 와인으로 입소문이 나 있습니다. 매혹적인 아로마와 실키한 텍스처, 생기 넘치는 과일과 향신료 풍미로 활력 넘치는 미국 피노누아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 주죠.오리건 피노누아 중에선 이 지역 최초의 여성 와인메이커이자 실력 있는 양조사로 잘 알려진 린 패너 애시가 만든 ‘윌라멧 밸리 피노누아’를 추천합니다. 검붉은 베리류 과일 풍미와 부싯돌 뉘앙스, 미네랄, 부드러운 타닌, 신선한 산도 등 맛을 자극하는 모든 영역에서 오리건 피노누아의 높은 수준을 보여 줍니다. macduck@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봄을 유혹하는 아스파라거스의 매력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봄을 유혹하는 아스파라거스의 매력

    들어도 쉽사리 공감이 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부모님이 얘기해 주시던 그 시절 바나나가 그렇다. 한땐 비싸고 귀한 과일이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다지 와닿진 않는다. 요즘 제철을 맞은 아스파라거스를 보니 문득 바나나가 생각났다. 수년 전만 해도 아스파라거스는 꽤 비싸 마트에서 집을까 말까 고민하게 만드는 식재료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많은 국내 농가에서 아스파라거스를 생산하면서 비싼 수입산 대신 더 신선하고 저렴한 아스파라거스를 만나볼 수 있게 됐다.국내에서 아스파라거스는 고기를 구울 때 곁들이거나 데쳐 먹는 외국 채소 정도로 인식하지만 서양에서는 두릅이나 달래, 냉이처럼 봄을 맨 먼저 알리는 전령사다. 이탈리아 북부나 프랑스 남부에선 봄이 오면 거의 모든 식당 메뉴에서 아스파라거스가 빠지지 않는다. 두꺼운 아스파라거스는 주요리에 곁들이는 부재료로 쓰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으로도 활용된다. 달걀과 버터, 레몬을 이용한 홀랜다이즈 소스를 끼얹은 아스파라거스 요리는 프렌치 요리의 클래식이다. 아스파라거스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다른 채소와는 다른 흥미로운 지점이 보인다. 잎이나 과실이 아닌 줄기를 먹는 몇 안 되는 채소 중 하나인 동시에 전부가 줄기다. 지중해 연안과 유라시아 대륙이 원산지로 알려진 아스파라거스는 해안가 바위 등에서 야생으로 자라다 어느 시점부터 인간에 의해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폼페이 벽화나 1세기쯤 로마의 요리책 기록을 통해 고대부터 이미 아스파라거스를 먹어 왔다는 걸 짐작해 볼 따름이다. 아스파라거스는 4월 중순부터 제철을 맞는다. 환경에 까탈스럽지 않아 어디든지 잘 자라며 한번 심어 놓으면 죽순처럼 계속 순이 오르며 자라기 때문에 농가에서 크게 힘들이지 않고 키울 수 있다. 쭉쭉 뻗어 나가는 생명력과 생김새 때문에 동양의 미신처럼 서양에서도 아스파라거스는 오랫동안 남성들에게 좋은 효능이 있는 작물로 인식돼 왔다. 온라인에서 아스파라거스를 검색하면 온통 영양학적 효능 이야기뿐이지만 애석하게도 남성들에게 유의미한 이점은 딱히 없음이 밝혀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스파라거스를 많이 먹으면 인체에 한 가지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다. 바로 소변 냄새가 지독해진다는 것이다. 과학적인 증거가 있다. 아스파라거스에 함유된 아스파라거스산이 우리 몸에 들어와 분해되면서 대사가 진행되는데 이때 만들어지는 성분이 스컹크의 지독한 방귀 냄새를 유발하는 메탄에티올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아스파라거스 줄기 한두 개 정도 먹고는 느끼지 못하겠지만 불판 위 고기를 먹듯 마구 집어 먹었을 때 해당되는 이야기다. 아스파라거스는 초록색이라고 다들 생각하지만 가끔 흰색이나 자주색도 찾아볼 수 있다. 흰 아스파라거스는 따로 품종이 있다기보다 햇빛을 의도적으로 쐬지 않고 키운 것이다. 오래전에는 녹색보다 흰 아스파라거스가 더 인기가 높았다. 인위적으로 흙을 덮어 주며 키우다 보니 손이 많이 가 훨씬 비싼 값에 팔렸다. 녹색 아스파라거스가 아삭하게 씹는 맛이 있다면 흰색은 껍질까지 부드러운 게 특징이다. 자주색 아스파라거스는 안토시아닌이 많이 함유돼 보랏빛으로 보일 뿐 영양학적으로나 맛에선 큰 차이가 없다. 아스파라거스는 수확되자마자 수분과 향을 잃어 간다. 갓 수확한 게 맛과 향이 가장 강하다는 뜻이다. 수확한 지 얼마나 지났을지 모를 수입산보다는 웬만해선 제철 맞은 국산 아스파라거스를 사는 게 낫다. 아직 진한 향을 간직한 수분을 품고 있는 아스파라거스는 어떻게 요리해도 맛이 좋다. 신선하고 질 좋은 아스파라거스를 구했다면 선택지는 세 가지다. 살짝 데쳐 먹을 것인가, 쪄서 먹을 것인가, 구워 먹을 것인가. 향과 맛을 온전히 즐기려면 데치는 것보다 찌는 걸 추천한다. 끓는 물에 데친다는 건 재료가 갖고 있는 일부 수용성 성분을 잃어버리는 걸 각오하는 것과 같다. 기왕 향 좋고 신선한 아스파라거스를 구했다면 찌는 게 손실을 가장 줄이는 방법이다.하지만 가장 맛이 좋으냐는 또 다른 문제다. 버터에 아스파라거스를 구워 먹으면 그 자체로 메인 요리로 손색이 없다. 베이컨이나 와인 안주로 먹다 남은 초리소 조각을 넣고 구워도 좋다. 버터가 없다면 요리용 기름으로 구운 후 접시에 담아 질 좋은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소금, 후추만 살짝 쳐서 먹는 이탈리아식 방법도 적극 추천한다. 삶아서 초장에 찍어 먹기엔 아스파라거스가 가진 매력은 너무나도 매혹적이다.
  • [서울포토] 수지, ‘가을 여신’의 독보적 아우라

    [서울포토] 수지, ‘가을 여신’의 독보적 아우라

    수지의 매혹적인 가을 메이크업 화보가 공개됐다. 랑콤, 마리끌레르와 함께한 이번 화보에서 수지는 ‘화보 장인’다운 독보적인 미모와 아우라로 각각의 메이크업 룩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며 가을 향기가 물씬 풍기는 감성적인 컷을 완성했다. 공개된 화보에서 수지는 메이크업 스타일 및 의상 분위기에 따라 도시적인 시크한 매력부터 특유의 청초한 매력까지 화보의 컨셉에 걸 맞는 포즈와 눈빛 연기로 다채로운 매력을 뽐냈다. 깊이 있는 눈빛부터 사연을 담은 듯한 섬세한 표정 연기는 물론, 특유의 발랄한 포즈로 사랑스러움을 배가시키는 컷까지 수지만의 매력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번 화보에서 수지가 사용한 메이크업 제품은 랑콤의 베스트셀러 파운데이션 ‘뗑 이돌 롱라스팅 파운데이션’과 신제품 ‘압솔뤼 루즈 인티마뜨’ 립스틱이다. ‘뗑 이돌 롱라스팅 파운데이션’으로 결점 없이 화사하게 빛나는 수지의 피부를 표현함과 동시에 벨벳처럼 부드러운 발림성과 가볍게 밀착되는 편안함까지 갖춘 ‘압솔뤼 루즈 인티마뜨’ 립스틱으로 독보적인 아우라를 완성시켰다. 한편, 수지는 오는 17일 첫 방송되는 tvN 새 주말드라마 ‘스타트업’으로 1년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다. ‘스타트업’은 한국의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을 꿈꾸며 스타트업에 뛰어든 청춘들의 시작(START)과 성장(UP)을 그린 드라마다. 수지는 한국의 스티브잡스를 꿈꾸는 당찬 여주인공 서달미 역을 맡아 특유의 밝고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극을 이끌어나갈 예정이다. 사진=랑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비둘기 스테이크에서 떠올린 계급의 역사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비둘기 스테이크에서 떠올린 계급의 역사

    특별히 가리는 음식이 없다는 게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새삼 감사해지는 순간이 있다. 여럿이서 프랑스 남부의 어느 식당에 갔을 때 일이다. 아름다운 풍광에 어울리는 화려한 전채요리가 눈과 혀를 매혹시키고 이제 고기 요리가 나올 차례. 이날의 메인은 다름 아닌 비둘기 가슴살 스테이크. 호기심에 비둘기 고기를 선택한 몇몇은 향을 맡거나 손톱만한 크기로 맛을 본 후 접시를 옆으로 스윽 밀어 냈다. 이렇게 치워진 비둘기 요리는 온전히 내 몫이 됐다. ‘잔반 처리기’ 느낌은 잠시, 이내 기쁜 마음으로 주인 잃은 접시들을 비워 냈다. 이 사람들아, 이거 귀한 음식이라고요.혹여 비둘기라는 단어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고 해도 이해한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에서 더러움과 혐오의 대상으로 변한 게 어디 한국뿐인가. 그런데 이 동네에서는 비둘기를 먹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접시 위에 조신하게 얹은 이 비둘기는 보통 떠올리는 그런 비위생적인 비둘기가 아니다. 비둘기를 포함해 메추리, 꿩 같은 새 요리는 동네식당보다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주로 접할 수 있고 프랑스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새 요리는 소위 미식가들에게 소나 돼지, 닭보다 상위에 있는 귀한 식재료로 대접받는다. 대체 이러한 전통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닭을 제외하고 조류는 식량의 목적으로 보면 그리 효율적이지 못한 식재료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열량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새 요리가 돼지나 소, 닭처럼 흔하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돼지, 소, 닭이 식량으로서 경제적이고 그래서 우리 식탁에 익숙한 식재료가 됐다는 결론도 얻을 수 있다.서양에서 새 요리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 건 중세 사회구조와 연관이 있다. 물론 이전에도 사냥을 통해 새를 잡기도 했고, 로마 시대 때 별미로 공작새나 백조 등을 먹었다는 기록은 있었다. 그러나 새를 먹는다는 행위에 사회적 의미가 부여된 건 9세기 무렵부터라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새 요리는 왕과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신분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던 이들은 전쟁이나 사냥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냥으로 잡은 멧돼지나 곰 등을 먹는 건 용맹과 지위의 상징이었다. 그러다 점차 몸을 쓰는 전쟁보다는 외교나 정치 등 머리 쓰는 일을 주로 맡게 되면서 식생활도 변화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높이 나는 것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16세기 어느 귀족은 “새처럼 부드러운 고기는 우리의 지성을 자극하고 우리의 감각을 소나 돼지를 먹는 사람들보다 훨씬 유연하게 만들어 준다”고도 했다.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새가 다른 식재료보다 희소성이 있다는 데 자신들의 고귀함을 투영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따름이다. 새 요리의 범위는 실로 다양했다. 비둘기나 메추리뿐 아니라 가마우지, 황새, 두루미, 왜가리, 제비, 촉새, 꿩, 공작 등 날개가 달리고 날아다니는 것이라면 모두가 대상이었다. 특히 꿩이 각광받았다. 꿩 요리를 두고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 작가 볼테르는 “신들의 요리”라고 했고, 세계적인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은 “천사들이 먹을 요리다. 그들 아직 지상을 떠돈다면…”이라고 극찬했다. 영국 상류층은 야생 조류 사냥을 일종의 교양 스포츠로 여긴다. 요즘도 사냥한 동물을 잡아 요리해 먹는 전통을 유지하는 이들도 있다. 스포츠나 오락을 뜻하는 영단어 게임(game)에서 야생동물 특유의 맛을 가리키는 게이미(gamey)가 파생됐다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때 극단적으로 야생조류를 숙성시켜 누린내라 불리는 역한 맛을 즐겼다고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대부분의 식당에서 접하는 새 요리는 야생의 것이라기보다 농장에서 양식한 게 대부분이다. 운동을 거의 하지 않으니 야생의 강한 맛은 덜하지만 대신 부드럽고 위생적이라는 장점이 있다.조류는 미오글로빈이 풍부한 붉은색 근섬유를 갖고 있다. 그 말은 곧 고기에서 우리가 ‘피냄새’라고 이야기하는 금속성의 맛이 날 수 있고 백색 근육보다 맛이 더 진하고 풍부하다는 뜻이다. 또 지방이 적은데 그것은 열을 가했을 때 빠르게 익으니 조리시간도 짧고 동시에 그만큼 섬세한 조리법이 필요하다는 말과 같다. 요리사에게 있어서 새 요리는 숙련된 기술과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다. 그만큼 까다로운 요리이며 미식가들에게는 다른 고기들에서 느껴 보지 못하는 강하고도 섬세한 맛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새 요리를 내는 의도이면서 동시에 기쁜 마음으로 비둘기 요리 접시를 비운 이유이기도 하다.
  • ‘해투4’ 김고은 “공유, ‘정해인에 역대급 미소?’ 질투했다”

    ‘해투4’ 김고은 “공유, ‘정해인에 역대급 미소?’ 질투했다”

    김고은, 정해인이 ‘해투4’에서 최고의 호흡을 보여줬다. 15일 오후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4’(이하 ‘해투4’)는 ‘해투 음악앨범’ 특집으로 꾸며졌다. 이날 방송에서는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으로 뭉친 대한민국 대표 멜로 장인 김고은, 정해인, 김국희, 정유진이 출연해 유쾌한 입담과 함께 감성적인 노래 선물까지 안겨줬다. 이날 게스트는 모두 예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얼굴들로 꾸려져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이들이 뭉친 이유는 바로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때문이었다. 이날 방송에서 김고은과 정해인은 보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찰떡 호흡으로 영화의 기대를 높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도깨비’ 이후 두 번째. 당시 정해인은 극 중 김고은의 첫사랑으로 특별출연했다. 김고은과 정해인의 케미는 당시 김고은의 상대역인 공유마저 질투할 정도였다고. 김고은은 “스태프분들이 정해인씨와 촬영 때 제가 제일 환하게 웃었다고 공유 선배님을 놀렸다”면서 “공유 선배님이 ‘역대급 미소를 보여줬다며?’라고 묻기도 했다”고 일화를 전했다. 또한 김고은은 정해인을 놀리는 재미가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무한 칭찬으로 ‘해인몰이’를 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이에 ‘해투4’ MC들까지 가세해 정해인에게 칭찬 세례를 퍼부었고, 난감해하는 정해인의 모습이 TV 앞 시청자들도 미소 짓게 했다. 이어 김고은은 정해인의 진짜 모습으로 “부드러워 보이지만 상남자스러운 반전 면모가 있다”고, 정해인은 김고은을 “촬영장 분위기메이커이자 장난꾸러기”라고 소개해 둘 사이의 친밀함을 과시했다. 그런가 하면 김고은, 정해인의 인생작 뒷이야기도 시선을 집중시켰다. 먼저 김고은은 3년 전 작품인 ‘도깨비’ 배우들과 아직 친하게 지낸다고 이야기했다. 이동욱과 친한 조세호는 “공유, 이동욱이 친오빠처럼 김고은을 아끼더라”고 증언하며 모두에게 마음을 잘 열지만 자신에게만 마음을 열지 않는 김고은의 일화를 소개해 모두를 빵빵 터뜨렸다. 정해인은 멜로 신호탄이 된 ‘밥누나’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밥누나’ 손예진, ‘봄밤’ 한지민이 자신을 챙겨준 사연으로 출연진의 부러움을 샀다. 이와 함께 지금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된 두 사람이 배우가 된 계기도 흥미로웠다. 정해인은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우연히 받은 명함 한 장을 계기로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고 말했으며, 김고은은 계원예고 입시 면접 당시를 회상하며 “학교를 세상에 보내버리겠다”고 끝인사를 했던 흑역사를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해투 음악앨범’ 특집다운 출연진의 감미로운 음악 선물이 제대로 귀 호강을 선사했다. 정해인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듣는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와 폴킴의 ‘너를 만나’, 매혹적인 보이스의 김고은이 부르는 이하이의 ‘한숨’, 문근영이 꼭 들어야 한다고 추천한 정유진의 팝송 ‘What’s up’까지. 그야말로 소장하고 싶은 앨범 한 편 같은 시간이었다. 이처럼 김고은, 정해인, 김국희, 정유진은 ‘해투4’에서 풍부한 에피소드와 역대급 노래 선물까지 모두 풀어놓으며 영화에 대한 관심도 높였다. ‘해투4’는 매주 목요일 오후 11시10분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설 선물, 情 나눔] 아모레퍼시픽, 피부에 매혹적인 향취와 보습 효과를

    [설 선물, 情 나눔] 아모레퍼시픽, 피부에 매혹적인 향취와 보습 효과를

    이제까지와는 다른 특별하고 감각적인 설 선물을 고민한다면 센스 있는 향 아이템 선물을 추천한다. 구딸 파리의 홈 컬렉션은 브랜드의 예술적인 대담함과 현대적 감성을 그대로 담아 선보이는 라인으로,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인테리어 아티스트인 토마스 알론소(Tomas Alonso)와의 협업으로 완성됐다. 간결한 형태와 강렬한 컬러의 현대적인 디자인이 홈 컬렉션 라인에 적용됐으며, 공간 속에 놓여 있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인테리어 소품이 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대표적인 캔들 중 하나인 ‘엉 에어 드 아드리앙 캔들´은 구딸 하우스의 전설적인 시트러스 향기로, 신선하면서도 평온한 느낌을 전한다. 마치 레몬과 사이프러스 나무로 가득한 이탈리아 남부의 언덕길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듯한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향으로 어느 공간에나 잘 어울린다. 헤라의 ‘벨벳 나이트 퍼퓸드 바디 로션´은 매혹적인 향과 텍스처가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제품이다. 이번 설 기획 세트는 본품과 함께 휴대하기 좋은 50㎖ 크기가 추가로 구성돼 실속 있는 선물로 추천한다. 제품의 달콤하면서 이국적인 플로럴 오리엔탈 향취는 신비로우면서 매혹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아이리스, 바이올렛, 머스크의 깊이 있는 향이 조화를 이룬다. 또한 플라워 오일과 시어 버터 성분이 함유돼 보습 효과가 있으며, 멀티 플라워 추출물이 더해져 벨벳처럼 부드러운 텍스처가 피부를 윤기 있게 가꿔준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황제 납치 프로젝트5] 고종 만나러 덕수궁에 들어간 소녀

    [황제 납치 프로젝트5] 고종 만나러 덕수궁에 들어간 소녀

    서울신문은 일제 침략 당시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우리 민족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 소설에는 베델뿐 아니라 ‘고종의 밀사’로 잘 알려진 호머 허버트(1863~1949), 노골적 친일 행보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된 더럼 화이트 스티븐슨(1851-1908),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을사늑약 직후 자결한 충신 민영환(1861~1905) 등 역사적 인물이 모두 등장합니다. 최근에야 국내외에 알려진 고종의 연해주 망명 시도 등 극비 내용도 담겨 있어 학계에 관심을 모읍니다. 서울신문은 이 소설 가운데 하나인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12월 출간, 원제 : The cat and the king, 부제 : Billy and Bethell)를 번역해 연재 형태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5회>소녀는 서울에 온 지 이틀만에 황제가 있는 덕수궁에 들어갈 수 있었다. 스티븐슨(더럼 화이트 스티븐슨)이 그녀가 왕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놔준 덕분이었다. 사실 스티븐슨 입장에서는 그녀의 미인계에 넘어가 큰 실수를 한 것이었다. 그는 조선 정부를 감시하러 온 일본 고문들을 도와주는 일을 했다. 매우 영민했고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도 국제정세의 맥을 정확히 짚어냈다. 도쿄의 내각은 오랫동안 진흙탕 속에 빠진 서울에서 은밀하게 진행되는 열강의 외교놀음을 파악하고자 그에게 거액을 쏟아부었다. 만약 소녀에게 워싱턴 거물이 보내온 서신이 없었다면 스티븐슨은 그녀의 미모 말고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소녀가 가져 온 소개장을 확인하고는 자신이 워싱턴과 연이 닿은 것에 흥분해 소녀의 입궁을 도왔다. 소녀는 10월의 어느 맑은 날 아침 왕을 알현하려 궁에 도착했다. 내가 어떻게 소녀를 따라 궁에 들어갔냐고? 원래 난 조선의 황제와 신하들을 만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대한제국 세관을 맡은 ‘골든엄브렐라’(소설 속 가상의 대한제국 세관 관리조직)의 책임자였으니까. 그때 나에게는 “열려라 참깨”와 같은 마법으로 궁궐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편집자주: 실제 이 시기 대한제국은 회계 업무가 가능한 세관원 출신 외국인을 대거 스카우트해 업무를 맡겼습니다. 1883년 우리나라 첫 공식 세관인 인천해관은 조선인이 아닌 10여개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주축을 이뤘습니다. 청나라 해관을 모델로 해외 경력자들이 조선으로 들어왔고 조선인도 영어시험을 거쳐 채용됐습니다. 당시 세관은 기상관측과 검역, 항만·등대 관리, 도로 측량, 우편사업 등 정부 업무를 대거 수행했습니다. 이 소설에는 이런 시대적 배경이 담겨 있습니다.) 궁에서 우리를 데리러 관용 마차가 왔다. 나는 마차에 올라타 그녀의 옆에 앉았다. “어서 오세요” 소녀는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해 본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임이에요. 나는 지금 무척 행복해요. 엄청난 모험을 할 수 있게 돼서죠.” “무섭지 않아요?” 내가 물었다. “며칠 전에 한 일본인이 당신 가방을 뒤지려고 호텔로 숨어들었잖아요. 그 사람은 서울의 있는 일제의 거대한 스파이 조직의 작은 톱니바퀴 하나에 불과해요. 그들이 작심하고 덤빈다면...“ 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내 말을 가로챘다. “바보들...일본인들은 정말 서툴러요. 이 작은 갈색피부 친구들은 솜씨가 그닥 뛰어나지 않더라고요. 프랑스나 러시아의 예의 바른 비밀 요원들은 사람이 방에서 나갈 때까지 꾹 참고 기다리죠. 트렁크를 뒤지고도 보풀 흔적 하나 남기지 않아요. 하지만 이들은 어떤가요? 어설프게 강도를 보냈다가 결국 지난번 사달이 났어요.” 소녀는 재밌다는 듯 큰 소리로 웃었다.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서울의 황폐하고 구불구불한 거리를 지나 마침내 궁에 다다랐다. 세미라미스(아시리아의 전설상 여왕으로 고대도시 바빌론의 창건자로 전해짐) 공중정원을 연상시키는 청동 장식물(덕수궁 석조전 앞 분수로 추정)이 눈에 들어왔다. 황제를 상하이로 훔쳐갈 임무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녀의 눈과 목소리, 대담무쌍한 배짱에 매혹됐다. 지금 하려는 일이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빠져나올 수 없는 그녀의 유혹에 말려 들어갔다. 나는 그녀에게 반쯤 넋을 빼앗겼다. 그녀의 미인계에 나도 빠졌다. 파리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시험하려 칼을 빼든 삼총사의 달타냥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대신들이 자리한 법궁에서 우리는 하기와라(훗날 2대 조선총독이 되는 하기와라 슈이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작고 왜소했지만 서울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보고 듣는 전지전능한 눈과 귀를 가졌다. 그는 고종의 궁에서 가장 정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황제보다 더욱 환하게 웃곤 했다. 마치 이 궁의 진짜 주인은 조선 황제가 아니라 하기와라 자신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가 날카로운 시선을 내뿜으면 왕을 비롯한 궁궐의 모든 이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그가 명령만 내려면 이들은 언제고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만 했다. 황제(고종)는 조상신보다 하기와라의 날카로운 이빨과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를 더 무서워했다.우리는 왕을 만나기 전 겸열자인 하기와라에게 먼저 인사하려고 대기실로 갔다. 고양이가 넘나들 것 같은 문턱이 있는 이곳은 보라색과 파란색이 고풍스럽게 대조를 이뤄 무척 아름다웠다. 나는 하기와라에게 소녀를 소개했다. 소녀가 유혹에 가득 찬 눈길로 그에게 끼를 부렸다. ”오, 하기와라씨! 상하이 영사관에 있는 당신의 친구 미토노가 ‘서울에 가면 당신을 꼭 만나라’고 여러번 말했어요.“ 소녀의 벨벳같은 부드러운 목소리는 고양이의 털처럼 나른했다. “그는 당신이 덕수궁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라고 알려줬어요. 결코 여성의 매력에 넘어가지 않는 엄격한 분이시라는 것도요. 내가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면 아주 특별한 여자가 돼야 한다고도...” “아, 그렇습니까?” 하기와라는 너무도 큰 기쁨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게 왠 횡재냐’는 반응이었다. 소녀가 말을 이었다. “이렇게 험하고 무서운 궁궐에 당신의 보호를 받아야 할 나약한 초상화가인 저를 혼자 내버려두지는 않으실거죠?” “그럼요. 물론입죠” 하기와라가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얼굴이 금세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소녀는 이자도 어렵지 않게 미인계로 낚을 수 있었다. 6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플랫폼 (김민수)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플랫폼 (김민수)

    사비는 순서를 기다린다. 복도의 고요함은 일부러 꾸며진 듯하다. 문이 닫히는 소리. 누군가 사비를 지나쳐 간다. 전에 본 적 없는 얼굴이지만, 그를 향한 적의가 있다. 사비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깜빡 졸았던 걸까. 그의 이름이 들린다. 관료, 학자들. 권위로 데워진 공기가 거북하다. 사비가 의자에 앉고도 그들은, 한참 동안 파일을 뒤적거린다. 넘어갔다가 돌아오고, 다시 구겨지는 문서들. 무작위적인 리듬으로, 자기 역할에 몰입한 자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사비는 그게 잘 안 된다. 침묵을 깨야 한다면, 그만한 무게를 지녀야 한다. 위원이 말한다. “우리는 첫째로 근무자들의 파견지 이탈 건을 조사하기 위해 당신을 불렀어요. 이 문제에 관해 우리는 당신에게 형식상의 협조를 바랄 뿐입니다.”반응할 틈을 주지 않고 다른 위원이 말한다. “둘째로 최근 보고된 인간 반출 사건을 조사할 겁니다. 이 경우 당신의 위치는 썩 좋지 못해요.” 기관의 배려를 기대했던가. 그래도 사비는 동요하지 않는다. 마음 작용의 세부사항들을 잃어버린 지는 이미 오래다. 그는 위원들의 질문에 답한다. 일정한 어조로 이어지는 질문들. 때로는 위원들의 질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탈과 반출. 그것은 사비의 언어가 아니다. 사비와 위원회는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한다. 위원회는 사비를 의심하고 있다. 그가 아는 만큼 말하지 않고, 교묘하게 말을 돌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비는 그들만큼이나 아는 게 없다. 오히려 그에겐 새로운 질문거리만 가득하다. 심문은 계속될 것인가? 사비는 구금되지 않는다. 위원회에 그럴 권한은 없다. 즉석에서 다음 출석을 예고받는다. 서명하고, 가도 좋다는 허락을 얻는다. 그의 뒤로 문이 닫힌다. 이미 어두워진 복도. 그는 천천히 걸어 나간다. 무수히 많은 창문이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곳을 지나기가 두려워진다. 그는 골목길을 택한다. 그 길은 비밀스럽다. 불규칙한 계단을 내려가고, 곳곳에서 오래된 그림자들을 본다. 골목이 끝나는 지점은 다른 골목과 맞닿아 있다. 사비는 다른 골목에 들어설 때마다 주변을 살핀다. 담벼락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다. 왼편 불 밝힌 상점에, 진열대 사이로 점원이 보인다. 그녀는 웃고 있다. 웃음은 준비된 기호다. 그녀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미소는 신비한 제안 같아서, 사비는 다른 생각에 물들지 못한다. 달콤하다. 그냥 지나쳐 갈 수는 없다. 진열대에 술병이 빼곡하다. 사비는 화려한 단어들을 본다. 덧붙은 상징들도. 갖가지 색과 형태의 차이를 구별하기 어렵다. 모두 똑같이 중요한 동물들과 도형들. 그는 방향감각을 잃고, 발을 헛디뎌 술병을 모두 깨뜨리게 될 것만 같다. 땀이 맺힌다. 손등으로 땀을 닦는데 불쑥 인사말이 들린다. 사비는 점원의 입을, 눈을 본다. 그리고 미처 감추지 못한 수동성을 엿본다. 그녀의 조화롭지 못한 목소리가 거슬린다. 사비는 짧은 사이 실망을 내비쳤는지도 모른다. 그는 일부러 들릴 듯 말 듯 대꾸한다. 점원은 한발 물러나 웃음으로 돌아간다. 어떻든 그녀는 변함없다. 그녀가 사람이었다면, 사비는 다른 반응을 기대해도 좋았을 것이다. 선택이 한정되어 있고, 외부에서 주입되었더라도 온전히 그녀만의 것으로 머무는 감정들을. 손가락으로 아무 병 하나를 가리킨다. 그녀는 상품을 스캔하고, 가져가 버린다. 사비는 그런 행동이 그녀만큼 시늉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포장이 사비의 손에 들린다. 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상점을 나선다. 사비는 단조로운 풍경을 내다본다. 버스가 이미 지나온 길도 다시 훑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느리고, 목적지에 갈 마음이 없는 것 같다. 모로를 만나려면 한참 더 외진 곳으로 가야 한다. 그곳은 도시 외곽도 아니고, 마을이라 부르기에도 어중간하다. 기억이 맞는다면 이쯤에서 내려야 한다. 버스가 떠나자 어두워진다. 멀지 않은 곳에 파도가 친다. 사비는 도로를 벗어나 흙길로 들어선다. 길가를 내려다보니 경사가 가파르다. 풀이 자라지 않은 길을 골라 내려간다. 해안이 있고, 움푹 들어간 형태로 숲을 등진 주거지가 보인다. 집은 몇 채 되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비는 알 것 같다. 그 집은 모로의 성향과 닮아 있다. 작고, 뽐내지 않는다. 문을 두드려 본다. 모로. 기척이 없다. 사비는 집 주위를 돈다. 창문에 얼굴을 대지만, 안을 볼 수 없다. 사비는 모래사장을 거닐기로 한다. 불을 밝힌 집이 몇 채 보인다. 이편은 어둠이다. 사비는 구두를 벗어 손에 든다. 파도 소리가 불쾌하다.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차갑고 부드러운 감촉. 그는 갑작스럽게 고향의 선율을 느낀다. 단조로운 흐름이다. 어떤 이유로 연상되는 것일까. 선율은 감각에 새겨졌고, 때때로 통증처럼 거기에 있다. 흐릿하게. 불빛 속에 남자가 보인다. 그는 작은 고깃배 옆에 앉아 그물을 손보고 있다. 사비는 그와 눈이 마주친다. 남자는 그물을 놓고 일어선다. “오늘은 너무 늦었는데.” 사비는 그를 살핀다. 심술궂은 눈. 주름들. 그리고 들쭉날쭉한 억양. 하지만 흐릿하게나마 장난기가 비친다. 관리자의 인상이다. 확신할 수는 없다. “그쪽으로 가봤자 아무것도 없을 거야.” 사비는 고개를 돌려 어둠을 본다. 그의 말이 너무나 당연하게 들린다. “초입에 있는 작은 집을 찾아왔는데 아무도 없어서.” 사비는 손가락을 들었지만, 어떤 것도 가리키지 못한다. 남자는 고개를 젓는다. 실수인 것처럼, 그의 뒤로 현관문이 조금 벌어져 있다. 그가 오랜 시간 홀로 지내왔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남자는 그물을 추스른다. “나도 이곳 사람들에 관해 별로 아는 게 없지만.” 그는 사비를 훑는다. 사비의 손에는 술병이 있다. “들어오겠나?” 그를 따라 들어간다. 다른 차원에 들어서는 것 같다. 사비는 아직도 그런 경험을 잘 설명해낼 수 없다. 테이블과 낡은 의자들과 벽에 붙은 계획표. 책장 위에 술병을 놓는다. 사비는 그가 의자를 권할 때까지 기다린다. 남자는 부엌의 작은 문을 열고 그물을 던져 넣는다. 책장의 지저분한 책들이 눈길을 끈다. 사비는 대부분의 책 제목을 알아보지 못한다. “거기 앉아.” 남자는 술을 따른다. 그는 두꺼운 책을 고른다. 그의 손은 책을 옭아매는 성긴 보금자리 같다. 사비는 술잔을 들어 입을 적신다. 책을 들고 있는 남자의 손마디를 살펴본다. 가늘고 긴 손가락에서 노동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짐작과는 다르다. 어쩌면 그는 오랜 세월 학자로서 지내왔을지도 모른다. 무엇에 관한 학자인가. 언어들? 비밀스럽고, 신비 가득한 형태로 눈을 어지럽히며 우리를 넘어서는 의도를 품고 있을 것 같은 바깥 세계의 소란. 막연히 우상화되는 시인들. 남자는 책장을 넘긴다. 미간을 찌푸린 그가 눈을 치켜뜬다. 사비는 어서 그가 무슨 말이든 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남자는 다시 책을 읽는다. 한동안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심각한 그의 얼굴이 곧 부서져 버릴 것 같다. “요즘 이곳은 어때?” 사비는 말을 꺼내는 게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남자는 책을 내려놓는다. “예전에는 좋았지. 지금은 뭐라 말하기 어려워.” 흔해 빠진 의견. “여길 떠나는 자들이 늘었지. 그게 뭘 말해주겠나? 전보다 좋아졌다고는 말할 수 없을걸.” 사비는 마지못해 수긍한다. “자네도 누군가를 찾아왔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런 건 핑계에 불과해. 난 많이 봐와서 잘 알지. 결국엔 떠나는 거야.” “아마 그렇게 되겠지.” “그렇다면 잘 선택한 거야. 여긴 매력을 잃었어. 다신 돌아오지 말게.” 남자는 다시 책을 펼쳐 든다. 사비는 침묵 안에서 흔들린다. 마음을 다잡기 어려워진다. 바깥 그리 멀지 않은 물밑 어딘가에서 불분명한 형체가 지상으로 올라온다. 모래사장에 다다랐을 때 그것은 모습을 드러낸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심해의 생명체가 몸을 비틀며 기어온다. 호흡하는 비늘과 가시들을 과시하면서. 성미 급한 놈이다. 거대한 입속으로 겹겹이 덧난 이빨에는 독이 흐른다. 놈은 모래를 파헤쳐서 구덩이를 만들고 그 속으로 숨는다. 구덩이 위를 지나는 자들을 모두 집어삼키려고. 놈의 입과 뱃속에서 희생자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모로의 흔적도 그곳에 걸려 있다. 대기는 신음으로 가득해 질식해 버릴 것 같다. 사비는 술잔을 내려놓고, 남자의 구겨진 얼굴을 다시 한번 본다. 그는 가끔 입술을 달싹이는 것 말고는 움직이지 않는다. 사비는 자신의 손과 발을 내려다본다. 시간을 체감하는 신체기관이 있다면, 그건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흉물스럽게 늘어졌을 것이다. 확장된 외연으로서 발에 차이고 목을 휘감았을 것이다. 사비는 말한다. “그래도 난 언젠가는 돌아와야 해.” “쉽지 않을 거야.” 사비는 그에게 나약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서 준비해야겠어. 언제 다시 방문하면 될까?” 남자는 손을 내젓는다. 조금 더 기다려 보지만 그뿐이다. 현관을 나선 사비는 바깥 공기에 압도당한다. 사비는 이보다 더 적은 자극을 원한다. 사비의 생각은 몇 차례나 분절된다. 구덩이라니. 잠을 자고 싶다. 잠을 자야만 벌어진 틈을 이어 붙일 수 있다. 그러지 못하면 정신은 점점 파편화되어, 말라죽은 나무의 껍질처럼 떨어져 나간다. 다른 가능성이 물꼬를 튼다. 모로의 작은 집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환하다. 아니, 그 집은 모로의 집보다도 좀더 넓고 안락해 보인다. 그럼에도 사비는 그 집이 여전히 모로의 집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사비는 정원을 가로질러 간다. 잘 손질된 정원수. 초인종을 누르자 미소 짓는 점원이 나타난다. 사비는 놀라지 않는다. 그는 초대받은 사람처럼 집 안에 들어선다. 집은 거대한 하나의 침실이다. 사비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녀의 유년 시절과 일상, 갈등과 고민에 관한 이야기 속 세부사항을 통해서 그녀가 가짜가 아니라는 점을 확신하고 싶다. 그러나 그녀는 깊은 상처를 간직한 사람처럼 모든 이야기로부터 달아나 버린다. 그녀는 이미 이 세계의 어떤 이야기에도 관심이 없다. 그녀는 오직 행위의 화신으로, 사비에게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녀가 드리운 그림자 아래에서 근심 따위는 느낄 수 없다. 시간은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한다. 오래도록 평화롭다. 그러나 그녀의 품에서 사비는 결코 잠들지 못한다. 사비는 얌전히 눈을 감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의식이 또렷하다. 그는 속으로 진짜를 흉내 낸 것들을 모조리 비웃고 있다. 사비는 구두를 손에 들고 주거지의 불빛들을 지난다. 움푹한 해안선은 인위적이거나, 자연을 뛰어넘는 힘이 가해진 것처럼 보인다. 사비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힘의 작용. 가령 겨울이 길어지고, 낮 동안의 빛은 더욱 희미해지는 것. 예측할 수 없던 변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땅한 이유를 찾아 나서게 한다. 그러나 사비는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싶다. 고향에서는 더 자주 메시지를 보내왔다. 의구심을 품은 자들은 모두 돌아오라고. 사비는 그래도 아직은 끝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작고 허름한 집이 보인다. 짐승은커녕 곤충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사비는 문틈에 얼굴을 대고 문을 밀어본다. 열릴 듯이 삐걱거린다. 그뿐이다. 절망이 버티고 있는 것처럼. 다른 감정들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인기척이 있다. 보드라운 목구멍을 갓 넘어온 따뜻한 숨결이 거기에 있다. 사비는 창문을 들여다본다. 소용없는 짓이다. 물러서서 구두를 던진다. 창문이 깨지고, 깨진 틈으로 모로를 찾는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사비는 창문을 넘는다. 유리 조각에 옷자락이 긁힌다. 사비는 벽을 더듬으며 나아간다. 울음소리가 벽을 타고 온다. 한쪽 구석이다. 구석에서 소리가 난다. 사비는 다가가 몸을 기울인다. 그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기계 아기가 불가능할 것 같은 방식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본다. 그것은 기다렸다는 듯 울음을 멈추고, 감춰두었던 예리한 날로 그의 목을 긋는다. 사비는 목을 부여잡고, 고개를 숙이고 움직이지 않는다. 이 순간 생동하는 가능성을 모두 외면하기로 하자. 이미 어둠 안에 놓인 눈앞이 캄캄해진다. 사비는 자세를 낮춘다. 바닥에 무릎을 대고 거의 엎드린다. 아기를 섬기려는 것처럼,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댄다. 아기는 울음을 멈춘다. 시큼한 냄새가 난다. 따스하고 보들보들한 감촉이, 놀랍도록 위안을 준다. 손을 떼고 싶지 않다. 파도 소리가 바람에 묻히기도 한다. 사비는 그를 흔드는 손길에 의해 깨어나 돌아본다. 모로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짓누르려는 듯이. 사비도 모로를 본다. “사비. 왜 이렇게 늦었어?” 예상했던 반응은 아니다. “창문을 깨고 들어오면 어떡해.”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어.” 그러나 아기는 없다. 감정들이 고스란히 흘러 나간다. 그는 거울을 보는 것 같다. “일행은?” “혼자야. 모두 흩어졌어.” 모로는 실망을 감추지 않는다. “모로, 아기가 실제로 있어?” “있어.” “어디에?” “내 몸에.” 사비는 모로와 아기를 동시에 생각해 본다. 틀림없다. 그리고 이번에는 모로가 실수한 거라고 소리 지르고 싶다. “어쩌려고?” “데려갈 거야.” “그걸 왜?” “왜라니. 기념해야지.” “기념하기 위한 거라면 다른 걸 가져가. 더 적합한 것으로.” 하지만 사비는 더 적합한 것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냥, 인간들을 내버려 두자.” “이제 와서 그럴 순 없지.” 어떤 말을 해도 소모적일 것 같다. 사비는 문을 열고 내다본다. 반드럽게 깔린 살굿빛 사장과 바다 위로 드넓은 하늘의 풍광이 우연처럼 놓인 것 같다. 관리자의 집은 생각보다 멀지 않다. 고깃배는 보이지 않는다. “모로. 관리자를 만났어? “아니. 그는 통 잠들질 않아.” 그래서 모로는 여태껏 사비를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관리자는 찌푸린 눈으로, 어째서 그것이 기념이 되느냐고 묻겠지만. 물러서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사비는 그에게 이해를 구하지 않고, 그와 멀어져야 한다. 그가 현실의 무미건조함에 사로잡혀 있을 때, 사비는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수평선까지 배 한 척 보이지 않는다. 관리자는 그 작은 배를 타고 어떻게 플랫폼까지 가는 것일까. 사비는 문을 열어 둔다. “그가 거절할 수도 있어.” “넌 그저 꿈에서 깨어나 배를 기다리면 돼.” “이게 얼마나 대책 없는 짓인지 알고는 있는 거야?” “플랫폼에서 만나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모로는 보이지 않는다. 사비는 동작을 되감는 것처럼 자리로 돌아가 눕는다. 눈을 감고 하늘을 본다. 이해할 수 없는 거짓이다. 인간의 생에 남겨진 일이라고는 끊임없는 불만족뿐이다. 그런 그를 일부러 고통과 마주하게 할 필요는 없는데. 기념이라고? 사비는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둘러본다. 게다가, 인간은 우리의 고향에선 살아남을 수 없다. 감각이 환경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렇지만 사비는, 모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모로는 사비의 첫 작품이다. 모로는 사비와 같으면서도, 그의 바깥에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모로는 흉내에 불과한가? 모로를 볼 때면 사비의 심정은 늘 복잡하다. 그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지만 막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모로는 자유롭다. 그건 사비가 줄 수 없는 매혹적인 개념이다. 고깃배가 가까워진다. 사비는 몸을 일으킨다. 관리자가 배에서 내린다. 그의 허리까지 물에 잠긴다. 배 안에는 손님이 있다. 그는 몸 대부분을 가리고 있다. 생김새는 물론 그의 형태마저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 먼 곳에서 왔으리라. 손님은 땅에 발을 딛는다. 체구가 크다. 사비는 사구에 올라선다. 그러나 손님은 사비를 의식하지 않고 사구를 돌아나간다. 그는 사비가 그랬던 것처럼, 휴식도 없이 곧바로 어떤 목적을 좇는다. 관리자가 사비에게 손짓한다. 사비는 그를 도와 배를 끌고 올라온다. “인사를 나눴나?” 사비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다. 대답하는 대신에 눈으로 먼 곳을 좇는다. “뭐, 상관없겠지.” 관리자가 앞서 배를 끌고 간다. 사비는 고물을 민다. 경사진 모래언덕이 난감하다. 사비는 배를 홀로 떠받들고 있는 것 같다. 닳고 부서지고 덧댄 흔적을 본다. 사비로서는 짐작조차 못 할 물밑의 진실을 견디는, 볼품없는 배다. 사비는 때때로 뒤를 돌아본다. 모래사장에는 깊은 족적이 남는다. 관리자는 모래도 털지 않고 그대로 현관을 넘는다. 그는 부엌의 작은 문을 열고 그물을 던져 넣는다. 먼지 앉은 잔에 술을 따르고, 계획표에 문자들을 휘갈겨 쓴다. 사비는 문틀을 붙잡고 관리자의 집 안을 들여다본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는 계단에 버티고 서서 말한다. “우릴 플랫폼에 데려다줘.” 관리자는 반응하지 않는다. “가능한 한 빨리 떠나는 게 좋겠어.” 그 말은 관리자에게 닿기도 전에 허물어진다. 사비는 문턱을 넘는다. 그와 동시에 부엌의 작은 문이 닫힌다. 하지만 관리자는 부엌을 돌아보지 않는다. 관리자의 널찍한 등은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옆에서 본 그는 매끈한 석상이다. 사비는 그를 찔러보고 싶다. 사비는 부엌으로 다가간다. 작은 문 너머로 속삭이는 소리, 고약한 획책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굴욕감이 드는 순간, 사비는 성급하게 문고리를 돌린다. 방 안에는 그물과 비린내와 모래가 뒤엉겨 있다. 굴욕을 만회할 수는 없다. 관리자는 펜을 놓고 돌아선다. “곧 출발할 수 있겠어.” 관리자는 계획표를 보란 듯이 손바닥으로 친다. 사비로서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관리자가 묻는다. “규모는?” “나와 내 동료 모로, 그리고 아기 하나.” 관리자는 술을 한 모금 삼키고 말한다. “인간?” “작은 인간.” “인간은 안 돼.” 가라앉은 관리자의 말투에는 파고들 틈이 없다.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얼마 전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아까 배 타고 들어오는 손님 봤지. 방침이 바뀌었어.” 방침. 애초에 그런 건 없었다. “어디서 온 손님인데?” “무례한 질문이야. 더 나은 질문을 해봐.” 사비는 그가 계속 말을 이어 가도록 내버려 둔다. “이제 단 하나의 인간도 바깥으로 나갈 수 없어. 모두 모아놓고서, 조용히 끝낼 거야. 원래 그랬던 것처럼. 그게 그가 하려는 일이야.” 생각보다 일찍 다가온 절멸 소식이 놀랍다. 그리고 그것이 벅찬 화려함 가운데 섬광처럼 오는 게 아니라 배를 타고 천천히, 거적때기를 뒤집어쓰고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당혹스럽다. 사비는 미소 짓는 점원을 떠올려 본다. 인간이 아닌 것들은? 그들은 함께 사라지거나, 새로운 주인이 되겠지. 아마도 이 계획에서 기계들은 고려되지 않았을 것이다. 감정들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머물게 하는 능력은 인간 고유의 것일까. 그렇더라도 이제는 그것의 모방만이 넘쳐나겠지만, 그런대로 나쁘지 않다.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도 모를 거야.” “인간은 안 돼.” 그 말은 하나의 구호처럼 들린다. 관리자는 거의 즐기고 있다. 짧고 단단한 문장에 부딪혀 박살 나 버리는 다른 빈약한 문장들. 탈취와 도주의 이미지들이 의식에 흘러가도록 내버려둔다. 사비는 이보다 더 큰 말썽에 휘말릴 자신이 없다. 관리자는 벌써 이 일을 문제 삼지 않는 것 같다. 그는 책을 고른다. 그가 신경 쓰지 않기로 한 것은 실제로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관리자는 무한히 여유롭다. 그러나 사비는 그렇지 않다. 사비는 시간을 구체적으로 감각할 수 있다. 사비로서는 관리자와의 불균형 상태를 극복할 수 없다. 작은 인간의 무게가 그만큼 그를 누른다. 몇 가지 짧은 생각이 든다. 작은 인간이 기계로 변환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은 얼마 없다는 사실. 그리고 손님의 행방. 관리자가 손짓하며 사비의 주의를 끈다. 그는 사비가 마주 앉기를 바란다. 팔걸이가 있고, 등받이가 짧은 의자를 권한다. 그리고 사비에게 술잔을 건넨다. 사비는 한동안 의자에 꺼질 듯이 파묻혀 있다. 그는 턱을 괴고, 손가락으로 얼굴을 문지른다. 알코올 냄새가 올라온다. 어떤 생각을 재촉하려는 듯이. 그는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있다. 관리자가 말한다. “그런데 네 동료는 지금 어디 있지?” “자기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난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왜냐하면. 사비는 말을 아낀다. 관리자는 사비에게서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사비는 부엌의 작은 문을 본다. 아무래도 누군가 더 있는 것 같다. 거기서 감각을 희롱하는 미세한 자극들이 흘러나온다. 관리자는 무릎 위로 책을 펼친다. “이 책을 알아볼 수 있나?” “전혀.” “이건 아주 형편없어. 두서없는 소리로 가득해.” 관리자는 손끝으로 문장을 긋는다. “그런데 여기. 이 대목을 봐.” 처벌에 관한 기록이다. 오래전 일이다. 여기에 선대 관리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지워졌다. 그는 기계에 관한 독특한 관점을 지니고 있다. 무차별. 그것은 경력을 망가뜨리는 불온한 생각이 될 수 있다. 어느 날 해변을 거닐던 선대 관리자는 도망쳐 나온 도시 기계를 맞닥뜨린다. 기계는 인간과 똑 닮아 있으나, 두려움의 표현이 어설프다. 도시 기계는 이보다 더 멀리 도망갈 수 없다. 헤엄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선대 관리 자는 도시 기계를 데려와 별장에 숨겨준다. 그는 거기서 인간처럼 지낸다. 먹고 읽으며, 잠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를 추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피 행각은 발각된다. 선대 관리자는 인간으로부터 원성을 듣는다. 도시 기계의 죄목은? 언급되지 않는다. 고향에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선대 관리자와 인간을 중재한다. 간단하게 합의된 결과로 선대 관리자와 도시 기계가 같은 처벌을 받게 된다. 선대 관리자는 도시 기계로 이식되고, 성공적으로 결합한 그것은 도시로 보내진다. 그것을 뭐라고 부를 것인가?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후 관리자의 관할이 분명해진다. “뭐라고 쓰여 있는데?” “이 글은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쓰였다는군.” 관리자는 책을 덮는다. “그럼 지금 읽은 건 뭐야?” “그건 말일 뿐이지.” 너의 꿈속에 있는 것처럼 실체 없는 경험들이지. 눈이 감긴다. 사비는 희미하게, 부엌의 작은 문이 열리는 것을 본다. 배를 타고 들어온 손님이다. 그가 그물을 끌고 사비에게로 다가온다. 사비는 마지막으로 묻는다. 이것은 가능성인가? 손님은 도심에 다다른다. 한낮의 공터에서, 그가 주목받을 이유는 없다. 그는 쪼그려 앉아 동그란 통을 내려놓는다. 단순하게 생긴 물건이지만, 잠금장치가 달려 있다. 그는 잠금을 풀고 뚜껑을 비스듬히 걸쳐 놓는다. 그것은 흐릿한 기운을 방출한다. 화산재가 분화되는 것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심각해진다. 바다 한가운데에 어색하게 솟은 지면이 있다. 사비는 생각하지 않고도 그것을 알아본다. 플랫폼이다. 간소하고, 누구도 이용한 적 없는 것처럼 깨끗하다. 사비는 배를 타고 있다. 배는 젓지 않아도 나아간다. 플랫폼 위로 모로와 유모차가 보인다. 모로는 배에 탄 사비가 플랫폼에 오를 수 있도록 돕는다. 사비는 아래를 본다. 수면에 비친 얼굴은 분명 자신의 것이 맞다. 그러나 그 모습은 불안정해서, 곧 다른 얼굴로 바뀌어 버릴 것 같다. 그는 수면을 내려다보지 않기로 하고 발을 디딘다. 플랫폼에 어렵게 올라선다. 그가 타고 온 배는 점점 멀어져 간다. 모로가 말한다. “저걸 타고 여기까지 온 거야?” “그래.” “재주도 많네.” 사비는 뒤돌아본다. 그것은 배가 아니라 가시 돋은 심해의 생명체다. 어떻게 날카로운 등 위로 올라탈 수 있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모로의 얼굴은 테두리가 불분명하다. 잘못 손대는 바람에 윤곽이 번진 것 같은 모양이다. 그러나 모로를 다른 무엇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모로란, 언제나 모로와 가장 근접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비가 말한다. “이상한 일을 겪었어.” “말해봐.” “배를 타고 들어온 손님을 봤어.” 그런데 사비는 이야기할 의욕을 잃어버린다. 이야기는 선형적으로 정돈될 수 없다. 어느 부분을 이야기하더라도 머리와 꼬리와 몸통이 뒤섞일 거란 확신이 든다. 사비가 무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면, 오직 그런 확신에 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다. 모로는 이야기를 기다린다. 사비는 모로의 기다림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게 끝이야?” “그건 아니지만. 이야기할수록 이상해질 거야.” “말해봐. 천천히, 한 마디씩.”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유모차의 바퀴가 앞을 향해 움직인다. 그렇게 가다간 바닷속으로 고꾸라질 것 같다. “그는 함정을 팠어.” 플랫폼이 기울면서 경사가 진다. 유모차는 빠르게 굴러간다. “어쩌면 내가 그에게 붙잡혀 있는지도 모르지.” 모로는 지면이 기울어도 휘청거리지 않고 서 있다. 모로는 사비보다 더 큰 목소리로 묻는다. “그가 원하는 게 뭔데?” 유모차가 바다에 빠진다. 사비는 모로를 밀치고 뛰어간다. 물 위로 빈 유모차만이 떠다닌다. 사비는 조금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엎드린다. 아기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사비의 얼굴은 더는 수면에 비치지 않는다. 사비는 물속으로 뛰어든다. 그는 수영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다. 숨을 참는 것도 서툴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사비는 물속에서 자신의 몸이 거추장스럽다고 느낀다. 부품을 해체하듯, 그의 기관들을 하나씩 벗어던져 버리고 싶다. 유영에 매혹된 그는 모든 의지를 멈추게 하고 싶다. 사비는 바람 없는 골목을 걷는다. 길가에는 부랑자들이 누워 있거나 벽에 기대어 앉아 있다. 추위와 굶주림에 떠는 그들은, 사비의 구두를 본다. 그의 손에 들린 술병을 본다. 그들은 달그락거리며 바닥을 기어온다. 천천히 손을 뻗어서, 닿지도 않는 사비의 외투 자락을 당긴다. 아버지. 그들 가운데에서 들리는 말. 지금 뭐라고 했소? 사비는 그 말을 잡으려고 성큼 다가간다. 부랑자들의 넝마를 걷어차고 깡통을 뒤집는다. 형제여. 누구요? 사비는 그중 한 명의 머리채를 잡아 올린다. 그늘진 얼굴이 드러난다. 그는 사비다. 사비는 그 점을 단번에 알아챈다. 사비와 그를 구분 짓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재능, 어떤 노력을 발휘해도 알아낼 수 없다. 그는 구두를 벗어던지고, 넝마를 주워 든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 눕는다. 몸을 웅크리고 얼굴을 가린다. 모로가 이곳을 지난다면, 등을 돌리고 눈을 감으리라. 물속으로 거대한 손이 들어와 사비를 건진다. 사비는 플랫폼에 한쪽 어깨를 걸친다. 관리자가 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이제 가야 해.” 물속에서 몸을 완전히 빼내기가 힘들다. 도둑맞은 기분. 사비는 주위를 둘러본다. 플랫폼이 갈라지고, 돌덩어리가 솟아올랐다. 은은한 광택을 내는 검고 길쭉한 돌이, 누런 연기에 가려 희미해진다. 안개인가? 아니, 매캐한 냄새가 난다. 벌써 시작된 걸까. 관리자는 분주하다. 사비는 말한다. “내 동료가 여기 있었어.” 관리자는 사비를 플랫폼 위로 끌어올린다. “아니. 우리 둘뿐이야.” 관리자는 사비를 잡아끌어 그의 몸을 돌덩어리에 밀착시킨다. 돌덩어리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관리자는 긴 벨트로 사비의 몸통을 돌덩어리에 묶는다. 그가 벨트를 잡아당길 때마다 사비의 몸이 들썩인다. 플랫폼의 조각난 지면이 맥없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관리자는 돌덩어리의 반대편으로 돌아가 같은 벨트로 자신을 묶는다. 그가 돌을 두들기며 소리친다. 사비는 알아듣지 못한다. 돌덩어리가 한 뼘 정도 떠오른다. 돌의 회전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사비는 처음 이곳을 둘러본 이래로 자신이 추락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점점 수가 느는 모조들의 대열을 우려스럽게 바라본다. 이곳을 떠나게 된다면 그 느낌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돌의 깊은 곳으로부터 빛이 새어 나온다. 납빛이다. 그는 순식간에 삼켜지고, 튕겨 나간다. 지면에 부딪힐 때 그는 몸이 조각나는 것 같은 충격을 받는다. 사비는 홀로 엎드려 있다. 얼어붙은 해변이다. 돌덩어리는 보이지 않는다. 몸을 일으키자 이명을 느낀다. 그의 감각들이 적응하지 못한다. 그래도 그는 놀라지 않는다. 사비는 곧장 걸어간다. 해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걸음걸이에 여유를 가져야 할까. 길가에 자라난 풀들을 본다. 저택을 가리는 담벼락, 교차로에는 행상들이 있다. 사비는 그들의 생기 잃은 표정을 보고 고향에 왔음을 실감한다. 그는 단지 직관만으로 걸어갈 방향을 정한다. 이곳은 그다지 넓지 않아서 금방 목적지를 찾을 수 있다. 훼손된 집들이 눈에 띈다. 그럼에도 몇몇 구조물을 알아볼 수 있다. 그의 보금자리에는 폐기물이 쌓여 있다.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그곳이 한때는 집터였음을 어렵게 알 수 있다. 그는 쓰레기 더미에 기대어 앉는다. 그는 시간의 위력을 실감한다. 잠들길 바라지만. 축축하고, 악취가 올라온다. 빗방울의 점성이 높다. 모로는 없다. 사비는 경련을 일으키며 깨어난다. 그 아기다. 그의 발치로 아기가 기어온다. 어렴풋이 전해지는 작은 인간의 의도. 사비는 자세를 낮춘다. 아기는 귓속말로 그에게 꿈에 출석할 것을 통보한다. 흠잡을 데 없는 억양이다. 그러잖아도 사비는 위원회의 통보를 각오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는 돌아왔지 않은가. 사비는 아기를 앞장세워 꿈으로 향한다. 아기의 목덜미에는 번호가 적혀 있다.
  • 설현, 데뷔 후 최초로 선보인 파격 금발 ‘사람이야 인형이야?’

    설현, 데뷔 후 최초로 선보인 파격 금발 ‘사람이야 인형이야?’

    AOA의 설현이 금발 머리로 파격 변신했다. 25일 브랜드 헤지스 액세서리가 뮤즈 설현과 함께한 17F/W 네번째 화보 컷을 공개했다. 컬러 화보 시리즈 중 파이널로 공개된 ‘레드’ 화보 컷에는 롱 헤어스타일의 금발 미녀로 변신한 설현의 색다른 모습이 담겼다. 화보 속에서 매혹적인 미소를 머금은 설현은 레드 컬러의 룩에 대비되는 넉넉한 사이즈의 쇼퍼백 ’ 피주빌리 폴카’ 로 스타일리시한 데일리 룩을 선보이는가 하면, 스퀘어 형태로 활용도 높은 토트백 ’폴린’을 매치해 설현과 헤지스만의 감성을 녹여낸 감각적인 데이트 룩을 제안했다. 또 다른 컷에서는 부드러운 슈렁큰 소재를 사용해 자연스러운 쉐잎이 특징인 ‘셀마’로 데일리 스타일을 완성했다. 한편 설현은 지난 6일 개봉해 현재까지 2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 출연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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