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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벨베데레 궁전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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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앞에서는 모두가 사랑을 한다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앞에서는 모두가 사랑을 한다

    비엔나 여행 가면 무조건 들러야 하는 벨베데레 궁전, 그중에서도 구스타프 클림트의 명작 ‘키스’ 인증샷은 무조건 남겨야겠죠. 연인들이 작품 속 주인공처럼 서로 입을 맞추며 로맨틱한 순간을 기록하는 게 정석처럼 여겨지는데요. 친구들끼리도 장난스럽게 키스 포즈를 따라 하며 남긴 사진도 눈에 띕니다. 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이슈&트렌드 | 케찹(@ccatch_upp)님의 공유 게시물
  • 황금빛의 화가 클림트의 ‘키스’를 만날 수 있는 벨베데레 궁전 [한ZOOM]

    황금빛의 화가 클림트의 ‘키스’를 만날 수 있는 벨베데레 궁전 [한ZOOM]

    1857년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체 요제프 1세’(Franz Joseph I, 1830~1916)가 수도 빈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을 허물고 그 자리에 도로를 건설했다. 이 성벽은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세운 것이었다. 황제는 새로 만든 순환도로를 따라 공공건물을 세우기 시작했다. 링(Ring)처럼 생긴 순환도로는 ‘링슈트라세’(Ringstraße)라고 불리며, 이 도로 주변에는 국회의사당, 빈 대학, 자연사 박물관, 시청, 부르크 극장, 오페라 극장 등 빈을 대표하는 건물들이 세워져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간직한 벨베데레 궁전 링슈트라세 남쪽에 있는 ‘벨베데레 궁전’(Schloss Belvedere)은 ‘오이겐 폰 사보이 대공’(Prinz von Savoyen Eugen, 1663~1736)이 여름별장으로 지은 바로크 양식 궁전이다. 오이겐 대공은 17세기 대 튀르크 전쟁 당시 오스만 제국에게 포위된 빈을 구한 영웅이었다. 벨베데레 궁전은 후사가 없어 오이겐 대공의 사망 이후 한동안 방치되었다. 나중에 오스트리아 황실이 인수해서 황실에서 수집해온 예술작품을 공개하는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벨베데레 궁전은 상궁과 하궁으로 나누어진다. 상궁인 벨베데레 미술관은 단일 미술관으로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 ‘키스’(The Kiss)가 바로 여기 벨베데레 미술관에 있다. 황금빛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실험주의 대표작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크리스마스에도 집에 빵 한 조각 없었을 정도로 가난했다’는 클림트는 가난 때문에 학교마저 그만두어야 했다. 클림트는 담벼락에 현실을 비난하는 그림을 그리다가 경찰에 붙잡히지만, 이를 계기로 그림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고, 친척의 도움으로 ‘장식미술학교’에 입학했다. 클림트는 그 곳에서 모든 미술분야를 배워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879년 클림트는 동생 ‘에른스트 클림트’(Ernst Klimt, 1864~1892), 친구 ‘프란츠 마치’(Franz Matsch, 1861~1942)와 함께 ‘아티스트 컴퍼니’를 결성하고 그림의뢰를 받기 시작했다. 당시 빈은 성벽을 허물고 만든 링슈트라세 주변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고, 예술가들에게 벽화나 천장화를 그려달라는 요청이 많았던 시기였다. 한편 당대 최고 작가 ‘한스 마카르트’(Hans Makart, 1840~1884)가 사망하면서 다른 화가들에게도 그림 요청이 많던 시기기도 했다.  마침내 클림트에게도 부르크 극장 천장화를 그려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클림트는 아티스트 컴퍼니 동료들과 함께 극장 천장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렸다. 이 작품 덕분에 클림트는 황실로부터 황금공로십자 훈장을 받았고,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황금 모자이크 작품의 시작 1903년 클림트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사실주의에서 벗어나 아르누보와 새로운 실험을 추구해왔지만 보수주의 예술과들과 평론가들의 비난은 갈수록 심해졌다. 클림트에게는 휴식이 필요했고, 새로운 영감과 자극도 필요했다.  한때 서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이탈리아 ‘라벤나’(Ravenna)를 우연히 방문한 클림트는 ‘산비탈레 성당’(Basilica di San Vitale)에서 6세기 비잔틴 모자이크 양식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동로마제국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부인 ‘테오도라 황후’를 그린 모자이크 작품을 보며 평면을 통해서도 많은 의미를 담아낼 수 있다는 것과, 황금빛을 통해 영원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클림트는 모자이크와 황금빛을 사용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1907년 그의 대표작 ‘키스’가 탄생했다. 벨베데레 궁전을 떠나며 벨베데레 미술관이 있는 상궁에서 나와 바로크 특별전시가 있는 하궁으로 향했다. 상궁과 하궁을 이어주는 중앙공원은 ‘쇤부른 궁전’ 만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어디에 견주어도 손색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중앙공원을 걸으며 상궁에서 만난 클림트의 작품들을 떠올렸다. 미술이나 미학을 전공하지도, 미술에 관심이 많은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유명작품을 만나도 감동을 느끼기 보다는 유명한 작품을 마주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클림트의 ‘키스’ 앞에서도 그랬고, 런던에 있는 대영박물관을 갔을 때도 그랬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한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님께서 인용하신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알게 된다’는 말처럼 미술을 통한 감동의 기회를 다시 놓치지 않기 위해 알아야겠다. 미술이 감정의 영역은 맞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면 보인 후에는 작품을 통한 감정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벨베데레 궁전을 찾아야겠다. 그리고 그때는 지금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 낯선 풍경들 세 번의 설렘 내 맘에 저장[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낯선 풍경들 세 번의 설렘 내 맘에 저장[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나는 같은 장소를 여러 번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첫 번째 방문은 호기심과 감탄으로, 두 번째 방문은 더 깊은 관찰과 탐구의 느낌으로, 세 번째 방문은 나만의 시선으로 그 공간을 새롭게 해석하기 위하여. 물론 ‘단 한 번에 그 세 가지를 다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오래오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한 번의 방문만으로는 미처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첫 번째 방문과 두 번째 방문 사이에는 ‘아, 그때 그걸 봤어야 하는데,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두 번째 방문과 세 번째 방문 사이에는 ‘그 장소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한 장소를 방문한 뒤 그 장소에 대한 조사를 계속하게 된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지만, 나중에는 그리움 때문에, 다시 찾아가 더 제대로 깊이 바라보고 싶은 갈망 때문에. 내가 여행한 장소는 어느덧 ‘지도 위에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특별한 장소’가 되는 것이다.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벨베데레 미술관은 내게 100번을 가도 질리지 않는 장소다. 첫 방문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보기 위해서였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방문에서는 클림트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화가들의 매력에 함께 빠지게 된다. 미술관뿐 아니라 원래 궁전이었던 벨베데레 정원을 산책하는 기쁨을 더 깊이 알아 가게 된다. 세 번째 방문에서는 ‘클림트가 영향을 받은 화가들’이라는 테마로 새로운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클림트가 일종의 ‘프로젝트 밴드’를 구성해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화가와 화려한 합창단 공연을 하는 것 같았다.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에곤 실레, 앙리 마티스, 오귀스트 로댕 등 수많은 다른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얻었던 클림트의 놀라운 변신 장면을 볼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언젠가 네 번째, 다섯 번째로 이곳에 가게 된다면 나는 또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같은 장소의 새로운 매력’을 배울 수 있을까. 벌써 설렘이 가슴을 꽉 채운다. 내가 살아가는 곳을 이렇게 유일무이한 아름다움으로 채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많은 예술과 더 많은 꿈과 더 많은 열정이 둥지를 틀 수 있는, 우리들의 장소, 우리들의 도시를 상상하며 나는 더욱 설렌다. 그곳이 내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마치 그 장소가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한 느낌을 사랑한다. 아름다운 장소들은 나에게 질문을 한다. “너는 도대체 왜 이렇게 멀리 찾아온 것이니?” “네가 사는 곳도 이곳처럼 아름답고 멋진 곳이니?” “너는 네가 사는 곳을 사랑하고 있니?” “이런 장소를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 아름다운 장소가 던진 가장 아픈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장소를 사랑하지 않는 거니?” “그래서 이토록 멀리 떠나온 거니?” 더 오래, 더 멀리 떠날수록 나는 장소가 던지는 질문들에 잘 대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내가 살아가는 장소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토록 멀리 떠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장소를, 이 도시를 사랑한다. 내가 살아가는 장소를 더 아름답고 살 만하게 만들기 위해, 나는 여행을 통해 영감을 얻는다.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장소의 비밀을 탐구한다. 아무리 가고 또 가도 질리지 않는 장소의 매력을. 아이가 되어 세상에 눈뜨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나는 오랫동안 서울에서 살아왔지만, 아직도 서울이라는 커다란 도시를 제대로 알지는 못한다. 외국인이 길을 물어보면 나도 같이 헤매며 인터넷으로 지도를 찾아 가르쳐 주기도 한다. 학교와 직장, 자주 가는 음식점이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몇몇 장소를 빼면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하물며 여행의 장소는 어떻겠는가. 매일 살아가는 장소에 대한 기억은 ‘추억’보다는 ‘필요’로 기억된다. 이곳에 가면 뭐가 맛있고, 저곳에 가면 무엇이 좋은지, 어떤 혜택이 있는지를 기억하는 평소의 장소감은 지극히 실용적이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면 새로운 감각이 열린다. 일단 기차나 비행기 같은 장거리 교통수단을 활용할 때 뇌가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아주 멀리 떠나는 기쁨. 멀리 떠나는 몸은 피곤하고 힘들지만, 마음은 신기하게도 활기차고 설렌다. 단 며칠만이라도 여행을 떠나면 일상 속에서 복잡하고 힘들었던 감정은 사라진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언제 힘들었냐는 듯이. 눈은 끊임없이 새로운 볼거리를 찾는다. 이윽고 여행지에 도착하면 낯선 장소의 규칙을 배우며 마치 어린아이가 되는 기분이다. 전혀 다른 나라에서 지하철표를 사는 방법, 택시를 타는 방법, 메뉴판 보는 법, 식사 주문하는 법 등을 배울 때마다 나는 다시 어린아이가 돼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그런 싱그러운 배움의 시간이 좋다. 가장 멋진 시간은 벨베데레 미술관처럼 오랫동안 꿈꾸던 장소에 도착하는 순간이다. 부리나케 클림트의 ‘키스’가 있는 방으로 곧장 뛰어가고 싶지만, 표를 사야 하고, 줄을 서야 하고, 공간의 형태를 머릿속에 새겨넣어야 한다. 잘 모르지만 끝내 잘 알고 싶은 것을 향해 돌진할 때, 인간은 열정과 겸허를 동시에 배운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마구 뛰어가고 싶지만, 규칙을 지켜야 하고,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는 점점 ‘내가 멀리서 동경하던 장소’와 친구가 된다. 벨베데레 미술관은 변신을 거듭하는 역동적인 공간이다. 올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해 관람객들을 즐겁게 해 준다. 부지런히 큐레이팅을 바꾸어 매번 다른 주제로 그림을 재배치하고, 새로운 작품을 사들이고, 같은 작가라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한다. 관람객들이 클림트뿐 아니라 다른 수많은 화가들에게도 관심을 돌릴 수 있도록 다채로운 전시를 보여 준다. 약 900년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시대의 예술작품이 무려 1만 8600점이나 소장돼 있다. 클림트에게 관심을 가지고 벨베데레 미술관에 방문했다가 방대한 유럽 미술의 역사 전체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그곳에서는 수백 년 전에 피어난 꽃들, 수백 년 전의 초상화 속 주인공인 여인들과 아이들, 정확히 장소를 특정할 수 없는 이름 모를 나무와 풀들까지도 여전히 살아 있는 느낌이다.어느새 유럽 미술에 빠지다 벨베데레 미술관의 수많은 그림들을 관람하다 보니 ‘나는 꽃이 죽지 않도록 그림을 그렸다’는 프리다 칼로의 고백이 생각났다. 그 수많은 화가들의 아름다운 몸부림으로, 언젠가 이 지구상에 단 한 번 피었던 이름 모를 들꽃조차 박물관의 캔버스 위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참 쉽죠?”라는 유행어로 알려진 다정한 화가 밥 로스의 말처럼 우리 각자는 살면서 언젠가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지만,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우리가 미처 잘 못 느끼는 삶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화가들의 재능이 놀랍다. ‘어떻게 키스를 그렇게 그릴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으로 매번 클림트의 ‘키스’ 앞에서 황홀경에 빠지고, ‘어떻게 이토록 평범한 해바라기를 이토록 눈부시게,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그릴 수 있을까’라는 놀라움으로 고흐의 ‘해바라기’ 앞에 다시 선다. 그림이 있는 매일, 날 깨우다 책이나 인터넷 화면이 아니라 원작이 있는 미술관에 직접 가서 그림을 보는 기쁨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림 고유의 질감, 생생한 붓터치, 그리고 미술관 각자가 지닌 공간의 아름다움과 함께 느끼는 예술의 감동은 늘 다시 한번 짐을 꾸려 그곳에 또 가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밥 로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린다면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 되지요.” 정말 그렇다. 그림을 그리는 날뿐 아니라 그림을 보는 날 또한 매일 좋은 날이 됐으면 좋겠다. 그림을 감상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잠깐의 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눈부시게 찬란하다. 나는 그림 앞에서 경이로움과 감탄의 미소를 짓는 날이 좋다. 클림트의 ‘키스’ 앞에 서면 ‘이 그림은 반드시 여기 있어야겠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이 그림은 빈의 상징이며, 예술의 심장이며,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의 상징이 돼 우리 가슴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어떤 장소에 가면 그야말로 기가 살고 허리가 쭉 펴지는 느낌이 든다. 나의 오감과 세포 하나하나가 싱그럽게 깨어나는 느낌. 햇살과 구름 하나하나가 다 날 위해 존재하는 듯한 기분 좋은 착시. 모든 풍경이 나의 완벽한 하루를 위해 축복을 내리는 듯한 기쁨. 토포필리아(topophilia), 장소에 대한 사랑은 삶을 살아가는 활력소가 돼 힘든 나날들을 견디는 마음의 응급상자가 돼 준다. 마치 다가올 질병에 대비하기 위해 영양제나 보약을 먹어 두듯이 여행은 내게 ‘앞으로 견뎌야 할 고통’에 대한 마음의 면역력을 키우는 영혼의 비타민이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당신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빛을 끌어내는 법을 발명해 내기를. 그리하여 여행이란 인간과 장소가 가장 아름답게 관계 맺는 법이 아닐까. 문학평론가·작가
  • 영화관 스크린으로 루브르 한눈에 봐요

    대형 스크린으로 세계 유수 미술관의 작품을 더 생생하게 둘러보고 깨알 같은 전문 해설까지 들을 수 있는 ‘영화관 내 미술관’이 2년 만에 돌아온다. 메가박스는 오는 20일부터 연말까지 9개국 11개 도시 21개 미술관을 스크린을 통해 찾아가는 ‘2022 시네 도슨트’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메가박스의 큐레이션 브랜드 ‘클래식 소사이어티’가 마련한 이번 시네 도슨트는 세계 유명 미술관들의 작품과 예술사를 전문가 해설과 함께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2019년 처음 선보여 이듬해까지 전 회차 매진을 기록한 인기 강연이다. 특히 올해는 미국 최대 규모 미술관인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와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 ‘벨베데레 궁전 박물관&레오폴트 미술관’ 강의가 추가됐다. 안현배 미술사학자가 다시 강연자로 나선다.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역사학과 프랑스 근대 정치 문화사를 전공한 그는 대학 강단 등에서 서양 예술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 강연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이다. 세계 최대 박물관이 보유한 방대한 소장품들을 20일 오전 11시, 21일 오후 7시 30분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만날 수 있다. 27~28일 예정된 두 번째 강연에선 반 고흐의 작품 대부분을 소장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과 오테를로 국립공원 숲속에 있는 ‘제2의 반 고흐 미술관’ 크뢸러 뮐러 미술관을 찾아간다. 2022 시네 도슨트는 앙코르 강연을 포함해 모두 15회차로 구성됐다. 모든 강연은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진행된다. 관람료는 회당 1만 5000원.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참조. 메가박스 관계자는 “2020년 8월 프로그램 중단 뒤 문의 고객이 많았다”며 “미술 애호가들에게 희소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랜선으로 만나는 세계의 크리스마스 마켓

    랜선으로 만나는 세계의 크리스마스 마켓

    유럽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설날과 같다. 멀리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다시 만나 즐거움을 함께 나눈다. 우리가 설빔을 사러 장에 가듯, 유럽 사람들은 성탄절을 즐기기 위해 크리스마스 마켓에 간다. 올해 크리스마스 마켓은 오미크론 등 코로나 확산 탓에 확연히 축소된 모양새다. 그래도 몇몇 나라들은 록다운(lockdown)을 풀고 크리스마스 마켓을 열었다. 팬데믹으로 축 처진 모양새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는 몇몇 나라들의 성탄절 표정을 랜선으로 전한다.오스트리아는 12월 중순에 록다운 조치를 해제하고 관광지의 문을 다시 열었다. 레스토랑, 카페, 호텔 등이 다시 문을 열고 손님들을 맞고 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유명한 곳은 역시 비엔나다. 벨베데레 궁전의 크리스마스 빌리지부터 쇤브룬 궁전, 시청 앞 광장 등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고 있다. 무료 캐롤 공연이 열리고 야외엔 아이스링크도 마련된다. 록다운이 해제된 오스트리아를 방문하려면 백신 접종 증명서와 유전자증폭검사(PCR) 음성 확인서(부스터 샷 접종자는 제외) 등을 준비해야 한다.체코는 화려한 크리스마켓으로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곳은 프라하다. 구시가지 광장과 바츨라프 광장 등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전통 크리스마스 장식, 수공예품 가판대, 체코 전통 음식, 크리스마스 음식 등을 만날 수 있다. 프라하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다소 길어 새해 1월 6일까지 이어진다.스위스 취리히, 루체른, 바젤 등에서도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스위스 관광청 한국사무소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4주 동안 스위스의 도시가 일 년 중 가장 낭만적으로 물든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취리히의 경우 중앙역, 프라우뮌스터 등 거의 시내 전역이 성탄 분위기로 가득하다. 특히 반호프슈트라셰 일대는 취리히 야경의 정수로 꼽힌다. 새해 1월 1일까지 불을 밝힌다. 루체른에선 1월 2일까지 무료 스케이트장도 운영된다.‘산타 클로스의 고향’으로 알려진 핀란드 로바니에미의 산타 마을에서도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실제 산타 클로스와 사진을 찍고 시베리안 허스키, 순록 등이 끄는 썰매, 빙판 드라이빙 등 이색적인 겨울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다만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 예년보다 썰렁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로바니에미는 시내에서도 오로라를 관찰할 수 있는 도시다. 도심에 인접한 케미요키 강변에서 만나는 ‘노던 라이트’가 극적으로 아름답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숨이 멎을 듯, 풍경 자체가 예술

    숨이 멎을 듯, 풍경 자체가 예술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파리로 향하는 유럽횡단 기차 안에서 주인공 제시(이선 호크 분)와 셀린(줄리 델피 분)은 처음 만난다. 부부 싸움으로 시끄러운 독일 커플을 피하려고 셀린이 자리를 옮기다가 미국인 청년 제시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잠깐의 인사로 시작된 대화는 서로를 향한 친밀감과 호감을 키우고, 그러다 도착한 빈에서 헤어지기 아쉬운 제시가 셀린에게 하루 동안 빈 여행을 같이하자고 깜짝 제안을 한다. 빈에 함께 내린 둘은 발길 닿는 대로 빈을 여행한다. 아무 카페에 들어가 차를 마시고 도시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랑, 죽음, 인생, 성욕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알아 가고 사랑을 싹 틔운다. 아침과 함께 다가온 이별의 순간, 두 사람은 다시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서로를 떠나보낸다. 영화에서 빈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도시로 그려진다. 셀린과 제시가 산책하는 장면에 등장한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 대관람차가 있는 프라터, 알베르티나 박물관 등 이 영화에 등장한 장소를 돌아보는 상품도 많이 나와 있다. 대부분의 장소가 한 번 나오지만 단 한 곳, 알베르티나 미술관은 두 번 등장한다. 첫 번째는 하루 동안 빈 곳곳을 돌아다닌 제시와 셀린이 알베르티나 미술관 2층 발코니에 올라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키스를 나눈 장소로, 두 번째는 다음날 아침 헤어지기 직전 미술관 발코니에 위치한 동상 아래 무릎을 베고 누워 사랑을 속삭이는 장소로. ●미술관에서 보내는 행복한 시간 빈에 있는 수많은 미술관 가운데 알베르티나 미술관은 현대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데, 신디 셔먼, 모리야마 다이도 등 현대사진 거장들의 작품을 오리지널 프린트로 만날 수 있다. 이들 작품 앞에 서면 사진은 왜 오리지널 프린트로 봐야 하는지 알게 된다. 인터넷이나 잡지, 사진집에서 만나던 사진 작품과는 전혀 다른 아우라를 가진 작품 앞에서 머리칼이 곤두서는 경험을 하게 된다. 조금 뜬금없는 말 같지만 제시도 셀린에게 이런 말을 했다. “사진을 찍는 거야. 널 영원히 기억하려고.”‘비포 선라이즈’는 빈을 아주 로맨틱하게 그려 내는 영화다. 실제 빈을 로맨틱하게 만들고 있는 요소 중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도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키스’가 아닐까. 빈 남동쪽에 위치한 벨베데레 궁전에는 오스트리아가 배출한 거장 클림트의 ‘키스’ 원화가 걸려 있다. 그림과 실제로 마주하는 감동은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하다. 그림 앞에 서면 숨이 턱 하고 막힌다. 누구나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고 그림 앞에 서지만, 온몸을 덮쳐 오는 감동은 상상 이상이다. 머릿속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드는 것만 같은 압도적이고 기이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눈물을 훌쩍이는 이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박물관 안은 촬영 금지인데, 굳이 촬영 금지 표지를 붙여 놓지 않아도 될 듯. 셔터를 누를 생각조차 들지 않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현대미술을 논할 때 클림트와 함께 이야기할 예술가가 한 명 더 있다. 에곤 실레다. 스물여덟이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천재. 그의 작품을 감상하고 싶다면 고민할 필요 없이 레오폴트 미술관으로 향해야 한다. 박물관의 원주인이자 미술 애호가였던 루돌프 레오폴트의 이름을 따서 만든 곳으로, ‘박물관 지구’(Museum Quartier) 안에서도 최고로 사랑받는 미술관이다. 실레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그와 가까이 지냈던 클림트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상설전시 외에도 근현대미술과 관련한 특별 전시회가 자주 열리기에 빈 시민들도 새 전시를 보기 위해 미술관을 수시로 방문한다. 빈이라는 도시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예술일 것이다. 1273년 루돌프 1세를 시작으로 1918년 카를 1세에 이르기까지 무려 645년 동안 유럽의 절반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빈을 본거지로 삼았고 대대로 어마어마한 미술품을 수집했다. 지금이야 합스부르크 왕조는 패망했고 오스트리아 역시 유럽의 소국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남긴 문화의 향기는 아직도 빈 시내 곳곳에 남아 이 도시의 고고함과 우아함을 유지시켜 주고 있다.미술사 박물관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컬렉션을 모아 놓은 곳이다. 100여분의 러닝타임에서 3분의2 이상이 빈 미술사 박물관을 무대로 삼은 ‘뮤지엄 아워스’라는 영화가 있을 정도다. 영화의 줄거리는 특별한 것이 없다. 사촌 동생이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빈으로 향한 주인공 앤이 미술사 박물관에서 안내원으로 일하고 있는 요한을 우연히 만나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는 것이 내용의 전부다. 그런데 미술사 박물관에 발에 들여놓으면 이 말도 안 되는 영화가 정말로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4세기부터 18세기까지 세계 미술사를 아우르는 눈부신 회화 작품들과 조각 및 공예품, 고대 이집트 유물 사이를 걸어 다니다 보면 하루는커녕 일주일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깨닫게 된다.●어깨 위를 흐르는 왈츠의 선율 빈을 찾은 많은 사람이 미술관부터 달려가지만 빈은 음악의 도시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 쇤베르크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 브람스, 말러와 같은 유명 작곡가들도 빈과 인연을 맺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세계 정상급의 교향악단이며, 빈 국립 오페라 하우스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오페라 하우스 중 하나다. 빈에서는 꼭 무지크페어아인에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어 보시길. 음악 감상은 빈에서는 놓치기에 너무 아까운 기회다. 빈 필이 들려주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를 듣다 보면 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빈의 오페라 극장은 좌석에 앉아 보려면 정장을 해야 하는데, 입석표를 사면 자유로운 복장으로도 음악 감상이 가능하다. 요금은 4유로 정도. 공연 약 2시간 전에 가면 입석표를 구할 수 있다. 빈 곳곳에서 열리는 야외공연 역시 높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성 슈테판 대성당 뒤편에 자리한 피가로 하우스는 모차르트 추종자들이 가장 먼저 달려가는 장소다. 모차르트가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를 작곡하기 위해 머물렀던 곳인데, 모차르트는 이곳에서 1784년부터 1787년까지 살았다고 한다. 시내 중심지에는 베토벤 하우스도 있다. 고풍스러운 건물의 좁은 계단을 오르면 4층에 한때 베토벤이 머물렀던 방이 있다. 그 방에는 베토벤이 쓰던 피아노와 편지, 조각상들이 전시돼 있다. 그는 이곳에서 교향곡 4, 5, 7, 8번을 작곡했다. 도시 남동쪽에 자리한 시립공원은 수수한 영국식 정원이다. 이곳에서는 슈베르트를 비롯해 요한 슈트라우스, 레하르, 브루크너 등 빈에서 활동했던 음악가들의 기념상을 볼 수 있다. ■ 별처럼 빛나는, 한겨울 밤의 낭만●합스부르크 왕가의 자존심을 간직한 건축물 빈 시내 곳곳에는 ‘해가 지지 않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이 넘쳐난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번영을 만날 수 있는 호프부르크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도 등장한다. 호프부르크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황제인 카를 1세가 퇴위할 때인 1918년까지 황실의 궁전으로 이용되던 곳이다. 지금도 오스트리아 대통령 공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20여개의 박물관과 도서관, 성당, 승마학교, 카페,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 있다. 13세기 초반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해 20세기 초까지 개축과 증축이 계속돼 각기 다른 시대의 건축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호프부르크로 들어서기 전 미카엘 광장에 주의 깊게 볼 건물이 있다. 미카엘 문 바로 건너편에는 주변의 화려한 건물과는 판이하게 다른 현대적이고 심플한 건물이 서 있다. 100년 전에 지어진 이 건물은 현대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돌프 로스의 작품이다. 이 집이 지어질 당시 빈 시민들과 언론은 당시 빈 건축양식의 전통을 반역했다며 일제히 혹평했고 심지어 아돌프 로스는 경찰청에도 불려 갔다고 한다. 결국 창문틀에 화분을 장식하는 것으로 극적인 타협을 했다고 한다. 로스하우스 바로 옆에는 왕궁에 커피와 과자를 납품하던 데멜 카페가 있는데, 슈테판 대성당을 나와 호프부르크로 가기 전 이곳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잠시 여유를 가져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빈의 남서쪽 교외에는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쇤브룬궁전도 있다. 쇤브룬궁전은 합스부르크가의 여름 별궁으로 궁전 안에는 자그마치 1441개의 방이 있다. 이 중 45개 방만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합스부르크 유일의 여제이자 가장 강력하게 왕조를 주도했던 마리아 테레지아 그리고 프랑스 혁명 중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만 그의 딸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용했던 방과 초상화 등을 직접 볼 수 있다. 작은 베르사유궁전이라 불리듯 1.7㎞에 달하는 정원도 볼거리다.●신고딕 양식의 정수를 보여 준 빈 시청 호프부르크 건너편에 자리한 빈 시청은 프리드리히 폰 슈미트에 의해 완성된 신고딕 양식 건물로 보는 이의 찬탄을 불러일으킨다. 여름에는 필름페스티벌,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마켓과 스케이트장 개장 등 1년 내내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시청 가까이 자리한 국회의사당은 옛 그리스의 신전 같은 외관이 매우 독특한데, 그리스에서 발생한 민주주의가 오스트리아에 잘 정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빈을 1박 2일 정도 여행한 후 체코나 인근 도시로 떠난다. 하지만 빈은 사나흘 아니 일주일은 충분히 머물러 있을 만큼 볼거리가 많고 아름다운 도시다. 미술관을 구경하고 빈 필하모닉을 듣고 부드러운 멜랑지 커피를 마시며 영롱한 시간을 만들 수 있는 도시다. 빈에서의 마지막 날은 카페 스펄에서 보내 보자. 1880년 문을 연 카페다. 영화에서 두 주인공이 서로의 마음을 고백했던 바로 그곳이다. 바로크풍의 실내장식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제시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건 끝이 있어. 그래서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거야.” 인생도 여행도 언젠가 끝이 나니까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 그렇다면 헤어진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비포 선셋’을 보면 된다.
  • 히틀러 트로츠키 티토 프로이드 스탈린이 함께 머물렀던 도시는?

    히틀러 트로츠키 티토 프로이드 스탈린이 함께 머물렀던 도시는?

    퀴즈 하나. 아돌프 히틀러와 레온 트로츠키, 요시프 티토, 지그문트 프로이드, 요시프 스탈린이 한 세기도 훨씬 전인 1913년 함께 머물렀던 도시는? 답은 오스트리아 빈. 영국 BBC 매거진은 우연의 일치치곤 기묘하게 한 도시에 삶의 궤적이 얽힌 다섯 인물의 빈 생활을 조명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그 해 1월 스타브로스 파파도풀로스란 이름의 여권을 지닌 인물이 폴란드 크라쿠프를 떠난 기차에 몸을 싣고 빈의 노스터미널 역에 도착했다. 커다란 수염을 달고 있었으며 목재 여행가방을 든 채였다. 그가 만났던 한 남자는 몇년 뒤 “난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는데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웬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작고 땅딸막한 그는 회갈색 피부에 마마자국이 선명했다. 그의 눈에는 친근함 따위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적었다. 이 글을 쓴 이는 1907년부터 1914년까지 이 도시에 머무르며 러시아의 반체제 신문 프라우다를 발행했던 러시아 지성의 대표자 트로츠키였다. 그는 1907년부터 1914년까지 이 도시에 머무르며 니콜라이 부하린과 함께 ‘마르크시즘과 국가 문제’를 집필하고 있었다. 의문의 사나이는 태어날 때 이름이 Iosif Vissarionovich Dzhugashvili이며 친구들 사이에 Koba로 통했으며 지금은 요시프 스탈린으로 기억되는 인물이었다. 그해 1월 한달 동안 이 다섯 남자가 모두 빈 중심가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둘은 도망자 신세였으며 프로이드는 1860년대 빈에 이주해 1938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자 이 도시를 떠났는데 당시는 베르가세란 곳에 살며 마음의 비밀을 연 남자로서 추앙받고 있었다. 나중에 유고슬라비아의 지도자 티토 장군으로 명성을 얻은 젊은 날의 Josip Broz는 빈 남쪽의 빈 노이슈타트에 있는 다임러 철강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며 좋은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제국 군대에 자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스트리아 북서부 출신으로 1908년부터 이 도시에서 살아 24세 나이에 화가의 꿈을 안고 비엔나 예술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싶었으나 두 차례나 낙방하고 다뉴브강 근처 멜더만스트라세의 저급 여인숙에 기거하던 히틀러가 있었다. 다른 건 제쳐두더라도 이 도시의 호프버그 궁전은 1848년 혁명 이후 즉위한 프란츠 요세프 황제가 노년을 보낸 곳이다. 황태자 프란츠 페르난디드 대공은 근처 벨베데레 궁전에 머무르며 왕위 계승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가 암살되면서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빈은 15개 나라 5000만명이 훨씬 넘는 인구를 거느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였다. 이 도시에서만 17년 동안 살아왔고 오스트리아에서 유일하게 영어로 발행되는 월간지 ‘비엔나 리뷰’의 수석 편집자인 다르디스 맥너미는 ”딱히 ‘용광로’가 할 수는 없겠지만 비엔나는 제국의 야망이 한데 모이는 일종의 문화적 잡탕(soup)이었다“며 ”200만 시민의 절반 이하만 원래 이곳에서 태어난 이들이고 4분의 1씩은 보헤미아(지금의 체코공화국 서부)와 모라비아(지금의 체코공화국 동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독일어와 체코어는 물론, 10여개 언어가 혼용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는 독일어 외에도 11개 언어로 명령을 내려야 했고 국가는 그 수만큼 공식 번역본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런 상황에 커피 하우스란 독특한 문화 현상이 출현했다. 물론 그 출발은 1683년 오스만 군대가 저유명한 터키 포위에 실패한 뒤 커피 종자를 빈에 들여온 것이었다. 해외정책 싱크탱크 채텀 하우스의 선임연구원이며 ‘1913-대전쟁 전의 세계를 찾아’의 저자인 찰스 에머슨은 ”카페 문화와 카페에서의 토론과 논쟁에 대한 언급들은 지금이나 그때나 빈 생활의 커다란 영역“이라며 ”빈의 지성 커뮤니티는 아주 작아서 모든 이들이 서로를 알았다. 문화적 경계를 뛰어넘어 모든 것들이 오갔다“고 지적했다. 도망 중인 반체제 인물들에게는 빈의 이런 풍토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에머슨은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도 아니었고, 아마도 약간은 느슨한 나라였다. 흥미로운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으면서도 유럽에서 안전하게 숨을 장소를 찾는다면 빈은 그러기에 딱 좋은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로츠키와 히틀러는 카페 센트럴에 자주 나타났는데 이곳에는 케이크, 신문, 체스와 무엇보다도 대화가 가능했다. 맥너미는 ”그 카페들을 중요한 장소로 만든 것들은 모든 이들이 간다는 것이었다“며 ”그래서 규율과 이해관계에 상관 없이 비옥한 사상의 토양이 만들어졌다. 나중에 서구 사상은 매우 엄격해졌는데 여긴 아주 물흐르듯 자유로웠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1867년 프란츠 황제가 시민권을 전면 보장하면서 학교와 대학 접근권이 보장돼 유대인 지성계와 새로운 자본가 계급의 에너지가 넘쳐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남성 지배 사회였지만 상당수 여성도 혜택을 누렸다. 구스타프 말러가 1911년 세상을 떠난 뒤 미망인 알마도 작곡자 겸 뮤즈가 돼 예술가 오스카르 코코슈카와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의 연인이 됐다. 빈은 음악과 호화 무도회와 왈츠의 상징이 됐지만 뒷모습은 암담해졌다. 엄청나게 많은 시민들이 슬럼가에 거주했고 거의 1500명이 한해 동안 자살했다. 히틀러가 트로츠키와 마주쳤는지, 티토가 스탈린과 만났는지 아는 이는 없다. 그러나 2007년 로렌스 마크스와 모리스 그랜이 만든 라디오 드라마 ‘프로이드가 히틀러를 진찰한다면’는 이런 만남을 상상해 만들어졌다. 이듬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함으로써 빈의 지성계는 와해됐다. 1918년 제국이 붕괴되면서 히틀러와 스탈린, 트로츠키와 티토는 영원히 세계사에 아로새겨질 각자의 행로에 접어들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SUHD vs OLED 프리미엄TV 大戰

    삼성전자 “TV 수명 반영구적… 영국에서도 화면 10년 무상보증” LG, 고해상도·대형화면서 우위… 동종 TV 생산 10곳 늘어 고무적 글로벌 TV 시장이 역성장하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수익성이 높은 프리미엄 TV 시장 우위를 점하려는 경쟁을 이어 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액정표시장치(LCD) 패널의 진화 모델로 나노 크기 입자를 광원으로 사용하는 퀀텀닷 SUHD 기술에, LG전자는 자체발광 유기물 소자를 활용한 올레드(OLED) 기술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한국에 이어 영국에서 퀀텀닷 SUHD TV의 화면 얼룩(번인) 10년 무상보증 프로그램을 실시한다고 15일 밝혔다. 같은 화면을 오래 켜두거나 방송사 로고처럼 특정 이미지가 한 위치에 오래 노출된 뒤 그 부분에 문제가 생겨 화면에 얼룩이 진 것처럼 보이는 게 번인이다. 성일경 삼성전자 상무는 “지난달 둘째주 SUHD TV가 2500대 팔려 주간 최대 판매기록을 세우는 등 10년 무상보증의 판매 효과가 검증되고 있다”면서 “무기물인 퀀텀닷을 탑재한 SUHD TV의 화질 내구성을 증명하기 위해 (일반적인 TV 화면 보증기간인 2년을 훌쩍 넘겨) 10년 보증 프로그램을 채택했다”고 말했다. 무기물 소재인 퀀텀닷의 수명은 반영구적이라고 삼성전자는 설명했다. LG전자는 고해상도·대형화 경쟁에서의 우위를 발판 삼아 전 세계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 중이다. 2013년 올레드 TV 양산에 세계 최초로 성공한 LG전자는 올해 미국 슈퍼볼 광고를 내고, 영국 자연사박물관과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궁전 등에 올레드 TV를 설치하며 저변 확대를 꾀하고 있다. LG전자 가전(HE) 사업본부장인 권봉석 부사장은 “차원이 다른 올레드TV로 글로벌 프리미엄 TV 시장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올레드TV 생산에 뛰어든 제조사가 최근 10여곳으로 늘어난 점도 올레드 TV 시장 확대를 노리는 LG전자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시장조사 업체 IHS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TV 판매량이 2억 2625만대로 2014년(2억 3492만대)보다 3.7% 줄어들며 ‘판매량보다 수익성’이 중시되는 국면에서 프리미엄 시장을 겨냥한 TV 제조사들이 올레드 TV 생산 대열에 합류 중이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문화마당] 열정적 인생/장유정 극작가

    [문화마당] 열정적 인생/장유정 극작가

    요즘 온 나라가 월드컵 때문에 들썩거린다. 함께 일하고 있는 영화팀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스전 경기가 열렸던 지난 토요일엔 지방 촬영이 있었는데, 분장이니 조명 세팅이니 뭔가가 꼬이면서 예상보다 1시간 지연됐다. 저녁 7시가 되자 여기저기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빨리 끝내달라는 은근한 압박이 가해졌다. 마지막 오케이가 떨어진 8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른바 ‘바라시’라고, 매회 촬영이 끝나면 장비들을 정리해서 차에 싣는 일을 일컫는 말인데, 대충 1시간가량 걸린다. 한데 그날은 모두 어찌나 총알같이 움직이던지 15분 만에 주차장이 텅 비어 버렸다. 심지어 차문을 열고 출발하는 팀이 있을 정도였다. 숙소에 다 함께 모였는데 평소에는 점잖던 사람들이 미친 듯 소리치며 응원하는 모습을 보니 어제 밤샘한 사람들 맞나 싶었다. ‘열정적’이라는 말 말고 이들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또 있을까. 월드컵 하면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다. 2002년 여름, 모두가 축구에 열광하고 있을 즈음 나는 국제 학생연극제에 초청되어 슬로바키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어느 화장품 광고의 문구처럼 참 매력적인 나이, 그해 나는 스물일곱이었다. 매력, 사람을 잡아끄는 힘. 참 근사한 단어 아닌가. 하지만 그때 난 전혀 매력적이지도, 혹은 매력적인 대상을 찾지도 못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것도 없는데 가슴 밑이 허전한 게 어디든 떠나 그 뭔가를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비행기 좌석에 배치된 잡지를 보다 시선을 멈추게 하는 사진을 발견했다. 벨베데레 궁전을 배경으로 한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사진이었는데, 곳곳에 숨어 있는 황금색이 매우 자극적이었다. 황금색 넥타이를 맨 웨이터, 황금색 테이블보가 깔린 카페, 황금색 액자 속의 황금색 그림. 도시 전체가 황금빛 위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도시의 색채를 주도하고 있는 이름은 구스타프 클림트였다. 진정한 매혹은 거절할 수 없을 때 더 빛나는 것이리라. 클림트의 황금빛은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빈으로 갔다. 직접 본 클림트의 모델들은 하나같이 우아하고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초탈한 듯 몽환적이었다. 그리고 그 눈 속에는 뇌쇄적인 열정과 범접할 수 없는 고결이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아, 시선의 생명이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게 아닐까. 궁전 잔디밭에서 점심을 먹었다. 샌드위치를 쌌던 은박지가 오후 햇살에 반짝였다. 무심코 봤더니 내 얼굴이 그 속에 비춰져 있었다. 잠시 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나의 시선은 어떤가? 직선적인가? 우회적인가? 혹시 보아도 보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 살아 있기는 한가? 관람이 끝나고 포스트카드를 한 장 산 뒤 궁전 벤치에 앉아 엽서를 썼다. 주소는 서울 내 자취방, 수신자는 나였다. 두 달 후 한국에 도착했을 때 이 순간의 깨달음을 잊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살아 있어도 더 살아 있고 싶은 기분, 열정! 지구 반 바퀴를 헤매면서까지 찾고 싶었던 것이 혹 그것은 아니었을까. 아쉽게도 집에 돌아와 받아 본 엽서는 장맛비에 홀딱 젖어 있었다. 버리기는 아깝고 읽을 수는 없어 손바닥에 올려놓고 지그시 눈을 감아 보았다. 순간 상큼한 여름 자두를 깨문 것처럼 빈에서의 그 생생한 황금빛이 감은 눈 속에 가득 번졌다. 열정적 인생, 클림트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2010년 여름, 그때처럼 월드컵 기간 동안 나는 해외에 간다. 이번에는 인도다. 바뀐 게 있다면 이번엔 영화를 찍기 위해 간다는 것. 8년 전 슬로바키아에서 시작해서 빈을 거쳐 러시아와 중국을 지나 한국으로 건너왔던, 나름의 대장정 후 구상했던 작품이다. 그때보다 나는 얼마나 더 열정적이 되었나. 얼마나 내 삶을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는가. 눈빛은 아직도 살아 있는가.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요즘이다.
  • 삼성전자, 세계 최고 권위 ‘비엔나 왕립승마학교’와 협력관계 체결

    삼성전자, 세계 최고 권위 ‘비엔나 왕립승마학교’와 협력관계 체결

    삼성전자는 오스트리아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430년 전통의 ‘비엔나 왕립승마학교’와 공식 협력관계를 체결했다고 5일 밝혔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호프부르크(Hofburg) 궁전 내 위치한 비엔나 왕립승마학교는 16세기 합스부르크 (Habsburg) 왕가에 의해 설립, 고전적 고등 승마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종마교육 기관으로서 연간 35만명이 관람하는 리피차너(Lipizzaner) 백마는 최고의 명물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지난 1998년부터 10여년간 삼성슈퍼리그(SSL·Samsung Super League) 등 국제승마대회를 후원해 왔으며, 이번에 그 공로가 인정돼 20년 경력의 왕립승마학교 수석기수 에른스트 바힝에르(Ernst Bachinger)와 최고의 명마인 N.파스티메(Napolitano Pastime)의 명예 후원사로도 선정됐다.  오스트리아 문화계 유력인사이기도 한 엘리자베스 귀르틀러(Elisabeth Guertler) 비엔나 왕립승마학교 대표는 “왕립승마학교는 오스트리아 국민은 물론이고 유럽 국가들로부터 매우 존경받고 사랑받는 품격있는 명소로서, 이 곳의 기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할 정도로 진정으로 사랑받는 곳”이라며, “오스트리아에서의 삼성의 위상, 그 간의 문화적 활동 등이 충분히 고려되어 이번에 삼성전자와 공식 협력관계를 체결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후원 계약을 통해 공연장 안팎에 LCD, PDP TV와 모니터 월 등을 곳곳에 설치, ‘삼성’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노출시킬 수 있게 됐으며, 명예후원을 하게 된 수석기수와 최고의 名馬를 활용한 홍보 등도 가능하게 됐다.  삼성전자 오스트리아법인(최방섭법인장)은 그 동안 쉔부른궁(Schoenbrunn), 벨베데레궁(Belvedere), 씨씨박물관(Sisi Museum) 등 오스트리아 內 최고 명소 후원을 통해 차별화된 문화마케팅을 적극 전개해 왔으며 이번에 새롭게 추가되는 ‘명마(名馬)마케팅’으로 오스트리아에서 높아진 삼성전자의 위상을 각인시킬 수 있었다.  삼성전자는 오스트리아 시장에서 1분기에도 TV와 모니터 등이 지속적으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적극적인 문화마케팅과 오스트리아인들과 호흡하는 사회공헌활동 등을 통해 지난 해 대비 두 자리 수 이상의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여담여담] 그림 감상하며 키스한 적 있나요?/최광숙 문화부 차장

    그림을 감상하다 키스를 한 적이 있나요?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입맞춤을 본 적이라도? ‘에이, 그림이 아니고 영화겠지.’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겁니다. 최근 유럽 출장길에서 저는 클림트의 명작 ‘키스’ 앞에서 ‘진짜’ 키스하는 두쌍의 커플을 봤습니다. 그것도 제 바로 코앞에서. 야하지 않으냐고요?절대로 아닙니다. 클림트의 그림은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궁전에 걸려 있습니다. 이 궁전에서는 클림트뿐 아니라 실레, 코코슈카 등 19,20세기 화가들의 걸작품을 구경할 수 있어 항상 많은 관람객으로 북적이는 곳입니다. 클림트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금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나 공예학교를 졸업한 이력 때문인지, 그의 그림은 모자이크 타일형상과 금박이 나타나는 등 독특합니다. 저는 그의 대표작 ‘키스’를 보고자 바쁜 일정을 쪼개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운동화 끈을 조여매고 말이죠. 벨베데레 궁전의 큰 홀에서 클림트의 ‘키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키스’가 있는 방은 정말 숨막힐 듯 뭔가 다른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저는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온 본전 생각에 계속 그림 주변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림 앞에는 친절하게도 앉아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길다란 나무의자가 놓여 있더군요. 나무의자에 앉아 그림 속에 푹 빠져있을 때 한 커플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들은 그림 앞에서 한참을 멈추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잠시 후 키 작은 여자 아이가 까치발을 하더니 부인에게 키스를 하는 게 아닌가요? 키스가 끝난 뒤에야 그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는데 다운증후군의 장애인 딸과 그 어머니였습니다. 눈과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한없이 행복한 얼굴이었습니다. 이어 등장한 또 다른 커플. 한 남자가 그림을 보면서 부인인 듯한 여인의 허리를 다정하게 끌어안더군요. 그림에 ‘중독’되어서인지 하나도 야하게 보이지 않았죠. 그 중년 남녀들도 그림과 하나가 되었는지 결국 뜨거운 입맞춤을 하더군요. 그들은 이미 그림속 주인공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이들 두쌍의 입맞춤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아, 명화란, 예술이란 저런 것이구나.” 클림트의 ‘키스’는 이렇게 우리들의 가슴속 가장 깊은 곳을 건드려 또 다른 사랑을 만들어내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습니다. 최광숙 문화부 차장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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