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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렌티노 별세
    202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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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레스 거장’ 伊 패션 디자이너 발렌티노 별세

    ‘드레스 거장’ 伊 패션 디자이너 발렌티노 별세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명품 브랜드 중 하나인 ‘발렌티노’를 만든 ‘드레스 거장’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19일(현지시간) 로마 자택에서 별세했다. 93세. 발렌티노 가라바니·지안카를로 지암메티 재단은 이날 그의 부고를 알리며 “발렌티노는 우리 모두에게 끊임없는 길잡이이자 영감이었고 빛·창의성·비전의 진정한 원천이었다”고 밝혔다. 고인이 만든 화려한 드레스는 반세기 동안 패션쇼의 단골로 여겨질 만큼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주홍빛이 감도는 채도 높은 빨간색은 그의 디자인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색깔로, ‘발렌티노 레드’로 불린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샤론 스톤, 페넬로페 크루즈 등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의 드레스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1932년 이탈리아 북부 파비아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프랑스 파리에서 기라로쉬 등 프랑스 디자이너 밑에서 일을 배웠다. 1959년 로마로 돌아와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 발렌티노 하우스를 세우고 패션 사업에 뛰어들었다. 고인의 평생 사업 파트너이자 연인 지안카를로 지암메티와 1960년 협업을 시작하면서 전성기를 열었다. 1998년 이탈리아의 한 지주회사에 브랜드를 3억 달러(약 4421억원)에 매각한 뒤로는 디자인에만 전념했고, 2007년 과감하게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장례식은 오는 23일 로마의 한 성당에서 치러진다.
  • 칼 라거펠트, 측근들만 알 정도로 병환 숨겨..‘췌장암 뭐길래?’

    칼 라거펠트, 측근들만 알 정도로 병환 숨겨..‘췌장암 뭐길래?’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19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5세. BBC는 19일 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독일 출신 패션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가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월 파리에서 열린 샤넬의 오트 쿠튀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와병설이 돌았던 칼 라거펠트는 최근 몇 주 사이 건강이 악화 돼 끝내 눈을 감았다. 프랑스의 온라인 연예잡지 퓨어피플에 따르면 그는 전날 밤 자택에서 파리 근교의 뇌이 쉬르 센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이날 새벽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 외신 보도에 따르면 칼 라거펠트의 사인은 췌장암으로 드러났다. 측근들만 알고 있을 정도로 그는 병환을 숨겨왔다고. 건강에 자부심이 있던 칼 라거펠트는 췌장암 판정에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췌장암은 췌장에 생겨난 암세포다. 췌장암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나 90% 이상은 췌관의 외분비 세포에서 발생하기에, 일반적으로 췌장암이라고 하면 췌관 선암(膵管腺癌)을 말한다. 선암이란 선세포, 즉 샘세포에서 생기는 암을 가리킨다. 췌장암은 발생 위치에 따라 증상에 차이가 있다. 췌장암은 다른 어떤 암보다도 조기 진단이 중요하고, 환경적 요인과 유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칼 라거펠트는 1933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14세 때 파리로 건너오며 본격적으로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국제양모 사무국 주최의 디자인 콘테스트에서 여성용 코트 부문 1위를 차지한 칼 라거펠트는 이를 계기로 오트 쿠튀르에서 일하게 됐다. 피에르 발망의 보조 디자이너로 시작한 칼 라거펠트는 클로에의 책임 디자이너, 발렌티노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을 거쳤다. 1983년 샤넬 예술 감독으로 취임한 칼 라거펠트는 오뜨쿠튀르 데뷔 무대를 통해 ‘샤넬의 환생’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샤넬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美 흑인음악 거장 보비 워맥 별세

    미국 흑인음악계에 한 획을 그은 ‘솔의 거장’ 보비 워맥이 27일(현지시간)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AFP통신과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이 29일 보도했다. 사인이나 사망 장소 등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그가 지난해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고 이전부터 오랜 기간 마약 중독으로 고생한 데다 결장암 수술을 받는 등 건강에 문제가 많았다고 이들 매체는 전했다. 워맥은 가수이자 기타리스트, 작곡가로서 숱한 명곡을 남겨 200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했다. 1944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난 워맥은 열살 때 형 4명과 가스펠 그룹을 결성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솔의 제왕’으로 불리던 샘 쿡의 눈에 띄어 ‘더발렌티노스’로 이름을 바꾸고 ‘잇츠 올 오버 나우’와 ‘루킹 포 어 러프’ 등을 히트시켰다. 특히 워맥이 작곡한 ‘잇츠 올 오버 나우’는 영국의 전설적 록밴드 롤링스톤스가 불러 영국 싱글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1960년대 솔로로 전향한 워맥은 다음달부터 유럽 순회공연에 나서고 올해 안에 새 앨범을 발표할 계획을 세우는 등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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