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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복과 절제
    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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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서보미술관 문 연다…도딘과 2인전 ‘첫 터치’

    박서보미술관 문 연다…도딘과 2인전 ‘첫 터치’

    “‘묘법’(描法)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비우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하는 행위다. 마치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하듯, 내 안의 찌꺼기를 털어내는 수행이다.” ●타계 3년 만에… 21일 서대문서 개관 그림 그리기를 자신을 비워내는 과정으로 여겼던 한국 현대미술 대표 작가 박서보(②·1931~2023)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개관한다. 작가 타계 3년 만이다. 박서보재단은 박서보의 예술세계를 계승하고 동시대 미술과 새로운 대화를 이어가고자 오는 21일 박서보미술관①을 개관한다고 밝혔다. 미술관은 한 작가의 작품을 보존·전시하는 기념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박서보가 평생 추구한 예술적 가치와 교육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 현대미술을 연구한다. 또 새로운 세대와 세계 미술의 접점을 넓혀가는 문화 플랫폼을 지향한다. 박승호 재단 이사장은 이와 관련 1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공간을 ‘박서보의 성전’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며 “그의 뜻을 기리는 의미 있는 공간이 아닌 그가 평소 해 왔던 일이 지속적으로 수행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건축가 최문규 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가 설계한 건물은 지하 2층~지상 3층 전체 면적 2000㎡ 규모다. 총 3개 전시실과 워크숍 등 커뮤니티 공간, 야외 정원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3층의 8m 정사각형 공간 ‘큐브’는 반투명 유리를 통해 자연광이 유입되도록 설계됐다. ●두 작가 회화 42점 ‘비움’과 ‘충만’ 조명 개관전은 베트남에서 태어나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해 온 화가 흐엉 도딘(③·81)과의 2인전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이다. 전시에서는 두 사람의 회화 42점이 관객을 맞는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 속에서 작업해 온 두 작가는 반복과 축적, 절제를 통해 화면에서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고 밀도를 응축하는 데 힘써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두 작가의 작업을 한자리에서 살펴본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재료와 방식이 ‘비움’과 ‘충만’이라는 공통의 지점에 이르는 과정을 조명한다. 박서보는 물에 불린 한지 위에 반복적으로 선을 긋고 밀어내는 묘법 연작을 통해 행위와 시간의 축적을 화면에 담아냈다. 흐엉 도딘은 광물 안료를 수십 차례 겹쳐 쌓아 올리며 색의 층위 속에서 빛이 드러나는 회화를 구축했다. 박서보의 흑색 한지묘법부터 색채 한지묘법까지 이어진 묘법 연작 변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전시 말미에서는 흐엉 도딘이 2023년 박서보를 만난 뒤 그와의 만남을 기억하며 만든 작품 ‘X.K.N.31’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3일까지.
  • 반복과 절제, 시간이 빚어낸 ‘환한 자유’… 이대원의 70년

    반복과 절제, 시간이 빚어낸 ‘환한 자유’… 이대원의 70년

    피상적 단어에 가려졌던 작품 세계관찰과 축적의 회화 다시 만날 기회멀리서 봐도 유지되는 독립적 색점사방으로 펼쳐진 과수원으로 초대 “무한한 형태, 무한한 색채를 이 조그마한 눈·머리·손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정복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자연의 힘에 새로운 마음의 눈이 열리는 것 같다.”(이대원, ‘내 마음속 공간 1번지-파주 과수원’ 중에서)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인 이대원(1921~2005)은 해방과 분단 와중에 실종된 아버지가 사줬던 과수원에 작업실을 만들었다. 자연을 오래오래 바라보다 대상이 거의 자신의 일부처럼 느껴졌을 때 마침내 붓을 들었다. 그의 캔버스 속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그 주변을 지킨 산과 연못은 그렇게 탄생했다. 같은 모습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계절마다 시간마다 달라지는 자연, 그려도 그려도 끝이 없는 자연 속에서 외경심을 느꼈던 작가는 이제 없지만, 작품은 고스란히 남아 관객을 과수원 한가운데로 초대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덕수궁에서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제목으로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은 미술 애호가는 물론 대중에게도 크게 사랑받았다. 그러나 친숙함은 그의 작품을 제대로 바라볼 기회를 감췄다. 홍익대 총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지낸 이력 역시 그를 ‘팔자 좋은 화가’라는 타이틀에 가두기도 했다. 최초의 대규모 회고전인 이번 전시는 피상적인 말들로 가려졌던 그의 작품 세계를 깊이 살필 기회다. 전시 제목은 작가와 막역했던 고고미술사학자 김원룡이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던 그림 평에서 따왔다. 이런 평은 생동감 넘치고 명랑한 색채가 그의 기질과 닮았다는 해석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슬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전시를 기획한 배원정 학예연구사는 “이대원의 회화는 오랜 관찰과 반복, 축적과 절제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환하고 자유로운 화면에 도달한 것”이라며 “이번 전시는 그 시간을 다시 살펴본 전시”라고 소개했다. 전시장 입구를 채운 것은 5m의 대작 ‘담’(1986)이다. 주미한국대사관에서 빌려온 이 작품은 오랜 시간 타지에서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얼굴로서 역할을 해왔다. 멀리서 보면 나무와 흰 담이 어우러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담은 하나의 흰색이 아니다. 미색과 분홍빛, 푸른빛이 감도는 여러 흰빛이 나란히 놓여 있으며 각각의 색은 서로 섞이지 않고 고유한 발색을 유지한다. 색실이 서로 인접해도 저마다의 색을 잃지 않는 전통 자수의 방식을 연상시킨다. 전시에서는 작가가 12세에 그린, 가장 이른 작품인 ‘백일홍’,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에서 미술 교사 사토 구니오에게서 회화와 공예를 배웠던 시절의 작품까지 만날 수 있다. 작가가 깊은 관심을 두고 소장했던 자수, 나전, 화각, 목가구 등이 그림과 함께 전시된 것도 눈길을 끈다. 전통 공예의 원리가 그의 화면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 그 과정을 엿볼 수 있다. 1970~2000년대까지 작품에서는 색점, 색선, 색면을 거듭 쌓아 올리며 독자적인 회화 언어를 완성해 가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배 학예연구사는 “조르주 쇠라의 점묘법이 서로 다른 색점을 나란히 놓아 일정한 거리에서 시각적으로 혼합되는 방식이라면, 이대원의 색점은 멀리서 봐도 하나의 색으로 혼합되지 않고 각자의 색채적 독립성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전시의 백미는 작가의 말년 작품을 만날 수 있는 4전시실이다. 5m, 7m에 달하는 작품들이 서로 마주 보며 펼쳐지고 전시장 바닥에 스틸 반사경을 설치했다. 관람객은 마치 사방으로 펼쳐진 과수원 안에 들어선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화면 가득 채워진 꽃과 나무를 헤아리다 보면 어느새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순간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전시는 11월 8일까지.
  • [문화마당] 느끼기, 체험하기, 그리고 반복하기/이진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피아니스트

    [문화마당] 느끼기, 체험하기, 그리고 반복하기/이진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피아니스트

    인격은 삶에서 경험하고 훈련한 것들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경험 중에는 첫 경험이 있고, 반복 경험이 있다. 첫 경험은 날것의 생소함과 신비로움 그로 인한 짜릿함이 있다. 반복 경험은 그 경험을 반복함으로써 나와 남을 이롭게 하는 데 있다. 사탕을 맛있다고 끝없이 먹는다든가, 가려운 곳을 심하게 긁어 상처를 내면 좋지 않다는 것을 학습해야만 한다. 내가 부르는 노래가 소음을 만들어 낼지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는 음악이 될지, 내가 움직이는 붓길이 혐오감 주는 낙서가 될지 아름다운 화폭이 될지 모른다. 다만 더 나은 것을 만들기 위해 세상에 이로운 표현을 하는 법과 동시에 절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반복해 몸에 배게해야 한다. 경험과 체험을 굳이 비교하자면 뇌에 입력되면 경험이고 몸에 입력되면 체험이다. 감각을 통해 능동적으로 체험하고, 뇌에서 긍정적으로 인지하는 경험을 한 후에 다시 몸을 통해 그 경험을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산하면 선순환의 경험과 체험이 된다. 반대로 부정적인 경험을 외압에 의해 수동적으로 체험하게 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불행의 굴레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부정적인 기운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와 훈련된 고도의 스킬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아예 발산을 하지 않고 차단을 해 버리는 선택을 하게 되기도 한다. 선순환의 경험과 체험을 위해서는 올바른 예술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은 선험적으로 맛있고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을 즐기고 표현하는 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 이런 감각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반복하며 훈련해야 한다. 미적 감각을 훈련에 의해 완성시킨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마구 휘갈기는 예술을 만든 것과 그것을 보고 아무나 휘갈기면 예술이 된다고 착각하는 것과의 차이가 여기서 나온다. 맛깔나게 사는 사람들은 남다른 특출한 감각을 자랑해서가 아니다. 절대음감이나 절대미각을 소유했다든지, 오감이 더 발달해 있어서가 아니다. 청각이나 후각이 예민한 경우는 오히려 삶이 피곤해진다. 남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벽을 타고 도는 전파의 소리, 저 멀리서 웅성웅성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정체불명의 악취와 체취들로 인해 오히려 집중력은 떨어진다.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뇌가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뇌는 스스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정보는 거르고, 필요한 정보를 받아들여 분석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수행한다. 청력 테스트를 하면 분명히 나이가 어릴수록 더 높은 결과가 나타나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청력은 여실히 떨어진다. 하지만 뇌실험 결과 뇌에 도달해서 인지되고 분석된 내용의 양을 비교해 보면 어린 나이보다 30~40대 성인에게 훨씬 많았다고 한다. 청각은 떨어지지만 주어진 정보를 더 빨리 예민하게 뇌에서 처리하는 능력은 더 우수했다는 결과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런 말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보지 않은 채로 응시하고, 귀 기울이지 않은 채로 듣고, 느낌 없이 만지고, 음미하지 않으며 먹고, 몸을 의식하지 않은 채로 움직이고, 향을 맡지 않으며 숨쉬고, 생각 없이 이야기한다.” 맛깔나게 사는 사람들은 감각의 길을 갈고 닦은 사람들이다. 교육과 훈련에 의해 좋은 감각과 나쁜 감각을 구별할 줄 알고, 좋은 감각을 발달시키고 재현시키는 무한반복 훈련 끝에 얻은 결과다. 반복과 훈련이란 단어에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쳇바퀴 돌듯이 무의미한 반복과 수동적인 훈련은 우리 삶을 무료하고 둔감하게 하지만, 감각이 열려 있는 능동적인 체험을 통한 긍정적인 반복과 훈련은 대가를 만들고 장인을 만든다. 우리의 인격을 완성시킨다.
  • 땅을 읽고 풍경을 들이다

    땅을 읽고 풍경을 들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주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유럽 도시들은 외곽 신도시에 우리와 같은 단지형 아파트를 급작스럽게 짓기 시작했다. 단위가구가 결합해 건물이 되고, 주거동이 모여 단지가 만들어지는 단순 반복과 확장의 과정이다. 마치 공장 생산품처럼. 이런 시스템은 단기간 대량 공급으로 주거 문제를 해소할 수는 있었지만 내적으로는 함께 사는 도시 공동체를 파괴하고, 외적으로는 주변 도시와 부조화해 단절되는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했다. 이후 1970년대부터 도시와 환경, 공유와 소통을 고려한 도시의 집합주거 유형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앙리 시리아니의 유전자 유럽에서 도시 집합주거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질 때 그 중심에 있던 대표적인 건축가가 프랑스의 앙리 시리아니다. 1936년 페루에서 태어난 그는 1965년 프랑스로 건너와 A.U.A. 등에서 일했다. 1976년부터 독자적인 건축 활동을 시작한 시리아니는 페루에서 참여했던 저가형 집합주거 프로젝트의 경험과 실천이론인 ‘도시 단편론’을 기반으로 새로운 주거 모델을 연구했다. 저가형 집합주거를 위해 근대 집합주거의 특징인 ‘반복과 규격화’라는 장점을 수용하면서 전통도시의 장점인 장소성, 주변과의 조화 그리고 단지의 편안함을 동시에 구현하고자 했다. 도시 단편론은 근대 이상도시 실현의 문제점과 과거 전통도시의 한계성을 파악해 현실성 있는 대안을 찾는 실천적 연구였다. 이 개념이 적용된 그의 프로젝트는 ‘누아지-2’, ‘생드니 아파트’, ‘에브리-2 아파트단지’, ‘베르시 주거단지’ 등이다. 그가 실현한 주거단지의 특징은 구도시 공간의 특성인 가로, 광장, 정원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공간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구도심 재개발 아파트뿐만 아니라 신도시 계획에서도 이러한 특성을 적용해 과거와 현재의 도시 풍경을 단절 없이 연결했다. 미국 건축이론가 케네스 프램턴은 시리아니의 도시 단편론과 건축물을 근대 집합주거 유형을 기존 도시와 접목하려는 새로운 모색이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했다. 시리아니는 근대건축의 거장인 르코르뷔지에의 사상과 이론 그리고 건축 어휘를 평생 따랐지만, 도시와 집합주거에 대한 이론과 사상에서는 그 결을 달리하며 선명한 자기 생각을 펼쳤다.르코르뷔지에가 혁신을 위한 기념비적인 건축을 추구했다면, 시리아니는 시대적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건축의 본질인 공간을 탐구하고 그것을 실천했던 건축가였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거창한 개념에 집중하기보다는 삶의 근본을 이루는 건축의 중요성과 도시 분위기 형성에 주목했다. 이러한 생각은 그가 설계한 주거공간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지나치게 멋을 부리거나 과도하게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풍요로운 공간을 구성하고, 평범하고 저렴한 재료로 공간의 질을 높여 격조 있는 집을 만들었다. 제한된 면적과 공사비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임대주택 프로젝트에서도 이러한 의지가 잘 드러나는데, 사용자가 10평 크기의 집을 12평처럼 느낄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계획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입구와 홀, 복도는 풍요로운 분위기를 내면서 입주자들의 자존감을 높여 줬다. 물론 그가 집합주거만 설계한 건축가는 아니다. 말년에 준공한 페론의 ‘1차 세계대전 전쟁박물관’과 아를의 ‘고대 유적박물관’에서 빛과 동선으로 만들어 낸 장면은 현대건축이 지닌 자유로운 공간의 진수를 보여 준다. 시리아니는 미래의 건축을 담보하는 교육자다. 1977년부터 2001년까지 프랑스 건축 8대학(파리 벨빌 건축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지금도 페루에서 건축교육자들을 길러 내고 있다. 특히 건축 8대학에서 에디트 지라, 클로드 비에, 로랑 살로몽, 로랑 보두앵 등 프랑스 건축가들과 함께 만든 우노 스튜디오는 교육을 통해 시대를 대변하는 보편적 건축, 미학을 교육하고 사회의 저변을 넓히는 건축교육의 모델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시리아니는 근현대건축의 본질인 공간의 가치, 건축가의 소양을 중점적으로 교육했다. 그의 건축 특성처럼 스타 건축가를 만들기보다 사회의 중심을 이루는 시민과 같이 이 시대의 일꾼으로서 최소한의 소양을 갖춘 건축가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바우하우스 교육 목표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그 당시 우노 스튜디오에는 그의 건축교육 방법과 철학에 매료돼 전 세계에서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특히 한국 유학생이 많았다. 아마도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시절을 보냈던 학생들의 건축에 대한 목마름 때문인 듯하다. 현재 시리아니의 제자들은 한국 건축계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건축교육자로서 파리에서 경험했던 그의 교육 방법론을 국내 대학에 접목해 다음 세대의 건축가를 양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시리아니는 국립박물관 공모전 심사와 강연을 위해 세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한국인 대부분이 살아가는 아파트와 그런 문화 속에서 지어진 제자들의 건축물이었다. 그는 단순 반복으로 만들어진 강남의 고가 아파트단지를 보고 개탄했다. 세계적인 자동차와 최첨단 제품을 만드는 국가에서 살아가는 주거의 질은 개도국의 모습이라고 질타했다. 그리고 그날 옛 제자들과 만난 장소는 파리 우노 스튜디오의 강의실이 됐다.●건축이 삶과 관계 맺고 그 안에 들이는 방법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나는 ‘두물머리 주택’을 시작으로 20년 동안 매년 한 채 정도의 집을 지었다. 주택설계는 사소한 것까지 고민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사무실 운영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건축이 시작된 근원적인 장소이고, 삶과 가장 밀접한 고민을 풀어 가야 하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또 건축가의 사유의 변화가 선명히 드러나는 곳이다. 초기 몇 채의 주택을 짓고 난 후 내가 배우고 경험한 것들이 우리나라의 환경과 몸에 맞지 않고 삶에 녹아들지 않음을 느꼈다. 이후의 작업은 땅을 읽고 풍경을 들이는 방식이나 건축이 우리 삶과 관계 맺고 그 안에 들이는 방법에 더 밀착돼 관찰하고 탐구하는 과정이었다.첫 번째 작업인 ‘두물머리 주택’은 건축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현장에서 직접 접목되는 과정이었다. 중심 생각은 경사진 대지에서 땅과의 관계를 통해 동선을 따라 장면을 만들고 내외부의 경계를 없애 주변 풍경을 담는 것이었다. ‘자운당’은 유학 시절 매료됐던 ‘백색의 건축’에서 벗어나 다른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주된 관심이었다. 그 작업을 통해 주택에서의 복층 거실이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했다. 강화도에 있는 ‘동검리주택’은 은퇴하신 고3 담임 선생님의 집이다. 노년의 삶을 고려해 층고를 낮추고 기복이 심한 대지에 대비되는 수평의 집을 계획했다. 전면 창을 통해 시각적으로 내외부의 경계를 없애 원시 자연을 경험하게 했다. 그런데 공간적으로 매우 풍요롭고 극적인 장면이 때로는 일상의 편안함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극적인 경관을 가진 집은 오히려 외부 풍경을 절제해 담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그 이후 작업이 계속 이어진 판교 신도시 주택단지는 단기간 주거 유형과 구축법에 관한 다양한 탐구를 가능하게 한 건축 실험실이 됐다. 덕분에 유사한 크기와 비슷한 대지 조건에서도 매번 다양한 재료의 물성, 크고 작은 치수, 시공 방식을 경험할 수 있었다. 대부분 밀집 지역에서 거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당을 품고 대지 경계를 따라 채를 놓는 내향적인 집을 계획했다. 집으로 둘러싸인 마당은 하늘로 열려 빛과 바람, 자연의 변화무쌍한 풍경을 담고 내부 공간에 표정과 생기를 불어넣었다. 모든 집은 우리나라 기후에서 주어진 지형과 조건에 대해 고심해서 내린 나름의 결론이었고, 생산 방법과 재료에 대한 경험을 쌓아 보완했다. 특히 입주 후 사는 모습을 보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초기 주택에서 벽을 자르고 접고 띄우고, 천장을 낮추고 높이고 기울여 눈에 띄는 다양한 변화에 집중했다면, 경험이 쌓이면서 가장 일상적이고 드러나지 않는 것, 편하고 쉬운 것, 특별하지 않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했다. 설계 시 중요하게 여겼던 부분이 생활에서는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간과했던 부분이 크게 드러나는 것을 경험하면서 구체적인 작업의 방식이 변화했고 변화할 것이다. ●작은 차이가 만드는 큰 변화 졸업 설계 발표 후 시리아니는 마지막 당부와 덕담을 건넸다. ‘배우고 학습한 모든 것을 잊어라.’ 그때는 지나쳤던 말들이 지금은 그 의미가 크게 와닿는다. 그동안 나는 시리아니와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에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비평적 시각을 가졌다. 오히려 루이스 칸, 알바 알토, 루이스 바라간 등 다른 색깔의 건축에 심취했다. 그리고 주변 가까이 있는 것들에 발을 딛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시리아니의 가르침은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시리아니와 르코르뷔지에의 후예가 되기보다는 고루한 인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일이었다. 건축에 대한 나의 생각은 항상 변화한다. 새로운 생각은 작은 실행이 되고, 축적된 경험은 다시 새로운 생각을 만든다. 생각은 언제나 다른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오늘의 시도가 지금은 새로운 해법이 되지만 다음 작업에선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절대적인 진리나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작은 차이가 변화를 만들 뿐이다. 나도 한 학기가 끝날 때 제자들에게 선현의 구절인 ‘배움의 방법은 동화하는 것에 있고 앎의 방법은 잊어버리는 것에 있다’는 글귀를 전한다. 시리아니의 유전자가 나를 거쳐 다음 세대에 전해지길 기대하며, 우리 도시가 좀더 좋은 장소로 거듭나길 기대하며. 건축가 정재헌(경희대 교수)
  • 작곡가 金正吉(이세기의 인물탐구:182)

    ◎국악·양악 환상조율 ‘오선지의 마술사’/대표작 ‘8주자를 위한 추조문’/추사 김정희 수묵화 보는듯/실용·기능 음악에도 정열/연극·무용 분야 등서 독보적 존재 金正吉의 마음은 열려있다. 그래선지 그의 작품세계는 크고 넓고 깊다. 모든 것을 이해하면서도 모든 것을 수용한다. 그러나 예술적 고집은 ‘숨이 막힐 정도로’ 철통같다. 음악평론가 이강숙씨는 ‘그 철통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가장 소중한것을 가슴속 깊이 숨겨두고 있다’고 말한다. 독일 하노버음대에서 尹伊桑 문하에서 함께 공부한 작곡가 강석희는 ‘그는 언제나 남들을 제껴두고 앞장서 달려간다’고 감탄하기도 한다. ‘나이 60을 넘겨서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혼자 강의를 도맡아 건재를 과시하는가 하면 연극 영화 무용 행사음악등 손대지 않는 분야가 없으니 그 에너지의 자원이 어디에 도사리고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음악은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탐스러운 꽃을 피우고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 그는 국악기의 속성을 빈틈없이 꿰뚫어보고 국악의 선율과 음색을 제대로 살려내는 현대작곡가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8주자를 위한 추초문(秋草文)’은 대비(對比) 변화(變化) 기복(起伏) 조화(調和)를 고루 갖추면서 그의 손에 걸려든 음재료들은 횡적이든간에 종적이든간에 한 악구마다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고야 만다. 중앙대 국악과 정인평교수에 의하면 ‘유장하게 흐르는 선의 멋은 추사 김정희의 수묵화에서 볼수 있는 고전적 아름다움과도 일맥 상통한다’고 평하고 있다. 묵화속에 농담(濃淡)이 깃들여있듯이 선율은 점차 굵어지거나 가늘어지기도 하고 갑자기 방향을 틀어 파격적 볼륨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또 서로 다른 국악기,같은 종류의 양악기를 능란하게 조합하여 국악의 조적 소재와 서양의 우연성,미니멀리즘과 아치 구조를 절묘하게 구사해 낸다. 대표작 ‘추초문’의 경우는 고요하고 장중한 가운데 한악기가 명상적인 분위기를 반복연주하거나 궁중음악의 정관적(靜觀的)인 성격으로 현대적 아악풍(雅樂風)을 성취해낸 것이 일품이다. 김정길 자신도 ‘나의 창작 작업중 가장 의미있는 작품’으로 ‘추초문’을 손꼽고 있고 이곡은 국내외적으로 수없이 연주되어 지난 85년 독일의 호리존테 음악제에서는 7차례의 커튼콜을 받기도 했다. 그외에도 호가 윤명노의 그림을 보고 쓴 하프곡 ‘얼레짓’은 옥쟁반에 구슬이 떨어지는 소리로 작가 자신의 내적 심정을 감아내거나 풀어내고 일랑 이종상의 그림에서 힌트를 얻은 ‘원형상(源形象)’시리즈와 춘추전국시대 월(越)의 미녀 서시(西施)가 하루종일 비단을 찢었다는 고사에서 착상한 ‘두개의 오보에와 오브리캇’도 명편으로 호평된다. 비단 찢는 소리,금속성의 긴 여운,지속적인 콩뿌리기로 불확정적인 리듬을 추출하여 소리로부터 해방될 수 없는 현대인의 소외를 그리고 있다. 그가 음악을 시작한 것은 영등포 양평동에서 태어나 부친 金壽一씨가 관여하고 있던 양평동교회에 다니면서부터다.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진 않았으나 교회에서 오르간을 치는 시간이 잦아지면서 초등학교 4학년쯤에는 찬송가를 4부로 칠수있게 되었고 양정중 시절엔 밴드부,이후 해군군악대에 입대했다가 미8군에서 재즈밴드 피아니스트로 일하면서 7년이나 뒤늦게 서울대 작곡과에 입학했다. 나보다 앞장선 친구들을 따라간다는 집념에서 대학졸업때 쓴 ‘바이올린 클라리넷 피아노를 위한 3중주’는 조선일보 신인음악회에 선정되어 남들보다 먼저 작곡가로 데뷔했다. 69년 당시 동백림사건으로 한국에 와있던 윤이상씨가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보고 강석희 백병동과 함께 독일유학을 권유했으나 분주해진 국내 음악활동에 쫓겨 한학기나 지나서야 독일로 갔고 그때부터 주로 12음열을 만드는 기초적인 학습에 파고들었다. 나만이 할수있는 음악은 무엇인가. 그 무렵의 한국작곡가들의 작품에 ‘한국적인 티’만 있을뿐 ‘진정한 자신의 메시지’가 담겨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자 국악의 현대화를 앞세워 ‘위상공간’‘비(秘)’‘초립동’ 같은 한국적 곡들을 탄생시킬수 있었다.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프로페셔널은 자기취향에 맞는 음악만을 고집해선 안된다’는 자세로 실용음악’ 기능음악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첫 작품은 지난 74년 극단 산울림의 연극 ‘가위 바위 보’를 위해 쓴 ‘타악기를 위한 변주곡’. 창작음악이 연극무대에 사용된것은 그때가 처음인 셈이다. 한국 전통음악에서 유추한 음악언어로 황종·중려·임종의 3음음계,평조 및 계면조의 5음음계와 민요선율을 직접 인용하기도 하고 무속음악인 시나위의 불확정성과 즉흥성을 계산하여 ‘뛰어난 음악은 그 곡절이 반드시 평이하다(大樂必易)’는 유교적인 음악관을 그의 사상에 연결시키고 있다. 하나의 음정을 작품 전체의 모티브로 삼으면서 무절제하게 많은 음을 다루기 보다 박절적(拍節的)으로 분할되는 리듬이 두드러진 것도 그만의 특징이라 할수있다. 작품의 구조에 있어서도 폴리포니(多聲部)와 호모포니(單聲律)의 대비구조,단일악기로 구성된 이중구조,프래그멘트(파편)들의 반복과 배열을 중심으로 간결명료한 구조를 짜고있다.예술에서는 완벽주의자지만 생활력은 약한편으로 부인 朴昌淑 여사가 자매의 교육과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작품 구상을 위해 긴 명상에 잠기고 머리속에 그려지는 곡의 짜임새와 곡에 대한 입체도가 완벽하게 그려져야만 그는 비로소 오선보에다 작품을 폭포수처럼 써내려간다. 조각가 로댕이 ‘진정한 의미의 천재란 한방울 한방울 바위에 파고드는 물처럼 조용하면서도 끈질긴 집념’이라고 한것처럼 예술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며 그는 백지 한장의 간극을 뛰어넘은 바로 ‘천재적 작곡가’에 틀림없다. 이제 작곡 인생 40년을 앞두고 자연의 심장까지도 음악으로 빚어내는 접신의 경지에서 그는 지금도 조요(照耀)로운 명작을 잉태하기 위해 지치지않는 정열을 활화산처럼 불태우고 있다. □그의 길 ▲1934년 서울 출생 ▲1962년 서울대 음대 작곡과 졸업,조선일보 신인음악회 ‘바이올린과 클라리넷, 피아노를 위한 3중주’ 선정 데뷔 ▲1972년 하노버음대 졸업,윤이상 사사 ▲1973년 ISCM(국제작곡가연맹)페스티벌 ‘세개의 플루트와 타악기를 위한 곡’ 입선 ▲1974년 극단 산울림 연극 ‘가위 바위 보’작곡외 연극음악 다수 1979년 ‘추초문(秋草文)’초연 ▲1980년 문교부장관 교육공로 표창 ▲1981년 임권택 감독 ‘만다라’ 작곡외 영화음악 다수 ▲1983∼ 현재 서울대 음대교수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 행사음악 및 문화축전 발레음악 작곡 ▲1987년 서울올림픽 음악감독, 88올림픽 개폐회식 팡파르 ▲1988년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 ‘축전서곡’(KBS교향악단)연주, ‘올해의 음악가’ 선정 ▲1990∼92년 창악회 회장 ▲1994년 김정길 작품 발표회,미래악회 초대 ‘작곡가의 초상’연주 1996년 서울대 개교 50주년기념 ‘축전 서곡’작곡등 120여곡 한국음악협회 및 한국작곡가협회 부이사장,아시아작곡연맹 및 창악회,한국청년음악연맹 이사 한국연극영화예술상(74년) 대한민국작곡상(79년) 서울극평가그룹상·동아연극음악상(84년) 대종상음악상(86·92년) 서울시문화상(88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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