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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건 美국무부 넘버2 부장관으로 승진, “대북특별대표는 겸직”

    비건 美국무부 넘버2 부장관으로 승진, “대북특별대표는 겸직”

    북미 실무협상의 미국 쪽 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가 31일(현지시간) 국무부 부장관에 지명됐다. 백악관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선 내용을 밝히며 인준요청서를 상원에 발송했다고 발표했다. 상원 인준 청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백악관은 비건 대표의 이력을 소개하면서 “대북 특별대표로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모든 정책을 지휘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국무부 부장관은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에 이은 2인자다. 비건 대표의 이번 승진 기용은 존 설리번 부장관이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에 낙점된 데 따른 것이다. 설리번 부장관은 전날 상원 인준 청문회를 거쳤다. 비건 대표는 앞으로 대북 특별대표를 겸직할 것이라고 AFP와 로이터 통신이 보도해 인준을 통과하면 위상이 강화돼 지난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의 북미 실무협상이 빈손으로 끝난 뒤 교착국면을 맞은 대북협상 재개에 긍정적인 모멘텀이 될지 주목된다. 이와 관련,비건 대표는 이날 부임 인사를 겸해 방문한 이수혁 신임 주미대사와의 면담에서 자신의 지위가 어떻게 되든지와 관계없이 북한 핵 문제는 계속 다루고 싶다며 국무부 내 변화와는 무관하게 북미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해나갈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고 이 대사와 주미대사관이 전했다. 국무부 부장관은 폼페이오 장관이 자리를 비우면 장관 대행을 해야 하는 자리인데 폼페이오 장관은 내년 상원의원 선거에 캔자스주 후보로 출마한다는 소문이 계속 나오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기도 하다. 폼페이오가 출마하면 비건 대표는 적어도 잠깐은 국무장관 대행직을 맡게 될 것이라고 AFP통신은 보도했다. ‘빅3’ 자동차 메이커인 포드자동차의 국제담당 부회장 출신인 비건 대표는 지난해 8월 북미실무협상의 미국 대표인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로 임명된 뒤 폼페이오 장관을 도와 비핵화 협상의 ‘키맨’으로 부상,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관여 드라이브를 뒷받침해왔다. 권한과 발언권이 강화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과 부장관으로서 다뤄야 할 업무가 많아지고 출장도 많아지는 만큼 비핵화 협상에만 주력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엇갈린다. 이와 관련해 비건 대표가 대북 특별대표직을 유지하며 전체 협상 상황을 관장하되 이를 실무적으로 뒷받침할 별도의 직책을 둘 가능성도 있다. 비건 대표는 지난해 10월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을 수행한 데 이어 김혁철 당시 북측 실무협상 대표와의 협상을 위해 2월 초 평양을 찾는 등 2차 북미정상회담의 실무준비를 이끌었다. 앞서 1월에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과 1.5 트랙 형식으로 ‘합숙 담판’을 갖기도 했다. 지난 5일에는 스톡홀름에서 새 카운터파트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와 실무협상에 나섰다. 비건 대표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1기 행정부(2001~2005년)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보좌하며 국가안보회의(NSC)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았고, 빌 프리스트 전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국가안보 보좌관을 지냈다. 하원과 상원의 외교위원회에서도 두루 경력을 쌓았다. 미시간대에서 러시아어 및 정치학을 전공했고, 미러관계와 관련한 다양한 단체에서 활동해왔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글로벌 시대] 2012년 이후 미러관계/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글로벌 시대] 2012년 이후 미러관계/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2012년 미국과 러시아는 대통령선거를 치른다. 러시아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출마를 선언, 다시 대통령에 오를 것이 유력하다. 미국 선거 양상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두 나라 정상의 리더십 교체는 미·러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지구촌 정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부시 전 대통령 시절 요동치고 갈등하던 두 나라 관계는 안정을 찾았다. 오바마의 의지와 노력, 러시아의 필요성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실용적인 자세와 경제 현대화 정책 등으로 두 나라 관계 개선은 성과를 거뒀다. 전략무기 감축 타결도 한 예다. 다음 집권자들 사이에도 이 같은 분위기가 성숙되어 갈까. 올 한해 동안 두 나라의 관계 개선 노력은 2009~2010년보다는 완만하게 진행됐다. 오바마 정부가 국내 정치일정에 시달렸고, 아프간과 이라크 내전 및 중동 민주화 혁명에 외교역량을 집중해야 했던 탓이다. 오바마는 취임한 직후부터 러시아와의 화해를 시도했다. 2009년 2월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은 뮌헨 연설에서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러시아와 여러 영역에서 협력을 진행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해 7월 오바마의 방러를 계기로 화해 노력은 본격화됐고, 건설적인 관계 회복 및 전방위 협력이 모색됐다. 두 나라 관계가 지난 3년 동안 관계 개선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요인이 깔려 있다. 오바마가 러시아에 대해 뻗은 관계 개선의 손을 메드베데프가 덥석 잡은 순간부터 두 나라 관계는 협력 분위기로 들어설 수 있었다. 오바마 정부의 대러 화해 제스처는 전임 부시 정부의 일방주의에서 벗어나고, 다시 기력을 회복하고 있는 러시아의 국력과 국제위상에 맞게 대응하려는 움직임이다. 중동 문제에서부터 핵 없는 세계 건설 및 비핵화 진전 등 각종 국제적 핵심 이슈에서 러시아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국제사회의 틀 안에 러시아를 끌어들여 협조자로서 순치시켜 나가겠다는 생각이었다. 실용적 경제협력을 내세운 메드베데프 정권의 안정을 도와 양국 관계 및 국제문제 전반을 원활하게 풀어나가겠다는 뜻도 깔려 있었다. 경제 현대화 정책을 내세운 메드베데프로서도 미국의 협력이 절실했다. 그는 “외교는 국가경제발전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유와 천연자원 수출로 지난 10년 동안 경제적 호황을 누렸던 러시아는 미국 월가에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 등을 겪으며 에너지·자원 의존형 경제의 취약성을 실감했다. 이런 약점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 등 서방 자본과 기술을 들여와 현대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 메드베데프의 구상이었다. 전략적으로 러시아-유럽연합-미국의 삼각 관계를 활용해 활동 공간을 넓히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두 나라의 협력 관계가 진전되는 동안 미국은 이례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준을 누그러뜨렸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유럽 및 러시아를 향한 미사일방어시스템 전개 속도와 수준을 늦췄고, 러시아의 민주화 문제 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낮췄다. 2010년 6월 메드베데프의 방미 이후 미 국무부는 러시아의 민주화 문제에 입을 다물었다. 동유럽에 대한 미사일 전개도 잠시 중지시켰다. ‘자유 및 민주의 확대 보고서’ 중에서도 러시아 민주화가 명확하게 개선되고 있다고 평했다. 미·러 사이에는 적잖은 모순과 충돌이 존재한다. 두 나라는 근본적인 목표와 입장이 다르고, 지난 3년 동안의 화해 정책도 다른 목표와 이해 속에서 추진돼 왔다. 미국은 러시아의 초강대국 부활과 독립국가연합들에 대한 영향력 강화, 전략적 공간 확대를 막으려 한다. 러시아 젊은이들 사이에 일고 있는 반미 및 애국주의 물결도 이 같은 러시아사회의 미국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을 보여준다. 당장 현안에 묶여 있는 미·러 지도자들은 두 나라 관계의 안정을 우선적인 정책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2012년 이후는 어떻게 될까. 리더십의 태도와 의지가 더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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