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미국특사
    2026-10-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총 22 건
  • 李대통령, 美특사에 김종인 내정… 단장은 이언주

    李대통령, 美특사에 김종인 내정… 단장은 이언주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 만료가 임박한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에 보낼 특사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장은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맡는 것으로 전해졌다. 7일 여권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이 최고위원과 김 전 위원장, 김우영 민주당 의원을 미국특사단으로 내정했으며 조만간 공식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위원장은 2016년 총선 때는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는 등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며 활동해왔다. 이 최고위원은 민주당에서 미래경제성장전략위원장을 맡는 등 경제 분야에서 이 대통령을 뒷받침한 바 있다. 김 의원은 대표적인 친명(친이재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를 이끄는 등 이 대통령과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 미국 특사단 파견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한미 양국 간 관세 협상과 주한미군 관련 안보 협상이 진행 중인 만큼 특사단은 미국 측과 이를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실은 미국특사단과 관련해 “명단은 검토 중”이라며 “최종 확정 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18년 만에 평화협정 합의… 미군 5000여명 아프간 철수

    18년 만에 평화협정 합의… 미군 5000여명 아프간 철수

    美, 탈레반과 초안 합의 “135일 내 철군” 5개 기지도 폐쇄… 트럼프 승인만 남아탈레반과의 평화협정을 진행해온 아프가니스탄 주재 미국특사가 2일(현지시간) 아프간에서 135일 이내 병력 5000여명을 철수하고 5개 기지를 폐쇄하는 협정 초안을 내놨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주장해온 아프간 철군이 현실화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로이터통신 등은 탈레반과의 9차 평화협상을 마친 잘메이 할릴자드 미국특사가 이날 아프간 현지 톨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협상 내용을 공개했다고 전했다. 이번 협정 초안이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을 받으면 미군이 단계적 철수를 시작하는 등 18년간 계속된 아프간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협정 초안에 관해 설명을 들었으며 검토한 뒤 의견을 제시하겠다고 대변인을 통해 전했다. 로이터는 이번 협상에서 탈레반이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 등이 미국과 그 동맹에 대한 공격을 모의하는 데 아프간이 이용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탈레반은 아프간 내 국제테러조직을 불허하는 조건 등으로 현지 외국 주둔군을 모두 철수하는 내용을 협상 중이었다. 올해 초 평화협정의 대략적인 방향에 합의한 후 그동안 세부사항을 두고 협상을 벌였다. 평화협정 초안이 나왔지만 향후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할릴자드 특사는 현재 1만 4000명 규모인 미군 가운데 5000여명이 철수한 후 나머지 병력의 철수 등 다음 단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은 철군 뒤에도 정보 담당 인력을 남기길 원하고 있어 모든 미군 인력이 예외 없이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탈레반과 이견을 좁힐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협상에 대해 “미국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지만 탈레반은 잃을 게 없다”고도 지적했다. 이 같은 협정 소식이 알려진 뒤 몇 시간 만에 수도 카불에서는 대형 폭탄테러가 발생해 최소 16명의 사망자와 119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등 아프간 내 혼돈은 계속됐다. 탈레반은 “자살폭탄과 총격을 합친 공격이 이뤄졌다”며 자신들이 테러의 배후라고 주장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아프간 주둔 미군 절반 4월까지 즉시 철수 약속”

    트럼프, 국정연설서 감축 가능성 표명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자국 병력 절반을 오는 4월까지 철수하기로 약속했다고 아프간 반군 탈레반이 주장했다. AFP통신은 6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아프간 정파 회의에 참석 중인 탈레반 측을 인용해 “미군이 벌써 철수 작업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이 주장대로라면 미국은 아프간 주둔군 절반을 즉시 철수하는 데 동의하고 지난 1일부터 실행에 옮겼다. 오는 4월 말까지 절반 철군을 완료한다. 현재 아프간에는 약 1만 40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이와 관련, AFP는 “잘메이 할릴자드 아프간 주재 미국특사가 그간 모든 것이 합의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합의된 게 아니다는 입장을 강조해 왔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날 미 연방회의에서 가진 신년 국정연설에서 “미 행정부는 아프간에서 탈레반을 포함, 많은 아프간 그룹과 건설적인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협상에서 진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병력을 감소하고 테러 방지 대책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미군 감축 일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대(對)테러 병력 외 다른 주둔군을 철수시킬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셈이다. 이날 탈레반은 모스크바에서 아프간 각 정파와 국외 인사가 참여한 회의에 참석해 아프간 사태 해소를 모색했다. 탈레반은 2001년 미군 공습으로 정권을 내놓은 이후 최근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고졸신화 부총리·첫 여성 외교장관 ‘파격·탕평’

    고졸신화 부총리·첫 여성 외교장관 ‘파격·탕평’

    靑안보실장 정의용… 정책실장 ‘안철수 멘토’ 장하성 경제자문 부의장 김광두·통일외교특보 홍석현·문정인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김동연(60) 아주대 총장을 지명했다.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는 강경화(62)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를 낙점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는 정의용(71) 전 주제네바대표부 대사를, 정책실장에는 장하성(64)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를 각각 임명, 청와대 실장인사를 매듭지었다. 헌법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에는 김광두(70) 서강대 경제학과 석좌교수를 임명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선 내용을 직접 발표했다. 대통령이 인선을 발표한 건 10일(총리·국정원장·비서실장)과 19일(헌법재판소장)에 이어 세 번째다. 이날 인선은 조현옥 인사수석의 표현대로 현 정부의 ‘적소적재’ 인사원칙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해당 업무의 최적임자라면 ‘정적’(政敵)이 아낀 사람이든, ‘고졸·비(非)고시 출신’ 등 파격 발탁이든 개의치 않는다는 얘기다. 장 실장은 18·19대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를 도왔다. 여성으로는 처음 외교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강 정책특보는 ‘반기문(전 유엔 사무총장)의 사람’으로 꼽히며 비외무고시 출신이다. 김 후보자는 ‘고졸(덕수상고) 신화’의 주인공이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국정과제비서관, 국무조정실장으로 중용됐다. 김 부의장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경제 가정교사’였다. 문 대통령은 김 후보자에 대해 “종합적인 위기관리 능력과 과감한 추진력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다”면서 “청계천 판잣집 소년가장에서 출발해 기재부 차관과 국조실장까지 역임한 분으로 누구보다 서민의 어려움을 공감할 수 있는 분”이라고 강조했다. 끊임없이 ‘유리천장’을 깨 온 강 후보자에 대해 “우리나라 최초·최고 여성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외교 전문가로, 내각 구성의 성평등이란 관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히든카드’는 정책 컨트롤타워를 맡은 장 정책실장이다. 문 대통령은 “재벌 중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사람 중심, 중소기업 중심으로 경제·사회 정책을 변화시켜 경제민주화와 소득주도 성장, 국민성장을 추진할 최고의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정 실장에 대해서는 “북핵·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FTA(자유무역협정) 등 안보·외교·경제가 얽힌 숙제를 풀려면 안보실장에게 필요한 덕목은 확고한 안보정신과 함께 외교적 능력이라고 본다.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에는 미국특사로 다녀온 홍석현(68) 한반도포럼 이사장, 안보실장으로 거론됐던 문정인(66)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를 임명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홍석현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누구? “언론사주 출신 전 주미 대사”

    홍석현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누구? “언론사주 출신 전 주미 대사”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통일외교안보특보에 홍석현(68) 대미특사를 임명했다. 홍석현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미국 사정에 정통하고 국내외에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 주미 대사인 홍 특사는 지난 20일(현지시간) 미 버지니아 주(州)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귀국길에 오르며 “나라를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직책을 맡거나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산업공학석사와 경제학박사 학위를 딴 뒤 세계은행(IBRD) 경제개발연구소 경제조사역, 대통령비서실 보좌관, 삼성코닝 부사장 등을 거쳐 1994년 중앙일보 사장으로 취임했다. 1999년 중앙일보 회장을 맡은 이후 세계신문협회(WAN) 회장도 역임하다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주미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주미대사 임기를 마친 후인 2006년 다시 중앙일보 회장에 취임한 뒤 2011년부터 JTBC 회장까지 겸임해오다 지난 3월 19일 대선 정국에서 중앙일보와 JTBC 회장직을 사임했다. 사임 당시 대선 출마설이 나왔지만 “남북관계 등 대한민국이 새롭게 거듭나는데 필요한 시대적 과제들에 대한 답을 찾고 함께 풀어갈 것”이라고 일축했다. 대선기간인 지난달 12일 문 대통령으로부터 외교·통일과 관련된 내각에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공개해 화제가 됐다. 당시 그는 “내가 내각에 참여할 군번은 아니지만, 만약 평양특사나 미국특사 제안이 온다면 도와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문정인 특보와 함께 홍석현 특보의 인선을 공개하면서 “비록 비상임이지만 국제사회에서 이미 능력과 권위를 인정받은 두 분이 참여함에 따라 산적한 외교·안보 현안의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처남으로, 부인 신연균 여사와의 사이에 홍정도 중앙일보·JTBC 대표이사 사장 등 2남 1녀가 있다. △ 서울 △ 경기고 △ 서울대 전자공학과 △ 미국 스탠퍼드대 산업공학석사·경제학박사 △ 대통령비서실 보좌관 △ 삼성코닝 부사장 △ 세계신문협회(WAN) 회장 △ 주미 대사 △ 중앙일보·JTBC 회장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홍석현 “문재인과 최근 만남…외교특사라면 내각참여 가능”

    홍석현 “문재인과 최근 만남…외교특사라면 내각참여 가능”

    홍석현 전 중앙일보, JTBC 회장은 지난 12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만났다면서 “만약 평양특사나 미국특사 제안이 온다면 그런 것은 도와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때 대통령 출마설이 돌던 홍석현 회장은 최근 손석희 JTBC 앵커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물러나게 하려고 외압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홍 전 회장은 지난 18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대선에서 특정후보를 지지할 수는 없다”면서도 “내 느낌으로는 문재인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안철수 후보는 요즘 하는 게 조금 그렇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회의원 40석을 가진 당의 안철수 후보보다는 120석을 갖고 있는 당의 문재인 후보가 정권을 잡으면 나라로서는 더 안정적이긴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 전 회장은 문재인 후보와 최근 점심을 함께 했고 그 자리에서 문 후보로부터 내각 참여를 제안받았지만, 장관이 아닌 특사로서 참여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나라가 위기인 만큼 통일이나 외교문제 등에 대해 조언은 해줄 수 있을 것”이라며 조만간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와도 만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홍 전 회장은 이후 행보에 대해 “싱크탱크를 만들어 국정현안에 도움을 주고 우리사회의 여러 갈등을 치유하는 사회적대타협에 앞장서겠다”면서 정치인 혹은 조언자 두 길을 놓고 고민하고 있으며, 광의의 정치인으로 불리는 것은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박근혜, 이재용에 “손석희 교체하라” 압박했다[영상]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국채보상·금모으기’ 온국민 한마음… 뜨거운 교육열 여전

    ‘국채보상·금모으기’ 온국민 한마음… 뜨거운 교육열 여전

    대한제국의 국운이 벼랑 끝에 놓였던 1904년 7월18일 ‘대한매일신보’라는 이름으로 창간한 서울신문은 당대 ‘항일언론’으로서 독보적인 활동을 했다. 이와 함께 강산이 10번 넘게 변하는 동안 끊임없이 바뀌어온 국민 생활상을 기록하는 역할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창간초인 1900년대와 2009년 오늘의 생활상은 어떻게 다를까. 서울신문이 걸어온 발자취와 기록을 통해 105년 전과 오늘의 한국사회를 비교해 본다. ●푸른눈의 대(大)한국인, 구국언론을 만들다 “나는 죽더라도 신보는 영원히 살려 한국 민족을 구하라.” 대한매일신보 창립자인 영국인 배설(裵說·Ernest Thomas Bethell)은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외국인이었다. 36세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면서도 신문과 우리 민족에 대한 애착을 이처럼 표현했을 정도다. 대한매일신보는 의협심 강한 벽안의 외국인과 국권회복을 목표로 한 민족진영이 힘을 모아 만든 결정체였다. 1904년 2월 발발한 러일전쟁 취재차 당시 대한제국을 찾았던 배설이 양기탁·박은식 등과 힘을 합쳐 ‘한국인들에게 세상 물정을 알리자.’는 취지로 신문을 펴냈다. 창간호는 모두 6면(영문 4면, 국문 2면)으로 이뤄져 현재 서울신문 지면(32면)의 5분의1 수준이다. 설립자금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배설은 자신의 돈 1000엔으로 신문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독자를 위한 바른 보도’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105년 전 대한매일신보와 오늘의 서울신문은 같은 길을 걸어왔다. 시대적 과업인 ‘항일민족운동’의 횃불을 자임한 대한매일신보는 창간초기부터 일본이 한국의 개간권을 얻어내 영구지배할 목적으로 추진한 ‘대한제국 황무지 개간 계획’의 부당성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등 언론의 역할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채보상·금모으기 운동을 통해 본 경제수준 구한말 우리 사회의 경제수준은 1907년 전개됐던 ‘국채보상운동’을 전한 대한매일신보 기사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은 대한제국이 일본에 진 빚 1300만원을 국민 성금으로 갚자는 ‘나라 빚 갚기운동’이다. 당시 대한매일신보 대구지사를 운영하던 김광제와 서상돈의 발의로 시작됐다. 서상돈은 “나라가 진 빚 1300만원을 갚지 못한다면 일본에 토지라도 내놓아야 할 판이므로 불행한 일을 당하기 전에 우리 2000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고 그 돈을 모아 갚자.”고 제의하며 스스로 800원을 내놓았다. 당시 대한매일신보 한 달 구독료가 30전이고 쌀 한 말(약8㎏) 값이 1원 80전, 궁내부 주사 한달 봉급이 15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매우 큰 돈이다. 현재 서울신문 월 구독료는 1만 5000원이다. 쌀 한 말 값은 일반미 기준으로 1만 6000원 수준이다. 대한매일신보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면서 민중 속으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 신문은 2월21일자에 ‘국채 1300만원 보상 취지서’ 전문을 싣고 ‘이천만 동포 가운데 조금이라도 애국 충정이 있는 사람은 이에 적극 참여해 달라.’며 성금운동에 불을 댕겼다. 신문을 통해 모금 사실을 알게 된 국민들은 주머닛돈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당시 대한매일신보의 보도를 보면 기생들로 조직된 ‘약방기생회’ 회원 39명이 현금과 패물 등 20여원을 기탁했고(2월28일자) 궁내부 기생 모임인 기녀 40명도 24원을 기탁했다.(3월8일자) 또 성환 학소동 최두경은 가계가 넉넉하지 못해 겨우 살면서도 집을 팔아 50원을 내기도 했다.(3월27일자) 그 후 100년이 지난 1998년, 우리 사회에서 ‘신(新) 국채보상운동’이 다시 벌어졌다. 1998년 외환위기 때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금모으기 운동’을 벌인 것이다. 1998년 초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총외채는 1500억달러였다. 당시 한국의 국민총생산(GNP)이 4000억달러 정도였던 것에 비춰봤을 때 매우 큰 금액이었다. 국가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민들은 장롱 속 금붙이들을 은행을 통해 모으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자녀의 돌반지와 결혼반지까지 내놓았으며 적극 동참했다. 결과는 기적적이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범국민운동 시작 불과 한달여만에 금융기관에 모여든 금은 모두 16만여㎏이었고 금액으로는 20억달러에 달하는 양이었다. 서울신문은 전국적으로 번진 금모으기 운동 물결을 적극 보도하며 언론의 사명을 잊지 않았다. ●민족경제 죽였던 외국인 자본, 국가경제를 살리다 구한말 대한제국 정부는 외국에 의존하지 않는 민족경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식산흥업(殖産興業) 정책을 편다. 새로운 이권을 외국인에게 넘겨주지 않고 신기술을 갖춘 기업의 설립을 지원하고 민족은행 설립을 추진했다. 정부 정책에 따라 기업활동도 활발해져 1895부터 1905년 사이 80개의 상회사가 생겼다. 종로 직조사, 한성 제직회사 등 섬유공장과 한성은행, 천일은행도 이때 설립됐다. 그러나 일본은 대한제국의 산업정책을 훼방하고 호시탐탐 조선의 이권을 빼앗으려 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황무지 개간 사업이었다. 한국의 노는 땅을 모두 개간 정리해 경영권을 50년 동안 일본 대장성 관방장인 나가모리가 갖겠다는 것이다. 대한매일신보는 “나가모리가 요구한 개간대상 지역의 대부분이 결코 황무지가 아니며, 그의 요구대로라면 전국토의 3분의2를 일본에 넘겨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당시 대한제국 외부협판(오늘날의 차관) 윤치호의 글을 1904년 7월22일자에 실었다. 또 논설을 통해 “황무지 개간 계획이 한국 국민들 사이에 커다란 불만과 무정부 상태를 불러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2009년 상반기 외국인은 46억 4400만달러를 한국에 투자했다. 지난해와 비교해 2.1% 증가한 수준이다. 105년 전과 정반대로 외국인 투자는 국가 산업 발전의 필수요건으로 자리잡았다. ●105년 전과 다름없는 교육의 중요성 교육을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백년지대계’로 여겼던 건 1900년대와 2000년대 모두 마찬가지였다. 개화기 갑오개혁(1894~1896년)을 거치며 근대적 교육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대한매일신보는 창간 초부터 국민들에게 ‘스스로 힘을 길러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호소하며 국민교육에 관한 기사를 비중있게 다뤘다. 1900년대 대중교육에 획기적인 역할을 한 집단은 1907년 4월 도산 안창호가 중심이 돼 설립한 비밀조직 신민회(新民會)였다. 조직은 국권회복을 위해서는 국민들의 실력 양성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이를 위해 적극적인 교육구국운동을 벌였다. 신민회는 대한매일신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했다. 신민회는 본부를 대한매일신보사에 두고 있었고 양기탁 등 신문 사원들이 조직의 중추를 이뤘다. 신민회는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 평양 대성학교 등 전국 각지에 학교를 세웠고 대한매일신보는 이때마다 찬사와 기대를 보냈다. 일제의 통계에 따르면 1908년 당시 운영된 학교수는 5000개를 넘었다. 한국전쟁 직전 전국 초등학교에 1만 7560여개의 노천교실이 있었지만 이곳에서조차 학부모들에 의한 치맛바람이 있었다는 미국특사의 기록이 나올 만큼 극성스러웠던 한국사회의 교육열은 2000년대도 마찬가지였다. 연간 사교육 시장의 규모가 20조원으로 추정될 만큼 뜨겁다. 서울신문은 매주 교육면에 실리는 ‘총장 초대석’을 연재하는 등 수시로 바뀌는 대입정책에 대한 맞춤정보를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다. ●영화도입 100년사를 통해 본 한국문화 변화 구한말 서양문물이 속속 국내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국민들은 ‘영화’라는 장르를 처음 접하게 됐다. 당대 한국민들에게는 ‘귀신의 조화 속’만 같았던 영화가 빠르게 하나의 문화로 제자리를 잡았다. 황성신문 등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1903년 영화관 입장료는 동화 10전 정도로 설렁탕 한 그릇값 정도 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00여년이 지나는 동안 한국의 영화 문화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2004년 제57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들은 매년 수상의 쾌거를 거두고 있다. 올해 14회째를 맞는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국제 규모의 영화축제를 개최하는 문화 선진국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2008년 개봉작 108편 중 단 15편만이 흑자를 기록하는 등 우울한 현실도 있다. 현재 영화 티켓 한 장 가격은 8000~9000원선이다. ●유형 나눌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진 패션 1904년은 한반도에 ‘패션’이 상륙한 해였다. 대한제국 정부는 벼슬아치를 비롯해 외교관들에게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으라는 조치를 내렸다. 양복 조끼를 변형시킨 개화 조끼가 남성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다. 전통 옷인 도포에는 주머니가 없었고 소매 아래 넓은 자락에 물건을 넣었지만 개화 조끼에는 주머니가 달려 실용성을 더했다. 서울에는 양복점이 속속 생겼다. 재단사는 서양에서 들여온 수입 모직물로 가을, 겨울 양복을 지어주었다. 최초의 맞춤양복점이었던 정동 새 예배당 앞의 원태양복점에서는 양복을 맞춰준다는 광고를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에 내기도 했다. 유럽에서 아닐린 염료가 수입되면서 옷 색깔도 화려해졌다. 여성들은 이 염료를 사용해 노랑저고리, 분홍치마를 만들어 입고 어린이들은 때때옷을, 양반들은 옥색으로 물들인 바지저고리를 입었다. 여성의 헤어스타일은 105년 전에도 관심 대상이었다. 신여성이었던 이화학당 여학생들은 머리 앞을 부풀려 모자의 챙처럼 만든 머리를 즐겨했다. 1907년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최활란은 동경에서 유행하던 챙머리를 서울에 들여온 장본인이다. 긴 머리를 한 가닥으로 굵게 땋아 터번처럼 두르는 둘레머리도 유행했다. 2009년 사람들의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은 유형을 나눌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졌다. 복고의 바람이 불면서 10, 20대 사이에서 1980년대 유행하던 통이 좁은 바지와 형광색 티셔츠, 발목까지 올라오는 하이톱슈즈가 유행하고 있다. 김남주의 물결 퍼머, 송혜교의 단발머리 등 미용실에는 스타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하려는 여성들로 북적인다. 김민희 오달란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朴 전대표 ‘냉랭’… 黨 현안 언급 안해

    한나라당이 ‘공천 갈등’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박근혜 전 대표, 정몽준 의원, 이상득 국회부의장, 이재오 의원 등 미·일·중·러 등에 보낼 ‘4강(强)특사’들을 면담했다. 이날 면담은 중국 특사단장인 박 전 대표가 전날 밀실공천 등을 우려하며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한 직후라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공천 등 당내 현안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박 전대표 파견은 中에 대한 배려”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은 “이 당선인과 박 전 대표간에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단지 당선인이 한·미·일 협력 강화를 강조하다 보니 중국을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 중국에 그런 게 아니라는 뜻을 잘 전달해 달라는 당부의 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 당선인은 “중국이 이번에 (왕이 외교부 부부장을 보내는 것은) 특별히 배려하는 것 같다.”면서 “우리도 (박 전 대표를 중국특사로 보내는 것은) 중국에 크게 배려한 것이다.”고 박 전 대표를 치켜세웠다. 이어 그는 “왕이 부부장이 오는 14일 와서 오찬을 함께하도록 돼 있다.”는 보고를 듣고 박 전 대표에게 “그때 다시 뵙겠다. 점심 같이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최근 당내 상황과 ‘친박근혜’ 성향 인사들의 불만이 고조된 가운데 이뤄진 이날 회동은 시종 무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특사 정몽준 의원, 일본특사 이상득 부의장, 러시아특사 이재오 의원 등이 먼저 도착해 환담을 하던 중 박 전 대표가 시간에 맞춰 도착하자 접견장에 돌연 긴장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朴·이재오 의원 끝까지 악수 안 해 접견장에 도착한 박 전 대표는 이 부의장과 정 의원 등과는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지만 이재오 의원과는 가벼운 목례로 대신했다. 이 당선인과 4강 특사단장들이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할 때도 박 전 대표는 이 당선인과 조금 떨어져 다소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접견이 끝난 뒤 이재오 의원은 박 전 대표를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하며 목례를 건넸으나 두 사람은 끝까지 악수는 하지 않았다. 이 당선인측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시종 굳은 표정을 지은 것을 두고 최근 당내 공천갈등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노출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접견은 무난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말했다.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미소짓는 昌

    미소짓는 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진영의 ‘공천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최대 수혜주로 떠오르는 ‘이회창 신당’이 미소를 짓고 있다. 미국특사보다 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는 중국특사 자리를 수용한 박 전 대표에 대한 측근들의 불만이 높아지는 가운데 일부 공천 탈락 대상자들 사이에서 ‘이회창 신당’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치열한 공천 경쟁이 예상되는 한나라당과 달리 ‘이회창 신당’은 아직 인재 영입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공천 전쟁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정치 신인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이회창 신당측 한 관계자도 “정치 수요는 넘쳐나는데 한나라당으로는 그 수요를 모두 감당할 수 없다.”며 한나라당의 내홍과 이에 따른 후폭풍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대통합민주신당 또한 ‘이회창 신당’의 출현이 반갑지 않다. 측근들과 실무진들을 중심으로 이 전 총재 지역구(예산·홍성) 출마를 강하게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충청권 의원을 중심으로 이회창 바람에 동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강삼재 창당준비단장도 서울신문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신당에는 너무 넓은 이념적 스펙트럼으로 자신의 노선과 차이가 심해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면서 “이러한 분들을 중심으로 여러분이 저와 향후 진로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회창 신당’의 틈새 전략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과 인재풀이 겹치는 상황에서 경쟁력 있는 참신한 보수인사들의 희망 1순위는 여전히 한나라당 공천이기 때문이다.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시론] 김정일 중국에 간 까닭은?/고유환 동국대 북한학 교수

    ”이번 북·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핵문제해결을 위한 대화 지속을 강조했고,북한은 미국측이 적대적 태도를 바꾼다면 북한도 핵개발을 포기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18일부터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비공식 방문중이다.우리가 그의 방중을 주시하는 것은 이를 통해서 현안인 북핵문제 해결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가 여부와 함께,개혁·개방정책 가속화 차원의 새로운 정책구상을 국제사회에 밝힐 것인가에 대한 관심 때문일 것이다. 북한은 2001년 1월1일을 세기전환의 기점으로 삼아 21세기를 ‘김정일 세기’로 규정하고,‘새로운 사고방식과 관점’을 강조하면서 정책전환의 계기로 삼고자 했다.김 위원장은 그해 1월15일부터 20일까지 중국 상하이 푸둥지역을 둘러보고 “천지가 개벽했다.”면서 중국식 개혁·개방모델을 원용한 경제발전 전략을 구체화하고자 했다.그러나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추진한 미국의 대북 강경책으로 이를 구체화하지 못했다. 9·11테러 이후 미국은 국가목표를 반테러와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에 두고,북한을 ‘악의 축’ 또는 ‘불량국가’로 규정하고 대북 압박을 지속했다.그러자 북한은 2002년 하반기부터 경제관리 개선조치와 신의주특구 설치 등 점진적 개혁·개방정책으로 북한의 변화 의지를 국제사회에 과시하고 미·일 등 적대국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고자 했다.그러나 신의주특구 설치에 대한 중국의 견제와 함께 ‘선 개혁·개방,후 미국으로부터의 체제보장’ 노선이 북한 핵개발 의혹이 다시 불거짐으로써 중대한 기로에 처하게 됐다. 북한이 2002년 7월1일부터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취할 때는 대외관계 확장을 염두에 두고 대내 경제개혁과 특구 개방을 시작했다.그러나 신의주특구 지정,북·일 정상회담,미국특사 수용 등 일련의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고 2차 북핵위기가 불거지면서 북한의 국제적 고립은 심화됐다.지난해 4월부터 미국 중심의 국제사회는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으로 대북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외화 수입원인 무기수출,마약밀매 등 비정상적 거래를 막는 ‘선택적 저지’를 통한 사실상의 대북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유일한 버팀목은 냉전시대 혈맹인 중국이다.2차 핵위기 발생 이후 1년반 동안 북한이 그럭저럭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내부 경제개혁에 따른 일시적 활력과 중국의 경제지원,남한의 인도적 지원 때문일 것이다. 한편,중국이 북핵문제에 대한 외교를 강화하는 까닭은 북핵해결이 곧 중국의 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최근 미·일이 ‘북한위협론’을 내세우고 미사일방어(MD)체제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또 북한이 핵개발을 강행할 경우 일본의 핵개발 등 동북아에서의 핵개발 경쟁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따라서 중국 입장에서는 핵,미사일 등 현재의 ‘북한문제’는 미래의 ‘중국문제’이기에 방관할 수 없는 처지다. 흔히 북·중관계를 ‘순망치한(脣亡齒寒)’관계라고 한다.따라서 중국은 핵문제 해결과정에서 북한의 내부폭발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중국은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서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종용하면서 경제지원 약속과 체제유지를 위한 후견자 역할을 자임할 가능성이 높다.중국은 미국이 요구한 북한에 대한 핵포기 설득 등의 성과를 바탕으로 미국에도 적극적 북핵문제 해결 자세를 촉구할 것이다. 19일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핵문제해결을 위한 대화 지속을 강조했고,북한은 미국측이 적대적 태도를 바꾼다면 북한도 핵개발을 포기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김 위원장의 방중을 계기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빨라질 전망이다.총선 이후 권력재편 등 국내문제로 어수선하지만,북핵해결 과정과 이후 새롭게 형성될 동북아 신질서 구축 등 나라밖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 교수˝
  • [열린세상] 정상국가 대 불량국가

    최근 벌어지고 있는 북·미간 갈등의 핵심은 제네바 북·미기본합의 이행문제 및 북·미 적대관계 해소와 관련한 것이다.미국은 북한이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불량국가’이기 때문에 먼저 이를 포기해야 ‘정상국가’인 미국,일본,한국 등과 관계개선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이에 대해 북한은 미국이 문제시하는 ‘우려사항’이란 바로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과 침략책동의 산물’이라고 하면서 미국이 불가침조약을 통해 대북적대시정책을 포기하면 미국의 안보상 우려사항을 해소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과 미국의 갈등은 협상에 임하는 기본 관점의 차이에서 기인한다.미국은 반테러와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이라는 세계전략에 따라 북한을 다루고 있는 데 비해,북한은 생존전략 차원에서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카드를 활용해서 북·미 적대관계 해소에 주력하고 있다. 따라서 북·미 적대관계가 해소되기 위해서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우려사항’ 해소 요구와 북한의 미국에 대한 ‘대북 강경적대시정책 포기와 체제보장’ 요구 등과 관련한 현안문제의 일괄타결이 이뤄져야 한다. 북한핵문제 해결과 관련해서 한·미·일 3국은 미국 클린턴 행정부 때 만든 ‘페리프로세스’란 합리적 해결방안을 가지고 있다.북한의 대량살상무기개발 포기 및 체제보장과 관련한 단계별 일괄타결을 모색하는 ‘페리프로세스’를 재가동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북핵해법이 될 것이다. 미국이 ‘북한불량국가론’을 내세우며 북·미현안의 일괄타결을 모색하지 않고 ‘선 북한의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대화자세로 보기 어렵다.북한이 당장 들어주기 어려운 전제조건을 내세운 미국의 대화자세는 대북 우려사항 해소목적 이외에 또 다른 미국의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받게된다.그것은 북한과 급속한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을 견제하는 ‘시간벌기용’으로 오해받기 쉽다는 것이다. 미국의 북한 핵개발의혹 제기는 연말 한국 대선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북한 핵개발문제가 다시 불거짐으로써 ‘선 교류협력,후 긴장완화·평화정착’을 주장해왔던 정치세력의 입지를 약화시키고,‘선 긴장완화·평화정착,후 교류협력’을 주장해온 정치세력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다.미국은 한국의 대선에서 대북 강경보수정권이 탄생하면 한국의 새정부와 한·미·일간의 보수삼각공조를 통한 ‘북한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모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미국특사를 받아들여 북·미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개혁·개방을 본격화하려던 북한의 의도는 ‘우라늄 농축방식의 새로운 핵무기개발계획 시인’ 파문으로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신의주 특구개발 등 개혁·개방의 본격화에 대해서는 중국이 견제하고,북·일 국교정상화 등 대외관계 확장노력에 대해서는 미국이 견제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정책변화로 촉발된 한반도정세의 변화에 대해서 그동안 한반도문제의 논의구조에서 다소 소외됐던 러시아와 일본은 적극성을 보인 반면,한반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미국과 중국은 현상변경을 우려하면서 한반도 정세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미국은 아직도 북한의 변화의지를 의심하고대량살상무기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대북 강경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중국 역시 북한의 신의주 특구지정과 양빈장관 임명에 불편한 심기를드러내고 있다. 북·미 적대관계 해소는 북한이 안보불안감에서 벗어나 안심하고 개혁·개방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의미가 있다.그리고 북한은 미국이 지명한 테러지원국 명단으로부터 벗어나야 경제재건에 필요한 재원을 국제금융기구로부터 빌려올 수 있다.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재건 계획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대량살상무기 개발 포기를 통한 ‘불량국가’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정상국가로서 국제무대로 나와야 한다.최근 북한도 정상국가로의 변신을 위한 정책변화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북한이 정상국가로의 변화를 모색할 때 정상국가들이 따뜻이 맞아줘야 한다.너무 엄격한 정상국가 자격기준을 요구하면서 정상국가 진입을 막을 경우 불량국가는 더욱 불량해질 수도 있다.‘유일체제’인 북한과의 우려사항 해소는 김정일과의 협상이 가장 빠른 방법이고 비용도 적게 든다는 점을 미국은 명백히 인식해야 한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 북한학
  • [편집자문위원 칼럼] 마지막 한 문장까지 최선을…

    참으로 지난 6월은 ‘한판 잘 놀았던’한 달이었다. 전국을 붉은색으로 칠하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누구와도 소주 한 잔 걸치면서 기분좋게 취할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지난 6월은 언론역사에도 특이한 시기로 기록될 만하다. 인터넷 시대와 함께 사라졌던 호외가 발간됐고 그것도 스포츠가 담당했으니 언론도 6월에는 ‘비정상의 정상’이 아니었던가 싶다. 대∼한민국과 함께 대∼한매일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으니, 자문위원으로서 이 또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한매일의 논조와 기사,편집에서 발전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 뭔가 빠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필자는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대한매일을 비롯,몇몇 유력신문의 기사를 비교하는 보고서를 학기마다 내주고 있다.학생들의 반응에서 필자가 확인하는 것은 역시 대한매일이 객관적인 기사를 다루는 데는 성공하고 있으나,신문의 색깔을 드러내는 데는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무색무취의 신문이라고 할까. 이렇게 된 데는 과거 서울신문의 이미지가 청산되지않아서 일 수도 있고, 대한매일이 아직 철학과 정체성을 확고히 정립하지 못해서 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대한매일의 기사와 사설 등에서 마지막 한 문장이 빠져 있다는 데서 이유를 찾는다.물론 이는 대한매일의 철학·정체성과 관련돼 있는 문제다. 지난 2주동안 관심을 끌었던 가장 큰 사건은 ‘서해교전’이다.대한매일은 이에 대해 다른 신문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알찬 보도를 했다.그리고 여러 논란들에 대해 7월2일자에서 보듯 여·야 및 여러 정치세력의 입장을 비교설명하고,사설에서는 ‘교전수칙 개정’에 대한 신중한 접근(7월2일),미국특사파견 철회에 대한 반대입장(7월3일),‘서해교전’을 입맛에 따라 해석하는 것에 대해 비판(7월6일과 7월9일)적 입장을 개진했다.이는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고자 한 노력의 결과로 보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런 입장을 개진한 뒤 남는 물음에 마땅한 대답이 없다는 점이다.비록 NLL의 불안정을 지적하고 7월3일자에 ‘공동어로구역’과 같은 대안을 밝혔지만,NLL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정성과 여러정치세력의 이전투구,국론분열과 같은 현재의 상황에 대해 대한매일 자신의 목소리는 너무나 작아보인다.이것이 바로 마지막 한 문장을 다 채우지 못하는 대한매일의 현실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국민적 관심사가 된 미군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에서도 보인다.사건도 문제지만,이후에 벌어진 우리 검찰의 저자세,미군의 검찰출석 문제,재판권 청구 등과 관련해 사실에 대한 기사는 있지만,왜 우리가 이토록 미군 범죄에 저자세를 보여야만 하는지 근본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이 없다.역시 마지막 한 문장이 빠져 있다. 현재의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문제를 지적하고,대안을 모색하는 기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반미시위가 돼서는 안된다는 사설(7월6일자)보다 미군의 오만한 자세를 지적하는 사설을 싣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한다. 이제 또 선거가 다가온다.그때는 달라진 대한매일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영철 서울대 사회발전硏 연구원
  • 클린턴 美 대통령의 방한(사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오늘 우리나라에 온다. 클린턴 대통령은 3박4일의 방한기간중 金大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며 하루는 미군기지를 방문하여 장병들과 보낸다. 클린턴 대통령의 이번 방한은 두가지 점에서 주목된다. 한·미간의 대북정책 조율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미국의 지원및 협력문제다. 이라크사태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했던 클린턴 대통령이 짧지않은 한국 방문을 강행한 것도 이들 문제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하겠다. 양국 정상회담의 의제도 결국 여기에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관련하여 지금 한반도에는 난류(暖流)와 한류(寒流)가 동시에 흐르고 있다. 분단 50여년 만에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고 민간차원의 남북 교류·협력이 경쟁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대북 포용정책의 긍정적인 효과라 할 수 있겠다. 반면 북한의 지하핵시설 의혹과 미사일 개발문제는 화해·협력분위기를 흔들고 있다. 북한은 사흘에 걸친 찰스 카트먼 미국특사의 방북에도 불구하고 영변 인근 지하시설의 사찰을거부했다. 미국 의회를 중심으로 ‘제네바 핵합의’를 더이상 지킬 필요가 없다는 강경 여론까지 거세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양국간의 대북정책 공조는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물론 지금까지도 대북정책에 관한한 두 나라간에는 긴밀한 공조가 이루어져 왔으며 특별한 이견도 없었다고 본다. 특히 金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은 대북 포용정책에 뜻을 같이 하고 있다. 두 정상은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최근 상황을 종합하여 대북정책을 조율하길 기대한다. 조그마한 틈새도 없는 긴밀한 공조체제를 재확인해 줄 것으로 믿는다. 지나친 강경대응으로 모처럼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화해기류를 깨뜨리거나,핵시설 의혹에 눈을 감고 넘어가는 것이나 모두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니다. 클린턴 대통령의 이번 방한이 한국의 경제위기 극복에도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클린턴 대통령이 한국의 경제개혁을 비롯한 그동안의 위기극복 노력을 평가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재확인한다면 우리의 경제회생은 더욱 빨라질 수 있을 것이다. 철강과 반도체,투자협정등 두 나라간의 통상현안 해결도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한국 경제를 되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급한 일이라 할 것이다.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클린턴 대통령이 방한중 주요 민간인사들과 갖기로 한 대화는 한국의 민주발전과 위기극복 의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의 시기 적절한 방한을 환영한다.
  • 코소보 사태 평화해결 실마리/유고,유엔결의 준수 동의

    ◎클린턴 “신뢰성 의구심… 완전항복을”/홀브룩­밀로셰비치 4일간 최종담판 【워싱턴·베오그라드 AP 연합】 공습 직전까지 갔던 코소보사태가 극적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대통령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군사적 위협에 굴복,코소보주의 알바니아계에 대한 7개월에 걸친 탄압을 종식하라는 유엔의 결의를 준수하기로 전격 동의했다고 12일 밤 미국 백악관 관리들이 전했다. 이 관리들은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또한 약속 준수를 보장하기 위해 2,000명의 감시단 배치에도 동의했다고 말했다. 공군력을 이용한 감시단 보호활동과 코소보주의 자치선언에 대해서도 합의가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나토는 리처드 홀브룩 특사가 밀로셰비치 대통령과 최종담판을 벌일 수 있도록 4일간의 유예기간을 허용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1199호)내용의 완전 준수를 약속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밀로셰비치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유고에 대한 군사적 압박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해 코소보주에 평화가 완전 정착될 때까지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할 뜻임을 내비쳤다. 홀브룩 특사는 13일 베오그라드로 가 밀로셰비치 대통령과 협상을 재개한다. ◎유고 ‘무릎’ 꿇기까지/낮부터 새벽까지 양보없는 밀고당기기/공습 임박하자 밀료셰비치 힘없이 굴복 새로운 한주를 시작하는 12일 새벽 신유고 수도 베오그라드 주재 미국 대사관에는 숨막히는 긴장이 감돌았다. 밀로셰비치 대통령과의 회담장에서 밤을 꼬박 세우고 돌아온 리처드 홀브룩 미국특사가 밀실에 틀어박혀 세시간째 전화통을 붙들고 백악관과 통화중이었기 때문이다. 날이 밝으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16개국 대사들이 대 유고 무력사용을 승인하기 위해 브뤼셀로 모여든다. 승인이 떨어지면 미사일 발사장치의 빨간단추는 웨슬리 클라크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 손가락 아래로 들어가게 돼 있다. 백이면 백 만장일치 승인이 확실한 상황. 지난 일주일간 고집쟁이 밀로셰비치의 마음을 돌려놓으려 홀브룩은 갖은 애를 써왔다. 주중에 벌써 60여시간에 걸친 세차례 담판이 이어졌다. 노련한 홀브룩도 10일 오후 회담장을 나설 때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어제,오늘 아침,지금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토와 미국은 격분했다. 남은 것은 전쟁뿐이라고 배수진을 쳤다. 11일 홀브룩은 회담장으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발길을 옮겼다. 6시간에 걸친 낮 회담이 저녁 식사후 재개돼 이튿날 새벽 한시반에야 끝났다. 와중에 미국은 전투기 70대와 토마호크 미사일 발사용 전투함 등을 탑재한 대규모 운반함을 지중해에 배치하고 크루즈 미사일 발사용 B­52 폭격기를 영국으로 이동했다. 공습이 곧 시작되는 듯했다. 나토 국가들도 12일 무력사용을 승인,긴박감은 절정에 올랐다. 하지만 상황은 싱겁게 끝났다. 12일 저녁 늦게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밀로셰비치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 준수 약속을 공표한 것. 코소보 휴전,2,000명 규모의 국제사찰 등을 모두 받아들이며 밀로셰비치의 버티기는 여기서 끝났다. ◎리처드 홀브룩 미국 특사/외교협상의 명수/월남 평화회담 맹활약 유태계 독일인 이민3세. 뉴욕 태생으로 브라운 대학을 졸업한 후 약관 21세에 국무부에 입성,직업외교관으로서의 길을 걸었다. 60년대 말 파리 월남 평화회담의 미국 대표단으로 활약했으며 코소보 사태이전 보스니아 사태때도 특사를 역임,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을 정도로 유고문제에 뛰어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한때 관계에서 물러나 컨설팅 회사의 부사장과 은행의 중역 등을 역임하는 등 야인으로 지냈으나 클린턴 정부 출범후 주 독일대사로 복귀,국무부 차관보에까지 이르렀다. ◎밀로셰비치 신유고 대통령/“발칸의 도살자”/87년부터 쿠데타로 집권 강경한 민족주의자로서 89년 세르비아 대통령이었을 당시 ‘대세르비아’를 주창하며 코소보주의 자치권을 박탈,코소보 분리독립운동의 불씨를 낳았다. 정치 명문가 출신인 아내와 처가의 후광으로 일찍 권력 핵심에 다가갔으며 87년 옛 공산당내 정치선배들을 쿠데타로 몰아내고 마침내 현 집권 사회당의 당권을 장악했다. 특히 암투와 계략 등 정치술수에 뛰어나다. 그의 백기투항에도 불구하고 서방세계가 계속압박을 가하는 것은 약속 깨기를 밥먹듯 하는 전력 때문이다. 아내 미리아나 마르코비치는 나치에 항거한 국민적 영웅의 딸이다.
  • 보스니아 세계 권력투쟁/플라브시치 대통령­카라지치 지지자 암투

    【반야 루카 AFP DPA 연합】 빌라라냐 플라브시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대통령은 19일 군중 집회를 갖고 국내 강경 민족주의자들과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는 자신을 지지해줄 것을 촉구했다. 플라브시치 대통령은 이날 보스니아 서북부 자신의 거점인 반야 루카에서 2천명의 군중이 모인 자리에서 연설을 통해 강경파에 충성하는 경찰에 반대,자신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했다. 국제적 지지를 받고 있는 플라브시치 대통령은 또 칼로스 웨스턴도프 보스니아사태 중재대표,로버트 겔버드 미국특사 및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보스니아 평화유진군 사령관 에릭 신세키 장군과 만나 국내 사태를 논의했다. 웨스턴도프 대표는 전범으로 기소된 팔레의 라도반 카라지치 전 내전지도자에 충성하는 강경파와 반야 루카의 플라브시치 대통령 지지자들 간에 이제 “분명한 균열”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보스니아의 정치 위기는 지난달 플라브시치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카자치 내무장관의 해임을 시도하면서 촉발됐다.그러나 카자치 장관은 아직도 재임하고 있으며 플라브시치 대통령은 집권 세르비아 민주당으로 부터 축출당했다.
  • 미 로스 중동특사 이­팔 총리와 회담

    【예루살렘 AFP 연합】 미국이 중동평화협상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가운데 데니스 로스 미국특사는 10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을 갖고 중동평화협상 재개방안을 논의했다. 로스 특사는 이어 이날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에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과 만난다.
  • “보­세 양국 대통령 3주내 파리 회동”/미 홀브록 특사 밝혀

    【사라예보 로이터 연합 특약】 이제트베고비치 보스니아 대통령과 밀로세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3주이내에 파리에서 회담할 것이라고 리처드 홀브록 미국특사가 15일 말했다. 홀브록 특사의 중재로 이루어질 이번 회담에서는 양국간의 관계정상회담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 “조기경보기 한국파견해야”/미 헤리티지재단

    ◎“7함대 허주 추가배치 필요” 【워싱턴 연합】 미 헤리티지재단은 15일 조기경보기(AWACS)를 한국에 파견,주한미군을 보강하고 태평양의 미7함대에 항공모함 1대를 잠정적으로 추가배치할 것을 클린턴 대통령에게 촉구하고 이러한 전력 보강은 한국에 대한 북한의 침략을 단념시키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즉각적이고 실질적인 남북한 고위회담을 갖도록 미국이 북한에 대해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방한과 관련,헤리티지재단은 이날 ▲한국방위에 대한 미국의 공약을 재다짐하고 ▲미국이 북한과 쌍무적인 평화조약을 결코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천명해야 하며 ▲실질적인 고위급 남북대화를 즉각 재개하기 위한 압력을 행사하고 ▲미·북한간 핵합의가 정치적 긴장완화와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명백히 연계시키고 있다는 점을 북한에 상기시키고 ▲긴장완화 절차를 추진하기 위해 미국특사를 한국측과 협의,임명할 것 등 5가지 사항을 촉구했다.
  • 보스니아군 공세 중지시켜야(해외사설)

    러시아정부는 최근 유엔안보리 앞으로 서보스니아지역에서 크로아티아·보스니아 정부군의 공세를 중지시킬 방안을 강구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이같은 촉구는 보스니아사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안은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정당한 요구이다. 나토와 유엔은 사라예보 부근지역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군사목표물들에 대한 공습이 성공을 거둠에 따라 고무돼있다.하지만 이 시점에서 크로아티아·회교도측의 공세를 눈감아 준다면 진정한 평화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회교도측의 공세로 반야루카지역에서 30만명의 세르비아난민이 발생했다.이 지역이 유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라예보주민들보다 소홀히 간주해선 곤란하다.크로아티아 회교도들은 세르비아계에 대한 나토의 공습에 힘입어 지난 4년간 당한 피해를 보상받았다.그리고 서방은 회교도의 최근 반격을 묵인하고 있다. 크로아티아군이 진격하는 지역은 리처드 홀부르크 미국특사의 중재안에 따라 어차피 크로아티아의 수중에 들어갈 땅이다.크로아티아의 진격은 정치적으로 오히려 세르비아지도자들을 유리하게 만들었다.그렇지 않고 이 지역에서 자진철수를 할 경우 세르비아지도자들은 세르비아계 주민들에게 설득하는데 애를 먹을 것이다. 이제 회교도·크로아티아군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지역의 50%를 장악했다.이는 평화안에서 자기들에게 돌아갈 몫이다.문제는 이들이 공세를 계속해 군사균형을 자기들 우위로 뒤바꾸려고 한다는 것이다.모하메드 사키르베이 보스니아외무장관은 빼앗긴 지역을 「해방」시키기 위한 공세를 중단할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해방」이라는 표현이 정당한지도 의문이다.보다 큰 문제는 반야루카지역에서 회교도군의 진격을 중지시켜야한다는 것이다.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나토의 공습이 가해져야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토가 보스니아 회교도를 편들기 위해 개입했다는 러시아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된다.그래서 회교도 크로아티아의 공세가 계속될 경우 조만간 세르비아의 대규모 반격이 있을 것이고 그러면 전쟁의 규모는 이전보다도 훨씬 더 커진다.
  • 나토,세계 공습­협상 병행/전폭기·「신속군」 3일째 맹공

    ◎미특사,분쟁국들 접촉 분주/“공격 계속땐 장기선 돌입”­세계 지도자 【사라예보·워싱턴 로이터 AP 연합】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전폭기들은 1일 새벽2시(현지시각)미국특사들이 옛 유고지역 분쟁당사국들을 오가며 평화중재노력을 계속하는 가운데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목표물들에 대한 사흘째 공습을 감행했다. 유엔군대변인은 또 유엔 신속대응군이 지난달 30일에 이어 이날 아침 7시 두번째로 세르비아계 진지에 대해 포격을 가했다고 발표했다. 나토간부들은 이날 어떤 목표물들을 공격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익명을 요구한 한 소식통은 『사라예보부근의 세르비아계 탄약저장소들이 주요 목표』라고 말하고 『다른 지시가 있을 때까지 공습이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토는 사라예보에 대한 세르비아계의 포위가 풀리고 사라예보를 비롯한 유엔안전지대들을 위협하는 지역으로부터 모든 무기들이 철수되는 등 세르비아계로부터 더이상 전쟁을 수행할 의지와 수단을 완전히 제거할 때까지 폭격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편 나토의 대대적 공습이 계속되는 가운데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는 아카시 야스시(명석강)유엔특사에게 서한을 보내 세르비아계는 안전지대에 포격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토가 공격을 계속하면 장기전에 대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 중화기철수 시작 【브뤼셀 AFP 연합】 보스니아 세르비아계는 나토가 군사공격중단조건으로 요구한대로 사라예보주변으로부터 중화기를 철수하기 시작했다고 나토측이 1일 밝혔다. 나토 대변인은 이같은 내용의 보고를 접수했으나 그 진위를 조사중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첫번째 보고에 따르면 31일 밤과 1일 상오 단행된 공습은 성공적이었으며 출격한 항공기는 모두 무사히 기지로 귀환했다고 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