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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유업, ‘상하목장 콩물두유’ 3종 출시

    매일유업, ‘상하목장 콩물두유’ 3종 출시

    매일유업은 친환경 브랜드 상하목장을 통해 프리미엄 두유 신제품 ‘상하목장 콩물두유’ 3종을 출시했다고 4일 밝혔다. 이번 제품은 수확 후 1년 이내의 국내산 특등급 서리태 품종 ‘청자 5호’만을 선별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전통 맷돌 방식으로 껍질까지 그대로 갈아 넣어 진한 맛을 살렸으며, 유화제·소포제·안정제·감미료·향료를 넣지 않은 ‘5무(無) 원칙’을 적용했다. 제품군은 무가당·고단백의 ‘서리태’, 저당 제품인 ‘서리태&쑥’, ‘서리태&팥’ 등 3종으로 구성됐다. 서리태 외에 인진쑥과 팥도 100% 국산 농산물을 사용했다. 180㎖ 파우치 형태로 매일유업 공식몰 등 온라인 채널에서 구매할 수 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상하목장이 식물성 두유 카테고리로 확장한 첫 사례로, 기존 유제품에 적용해 온 원산지·품질 관리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다”라며 “어떤 콩을 쓰는가에서 더 나아가 언제 수확한 콩을 쓰는가까지 기준으로 삼은 프리미엄 콩물두유”라고 말했다.
  • 김치 만들다 버려진 무로 플라스틱 만든다고?

    김치 만들다 버려진 무로 플라스틱 만든다고?

    김치는 한국의 대표적인 발효식품으로 전 세계인이 찾는 음식이 됐다. 김치를 만들 때는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다. 그중 무가 가장 많이 쓰이는데 국내 김치산업에서는 매년 약 13만 2000t의 무가 사용되고 있으며 식품으로 활용되지 않는 부산물이 약 1만 7000t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중 94% 정도가 폐기물로 배출돼 처리 비용이 발생하고 환경 부담도 커지고 있다. 국내 연구진이 김치 제조 과정에서 버려지는 무 껍질 등 부산물을 생분해성 바이오플라스틱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한국식품연구원 부설 세계김치연구소 순환유통기술연구단은 김치 부산물을 생분해성 바이오플라스틱으로 활용하고 이런 식품 폐자원에 적합한 생산균주를 데이터로 설계하는 정밀 바이오제조 기술을 개발했다고 14일 밝혔다. 이 연구 성과는 환경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바이오리소스 테크놀로지’에 실렸다. 연구팀은 무 부산물을 효소로 분해해 만든 당화액을 대장균의 배양 원료로 활용해 자연에서 미생물로 분해되는 친환경 플라스틱 폴리하이드록시부타레이트를 생산했다. 무 부산물 당화액은 폴리하이드록시부타레이트를 만들 때 사용되는 정제 포도당 배지보다 더 유리한 특성을 보여 폐자원이 친환경 바이오플라스틱 생산을 위한 유망 탄소원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확인했다. 또 연구팀은 RNA 시퀀싱으로 확보한 유전자 발현 정보와 게놈 규모 대사모델을 통합 분석해 바이오플라스틱 생산을 촉진하는 핵심 대사 경로와 유전자들도 찾아냈다. 연구팀은 이를 반영해 새로 설계한 생산균주를 이용한 결과, 기존 균주보다 바이오플라스틱 축적 능력이 약 78% 증가했고 세균 무게의 72% 정도가 폴리하이드록시부타레이트로 채워질 만큼 높은 생산성을 보였다. 연구팀에 따르면 배양액 1ℓ당 최대 5.75g의 폴리하이드록시부타레이트를 생산해 공정 확대 가능성도 확인했다. 연구를 이끈 양정은 단장은 “이번 연구는 폐자원의 특성을 데이터로 분석해 이에 가장 적합한 생산균주를 설계하는 새로운 바이오제조 기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배추를 비롯한 다양한 김치 원재료와 농식품 부산물에도 같은 기술을 적용할 수 있어 폐자원의 고부가가치 자원화와 순환경제 실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양 단장은 “폐자원에 따라 생산균주를 맞춤형으로 설계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인 만큼 농식품 부산물의 활용 범위를 크게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유기농이 무조건 좋다고? 유기농으로 꼭 사지 않아도 되는 식품도 있다 [라이프]

    유기농이 무조건 좋다고? 유기농으로 꼭 사지 않아도 되는 식품도 있다 [라이프]

    유기농 식품은 흔히 더 건강하고 윤리적인 선택으로 여겨진다. 유기농 식품이 과연 더 건강하고 더 친환경적인지 논란이 여전하지만, 잔류 농약이나 유해 화학물질을 걱정하는 소비자들은 여전히 유기농 식품을 선택하고 있다. 오랜 논쟁 속에서 유기농 식품의 변치 않는 단점이 있는데 바로 높은 가격이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유기농 식품을 구매하는 것이 과연 가치 있는 소비인지 전문가 자문을 통해 소개했다. 영양 전문가이자 ‘초가공식품을 먹지 않는 법’의 저자 니콜라 루들럼-레인은 소비자들이 유기농 식품을 선택할 때 농약 잔류 가능성이 높은 유기농 식품, 특히 껍질째 먹는 식품을 우선순위에 놓을 것을 권했다. 살충제 사용 반대 운동을 펼치는 영국 살충제 행동 네트워크는 정부의 공식 데이터를 분석해 2025년 영국에서 농약 잔류물이 가장 많이 검출되는 식품 12가지 목록을 발표했다. 농약 잔류물이 가장 많이 검출된 것은 자몽이었다. 분석 대상 개체의 99%에서 여러 종류의 농약 잔류물이 검출됐다. 그 뒤를 이어 포도(90%), 라임(79%), 바나나(67%), 고추(49%) 순으로 농약 잔류물이 검출됐다. 나머지는 멜론(46%), 콩(38%), 칠리 고추(38%), 버섯(31%), 브로콜리(26%), 가지(23%), 말린 콩(21%)이었다. 루들럼-레인은 “식비 예산이 한정적이라면 가지, 버섯, 피망처럼 껍질째 먹는 식품은 유기농 제품으로 구입하거나 먹기 전에 깨끗하게 씻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반대로 농약 잔류물이 적게 검출되거나 껍질 대부분을 섭취하지 않는 식품은 한정된 예산에서 굳이 유기농을 선택할 필요 없다는 의미가 된다.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사탕무, 옥수수, 무화과, 루바브, 대황, 순무는 분석된 샘플 중 농약 잔류물이 검출된 비율이 0%로 가장 낮았다. 그 뒤를 이어 양파(1%), 아보카도(2%), 콜리플라워(3%), 무(4%), 고구마(6%), 호박(8%) 등 순이었다. 루들럼-레인은 “아보카도나 양파처럼 두꺼운 껍질이나 겉껍질이 있는 경우 유기농 식품 구매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은 훨씬 적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다만 루들럼-레인은 유기농 식품을 먹느냐의 문제보다 더 균형 잡힌 식단을 섭취하는 것이 더 크게 건강을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국 성인 대부분이 여전히 하루 권장량인 과일과 채소 5가지를 섭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유기농 식품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과일과 채소를 포기하는 것보다 유기농이 아니더라도 일반 농법으로 지은 딸기나 사과, 브로콜리 등을 먹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식비 예산이 한정적이라면 유기농 여부와 상관없이 양과 종류, 가격을 우선시하고, 먹기 전에 충분히 씻고 껍질을 벗겨 먹는 것이 훨씬 낫다”고 덧붙였다.
  • 포말/이호영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희곡]

    포말/이호영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희곡]

    등장인물문익 60대  창현 30대응현 30대  현선 60대 무대 여름. 노을 지는 오후. 제주도 호텔 스위트룸. 블루와 화이트 톤의 고급 리조트로 세련된 분위기이다. 넓은 창으로 지중해 빛 바다가 한눈에 펼쳐진다. 고급 라탄과 실크 벽지가 럭셔리해 보인다. 화려한 다이닝 룸이 있고, 넓은 거실에 스트라이프 소파가 놓여 있다. 침실은 두 개로 킹사이즈 침대가 하나 있는 곳만 관객석에서 내부가 보이고, 한 곳은 내부가 보이지 않게 문으로만 존재한다. 호화로운 숙소에 비해 이들의 차림은 수수하고, 단출하다. 좋은 방향제 향기가 은은하다. 가끔 파도 소리가 들린다. 1장 문이 열린다. 문익, 창현, 응현, 현선 차례로 들어온다. 각자 자신의 짐을 들고 있지만, 현선은 빈손이며 어깨를 떨고 있다. 문익 엄마 눕혀 얼른. 창현 엄마. 이쪽이요. 창현이 현선을 내부가 보이는 침실로 안내하고, 현선은 그대로 침대에 눕는다. 응현이 창현과 현선을 따라 들어간다. 외투와 가져온 짐은 모두 내부가 보이는 침실로 옮겨진다. 응현 여기가 안방인가? 창현 호텔에 안방이 어디 있어. 그냥 침실이지. 응현 처음 와 봐서 그래. 오빠도 두 번째잖아. 현선 추워. 에어컨 좀 꺼 줘. 응현 이건가? (삑-삑-삑-삑-) 음? 창현 비켜. 에어컨이 꺼지는 소리가 난다. 응현, 머쓱한 제스처를 취하고 현선의 이불을 덮어 준다. 응현 엄마. 저희 마루에 있을 거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세요. 현선 응. 창현 마루 아니고 거실. 창현과 응현, 거실로 나간다. 문익, 창 바깥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창현 좋죠? 문익 그러게. 끝내준다. 창현 밤에는 불꽃놀이도 옥상에서 해준대요. 문익 이렇게 비싼 방 냄새를 맡아 보네. 창현 앞으로는 자주 그래야죠. 문익 (등을 토닥이며) 아껴 써. 창현 좋아하시는 거 보려고 열심히 하는 건데요. 문익 룸서비스 시킨 건 언제 오는 거야? 가지러 가는 건가? 창현 가져다줘요. 올라오면서 주문했으니까 좀 걸리겠죠. 응현, 호텔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문익 소주도 시킬 수 있나? 창현 시킬 수 있죠. 문익 호텔에서 시키면 비싸잖아. 창현 상관없… (웃으며) 네, 그럼 그건 그냥 일 층 로비에 편의점 있으니까 사 올게요. 문익 그럴래? 창현 네. 다녀올게요. 문익 여기 카드. 창현 됐어요. 제가 사 올게요. 창현, 나간다. 응현 그렇게 좋으세요? 문익 시늉. 응현 네? 문익 오빠는 뿌듯함이 윤활제잖아. 맞춰 줘야지. (소파에 벌러덩 누우며) 아이고- 그래도 우리 아들 잘났다! 응현 근데 엄마는 감기가 맞는 거죠? 문익 그렇겠지. 병원 아직 안 가봤어. 응현 네? 문익 너랑 수영하고 나서 더 심해졌어. 그니까 오빠가 호텔 수영장 있다고 말했는데 왜 말도 없이 바다를 즐겨. 응현 이미 일주일째 골골댔다면서요. 제주도 여행을 취소하고 병원에 갔어야죠. 문익 엄마가 병원 안 가겠다는데 그럼 억지로 끌고 가냐? 그리고 그럼 니 오빠가 실망했을 거 아냐. 응현 못하실 것도 없잖아요. 아빠 성깔에. 문익 약 먹으면 나을 거라 그래서 지켜보는 중이야. 좀 기다려. 정 못 버티겠으면 근무하다가도 전화 주면 데리러 가겠다고 했어. 응현 아빠 일하는 곳에서 그런 게 가능해요? 그렇게 자유롭지 않을 것 같은…. 문익 시끄러워. 응현 …엄마 성격에 아빠 일하는 시간대에 전화 안 할 텐데. 기어가더라도 혼자 가지. 문익 그만. 아빠 짜증 나려고 그래. 현선 추워… 추워…. 2장 해가 졌다. 소파에서 술 먹기 시작하는 문익, 창현, 응현. 건배. 셋 모두 앞으로 대화가 이어지는 도중 틈틈이 멈추지 않고 마신다. 아주 조금씩 취기가 오른다. 창현 좋죠?! 문익 응현아, 엄마 먹을 것 좀 덜어서 문 안에 넣어줘. 응현 엄마가 먹을 게 별로 없어요. 죄다 고기라. 창현 과일 담아. 과일. 샤인머스캣 좋잖아. 응현, 접시를 꺼내 오고 냉장고에서 꺼낸 과일을 담고 방문을 연다. 응현 엄마. 엄마. 샤인머스캣 드실래요? 현선 …. 응현 엄마. 현선 … 안 먹어…. 응현 엄마. 오늘 아무것도 못 먹었잖아요. 현선 물… 물…. 응현 아. 물. 응현, 거실에서 물을 떠서 가져다준다. 창현 여태 물도 안 드렸어? 응현 힘들면 부르세요. 현선 …. 응현, 문 닫지 않고 거실로 나온다. 창현 대체 어쩌다가 저런 거예요? 저 상태로 물에서 어떻게 논 건지 이해가 안 되네. 문익 요즘 계속 안 좋았어. 창현 자기관리를 너무 안 하는 거 아니에요? 문익 (땅콩 던져 먹으며) 집에서 쉬어야 했나? 응현 아빠랑 오빠가 계속 같이 와야 한다고 했잖아요. 창현 그럼 안 오냐? 이렇게 좋은 곳을 예약했는데. 이제 바쁘고 지은이 눈치 보여서 예전처럼 넷이 돌아다닐 수 없는데 힘쓴 거잖아. 응현 알았어…. 누가 뭐래. 문익 내가 봤을 땐 할머니 돌아가시고 힘들어서 그래. 이제 두 달 찼잖아. 응현 그런 것 같기도 해요. 3년을 긴장 상태로 매일 살았는데. 한계에 온 거겠죠. 창현 저 정도면 너 들어가서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 응현 나 잘살고 있어 혼자. 창현 아빠는 계속 일하시고, 엄마 심적으로나 물적으로나 무리하고 있는데, 너는 뭐 특별히 하는 것도 없잖아. 지금. 응현 오빠. 나도 생활이라는 게 있어. 이제 내 동네는 서울이 아니라 강원도라고. 창현 자식 도리를 너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단 생각은 안 드냐? 너만 자유로우면 다 괜찮아? 주변 안 봐? 응현 그럼 오빠가 서울로 와. 부모님 계신 곳으로. 창현 지은이랑 이제 막 살림 합쳤는데 무슨 헛소리야. 내가 혼자냐? 응현 그니까 합칠 때 서울로 오지. 창현 내가 평생 모은 돈, 일하는 곳 거리, 지은이 기준 이 세 개 다 맞는 데가 어딘 줄 알아? 인천 저 끝. 거기 하나 나오더라. 내가 고른 게 아니라, 조건이 거길 고른 거야. (짧은 사이) 넌 청약이 뭔지는 아냐? 문익 아무튼 할머니 일도 잘 마무리가 됐고, 이제 엄마는 건강만 잘하면 돼. 창현 (한숨) 그건 어떻게 된 거예요? 문익 뭐. 창현 할머니 부동산은 뭐 그렇게 됐고, 현금 분배가 이상하게 됐다면서요. 문익 말하자면 너무 긴데, 하여간 엄마 태도가 제일 난감했어. 창현 또 왜요. 문익 엄마가 자기는 다 필요 없다고 그러니까 나만 황당하잖아. 창현 아빠 힘드셨겠네요. 응현 엄마가 필요 없다고 하면 필요 없는 거 아닌가. 창현 엄마가 혼자냐? 그래서요? 이모들만 가져갔나요? 문익 내가 그렇게는 안 놔두지. 창현 역시 아버지! 아직 지혜로우셔. 보이냐? 아빠가 계셔서 엄마가 사는 거라니까. 응현 무슨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해요. 문익 우리끼리니까 하는 이야기야. 우리끼리니까. 응현 엄마 들리면 또 불편하게. 창현 그 돈 나중에 달라고나 하지 마라. 너 지금처럼 살면 무조건이다. 응현 내가 뭘…. 창현 그래서 말해봐. 니 인생을 이제 어쩔 셈이야? 응현 뭘…. 창현 뭐하면서 사느냐고. 하루 일과를. 평가하겠다는 게 아니라 일단 설명해 봐. 문익 에헤이. 부담 주지 마라 동생한테. 응현 걱정해서 물어보는 것도 아니잖아. 문익 (살피다) 오빠가 이런 데서 재워주니까 고맙다고 한 번 성의껏 해봐. 응현 그냥 나는…. 몰라. 엄마처럼은 살고 싶다. 창현 많이 망가졌구나. 내 동생. 응현 나? 창현 엄마처럼 사는 게 뭐가 좋냐. 이리 휘둘리고 저리 쫓아다니고. 평생을 가족들 무료로 간병이나 하고. 이번에 외할머니 돌아가시면서 겨우 종료된 거지. 아빠 면전에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너무하신 거예요. 우리 어렸을 때 엄마가 평일에는 대전에서 양가 할아버지들 집 왕래하면서 휠체어 두 개씩 끌고, 주말에는 아버지 반찬 챙긴다고 서울 왔다 갔다 하는 거 볼 때마다, 솔직히 내가 남자인 게 다행이더라. 문익 엄마가 자진해서 한 거야. 그때 양가에 추억이 얼마나 많다고 했는데. 창현 고모도 안 했잖아요. 남의 아빠 돌보는 게 편해요? 문익 그럼 너는, 너 바쁘고 응현이가 아빠 간호 못 하겠다. 그러면 고민 없이 요양원으로 보내버리겠다? 하하하. 사이. 문익 뭐야? 응현 아무튼 나는…. 나는…. 더 설명하기 싫어. 나에 대해서. 그거 하기 싫어서 서울에서 나온 건데. 문익 그래도 응현이는 엄마랑 다르지. 자기 직업이 있으니까. 창현 책 하나 냈다고 뭐. 그런 걸 누가 읽기는 하냐? 응현 인기 없어. 돈 안 돼. 아무도 몰라. 됐어? 창현 와 …. 이렇게 회피하는 거, 이거 딱 엄마잖아. 비슷한 줄만 알았는데 그냥 똑같네. 응현 당장 무슨 말을 해도 오빠는 만족 못 해. 모두가 오빠처럼 계획 세우고 준비된 정답이 있을 수 없다고. 참 웃겨. 오빠는 엄마를 말로는 딱하게 여기면서, 엄마처럼 사는 건 별로라고 깎아내리고 욕하네. 그건 엄마의 삶을 이해하는 게 아니야. 평가지. 창현 넌 여자고, 엄마랑 아예 똑같으니까, 이해하고 자시고 할 게 없겠지. 응현 분명하게 말하는데 내가 엄마를 가장 잘 이해하는 건 같은 성별이어서가 아니라, 이 집에서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노력한 사람이기 때문이야. 창현 그렇다고 네가 엄마한테 가장 잘한 사람도 아니지. 응현 … 오빠도 이제 용돈 좀 보낸다고…. 창현 용돈 좀? 용돈 조옴? 서른 먹고 처맞고 싶냐? 사이. 응현 저 담배 좀 피우고 올게요. 문익 딸! 임신 안 돼! 응현, 퇴장. 창현, 응현이 나간 걸 확인한다. 문익 그래. 말 나온 김에 너희 집들이 한 번 해야지. 창현 나중에요. 문익 지금쯤 정리가 다 된 거 아냐? 창현 문제가 좀 생겨서 아직 입주 못 했어요. 문익 무슨 문제? 무리해서 구한 집이라고, 저번에 계약금까지 냈다고 자랑했잖아. 창현 자랑은 무슨. 창현, 소주를 세 잔 연속 들이켠다. 문익, 그 속도에 맞춰서 세 잔 들이켠다. 사이. 창현 아빠. 저 여쭤볼 거 있어요. 문익 뭔데 그래. 창현 엄마랑 응현이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문익 그래. 창현 얼마 전에 장모님이랑 장인어른이 집 보러 오셨거든요. 문익 그래서? 창현 놀라시더라고요. 문익 왜. 창현 너무 오래됐고, 좁다고. 문익 아니, 아니, 젊은이 부부가 그 정도 시작이면 훌륭하지 뭘! 창현 미국 가서 살면 어떻겠냐 그러세요. 문익 미국? 창현 프랜차이즈 장사 뭐 있냐 그러시던데요. 안 그래도 지은이가 대학원 가고 싶고, 더 공부하고 싶다고 그러더니, 결국 부모님께 말했나 보더라고요. 문익 아니, 결혼했으면 그런 건 남편이랑 대화해야지. 누구 돈으로. 지은이 아버지가 아직 일을 하신댔나? 창현 네. 마취과 의사라 정년이 딱히 없으신가 봐요. 문익 …. 창현 자존심을 계속 긁어요. 사이. 문익 임신시켜. 창현 네? 문익 임신하고 일단 애 낳으면 부부는 하나가 돼. 창현 아니…. 문익 그땐 니 말을 더 믿고 싶게 될걸. 결국 부모는 늙어 사라진다는 걸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테니까. 창현 …. 문익 공부고 뭐고, 기억도 생각도 안 날걸. 눈앞에서 자기랑 똑같이 생긴 천사가 우는데 다른 걸 어떻게 보냐. 응현이 쟤도 좋아하는 남자만 생겨봐. 지금이야 뻐팅기지. 눈이 뒤집힌다고. 아무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네가 문제가 아니라는 소리야. 어깨 펴. 그딴 걸로 자존심 상하지 말고. 창현 …. 네. 문익, 한잔 들이켠다. 사이. 문익 (흥분하며) 하하하. 역시 넌 아직 멀었어 이 자식아. 자식아. 자식아! 결혼하든, 사업장에 직원이 몇 명이 늘든 간에 멀었다고. 이 자식아! 아빠는 인마. 네 나이 때 사장은 아니어도 내 밑에 사원이 100명이 넘었어. 그렇지. 그렇지. 여보! 얼른 나와 봐! 나와 보라고! 문익, 안방에서 아픈 현선을 질질 끌고 나온다. 문익 당신 아들이 지금 결혼이 아니라 입사를 했네! 하하하! 근데 대표가 장인어른! 나한테 다 물어봐! 어린애처럼! 어린애 처어러어어엄~! 문익, 아파서 쓰러진 현선의 손목을 질질 끌며 춤을 춘다. 응현, 들어온다. 응현 아빠. 왜 이래요. 미쳤어요? 뭐해! 아빠 말려! 창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문익의 팔을 잡아끈다. 문익, 저항하며 힘겨루기가 잠시 이어진다. 문익이 손찌검하려 팔을 올린다. 창현, 문익의 양팔을 꽉 잡은 채 차렷 자세가 되게 한 뒤 놔주지 않는다. 문익, 당혹감과 굴욕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창현 진정하세요. 사이. 놓아 준다. 문익, 밖으로 나가려 한다. 창현 담배 피우러 가시죠? 다녀오세요. 문익, 퇴장. 창현, 널브러진 현선을 조심스레 안고 침대로 옮긴다. 현선 추워…. 추워…. 창현 엄마. 현선 추워…. 추워…. 응현, 식탁에 앉아 마른세수를 한다. 사이. 3장 창현과 응현이 거실에 있다. 창현이 소주를 계속 들이켠다. 응현 술 잘 못 마시잖아. 창현 까불지 마. 응현 안주 좀 같이 먹든가. 창현 네가 봐도 나 살 많이 쪘냐? 응현 모르겠네. 창현 뺀 거야. 백까지 갔다가 약간. 응현 조절하면 되지…. 창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응현 그럼 뭐가 중요한데. 창현 과식할 때라고 지금은. 늘어. 계속 마시면. 계속 먹으면. 거래처랑 먹다 보면 늘고, 스트레스 풀다 보면 늘고. 응현 …새언니는 뭐라고 해? 창현 몰라. 응현 모른다니. 창현 같이 안 잔 지 오래됐다? 응현 그 잠이 그 잠을 말하는 게 맞아? 창현 둘 다야. 안 자줘 같이. 계속 피해. 욕구가 안 생긴대. 양심도 없는 년. 빈손으로 온 게 욕구가 웬 말. 응현 뭐 그러냐…. 창현 나도 아빠처럼 은퇴할 때 되면 빠지겠지. 욕심도 빠지고…. 허벅지도, 팔도 얇아지고…. 그럼, 볼품도 없어지려나. 응현 너무 오래 남았잖아. 창현 금방이야. 응현아. 금방이라고. 언제까지 부모님이랑 이렇게 다닐 수 있을 것 같냐. 사이. 창현 너희 동네에 탕후루는 있냐? 응현 갑자기 무슨 탕후루야…. 오빠 또 가게 바꿨어? 창현 관심도 없지? 벌써 2호점이다. 응현 대만 카스텔라…? 였잖아. 창현 그 중간에 세계 과자점도 있었어. 아, 도쿄 모찌도. 네가 멍할 동안 사람들은 그렇게 새로운 맛을 찾아서 헤매고 있지. 응현 오빠는 요리는 관심도 없고 하지도 못하면서, 유행 1년도 못 갈 거 뻔히 알면서도…. 권리금 받고 빠지는 것만 계속하네. 창현 뭐? 응현 따지고 보면…. 창업 초보자들 속이는 건 아니야? 창현 그 돈으로 이런 데 오는 거야. 응현 나는 오빠 일 조금도 모르지만…. 창현 속이는 거 아니고, 시장 흐름을 아는 거야. 지금껏 뺑이치면서 배운 게 그거고. 응현 …오빠가 나한테 했던 말이잖아. 오빠 같은 초보자들 속인다고. 창현 그런 사소한 거 다 따지고 눈치 봐가면 돈벌이 못 찾아. 생존하겠다는 각오만 명확해지면 그런 건 금방 사소해져. 응현 가장 닮기 싫어했잖아. 아빠의 그런 말습관. 조절할 수 없다면 그건 과식도 아니고…. 폭식이라고. 사이. 창현 네 눈에는 내가 그냥 처먹는 거 같지. 창현, 일어난다. 응현 오빠. 창현 아빠 들어오시고, 엄마 눈 뜨면, 나 일 때문에 바빠서 먼저 간다고 전해. 다른 말 하지 마. 문익, 들어와 소파에 앉는다. 창현, 안방으로 들어가 짐을 챙겨 나오려다, 현선 앞에 멈춘다. 창현 엄마. 긴장 좀 하고 살아요. 다 그렇게 살잖아요. 왜 본인만 삶에서 제쳐 둬요? 그런 식으로 살지 마세요. 안 그래도 신경 쓸 게 넘치는데, 엄마까지 그러지 말라고요. 이제 우리 겨우 잘살아 보려고 하잖아요. …엄마. 전화 안 받은 거 아니에요. 일할 때만 꺼놓는 거예요. 근데 일이 잘 안 끝나서…. 아버지가 잘 해줘요? 응현이는 자주 와요? 솔직히 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요. 더 악착같이 해서 몇 년 안에 근처로 이사 올게요. 저는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아시죠? 내일은 더 커질 거예요. 내일은요, 더 커질 거라고요. 상상도 못 하실 만큼. 창현, 거실로 나온다. 창현 응현아. 응현 응. 창현 사회에서 일인 분도 못하면서, 잘 사는 사람 광인 취급하지 마. 응현 …응. 창현 그딴 태도로는 평생 이런 데가 있는 줄도 모르고, 얼마나 달콤한 향기가 배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도, 또 그 잔향이 얼마나 끝내주는지도 모르고 살다 죽을걸. …하긴. 모르면 부러운 줄도 모른다는데. 근데 넌 이미 여기 들어왔고, 곧 하룻밤 자게 될 거고, 새벽에 목이 말라 잠에서 깨면 문득 저 큰 창을 보게 될 거고, 눈치채기도 전에 발이 먼저 옮겨지고, 처음 보는 시야로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거야.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참을 생각하겠지. 이런 데서 하는 생각은 질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말도 안 되는 고요함, 안정감, 편안함. 사치스러운 것들이 주는 풍족함. 만족감. 인상 깊지 않다고 스스로 되뇌어도 쉽지 않을걸. 못 해본 경험이라는 건 그런 거니까. 그렇게 다르다는 너도 계속 여기가 생각날 거야. 언젠가 소중한 사람이 생기면 데리고 오고 싶어지게 되겠지. 응현 …. 창현 돈은 그렇게도 좋은 거야. 창현, 퇴장. 문익 응현아. 응현 괜찮아요. 아빠. 문익 그게 아니라, 샤인머스캣 좀 먹자. 응현, 냉장고에서 샤인머스캣을 꺼내 온다. 문익 너도 좀 먹어. 응현 네. 문익 오빠도 내켜서 널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 거야. 응현 네. 문익 재미있을 수도 있는데 오빠는 너무 조급해. 차라리 아빠한테 말해볼래? 응현 뭘요? 문익 관심사 같은 거. 소재? 응현 뭐에 관해 쓸 거냐고요? 문익 그래. 네 입으로 들려줘 봐. 판단력이 있잖냐. 너도 아빠한테 다 물어봐. 응현 (짧은 사이) 진짜로 말해요? 문익 잘하면 용돈도 준다. (지갑을 꺼내 놓으며) 격려금. 사이. 응현 제목은 ‘가족과 나눈 이야기’입니다. 문익 오케이. 응현 아버지가 잠든 엄마의 어깨를 발등으로 걷어찼다. 문익 …. 응현 그 모습에 진저리 난 아들은 엄마의 비명을 뒤로한 채 밖으로 나가버리고, 딸은 아버지를 말리다 오래된 식탁의 들뜬 나무껍질에 목이 긁혀 피가 났다. 늘어진 흰 티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발길질은 계속됐다. 나가버린 아들이 부른 경찰이 곧 다섯이나 도착했고, 아버지의 핏발 선 눈이, 수치스러운 얼굴이 딸의 티셔츠처럼 물들었다. ‘이놈들. 나라 세금이 얼만데 이딴 일에 다섯이나 출동을 해? 다신 그러지 마. 다시는!’ 그 뒤로 아버지는 다시는 발등으로 엄마를 치지 않았다. 그때 딸이 알게 된 사실은, 아버지를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는 건, 아내의 경련도 아니고, 딸의 애원도 아니고, 자신보다 강한 존재라는 것. 그래야만 비로소 온순해진다는 것. 딸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아주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론 말할 수 없이 쓸쓸해졌다. 사이. 문익 제정신이냐? 응현 뭐가요. 문익 집에 펜 드는 사람 있으면 사생활이라는 게 없다더니. 응현 …. 문익 아빠는 다 갚았어! 그런 잘못 같은 거! 엄마랑 사이도 회복됐어. 그걸 이제 와서 꺼내는 저의가 뭐야! 응현 아직 나는 못 갚았어요. 문익 뭐가. 응현 나는 아직 한 대도 못 때렸다고요. 사이. 문익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응현 엄마는 단단한 사람이에요. 문익 나도 안다. 응현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버티고 있다고요. 아빠는 못 해요. 아빠는 가만히 있으면 죽을 테니까. 엄마는 잊은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겠죠. 여러 가지 이유로. 엄마가 지켜보지 않았다면 아빠 삶이 어떻게 됐을까요. 아빠는 혼자 밭을 다 갈았다고 생각하시잖아요. 울타리가 없었다면, 아빠는 땅이 끝나는 곳까지 곡괭이질만 하다 이미 죽었을 거예요. 왜 자꾸 무리해서 일을 찾는 거예요. 가을도 오고, 겨울도 오는데, 그렇게 죽도록 채우신 창고는 아직 열어 보지도 않으셨잖아요. 아까 엄마가 토할 때, 아빠가 등 문질러준 게 좋았대요. 엄마는 언제나 그런 걸 기다렸다고요. 사이. 문익 술 더 사 와야겠다. 문익, 현선의 침실로 들어가 외투를 챙겨 입는다. 현선에게 다가간다. 현선 추워…. 추워…. 문익 여보. 열 좀 볼까. 현선 추워…. 문익 병원 갈까? 병원 가고 싶어? 현선 안 가…. 안 가…. 문익 내일은 정말 업어서 가야겠다. 현선, 문익의 반대편으로 돌아눕는다. 문익 술 냄새 심해? 사이. 문익 여보. 현선 …. 문익 여보. 내일 묻고 싶은 게 있어. 용서 없이도 같이 살 수 있는 건가? 여보. 내 세상은 안 오는 거지? 밟고 지나간 듯 이렇게 가는 거지? 분명 뭘 오랫동안 서둘렀는데 왜 이리 고요할까. 처참하게 무능력하고…. 아쉬워…. 요즘 잠만 들면 당신이 내 발목을 끌어당기는 꿈을 꾸네. 나를 끌고 물속으로…. 당신은 오래 살고 싶나? 당신도 그러고 싶어? 당신은 뭐가 제일 두려워? 나는…. 나는…. 현선 (잠꼬대하듯) 내가 끌어당긴 게 아니야. 당신의 꿈이야. 정말 어리석어. 정말 어리석지…. 사이. 문익, 침실 문을 닫고 거실로 나온다. 문익 해 뜨면 엄마 데리고 병원 가자. 문익, 퇴장. 응현, 졸린 듯 눈을 비비며 안이 보이지 않는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사이. 잠시 뒤, 다시 문을 열고 나와 현선이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현선 옆에 몸을 던지듯 쓰러져 버린다. 3장 현선 아파…. 아파…. 응현 엄마? 119 부를까? 현선, 고개를 돌리며 거부한다. 현선 물 좀 줘…. 응현, 현선에게 물을 먹여 준다. 겨우 들이켠다. 현선 으으… 으으… 퉤… 퉤에…. 현선, 머그잔에 침을 뱉는다. 현선 헉…. 헉…. 헉…. 현선, 숨을 뜨겁게 연신 헐떡인다. 현선 나 살기 싫은가 봐. 으으… 으으… 퉤. 퉤에. 한심해…. 한심한 김현선…. 사이. 응현 낫게 해 달라고 빌었어? 현선 살게 해 달라고 빌었지…. 응현 …. 현선 침대에 누울래. 추워…. 응현이 머그잔을 받으려 하자, 현선이 응현과 멀리 놓고 눕는다. 현선 나가…. 나가서 자…. 응현 엄마. 현선 …. 응현 아까 그 일 때문에 더 심해지신 거죠. 아침에 제가 그렇게 해서…. 그렇죠? 문익,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온다. 말없이 소파로 걸어가 눕고 곧바로 잠이 든다. 응현 어떻게 들어갔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떻게 나왔는지 생생하니까 이상해요. 아무튼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분명 주변에 아무도 없었는데 어떻게 본 거예요? 그런 건 누가 미리 경고해 주긴 하는 거예요? 나중에 엄마가 죽으면 같이 죽을 것 같진 않은데, 어떻게 살 수 있을진 장담을 못 하겠어요. 하지만 내가 죽으면 엄마는 죽을 것 같아서. …그런 것도…. 누가 미리 경고를 해줄까요? 엄마가 날 만든 거 맞죠? 근데 왜 나한테는 엄마의 아량이 없을까요. 나는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사이. 현선 내일 대답할게…. 가서 자…. 응현 내일이요…. 긴 사이. 현선 엄마…. 응현 네? 현선 그때 엄마가 바다에서 절 건져주었을 때…. 참 고마웠어요. 응현 …. 현선 분명 밤이라 안 보였을 텐데, 어떻게 본 거예요? 그런 건 누가 미리 경고를 해주는 거예요? 다시는 못 보는 건가요. 기다려주면 안 돼요? 들어오지 마세요…. 들어가지 마요…. 사이. 응현 내일 대답할게요…. 현선, 부스럭부스럭 이불을 휘감는다. 응현 어제 하늘 되게 이뻤다는데 우리는 못 봤네…. 응현, 현선의 발을 정성껏 주무른다. 사이. 현선, 이불에서 나와 자세를 비교적 편히 눕는다. 응현 해 뜨는 거 아름답다. 보여요? 현선, 긴 숨을 내쉰다. 응현, 천천히 고개를 꾸벅이며 잠에 스며들려 한다. 현선 띄워 보내네. 저 멀리. 아주 멀리. 붙잡고 있던 것들. 스스로를 용서하여. 물길을 거스르는 듯하여도 머지않아. 이렇듯 얽혀 남아서. 같은 태양 안에 머물며. 서로의 파도를 견디며…. 현선, 천천히 잠이 든다. 응현, 고개가 떨구어지고 현선의 발을 꼭 쥔 채 이불 위로 포개진다. 아침 빛이 창을 타고 두 사람을 내리쬔다. 막.
  • 아무리 씻어도 소용없다…“문제는 채소 속 콕콕 박힌 ‘나노플라스틱’” 충격 보고서

    아무리 씻어도 소용없다…“문제는 채소 속 콕콕 박힌 ‘나노플라스틱’” 충격 보고서

    머리카락보다 수만 배 작은 나노 플라스틱이 식물의 자연 방어막을 뚫고 채소 내부까지 침투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들어간 플라스틱 입자는 아무리 씻어도 제거할 수 없어 식품 안전에 새로운 우려를 낳고 있다. 영국 플리머스대 연구팀이 무 실험을 통해 나노 플라스틱이 식물 내부로 침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고 지난 18일 미국 과학 전문지 스터디파인즈가 보도했다. 나노 플라스틱, 식물 방어막도 뚫고 들어가식물은 원래 자신을 보호하는 장치를 갖고 있다. 뿌리에는 ‘카스파리선’이라는 기름기 있는 띠가 있어서 나쁜 물질들이 식물의 물 운반 시스템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이 방어벽이 나노플라스틱 입자도 막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플리머스대 연구팀의 실험은 이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줬다. 연구팀은 무를 수경재배하면서 방사성 표지가 된 폴리스티렌 나노플라스틱이 든 물에 얇은 뿌리를 노출시켰다. 식용인 굵은 뿌리 부분과 잎은 이 물에 전혀 닿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이 부분에서 플라스틱이 발견된다면 식물 내부를 통해 나노플라스틱이 이동했다는 의미가 된다. 전체 플라스틱 노출량 1.1%, 식용 부분서 발견5일간 실험한 결과, 물속 플라스틱 입자의 4.4%가 식물과 결합했다. 이 중 65%는 얇은 뿌리 부분에 머물렀지만 25%는 사람이 먹는 살찐 뿌리 부분으로 이동했으며, 10%는 초록색 잎까지 도달했다. 이는 전체 플라스틱 노출량의 1.1%가 실제로 사람이 먹는 부분에 들어갔다는 의미다. 이런 입자들은 무의 표면이 아니라 내부에 박혀 있어서 아무리 문지르거나 껍질을 벗겨도 제거할 수 없다. 흐르는 물로 씻고 문지르고 껍질을 벗기는 기존 방법은 세균이나 농약 잔여물 제거에 여전히 효과가 있다. 그러나 나노플라스틱은 전혀 다르다. 일단 식물 내부로 한번 들어가면 아직 과학적으로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생물학적 경로를 거쳐 조직 깊숙이 스며든다. 식물에 나노플라스틱 축적 우려…추가 연구 필요연구진은 실험 결과를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실험에 쓰인 플라스틱 농도는 측정의 정확성을 위해 설정한 것으로, 실제 재배 환경보다 높았을 수 있다. 다만 토양이나 수경재배에서 나노플라스틱이 실제로 얼마나 존재하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이번 실험은 폴리스티렌 한 종류와 무 한 가지만으로 5일간 진행됐다는 제약이 있다. 연구진은 표면 오염을 완전히 제거하는 용액으로 뿌리를 씻었다고 했지만, 일부 플라스틱이 흡수되지 않고 표면에 부착됐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했다. 확실한 건 식물에게는 동물처럼 해로운 물질을 즉시 내보내는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농작물 안에 나노플라스틱이 쌓일 우려가 크다. 나노플라스틱과 미세플라스틱은 이미 흙과 물은 물론 사람의 혈액에서까지 검출되고 있다.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연구 중이지만, 식용 작물 내부에서 발견된다는 건 먹이사슬을 따라 어떻게 전파되는지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그렇다고 채소 씻기를 그만둘 필요는 없다. 세균과 화학 잔여물 제거에는 여전히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씻는 것만으론 이런 내부 오염은 막을 수 없다. 식품 속 나노플라스틱 해결책은 주방이 아니라 플라스틱 오염을 근본적으로 줄이는 데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세균·곰팡이 ‘득실득실’…달콤한 ‘이 과일’ 껍질째 먹다간 큰일, 왜

    세균·곰팡이 ‘득실득실’…달콤한 ‘이 과일’ 껍질째 먹다간 큰일, 왜

    코코넛을 따서 바로 마시는 행위가 건강에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외관상 신선해 보여도 저장 과정에서 세균이나 곰팡이 등에 오염될 수 있다는 것이다. 13일(현지시간) VN익스프레스에 따르면 코코넛은 수확 직후부터 무균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다. 특히 따뜻하고 습한 환경에서는 세균과 곰팡이가 빠르게 증식하며 껍질의 미세한 균열이나 유통 과정에서 내부로 침투할 수 있다. 이러한 오염은 외관상 드러나지 않아 주의가 필요하다. 앞서 덴마크의 한 60대 남성은 여행지에서 흔히 판매되는 껍질이 일부 제거된 코코넛을 산 뒤 냉장 보관을 하지 않고 주방 테이블에 방치했다. 이후 빨대로 코코넛 워터를 한 모금 마신 그는 아내에게 “이상한 맛이 난다”고 말한 뒤 코코넛을 버렸다. 그러나 섭취 약 3시간 뒤 이 남성에게는 갑작스러운 발한과 구토, 메스꺼움 증세가 나타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는 악화해 말이 어눌해지고 균형을 잃었으며 근육 경련과 비정상적인 움직임까지 동반됐다. 결국 그는 26시간 만에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숨졌다. 부검 결과 그의 기도에서는 ‘아르트리늄 사카리콜라(Arthrinium saccharicola)’라는 곰팡이가 자라고 있었다. 그가 마신 코코넛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동일한 곰팡이가 검출됐다. 이 곰팡이는 뇌 손상을 유발하는 독성 물질을 생성한다. 중국과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사탕수수에 이 곰팡이가 피어 사망한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당시 환자들도 구토와 설사 등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 무서운 것은 아직 이 곰팡이의 독성을 치료할 해독제는 없다는 점이다. 싱가포르의 의사 사무엘 초우드허리 박사는 “껍질이 일부 벗겨진 코코넛은 반드시 냉장 보관해야 한다”며 “유통기한도 일반 코코넛보다 훨씬 짧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코코넛 워터를 안전하게 섭취하기 위해서는 적절히 보관·처리된 제품을 선택하고, 가능하면 멸균·포장된 코코넛 워터를 마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 [길섶에서] 감자꽃이 피면

    [길섶에서] 감자꽃이 피면

    ‘햇’이라는 접두사가 감자만큼 잘 어울리는 것이 있을까. “햇감자” 하면 입안에 포슬포슬 감자 분이 날린다. 무슨 습벽인지 햇감자만 보면 사들이고 본다. 못난이 감자, 잘생긴 감자가 뒷베란다에 봉지봉지. 다 어쩔 셈인지. 유월이면 우리집 앞 감자밭에는 흰꽃이 활짝 피었다. 달 있는 초저녁에 할머니는 감자꽃을 꺾어 내셨다. “아가, 미안하네.” 일껏 핀 꽃을 감자알이 잘 영글라고 툭툭 분지르셨다. 아까워도 내놓아야 하는 것을 감자밭에서 알았다. 감자만 보면 쩨쩨하던 내 손이 커진다. 먹을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넘치게 삶고 본다. 그런데 이상하지. 숟가락으로 껍질을 긁어 굵은 소금에 사카린을 질러도 양은솥에 오달지게 눌어붙던 맛. 그 맛은 무얼 어찌해도 돌아오지 않는다. 유월마다 미궁에 빠지는 맛. 삶은 감자 소쿠리에 딸아이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이 밋밋한 것이 속깊이 감싸 줄 때가 있는데, 이 심심한 것이 허기를 뜨겁게 채워 줄 때가 있는데. 삼시 세끼 혼자 감자를 먹는다. 감자꽃이 달보다 밝았던 달밤도 먹는다. 두고 온 달밤으로 열두 번은 들락날락, 환하게 깊은 감자 먹는 밤. 황수정 논설실장
  • 폴리 사운드/홍성구[서울신문 2025 신춘문예 - 소설]

    폴리 사운드/홍성구[서울신문 2025 신춘문예 - 소설]

    텔레비전과 비디오가 결합된 제품이었다. 이름은 비디오 비전. 검고 매끈한 TV 수상기 밑에 VHS 투입구가 달린 모델이었다. VHS 투입구에 손을 넣었다 빼면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관문처럼 마구 펄럭였다. 나는 그게 마치 누구의 손짓 같아서 그 문이 금세 닫힐 것 같은 조바심에 손을 넣었다 뺐다 넣었다 뺐다, 반복했다. 하지만 매번 편지 한 통 없는 우편함처럼 미지의 그곳은 텅 빈 공백으로 열렸다 닫힐 뿐이었다. 비디오테이프를 밀어 넣으면 어딘가 멋진 곳으로 안내받을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집에는 어린이용 비디오테이프는커녕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는 불량·불법 비디오테이프 하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끈질기게 그 일을 멈추지 않았다. 집에서는 딱히 할 일이 없었으니까. 그날은 평소에 뽑혀 있던 케이블이 비디오 비전의 본체와 콘센트 사이에 연결돼 있었다. 미지의 세계 관람권인 비디오테이프는 없었지만, 입장권을 들고서 문 앞에서 돌아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TV 전원을 켰다. 리모컨을 든 나는 놀이공원 앞에 서 있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환해진 직사각 화면에는 기대와 다르게 회색의 담벼락이 펼쳐졌다. 황량한 공장의 경계를 드러내는 콘크리트 담. 공장 담벼락 같아서였을까. 소음이 들렸다. 치이이-익. 치이이—익. 11번으로 9번으로 7번으로 채널을 바꿔도 소용없었다. 방송이 송출되지 않는 낮 시간대였다. 실망을 금치 못한 나는 리모컨 버튼을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면서도 전원 버튼 근처는 누르지 않았다. 은밀한 일탈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색 소음이 진동하였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멍해져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들어 버렸다. 회색 소음과는 다른 소음을. 삐-------이. 삐—————————익. 회색 소음보다 높고 날카로운 소음이었다. 귀에 거슬려 TV를 끄려다 소음의 정체에 의문이 생겼다. 회색 소음은 회색 화면에 어울리는, 공중에 스크래치가 그어지는 소리였다. 그러나 높고 날카로운 소음은 회색 스크래치와 이질적이었다. 저 소음을 방송국에서 보낸 것일까. TV 스피커에 귀를 갖다 대고 나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TV 스피커에서 높고 날카로운 소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기가 귓가를 스치는 정도로 시작되는 데시벨은 금세 한여름 매미 떼의 데시벨로 거세지고는 했다. 나는 당연히 아버지와 누나도 소음에 시달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두 사람은 TV를 볼 때 별다른 말이나 반응이 없었다. 소음을 듣지 못하는 건 수리기사도 마찬가지였다. 평범하게 생긴, 그리 크지 않은 귀를 스피커에 갖다 댄 수리기사는 고개를 몇 번 갸웃했다. 수리기사의 고갯짓에 아버지는 그것 보라는 눈빛을 나에게 던졌다. 나는 초조해져서 열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매미 떼가 맹렬히 힘줄을 튕길 때 지금이라고 외쳤다. 수리기사는 평범한 귀를 다시 스피커에 밀착했고 아버지도 그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소음을 듣지 못했다. 아버지는 나를 예민한 아이로 치부하며 미안하다고 말했고, 수리기사는 공구함 한 번 열지 않았다며 출장비를 사양했다. 거실에 혼자 남은 나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매미의 합주를 들었다. 이렇듯 분명히 울리는 소리를 나만 듣는다는 게 답답하거나 억울하기보다는 어쩐지 서글펐다. 그때였을 것이다.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명백히 혼자라고 느꼈다. 사운드 디자이너라고 하면 고민 없이 부풀어 오른 질문들이 날아든다. 음악하세요, 아니 디자이너니까 미술 쪽인가. 사운드를 디자인화하나요, 디자인을 사운드화하나요. 청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공감각의 예술인가.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고요한 공중에서 날개를 퍼덕이는 잠자리를 몰래 잡아채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포획의 목적은 잠자리가 아니다. 잠자리의 소리다. 그물망에 든 잠자리를 조심히 빼서 사각의 채집통에 넣어 두고 귀를 연다. 잠자리의 날개끼리 충돌해서 나는 타닥타닥 소리. 그 소리는 점점 허물을 벗어 잠자리에서 탈피한다. 사운드 디자이너는 잠자리의 소리를 다른 무언가의 소리와 연결하는 사람이다. 대개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사람들은 다시 묻는다. 그러니까 대체 뭘 어떻게 한다는 거예요. 사실 뭘 어떻게 인위적으로 한다기보다는 사물에 있는 것을 튀어나오도록 하면 된다. 숨어 있는 물성이 드러나도록 상황을 마련하는 게 나의 일이다. 적막한 설산을 걸을 때는 굵은 소금이 뿌려진 바닥을 밟으며 밀가루 포대를 손으로 주무른다. 수풀이 바람에 휘날릴 때는 릴테이프 더미를 양손 사이에 놓고 비빈다. 중세 시대의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열릴 때는 콘크리트 벽돌들을 포개어 놓고 두 벽돌을 맷돌 돌리듯이 간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아니다. 있는 것을 끄집어내면 된다. 채집하고 발견하는 셈이다. 순서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채집하려면 발견이 우선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일은 채집이 먼저이다. 채집한 후에야 발견할 수 있다. 조선시대 사극에 매달려 있던 때였다. 그 작업은 현대에서는 접하기 힘든 소리의 연속이었다. 그중 가장 힘든 것은 활시위가 당겨지는 소리였다. 적을 물리치겠다는 일념하에서 적장을 향해 팽팽해진 활시위의 탄력과 긴장을 어떻게 해야 소리로 튀어나오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졌다. 활시위와 연결할 수 있는 사물이 떠오르지 않아 활 자체로 가능할지 시도해 봤다. 하지만 실제로 눈을 밟는 것보다 소금을 밟는 소리가 사람들 머릿속의 눈 발자국 소리에 더 가깝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수풀보다 릴테이프가 더 실감 나는 것이다. 활을 아무리 팽팽히 당겨도 소용없었다. 내가 당긴 활시위에서는 음률이 없는, 맥 빠진 거문고 줄 소리가 났다. 가죽가방과 고무장갑 따위를 비틀고 늘려도 소득은 없었다. 뭘, 그렇게 발길질당한 강아지마냥 낑낑대요? 고무장갑의 탄성 한계 때문에 경련을 일으키는 두 팔을 채아가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녹음과 믹싱 작업을 맡고 있는 채아는 내 입에서 난다는 소리를 자주 타박했다. 힘을 쓸 때나 뭔가에 몰두할 때나 밥을 먹을 때도 개 같다고 했다. 선배에게 개 같다니 참 맹랑한 말이지만, 나는 내가 소리를 낸다는 게 더 신경 쓰였다. 남의 소리는 그렇게 잘 들으면서 어떻게 자기 소리는 못 들을 수 있어요. 무슨 소리를 내냐고 반문했을 때, 채아는 내 직업적 소양이 의심된다며 따졌다. 가벼운 발길질이 아냐. 늘씬하게 얻어맞은 것 같아. 무심결에 또 어떤 소리를 냈을까. 궁금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금방이라도 숨 꼴딱거릴 것처럼 혀 내밀고 있지 말고 수분 보충 좀 해요. 선배를 계속 개 취급하는 못된 버르장머리에 대해 한마디 하려다가 채아가 건네는 맥주캔을 넙죽 받았다. 거절하기에는 맥주캔의 표면이 얼음장처럼 시원했다. 나는 모래가 쌓여 있는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게, 이럴 때는 백사장 같네. 나는 손으로 모래를 뒤적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모래 옆에는 나무 옆에는 대리석 옆에는 소금 바닥이 있었다. 왜요? 휴가 못 가는 삶이 처량해요? 채아가 자신의 맥주를 들고 옆에 앉았다. 채아는 엉뚱하게 넘겨짚는 구석이 있었지만, 캐묻지 않고 넘겨짚는 포즈를 취한다는 점에서 그리 나쁘지 않은 파트너였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맥주를 마셨다. 알코올의 독성이 빈속을 찔렀다. 불법을 저지른 듯한 짜릿함. 백사장이 아닌 모랫바닥에서라도 잠시 쉬고 싶었다. 나는 금세 침묵에 이르렀고 내 마음을 넘겨짚었는지 채아도 보조를 맞췄다. 창고라고 불리는 작업실에는 철가방, 문손잡이, 깡통, 톱, 바이올린 활, 구두, 로프, 용수철, 자동차 문짝이 나름의 질서 속에 존재했다. 스스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지만, 물성을 깨우는 힘에 연주하는 악기들. 악기들은 지휘자가 없다는 듯 고요했다. 소리에 민감한 사람에게 고요는 휴식 또는 죽음과 같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그러나 곧 수면의 문턱을 넘다 정강이가 쾅, 부딪혔다. 뭐야. 미안해요. 블루투스가 꺼진 줄 모르고 볼륨을 키웠네. 끌게요. 아니야, 끄지 마. 본능적으로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가가자 채아는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었다. 채아가 무안할 만큼 거친 손길로 스마트폰을 뺏어 들었다. 화면 속 영상에서 판다 한 마리가 죽순을 맛있게 뜯고 있었다. 선배도 얘 알아요? 선배가 알 정도면 푸바오가 인기긴 인긴가 보네. 나는 스마트폰을 던지듯이 채아에게 떠넘기고 진열장을 뒤적였다. 구석에 처박혀 있던 것을 찾아 꺼낼 때는 낮게 탄성이 배어 나왔다. 갑자기 죽도는 왜 꺼낸 거예요? 나는 채아의 말에는 신경 쓰지 않고 샷건마이크 앞에 섰다. 대나무로는 텅텅, 비어 있는 소리만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판다의 날카로운 이빨과 단단한 턱은 예상치 못한 대나무의 물성을 깨우고 있었다. 판다가 씹는 게 죽순이 아니라 겉과 속이 단단한 뼛조각처럼 느껴졌다. 죽도를 두어 번 바닥에 내려쳤다. 탁탁. 대나무를 다른 사물에 부딪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죽도를 감싸고 있는 줄을 칼로 끊어 버리고 붙어 있는 네 쪽의 대나무에 칼집을 내어 서로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떨어진 대나무들을 한 손에 감싸고 가볍게 비볐다. 부드득. 귀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죽도를 샷건마이크에 더 가까이 대고 온 힘을 다해 두 손으로 대나무들을 비볐다. 부드드드드드드득. 대나무에서 소리가 튀어 올랐고, 활시위를 당기는 팽팽한 팔뚝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물의 성질은 마찰에 의해 드러난다. 우리가 외부와 마찰을 빚을 때 나를 인식하는 것처럼. 소리를 발견한 쾌감에 대나무를 비비는 나의 팔뚝은 한껏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사극 작업이 끝나고 몇 개월 뒤에 스튜디오를 그만두었다. 사극은 흥행에 성공했고 입소문이 났는지 작업 물량이 컨베이어벨트처럼 이어졌다. 줄지어 운반되는 의뢰를 수하물로 적재하고 물품을 의뢰서에 맞게 포장한 후에 다시 컨베이어벨트로 출하하는 기계적인 시간이 계속됐다. 과로나 질식이 원인은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소리를 단순 제조하는 업자가 되리라는 두려움이 찾아들었다. 납품 기한을 맞추기 위해 기존에 녹음해 둔 파일들을 대강 믹싱하는 일들이 빈번해졌다. 나는 발자국 소리에도 캐릭터가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인을 만나러 달리는 그리움이 실감되도록 수십 번을 달리고 또 달리고, 도회적인 세련 아찔한 피로 흔들리는 일상이 전해지도록 하이힐을 신고 균형을 잡던 시간이 떠올랐다. 당분간 멈춰야 했다. 휴가를 가랬더니 휴식에 들어가네. 채아는 내가 내민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물끄러미 보았다. 채아의 눈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머뭇거림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뭔가를 넘겨짚었는지 다가와서는 자신의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쌌다. 나는 계획하지 않고 쉬는 계획을 세웠다. 눈이 감길 때 자고 눈이 떠질 때 일어나고 때가 이르거나 늦게 식사하고 술을 가볍게 또는 취하도록 마시고 느릿느릿 산책하고 레고 블록으로 별이 빛나는 밤을 조립했다. 집 근처를 돌거나 여행을 떠나서 풀벌레, 지하 터널, 경운기, 야적장, 항만, 오일장, 밤바다에 붐마이크를 갖다 댔다. 녹음 파일들을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았고, 녹음한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시간은 왜곡 없이 흘렀고 나는 날짜와 요일 감각을 잃었다. 일상에 파동이 없었다. 파동이 없으므로 외부에 닿는 주파수도 없을 터였다. 송신하지 않고 수신하지 않는 생활. 나는 자유로이 고립되었다고 느꼈다. 누나에게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돌아가셨다. 누나의 말에 잠시 정적이 돌았다. 누나와는 일 년에 한 번 연락할까 말까 하는 사이였으므로 액정 화면에 뜬 두 글자에 나는 이미 예감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한 말은 고작 알겠다, 였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조촐했다. 친척은 남보다 못한 사람들이어서 코빼기도 볼 수 없었고, 아버지가 은퇴한 지 십여 년쯤 지나서 대표이사가 보내는 화환조차 없었다. 나는 주로 국화가 장식된 제단 옆에 앉아 있었고, 한 번쯤 봤거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과 맞절했다. 둘째 날 오후, 누나가 식탁으로 나를 불렀다. 주변 식장은 조문객들로 붐볐지만 장례 도우미를 제외하고는 누나와 나만 식장을 지키고 있었다. 누나는 대뜸 앉으라고 말했다. 누나는 군말하는 법 없이 할 말만 하는 사람이므로 나는 군말 없이 누나와 마주 앉았다. 일 미터쯤의 간격조차 어색한 사이였지만 누나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기억 속 어느 날에는 없었을 주름과 기미가 보여 열 살의 터울이 새삼스러웠다. 미처 상의하지 못한 장례 절차에 대해 말하겠거니 생각하고 있던 내게 누나는 구겨진 편지 봉투를 내밀었다. 반으로 접힌 편지 봉투는 살짝 불룩했다. 너한테 필요할 거다. 누나의 단정에 나는 편지 봉투에 든 것을 꺼냈고,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카세트테이프였다. 겉면 라벨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고 손때와 볼펜 얼룩이 낀 낡은 상태였다. 카세트테이프를 보자마자 나는 그게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었고, 누나의 말처럼 내게 필요하리란 것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 나는 일산으로 이사했다.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지 않은 땅에 창고가 딸린 농가주택이 비어 있었다. 창고를 작업실로 쓰면 되겠다는 심산에 덜컥 결정을 내렸다. 파동 없는 삶의 관성에서 벗어난 것이다. 벗어나려고 했다기보다는 벗어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죽음이 빚은 진동이 나를 다시 작업실로 이끌었다. 나는 일산의 공사장, 분리수거장, 고물상을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물건들은 모두 채집하였다. 농기구와 농약, 비료 포대 등이 있었을 창고는 각목, 글러브, 밥솥, 스케이트보드, LP, 유리컵, 프라이팬, 사기그릇, 고무 팩 등이 있는 작업실로 탈바꿈되었다. 작업실의 윤곽이 자리잡힌 날, 양쪽에 테이프 플레이어가 장착된 더블 데크 카세트 플레이어를 진열장에서 꺼냈다.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발견한 괜찮은 매물이었다. 예상외로 쓸 일이 없다가 이사 오기 전에 쓰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 편지 봉투에 담긴 테이프가 자리를 바꿔 플레이어에 담겼다. 달칵, 버튼이 눌리면서 테이프는 돌아가고 슥삭슥삭, 과도에 사과 껍질이 벗겨지고 있었다. 큼큼. 부스럭 부스럭. 이게 맞나. 탕. 텅. 아, 아. 아버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통기타를 쳤다. 장롱 위에 뿌연 먼지를 덮어쓴 커버에 담겨 있던 통기타이리라. 나는 아버지가 통기타를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어린 나는 연주되지 않고 진열되지 않은 채 장롱 위에 방치된 통기타의 존재성이 의아했다. 통기타의 쓸모를 알 수 없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연주가 녹음된 테이프를 들으면서 나는 통기타는 방치되었던 것이 아니라 안치되었던 것이 아닌가 짐작하였다. 가슴에 묻어 둔 열망이 장롱 위에 놓이는 방식으로 드러난 게 아닐까. 눈에 보이면 마음이 근질거리고 눈에 안 보이면 마음이 서걱여서 대강의 형태로 보이게 놓아둔 것은 아닌지. 동그란 스피커에서 가리워진 길이 울려 퍼졌다. 아버지의 노래는 후렴에 이르러 그대를 애타게 불렀지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려 길을 터 줄 그대를 더 호출하지 못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는 여기까지 들었다. 나는 마음먹은 대로 더 듣기로 한다. 여보세요. 아버지의 음성이 저랬구나. 아버지가 스피커에서 멀리 떨어졌는지 통화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다. 1분도 지나지 않아 통화는 끝났고 아버지는 다시 통기타를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줄 한 번 튕기지 못하고 통기타를 놓쳤다.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통기타는 소음을 일으켰지만, 뒤이어 터져 나온 소리에 소음은 배경음으로 밀려났다. 격렬한 기침 소리. 콜록콜록, 쿨룩쿨룩 따위로는 표현할 수 없는 소리가 진동하였다. 숨이 차고 흉통에 경련하는 병색이 선명하게 들렸다. 아버지의 생전에는 들은 기억이 없는 소리였다. 아버지의 기타 소리를 들었다면 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아버지는 다감하지 않았고 나는 살갑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나는 왜 그리 아버지의 소리에 둔감했을까. 일시 멈춤 버튼을 눌렀다. A면인지 B면인지 모를 면이 끝났고, A면인지 B면인지 모를 면이 남았다. 휴지(休止)가 필요했다. 커피를 끓이러 싱크대 쪽으로 향하는데, 양은 주전자가 발에 차여 시끄러웠다. 주전자가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째그랑 일을 벌여 놓고, 뭐하는 거야 째쟁쨍. 작업실에 쌓인 도구들이 매립지에 버려진 고물처럼 낡아 보였다. 이대로 뒀다가는 달걀 썩는 듯한 매립지 냄새가 진동할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아, 이게 누구신가요? 나를 헌신짝으로 만든 그분 아닌가요? 채아와 거의 일 년 만의 통화였다. 가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서로 생존을 확인하는 용도일 뿐이었다. 버려지긴 누가 버려져. 내가 도망친 거지. 그럼, 멀리 가버릴 것이지 웬일로 연락했어요? 나, 얼마 전에 일산으로 이사했어. 일산? 왜? 거기로 왜 갔는데요? 이제는 잭을 다시 만나 볼까 하고. 누구요? 잭? 아, 난 또 누구라고. 잭 폴리? 내 말뜻을 알아들은 채아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이제는 도망가지 말아요. 나는 그럴 일 없을 거라고 답했다. 앞으로는 도망가지 않겠다는 것, 그것이 채아에게 연락한 첫 번째 이유였다. 채아에게 알리지 않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 또 프리하게 때려치우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 두 번째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일감 때문이었다. 나는 일을 할 때 의뢰인과의 소통은 채아에게 맡겼었다. 소리만 잘 만들면 그만이라는 게 대외적인 사유였지만, 인맥이라든지 비즈니스적 관계에 반응하는 알레르기 때문이었다. 채아는 메신저로서 역할을 잘했고 사교적이어서 업계 관계자들과 친분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때가 묻은 것인지, 생계의 절박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채아를 통하면 일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다행스럽게 채아는 나를 넘겨짚었다. 채아의 주선으로 맡은 첫 복귀작은 돌침대 광고였다. 별 다섯 개가 돌침대에 박히는 효과음을 내 주세요. 광고 제작사 측에서 보내 준 영상에 등장한 돌침대 사장은 이마에 별 다섯 개를 달고 손가락 다섯 개를 좍 펴고 있었다. 별이 돌침대에 박히는 일은 당연히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사람들의 관념에 있을 법한 소리를 뽑아내야 했다. 별이라는 거대 물질이 흔들림 없이 단단한 돌침대와 부딪치는 상황이었다. 자동차 문짝을 해머로 치고 외날의 서양톱을 바이올린 활로 켜서 고음부를 녹음했고, 샌드백에 아령을 두들기고 대리석 바닥에 모래주머니를 떨어뜨려서 저음부를 녹음했다. 녹음된 고음과 저음을 믹싱하니 별이 우주에서 날아와 돌에 꽂히는 듯한 효과음이 완성되었다. 광고는 마케팅 비용의 한계로 공중파에서는 송출되지 못하고 케이블TV의 프리미엄 시간대가 아닌 아침과 낮에 방영되었다. 하지만 빨간 별 다섯 개를 이마에 박은 돌침대 사장이 인터넷상의 밈이 되어 제품의 매출이 대폭 올랐다. 그 덕분에 돌침대 하나가 작업실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광고 이후로 어린이 애니메이션과 단막극 등의 의뢰가 들어왔고, 지루하거나 지치지 않을 정도의 딱 알맞은 속도로 작업이 이어졌다. 내게 맡겨지는 작업이 폭설로 쌓이거나 진눈깨비로 흩날리지 않고 사람들이 오가는 길의 잔설로 덮이던 즈음의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스팸이겠거니 무시하려는데, 부재중 통화가 2건 찍히고도 벨은 멈추지 않았다. 광고성 전화라고 하기에는 상도덕이 없다고 할 정도의 집요함이었다. 보이스 피싱도 이렇게 한 번호를 공략하지 않을 텐데. 집 나간 가족을 찾는 연락인가. 죄송합니다. 이채아 디자이너님이 이렇게 해야 받으실 거라고 하셔서. 젊은 여자는 사과부터 했다. 문자는 언제 확인할지 모르니 받을 때까지 전화를 걸라고 하는 채아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그럼, 채아를 통해 연락하면 되지 않나. 회장님께서 직접 연락드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회장이라는 말에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요새는 낯 모르는 아무 행인에게 선생님이라고 한다는데, 회장님이야 등산회, 친목회 등 각종 모임으로 인해 길거리에 널린 직위가 된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여자의 절제된 말투와 주변의 정제된 소음이 여자가 말하는 회장이 TV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던 회장을 지칭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하필, 왜 저인가요. 회장님은 사극 마니아이십니다. 사극이라면 영화든 드라마든 가리지 않는 회장이 내가 디자인한 활 소리에 감탄했고, 수소문한 끝에 내가 일하던 스튜디오를 알아내고 채아를 통해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사연의 개연성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있을 만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회장이 의뢰한 작업은 수긍하기 어려웠다. 회장이 투자하는 사극 영화에 사운드를 디자인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면 금세 납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회장은 사극과 관련이 없고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될 만한 사운드를 디자인하기를 바랐다. 작업은 간단했고 받는 금액은 과도했다. 이 정도의 일로 그 정도의 돈을 받는 건 직업윤리에 어긋나는 일 아닌가. 뭔가 대단한 꿍꿍이가 있지 않고서야 그런 제안을 할 리가 없을 텐데.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 상상력이 많이 필요할 겁니다. 회장 비서의 말은 곧이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몇 차례 거절하다가 일을 맡기로 했다. 결국 회장이 거부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액수가 아니었다. 회장은 왜 그렇게 큰돈을 들여서까지 이 작업을 성사하려는 것일까. 회장에게 필요한 소리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 게 문제였다. 영상은 3분 30초 정도로 짧았다. 그것은 20대 초반의 여자가 자신의 일상을 기록한 브이로그처럼 보였는데, 별다른 촬영이나 편집 기술이 동원되지 않은 평범한 영상이었다. 여자의 브이로그는 시종일관 무성(無聲)으로 진행되었다.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촬영할 때 음소거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었을 것이다. 소거된 음(音)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이었다. 문이 열리고 닫히고 아이섀도 브러시가 화장대에 떨어지고 헤어드라이어에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옷장 속 옷을 뒤적거리다 여러 벌에서 한 벌을 꺼내는. 실감 나게 소리를 입히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였고, 도대체 어디에서 상상력을 펼쳐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반나절 만에 작업을 끝냈고 바로 보내기가 민망해 이틀 묵혔다가 보냈다. 소리가 빈 부분이 있다고 하십니다. 비서의 말에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소리가 비어 있다? 알맹이가 드문 과자 봉지를 질소로 과포장했다는 비난처럼 들렸다. 사실, 과포장이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다. 비서를 통한 회장의 의사는 내가 과포장하는 성의조차 없이 볼품없고 납작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화가 났다. 화가 나지 않는다면 아티스트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울 만한 도발이었다. 몇 번이나 비서에게 연락해서 계약금을 돌려주려고 했다. 그러나 이대로 그만두는 건 어딘지 모르게 찜찜했다. 회장의 말은 자존심을 긁었지만, 작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마음을 돌려놨다. 다른 급한 작업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이 일을 끝내기로 했다. 브이로그를 여러 번 돌려 봤다.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심정으로 세부를 살폈다. 내가 놓친 게 무엇일까에 초점을 맞췄지만, 어디가 비어 있다는 것인지 그 공백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영상에서 일어나는 충돌, 마찰 등의 물리 작용에는 그에 합당한 소리-내 판단으로는 그렇다-가 들렸다. 회장은 인식하는데 나는 인식하지 못하는 소리는 무엇일까. 내가 영상을 보고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소리는 화면 밖에서?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나 곧 주저앉았다. 무성으로 촬영된 영상의 화면 밖 소리를 듣는 게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회장은 무엇을 지적한 걸까. 혹시 비어 있다는 것은 있어야 할 소리가 없다는 게 아니라 소리에 부족함이 있다는 것 아닐까. 영상 속 여자, 누굽니까? 대뜸 던진 말에 비서는 평소와 다르게 뜸을 들였다. 질문하지 않는 데에 동의하신 것 아니었나요? 그랬다. 계약서에 있던 내용이다. 그랬죠.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어요. 제 소리가 실감 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소리의 주체를 모르고 만들었는데 소리에 어떻게 실감이 있겠어요. 그렇다고 해도 회장님의 뜻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빈 소리를 메꿀 방법은 없겠죠.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틀 후에 비서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내 질문에 대한 회장 측의 답은 이랬다. 그녀는 수백 개의 딤플로 뒤덮인 골프공 같습니다. 겉은 매끄러우면서 울퉁불퉁합니다. 속은 타이어를 만드는 고무처럼 질기고 튼튼합니다. 그녀는 가볍지만 단단합니다. 간단히 한 손에 올릴 수 있지만 그 세계는 견고해서 함부로 부술 수 없습니다. 그녀의 본질은 공이어서 굴릴 수 있고 던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닥에 부딪혀도 농구공처럼 통통 튀기지는 않습니다. 드라이버를 풀 스윙하면 그녀는 멀어집니다. 드라이버와 마찰을 일으키고 그 반발력으로 멀어지는 그녀는 딤플의 수만큼 더 멀리 날아갑니다. 수많은 딤플로 비거리는 늘어납니다. 주인공을 알고 싶다는데 웬 골프공 타령이람. 초보자를 위한 골프 교본도 아니고 무슨 저의로 알쏭달쏭하게 의미를 엮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계약서 조항을 어긴 데 대한 장난성 조롱으로 읽혔다. 그러나 몇 번씩 읽으면서 드는 의문이 있었다. 그녀는 왜 공일까. 많고 많은 공 중에서 왜 하필 골프공일까. 골프공을 뒤덮고 있다는 딤플이 무엇인지 찾아봤다. 딤플은 골프공 표면에 오목하게 파인 홈으로 일반적으로 골프공에는 300~500개의 딤플이 파여 있다. 드라이버 스윙으로 날아가는 골프공에는 공기 저항이 생기는데, 공기 저항은 골프공 앞뒤 표면의 압력 차에 의해 발생한다. 이때 딤플은 주위에 작은 회오리를 일으키고 이로 인해 공기가 뒤섞여 공 뒤쪽 압력이 떨어지지 않아 비거리를 늘린다. 흠집이 난 골프공의 비거리가 늘어난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나서 골프공에 흠집을 내어 사용한 것이 딤플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골프공의 겉과 속. 가벼움과 단단함. 딤플과 비거리. 비로소 나는 비서의 말에 동의할 수 있었다. 상상력이 필요했다. 나는 그녀 캐릭터에 집중했다. 골프공 같은 그녀를 수없이 떠올렸다. 작지만 단단하고 가볍지만 통통 튀지 않는. 캐릭터가 머릿속에 그려지자 그녀에게 합당한 소리가 튀어나오는 듯했다. 그러나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입에서 계속 딤플이 맴돌았다. 딤플은 보조개라는 뜻이 있지만 외모의 특징을 표현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흠집이 많다는 뜻일까. 하지만 딤플은 비거리를 늘린다고 했으므로 결함의 의미로 쓰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목하게 파인 흠집이 결함이 아니라면, 떠오르는 단어는 하나밖에 없었다. 상처. 나는 상처의 비거리를 생각했다. 그녀는 문을 (힘없이 덜컥 탁) 여닫으며 방에 들어선다. 암막 커튼이 처진 방에 (딸깍) 빛을 부른다. 그녀의 손이 화장대 의자를 (그윽) 끌어당기고 다른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 흔들린다. 초점 없는 화면이 360도로 돌아가고-슬픔이 블랙홀로 빠져드는 것 같다-스마트폰을 (드득) 거치대에 고정시키고 다시 돌아온 화면에서 수건이 (스르르) 풀리면서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이 보인다. 그녀는 화장대의 거울을 응시하다가-그녀의 얼굴은 뒤통수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헤어드라이어 버튼을 (틱탁) 누른다. (경쾌함 없이 심란하고 무거운 위이잉) 헤어드라이어는 돌아가고 그녀의 손길에 머리카락이 부서진다. 이윽고 헤어드라이어의 작동은 (탁) 멈추고 상반신을 거울 쪽으로 수그린 그녀의 손길이 분주하다. 그러다가 (툭) 아이섀도 브러시가 화장대에 떨어진다. 그녀는 브러시를 집다가 다시 (툭) 떨군다. 화장을 멈춘 그녀는 뭔가를 결심한 듯 (드윽) 의자에서 일어나 스마트폰을 (트특) 거치대에서 뽑아 손에 든다. 옷장을 (탕) 열고 (드르륵) 옷을 휘적이다가 고른 하나를 침대에 (툭) 던져 놓는다. 나는 그녀의 영상에 소리를 입혔고 소리에 그녀의 상처가 묻어나도록 노력하였다. 볼륨과 톤을 조정하여 모든 음은 낮고 둔탁하였다. 그녀가 찍은 영상에 대한 작업은 끝났지만, 작업이 모두 끝나지는 않았다. 회장 측에서 보낸 파일에는 부가 영상이 있었다. CH 02 2023/10/30 11:27:11 그녀가 잔디밭 위 돌길을 걷는다. CH 01 2023/10/30 11:27:15 ~ 11:28:07 그녀가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CCTV 화면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일 듯한 장면이었다. 그런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나는 CCTV 화면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소리가 있지 않을까, 궁리하였다. 특히, 대문의 화면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번 채널의 카메라에서 그녀는 잠깐 나타났다가 대문을 열고 나간 뒤로 볼 수 없다. 대문 위에 포치가 있어 그녀는 흔적 없이 사라진 것 같다. 여기에서는 그녀의 멀어지는 발소리만 남게 될까. 1분이 채 되지 않는 마지막 부분을 돌리고 또 돌려봤다. 그러다가 영상이 끝나기 몇 초 앞두고 그녀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온 건 작업을 마친 지 2주가 지나서였다. 이번에는 비서를 통하지 않고 직접 나와 통화하였다. 회장은 정중하게 집으로 초대하면서 감사의 의미임을 분명히 했다. 회장 집 대문 앞에 도착한 나는 벨을 누르려다가 경사진 이면도로로 내려섰다. 그러고는 몇 발짝 걸은 후에 뒤를 돌아 위를 올려다봤다. ㄱ자 형태 집의 가로획에 해당하는 곳 벽면에 CCTV가 부착되어 있었다. 노트북으로 봤던 1번 채널 화면의 각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CCTV 쪽에 고정한 시선을 아래로 내리는데, 옆으로 그녀의 멀어지는 그림자가 보이는 듯했다. 해의 시선이 거둬지는 시각이었다. 나는 그녀를 배웅하듯이 잠시 서서 그녀의 비거리가 얼마쯤이었을지 생각했다. 2번 채널 화면에서 그녀가 걷던 잔디밭 위 돌길의 끝에 현관문이 있었다. 일하는 사람의 안내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섰다. 회랑 같은 널따란 복도의 끝 오른편에 낮은 계단이 놓여 있었다. 아래로 깊고 편평하게 펼쳐지는 공간이 높은 층고와 어우러져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느낌을 자아냈다. 정면으로 보이는 통유리창을 왼편에 둔 소파에 회장이 앉아 있었다. 회장은 나를 통유리창을 마주 보고 있는 소파에 앉게 했다. 벨로드미코프, 좋아하시나요? 꽤 긴장했던 탓인지 실내에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회장의 말로 깨달을 수 있었다. 언젠가 들어 본 적 있는 운율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클래식에는 문외한에 가깝습니다. 회장은 의외라는 듯 팔걸이에 올려 둔 손을 턱에 대고 입을 오므렸다. 입 주변의 주름이 엷게 도드라져 보였다. 그런가요? 나는 벨로드미코프를 들으려고 저런 짓도 한 사람이오. 회장은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정원의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전봇대가 서 있었다. 나만을 위한 전봇대를 설치한 거요. 공동 전봇대는 남들과 전기를 공유하는 탓에 아무리 좋은 오디오에서도 이런저런 노이즈가 들리길래 정원에다 저렇게 세워 놨어요. 그랬더니 벨로드미코프가 내 앞에서 연주하는 것 같더구려. 화구 박스가 매립된 벽난로 옆에 오디오, 앰프, 스피커가 양쪽으로 놓여 있었다. 얼핏 봐도 고가의 장비임을 눈치채게 하는 것들이었다. 회장은 오디오와 벨로드미코프에 관한 말을 늘어놓았다. 사운드에 대한 회장의 마니아적 열성은 순수한 애호와 성공한 자의 과시 사이를 오고 가는 듯했다. 어색함을 눅이는 커피가 잔 바닥에 엷은 띠를 남기고 있을 즈음 회장은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그러나 나는 급한 작업이 있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의뢰인을 이런 식으로 만나는 게 나에게는 예외적인 일이었고, 차 한잔 마시는 정도가 예외의 한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회장은 이번 초대의 메인을 거절하면 어떡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고 나서 사업가답게 상대방이 거절하기 힘들도록 다시 제안하였다. 그럼, 식사 후 대접하려던 위스키 한 잔쯤 구경하시는 게 어때요. 과실향이 은은히 퍼지다가 끝에 스모키향이 감도는 위스키였다. 회장은 위스키 애호가이기도 한 듯했다. 위스키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설파하면서 자신만의 리듬으로 위스키를 마셨다. 어느덧 회장은 세 번째 잔에 접어들었고 내 위스키 잔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마지막 화면의 철 덜그럭거리는 소리, 덜그럭대다 쿵쿵거리는 소리, 그건 뭡니까? 굳게 닫혀 있던 가게 문에 철제 셔터가 열릴 때처럼 회장의 표정이 빗장을 푼 듯했다. 거래와 계약으로 묶여 있는 관계성을 술이 허물어뜨렸는지 말투도 다소 부드러워졌다. 마지막 영상 속의 여자는 대문을 나서는데, 화면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영상의 49초 지점에서 그녀가 나타납니다. 그림자로 나타난 그녀는 3초 뒤 모습을 감춥니다. 대문을 열고 나가는데 2초, 대문에서 CCTV가 보이는 지점까지 3초, 그림자로 보이는 부분이 3초, 영상의 총길이가 52초니까 그녀는 대문 앞에서 44초를 머물렀을 겁니다. 회장은 들고 있던 위스키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유리들이 따깍, 울렸다. 그 머무름은 머뭇거림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멀리 떠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아마 미련이 조금 남았겠죠. 대문을 손으로, 발로, 툭툭, 그래서 덜그럭거리고 쿵쿵거리지 않았을까요. 회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곧 느슨해진 상반신을 바로잡았다. 집의 창고를 수리하는 날이었소. 대문 앞에 시멘트 가루가 떨어져 있길래 인부 하나가 부주의했구나, 생각했지. 그런데 대문에 누가 시멘트 묻은 발로 찬 것 같은 자국이 있었소. 그것도 인부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업체 사장을 나무란 기억이 나오. 그 애의 흔적일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했소. 냉정히 떠난 줄 알았지. 머뭇거렸을 줄은. 이제부터 그 애가 집을 떠나기 전에 미련이 남아 머뭇거렸다고 생각할 거요. 그래야 나 자신을 더 나무랄 수 있을 거 아니오. 나는 소리에 예민한 사람이오. 하지만 그 애가 떠날 때까지,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는 그 애의 소리를 듣지 못했소. 마지막 위스키 잔은 다 비워지지 않았다. 회장 집을 나서려고 할 때, 각얼음들이 녹으면서 달그락. 달그락. 천장 높은 거실을 울렸다. 아버지가 남긴 카세트테이프의 A면인지 B면인지 모를 면을 들은 다음날, A면인지 B면인지 모를 면의 다른 면을 들었다. 테이프에는 아무것도 녹음되지 않은 듯 한동안 테이프 감기는 소리만 들렸다. 그러다가 의외의 인물이 등장했다. 아버지, 지금 뭐하세요. 누나였다. 녹음하면 들릴까 해서. 아들내미 예민한 거 하루 이틀이에요. 걔가 지금 시위하는 거라니까요. 자기만 힘든 줄 아나. 그래도 혹시 모르잖니. 아버지와 누나의 대화는 거기에서 끝났다. 다시 테이프 감기는 소리만 들렸다. 아버지는 TV 스피커에 카세트를 대고 TV에서 나는지 모를 소리를 녹음한 것이다. 나에게 들렸던 TV 소음을 아버지와 누나는 듣지 못했다. 당시 인기 TV 프로그램에서 10대만 들을 수 있는 고주파 영역의 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만 들을 수 있었구나, 고개를 끄덕이다가 열아홉 살인 누나는 왜 못 듣나, 의아했다. TV 스피커에서 나오는 고주파 소음을 나만 들은 것일까, 아니면 아버지와 누나의 생각처럼 나의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 환청이 들린 것일까. 나는 그때도 지금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왜 하필 그날 이전에는 들리지 않던 소음이 그날부터 들렸을까. 그날은 어머니가 영영 집을 떠난 날이다. 나는 마치 들을 수 있기라도 한 듯 카세트 플레이어의 스피커에 귀를 가까이 댄다.
  • [나태주의 풀꽃 편지] 삶은 달걀인가?

    [나태주의 풀꽃 편지] 삶은 달걀인가?

    오래전 일이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생전 강론 시간에 이런 농담을 하신 것을 기억한다. “삶은 달걀이다.” 아마도 여행 중에 기차 안에서 달걀이며 군입거리를 파는 홍익회 직원들의 소리를 듣고 문득 그런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어쩌면 추기경께서도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던 차에 그 말이 들렸기 때문에 연결 지어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다. 물론 이것은 추기경님이 농담 삼아 하신 말씀이다. 과연 우리네 인생, ‘삶’은 뜨거운 솥에 물과 함께 넣어 ‘삶은 달걀’이 아니라 달걀 그 자체와 같은 것일까? 실은 그럴지도 모른다. 달걀은 그 스스로 완전한 생명체가 아니다. 준비하는 생명체다. 어미닭에 의해 일정 기간 품어지고 보살핌을 받은 다음에야 병아리로 깨어나게 된다. 그렇다. 우리 인간도 알에서 병아리로 깨어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안에서 성장하고 변화한 뒤에 알 껍질을 부수고 밖으로 나와야만 완전한 생명체인 병아리가 된다. 보건대 어떤 사람은 그냥 알 껍질 안에서 달걀인 채로 일생을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일찍이 알 껍질을 벗고 나와 병아리로 살며 드디어 어미새가 되는 걸 보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도 충분히 어미새로 성장하고 변모해 세상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그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마치 큰비가 내려 홍수 진 강물에 콸콸 소리 내며 흘러가는 흙탕물처럼 살아가는 친구들을 본다. 어디로 향해 가는지, 무엇을 위해 가는지조차 모르고 흘러가는 물과 같다. 과연 우리가 그런 물처럼 한세상을 살아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자기다운 삶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기다운 삶은 내가 누구인지, 왜 살아야 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알고 살아가는 삶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정체성이다. 영어로 ‘아이덴티티’이고 사전적 풀이로는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다. 이 아이덴티티가 있어야만 인간은 일관성 있게 인생을 살 수 있다. 마치 거친 바다 한가운데 조그만 배가 한자리에 머물러 있기 위해 육중한 닻을 아래로 내려 자기를 지탱하는 것과 같다. 인간의 본성은 누가 뭐래도 이기심이다. 자기를 사랑하고 이롭게 하고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마음. 이기심은 본성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를 채우는 과정을 되풀이하며 산다. 학교 공부가 그렇고, 취업이 그렇고, 결혼이 그렇고, 내 집 마련이 그렇고, 인생살이 전반이 이러한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과정이다. 오로지 ‘나’를 위한 이기(利己)의 삶이다. 이 이기심이 치열한 인생, 성공한 인생을 가져오게도 한다. 그러나 더러 현명한 사람, 운이 좋은 사람은 이기심으로 일관하던 삶 가운데 이타심이란 것을 찾아내고 자기만을 위한 삶이 오로지 완전한 삶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이야말로 인생의 축복이요 은혜다. 나 하나만 생각하며 살던 삶이 다른 사람들, 주변 사람들을 위해 사는 삶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는 순간 두 눈이 확 밝아지는 환희와 놀라움이 따른다. 그야말로 ‘너’와 함께하는 삶이다. 이타(利他)의 삶이다. 내가 좋아하는 말 가운데 하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사람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 단군 임금의 지상명령이다. 단군 임금이 실재 인물이 아니고 신화 속 인물이라고 해도 관계없다. 분명히 그 말은 우리의 말이고 우리 민족의 정신을 담은 말이기에 그렇다. 무릇 인간 세상까지는 못 미치더라도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면서 사는 삶은 참으로 아름답고 귀한 삶이다. 그렇다. 이제 우리는 자기답게 사는 삶을 넘어 아름답게 사는 삶을 생각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뒷날에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이 없고 남겨지는 것이 없을 것이다. 글을 쓰더라도 내 생각만으로 쓰지 말고 남의 생각으로도 써야 한다. 아니다. 보다 더 많이 다른 사람의 입장, 다른 사람의 생각, 다른 사람의 느낌으로 써야 한다. 그래야만 보편성이 확대되고 더 많은 사람이 우리의 글을 읽어 주고 공감해 주고 또 기억해 줄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필요하면서도 어려운 문제다. 나태주 시인
  • 류수영, 촬영 긴급중단…현지인이 건넨 음식 먹더니 “독성 있다”

    류수영, 촬영 긴급중단…현지인이 건넨 음식 먹더니 “독성 있다”

    배우 류수영이 생 가비를 맛본 후 식도 통증을 호소했다. 24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정글밥’에서는 팔라완에서 멤버들이 식재료를 구하는 모습이 담겼다. 가비 줄기(토란대)는 스튜, 수프에 활용하는 재료다. 뿌리 역시 훌륭한 전분 공급원이다. 류수영과 이승윤은 가비를 관찰하며 “약간 파 같기도 하다”며 현지인을 따라 줄기 껍질을 벗겼다. 현지인은 “생선살이랑 섞어도 되고 채소랑 같이 먹어도 된다”고 말했다. 이에 류수영은 “그럼 좀 따가자. 파나 양파 대신 쓰면 될 것 같다”고 했다. 류수영은 즉석에서 가비를 한 입 베어 물고 퉤퉤 뱉었다. 그는 “맛은 그냥 무 맛이다”고 했다. 그러나 류수영은 이내 어딘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이를 발견한 이승윤이 “이거 생으로 먹어도 되냐”고 묻자, 현지인은 “요리해서 먹어야 한다”고 답했다. 류수영은 “독성이 있네. 석면 같은 것을 먹은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인터뷰에서 그는 “마치 모래를 씹은 듯한 느낌에 침을 뱉었다. 갑자기 목에 털 가시가 박힌 느낌이 들면서 입술이 가렵더라”고 말했다. 결국 촬영은 중단됐다. 마을로 내려간 류수영은 물로 계속 행궈냈지만 차도는 없었다. 이후 마을 소녀가 식초로 만든 설탕을 건넸고, 류수영은 “먹자마자 내려가는 느낌이더라. 30초도 안 걸렸다. 신기했다”고 털어놨다. 한편 매주 화요일 밤 10시 20분 방영되는 ‘정글밥’은 K-집밥 마스터 류수영과 정글 식재료의 한판 승부를 다룬 프로그램이다.
  • 인도서 등장한 ‘시멘트로 만든’ 가짜 마늘

    인도서 등장한 ‘시멘트로 만든’ 가짜 마늘

    마늘값 폭등을 겪고 있는 인도에서 일명 ‘시멘트 마늘’이 등장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인디아투데이 등 현지 언론의 20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최근 마늘 가격이 급등하자 가짜 마늘을 섞어 파는 사례가 전국에서 보고되고 있다. 이중 시멘트 마늘은 실제 시멘트를 이용해 마늘 모양처럼 만들고, 회색빛 시멘트 색깔을 덮기 위해 흰색 코팅을 입힌 가짜 마늘이다. 아랫부분에는 마늘 뿌리와 흙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모형도 붙어있었다. 문제의 시멘트 마늘이 발견된 곳은 중서부 마하라슈트라주(州) 아콜라 지역이다. 이 지역 주민인 파틸이라는 여성은 시장 노점상에서 마늘 250g을 구매한 뒤 집에 와서 이를 손질하려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무게는 묵직했지만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았고, 색깔도 원래 알고 있던 마늘과 조금 달랐다. 마늘을 깨보니 안에서는 놀랍게도 시멘트 덩어리가 드러났고, 이에 분노한 여성과 남편이 직접 이를 SNS에 공개하면서 ‘시멘트 마늘’ 파동이 일파만파로 퍼졌다. 시멘트 마늘을 공개한 여성은 “진짜 마늘 안에 시멘트 마늘을 섞어 파는 바람에 속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이런 행위는 상인들의 소비자 기만 행위이며 공중 보건을 해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인도에서 ‘시멘트 마늘’ 등장한 이유인도에서 가짜 시멘트 마늘이 등장한 것은 최근 들어 마늘 값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인도의 1㎏당 가격이 300루피(약 4700원)였던 마늘이 최근에는 350루피(약 5500원)까지 치솟았다. 마늘 값이 오른 이유로는 폭염이 꼽힌다. 인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지난 5월 섭씨 50도를 기록했다. 지난 6월 18일부터 48시간동안 뉴델리에서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이 20명에 달하기도 했다. 더타임스오브인디아는 실제 사망자 수는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극단적인 날씨가 이어지면서 폭우로 인한 피해도 증가했다. 지난달 말 케랄라주 와야나드 지역에서는 기록적인 폭우로 발생한 대규모 산사태로 200여명이 사망하고 130명 이상이 실종됐다. 다국적 기후연구 단체인 세계기후특성(WWA)은 지난 13일 보고서에서 “인도에서 발생한 사고는 기후변화 탓에 폭우 강도가 10% 더 세진 것이라며 이 때문에 산사태가 일어났다”면서 “와야나드 산사태는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또 하나의 기후변화 재앙 사례”라고 밝혔다. 앞서 여러 기후학자들은 인도의 몬순(우기·6∼9월) 강우량이 기후변화 때문에 점점 더 불규칙해진다고 밝힌 바 있다.
  • ‘시멘트로 만든’ 가짜 마늘, 실물 보니…황당 사기 등장한 사연 있다?(영상)[포착]

    ‘시멘트로 만든’ 가짜 마늘, 실물 보니…황당 사기 등장한 사연 있다?(영상)[포착]

    마늘값 폭등을 겪고 있는 인도에서 일명 ‘시멘트 마늘’이 등장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인디아투데이 등 현지 언론의 20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최근 마늘 가격이 급등하자 가짜 마늘을 섞어 파는 사례가 전국에서 보고되고 있다. 이중 시멘트 마늘은 실제 시멘트를 이용해 마늘 모양처럼 만들고, 회색빛 시멘트 색깔을 덮기 위해 흰색 코팅을 입힌 가짜 마늘이다. 아랫부분에는 마늘 뿌리와 흙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모형도 붙어있었다. 문제의 시멘트 마늘이 발견된 곳은 중서부 마하라슈트라주(州) 아콜라 지역이다. 이 지역 주민인 파틸이라는 여성은 시장 노점상에서 마늘 250g을 구매한 뒤 집에 와서 이를 손질하려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무게는 묵직했지만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았고, 색깔도 원래 알고 있던 마늘과 조금 달랐다. 마늘을 깨보니 안에서는 놀랍게도 시멘트 덩어리가 드러났고, 이에 분노한 여성과 남편이 직접 이를 SNS에 공개하면서 ‘시멘트 마늘’ 파동이 일파만파로 퍼졌다. 시멘트 마늘을 공개한 여성은 “진짜 마늘 안에 시멘트 마늘을 섞어 파는 바람에 속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이런 행위는 상인들의 소비자 기만 행위이며 공중 보건을 해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인도에서 ‘시멘트 마늘’ 등장한 이유인도에서 가짜 시멘트 마늘이 등장한 것은 최근 들어 마늘 값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인도의 1㎏당 가격이 300루피(약 4700원)였던 마늘이 최근에는 350루피(약 5500원)까지 치솟았다. 마늘 값이 오른 이유로는 폭염이 꼽힌다. 인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지난 5월 섭씨 50도를 기록했다. 지난 6월 18일부터 48시간동안 뉴델리에서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이 20명에 달하기도 했다. 더타임스오브인디아는 실제 사망자 수는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극단적인 날씨가 이어지면서 폭우로 인한 피해도 증가했다. 지난달 말 케랄라주 와야나드 지역에서는 기록적인 폭우로 발생한 대규모 산사태로 200여명이 사망하고 130명 이상이 실종됐다. 다국적 기후연구 단체인 세계기후특성(WWA)은 지난 13일 보고서에서 “인도에서 발생한 사고는 기후변화 탓에 폭우 강도가 10% 더 세진 것이라며 이 때문에 산사태가 일어났다”면서 “와야나드 산사태는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또 하나의 기후변화 재앙 사례”라고 밝혔다. 앞서 여러 기후학자들은 인도의 몬순(우기·6∼9월) 강우량이 기후변화 때문에 점점 더 불규칙해진다고 밝힌 바 있다.
  • 삼십리 늘어선 해변, 붉게 익어가는 칠면초…민어의 고향, 여름에 다시 태어난다

    삼십리 늘어선 해변, 붉게 익어가는 칠면초…민어의 고향, 여름에 다시 태어난다

    아직도 입안에서 새우젓 향기가 진동하는 듯하다. 미역국에 넣은 새우 두 마리가 이리 진한 향을 낸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전남 신안의 임자도는 흔히 ‘민어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남도의 대표 여름 보양식인 민어의 산지라서다. 한데 민어만 알고 있다면 임자도의 절반도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장포에서 잡히는 젓새우의 명성은 민어보다 몇 배 윗길이고, 병어 역시 이 지역에서 나는 게 최고(물론 지역 주민의 표현이다)다. 이처럼 이름난 갯것 대부분이 여름 무렵에 잡힌다. 수많은 해수욕객들이 찾아도 넉넉하게 수용할 수 있는 국내 최대 해변 등 볼거리, 놀거리도 풍성하다. 그러니 임자도 여행의 성수기는 단연 여름이라 말할 수 있겠다.신안 임자도 가는 길.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아스팔트 길이다. 섬을 오가던 철부선의 추억은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바다 위로 사람과 차를 실어 나르는 일은 이제 2021년 완공된 임자대교가 맡고 있다. 임자도는 해안선 길이가 60㎞에 달하는, 서울 여의도의 5배가 넘는 큰 섬이다. 단일 해수욕장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는 대광해변이 이 섬에 있다. ●맨발로 즐기는 국내 최대 대광해변 우리나라 해수욕장의 길이는 대체로 오리(2㎞) 안팎이다. 이름도 거창한 서해안 만리(萬里)포해수욕장이 그렇고, 망상 등 동해안에서 백사장 길기로 유명한 해변들도 그 정도다. 이에 견줘 임자도의 대광해수욕장은 삼십리, 무려 12㎞다. 어지간한 해수욕장의 6배 길이다. 길이만 긴 게 아니다. 폭도 넓다. 날물 때면 바닷물이 300m쯤 물러난다.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백사장이다. 요즘 어느 해수욕장을 가도 맨발로 걷는 이들을 흔히 본다. 걷기 운동법으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다스리려는 이들이다. 낮엔 해수욕, 밤엔 술판이란 이미지가 해변의 옛 정석이었다면 요즘 해수욕장의 정석은 운동이다. 맨발 걷기 열풍이 처음 분 건 황톳길이다. 지방자치단체마다 황톳길 조성에 불이 붙었다. 도시에서 시작된 맨발 걷기 열기는 멀고 먼 임자도에도 옮겨붙었다. 요즘 남도에서 대광해변 하면 맨발 걷기의 성지로 여겨진다. 맨발 옹호가들이 신봉하는 건 이른바 어싱(Earthing)이다. 접지(接地)에 의한 자연 치유 효과를 이르는 용어다. 이들의 논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지구는 음전하가 풍부한 천연 항산화제다. 인체는 전자파와 활성산소 등 각종 독소로 오염돼 있는데, 지구의 자유전자가 맨발을 통해 들어와 몸을 충전시키면 염증이 완화되고 유전자가 치유된다는 것이다. 특히 해변에서 걷는 건 ‘슈퍼 어싱’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강력한 땅 에너지와 접지 효과가 수분과 소금기가 있는 땅에서 더욱 크게 발현된다는 것이다. 구리로 만든 어싱 스틱을 들고 다니는 이들도 있다. 어싱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해변 초입엔 거대한 민어와 스머프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다소 이질적인 느낌의 스머프 조형물이 상징하는 건 ‘블루 플래그 인증 국제해변’이다. 덴마크에 있는 국제환경교육재단(FEE)이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해수욕장에 부여하는 국제인증이라고 한다. 스머프 조형물은 2021년 인증 당시 설치한 것이다. ●조선 후기 화가 조희룡의 흔적 가득 해수욕장 옆엔 ‘매화정원’과 ‘조희룡 미술관’이 바짝 붙어 있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조희룡(1789~1866)은 조선 후기의 화가다. 한양에서 나고 자란 그가 멀고 먼 임자도까지 내려온 건 추사 김정희 때문이다. 나이가 겨우 세 살 많은 추사를 깍듯이 스승으로 모신(추사가 그를 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그는 추사가 이른바 ‘예송논쟁’에 휘말렸을 당시 그의 최측근이란 죄목으로 유배형을 받아 1851년 임자도로 쫓겨 왔다. 그의 나이 환갑을 지나서였다. 조희룡은 거의 집착이라 할 정도로 매화도에 매달렸다. 매화백영루(梅花百詠樓)라 이름 지은 자신의 집 방안에 매화 병풍을 둘렀고, 매화를 노래한 시가 새겨진 벼루와 먹을 썼으며, 매화 시를 짓고 읊다가 목이 마르면 매화차를 달여 마셨다고 한다. 자신의 호인 ‘매수’(梅) 역시 ‘매화 늙은이’란 뜻이다. 또 다른 호인 ‘매화두타’(梅花頭陀)에서 보듯 그는 꽃송이 하나하나를 부처님이라 생각하고 그렸다. 대광해변 옆의 조희룡 미술관은 신안군이 그의 자취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미술관에 들면 미디어아트로 구현된 ‘매화서옥도’가 객을 맞는다. 화려한 구성의 매화도가 디지털 영상과 잘 어우러진다. 붉은 매화가 주렁주렁 달린 ‘홍매도’와 승천하는 용을 연상케 하는 ‘용매도’(龍梅圖) 등도 감상할 수 있다. 사본이긴 해도 장삼이사의 눈으로는 진본을 보는 듯 감동스럽다.●매화 정원·용난굴에선 ‘인생샷’ 임자도에 매화 정원이 만들어진 것 역시 전적으로 조희룡과의 인연 때문이다. 진도 수진재에서 건너온 수령 100년이 넘는 홍매 등 400여 그루의 홍매와 태양광발전으로 베어질 뻔했던 해남의 백매화 1000그루 등을 옮겨와 조성했다. 이흑암리엔 조희룡 적거지가 있다. 1853년 유배가 풀릴 때까지 그가 살았던 초가집을 복원한 것이다. 초가집 벽면의 ‘만구음관’(萬鷗吟館)이란 편액은 ‘만 마리의 갈매기가 우짖는 집’이라는 뜻이다. 초가 주변은 수십 그루의 매화나무가 둘러싸고 있다. 초가 아래 공원에는 ‘괴석도’, ‘목죽도’ 등 그의 대표작을 모사한 조형물들이 전시돼 있다. 조희룡의 고사가 전하는 명소가 또 한 곳 있다. 어머리해변 끝의 용난굴이다. 해안가의 갯바위에 뚫린 거대한 해식 동굴이다. 동굴엔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중국에서 청자를 가득 싣고 오던 배가 임자도 앞바다에 침몰한 뒤 가까스로 살아남은 중국 선원들이 고향을 그리며 눈물을 흘렸는데, 그 눈물이 바위에 떨어지자 굴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돼 승천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조희룡은 둥치가 용처럼 힘차게 뒤틀린 매화도를 그렸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용매도’(龍梅圖)는 이렇게 탄생했다. 용난굴은 밀물 때 물에 잠긴다. 반드시 썰물 시간을 확인하고 찾아가야 한다. 아직 세간엔 덜 알려졌지만 썰물과 해거름이 겹치는 날엔 ‘인생샷’을 기대할 수도 있을 만한 명소다. 이즈음 임자도는 먹거리가 넘쳐 난다. 민어와 병어가 흔전만전이고, 포실하게 살이 오른 젓새우들은 주민들의 지갑을 두툼하게 채워 준다. 무더위가 절정인 삼복에 보양식을 먹는 걸 흔히 ‘복달임’이라 부른다. 남도에서 갯장어와 더불어 최고의 복달임 음식으로 꼽히는 게 민어다. 민어는 17가지 맛을 낸다고 한다. 껍질과 뼈, 부레 등 거의 모든 부위가 요리에 쓰인다. 민어는 산란을 앞둔 여름철에 가장 기름지고 맛도 좋다. 먼바다에서 살던 녀석들이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이동하는 것도 이때다. 산란장으로는 모래와 개펄이 섞인 지형을 선호하는데, 임자도 인근 해역이 이 조건에 딱 들어맞는다. 게다가 녀석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인 새우도 풍성하다. 민어는 초여름인 6월부터 잡히기 시작한다. 이때 민어는 대체로 흑산도, 가거도 등 먼바다에서 잡힌 녀석들이다. 7월 중순으로 접어들면 임자도 연안에서도 나기 시작한다. 오래전엔 민어 파시(波市, 고기가 한창 잡힐 때 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 시장)가 들어서기도 했다. 이를 ‘타리 파시’라 불렀다. 임자도 바로 앞에 뭍타리, 섬타리라는 두 개의 섬이 쌍둥이처럼 붙어 있는데, 파시는 두 섬의 가운데에 형성됐다. ‘농가 한 채만 있던 타리섬에 파시가 서면 기둥을 듬성듬성 세우고 거적과 이엉을 두른 가건물이 수백호 생겨 어부가 수천명이 드나들었다’는 옛 기록으로 미뤄 볼 때 당시 파시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제철 맞은 민어·병어로 ‘복달임’ 민어가 워낙 유명하니 주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넉넉하게 만들어 주는 것도 민어일 거라 생각하기 십상이다. 한데 민어는 턱도 없다. 주민들의 주 수입원은 새우다. 임자도 북쪽 끝인 전장포가 주무대다. 작은 포구지만 여기서 우리나라 새우젓의 60% 정도가 생산된다고 한다. 전장포에서 나는 새우는 색깔이 곱고 희다. 이를 백하(白蝦)라 부른다. 새우는 오뉴월에 잡힌 게 최고다. 육질이 단단하고 맛과 향이 뛰어나다. 이때 잡힌 새우가 신안 천일염과 만나 젓갈로 다시 태어난다. 오월에 잡은 새우로 만들어 ‘오젓’이고 유월에 잡은 새우라 ‘육젓’이다. 육젓이 가장 윗길이고, 오젓이 바로 뒤다. 가을에 잡히는 추젓은 한참 아래다. 예전엔 갓 잡은 새우를 전장포에서 천일염에 담근 뒤 마을 뒤 솔개산 기슭의 토굴에서 숙성시켰다. 지금도 당시 사용했던 토굴이 4개 남아 있다. 요즘엔 다르다. 냉장 시설에서 숙성시킨다. “온도와 습도를 완벽허니 맞춰 주는 설비가 있는디 뭣헐라고 토굴에서 새우젓을 숙성시키것소.” 전장포 구동열(73) 이장의 설명이다.●주민 먹여 살리는 건 살 오른 ‘젓새우’ 대파도 임자도를 유명하게 만든 작물 중 하나다. 임자도는 섬 가운데 드물게 농지가 많다. 밭고랑 사이로 가지런하게 줄기를 낸 대파들이 푸르고 예쁘다. 임자도에서 지도를 지나 증도대교를 건너면 태평염전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염전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임자도에 연도교가 놓이기 전엔 배를 타야 찾아갈 수 있었지만 요즘엔 차로 20~30분이면 닿을 수 있다. 옛 소금창고를 리모델링한 소금박물관, 소금밭 전망대 등 볼거리가 많다. 태평염생식물원 주변은 요즘이 연중 가장 예쁠 때다. 날로 붉어지는 칠면초와 파릇파릇한 염생식물이 잘 어우러졌다. 지도읍 솔섬 인근엔 목재 데크가 놓였다. 칠면초가 빨갛게 익어 가는 갯벌 위를 걷는 맛이 각별하다. ■ 여행수첩 -임자도가 ‘민어의 고향’이라 불리지만 정작 이를 맛보려면 지도읍의 송도위판장으로 가는 게 낫다. 주변에 횟집이 몰려 있다. 집산지이긴 해도 민어값은 녹록하지 않다. ‘혼밥족’이라면 회덮밥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한데 보통 회덮밥과는 ‘사이즈’가 다르다. 양푼 위로 붉은 망토를 두른 것처럼 민어회가 푸짐하게 ‘덮여’ 온다. 임자도에선 ‘부일호횟집’이 현지인 추천 맛집이다. ‘임자도 이야기’는 퓨전 형태의 민어 요리를 내는 집이다. 민어를 넣어 지은 영양솥밥, 민어를 튀긴 민어까스 등이 젊은층의 입맛에 맞을 듯하다.-‘임자만났네’는 주민들이 조직한 협동조합이다. ‘갯벌 카약’ 등 토속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갯벌 카약’은 갯벌 사이로 난 물골에서 카약을 타는 놀이다. 날씨 등 제약 요인이 많아 미리 운영 여부를 확인하고 가야 한다.
  • 입안이 ‘바싹’ 구강건조증… 물 자주 ‘홀짝’ 마시고 채소 드세요

    입안이 ‘바싹’ 구강건조증… 물 자주 ‘홀짝’ 마시고 채소 드세요

    시도 때도 없이 입이 바싹 마르고 입을 열 때마다 냄새마저 나는 것 같다면 자신감이 떨어져 대화 자체가 꺼려진다. 마른 음식을 먹을 때마다 물이 있어야 하고 혀가 화끈거리기도 한다.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면 ‘구강건조증’을 의심해야 한다. 일상생활에 불편을 줄 뿐만 아니라 다른 건강 문제를 초래할 수 있어 방치해선 안 된다.구강건조증은 침 분비량이 1분당 0.1㎖ 이하로 입안이 몹시 마르는 증상이다. 인체가 충분한 양의 침을 만들지 못하거나 생성된 침이 풍부한 수분을 포함하지 않은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 구강건조증은 질환으로 침샘(타액선)에 병변이 나타나는 1차 구강건조증과 침샘 병변은 아니지만 비타민 결핍, 빈혈, 당뇨, 약물 부작용 등으로 나타나는 2차 구강건조증으로 나뉜다. 구강건조증은 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침은 구강점막을 적셔서 입안을 부드럽게 하고 외부 자극으로부터 점막을 보호하며 세균과 바이러스의 침입을 막는다. 또 맛을 느끼게 하고 탄수화물 소화를 도우며 입안의 산도(酸度)를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 황경균 한양대병원 치과 교수는 15일 “침은 턱밑샘, 혀밑샘, 귀밑샘 등 대타액선과 구강 내 고루 분포하는 소타액선에서 분비되는데 침샘에 이상이 생겨 침 분비가 감소하는 경우 구강건조증 같은 ‘입 마름’ 현상이 나타난다”면서 “침은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인데 분비가 줄면 입안이 건조해지고 음식을 씹거나 삼키기가 힘들고 말하기도 불편해지며 입안에 염증과 충치도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병원 찾은 환자 연평균 1600만명 침샘 질환을 호소해 병원을 찾는 환자 수는 최근 5년간 연평균 약 16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30%에 이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0년 860만 140명이던 환자 수는 꾸준히 늘어나 2021년 1651만 3653명이 됐다. 2022년에도 1587만 5975명이 침샘 문제로 병원을 찾았다. 구강건조증의 대표 증상으로는 입안이 지나치게 건조하고 갈라지며 타는 것같이 톡톡 쏘는 듯한 통증이 있다. 입술도 건조해 갈라지거나 껍질이 벗겨지고 입이 계속 타다 보니 음식을 삼키기 힘들어 자주 물을 마시게 되거나 발음에 어려움을 겪는다. 노인들은 틀니 착용에 애를 먹을 수 있다. 임재열 강남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구강건조증 환자들은 침의 1차 세정과 항균 작용 저하로 세균, 곰팡이, 바이러스 감염에 따른 치아 우식(충치), 치은염, 구내염, 구강 칸디다증(혀 백태를 유발하는 구강 내 곰팡이균 질환) 같은 문제를 겪을 수 있고 음식물을 삼키거나 미각에도 불편함이 생겨 폐렴, 소화기 질환 등이 생기거나 악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구강건조증은 심한 구취를 유발하기도 한다. 황 교수는 “구취는 설태, 충치, 잇몸 염증, 입안 상처 등으로 침이 높은 점성을 띠며 나타난다. 침의 글리코프로틴이란 물질 속 황산기가 단백질 분자 형태로 변화하며 구취가 발생한다”면서 “구강건조증은 구취 유발 요인이기 때문에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화 따른 침샘 기능 저하서 비롯 구강건조증은 노화에 따른 침샘 기능 저하에서 비롯된다. 다만 노화와 상관없이 스트레스나 불안, 우울증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나타나기도 한다. 침 분비는 심리상태에 의해서도 좌우되는데 특히 스트레스와 긴장은 아드레날린 호르몬 분비를 촉진해 침샘을 마르게 하고 구강건조증을 유발한다. 침 분비가 줄어드는 부교감신경 차단제 등의 약물이나 항히스타민제를 장기 복용했을 때도 나타날 수 있다. 방사선 치료나 눈과 입이 마르는 셰그렌 증후군 등 자가 면역 질환에 따른 침샘 조직의 만성 염증과 변형도 구강건조증을 유발한다. 황 교수는 “노화가 가장 흔하지만 말을 많이 하거나 입을 벌리고 자는 습관, 구호흡(입으로만 호흡) 습관 등이 있거나 불안 증상으로 과호흡할 때도 역시 침 분비가 되지 않는다”면서 “삼환성 항우울제, 이뇨제 등의 약물도 침 분비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침 분비량 검사와 침샘 기능·내시경 검사, 혈액 검사로 구강건조증을 진단할 수 있으며 조기에 인지해 적절한 관리와 치료를 해야 한다. 임 교수는 “구강건조증은 말하기, 식사 등 일상에 불편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구강 건강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구강건조증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적절하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구강건조를 완화하려면 매일 충분한 양의 물을 마셔 수분을 보충하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 건조를 유발하는 음식 대신 신선한 과일과 채소 등 수분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면 좋다. 침 분비를 억제하는 카페인 성분이 포함된 음료는 될 수 있으면 줄이고 밤에 가습기를 사용하거나 입술에 보습젤을 바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황 교수는 “침은 하루에 1.5ℓ 정도 분비되고 과호흡, 구호흡 시 수증기를 구강으로 보내기 때문에 수분 대사에 매우 중요하다”면서 “탈수 등으로 세포 외 체액량이 줄면 침 분비량이 감소해 구강이 건조해져 갈증을 느끼게 되므로 물을 섭취해 수분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루 3회 이상 칫솔질 등 위생 관리를 무엇보다 적절한 위생 관리를 통해 구강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구강건조증 환자들은 프라그가 치아 표면이나 잇몸에 쉽게 부착되고 제거하기 어려운 만큼 매일 부드러운 칫솔로 세 번 이상 칫솔질하고 2~3개월에 한 번 치과를 방문해 충치 검진과 스케일링을 받는 게 좋다. 침 분비를 촉진하는 약물요법(필로카핀, 의사 처방 필요)과 인공타액 같은 구강용제를 치료에 활용할 수도 있다. 타액제는 알코올이 함유돼 있지 않은 스프레이, 젤 타입의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 침샘을 물리적으로 자극해 침 분비를 지속적으로 촉진하는 ‘침샘 마사지’도 좋다. 무설탕(자일리톨) 껌을 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황 교수는 “침샘을 자극하기 위해 레몬 같은 신 음식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치아가 부식될 수 있으므로 바로 입안을 헹구는 게 도움이 된다”면서 “물병에 물을 가지고 다니면서 ‘홀짝’이듯이 조금씩 자주 마시고 시중에 판매되는 알코올이 함유된 구강헹굼제는 구강 점막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권장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 미래는 죽은 사물의 시간- 안태운·황유원의 시(①)/박민아[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 평론]

    1. 멸종위기종 낭송하기 랩스 프린지 림드 청개구리(Ecnomiohyla rabborum) 브램블 케이 멜로미스(Melomys rubicola) 포오울리(Melamprosops phaeosoma) 크리스마스섬집박쥐(Pipistrellus murrayi) 콰가(Equus quagga quagga) 세실부전나비(Glaucopsyche xerces) 스텔러바다소(Hydrodamalis gigas) 타이완구름표범(Neofelis nebulosa brachyura) ―안태운, ‘생물종 다양성 낭독용 시’ 중에서 멸종위기종을 지칭하는 아름다운 이름들. 이 호명이 꽤 아름답고 문학적이라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선언과 낭송의 효과이자 맹점일 것이다. 위 시에서 나열하고 있는 것들은 당연히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종의 명칭이다. 우리가 이 “절멸”의 위기에 처한 “생물들의 이름을 반복해서 되뇌”는 때 “크리스마스섬집박쥐”나 “세실부전나비”는 있지만, 당연하게도 ‘러브버그’(Lovebug)나 ‘빈대’(Bedbug) 따위는 없다. 이는 어쩌면 당연하다. 러브버그의 충격이 두 계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빈대가 기승이고, 이 벌레들은 인간의 생활권 내에서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가한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이다. 이 때문에 인간종이 이들의 박멸을 궁리하면서 동시에 멸종을 걱정하는 일은 난센스에 가깝다. 이 낭독의 대열에 ‘각다귀’나 ‘깔따구’가 없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각다귀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한 것이, 각다귀는 모기와 비슷하게 생긴 데다 크기도 커서 ‘왕모기’로 종종 오해받는데, 기존 인간의 편의대로 손쉽게 구분해 보자면 각다귀는 일단 익충에 가깝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조차 각다귀를 “남의 것을 뜯어먹고 사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정의하는데, 이 때문인지 흔히 고전문학에서 각다귀는 백성의 고혈을 빨아 먹는 탐관오리와 같은 부정적 대상으로 비유돼 왔다. 그런데 이를 차치하고, 어느 생물종의 유해함과 무해함을 나누는 기준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에 불과하다면 이는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과거 인천 수돗물에서 발견된 깔따구 유충이 수질 오염의 지표인 것처럼 지목됐으나 실제로 깔따구 유충은 수생태계의 중요한 분해자에 해당한다. 또 인간의 편의대로 분류해 보자면 깔따구 역시 익충인 셈인데 여기서 다시금 제기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질문은, 깔따구는 왜 매번 인간종에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가일 것이다.(②) 벌레는 그 개체수만으로 따지자면 실질적으로 지구를 점유하고 있는 종에 가깝다. 이 실질적 지배자들에 대한 익충 혹은 해충으로의 분류는 다분히 인간중심적이다. 위 시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보호해야 할 종들을 열거하는 ‘낭독’의 방식은 분명 선언적이고 아름다운 데가 있지만 이 아름다운 대열에 끼지 못한, 호명되지 못한 나머지 존재를 누락시킨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현재 지구에는 1000조에서 1경 마리의 곤충이 존재하지만, 수십 년 안에 사라질 멸종위기종 중 절반은 곤충이 될 것으로 보인다.(③) 이 글은 위 시에서의 선언의 정치성이나 효과, 의의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최근 시인들 사이에서 릴레이처럼 수행되는) 호명과 열거의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배제될 가능성이 있는 개체들을 환기하자는 의도에 가깝다. 기실 최근 안태운의 시는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생물종을 ‘당신’으로 호명하며 그 존재의 희미해지는 몸짓을 기억하고, 복구하고, 기록하고자 시도하면서 사유 대상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기억 몸짓’) 그러나 여전히 인간 세계에서 ‘벌레 같은’ 류의 비유(“당신에게는 깊은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벌레 같은’이라는 관용구를 그 뜻도 모르면서 아무렇게나 사용하는 당신”, 황유원, ‘밤의 벌레들’)가 작동하는 원리를 상기해 본다면 인간이 벌레에게 빚진 바를 우리는 매 순간 의심하고 점검해야 할 것이다. 20세기 초입 카프카의 벌레로의 변신 모티프는 꽤나 강렬해서 인간과 벌레를 둘러싼 상상력에 지대한 공헌을 한 바 있다. 이 모티프는 이후 세대의 문학에 있어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함과 동시에 인간종과 벌레종의 교점에 관해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상상력의 방식을 사실상 결정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카프카 문학과의 상호텍스트적 접목을 자주 시도했던 김행숙의 경우 변신 모티프를 아래와 같이 전유한 바 있다. 벌레의 굴욕인가, 밟아도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휴머니즘의 진부한 레퍼토리인가. 벌레로서의 벌레는 대체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55킬로그램의 인간* 그레고르 잠자는 왜소했으나, 55킬로그램의 뼈와 살과 피의 새로운 조합으로 탄생한 이 거대한 벌레 앞에서라면 누구든지 경악의 외마디와 함께 뒷걸음질을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게 된다. 다시 말해 그 누구든지 우스꽝스러워지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막 외계의 생명체를 본 것이다. 당신은 온 우주에 뉴스를 전파하고 싶지만, 공포와 흥분으로 전신이 떨리고 특히 턱이 빠질 듯이 달달달달 떨리게 된다. 나는 완벽한 벌레의 꿈이다. *55kg은 1920년 7월 29일 자 카프카의 몸무게다. (…) ―김행숙, ‘변신’(‘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부분 위 시에서는 카프카의 소설 속 그레고르 잠자가 결국 벌레로서 비극적인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결말을 전복시켜 크기가 줄어들지 않은 “55킬로그램의” “거대한” 벌레가 오히려 가족을 내쫓고 공간을 점유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카프카적 사건 혹은 계기라 할 수 있는 인간종의 벌레종으로의 변신은 이 시에서 세계의 질서를 재편하고자 하는 데 기여하는 물질적 작용으로 전환된다. 이 시에서 벌레의 행위는 들뢰즈-가타리적인 ‘동물-되기’, 즉 ‘탈영토화’의 가능성에 대한 사유 방식으로 대입해 읽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이 지극히 인간적인, ‘인간화된 벌레’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멀리 가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 과정에서 진짜 ‘벌레’는 실종했다. 그리고 벌레 덕분에 인간은 한없이 자유로워졌지만 비인간으로서의 벌레는 여전히 너무나 인간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다. 인간종에게 해악을 끼치는 해충을 박멸하자는 입장이나 인간에게 주는 효용을 고려해 적절히 잘 이용하자는 입장 모두 곤충 입장에서는 같은 결과가 예고돼 있다. 뉴질랜드 한 대학 식품과학 연구팀은 최근 곤충이 식품 공급원으로 적합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④) 곤충종에 대한 인간의 기대와 혐오라는 상이한 정동은 모두 곤충의 입장에서는 그 개체의 죽음이라는 같은 결과를 낳는다. 어떤 개체에 대한 이 도구적 쓰임은 한편으로 근대적 인간에 대한 회고, 자기 생산물로부터의 고립을 초래했던 어떤 소외를 연상시킨다. 그러니까 이 곤충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충분히 소외돼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소외된 벌레종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고, 또 알아야 할까. 낭송은 아름답고 낭독은 선언적이지만 이는 다시 존재들의 경계를 부각한다는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이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 2. 개미와 여치의 음악성에 대해서라면, 황유원은 뭘 좀 아는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황유원은 꽤나 전문적으로 이를 향유할 줄 안다. 유해와 무해라는 인간의 기준을 잠시 접어 두고, 이들이 내는 소리에 집중해 보자. 인간의 어떤 의지는 때로 어떤 생물종에 유해하다. 인간의 아무 의지도 개입시키지 않고 소리의 배치에 주목해 보면, 슬플 때 슬퍼할 줄 알고 기쁠 때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록 사람이 아닐지라도 개미에게는 개미의 블루스를 여치에게는 여치의 블루스를 ―황유원, ‘블루스를 부를 권리’ 부분 쇤베르크 이래로 ‘소음’으로 여겨졌던 불협화음이 자유를 얻으면서 이후 소음 자체가 음악의 중심에 자리하게 된 것이 이상하지 않은 일이 됐다. 심지어 존 케이지는 ‘4분 33초’의 침묵 역시 음악이 될 수 있음을 알려 주기도 했다. 소음으로 치부돼 오던 것들이 음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이후 피에르 셰페르에 이르러 더욱 구체화되기도 한다. 기존 음악에서 노이즈는 제거의 대상이었지만 셰페르는 소음 자체를 음악의 재료로 활용한 것이다.(⑤) 그러나 이는 여전히 인간-청자를 기준으로 한다. 우리는 인간에게 인간의 언어 및 인간의 음악이 있는 것처럼 다른 종들에게도 그들의 언어와 음악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한여름 매미의 노이즈가 인간의 귀에 음악으로 들리지 않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청각적 신호를 통해 보이지도 않는 상대에게 보내는 메시지, 황유원은 그것이 개미의 블루스가 아닐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인간의 거주 공간은 무균실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인간의 몸은 근대적 의미에서의 봉쇄된 육체가 아니라 세계와 환경과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봉쇄가 해제된 몸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⑥) 이러한 존재들의 열림과 마주침, 얽힘에 대한 사유는 이 수많은 존재들의 배치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생물종의 고정된 경계가 없고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라는 애나 칭의 주장은 이 때문에 퍽 설득력 있다.(⑦) 황유원은 ‘밤의 벌레들’에서 인간이 불을 켜는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그 공간을 구성하고 있었을 배치를 상상한다. 가령 “당신이 불을 켜기 전” “벌레들”은 “어둠” 속에서 “얼마나 아늑하고 그윽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을지, “당신이 불을 켜기 전” “벌레들”이 “얼마나 천천히” “얼마나 우아하게 이 욕실 바닥 위를 기어다니고 있었”을지, “세상 편안한 마음으로 스멀스멀 기어다니고 있었을” 벌레들의 평화로운 배치가 깨지는 건, 단지 인간이 그 공간에 불을 켜는 것만으로도 발생 가능한 일임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세계와 회통하고 있으므로 서로의 배치에 얼마간의 방해와 간섭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시가 환기하는 것은 타자의 갑작스러운 침입에 대한 벌레의 생경한 낯섦이라는 감각에 우리가 그간 얼마나 무심하거나 무지했는지에 대한 각성이다. 하지만 이때 경계해야 할 것은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 동원되는 수단 역시 인간의 감각이나 사유 체계 내에서만 비롯되고 있다는 한계에 대한 자각일 것이고, 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타자의 감정이나 감각을 익숙한 인간의 언어로 치환하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비인간에 인간화된 관점을 투영할 우려에 대해서도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이때 환원된 것이 개념 자체인지, 아니면 비인간의 행위성을 적극적으로 발견하기 위한 재현인지에 대해서는 숙고가 필요하다. 이 시에서 인간화된 생경함과 놀라움이 벌레 입장으로 치환된 것은 평화로운 배치 상태를 깨는 인간의 침입이라는 의미를 구체화하기 위한 설정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블루스를 즐기는 개미와 여치는 너무나 인간적이다. 인아영은 인간과 비인간의 신비화되지 않은 조우로서 유계영의 시 ‘두고 왔다는 생각’을 사례로 든다. 이 시에서 개는 세계의 표면과 이면의 차이에 몰입해 있는, 사색하는 철학자로 그려지고 있으며 이는 ‘나’의 생각과 공명한다. 이때 종 차별주의의 핵심적인 기준인 ‘이성적인 사고 능력’을 유계영 시의 ‘사색하는 개’가 갖추게 되면서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저수지가 보이는 카페”에서 각자의 “생각에 도취되어 있”(‘두고 왔다는 생각’)는 사람과 개는 “애정의 경제로 묶여 있지 않으며, 섣부른 접촉으로 서로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고요하게 지켜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구별이 의미 없어지며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대립 역시 긴장을 잃는다고 인아영은 주장한다.(⑧) 그런데 이 “저수지가 보이는” 카페는 물어볼 것도 없이 반려견 입장이 가능한 카페여야 할 것이며 이 카페에 입장하는 순간 개는 카페의 규율에 내재(종속)된다. 개와 인간이 ‘사색’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종 차이가 쉽게 무화될 수 있는 것인지와는 별개로 이때 인간의 지위 혹은 동일한 타자의 지위를 획득하는 데 기여했던 개의 ‘사색’이 과연 개의 고유한 특성이자 개의 일, 그러니까 개가 해야 할 일인 것일까. 애나 칭은 인간과 유기체의 배치와 상호작용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대부분의 동물 연구에서 “그들(비인간-인용자)이 인간과 동등한 자질(의식하는 주체로서, 의도를 지닌 의사소통자로서, 또는 윤리적 주체로서)이 있음을 보일 필요가” 있어 왔음을 지적한 바 있다.(⑨) 개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로 개가 인간적인 사색을 거듭하는 것, 개와 인간의 공생을 개를 인간화하는 방식으로 대체하는 것은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아닐뿐더러 문제의 핵심에서도 멀어지는 방식이다. 3. 소진하는 인간, 공터의 흰 개 안태운의 시는 인간과 비인간이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다는 착각을 초래하게 만드는 이러한 연출된 상태를 문제시한다. 동물과의 공생 문제가 대두되면서 익숙하게 소비됐던 낯익은 ‘장면’이 어쩌면 인간의 의식화된 ‘풍경’의 일종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기획 의도에 맞는 일련의 행위들이 인간과 비인간에 의해 자연스레 수행되다가 어느 순간 문득 찾아오는 퍼포먼스의 중지는 인간화된 의도가 노출되는 지점이자 그 공허함이 발설되는 문제적 대목이 된다. 안태운은 인간과 비인간이 각자의 생각에 잠길 뿐이라는 인간-동물 간의 이상적 관계에 대한 설정 역시 인간적인 모종의 어떤 열망이 개입된 것임을 감지하고, 이 연출된 장면을 메타적 관점에서 관찰자의 시선으로 해체한다. 개의 활동 반경을 조금 넓혀 ‘공터’로 개를 데리고 간 안태운의 경우를 보자. 흰 개가 있어. 나와 함께 공터를 산책한다. 흰 개는 나의 개이자 공터의 개 그러므로 나와 함께 공터를 산책하지. 산책하며 서로 사라지기도 하지. 나는 흥얼거리며 흰 개를 두고 달렸다. 흰 개는 나를 따라 달렸다. (…) 나는 공터를 산책하고 있지. 공터를 돌면서 흥얼거린다. 공터의 흰 개, 사람들의 흰 개 그러니 나는 흰 개와 멀어져서 공터를 돌고 있다. 흰 개가 없으니 빨리 달려도 괜찮아 (…) 문득 내 뒤로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게 슬퍼졌지. 아무도 내 뒷모습을 바라보지 않는 게 낯설었다. 흰 개는 어디에 있나. 나는 흰 개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나를 잊었으려나. (…) 흰 개는 공터를 돌았어. 공터를 끝도 없이 돌 것처럼 돌며 돌다가 공터 밖으로 뛰어나가고 있다. 공터를 벗어나자 흰 개는 일어섰다. 일어나서 아주 천천히 걸어 나갔다. ―안태운, ‘흰 개를 통해’ 부분 위 시에서 공터의 개는 저수지를 바라보며 철학자의 사유를 따라가야 하는 고난을 겪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시에서 나와 흰 개는 명백히 인간과 비인간이 행할 수 있는 일련의 행위들을 행하거나 지위를 바꿔서 패러디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은 물론 개별적이고 특수한 관계를 형성하지만, ‘공터’라는 사회적 장으로 나왔을 때 이들은 사람과 개로서 행할 수 있는, 혹은 기대되는 코드화된 행위들을 수행하는 퍼포머가 된다. 공터에 들어서는 순간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는 사회적 기대에 노출된다. 인간과 개가 행위하는 특성으로 규정지어진 이 공터는 인간과 비인간 모두에게 특정 행위만을 요청한다. 이제 ‘공터’는 특정 목표의 전시장이 되고 때문에 공터에서 할 일은 말 그대로 공터에서 ‘할 수 있는’ 일밖에 없다. 이는 다시 말해 인간-비인간이 공터에서 행할 수 있는 ‘가능한 일’은 공터가, 혹은 공터를, ‘가능하게 하는 일’뿐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인간-비인간의 공생일까. 이에 대해 안태운은 아니라고 답하는 듯하다. ‘흰 개를 통해’의 마지막 장면에서 흰 개가 “일어나서 아주 천천히 걸어 나”가는 장면에 주목해 보자. 송현지는 이 시에 대해 “개가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독립적인 존재임을 드러내기 위한 우화”로서 읽을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10) “흰 개가 더이상 자신의 존엄성에 손상을 입지 않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서 “주어진 장소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선택한 것”이고, “이미 세계 밖으로 사라진 비인간들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안태운은 직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자발적으로 사라질 수 있는 비인간의 거주지를 “세계 밖”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비인간 존재의 육체나 물질성을 고려하지 않은 관념적 차원의 해방에 불과하다. 비인간은 왜 그들의 구체적 삶의 공간, 즉 주어진 장소로부터 벗어나야 하며 이때 그들이 사라질 수 있는 세계 밖은 과연 어디인가. 공터를 잃었네. 있었는데. 옆 사람과 흰 개와 함께 공터 밖을 서성이고 있었는데, 공터를 잃었고 옆 사람은 회상하고 있다. 흰 개는 잃은 공터를 향해 짖고, 못내 짖다가도 지치기를, 나는 바라며 기다렸지만 이내 흰 개를 내버려둔 채 옆 사람과 함께 공터 밖을 산책한다. 둘레의 움직임을 만들면서 걷고 걷다가 내가 바라보는 건 과거의 공터, 고개를 천천히 돌리면 옆 사람을 텅 비우는 공터, 계속 걷자 공터를 처음 잃었던 지점에 도착했는데, 흰 개는 없었다. 짖음도 없었고, 흰 개야. 아무도 없어서, 흰 개가 어디로 갔는지 물어볼 사람도 없어서 나는 흰 개마저 잃어버렸네. 옆 사람은 나를 쓰다듬었지, 상심하지 말라고, 엎드려 흰 개의 흉내를 내며. ―안태운, ‘공터를 통해’ 전문 앞서 살펴본 시 ‘흰 개를 통해’와 위의 시 ‘공터를 통해’는 서로를 반영하는 관계에 놓여 있다. 이 시에서 “공터”와 “옆 사람”, “흰 개”, 그리고 “나”는 한때 “있었”다는 공통적인 속성을 지닌다. 한때 “있었”으나 지금은 “잃어”버린 것들은 “공터”와 “흰 개”이고, 남겨진 것들은 “나”와 “옆 사람”이다. 그런데 공터와 흰 개를 잃어버리고 남아 있는 “옆 사람”과 “나”의 마지막 행위를 보면 “옆 사람은” “상심하지 말라고” “나를 쓰다듬”는가 싶더니 “엎드려 흰 개의 흉내를” 낸다. 앞서 옆 사람이 나를 위로하며 “쓰다듬었”기 때문에 이때 “엎드린 흰 개”를 “나”에 대입해 읽어도 어색하지 않다. 공터와 흰 개가 사라지고 남은 것은 분명 “나”와 “옆 사람”이지만 이들은 공터를 공터이게 했던 행위를 여전히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존재가 사라진 곳에서 무의미한 행위만이 부각되고 오히려 행위의 의미는 지워진다. ‘흰 개를 통해’의 마지막 장면을 다시 주목해 보면 “끝도 없이 돌 것처럼 돌며 돌다가 공터 밖으로” 벗어난 “흰 개는” “일어나서 아주 천천히 걸어 나”간다. 공터가 사라지자 흰 개도 사라지고, 공터에서 벗어나자 흰 개도 흰 개의 행위를 벗어난다. 이 장면은 베케트 부조리극의 소진된 인간을 연상시킨다. 들뢰즈에 의하면 “소진된 인간은 모든 가능한 것을 소진하는 자”로서 “가능한 것을 실현하지 않고 가능한 것과 유희”하는 인물들을 가리킨다.(11) 안태운의 시는 베케트 극의 인물들처럼 의미 없는 행위를 돌출시키는 방식으로 공터와 인간과 비인간에게 요구됐던 행위를 점검하고 재사유하게 한다. 이 무의미한 반복은 존재가 사라진 후에도 텅 빈 행위가 지속되는 공간이 돼 버린 기이한 공터의 작위성을 가시화한다. 존재는 지워지고 행위만 남아 있는 공간, 이것이 공터의 본질인 것이다. 하지만 소진하는 인간은 공터를 말 그대로 ‘빈’ 공터의 장으로 재진입시키고 공터의 잠재적 역량을 추동한다. ‘가능한’ 공터의 모든 것을 소진해 버림으로써 공터는 “인간 너머의 드라마가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인간의 자만심을 해체하는” ‘풍경’으로 거듭난다. 애나 칭에 의하면 풍경은 역사적 행위의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활동적이다. “풍경이 형성되는 것을 지켜보면 세계 형성에서 인간이 살아 있는 다른 존재에 합류한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12) 안태운의 시에서 소진의 의미는 결국 잠재적 공터, 무엇이 실현되기 이전의 공터, 인간과 비인간이 무엇으로 규정되기 이전의 상태, 즉 인간과 비인간의 행위를 결정하기 이전의 공터를 복구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이는 어쩌면 도래할 미래를 위한 재귀적 움직임이다. 4. ‘공통 세계’의 주민들-듣는 법 연습하기 황유원은 ‘침대벌레’에서, “파리 배낭여행” 중 ‘나’의 피를 “빨아먹은 벌레”가 “나 없는 침대에서 배를 빵빵히 불린 채/한숨 늘어지게 자고 있을 모습”을 “자꾸 마음속에 그려” 본다. 피부에 피가 날 정도로 “긁어대면서도”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흡족한 이미지”로 침대벌레를 연상하는 ‘나’는 이를 루브르박물관의 온갖 명화들보다도 생생한 감각으로 느끼면서 내 피를 먹고 배가 빵빵한 벌레의 모습을 “내 머릿속 한구석에 걸려 있”게 한다. 이 그림의 제목은 “침대벌레”이면서 시의 제목이 되기도 한다. 벌레는 벌레의 일을, 나는 나의 일을 했다는 안도감인 것일까, 후에도 ‘나’는 가끔 이 기억에 숙면을 취한다. 이를 인간과 비인간의 공생이나 그 가능성으로 점치는 것은 지나친 낙관주의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의 이 흡족함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가령 이 흡족함이 ‘공통 세계’(13)의 자각에 따른 것이라는 가정은 어떨까. 배부른 벌레의 휴식과 그에 대한 나의 이상하리만치 계속되는 연상을 인간과 비인간종의 필연적인 마주침의 흔적 정도로 볼 수 있다면, 공통 세계에서 인간과 비인간은 결국 무균실의 존재가 아니라 서로 교차하고, 서로를 침범하면서 같은 공통 세계를 이루는 하나의 요소들인 것이다. 앞서 보았던 ‘밤의 벌레들’의 후반부를 ‘밤의 풍경들’로 치환해 다시 읽어 보자. 자, 다시 한번 잘 생각해봅시다/ 당신이 불을 켜기 전 벌레들을 뒤에서/옆에서 앞에서/ 감싸고 있던 그/ 그윽한 고독과 어둠을/ 그 어둠의 우월함에 대해 한번 말입니다/ (…) / 당신은 거실에서 혼자 눈감고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 / 사라지는 음악을 두 손으로 움켜잡아 보지만/ 그 음악은 이미 찬바람의 손에 잡혀 갈가리/ 찢겨진 후……/ (…) /그러니 한번 두 눈을 감고/ 이미 다 사라져버린 벌레들을 마음속으로 뒤쫓아가/ 그 단단한 껍질 속으로 들어가봅시다/ 벌레가 되어/ 벌레의 절망감을 조금이나마 나눠 가져봅시다/ 벌레의 내장 깊은 곳에 조금은 남아 있을 어둠을 찾아/ 그 속에 들어앉아/ 아직 채 가라앉지 않은 떨림 속에서/ 아까 듣던 그 음악을/ 계속/ 이어서 들어봅시다 ―황유원, ‘밤의 벌레들’ 부분 황유원은 불의의 습격을 당한 벌레의 황망함을 인간의 입장에 대입해 보기를 권한다. “어둠 속 고독”의 상태에서 밥 대신 깨끗한 음악을 즐기고 있는 순간 찾아온 느닷없는 침입이 무엇보다 문제적인 것은, 두 손으로 움켜잡을 수도 없이 “갈가리” 찢겨지고, “사라지는 음악”에 대해 벌레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황유원은 그러니 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고, “깊이 공감해” 보자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벌레가 되어”, 벌레가 처한 사태를, “벌레의 절망감”을 “나눠 가”지고, 아직 소멸하지 않았을 벌레의 어둠과 고독과, “떨림 속에서” “듣던 그 음악”을, “이어서 들어” 보자는 것이다. 인간과 벌레는 결국 일정한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공통 세계의 주민들이다. 공통 세계의 존재들은 서로의 존재 방식을 방해하거나 협력하면서 지내 왔고, 또 어떤 존재들은 자신들이 같은 장소에 있다는 사실을 이제 막 인지하게 됐을 수도 있다. ‘배치’가 “존재하는 방식이 모인 것”(14)이라면 이 시에서의 ‘밤의 배치들’에는 벌레뿐만 아니라 불을 켠 “당신”은 물론 이 사태를 전달하는 화자까지 관여하게 된 셈이다. 결국 이들은 서로의 주거지를 조금씩 침범하면서, 또 조금씩 오염시키면서 ‘배치’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때 존재들은 복수의 리듬과 존재 방식을 형성한다. 존재들이 일으키는 각자의 리듬과 각자의 음악은 얼핏 불협화음처럼 들릴 수 있겠으나 이 “다운율의 배치를 연구”함으로써 배치를 “거주 적합성의 공연”으로 인식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15) 쇤베르크는 흔히 다성음악을 지칭하는 ‘폴리포니’(polyphony)의 원리에서 화성법의 해방을 발견하고자 했다. 이는 관습적 화음의 폐기가 동반돼야 가능한데, 이때 불협화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화음은 더욱더 ‘폴리포니적’이 된다.(16) 방금 떠난 벌레의 “떨림”을 잊지 않고, 벌레가 들었을 음악을 “이어서” 들어 보자는 제안은 각자의 음악과, 복수의 음악이 일으키는 불협화음에 귀를 기울이면서, 또 조율해 가면서 밤의 배치를 이해해 보고자 하는 시도에 가깝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무엇보다 “듣는 법을 연습”(17)해야 한다. 5. 나의 과거가 아닌 ‘너의 미래’ “안데스산맥에서 케추아어를 말하는 사람들”은 “과거란 우리가 아는 것이므로, 볼 수 있고, 따라서 앞에, 바로 코앞에 놓여 있는 것”으로, “미래는 뒤에 놓여 있”는 것으로 여긴다.(18) 이는 인간의 오래된 관습적 시간관을 뒤집는 측면이 있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 과거·현재·미래의 작동 방식이 고정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인식 체계나 방법에 의해 변화할 수 있는 유동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놀라워, 내가 느낄 수 있다는 것/ 어느 가을, 당신은 계속 자라나고 있었다/ (…) / 어느 여름, 조카가 생기고 나서는 버스를 타고 가는 중 학생을 보며 그는 내 과거가 아니라 조카의 미래라고 문득 여겨졌고/ (…) / 어느 봄, 옛 기억 속 장면에서는 나를 삼인칭으로 인식하게 되고/ 어느 여름, 끝말잇기를 하는 인간/ 아이의 냄새를 맡는다. 아이가 냄새를 맡는다/ 어느 가을, 반딧불이와 노루와 버들치를 알았다/ 어느 겨울, 사슴벌레와 망초와 물범을 알았다/ (…) / 모르는 것이 많았다/ 몸짓들/ 다르고 같다는 걸 알았다/ 같고 다르다는 걸 알았다/ 기억 속에서 어느 날 우리가 여럿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잠들고 꿈꾸고 깨어나는 우리가 여럿이라고 생각하니/ 드넓어지는 마음을 알아챘다/ 우리가 여럿이어서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다짐했다/ 우리가 여럿이라 슬펐다 기뻤다 하염없었다/ 그것/ 흐르는 강물/ 둘레/ 산란과 예감/ 탄성/ 감각들/ 우연/ 시간이 흐르고 있다/ 시간이 흐른다 되돌아온다/ 기척이 스민다 ―안태운, ‘기억 몸짓’ 부분 ‘나’는 나의 과거와 유사한 기억 혹은 장면과 대면하지만 아이를 알고부터는 그것이 나의 과거가 아닌 아이의 미래로 대체된다. 세계의 중심에 아이가 자리하면서부터 “기억 속 장면”에서 ‘나’는 “삼인칭으로 인식”되고 미래의 모든 계절은 아이의 시간, 아이의 감각에 의존하게 된다. 미래의 아이는 “어느 가을” “반딧불이와 노루와 버들치”를, “어느 겨울” “사슴벌레와 망초와 물범을 알”아 간다. 이에 더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이는 자신을 둘러싼 공통 세계의 “존재”들을 알아 갈 것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존재들의 “다르고” 또 같은 “몸짓들”, “같고”도 다른 “우리가 여럿이라는 사실”, “잠들고 꿈꾸고 깨어나는 우리가 여럿”이라는 사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여럿이어서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다짐”할 수 있고, “여럿이라 슬펐다 기뻤다”하는 그 마음은 “하염없”다. 분명 안태운의 “시간”은 “흐르고 있”다. 안태운은 시간의 운동성, 즉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흘러간 시간은 반드시 “되돌아온다”, 기억과 함께. 이처럼 안태운이 그리는 미래는 어딘가 재귀적이다. 돌은 걸어갔다, 물론 어느 식당에서건 떠나서. 풍경을 보면서는 순간마다 무언가가 옆에 있다고 깊이 지각할 수 있었는데, 그것들이 귀여워 보였다. 그래서 말 걸고 싶기도 했다. 그중 척삭동물문이며 조강인 까치가 마음에 남아 말 걸고 싶었다. 으흠, 흐음. 까치의 부리와 발가락이 귀여워서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이윽고 돌은 생각했다. 그 부리와 발가락을 쥘 수 있을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곧바로 놔줘야지, 하고 혼잣말했는데…… 기억하는 게 미래 같았다. ―안태운, ‘돌과 구름’ 부분 미래는 ‘추측’을 통해 현재에 들어온다. 시간의 이러한 사유 방식은 추측된 미래를 위해 기꺼이 나의 현재를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한다. 미래는 되돌아와 나에게 영향을 준다. 안태운은 이 “살아 있는 미래”(19)를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세계와 함께 나눌 준비를 하고 있다. “돌”로서 사유하고, ‘풍경’을 인식하고, 공통 세계의 주민들을 “귀여워”하면서, “말 걸고 싶”어 하면서 “오랫동안 바라”본다. 하지만 의도적인 접촉은 ‘생각’만으로 접어 두고, 이 모든 일련의 행위들을 “미래”로서 “기억”한다. 이것이 안태운이 나의 과거가 아닌 ‘너의 미래’로서의 “미래”를 기꺼이 증식시키고자 하는 방법이다. 콘에 의하면 ‘미래’는 어쩌면 살아남는다는 것(to survive)이면서 생명을 넘어서는 것 혹은 삶을 넘어서는 어떤 것(super+vivre)이기도 하다. 또한 미래에 살아남는다는 것은 수많은 부재와 관계하는 것, 즉 다른 죽음, 다른 사건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20) 시인은 미래의 ‘죽은 사물’이 될 시를 현재의 지평에서 생성한다. 이 ‘죽은 사물’은 시가 끝나도 계속 날아간다. 어쩌면 시가 내재한 뜻밖의 물질성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경로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나는 그만 이 시를 끝내지만/ 이 시는 끝나고도 계속 날아가고 있다/ 밤의 행글라이더는 밤의 행글라이더”, 황유원, ‘밤의 행글라이더’) ①안태운의 시는 시집 ‘감은 눈이 내 얼굴을’(민음사, 2016), ‘산책하는 사람에게’(문학과지성사, 2020) 외에 ‘시보다 2022’(문학과지성사, 2022), ‘시보다 2023’(문학과지성사, 2023)에서 발표한 작품 역시 논의의 대상으로 한다. 황유원의 시는 시집 ‘이 왕관이 나는 마음에 드네’(현대문학, 2019), ‘초자연적 3D 프린팅’(문학동네, 2023)에 수록된 시들을 논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하 본문에서 시를 인용할 경우 시의 제목만 밝힌다. ②박현주, ‘천하무적이던 곤충이 도처에서 쓰러지고 있다’, 우리교육(2023년 가을), 76쪽. ③우리가 그 종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일어나는 멸종을 일컫는 용어는 ‘센티넬라 멸종’(Centinelan Extinction)이다. 위의 글, 77~81쪽 참조. ④뉴질랜드 한 대학 식품 과학 연구팀은 최근 곤충이 식품 공급원으로 적합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곤충, 단백질 함량이, 소고기, 닭고기보다 높아…’, 나침반 36.5도(2023년 9월호), ㈜삼십육점오커뮤니케이션즈, 104쪽. ⑤신예슬, ‘음악의 사물들: 악보, 자동 악기, 음반’, 작업실유령, 2019, 179~185쪽 참조. ⑥김홍중, ‘코로나19와 사회이론: 바이러스, 사회적 거리두기, 비말을 중심으로’, 한국사회학 제54집 제3호, 한국사회학회, 2020, 177~180쪽 참조. ⑦애나 로웬하웁트 칭, ‘세계 끝의 버섯’, 노고운 옮김, 현실문화, 2023. ⑧인아영, ‘개와 나무와 양말과 시’, 문학동네(2022년 봄호), 129쪽. ⑨애나 로웬하웁트 칭, 앞의 책, 280쪽.(10)송현지, ‘어느 순례자로부터 온 편지-안태운론’, 2023 신춘문예 당선평론집, 정은출판, 2023.(11)질 들뢰즈, ‘소진된 인간’, 이정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3, 23~26쪽. (12)애나 로웬하웁트 칭, 앞의 책, 271쪽. (13)스티븐 샤비로, ‘사물들의 우주’, 안호성 옮김, 갈무리, 2021, 118쪽. (14)애나 로웬하웁트 칭, 앞의 책, 58쪽 각주. (15)위의 책, 279쪽. (16)테오도르 W 아도르노, ‘신음악의 철학’, 문병호·김방현 옮김, 세창출판사, 2012, 96~97쪽 참조. (17)애나 칭은 “통일된 화음”과는 반대되는 개념인 다운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다운율을 이해하려면 각각의 선율을 따로 듣고 그 선율들이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화음이나 불협화음으로 합쳐지는 것 또한 모두 들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방식처럼 우리는 배치를 이해하기 위해 배치가 존재하는 개별 방식을 주시함과 동시에 산발적이지만 그 결과로 발생하는 조율을 통해 그 선율들이 어떻게 합쳐지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이제 이러한 방식으로 듣는 법을 연습하고자 한다.”, 애나 로웬하웁트 칭, 앞의 책, 280쪽. (18)어슐러 K 르 귄, ‘세상 끝에서 춤추다’, 이수현 옮김, 황금가지, 2021, 250~251쪽. (19)에두아르도 콘, ‘숲은 생각한다’, 차은정 옮김, 사월의책, 2018, 331쪽. 콘은 생명과 미래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성을 퍼스의 “살아 있는 미래” 개념에서 끌어와 사유한다. ‘미래’에 관한 논의 중 일부는 이 책의 6장 ‘살아 있는 미래(그리고 죽은 자의 가늠할 수 없는 무게)’를 참조했다. (20)위의 책, 370~373쪽.
  • 동심이 몽실몽실… 만화 보물섬으로 떠나다, 추억이 새록새록… 문학 다락방에 머물다 [박상준의 書行(서행)]

    동심이 몽실몽실… 만화 보물섬으로 떠나다, 추억이 새록새록… 문학 다락방에 머물다 [박상준의 書行(서행)]

    보물이 덮여 있는 땅이라는 ‘보개’도서관 3층 책다락 만화책방 개관무빙·원피스 등 1만권 이상 소장딱 하나 아쉬움, 라면 안 판다는 것조선시대 목판 인쇄 도서 등 소개3층 창가 자리 ‘안성객사’ 한눈에‘올드타임 그때그시절’ 숨은 명소1960~1990년대 물품 2만점 전시 메리 크리스마스 앤드 해피 뉴이어. 종교와 무관하게 당신의 안부를 묻는다. 12월의 마지막 열흘은 우리가 서로를 응원해 마땅한 시기다. ‘글쎄…’ 하며 머뭇댈 수 있겠지만 새해를 맞는 우리의 자세는 그러해도 좋지 않을까? 적어도 경기 안성 보개도서관(책문화센터)에서는 그런 믿음이 생겨난다. 무릎 위에 아이를 누인 아빠가 책장을 넘기는, 어린 자매가 어깨를 맞댄 채 속닥대는, 아득해서 따듯한 풍경들이 도서관을 덥힌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라면의 매운 수프 향처럼, 벽난로를 붉게 그을리는 장작의 불꽃처럼, 겨울의 느린 걸음이 닿고 싶은 여행의 풍경이겠다. 만화책 특화 도서관이라서? 그렇게만 믿고 싶지는 않다. 사람들의 머리맡에 꿈과 희망 이런 단어들이 내일의 말풍선처럼 떠다니는 걸 본 듯했기 때문이다. 이맘때 우리는 둘로 나뉜다. 여기 아닌 어딘가로 떠나거나 여기 아닌 어딘가를 그리워하거나. 한 해를 보내는 심경이 그렇다. 정다운 자리에서 괜스레 쓸쓸한 풍경을 그린다. 며칠 지나면 해가 지고 바뀐다. 우리는 새해에 어떤 응원을 건넬 수 있을까? 혹시 지금껏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그걸 어른이 됐다는 증표로 받아들이는 건 좀 억울한 일이다. ●여기 아닌 어딘가로? 만화책방으로! 돌팔이 처방처럼 들릴 테지만 안성 보개도서관은 그럴 때 제법 괜찮은 여행지다. 드라마 ‘악귀’의 촬영지여서 소개하는 건 아니다. 힘을 빼고 부담 없이 머물며 아이처럼 낄낄거려도 좋은 만화책 서가가 있는 까닭이다. ‘무빙’, ‘열혈강호’, ‘슬램덩크’, ‘유리가면’ 때로는 ‘원피스’(One Piece)와 ‘H2’까지. 짧은 일탈의 목적지로 이만한 선택지가 어딨을까? 그곳에서 우리는 여기 아닌 어딘가로 떠날 수 있다. 보개도서관은 1996년 안성시립도서관으로 개관했다. 2008년 중앙도서관이 생기기 전까지 안성의 대표 도서관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 후인 2018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도서관 3층에 ‘책다락 만화책방’이 생겨났다. 어느새 소장 만화책만 1만권이 넘는다. 만화책도 만화책이지만 넉넉하고 여유로운 운영이 긴장의 봉인을 해제한다. 침묵과 고요 대신 옆 사람과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속닥거려도 되는, 그러다 만화책을 이불처럼 덮고 소파에 몸을 누인 채 노곤함을 즐겨도 그러려니 하는, 가벼운 커피 한잔마저 허락하는 그래서 부모와 아이들이 나란히 앉아 책장을 넘기거나, 연인들이 손을 잡고 서가를 누비는 모습이 이곳에서는 자연스럽다(심지어 보드 게임도 가능하다). 첫 마중 또한 여느 도서관과 다르다. 음악이 있는 도서관이다. 막 흐르기 시작한 곡은 윤한의 피아노 연주곡 ‘9월의 기적’이다. 9월은 그가 아빠가 된 달이고 그 감격을 담은 곡이란다. 그러니 예수가 태어난 12월에 ‘9월의 기적’은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말 같기도 하다.●다락방 연대의 비밀스런 공감 먼저 중앙 원형 서가에 들른다. 바깥에서 볼 때 건물 가운데 둥근 원기둥 안쪽이다. 반원의 책장은 만화책이 책장을 빙 둘러 빼곡하다. ‘장관’이라거나 ‘오지다’거나 세대마다 환호를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환대의 마음은 똑같다. 원형 서가를 기준으로 왼쪽은 ‘책다락 만화책방’, 오른쪽은 독립출판 전시실이다. 만화책방 가는 통로에는 북 큐레이션과 신간 도서 책장이 기다린다. 만화책방의 예고편이랄까. 이달은 ‘드라마 원작 웹툰’ 큐레이션이다. 얼마 전 방영을 끝낸 ‘무빙’, ‘이태원 클라쓰’ 등의 만화책이 도열한다. 드라마와 원작의 내용은 같지만 그것을 읽어 나가는 흐름은 다르다. 낱낱으로 그려진 칸칸의 프레임 속 명장면을 느긋한 산책의 시선으로 살핀다.자, 이제 본편이다. 만화책 서너 권을 골라서는 본격 입장한다. 만화책방은 까만색 2인용 의자와 음료를 놓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 등 영락없는 만화방이다. 처음 조성할 때부터 만화방 인테리어를 염두에 뒀다고 한다. 뒤편 좌석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아예 누워서 책을 볼 수 있는 매트 소파다. 가족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빠의 무릎 위에서 아기가 눈을 말똥거린다. 만화책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빠와 아이의 시선이 정겹다. 무엇보다 적당히 흐트러지고 또 얼마간 불량스런 자세는 만화만이 줄 수 있는 해방이다.서가 안쪽에는 다락방이다. 보호자를 포함한 4인 이상 이용을 권하지만 2층은 이미 소녀들의 아지트다. 1층은 아빠와 딸아이가 마주 앉아 경쟁하듯 만화책을 뒤적인다. 이토록 다양한 세대가 하나의 공간 안에서 공통의 집중력을 발휘하다니. 실실 웃음이 나는 건 왜일까? 어쩌면 만화가 그리웠던 건 책 속의 이야기보다 비밀스런 공모의 연대감이 아닐는지. 그걸 달리 부르면 상상의 발로일 테고. 새삼 인정할 수밖에 없다. 활자로만 가득 찬 책은 진지한 동무지만, 때로는 만화처럼 개구진 친구들이 갑갑한 일상의 숨통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그래서 예전 어른들은 만화를 위험한 독서로 규정했던가? 하지만 여기는 2023년의 도서관이다. 일탈의 욕망은 아이와 어른이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은 후의 시대다.●‘허겁지겁’ 대신 ‘잘 살았어’ 조금 전 꺼낸 만화 ‘슬램덩크’를 산처럼 쌓아 놓고 만화광들 사이에 똬리를 튼다. 본격적인 일탈이다. 도서관을 잠시 잊고는 “만화방은 라면인데” 하며 툴툴대기도 한다. 그래, 욕심은 끝이 없지. 따뜻한 차 한 잔을 타서는 자리로 돌아온다. 막 넘긴 책장 속에선 강백호가 멋진 앨리웁 덩크를 성공했다. 다음 권에서 다음 권으로 폴짝폴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든다. 가끔씩 고개를 들고는 이곳이 도서관이라니 흐뭇해하며. 만화책방을 나오기 전에는 또 한 권의 만화책이 불러 세운다. 윤태호 작가의 ‘미생’이다. ‘책점’을 치듯 우연의 장을 펼친다. ‘80수(화)의 에피소드’다. 퇴근 전 장그래가 사장이 건넨 조언을 떠올리는 장면이다. 서서 읽는다. “허겁지겁 퇴근하지 말고 한 번 더 자기 자리 뒤돌아보고 퇴근하면 실수를 줄일 수 있을 거야.” 상사의 착한 조언보다 ‘허겁지겁’이라는 단어에 꽂힌다. 연말이라 그렇다. 한 해 끝에서는 늘 지난 한 해가 ‘허겁지겁’인 것만 같다. 그래서 한층 매섭게 자신을 몰아세우고, 그 결과로 새해의 계획은 늘 거창한 것일지도. 도서관을 나올 때는 이미 해가 기울었지만 허겁지겁 걷지 않는다. 주차장 한가운데 서서는 뒤를 돌아보는 여유도 갖는다. 다시 보니 도서관 지붕은 누군가 건물 위에 읽던 책을 펼친 채로 얹어 놓은 모양이다. 3층 서가 창 너머에는 오늘의 만화책을 고르는 이가 보인다. 이번에는 도서관 뒤편에 거대한 거인이 있어 책장을 넘기려 도서관 지붕을 들어 올리는 상상을 한다. 거인의 낭독이 흰 눈처럼 날리지 않을까 하며 또 실없이 웃는다. 이게 다 만화책 때문이야 하며. 도서관이 있는 보개(寶蓋)의 지명은 ‘보물이 덮여 있는 땅’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호호 입김을 불며 군고구마 껍질을 벗기듯 한 장 한 장 만화책을 넘기는 행복감은 이 겨울, 이곳만의 보물일지도. 이제 도서관 건물은 심지어 그 옛날의 ‘보물섬’(1980~1990년대 만화잡지)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그 섬 위에 말풍선 하나를 그려 적는다. “잘 살았어.” 한 해의 책장을 덮으며 건네는 안부의 인사다. 2023년의 내가 내게 꼭 한 번은 해 주고 싶었던 말이다.보개도서관 3층은 ‘책다락 만화책방’ 외에 독립출판물 전시실 또한 매력적이다. 전시실이지만 동네 책방이나 다름없다. 책 진열대와 책장을 독립출판물 전시대처럼 사용한 모습이 그렇다. 그 가운데는 안성 방각본(坊刻本) ‘계몽편언해’ 유물이 눈길을 끈다. 방각본은 조선시대 민간 인쇄물이다. 안성은 조선 3대 방각본 판각지였다. 지금의 독립출판물에 견줄 만하겠다. ●1930년대와 1990년대 도서관 나란히 책을 읽을 수 있는 호젓한 자리 역시 여럿이다. 창가 자리는 유리창 밖으로 안성객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 장면이 특별한 건 안성객사 역시 한때는 안성도서관이었던 까닭이다. 객사는 과거 관리가 출장길에 머물던 숙소이자 임금에게 망궐례를 올리던 건물이다. 안성객사는 유일한 고려시대 객사로 추정한다. 임금의 위패를 모시는 중앙의 정청은 맞배지붕이고 숙소로 쓰인 동서헌은 팔작지붕으로 벽체 없는 누각이 붙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안성보통학교로, 광복 후에는 명륜여중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사이 1932년부터 10여년간이 안성도서관이었다. 그러니 1930~40년대와 1990년대 안성의 도서관이 이웃한 셈이다. 안성객사는 안성시립도서관(현 보개도서관)이 개관한 다음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다. 안성도서관의 역사를 나란히 보여 주고자 한 의도로 읽힌다. 다른 지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그래서 객사 마당을 거닐며 담장 너머 보개도서관을 바라보면 감흥이 다르다. 겨울에도 마루에 앉아 별생각 없이 머물고픈 마음이 간절한데 객사 건물 안은 들어갈 수 없다.●시와 서예와 수석의 박두진문학관 보개면은 청록파 시인 박두진이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다. 보개도서관 ‘책다락 만화책방’ 자리에는 원래 해산 박두진 자료실이 있었다. 박두진 문학관이 개관하기 전까지 박두진 문학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장소였다. 현재 박두진 문학관은 안성맞춤랜드 북쪽에 있다. 옥상을 포함해 지상 3층, 총면적 999.45㎡ 규모의 건물이다. 상설 전시는 그의 시 세계를 여러 시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를 들면 ‘노래로 불리다’는 노래로 만들어진 박두진의 시다. 성악가 조수미가 부른 ‘꽃구름 속에’와 가수 조하문이 부른 ‘해야’ 등을 직접 들어 볼 수 있다. 시에 곡을 붙여 리듬과 선율을 부여하니 시어의 감정이 훨씬 풍성하게 다가온다. ‘꽃구름 속에’는 광복에 대한 염원을 담은 곡인데 이맘때는 힘차게 새해를 여는 노래로도 들린다. 시인은 “시를 쓰거나 수석을 만지거나, 먹글씨를 쓰는 일이 자신에게 가장 적극적인 것”이라 말했다. 그러니 시와 더불어 수석과 먹글씨 두 가지를 눈여겨볼 일이다. 그가 수집한 수석은 상설전시실에, 먹글씨는 특별전시로 전시 중이다.●그립거나 신기한 ‘올드타임 그때그시절’ 안성 시내를 기준으로 보개면의 반대편이 공도읍이다. 농협안성팜랜드를 가장 먼저 떠올릴 테지만 ‘올드타임 그때그시절’은 그 못지않은 숨은 명소다. 생활사박물관으로 임영곤, 강영숙 부부가 35년 동안 수집한 1960~90년대 생활 물품 2만여점을 전시한다. 수십년 쌓은 노하우를 집약해 꾸린 곳이 ‘올드타임 그때그시절’이다. 박물관 겉모습은 심심하다. 얼핏 보면 창고 건물이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와~’ 하는 감탄이 나온다. 외관보다 내부를 알차게 꾸미는 데 힘을 집중했다. 실내는 크게 편집숍과 카페테리아 그리고 박물관 등 두 동으로 나뉜다. 카페테리아는 옛날 간판과 아폴로, 달고나 같은 추억의 간식이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 카페테리아에서 이어지는 박물관 동은 한층 압도적이다. 높이 5m에 길이만 70m에 달한다. ‘ㄷ’자 형태로 순환하는 동선이니 족히 140m가 넘는 거리다. 실재하는 골목이라 해도 믿겠다. 대폿집, 비디오 가게, 사진관, 교실 등 세트의 소품 구성은 중노년층이 애환에 젖어 눈물을 훔칠 만큼 정교하다. 물론 레트로풍 데이트를 즐기는 20~30대에게도 진귀한 구경이다. ■여행수첩 운영 시간은 화~일요일 오전 9시~오후 8시(책다락 만화책방, 독립출판물 전시실), 매주 월요일 휴관. www.anseong.go.kr/library (031) 678-5330.
  • 연말 예술의전당 주인공은 바로 나야 나!

    연말 예술의전당 주인공은 바로 나야 나!

    연말을 맞은 요즘 예술의전당에 공연을 보러 가다 보면 외부에서 들어가는 입구 근처에 인형 두 개와 크리스마스트리가 놓인 것을 볼 수 있다. 오페라하우스와 음악당으로 가는 관객들이라면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이 인형의 주인공은 바로 ‘호두까기인형’이다. 국립발레단이 해마다 연말이면 선보이는 ‘호두까기인형’은 수많은 연말 공연이 쏟아지는 12월 예술의전당에서도 단연 주인공이라 할 만한 존재감을 뽐낸다. 평소에도 국립발레단은 올리는 작품마다 인기가 많지만 ‘호두까기인형’은 특히 더하다. 국내외 발레단이 다른 공연의 적자를 이 작품으로 벌충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인기라 입구의 트리를 지나 오페라극장에 도착하면 복도도 온통 ‘호두까기인형’ 세상이다. ‘호두까기인형’은 배경이 크리스마스인 데다 관람 연령도 48개월 이상이라 가족 단위 관객이 대거 찾는다. 공연을 보러 가면 실제로 다른 공연보다 월등하게 어린이 관객이 많은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공연을 보는 중에도, 공연을 보고 나서도 환상적인 동화 나라에 반한 아이들의 순수한 반응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크리스마스 당일인 25일까지 선보이는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은 주인공 소녀 마리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꿈에서 호두 왕자를 만나 크리스마스 랜드를 여행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원래 호두까기인형은 독일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로 액운과 위험으로부터 가정을 지켜주는 존재였다고 한다. 입안에 견과류를 넣고 뒤의 레버를 누르면 껍질을 까주는 도구를 병정 모양 인형으로 만든 것이 오늘날 익숙한 호두까기인형이 됐다. 발레 작품은 1816년 출판된 호프만의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대왕’이 원작. 이후 차이콥스키가 작곡해 1892년 초연하면서 널리 사랑받게 됐다. 마리가 떠나는 환상적인 여행이 많은 이에게 동심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국립발레단은 여러 버전 중 러시아의 전설적인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 버전으로 2000년부터 꾸준히 선보여왔다. 이 버전은 목각인형을 국립발레단 부설 발레아카데미 학생 중에 선발된 어린 무용수가 직접 연기하는 게 특징이다. 극 초반부터 등장해 극을 이끄는 화자 역할을 하는 드로셀마이어 역시 이 버전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해석으로 자칫 유치하게 흘러갈 수 있는 극을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이끄는 역할을 한다.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볼거리도 풍성하다. 국내 최고의 극장오케스트라인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차이콥스키의 아름다운 음악은 귀를 사로잡는다. 의상도 화려하고 각 나라 인형들의 춤과 눈송이 춤 등도 관객들에게 이국적인 매력을 느낄 기회를 준다.특히 이번 ‘호두까기인형’에서는 2021년 ‘주얼스’ 중 ‘루비’에서 솔리스트 역을 맡으며 관객들의 눈도장을 찍은 정은지와 2023년 신작 ‘돈키호테’의 에스파다, 지난 6월 익산 지역공연에서 ‘지젤’의 알브레히트 데뷔로 주목받은 곽동현이 새롭게 마리와 왕자로 데뷔해 의미를 더했다. 무엇보다 연말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무대 커튼 위로 ‘Merry Christmas’ 자막을 띄우는가 하면 공연이 끝날 때 베토벤 9번 교향곡과 징글벨 등 연말이면 종종 울려퍼지는 곡을 들려준다.이 공연을 마치면 국립발레단은 내년에도 풍성한 발레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내년에는 신작 ‘인어공주’를 비롯해 ‘백조의 호수’, ‘라 바야데르’, ‘호두까기인형’, ‘돈키호테’, ‘KNB Movement Series 9’까지 다채로운 작품이 준비됐다. 5월 선보이는 신작 ‘인어공주’는 한스 안데르센의 동화를 원작으로 존 노이마이어가 순수하지만 강렬한 인어공주의 사랑 이야기와 인어공주의 비극적인 고통을 그만의 독특하고 신선한 해석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노이마이어는 자신의 작품을 공연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지난 8월 국립발레단이 연습하는 것을 보고 실력을 인정하면서 선보일 수 있게 됐다.올해는 쉬어가면서 팬들에게 그리움을 남긴 ‘백조의 호수’, 발레단 대표 안무가인 송정빈의 ‘돈키호테’도 기대를 모은다. 무용수 송정빈에서 안무가 송정빈으로 거듭날 수 있게 만든 ‘KNB Movement Series’ 역시 한국 발레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관심을 끈다. ‘라 바야데르’는 3년 만에 돌아온다. 제목은 프랑스어로 ‘인도의 무희’를 뜻하며 고대 인도를 배경으로 한 남녀 주인공의 사랑과 배신, 욕망을 그린 작품이다. 화려함과 웅장함을 갖춘 대작으로 국립발레단이 2013년 초연해 2014년, 2016년, 2021년 무대에 올리며 큰 사랑을 받아왔다. 그리고 연말에는 어김없이 ‘호두까기인형’이 돌아온다.
  • 가렵고 성가신 무좀 피하려면… 구두부터 벗어야겠네

    가렵고 성가신 무좀 피하려면… 구두부터 벗어야겠네

    덥고 습한 여름마다 재발도 많아짓무르거나 가려움·물집 등 동반발 외 두피·얼굴·손톱에 생길 수도발톱 무좀은 완치까지 반년 이상통풍 안 되는 볼 좁은 신발도 원인식초 등 민간요법은 증상만 악화‘감염 우려’ 목욕탕·수영장 피하고증상 사라져도 4주 이상 치료해야 ‘신발 속 남모를 고통’ 무좀의 계절이 왔다. 덥고 습한 여름에 더 극성이다. 발가락이 짓무르거나 갈라지고 발바닥 피부가 벗겨지거나 작은 물집이 생기며 피부가 두꺼워지기도 한다. 참을 수 없이 가려워도 ‘발을 잘 안 씻는 사람’이란 오해를 받을까 봐 많은 이들이 치료를 미루다 병을 키운다. 석준 중앙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무좀은 발에 땀 나도록 일하는 누구나 쉽게 발생하는 질환”이라며 “부끄러워하지 말고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법을 숙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좀균은 온도와 습도가 높은 환경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는 계절이 여름이고, 신체 부위 중에서는 발이다. 발은 각질층이 두꺼워 무좀균이 자라기 좋은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 늘 땀을 흘리는 운동선수들이 무좀에 특히 잘 걸리며 땀에 젖은 신발을 오래 신는 군인, 광부, 소방관의 발 무좀 유병률도 60%를 웃돈다. 땀내 나게 일하는 이들의 훈장 같은 질환인 셈이다. 30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료통계정보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병원 진료를 받은 무좀(백선증) 환자는 440만 9313명이다. 이 중 6~9월에 발생한 환자 수가 179만 3868명으로 40.7%에 달한다. 1~5월에는 20만~30만명대를 유지하다 6월부터 40만명대로 올라서 7월과 8월에 최고치를 기록하고선 10월부터 차츰 줄어든다. 1950~1960년대에는 상대적으로 발생 빈도가 낮았지만 생활양식이 바뀌어 구두와 양말을 신고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감염률도 높아지고 있다. 무좀은 크게 지간형·구진인설형·소수포형·급성궤양형으로 나뉜다. 지간형은 가장 흔한 무좀으로, 발가락 사이 피부가 희게 짓무르고 갈라지며 하얀 껍질이 일어난다. 주로 4번째 발가락과 5번째 발가락 사이에 발생하는데, 이 부위가 밀착돼 있어 공기가 잘 통하지 않고 습해서다. 감염이 심하면 지간형 무좀이 발바닥이나 발등까지 침범할 수 있다. 구진인설형은 염증은 적지만 발바닥 전체에 껍질이 일어난다. 발뿐만 아니라 손과 발톱에도 침범할 수 있다. 소수포형은 발바닥이나 발 측면에 물집이 발생하는 형태를 말한다. 작은 물집이 흩어져 생길 수도 있고, 서로 합쳐져 크기가 커질 수도 있다. 소수포는 끈적끈적한 노란 액체로 차 있으며 긁으면 짓무른다. 겨울에는 별 증상이 없다가 여름만 되면 재발해 가려움을 일으키는 무좀이다. 가장 조심해야 할 무좀은 급성 궤양형이다. 발바닥이 심하게 짓무르고 깊은 상처가 나며 악취를 동반한다. 이 경우 세균에 의한 이차감염이 일어날 수 있어 특히 주의해야 한다. 무좀은 발뿐만 아니라 각질이 존재하는 피부 어느 부위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피부의 표층인 각질층, 모발, 손발톱과 같이 케라틴을 포함한 조직을 침범해 증식한다. 따라서 땀이 잘 차는 습한 부위인 사타구니나 두피, 얼굴, 손, 손톱 등에도 무좀이 생길 수 있다. 고주연 한양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발 이외 얼굴이나 몸통, 사타구니 등에 나타나는 경우 ‘도장 부스럼’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붉은 반점이 생기고 주변부가 융기되며 각질이 벗겨지는 양상을 보인다”며 “두피에 발생하면 탈모가 동반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심하지 않은 무좀은 바르는 약으로 치료한다. 연고를 바르면 대개 1주일 내 가려움증, 물집 등이 사라지지만 증상이 없어졌다고 무좀이 완치된 것은 아니다. 의사들은 4주 이상 치료를 권한다. 정준민 서울아산병원 피부과 교수는 “바르는 약으로 치료되지 않거나 증상이 심한 무좀은 먹는 약도 함께 복용해야 하는데, 무좀약을 먹으면 속이 불편하거나 몸에 부담이 될까 봐 꺼리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대부분 큰 불편감이나 부작용 없이 치료할 수 있으며, 전문의 판단에 따라 치료 과정에서 피검사를 통해 부작용 여부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좀 중에서도 발톱 무좀은 치료가 쉽지 않다. 바르는 약으로는 부족하고, 먹는 약으로 치료해도 1~3개월 이상 걸린다. 완치 여부를 판단하려면 발톱이 자라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 6~12개월 이상 관찰해야 한다. 정 교수는 “무좀을 적극적으로 치료해도 쉽게 낫지 않으면 다른 피부 질환을 무좀으로 오인해 잘못 치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한다”면서 “현미경 검사나 배양검사로 곰팡이균을 확인하기 전에는 접촉피부염, 한포진, 아토피 피부염, 건선 등의 피부질환과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피부과 전문의의 치료가 필요한 이유다. 무좀은 항진균제로 치료하며, 습진은 원인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주로 면역 반응을 낮추거나 가려움증을 줄이는 약물을 사용해 치료한다. 한번 무좀이 생기면 재발이 잦기 때문에 예방이 중요하다. 고 교수는 “무좀은 목욕탕, 수영장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환자의 발에서 떨어져 나온 인설을 접촉했을 때도 감염될 수 있어 수영장이나 목욕탕을 피하는 게 좋다”며 “발을 깨끗이 하고 건조한 상태로 유지해 곰팡이가 잘 자라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료 후에도 항상 발을 깨끗이 하고 통풍이 잘되도록 한다. 가족 중 무좀 환자가 있다면 양말, 발수건, 손톱깎이 등을 구분해 사용해야 한다. 철저하게 예방했는데도 무좀이 생겼다면 신발을 의심해 보자. 발에 맞지 않는 볼 좁은 신발을 착용하면 발가락 사이가 과하게 밀착돼 더 습해지기 쉽고 마찰로 상처가 생겨 이차적인 세균감염까지 발생할 수 있다. 여름에는 앞이 뾰족한 구두보다 발가락 움직임이 자유롭고 통풍이 잘되는 신발을 신는 게 좋다. 젖은 양말이나 옷을 갈아입지 않고 축축한 상태로 놔 두면 감염이 쉽게 일어날 수 있으니 양말과 속옷도 자주 갈아입는 게 좋다. 자주 무좀이 재발한다면 여름철에 곰팡이 비누를 사용해도 도움이 된다. 식초 등을 사용한 민간요법은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석 교수는 “식초의 주성분인 아세트산이 균의 대사와 성장을 억제해 무좀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보고도 있지만, 시중에서 많이 판매하는 일반 식초는 산도가 6~7%이고, 이보다 산도가 더 높은 2배·3배 식초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면서 “이런 식초는 피부 장벽을 파괴하고, 식초에 포함된 다른 성분이 접촉 피부염을 일으키는 등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매실 등을 이용한 다른 치료도 마찬가지”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 봄빛 아래 꽃비… 흐드러지다, 그날의 우리

    봄빛 아래 꽃비… 흐드러지다, 그날의 우리

    벚꽃 시즌이다. 나라 안 곳곳에서 풍경을 찢을 기세로 벚꽃이 부풀어 오르는 중이다. 이 봄에 놓칠 수 없는 수양벚꽃 명소를 꼽았다. 수양벚꽃의 자태는 여느 벚꽃과 다소 다르다. 늘어진 가지 때문인지 어딘가 차분하고 여성스러운 느낌이다. 수양벚꽃의 본디 이름은 ‘처진개벚나무꽃’이다. 외형을 충실히 반영한 이름인 듯한데, 학술명이 무엇이든 지금 이 자리에선 보다 서정적인 수양벚꽃이라 부르기로 한다.수양벚꽃엔 조선의 17대 왕 효종의 고사가 담겼다. 청나라에서 8년간 볼모 생활을 한 효종이 훗날 북벌의 꿈을 펼칠 무기로 쓰기 위해 많이 심었다고 한다. 나무로는 활을 만들고 껍질은 활을 감을 때 썼다는 것. 벚나무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은 것에 비춰 볼 때 나라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수양벚나무들은 이런 웅지가 DNA에 새겨진 후계목일 터다.완벽한 대칭의 ‘저세상 풍경’ 수양벚꽃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경남 창녕의 영산 만년교(보물) 옆 수양벚나무다. 영산 만년교 수양벚꽃은 이른 새벽에 찾아야 ‘저세상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햇살이 비칠 무렵 아치 형태로 쌓은 무지개다리와 노란 개나리꽃, 그리고 수양벚꽃이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기온이 오르고 바람이 불면 시냇물이 흐트러지며 선경도 흔적 없이 사라진다. 만년교 옆의 연지못도 찾을 만하다. 불덩어리 형상이라는 영축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만든 저수지다. 연지못 주변에도 수양벚꽃이 많다. 연못 안에는 다섯 개의 섬이 떠 있다. 하늘의 다섯 별을 상징하는 인공섬이다. 가장 큰 섬에 세워진 정자는 ‘항미정’이다. 흔히 ‘향미정’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명백한 오류다. 항미정은 중국 항저우(杭州)의 미정(眉亭)에 빗댄 표현이다. ‘초승달을 닮은 눈썹’이라는 뜻의 아미(蛾眉)는 흔히 아름다운 여인을 우회적으로 표현할 때 쓴다. 항미정 역시 아름다운 연못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눈썹(眉)이란 단어를 쓴 것으로 보인다.꽃잎 우수수… 엔딩까지 절경 전남 순천 선암사는 나라를 대표하는 ‘꽃절집’ 화훼사찰이다. 경내 무량수각 앞에 나라를 대표할 만한 자태의 수양벚나무가 있다. 가지마다 매단 꽃등불들이 수수한 절집과 기막히게 어우러진다. 햇살을 마주하고 보면 반짝이는 꽃술들이 꼭 은하수 속 별들과 닮았다. 벚꽃은 질 때도 아름답다. 바로 앞 연지 위로 우수수 떨어진 벚꽃잎이 수면을 덮으며 그림처럼 아름다운 경관을 펼쳐 낸다. 선암사에서 가장 유명한 건 사실 선암매(천연기념물)라 불리는 매화다. 한데 깊은 산속에 터를 잡은 데다 워낙 수령이 오래돼 여느 매화보다 훨씬 늦게 꽃을 틔운다. 4월 중순 이후 찾길 권한다. 선암사의 겹벚꽃도 꽤 유명한데, 역시 늙은 매화들과 비슷한 시기에 피고 진다.이토록 고혹적인 옛 빨래터 대구에선 앞산 빨래터 공원의 수양벚꽃이 인상적이다.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녀 봐도 빨래터를 소재로 볼거리를 조성한 곳은 서울 청계천과 대구 빨래터 공원뿐이지 싶다. 벚꽃의 자태로만 보면 사실 그리 빼어난 건 아니다. 아직 어린 수양벚꽃이 더없이 고혹적으로 느껴지는 건 옛 빨래터와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엔 수많은 아낙이 이곳에 모여 빨래를 했을 것이다. 맨다리를 드러내고 빨래하는 아낙네를 훔쳐보는 떠꺼머리총각들도 수두룩했겠지. 이런 춘정의 역사 덕에 이 일대가 더욱 요염하게 빛난다.천주교 대구대교구청 안의 왕벚나무도 꼭 찾길 권한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에 온 프랑스의 에밀 타케(한국명 엄택기, 1873~1952) 신부가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나무다. 에밀 타케 신부는 우리 식물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1908년 한라산 자락의 관음사 인근에 자생하던 왕벚나무(천연기념물)를 발견해 일본 ‘사쿠라’의 원산지가 한국이란 사실을 처음 밝혔고, 1911년 ‘제주 밀감’(온주밀감)을 들여와 제주 사람들을 먹여 살렸다. 그의 이름을 따 ‘타케티’라는 학명이 붙은 식물만 해도 한라부추 등 20여종에 달한다고 한다.대웅전·미륵불 감싸듯 활짝 무심천(無心川)이 흐르는 충북 청주에도 ‘결코 무심할 수 없는’ 수양벚꽃 명소가 있다. 우암산 자락의 대한불교조계종수도원이다. 원래 이름은 용화사였는데 동명의 대가람이 청주에 먼저 자리잡은 탓에 조계종 말사인 대한불교조계종수도원이란 긴 이름으로 바꿨다. 대웅전과 미륵불 주변으로 수양벚꽃이 흐드러진다.
  • [사설] 野 ‘노란봉투법’ 강행, 노동개혁 역주행이다

    [사설] 野 ‘노란봉투법’ 강행, 노동개혁 역주행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노조의 파업권을 크게 넓히는 내용의 노동조합법 등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을 어제 국회 환경노동위 전체회의에서 강행 처리했다. 민주당 등은 향후 60일 안에 여당 반대로 법사위 심의가 마무리되지 않으면 본회의 직회부 절차를 밟는다는 방침인 반면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청할 태세여서 충돌이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여야의 대치 속에 노동계와 기업의 갈등이 한층 거세지면서 노동 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인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노조의 파업 가능 범위를 넓혀 주는 것이다. 반면 노조의 파업으로 손해가 발생해도 기업의 손해배상 소송 범위는 더 엄격히 제한한다. 원청업체와 직접 계약 관계가 없는 하청업체 노조도 원청을 상대로 교섭 요청과 파업을 할 수 있다. 기업의 대항권이라 할 수 있는 ‘파업 시 대체근로’는 허용되지 않는다. 사용자가 단체교섭에 응해야 하는 범위조차 모호한 것부터 당장 문제다. 형사처벌 대상 범위를 놓고 헌법상 죄형법정주의 위배 논란 등 우려되는 점이 한둘 아니다. 이런 구멍을 뻔히 보면서도 민주당이 일방적 힘자랑을 할 때인지 따져 봐야 한다. 노동개혁에 대한 여론 지지가 지금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합법파업 보장법’이라 포장을 해도 곧이곧대로 들어줄 여론은 예전 같지 않다. 거대 기득권 노조의 청구서에 언제까지 국가 경제를 볼모 삼는 무리수를 둬야겠는가. 사회적 분위기를 헛짚는 것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되레 위축시키는 패착이다. 어제 때마침 기득권 강성 노조와 단호하게 선을 긋는 MZ세대 중심의 노조(새로고침협의회)가 출범했다. 기성 노조의 막무가내 정치투쟁을 비판하면서 이들은 당장 “기득권 노조의 회계 공개는 당연하다”고 단언한다. 무조건적 임금 인상이 아니라 공정평가와 성과에 따른 합리적 인상을 주장한다. 안 그래도 정부의 상생임금위원회에 무조건 어깃장을 놓고 있는 기성 노조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무소불위 노조를 정면 부정하는 신생 노조를 누가 상상했나. 세상은 무서운 속도로 바뀌는데, 강성 노조와 야당은 오늘도 딴 세상에 산다. 기득권 노조는 혈세를 받고도 회계는 성역이라고 억지를 부린다. 노조원이 아니면 건설 현장에 장벽을 치고 뒷돈까지 뜯어 왔다. 고약한 구태의 껍질을 못 깨고서는 한 뼘의 설 땅도 없어질 날이 조만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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